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행복

 

1981. 10. 28. 수요일 저녁 

 

본문 : 요한복음 15장 9절 - 11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사랑은 수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또 사랑의 그 실력도 그 종류가 심히 많습니다.

또 사랑의 행복도 그 종류가 많습니다. 모든 사람은 사랑을 제일 좋아합니다.

무엇 때문에? 사랑은 가장 자기에게 거칠 것이 없는, 자기와 그 충돌되는 그것이  없기 때문에 다 사랑을 좋아합니다. 또 사랑은 자기보다 상대방을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은 그 그자본인이 자기보다 나를 더 사랑하고 좋아하고 또  끊임없이 위하고, 있는 것을 자기에게 유익되게 주기 때문에 사랑은 또 귀한  것입니다. 또 사랑은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그에게 다 주고 싶고,  그를 위해서 자기가 노력하고 싶고, 있고 싶고, 이래서 자기와 자기의 소유를  아낌없이 다 주고 싶은 그 대상이기 때문에 사랑을 모든 사람들이 다 귀하게  여깁니다.

또 그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자기와 자기의 소유를 나를 위해서 희생해줄, 나를  자기의 소유와 자기의 모든 것과 자기보다 나를 귀중히 취급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 사랑은 귀중히 여기고 좋아합니다.

그러기에 사랑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이, 사랑의 대상이 있는 그 사람은 심히  행복감을 가집니다. 또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 주는, 나를 사랑해 주는 자가 있을  때에 또 심히 행복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사랑을 내가 줄 수 있는, 내가 사랑을 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그것이  모든 소유와 자기를 초월한 그런 보배로운 행복을 가졌기 때문에 귀하게 여기고  또 사랑을 받는데도 자기와 자기의 모든 것보다 나를 귀중히 여겨주는 그런  상대가 있으니까 사랑을 다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논리적으로 이런 것인데 그 종류가 심히 많고, 또 사랑의 도수가  심히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그 도수는 자기보다 자기의 소유와 자기보다  상대방을 어느 정도 좋아하는지, 자기의 자기의 소유와 자기의 십 분지 일만치  상대를 좋아하는지, 백 분지 일만치 좋아하는지, 자기의 소유와 자기의 전부보다  상대방을 좋아하는지 그것이 사랑의 도수입니다.

또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하는데 상대방이 자기의  소유나 자기의 백 분지 일보다 나를 좋아하는지, 십 분지 일만치 좋아하는지,  전부보다 좋아하는지 그것이 사랑의 도수입니다.

도수는 다르지마는 근본 사랑이라는 것은 좋아하고 위하고 그를 유익되게 하려는,  좋게 복 되게 하려는 그것이 다 사랑이요. 또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 것도 그런  종류의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주 사랑을 최고의 것으로 이렇게  평가합니다.

그러기에 정의도 있고, 공의도 있고, 진실도 있고, 신실도 있고, 또 의도 있고,  능력도 있고, 영광도 있고, 뭐 오만 것 별별 것이 다 있지마는 사랑만치 그렇게  맛이 없고, 따시지를 않고, 또 그만치 강하지도 않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사랑을 제일 높히 평가합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맛을 보면 그 도수 이하의 것은 다 거기에 삼켜져 버려버리고,  그 도수 이상의 것이면 맛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보다 그 사랑이 강해질  때에는 그 사람은 그거 외에 딴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사랑이라는 자체는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그 도수를 이제  말했습니다. 사랑의 강도를 말했습니다. 사랑의 강도를 이제 말을 했습니다. 다  좋아하기는 좋아하지마는 그 도수가 있기 때문에 그 도수 이상은 사랑하지를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자기의 백 분지 일은 희생하고 싶지마는 백의 오십은 희생이  어림도 없습니다. 그럴 때는 그 사랑은 거기에서 끊혀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도수를 말했고, 또 사랑의 그 실력은 수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사랑의 실력은 그의 지혜의 힘, 지식의 힘, 또 능력의 힘, 또 물질의 힘, 또  지혜의 힘, 지위의 힘, 권세의 힘, 또 수명의 힘 그게 다 실력인데, 그 사람이  나이가 많으면 아무리 사랑해도 살 날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수명이 짧으니까  그 사랑은 가치가, 실력을 적게 봅니다. 살 날이 많은 젊은 사람이라면 그거는 좀  시간이 많이 지날 수 있는, 수명이 길기 때문에 또 그 사랑의 실력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자체의 도수가 있고, 암만 도수는 강해도 실력없는, 또 실력과는  다릅니다. 실력이 또 사랑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또 사랑의 실력은 있지마는  도수가 약할 수도 있습니다. 도수가 아무리 강해도 실력없으면 안 되고 또 도수와  실력이 강하나, 도수와 실력이 강하나 자기와의 관계를 맺어주지 안하면 또  소용이 없습니다.

그사람은 사랑의 도수도 강한 자요, 실력도 아주 강한 자이지마는, 그 자체가  사랑의 도수도 강하고 실력도 강하지마는 나와의 관계를 맺어주지 안하면 내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저 부럽기만 했지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면 '사랑은 어떤 게 사랑인가?' 하는 사랑을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가?' 하는  그 사랑의 본성을 말했고, 또 사랑의 그 뜨거운 도수를 말했고, 또 사랑의 실력을  말했습니다.

그사람이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재산에 재력이 없으니까, 재력이 없으니 그  사람이 천만원 돈 드리면 수술해 가지고 잘 나설 수 있지마는 돈이 백만원밖에  없으면 그만 그 실력이 없으니까 나서지 못하게 됩니다.그러면 그 사랑은  거기에서 꺾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이 사랑이 참 사랑인가?' 해서 사랑의 그 본질과 본성을  사람들이 다루는 것이 그것이 일생 인생의 모두 다 부부간, 가족끼리, 친구끼리  모두 다 그걸 가루는 것이고, 또 그러면 '이 사랑의 도수가 어느정도 뜨거운가?'  하는 그것을 사람들이 살펴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사랑이 참 진짜  사랑도 사랑이요, 도수도 뜨겁다마는 실력이 또 없는 사랑 있으니까 그것까지  한테 평가를 해 가지고, '암만 그렇지마는 실력이 없으니 나이가 늙어서, 나이가  많으니까 수명이 짧아서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니 아! 이 사랑을 취할  수가 없다. 또 암만 뜨겁지마는 물질에 재력이 없으니 아! 이 사랑이 실력이  없으니 안 됐다. 또 이 사람은 사랑은 참 사랑이요 뜨거운데, 지혜 지식이 없어  무지 무능하니 또 이거 안 됐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다 좋지마는 사랑에  사랑해서 평가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행복은 어떤 것이 사랑의 행복이냐? 사랑의 행복은 기쁨입니다. 사랑의  행복은 기쁨입니다. 사랑의 행복은 기쁨인데, 그 기쁨은 사랑의 본질과 본성과  도수의 강약과 그의 실력의 강약에 따라서 기쁨이, 기쁨의 양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사람이 행복스러운 사람이냐? 기쁜 사람이냐? 오만 기쁨이 다  있겠지마는 분석해 들어가면 그 속에 여러 종류의 사랑으로, 그 기쁨이라는  행복은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지 그 사랑에서 베어 나와 가지고, 그 사랑에서  근원이 돼가지고 와서 기뻐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쁨이 또 차이 있는 것은 그 사랑의 실력과 뜨거움과 그 질 거기에  따라서 기쁨의 행복이, 그 도수와 양이 차이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자기를 능가한 그런 행복은 어데서부터 오느냐 하면 상대방이 자기보다 모든  면에 실력이 나은, 실력이 나은 그 실력이 나은 그가 자기를 사랑할 때에는  자기를 초월한 행복이 자기에게 생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상대방이 자기보다 실력이 못한 그런 데에서 자기에게 사랑이 올 때에는  자기를 능가할 만한 그런 행복이 오지를 않고, 그 사람이 행복을 가지려면,  바꿔져서 자기가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 될 때에는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대해서 행복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으로 말미암아 내가 사랑의 행복을 가지게 되는 것은 상대방의  그 실력이 나보다 높을 때에 내가 행복을 가지게 되고, 내가 상대방을 사랑함으로  행복을 가지게 될 때에는 내가 상대방보다 강하고 상대방이 나보다 약할 때에  내가 사랑을 주는 이 행복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그 실력과 도수에 따라서 행복이 쾌락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내가 줌으로, 내가 상대방을 사랑함으로 행복과 기쁨이 쾌락이 이루어지는 것도  있고, 내가 또 사랑을 받음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있고, 그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나보다 약한 자에게 이루어지는 것이고, 받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나보다 강한 자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행복과 쾌락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 상대방이 나보다 더 강한 자로서 그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정도와 내 분수  분량의 모든 것은 그분이 다 담당할 수 있고, 그분이 다 책임을 질 수가 있고,  그분의 것이면 내게는 충족하게 되기 때문에 모든 자기의 보자기를 보수하는  것이나, 자기를 유지하는 것이나, 자기를 성장시키는 것이나 모든 일에 든든한 그  행복감을 가지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좀 조그만한 데에서 체험을 좀 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 예를  든다고 하면,  어떤 그 처녀가 자기는 참 모든 경제면이나 지능면이나 모든 자기의 위치면이나  배경면이나 건강면이나 모든 면이 자기는 불안 속에 있는 사람인데 자기보다  실력이 나은 어떤 분이 자기를 사랑함으로 자기를 이 사랑의 성질로 자기를  진실되게 사랑한다고 하면, 사랑하기로 시작하게 됐다고 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졌다고 하면 그 사람은 그때부터 참 대단히 평안과 기쁨과 만족의, 그 사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런 행복을 그 본인이 필연적으로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자기의 모든 문제를 다 인간적으로는 해결해 줄 수 있는, 그런 실력이 있는  그런 상대방이 자기를 사랑하게 되었고 또 자기를 사랑한다 하고, 사랑하기로  그렇게 선포를 했고, 표현을 했고, 사랑하고 이런다고 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그  시간부터 자기를 사랑하는, 그 작정한 그 남편, 이면 남편, 또 다른 도덕면에서  라면 도덕면에서 여러분들이 좀 알기, 이해하기 어려울터이니까 가까운 쉬운  것으로,  남편으로 말하면 결혼해서 그 남편이 자기를 참 진정 사랑한다고 하면 그 여인은  이제까지 가지지 못했던 행복을 가지게 될 것이고 또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모든  근심과 걱정과 외로움과 또 공허함과 모든 염려 그런 거는 다 없어지기 마련인  것입니다. 필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처녀가 결혼을 하고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노라 하고 일생을 같이 살  그런 참 진정 사랑한다고 하기로 하고, 또 진정 사랑하는 그 모든 행동을 하고 그  생활을 한다고 해도, 이 여인에게 기쁨이 없고 평강이 없고 만족이 없고 종전과  같은 그런 공허증과 염려와 또 공포심, 모든 그 불행심 그것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그 남편에게서 난 고장이 아니고 자기에게서 난 고장입니다. 그것은 그  남편의 사랑을 믿지 않는다는 그런 표현으로 그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그럴 때에 자기를 진정 맡아 줄, 그런 실력있는 남편으로 더불어 결혼을  했고 또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가 남편의 사랑을 의심없이 믿는다고 하면  그 여인에게는 종전에 있던 모든 불행은 다 물러갈 것이고, 종전에 자기가 참  그렇게 되었으면 하던 그런 소원은 자기에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심한 행복을  그가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누리게 되지마는 그 누리는 행복이 어떤 전주가, 돈 많은 사람이 '네가 이렇게  가련하니 네게 대한 모든 것을 내가 다 권세로 할 것은, 권세로 하고 돈으로 할  것은, 돈으로 하고 또 수고로 할 것은, 수고로 하고 법으로 할 것은, 모든 것을  해결지워서 네게 있는 모든 난제는 다 해결해 주고 네가 요구하는 대로의 행복을  갖춰 주겠다.' 하는 그런 어떤 재벌가가 나가 가지고 그렇게 해주는 그 행복과  내나 자기를 사랑함으로 그렇게 하지마는 그 행복과 부부로 말미암아 된 그  행복과 행복이 질이 다르고 그 맛이 다른 것입니다.

또 어떤 대 자선가가, 자선가가 자기를 책임을 지고 참 그렇게 모든 면이  부족함이 없이 자기를 담당하고 행복스럽게 해준다 할지라도, 또 그로 말미암은  그 쾌락도 행복도 있지마는 자기와 결혼해 가지고 자기를 사랑하는 그 남편이  자기를 사랑함으로 자기를 차지하고 책임지고 이렇게 함으로서의 행복된, 그  행복같은 그런 따시고 맛있는 행복은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수많은 방편을 가지고 자기의 불행을 해결하려고 노력을 하고,  또 해결하면 또 기쁨을 가집니다. 또 수많은 상대방으로 인해서 자기가 모든 면이  행복이 되어서 행복감을 누린다 할지라도 그 모든 방편 가운데에 사랑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의무나 책임이나 자선이나 또  무슨 명예심이나 자기의 그 자존심으로서나 자기의 위신에서나 자기의  양심에서나 어떤 면으로 해 가지고 내게 행복을 주고 또 어떤 과학으로, 어떤  노력으로, 어떤 그 형편 사정의 운으로 자기에게 모든 불행이 물러가고 행복이  됐다 할지라도 사랑으로 된 것이 제일 행복이고, 다른 것으로 된 것은 사랑으로  된 것만치 그 사람에게 쾌락을 가지지 못하게 될 것이고, 또 사랑으로 된  거기에도 별별 종류가 있는데 윤리심에서, 그 사회심에서, 도덕심에서, 자비심에서  오만 면에서 다 자기의 모든 불행을 면제하고 행복을 갖추어졌다 할지라도  자기를 사랑하는 그 부부로 말미암아 다시 결혼해 가지고 부부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모든 불행이 다 해결되고 행복이 되어진 그 행복만치는 자신이 행복  되지를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다 불행을 면키를 원하고 행복되기를 원해서 오만 방편 써  가지고 일생을 노력하지마는 사랑으로 이 문제가 해결된 것만치 맛이 없기  때문에 사랑을 귀하게 봅니다.

귀하게 보는데도 또 여러 그 기관에서 여러 종류의 것이 있지마는 그 부부의  사랑 이 부부의 사랑, 형제 사랑도 있고 부모 사랑도 있지마는 부부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해결돼지는 그것만치 맛이 있지를 안하고, 행복되지를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을 제일 높히 평가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좋아하니까 그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요. 왜? 사랑은 상대방이 내게 대한 모든 것을 자기보다,  자신보다 나를 좋아하고 나를 행복되게 하기를 원하고 또 자기의 모든 소유보다  나를 더 좋아해서 나 위해서는 소유도 자신도 뭐 나 위해서는 아끼지 안하고 다  할 수 있는 그 사랑이, 이제 사랑의 도수로는 최고로 뜨신, 뜨거운 사랑인데  상대방이 날 이렇게 사랑하는 이 사람이 있을 때에 그 사람은 이상이 없는  행복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잘 안 들으면 몰라) 이상이 없는 행복을 가지게  됩니다.

또 사랑은 받는 것 뿐 아니라 자기가 받음으로 존귀해 좋을 뿐 아니라, 자기가  어떤 대상을 사랑함으로 자기 소유와 몸을, 자기를 다 그 사랑하는 자 위해서는  희생해 줄 수 있는 자기와 소유 전부를 그를 위해서 주지 않고는, 희생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런 사랑의 대상을 가졌으면 그 사랑도 도수로는 최고의  도수를 가졌는데 이것이 행복인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이  이상 행복이 없는 것입니다. 이 이상 행복이 없어. 이 행복이 차차차 뻗어 나가서  한 사람에게 하다가 두 사람에게 하다가,  그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자기 소유와 생명을 다 바쳐서 그  상대방을 행복되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것을 차차 점령해 나가는 것이  이것이 기독교인데 이 행복을 가진 것은 이 굉장한 행복인 것입니다. 받는 것도  그러하고,  그런데 그렇게 행복의 도수는 뜨겁지마는 행복의 실력이 모자랄 때에는  비참해집니다. 실력이 모자랄 때에는 참 원통해도 그 좋고 기쁘고 뜨거움이  마지막에는 참 비극으로 화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 모두 다 인간의 눈물, 인간의 눈물이 다 사랑이 죽은 그 시체요, 인간의  눈물은 사랑의 모든 썩은 그 그 사랑의 송장물이 인간의 눈물이 된 것, 인간의  송장물이 인간의 눈물이 되고 다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 자가 있는데 그 자의 실력이 강해서 어느  시대, 어느 시기, 어느 장소, 어느 공간, 어느 종류 할 것 없이 모든 존재와 모든  사건을 능가할 수 있는 그 실력자가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 그 영원히 변하지  안하고, 영존 영원무궁자가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 그 사람이 가진 행복은 굉장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들 그렇지 않겠소? 뭐 내가 말하는데 따라  오는지 이해가 안 되는지 거 대해서 깊히 느껴보들 안해. 그런데 집에 가서  가만히 느껴보면 인제 그저 이 일반적 사람 생활에 고기 약간 섞여서 약간  섞어서 조금씩 고것이 속에 작용하고 있는데, 작용하고 있지마는 그 뭐인지  분석도 못하고 분리도 못하고 해서 그저 좋아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결혼을 했는데 그 결혼한 상대가 그 나라에서 제일  부자입니다. 제일 능력있습니다. 그 나라에서는 제일 능력있습니다. 그러면 그  나라에서는 그 그런 실력자가 나를 최고의 열도를 가지고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그 나라에서는 그 이상의 행복된 사람이 없을 것이요. 그러나 만일 그 수명이  짧아서 없어진다면 그때는 그이에게는 그만치, 크게 행복되고 쾌락돼 있던 것만치  자기에게는 불행스러움이 되어질 것인 것입니다.

오늘밤에 봉독한 말씀 가운데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다. 이 기쁨이 내게는 충만하다" 주님이, 아버지가 주님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아버지 자신보다, 모든 소유보다 주님을 사랑해. 주님  위해서는 모든 것 다 아낌없이 다 전부를 주님 위해서는 다 투자할 수 있는 이런  그 사랑을 가지고 자기를, 당신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모든 실력이  자기 위한 실력이요, 어버지의 모든 소유가 자기 위한 모든 소유요, 아버지의  모든 역사는 자기 위한 역사요, 역사요, 아버지 자체 전부는 자신을 위한 것이  되기 때문에 이 기쁨을 예수님은 가졌습니다. 이 기쁨을 가졌습니다. 이 기쁨이  우리가 논리로서는 약간 생각되지마는 이 기쁨을 가졌으면 그 예수님의 행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이것은 자기가 받아봐야 되지 받아보기 전에는 모르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랑을 가지고 좀 해보면 안다 말이오.

그 거지 처녀가 부자한테만 시집을 가가지고 부자가 자기를 이런 높은 도수에서  사랑한다면 그 결혼된, 아마 그 신부는 참 대단히 행복감을 느낄 것이고 기쁘고  즐거워, 쾌락에서 기쁘고 즐거워서 그 말로 표시 못할 그 속에서 기쁨의 뭉텅이가  반드시 될 것입니다.

이런 것으로 보아 아버지가 주님을 사랑하신 그 사랑 안에 예수님이 계신 그  예수님의 쾌락과 기쁨과 행복과 그 만족 그것은 얼마나 컸을까 하는 것을 그것을  우리가 이렇게 계산상으로 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참 사랑의 대상이 되어 있지마는 그 본인에게 인정이 안 되면 그게  참 불행입니다.

이 부자가 아주 잘나고 그 나라에서 제일 권세있는, 제일 권세있고 제일 부자고  제일 잘나고 모든 면이 구비한 이분이 아주 참 모든 사람이 다 천하게 봤던 그  처녀인데, 아주 길가에 내던져 버렸고 아주 천한 그 처녀인데 이 처녀를 어쩐지  그 왕이 결혼을 떡 하고 난 다음에 그 처녀가 못날수록, 이 못났을수록 이  불쌍하고 가련하고 사랑해서 그만 그 왕이 자기의 모든 권세와 소유와 자기  전부를 다 그 못난 신부 위해서 다 기울이기를 원하고 기울이게 돼가지고 있고,  또 기우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런 그 신부의 사랑의 대상인 그 남편이  돼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이 신부 이 사람이 항상 걱정이요, 근심이요, 수심이요,  항상 공허요, 외로움이요, 이렇게 불행을 가졌습니다.

옆에 사람이 말하기를 '네가 왜 그리, 네가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너보다 행복된  사람이 없고 너보다 복있는 사람이 없고 너같이 지금 기쁠 사람이 없는데 와 너  그 네가 왜 그렇게 항상 수심을 가지고 있느냐?' 이렇게 말을 하면서 '그 모든 게  네가 가져' '왜 그게 내 것이라요?' '아 이분이 너, 모든 널 위해서는 뭐 자기  몸이라도 아낌없이 희생할 수 있는 이런 그 왕이 너를 사랑하는데 너보다  행복스러운 사람이 어데 있겠느냐?' '왜 그분이 날 희생해줘요? 날 그렇게 해  줘요? 그렇게 해 줄리가 있습니까?' 이거는 전혀 안 믿습니다. 전혀 이 안  믿으니까, 전혀 안 믿으니 거기에 그 왕궁에 와 가지고 있는 것이 마치 감옥소에  와 가지고 잡혀 앉았는 것 같고, 행복이 하나도 되지 안하니까 바짝 말라서 밥도  먹지도 못하고 그만 근심이 되어서 바짝 말라서 큰 불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고 입장은 사실 고렇게 돼가지고 고렇게 되지마는 그 본인이 믿지를 안하고,  이해가 되지 안하고, 그게 믿어지지 안하고, 인정되지 안하는 데에서 정말로  인정되면은 그 사람이 그만 살이 찌고 밥맛이 있고 뭐 좋아서 못 견뎌서 지금  오히려 지금 자세를 부리고 굉장할 것인데 이게 믿질 안하니까 행복감을  가지지를 못하고 있다 그말이오. 그 옆에 사람들이 암만 말해도 안 믿어.

모든 사람 보기를 '저거 참 우리 나라에서는 여자 치고는 저 여자가 제일  행복스러운 여자인데, 저 여자에게 암만 말해도 믿어지지 안하고 믿지 안해서 저  불행스럽게 있다. 그거 참 가련하다고' 그 이 사람이 타일러도 안 되고, 저 사람이  해도 안 되고, 암만 해도 그 사람이 그 여인을 행복되게 해 줄 사람이 없어.

그 여인을 행복되게 하는 것은 그 여인이 믿어야 되겠는데, 인정이 되고 믿어야  되겠는데 이렇게 '아 이 왕이 당신의 소유와 권세와 당신 전부라도 나 위해서는  아낌없이 다 희생해 주고자 하는 이렇게 나를 좋아하고 이렇게 나를 사랑하는 이  왕이 사랑하니' 그걸 알았으면 그만 행복이 굉장할 것인데 이 믿어지지 안하니 참  불행이라 그말이오. 믿어지지 안하니 불행이라.

이래서 이거 믿어지는 약을 쓰려고 약도 쓰고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이러는데  아무리 해도 믿어지지 안해. 믿어지지 안하는데 그 여인에게 이 사실을  믿어지도록 해주는 이 사실을, 믿어지도록 해주는 그런 도리나 사람이나 법칙이  있다고 하면, 믿어지게 해주면 자, 그 여자가 그 황후가 아마 자기에게 있는 것  그 소유를 다 줘도 그 값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얼마나 그게 행복인데 믿어지지  안함으로서 불행스러운 그 여인이 돼가지고 있는데 그걸 믿어지게 한다면 그  얼마나 그 여인이 행복되겠습니까? 믿어지게 해 준다면 그 여인에게 그 이상  행복된 길이 없습니다. 그 여인에게는 고만 그것만 믿어지게 해 준다면은 그이상  그 여인에게는 행복된 길이 없고 좋은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믿어지지 안하니까 그렇게 자꾸 옆에 말하니까 '네가 이런 입장에 있고  이런 네가 행복된 너인데, 행복된 너인데 너 왜 수심을 가지고 있느냐? 이 왕이  지금 자신보다 널 사랑하는데 너 왜 이래 가지고 있느냐?' 이러니까 하도  그랬싸니까 '예, 왕이 날 사랑하는 줄 압니다. 날 위하는 줄 압니다. 나 위해서는  아낌없이 하는 줄 압니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데 그 여인에게 기쁨이  솟아나지를 안하고 평강이 솟아나지를 안하고 밥맛이 없고 얼굴은 그래도 삐쩍  말라가고 자꾸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이에게 그 자신이 어떤 그 영광이요, 존귀요, 행복된 자라는 그것이  외부에 나타나지 안하면, 나타나지 안한다면 그것은 믿지 않는 증거라 이기오.

그만 무슨 돈 있으니까 그만 돈 때문에 걱정을 하고 또 누가 자기에게 대해서 뭐  좀 거석한다 하면 그만 겁이, 겁이 나서 걱정을 하고 이거는 도무지 자기 위치에  권세로나 재벌로나 영광으로나 명예로나 모든 면이 그 자기의 현실을 믿지 않는,  말로는 믿는다 해도 믿으면 행복이 자기를 통해서 나타날 것인데 나타나지 않는  그건 믿지 않는 증거라 그말이오.

우리가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심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 것같이' 그말은 아버지가  주님을 사랑하는 그 성질로, 사랑의 도수로, 사랑의 본질과 본성, 본질과 본성만  같다 말이 그말입니다.

오늘밤에 여러분들이 무얼 배웠어? 말해야 지금 모르는 것 같애. 뭐인지 생전 뭐,  이런 뭐 야수성있는 짐승같이 이렇게 살고 있어그렇지 사랑의 무슨 맛을  느껴봤습니까? 사랑의 본질과 본성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의  본질과 본성 가지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의,  이 이상이 없는 그 사랑의 열도를 가지고, 그 사랑의 도수를 가지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또 하나는 뭐입니까?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신 또 하나는 뭐이요? 실력.

'이제는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다 내게 주셨다. 아버지가 내 아버지로  계실 때 가진 그 영광과 존귀와 권세와 같은 그것을 다 내게 줬다. 이러니까  사랑의 본질로 본성도 보수도 실력도 꼭 같은 사랑을 내가 너희들에게 지금 줬다.

아버지께서 날 사랑하심같이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들이 내 사랑  안에 거하라.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음으로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어. 아버지가  주님을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랑으로 인해서 주님이 가진 쾌락, 기쁨, 행복,  만족, 평강 이것을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음으로 내가 가진 이거와 같이 너희들도  내 사랑 안에 있으면 아버지의 사랑을 인해서 내가, 행복된 이 행복을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이 사랑으로 인해서 너희들이 행복된 이 행복이 너에게  충만하게 되리라'  그러면 지금 주님이, 아버지의 관련이나 우리의 관련 아버지가 주님에게 대해서  하는 것이나 주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하는 것 조금도 다름없이 하고 있는데,  우리의 이 행복이 왜 우리에게 오지를 못하고, 이 행복이 어떻게 우리에게  충만하지를 못하고, 우리가 행복된 사람으로 살지를 못하는지  이제 많은 말을 했는데, 시집만 가도 그런데 이렇게 그 뜨거운 사랑의 이거는  형언할 수 없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안에 성질, 정신, 마음, 지식, 세포까지  이 사랑에 폭 잠겨서 사랑으로 완전히 물들어서, 사랑으로 완전히 물들어서,  사랑으로 완전히 변색이 된 이 행복된 충만이 주님에게 있음같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이것이 정상인데, 그러면 이 정상이 그 상대방, 상대방이신 주님이 나를  사랑하메 거기에서 무슨 고장이 생겨가지고 그런지, 내게서 고장이 생겨 그런지  그 왕의 아내 그 황후가 이런 그 행복된 입장에서 지금 이러니까, 행복을 가지지  못하고 근심 걱정 하니까 왕은 죽을 지경입니다. 자기의 있는 나라고 뭐이고 다  팔아서 그 황후가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는 자기를 믿은, 자기의 사랑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만족되고 행복되고 자기의 입장과 처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만족에  행복되게, 그 아내가 행복된 그 사람이 되어진다고 하면은 나라를 팔아서라도 그  아내가 그런 사람 되어지기를 원해서 약을 쓰면 약을 쓸 것이고, 무슨 치료하면  치료할 것이라 말이오.

이런데 이 신부 이게 믿어지지 안해서 도무지 행복을 가지지 못해. 그러니 그  신부가 불행스러운 신부가 아닙니까? 이렇게 행복스러운 신부인데,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불행스러운 신부라. 이 신부가 누구입니까? 이 신부가 누구요? 자 이  신부가 누굽니까? 아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봐요? 아는 사람 손을 들어봐요?  모르는 사람 손 들지 말고, 이 신부가 누군지 아는 사람 손 들어봐요? 예? 자기인  줄 아는 사람 손 들어봐요? 자긴 줄 아는 사람 손 들어봐요? 우리입니다. 우리.

네, 우리인데 이렇게 행복스러울 수 있는 우리인데 왜 우리에게 행복이 없습니까?  왜 쾌락이 없습니까? 왜 만족이 없습니까? 왜 이렇게 자세를 부리고 잘못하면  다른 사람이 부덕스럽게 할만치, 참 다른 사람이 미쳤다 할만치 이렇게  행복스러울 수 있는 사람인데, 왜 우리에게 이렇게 이런 만족과 쾌락과 기쁨과 그  평강과 배짱과 담대와 이 고 자세 이것이 없습니까? 왜 이렇게 지금 하고  있습니까? 그 꼭 왕의 아내 황후와 같은 자입니다.

우리에게 이 주의 주님이,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의 본질과 본성을  우리가 모르고 또 그의 도술을 모르고, 그의 실력을 모르고, 실제로 우리가  믿어지지 않고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행복이 안 오는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행복은 안 오는 것입니다. 믿어지면 굉장한 행복이 와서  다른 걸 탐할 것이 없을 것인데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행복이 안 오는데,  믿어지게 하는 약이 뭐입니까? 믿어지게 하는 약이 뭐이요? 믿어지게 하는 약이  뭐입니까? 이것만 믿어지면 우리보다 더 행복스러운 사람 없습니다. 우리보다 더  기쁜 사람 없소. 우리보다 행복스러운 사람 없고 기쁜 사람 없습니다. 우리보다  담대한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보다 평안할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당신이 내가 당신의 사랑에, 당신이 나를 사랑하시는 이것이기  때문에 당신은 크고, 나는 작기 때문에 그분의 사랑이 내게 와. 오는데 그 사랑의  도수가 나를 사랑하기를 당신의 지위와 권세와 부요, 온갖 생명, 영광 그 모든  것보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모든 걸 희생하신 분이 주님 아닙니까? 이 성경이  말하지 않습니까? 이런 사랑의 도수를 가지지 안했소? 또 그분이 실력의 어떤  분입니까? 삼위일체 중에 한 일위 되신 그 주님이신데, 또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받아 가지고 다 가지신 그 실력자 아니십니까?  이런데 우리가 논리적으로 말하면, 이렇게 뭐 말할 수 없는 행복과 쾌락을 가질  수 있는 우리들인데 왜 이 기쁨이 우리에게 없는지, 왜 이 쾌락이 없는지, 이  만족이 없는지, 우리가 요 위치와 요 입장과 관련 이것을 두고서 왜 딴 데  헤매이는지 이 분명히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안 믿기 때문에 그래요.

모르기 때문에, 안 믿기 때문에.

이러니까 이 병을 우리가 고쳐야 돼. 이 병을 고치면 우리는 요 연결된, 요  연결을 두고서 딴 데 가라해도 갈 수도 없는 것이고 가지지도 안하는 것이고, 또  우리를 근심되게 할 자도 없고, 우리 기쁨을 빼앗아 갈 자도 없고, 우리를  불행스럽게 할 자도 없고, 우리에게 병이, 전부 자기 심신에 병이 들어서 병이 든  것입니다. 병이 들어서 여기에 이런 귀신이 들어와 있고, 저런 시기, 질투, 원망,  불평, 의심, 염려, 공포, 공허, 근심 오만 것 다 들어 있습니까?  이 마귀것이 꽉 들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영도, 육도 다 지금 아, 이  심신이 다 불행스러워지고 영은 자유로, 영은 자기 소유를 취득하지 못하는 이런  참 거지노릇을 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제일 중요한 것이 그분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분을 믿지 않기 때문에 우리 모든 불행은  왔습니다.

'그 왕의 아내되는, 그 아주 피투성이로 집어 던져 내버린 것을 주워다가 길러서  이게 차차 자라 가지고 유방이 커지고 이제 결혼할 때가 되니까 왕이 결혼했다'  하는 그것이 우리 성도 아닙니까? 호세아서에 있지 않소? 우리를 가리킨 것  아닙니까? '피투성이로 너는 싸매라' 했습니다. 이랬는데 그 왕의 아내 황후와  황후가 그렇게 그 나라에서는 더 강대국을 상대하면 아니지마는 그 나라에서는,  그 우리 주님은 어데 더 강대국이 없고 강한 자가 없어. 그 이상이 없어.

자존자요 창조주 아닙니까? 이런데 그 황후가 행복스러운 그 황후가 그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에 자기는 불행중에 빠져 가지고 있는 거라. 이것 모양으로 우리가  꼭 여인과 꼭같은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독자가 이 땅 위에서 가장 행복스러운 자인데, 행복스러운  자인데 행복을 누리는 것은, 자기가 부자돼 가지고 행복 누리는 그것은 다 참  껍데기, 아무것도 아닌 것이요. 하나님이 날 사랑해 주시는 여기에다 뭘  대겠습니까? 예? 한국을 차지하면, 세계를 차지하면 그까짓 게 그게 얼마된다  말입니까? 되길?  기독자는 행복스럽기는 말씀하시기를 "하늘에 있는 것, 땅에 있는 것과 땅 아래  있는 모든 것이 다 너희 것이라" 아, 그거야. 주님이 나와의, 부부와 같이 모든 것  책임지고, 이렇게 우리 주가 돼가지고 이렇게 있는 그 관계만 자기가 확신 한다고  하면은 그이상 행복이 안 오는 거요. 인정이 안 되기 때문에 행복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분이 지키시는데 왜, 주님이 지키시면 김일성이 그까짓 게 뭐이라고 그게  독침을 가지고 되는데 왜 우리가 그앞에서도 기쁘고 즐겁고, 그까짓 게 뭐이 무슨  힘 있는데, 시간 공간계를 다 당신이 주장하고 계시는데, 이 믿지를 안하는  데에서 우리에게 공포도 비겁도 염려도 불행도 근심도 다 오는 것입니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믿지 않기 때문에,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말하기를 "그는  신랑이요 우리는 신부" 라고 말했습니다. 또 이미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 다,  모든 것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셨소. 성경에 구구절절이 다 이걸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데 우리가 불행스러운 것은 믿지 않기 때문에,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사고가 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믿어지지 않는 요 병만 고치면 되는데  믿어지지 않는 병, 요 믿어지지 않는 병은 자기가 앉아서 아무리 '믿사옵나이다.

믿사옵나이다' 해도 안 돼. '믿사옵나이다. 믿사옵나이다' 암만 해도 안 되고,  '믿어지게 해 주옵소서. 믿어지게 해 주옵소서. 확신합니다. 확신합니다' 암만 해도  왔다가는 가버려요. 기도를 하면은 확신이 옵니다. 확신이 왔다가는 그만 지나가  버려요. 이거 확신이 왔다가 지나가지 못하고 이 확신이 내게, 내 몸에 베고, 내  모든 지능에 베고, 다 홀빡 베 가지고 다시 뽑을래야, 탈색할래야 탈색할 수  없을만치 이렇게 확신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하는 데에는 하나라 말이오.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는 것같이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는 이거 가지고 내가 믿어졌어. '믿어져서 사랑 안에 있는 것처럼 너희들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있으리라' 이거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이 사실을 깨닫고, '주님이 날 사랑하시니 내가 사랑하시는 주님을  배반한 일을 할 수가 있나? 주님이 날 사랑하시니, 내가 주님을 사랑 한다니 이  못난 게 어떻게 사랑이냐?'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받는 것도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주님을,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도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해서 이 계명을 지킬 때에 주의 사랑이 하나 지키면  그만치 믿어지게 되고, 둘 지키면 그만치 믿어지게 돼서 그의, 이렇게 믿어지면은  그 사람은 한없는 행복스러운 사람이 되어지는 것인데 우리가 믿어지지 않는  요것을 지금 치료할라 하는 요기에 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만 해서 믿어진다면 우리는 다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밤에 하나님께서 사랑의 본질과 본성을 간단하나마 밝히 말씀해  주셨고, 또 사랑의 도수를 밝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랑의 도수는 주님을,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그 사랑이 최고의 도수입니다.

최고의 도수요, 또 사랑이 실력을 말했습니다.

이런데 이 완전한 본질과 본성의 사랑, 완전한 그 도수의 사랑, 완전한 실력의  사랑 이 사랑이 우리를 사랑하고 있는, 이 사랑의 대상이 돼있는 우리들이 이  사랑을 하시는 이분을 믿지 안하는, 믿지 않는, 의심하는 요것 때문에 우리에게  고장이 생겼으니 요것 때문에, 고장이 생기니까 요 고장이 자기 목숨이 끊어지는  것보다, 요 고장이 사업이 절단나는 것보다, 뭣 되는 것보다 요 고장이 나에게는  제일 큰 고장이다. 요것만 고장 해결 되어서 믿어지면 다 된다. 요걸 잡으면  요것의 위인입니다.

요걸 잡으면, 요걸 잡고 요것을 이루기 위해서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지키는 그 시간부터 분명히 세상이 그 사람의 기쁨과 행복을 빼앗아 갈  수 없는 이것을 자기가 잡게 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고요히 세겨서, 우리는 공연히 믿는다 할 게 아니라 나에게 어떤 행복스러운 그  행복이 내게 티 나오는지, 그 행복이 내게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것이 믿는  증표입니다.

저 뒤에도 불꺼 주시고 신관도 불꺼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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