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욕과 공욕

 

1985. 12. 30 월새벽

 

본문:이사야 1장 1절∼20절 유다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 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 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의 상직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는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 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로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어제도 오전 설교에 약간 우리가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물질로 살고, 일 곧 사역, 사역으로 살고, 몸으로 살고, 마음으로 살고, 영으로 사는데 우리가 범죄함을 인해서 다 가리워졌고 또 모두가 다 파괴되어졌고 이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로 그렇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대로의 그 모든 것이, 이 다섯 가지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로 하신 이 다섯 가지 종류가 다 제거되고 파괴되고 또 가리워지고 이래서 천분의 일도 못 가지고 삽니다. 그저 우리는 그 숫자를 정확하게는 모르지마는 만분의 일도 못 가지고 삽니다.그렇게,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에는 그런 지위에서 참 하늘과 땅의 모든 것 전부 다 다스리고 정복하고 또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다 가지고 보존도 하고 운영도 하고 사용도 하고 이용도 하고 이렇게 되도록 돼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생각할 때에 ‘그런 말은 너무 과장한 말이 아니겠는가? 우리 사람이 아는 대로의 것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하겠습니다. 사람들의 지식, 지식은 악령으로 말미암아 다 심령들이 어두워져서 모두 근시자가 됐습니다. 근시자란 말은 가까울 근자 볼 시자, 가까운 것만 보지 멀리는 보지를 못하고, 마치 샘 안에 개구리 모양으로, 미개한 사람들 무식한 사람들은 아는 것이 유식한 사람의, 우리가 아는 대로도 백분지 일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서 인체에 대해서 의학을 연구한 사람은 그 사람이 아는 거와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이 도시에서 직장 가 가지고서 아침 출근 저녁 퇴근, 자고 밥 먹고 일만 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 무식한 그런 사람들과 비교하면은 사람도 아는 것도 백 배 아니라 천 배도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식한 사람이 자기가 모른다고 해 가지고 없는 것은 아니라 그거요.

성경에,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모든 사망이나 생명이나 그 모든 것이 다 너희 것이니라 하는 것은 과장을 한 말 아닙니다. 우리에게 가깝게 필요 없는 것은 세밀히 말하지 안하나, 그러기 때문에 요한복음에, 주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그 모든 일은 다 문서로 기록할라 하면은 세상에도 둘 만한 곳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과장한 말 아니오. 둘 만한, 세상에만 둘 만한 곳이 아니라 우주 안에도 둘 만한 곳이 없습니다. 그만큼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다 삭제되고 소멸되고 다 가리워지고 이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데 자기의 소유를 자기가 관리 못 할 자가 어데 있습니까? 자기의 가진 자기의 소유를 자기가 모르는 자는 소유권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거는 자기가 다 압니다.

그러기에, 저는 종종 그런 일 합니다. 가정에 가 가지고서 창고라든지 냉장고나 부엌이라든지 농이라든지 이런 거 봐 가지고서 ‘뭐 있느냐’ 이래 물으면 아무것도 모릅니다. 거기 뭐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모르는 걸 그 사람이 언제 그것을 내어서 사용을 할 것입니까? 이러니까 그것은, 뭐이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도 모르니까 날마다 생활하면서 한 달에 한 번을 쓰이든지 그거 자기가 사용을, 있는 걸 알아야 사용하지요.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두면 공연히 보관에만 힘드는 것이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의복을 책임진 주부라고 하면은 그 주부가 의복을 가지고 있을 그 한계점은 어데 있느냐 하면은 식구들에게 필요한 의복 이것은 어데 들었다 어데 들었다 무엇은 있다 없다 그것 자기가 알아야 그럴 때를 따라서 그걸 활용을 할 수가 있고 이용할 수가 있지 그거 모르면, 있는지 없느지 모르면 그것이 재여 가지고서 일 년도 이태도 삼 년도 공연히 보관하기만 복잡하지 무엇이 필요가 있겠습니까? 냉장고에 식품도 뭐이 들었는지 알지도 못하고 꽉 차기만 차서 있으면은 그걸 무슨 요리할 때에 이용을 하겠습니까? 이용 못 하니까 둬 두니까 썩는 것뿐이고 냉장고만 비좁을 것뿐이고 전기만 많이 들지 무슨 소용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자기의 소유물이라 하면 자기가 알고, 또 그것이 자기에게 필요하고, 또 그것을 자기가 관리를 해서 거게 대해서 주인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또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것이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지 그 밖의 것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모든 사망과 생명, 이러면 다 들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다, ‘너희 것이라’ 우리에게 준다고 했으니까 거게 대한 관리 못할 것을 주시겠습니까? 관리 못 하기 때문에 다 뺏겼습니다. 이러니까, 그런 거 주신다 말은 그런 것을 다 우리가 활용할 수 있고 또 그것을 낱낱이 기억할 수 있고, 이러기 때문에, 지금은 뭐, 자기, 부인들은 자기 농 안에 든 것도 몰라서 남편이 무엇을 무슨 의복을 말하면 여기 들었는가 저기 들었는가 그것 찾기 위해서 방 안에다가 온 농의 것을 한 볏가리 주 내놓으면서 여기 있는가 저기 있는가 마음을 딴데 두기 때문에 이제 모른다 그거요. 있는가 없는가도 모르고 어데 있는가 몰라서, 그거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

가질 자격이 없어. 그러면 그 부인은 그 가정에 주부노릇을 할 만한 자격이 없어.

그러니까, 자격 미달이라. 그러기 때문에, 그 본분을 행하지 못하는 거라. 말하면, 자기가 어데 가서 마침 사람이 없어서 그거 어데 있는지 다른 사람은 찾아도 모르는데 이제 전화로 물으면 아, 고거 아무 데 어느 구석에, 뭐 밑에 고 위에, 뭐 밑에 뭐 위에 딱 있다고 고래 말할 때에 딱 찾을 때에 자격이 있다 그말이오.

자기의 필요. 모르는 것이 자기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소용 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모든 것을 다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런 것을 가질 만한 주격의 주격자, 그런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그런 실력을 우리가 갖출 수 있다 하는 것을 우리의 소망으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 그런 것이 우리에게 다 필요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데, 우리가, 물질로 말해도 뭐 억만분의 일도 저거가 모르고 있고 이용 못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거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요새 원자니 전자니 떠들어 쌓고, 요새는 전부 원자 세상이요 전자 세상이요. 전기 세상이지마는 얼마 전까지는 전기를 몰랐습니다. 전기, 이렇츰 필요한 전기를 몰랐어. 이렇게 필요한 원자를, 전자를 몰랐어. 그러면, 지금은 다 발달 됐느냐? 과학자들이 이런 걸 발명을 하면서 ‘아, 참 어짜든지 측량 못 할 위대한 분이 계신다. 측량 못 할 위대한 분이 계신다. 아, 그분이 지어 놓은 거는, 우리는 없는 줄 알았는데 또 보니까 새 것이 나오고 또 보니 새 것이 나오고, 새 것이 나온 거는 더 놀랄 만한 게 나오고 이러니, 무한한 분이 계신다’ 이게 미루어 생각이 될 터인데, 제가. 백 년 전 과학자만 봐도 백 년 전 과학자가 이런 건 몰랐다 천치 바보 같다 하는데 또 저거도 그 후시대가 또 그렇게 말할 것이라 말이오. 이러면서도, ‘이것이 우연히 있었다 자연히 있었다’ 그걸 알았다고, 아, 만들기가 어렵겠소 만들어 놓은 거 보는 게 어렵겠소? 만들기가 어렵지 않소? 그거 겨우 봐 놓고 제가 하나님을 모르고 과학 만능이라 하는 거 가증스럽습니다. 가증스러워. 눈이 어둡고 모두 심령이 어둡기 때문에 그런 망령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어제도 잠깐 말했지마는 물질로 사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물질이 지금 물질의 억억억억만 배도 더 있습니다. 우주에 충만한 것이 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필요한데 필요한 동시에 그런 것을 다 관리할 수도 있습니다.

필요한 게 그렇게 많고, 일로 산다, 일로 산다 했는데 하나님은, 하나님은 참 능한 일군입니다. 그분은 지금, 이 교회가 되기 전에 그분이 천군 천사를 사용하기는, 사용하는 그 일군들이니까 사용하셨지마는 그분이 풀 한 포기 속에도 그분이 역사하시는 그 세밀한 역사, 복잡한 역사, 필요한 역사, 어떻게 오묘하게 지으셨는지 오묘하고 오묘하고, 하나라도 본다면은 ‘아, 하나님은 무한하시다.

무한하시다, 무한하시다, 무한하시다, 무한하시다. 그분의 그 지능을 그분의 부지런한 그 역사를, ‘열심이’ `여호와의 열심이' 그분의 열심을 우리가 찬양할 수밖에 없다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모르는 일도 한이 없습니다. 일은 일이라 하면 그만 이거, 어짜든지 배암이 들어 가지고서 우리를 미혹시켜서 놀면 좋고 일하면 싫어서 일이라 하면 그만 기압부터 당합니다. 일 없으면 죽습니다. 일로 사는 줄 알아야 됩니다. 일 없으면 그 사람, 여기 조그만한 것이라도 직장 가졌던 사람이 직장 없어 그러면 그만, 그 사람이 후방 군인 되면은 그만 날개가 떨어져 버렸습니다.

여기 내가 교계에서도 보니까 유명한 목사, 유력한 목사님들이 다, 얄궂은 짐덩이 목사들 때문에, 그 짐덩이 목사, 나이 많으면 망령 부리고 노망해 가지고 하는 것을 도무지 이걸 제거할 수가 없으니까 그분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나이가 많아도 필요있는 목사들도 다 자진해서 정년 퇴직을 했다 말이오. 그걸 결의를 그래 했습니다. 그랬는데. ○○교파는 안 했고, ○○교파가 그래 했고 여기 몇몇 그랬지만 거석한 교회들은 그렇게 하지를 안했습니다. 이랬는데, 그런 분들도 다, 노망을 해서 할 수 없어 그와같이 했다 말이오.

이제 우리에게 일할 만한 그런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정년 퇴직한 노인들은 보니까, 목사들은 그만 죽었어. 그만 어깨가 떨어져 가지고 영 아주 병신 돼 버렸어. 평생 목사 된 사람들이 정년 퇴직을 딱 해 버리고 나니까 그래, 또 그뿐 아니라 공무원들도 정년 퇴직한 사람들 보니까 그만 아무짝도 못쓸 사람, 그만 정년 퇴직 하고 나면 늙기부터 먼저 늙어요. 늙기부터 먼저 늙고 그다음에는 그만 무능해지고, 공연히 자기는 못나지고 열등감을 가지고서 용기는 다 빠져 버리고 아주 그만 참 김 빠져 나간 사이다 한가지라. 아무 힘이 없어. 그래 가지고서, 그라다가 그만 일찍 죽어 버려요.

우리는 일로 사는데 그 일을 자기가 한 가지밖에는 못 하던 자가 한 가지 일을 더 할 줄 알면은 그만치 힘이 납니다. 이 사람은 만명이 와도, 우리 전국이 달라들어도 할 수 없는 일을 그 사람 혼자밖에 못 하면, 그사람이 혼자 와서 하면은 그게 그 사람 실력이고 그게 사는 거라. 일로 산다는 말을 여러분들이 새겨서 똑똑히 들어야 됩니다. 일로 사는데, 우리는 일을 다 할 줄 몰라. 일이 다 제거돼 버렸어. 범죄로 말미암아 악령에게 꼬여 가지고서, 왜?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하지 안하고 필요없는 일은 다 하고 이라니까 일하다가 망하고 일하다가 죽고 이라니까 사람들이 일의 가치를 몰라서 일할 취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그러면, 우리가 할 일도 지금의 억억만 배도 더 넘다 하면은 ‘아이구, 그러면, 하늘나라는 일 많이 하는 하늘나라구나, 가기도 싫다, 거기. 가기도 싫다’ 여러분들 시장에 가 가지고서 물건을 누가 하나 갖다 놨는데 하루 종일 수백 명이 지나가도 아무도 필요 없어. 나중에 보니까 며칠 지나고 나니까 한 사람이 와 가지고서 이거 얼마냐고 그 사람에게 하나 필요있어서, 여러 수천 명 가운데 하나가 필요있어 가지고서 묻습니다. 그러면 그 물건 값이 내려오겠소 올라가겠소? 어떻습니까? 가치가 내려오겠소 올라가겠소? 내려옵니다. 보니까 물건은 하나인데 여러 수만 명이 지나가는데 수만 명이 다 필요해서 다 살라고 하는데 그 값이 비싸 못 사겠다 말이오. 수만 명에게 다 필요해. 모든 사람에게 다 필요하면 그 가치는 올라갈 것 아닙니까? 귀할 것 아닙니까? 그 주인이 물건 살 사람은 많고 이제 물건은 적고 이라니까, 가치가 올라가니까 그 사람이 처음에는 가마니에 싸 가지고 왔다가 나중에 비단으로 쌀 것이오. 그 사람이 창고에 집어 던져 버렸는데 그거 나중에 가서는 저거 안방에 가지고 들어갈 것입니다. 자꾸, 많은 것에게 필요있어 일이 많고 일을 많이 할 수 있어야 가치가 올라간다 그말이오.

일로 산다는 그걸 무슨 말인지 모르나 일이 이렇게 우리 할 일이 많고 우리는 참 천도 만도 많은 일 할 수 있고, 우리가 앞으로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할 일이 있어. 내가 안 해 주면 저희들이 못 하고 내 손을 기다리고 있어, 안 하면 못 하고. 이러니까 그 전 소망이 우리에게 있어. 우리는 소망이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께 받아 가지고 피조물에게 얼마든지 해 줄 수가 있어. 이런데 이것이 다 죄로 가리워졌습니다.

우리가 알고 보면은 인간같이 그렇게 불쌍하고 가련한 것이 없습니다. 이런 모든 식물이나 곤충이나 금수나 동물이나 이런 것은 그만 죽음으로 끝나 버립니다.

죽어서 썩어 버리면 그만이오. 또 죽어서 사람이 먹어 썩히든지 어짜든지 그만 썩으면 흙으로 돌아가 버리고 그만이지마는 사람은 영원히 불멸하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안 믿어 지옥 가도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지옥 가면 고통만 있는 것이지 거게는 없어지는 게 아니라. 없어지면 좋을라고요? 없어지지 않습니다.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입니다. 고통만 있는 곳이 지옥이오. 없어지는 게 아니고.

이러기 때문에 사람만이 가장 참, 구원 얻지 못하면 불쌍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기에, 어떤 사람은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고서 삼사 일을 침대에서 울었다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들었고 봤습니다. 너무 인생이 불쌍하다고 ‘인생이 너무 불쌍하다, 인생이 불쌍하다’ 또 인생이 너무 짧다고 이와같이 지금 울다가 너무 또 인생의 일면을 보니까 ‘너무 인생이 길다, 일찍 왔다가 일찍 죽어 버려야 차라리 낫다. 세상에서 자멸하는 행위가 너무 많다’ 이래 가지고서 이렇게 탄식하는데,

우리가 일로도 그러하고 우리 이 몸도 굉장한 것입니다. 이 몸이 이제 이 수없는 하늘과 땅에 가득찬 그 모든 것을, 내가 거게 다 필요 있는 몸이요. 다 관리할 수 있고 그런 지능을, 그런 실력을 가진 것이 우리 몸입니다. 이런데, 우리 몸은 다 죽어 버렸기 때문에, 불택자로 말하면 그거 뭐 있습니까? 불택자로 말하면 찍해야 몇 가지, 자고 일어나 밥 먹고, 밥 먹고 일하고, 밥 먹고 나서 또 자고, 또 자고 일어 나서 밥 먹고, 밥 먹고 일하고, 일하고 나서 자고, 밥 먹고, 자, 이것 밖에 더 합니까? 뭐 있습니까? 그 짐승이나 꼭 같다 말이오. 이렇게, 모두 이런 권리를 뺏겼는데, 우리들이 이렇기 때문에 이것을 회복시켜 줄라고 주님이 오셨습니다.

이러니까, 왜 우리가 몸이 무능해 졌느냐? 왜 마음이 무능해졌느냐? 무능해지는 이것은, 이게 모두가 다, 근원을 내버려 버리고, 나무 나무가 뿌리 없애 버리면, 나무가 뿌리 마다고 뿌리 떨어져 버리면 제가 말라 죽지 어짜겠소? 우리의 뿌리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과 떨어지니까 그렇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사욕을 버리고 이제 하나님과 연결된 욕심, 연결된 욕심 성령의 소욕이면 우리 욕심 죽이는가? 우리 욕심의 요소가 만물보다 거짓된 자에게 이용당하는 욕심이 됐기 때문에 욕심이 참 천한 게 됐지, 우리 욕심이라는 그 기관입니다. 기관인데, 이 욕심이라는 기관이 창조주 전지 전능자 하나님에게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그 무한함의 욕심이 우리욕심과 연결되어서, 무한하신 욕심이 우리 욕심과 연결되어 우리 욕심이 되어서 무한함이 우리 욕심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그럴 수 있는 우리들인데 이게 좁을트리고 좁을트리고, 배암에게 꼬여 가지고서 좁을트려서, 만물보다 거짓된, 공간으로 말하면 초지장만 가리워도 그 다음을 모르는 이거, 제 생명도 언제 죽을지 모르고 아무것도, 아는 게 바로 아는 게 하나도 없어. 이것이 제가 왕노릇 할 거라고 제 주장으로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인정하는 게 자멸입니다. 자기를 인정하는 게 자멸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사욕이라 하는 것은 자기 욕심이요 성령의 욕심이라 말은, 자기 사욕이 자기 욕심이요 성령의 욕심은 공욕이라. 공욕이라, 공욕이라는 것은, 이 욕심은 하나님도 욕심하는 것이고, 만물도 욕심하는 거고, 저 구더기도 욕심하고, 실은 알고 보면 구더기도 다 그게 되기를 원하고 소원하는 것이라. 그러면, 내가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전부가 다 소욕하는 그것이 내 욕심이 될 수 있는 것인데, 거게 연결돼 가지고 성령의 소욕으로 살지 안하고 육체의 소욕으로 살기 때문에 이렇게 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육체의 욕심은 다 사망을 이룬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육체의 소욕으로 사욕으로 이와같이 지금 망하고 있지, 그것이 또 우상 숭배라 말이오. 우상 숭배라 말은 그게 뭐이냐 하면은 이제 피조물만 상대하고 창조주를 다 버린다 그말이오. 피조물만, 과학자들은 제가 저도 만들어졌고 제가 만든 거, 하나님이 만든 거 억억만분의 일도 안 되는 것을 하나 발명해 놓고 막 떠들어 쌓고 있는데, 이 미친 자야, 과학 만능이라 하는 거 미친 자라, 네가 과학 만능이라 하지마는 고거 하나님이 허락지 안하면 네가 아는 과학을 만분의 일도 써먹지도 못한다. 일 분도 써먹지 못한다, 딱 과학은 해 놨지마는 너는 쓰지 못한다. 다른 사람은 써먹어도 너는 못 써먹는다. 이렇게 주권이 그분에게, 생명 주권이 그분에게 있지, 활동 주권이 그분에게 있지, 정신 주권이 그분에게 있지, 심리 주권이 그분에게 있지, 모든 계획 주권이 그분에게 있지 전부 다 그분에게 있어 그분이 스톱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데 과학 만능이라 하는 게 다 미친 소리라 그말이요, 미친 소리. 그게 모두 다 우상 섬기는 거라 말이오.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연결해서 좋게 하시면 사망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좋게 하시면 욕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좋게 하시면 칭찬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그분이 근본의 빛이시요 생명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좋게 하시면 다 좋지마는 그분이 상관 안 하면 좋은 게 하나도 없다 말이오. 이런데 이 피조물 이걸 보고서, 하나님이 이걸 통해서 주니까, 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밥을 통해 가지고서 사람들을 영양있게 주니까 ‘밥이 귀하다. 밥이 귀하다’ 이래 가지고 밥을, ‘밥이 귀하다. 아무것도 없어도 밥만 있으면 산다’ 그것도 원첨 자기, 의식주가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것도 필요합니다. 이 경남 사람보다는 저 강원도 사람, 함경도 사람은 만나면 사업을 묻습니다. ‘아, 요새 뭐 어찌 됩니까?’ 그라면은 그분들은 대답하기를 `그저 밥은 먹을 수 있습니다.’ 이래 말합니다. 열 명 만나도 열 명 다 말해요. 백 명 만나도 다 말해 그러니까, 양로원에 가 보면은 함경도 사람은 양로원에 와 가지고서 늙어서 남의 짐이 돼 가지고 있는 양로가 없습니다. 함경도 사람은 혹 하나 있지 별로이 없어. 전부 많은 거는 이 경상도 사람, 또 강원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양로원에 그 모든 목록을 봤는데 보니까 강원도 사람은 이 양로원에도 없고 저 양로원에도 없어. 그 사람들은 어짜든지 제 힘으로 제가 먹고 살라고 어짜든지 뭐 죽었으면 죽었지 남에게 이렇게 누 끼치지 안하고 짐 되지 안할라 하는 고게 있어. 이러나, 이 경상도 사람은 큰 소리만 떵떵하고서 아주 울타리 밑에 굶어 앉았으면서도 ‘뭐 아무데 부자’ 말하면 ‘ 그까짓 거 많으면 뭐할거라.' 큰소리만 텅텅 하고 망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거 모두 다, 피조물을 귀하게 여기는 것도 병, 피조물을 무시하는 것도 병, 피조물도 무시하고 저만 제일이라고, 어짜든지 안일주의로 편하게만 살라 해. 그것도 망해야 돼요. 아무리 봐도, 따져 보십시오. 요것도 망해야 되고 조것도 망해야 되고 다 망해야 되니까 망하지 안할 게 하나도 없어, 그러기에, 심방을 가서 이래 심방을 쭉 돌아다녀 보면은 참 감탄이 되어져. 가서 보면 잠깐만 봐도 ‘이게 어찌 밥을 먹고 지내노? 이상하다, 꼭 빌어 먹겠는데’ 암만 봐도, 요모로 진찰하고 조모로 진찰해도 빌어 먹겠는데, ‘아, 이것이 어찌 직장을 가지고 있노, 꼭 망하겠는데? 이게 어떻게 지위를 가지고 있노, 이게 망하겠는데?’ 다, 이 면도 저 면도 전부 다 망할 수밖에 없는데 유지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라 긍휼이라 볼 수밖에 없다 그거요.

우상을 섬기니까 망하지, 하나님을 상대해야 될 터인데, 이거 밥을 주면 ‘아, 이 밥이 나 살린다. 밥만 있으면 되겠다’ 박지기에 밥 떠 주니까 아무것도 아닌 박지기에 대고 절을 하면서 ‘아무것도 없어도 박지기만 있으면 된다 박지기가 나 밥 주더라, 박지기가 밥 주더라,’ ‘야, 이 바보야, 박지기가 밥을 주나, 너거 엄마가 밥을 주지,’ 이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이래서, 이렇게 이제는 자기 주관으로 사니까 망한다 그거요, 이런데 그만 주관으로 살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운전대 잡으면 저 치어 죽지 어짤 거요? 내가 한다고서, 그거는 철이 없는 어린 아이가 ‘내 한번 운전해 볼께’ 하지마는 맡기면 죽는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널 부인해라, 하나님에게 피동되면 전지자에게 피동되니까 전지자되고 전능자에게 피동되니까 전능자되고, 완전자에게 피동되니까 완전자되는데 이걸 다 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래서, 우리가 믿는다고 하지마는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참 말할 수 없는 큰 축복을 지금 예수님이 와서 열어 놨습니다. 열어 놨는데 열어만 놓은 게 아니라 우리와 연결시켜 놨는데, 연결시켰는데, 연결시켜 놨는데 연결시킨 것을 알고 연결시킨 이거 가지고, 연결되어 있는 줄 알고, 연결된 자로 알고 이제 그분이 요렇게 조렇게 살라 하는 대로 살면 전지의 행위요 전능의 행위요 이런데, 우리가 아직도 자기를 부인하지 안하고 주님을 부인하고, 자기보다 주님을 더 믿어서, ‘내가, 내게 대해서는 주님보다 내가 날 더 사랑하지, 내가 날 더 생각하지, 주님보다는 내게 대해서는 내가 더 관심이 있지, 주님보다는 나를 아낌에 대해서는 내가 나를 더 아끼지’ 요렇게 망령을 부려 가지고 자꾸 자멸 행위만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긍휼이 있지마는 마지막에 몇십 년 지나고 난 다음에는 다 송장 돼 가지고서 유황불 구렁텅이로 다 가고 만다 그거요.

그래서, 여기 말씀하시기를, 수양의 기름도 어린 양도 내게는 소용이 없다 그말은, 이 어린 양은 예수님을 상징한 것인데 예수님이 소용 없다 그말이오. 우리가 지금 주여 하는 그 주는 소용이 없어. 우리가 참 믿지 안해. 우리가 뭐 주님을 부르고 이라지마는 주님이 나를 위해서 내 대신 형벌받아서 이 죄 때문에 죽기까지 형벌받아 가지고 사죄한 것을 천분의 일만 깨달아도 좀 마음에 그 죄를 무심히 지을 수 없지마는 이거는 순전히 참 엉터리라, 이 근방에 가지도 안해.

이래서, 주님에게는, 주일 지키고 뭐 하는 것도 이거 다 이것이, 자, 이렇게 지키니 주님에게는 무거운 짐이라 했어. 왜? 성경에 기록해 놨기 때문에 그것도 예수 믿는 것이라고 다른 사람이 보니까 예수 믿는 것같이 껍데기 말로는 예수 믿고, 껍데기 형태는 예수 믿지마는 속에는 빨간, 속에는 빨간, 악령 악성 악습으로 가뜩찼지 껍데기로 예수 믿는다고 하니, 자, 저걸 망칠라 해도 그래도 이게 바로 믿을 것도 있고 옳게 믿을 것도 있는데 그걸 망치면 ‘아, 아무것이도 예수 믿다 망했다, 아무것이도 예수 믿다 망했다. 이제 그것만 보고서 그것들이 예수 믿을 소망을 가지지 못하고 절망할 터이니까 그것이 탈이지, 또 그런 것을 성경에 약속한 대로 복을 줄라고 하니 그걸 복을 주면 또, 그래 하면 또 복 받는 건 줄 알고 그따위로 예수 믿을 터이니까 또 안 되겠지, 이러니까 주님 앞에는 무거운 짐이라. 이리도 못 하고 저리도 못 하고 고통입니다.

주님이, 우리가 아무리 자비해도 주님의 자비의 모형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밀해도 주님의 세밀의 모형입니다. 땅 위에 인간이 아무리 모든 면에 구비해서 만능의 인간이 됐다고 할지라도 그 만능이라는 만능이, 만능의 그것이 주님의 그림자요, 주님의 모형이요. 주님은 그것의 실상입니다. 무한한 실상입니다.

그런고로, 18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을지라도 양털같이 희어지리라’ ‘나로 더불어 변론하자' 변론하자는 것은 말하자 말입니다.

변론하자는 거는 말하자, 변론하자 말은 서로 말을 주고 받아 보자 그말이오. 말을 주고 받아 보자, 변론하자 말은 주고 받아 보자. 서로 대화해 보자, 또 따져 보자.

주님하고 따지면, 주님하고 자꾸 이야기해서 주님을 상대하면, 자꾸 기도하면, 이와같이 명상해 가지고 주님을 생각하면은 나중에 주님하고 따져 보니까 ‘아이구, 이게 좋구나, 이거 없으면 못 살겠구나.’ 해와가 주님하고 따져 봤더라면, 이게 선악과가 그렇게 좋아서 마구 남편도 없고 하나님도 없고 선악과만 하면 다 되겠다 싶었지마는 주님하고 의논해서 따져 봤더라면 ‘아이쿠, 이놈이.’ 네가 이러면은 이리 되고 이리 되고 다 망한다 하는 것을 알았으면 누가 그 선악과 먹겠소? 이와 마찬가지로, 변론하자 말은 주님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다 선포해 놨기 때문에 주님은 말을 한목 대 해 놨어. 또 그라고 난 다음에 또 영감으로 지금 말씀하시고 있어 그러니까, 이제 신구약 성경 보고 이렇고 저렇고 자꾸따져서 이래 살펴보고 ‘이런, 이것은 이 결과는 이래 되고 저 결과는 저래 되고, 요 행세는 저래 되고 저 행세는 저래 된다’ ‘아, 내게는 이런 성질이 있는데 이런 성질은 보니까, 이 성질은 따져 보니까 이렇고 이렇고 이러니 망할 성질이구나, 아무것이에게 있는 그 성질은 참 그거는 살 성질이구나’ 이제. 주님하고 이 성경 말씀하고 서로 대면해서 따져 보고 이렇게 의논해 보고 변론해 보고 자꾸 이와같이 지금 대화해 보면, 대화해 보면, 우리에게는 최종적으로 대형의 사죄가 있고 대행의 칭의가 있고 대화친의 이 화친이 있기 때문에 모든 말씀을 가지고 자꾸 이래 해 나가면은 ‘나는 죄인이다. 죄인이다’ 절망이 될 것이고, 제가 못난 것을 알 것이고, 제가 순전히 망할 자인 것을 알 것이고, 제게는 털끝만치도 옳은 게 없고, 제가 자살 행위뿐이지 자살 행위 아닌 것이 하나도 없어. 자멸 행위 아닌 것이 하나도 없어.

이러면, 완전히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따져 들어가면은 자기는 완전히 자멸자요 악의, 순전히 섞인 게 없는 악뿐이오. 섞인 것 없는 악뿐이요. 죄뿐이요, 더러운 것뿐이요 멸망뿐이라, 섞인 것, 옳은 것은 하나도 섞여 있지 안해. 이런 자가 될 때에 예수의 공로가 필요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율법으로 자기를 정죄한 자가 예수님의 대속이 필요있지, 율법으로 정죄 못 한 자는 예수님의 사죄라 해도, 감옥에 지금 정죄받아 가지고 감옥에 형벌받고 있는 자에게 그자에게 이제 무죄 석방을 해 준다 하면 고마운 것이지 그냥, 죄를 깨닫지 못하고 감옥에 있는 걸 깨닫지 못하면 무죄 석방 한다 하면은 왜 내가 죄도 없는 사람을 무죄 석방이라고, 사람에게, 명예 훼손 한다고 명예 훼손의 시비를 걸란지 모를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래서, 이라면 내가 모르는 죄가 다 나올 것이고 내가 아는 죄에 대해서, 아는 죄에 대해서는 ‘나는 죽었다, 이런 죄가 있으니’ 할 때에 주님의 피공로가 필요있고, ‘나는 이런 의무와 책임이 있는데 내가 이 의무와 책임을 못하니 어찌 되느냐’ 그럴 때에 주님의 대행이, 대행의 공로가 필요하고, 이래서, 우리가 어짜든지 주님에게 고하면 사함을 받습니다.

여게,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1서 1장 몇절인고? ‘우리 죄를 고하면’ 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내가 이런 죄를 자백하면, 그냥 ‘ 내 죄를 사해 주시옵소서' 하는 것을 하나님이 아주 참 기막히게 여깁니다. 그걸 하나님이 고치시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른는 걸 사해 달라고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게 허무한 회개를 하나님은 참 대단히 근심하십니다.

자기 잘못된 고것을 자꾸 ‘내가 요래 잘못됐다’ 고 잘못된 고것을 깊이 깊이 생각해서 잘못된 것의 행태 각도, 동기, 종류, 또 그 결과 그런 것을 똑똑히, 죄에 대해서 똑똑히 그 정체를 알고 주님 앞에 고하면 즉시 사해 주십니다. 왜? 다 정체를 알았으니까 반대만 그 죄의 반대만 되면은 의가 되니까. 그러나, 그것도 죄가 무슨 죄인지 모르고 사해 달라 하니 그 죄를 제가 알지도 못하는데 그 죄를 회개하겠습니까? 회개할 수가 없다 그말이오.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자백하면 됩니다, 자백하면. 이게 아니면 우리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제, 주홍 같고 진홍같이 붉은 죄일지라도 주님이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 놨기 때문에 우리가 그거 알아서 자백만 하면은 즉시 사함이 됩니다.

이제 사함이 되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문제가 뭐이냐 하면은 사함받았는데 사함받고 고다음부터 그런 죄로 더불어 싸워서, 피 흘리기까지 죽기까지 싸워서, 그 죄를 싸울 때에, 이 죄를 대신 형벌 받으시기 위해서 주님이 신인 양성 일위로서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하셨다는 고것의 그 백분의 일이라도 고 실감을 가지면 자기가 그 죄로 더불어 싸울, 체면이 있고 양심이 있고, 싸울, 찔리는 것이 있고 자각이 있기 때문에 싸우게 됩니다. 싸워서, 그래도 주님은, 이렇게 범죄했지마는 그 죄를 주님의 대속을 생각하고 이제, 고하면 즉시 용서해 주시고 고다음부터 죄를 범하지 안할라고 허덕거리면서 싸우고 노력하고 이와같이 지금 애를 쓰고 이래 할 때에 주님이 그것이 제일 족합니다. 주님이 제일 첫째로 주님을 대우하는 것은 자기가 죄로 더불어 싸우는 그것이 주님에 첫째 대우요, 죄라 하는 것은 어떤 세력을 가졌느냐? 죄는 인생을 치어 죽이는 세력을 가졌습니다, 죄는 인간을 압도해서 죽이는 세력을 가졌어. 죄는 인간을 잡아 묶어 매 가지고서 달아 매 가지고 죽이는 그런 세력을 가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망의 권세는 죄라 했습니다. 죄가 인생을 다 사망시키는 것이오. 권세가 있습니다. 권세가 있는데, 죄 그놈을 내가 벗고저 한다고서 됩니까? 내가 죄를 회개하고 싶다고 됩니까? 이러니까, 주님이 회개하게 하실 때라야 됩니다. 그 때를 놓치면 안 됩니다. 히브리 12장에 있지 않습니까? ‘에서가 복을 빎을 받을라고 회개를 할라고 했지마는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 기회가 지나가고 나니까 다시 회개할 기회가 없었다 이랬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자꾸 이와같이 말씀하시는 것이 이것이 회개할 기회입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죄를 안 지을라고 애를 쓰고 하나님 말씀대로 지킬라고 애를 쓰고 형벌이 와도 애를 쓰고 하는 그것이 주님 대접이오. 우리가 죄 안 지을라고 하다가서 죽임받는 것이 그것이 주님이 나를 죽음으로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생명을 바쳐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의로 인해서 우리가 어려움 당하는 그것이 이제 나도 죽으면 그 죽음을, 생명을 바쳐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과 동행해서 하나님께 피동으로 살라고 하니까 세상이 들어서 피동으로 못 살구로 하니까, 못 살구로 할 때에 내가 죽어도 못 살지 안하고 죽으면 죽었지 하나님으로 더불어 피동해 사는 요것을 양보하지 안할 때에, 우리가 한 번 죽으니까 다 죽을 거 아닙니까? 이미 죽을 죽음인데 나중에 가서 보니까, 죽을 죽음인데 주님을 사랑하기를 생명보다 더 사랑했어. 어데서 사랑했어? 죄로 더불어 싸운 데서 사랑했어. 주님을 사랑하기를 생명보다, 자기의 육체의 생명보다도 더 사랑했어. 어데서? 의를 못 하게 하니까 의를 행할라고, 또 하나님에게 피동될라고, 이와같이 해서 주님을, 보니까, 자기 생명보다 주님을 사랑한 사람들이 늘비해 있는데, 이제, 돈 천 원만치 보다도 주님을 사랑치 안해서 돈 천 원과 이제 죄가 있으면은 돈 천 원 때문에 죄 짓고, 뭐 쪼금만 있으면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다 그것 때문에 전부 살았지 주님 사랑한 일이 없다 그말이오.

이런데, 변론하자 그리하면 네가, 어떤 죄라도 다 고하면 사함받습니다. 고하면 사함받고 이것도 믿어요. 고하면 사함받는다는 걸 믿고, 또 ‘내가 이제부터는 범죄하지 않겠다’ 하고 죄로 더불어 싸우고, 의로 인해서 싸우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을 안 뺏길라고 싸우고 이렇게 싸우면 하나님께서 이루어지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루어지는 것은, 여러분들, 우리가 힘을 써서 죄 안지을라고 애를 쓰니까 죄가 안 지어지니까 나중에 사람들이 착각하기를 ‘아, 이만치 죄를 안 지을라고 애를 쓰면은 죄 안 지을 수 있지 뭐’ 그러니까, 제가 애를 써서 안 지은 거와같이 그렇게 착각하기 쉽습니다. 죄는 인생보다 억억만 배도 강합니다.

힘이 셉니다. 힘이 센데 인간이 죄를 물리칠 수 있느냐?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죄를 짓지 안할라고 죄로 더불어 싸워서 ‘ 죽어도 나는 죄 짓지 않겠다’ 이랄 때에 주님이 이제 나를 도와서 죄를 꺾고 나로 하여금 죄를 이기게 해 주셔야 이겨지는 것이지 그리 안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회개케 해 주셔야 회개가 되지 제 스스로 회개를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죄에 대해서나 의에 대해서나 하나님의 화친에 대해서나 이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주신 거는 전부 공으로 은혜로 주셨는데, 공으로 주시는데 주실 때에 받는 자가 받으면서 착각하고 오산하면은 제 힘으로 해서 된 것같이 그렇게 여겨질 수 있는 그런 방편이 거게는 작용이 되더라 그말이오. 알아 듣겠습니까? 순전히 하나님께서 공짜배기로 주시기는 주시는데, 그 공으로 주시는 것을 자기가 받을 때에는 순전히 제 힘으로 제 노력으로 한 것같이 그렇게 여겨지는 그 순서의 방법이 거게는 등용이 되더라, 거게는 반드시 제 힘으로 제가 한 것같이 여겨질 수 있는 그런 순서의 방편을 통해 가지고서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것을 받게 되더라 하는 말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 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왜, 하나님이 주시면 그만 공째배기로 ‘아나, 아나’ 이래 줘 버렸으면 `아, 공짜배기로 받았다' 이렇게 알 수 있을 터인데 왜 하나님께서 공짜배기로 주시면 우리가 이렇츰 애를 써 가지고 되는가 요렇게 사람들이 생각하지마는 고것은 고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없는 이유가 뭐입니까? 이유는 순전히 하님이 공짜배기로 주시는 것을 우리가 받을 때에는 뭘로 받습니까? 뭘로 받습니까? 이 은혜로 받을 때에 뭘로 받습니까? 주먹으로 받소, 힘으로 받소, 욕심으로 받소, 뭘로 받소? 예? 뭘로 받소, 여기는? 믿음으로 받아, 믿음으로. 믿음으로 받으니까, 믿음이 있어야, 믿음으로 받는데 항상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를 부인하지 안하고 자기가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자기가 한 것같이 하는 그 노력이 있는 결과의 은혜가 오는 것은 그것이 자기 부인한 표입니다. 그게 자기 부인하는 방편이라. 자기 부인하는 방편이고, 그게 자기 부인한 것이라. 그게 자기 부인했고 주님을 믿는 것뿐이었지 그 실상이 이루어진 거는 순전히 공짜배기로 은혜로 되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를 자기가 받을 때에는 착각하는 사람은 자기가 자기 힘으로 해서 된 것같이 여겨지도록 그만한 순서를 통해 가지고 되는 거니까 그것은 왜 자기가 한 것같이 여겨지기까지 그런 경우를 그런 과정을 통과하게 되느냐 하면은 그것이 자기 부인하는 과정이라 말이오. 자기 부인하는 과정이지 그 실상 은혜받는, 그거 만드는 거 가지고 어림도 없어. 천리 만리 거리 멀어. 자기 부인하는 과정이요. 하나님을 신망하는 과정이라 그말이오.

이것을 하나님께서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그 전부는 다 그라면 시간 많이 걸리기 때문에 어느 것이든지 한 두 가지를 보여 주십니다. 자기가 할라고 결심해도, 이게 옳은 것이요 하나님의 뜻인데 결심을 해도, 회개를 할라 해도, 어떤 사람은 담배 그걸 그랍니다. 담배 그것도 그래, 술 그것도, 담배 그것도 회개 할라고 암만 해야 회개 못 해. 아, 이거 피우고 교회 가니까 담배 내가 나는 이거 참 낯을 들 수가 없고 수치스럽고 또 장로가 돼 가지고 담배를 피우니 이거 기가 찬다 말이오.

저 ○○ 교회 ○ 장로는 여기 옛날, 옛날 궐련, 궐련이라고 담배 그거는 말은 궐련인데 그거는 피울 때에 궐련에다 이런 파이프 같은 걸 딱 끼워 가지고 그래 피웁니다. 이거 그냥 입에 대고 안 피우고. 요새는 이래, 빠는 것을 벌써 만들어 가지고 나왔지마는, 편리하기는 뭐 어떻게 편리해 놨는지. 그랬는데, 거기다, 이거 새털 담배라고 있어. 새털 댐배라는 고놈을 요래 배배배배 비벼 가지고 똑 콩, 조그만한 녹두콩 만치 고래 비벼 가지고서 거기다 딱 넣어 가지고서 요래 들어가서 불로 탁 켜면은 쪽 빨아당기면 한 모금 빨아당겨요, 그저. 한 모금, 한 모금도 다 안 돼. 고걸 안 먹으면 못 견뎌. 고렇게 거석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걸 할라면 저 변소에, 그거 똥을 누는지 안 누는지 모르지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 다 잘 때 밤에 가서 살며시 들어가 가지고서 그래 한 모금 쪽 빨고 나오고 이래 놓으니까 그 장로 담배 피우는 줄 아무도 몰랐어.

○○ 교회 ○ 장로라고, 몰랐는데, 그 한번, 내가 거기 처음으로 부임해 가지고 그 장로를 위해서 기도 안 할 수 없고 자꾸, 장로 위해서 기도하는데, 보니까 입이 얄궂어 이래서, 내가 그만 짐작하기를 ‘아 둘이 심방 가다가 `장로님 담배 안 피웁니까? 이러니까 그만, 이 참 뜻밖의 소리라 말이오. 이래 콱 찔러 가지고 그걸 나중에 발견해서 회개를 시켰습니다.

여기 ○○○ 목사님도 그랬어. 그분도 집사가 돼 가지고서 담배를 피웠다 말이오.

이렇는데, 산에 가서 기도하다 보니까 입이 막 썩어서 해어졌는데 입이 썩어서 헤어져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 막 벌거이 너불너불하이 이래 가지고 있는데 이거 굉장해. 이거 왜 뭣 때문에 그런가, 그거 내가 장로 그럴 때는 두번째 그랬고,그때는 장로 그만 먹여치고 이래 잡았다 말이오 이렇지만 이거는, 처음이라. 그래 나중에 금식 기도 하러 가서 산에 가서, 그때 한 이십 명인가 갔었었는데, 그래 나중에 불러 가지고, ‘야’ 내 처 조카거든요. ○ 집사야, 이거 이렇게 있는데 네 입이 굉장하더라. 이런데 이거 무슨 연고이고?’ 이라니까, ‘너 무슨 연고이고? 입으로 뭐 죄 짓는 거 없나?’ 이라니까 그래 나중에 담배를 말해. 그래 가지고 끊었습니다.

그런 것도, 사람이 그것도 못 끊는 게 그게 뭐이냐 하면은 그거 우리에게 알려 주기 위해 그렇다 말이오. 담배를 못 끊는 것, 식욕을 못 끊는 것, 버릇을 이런 거 못 끊는 것, 암만 해도 끊지 못하는 그런 거 있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그것만 끊을라고 할 게 아니라 그게 ‘아, 이것도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되지 안 되는구나, 회개라 하는 것은 제 힘으로는 안 되는 것이로구나’ 요것을 깨닫고 ‘주여, 요것으로써 이제 내가 알았습니다. 우리가 고친다는 것은 주님이 고쳐 주셔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거 내가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 하고서 주님 앞에 ‘이것도 주님이 고쳐 주셔야 되지 안 고쳐 주시면 안 된다’ 해 보십시오, 당장 딱 안 끊어지는가,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고치실라고 애가 탑니다.

이러니까, 회개를 ‘뭐 언제든지 내가 하면 되지 그런 생각 가지지 말고, 하나님께서 이상하게도 지금 회개 운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회개 운동을 일으키지, 우리 진영에는, 다른 데는 몰라도 우리 진영에는 하나님의 기적이 자꾸 나요. 기적을 바라는 사람은 다 납니다. 또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모두 다 기적, 모두 말 들으면 참 이상하게 됐다고 참 기적이라고, ‘뭐이 기적이고?’ 모든 게 이것도 보니까 기적이고 저것도 보니까 기적이고, 말 들어 보니까 다 기적이라.

이랬는데, ‘회개하면 땅에서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농사 짓는 사람이 농사가 잘 돼야 밥을 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소산을 먹을 것이라, 아름다운 소산이라 하니까 그 소산도 아주 잘된 소산 아니오? 아주 일등품 아니겠소? 일등품 소산이라 그말이오, 일등품 소산.

자, 목사는 아름다운 소산은, 네가 회개하면 목사는 이제 참 영광스럽고 아름답고 존귀한 목회로 가지고서 너는 만족하고 살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은 네가 정치하는 동안은 사무엘 모양으로 아무 일이 없어 모두 다 평안하고 모든 그 열국들이 부러워하고, 두려워할 수 있는 그런 영광스러운 존귀한 그런 정치를 함으로 말미암아, 속을 썩히지 안하고, 정치하니까 권위가 자꾸 나타나고, 모든 사람들이 보물과 예물을 가지고 자꾸, 히스기야 왕에게 온 거와같이 자꾸 올 수 있는 정치는 정치에 아름다운 열매, 정치에 아름다운 열매, 학계하는 사람은 학계에, 학계에서 아름다운 열매, 문화 건설하는 사람은 문화 건설에 아름다운 열매, 주부는 주부에 아름다운 열매, 시집 간 사람은 시집 간 데서 아름다운 열매, 장가 간 사람은 장가 간 데서 아름다운 열매, 학생은 학생에 아름다운 열매, 반사는 반사에 아름다운 열매, 반사도, 이런데, 반사가 자꾸 천한 소리 듣고 자꾸 이런데, 반사에 아름다운, 열매,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 보니까 반사 하는데 이 동리도 가니까 ‘아이구, 선생님 오십니까? 수고하십니다,’ 그 부모네들이 수고한다고서 뭘 대접할라 해도 아니 대접 안 받아. 자꾸 대접할라고 하고 대접 안 받을라 하고, 자꾸 들어가자 하고, 자꾸 영접해 들이고 아이구 갈 시간 없다 하고, 자꾸 존경을 하는데 자꾸 저는 안 올라갈라고 그래, 자꾸 높이 올려 주니까 안 올라갈라고 해야 되겠어, 자꾸 높이 올라가, 들어 올려 주는데 올라가면 어데까지 올라갈 터이니까 자꾸 안 올라갈라고, 높이 올려 줄라고 하는데 안 올라갈라고, 대접하는데 안 받을라고, 이와같이, 칭찬하는데 칭찬 안 들을라고, 자꾸 이러고 ‘아,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꾸, 이게 아름다운 열매 아니겠느냐 그말이오.

자, 정치하는 사람이나 사업하는 사람이나 상업하는 사람이나 목회하는 사람이나 선생질 하는 사람이나 이것 뭐 모든 문화 시설하는 사람이나 주부 하는 사람이나, 어머니노릇 하는 사람도, 어머니노릇 하는 사람도 아름다운 열매 맺으니까 어머니노릇에서 자녀들이 ‘아, 어머니, 어머니 수고하십니다. 좀 쉬십시오.’ 어머니 은혜를 감사하고 자꾸 이거 눈물 흘리고 이래 쌓아면 그거 아름다운 열매 아니오? 모두 아름다운 열매, 자기 하는 모든 일이 잘 돼 가지고서 그 결과가 잘 돼서 사람에게 이렇게 존대받는 것을 한 말로 ‘네가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이렇게 말합니다. 아름다운 소산.

이러니까, 우리가 회개하면 모든 거 다 됩니다. 이러니까, 뭐 하면 자꾸 칭찬이 있는데, 뭐 하니까 이것도 책망받고 저것도 책망받고, 책망만 받고 마는 게 아니라 천대도 받습니다. 천대만 받고 마는 게 아니라 실제에 그 일이 안 되니까 나중에는 곤고하기도 곤고합니다. 비참하게 돼진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모든 어떤 분야에 있든지 모든 면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면, 그 회개를 강령적으로 말하면 세 가지 회개하면 돼요. 세 가지 회개하면, 이 사욕을 성령의 소욕으로 바꾸면 돼 버려, 이제 피조물을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던 그걸 주님만을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면 그만 돼요. 자기가 주관으로 능동으로 살던 이 행세를 버리고 하나님께 피동으로 살면 그만 돼요. 이거 뭐 간단해. 이 세 가지만 하면, 이 세 가지 하면은 안 될 수가 없어. 이 세 가지 하면 전지 전능이 되는데 왜 안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이러니까, 잘 산다 말 아닙니까? 평안히 산다 말 아니오? 존귀하게 산다 말 아니오? 배부르게 산다 말 아니오? 만족히 산다 말 아닙니까? ‘거역하고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이거는 전쟁을 가리켜 말합니다. 뭐 그거 나는 이상한 걸 봤어. 여러분들은 그런 거는 기억지 말아요. 마나, 그날 내가 볼 때에는, 보니까 전부 다 없고, 집은 어데 가 있는지 다 없어. 집은 다 없고 전부 파괴된 것밖에 없어. 사람도 없고, 사람도 없는데 그저, 사람도 없는데 있다는 거는 가끔가다가 있는 것이 군인이 있는데 우리 있는 데 와 가지고서 마구, 사람은 막 꽉 찼어. 꽉 차 죽어 있으니까 ‘이거 살을 벗겨라, 살을 벗겨라’ 뭐 할라고 벗겨라 하는고 이래 그 비밀을 알아 보니까 이제 모두 다 군량은 없고 그래도 싸우기는 싸우는데 군량은 없으니까 이거 이것밖에는 먹을 수 없다고서 자꾸, 우리는 군인도 아닌데, 살을 벗겨라 해, 그러니까, 나하고 옆에 같이 있던 그 목사는 하나인가 벗겼어요. 나는 그 말 하는데 시시하이 들려지는 게 이래서, 그 벗기는 것을 보기는 봤어 보기는 보고, 만지지는, 손은 대지는 안 했어. 대지는 안했는데 이 벗기는 걸 보기는 봤어. 보니까 아랫도리를 이래 가지고 뼈만 남겨 놓고 이래 뭐, 칼도 없어요, 돌인가 뭘로 가지고 이래 막 떡떡 긁어 가지고서 이라는데, 그래도 기도할 마음이 없어. 기도를 못 했어, 그래도.

이라다가 ‘아, 기도해야 되겠다.’ 어떻게 먼저 주님을 몰랐다 말이오. 주님이 생각이 안 나요. 주님이 생각이 안 나고 그저, 그저 나중에서야 ‘기도해야 되겠다’ 기도해야 되겠다 하고 보니까 뭣이 조금 많이 정리가 돼 버려요.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아, 산 믿음! 그때사 산 믿음이 나와. 산 믿음, ‘산 믿음’ 하고 나니까 뭣인가 이상해져서 내가 눈을 떠 가지고 불을 켜 보니까 네시라.

‘산 믿음’ 하니까, 그게 그렇게 멀고 생각이 안 나요. 생각이 안 나. 인제, 나에게 뭐 그런 걸 보여 주신 것 같애. ‘네가 지금 뭐 산 믿음 산 믿음, 기도 기도하지마는 네가 지금 기도해 놔야 되지 그럴 때는 네가 기도할 여가도 없고 기도할 시간도 없다. 기도할 시간도 없고 뭐 산 믿음 생각할 여지도 없다.’ 그러니까, 자꾸 우리가 연습해야 됩니다. 요새 보니까 어떤 분들은 자꾸 이거 연습을 해. 알라고 말이지. 주님은 전능자십니다. 전능자십니다. 전능하신 주님이여, 전능하신 주님이여, 만능의 주님이여, 주권자 주님이여’ 자꾸 이렇게 말해 가지고 우리 두뇌에 그만 그것만 꽉 배고, 이 배암의 지식 이게 다 나가 버리고 그것만 꽉 배고, ‘주권 주님, 전지 주님, 전능 주님 창조주 주님, 대주재 주님, 만왕의 왕 주님’ 이래 가지고 머리에 꽉 배고, 신경에 꽉 배고, 정신에 꽉 배고, 마음에 꽉 배고, 감각에 꽉 배고, 그 모든 정서에 꽉 배고, 모두 싹 배어서 전부 다 배어서 이제, 베쪼가리에 완전히 붉은 물을 들이면 빨개지는 것처럼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막 물을 들여야 되겠다 말이오.

이러니까, 어떤 사람은 기도하기를 그래 해요. 기도하기를 ‘주님이여, 내게 있는 힘 전부 다 가지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 말씀을 읽을 수 있는데, 읽는 데는 이 말씀이 내 지식이 되고, 내 행위가 되고, 내가 이 지식대로의 사람이 되도록, 내 모든 행위에 이 지식이 꽉 배고, 내 지식에 꽉, 두뇌에 꽉 배고 내라는 사람에게 꽉 배서, 사람은 사람인데 전부 이거, 성경 영감 도리로 꽉 배어 가지고 있도록’ 그렇게 해 달라고서 그렇게 기도를 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거역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전쟁에 죽는다 말 아닙니까? 어짜든지 앞으로 삼십 분 기도하라는 이것이 무엇인가 큰 일을 이룰 겁니다. 자꾸 이라는 것이. 무심한 게 아니라. 내가 공연히 말한 게 아니라. 그거 말 안 할라 해야 안 할 수 없어서 했어. 이 전도지 두 장을 박은 것도 그날 밤 새도록 내가 고통을 당했어. ‘이거 박으면 다른 사람들이 미친 사람이라 할 건데 이거 자꾸, 이걸 그렇게 할 수가 있나’ 이래도, 나중에 가서 새벽녁에 돼서는 막 조아 대는데 할 수 없어서 내가 거기 자복을 했어. ‘주여, 내가 박겠습니다.

박겠습니다. 이 둘을 거석해서 내가 백만 장을 박겠습니다.’ 거기서 하나님 앞에 항복을 하고 이랬는데 그것도 박게 됐어요. 돼 가지고 그거 다 전하게 됐어. 다 전해졌어. 요번에 다 새로 박고, 새로 박은 얼마, 오백만 장이가? 오십만 장이가? 예? 아, 오십만 장 그때는 백만 장 했는데, 오십만 장 박은 거 이거 이제 조그매 남았어요. 다 나가고, 이러니까, 이거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감을 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도 하나님 말씀에 요렇게 해야 되겠다 하는 것이 성경에 딱 들어맞은 것이면 그게 바로 영감이오. 그게 영감이요. 그거 영감인데 그 생각이 전능의 생각이요, 전지의 생각이요, 만왕의 왕의 생각이요, 만주의 주의 생각인 것입니다. 딴게 아니오.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을 원하면서도 오신 주님을 배척을 해서, 배척을 자꾸, 성령 소멸이 주님 배척이오. 이래 놓고 주님을 취할라고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고로, 어짜든지 이번 기회에 똑똑히 회개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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