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멸망의 4가지 교훈

 

1988. 2. 8. 교역자회

 

본문:사무엘상 15장 17절-23절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또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니이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본문에서 우리들이 다 깨달은 그런 은혜가 된 줄 압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상대해서 사는 사람과 피조물을 상대해서 사는 사람의 그  결과는 판이합니다.

하나님을 상대하여 사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등용되어 하나님을 점점 가까이  관계를 가지고 만나게 될수록 점점 자기는 외로운 사람이며 또 무능한 사람이며  자기의 사명에 감당치 못한 점을 깨달아서 결과로 점점 겸손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상대하지 않고 피조물을 상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쓰여지게 되면, 하나님께 등용을 당하게 되면 모든 피조물들이 자기를 많이  따르고 또 존대하고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점점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 필연적입니다. 하나님에게 등용당한 사람으로서 그 사람이 하나님  상대하는 자인지 피조물 상대하는 자인지 자신도 알기가 참 어렵습니다.

여기에 사울도 보니까 사무엘은 그를 하나님 배반한 자라고 이렇게 밝혔는데  본인에게는 그 양심에 똑똑히 자기는 하나님을 가장 높이고 잘 섬긴 자라고  그렇게 대답을 자신 있게 했습니다.

이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조금 쓰여지게 되면 그  사람이 높아집니다. 또 커집니다. 목회자는 교인들이 따릅니다. 교인들이  모여들어서 교회가 커집니다. 모든 피조물 면은 하나님께 쓰여짐을 당하기  전보다 모든 것이 풍부하고 다 튼튼하게 되어지니까 그 사람은 필연적으로  교만해집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쓰여지기 전과 쓰인 후와는 아주 크게 피조물들 대우가 다르고  그의 모든 형편이 높아집니다. 그러기에 필연적으로 그 사람은 피조물을  상대해서 사는 사람은 교만해지고 또 모든 인인 관계에 강퍅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상대하는 그 사람은 피조물이 크고 많아지고 높이는 그것은  보지 않고 하나님만을 상대해서 보기 때문에 그에게 생겨지는 것은 두려움과  아무것도 의지할 것 없고 외로움, 그분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에 고독감과  두려움과 자기의 불충에 마음에 송구스러운 그것만 필연적으로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점을 다른 사람을 건너다 보는 데에는 확실히 압니다. 저 사람이  피조물 상대해 살고 있다 하나님을 상대하고 살고 있다 하는 것을 확정지울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확정을 지워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알기  어렵습니다. 옆에서 충고를 해도 이 사울은 몰랐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생각해야 하겠고,

다음으로는 자기는 이 등용당하기 전에다가 비해서 등용당한 후에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을 잘 갔고 또 하나님이 시키시는 그 일을 매우 잘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 미워하는 뭐 몇십 명도 못 죽였는데 이 아말렉 족속을 아각 한 사람  외에는 전멸을 했으니까 참 자기가 승리한 기념비를 세울 만하고 그렇게 다  청종했다고 할 만큼 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대해서 ‘내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내 명령을 버렸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기까지 사울은 하나님에게 패역한 자로 판정이  났습니다.

여기에서 이 세상은 자기와 가까운 사람이면 허물이나 실수나 그런 것을 보지  않고 오히려 용서와 이해와 용납이 더 풍부하다 그렇게 볼 수 있지마는  하나님에게는 당신에게 가까워질수록, 당신이 점점 더 요긴하게 등용을 할수록  그 사람에게 이전보다 까다롭습니다. 이전보다 요구하는 것이 더 거룩하고 더  확고하고 또 더 완전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잘못하면 인인 관계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누구보다 더 귀중히 취급하시고  같이 하시니 나는 이전 하나님과 멀었을 때보다 더 모든 일에 만만하고 그렇게  자유롭게 해도 하나님이 이해하시고 용서하시리라 그렇게 사람들은 자기  주관대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정반대입니다. 쓰여질수록, 가까워질수록, 하나님이 그를 크게 만들어  존귀케 할수록 그에게 대한 하나님의 욕구는 크고 또 까다롭습니다.

왜? 이는 사람은 자신이 더럽기 때문에 가까울수록이 가까운 것을 자꾸 더러워도  이해하고 용납하고 자꾸 이래 합니다. 하지마는 하나님은 그 자체가 완전이시기  때문에 그 완전에 가까울수록 불완전한 것은 더욱이 드러나고 빛이시기 때문에  더욱이 어두운 것은 밝혀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자기 마음에는 아각 한 사람만 남겨 뒀으니까 이만하면  충족하다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대노하셔 가지고 그를 완전히 왕의 직위에서  버렸습니다. 왕이 되지 못했습니다.

죽는 날까지 왕으로 계속하다가 죽었지마는 실은 왕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왕은  영광이요 권세인데 그는 참 한없이 무능한 천대를 받았고 그는 모든 사람에게  멸시를 받아 마지막에는 자살하기까지 이르는 그런 비참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이 두 가지를 우리가 기억해서 스스로 반성을 해야겠고 또 남을 보아서  자기가 또 깨달아지는 것도 좋습니다. 성경은 네가 남의 눈에 티를 본 그것으로  인해서 네게 들보를 찾으라 이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인간은 부패해 있는고로  남으로 인해서 자신이 깨닫도록 하는 그런 방편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사람으로 ‘저 사람이 이 사울 같은 걸음을 걷는  사람이라’ 하는 그것을 두루 살필 때에 내 생활을 하고서 자기 생활로 돌려서  생각할 때에 거기에서 정확한 깨달음이 생겨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깨달을 것은 그가 백성들의 그 모든 소유 중에 마땅히 멸해야 할 그  멸할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드릴라고 남겨 두었다 그렇게  여기에 말했습니다.

우리가 자기 보기에 좋다고 자기 보기에 잘된 일이라고 자신 본위로 하나님  섬기는 일을 택정하는 자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 섬기는 것은 하나님 본위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치워야 하겠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면 당신에게 바쳐야 될 터인데  하나님의 뜻은 생각지 않고 제 주관을 표준해 가지고서 하나님 섬긴다는 이것은  하나님 앞게 크게 모욕을 주는 일인 것을 깨달아 자기 주관에 맞은 일이라고  그것을 벌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로 착각을 하게 되면은 고다음에는  멸망입니다. 고다음에는 뭐 남은 여지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네째로 생각할 것은 그때에 사울의 스승이요 선지자요 분명히 지도자요  자기를 장립시킨 자였습니다. 이랬는데 그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할 때에 그  지적하는 것이 사무엘로서는 생명을 내놓고 지적한 것입니다.

사울은 용사요 무기를 가진 자요 그때 땅에 있는 권세를 가진 자인데 그 강퍅한  자에게 그런 사랑의 경고를 해 주는 것은 생명에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무릅쓰고 그것을 말해서 경고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달게 받지 안하고 거기에서 제 주관대로 변명하고 회개할 줄  몰랐습니다. 변명하고 회개할 줄 몰랐습니다.

그것이 기회를 놓치고 난 다음에는 그 뒤에 후회를 해도 그것이 다 무효가  되었고 마지막에는 사무엘이 세상 떠나고 난 다음에는 사무엘이 그리워서 돌팔이  무당한테까지, 미래를 뭘 알려 주는 그런 것이 그리워서 무당에게까지 가서  사무엘을 불러달라고 말해 가지고 마귀가 사무엘의 형상으로 나타나 가지고  마지막 그는 완전히 하나님과의 배반한 마귀의 종으로 끝을 마치고 만 것입니다.

이 네 가지를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제가 보는 대로는 너무 허무합니다. 허무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전도사 되기  전과 전도사 된 후와 어떻게 차이가 많고, 목사 안수 받기 전과 안수 받은 후가  너무도 생각 못 할 만치 차이가 크고, 또 자신이 목회에 약간의 성공이라고 할까  하는 성공한 지 후와 하기 전과가 너무도 격차가 심합니다.

또, 자신이 배워 학자의 위치에 도달한 전과 그후와도 너무 놀랠 만치 격차가  심합니다. 또 지방에 있다가 도시로 나온 지 후, 소도시에서 대도시로 옮겨간 지  후, 한국에서 제일 큰 서울로 옮겨간 지 후 너무도 그 차이가 놀랠 만치  달라집니다.

또, 그가 집회 인도에서 은혜를 끼치기 전과 한 번 은혜 끼친 후와 또 두 번  집회에 은혜 끼친 후, 몇 번 집회를 해 갈수록 점점 교만해지고 그는 하나님  앞에 참 놀랠 만치 변해지는 것을 봅니다. 그것이 분명히 하나님 상대가 아니고  피조물 상대라는 것을 이 성경을 보아서 우리가 알 수가 있고, 사울처럼 하나님께 등용을 당할수록 그분은 더 성결을 요구하시는데 이 세상  모든 만물보다 거짓된 인간처럼, 인간은 자신이 거짓되기 때문에 가까울수록  거짓 것을 용납하고 자기와 멀수록 그것을 삼가서 거짓 것을 용납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정반대입니다.

이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요구가 점점 우리에게 보다 더 정확하기 때문에  비유컨대 일학년 정도에서는 네가 그만하면 족하다 할 수 있는 그것도 이학년이  되면 하나님은 족하게 여기시지를 안하십니다. 보다 더 요구하시고 올라갈수록이  더 하나님은 정확하고 세밀하고 온전한 것을 하나님이 요구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여기에서 깨달아서 자신이 스스로 삼가야 하겠고, 또, 사울에게 대한 사무엘이나 오늘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선배나 또 더  연령적으로나 목회 연조적으로나 또 목사된 그런 연조적으로나 언제든지 자기  위에 또 자기 앞에서 자신의 희생을 생각지 않고 옳게 바르게 인도해 볼라고  하는 그 사람의 인도를 귀중히 여기지 안하면 마지막에는 사울이 점쟁이한테 가  가지고 사무엘을 좀 불러 달라고 하기까지 그렇게 자기의 미래를 좀 알려 주는,  장래를 알려 주는 그런 지도자와 시승을 만날라고 해도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어떤 학자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참 유일로  자기의 신앙 선배로 지도자로 모시고 있는 사람이 세상을 떴습니다. 그래 그분이  이제는 물을 데도 없고 지도받을 데도 없고 책망 받을 데도 없고 가르침받을  데가 없다 하면서 그분이 심히 며칠 동안 애곡하는 그런 것을 제가 실지로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울이 그렇게 마지막에는 사무엘을 좀 불러 달라고 할 그때의 그 심정을  자세히 생각해서 그렇게 그리워해도 자기의 미래를 알려 주는 그런 것이 기회가  지나가면 하나님이 철거하기 때문에 없어집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에 저주 중에 제일 큰 저주는 어떤 게 저주냐?  이스라엘 가운데에 선지자를 거둔 것이 저주였습니다. 그보다 더 큰 저주는  없습니다. 선지자만 있으면 뭐 어떤 일이 있어도 헤어날 수가 있고 또 문제  해결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 같이 잠깐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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