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표본

 

1981. 4. 9 새벽 (목)

 

본문 : 히브리서 12장 3절 - 13절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예수님은 사랑의 표본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하셨으며 또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하는 이 사랑이 아 하나님의 사랑의 표본입니다.

여기에서 사랑을 배워서 예수님이 아버지를 사랑하심같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그 사랑이 바로되는 것이고 또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 같이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면 그 사랑이 바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표본이기 때무에 이 사랑과 바른 그 이질의 사랑은 그것은 다  사랑이 아닙니다. 어제 아침에도 말씀함 같이 사랑은 최고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랑은 사람에게는 없고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사랑이  없습니다. 이 사랑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실력이 없어서 사랑을  가지지 못합니다. 하나님 만이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랑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이 받으면 사랑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인간이 가지기 때문에 인간에게 있는 사랑은 모형적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닮은 하나님의 사랑의 모형에 사랑입니다.

그런고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그에게 전달하면 그것이  이 표본인 참사랑을 그에게 주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것 외에  인간에게 있는 사랑을 주면 그것은 내나 생명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죽은  사랑이요. 사망과 저주 아래에 있는 그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랑은 지극히 고귀한 것인 것같이 사랑에는 가짜가 많습니다. 아주  가장 높은 평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이 사랑에는 가짜가  많습니다. 사랑으로 모든 피조물이 살고 또 죽은 것들도 살아난 이것이 참  사랑입니다. 그러나 인간을 만물을 죽이는 것도 또 사랑입니다. 살리는 것도  사랑이요 죽이는 것도 사랑입니다. 살리는 사랑은 산사랑 참사랑 하나님의  사랑이요. 죽이는 사랑은 참사랑이 아닌 가짜 사랑 저주와 사망 아래에 있는  사랑인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와 아담이 사랑한 것은 죽이는 가짜  사랑이어서 그를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기억할 것. 사랑은 하나님에게만 있지 피조물에게는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왜? 사랑은 먼저 능력이 없으면 사랑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 대로는 사랑하는 것이 되지마는 그 사람이 극히 제한되기 때문에  사랑이 결과적으로는 살인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것이 상대방을  유익되게 좋게 위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전지한 지혜가 아니면 반드시 그가  위한다는 것은 한정이 있어서 자기 주관대로는 유익되게 한다고 옳고 바르게  복되게 한다고 한 그것이 무지의 지혜를 가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그를  죽이는 것이 되고마는 것입니다.

하와가 아담을 사랑함으로 선악과를 권한 것도 하와가 지혜가 모지래서 전지한  지혜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아담이 또 그 사랑을 받은 것도  전지한 지혜를 가져야 그 사랑이 끝이 없습니다. 전능한 능력을 가져야 그  사랑이 끝이 없습니다. 사랑이 끝이 있으면 그 결과는 속인 것밖에는 안되는  것입니다. 끝이 없이 끝까지 사랑할 수 있고 또 끝까지 사랑한 것이 되어졌지야  그것이 사랑이지 한시간 사랑한 것 같더니마는 그 다음에는 그것이 변하여  해치는 미움이 되고 말았다면 그걸 사랑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다 전지성, 전능성, 영원성, 완전성, 불변성, 생명성을  가진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하나님에게만 있고 사람에게는  없다고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하나님에게만 있기 때문에 인간이 사랑을 참사랑을 가질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그 사랑을 가지면 참사랑을 가진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할때에 하나님에게 받은 사랑을 사람에게 그 사랑을 주면 참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외에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사랑이요. 또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에게 그  사랑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하나 뿐인데 그러면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라. 또 사람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주는  것이라.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인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을 받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가지셨는데 피조물에게 하나님에게 말씀하신 그 말씀도 하나님의  사랑이요. 모든 은혜도 사랑이요. 하나님이 징계하실 때에 징계를 받는 그  징계가 사랑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무엇이든지 받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죽음을 주실 때에는 죽음을 받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사망케 할 때에 그 사망을 받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사망을 받지 않는 다면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대항할 수가 있겠느냐? 결국은 대항을해도 마지막에는 죽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또 아버지가 증거하기를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의 기뻐하는 자라고 또 증거를 했습니다. 또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과 나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을 내가 이미 받았다. 아버지가 주님에게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아버지를 사랑하신 것은 어떻게  사랑하셨던가? 아버지의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 없이 받는일 한 이것이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버지의 것은 다 주님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 외에는 주님에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것만 받아서 주님이 받으셨습니다. 이러기에 아버지에게  받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었고 아버지에게 받지 안한 행동이 하나도 없었고  아버지에게 받지 안한 지능이 하나도 없었고 또 아버지에게 받지 아니한 속성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가진 속성은 전부 아버지에게 받은 아버지의  속성이요. 예수님의 지능은 아버지에게 받은 전지능이며 예수님이 움직이시는 그  움직임은 순전히 아버지의 움직임을 받아가지고서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대해서 담대히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받을라는 것도 같은 말입니다. 그에게서 전부가  다 나왔지 그에게서 받은 것이지 그에게서 받은 것이 하나도 아닌 것은 없는  것을 가리켜서 '아들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에게 그 모든 것을 받을것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주신 거는 전부가  사랑입니다. 그것을 받아가지고 또 사랑하는 아버지를 당신이 또 사랑한 것은 그  사랑을 받아가지고 그 사랑을 자기가 힘입는 것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랑을 받아가지고 그 사랑을 가지고 그 사랑을 쓰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을 자기가 사용한 것이며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요. 또 그  사랑을 우리에게 준 것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요. 아버지의 사랑을  가지고 우리에게 준 것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행동이였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한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을 첫째로 받는 것이요. 그것이 예수님으로서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요. 그 당신에게는 그 사랑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것이 그것이 사랑입니다. 에수님은 신성 인성 신인양성일위가 됐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어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움직임의 표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해야 되는가?  주님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온전함을 이룬 분이십니다. 그래 주님에게는  아버지의 사랑이 주께 있습니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받으신 것도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가졌기 때무에 하나님이 가진 것처럼 예수님의  인성으로서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가지고 이 사랑을 우리에게 준 그것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행동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것이요.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에게 준 것이 그것이 아버지를 사랑한 것이라. 요것이  사랑의 행동에 자본이라. 예수님은 우리의 원형이요. 우리는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의 원형인 예수님의 모형으로 살까?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온전함을 이루어 가지고 있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가 받을  것이요. 또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받은 사랑을 형제에게주는 것이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랑하는 이 행동을 하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받은 주님을 사랑을 형제에게 주는 것이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사랑의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는 그 구체적인 것은 어떤 것인가? 주님의 모든  것을 받는 것이 이것이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첫째로 주님이  우리에게 구속을 주신 이 구속을 받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또  주님이 우리에게 영감을 주시는 이 영감을 받는 것이 우리가 주님을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또 주님이 우리에게 진리를 주시는 이 진리를 받는  것입니다. 또 주님이 우리에게 진리를 주시는 이 진리를 받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또 주님이 우리에게 진리를 주시는 이 진리를 받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받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친히  우리 위해서 하나님이라면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이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인데 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친히 역사 하시는 이 모든 역사는 사랑입니다. 이  역사를 받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날때에 이 역사로 나타났습니다. 이 역사라 말은 성신의 감화감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성신의 감화감동은 순전히 주님의 사랑입니다. 또 이 성신의  감화감동이 진리로 나타났습니다. 이 진리를 받는 것이 이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진리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러면 죽는다 고 하는  그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그것이 사랑입니다. 이러면 산다는 것을 알려주는  그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자랑입니다.

또 주님이 우리에게 피는 절정을 말했는데 주님이 우리에게 사죄를 주시는 이  사죄를 받는 것이 칭의를 주시는 이 칭의를 받는 것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합을  주시는 이 화평의 이 화합을 주시는 것이 우리가 받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이 세 가지로 나타나서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성령과 물과 피 이 세 가지로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이것을 받아서  이대로 사는 것이 이것이 주님의 사랑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에게 이 세 가지를 받아 내가 가지고 누리고 이 사랑 안에서 살고 이  사랑으로 살고 이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여 주는 것이 그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또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요. 또  형제를 사랑함으로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행동은 인간에게 하고 또 인간을 사랑하는  사랑의 행동은 하나님에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어떻게 했으며 아버지를 사랑함으로  어떻게 했는가? 주님이 아버지를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시는 그 행동은 우리 위해서 도성인신하시고 가난해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그것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행동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인간으로 도성인신하신 것을 아버지를 사랑함이라 했고 또  세례받으신 것을 또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이것을 아버지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만족히 아버지가 받았다고 이미 사랑의 만족을 받았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아버지를 사랑을 받아가지고 이 사랑으로  아버지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아버지를 사랑하시는 행동은 순전히 우리에게  했습니다. 우리에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또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행동은 어데다데고 했습니까? 우리를 사랑하는 행동은 순전히 아버지에게 대해서  하셨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를 사랑하시는 사랑하심으로 아버지를 사랑하시는 그  행동은 우리에게 하셨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행동은 순전히 아버지에게 했습니다.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하신 이 사랑의 행동은 우리에게  직접 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일을 하실 때에 우리는 그때에 생겨지지도  안했습니다. 순전히 우리를 사랑하셔서 한 것은 순전히 아버지에게 대해서  우리를 사랑함으로 우리를 원해서 지성법과 지공법에 만족을 일으켰습니다.

또 우리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가? 우리 위해서 죄를 완전히 정복해서  멸하셨습니다. 우리를 해하는 죄를 멸하셨습니다. 또 우리를 필요한의를  건설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되어 있는 이 원수된 이것를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의 제물로 받혀서 화목을 일으켰습니다. 우리 위해서 우리를  사랑함으로 우리를 위해서 한일 순전히 아버지에게 대해서 했습니다. 우리에게  대해서 직접하신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면 우리는  여기에서 사랑을 알고 깨달아서 우리가 아버지의 사랑을 어떻게 받을긴가 하는  것을 명백히 말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사랑 주님은 영존하신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요 한 분이십니다. 위는 서이지마는 본체는 하나십니다. 한 분이십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은 주님의 신성은 성부요 성령이요. 성자요. 그 무한하기  때무에 인간이 유한으로 표현을 못하나 영감을 받으면 자기가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혹 그것을 묘사하기 위해서 삼위일체를 묘사하기 위해서  태양으로도 묘사하고 물질로도 묘사하고 또 인간으로도 묘사하지마는 그것은  영감 받은자가 들을 때에 도움이되는 참 들창문을 열어서 광명이 비취는 것처럼  처럼 약간 빛이 비추어서 깨닫을 수 있는 것이지 영접받지 안한 자는 완전히  탈선하고 빼뚤어지고야 마는 것이요.

그러기에 유한한 것으로 무한한 것을 비유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부 성자 삼위일체의 주시는 것을 받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함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그걸 받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지한 지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전지한 지혜의 외부는  육십육 권 도리요. 이면은 영감이요. 또 그 중간은 하나님의 섭리요. 성문의지를  받는 것이 그 사랑을 받는 것이요. 주님의 섭리 인도를 받는 것이 그 사랑을  받는 것이요. 영감 그 감화로 내 마음이 변화되고 감동으로 내 행동이 변동되는  이것을 받는 것이 그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이래서 당신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함을 우리에게 주시는 그것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  하나님을 내가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어데다데고  할긴가? 주님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을 우리에게 대해서 행했습니다. 우리에게  대해서 행하신 것은 순전히 우리를 사랑함으로 하신 것 아닙니다. 아버지를  사랑함으로 우리에게 대해서 사랑의 역사를 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를 사랑함으로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으로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그 사랑에 역사를 우리를 사랑하는 이  일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랑의 행동은 우리에게 대해서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아버지를 사랑함으로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이제 그  사랑이 근원이 돼 가지고 우리를 사랑함으로 이제는 우리를 사랑해야 되는데  우리를 사랑함으로 그 사랑의 역사는 아버지에게 대해서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서 사랑을 배워 주님의 모든 사랑을 받는 것이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주님의 사랑을 받아 주님의 사랑하는 행동을 이제는 내가 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아 사랑을 받아가지고 이 사랑의 행동을 하는 것은  어데다가 대고 해야 됩니까? 네. 엇다가 대고해야 됩니까? 네, 사랑하는 행동은  우리는 형제에게 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형제에게 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최고가 형제에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아버지를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는 행동은 우리에게 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신인양성일위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그 사랑하는 최고의 사랑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는 행동은  형제에게 대해서 하는 것이 최고의 사랑입니다. 그 이상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은 그 원형이 되는 이  원형을 우리가 따르면 됩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에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하는 그 원형을 따라서 그대로의 모형하면 바로 됩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랑하신 역사는 아버지를 향해서  아버지를 향해서 지성 지공의 법을 만족시켰습니다. 또 우리의 죄문제 의문제  하나님으로 더불어 원수된 이 화평문제 이 문제를 아버지로 더불어  해결지웠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형제를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형제를 사랑할 것은 내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형제를 사랑함으로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서 형제를 유익되고 형제를  복되도록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내대로의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을 우리가 만족시킬라고 노력하는 것이 형제를 위해서 형제를 사랑함으로  위해서 이법을 만족시킬라고 노력하는 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호주가 가족을 사랑할라거든 가족을 위해서 자기가 주님의 이 지성법과 지공법을  만족시키도록 노력을 하는 것이 이것이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 다음에는 그 가족의 죄를 주님 앞에서 도말시키기 위해서 가족에게 하나님의  의를 입혀서 가족을 의롭게 하기 위해서 가족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케 하기  위해서 이 세 가지를 위해서 노력하는 그것이 가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온갖것이 있겠습니다. 거기에는 교훈도 있겠고, 책망도 있겠고, 경계도  있겠고, 징계도 있겠고,어쨎근 자기가 만족시키는 이것이 돼 가야 되겠고 또  자기가 가족을 위해서 자기와 가족의 죄를 도말하는 의를 건설하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하는 먼저 자기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이루고 이래서 성경에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당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는 성구가 있습니다. 먼저  가족을 위하여 자신이 주님 앞에서 지공법과 지성법과 이 죄와 의와 화평 이  문제에 대해서 자기가 다 기울이야 될 것입니다. 기울려서 그것이 자기의  가족에게 건너가서 가족에게 이것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런고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 뿐인데 그 사랑이 이렇게 연결되어서 오는데  내가 그 형제를 사랑했으면 그 형제에게 하나님의 지공법과 지성법이 전달되어  있어야 하겠고 사죄가 전달되어 있어야 하겠고 칭의가 전달되어 있어야 되겠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이 전달되어 있는 그것이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 이루어지는데는 교훈도 있겠고 책망도 있겠고 기도도 있겠고 봉사도  있겠고 이해도 있겠고 관용도 있겠고 징계도 있겠고 채찍도 있겠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으니 홍수때 여덟식구만 남기고 나머지기를 전멸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에게 큰 효력을 나타내는 사랑인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노아시대의 이제까지 인간을 징계하는 일이 없고 인간을 죄값으로  죽이는 일이 없이 어짜든지 광영만 됐다면 오늘 인간은 벌써 전멸을 당하고  말았지 하나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라고 말했고 징계를 가리켜서 아들을 대우하는 그  사랑으로 대우하는 대우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은 징계가 없습니다. 오늘  교회들은 징계가 없기 때문에 교회는 이거는 완전히 망치는 마귀의 사랑에서  완전히 변질되고야 말았습니다. 제가 미국에 그것이 보도됐는데 그걸 어제 내가  봤는데 신문에서 봤는데 그걸 내가 잘못봤는가 해서 그것을 찾는이라고 다시  지나간 것을 찾아서 들추어 봤습니다. 보니까 정확하게 기록해놨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요번에 그렇게 그 저격당한 것은 그것은 그게 무슨 별스러운  일이 아니라 그 나라에 습성적으로 보편화 되어 있는 그 일이 하나 그분에게  닥친 것뿐이지 별일이 아니다 하는 것이 기록됐습니다.

그러고 미국에 그 위험이라 하는 문제를 들어서 했는데 이십사 초만에 살인하나  칠 초만에 화간이 아니라 음행이 아니라. 강간. 강제의 강간, 칠 초만에 강간이  하나 십 초만에 강도가 하나 이것이 미국입니다.

이러니까 마구 그래 가지고서 있는데 그래도 오늘에는 사이비해서 우스운 것은  바로 거기에 또같이 말하기를 미국은 물질 만능주의를 부르짖고 청교도들의  신앙을 버렸기 때문에 그렇다 하는 그것도 사이비해서 사람들이 소화못합니다.

청교도들의 신앙을 버렸기 때문에 한다고 말하는 그 사람 조차 그걸 모르고 하는  모르고 글을 썼습니다. 그것은 더 더 지금 살인하는 행동입니다. 그러고 거다  기록을 덧붙여서 말하기를 해석을 청교도들의 신앙을 버려 그렇다는 해석을  뭐라고 했는기냐 하면은 이것은 이 불씨가 이불씨가 무엇이 불씨가 됐느냐?  빈곤차별을 지우는 것이 불씨라 하는 것으로 해석을 했기 때문에 미국에 화근은  더 커집니다. 점점커지고 점점 미국은 악화되고야 맙니다.

그러기에 킹 목사를 성자라고 하는데 저는 킹 목사를 성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는 완전히 인간을 죽여버린 원인이 킹 목사에게 있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킹 목사를 성자로 나는 보이지를 안합니다. 왜? 그분이 백인같으면  성자로 보겠는데 그분이 흑인이기 때무에 성자가 안입니다. 그는 성자가  못됩니다. 그는 강도입니다. 강도 절도 한가지라. 왜? 행한대로 하나님이  갚으시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행한대로 갚지아니하고 악인이라  의인이라.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에서 동등취급하는 것이 하늘나라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행한대로 갚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모두 꺼꾸로 해석하요.

하나님께서 의인도 악인에게 햇빛을 같이 준다는 그것은 햇빛을 안주면 죽기  때문에 일단 살려놓고 살려놓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다시 회개치 안하면 영원한  사망으로 죽이십니다. 이것을 한테 겸해서 말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회개하면 용석하고 회개안하면 용서 안하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회개  하나님께서 죄를 용남하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시요. 회개를 시킬라고 죄인을  회개시킬라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이요. 죄인을 회개시킬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회개를 안하면 매를 때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징계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회개를 안하면 영원히 징계를 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회개를 하면 하나님께서 과거에 범죄했던 것을 기억지 안하고 의인에  대우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왜? 징계가 징계제도가 점점 삭감 되어 가기 때문에 교회는  부패해 나갑니다. 그러기에 요새는 어제도 어떤 방송에 보니까 그 아주 죄악을  말해놓고는 반드시 죄를 말해서 이렇게 악이 이렇게 솟아나고 있다. 악이  솟아나고 있는 것은 결론은 뭐이냐 하면은 이 사람을 대우하지 안하고 이와같이  자꾸 노는 자라도 잘 먹이지 안하고노는 자라도 잘 먹이지 안하고 죄를  지은자라도 자꾸 이것을 사죄하지 안하고 면사하지 않고 이러기 때문에 이리  됐다고 하기 때문에 세상은 점점 약화되고 맙니다.

인간은 인간은 하나님께서 사랑할 때에 "선악과를 먹으면 네가 죽으리라" 하는  고대로 변하지 안하고 죽여버립니다. 그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범죄한 값으로 죽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여기에서 그 죄값으로 대신 죽으심으로서 우리를 대속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대속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가지고 영생을 얻었지마는 영생을 얻었지마는 이 사랑을 가지고 내가 어떤  작용을 했느냐 하는 것이 건설구원입니다. 이러기에 이 사랑으로 하늘나라  가기는 갔지마는 아무 동작은 없습니다. 아무 작용은 없습니다. 그 나라에가서는  아무 작용은 활동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영생은 가졌지마는 영광은 하나도  없습니다. 존귀는 하나도 없습니다. 할일도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이 세상에서  어덯게 행동한 것.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대해서 또 진리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피조물에  대해서 자기를 이 세상에서 행동해보라고 해서 이 행동을 한번 해보고  두번해보고 연습을 해서 이것이 연습된 그것이 무궁세계에서 고대로 살도록 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연습 하나도 못지키고 하나님 섬기는 것도 하나도 못하고  순종도 하나도 못하고 인간 사랑은 또 하나도 못하고 만물에게 대해서 하나도  행동 못하는 그자는 부활해서 그거는 (나무 모양으로) 영생만 가졌지 활동의  작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고을을 맡았다. '한 고을 다스린다.'  '두 고을 다스린다.' 그 통치성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봉사하지  안한자가 그 자리에서 그 나라에서 봉사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런고로 하나님께서 하나는 뭐하시는가? 우리를 이 세상에 두시고 또  '요거 너 지키봐라?' 지키다가 넘어졌습니다. 넘어지니까 또 실패했으나 또  지키봐라? 또 지키봐라? 열번 백번 연습 시킵니다. 연습 시키논 세상이요. 또  연습을 시키는 가운데서 연습이 된 것은 이것은 뭐이냐? 살아 났습니다. 연습이  된 것은 살아 났습니다. 연습에서 살리는 그 중간 과정이 뭐이라 했지요. 예.

예. 시험 연습에서 중간과정이 시험입니다. 시험이요. 연습시키 놓고 시험을  쳐서 시험에 합격과 동시에 성화됐습니다. 합격과 동시에 성화됐습니다. 그  성화는 뭐이냐? 무궁세계의 무한한 것을 두고서 그것을 기업으로 줍니다. 그것을  얼마든지 가지고 네가 살 수 있는데 그것을 주는데 이 세상에서 그것을 가지고  누릴 수 있고 다스릴 수 있고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이 세상에서 시험 볼때에 시험에 떨어지면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일생동안 시험만 여러 재시 만시 쳐도 떨어지는 자는 그 나라에 받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첫째. 무슨 세상. 연습하는 세상.

둘째. 시험치는 세상. 셋째. 살리는 세상. 유한한 것을 무한한 것으로 썩을 것을  썩지 안할 것으로 약할 것을 강한 것으로 욕된 것을 영과스러운 것으로 혈육의  것을 신령한 것으로 우리가 이것을 알고 살아야 됩니다. 이런데 이 큰 소망을  가진 받은 우리들이 무엇보고 삽니까? 돈보고 사는자 불쌍하고 지위 권세  보고사는 자 불쌍하고 세상에서 남이 알아주는 명예 지위 보고서 사는 자  불쌍합니다. 교파와 교파끼리 남을 매장을 시키야 제가 올라간다는 순전히  마귀의 방법입니다. 순전히 마귀의 방법이요. 인간에게 자기가 알리질라고  날뛰는 것 인간이 다 알면 뭣합니까? 하나님이 모르면 그만이지.

그런고로 하늘나라에서는 당신만 보고 사는 것만 전부 가져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러기에 우리가 사랑을 바로 깨닫고 해야 되지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으로 완전히 죽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사랑으로 인류시조가 인간을 죽인  것처럼 오늘 구속받은 교회들도 사랑으로 교회는 완전히 죽이고 맙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의 정의를 누가 좀 말했으면 유명한 박사가 말하면 잘 듣지마는  내가 말하면 그거는 또 이단이라고 또 정죄합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고요히 알고만 있어야 되지 이걸 벌로 가 가지고말하면 또  정죄받습니다. 정죄받으면 정죄하는 사람도 죄고 여러분들 정죄케 했기 때문에  죄라 고히 알아서 실행을 해봐야 알고 알지도 못하면 벌로 입을 놀리면 안 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가정을 사랑하려거든 가족을 사랑하려거든 형제를 사랑하려거든 하나님을  사랑하려거든 어떻게 사랑해야 되는 요 방법을 똑똑히 알고 요렇게 사랑해야  되지. 그것이 아닌 것은 다 아담 하와와 사랑입니다. 정욕 사랑이요.

동류사랑이요. 사욕사랑이요. 자기 욕심을 위한 사랑. 모두 가짜. 무서운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망의 해독이 가득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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