사랑의 역사

 

1981. 4. 11. 새벽 (토)

 

본문 : 요한계시록 1장 5절 - 6절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때에 이렇게 사랑하셨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배워서  이 사랑을 표본으로 원형으로 삼아서 배워 본받아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에 사랑은 사랑에 본체시요. 예수님은 하나님에 사랑에 형상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형상인 예수님에 사랑을 본받는 것이 우리가 가질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하신 것을 우리가 배워 우리가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요. 또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신 것을  우리가 배워 그렇게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니면 다 그는 가짜 사랑이요 속이는 사랑입니다. 왜 그렇게 그것이  속이는 사랑이요 가짜 사랑인가 하는 것을 지난 밤에 증거를 했습니다. 그것이  다 제한 된 것들이요 또 그것이 극히 부분적이요 또 편벽된 것들이기 때문에  전체가 나올 때에 그 편벽은 해치는 것이 되었고 무한한 것이 올 때에 유한한  그것들은 다 사망으로 화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최고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가짜가 많습니다. 천한  것은 가짜가 없습니다. 존귀한 것이라야 가짜가 있습니다. 가짜는 진짜에 그  가치를 도둑질하고 그 유익을 노려서 힘들여 가짜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가치한 천한 것은 아무도 가짜를 만들 욕망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최고의 가치 있는 것으로 모든 사람들이 최고로 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사랑에 모든 가치를 모든 사람들이 고귀하게 여기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을  가지려고 애를 씁니다.

사랑을 가지려고 애를 쓰는데 이 사랑은 하나님 한분만이 가졌지 그분 외에는  사랑을 가질 실력이 없어서 사랑을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이 이 사랑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에 사랑을 받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사랑을 받아 가지면 이 사랑은 참으로 자기 유익을 구치  안하고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되어지기 때문에 가짜 사랑을 가진 자들은  상대방을 위하는 그 일은 할 수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상대방을 이용하는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가짜 사랑은 그 시발에 자기가 시발입니다.

가짜 사랑은 그 사랑에 시발이 자기입니다.

사랑에 종자가 자기입니다. 그 사랑에 근거 원인이 자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이 곧 선악을 아는 것이 우리중 하나와 같이 되었다 하는 그 원죄성인  것입니다. 원죄에서 나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얼핏 보면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상대방에 유익을  구하는 것 같이 보여지지만 실은 그것을 방편으로 삼아 상대방을 자기 사람  만들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한는 것이 되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구를 만족케하려는 그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이용하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완전자에게 귀속할 수 있는 기회를 다 빼앗아서 자기에게 귀속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영원히 사망시켜 삼키는 무서운 미움이요. 무서운 살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하나님에 가지신 사랑 외에 사랑은 다 이런 사랑들인  것입니다. 그 뿌럭지를 생각할 때에 무섭고 징그럽고 아주 흉측하고 또 그에  실력을 볼 때에 전부가 거짓말 속이는 것 밖에는 될 수 없는 극히 빈약한  것들입니다. 또 그것들에 결과를 보면 완전히 그 미움은 그 사랑은 미움으로  정체를 갖게되고 또 그 사랑은 마지막으로 불리 불행 불안 고통 사망으로 결과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이 귀한 것만치 가짜가 많이 있을 수 있는 것라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이래서 그 사랑에 종자에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는  찾아 알아야 되고 그 다음에는 그 사랑에 결과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찾아서  알면 그 사랑에 방편이 어떠한 것인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에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가짜 사랑과 종자도 다르고  결실도 다르고 자라가는 그 방편도 아주 판이하게 다른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어리석어서 그 사랑에 그 방편 그것만을 보고서 모든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상대방을 좋아하고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나를  위하는 것 나를 복되게 하려는 것 나를 기쁘게 하려는 것 나를 평안하게 하려는  것 나를 존영하게 하려는 것 그것을 가지고 상대하니까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몇 시간을 가든지 몇 시간을 가든지 그 수명을 생각해야 되고 또  그것이 몇 시작이 가는 그 시간이 지나가면 무엇으로 그것이 화해져서 영원한  것이 되어지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땅위에는 줄 사랑도 없고  받을 사랑도 없고 그 가치도 인정할 사랑도 없고 모두가 다 속이고 속이는  것이며 다 무지 무능한 것이 책임 못질 것이 책임지는 듯하는 이런 모든 속이고  속는 이 외에 전체가 거짓된 거 외에는 하나도 없는 것인 것을 우리는 확실히  판정하여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끝이 없는 오늘 한 시간만 살고 영원히 없어지는 것 같으면  하지만 우리는 불멸의 존재입니다. 없어지지 아니할 존재이입니다. 영원 존재에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좋은 것이 앞으로 영원에 불리한 것이 된다면 고통이  된다면 이것은 사랑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요 존재가 일시로 끝나버리면 있는 그 동안 복되다면 그것이 복이  되겠고 기쁘다면 기쁨이 되겠고 유익하게 한 것이면 유익이 되겠는데 우리는  불멸의 존재입니다. 우리가 지음을 받을 때 고것 뿐이라면 우리에게는 극히  한정된 그 사랑으로 딴 것을 찾을 수가 없는 지음 받을 때에 그렇게 유한한  것으로 제한을 지음을 받았으면 아무리 영원한 무엇을 말했 봤자. 우리에게는  없어졌는데 그 뒤에는 상관이 없습니다.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없어지지 아니할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영원 불멸의 존재입니다. 영원  존재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영원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 존재에게 행당되는 유익이라야  필요한 것이라야 평강이라야 우리에 것이 되지 영원 존재가 일시 있다가 없어질  그것으로써 일시 있다가 없어질 모든 좋은 것으로써 영원에 불리한 불행한  고통스러운 사망이 되어지는 그런 것은 우리에 것으로 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 금수나 이런 것들 이런 초목이나 이런 것들은 하나에 형체가 되어졌다가  그것이 없어지면 다시 원소로 돌아가서 그 하나에 개체라는 조성은 완전히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런 존재로 지음 받은 것이 아니고 영과 육이 영원 불멸의 영원  존재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해당된 것은 우리에게 해당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에 좋은 것이라야 됩니다. 영원에 좋은  것이 될라고 하면 그것은 시간문제로 혼돈 혼잡 혼란기 모든 것이 다 종말을  갖추기 전에는 둘도 셋도 열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말을 갖추게 되는 그때에 다 없어질 것은 없어져버리는 것입니다. 힘과  힘이 대결해서 결국은 하나의 힘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원 그  주권자 영원 그 주재자 영원 능력자 모든 영원성 완전성 불변성 또 영생성 이  모든 이런 데에 소속한 이것에 것이 아니면 다 그것은 사망에 속한 것이  되어지는 것이겠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하나님 한분만이 가졌고 또 사랑의 행사는 하나님  한분만이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실력이 없어서 지헤의 실력이  없어서 하나만 알았지 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만 알고 그것 뿐인 줄 알고  하나에게만 준하여서 모든 일을 준비했는데 하나밖에 천도 만도 넘으니까 그  준비한 것이 다 헛된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그 지혜의 모든 선물은 그것은 결과적으로 다 속인 것이 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또 그의 능력으로서 우리에게 어떤 것은 베푼다 할지라도 그의 능력은  극히 제한된 것이기 때문에 주관에 맞아 고게만 그 능력이 해당됐고 효력이  있어졌지 그 밖에 무한에 나가보니까 그 능력은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 해당도  효력도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때가서 보면 그 다 속인 것이 되어지는 것이 그것 뿐인 줄 알고  그것이면 단줄 알았는데 가보면 아니기 때문에 결과는 나를 속였고 나는 자기를  속였고 다 속이고 속고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는 것이 되어지는 것을 성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혜도 그러하고 또 자제체가 그렇지 안한 자체도 몰라 그렇지  자체가 극히 제한 되어서 고 형체로 고 모양으로 고 상태 그것은 일시 뿐이고 고  다음에는 천태만상으로 변해나갑니다. 고것이 일시 고 사랑을 갖추어 위하는  것이 되어지지만 고 다음 시간에는 위하는 게 아니라 죽이려고 해합니다. 고것이  고 상태가 유지가 아 되는 동안에는 고 사랑이라는 사랑이 될 수 이겠는데 고  상태가 시간을 따라서 바꾸어져 버립니다. 바꾸어지는 것은 극히 무능한 자이기  때문에 생명도 제 마음대로 못해서 살아야 할터인데 죽어버립니다. 또 능력이  계속해야 될터인데 능력이 고만 끝나버립니다.

그러기 자체라는 그 자체가 완전이 아니고 영원이 아니고 불변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는 어떤 존재에게 따라서 자꾸 피동되고 또 그 조성되고 또  파멸되고 그의 권리가 어떤 그 절대자에게 있고 그에게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무슨 주권이 되 가지고 제가 어떤 걸 사랑하겠다 하는 것이 다 헛 말이요. 다  빈말이요. 다 허무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한분 밖에는 가진 것이 아닌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사랑을  가질 수 없는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받으면 그 사랑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랑을 받는다 말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랑이 어떤 사랑인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왔으니까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것인데 하나님의 완전을 우리에게 줬습니다.

영원을 줬습니다. 불변을 줬습니다. 하나님을 그 완전 영원 불변 그것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의 완전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하나님의  영원이 우리엥게 왔습니다. 하나님의 불변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하나님의  영생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 하나님의 모든 그 완전성도 종류가 한이 없고 참  긔이 없어만 그 하나님의 그 전부가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을 하나님 그 본체는  아니시지만 그 하나님의 그 전부가 우리에게 왔습니다. 와서 그 본체가 그  역사하셔서 그 본체에 속성 그 신성이 곧 인간의 인성과 일위가 되어 가지고  우리에게 역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입이십니다. 또 영원히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볼 수 있도록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본체가 나타났으나 예수님의 신인양성은 예수님의 그 본체인 신성과  인간이 일위가 된 것이요. 예수님의 인성이 하나님의 그 본체와 일체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요거 알아야 되고 하나님과 예수님의 그 인성은 신성 인성  신인양성이 일위된 것이지 그 본체가 인간에 본체와 하나 되어서 그 일체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신인에 일체됨이 아니고 양성일위가 됐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그 무한하시며 완전하시며 영원하심에 우리에게 나타났는데  이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때 나타났으면 나타났으면 그분이  우리에게 무엇이 사랑이 되는가 예수님이 나타났는데 이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인데 그 사랑이 우리에게 어떻게 사랑이 되는가? 사랑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어떤 일을 했기에 사랑이 되는가? 이 완전자이신  하나님과 삐뚤어져 있는 것을 정리를 했습니다. 또 이 완전자 이분과 이 결합될  수 있는 그 움직임을 가져서 움직임이 이분과 하나되는 이 일을 했습니다. 또  이분과 이 원수된 것을 결합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과의  이 세 가지는 이것을 완성을 해서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성이 이루어졌고 불변성이 이루어졌고 완전성이 이루어졌고 생명성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어떤 완전성이 이루어졌는가 이제는 삐둘어짐을 없는 삐뚤어짐이 완전히  없는 삐뚤어짐이 완전히 없어진 완전에 사죄입니다. 완전의 사죄가 이루어졌고  또 영원히 변하지 아니하는 이 옳바른 것이 건설됐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의를 건설해 주신 거시을 완전 의요 영원 의요  불변의요. 이는 완전 영원 불변에 의를 우리에게 건설해줬습니다. 이 건설은  하나님의 움직임에 의는 움직임의 결과인데 하나님을 움직임에 우리의 움직임을  완전히 결합을 시켰습니다. 또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에 저촉된 삐뚤어진 것을  완전히 해결을 지웠습니다. 게 하나님과 완전히 결합을 시켜서 우리에게 완전  생명을 건설을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이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인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세 가지를 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그 결과를 맺었습니다. 효력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일을 하기 전에 이 일을 하기 전에 당신이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래야 사랑이 있어야지 예수님에게는 사랑이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아야 예수님께 사랑이 있지 받지 않으면 예수님에게 사랑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사랑을 가질 그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받아야 되게 때문에  됩니다.

이러기에 예수님을 순전히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이 완전자의  것을 받은 완전 뭉텅이입니다. 영원한 것을 받아 영원뭉텅이입니다. 불변의 것을  받아야 불변뭉텅이입니다. 이리하여서 예수님은 이 받아 이 사랑을 가져  이것으로서 이 주님을 사랑하십니다. 주님을 이 받은 것이 당신이 완전케 된  것이고 또 이걸 가지고 이 사랑을 가지고 행하는 것이 행하는 그 행할 때에는  하나님께 대해서는 행할 수 없는 법칙입니다. 우리에게 밖에는 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유익되게 하라" 사랑은 유익되게 하는 것인데 좋게 하는 것 행복되게 하는  것인데 행복되게 하기를 어떻게 하나님을 행복되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행복되게 할 수 없습니다. 그 완전자기 때문에 또 행복되게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행복되게 해 봤자 행복되게 하면 거기에 때가 되고 오히려 거리낌이 되지  그 완전은 안됩니다. 완전은 원형이고 완전의 모형입니다. 모형이니 원형에 도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유익되게 그 사랑이 유익되게 하는 그것은 그 사랑이 유익되게  하는 그 사랑을 작용하고 그 사랑이 역사하는 데에는 그만 못한 우리에게 밖에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은 인간에게 하고 또 인간을 사랑하는  사랑은 하나님에게 대해서 해야 된다는 그것이 그 아주 그거는 요동할 수 없는  이치입니다. 진리입니다. 이것을 지금 우리가 확실히 파악을 하고 자기가 체득을  하고 알아야 되는데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지금 사랑에 정의가 삐뚤어져 있기  때문에 전체는 지금 어덴동산에서 사랑이 들어서 인류시조를 서로 죽인거와  마찬가지로 오늘은 사랑이 들어서 교회를 죽입니다.

사랑이 들어서 교회를 망치고 사랑이 들어서 마귀들이 그들이 이렇게 가짜 사랑  가지고 이렇게 하니까 그 기독자들로 이게 사랑인 줄 알고 사랑이 들어서 교회는  완전히 망쳐졌습니다. 그 동서양의 교회가 사랑으로 망쳐졌고 지금 앞으로  앞으로도 사랑으로 망쳐졌습니다. 사랑의 정의를 오늘은 외칠 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러면 우리를 사랑하사 한 일이 뭐인가? 여기에 5절에 보면  우리를 사랑한 사랑을 말했습니다.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에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이랬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행한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행한 것입니다. 충성된 증인이 충성이 우리  위해서 했고, 증인이라 말은 하나님을 완전히 나타낸 것이 우리를 위해서  나타냈고 또 죽은 것도 우리 위해서 죽었고 또 살아나신 것도 우리 위해서 살아  났는데, 살아 났는데 이 충성도 증인도 죽음도 살아남도 우리 위해서 살아났는데  또 이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원인인가 우리를 위한 것이 원인인가? 하나님을 위한  것이 결과인가 우리를 위한 것이 결과인가? 원인과 결과 어는 것입니까 이  사랑인데 사랑을 했는데 이 사랑의 역사 사랑의 역사의 원인 그러면 사랑의  역사의 원인이라 말은 사랑의 역사의 원인이라 말은 무슨 말입니까? 사랑의  역사라 말은 무슨 말입니까? 상대방을 유익되게 좋게 위하는 그것이 사랑의  역사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역사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역사요. 사랑의 자체는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그게 사랑의 역사인데 예수님께서 충성 중인 죽은 것 살아난 것 이것은 그  사랑의 자체입니까 사랑의 역사입니까? 네 사랑의 역사입니다. 이거는 사랑의  역사입니다. 사랑의 역사인데, 이거는 사랑한 것인데 이 사랑한 것에 그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은 이 사랑의 역사가 우리에게 대해서 사랑한 것은 그 사랑의  결과가 우리에게 왔습니까 사랑의 그 원인이 우리에게 왔습니까? 역사의 원인이  왔습니까 역사의 결과가 우리에게 왔습니까? 예 사랑의 역사의 원인이 우리에게  왔습니까 결과가 우리에게 왔습니까? 그 뒤에 좀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  조사님, 결과가 왔습니다. 사랑의 원인은 어디로 갔습니까? ○○○ 조사님,  사랑의 근원은 위하는 근원은 하나입니다. 그 결과가 우리에게 왔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이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사랑의 그 방편은 이랬습니다.

이것이 사랑하는 방편입니다. 사랑의 역사 사랑의 역사는 뭐인가? 위하는 것  좋게 하는 것 기쁘게 하는 것 행복되게 하는 것인데 이것은 그 사랑의 역사의  원인은 하나님에게 대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나님을 좋게 그것은  하나님의 자체에는 행복되게 할 수 없습니다. 위할 수 없습니다. 없는데 다만  그를 위할 수 있는 것은 뭐이냐? 그분이 원하는 무엇을 함으로 그분에게 기분이  좋고 기쁘고 즐겁고 하는 그 길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는 것은 우리를 상대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길이 없습니다. 길이 있을 수가 없는 그런 복덕한 그  요소로 되어 있는 본질과 본성으로 되어 있는 것이 이 사랑인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을 상대해서 했는데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우리를 위함이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첫째 하나님을 향해 상대했고, 그 다음에는 그 우리에게 어떤 결과가  맺어지도록 했습니까? 맺어진 것은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피로  하는 말은 하나만 죄에서 해방한 것을 말했지만 이미 삐뚤어져 있는 죄에서 해방  했고 영원히 삐뚤어질 것에서 해방했기 때문에 이는 칭의입니다. 의입니다.

그래 가지고 또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결합이 됐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당신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내것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에게 드려서 섬기는 것입니까 하나님에게 주어서 하나님에게  받혀서 섬기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을 받아 섬기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방편은 어떤 것입니까? 어떤 것이지요? 받혀 섬길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자격이 없습니다. 받아 섬기는 것입니다. 받아 섬기는 것  이래서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으로 받았다 말은 우리를 삼았다  그말은 그 하나님을 위한다 말은 하나님을 중심해서 하나님을 상대해서 그의  모든 움직임을 받는 것이 받는 자 만들었다는 것을 가르쳐서 나라를 만들었다는  말을 나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또 제사장으로 삼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사장으로 삼았다는 것은 그분이 원하고 기뻐하시는 일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나라로 삼았다 말은 그의 것을 받는 것 말하고 제사장으로 삼은  것은 그분이 원하시는 이를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을 어디서 합니까? 그분이  원하는 일을 인간에게 하는 것이 제사장이요. 그분이 원하는 것을 피조물들에게  하는 것이 제사장직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인간을 사랑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인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네가 그 사람을 위하여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완전히 가지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을 위하여 그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완전히 가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내가  그에게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와 하나님과 삐뚤어진 것을 내가 이것을  고치는 것입니다. 그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역사적 바른 관계를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요것이 칭의에 속했습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서 하나님의 것이  그에게 와 가지고 역사하도록 움직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요것이 그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순전히 그를 위해서 했는데 그를 위하는 그 방법이 내가 그를  위하는 자 되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과 완전한 관계를 맺엇고 이래서 이것을  가르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당신을 거룩케 했다고 했습니다. 당신을  거룩하게 했다고 고 내가 성구는 지금 외우지 못하겠는데 우리를 위하여 당신을  거룩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먼저 내가 형제를 위해서 내가 하나님과의  완전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완전 관계를 가지고 난 다음에는  내가 그 형제로 하여금 하나님과 온전 관계를 가지게 하는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 외에는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러면 예수님께서 순전히 날 사랑했다 했지만 나에게 직접한 것은 교훈  그대로 살기 싫은 교훈, 듣기 싫은 책망, 하기 싫은 권면 이 외에는 직접 나에게  한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이 외에는 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었고 그 다음에 우리에게 이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보혜사 성신을 보낸 그것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은 무엇이냐? 우리가 형제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은 어떤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이냐? 사랑은 완전 자와 거리낌이 없게 하는 것이  사랑이요 완전자와 완전자가 만족한 그런 기뻐할 수 있는 움직임을 하게 하는  것이 사랑이요. 또 완전자와 환친을 해서 완전자의 것이 그에게 배급되고 그에게  분급되고 그에게 전달되고 하는 그것이 사랑인것 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깨끗이요, 사랑은 지혜요, 사랑은 능력이요, 사랑은  완전이요, 사랑은 승리요, 사랑은 영원이요, 사랑은 불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이 타락된 인간에게 어떤 것으로 이루어졌더냐? 이 타락된  인간에게 이 사랑이 이루어질 때에 그 이루어지는 그 공기가 어떠했던가?  이루어질 때에 그 파문이 어떠했던가? 이루어질 때에 일어나는 그 먼지가  어떠했으며 일어나는 연기가 어떠했으며 일어나는 소리가 어찌 됐던가? 그  소리는 이를 십자가에 못밖아 죽게 하라. 죽이라. 죽의면 그 벌은 어떻게 하고  벌이 있으면 우리가 받겠다 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밖아 죽인 것입니다.

왜? 악령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저들에게 유익되게 하는 것은 해로 여겼고 그를  위하는 것은 그 불행스럽게 만드는 것으로서 저들의 본질과 본성의 완전히  배치되는 것을 줬기 때문에 충돌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충돌이 되도  오해를 해도 이해를 못해도 반대를 해도 원수를 품어도 진정코 영원히 그에게  유익될 것을 준 것이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에는 사랑일라는 것이 영원성 없는 일시 위하고 일시 위하는 그것이  도리어 그 사람을 속인 것이 됐고 영원을 가지지 못하게, 이 완전 사랑을 가질  수 있는 이 기회에 완전 사랑을 가지지 못하게, 이 가짜 사랑으로 미혹 시켜서  완전 사랑에 연결하지 못하게 하는 하나의 유혹의 사랑, 또 그의 유익을 위함이  아니고 그를 유익하게 하는 것 같이 하여 자기 사람 되어서 자기 좋아해서  자기를 유익되게 자기 것이 되게 하려는 무서운 도적, 이것이 양을 노략하려고  이리들이 왔다 거짓선지자들이 왔다 말했습니다. "그 열매를 보아서 그를 알라"  그 열매는 이 세 가지입니다. 조물주와의 죄 면, 의 면, 결합 면, 이 면이 바로  되면 그 사랑이 바로 얻고, 이것이 잘못됐으면 이것은 전부가 다 사망이요  미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그 사랑의 역사만 보고 절 위하면 사랑한 것인 줄 알고, 절  기쁘게 하면 사랑인 줄 알고, 그것이 위함이 며칠이 가며 몇 날이 가며 그것이  뒤에 결과적으로 어떤 결과를 맺을 것인가 하는 이것을 알면 이것은 사랑 같으나  미움이라, 위하는 것 같으나 해하는 것이라, 나를 좋게 하는 것 같으나 나를  해치는 것이라, 나쁘게 하는 것이라, 나를 기쁘게 나를 근심되게 하는 것이라,  나를 살게하는 것이라 나를 죽게 하는 것이라 알진대 사람이 무지해서 마귀의 이  유혹에 들어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랑의 정의를 바로 가지지 못한 이  기독교의 나라가 점점 망해 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잘못되면 잘못된 것을 용서해서 저 좋아하도록, 저 인기 끌도록, 저  인기 자랑, 인기 끌도록 해서 잘못된 것을 용납하는 것, 용서라 말은 그 죄에서  해방시킨다는 것이 용서라 말입니다. 그런데 용납하는 것 잘못된 걸 얼마든지  인정 잘못된 걸 인정하고 용납해서 잘못된 것을 묵인해 두는 것 이걸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 '죄 지은 자에게 징계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죄 지은 것을  얼마든지 용납해서 묵과하는 것이 사랑이다' 이래 가지고 인기 전술로 자기에게  인기를 올리기 위해서 자기가 다 그 사람 인기 올리기 위해서 모든 감옥소에  죄인들 확 풀어줘서 인기 올리는 흉측한 살인자입니다. 흉측한 살인자입니다. 이  살인자를 알아야 됩니다. 이 흉측한 살인자입니다.

그러기에 얼마든지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을 잘못한 걸 잘못한 줄 알아서 성경에는  잘못한 걸 잘못했다고 돌이킬 때에 고 사람을 완전히 거석한 게 아니라 돌이킬  때에 그 사람을 용서했습니다. 용서했다 말은 정죄해서 벌을 주지 아니하고 참고  기다립니다. 그 사람이 잘못된 것을 고쳐서 나갈 때에 얼마든지 협조하십니다.

그 죄값으로 멸하지 아니하고 얼마든지 협조하고 그 사람 불의를 행하여 갈  때에는 그 다음에는 징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천 년 동안 참다가 안 들으니까 노아 홍수로 전멸했습니다. 요기  사랑입니다. 요기 사랑이요. 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 이천 년 동안  권면하고 권면했지만 안 들으니까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교인들이여 화 있을지라 화있을지라" 몇 번이나 말하고 마지막에는  선지자들을 보내고 또 권유하고 권유해서 안 되니까 마지막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천여 년 동안을 거 버렸습니다.

오늘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래도 구원이 거서  왔기 때문에 '주여 유대인들을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 얻게 해 주시옵소서'  하는 그 기도를 한 번도 하루 한 번도 빠지지 안했습니다. 매일 한 번씩은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이것인데 이것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얼마든지 그  사람을 사랑은 죄 한 번 짓던 사람이 열 번 짓던 사람이 아홉 번 짓구로 했으면  그게 열매가 살아 있는 열매를 보아서 압니다.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열 번  짓던 사람이 열한 번 지으면 그거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정반대인 그 사람을  죽인 것이요. 미움입니다.

그런데 미국 나라는 요번에 레이건 대통령을 저격을 인해서 그것이 폭로 됐는데  이십사 초 마다 살인이 하나입니다. 공산국가에는 그의 십분의 일도 안 됩니다.

살인이 공산국에는 십분의 일도 안 됩니다. 공산국가는 사람이 안납니다. 남녀  동침을 허락지 안했기 때문에 생산이 출생율이 적습니다. 거서 암살률은  민주주의 국가보다 훨씬 적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걸 사랑할건가? 이 지금 이상한 우리가 그걸  비밀을 발견해야 됩니다. 이십사 초만에 살인이 하나, 칠 초 마다 강간이 하나,  십 초 마다 강도가 하나, 이것이 미국의 현상입니다.

이게 어디서 이렇게 됐는가? 요번에 레이건 저격한 자도 지금 가둬놨는데 '그  사람을 빨리 석방하지 안하면 예일대학에 기숙사를 전부다 폭발시켜서  전멸시키겠다' 그 관련된 간부들의 자녀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지금 협박을  했는데 그래서 마구 이사를 하고 소동을 했답니다.

우리나라도 얼마전에 자꾸 십범이 되도 가 가지고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놔라.' 그 놓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죄를 구사해 가지고  아무리 그 구속하면 너는 몇 해 언도 받는다 하면 그 사람이 '아이구 이 죄지은  값이로구나!' 나 죄를 안 지을 각오가 있을거라 말이요. 그만 '용서하라' 죄  지은 그걸 그 무슨 그 처형을 그에게 뭐 몇 해 구르든지 가두든지 이걸 하게  되면 내가 죄 값을 받았다 하니까 판사를 미워할 것인데 그만 무죄 석방이라  하면 좋아할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유익을 위해서 했지 상대방 유익을 한 게 아닙니다. 흉측한 이것이  지금 세계의 이 기독교에서 그 나온 이 무서운 지금 사랑 아닌 사랑이 사랑인  처럼 역사해 가지고 나오고 있는 이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내가 아는 데로도 여러번 뭐 칠범 팔범 십범한 사람도 가 가지고 '그  내가 속한 사람인데 내가 그 책임자인데 그거 내가 잘못했으니까 내가 앞으로  잘하기로 했습니다.' 네 석방입니다. 이러니까 가속도로 죄악이 늘었습니다.

가속도로 죄악이 늘어서 길거리 다닐 수 없습니다. 이건 죄악을 자라는 아주  온상중에 온상입니다. 그것이 박 정권의 종말입니다. 박 정권이 멸해지고 그 신  정부의 시발이었는데, 그 신정부의 시발이였습니다. 이러다가 전 대통령이 나와  가지고 마구 이것을 다 근거해서 죄악을 숙청한다 하니까 백성들은 전 대통령을  막 이렇게 웅호했습니다. 이렇게 웅호했습니다. 웅호했는데 요새는 지금 그것이  자꾸 지금 이래 가지고 이제 앞으로 이것이 나서 감당을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하든지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에게 그  무지한 그 인간이 자기를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환영할 수 있도록 자기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미움중에 그 이상 미움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꺼꾸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견단코 좋은 호감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 사람이 내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나의 원수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이 망할 길을 가는 것을 간다고 책망할 때에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교역자들도 책망할 때에 좋아하지 안하고 저거끼리 단체가  되어서 책망하면 저거끼리 뚤뚤 뭉치 가지고 하나 됩니다. 그것은 그의 본질이요  본성이요 당연한 것이요. "그래도 너희들에게 유익한 것은 한마디도 내가 금하지  안하고 다 말했다." 사도행전 20장에 사도 바울이 말한 그것은 다 그분이 돌  맞을 일이요 그 말이 그분이 매 맞을 일이요 미움 받은 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하나님과의 옳바른 관계로 자신들이 그 참 망하지 안할 행복된 그 길을  가게 하려는 그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의 정의를 바로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하나님의 것 뿐인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그 방편으로  내가 이웃을 사랑해야 그게 사랑입니다. 또 예수님이 하나님을 사랑한 그  방편으로 사랑하는 것이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를 사랑한 것을 배워 우리가 주님을 고와 같이 사랑하고 예수님  우리를 사랑하신 것을 배워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이 외에는 사랑도 없고  사랑의 방편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그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알지라" 그러면 그 사랑했으면 그 결과에 그  사죄 역사가 있는가? 죄가 도말되는 역사가 있는가? 의가 건설되는 역사가  있는가? 하나님과 연결되는 역사가 있는가? 그렇지 아니하고 점점 그것이 그  역사로 말미암아 죄가 더 무성해지고, 의가 점점 도말되어지고, 하나님에게  대해서 점점 무시하고 멸시하게 되어지면 그것은 내가 참 사랑이 아닌 마귀가  인간을 미혹을 시킨 가짜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미국에는 가짜 사랑을 많이 행해서 지금 그 나라가 앞으로 위기입니다.

위험합니다. 지금은 그 말했습니다. 경관 경찰들이 죄수를 말해도 경찰들이 그  죄수를 다루지 못합니다. 복수가 겁이나 가지고 그러기에 예를 들면 강도에게  만나 가지고 팔 부지른 사람이 팔 부러진 사람이 경관에게 말하면 치료 받고  도움 받는게 아니라 양쪽 팔마저 부질러 질 수 있기 때문에 아야 경관에게도  숨기고 말하지를 않는답니다.

이러나 돈만 가지고 이렇게 저거 하고 있으니까 이래 되는데 거기에 대해서 이  죄악을 지적해 가지고 말하는 것은 이 왜 이렇게 되느냐? 왜 이렇게 문제가  되느냐? 되는 것은 그 불씨는 이렇게 불행의 불씨 이렇게 악화되는 이 살인 강도  강간이 심해지는 이 죄악의 불씨가 뭐이냐? 불씨는 성도들이 물질로 가지고 물질  만능을 부르짖고 청교도들의 신앙을 버렸기 때문에 그러하다 고말은 인정이  됩니다.

고 다음에 무슨 말로 결론 지었느냐 하면 이것은 빈곤의 차별을 두기 때문에  이래 됐다 고것이 바로 반대입니다. 고거는 거짓말입니다. 고 망치는 것입니다.

그 복음을 아는 사람되고 예수 믿는 사람이 말한 것 같은데 백악관에서 말했는데  백악관에서 말했는데 예수를 아는 사람이 고거 고말을 했는데 요것이 망치는  것입니다.

그 뭐이냐? 그 불씨가 뭐이냐? 불씨는 그들에게 징계가 없는 것이 불씨입니다.

죽이지 안해도 그 죄를 지은, 죄 지은 값이 있어야 '아이구 죄는 망하는  것이로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식해 '죄는 사망이라' 죄 값은 사망이라는  것을 그 우리에게 뼈까지 지우야지 참 우리를 망친 거짓 사랑입니다. '죄 값은  사망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이 의에 속한 것 이거는 생명과  평강이라. 성령의 감동은 생명과 평강이요 육체의 욕심은 사망이라.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사랑을 바로 전해 준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은 여러분들이 여기에 대해서 지금 주시지를 못해 그렇지 보십시오.

어쩌든지 악인을 그만 용납했다. 묵과했다. 죄 지은 것을 없애버렸다. 죄 지은  표도 죄를 지으면 그 자기의 호적에 죽을 때까지 그것이 기록되어 있고 죽고 난  다음에도 붉은 줄이 기록되 있다. '아이구 죄 지은 것 무섭다' 이러니까 죄를  금한 게 됐는데, 이것까지 금해줬으니까 그래야 죄인게 없거든 '이거까지  금해라.' 그거는 (김종필)이가 냈습니다. 발언을 한 것이요. 이것까지 없어져야  한다 말은 했지만 그게 안 됐는데 요번에 전 대통령이 실시를 했습니다.

여러분들 그래 이것은 자기 인기 전술입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되는 것은 이것은 점점 죄를 조장시키는 것이 되어지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은 이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걸 바로 깨닫고  사랑은 건설과 파괴가 있어야 됩니다. 사랑은 두려움과 인자가 겸해야 됩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하나님과 그와의 연결을 시키줘야 이게 사랑입니다. 사랑은  그가 멸망을 피하게 해 줘야 사랑입니다. 사랑은 그가 행복을 갖추도록 해야  사랑입니다.

그래서 미국에 이 지금 불씨는 어디서 부텀 났느냐? 킹 목사에서부터 났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그는 자기는 백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흑인을 후대하자' '이  노예를 우리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노예를 후대하자' 그 당연히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킹 목사는 흑인입니다. '흑인이 와 백인과 흑인을 차별을 두느냐?'  일을 그 사람은 했고, 일을 안 했으면 일 안한 사람은 밥을 한 그릇 조금 줘야  되겠고 일 한 사람은 밥을 세 그릇 줘야 되겠지, 일 한 사람이나 안한 사람이나  어떻게 같이 대우를 하는 그것이 죄악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하나님도 행한대로  갚는다고 했는데, 그러기 때문에 행한대로갚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행한대로 갚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그러기 때문에 망할 행동을 하지 않도록  알려줘서 못하도록 한 것이 사랑이요 복을 받을 수 있는 옳은 행위를 할 줄  알도록 원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율법이라는 토대 위에 지성법 지공법의 토대위에 있는  것이 사랑이지 사랑이 이 율법이 없으면 그 사랑은 완전히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바로 알고 해야 됩니다. 우리 공회에서도 얼마동안  저는 그 참아서 사랑을 가졌습니다. 제가 목숨 있는 한은 지금은 그전과 같은  인자 많이 가르쳤기 때문에 가르칠 때 모를 때에는 알기까지는 했지만은 알고 난  다음에는 언제든지 그대로 이게 사랑이라, 이게 하나님 법이라, 이게 행복된  것이라 해서 그것은 그전 모양으로 얼마든지 도야지가 꿀꿀 거리면은 사료 없는  것 같다 사료 주고, 또 꿀꿀 거리니까 울어 싸으니까 이게 북심이가 없는가 보다  북심이 주고, 그 다음에는 꿀꿀거리 싸으니까 무엇이 병이 있는가 진찰해 보고,  그 다음에 꿀꿀 거리면 어쩝니까 몽둥이로 때리지 그래도 안 되면 잡아 먹어야지  이게 사랑입니다. 인간도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의 정의를 바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선지자들이요. 우리는 모든 것을 바로 알아서 지금 자꾸 죄 지은 것을 자꾸 그냥  마구 면사해 주고 아 죄를 지어서 감옥에 들어가면 여기에 사먹는 것보다 더 잘  먹이고 미국은 더 잘 먹인답니다. 이러니까 이부러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가  이래 놓으니까 양민들이 살지를 못 해. 죄만 자꾸 무성해져. 공산주의자들은  그렇지 않해요.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다 같은 불신자인데 어데 살인소 많은 것을  미워하지 적은 걸 미워 할리가 있습니까 다 무신론자 속으로 해석하면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을 사랑을 지금 외칠 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똑똑히 연구해 가지고 외칠 때요. 다 이렇게 죽이는 이에 미움을 가지고  사랑이라는 꺼풀을 입혀서 무지한 극히 그 지혜가 천박하고 유치하고 협작한  좁은 자 그런 자들 유혹시켜서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충고를 했고, 살리기  위해서 책망을 했고, 살리기 위해서 징계를 줬는데 가 가지고 살살살살 살살  달게 가지고 '야 그렇지만' 그 사람에게 위로 주고, 기쁨 주고, 그 사람 편이 되  가지고 '너한테 너무한데' 고 기회를 타 가지고 간교를 부려서 고 사람을 자기  사람을 만드는 그 자는 살인자 중에 살인자입니다. 이걸 알아야 되지 그자가  살인자 아니요?  그 똑똑히 마음보를 알면 무섭고 징그럽습니다. 칼을 가지고 달아들어 찌르는  것보다 더한 자입니다. 어떻게 이것을 친구라고 하는고, 이것이 동지라고 하고,  진정 그를 행복되게 하기 위해서 화를 멸하고 고칠라고 하는데 왜 그 사람을  아주 죽이는 그런 간교를 부리는 그걸 어떻게 사랑이라고 하는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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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7 사랑의 정의/ 에베소서 1장 3절/ 890504목새 선지자 2015.11.03
856 사랑의 정의/ 요한이서 1장 4절-11절/ 890610토새 선지자 2015.11.03
855 사랑의 정의/ 요한이서 1장 4절-11절/ 890609금야 선지자 2015.11.03
854 사랑의 정의/ 요한이서 1장 6절-11절/ 890605교역자회. 선지자 201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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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 사랑의 하나님/ 히브리서 11장 5절-6절/ 791105목새 선지자 2015.11.03
849 사랑의 하나님/ 히브리서 11장 5절-6절/ 791104주전 선지자 2015.11.03
848 사랑의 하나님/ 히브리서 11장 6절/ 791104주후 선지자 201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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