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정의


선지자선교회 1989년 5월 4일 목새

 

본문 : 엡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구약에 보면 '걷기는 쪽발로 걸어가고 또 먹는 것은 항상 새김질로 먹어라'  그렇게 하는 것을 짐승을 통해 가지고 짐승을 인용해 가지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쪽발로 걸어가라 말은 우리가 모든 행동할 때에는 꼭 두 가지로만  구별해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두 가지로만 구별해서  행동해야 된다.

 우리 행동은 마음의 행동과 이 몸의 행동 둘뿐인데, 생각이니, 정신이니,  감정이니, 느끼는 것이니, 기억하는 것이니, 원하는 것이니, 욕심이니 그런 것은 다  마음이 하는 행동이요, 그와 같은 종류들은 마음이 하는 행동이요 또 몸이  행동하는 것은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 수족으로 움직이는 것, 그런 것이 다  몸으로 행동하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이 행동은 언제든지 둘로 구별해라 하는 말씀을 하셨고 또 자기가  무엇이든지 흡수하는 거, 먹는 것은 그냥 먹고 말 것이 아니라 또 새김질하고  새김질하고, 새김질하는 것은 먹었던 것을 도로 게워내 가지고 또 이렇게 또 새로  씹어서 먹는 그것이 새김질입니다.

 사람은 새김질을 안 하고 소 뭐 토끼 양 이런 것은 다 새김질을 합니다. 식물을  먹었다가는 다시 토해 가지고 그것을 다시 씹어서 먹고 먹고 그래서, 소는  새김질하는 것은 먹은 그것을 그저 그것이 없어지기까지 계속 새김질합니다.

새김질은 그칠 시간이 없습니다. 그저 밤새도록, 자면서도 입 딱 붙이고 자지  안해요. 언제든지 자면서도 새김질, 그저 바쁘게 되게 일하지 아니하는 그 기간은  전부 새김질합니다.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먹는 것은 그래 해라.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 우리가 배우는 것,  우리가 눈으로 보고 눈으로 받아들이는 것, 귀로 받아들이는 것, 또 자기가 자기  속에 주관으로 인해서 받아들이는 것, 배우는 것, 듣는 것, 보는 것 그거 다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눈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내가 봄으로 내가 그것을 알게 되고 느끼게 되고 하는  그런 것은 다 눈으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그런 것은 '새김질을 하지 안하면은  거룩한 자 속에 들어가지 못한다.' 예수님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것은 자기가 그만, 들었다고 그만 그것으로 들었으니까 그만 그대로 생각지  말고 들은 것을 또 다시 그것을 토해서 새김질하는 것, 들은 것을 다시 생각하고,  또 배운 것을 다시 생각하고, 본 것을 다시 생각하고 이렇게 자꾸 그런 것은  생각하고 생각해야 거룩한 자 속에 들어갈 수가 있다 하는 그 말입니다.

 왜? 그런 것은, 자기가 어떤 말을 들어도 그 말을 직접 들어 가지고 그만 그대로  가지면 자기에게 죽는 독약이 될 그런 말이라도 그것을 자꾸 새기면 은혜가  됩니다.

 나를 아주 멸망으로 빠뜨릴 그런 꾀우는 말을 들을 때도 그 말을 듣고 또  자기가 생각하고, 양심으로 생각하고, 자기가 또 성경으로 생각하고, 또 그것을  실상과 환경과 주위와 이래 연결시켜서 생각을 하고 자꾸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면 나를 죽이려고 하는 그런 말도 크게 양식이 됩니다.

 생각하게 되면은 '아하, 이 말은 과연 쥐약보다도 더 독한 말이로구나. 이전 말은  내게 참 해독이 심히 많구나.' 하는 그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에 그 말을 듣지 안한  것보다도 들음으로써 자기가 크게 유익이 됩니다.

 본 것도 그만 자기가 보고 그만, 봤으니까 그것도 받아들이는 것이오. 본 것도  그만 봤으니까 '이렇다 저렇다' 그렇게 그만 보고 그것으로 속단을 해 버리고  하면은 거룩한 자 속에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보는 그런 것도 자기가 또 본  그것을 또 자기가 생각하고 생각하면 본 것을, '안 볼 것을 봤다' 그렇게 나오는  판단도 있고, 또 '세상은 이렇다' 하는 이런 판단도 있고, 또 자기가 거게서 깨달을  것이 많고 거게서 고칠 것이 많고,  이래서, 본 그것을 '이렇게 보니까 좋다, 이로 말미암아 내가 유혹을 크게 받겠다,  또 내가 시간을 많이 뺏기고 정신을 많이 뺏기고 정력을 많이 뺏겨서 이거는  멸망이 되겠다.' 이렇게 무엇이든지 먹은 것을 새김질하는 이것이 없으면 그  사람은 단순한 사람이라서 아무런 생명 작용이 없는 사람입니다.

 받아들인 것을 이것을 자꾸 새김질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뭐 어떤  것이든지 결과적으로 유익이 되지 손해볼 것 하나도 없고 미혹받을 것 하나도  없고 자기에게 해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생각지 안하고 그만  받아들이면 다 헛일이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테레비 보는 그런 것도 그것도 먹는 것입니다. 테레비를  보는 것은 먹는 것이라. 테레비 그것도 보면은 가서 연속극이라든지 뭐 이런 거  저런 거 그런 것도 다 먹는 것이라. 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요 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시청으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그런 것도 자꾸 새김질을 하게 되면은  거게 대해서 자신이 그로 인해서 깨달아지고 유익이 됩니다. 그러면 나중에 가서  결론이 바로 나올 것이오. '이것에 대해서는 유익이다 손해다, 이것은 내 구원에  파괴다 구원에 도움이 된다, 이는 하나님과 나와에 어떻게 된다.' 하는 그런 것을  자꾸 알게 됩니다.

 이래서, 새김질해야 되고 또 쪽발로 걸어가라 말은 꼭 두 가지로만 생각을 해야  됩니다. 자기가 걸어갈 때도 그저 두 가지로만 생각해야 되지 잘못하면 실패하기  쉽습니다.

 두 가지로 생각해서 '이것은 하나님 중심이냐, 피조물 중심이냐? 이것은 내가  하늘의 소망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냐, 땅의 것을 이루고 있는 것이냐? 이것이 내  중심 어떤 인간 중심이냐, 하나님 중심이냐? 그 위주가 무엇이냐?' 이렇게 자꾸  이것을 두 가지로만 이래 생각하면은 못 깨달아질 것이 없고 판단 못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복잡하게 하는 통에 마귀라는 놈이 우리를 복잡하게 시켜서  '이것도 이렇지마는 저렇다, 저렇지마는 이렇다.' 이렇게 하는 데에서 사람들이  실패하게 됩니다.

 이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도 듣고 세상에서 이런 말 저런 말 많은 말들을  듣고 있는데 그 말들을 들을 때에 어떤 사람은 그 말의 어려움에다가 가치를  둡니다. 어려움에다 가치를 두는 사람도 있고, 또 그 말에 대해서 감정이 일어나는  그 정서에 대한 가치를 두는 사람도 있고 대게 시인들은 정서에 가치를 둡니다.

 또 듣는 그 말을 평할 때에 이것이 그러면 하나님 중심의 말이냐, 피조물 중심의  말이냐? 요거로만 요렇게 판단을 해도 자기의 일생 동안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그것이 그것만 판단해도 '이것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이요, 영원한  영생 중심이 아니라 땅위에 있는 육신 중심이라, 이것은 없어질 것이냐 영원히  있을 것이냐?' 뭐 요렇게 판단을 하면은 듣는 데도 가치 두는 것이 차차 수정이  돼서 참 가치를 둘 데다가 가치를 두게 됩니다.

 이래서 다 같은 자리에서 설교를 듣고, 다 같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데도 자꾸  그것을 둘로만 구별해서 할 때에 그 가치가 바로 정가가 돼집니다. 옳은 가치를  찾게 됩니다.

 여게 지금은 그 가족들이 없는데 OOO라고 지금 미국 가서 공부하는 그  사람에 대해서 내가 조금 소망을 가지고 유망하게 보고 그것을 내가 무슨 뭐  물질로 협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으로 협조를 하고 믿음으로 협조를  하는데 뭘 듣고 했느냐 하면은 언제 나한테 편지가 왔는데 미국에 사회대학으로  아주 좋은 대학에 가 가지고 공부를 한 반 년인가 일 년인가 했습니다.

 하다가 편지가 오기를 '여게서 배우니까 이것이 찍해야 배워 봤자 지금 여게  교수로 가르치고 있는 저 무슨 박사, 잘돼 봤자 그 박사 그 사람 될 것이라 하는  이것이 되어지니까 암만 해 봤자 그것밖에 안될 터이니까 내가 그것을 일생 동안  목표로 소망으로 삼고 내가 이 시간과 정력을 기울일 수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나는 이제 이것을 버리고 신학을 내가 가 가지고 신학을 내가 공부하고  연구하지 이건 암만 돼 봤자 그거 되기 때문에 그 사람되는 그 이상의 다른 게  될게 아무것도 없고 신학을 배우는 것은 자꾸 이래 거석하면 신학에는 결국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고 하나님 배우고 하는 것인 것을 내가 좀 배워서  알았기 때문에 내가 이제 그만 학교를 옮기면 싶습니다.'  그래 내가 그걸 옮기라 소리를 마음대로 못 하고 '그거는 네가 기도하고 또  부모와 의논해 가지고 네가 옮겨라.' 이래서 그 사람이 신학으로 옮기기로 해  가지고 '그러면 신학에 옮기면은 신학은 제일 좀 그 중에도 진리를 배우는 신학이  어떤 신학입니까?' 이렇게 말해서 카브난트 신학을 내가 소개해 가지고 그리  옮겨서 입학하도록 해 가지고 거기서 지금 공부를 끝마치고 이제 오월 육 일날  여게 완전히 인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데 과정은 박사 과정을 지금 일 년만 있으면 완전히 그게 되는데  그것을 내가 못 하게 했습니다. 그만한 연수만 해도 되는데 '그것은 하지 마라'  박사 실력은 좋지마는 학위 가진 그런 사람들은 그 학위 그것이 자기에게 크게  불리한 그런 점이 있다는 그것을 약간 해석을 잠깐 했는데 그 듣고 그런 것을 다  치워버리고 돌아서서 바른 길을 걸어 가지고 공부해 가지고 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면은 구별하지 안하고 둘로만 구별하지 안하는 데서 그저 뭐  설교를 들어도 어떤 사람은 그 설교들을 때에 단어에다 가치를 둡니다. 단어 높은  단어 어려운 단어 쓰면은 거게다가 가치를 둡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할 때에  단어 어려운 단어에다 가치를 두지 안하고 어짜든지 무식한 서민들이라도 다 알  수 있는 가장 보통어, 일반어를 가지고 발표를 하도록 그렇게 했는데,  어떤 사람은 말에 가치를 두고 이래 가지고, 지금은 그런 일 없지마는 문자를  쓰는 사람은 또 문자 쓰는 그것만 배워 가지고 문자에다가 정력을 기울여서  문자에 유식한 사람이 될라고 그렇게 하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세세에 유명한 말, 세계의 명언집이라고 제게 책이 두께가  이만한 책이 있습니다. 세계의 명언집이라, 아주 유명한 말을 모은 명언집이라.

이걸 있어서 하도 그 이름이 좋기 때문에 내가 사 가지고 한 반 페이지인가 한  페이지인가 보고 난 다음에는 내가 그 책을 다시 열어보지를 안했습니다. 그  보니까 아무 가치가 없어. 전부 땅의 것만 말하고 있고 이거 물질계만 말하고  있지 물질을 초월한, 멸망을 초월한 영원한 완전에 속한 것은 한 마디도 없어.

 그래 그걸 다 그 책을 그만 보지를 안하고, 내게 둬 둔 것은 뭐이냐 하면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서, 내가 전달해 줄 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이래도  여게 이 세계 명언집이지마는 여게는 취할 말이 한 마디도 없다' 하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책을 내비두고 있고 내가 보고 참고로 하는 것은 하나도 안 하고  그 말은 다만 반 페이지인가 내가 읽어보고 그 다음에는 읽어보지 안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든지 말씀을 들을 때에 거게서 자꾸 둘로만 이래 생각해  가지고 가치를 평가적으로 성경도 읽어야 되겠고, 또 말을 들을 때도 평가적으로  말을 들어야 되겠고, 공부를 할 때도 평가적으로 공부를 해야 됩니다. 그러면  가치를 따져가면서 그렇게 해야 되지 가치를 따지지 안하고 어떤 사람은 그  단어에, 또 아주 유명한 고상한 그 술어에, 어떤 사람은 말의 어려움에, 어려워야  무엇이 있지 어렵지 않으면 아무 가치 없는 줄로 그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기 있다가 지금 다른 데로 가 가지고 공부한다고, 여기서  입학시켜 달라 해도 것을 안 시켜 줬더니마는 가서 공부하는데 그 사람이 보니까  바짝 말랐어. 그 공부를 하는데 자꾸 머리에다 싸 넣을라 하니까 힘이 들고 아주  애가 쓰이고 어렵고 이라니까 무슨 가치가 있는 줄 안다 말이오.

 그렇게 되도록까지 그 머리를 써서 찍해야 배워봤자 그것이 철학이든지  과학이든지 그런 것인데 그것의 가치가 다 땅에 속한 것이요, 멸망 아래에 속한  것이요, 사망 아래 있는 것인데 그렇게 머리를 자기의 심신이 그렇게 아주  피곤하고 상하기까지 그렇게 거게다가 다 기울여 놨으니 그놈이 들어와 가지고  자기를 주관하기 때문에 그 다음에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은 전부 과학 나올  것이고, 또 이 사회학 나올 것이고, 윤리학 나올 것이고, 도덕학 나올 것이고, 또  이런 모든 의학 나올 것이지 거게서 생명의 복음의 말씀은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목회하는 데는 다 사람이 죽지 살아나는 사람들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을 들을 때 뭐이든지 먹는 것이든지 걸어갈 때든지, 걸어갈  때는 두 가지로만 쪽발로 걸어가야 되고, 또 먹은 것은 다 새김질을 해야 된다  하는 요것을 기억하고 그렇게 레위기 11장에 보면은 쪽발로 걸어가지 않는 거와  새김질하지 않는 것은 다 이것은 부정하기 때문에 거룩한 자의 속에 입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 거룩한 자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이랬습니다.

 그 비유, 그것을 예를 들기를 토끼는 새김질을 하지마는 발이 쪽발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부정하다. 또 도야지는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안 하기 때문에  부정하다. 새김질도 하고 쪽발도 가지고 이래야 그것이 깨끗해서 거룩한 자  가운데에 들어갈 수가 있다 하는 것으로 짐승을 가지고 우리에게 교훈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들은 것은, 들었는데 들었다고 그대로 그것을 자꾸  자기가 취해 강직할 것이 아니고, 또 자기가 눈으로 봤다고 취할 것 강직할 것이  아니고 자기가 무슨 성공을 했다고 그만 그 성공을 가지고 살 것이 아니고,  성공한 것도 받아들여 먹은 것이라. 성공한 성공 그것도 자꾸 새겨봐야 됩니다.

새겨봐야 되고,  또 자기가 승리한 것도 새겨봐야 되고, '이 승리가, 그러면 이 승리가 가치가  어떠하냐?' 그 승리를 모든 천하가 좋아하고 세계가 좋아해도 그 승리의 가치를  따져보니까 그까짓 거 똥보다 더 더러운 거라 말이오. 똥보다 더 더러운 거라.

 왜 똥보다 더 더러워? 승리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완전히 멸망하겠고  자기에게 참 필요한 영원한 것은 하나도 가지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이기 때문에  알고 보면 그게, 똥은 아듬고 다니고 똥은 옆에 놓고 다니고 똥을 묻히고 똥에 뭐  다 옷이 묻어 가지고 이래 가지고 다녀도 그것은 자기를 더럽히지 못하지마는  승리 그것은 자기의 일생을 완전히 더럽혀서 망치는 수들이 많이 있다 그 말이오.

 무엇이든지 받아들이는 것은, 내가 받아들인 것은 꼭 새김질을 해야 되지 새김질  안 하면 거룩 속에 들어가지를 못한다. 너희들이 움직일 때에는 꼭 두 가지로만  구별해서 움직여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이것은 '자, 내가 지금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함이냐, 나를 위함이냐?  이거 천국 위함이냐, 세상을 위함이냐? 이것은 없어질 것이냐, 영원히 있을  것이냐?' 그렇게 자꾸 두 가지로만 구별하면 거기서 굉장한 지혜가 나오고 정평  정가가 나오지마는 둘로 구별하지 안하고 '이렇지만 이렇다, 저렇지만 저렇다.'  거게서 단서를 넣으면은 그만 헛일된다 그거요.

 그래서, 우리는 듣는 것도 그러하고, 행동하는 것도 그러하고, 보는 것도  그러하고 그것을 새겨서 첫째는 '이것이 하나님을 위함이냐, 피조물을 위함이냐?  또 이것이 없어질 것이냐, 영원히 있을 것이냐? 이것이 나의 영생하는 생명에  도움이 되겠느냐, 이것이 땅위의 살이에 도움이 되겠느냐?' 요렇게 몇 가지만, 뭐  이 두 가지만 판단하면 그만 당장에 환하게 알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요게 쉬운 것 같지마는 요 두 가지로 판단하지 못하도록  마귀라는 놈이 만들어서 뭐 어북 집사되고 권사되고 장로되고 목사가 돼도  요렇게 들은 거, 자기가 먹은 거 말이오. 먹은 것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은 귀로도 눈으로도 또 사람으로도 손으로도 받아들이는 것 많은데,  받아들인 것은 꼭 새김질해야 됩니다. 새김질하면은 어떤 것이라도 그 양식이  됩니다.

 베드로가 옆에 그 군인들이 말을 할 때에 자기가 그 말을 듣고 그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정을 했습니다. 세 번 부정한 그것이 자기가 그들로 말미암아  받아들인 거라, 먹은 거라. 먹은 것인데 그것을 자꾸 새김질합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정한 것이 얼마나 큰 죄며 얼마나 큰 해독이 있는 것이겠습니까? 세 번이나  저주하고 부인했으니까. 이렇지마는 그것도 자꾸 새김질하니까 속에서 영양이  나와서 베드로의 신앙 생활에는 아주 그 참 제일이라고는 못 하지마는 많은  영양이 그 속에서 나왔습니다.

 이래서 배드로는 세상을 뜰 때까지 항상 새김질했었습니다. '나는 닭 울기 전에  주님이 네가 나를 세 번 알지 못하리라 말씀하신 그대로, 나는 그 말을  부인했지마는 내가 닭 울기 전에 주님을 세 번이나 저주하고 부인했다' 그것을  죽는 날까지 늘 새김질한 데에서 다른 사람들은 순교할 때에 그냥 십자가에  못박혀서 순교한 사람들 있었는데 베드로는 십자가에 못을 박아서 순교를  시킬려고 하니까 '이미 나를 사형을 줄 때는 나를 십자가에다 바로 못박지 말고  나를 꺼꾸로, 이렇게 발은 위로 가고 머리는 아래로 가도록 꺼꾸로 나를 못박아  달라.' 그래서 베드로는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당할 때에 꺼꾸로 못을 박혔다 하는  그런 전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어데서 그건, 아주 그런 힘있는 외의 생명력이 강한 그 실력이  나올 수 있는 영양 식품이 어디서 나왔더냐? 그것은 군인들이, '너도 예수의 한  무리로구나.' 할 때에 '아닙니다.' 하고서 그렇게 세 번이나 저주하고 부인했던,  군인의 말을 협박을 받아들인 그것이 자기에게는 그렇게 큰 과오를 범한 것을  그것을 일생 동안 새김질하니까 거게서도 생명 양식이 나왔다 말이오. 큰 능력의  양식이 나왔다 그 말이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 또 손으로 받은 것, 또 이  접선하는 가운데서 받아들인 그것은 새김질을 하는 그 지혜를 가지고 새김질해야  생명 속에 거룩 속에 들어가지 그렇지 않으면 거룩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든  움직이는 것은 꼭 두 가지로만 구별해야 이 거룩과 생명 속에 들어가지 그리 안  하면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두 다 걸어갈 때는 '쪽발로 걸어가라 또 먹은 것은 전부,  먹었으면 그만 꿀떡 넘겼으니까 다가 아니라 먹은 걸 자꾸 되새겨라. 자꾸  되새겨라. 그래야 점점 거룩해지고 점점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지고 온전해지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인제 그러는데 새김질하고 쪽발로 걸어가야 되지  새김질만 해도 소용없었어. 쪽발로만 걸어가도 소용없었어. 도야지는 쪽발은  쪽발이지만 새김질 안 하기 때문에 헛일이라. 토끼는 또 새김질은 하지마는  쪽발이 아니기 때문에 헛일이라.

 이러니까 요것을 되새기고 되새기면서 두 가지로만 구별하면은 멸망받은 그  자리에 그 말을 평생 안 가집니다. 멸망받을 그 일을 다시 그렇게 자기가 가지고  자기를 죽이는 일 하지 못합니다. 그래 내 어떤 사람 보니까 자기를 죽이는 자살  행위를 그것을 평생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말했어. '그거 네게 유익이 없고 다  너 멸망시키는 것뿐이고 순전히 마귀란 놈이 그리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다 뽑아버려 버리라.' 내가 그런 말을 한 일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이  새김질하고 쪽발이 아니면은 거룩한 자 속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거는 부정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리 성경 말씀을 들어도, 성경 말씀이라도 새김질하지 않으면 자기에게는  부정합니다. 성경 말씀이 얼마나 좋은 말씀입니까? 이래도 성경 말씀도 자기가  새김질 안 하면 부정합니다. 성경 말씀을 듣고 자기가 또 새겨보고 새겨보고  느껴보고, 또 이거 장단을 맞춰보고, 현재와 또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비춰보고,  또 하늘나라에 대해서 비춰보고, 하나님께 대해 비춰보고, 또 이 모든 자기  구원에서 비춰보고 양사방 비춰볼 때 거기서 가치가 나오고 자기에게 참으로  거룩과 생명이 이루어지는 그런 양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벌써 십 분이 늦었습니다. 이랬는데 빨리 가서 주일학생 또 중고등 학생들  깨워서, 곤하게 잔다 할지라도 두지 말고 깨워 가지고 새벽예배에 꼭 참석을  시키십시오.

 세상 학교에서는 하루 종일 가서 배운다는 것이 전부 똑똑히 알고 보면 그거는  다 죽이는 것이고 또 그것은 다 죽은 것이고, 죽이는 것이고 죽은 것입니다.

여게서 새벽으로 와서 배우는 말씀은 산 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이기 때문에  살리는 지식이 주체가 되고 그 모든 죽은 것이 다 소유물이 되면은 양식이  되어지지마는, 세상 지식 그런 것이 양식이 되어지지마는 그게 양식이 안 되고  그것이 자기의 지식의 주체가 되어지면 자기는 멸망받고야 마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외우고 또 경험하고 체험해서, 오늘 아침에는 공과를  내가 말할라 하다가 지금 딴것을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이제 엊저녁에 말한 대로  자꾸 아버지를 불러요. 자꾸 아버지를 생각해요.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그래서  하나님이 주먹덩이만치 크다 하는 것을 안 자는 자기가 주먹덩이만치 큽니다.

하나님이 무한하셔서 우주와 모든 존재에 제일 크신 분인 것을 자기가 깨달아  느낄 때 자기는 우주에 제일 무한하고 큰 것이 되어집니다. 그라고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말고, 또 은사 위치에 있는 분들은 자기 맡은 모든 믿음의 자녀들은 꼭  마음 속에 품어 놓고 길러야 합니다.

 그라고 오늘 천막치러 갔는데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언제 한번은 가 가지고, 뭐  사십여 명이 절단이 났었습니다. 이래도 하나도 죽지는 안 하고 그래도 살았는데  그때 누가 병신된 사람, 아주 병신돼서 그런 사람 있습니까? OOO목사님, 잘  알지. 그런 사람 누가 있습니까, 그때? 그뭐 아주 병신 그런 사람 없지요? 어제  내가 말을 들어보니까 우리 교회 OOO집사님 큰 자부인데 큰 자부가 OO교회  있습니다. 있는데 그 친척 결혼식에 가는데 뭐 대절 내 가지고 갔었는데 그 차가  뒤집어져서 한목 뭐 죽기를 얼마? 몇 명이 죽고 이래 가지고 그 자부도 뭐  살아날까 말까 아무 감각도 없고 그래 응급실에서 있다 말 들었습니다.

 그런 것도 여러분들이 몰라 그렇지 그런 것도 여기서 생각하면 은혜가 될 거라  말이오. 여기서는 우리가 언제 그런 거 갈 여가 없기 때문에 뭐 남의 결혼식이니  또 결혼식 뭐 축하에 가니, 여기서 하는 거는 하지마는 또 장례 같은 그런 것은  좀, 결혼식보다는 장례식은 좀 더 우리가 참가해서 위로를 하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우리 서부 교회서 아니라고 한 것은 아닌 줄 알고,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는 그것이 복이 있지 그런 것 자꾸 하는 그것이 좋지를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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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8 사랑의 완성/ 요한일서 4장 17절-21절/ 820417토새 선지자 2015.11.03
» 사랑의 정의/ 에베소서 1장 3절/ 890504목새 선지자 2015.11.03
856 사랑의 정의/ 요한이서 1장 4절-11절/ 890610토새 선지자 2015.11.03
855 사랑의 정의/ 요한이서 1장 4절-11절/ 890609금야 선지자 2015.11.03
854 사랑의 정의/ 요한이서 1장 6절-11절/ 890605교역자회. 선지자 2015.11.03
853 사랑의 종류/ 요한일서 3장 1절/ 800310월새 선지자 2015.11.03
852 사랑의 표본/ 히브리서 12장 3절-13절/ 810409목새 선지자 2015.11.03
851 사랑의 표준/ 요한일서 4장 17절-21절/ 850821수새 선지자 2015.11.03
850 사랑의 하나님/ 히브리서 11장 5절-6절/ 791105목새 선지자 2015.11.03
849 사랑의 하나님/ 히브리서 11장 5절-6절/ 791104주전 선지자 2015.11.03
848 사랑의 하나님/ 히브리서 11장 6절/ 791104주후 선지자 2015.11.03
847 사랑의 행복/ 요한복음 15장 9절-11절/ 811028수야 선지자 2015.11.03
846 사랑의 힘/ 로마서 8장 34절/ 840311주새 선지자 2015.11.03
845 사랑이 미움으로 나타나/ 요한일서 4장 14절-21절/ 790708주후 선지자 2015.11.03
844 사망의 치료법/ 로마서 6장 19절-23절/ 861215월새 선지자 2015.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