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은의 나라 사랑의 희생의 나라

 

1986. 11. 12. 밤 (수)

 

 본문:베드로전서 1장 20절∼25절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예수님께서 택자들의 구주가 되신 것을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택자들의 구주가 되신 것을 선포하신 것은 모든 예정과 창조 전에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구주가 되신 것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탄생하신 그것이 시작이 아니고 또 창세기 15장에 여인의 후손이 인류의 구주가 될 것을 선포하신 그때가 시작도 아니고 창세 전에 우리의 구주 될 것을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당신의 의지 세계에서 발표하셨던 것을 말합니다.

“그는” 예수님은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그러면 예수님이 택자의 구주되신 것은 천지 창조 후가 아니고 창조 전에 그렇게 작정하신 것을 당신의 의지에서 발표하신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석가모니는 예수님 탄생보다 좀 앞에 났고 예수님은 그 후에 생긴 분이라’ 이렇게 사람들이 말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경에 발표하시기를 창세 전부터, 우주와 영계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우리의 구주가 되실 것을 하나님께서는 다 정하시고 나타내셨다 하는 말입니다.

요것도 우리가 굳게 잡아서,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탄생하실 그때가 예수님이 생긴 시발이 아니고, 또 창세기 15장에 선포한 것이 그때가 시발이 아니고, 이 우주와 영계와 모든 만물을 창조하기 전 예정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그 목적의 비밀 안에서 우리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택함을 입을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의 그 신성이, 예수님의 인성은 그때 입었지마는 예수님의 신성이 우리 구주로 존재하신 것은 영원 자존하신 그때부터고, 또 예수님의 인성은 하나님의 예정이 있기 전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실 그때부터 하나님 의지 세계에서는 작정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이종교들이 저거가 ‘기독교의 교주인 예수님이 뒤고 그 앞에 있었다’ 그런 말 하는 것은 성경을 몰라서 하는 말인 것입니다.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이제 말세 성도 우리들을 위해서 이분이 사람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사람으로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 오셨고, 또 구약에 있는 모든 예약을 바라고 있는 하나님의 성도들을 예약 완성을 하시기 위해서 오셨고 우리 구원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래서 “이는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사람되어 땅위에 오시도록 그렇게 하셔서 예수님이 탄생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시는 그 역사로 도성인신하셨지 제이위 성자만으로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21절에,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우리 택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또 죽은 가운데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이 사활의 대속, 사활의 대속의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러면 예수님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영광을 주었는데 그 영광 주신 것은 뭐 때문에 영광 주셨느냐? 택자들을 대신해서 죽으시고 살아나신 그것 때문에 영광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삼위일체 하나님이 제이위 성자가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십자가 못박혀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또 삼 일 만에 대속의 부활을 하심으로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에게 영광을 주셨습니다. 요거 좀 어려운 말인데 여러분들이 잘 들으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영광을 주신 것은, 예수님에게 영광을 주신 것은, 예수님에게 영광을 주신 것은 예수님의 신성이 없는 가운데서 천지를 만드셨다고, 영계를 만드셨다고 영광을 주시지 안했습니다. 또 전지 전능자라고 해서 영광을 주신 것도 아닙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제이위이신 그리스도에게, 예수님에게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영광을 주신 것은, 성부 성령이 성자에게 영광을 주신 것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도성인신하셔서 십자가의 대속의 사활을 설정하신 예수님에게 영광을 주신 것은, 요거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러면,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심으로 삼위일체께서 예수님에게 사활하신, 죽고 사신 예수님에게 영광을 주었습니다. 그러면 영광을 주신 것은 예수님이 권세 있고 능력 있고 지혜 있고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영광 주신 것 아닙니다.

이거는 성부의 영광도 아니요 성령의 영광도 아니요 성자에게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영광스럽다’ 이렇게 존귀한 영광을 주었습니다.

그러면 성부나 성자나 성령이나 꼭 같이 전지 전능입니다. 또 창조하실 때에 꼭 같이 창조했습니다. 그러면 성부나 성자나 성령이나 꼭 같은 영광을 가질 것인데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에게만 영광을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 영광 준 이유가 뭐인가? 죽고 사신 것 때문에 영광을 줬습니다. 죽고 사신 것 때문에 영광을 줬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예수님을 살리셨다” 했는데 그거는 지금 말할라면 여러분들이 좀 복잡할 것이고 요것만 지금 가르쳐 주겠습니다. 예수님이 삼위일체에게 영광 받으신 것은 택자를 대속하시는 사활의 대속 공로를 설정했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영광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영광 주시는 것은 어떤 자에게 영광 주신다 하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이는 천국뿐 아니고 세상에서도 그러합니다. 만일 그 가정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고 하면 그 부모지마는 영광이 다릅니다. 자녀들이 영광을 돌릴 때에 어머니에게 영광을 많이 돌릴 수도 있고 아버지에게 영광을 많이 돌릴 수도 있고, 또 그 집안에 사람들이 영광을 돌리는 것이 다릅니다.

그 다른 것은 분명히 그 자녀들과 가족들이 어머니에게 영광을 많이 돌린다고 하면 어머니가 그 가족과 자녀를 위해서 많은 사랑과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많은 사랑과 은혜의 희생을 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일반은 다 어머니에게 영광을 돌리는데 또 아버지에게 영광을 많이 돌릴 수도 있습니다. 그는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대해서 자녀를 위하여 사랑함으로 희생의 그 공로가 많으면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래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에게 영광 돌린 것은 뭣 때문에 영광을 주었느냐? “영광을 주셨다” 하나님이 영광을 주셨다 했습니다. “영광을 주신 하나님” 그러면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영광을 주셨습니다. 영광 주신 그 이유가 어데 있느냐? 죽고 사신 것 때문에 영광을 주셨습니다.

이제 가정에서도 말했습니다. 또, 아마 어떤 학교에서 교육가에 대해서도 모든 그 학생들이나 동창생들이 교장이라고 높이고 또 이사장이라고 높이고 그렇지만도 아닐 것입니다. 이사장도 아니요 교장도 아니요 교감도 아닌데 어떤 그 말단 선생님에게 온 학생들이, 온 동창회 학생들이 다 머리를 숙여서 영광을 돌린다면은 분명코 그 선생님이 그 학생들을 위한 많은 희생과 노고가, 공로가 있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여게서 우리가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그 본성이 어떠하며 대우나 영광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여게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왜 하필 성부도 성령도 영광을 주지 안하시고 성자에게 영광을 주셨는가? 성자에게 영광을 주신 것은 “죽고 사신 그것 때문에 영광을 주셨다” 여게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서 살 하늘나라, 모든 택자들을 다 만날 것이고, 또 천군 천사들을 만날 것이고, 모든 피조물들을 만날 것이고, 또 지옥에 있는 모든 그 사람들도 가까이 못 하나 만나고 있을 것입니다.

있는데, 그 나라에는 그 영광이 어떠할까? 비록 지옥에 있는 사람이 하늘나라 오지는 못했어도 하늘나라에 있는 예수님에게 영광을 돌렸다 이랬습니다.

예수님에게 영광을 돌렸다. 그러면 지옥에 있는 사람들이라도 하늘나라 가지는 못했지마는 이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도 무궁세계 가 가지고 그 사람에게, 지옥에 있으면서 그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는, 영광 돌림을 받는 그런 사람이 하늘나라에 있을 것입니다.

또 천국에서도, 천국에서도 우리 이 같은 시대에 산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 같은 시대에 산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천 년 전에, 이천 년 전에, 삼천 년 전에, 혹은 몇백 년 전에 살고 간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와 동시대에 산 사람이 아닐지라도 그 나라에 가 가지고 우리들이 특별히 어떤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는 그런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기 동시대 사람이나, 아주 다른 시대의 사람이나, 나는 동양 사람인데 저 서양 사람이나 그 사람의 모든 세상 살이가 옷 입듯이 입고 있기 때문에, 옷 입듯이 다 입고 있어서 그 모든 일생의 생애가 옷과 같이 밖에 환하게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참 듣지 못한 사람들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비로소 그를 보고서 영광을 돌리고 머리를 숙이고 환영을 하고 할 것이요, 또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지마는 만났을 때에 아주 냉정하고 본듯 만듯 아무 상관없이 그렇게 아주 냉정스러움을, 냉대를 당하는 그런 사람들도 하늘나라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은 당신 위해서 사시지를 안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집이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했습니다. 인자라 말은 아주 인간 중에 제일 천한 인간이 인자라 말인데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 중에 제일 가난하고 천한 자 된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인류에게는 없습니다. 아무리 없어도 예수님보다는 부자입니다.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이렇게 예수님은 순전히 당신 위해서 하지 안하셨고 첫째는 우리 택한 자들을 위해서 있는 걸 다 기울이셨고, 또 다음에는 지옥에 가 있는 그 사람들 위해서도 다 기울이셨고, 다음에는 모든 이 피조물들을 위해서 다 기울이셨기 때문에 그 기울임의 효력이 지옥에 있는 자들에게는 아무 효력이 없었지마는 그래도 그들도 정평 정가로서 대우는 합니다. 이래서 “땅아래 물속에 있는 자들도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주라 시인하면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렸다” 이렇게 빌립보 2장에 말씀을 해 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러한 영원한 세계가, 이러한 영원한 세계, 참 세상에서는 상상도 못 할 그 평가로 되는 알지도 못한 한 이상스러운 그 세계가 영원히 계속 되고 있다는 이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뭐 세상이나 다름이 없어. 세상도 그러합니다. 참, 아마 그 가정에 부모면 다 울겠지마는, 부모면은 자녀들이 다 죽으면 울겠지마는 울음은 다를 것입니다. 다른 것은 각각 다 자기 속에서 울려 나오는 그 눈물은 그 죽은 아버지나 어머니의 그의 일생 동안 자기와의 관계된 거기에 예수님의 사활하신 거와 같은 그런 성질의 그 사랑의 희생의 노고에서만 그 자손들의 속 눈물은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래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이제 영광을 주신다 하는 거게 대해서 하늘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짐작을 하고 지나가야 될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어떠한 나라인가? 그러면 나는 이 세상에서 산 이 생활이 벌거벗은 거와 같이 다 나타날 터인데 지금이야 뭐 언변으로 둘러싸고, 돈으로 둘러싸고, 막 복수성인 악을 가지고 둘러싸고 이라니까 사람들이 정평 정가를 못 합니다. 사람에게 바른 말 어데 다 할 수 있습니까? 못 하지마는 그때는 “벌거벗은 거와같이 드러난다” 그랬습니다.

드러나면 우리의 모든 언행심사의 대인 관계, 사람들을 대한 대인 관계, 대사물 관계, 물건은 물건대로 내가 대한 그 사물 관계 그런 것이 다 나타나게 될 때에 그때에 아무 가릴 것이 없이 이대로의 그 세계에 우리도 가서 서야만 할 것인 것입니다.

이래서, 하늘나라는 어떤 나라냐? 사은의 나라라 그래 할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은혜를 감사하는 나라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늘나라는 사랑을, 사랑을, 사랑을 송축하는 나라라. 사랑을 찬송하고 사랑을 축하하는 나라라. 이러니까 다시 말하면 하늘나라는 사랑의 희생의 그 가치를 가지고 그 가치로 모두 다 가치를 삼는 그 나라라.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는 악독을 가치로도 삼고 불량을 가치로도 삼습니다. 김일성 같은 저런 사람은 그 악독과 불량을 지금 가치로 삼아 가지고 이북 사람들이 꼼짝 못 하고 존경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그런 강제가 하나도 없고 다 모두 감화의 나라요, 감탄의 나라요, 사은의 나라요, 그 사랑의 희생을 송축하는 그 나라인 것을 우리가 여게서 깨닫고, 그러면 우리의 하늘나라의 가치는 그것으로서 우리의 가치가 되니까 우리가 이것을 깨닫고 세상 살이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나그네로 지낼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이것의 반대, 다른 사람을 희생하는 것으로서 매일 기쁨을 삼고, 또 잔인하고 악독하여 다른 사람을 가해하고 탈취하고 착취하고 다른 사람을 삼켜서 이렇게 자기의 무엇을 이루는 이 세상인데 우리가 이 세상만 보고, 인간은 이 세상에서는 오래 살 게 아니고 잠깐 떠날 사람인데 이것 모르고 이 세상 사람들이 사는 그대로의 그 방편과 그 표본, 그 평가, 그 비판, 그들이 평가하고 비판하는 그것 가지고 우리가 살았다가는 왕창 속습니다. 참 이거는 아주 정반대의 완전 실패자가 될 것인 것입니다.

이래서,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믿는 자라.

그러면 믿는다는 것은 세상에 사람들이 뭐 별별 걸 믿고 안 삽니까? 돈 믿고 사는 사람도 있고, 기술 믿고 사는 사람도 있고, 젊음을 믿고 사는 사람도 있고, 건강 믿고 사는 사람도 있고, 또 남편 믿고 사는 사람, 자녀 믿고 사는 사람, 부모 믿고 사는 사람 다, 다 믿는 그 모든 것이 다 부처 믿고 사는 사람, 뭐 또 뭐 마호멧트 믿고 사는 사람, 별별 걸 믿지마는 그 모든 믿음의 대상이 믿는 대로 효력을 줄 수 있느냐 하면은 효력을 주지 못하고 그 자체들이 다 절단나 버리고 맙니다.

아무리 믿는다 하지마는 어느 종교든지 종교에서 믿는 그 교주가 죽어 버리고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 가지고 있으니까 그게 무슨 믿는 자에게 대해서 대응을, 보응을 해 줄 수가 있습니까? 아무 보응을 해 주지 못하지 않습니까? 이래서, 참 이 세상에 헛된 것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예수님께서 당신이 사람되어 오시고 십자가상에서 죽으시고 또 부활하시고 하신 이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이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서 이렇게 사활의 공로를 베푸신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는 것이 천도 만도 넘은데, 모든 사람들이 다 천도 만도 넘은 그 모든 거 믿다가 다 낭패당했는데, 믿다가 다 낭패당했는데, 낭패를 당하지마는 낭파당하고 난 다음에 알지 낭패당하기 전에는 다 태산같이 믿고 가는데, 가는 그것이 전부 다 헛일 아닙니까? 이런데, 우리가 영원히 불변하신 하나님을 믿게 된 이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 믿게 된 것이.

자, 이분을 믿게 된 것이 이분이 우리가 믿은 대로 그분이 우리를 속입니까? 우리가 믿은 대로 대응을 안 해 주십니까? 믿은 대로, 내가 그분을 믿은 대로 그분은 내게 대해서 다 그대로 대응을 다 해 주십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는 다, 모두 다, 저는 이 공동묘지 항상 지나가는데 그 지나가면서 늘 그런 것 생각합니다. ‘저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이 다 속이고 속은 사람들이다. 저 무덤에 묻힌 사람이 살아 있는 자에게는 전부 속이고 가 버렸다. 다 속이고 갔다. 다 속이고 갔다. 이럴 줄 몰랐다고 다 속이고 갔다.’ 태산같이 믿었는데 다 헛탕입니다. 또 그분도 다 속고 갔습니다.

세상에는 다 속이는 것과 속는 것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속지 안하는 참 믿을 만한 걸 믿고, 바라볼 것을 바라보고, 하나도 헛일이 없는 것을 바라보고, 하나도 헛것이 없는 것을 믿고 하는, 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바라게 된 이것이 뭐, 이거 뭐 평생 감사하고 기뻐하고 우리가 눈물 흘려도 이 감사를 다 갚지 못합니다. 얼마나 하나님 믿게 된 것이 이거 기쁩니까? 우리가 그리 아니면 일생 동안, 자기가 사람 믿는 사람은, 사람 믿는 사람은 사람 믿고 모든 것 살다가 그 사람 믿음의 대상이 다 절단날 때 다 헛일 아닙니까? 이런데 이 하나님을 우리가 믿게 된 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에게 있게 하였음이니라”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했다. 우리 믿는 것이 하나님 믿게 했고 우리가 땅위에 아무것도 소망하지 안하고 하나님 소망하게 한 이것이 뭐이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그러면 우리가 믿는 것과 소망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있도록,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소망하도록 이렇게 된 것이 이것이 뭣 때문에 어떻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을 소망하게 됐습니까? 우리 믿는 것이 하나도 헛일이 되지 안하고 “믿은 대로 되리라” 성경은 다 전부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대로” 자, 여러분들, 나는 그 사람을 태산같이 믿었는데 내가 믿은 대로 그 사람이 응해 줘야 되지, 응해 줘야지? 믿는 것은 믿는 게 문제가 아니고 믿는 대로 그대로 응해 주는 게 문제입니다. 나는 그 사람이 내 자본을 튼튼히 대 주리라 믿었는데, ‘뭐 나는 아무것이가 있기 때문에 자본 문제는 문제가 없다’ 자본을 넉넉히 대줄 줄 알았는데 나는 태산같이 믿고 있는데 막상 가니까 돈 한 푼도 대 주지 안합니다.

자, 믿는 것이 큰 일입니까 믿은 그대로 상대방이 믿은 대로 응해 주는 것이 큰 일입니까, 응해 주는 것이 큰 일입니까 믿는 것이 큰 일입니까, 자, 응해 주는 게 큰 것인지, 믿는 일이 큰 것인지 그거 한번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믿는 것이 크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그러면 믿는 대로 응해 주는 것이 크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소망하는 것이 큽니까 소망한 대로 다 이루어 주는 게 큽니까? 이루어 주는 게 큽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뭐 별별 종교가 다 쌔버렸는데, 별별 종교가 다 쌔버렸는데 이렇게 믿을 대상이 천도 만도 넘은 세상에서 한 분이신 완전하신 하나님, 이 하나님을 우리가 믿게 된 이것이, 또 세상에는 뭐 별별 소망이 다 쌨는데, 사람 소망하는 거, 사람을 바라보는 거, ‘사람이 잘해 줄 것이라’ 사람을 바라보는 거, 물질을 바라보는 거, 과학을 바라보는 거, 자기의 기술을 바라보는 거, 자기 총명을 바라보는 거, 건강 바라보는 거, 이 세상에 바라보는 것이 사람 사람마다 뭐 바라보는 것이 꽉 찼는데, 그게 다 헛된데, 바라보는 거 하나밖에는, 하나님 바라보는 거 요거 하나밖에는 온전한 게 없고 속을 것이 없고 후회될 것이 없는 요 바라봄인데 이 하나님 한 분을 우리가 소망하게 된 것이 이것이 얼마나 큰 일이요 얼마나 기막히는 일인지 모릅니다. 이것을 느껴봤습니까? 여러분들 자꾸 자라야 됩니다.

가만히 이거는, 이러니까 이거 암만 말 해야 못 알아듣소. 사람이 돼져야 되지.

사람이 돼져야 돼.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됐을까?’ 하는 여게 대해서 천하를 다 주는 것보다 이게 크다는 것을 자기 속에 깊이 느껴질 수 있는 그것은 사람이 돼감에 따라서 느껴집니다. 또 내가 하나님에게 소망을 둔다는 것, 사지에서도 하나님에게 소망 두고, 공산주의 첩첩 포위 중에서도 하나님께 소망 두고, 어데서든지 하나님 한 분에게만 소망 둔다는 이것이 얼마나 큰지. 어떻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만을 소망하고 그분만을 믿도록 됐나? 이것을 여기 말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우리가 이렇게 수많은 믿음의 대상, 소망의 대상이 많은데 하나님 한 분을 소망하고 믿게 되는 이 길이 어떻게 트였느냐? 하나님이 사람돼서 오셨고, 사람되어서 우리를 이 길을 틔우기 위해서 죽으셨고, 또 영원히 사람으로 살아나신 이 사활의 대속의 사랑으로 인해서 이 길이 열려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가 죄와 마귀와 사망에게 갇혀 있는 데에서 이 죄의 형을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받음으로 우리를 삼킨 죄가 박살났고, 또 사망이 박살났고, 마귀가 박살났고 우리는 해방과 자유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이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영원한 해방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또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완전 통과시키기 위해서 죄 없는 자로,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 이행자로, 하나님과 완전 화친한 자로 우리를 이렇게 공심판에서 완전 통과시키기 위해서 당신이 이렇게 우리를 대신해서 사셨는데 우리 위해서 대신해서 사시면 그 사심이 억만 년 가도 그대로 아직까지 미결될 터인데 마귀란 놈이 이 사시는 걸 살지 못하도록 할라고, 항복 받을라고 자꾸 이와같이 고형을 하다 그만 예수님이 달칵 그만 세상에 떠버렸다 말이요, 죽어버렸다 말이오. 이래서 마귀는 손 들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 공심판을 면케 했지, 다시 사람으로 부활하셔서 하나님을 향하여 영감과 진리로 영원히 하나님을 향한 사는 것을 우리 대신 사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중생으로서 영생하는 이 생명을 얻게 됐습니다.

이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이 세 가지 대속을 주신 이것만 생각해도 평생 생각해도 모자랍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 세 가지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의 대상이 천도 만도 넘은데 참된 하나만 되는 하나님을 믿게 됐고, 헛된 소망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그 소망이, 미혹의 소망이 천도 만도 넘은데 우리는 영원히 후회 없는 참된 하나만이 소망되는 하나님을 소망하게 된 것이 예수님의 이 사활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자 됐습니다. 이래서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하늘나라는 어떤 나라냐? 사은의 나라입니다. 사은의 나라기 때문에 내가 그 하늘나라에 가서 모든 하늘나라에 있는 백성과 또 만물을 만날 때에 만물과 모든 백성이 나에게 대해서 사은할 일이 없으면 나는 가거나 말거나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고 아무 상관 없습니다.

그들이 나에게 사은할 수 있는 그 일을 내가 했어야 한 것만치 그들은 나에게 사은할 것이라.

열 사람에게 사은을 받을 수 있는 일 했으면 열 사람에게 사은 받을 것이고, 억만 사람에게 사은 받을 수 있는 일 했으면 억만 사람에게 사은 받을 것이고, 한 사람에게도 ‘은혜를 감사합니다’ 은혜를 끼친 게 없으면 그에게 사은을 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사은의 나라라. 사은의 나라라.

사랑의 희생의 나라라. 사랑의 희생만이 가치로 삼는 나라라. 그러면 제가 사랑 없었고 희생 없었으면 그 나라에서는 가치가 하나도 없소. 내가 사랑하지 안했는데 그들이 나에게 좋아할 게 뭐 있으며, 내가 사랑함으로 그들에게 희생해서 끼친 게 없는데 내게 대해 그럴 것이 뭐 있습니까? 우리가 가서 살 영원한 나라는 이 나라입니다. 그걸 우리가 첫째 배웠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에게 영광을 주신”이라 하는 것으로서 하늘나라의 성격을 배웠습니다. 하늘나라의 그 공기와 분위기를 배웠습니다. 하늘나라의 공기와 분위기. 그때야 뭐, 그때 모든 사람들이 참 사은하는 것은 좋아하겠지? 그럴 거 아니겠습니까? ‘아이구, 감사합니다’ 이라면 좋을 것 아니겠습니까? 사은하는 것이 영광이 있을 것이고, 또 사랑으로 희생했으면 희생에 대해서 감사하는 그 영광이 있을 것이지마는 이 세상에서 못한 걸 그 나라에 가서 아무 소용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이 영원 무궁세계를 향하여 그 나라를 준비하는 이 나라로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나그네로 지낼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나그네로 지낼 때를 우선 너 좋도록 하지 말고, 우선 너 좋도록 하지 말아라. 너 좋도록 하지 말고 그 나라를 생각하며 살아라 말한 것입니다.

나는 우리 교회에 ‘왜 저 ○장로님을 우리 교회 갖다 놨을꼬?’ 싶어요. 여기 와서 그만 영 인제 살았어. 뽈뽈뽈 인제 잘 걸어다녀. 나이 많으면 다 그리 돼요.

이랬는데, 보니까 딸들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이렇지마는 딸도 여게 있는데 아마 딸에게 안 주는 모양이라. 아들이 항상 새벽이고 저녁이고 언제든지 모시고 꼭 와, 보니까. 좋아서 살이 찌고 뭐 청년이 됐어.

내가 볼 때에, 저먼저께 큰아들이 왔어. 큰아들이 왔는데 큰아들이 모시고 와 가지고 이라니까 옆에 다른 사람이 이래 자꾸 이래 좀 앉히고 어짜고 이래 쌓아.

이래 쌓는데, 그래 내가 퍼뜩 보니까 그 큰아들이 아버지가 병신같이 엉꾸렁하게 귀신같이 이래 가지고 이래 이래 오니까 ‘저 큰아들이 좀 부끄러워하지 않느냐, 좀 그 아버지를, 아버지를 그래 가지고 모시고 오며 부끄러워하지 않느냐?’ 그게 내 눈에 팍 띄서 내가 살펴봤어. ‘만일 부끄러워하면 그놈은 저주받지 축복을 못 받을 놈이다.’ 내가 지금 그 말을 할라고 지금 하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아니라. 옆에 사람이 거석하니까 자꾸 이래 가지고 나중에 보니까 그런 게 아니고서 알뜰히 모셔요. 모시는데, 큰아들보다 작은아들이 더 낫게 모신다 하는 것을 내가 보고 있어, 내가 잘못 봤는지 못라도. 거게 대해서는 내 마음이 감사가 돼져요. 그 존경이 돼져요.

존경이 돼져서 ‘저거 참,내가 그 며느리를 보지 못했지만며느리 괜찮다. 저거 저래 놓으면 며느리 그게 자꾸 궁청궁청궁청하며 이래 쌓으면 여게 오래 있지를 못 할 건데 아마 그렇지 않는갑다.’ 그래 내가 ‘저게 장가를 잘 들었다. 어디로 들었는고?’ 참 그런 마누라 없습니다. 어데 부모를 모시라 말이요? 어데 손님을 모시라 말이요? 그라면 막 남편이 종이 돼 가지고 막 이리이리 해도 하루 이틀이 어렵습니다. 그거 다 저주 받소! 그거 다 저주 받아요, 다! 하늘나라는 사은의 나라라! 내가 은혜 끼친 게 있어야 그 나라에서 환영을 하지! 하늘나라는 공로의 나라라, 하늘나라는 사랑의 희생의 나라라 하는 것을 좀전에 말했습니다.

이랬는데, 그분이 어떻게 희생했는가? 우리가 믿음의 대상이 천도 만도 넘은데 하나님을 어떻게 믿게 됐으며, 우리 이 미련하고 강퍅한 우리가 소망하는 것이 뭐 돈도 소망하고, 기술도 소망하고, 땅위에 소망하는 것이 많은데, 소망하는 게 많은데 어떻게 이 완전하신 하나님을 소망하게 됐는가?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이 하나님이 피조물 되어 오셨고 피조물 되어서 우리 위해서 십자가의 대형 대행의 사죄의 대속을 하셨고, 또 다시 인체를 입으시고 인성을 입으시고 이렇게 부활하신 이것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 믿게 됐고 하나님 소망하게 됐으니까, 지금은 뭐 이래 쌓아도 여러분들도 이래 쌓아도 천층 만층입니다.

내가 하나님, 나를 땅위에 살리는 것보다도 뭣보다도 나를 하나님 믿게 하고 하나님 소망하게 한 여게 대해서 자기 생명보다도 귀하고 땅위에 모든 것보다도 여게 대해서 못 견딜 만치 참 이 은혜가 지극히 크다는 이것을 세상에서도 깨닫는 사람 있지마는 그보다도 하늘나라 가면 다 깨달아.

하늘나라 가면 다 깨달으니까 모든 사람이 자기 소유와 자기 생명보다 다 주님을 더 사랑할 것이고, 자기 생명보다 자기 전부를 다 기울여서 주님을 감사하고 주님을 높이 섬겨 영광을 돌리지 못해서 철천지 한되는 것이 하늘나라의 모든 천군 천사와 사람들과 만물들일 것입니다. 이 나라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나라가 기다리고 있으니 내가 이 나그네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될 건가? 악, 악, 악,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저만 아는 악, 악한 처! 악한 남편! 악한 부모! 악한 자식! 악한 이웃! 악한 형! 악한 동생! 이는 택한 자라도 하늘라 가 가지고 그는 참 낯 들지 못할 것이고 불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이 될 것인 것입니다. 이 나라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여기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 소망과 믿음이 있게 하셨으니”

22절 보십시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게 하여” 영혼이라 하면, 영혼이라 하면 우리 마음과 이 고기덩어리를 다 합해서 영혼이라고 말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영혼을 깨끗게 하여” 우리 심신을 깨끗게 하여, 육을 깨끗게 하여, 육을 깨끗게 하여, 육을 깨끗게 한다 말은 어떻게 하는 게 깨끗하게는 것인가? 육에게 병든 것을 다 추려내 버리면 깨끗해집니다. 육에게 모든 잡탱이 가짜를 추려내면 다 깨끗해집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것이 그게 깨끗한 것인데 말씀을 지키면 우리의 마음이 점점 깨끗해지고 우리 몸이 점점 깨끗해집니다. 이 세상 마귀의 지식 이 세상 것으로서 박사 가지고 있으면 박사는 그 박사 가지고 더러워지기를 아주 더러워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우리 마음이 정상이 되고, 변질, 우리 마음은 다 변질이오. 우리 마음이 다 변질돼서 다 비정상이요, 우리 몸뚱이도 비정상이요, 습성도 비정상이요, 모든 신경도 비정상이요, 우리의 감정도 비정상이요, 전부 비정상의 비정상적인 인간이 돼 가지고 있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자꾸 하루 이틀 순종해서 살다 보면 우리 영혼이 깨끗해집니다. 우리 심신이 깨끗해집니다.

깨끗해지면 뭐 할라고?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이래 가지고 우리들이 과거에는 우리 심신은 무슨 심신이냐? 자, 뭐라고 쌓아도 자기 심신, 도덕가입니다. 도덕가라 해도 도덕가의 그 마음과 고기덩어리를 세밀히 분석하면은 그 속에는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돈이 있으니까 그놈 돈을 뺏들고, 또 어떤 사람은 돈을 줘서 유도 작전해 가지고 그 사람의 재산을 뺏들고, 어떤 사람은 물질을 줘 가지고서 그 사람의 마음을 뺏들고, 또 모든 거 가지고서 다 이래 함으로써 저를 존경하도록 해 가지고서 숭배케 해서 자기를 존귀케 하기 때문에 모든 도덕가 종교가들이 다 고등 착취자입니다.

알겠습니까? 모든 도덕가와 종교 창설자들이 고등 착취자기 때문에 지옥의 제일 밑층에 있는 자들이 다 종교 창설자들이 거기 가 있습니다.

이런데, 우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심신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돼 가지고서 중생된 새사람, 중생된 속사람, 이 속사람은 우리가 진정코 우리 속에서는 그러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인간을 참으로 행복된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내가 일생을 바쳐 살까?’ 하는 그 마음이 섞임없이 진정 있습니다. 진정 있소.

우리가 과거에 뭐 이 예수 믿기 전에도 뭐 도덕 행위도 했고 이런 거 다 했지마는 그 속에는 흉측한 놈이 들어 있지마는 지금 우리 중생되고 난 다음에는 우리 행실을 그렇게 하지 못하지 우리 속에 중심의 소원은 ‘어떻게 하든지 나도 주님과 같이, 주님과 같이 원수를 위해서 살아보겠다, 또 그 인류를 구출하기 위해 살아보겠다, 나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내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쳐 보겠다.’ 하는 그게 우리 속에 중심에 있다 말이오. 그게 뭐이냐 하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심령이, 우리 영혼이 깨끗해져 가지고 그와 같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그와같이 사랑의 본성을 가졌지마는 약하기 때문에 말뿐이지, 말로는 ‘내가 모든 것 다 형제 위해서 희생하겠다’ 이래도 그런 일을 닥치면 돈 몇푼 상관에도 막 시비하고 그만 뭐 사랑의 마음은 다 어디로 가 버리고, 희생할 마음은 어디로 가 버리고, 그 이웃을 구원하려던 그 마음은 어디로 가 버리고 완전히 환장을 해 버립니다. 우리가 마음에 속에, 속에 이 사랑의 씨는 있고, 선의 씨는 있는데 약해 가지고 일어서지를 못하고 실행을 하지 못한다 그말이오.

이런데, 네가 하나님 말씀을 자꾸 순종해라.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자꾸 진리를 순종하면 네 영혼이, 네 심신이 깨끗해진다.

깨끗해지면 이제는, 과거에는 형제가 내게 주먹덩이만치 악을 행할 때에는 나는, 나도 주먹덩이만치 악을 행하고 난 다음에 후회를 하고 이랬지마는 자꾸 하나님 말씀을 순종해서 살고 보니까 형제가 주먹덩이만치 해를 해도 나는 그 해를 할라 하는 마음이 나와도 그놈을 죽여서 해하지 안할라고, 해하지 안하고 원수를 사랑할라고 이렇게 하고 애를 쓰다가 이 짚동만한 악을 행하니까 그만 내가 쿵 넘어가 버립니다.

이러나 이다음에, 또 그 다음에는 짚동만한 악을 행해도 내가 참고 견디고 사랑으로, 악을 악으로 갚지 안하고 사랑으로 그 사람을 구원해서 복되도록 하기 위해 하려 하는 우리가 자꾸 장성해 가더라 그말이오.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우리가 형제 미워하는, 우리가 과거에는 형제를 미워하는 그게 본성이요 본능이요 우리였는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되고 나니까 우리 속사람으로는 그래도 형제를 거짓없이 진정 사랑할 그 싹이 터 올랐다 말이오. 우리 속에 싹이 생겼어.

싹이 생겨서 그 싹을 “거짓이 없이 형제를” 가면적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참으로 금생과 내세에 진정 그 형제에게 구원이 되고 복이 되도록 할 그 마음이 우리 속에 종자는 났고 움싹은 텄지마는 약해서 우리가 그 일 못 하는데 자꾸 진리를 순종하니까 이 사람이 자꾸 장성해진다 말이오. 장성해지니까 네가 진리 순종함으로 어서 그 사람을 장성시키라. 장성시키라.

“진리를 순종함으로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이르렀으니”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요 종자는 움텄다. 종자는 움이 텄다.

이제 네 속에 형제를 거짓이 없이 사랑할 그 씨종자는 움이 텄으니까 네가 열심히 해서,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이래 가지고 자꾸 진리 말씀을 순종으로 네 심신을 깨끗하게 하면은, 깨끗하게 하면 형제를 사랑할 수 있다. 깨끗해지면 형제 사랑하는 것 외에는 하지 못한다. 깨끗해질수록 형제 사랑하는 거 외에는 하지 못합니다. 깨끗해진 것만치 형제를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깨끗해진 사람은 깨끗해진 것만치 형체를 사랑하지 안할 수 없어. 형제를 사랑하는, 형제를 유익되게 하는 일 외에는 하지를 못해요, 깨끗해진 것만치.

그러니까,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의 씨로 되었느니라” 네가 지금 네 속에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속사람 새사람 그 사람은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대로의 종자로 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본성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싶은 것이 네 속에 싹이 트지 안했느냐? 싹이 트지 안했느냐? 싹튼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대속과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으로 네가 살아나 가지고서 되어진 것이니 이는 영생하는 자요 이거는 죽지 안하는 자요 이는 완전한 자이다. 이거 여러분들이 뭐 몰라.

완전한 자이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이러기 때문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모든 육체는 풀과 같다” 하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너희들이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고 썩지 아니할 씨 곧 하나님의 살아 계시고 항상 있는 말씀의 씨로 되었다” 말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너희들이 거듭났다. 피와 성령과 진리로 거듭난 사람은, 그 사람은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것도 여러분들이 껍데기로 들어요.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아닌,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은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난 사람인데 이 사람이 아닌 사람이 네게 있다.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이 아닌 사람이 네 속에 있다. 그 사람이 네 속에 있다. 그 사람은 무슨 사람입니까? 육체의 사람, 육체의 사람.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육체의 사람의 하는 것은 영광도, 권세도, 사랑도, 지위도, 모든 공로도, 모든 성공도, 역사도 전부 다 풀과 같다. “그 풀은 마르고 그 영광은 다 꽃과 같이 떨어진다. 그러나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이거 뭐 다 여러분들에게 해석을 다 할 수가 없어. 이러니까 그만 시간 다 됐는데 이제 하나만 해도 여러분들이 가서 자꾸 읽고 기도하면 돼.

간추려 말하면 하늘나라는 사은의 나라요 사랑의 희생의 가치를 알아 주는 나라라. 하늘나라는 사은하는 나라인데 은혜를 감사하는 나라인데, 그러니까 그 나라에는 모두 다 인사가 사은이라. 사은이라 말은 무슨 말이냐? ‘은혜를 감사합니다’ 하는 그게 사은이라 말이오. 그러면 모두 감사한 것을, 감사한 것을 그저 하루 ‘감사합니다’ 하고 마는 게 아니라 영원토록 감사한 그것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감사를 하는, 감사를 느끼는 그 나라라. 사랑의 희생을 가치로 삼아서 그것을 대우하는 그 나라라.

그 나라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어떠한 사람이 돼야 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어떠한 사람이 돼야 되겠습니까? 그러면 이 세상에서, 자, 그러면 하늘나라 가 가지고서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전부 만물이 다 대할 때에 ‘감사합니다’ 그러면 나에게 사은하는, 나에게 사은하는 존재가, 모든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존재가 나에게 대해서 사은하는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왜, 안 드네요? 그러면 하늘나라 가면, ‘네가 나에게 이와같이 지금 속이고 섭섭하게 했지?’ 하늘나라 가면 섭섭하다고 삐꿔서 냉대하는 그런 냉대하는 존재들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그거는 없고.

‘하늘나라의 모든 존재가 나를 대할 때에 사은의 존재로 상대가 됐으면 좋겠다’ 이 사람, 또 하늘나라의 사랑의 희생의 평가를 할 때에 그때 내가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 그러면 내가 가니까 하늘나라 가면, 나는 하늘나라 갔을 때에 모든 존재에게 대해서 사은을 받는 사람, 또 사랑의 희생에 대해서 감사를 받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느냐?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느냐?이거 너무 어렵기 때문에 이거 다 해석을 여러분에게 해야 몰라. 인제 간단하게 껍데기만 말해.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느냐?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거든 세상에서 모든 사람을 뜨겁게 사랑해라. 모든 사람을 뜨겁게 사랑해라.

‘사랑이 돼져야지?’ 뜨겁게 사랑을 해라. 모든 사람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 될라면, 사랑하는 사람이 될라면 네 영혼이 점점 깨끗한 영혼이 되어져라. 깨끗한 영혼이 되어져라.

깨끗한 영혼이 되어질라면 어째야 됩니까? 깨끗한 영혼이 되어질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진리의 말씀을 순종을 해라. 진리 말씀 순종하면 네 영혼이 점점 깨끗해지고 네 영혼이 점점 깨끗해지면 참 형제를 거짓없이 사랑하는 그 사랑의 힘이 점점 자라고, 이래서, 그 영혼이 점점 깨끗해지고 깨끗해지면 깨끗해질수록 형제를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진다.

그러면, 남은 여생이라도 형제를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 네가 되어지면 하늘나라에 가서 그래도 사은을 받을 것이 있을 것이고, ‘감사합니다’ 하는 사은의 대우를 받을 것이 있을 것이고 사랑의 희생의 대우를 받을 것이 있을 것이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다” 네가 이 중생된 새사람으로 살지 안하고 악성 악습으로 네 중심 네 위주로 사는 그 생애가 좋은 것 같지마는 네 중심, 네 위주의 옛사람 악으로 살면 악으로 사는 거는 좋은 거나 높은 것이나 큰 것이나 강한 것이나 부자나 영광이나 모든 것은 다 풀과 같다. 그 모든 것은 다 말라진다. 그것의 영광도 다 떨어져서 없어진다.

그러나 이렇게 복음으로, 지금 오늘 밤에 말한 이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 이대로 행한 사람은 세세토록 있다 말씀한 것이니까 이걸 여러분들이 그저 말로 가지고 다 모르니까 가서 읽어 보십시오. 오늘 저녁에 설교한 것이 베드로전서 1장 20절로부터 25절까지니까 그 말씀을 막 외우십시오. 외우면은 거게서 간단한 가운데 한없는 게 들어 가지고 있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 것입니다.

이러니까, 오늘 밤에 그저 알도록 하기 위해서 뜨끔뜨끔 이래 말했는데, 어짜든지 땅위에서, 땅위에서 자기가 사랑에 뜨거운 사람되는 것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에 뜨거운 사람이 되다니? 그 사람이 제일 평안하고, 그 사람이 제일 평안하고, 제일 그 사람이 또 즐겁고 권세 있고, 또 금생과 내세에 대우 받고 영광스럽고, 또 부강하고 이렇습니다. 모르겠어, 여러분들이 자꾸 깨달아야 되지, 뭐.

주일학교 공과는 지난 주일에 가르친 공과를 또 공부합니다. 그리 알고 여러분들이 일주일 내 가르칠 것을 자꾸 새김질하고 그대로 살고 그라면 돼요.

요번에 내가 저 양산동에서 오면서 버스에 타고 오면서 테이프를 갖다가 끼우데요, 누가. 끼우는데, 끼우기에 들어보니까 주일학교 반사들에 대해서 설교가 나오데요. 그 설교가 진주라, 진주. 진주 정금이라, 정금 진주. 백 목사가 한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한 설교야. 정금 진주라.

참 이 서부교회 교인들이 복이 있을란지 없을란지 모르겠어요. 재독을 듣고 듣고 해 가지고 이래 들어서 그것이 자기 속에 복음이 된다면 다 순교할 수 있고 다 뜨겁게 형제를 사랑할 수 있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소유와 몸과 생명을 아낌없이 원하고 원해서 바치는 자 필연적으로 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새벽기도 다 나와요. 요새 새벽기도 줄어요. 자, 또 손 한번 듭시다. 내일 새벽기도 꼭 나올 사람, 거짓말하지 말고. 내일 새벽기도 꼭 나올 사람 손 한번 들어, 꼭 나올 사람. 꼭 나올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죽어도 나오겠다는 사람? 자, 한번 따라해 봐요.내일 새벽에는!죽어도 나오겠다!몸뚱이 이놈이!말 안 들으면!들을 때까지!밥을 굶기겠다!안 들으면!굶겨 죽이겠다!이래 가지고 자기하고 좀 싸워야 되지.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되지 자꾸 그래 살면 뭐 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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