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정의

 

1989. 6. 9. 금야.

 

본문: 요한이서 1장 4절∼11절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음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

 

(묵상기도) 지극히 크신 사랑과 능력의 주께서 오늘밤을 주시고 또 모든 존재들을 창조하신  능력의 말씀이 임하셔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주시려고 이 시간을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악령의 이 베풀어 놓은 진도 심히 강하고 또 악령으로 굳어져 있는 우리들의  심령이 참 무쇠보다 강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말로는 더럽히는 것은 되지마는 그  속에 생명이 들고 들어갈 수는 없음을 압니다. 땅위에 모든 사람들의 그  열변이나 웅변이나 지혜로운 어떤 말이라도 이 장벽을 뚫고 들어가지는 못하고  다 부패성을 더 보강할 것뿐인 것을 저들이 확실히 압니다.

 다만 주님의 피공로의 능력과 성령님의 감동과 진리의 능력이 임하여서만 이  강퍅한 우리의 마음을 꿰뚫기도 하고 깨뜨리기도 하셔서 주의 생명 역사가 우리  안에 들어와 중생된 저희 새사람을 새롭게도 하시고 강건케도 하시고 충만케도  하시는 이 한 길밖에 없는 것을 압니다.

 오늘 밤에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곳마다 함께 하시고 이 자리도 주님의  사활의 대속 공로와 성령님과 진리가 친히 오셔서 대속한 자를 붙들고 말씀하실  때에 이 능력이 임하셔서 돌과 같은 강퍅한 저희 심령들도 다 꿰뚫게 하시고  악령으로 굳은 진쳐 있는 것도 다 파괴하고 생명으로 충만하여 중생된  새사람으로 새로와지며 강건해지며 충만 해질 수 있는 은총을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선지자선교회  요한이 복음을 전하여 많은 믿음의 자녀들을 두었습니다. '너희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말했습니다. '심히 기쁘도다' 요한이 기뻐하는 것으로 여기에 말이 기록돼  있으나 요한은 성경 기자가 아닙니다. 요한은 성경 기자가 아니고 성경을 기록한  이는 곧 성령님이십니다. 우리 정통에서는 성경은 성령님이 사람을 붙들고  기록할 때에 획 하나 하나를 붙들고 기록하셔서 붙들려서 성경을 기록한 그  사람도 자기가 기록한 성경에 대한 뜻을 다 알지 못합니다.

이래서 이것을 축자적 영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글자 한 자 한 자를 성령님이  사람을 붙들고 역사하셨다 하는 말입니다. 종종 바울이 성경에 나를 본받으라는  그런 말 한 것은 바울 자신을 본받으라는 말 아니고 성경 기자를 본받으라는  말이니 성경 기자를 본받으라는 말은 곧 성령님을 본받으라 하는 그런 말입니다.

 여기에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했습니다. 우리가 떠나든지 거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우리는 평생 힘쓰고 있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방편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그 계명대로 진리  생활하는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유일한 법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 계명인 진리대로 사는 데도 진리대로 살기를 위해서 그  계명대로 살기를 위해서 이것을 목적해서 진리대로 사는 것 아닙니다. 우리를  대속하신 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진리대로 살고 계명대로  사는 것입니다.

 5절에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이것도 요한이 구하는 것으로 이렇게  말이 되어 있으나 곧 성령님이 믿는 자에게 구하는 것입니다.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서로 사랑 하자' '서로 사랑하자' 이 사랑이  혼돈되어 있고 혼잡되어 있고, 마귀란 놈이 사람들을 미혹시켜서 이 사랑을 아주  뒤섞어서 사랑을 보지도 못하게 해 버렸습니다.

 사랑은 마귀가 주는 땅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 있는데 땅의 새랑은 어떤 게  땅의 사랑인고 하니 마귀가 준 땅의 사랑은 지방 정실 사랑입니다. 지방 정실.

우리는 경상도 사람이다 해서 영남회라고 그게 있는지 없는지 지금은 모르겠는데  저한테 영남회에 가입을 해 가지고 좀 거기에서 간부 노릇을 역사를 좀 해  달라고 통지가 많이 왔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거기에 답도 하지도 안했고 가  보지도 안했고 안 했습니다.

 왜? 그것은 우리 믿음의 조상에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이랬기 때문에 그걸 떠나지 안하면 주의 명령 순종은 안 되는  것입니다. 떠나는 것이 첫째 순종이요 그 순종하고 나면 주님이 인도하시는  인도를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본토라 말은 지방 정실을 가리켜  말합니다. 우리가 지방 정실을 벗어나지 안하면 주님의 명령 순종은 절대 안  됩니다. 되는 것 같지마는 나중에 지방 정실 문제가 나오면 뭐 신앙이고 뭐이고  다 팽개쳐 버립니다.

 이래서 내가 서울에 어떤 교회에 가보니까 거기는 전부 호남 사람들만 소부락이  모여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내가 좀 듣기 싫은 소리지마는 '물론 아는 대로  전도해 가지고 이렇지마는 이 호남 사람들만 모여 가지고 이렇게 교회가 됐으니  다른 지방 사람들이 와 가지고 여기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  교회라 하는 것은 콩이든지 팥이든지 밀이든지 개체 가지고 있는 것을 매 속에다  갈아 가지고 떡 덩어리 만드는 것으로 비유했는데 이렇게 지방 정실이 이렇게  주동이 돼 가지고 교회가 돼 있으니 이거는 참 교회가 아니다.

여기에는 제일 주력하는 그 주동자가 누군고 하니 지방 정실이지 그리스도가  될리는 없다.' 그것을 제가 그때에 집회 때에 증거를 했는데 아마 그분들이 그  처음 듣는 말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돼 집니다. 또 경상도 사람, 또 충청도  사람, 강원도 사람, 크게 말하면 이남 사람, 또 이북 사람, 이북 사람과 이남  사람이라는 지방 정실을 완전히 초월해서 그런 것을 다 떠나야 되지, 그런 것을  떠나 그런 것이 있지마는 그것을 초월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은  그런 것을 초월해야 됩니다.

 그래서, '본토를 떠나라' 하는 것은 본토야 있기야 있지마는 그것을 초월해서  거기에 붙들리지 말고 거기에서 떠나서 괴와 성령과 진리와 하늘의 소망에  붙들려야 되지 거기에 붙들리면 안 됩니다. 이북 사람, 이남 사람, 강원도 사람,  충청도 사람, 제주도 사람, 남해 사람, 경상도 사람, 또 그 안에서는 거창 사람,  제가 처음에 여 기 서부교회 와서 OOO권사님이 그때에 구역장인데 어째 그 말이  생각이 났던고 '거창 사람은 거창 사람끼리 모이자' 이란다고, OOO목사님은  그때는 아주 학생 때입니다. 이래 모아 가지고 그 구역이 OOO권찰님 구역으로  옮겨지는 그걸 보고 내가 말하기를 '왜 옮기느냐?' 'OOO집사님이 우리 거창  사람은 거창 사람대로 모이자고 이렇게 해서 그래 합니다.' 그래 내가 말하기를  '그것이 성경이 아니고 순전히 마귀 말이요 마귀 행동이니까 그리 못 한다, 본  구역으로 가라.' 그래 가지고 그때 해산을 시켜 버렸습니다. 지금도 보면 또  '거창이라' '어데라' 이 지방 정실을 떠나라 했는데 이걸 떠나지 안하니까  그것이 벌써 첫 명령인데 그거 안 떠난 자는 그 뒤 명령은 하나님이 명령해  주지도 안하고 저는 또 받지도 못하고 받아 봤자 소용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여기에서 나간 사람들이 '행정이 틀렸다' 이렇게 말하는데 행정 틀린 것은  그들은 다 지방 정실의, 혈육 정실의 그것을 위주로 해 가지고 하고 있는데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 얼마 동안은 '친척 집에 가지도 말아라. 뭐 생일이니 뭐  환갑이니 하는 그런 데도 참여하지 마라.' 이래 놓으니까 그들이 '행정이  틀렸다' 이랬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좀 깨닫고 떨어지고 난 다음에는 '이제는  너희들이 너희 지방을 찾을라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찾아라, 너거 지방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 그래 가지고 그때에 해방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차 정실이 좋은 것이나 주님을 위해서 그런 것을 이용할  일이지 거기에 붙들려서, 주 믿는 것이 거기에 정실에 삐뚤어지면 주님도 진리도  없고 다 이렇게 팽개치고 나가는 그런 일은 아주 그거는 마귀 일이요 안 믿는  사람 일이지 믿는 사람 일 아닙니다.

 이래서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명령에 관해서는 지방 정실이 근방에 오지도  못합니다. 누가복음 9장에는 내가 아버지를 장사하고 따르겠나이다. 죽은 자는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복음을 전파하라 '내가 가족을 먼저  작별하고 주를 따르겠습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지방 정실의 사랑, 혈육 정실의  사랑, 자주 만나니까 생겨진 동류의 사랑, 또 암컷 수컷이 이성적인 그 정욕적인  사랑 이런 거는 전부 땅의 사랑이요 하늘의 사랑이 아닙니다.'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라니까 '호부래비가 이 부녀들 보고 서로  사랑하자 하는 것 보니까 이거 이상하다' 이렇게 보일 것입니다. 그 밑에 사랑이  뭐인가 똑똑히 기록을 해 놨습니다. '서로 사랑하자 이는' '사랑하자 이는'  사랑하는 거는 어떤 게 사랑하는 것이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서로 사랑하자는 이 말은 새로  너거에게 무슨 명령하고 말하는 그 교훈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가진 이  교훈이요 명령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6절에 '또 사랑은 이것이니' 그러면 서로 사랑하자 했으면 사랑이 뭐이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계명대로  지켜서 사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요걸 알아야 됩니다. 서로 사랑하자 이  말은 서로 계명대로 살자. 이 부녀들아 우리가 서로 계명대로 살자 그 말이오.

계명대로 살자. 계명대로 살자. 다시 말하면 성경 말씀대로 살자.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오. 정욕 사랑도 아니요, 정실  사랑도 아니요, 동류 사랑도 아니요, 혈육 사랑도 아닙니다.

 이 계명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인데 이 계명대로  살면 혈육 간에는 원수가 됩니다. 마태복음 10장에 보면은 애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고 자식이 애비를 죽는 데 내어주고 시어미와 며느리가 원수가  되어지고 이렇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금 사랑과 사랑을 혼돈시켜 가지고 교회가 막 망하고  있습니다. 뭐 어떻게 방송 들으면 뭐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전부 사랑만 자꾸  노래를 부르고 사랑만 높이 평가하고 사랑이 제일이라 이래 가지고 떠들어대니까  전부 이 사랑으로 사람들이 다 죽습니다. 다 망하요. 처녀 총각이 전부 사랑으로  망하요. 또 결혼한 사람도 전부 사랑으로 다 망하고 있소.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무슨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자  말이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제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계명을 좋아하는 것이요, 사랑하는 것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형제끼리 사랑하는 거, 부부끼리 사랑하는 거. 친구끼리 사랑하는 거, 이웃끼리  사랑하는 거, 원수에게 대해서도 사랑하는 거,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가? 그 사람에게  대한 마음이나, 생각이나, 뜻이나, 성질이나, 정신이나, 욕심이나 전부가 다  성경 말씀대로 언행 심사를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할라 하면은 배암의 사랑과 배치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지 배암 사랑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양보하고 뺏기고 그렇지 못하는 것이 성도들입니다. '계명대로 행하는 것이라'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니라' 계명이 무엇이냐? 계명은 무엇이냐? '계명은  이것이니' '하나님의 계명은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경계하고 명령한 것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그러면 이것이 사랑이라. 그 가운에서 행하는 것이  사랑이라.

 그 가운데서 뭐, 그 가운데서가 뭐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가 뭐인데? 사죄 안에, 칭의 안에, 화친 안에, 진리 안에, 하늘나라 소망  안에, 사활의 대속 네 가지 이 대속 안에서 사는 것이 이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심히 기뻐하도다 '심히 기쁘도다'  '심히 기쁘도다' 우리가 성경을 보고 우리가 해야 뭐 그거 실상이 이루어지지.

암만 배고픈데 좋은 음식이 있어도 먹어야 자기 몸에 효력이 있지 안 먹으면  무슨 효력 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행하지 안하면 아무 효력 없습니다.

 아침에도 말했지마는 삼십팔 년 된 병자가 병 낫는 일에 있어서 '나는 중한  환자' 그까짓 것도 상관없어. '나를 돕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를 방해하는 자가  많습니다.' '있건 말건 그게 네게 무슨 상관있느냐?' 방해자가 암만 많아도,  돕는 자 하나도 없어도, 네가 인류 중에 제일 천하고 가련한 자라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정반대로 그 군중 속에 제일 행복되고 희망 많고 소망이 넘친 사람으로  변화된 것이 삼십팔 년 된 환자 아닙니까? 그것이 송구영신의 그 절기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가 땅위에 사는 모든 생애의 시간은 전부  옛것은 지내 보내 버리고 새로워지는 그 절기가 우리에 총총 다가오는 모든  시간이요 날짜입니다.

 7절에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미혹하는 자가 많이 나왔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나왔다 말은 마귀가 가뜩 찼다 그말과 같은 말입니다.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습니다. 악령이, 모든 만물을 갑옷으로 입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꼬울라고 하는 이 악령이 세상에 많이 나왔다, 가득 찼다 그  말이오.

 '나왔나니' 이는 나왔는데 이거는 어떤 자이냐? 그러면 마귀가 와 가지고 이  미혹하는, 미혹하는 이 자가 많이 나왔으니 미혹하는 자는 어떻게 하는 게  미혹하는 자냐? 그러면 미혹하는 자는 어떻게 하는 자가 미혹하는 자냐?  미혹하는 자가 많이 나왔는데 미혹하는 자는 어떻게 하는 자가 미혹하는 자냐?  그걸 우리에게 가르쳐 줘야 될 것 아닙니까?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예수님이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이 사활의 대속하신  이것을 부인하는 자니, '부인하는 자라' 것이 미혹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입니다.

 귀신이 들어갔나 안 들어갔나?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나 안 믿는 사람들에게나  모든 사람에게 귀신이 들어갔나 안 들어갔나, 미혹하는 이 마귀가 들어갔나 안  들어갔나 하는 것을 뭘 보고 압니까? 여기에 뮐 보고 안다 했습니까? 뭘 보고  안다 했지요?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부인하는 자라' '예수님이 육체로 임하신 것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적그리스도니 너희는 너희를 삼가' 너는 너를 조심해서,  네가 너를 벌로 돌리지 말고 네가 너를 잘 단속하고 조심해서, '너희는 너희를  삼가 조심해서 우리의 일한 것을' 우리가 너거에게 일해 놓은, 일해 놓은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온전한 상을 얻으라' 네가 조심해서  우리가 너거에게 일해 놓은 거,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 가지고 가르쳐 놓은  이것을 잃지 아니하면 온전한 상급을 얻지마는 그렇지 안하면 상급을 얻지  못한다, 왜! 너거를 꼬우는 자들이 세상에 많이 들어왔다. 꼬우는 자들이 세상에  많이 들어왔다. 꼬우는 자는 마귀를 말하는 것인데 꼬우는 마귀가 세상에 많이  들어왔다.

 그러면 많이 들어왔으면 꼬우는 마귀가 어떻게 꼬우느냐?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그러면 악마의 마귀가 그 속에 들어  있나 안 들어 있나 하는 것을 우리가 알기 쉽게 지금 말해 놨습니다.

 아무리 중생된 사람이고, 택함을 입은 사람이고, 아무리 목사고 장로고,  집사고, 권사고, 권찰이고, 반사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이라고  성직을 가졌다 할지라도 적기독이 있다. 거짓 그리스도인이 있다. 기독교의 적이  있다 그 말이오. 장로도 기독교의 적이 있고 목사도 기독교의 적이 있고, 집사도  기독교의 적이 있다, 반사들도 기독교의 적이 있다. 입술로는 예수 믿으라고  전해도 실은 그 속에 귀신이 들어 가지고 예수교를 반대해서 사람을 멸망시키는  그런 적기독이 있다.

 그 적기독은 뭘 보고 아느냐?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예수님이 육체로 오셔 가지고  뭣 했습니까? 인성을 입고 뭣 했습니까? 인성을 입고 대형으로 사죄하셨고,  대행으로 칭의를 하셨고, 대화친으로 우리에게 하나님과 연결을 시켜  주셨습니다. 이렇게 죽기까지 하셔서 우리를 구속하셨는데 이것을 부인하는  자라.

 그러면 어떤 예수 믿는 사람이라도 우리가 다 그런 시험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자기가 '예수님이 내 죄값으로 멸망받는 이 멸망에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형벌을 받아 가지고 나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으니 나는  이제는 죽어도 죄를 범할 수 없다.' 범죄하지 않기 위해서 죄로 더불어 자기도  죽기까지 싸울라고. 인간이 연약해서 그래도 범죄 합니다. 그래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목적은 죄로 더불어 싸우기를 참 결사적으로 싸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의로 살기를 결사적으로 살고, 하나님을 배반치 아니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라고 결사적으로 사는 이 노력이 없으면 다 적기독이다. 속에  귀신이 든 자다. 성령이 우리를 주관하지 안할 때는 마귀가 주관합니다. 마귀가  주관하지 안한 때는 성령이 주관하는 때입니다.

 이러니까 성령이 오시면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사죄 칭의 화친을 주신  예수님의 이 대속과 하나님이 영원히 피조물을 입고 부활하신 영원한 희생의,  사랑의 희생인 이 부활의 하늘 소망, 하나님께 대한 이 소망 이렇게 큰 고난을  들이고 큰 힘 들여서 우리에게 사죄 칭의 화친 하나님에 대한 이 소망을 주셨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이 은혜를 배반치 안하려고, 이  은혜 생활을 하려고, 다시는 이런 죄를 범하지 안하려고, 자기가 힘써  싸우다가도 넘어집니다. 이것이 평생 마음 가운데에 소원이고 애를 써도 인간이  이거 아직까지는 연단이 안 되고 못 돼서 그만 그러다 보면, 깜짝 그러다 보면  옆에 보이고 들리는 일에 미혹을 받아 가지고 그만 적기독 생활하고 그리스도의  대속은 완전히 벗어 버립니다.

 이래서, 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부인하는 자라. 사활의 대속을 이거 나  위해서 대속하신 이 큰 공로를 베푸셨건마는 이 큰 공로를 그를 가치 있게  여기지 안하고 이 큰 공로를 등한히 여기는 자라 부인하는 자라 등한히 여기는  자라. 이 사활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인정치 않는, 나 위해서 죽었건마는 이  죽으신 것을 인정치 않는 자라. 인정하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죄를 벗겨  줬는데 우리가 죄를 나도 죽기까지 힘을 써도 죄를 못 이기면 그거는 어쩔 수  없지마는 그래도 죄를 안 지을라고 죽기까지 힘을 쓰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려고  죽기까지 힘을 쓰고, 하나님 배반치 안하고 하나님 모시고 살라고 죽기까지 힘을  쓰고. 영원한 하늘나라의 소망, 하나님께 소망을 가지고 살라고 애쓰는 이것이  있어야 되지 이것이 없으면 그것이 곧 미혹의 악령이 세상에 많이 나와 가지고  미혹의 악령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라도 미혹 할 수만 있으면 미혹한다.'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깨어라 근신하라 마귀가 너희들을 삼키려고 삼킬 자를  찾아서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돌아다니니까 깨어서 믿음으로 그를 대적하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세상에 나왔나니' 나온 것은  이거 미혹하는 자는 마귀요, 또 그 다음에 마귀의 미혹을 받아 가지고 미혹하는  자는 뭐인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믿는다고 하면서 말로만 믿고 이 사활의  대속을 자기가 잃고 벗지 안하려고 힘쓰고 애쓰는 것이 없는 것이 그게 전부  적기독이라 그 말이오. 믿는 사람이지만 실상은 그리스도의 적이라. 그렇게  믿으니까, '장로가 저래 믿으니까, 목사가 저래 믿으니까, 집사가 저래  믿으니까.' 그래 믿는 게 믿는 줄로 알고 그 따라서 믿으니까 전부 마귀 역사만  되어지고 예수님의 대속의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적기독이라.

 '너희는 너희를 삼가' 네 스스로를 조심해서 '우리가 너거에게 가르쳐서 밤낮  가르친 일한 것을 잃지 발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이러니까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입고 벗지 아니함으로써 온전한 상을 얻도록 해라, '얻으라'  9절에,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않는 자라 말은, 지내친다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의 말씀은 말로도 하지마는 하나님 말씀은 깨닫고 이대로 이  교훈 안에서 사는 것이 이것이 정상인데, 교훈 안에 사는 게 정상인데 살지는 안  하고 말만 하면 다 된 줄 압니다. 이게 지나갔다 말이오. 지나가 버렸어. 이것이  삐뚤어져 지나가서 헛일했어. 아는 것으로 어떤 사람은, 이거 뭐 하나님 말씀을  새김질해도 알면 아는 것으로 다라고 생각하는 그자는 지나쳤다 말이오. 지나  넘어가 버렸다 말이오. 명중하지 못하고 넘어갔어. 알면 행해야 거기 딱  들어맞는 건데, 그 명중을 딱해서 과녁을 맞춰서 명중해 딱 들어맞은 것이 되는  것인데 아는 것으로 다인 줄 알고 지 나가고, 제가 입으로 말하면 그것으로 다인  줄 알고, 알고 행하지 안하고 아는 것과 말하는 것으로' 그것으로 다 된 줄 알기  때문에 전부 지나친 것이라. 이래 가지고 저는 다 된 줄 압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자기를 전부 과대평가한 자들이다. 자기를 지나치게 평가한 자들이다.

하나님의 도에 벌써 지나갔다 말이오, 넘어가 버렸어.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  교훈을 받고 교훈 안에서 살지 안하고 교훈을 아는 것으로 다 된 줄 알고, 제가  입으로 증거하는 것으로 다 된 줄 알고, 알고 강단에서 설교만 하면 저는 다 한  줄 알고, 설교 하고 나면 저는 다 행한 것을 설교 했으니까 저는 벌써 구원은  이루어 놓은 자로 이새 알기 때문에 전부 넘어갔다 그 말이오. 전부 지내쳤다.

전부 과대평가를 해서 다 지나가 버렸다, 거짓부리다.

 이렇게 하는 자마다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뭐  하나 둘뿐 아니라 누구든지 여기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어떤 자든지  목사가 교훈 안에 거하지 않는 것도, 장로가 거하지 않는 것도, 집사나 권사나  권찰이나 주일학교 반사나 누구든지 입술로 제가 말한다고 구원되는 건 아니라  그 말이오.

 이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다 지내친 자인데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하나님을 모시지 못해요. 하나님을 모시지 못해요.

그러면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암만 저는  하나님 불러도 하나님은 저와 같이 있지 안해. 하나님을 모시지 못해요.

 그 교훈 안에 사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모시지 그 교훈 안에서 행하지 안하는  사람, 살지 안하는 사람은 하나님은 평생 모시지 못합니다. 만나지도 못합니다.

암만 불러봤자 만나보지 못해. 하나님이 제게 오면 박멸시켜 버릴 터인데.

소멸시켜 버릴 터인데 하나님이 어째 오실 수가 있겠습니까?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이 교훈 안에  생활하는 이 사람이 교훈 안에 생활하는 게 뭐인가? 교훈이 뭐입니까? 네 가지  교훈입니다. 네 가지 교훈.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사죄해 주셨으니 이제는  나는 죄 짓지 않고 죄 없는 사람으로 살겠다.' 죄 안 지으려고 애를 쓰면서 사는  사람,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라고 의롭게 살라고 애를 쓰는 사람, 아무리  어려워져도 하나님 배반치 안하고 하나님 모시고 살라고 애를 쓰는 사람.

하늘나라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애를 쓰는 사람 이 사람이 교훈 안에 있는  사람이라.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아버지도 이 사람이 모실 수 있고 아들도,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이 하나님을 모시게 된다. 그러면  우리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이것이 우리의 영광이요 우리의  전부인데 그 교훈 안에 살지 안하면 하나님은 보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하고  모시지 못합니다. 교훈 안에 사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신다 했습니다.

 제가 오늘 저녁에 이 말씀을 증거하게 된 동기는 참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되고 평안하고 부요하고 만족하고 깨끗하고 영광스러운데 주님을  모실 그 우리의 보좌에, 주님을 모셔야 될 우리 중심 속에 우리 마음속에. 제일  높은 자리 보좌에, 거기에 그 보좌에다가 돈을 모셔 놓고, 이 세상 권세나  지위나 그런 것을 모셔 놓고, 자기 도둑놈 같은 흉측한 만물보다 거짓된 그 주관  욕심 그놈을 그 속에다 모셔 놓고 이래 있으니까 그거 순전히 마귀당이지 뭐  성전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성전이라 했는데 우리가 그 교훈 안에 안 있으면 하나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요걸 자꾸 우리가 보고 알아야 되겠습니다. '못 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교훈 안에 거하는 사람이, 교훈 안에  사는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지 교훈 안에 살지 안하는 자는 마귀만  모시지, 하나님 모시지 안하면 마귀 모시지 뭐 있습니까? 마귀가 그 속에 들어와  가지고 저를 주관하니까 제 딴에는 옳은 줄 알지마는 생각이 전부 자멸하는  생각뿐입니다.

 보십시오. 인류 시조의 해와가 마귀를 모시고 난 다음에, 마귀를 그 속에  용납해 모시고 난 다음에는 해와의 생각이 얼마나 거꾸로 됐습니까? '아, 이거는  참 이것만 먹으면 외모가 훌륭해서 천하 사람이 나를 부러워하고 존대하고  이렇게 영광이 가득 찼겠다.' 보암직하고, 또 '이거는 내가 취해서 참 가지면  유익하겠다.' 먹음직하고, '이거는 내가 가지면 이것만 가지면 되겠다.'  '먹음직하고, '지혜로울 만치 하다 '미래 건설에 이것만 있으면 지능에 부족함이  없겠다' 그렇게 탐스러워서 먹었지마는 먹고 나면 정반대입니다.

 귀신이 우리 속에 오면! 우리의 생각이나, 소원이나, 비판이나, 평가가 전부가  정반대로 거꾸로 됩니다. 요걸 꼭 잡아야 합니다. 제 딴에는 지혜 있게 한다고  하지마는 전부 자살 행위요. 눈뜬 사람이 보면 자멸 행위 자살 행위라. 그것을  가리켜서 성경이 복술이라 그랬어, 복술.

 10절에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오거든'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오거든' 이 교훈이 무슨 교훈인데? 예수님의 사활의  네 가지 대속을 이것을 부인하는 자지. 부인하는 자라 말은 말로는 믿지마는  행함으로 실상은 부인합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은 입술로는 놀리지만 실상은  자기와 상관이 없는 자라. 이라고 그 교훈 안에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아버지도  아들도 모시지 못한 자인데, 우리가 그 교훈 안에서 살지 안하면 아버지도  아들도 모시지 못한다는 이 교훈, 이 교훈을 가지고 오면 너희들이 영접하지마는  하나님의 교훈 안에 살지 안하고 지내쳐서 말 신자, 말 신자, 아는 지식 신자,  이것 가지고 다인 줄 알고 지내친 자가 너한테 와 가지고 가르치려고 무슨  교훈을 가지고 오거들랑은, 이 사실을 인정치 안하고 이대로, 그러면 나는 지금  모시지 못했다던지 이래야 될 터이고 지금이라도 다시 회개하고 모셔야 될  터인데 뭐 말 신자 지식 신자 이것 가지고 다 된 줄로 이렇게 아는 자가 너한테  가르치려고 와서 말하거든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오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집에 용납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니라.' 그 자기중심이라.

 예수님 믿는 것은 하나님 중심인데 하나님 중심으로 예수 믿지 안하고 제  중심으로 예수 믿으면서 입술만 가지고 다 되는 줄 알고, 이 말만 하면 되는 줄  알고 하는 것이 지내친 자라 그 말이오.

 말해 가지고 교인들이 들으니까 '아, 됐다.' 이게 지나친 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사활의 대속한 것을 실은 부정하는 사람이라. 사활의 대속을 자기가 입고  살지 안하고 부정하는 사람이라 그 사람은 적기독이라.

 네게 와 봤자 네 구원에 손해보이기 때문에 그런 자는 인사하지 말고 집안에  들이지도 말아라. 그라면 악에 참여하는 자라. 그 사람이 자기중심으로 예수  믿는 것을 네가 받아들이면 너도 자기중심으로 예수 믿는 사람 되기 때문에 그런  자 되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내가 전할 때는 그 속에 예수님이 없는 적기독을 참  우리가 전합니다. 적기독에게 전합니다. 적기독에게 전하나 적기독에게 전할  때에 나는 적기독이 안 돼야 됩니다. 적기독이 안 돼야 이제 전해 가지고  참기독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지 내가 적기독이 돼 가지고 무슨 참기독자를 만들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우리들이 스스로 삼가서 어쨌든 자기는  적기독이 안 돼야 됩니다. 예수님의 것이 되고 예수님의 대속이 자기 것 된  사람, 자기와 예수님의 대속을 바꿔서 예수님의 대속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되는 것이지 예수님의 대속은 자기 것이라 하고 저도 자기 것이니까  예수님의 대속이 자기 것이 됩니까?  자기 것 가지고 예수님의 대속을 말로만 이름만으로 전하는 그런 자들은 다  적기독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외식 교훈자가 되지 안해야 되겠고 그런 외식  교훈자를 알아서 그런 자는 인사도 말고 집안에 들이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이  성경은 요렇게 딱딱하게 말합니다. 딱딱하게 말하는데 인간들은 어쩌든간에 인간  좋게만 하고 있습니다.

 광고합니다.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외우고 경험하고 체험하고  거기서 확신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이번에 귀신 공부인데 귀신 공부를 단단히  가르쳐 주십시오. 도무지 귀신을 보는 눈이 없습니다. 귀신을 모릅니다. 금방  목사가 귀신 노릇 하고, 장로가 귀신 노릇 하고, 이제 반사가 귀신 노릇 하고,  자기 스승이 귀신 노릇 하는 것, 요 귀신이 어떤 갑옷을 입고 왔다는 이 귀신  공부를 우리가 단단히 가르치면서 나도 배우고 이래 가지고 이 마귀에게 속지  말고 우리 구원 수입을 보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그라고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말고, 또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자기에게  소속한 식구를 마음에 품어 놓고 길러야 됩니다. 마음에 품어 놓고. 마음에 품어  놓는 것은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이, 물론 뭐 사업을 하고 무슨 사업을 하든지  해도 자기 마음속에 자기에게 맡은 양떼가 생각 안 나고 양떼 생각 안 할 그런  시간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거는 조롱하고 욕하고 해도 조롱하고 욕하지만 조롱하고 욕하는 그 양을  위해서 마음 가운데 잊을 수 없는 계속되는 그런 마음 가운데 놓고 기르면  결국은 그놈이 살아나는 거라, 마귀 그놈 달아나고 아무리 악한 자라도 악령  악성 악습 이놈 죽어 버리면 다 성자됩니다. 이래서 마음에 품어 놓고 길러야  합니다.

 십 분 기도 후에 재독이 있습니다. 남구역장님께서는 보고서를 다 내고 가시기  바랍니다.

 이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는 조부랍게 자기 주관 지식에 머물지 말고 그런 걸 다 부인하고 하나님의  계시 지식에 완전히 들어붙어 가지고 계시 지식으로 자기 지식을 삼아 가지고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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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7 사랑의 정의/ 에베소서 1장 3절/ 890504목새 선지자 201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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