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정의

 

1989. 6. 10. 토새벽.

 

본문: 요한이서 1장 4절∼11절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좋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

 

 어제, 4절에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이  기뻐하는 것은 성령님이 기뻐하는 것이요, 성경 기자는 성령님이기 때문에  성령님이 기뻐하는 것을 가리켰습니다.

 이랬는데 요 '기뻐한다' 하는데 여기에서 이 성경 요한복음이나 요한  일이삼서는 사도 요한이가 기록한 것인데 그만 그때 제가 사도 바울로 착각을  해서 계속 그렇게 말해서 여러분들이 아마 들어도 '저 착각했다' 그렇게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어떤 사람이 나한테 말을 해 줘서, 고맙게 말해 줘서 그래 내가  편집실로 전화를 해 가지고 '이것은 설교록에는 그 이름을 고쳐서 설교록에  기록하고 테이프는 이것은 고치지 못하니까 내보내지 말아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그것을 잘 구별해서 내가 어떨 때는 이름을 영  아주 이렇게 말할 때가 많습니다. 성경 요한복음이나 요한 일이삼서는 사도  요한이가 기록한 것이고 계시록도 사도 요한이 기록한 것인데 그만 그것을 사도  요한이로 말하지 안하고 사도 바울로 이렇게 말을 째서 이름을 뒤바꿔 말했다  말이오. 그러나 그 도리를 말한 것은 이름만 바뀌었지 틀리지는 아니합니다.

 이래서, '우리가 떠나든지 거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했는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방편은 그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유일의 방편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하는 이 사랑에 대해서 지난밤에 두 가지 사랑이  있는 것을 말했습니다. 지방 정실 사랑 그거 아주 우리가 완전히 떠나야 됩니다.

떠나고 예수님의 사랑만 가지면 지방 정실 사랑 아니라도 그것이 아주 참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주님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지방 사람도  사랑하고 혈육의 그 모든 관계 사람도 사랑하고 하면은 그것이 참 사랑이지  잘못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배암의 사랑을 자꾸 이렇게 뒤 바꾸기 쉽습니다.

사랑은 어떤 게 사랑인가?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서로 이래 사랑하자는 것은 뭐 새 말이 아니라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처음부터 사랑하자는 것과 또 서로 사랑해야 되는 것과 이 사랑이  제일이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처음부터 말하는 것이라. 이것은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이 사랑은 처음 부터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뭐이냐?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좋아 행하는 것이요'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면 참 과거는 우리가 지방 정실로  사랑하고, 혈육 정실로 사랑하고, 또 동류 정실로, 동무 자주 만나면 사랑 하는  동류 정실로 사랑하고, 또 이 부부의 성욕 성실로 사랑했지마는 그 사랑은 다  배암의 사랑이기 때문에 없어질 것들입니다. 사랑하는 것만치 상대방을 속였고  해쳤고 결국은 나중에 가서 그게 정반대라는 것을 깨달을 때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이 사랑 가지고 사랑하는 것은 변치 않습니다.

 그러면 사랑은 어떤 게 사랑인가? 내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그 형제를 상대할  때에 하나님의 계명대로 그 교훈대로 사는 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교훈과 또 그 진리대로 내가 말하는 것이 그에게 상대하는 것이 그게  사랑하는 것이지 그것을 떠나서 무슨 이 진리보다도 인간 혈육 정실이 앞서고  혈육 정실 때문에 진리를 벗어 나고 지방 정실 때문에 진리를 떠나고, 또 이런  이성 정실 때문에 진리를 떠나고 서로 자주 만나고 친한 자주 만나는 이 동류의  정실로 인해서 이 진리를 떠나는 것은 순전히 그것은 마귀, 배암 사랑 이 사랑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잘 지키는 것 같지마는 자기 혈육과 진리와 둘이 대립이 될  때에는 그만 뭐 진리는 집어던져 버리고 혈육에 붙어 가지고 날뛰고 지방에 붙어  가지고 날뛰고, 자기 남녀 이성에 붙어 가지고 날뛰고 또 자주 만나고 친한, 뭐  과거에 무슨 이런 인연 있다 '저런 인연 있다 이런 은혜를 입었다 저런 은혜를  입었다' 하는, 아무리 은혜를 입었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은혜보다 더 큰 은혜가  있습니까?  이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사랑하는 자일수록이 더 사랑하는 거는 어떤  게 더 사랑하는 건가? 내가 그 사람을 상대할 때에 하나님의 계명과 교훈대로,  더 사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사는 것입니다.

 요 사랑을 깨닫고 요 사랑의 정의를 깨닫고 이 사랑을 가지고 하는 것은 끝까지  변치 안하고 참 사랑하는 게 되는 것이고 구원하는 게 되는 것이지마는 이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진리와 교훈을 좋아하지마는 혈육 정실에 배치가 될 때에, 혈육  정실에 마찰이 될 때에는 그만 교훈 버려 버리고 혈육 정실에 들어붙어 버리고,  지방 정실에 들어붙어 버리고, 이렇게 동류 정실이나 또 남녀 이성 정실이나  거기에만 들어붙어 버리는 것은 그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이래서 사랑과 사랑을 혼돈하면 안되겠습니다.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써서 보내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이 사랑을 우리가 처음부터 가진 것이라. 하나님의 사랑을  처음부터 가진 것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또 해석합니다. '처음부터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사랑을 이제 해석을 합니다.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좋아 행하는 것이요'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 사랑이라  말이오.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 사랑이라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그거 뭐이냐? 계명을 좋아 행하는 것인데 또 계명은  뭐이냐? 계명대로 하는 게 사랑인데 그러면 계명은 뭐이냐?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그 가운데서 그  가운데라 말은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 부활이 사활의 대속 안에서 살라는  것이라.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안에서 하는 것이 이것이 사랑이라.

 그러면 내가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랑하는 가족이나 사랑하는 친구나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활의 대속을 벗이 버리면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을  망치는 것이고 배암 사랑으로 꾀워서 죽이는 것이 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 안에 거하는 것이 사랑이라. 또 계명을 좋아 행하는 것이 사랑이라 계명을  좋아 행하는 것이 사랑이라.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안에 사는 것이 사랑이라.

내가 그렇게 사는 것이 사랑이요 그 사람의 혈육 정실을 따라서, 그만 이  계명대로 사는 걸 버리고 혈육 정실 저거끼리 하나가 되고 지방 정실 저거끼리  하나가 되고, 요거 참 중대한 문제인데 요걸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눈으로 가만히 보면 저거가 전부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 가지고 사는 것도  혈육 정실로, 배암 사랑으로 사는 줄로 그렇게 알지마는 그 사람이 참 믿는  사람이라면 배암 사랑을 가지지 않습니다. 배암 사랑을 안 가질라고 오히려 배암  사랑으로 사랑할 것은 더 멀리 합니다. 더 멀리 하고 이래서 박정하다고 할 만치  멀리 하고 그 계명대로 사는 것과 사활의 대속으로 사는 것이 그것이  사랑입니다. 아무리 친척 문제가 있고, 가족 문제가 있고, 지방 문제가 있고, 또  남녀 이성 부부 문제가 있고 서로 아무리 친한 친구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명을 떠날 수 없고 또 사활의 대속을 떠날 수가 없어 그 안에 사는  것이 이것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 내가 사활의 대속으로 살면 그  사람에게 딱딱하고 그 사람에게 아주 박정하고 하는 것 같지마는 그것이 참  사랑이오. 뒤에 보면 그게 사랑이고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 그 말이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우리를 꾀워서 넘어지게 하는, 우리를  미혹해 가지고, 미혹이라 말은 우리를 꾀우는 것이라 말이요. 우리를 꾀워서  넘어지게 하는 그런 자가 세상에 나왔나니 '많이 나왔다'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것은 악령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고 악령에게 붙들린 사람들을 가리켜서 말을  합니다.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은  기본구원을 부인하는 자는, 기본구원에 대한 이단자는 예수님의 도성인신을  부인하는 것이 기본구원을 부인하는 것이요, 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이것을  부인하는 것이 그것이 기본구원을 부인하는 자요,  그 다음에 아무리 예수님이 도성인신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것도 자기가  인정하고 또 사활의 대속도 인정하는데 행위구원에 이단자가 있다 말이오.

행위구원에 이단자가 있으니 행위 구원에 이단자는 어떤 자가 행위구원에  이단자인가? 예수님의 도성인신,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것도 믿고 또 사활의  대속도 믿고 이러나 자기가 대속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는 주님의 것 되고 주님의  대속은 자기 것 되었다는 요것을 믿지 안하는 요것이 행위구원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부인하는 자요, 사활의 대속을 믿어도 행위구원의 실상에  부인하는 자는 뭐이냐 하면 자기가 지금 죄에 대해서 싸우는 그것을, 그게 죄에  대해 싸워서 의를 행하려고 힘쓰고, 하나님을 떠나지 안하고 배반치 안하려고  애를 쓰고, 하나님만 소망하고 살라고 이렇게 마음에 애쓰는 것이 있어서 또  넘어지면 '내가 패전했다' 또 일어서고 또 일어서고 이래 가지고 이 사활의  대속을 입고 살라고 애를 쓰는 요것이 없는 사람이면 행위구원 건설 구원에 대한  미혹자요 요것이 적기독이라.

 자기가 요 네 가지에 대해서 힘써 요것이 자기 생활이라는 것을 깨닫고 요대로  살라고 아니하는 사람은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적이라, 우리의 건설구원의  적이라.

 그러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저 목사가 저라고, 장로가 저라고, 모든 권사들  권찰들 집사들 반사들이 저라니까 우리도 저래 살자' 하기 때문에 그 사람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더러워지고 자꾸 그렇게 산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  기본구원에 대한 적기독이 있고 우리의 전설구원에 대한 적기독이 있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이래서 우리는 다 기본구원에 대한 적기독은 아니고 기본구원은 우리가 다 얻어  가지고 있고 건설구원에 대한 적기독이기 때문에 지난밤에는 건설구원에 대한  적기독만 말을 한 것입니다.

 8절에 '너희는 너희를 삼가' 너희는 너희를 조심해서, 네가 너를 조심해서 네가  너를 조심해라. '너희는 너희를 삼가' 이 자기 속에도 귀신 들어와 가지고 자꾸  이거 마귀 놀음하기 쉽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아무리 서로 가까운, 지방적으로  가깝고, 혈육적으로 가깝고, 또 동류적으로 가깝고, 또 이 이성적으로 가깝다  할지라도 계명을 허물어지게 해서 내가 계명 안에, 교훈 안에, 이 대속 안에  살지 못하도록 이 사는 것을 방해하고, 내가 그 말 듣고 나니까 대속이 다 떠나  버리고 그만 지방 정실이 앞서고, 혈육 정실이 앞서고, 동류 정실이 앞서고,  부부 정실이 앞서 버리고, 그거는 간 곳 없고 그만 거기 속해 가지고 내가 그  사람이 돼 가지고 그 편이 돼 가지고 야단을 지깁니다. 요라면 저 하나가 그리  되면은 저 하나로 말미암아 제에게 소속한 사람들이 다 죽고 맙니다.

 박정한 것 같고 '저거는 가족도 모르고 뭐 지방도 모른다.' 이래도 그럴 때에  지방 정실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크다는 것, 예수님의 대속이 큰 것 또 혈육  정실보다 더 큰 것, 또 자기의 이성 부부 정실보다 더 큰 것 동류 정실보다 더  큰 것을 깨달아서 그럴 때에 그 정실에 말씀대로 할라 하면 마찰이 되지마는  마찰이 돼도 그 말씀대로 내가 주장하고 그대로 행동하면은 그 사람이 그때는  '저놈은 뭐 우리 경상도 사람도 아니다. 저거는 그렇다. 또 저거는 우리 혈통도  아니다. 우리 모든 혈통도 부인하는 자다. 저거는 우리 부부간도 아니다. 또  저거는 뭐 우리 친구도 아니다.' 이렇게 해도 그때에 하나님의 계명과  그리스도의 대속 안에 자기가 행동하게 되면은 그 사람을 살립니다.

 암만 반대해도 증생된 사람이라면 그 속에 묵묵히 생각할 때에, 욕을 하고  몰인정이라고 '그놈은 우리 가족도 아니다.' 이렇게 한다고 해도 나중에 묵묵히  생각해 볼 때에 '그게 참 믿기는 믿는 사람이다' 언젠가 그 사람도 반성하고  회개할 때가 되기 때문에 돌아서기가, 일어서고 돌아서 살아나기가 쉽지마는  그만 이 배암의 사랑과 하나님 사랑을 혼돈시켜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이라다가 배암 사랑과 바꿔 버리면 그만 그때는 희망이 없습니다. 다 죽여 버려.

저도 죽고 상대방도 죽이고 다 죽이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요것을 잘  구별해야 됩니다.

 이래서 8절에 '너희는 너희를 삼가' 네가 너를 삼가, 요한일서 5장에는 보면  '자신을 지켜서 우상을 멀리 하라' 했어 그러면 자신이 우상 될 수 있다 그  말이오. 자신이 마귀 될 수가 있어. 이러기 때문에 한 사람이 있음으로 그 집을  살립니다. '저 집에는 저 사람이 왔으니까 보자' 보면 그 한 사람으로써 그 집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또 '보자 저 사람이 왔는데 보자' 한 사람으로 그 가족을  죽입니다. 알겠습니까? 저 사람 한 사람이 그 구역에 들어갔으니까 보자 그  구역을 살립니다. 저 한 사람이 거기에 들어갔으니 보자' 그 구역을 마구  죽입니다.

 그 죽이는 건 뭘로 죽이느냐? 사랑으로 다 죽이고 사랑으로 살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하면은 그 가족을 살리고 배암의 사랑을 가지면 그 사람들을 다  죽여 버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제일 거기에 영양이 많고 생명이 충만하고  배암의 사랑에 해독이 제일 충만합니다. 이래서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계도 죽고 모든 교회들도 죽고 구역들도 죽고 다 죽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에 속하지 안하고 지방 정실  '우리는 이북 사람이기 때문에' 이북 사람이라? 이북 사람끼리 뭉쳐 봐라.

네까짓 것들이 똘똘 차돌같이 뭉쳐봐라, 쇠덩이같이 뭉쳐봐라 바싹 깨져 버리고  만다. 안 깨지면 나중에 예수님의 심판 앞에 가서 바싹 깨져서 일생 동안을  헛일한 게 보이지.

 또 이남 사람은 '저건 이북 사람이고 우리는 이남 사람이다' 이남 사람끼리  너거 또 뭉쳐 봐라. 네까짓 게 암만 뭉쳐 봐라 소용이 있는가? 바싹 깨지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는 경상도 사람이다 경상도 사람끼리 뭉쳐 봐라. 바싹  깨집니다. '우리는 호남 사람 전라도 사람이라' 전라도 사람끼리 뭉쳐 봐라,  빠싹 안 깨지는가? 여기에 OO회라고 있었는데 OO회 그것이 들어온 걸 내가  반대를 하고 '그런 거 가지면 안 된다' 이랬었는데 거기에서 나온 사람은 살았고  거기에 속해서 이제 OO회에 들어가니까 보니까 그때 들어간 사람들이 뭐 그  사람들이 전화 놓는 데에 권리가 있어요. 전화 놓는 데 권리 있어서 그 '어째서  그러노?' 이라니까 OO회에 들어갔는데 OO회에 거기 전화 놔 주는 데에 좀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까 지방 정실이면 지방 정실끼리는 단합이 돼지니까 뭐 서로  통하고 협조가 있으니까 그만 하나님 협조보다도 가까운 협조가 있으니까 그  협조에 따라서 망하고 만다 그 말이오. '저건 또 거창 사람이라' 거창 사람끼리  모여 봐라, 암만 뭉쳐 봤자 그까짓 거 먼지같이 다 그럼으로써 백해무익으로  손해만 가지 유익된 거 하나도 없습니다. 이래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이 교훈을 하는 것을 듣기 싫어한다 말이오.

 '행정이 틀렸다' 틀렸다 하는 것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이 교훈을  지키라는 요것이 행정 틀렸다는 전체입니다. 그러니까 가 가지고 저거끼리 이제  나가고 난 다음에는 이 배암의 사랑을 가지고 하니까 달콤하게 얼마나 좋습니까?  얼마나 친밀하고 좋소? 좋지마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 봐야 그것이 수입되는  생활인지 손해가는 생활인지 알지.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하는 건 하나님의 사랑만이 사람을 살릴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지 배암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잘 구별해 가지고  혼돈되지 안해야 되고 잘못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전부 신구약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사랑인데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이대로 하다가 배암의 사랑, 혈육  사랑, 정욕 사랑, 동류 사랑, 모든 지방사랑 이놈이 들어서 그만 여기에 끌려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고 그 사람이 되고 만다 그 말이오. 여러분들이  가만히 저를 모르면 남을 봐도 알아요. 겁니다. 보라 그 말이오? 저 사람은  보자. 지방 정실을 가졌나? 저 사람은 이남이니 이북이니 이것을 구별하고 있나  안 하고 있나? 거 사람은 이남이니 이북 그것이 없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저거는 뭐 김가다 이가다 박가다 그런 게 있나? 그것은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저거는 저거 혈육이라고 혈육에 대해서 무슨 차이가 있나? 혈육  그게 보면 저놈들은 혈육이 없는 것 같다. 혈육 그게 무슨 뭣이 그게 없는  가보다. 이런 사람을 건너보면 알 수가 있다 그 말이오. 없는 것 같이 이렇게  처세를 하는데 딱 진리에 대해서 딱 그라니까 금방 어제까지는 '이 진리라 이게  진리라 옳은 것이라 우리 형님을 틀렸다, 이렇게 말하다가 딱 그게 선언하고 딱  갈라서니까 그 다음에는 그 이튿날부터 욕하고 돌아갑니다. 이래도 소경이라  양떼는 그걸 모릅니다. 어제는 그 사람이 저라더니만 오늘은 저란다' 이래도  그걸 모른다 그 말이오. 그게 뭐이냐? 전부 배암에게 눈이 가리워져서 그런  것입니다. 배암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꼭 구별해야 됩니다. '너희는 너희를  삼가' 너희를 삼가 조심해서, 네가 너를 잘 단속해서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이렇게 사도들이 교훈한 이 교훈하고 또 늘  지도하는 가르친 이것을 잃지 말고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그 교훈대로 행하여서 온전한 성공을 하라. 온전한 상을 얻으라 온전한  성공을 하라.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지나친 것은  어떤 게 지나친 것이냐? 넘어가 버렸다 말이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려고 거기에서 지금 뿌리박기를 마치 공중에 새떼 모양으로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고 그 겨자씨는 뽑히면 죽어 버려 그게 꼭 박혀 가지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알고 또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는  거기에 뿌리를 딱 박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인데 그만 알고 인정하는 거기에서  알고 넘어가 버리고, 어떤 사람은 인정만 하고 넘어가 버리고, 지켜 행하지 안  하는 것이 다 넘어간 것이라 말이오. 지내친 거라 말이오.

 그것이 지내친 것은 자기를 그렇게 했으면 아무리 알아도 인정치 안하면 소용이  없는데 아는 것으로 된 줄 알고, 또 아무리 인정해도 지켜 행하지 안하면 소용이  없는데 아는 것으로 된 줄 알고 하는 것이니까 다 넘어간다 말이오. 그 활을 쏠  때에 과녁을 딱 맞춰야 되는데 위로 넘어간 것도 넘어간 것이요, 아래로 처진  것도 넘어간 것이요, 옆으로 삐뚤어진 건 다 죄라 그 말이오. 지나쳤다 넘어갔다  그 말이오. 하나님의 교훈을 네가 아는 것으로서 다 된 줄 알고 또 네가 입으로  증거하니까 말하는 것으로 다 된 줄 알고 지켜 행해야 돼. 알고 인정하고 지켜  행해야 되는데 요게를 과녁을 맞추지 안하고 다 지나가 버렸다. 지나쳐 버렸다  그 말이오.

 '지나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하나님 모시고 살면 다 돼요. 자기가, 피조물보다 강한 분을 자기가 모셨으면  피조물에게 대해서 염려가 뭐이 들겠습니까? 대주재를 모셨으면 자기에게 무슨  가난에 대해서 무슨 문제가 있을 것입니까? 모든 것을 주권을 가지신 이분을  모셨으면 아무리 불에 집어던지고 사자구덩이에 집어넣는다 해도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는 걸 확실히 믿으면 '뭐 거기 가거나 말거나 죽고 사는 것은  주님에게 주권돼 있지, 불이 나를 죽이지 못한다, 사자가 나를 죽이지 못한다'  그 신앙을 가진 것이 다니엘이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 모시는 것이 얼마나? 그분을 모시니까 죄를 지을 수 없지 그분을  모시니까 염려될 것 없지, 그분을 모시니까 모르면 그 분에게 물으면 다 가르쳐  주고 하니까 그분이 얼마나 보배요? 뭐 옛날 얘기에 부자 방망이가 있다  하더니마는 하나님은 참 뭐 하나님은 부자 방망이요. 그분만 있으면 다 돼  뚜드랑땅 그러면 다 돼. 그분이면 다 되니까 이 하나님을 모시기를 힘을 쓰고  하나님을 모셔 보면 그 모시는 효력이 얼마나 있는지! 이러니까 이분 모시고  살면 든든하고 이분을 안 모시면 아무리 세상 것이 뭐 다 있다 해도 허전해서 못  삽니다. 허전해서. 못 살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네가 이 계명을 지키면 우리가 와  가지고 너와 거처를 같이 하겠다 말씀을 했습니다. '거처를 같이 하겠다' 성부  성자 성령이 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같이 하겠다 이겠습니다. 거처를 같이  한다 했어. 동거하겠다고 했어요.

 '모시느니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그 악한 일이  뭐이지요? 그 악한 일이 뭐입니까? 자기중심. 자기중심. 하나님 중심해야지  자기중심이 그게 뭐입니까?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됐다' 그게  악이요. 인간이 인간 중심이 됐다 말이오, 인간 중심이 이것이 원죄입니다. 인간  중심 자에게 내가 동참하기 쉽다 그 말이오. 너희들이 이 신앙 사상을 가지고,  자기가 아무리 행하지 못해도 '나는 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을 받았으니까 나는  사활의 대속을 입고 사는 것이 내 정상이다' 또 주님이 나 위해서 사활의 대속을  했기 때문에 사활의 대속이 내것 됐으니 나는 주님의 것 돼야 되지, 대속도  내것되고 나도 내것되고 도둑놈 아니요? 사활의 대속이 내것 되는 것은 내가  주님의 것이 돼야 됩니다.

 이러니까 기본구원은 되든지 말든지 그거는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되지마는  우리 짓설구원 행위구원에는 주님의 사활의 대속이 내것인 것을 깨닫고 사활의  대속을 입고 사활의 대속으로 살 때에 기본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사활의  대속을 지식으로만 가지고 입술로만 증거하고 실지로 사활의 대속을 자기가 입고  살지 안하고 자기가 주님의 것으로 살지 안한 건 다 구원 없습니다. 자기가  주님의 것으로 사는 것이 이것이 건설구원이 되는 것이고 주님의 사활의  대속만이 자기 것으로 사는 것이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것이요, 주님의 종이요, 주님의 성전이요, 주님의 지체요,  주님의 몸이요, 주님의 제사장이요, 선지자요, 왕이요, 주님의 영광의 찬미가  됐고 주님의 형상이 된 이것이 자기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사람이 자기인 것을 깨닫고 이 사람이 살라고 애를 쓰는  거기서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이것을 입술로만 하고 말로만 증거하고  설교하고 난 다음에는 다 된 줄로 알고 또 자기는 이런 지식만 가지고 다 된 줄  아는 사람을 가리켜서 어떤 사람이라고 여기 말했습니까? 무슨 사람이라 말했어?  무슨 사람이라 말했어? 어? 저 양성원 학생? 뭐라고? OOO교회 저 학생? 그게  지내친 사람이라 말이요, 지내친 사람.

 이 활을 쏠 때에 고 한가운데 과녁을 딱 뚫어내야 요게 이제 그게 바로 되는  것인데 거제 삐뚤어진 것은 다 죄라 그 말이오. 삐뚤어진 건 좌우로 삐뚤어진  것만 삐뚤어진 겁니까? 아래 위로 삐뚤어진 것도 삐뚤어접다 말이오. 이  넘어갔다 그 말이오. 그게 맞치지 안하고 넘어 갔다 말이오. 위로 넘어갔든지  옆으로 넘어갔든지 넘어갔다 그거요 지내쳤다 말은 그 과녁을 맞추지 안한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지 못해서 하려고 애를 쓰는 거, 또 아예 부인하는 거, 다릅니다.

하지 못했으나 선지자와 같은 의인과 같은 그런 생활을 하려고 애를 써도 되지  아니하는 사람이 있고 또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고 하는데 '애를 쓰는  사람은 하지 못해도 한 사람과 같은 그런 대우가 된다' 하는 그것을 말한 것이  어데 있습니까? 성경 어데 있어? 마태복음 10장, 몇 절? 42절이랍니다. 거기에  보면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대접하는 사람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대접하는 사람은 선지자 상 받고 의인 상 받는다 했어.

 그 선지자의 하는 것을 자기가 찬성하고 옳은 줄 알고 그대로 따라가고  행하려고 하지마는 하지 못하니까 그저 대우만 한다 말이오. '그는 참 선지자의  말인데 요대로 살아야 내가 되겠는데' 하는 사람, '저는 의인이라 저게 바로  사는 의인인데' 그 의인을 대접하는 사람은 의인으로 행하는 게 아니라 대접하는  사람, 의인대로 살지 못해도 그걸 찬성하고 거기에 따르고 그렇게 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거기에 소속한 사람으로 나중에 판정을 해 준다 그거요.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광고합니다. OOO집사님 구역에 초상이 났습니다. 여덟시 삼십분 까지 교회로  오시면 같이 가실 수 있습니다. 이 초상은 뭐 어제 아래가? 자기가 병원에 무슨  치료하러 간다고 가다가 그만 사고가 나 가지고 남편은 직사했습니다. 또 그  부인은 지금 아주 중상이 돼 가지고 웅급실에 있습니다.

 이 말을 왜 하느냐 하면은 자, 차 안 타는 사람이 있어? 차 안 타는 사람이  있어? '나는 젊기 때문에 아직 멀었다' 어리석은 자야, 내일 날은 네것 아니라.

'암만 젊어도?' 그 사람도 젊어요. 한 오십도 아직 안 됐어. 오십 아직 안  됐는데 삼십된 자는 안 그렇습니까? 스무 살 된 사람은 안 그렇습니까? 이러니까  내일은 내 날이 아니기 때문에 오늘 죽을지 모르니 우리는 뒤로 미루지 말고,  회개는 뒤로 미루면 안 됩니다. 신앙도 뒤로 미루면 안 돼요. 그러니까 오늘  우리 할 일 다 매듭을 해 놓고 또 내일을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맙시다. 우리의 마음이 자꾸 어두워지면은, 여기에서는 배우는 거 이  배우면은 이걸 실행하면은 몰라서 못 했다고 핑계하지 못해. 얼마든지, 그러니까  우리를 만들기 위해서 마귀떼가 마구 일어납니다. 자꾸 이 배암 사랑이 막  일어나요. 그럴 때에 용감 스럽게 배암 사랑을 딱 떼고 하나님 사랑을 가지는  것이, 내가 화친을 일으키러 온 게 아니고 불목을 일으키러 왔다 하지  안했습니까? 그 말씀이 어데 있지', 저 O조사? 마태복음 10장에 있어.

 '내가 화평 일으키러 온 게 아니라 불목을 일으키러 왔다 부모와 자식이  불목하고 시어미와 며느리가 불목하고 이 모두 불목하는 거, 그거 뭣 때문에  불목하요? 하나님의 사랑 배암의 사랑 이 사랑과 사랑이 충돌돼 그렇다 말이요.

그럴 때에 아무리 자기 가족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되면 '틀렸다' 요게  살리는 것이요 요게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루 삼십 분 기도, 반사들은 꼭 외우고 실천하고 자기에게 소속한 그 믿음의  자녀나 후배는 꼭 마음 가운데 넣어 놓고 길러야 되지 그냥 심방만 빼쭉 가  가지고는 안 됩니다. 늘 생각을 해야 됩니다. 생각 속에 넣어 놓고 기르는 것이  마음 속에 넣어 놓고 기르는 것이라.

 다음 수요일날 밤에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우리 OOO전도사님이 설교를 하도록  내가 미리 다 말해 놨습니다. 이러니까 위해서 기도해 주고 기도해 주는 데는  그래 기도해 주십시오. '마귀 역사가 나타나지 못하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도록, 마귀 말 하지 못하고 성령의 말씀만 하도록.' 그렇게 위해서  기도하고, 또 하나는 '저게 마귀인지 성령의 사람인지 그게 확실히 드러나도록  좀 주님께서 해 주십시오' 또 그래 기도하고 이래 가지고 우리가 자꾸 기도로 뭘  해 나갑니다. 기도로 해 나가서 승리하고 성공하는 것이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863 사랑의 빚/ 로마서 1장 14절/ 1983. 7. 13. 수야 - 중복 선지자 2015.11.03
862 사랑의 빚외에는 지지 말라/ 로마서 1장 8절-10절/ 880717주후 선지자 2015.11.03
861 사랑의 빚외에는 지지 말라/ 로마서 13장 8절-10절/ 880717주전 선지자 2015.11.03
860 사랑의 세가지 알맹이/ 요한일서 4장 9절-10절/ 820425주후 선지자 2015.11.03
859 사랑의 역사/ 요한계시록 1장 5절-6절/ 810411토새 선지자 2015.11.03
858 사랑의 완성/ 요한일서 4장 17절-21절/ 820417토새 선지자 2015.11.03
857 사랑의 정의/ 에베소서 1장 3절/ 890504목새 선지자 2015.11.03
» 사랑의 정의/ 요한이서 1장 4절-11절/ 890610토새 선지자 2015.11.03
855 사랑의 정의/ 요한이서 1장 4절-11절/ 890609금야 선지자 2015.11.03
854 사랑의 정의/ 요한이서 1장 6절-11절/ 890605교역자회. 선지자 2015.11.03
853 사랑의 종류/ 요한일서 3장 1절/ 800310월새 선지자 2015.11.03
852 사랑의 표본/ 히브리서 12장 3절-13절/ 810409목새 선지자 2015.11.03
851 사랑의 표준/ 요한일서 4장 17절-21절/ 850821수새 선지자 2015.11.03
850 사랑의 하나님/ 히브리서 11장 5절-6절/ 791105목새 선지자 2015.11.03
849 사랑의 하나님/ 히브리서 11장 5절-6절/ 791104주전 선지자 2015.11.03
848 사랑의 하나님/ 히브리서 11장 6절/ 791104주후 선지자 2015.11.03
847 사랑의 행복/ 요한복음 15장 9절-11절/ 811028수야 선지자 2015.11.03
846 사랑의 힘/ 로마서 8장 34절/ 840311주새 선지자 2015.11.03
845 사랑이 미움으로 나타나/ 요한일서 4장 14절-21절/ 790708주후 선지자 2015.11.03
844 사망의 치료법/ 로마서 6장 19절-23절/ 861215월새 선지자 2015.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