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미움으로 나타나

 

1979. 7. 8. 주후

 

본문: 요한 1서 4:14-21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람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선지자선교회

하나님께서 모든 목적을 정하실 때에 하나님이 사랑하심으로 목적을 정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목적을 정하신 그때부터 이 세상과 무궁세계의 영원무궁한 무궁을 예정하실 때에 그 예정도 하나님이 사랑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정된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그대 로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 사랑하심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목적과 예정과 창조도 하나님의 사랑이 그 일을 이루셨고 목적과 예정과 창조가 존재케 된 그 전부도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목적을 위해서 예정하신 예정과 창조를 그것을 가지시고 하나님께서 운영하시는 모든 섭리도 하나님이 사랑하심으로 섭리하신 것입니다. 또 그 섭리가 전부가 사랑이십니다. 그 섭리의 중심이 되는 하나님이 인간되어 세상에 오신 것도 하나님이 사랑함으로 오신것이고 또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예수님 그 자체가 사랑이십니다.

 

또 그가 오셔가지고 사생활과 공생활로 택한 백성들을 대속하시고 또 십자가에서 대형하시고 대행하시고 대생하신 이것도 사랑하심으로 하셨고 또 그 역사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우리에게 나타나서 이 사랑이 인류에게 나타났고 또 이 사랑이 전달되고 전달돼서 우리에게 까지 온 이 복음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이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는 구원이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목적이나 예정이나 창조나 섭리나 섭리 중에 성령과 진리와 하나님의 성도들을 통해서 이 복음 운동으로 역사에 가득차게 하고 땅끝까지 세계에 가득차게 하는 이 전부가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요 또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그런고로 다시 다른말로 하면 이 운동은 하나님이 피조물을 좋아하실려고 피조물을 창조하셨고 또 창조된 모든 피조물들을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또 위하고 또 복되게 하고 유익되게 하고 더 좋고 더 영광스럽고 더 행복스럽고 더 기쁘고 점점 잘되게 하시는 운동입니다.

 

그러기에 에덴 동산에서 인간의 타락 그것도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사랑의 역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것도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한 한 역사입니다. 또 그것이 피조물을 유익되게 하기 위해서 좋도록 하기 위해서 한 역사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시요 또 하나님의 경영과 움직임의 모든 것이 다 사랑이시요 지음 받아서 존재한 그 모든 전부가 다 사랑이십니다. 다른말로 하면 모든 존재는 사랑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요 또 사랑을 행하는 존재들이요 사랑을 원하고 사랑을 경영하고 사랑을 건설하는 존재들이요 사랑을 기르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사랑으로 완성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의 조성하시는 하나의 구비조건 중에 하나가 있으니 그것은 미움인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미움을 지으신 것이요 사랑으로 충만케 하고 사랑을 알게하고 사랑을 견고케 하고 사랑으로 더 충만케 하기 위해서 미움이라는 그 역사를 하나님이 일으키신 것입니다.

 

? 검은 것이 있으면 흰것을 잘 알수 있는 것처럼 미움으로 인해서 사랑이 더 알려지고 환하게 보여지고 또 그 평가가 바로 되어지고 또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받아 들일 수 있기 때문에 이 미움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마치 건설을 위해서는 파괴가 있고 또 사랑은 온전한 것이니 온전한 것을 이룰려고 할 때는 온전치못한 것들이 있어야 대조적으로 온전한 것들을 사람들이 잘 인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죽음이 없는데에 생명이 있는 것은 죽음이 없는데에 생명이 있는 것은 그것은 실력있는 생명이 아니요 투쟁의 승리로 이루어진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그 생명은 능동성이 없고 또 투쟁성이 없고 승리성이 없는 생명성이 없는 주체성 주권성이 없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자녀에게 옳은 것을 알릴려면 비뚤어진 것도 그가 알아서 비뚤어진 것을 알고 옳은 것을 알고 옳은 것을 알고 비뚤어진 거 알고 둘을 알 때에 옳은 것을 능동적으로 가질 수가 있는 것이고 또 모든 위험을 위험을 피하여 그를 완전케 하는 데에는 위험이 없이 완전하게 되는 그것은 능동의 것이 없고 그것은 주권이나 주체성의 것이 없기 대문에 위험한 것을 두고 위험한 것을 능가한 그 안전을 가지게 하여야 그것이 능동적이요 또 그 주체성있는 것이요 자존성 주권성 있는 안전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방편이 방편을 취하지 안하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사랑의 반대인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안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부인하는 것을 첫 단계로 줘서 하나님의 사랑을 부인하는 일을 첫째 아담이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부인할 때는 그것이 아주 유일로 행복된 길 인줄 알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보다도 더 저희들에게 온전한 사랑인 줄 알고 그것을 받아 들였다가 인류가 영원히 사망하게 됨으로 비로서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그 사랑이 인간에게 해독이 되고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것으로서 인간을 멸망의 끝을 마쳤다면 하나님의 그 사랑의 역사라 할 수 없지마는 하나님께서 이 악령이 가져온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비교해 가지고 악령이 주는 사랑으로 인간이 멸망받는 그 멸망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부인했던 하나님의 사랑을 둘째 아담으로 영접해가지고 구원 얻게 되어졌으므로 사람이 두 가지 사랑을 구별하게 됐고 또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 이것이 복이요 거역하는것이 멸망이라는 것을 그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요단을 건넜을 때에 요단 강물을 마르게 하고 거기서 돌 열 두개를 강물마른 그 한가운데서 짊어지고 와서 여리고성 어구에 싸놓고 그들이 그 돌을 보면서 그들이 새로워져서 하나님의 이런 권능이 계시니 우리가 여리고성이 강할지라도 이 권능이 우리와 함께 한다면 무슨 염려가 있겠느냐 해서 그들이 힘을 얻은 것처럼 영원한 지옥을 하나님께서 하늘나라와 대조적으로 둬서 하나님의 사랑과 배암이 준 사랑이 있어 이 두 사랑의 결과가 어떻다는 그것을 무궁토록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보아서 그를 인해서 다시 뒤돌아보지 안하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영원히 전진만 하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하신 모든 것은 사랑의 역사인데 그 사랑을 더 나타내도록 하기 위해서 나타나기 위해서 사랑을 어린 우리들이 받아서 이해 하도록 하기 위해서 사랑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사랑의 정반대의 미움을 먼저 인간계에게 보내가지고서 에덴동산 그 타락을 있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 아담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고 배암의 사랑을 영접해서 미움의 조상이 됐고 둘째 아담은 배암의 사랑은 거부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해서 사랑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궁극적으로는 전체가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요 사랑으로 가득찬 것이 영원무궁의 존재요 또 역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밝히기 위해서 이 사랑에 반대되는 그 사이비한 그 사랑이 있으니 그 사랑은 그 본질과 본성이 어떠한 것이며 그 결과가 어떠한 것인 것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자들로 하여금 그것을 보아 견고히 서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욕망을 가지고 요동치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의 이 달성을 위해서 잠깐 이질적이면서 그 합리요 또 정대항 하면서 협조가 되어지는 이런 방편을 쓰셔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미움이 세상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체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인데 하나님의 사랑의 이 역사를 더 나타내서 이 역사가 더 목적달성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이용물로 미움이라는 것을 세상에 하나님께서 조성해 두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움은 사랑을 위해서 존재하도록 한 것이요 미움은 결과적으로 사랑을 위해서 존재하고 이용되도록 하나님이 하신 것이요. 사랑은 미움을 인해서 노력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은 미움을 인해서 노력하고 미움을 위해서 노력을 하나 결과적으로는 사랑 자체를 위한 것이 되어지도록 이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신 것이 이 우주에 충만한 두 역사입니다.

 

그러기에 미움은 사랑을 대적하나 결과적으로는 사랑을 위하는 그 모든 운동이 되고 사랑은 미움을 위해서 미움을 위하여 역사하나 사랑은 미움을 대적하지 안하고 사랑은 미움을 위해서 역사를 하나 결과적으로는 미움을 위해서 노력한 그것이 사랑 자체를 위해서 노력한 그 결과가 되어지도록 하는 것이 이 우주의 두 운동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미움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말은 사랑이 미움을 구출할라고 있는 노력 다합니다.

 

그러나 미움을 구출할라고 미움을 구원해 볼려고 이 미움의 파괴를 이것을 구출해서 파괴되지 않게 할려고 노력을 함으로 그 효력은 사랑으로 더 견고하게 하고 사랑으로 성장케 하고 사랑으로 완성케 해서 미움을 위하여 노력한 노력이 사랑 자체를 위해서 노력한 그 노력의 결과가 되어지도록 되어있는 것이고 미움은 사랑을 대적하여 사랑을 대적해서 사랑을 멸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랑을 해해서 사랑을 대적해서 노력을 하나 그 미움의 노력은 결과적으로 자기를 멸하는 자멸이 되어지도록 이렇게 결과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우주안에 있는 역사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의 역사는 모두가 다 타를 위한 역사인데 타를 위한 역사인데 결과적으로는 자체를 위한 역사가 되고 미움은 자체를 위하고 타를 해하는 역사를 하는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자기를 위한 것이 자기를 해한것이 되고 결과적으로는 자기만을 해하고 자기만을 망친 것으로 되어지는 그 결과를 맺도록 되어지는 것이 이 우주의 역사인 것입니다.

 

사랑의 역사와 미움의 역사가 그 방편이 정반대되는 이것이 우주에 가득찬 것입니다. 이 두 운동과 이 두 역사가 이 우주에는 가득찼습니다.이 두가지 뿐입니다.우주에도 우주라는 이 물질계에도 이러하고 또 신령한 영계에도 이러합니다.영계에는 영계는 이제 미움의 역사는 완전히 결실이 되어서 다시는 변동이 없는 고정의 것으로 영원히 존재하고 또 사랑의 역사는 사랑의 역사로만 영원히 존재합니다. 미움과 사랑이 이것이 둘이 서로 섞여가지고 역사하는 것은 세상 뿐입니다. 세상이 지나가면 그 다음에는 없습니다. 무궁세계에서는 미움은 미움만이 사랑은 사랑만이 이렇게 둘로 갈라져 가지고서 영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미움은 자기를 위하는 역사인데 결과적으로 자기를 해하는 역사가 되고 미움은 상대방을 해하는 역사인데 결과적으로 자멸을 당하는 자멸을 자멸케 한 그 결과가 되어지는 것이 미움의 역사입니다. 사랑의 역사는 자기를 위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그타를 위해서 역사하는데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는 역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 그는 자기보다 크기 때문에 그에게 받는 것뿐이지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저 어쨌든 들어놔 두십시오. 모르든지 알든지 들어놔 두십시요 사랑은 미워하는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를 복되게 하기 위해서 그를 유익되게 하기 위해서 그를 영광되고 생명과 평강을 얻기 위해서 역사하는데 사랑은 자기만 못한 자를 위해서 자기의 전부를 주어서 주기를 주어서 그를 잘되게 하는 그 역사인데 그 역사는 결과적으로 자기를 위한 역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원수사랑은 원수를 위해서 역사하는 그것으로 결과적으로 자기를 위하는 그 결과가 맺어지게 되고 미움은 자기를 위하고 타를 해하는 역사로 역사하는 그 역사의 결과가 자멸케하는 그 결과가 되어지도록 되어지는 것이 미움의 본질과 본성의 생애요 또 사랑의 본질과 본성의 생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미움과 사랑이 둘이 있어 미움을 인하여서 사랑은 성장되고 또 미움은 사랑을 인하여서 미움이 성장되어 미움의 완성과 사랑의 완성을 이루는 곳이 세상이요 이것이 끝나면 다시는 미움과 사랑이 섞여있는 것이 없고 미움으로 완성된 것을 사랑이 영원히 볼 것이요 사랑으로 완성된 것을 미움이 영원히 보는 이것이 무궁세계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러분들이 그런 거는 지금 말할 시간이 없으니까 왜 그렇게 사랑은 고렇게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기 위한 것이 되고 미움은 그렇게 알뜰히 자기만 위하고 타를 해하고 하는 것이 자기만 해한 것이 되는가 하는 그것은 벌써 그 동안에 많이 해석했기 때문에 그것을 여러분들이 가서 연구하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미움과 사랑 이 두 가지로만 움직이고 있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이 두 가지 운동외에는 없습니다. 천 종류 만 종류가 있다 할지라도 미움이냐 사랑이냐 이 두 가지 종류안에 들었지 그 밖에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가 이 두가지 종류 안에 있습니다. 미움은 먼저 자기를 위하고 결과적으로 자기를 해쳤고 먼저 타를 해하고 결과적으로는 자기를 해하는 것이 되고 사랑은 먼저 타를 위했는데 자신을 위한 것이 되고 먼저 자신을 타를 위해서 다 주었는데 결과적으로 타를 다 얻어 자기 것을 만들게 되는 것이 이것이 그 생의 방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행복과 기쁨은 사랑을 주고 받는데만 있고 인간의 모든 불행과 고통은 미움을 주고 받는 거기서만 나옵니다. 모든 사망은 미움에서 솟아 나오고 모든 생명과 평강은 사랑에서 솟아 납니다.

 

그러기에 세상에는 이 사랑과 미움 두 가지가 섞여서 움직이고 있으나 사랑을 미움을 위한 사랑이 아니고 사랑을 위한 미움이요 사랑을 위한 미움이요 사랑을 위한 사랑입니다. 사랑이 주체요 사랑이 근원이요 사랑이 전부인데 이 사랑을 사랑되기 위해서 사랑되게 하기 위해서 이 사랑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사랑을 이 환하게 보이기 위해서 사랑을 밝게 알리기 위해서 사랑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 사랑의 이용물로 하나님이 미움을 조성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미움을 조성하신 이것도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자존하셨고 홀로 영원자존하셨고 자존하신 이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시요 하나님의 모든 역사가 다 사랑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그 전체가 다 사랑이십니다. 그 전체는 소극적으로 적극적으로 *직접으로 간접으로 이용적으로 결과적으로 전체는 사랑의 운동 하나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모든 존재의 생애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으로 가득찬 모든 존재 가운데에 미움이라는 그 미움 그거는 역리이면서 사랑에 합리된 것이고 역항이면서 사랑의 동역의 운동이고 사랑과 이질적이면서 순전히 사랑을 위해서 역사하고 있는 사랑에 이용되는 그 미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미움은 불행과 고통 세세무궁토록 그 고난의 연기가 올라가는 세세무궁토록 고난의 연기가 올라가는 영원무궁한 고통으로 영원무궁토록 존재하는 그 존속되는 그것이 그것이 미움의 완성입니다. 미움의 완성이 영원토록 미움의 완성의 존재로 유황불 구렁텅이가 있는 것은 그것은 사랑을 위해서 있습니다. 그거는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서 있습니다. 사랑을 찬양하기 위해서 있습니다. 사랑의 길을 밝히 보이기 위해서 있는 것이요 사랑의 가치성과 사랑의 고귀성을 나타내고 증거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는고 하니 이렇게 영원자존하신 하나님이 사랑이시요 하나님의 목적 이 사랑이시요 예정이 사랑이시요 창조가 사랑이시요 하나님의 섭리가 사랑이시라 전체가 사랑 뿐이라 다만 여기에 사랑을 역리적으로 합리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대항하나 결과적으로 사랑을 사랑에게 이용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사랑을 대적하나 사랑의 사랑을 돕는 역사가 되기 위해서 한 말로 말하면 사랑을 위해서 있는 미움이요 사랑의 그 결과를 미움의 결과의 영원 멸망으로 사랑의 결과를 찬양하여 사랑의 결과는 저러한데 미움의 결과는 이러하다 사랑의 길의 종착은 저러했는데 미움의 길의 종착은 이러하다.

 

사랑의 생의 방편은 미움을 구출할려고 미움 위해서 전부를 다 희생 투자했는데 결과적으로 자기를 위한것이 되어졌고 사랑은 미움은 사랑에게 이용만 당해졌고 사랑은 전부가 자체만 위했고 모든 미움은 자체만 위했고 사랑을 대적하는 이 대적만 했는데 사랑을 멸하던 그것이 결국은 자멸이 되어졌고 자체만을 위하려는 그것이 결국은 자멸 자기를 해하는 것만 되어진 이것을 증거하는 것이 유황불 구렁텅입니다.

 

유황불구렁 유황불 유황불 구렁텅이에 그 미움의 완성품이 거의 완성되기 까지의 모든 과정을 가지고 나타나는 이 모든 과정과 사랑의 완성품인 것과 완성되기까지의 모든 과정과 두 가지를 대조할 때에 정반대라 정반대라 정반대인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보니 사랑의 그 생애 방편은 어떠한 것과 미움의 생애 방편은 어떠한가 하는 것을 영원무궁토록 보여줘서 사랑의 방편의 어떠하다는 것이 혹 이길 외에 다른 길이 더 좋은 길이 있지 않는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이 선악을 아는 과실을 먹으면 네가 죽는다 이렇게 하나님에게만 순종하는 이것으로서 영생하는 생명을 가지고 네가 잘 살아라 했는데 고것 뿐이기 때문에 악령이 와가지고서 그거보다 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 이 길을 말하니까 그때 미혹 받아 가지고서 실패한 그것이 첫째 아담인데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의 길 이 길외에 길은 아무길도 없고 사랑의 길 이 길외에는 미움의 길 한 길뿐인데 미움의 길을 이미 하나님께서 보여서 사랑의 길과 미움의 길이 둘이 나란히 가면서 서로 교체되고 서로 싸우고 서로 투쟁하고 서로 이질적으로 이렇게 살아나왔는데

 

나중에 결과적으로 무궁세계의 그 결과를 보니 사랑의 그 소속한자들이 이 길외에 한 길이 있는데 그 길이 이미 지내왔고 경험해서 완성한 그 길이 있기 때문에 사랑의 길에 소속한 자들이 다시는 후퇴나 미혹이나 다른 길을 찾는 길이 없게 된 것입니다. 미움의 길에 이 길에는 그는 영원히 후회하고 영원히 원통히 여김으로 사랑의 길에 감사를 일으키고 미움의 길에 영원 고통이 옴으로 사랑의 길의 그 누리는 행복이 더욱 행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사랑이시요 하나님의 모든 목적도 사랑이시요 하나님의 운동도 사랑이시요 하나님의 방편도 사랑이시라 무궁세계에 맺어져 있는 것도 다 사랑이시라 다만 이 세상에서 사랑을 사랑되게 하기 위해서 사랑을 사랑으로 알려주기 위해서 사랑을 사랑을 달게 받기 위해서 사랑을 보배로 받아 간직하기 위해서 사랑을 성장시키고 사랑을 더 활발스럽게 하고 사랑을 더 이해하고 사랑을 견고케 하기 위해서 모순 같으면서 합치되는 이치로 대항하는 것 같으나 이것이 위하는 것으로 이질적인 같으나 그 한 사랑에서 나온 것으로서 이렇게 오묘하게 기묘하게 하나님께서 이 사랑이 미움으로 나타나 역사하셔 가지고서 역사하는 이 미움과 사랑 두 가지가 섞여 있는 것이 이 세상인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랑과 미움을 그 근본적으로 알리는 것이요 또 그 사랑과 미움의 결과를 알리는 것이요 이 사랑의 범위가 얼마나 넓으며 얼마나 깊으며 얼마나 크며 얼마나 세력을 가졌으며 이것이 그 부분적인가 전체적인가 하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시작도 사랑이요 끝도 사랑이요 전부가 사랑인데 다만 사랑외에 사랑외에 사랑을 아주 최고의 신비한 방편으로 궁극적인 방편으로 하나님께서 미움을 지어 순전히 샤랑을 사랑되게 사랑을 사랑으로 알려지게 사랑이 다시 요동치 않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가지고서 있는 이피조물들이 이 사랑에 대해서 다시는 타락이 없고 다시는 요동이 없고 의심이 없고 다시는 다른 것을 찾는 그런 길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사랑의 이용물에 미움이 있는 것이 세상이니

 

이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예정 창조 섭리의 사랑까지 다 우리가 받아서 하나님의 사랑의 것이 되었고 사랑의 자체가 되어졌고 이 사랑을 성장시키며 이 사랑을 누리며 이 사랑을 모든 다른 것들에게 주어서 이 사랑으로 충만케 하는 것이 우리의 여생인데 우리의 목적인데 여기에서 이 사랑보다 딴거 하나 있는데 이 사랑 외에 딴거 하나 있는데 이 사랑외에 딴거 하나 있는데 그것이 이 사랑을 위해서 이용물로 지음받은 존재인 줄을 알지 못하고 이 사랑외에 딴 것이 있는데 이것이 뭐인 줄도 모르고 이것을 사랑보다 좋은 줄 알아 이 미움에 속할려고 미움을 가질려고 미움으로 살려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또 그는 무식한 소행입니다. 그것은 자기 생활이 아니고 잠깐 시험에 들어서 유혹받아 어두워진 것입니다.

 

? 미움은 모든 것에게 적이 되고 모든 것에게 적이 되고 결국은 자기가 자기에게 적이 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의 환영을 받고 결과는 자기만 위한 것이 됩니다. 미움은 전적 자기만 전적 위한 것이 되어 위하는 것만 하는데 전적 자기만이 해하는 것이 되는 것이 미움의 법칙입니다.

 

미움이 살고 있는 법칙이요 사랑의 법칙은 타를 위해서 자기를 전부 희생해서 투자하는 타만 알고 타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의 전부를 다 부요나 영광이나 존귀나 몸이나 생명이나 다 바쳤는데 그것이 결과적으로 자기만을 위한 그것이 되어진 이것이 사랑의 법칙입니다. 이것이 돌아옵니다. 다른 것을 위함으로 자기를 결과적으로 위한 것이 돼.

 

이러니 때문에 사랑은 사랑은 영원히 사랑은 영원히 자체는 타를 위하기만 하는데 그 돌아오기는 또 모든 타가 자기만 위하도록 위하는 결과가 돌아오도록 이렇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가지고 이렇게 오는 것입니다. 전체를 주었는데 뒤에는 다 받는 것이 되어졌고 미움은 전체를 빼앗았는데 다 뺏기서 다 주는 것이 되어져 버렸고 하는 이것이 미움의 법칙이요 미움이 살고 있는 방편입니다. 미움의 생애법칙은 하나님이 이렇게 정하셨어. 사랑의 생의 법칙은 이렇게 정하셨습니다.

 

이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이 미움에 속하여 영원히 사망되었던 것을 하나님의 사랑이 와가지고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이 사랑으로 인해서 우리가 사랑으로 살아 났습니다. 사랑의 씨가 우리에게 박혀가지고 사랑의 씨가 움이 터서 사랑의 움이 텄습니다. 사랑이 살아났습니다.

 

이런고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이랬는데 이 사랑의 법칙을 이해를 못하고 사랑의 법칙을 이해를 못하고 미움의 법칙에 가득 젖어서 미움의 법칙에 가득이 젖어 소경이 되었고 근시자가 되었고 미움의 법칙만 우리 안밖에 가득히 물들어 젖어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움의 법칙만 알지 사랑의 법칙은 이해를 못하는 가운데서 사랑으로 살게 했지마는 사랑으로 사는 것은 미움의 법칙 미움의 법칙으로 보니까 사랑으로 사는 것은 자멸하는 행위라

 

사랑의 법칙은 자멸하는 행위가 되어지기 때문에 사랑으로 살게 했지마는서도 미움의 법칙만이 자기를 위하는 법칙이 없어 미움의 법칙만이 자기를 위하는 법칙이요 자기를 유익되게 영광되게 하는 법칙이기 때문에 사랑의 법칙으로 살아야 될 자들이 사랑의 법칙은 미움의 법칙으로 보니까 자멸하는 그 생애 법칙이기 때문에 사랑으로 살아야 될 이 자신들이 사랑으로 살지 못하고 미움의 법칙을 써가지고서 미움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원히 자멸되는 것입니다. 그런기에 모든 존재 전부가 다 사랑뿐이요 사랑 전부가 사랑 뿐이요 미움은 이것은 사랑에게 이용을 당하고 마지막으로는 유황불 구렁텅이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택함을 입은 중생된 사람이라도 그가 사랑의 법칙으로 살지 안하고 미움의 법칙으로 산 것은 일생동안 저만 위했고 모든 것을 다 점령해서 타로 하여금 자기를 위하는 것으로 이용할라고 일생동안을 살았는데 그는 자기의 생애는 결국은 자멸하는 것외에 아무것도 없어 그것으로서 중생된 자체는 부활해서 하늘나라 가지마는 그의 생애는 하나도 산 것이 없고 둘째 사망의 해로 완전히 멸망을 받아서 심판에서 완전히 제거돼서 멸망 받은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서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자는 다 그 공력이 불타서 구원은 얻으나 불가운데 구원 얻는 거와 같고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자들은 그 공력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영광의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움이 사는 미움의 생애 법칙과 사랑의 생애 법칙을 하나님이 정해주셨는데 그 법칙이 정반대입니다. 사랑의 법칙은 줌으로 얻는 것이요. 먼저 주고 뒤에 얻고 먼저 위하고 뒤에 위함 받고 먼저 섬기고 뒤에 섬김 받고 먼저 낮아지고 높아지고 먼저 희생되고 뒤에 희생을 받고 먼저 상대방을 좋아하고 다음에 좋아함을 받고 먼저 상대방을 애끼고 다음에 애낌을 받고 먼저 상대방을 가꾸고 위하여 자기를 다 투자하고 다음에 그가 자기를 가꾸어 전부를 투자하는 투자를 받는 이것이 사랑의 생애 법칙입니다. 미움의 생애 법칙은 이것의 정반대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미워하는 것이 자기를 미워하는 결과가 되고 남을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결과가 되고 자기를 위하는 것이 결국 자기를 해하는 것이 되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 자기를 결과는 위하는 것이 되어지고 준 것이 받은 것이 되어지고 빼앗은 것이 뺏긴 것이 되어 지고 자기를 애낀 것이 자기를 헌것이 되고 남을 애낀 것이 자기를 애낀 것이 되어지는 요것이 사랑의 법칙입니다.

 

이 빛은 이 빛은 세상에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어두움뿐입니다. 세상에는 어두움 뿐인데 이 어두움에 하늘에서 빛이 내려왔습니다. 하늘에서 이 법칙이 내려 왔습니다. 하늘에서 이 진리가 내려 왔습니다. 땅에는 이것이 없었습니다.

 

직접 자기를 위하는 그 초단이 일단이었고 일단 직접 자기는 자기를 위하는 일단이 있고 그 다음에 남을 위함으로서의 돌아오는 더 많은 그 결실이 돼 가지고서 돌아오는 그 직접 자기를 위하는 일단 죽음이 있고 남을 위함으로서의 자기를 위하는 것으로 크게 돌아오는 이단의 죽음의 법칙이었고 더 범위 넓게 해서 타를 위해서 움직임으로서 많은 것이 돌아와서 자기를 위하는 고급 죽음 법칙 2단계 3단계의 죽음 법칙 이 죽음의 법칙으로만 가득찬 것이 세상입니다.

 

이종교의 모든 종교가 그러하고 모든 이방의 모든 도덕이 다 그러하고 모든 철학이 그러하고 모든 사상이 다 그러하고 주의가 다 그러하고 모든 방편들이 다 그러하여 다만 그 미움이 어리고 장성하고 미움의 그 법칙이 넓고 좁은 것뿐이지 전체는 미움으로만 가득찬 것이 세상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빛이 와서 사랑의 이 빛이 와 가지고서 사랑의 생애 법칙이 우리 인간에게 들어왔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먼저 남을 위하고 다음에 그가 나를 위하기를 기다려 이 먼저 내가 그를 위함으로 다음에 그가 나를 위하는 것으로 그 다시 그것이 담이 돌아오도록 그 값이 돌아오게 하는 이것이 고급 미움입니다. 고급 미움이요 이거는 세상에는 그거 뿐이요 하늘에서 내려온 이 사랑은 그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없소.

 

예수님이 이렇게 사랑을 베푸심으로서 모든 것이 예수님을 존대하고 구주로 모시는 이것이 이 결과가 돌아 오기를 기다리고 했으며는 최고의 미움이요 이제는 모든 존재들이 주라 시인하는 이 시인을 위한 큰 성공을 했고 큰 장사를 한 것으로서 모든 것이 주라 시인하는 이것이 돌아 오는 것을 받으면 그 사랑은 미움으로 이제 다시 죽어졌습니다. 그것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사랑은 끝이없는 사랑이요 이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미움과 사랑 이 두 가지가 있는데 우리는 악령에게 꾀여서 그 미움이 가진 사랑에 미혹 받지도 말고 또 미움 그것이 자기를 유리하게 하는 것이라고 미혹받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다시 말하면 자신은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하나님 아닌 것만 좋아하기로 영원히 하나님이 하나님 아닌 것만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닌 그것만 위합니다. 이 사랑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우리가 하나님으로 인해서 우리가 좋게 됐습니다.

 

이제는 이 사랑으로 우리가 좋게 되어 하나님의 사랑화 되어 하나님의 사랑이 되어졌으니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위에서 이 사랑을 받는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것으로만 나는 좋아지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것으로만 좋아진 나는 영원히 나 아닌 피조물들만 영원히 좋아하고 그에게서 나에게 무엇이 돌아오기를 원하는 그것은 미움이요 사랑입니다.

 

영원히 좋아하고 그를 위해서 내가 있고 그에게 내 모든 것을 주어서 그를 좋아하고 그를 기뻐하고 그가 잘 되기를 원하는 요 사랑의 존재가 사랑의 본질과 본성의 존재가 사랑의 뭉텅이가 사랑의 법칙이 자기의 법칙으로 요렇게 된 요것이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에 중보자 된 중보자 된 교회인 것입니다.요것만이 영생입니다.요것만이 영생이요. 요것만 영생입니다. 미움에는 생명은 있어도 영생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미움에는 기본구원은 있어도 건설구원은 없습니다. 건설구원은 사랑에만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쨌든지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기가 될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이 일을 연습해서 이웃을 사랑하는 연습을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연습을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연습을 하다니 그가 나에게 하나님의 목적인 그 하나님같은 온전자가 되게 하고져 하는 그것을 받아서 하나님이 나를 온전자 되게 하고져 하는 그 온전을 내가 받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요

 

이걸 받을라고 노력하고 하나님이 나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하신 이 사랑을 받아 이 예정을 다 입고 이용하고 이 창조를 다 입고 이용하고 이 사랑이 와서 나를 삐뚤어진 것을 없게하고 이 사랑을 받아 비뚤어짐이 없는 자 될려고 노력하고 옳고 바른 것만 있게 하신 이 사랑 받아 옳고 바르게 될라고만 노력하고 최종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동정이 하나님과 같이 하나 하나님이 동하면 동하고 나는 정하면 정하는 동정이 하나님과 같이 되는 요 자가 될라고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라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형제를 사랑하는 자가 될려고 노력을 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자가 될려고 노력을 하요. 형제를 미워하는거 이것을 제거할려고 노력하고 형제를 미워하는 거 형제를 허는 거 다 이것이 미움인데 허는 거 형제를 깎는 것 형제를 삣는 것 형제의 불행을 원하는 거 행복을 기뻐하지 않는 것 형제를 넘어지게 하는 것 형제를 해치는 것 이웃을 미워하는 이 미움을 자기에게서 없앨라고 노력을 하고

 

이제는 그것이 자기에게 없어지도록 이웃을 미워하는 그 미움이 자기에게 없어지도록 노력해서 미움이 없도록 이웃의 행복에 마음이 기쁘지 안한 고런 더러움 고것을 없애도록 이웃이 좋아지기를 이웃이 행복되기를 심지어 내 원수도 내 원수도 그 죄악에서 벗어나기를 그 불행에서 벗어나기를 그 가 의인되기를 그가 복있는 사람되기를 그가 잘되기를 그가 행복되기를 이렇게 원하는 이웃을 사랑하는 자기가 되는 이것을 힘쓰고 애써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웃을 미워하는 이것을 자기에게서 완전히 벗어서 이웃을 미워하는 것이 자기에게 없는 사람 이웃이 안되기를 원하고 이웃이 넘어지기를 원하고 이웃이 잘되고 좋은 것을 싫어하고 요런 미움이 우리에게서 없기를 요것을 없애기를 힘쓰고 우리가 이것을 노력해야 됩니다. 이웃을 미워하는 것은 자기에게서 제거하도록 노력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기가 될라고 애를 쓰고 하면 됩니다. 이것은 연습함으로 됩니다.

 

이웃을 애낄라고 이웃을 귀중히 여길라고 이웃의 이웃이 행복되고 이웃이 잘되기를 이렇게 이웃을 사랑하는 이 자기가 될라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 될라고 이 사랑으로 장성할라고 애를 우리가 써야 합니다. 이것은 위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안하면 이웃을 사랑하는 영양이 없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받으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 내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사랑의 능력이 내게 있으면 내가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웃을 사랑할려고 애를 쓰는데 제일 처음에는 아주 저급의 사랑을 가져야 됩니다. 저급의 사랑 아주 제일 껍데기 사랑을 가져야 됩니다. 껍데기 사랑은 뭐인가 이웃이 경제적으로 경제적으로 곤고를 당할 때에 그 곤고를 사랑으로 도와주는 그 곤고를 도와주는 왜 사랑은 오전에 말했지요 상대방의 불행을 기뻐하지 안해 행복을 기뻐해 상대방이 잘 되기를 잘 되기를 상대방이 기뻐하는 것을 상대방이 유익되는 것을 상대방이 평안한 것을 마치 어린아이를 낳아 놓은 그 산모가 낳은 어린 것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것도 사랑입니다.

 

결혼의 첫사랑도 사랑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혈육의 사랑도 정욕의 사랑도 동류의 사랑도 사랑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이 유익되게 유익되기를 원하는 그것이 사랑인데 요것이 사랑인데 요것이 사랑인데 고 사랑에 미움이 사랑으로 나타난 것이 있으니 고것과 혼합되면 안됩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요. 사랑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여수적이 아닙니다. 사랑은 영리적이 아니요. 사랑은 장사가 아니요. 사랑은 보수적이 아닙니다. 여수적이 아니요. 사랑은 주는 거로 끝났오 상대방을 위하는 것으로 끝났오 좋아하는 것으로 끝났오. 기뻐하는 것으로 끝낫오 그의 행복되기를 원하는 것으로 끝났오 이것 뿐이요. 거기서 무엇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고것은 영리의 사랑인데 장사 사랑인데 말하자면 고것은 고급 미움입니다. 고것은 고급 미움이요. 그거는 지능적인 미움입니다. 고거는 어두움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가 사랑할 때에 어린 사랑으로 아무래도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사랑의 자기로 만들어야 되겟는데 사랑의 자기를 만들어야 되겠는데 사랑의 사람을 만들어야 되겠고 사랑의 성품을 만들어야 되겠고 사랑의 욕심을 만들어야 되겠고 사랑의 이 소망을 만들어야 되겠고 사랑의 이 강한 힘의 자기가 되어져야 되겠는데 자기는 이웃을 이웃을 사랑함으로 자기를 주어지는 자기를 주는 여기까지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형제를 사랑함으로 자기 목숨을 주지 아니할 수 없는 이것이 성도로서 최고의 사랑인데 여기까지의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 가능성을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자신이 되어져야 되겠는데 미움의 자신이 변화 되지 안하고 껍데기로는 사랑 사랑하지마는 속의 깊은 속에는 미움의 본질의 자기 미움의 본성의 자기 미움의 욕심의 자기 미움의 궤휼의 자기 미움의 수단 방편의 자기 끝없이 상대방을 사랑함이 아니고 미움의 자기가 되어 사람을 상대하니 미움의 자기의 주체가 되어 있고 일을 경영하니 미움의 자기의 주체가 되어 있고 서로 언거언래를 하니 자기도 모르게 미움이 자기의 주체가 자기가 되어가지고서 역사하는 이 미움이 자기되어 있는 이것을 탄식할 줄 알고 이것을 울줄 알고 이것이 비참한 자기인줄 알고 가련한 자기인줄을 알고 이것을 자기가 죽기전에 변화시켜서 미움의 자기가 이제는 사랑의 자기로 변질되도록 변화되도록 변성이 되도록 자기의 힘은 미움의 힘이 사랑의 힘으로 온전히 바꾸어지도록 이렇게 노력하는 것이 성도들의 바른 노력입니다.

 

미움은 어떤 것이 미움이냐? 미움은 자기를 위해서 있게 하려는 것이 미움이요 사랑은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는 것이 사랑이요 자기를 자기 아닌 다른 것을 위해서 자기를 다 이용하고 바쳐 그의 유익을 위해서 투자하려는 다른 사람을 사랑함으로 자기를 거게서 이용시키려는 자기를 사랑함으로 다 자기를 거게 쓰여지려는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런고로 자기를 사랑의 성품의 사람으로 사랑의 성질의 사람으로 사랑의 마음의 사람으로 사랑의 욕심의 사람으로 이리 돼서 자기의 지혜로 사랑의 지혜가 됐고 자기에게 있는 힘도 사랑의 힘이 됐고 자기에게 있는 소유도 사랑의 소유가 됐고 자기에게 있는 몸과 생명도 사랑의 *몸과 생명이* 되는 이것이 우리의 성공입니다. 왜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이것은 그 자기의 생명이 사랑의 생명이 된 것이요 그 생명은 타를 위해서 쓰일 생명이요 타를 위해서 죽을 생명 타를 위해서 가지고 있는 생명이요 우리가 이 사람이 되도록 우리가 노력을 해야 됩니다. 이것을 힘을 써야 됩니다.

 

여러분들 영계 뿐이 아니라 우주는 앞으로 미움이라는 것은 사랑을 위해서 영원히 그는 호소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귀하다. 사랑은 존귀하다 사랑만이 생명이다. 사랑만이 승리이다 .사랑만이 행복이다.사랑만이 찬양한다. 그들은 미움으로 멸망 가운데 있으면서 사랑을 찬양합니다.이렇게 사랑만이 가득찬 모든 존재요 우주요 영계인데 자신이 사랑화 되지 아니하고 미움화된 사랑화 되지 안하고 미움으로 되어 있는 이것이 어떻게 모든 존재의 사랑을 대항해서 격멸하고 토벌하고 제가 설 것입니까 저는 결국은 이 사랑을 위해서 이용만 당하고 유황불 구렁텅이로 자기의 생애는 가는 것뿐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의 인질로 사랑의 인품으로 사랑의 인성으로 사랑의 전지식으로 사랑의 전욕심으로 욕심이 전부 사랑 사랑의 욕심으로 사랑의 힘으로 사랑의 소유로 사랑의 몸으로 사랑의 생명으로 자기의 소원은 타에게 있고 자기의 소원은 타에게 있고 자기의 노력은 주는데 있고 자기의 기쁨은 타의 행복에 있고 이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일입니다. 이게 가능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으로 그 사랑이 내게 와가지고 싸여 있는 거와 같이 역사하는 것만침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고로 초보적으로 그의 경제의 고통 몸의 고통 생명의 고통 질병의 고통 이것을 마음에 고통스럽게 여겨 그를 구원할려고 그를 평안하게 할려고 그를 행복되게 할려고 그를 좋게 할려고 연습해서 자기의 재물을 드리고 몸을 드리고 힘을 들여서 이럴 때에 자기는 사랑의 사람으로 차차 화해집니다.

 

그것보다 장성한 사랑은 그것이 자기에게 고기덩어리의 그 모든 불행은 불행 그것보다도 고깃덩어리의 불행 그 불행 그것보다도 그에게 더 큰 불행이 있으니 그 불행의 원인되는 병의 근원되는 그이에게 잘못됨이 있는 잘못됨이 있는 그것을 보고 있을 수가 없는 그것을 구출하지 안하고는 있을 수가 없는 고것이 사랑입니다.

 

어떤자는 그에게 병이 들었으니 고 병든 것을 보고 있을 수가 없어 고게 육을 사랑하는기라 육체를 사랑 요게 사랑이라 그래서 자기가 거기에 동정하고 희생하여 육체의 그 질고를 구출하는 고것이 사랑이요 고것만이라면 고것만이라면 껍데기 사랑입니다. 거기서 그 사람이 질고의 고통 그것보다도 그 질고의 보통의 원인이 되는 그이에게 잘못됨이 있는데 그 잘못됨을 고치지 안하고는 껍데기 질고의 고통은 암반 고쳐봤자 고쳐봤자 구덩이 무너지면 수랭이가 떠 올라오는 것처럼 떠오를거다 그말이요.

 

이러니까 질고의 고통보다 그 원인인 잘못의 그것을 보고 견딜 수 없어서 잘못을 이것을 정리하면 그것은 절로 해결될 터이니까 잘못을 정리해야 되겠다 잘못 상대방이 그 상대방에게 잘못이라는 이 불행이 있는 걸보고 고통스럽게 여겨서 그것을 치료하려는 요것이 장성한 사랑이요 그 사람에게 잘못됨이 없는 잘못됨이 있는 고것보다도 그에게 옳은 것이 없어 옳은 것이 없으니까 조만간에 망해 그에게 옳은 것이 없으니 잘못됨이 없을 지라도 옳은 것이 없으면 소용없소

 

잘못됨이 없는 것도 문제지마는서도 그에게 옳은 것이 이제 건설되는 것이 문제기 때문에 옳은 것을 건설하는 고기에 옳은 것을 상대방을 사랑함으로 상대방에게 육체의 질고 그것도 문제지마는서도 그것보다도 그에게 잘못됨이 그에게 있으니 이것을 그에게 치료해 줘야 되겠고 잘못됨의 치료보다도 그에게 옳은 것이 있어야 되겠는데 옳은 것이 없으니까 옳은 것을 그에게 마련해 줘야 되겠고,

 

옳은 것을 마련해 봤자 그것이 뿌리 없는 화초가 좀 있으면 마르는 것처럼 옳은 것을 마련해 봤자 뿌리 없어서 말라지니 옳은 것을 마련하는 것 보다도 이제 완전자이신 하나님으로 더불어 거리낌을 다 정리하고 하나님과 이렇게 화평을 이루어 하나님에게 뿌리를 박도록 하나님에게 연결이 되도록 하나님에게 연결을 시켜주고야 안심을 하는 요것이 가장 장성한 큰 사랑인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인해서 당신이 우리에게 육체의 이 모든 곤고 이것을 보고 우셨습니다. 울으셨오. 나사로의 된 모든 그 형편을 보고서 이제 인간들이 보고 우는걸 보고서 울었오 인간들이 육체의 이 모든 비참을 이것을 보고서 우는 것을 인하여 예수님도 거기 동정해서 울으셨오 울으셨지마는서도 그 문제 보다도 생명문제가 죄 문제기 때문에 만입의 인간이 비참해 우느냐 죄의 값이라 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 그 값이 죄 값이기 대문에 그 원인인 죄를 이것을 정리해야 되기 때문에 예수님은 죄정리에 우리에게 있는 죄 정리에 당신은 착수하셨고 그것보다도 우리에게 이제 멸망은 없다 할지라도 생명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의를 건설하는데 착수하셨고 이것이 영생이 되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하는 이 연결에 착수하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요 사랑을 노력하고 노력해서 상대방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장성해서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상대방을 사랑함으로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투자 안하고는 견딜 수 없는 여개까지의 사랑으로 우리는 성장해 가야 합니다. 변화돼가야 합니다. 상대방을 사랑함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드려서 상대방을 행복되게 하려는 안하고는 견딜 수 없는 요 사람이 되기 까지 우리는 성장돼 나아가는데 상대방의 껍데기 육의 고통 그것을 그것만 보고서 구출하는 이 어두움에 있지 안하고 보다 그에게 있는 이 모든 멸망의 원인되는 죄를 그에게 모든 행복의 원인되는 의를 이 행복이 영원히 계속할 수 있는 하나님을 그에게 연결시켜 주기 위해서 자신을 투자하지 안하고는 견딜 수 없는 이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최고의 사랑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자신이 변화되어 사랑이 이렇게 하지는 하니하고 미움이 가장하여 미움이 장성한 미움으로 고급 미움으로 지성의 미움으로 이렇게 가장하여 사랑으로 나타나는 이게 사랑인줄 알고 이 사랑을 영접하여 자기가 이 사랑의 사람이 되는 이 유혹에 빠지는 모처럼 사랑의 사람이 된 것이 배나 지옥의 자식의 행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먼저 고만 사랑이 없으면 건설구원은 없습니다. 이러니까 다 놓고 사랑이 없으면 건설구원이 없으니까 이제 사람을 미워하는 이것을 우리에게서 완전히 제거해야 됩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을 우리에게서 완전히 제거해야 돼요 이것이 있으면 영생은 헛일입니다. 자기 건설구원은 안된다 그 말이요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자에게는 그 속에 영생이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형제를 미워하는 미움이 자기에게 있으면 구원은 헛일입니다.건설구원은 헛일 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구원 얻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데 건설구원 이루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데 우리는 어떻게 노력할지라도 노력해서라도 형제를 미워하는 이것만은 우리에게 뽑아 버려야 됩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이것은 우리에게 용납해서는 안됩니다.이것을 없애야 됩니다.형제를 미워하는 이것이 있으면 우리는 내가 어떤 일을 해도 목사 노릇을 하든지 뭐 장사를 하든지 장로나 무엇을 하든지 형제를 미워하는 미움이 자기에게 있으면 자기 구원은 헛일입니다. 영생이 그 속에 없다 그 말은 그의 생애는 산 생애는 안된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형제를 미워하는 미움은 조건이야 많겠지요 뭐 모든 미움중에도 부모의 원수 부수모수 부모의 원수가 된 미움이라도 우리는 미움을 버려야 됩니다. 물질의 미움이든지 감정의 미움이든지 무엇이든지 우리는 형제를 미워하는 미움은 우리에게서 대금물입니다. 이거는 우리 속에 용납해서 안됩니다. 이거는 없애야 됩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그를 멸망시키는 그의 행위를 행위의 죄를 미워할 수 있고 그이에게 불의를 미워할 수 있으나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금물입니다.

 

그런고로 형제를 미워하는 미움을 우리에게서 완전히 제거해 버리고 무슨 원인으로 미워했든지 뭐 무조건이요 무조건 그가 내재산을 다 낭비 했든지 나를 어떻게 훼방하든지 매장하든지 나를 어떻게 헐뜯든지 물질 문제든지 무슨 생명문제든지 무슨 애정문제든지 무슨 문제든지 우리가 형제를 미워하는 미움은 우리속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이것이 없어지기 전에는 우리에게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어지지를 안합니다. 이것은 완전히 우리에게서 뽑아 버려야 합니다.

 

뽑아 버리고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이 사랑을 노력해서 형제를 사랑하는 사랑을 이것을 노력하고 연습해서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자기에게 생겨지고 형제를 사랑하는 성질이 차차 생겨지고 형제를 사랑하는 그 뜻이 생겨지고 형제를 사랑하는 욕심이 생겨지고 형제를 사랑하는 힘이 자기에게 생겨져서 형제를 사랑함으로서 말을 하게 되고 형제는 사랑함으로 행동을 하게 되고 형제를 사랑함으로 태도를 하게 되고 형제를 사랑함으로 자기가 노력을 하게되고 형제를 사랑함으로 이런 노력 저런 노력 기도라든지 전도나 권면이라든지 사랑함으로 노력을 하게 되고 형제를 사랑함으로 자기를 희생할 수 있게되고 형제를 사랑함으로 자기 몸과 생명 전부를 다 희생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희생하는 사람이 되어지는 여기까지 자기를 성장시켜야 되는 것이 우리의 구원인 것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아직까지도 사랑이 어리기 때문에 사랑이 어리면 지식도 어리고 생각하는 것도 어리고 견해도 어리고 동경도 어리고 그이의 활동도 어린 것입니다.

 

그런고로 어린 사랑으로 어린 사랑을 어데서 기룰 것이냐 어린 사랑은 형제의 육체의 육체를 사랑하고 형제의 육체의 그 행복을 빌고 그의 평안을 원하고 육체의 고통을 내가 동정하는 육체의 고통을 동정하고 육체의 행복을 원하고 육체의 고통을 제거하고 육체의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를 줄 수 있고 자기가 노력할 수 있고 자기가 협조할 수 있는 이 사람으로 그의 육체를 사랑하는 이 사랑에서 사랑에서 이 사랑이 육체를 사랑하는 이 사랑에서 자기가 사랑이 장성하면 장성하면 이 사랑이 그의 죄로 인해서 망해지는 이것을 보게 되고 죄로 인해서 망하는 것을 보게 되어 안타까움이 생겨지고 죄를 제거함으로 그 형제가 살아난다는 이것이 자기에게 보여져 그의 죄의 그 면을 자기가 고통스럽게 생각하고 그것을 면죄하는 그 사랑을 자기가 가지게 되니 육체의 고통의 그 원인에 들어가서 그 원인을 그이의 다시 말하면 그가 육체의 고통보다도 육체의 고통하는 그것을 동정하는 그것 보다도 그 사람의 언행심사가 병이 들었어 언행심사가 병들었어 정신이 병들었어 마음이 병들었어 욕심이 병들었어 요놈을 고쳐야 되겠어

 

요게 안타까워 야 뭐 장질부사가 들어서 드러누웠으나 그기야 때가 되면 낫겠지 생명은 정해 있으니까 생명이 남아 있으면 죽지 안하고 서서히 낫겠지 마는 그에게 그 성질 이것을 그의 마음 이것을 그의 입술 이것을 그이의 꾀 이것을 그의 욕심 이것을 이래서 그것이 마음에 안타까와 그를 고쳐주지 않고는 사랑하는 자에게 그게 병들었기 때문에 그것을 고치지 안하고는 견딜 수 없는 이 장성한 사랑으로 그보다도 그에게 쓸모있는 말이 없어 아 그에게 옳은 말이 한마디 나왔어 어떻게 좋은지 그에게 옳은 성품이 하나 나왔어 옳은 것을 소원하는게 하나 나왔어

 

그이에게 그이에게 콩낱만한 의가 있을 때에 기쁘고 즐겁고 못견디고 그에게 이제 그 불의가 그에게 의를 대적하는 옳은 것을 대적하는 진리를 의를 대적하는 불의가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견딜 수 없어. 장성한 사랑으로 그에게 의가 하나씩 건설될 때에 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려고 하니까 어떻게 좋은지 그가 하나님의 뜻대로 한 행동을 하니까 어떻게 좋은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진리의 행위를 하니까 어떻게 좋은지 고걸 기뻐하고 그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슬리는 그 행동을 볼 때에 이제 육체가 병든 것보다도 그 병이 그 불행이 더 불행스러워서 그 면을 보고 자기는 투자하지 않할 수 없고 그 면을 착수해서 고치지 안할 수 없고 구출하지 아니할 수 없는 이것이 장성한 신앙입니다.

 

여기서 차차 육을 구원해 그의 행위를 구원해 그의 인품을 구원해 이제는 그가 하나님으로 동하고 정하는 하나님으로 저의 전부를 삼는 이 사람으로 만드는 여기에 착수해서 이것을 위해서 노방하고 이것을 위해 자신을 줄 수 있는 이 사람까지가 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가능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지극히 큰 소망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그저 한 말로 해서 이웃을 미워하는 것을 완전히 제거합시다. 원인이 어찌돼서 원인이 어떠한 원인의 미움일지라도 가릴 것 없이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완전히 우리에게 제거되야 됩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내 자아로 완전히 변질이 되고 변성이 되고 변화가 돼야 됩니다.

 

이렇게 되는데는 당장에 *당장에* 장성한 자가 되지 안하는 것이요 이제 제일 어린데서 움싹이 트기를 어디서 움싹이 트는가 고깃덩어리를 사랑하는데서 움싹이 틉니다. 고깃덩어리를 사랑하는 데서 움싹이 트요 거게서 그를 동정하고 그를 구제하고 그를 봉사하고 여러가지 면으로 그에게 육의 행복을 빌고 원하고 여기에서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을 때에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충만케 하려 함이라 이럴 때에 그 형제의 형제의 육체의 그 형편을 사랑함으로 내가 그에게 어떻게 할 때에 그때에 내가 내게 기쁨이 오는 것을 볼 것입니다. 기쁨이 오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러나 혼돈하면 안됩니다. 혼돈하면 안됩니다. 여러분들이 육체를 사랑하되 위에서 내려온 이 사랑으로 사랑하는 그 사랑을 말하는 것이지 그 사랑이 아닌 미음이 사랑의 가장을 뀌며가지고서 자기를 중심해서 사람을 사랑하는 그것은 미움이 가장된 것입니다. 미움이 가장된 것이요 이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말하는게 아니고 위로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 이 사랑에 붙들려서 거기 충격되고 거기에 피동 되어서 자기가 이웃의 육체를 사랑하는 그 육체를 사랑함으로 그의 육체에 모든 불행을 자기가 도말하지 안하고는 견딜 수 없고 그의 행복을 도모하지 안하고는 견딜수 없어 육체를 사랑했으면 분명이 위로부터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이 자기 속에 나올 것이요 자기 속에 생겨질 것이요 이러면 거기서 사랑이 장성해서 이제는 육보다 그의 언행심사의 그 행위가 병든 것이 더 문제라 그의 행위의 고쳐지는 이것이 그것이 그 사랑하는 자에게 더 불행이기 때문에 이거는 껍데기 뭐 종점 났으면 두면 낫지 그까짓거야 두면 낫아 그러나 그의 언행심사가 병든거는 두며는 아무리 껍데기가 낫아도 마지막에는 또 병나오요.

 

이러니까 언행심사의 병든 것이 더 안타까와 그것을 고치느라고 노력하다 보니까 사랑이 장성해져서 이제 그의 언행심사의 그 행위의 병든 그것보다도 그가 하나님이 뜻을 순종하는 이 의가 있어야 죄가 해결 되는데 이 믿음 없는 것이 문제이니까 믿음의 병을 고치는데에 거기에 이제 주력하게 되고 믿음의 병을 고치는데에서 그 사랑에서 장성하고 보니까 그가 하나님과 연결되는 그 연결이 의는 진리와 연결되는 것이요 이제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진리와 사이를 벌어 트리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다음에는 진리와 연결을 시키고 진리와 연결을 시켜도 이거는 뿌리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되지 안하면 안되는 이것 때문에 자신을 주는 사람 이것 보고 견딜 수 없는 사람 자기 전부는 이것을 위해서 다 투자하는 요 *사랑으로만* 솔빡 되어지는 이 사람이 무궁세계에 하나님의 것을 받아 만물에게 충만케 하는 자입니다. 충만케 하는 자요 거기는 역적이 없습니다.

 

거게는 역적이 없어 반항이 없어 거기는 하나님에게만 받고 한쪽으로 하나님에게 받고 한쪽으로 주고 한쪽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한쪽으로 형제를 형제에게 줌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이것으로서 영생하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입시다.

 

아무리 어려도 어려도 미움 제거 안하면 구원은 없습니다. 건설구원은 없습니다. 미움이 자기 속에 자리잡고 있을 때에는 구원은 없습니다. 미움을 가지고 어떤 걸 사랑하고 어떤 걸 미워하는 거 아니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한 사람을 미워하면 그는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도 그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우리가 미워하는 것을 버리고 사랑해야 됩니다. 이제 행위는 미워해야 됩니다. 죄는 미워해야 됩니다. 불의는 미워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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