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깊은 것

 

1988. 10. 17. 양성원 경건회

 

본문:시편 91편 1절∼16절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내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방패가 되나니 너는 낮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 인이 네 곁에서, 만 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 하리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너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계시록에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들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는다 하는 그 말씀이 있는가? 계시록 2장에? 한번 읽어 보지.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사탄의 깊은 것이 뭐이지요? 사탄의 깊은 것이 뭐이지?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니까 모르는데, 보니까.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그러면 이미 진 짐만 지고 가면 된다 말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미 진 짐만 지고 가면 된다 말 아니요? 그렇지? 다른 짐을 지우지 안하는데 이미 진 짐만 지고 있는 그 짐만 잘 지고 가거라.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그러면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게 족하다 말 아니요? 안 그렇습니까? 가지고 있는 것이 족한데 없는 그것을 너희들이 가질 필요도 없고 다른 것을 책임질 필요도 없고 다만 이미 가지고 있는 그거 잘 가지고 있으면 된다 그렇게 말했는데 사탄의 깊은 것이 무엇입니까? 사탄의 것이 어데 있습니까? 이거 여러분들이 잘 모르면 헛일인데,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을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다’ 그러면 사탄의 깊은 것은 필요가 있다 말이요 없다 말이요? 필요가 없다 말입니까? 확실히 필요가 없다 말입니까?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했는데 지울 것이 없다고 했지마는서도 이게 필요 있는지 없는지 그걸 잘 모르겠는데.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그것만 굳게 잡으라 했으니까 사탄의 깊은 것은 필요가 있다고 말했소 없다고 말했소?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요? 그러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족하다고 했지요? 그러면 사탄의 깊은 것을 알아야 될 터인데 그게 뭐이야? 사탄의 깊은 것이 뭐입니까? 사탄은 뭐하는 것이 사탄이지요? 성경에 뭐라 했소? 사탄은 뭐이라고? 거짓말쟁이요 거짓말쟁이 아비라. 거짓말쟁이를 내 놓는다 그말이오. 거짓말쟁이 아비라 말은 거짓말 새끼를 낳는다 그말이오. 거짓말하는, 거짓말 잘하는 새끼를 낳는다 그말이오.

그래, 이걸 여러분들이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사탄의 무엇을, 깊은 것을 알지 못한다 하면 사탄의 것을 알지 못한다 말인데 사탄의 것은 어떤 게 사탄의 것인가? 신구약 성경 말씀 외에는 다 사탄의 것입니다. 지식으로 말하면 신구약 성경 말씀 외에 거는 다 사탄의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의 것인데 사탄의 것을 깊은 것을 알지 못한다 하는 것 보니까 사탄의 얕은 것은 안다 말이요 모른다 말이요? 이거 자꾸 따져 나가면 돼, 그만. 사탄의 깊은 것은 모른다 하는 것 보니까, 물이 얕은 것 모양으로. 사탄의 그 얕은 것은 그런 거 안다 말이요 모른다 말이요? 안다 말 아닙니까? 그러면, 사탄의 지식, 이 거짓말 지식 이것을 너희들이 얕은 것은 알고 있고 깊은 것은 모른다 그렇게 말해 놨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얕은 것은 알고 있고 깊은 모르고 있다. 그러면 너거가 아는 그것만 하면 족하지 더 뭐 필요가 없다. 다만 너희들이 올 때까지 네 가진 것을 굳게 잡아라. 이런데 사탄의 깊은 것이 뭐인가? 사탄의 깊은 것은 곧 세상의 높은 마귀의 지식입니다. 마귀의 지식. 높은 지식.

과학 만능이라 하는 것도 사탄의 깊은 것이요, 이 과학도 굉장히 뭐 하나 둘이 아니라 머리 싸짜매고 그 과학을 연구하다가 그 사람 늙어 죽고 그다음에 이세가 또 늙어 죽고 삼세가 또 늙어 죽고 오늘까지 늙어 죽어도 다 통달을 못 했습니다.

아직도 과학을 다라 하는 것이 아니고 모르는 게 또 있지 않소? 또, 이 모든 학문, 그것도 옅은 학문 말고 아주 그 전문 고급 학문, 또 이종교에 대해서 불교는 뭐이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그거 외에 불교에 대한 전문 지식, 철학에 대한 전문 지식, 또 신학에 대한 전문 지식 그런 것을 다 가리켜서 사탄의 깊은 것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 해석 외에 딴 해석이 있겠소? 알기 전에는 그렇지마는 이 해석이 세상 마귀, 세상 지식은 다 마귀에게서 나온 마귀 지식인데 마귀 지식의 아주 고등 지식, 그 전문 지식 그런 것을 사탄의 깊은 것이라 이렇게 여게 깨닫는데 그래 깨달은 것 외에 달리 깨달아서 해석할 수가 있겠소? 해석을 얼마든지 하지마는서도 참을 아는 사람은 거짓 것에게 속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이 세상에서 수많은 지식들이 있는데 어떻게 아느냐? 저 삐뚤어진 지식을 다 배우고 연구하고 알아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삐뚤어진 지식을 아는 방법이 하나 있고 또 옳은 지식만 알아 가지고서 옳은 지식만 알아 가지고 옳은 지식 아닌 것은 전부 그 부인하는 그래 인제 삐뚤어진 지식을 아는 방법이 있고 어떤 것이 지름길로 가는 것입니까? 이런 것도 쉬운 말 같지마는서도 저거들에게는 뭐 박사 철학 하는 그런 데는 잘 없소. 이런 건 다 참 이 인간을 탁월한 그런 사람들이 다 말해 놓은 것입니다. 세상에 뭐 학자들이 말한 게 아니고.

그런데, 요것을 확실히 믿으면, ‘사탄의 깊은 것이라’ 여러분들이 상식적으로 과학이나 뭐 또 예술이나 문학이나 각 모든 종교 유사 단체들의 것이나 그런 것은 그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그만하면 족하다 그말이오. 그놈 꼭 다 알아야 되는 게 아니라.

그래, 신학이라고 요새 신학은 외나 우리가 아는 그 신학의 정의가 아니고 요새 신학은 사람들이 이 사람의 신학 저 사람의 신학 여러 사람들이 자기대로의 깨달은 학 그걸 그 사람 신학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들이 다 신학, 그러면 이 사람 이렇게 깨달은 것 저 사람 저래 깨달은 것 사람들 깨닫는 그 신학을 그걸 공부하는 게 신학이요 성경 공부하는 건 신학이 아닙니다.

○○○목사님이 나한테 편지를 그래 했어. 가 가지고 한 일 년 됐던가 안 됐던가 그때 내가 전도사로 있을 때인데 ‘조사님, 여기 오니까 신학생들 만나 가지고서 그라면 여기 성경을 서로 성경을 못 읽었다고 그래 가지고 인제 묻기를 성경을 몇 번이나 읽었습니까 이라니까 나는 아직까지 성경은 한 번도, 여게 저게 띄엄띄엄 읽어 봤지 내려 읽어 본 일은 없습니다. 그래 나중에 그러면 성경을 안 읽었으면 여기 신학을 어째 합니까? 깜짝 놀라며 아, 신학? 신학은 성경 공부하는 게 아닙니다. 신학이라는 학문이 있습니다.’ 이 신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는 것이지 성경을 공부하거나, 하나님 공부한다 하니까 ‘하나님 공부’ 웃더래요, 아주. 웃더래. 아주 그때는 그래서 기가 찬다고 편지를 했는데 오늘은 ○목사님도 거의 그 사람이 다 됐습니다. 이거 뭐 이 내가 지금 설교한 것 그거 다른 거는 안 봐도 ○목사님이 그 설교록은 한 권도 안 빼고 다 봅니다. 안 보는 게 아니라. 내가 보라고 그래 말하는 것이오.

사탄의 깊은 것은 보통이 아닌 그 특수 전문 그 사탄의 지식 전문 지식, 이 세상 전문 지식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그거는 우리가 필요없소. 다만 신구약 성경 말씀 이 말씀을 읽을 수 있고 또 알 수 있고 그런 데는 믿고 행하는 거게서 뭐 능력으로 변화가 되어지는 것이지 아는데 뭐 더 알고 뭐 알고 한다고 해 가지고 되어지는 건 아니라.

그런데, 여러분들이 여게서 공부할 때에 무엇을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탄의 깊은 것을 지금 더 깊은 것을 알라고 하는 것입니까, 사탄의 광대한 것을 알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도리를 알라고 합니까, 뭐이요? 뭐 공부하고 있소? 말로는 그래도 자세히 양심을 써야 돼, 양심을 써서 여러분들이 정말로 하나님의 도리를 공부할라고 하는지 그 사탄의 깊은 것 광대한 것 그걸 공부할라고 하는지 그것을 냉정스럽게 비판해서 자기를 시험해야지, 냉정스럽게.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치로 삼고 있습니까 세상에 사탄의 깊은 것을 가치로 삼고 있습니까? 이거 아주 없는 말이요 어려운 말입니다. 대개 신학이라 하는 것은 처음에는 갈 때에 거게 가기 전에는 모두 성경 배우고 하나님을 좀 더 잘 믿기 위해서 갔는데 막상 가 가지고서는 사탄의 깊은 것, 아무 학자가 말한 것 뭐 인제 좀 일반 보지 안한 것 귀한 것, 다른 사람이 보지 안한 것, 본 사람이 적은 것, 저만 본 것 그것을 자꾸 내다 줄라고 애를 씁니다. 저만 본 걸 내다 줄라고 하고 일반화되고 보편화된 것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 특수한 그것을 알라고, 그러기 때문에 신학은 어학 실력이라, 신학 실력은 어학 실력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래 여러분들은 여게 뭐 공부하러 왔소? 똑똑히 알고 있어야 돼요. 뭣 공부하러 왔습니까? 사탄의 깊은 것이라 하는 것을 지금 이제 해석했으니까 인간 지식을 공부하러 왔습니까 하나님의 지식을 공부하러 왔습니까? 뭐하러 왔소? 정말로 그래요? 살펴 보십시오. 아니오.

인간의 지식을 가치로 알지 하나님의 지식을 내가 가치로 알지 않는다면 않은 그것을 자기가 정확하게 발견해서 나는 하나님의 지식보다도 말은 그렇지만 인간의 지식에 거게 매력이 끌리고 내 마음은 거게 있고 힘은 거게다 기울이고 정성은 거게다가 기울이고 있다 하는 그걸 알아야 뭐 고쳐지든지 뭐 회개가 되든지 하지 그거 모르면 고쳐질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여게 온 것은, 온 동기는 그럴 것이오. 세상에 거게 가면 제일 높은 과학을 배운다, 제일 높은 문학을 배운다, 제일 높은 철학을 배운다, 거게 가면 수많은 모든 종교들의 정의를 배운다, 하나님 말씀을 배운다 말은 그래도 삼 년이고 사 년이고 지나는 동안에 정력과 시간은 전부 사탄의 깊은 것을 거게 매력을 가지고서 사탄의 깊은 것에 매력을 가지고 거게다가 전부 이 심신을 다 기울이지 하나님 말씀에게 기울이는 신학생은 세계에 없습니다. 세계에 없어.

처음에 일학년에 오면은 뭐 하나님 말씀 어짜고 하지마는 이학년 되면 다르고 삼학년 되면 다르고 차차 차차 사탄의 깊은 거게다가 가치를 두고서 거게 주력하고 전심을 기울이지 하나님의 지식을 배울라 하는 데 거게 기울이는 사람들은 별로이 없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여러분들 이리 되면은 신학이 자꾸 새로 신학이 생기는데 새로 신학이 생겨나는 것은 뭣 때문에 새 신학이 생겨나느냐 하면은 교회들이 개혁이 될 때에 새로운 신학이 나옵니다. 알겠습니까? 개혁이 될 때에. 이 모두 다 교회들이 다 부패해지고 이라니까 이래서는 안 되겠다 우리가 이거 참 바로 믿어야 되겠다 하고서 개혁이 시작되면은 거기에 개혁가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또 새로운 신학교가 생깁니다. 좀 정통 신학이 생겨지요.

그래서, 정통 신학이 생겨지면 자, 옳은 신학이 생겨졌다고 하면은 옳은 신학은 가면 갈수록이 점점 옳아져야 되겠소 나빠져야 되겠소? 어찌 돼요? 정말로 옳은 신학이라면 그 신학이 세월을 거치면 옳은 것이 자라가겠습니까 틀린 게 자라가겠습니까? 옳은 것이 자라갑니다. 틀린 게 자라가지 않습니다. 만일 그것이 옳은 것보다 틀린 게 많다고 하면은 뭐이 자라가겠어? 틀린 것이 자라갑니다.

그런데, 그 신학교가 차차 차차 모든 신학교들이 다 타락을 합니다. 그뭐 유니온 신학이라든지 프린스톤 신학이라든지 웨스트 민스터 신학이라든지 그런 신학들이 처음에는 다 유명한 개혁 신학인데 차차 차차 뭘로 그 신학이 자꾸 화해 간다고 봅니까? 뭘로 화해갑니까? 신학이 타락될 때는 뭘로 화해갑니까? 어때요? 신학이 타락해 갈 때에는 뭘로 어떻게 타락해 갑니까? 싸움이 일어납니까 뭐 거게서 무슨 죄악이 들어와서 그 신학을 더럽힙니까, 그 신학이 타락될 때에는 뭘로 타락됩니까? 이게 중요한 건데 이걸 몰라? 인본주의로? 철학으로? 사탄의 깊은 것으로? 이런 것을 하나라도 정확히 알아야 돼요. 정확히 알아야 이 유혹에 빠지지 안하고 살지.

그러면 자, 여러분들이 아는 대로, 옛날 평양신학 그런 것은 여러분들이 잘 모르면 요 근경에 있는 해방 후에, 그만 해방 전까지는 어느 교파든지 그 신학이 전부 신신학이었습니다. 감리교나 성결교나 뭐 침례교나 장로교나 전부 신신학이 다 왜정 말년에는 주장을 했습니다. 왜? 신신학이 아니면 왜정 말년에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그들과 하나가 돼야 그거 되지 신신학이 아니면은 마찰이 되기 때문에 그 신학이 존재하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전부 신신학화 됐습니다.

신신학화 됐다가 8 5 해방 이후로 그 신학이 차차 차차, 그 신학이 다 차차 차차 속화돼서 8 5 해방 그때에 신학과 지금 신학은 많이 타락했습니다. 많이 속화됐습니다. 뭐 ○○교파도 그때는 아주 참 대쪼가리 같았었는데 그만 ○○교파가 나중에 가서 그 신학대학으로 돼 가지고서 그만 그리 되고 또 다른 신학교도 다 그래. 여기 우리 해방 후에 우리 나라에는 신학을 죽인 것이 뭐이냐 하면은 대자가 죽였습니다. 여러분들 그거 모르지요? 크면 좋은 줄 알지? 신학을 죽인 것이 대자가 죽였습니다. 그거 이해가 돼요? 모르면 할 수 없어. 한국 신학교를 속화시켜서 죽인 것이 대자가 죽였습니다. 그게 다 허영이요, 허욕이요 허영이오.

우리도 그 대자로 안 죽을라고 하다가서 애로를 많이 겪었어. 대자 할라 했으면 벌써 다른 데보다 앞서지 뒤서지 않는 벌써 신대가 됐어. 여기 뭐 대지도 그 좋은 대지도 내놓을라 하는 사람도 있었고 돈 내놓을라 하는 사람도 있고 외국에서 또 뭐 보조 같은 것 말만 하면 얼마든지 보내 줄 수 있고 이런데 그것을 안 하니까 이렇게 가난하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신학교가  OO대학이 되고 난 다음에 ○○신학교가 신앙적으로 그 신학적으로 타락이 됐다고 해요 더 갱신이 됐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이 확실히, 말로만 할 게 아니라 확실히 그런 걸 느낍니까? 나는 그 신학교 이사장으로 지내다가 또 ○○병원 이사장으로 지내다가 지금 은퇴해 가지고 있는데 그 ○○○목사님 하고 내가 같이 차를 타고 비행장에서 ○○신학교까지 같이 동행을 했었습니다. 했을 때에 그분도 말을 그랍디다. ‘목사님 우리 ○○교파가 아주 많이 참타락했다 소리 안 하고많이 물러지고 많이 어그러졌습니다. 많이 참 물러졌습니다.’ 그런 말은 자기 입으로 합디다. 그 완전히 타락이오. 과거에는 ○○신학교에 데모니 그런 거 있을 수가 없습니다.

웨스트 민스터 신학교도 그 신학교를 메쳔 씨가 세웠는데 그때는 참 신앙 위주로 그뭐 학위까지 안 줄라 하고 문공부 등록을 안 할라 하고 내치 그래 가지고 나왔었는데 지금은 문공부 등록이 됐는지 학위를 주는지 안 주는지 모르지마는서도 우리 ○○○목사는 거게서 학위를 받지를, 못 받아서 안 받았는지 안 줘서, 뭐 안 받을라 해 안 받았는지 없는지 그건 내가 모르지마는서도 그 신학교도 지금은 아주 지식주의로 완전히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신학이 타락하는 것은 뭘로 타락하고 뭘로 부패해지느냐 하는 이것을 모르는 자는 모릅니다. 눈이 전체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그 눈이 어두운 사람은 몰라요.

제가 ○○교파에 있다가서 나를 상회 불복종으로 제명 통제를 하고 나니까 거기 있는 사람이 말하기를 이제 ○○교파에는 눈이 빠졌다. ○○교파의 눈을 뺐다. 눈을 뺐으니까 인제 누가 말하기를 이제 누가 말할 사람이 있겠나 이렇게 말하는 말이 한동안 돌아다녔었습니다. 우리가 그때 거게 있으면 그렇게 되지를 못해요.

이러기 때문에, 신대를 할라고 그때에, ○○○목사님 지금 살아 계시는데.

○○○목사님이 신학대학을 할라고 쌓는 것을 우리가 모두 반대를 해서 그 대학은 할라면 대학을 따로 하지 왜 ○○신학교를 뭣 때문에 대학 일반 사회 대학을 할라고 하느냐? 왜 그렇게 자꾸 배우느냐? 이래 가지고서 그때는 못 했는데 우리 나오고 난 다음에는 그대로 일사천리로 돼서 ‘이제는’ 그 ○○신학교가 얼마나 대학이 부러웠든지 ‘○○신학교가 대학이 됐다, 이러니까 승격이 됐다.’ 또 대학이 되고 난 다음에는 이제는 단과 대학이 아니라 종합 대학이 되도록 해 가지고는 죽자껏 해 가지고 종합 대학이 돼 가지고 ‘종합 대학이 됐으니까 또 승격이 됐다’ 또 그래 가지고 거게 또 ‘의대가 그러니까 의대도 넣어야 된다’ 의대가 들어가고 하니까 아주 승격됐다고 이렇게 생각했지마는서도 벌써 그것으로써 ○○신학교는 참 거게 김은 나가버렸어. 생명은 나가.

지금은, 재주있지 말 잘하지 지식이 앞서 있지 거기는 의대생들이 거게서는 제일 아마 세력이 제일 센갑습디다. 그래 가지고서 뭐 데모가 늘 계속 나오고 있지 안해요? 뭐 수업 뭐? 수업할 수 있어야지? 이러니까, 본야 신학이라 하는 그것은 자꾸 하나님으로 점점 더해져가야 되고 하나님을 가까이 가야 되는데 세상 것으로 자꾸 커질라 하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자꾸 작아지고 허무해지고 약해질 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신학교는 대자가 들어서 망친다 하는 그말을 여러분들이 가 가지고 퍼쳐. 신학은 대자가 들어서 망친다. 그말은 무슨 말이요? 신학은 허영과 허욕이 들어서 망친다 그말 아닙니까? 그말과 다르요 같소? 자, 한번 따라합시다.

신학은! 대자가 망친다! 신학은 대자가 망친다! 신학은 대자가 망친다! 요 속에 박히라 말이오. 속에 박혀서 요게 대해서 똑똑히 요 진리를 깨달으면 이런 것도 나중에 어떤 경우에는 생명을 내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게 신대를 제일 먼저 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우리 집에 큰아들이라. ○장로라.

그것 때문에 나하고 이렇게 번민을 가지고서 여러 해 동안 서로 장벽을 하고 있다가 이제는 그게 터졌지마는서도. 저 엄궁에 장소로 거기 말하면 아주 그렇게 좋은 장소가 없습니다. 그 장소를 그냥 제공할 터이니까 저 먼저 십몇억인가 줄라 하는 걸 안 팔았다 이랬는데 그냥 제공을 할 터이니까 그 신학을 거기다가서 거석해 가지고 그거 좀 신학대학으로 모두 좀 그래 가지고 좀 하자고서 이렇게 하는 것을 나는 정반대하고 여게다가 자꾸 하자 하니까 정반대했어. 반대했는데 하나님의 뜻이면 터 주시지. 터를} 인제 양성원할 만치는 지금 터가 다 돼 버렸어. 짓는 것은 당신이 뭐 어떻게 해도 지을 것입니다. 그런 건 내가 생각지 않습니다. 그거 지으면 이제는 지하실은 주차장하고 또 일층은 식당하고 이층은 대강당하고 삼층은 기숙사하고 사층은 강의실 하고 그라면 오층은 연구실하고 또 뭐, 하나님은 다 돈 준비하고 있을 거요, 어데든지.

이런데, 이게 지금 내가 죽기 전에 이 양성원을 완전히 제도를 바꿔서 해야 되겠는데, 바꿔 놓고 난 다음에 내가 가야 되겠는데 아마 하나님께서 그런 거는 바꿀 그런 여유 시간을 넉넉히 주실 것 같아.

그래서, 먼저 ○○○목사님이 조직신학을 그걸 처음에 여게 있는 내가 가르친 이것으로써 조직신학을 좀 한번 편집을 해 봐라 하고서 이랬더니마는서도 그래 그 써 가지고 오면 내가 자꾸 인제 좀 검열을 해서 그래 해 보자 해 놨는데 한 두 페이지 써 가지고 오면 두 페이지 그거 내가 고쳐 가지고 할라 하면은 네 페이지 오 페이지 쓰는 것 만침이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안 됐다. 그러면 너는 지금 아직 여게는 손을 못 대겠으니까 고전어를 가르치라. 그래 고전어 가르치다가 그 다음에 좀 오랫 동안 지나와서 그러면 혹 조직신학을 그라면 다른 조직신학 그 박형룡씨 조직신학이 제일 재료적으로 나으니까 그대로만 소개를 해서 그래 좀 가르쳐 봐라.

그래 가지고 여기 조직신학을 가르치도록 시킨 것이요. 그 조직신학 공부를 하지 안했었습니다.

이랬는데, 이번에 떡 나가고 나니까 ‘이 조직신학 교수가나갔으니 어찌 되나?’ 하고 내가 생각했는데 그래 내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깨달음을 주셔. ‘나간 그것이 잘 됐다. 여게서 그런 것으로 네가 해 가지고는 앞으로 속화되지 안할 수가 없고 타락하지 안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제 내가 지금 교육 이념은 달라졌습니다.

이래서, 어제 여기 저, 금요일날이가? ○○○목사님 가르쳤지? ○○○목사님께 내가 전화를 했어요. 그저 뭐 설교 한 설교 두 설교 이렇게 가르쳐 주는 것보다도 뭐을 하든지 어데를 하든지 성경을 읽히라. 읽히고 저거가 모르거들랑은 모르는 거 가르쳐 주고 시험을 치고 성경을 읽히라. 그런데 그때 뭐 읽었소? 이제는 그래 할 것입니다. 여게서 성경 가르치는 분들은 자기가 그 성경을 연구할 대로 연구해서 자기대로 모르는 데가 없이 다 성경을 완전히 깨달아 가지고서 학생들에게 한 절수 한 절수를 강의하는 그런 일 가지고는 안 돼. 속수되는, 속성하는 그 속성을 해야 되지 언제 그라고 어째 있을라 하면 뭐 평생 배워야, 평생 배워야 십분지 일도 못 배우고 백분지 일도 못 배웁니다, 평생 배워야.

그래서, 자기가 어느 성경이든지 연구를 해 가지고서 그 성경을 자기가 일주간이면 일주간 성경 공부를 시키면 그 성경을 읽고 외우도록 하면서 처음에 노트를 놓고서 이거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모르는 거는 기록을 하고, 자꾸 기록해 나갑니다.

기록해 나가고 인제 그라만 다 한벌 다 봤으면 모르는 게 기록돼 있을 것 아닙니까? 안 가르쳐 줘. ‘또 읽어라’ 두번째 읽으면서 인제 처음에 읽을 때는 몰랐는데 두번째 읽어 보니까 요 깨닫겠다 싶으면 깨달은 거는 뭉케 버리고 못 깨달은 것을 또 이제 모르는 것만 또 기록해.

인제 그래 몇 번 읽는 것과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외워라’ 외워 가지고서 인제, 외우고 난 다음에 시험 치니까. 외우고 난 다음에 외워서, 언제 가르쳐 주느냐? 자꾸 저 혼자 공부해서 모르는 것 기록하고 또 했는데 두번째 읽으니까 알게 되는 것은 뭉케 버리고 두번째 읽을 때 또 모르는 것 이렇게 기록하고, 이라면, 제가 기록을 해 보면 처음에 모른다는 그것은 차차 알기 때문에 물을 것이 없게 되고 처음에 안다고 생각하는 거기에 모르는 것이 새로 나옵니다. 모르는 게 차차 새로 나와요. 그러면 그 심령이 밝아지고 사람이 조금 뭐 차차차 변화가 되어지니까 모든 견해가 달라진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나중에 가르쳐 주기는 언제 가르쳐 줘, 모르는 거는 언제 가르쳐 주느냐 하면은 그 사람이 그 성경 강을 받아 가지고서, 강을 못 하면 더 해 가지고서 강을 해야 돼. 한 권이라도 그래 해 놔야 이제 그거 하나면 다른 것도 그대로 나가면 되는 것이라. 여러분들 여기 자동차의 수레바퀴 있지 안해요, 바퀴? 이 바퀴가 천 리를 가면은 바퀴가 몇 개나 듭니까? 한 개 그놈 가지고 구불러 가는 거라. 진리는 하나라. 하나만 똑똑히 알면 다 알아.

이거는 네가 아직까지 모르는 거는, 네가 스스로 네 힘으로 알 수 있는데 네가 모르는 거는 게을해 그런 거니까 외우도록까지 네가 읽어 봐라. 그러면 외우도록, 외워도 모르면 그때는 그거는 가르쳐 주는 거라. 외워도 모르면 가르쳐 줘.

자기 힘으로 깨달아서 연구해서 아는 게 낫소 이해도 못 하는 걸 자꾸 그저 한번 들어서 스르르 지나가 버리는 게 낫소? 어떤 게 나아요? 스르르 한번 들어 가면은 마치 뭐 속담에 고기 설 구워 놓으면 불내만 나고 그슬리기만 그슬리지 익지 않는 것처럼 그만 그래 가지고서 돼 버리면 헛일입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은 자꾸 읽어서 그만 입에 익어 가지고 좔좔좔 하는데 1장 1절로부터 1장 끝절까지 그만 읽으면 주르르 다 읽고 ‘그 안에 뭐이 들었노?’ `하, 모르겠는데요.’ ‘그러면 새로 한번 읽어라' 또 주르르 읽고 또 보니까 몰라. 성경은 자꾸 몇 번 읽어도 그 속에 내용의 뜻이 뭐인지 그것을 모르고 자꾸 입에만 익어서 줄줄 읽는 그것이 저주입니다. 그거 하나님 말씀을 만홀히 여겨 그런 거라. 그거 병 고치기 어려워요.

이제 처음부터 읽는 사람은 읽으면 벌써 그 뜻을 다 아요, 읽으면. 그러기 때문에 읽으면서 거게 대한 뜻을 이렇게 뭐 시간 없으니까 넓게는 모르지마는서도 원리만 딱 알면 다 그걸 원리만 알면 그대로만 자꾸 주 모으면 되는 거라. 이제 그 넓은 것 하면 조금 넓은 것 많이 넓은 것 길쪽하게 넓은 것 뭐 그만 넓은 거라면 넓은 거 쫙 그만 대 가면 돼.

이래서, 이번에는 내가 에베소서를 할라다가 야고보서를 할라고 하는데 야고보서를 여러분들이 요번에 외우십시오. 에베소서는 좀 어렵고 야고보서는 쉽습니다. 아주 쉬운데, 야고보서를 여러분들이 외워 가지고서 자기가 스스로 야고보서에 환하게 거게 대해서 무슨 뜻인고 깨달아지고 완전히 외우고 깨달아지면 아마 자기네들이 그만 공부 그만하고 말면 평생 목회하는 데에 언제든지 야고보서 설교할 것이고 거게서 깨달아질 것이고 그것이 여러분들의 목회하는 데에 가장 표본적인 그런 설교가 될 것입니다.

이래서 그걸 발견했어. 발견하고, 그라면 조직신학이니 뭐 성경신학이니 변증학이니 윤리학이니 하는 그런 모든 신학서적들은 유명한 서적들이 있어. 그거 다 어느 서적이 제일 낫다 하는 거 다 공통으로 다 알고 있어요. 아는데 그 서적을 다 사 가지고 이번 학기에는 그걸 시험을 칠 터이니까 뭐 조직신학이라면은 일곱 권 또 여덟 권 되는 것도 있고 이러니까 그걸 그만 시험을 칠 터이니까 읽으라 해서 보통 한 대여섯 번만 이래 쭉 대여섯 번만 읽어 버리면 그거 다 거의 기억이 돼져요.

그런데 모르는 거는 골을 꺼내 줘서 이래 알면 그만 다 알아져. 그러면은 여게서 뭐 조직신학 하나 제목 하나 내놓으면 거게다가 국물을 얼마든지 가해 가지고서 뭐 짜다라 이래 하는 것보다 그만 그거는 그만 쭉 읽으면 다 돼.

그래 가지고 이 신학적 그거는 일반 수준에 자기가 도달하도록 그렇게 하고 이제 생명은 성경이라. 그래서 내가 ○○○목사님에게는 내가 부탁하기를 신학의 그 전문 지식을 넣어 줄라고 하지 말아라. 하지 말고 첫째는 신학의 종류를 가르치라. 또 그다음에는 신학의 유력한 인물들을 가르치라. 또 그 인물들의 그 사상을 간단명료하게 가르치라. 또 신학 술어, 신학 술어를 가르치라. 또 신학과 신학의 서로 배치되고 마찰되고 상극이 되어 있는 그걸 가르치라. 그거 외에, 그것만 가르치면 된다. 만일 사 년 동안 이것을 다 가르친다고 하면은 나가면 그만 신학에 대해서는 누가 말해도 다 아는 거라.

이라라 했는데 그것을 처음에는 가르치기를 시작했지마는서도 하기 힘이 들어 그런지 어짠지 거기서 하나를 말하면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자꾸 그것만 가르칠라고 이라니까 배워 봤자 사 년 동안에 그거 다 배워 봤자 그 어데 우리 한국으로 말하면 말이지 한국 지리 공부하는 사람이 덕유산 어느 계곡 하나 배우고 지리산 어느 계곡 하나 배우고 또 백두산 산만당 하나 배우고 몇 가지 배우면 그게 무슨 지식이 돼, 되기를? 전체적으로 그만 우리 한국은 바다는 어떻게 둘러 가지고 있고, 도는 어떻게 돼 가지고 있고, 산맥은 어떻게 돼 가지고 있고, 또 광야는 어떻게 돼 가지고, 농지는 어떻게 되고, 어데서 어데는 어떤 것이 특산물이 어데는 뭐 한건하고 수원이 좋고 또 거게다 인심은 어떻고 언어는 어떻고 이런 것 몇 가지만 이래 뚝 해 버리면 한국에 대해 지리에 대해서는 박사가 돼 버리고 만다 그말이오. 간추려서.

내가 이렇게 가르치라고 말을 했었는데, 그래 어제 내가 ○○○목사님을 아레 전화를 해 가지고 요 주간에 뭘 공부할 것이고 하니까 완전주의를 공부한다 이래, 완전주의. 그 완전주의 공부하는데 완전주의 공부 잘못시키면 그 위험한데, 완전주의 공부할라면 완전주의 그 책을 가지고 그래 완전주의를 자기가 다 읽어 보고서 거게 대한 단어나 술어나 그 사상이나 그런 걸 다 확실히 파악을 하고서 학생들이 그 책을 사라 해 가지고서 읽히라. 읽혀 가지고 그 책들을 학생들이 다 몇 번씩 읽어서 시험 칠라면 시험칠 수 있도록 그렇게 하고 모르는 것만 저희들이 물을 때 네가 가르쳐 줘라. 내가 이렇게 말했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어.

완전주의 그런 것도 이 신학자들이 말이지요 대개 그 정신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저쪽에서 뭐 콩 하면 이쪽에는 팥 할 줄만 알고 언제든지 상대성을 가지고서 언제든지 대립적으로만 이래 하고 있지 그걸 이렇게 바로 알아서 길러 나갈라고 하는 그런 정신을 가지지 안하기 때문에 이거 참 그런 사람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지고 맙니다.

이래서, 여게 ○○○목사님이 와 가지고서 ‘중생된 사람은 그 사람은 그 다 성화되기 마련이라. 건설구원은 자꾸 행함을 강조할 것 없이 그거는 필연적으로 다 되기 마련이라.’ 그 말이 옳은 말이면서도 또 위험한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그게 뭣에서 지금 내가 들어 보지는 안했지마는 그 무슨 말에서 나왔느냐 하면은 칼빈 선생이 말한 것은 기독자의 구원은 궁극적 구원이라 하는 그것을 지금 말하고 있는 거라. 궁극적 구원.

궁극적으로 말하면 기독자의 구원은 전부 하나님이 구원하심으로 된 것이지 뭐 인간이 이리저리 해 가지고 되는 그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해 가지고 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주권에 다 있는 것이라 그말이오.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궁극적 구원 이것을 지금 또 인제 빈정거려 가지고서 지금 완전주의라 이래 가지고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그게 내가 들어보면 그게 또 잘못돼 가지고 있기 쉬울 거라.

그러면 여러분들 자, 그러면 기독교 구원이 절대 예정입니까 예정 아닙니까? 기독교 구원이 절대 하나님의 주권입니까 뭐 합동입니까? 기독자의 구원이 그라면 궁극적 구원이라 말은 궁극으로 말하면 하나님 한 분의 은혜로 다 됐다 하는 그런 뜻을 가리켜서 궁극적 구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 궁극적 구원을 믿으면 그러면 기독자의 구원은 완전이라, 하나님의 그 구원이 완전이라. 그러면 하나님으로 말하면 완전이지 그 인간이 이리저리 할 게 아니라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완전된 구원이라 그걸 말하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그말 맞소 안 맞소? 여기 ○집사 맞아 안 맞아? 맞아.

그걸 말하는데, 그러면 ‘네가 믿고 행하지 아니하면 네 건설구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행한 대로 갚는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그러면 행함을 강조하는 그거는 어데서 나왔습니까? 그거는 그 궁극 아니요 궁극이요? 그거는 절대 주권이요 주권 아니요? 예정이요 예정 아니요? 알지도 못하고 그 눈이 그 일부분적으로 알고 그라기 때문에 그저 떠들어 쌓고 있지마는서도 그걸 다 알고 보면 왜 성경에 그런데 행해라, 행하지 안하면 안 된다, 죽도록 충성해야 네가 생명의 면류관 받는다 이 성경을 뭐할라고 줬겠느냐 그말이오. 그걸 모르고 지금 그런 뚱딴지 같은 소리 하고 있어. 그 사람들의 보는 견해는 너무 좁아요. 전체를 보지 못해요.

완전주의는 둘이 있습니다. 이제 이 완전주의는 완전히 현재 세상에서 완전이라는 종결이 됐다 하는 완전주의가 있고, 세상에서 완전히 종결됐다는 완전주의가 있고 이는 그 궁극적으로, 궁극이라면 그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 전체를 다 말한 전체적으로 말하면 이거는 완전이라.

그러면 그 완전이라 하는 것은 그것은 세상에서 그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완전이라’ 세상에 완전이 아니라. 세상 영원 무궁을 통해서 완전이 돼, 무궁을 통해서. 무궁을 통해서 완전하다는 그런 소리는 그 사람들은 몰라요. 그말 하면, 그 사람들이 말한 거는, 그 칼빈주의 제자가 지금 말했다 하는데 완전주의를 말한 그거는 완전은 이 세상 내에서 벌써 하나님의 궁극적 구원이고 완전 구원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택한 자들은 다 완전 구원이 다 이루어진다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이 아마 그들일 거야. 내가 똑똑히는 모르지마는. 그 범위를 넘어가지 못했을 거라.

그거 그런 게 아니야. 영원 무궁토록 이 구원이 이루어 가고 있어. 영원 무궁의 끝이 억만 년 끝인가? 아니 억만 년 아니라. 영원 무궁에 가는데 그 범위 내에 이 구원은 완전이라. 완전. 그뭐 그거는 성경에 그런 말씀이 있어요? 어데 있어? (고린도전서 13장 13절) 그 13장 그절이 그절이라.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이라. 이거 그라면은 소망은 뭐이요? 소망은 이룬 걸 소망이라 해요 아직까지 미완성을 소망이라 해요? 믿음은 뭘 말해요? 소망을 목표로 하고서 노력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지 안해요? 그게 있으니까 앞으로 미완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그래 기독교의 구원은 회고적으로는 완성이요 미래적으로는 완성이 아니라. 성장해 나가고 있는 거라.

요런 묘한 말을 해 가지고서 일방적 지식 그걸 가지고서 하기 때문에 이 지식을 전체적을 통달해서 알아야 뭐 무슨 박사가 오든지 뭐 오든지 전부 그거는 다 삐뚤어진 거면 정죄돼 버리고 옳은 것 알아 놓으면 나머지 다 알아요.

그러기 때문에, 철학 쳐 놓고는 뭐라고 쌓아도 불교 철학이 제일 최고입니다. 뭐 소크라테스니 뭐 플라톤이니 뭐 말해도 불교 철학이 제일 깊어요. 철학의 조종이라.

이래도 그런 사람들도 이 성경 아는 사람들한테는 쪽을 못 써.

그래 오늘 시편 91편을 펴자 했는데 91편에 여러분들이 볼 때에 말이요, 여기 시간 없으니까 조그매만 말하고. 여러분이 자꾸 또, 여러분들이 자꾸 깨닫는 방법만 가르쳐 주면 저절로 깨달아져요. 성경에 깨닫는 방편 중에 제일 좋은 방편은 뭐이라요? 아는 대로 실행하는 그게 제일 좋은 방편이라. 그 이상 더 좋은 방편 없어요. 그러기 때문에 오늘은 신학을 뭐 여러 수십 신학을 졸업한 그 신학자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안해. 성경을 보고 깨달은 대로 실행한 거게서 깨달은 그 사람이 우리에게 필요해.

삭개오가 예수님 만날라 하니까 사람 뒷꼭지밖에 안 만나지니까 그만 앞에 나가서 뽕나무에 올라갔기 때문에 그 사람 주님이 기뻐하셔서 내려오라 했다 말이오. 그 사람이 필요한 사람이라. 오늘도 이 신학자 대가리 뒤에 따라가야 된다고 또 그 신학자 대가리 뒤에 따라가고 따라가고 자꾸 이래 따라 가지고 이래 가는 그거는 암만해야 진리를 몰라.

여게 말씀대로 하라 했으니까, 이래라 했으면 당신이 하라 했으니까 해 보지. 해 보면 그거 되든지 안 되든지 안 되면 하나님을 뭐 반항을 하든지 이라면 된다 해 놓고 왜 안 됩니까, 이랬는데? 해 본 자마다 다 아멘 하고서 다 그란다 그말이오. 이 길이 바른 길인데 책상 위에 앉아 가지고서 뭐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고 성경에 어데 그런 데가 어데 있어, 있기를? 이 순전히 눈이 어두워 놓으니까 엉뚱한 소리만 자꾸 하고 있다 그거요.

자, 1절에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그러면 이 거한다는 거는 뭐이요? 거한다는 것은 평한할 때에 거하는 것입니까 이거는 환난에 거하는 환난에 대해서 하는 말이요 평안할 때 하는 말이요?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이거는 평안한 때 말한 것인지 환난이 닥쳐와 가지고 급한 때 지금 하는 말인지? 우리가 다 아는 말 아니요, 서민들 말로? 평안할 때 하는 말 아니요, 이거? 평안할 때.

지존자라 말은 자존하신 하나님 말씀 아니요?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라’ 은밀한 곳이라 하는 그거는 찾기가 좋아요 어려워요? 찾기가 어려워.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그러니까 찾기 어려운 쉴 곳이 있어, 찾기 어려운 쉴 곳. 찾기 어려운 평안한 세계가 있어.

그러면 지존자의 은밀한 곳이 어데겠습니까? 여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뭐이지, 이름이? 여게 나타나신 하나님 이름이 뭐이지? 여호와. 그다음에 해석하기를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그러면 위에는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그러니까 지존자의 은밀한 곳이 뭐인가? 지존자가 누구지요, 여게는? 지존자가 누구요? 여호와라, 지존자가 여호와라.

그러면 여호와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라, 여호와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가 뭐인가? 은밀한 곳은 찾기 어려워. 찾기 어려운데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는 우리에게 계약을 선포해 놓고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그분이 여호와라. 계약대로 이행, 선포해 놓고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그분의 계약에 거게 참 평안하게 쉬고 잘 살 곳이 있는데, 거게 있는데 그거 찾기가 어렵다 그말이오. 그러면 거게 찾으면 거게가 전능자의 그늘 아래 있기 때문에 거게는 뭐 덥지도 안하고 뭐 평안하고 좋아요.

이거 무슨 말씀이요? 사람들이 급할 때는 하나님 찾기 쉽고, 어떨 때는 급할 때 하나님 찾는 사람은 급할 때 하나님 찾지만 수월할 때 하나님 내버려 버리고 평안하고 좋을 때 하나님 또 찾는 사람은 급하면 내놓고 이상하게도 사람이 하나가 아니라. 급할 때 하나님을 찾는 사람, 평안하면 하나님 찾는 사람.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평안할 때 하나님 찾는 사람은 하나님이 처음에는 평안을 주지마는서도 나중에는 급한 꼴을 줘요. 급할 때도 하나님 찾아야 되거든. 급할 때도 하나님 찾아야 되고 평안할 때도 하나님 찾아야 된다 말이오. 그러면 급할 때 하나님 찾는 연습을 시켜 가지고 숙달되면 나중에 평안할 때 하나님을 찾는 연습을 또 시킨다 그거야.

여게는 평안할 때, 평안 무사할 때에 이제 이 계약의 하나님의 거게 머무는 것이 그것이 참 평안히 쉴 곳이 거게 있다. 우리가 평안할 때에, 평안 무사할 때에 우리가 평안히 쉴 수 있는 그 곳은 여호와 하나님 속에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뭐인데? 계약을 선포하시고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그분 속에 있다, 그분 속에 있으니까 내나 계약 속에 있다 말이오. 하나님이 계약을 선포해 놓으신 그 선포를 평안할 때에 그 선포 속에 있는, 그 계약 속에 있는 평안한 자리를 찾으니까 찾기가 힘든다 말이오.

왜? 인간들의 주관이니 이 뭐 세상 이런 것 모든 주위 환경 이런 것들이 다 우리 마음 다 끌어가 버리고 내가 계약을 선포해 놓으신 그분의 이 계약 속에 내 피난처가 있는데 거게 그 피난처 찾기가 힘이 든다 그말이오. 힘이 드는, 이 양심으로 찾아가면 돼. 그 뭘로 찾아가요? 그 뭘로 찾아가야 만납니까?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간다’ 하나님을 찾아가면 돼.

네가 평안할 때에 평안할 때에 그만, 평안하면 세상으로 나와 버립니다. 평안할 때에 세상으로 나오지 말고 평안할 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그 지존자, 지존자 그 은밀한 곳, 지존자의 은밀한 곳, 아주 골방. 찾기 힘드는, 네 신앙 양심으로 계약 속에 있는 평안한 자리를 네가 찾아라. 그 양심이 아니면 못 찾아요. 양심으로 찾으면 그만 거게만 들어가 놓으면 평안해서 뭐 누가 뭐라 하든지 말든지 폭풍이 불든지 말든지 상관이 없어. 깊은 바다에 광풍이 불면 그 밑에 뭐 요동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래, 그와 마찬가지로 그만 평안할 때에 계약을 선포하고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하나님이 마련해 놓은 은밀한 곳 찾기 어려운 곳을 찾아라. 뭘로 찾느냐? 네 양심으로 찾아라. 양심으로 하나님 말씀, 하나님 뜻이 뭐이냐 이렇게 찾아야 되고 하나님이 당신이 뜻이라 한 딱 거게 찾아 가지고 거게 딱 입각해 놓으면 그만 됐다 후유 하고서 그만 평안해. 거게 그라는 거 뭐 세상에 난리가 나니 마니 그거 들리지도 안하고 들려봤자 그거 상관도 없고 상관도 없는 그렇게 이거는 평온할 때 찾는 거라.

또 그다음에,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피난처요」 그러면 피난처 하는 건 이 피난을 어데로 할 거라? 피난처라 하는 그 말은 급한 꼴 당할 때라. 사람이 급한 꼴, 급한 꼴을 당한 피난 때라 말이오. 되게 급할 때에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요’ 급할 때에 그때 계약의 하나님, 계약의 하나님 그분, 계약의 하나님, 계약 이행의 하나님, 계약의 하나님 계약 이행의 하나님 그분의 계약 이행 그 속에 거게 피난처가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뭐 전쟁에서 어데서 이기며 공산주의에 잡혀 가든지 어데 가든지 갈 때 어데든지 거게밖에 또 이기지 못해. 거게 있는 자에게는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아무 상관이 없어, 그까짓 거. 이러니까 웃고 있지.

그들이 거석할 때에, 손양원 목사님이 모든 죽음은 웃음으로 다 맞이했어. 웃음으로 대항했어.

이제 그러니까 우리가 평안할 때 신앙 생활해야 또 급할 때 신앙 생활, 요 순서는, 평안할 때도, 평안할 때도 찾기, 평안할 때는 찾기가 어려워. 이거 환난 때는 또 찾기 어렵다 소리 안 했는데 평안한 때는 찾기 어렵다고서 은밀한 곳이라 해 놨다 말이오. 평안하면 이 세상, 이 세상으로 나가요. 외계로 나가요. 평안할 때에 외계로 나가지 말고 계약 이행의 하나님 그 속에 네가 참 평안이 있다. 뭐 세상 이런 저런 평안이 있는 그게 아니라 그 속에 평안이 있어.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요새라는 것은 뭐입니까? 그 자기에게 큰 환난이 닥쳤거들랑은 환난 때는 뭐 비행기를 사 가지고 뭐 어떻게 한다, 환난 당할 때는 뭐 어데로 미군 속으로 들어간다 그따위 소리 하지 말고 어데로 강대국으로 그런 소리 하지 말고 급하면 급할 때는 어데냐 하면은 피난처가 여호와 그가 피난처라, 피난처.

또 요새라 말이 뭐이요? 요새라 말은, 요새지. 요새라 말은 나는 유리하고 상대방은 손해가는 것이 그것이 요새입니다. 알겠습니까? 이 바닷가에 요새지는 나는 적의 군함이 오면 나는 적의 군함을 격파하기가 쉽고 적의 군함은 나를 해하지 못하고 내게는 유익하고 원수에게 상대방에게는 해가 되는 그곳이 요새라.

요새가 어덴데? 내게는 유익하고 상대방에는 해로운 그곳이 어덴데? 여호와의 피난처라. 계약 선포해 놓고 계약대로 이행하는 그 계약대로 이행하는 그 계약대로 이행하는 그걸 믿고 계약대로 이행하는 믿는 거게가 뭐이냐 하면 거게는 가면은 내게는 좋고 원수에게는 해로워. 이만하면 다 되지 안해요? 전부 다 그래.

그러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천지는 변해도 변함이 없는 이분의 계약에 입각해 가지고서 이분하고 서로 상관을 가져야 되는 것이지 이분은 집어 던져 버리고 인간들의 말, 무슨 학자가 무슨 말했다, 무슨 말했다, 여러분들이 그런 말 들으면 머리가 아프지 안해요? 그런 말 듣고 가면 머리가 아프고 정신이 혼돈되고 정신이 안 나는 그 사람은 새사람이요, 그런 말은 들으면 아주 정신이 바딱바딱하고 취미가 나고 하나님 말씀 들으면 에이구 허무하다, 뭐 여호와로 피난처, 여호와의 은밀한 곳에 거하라, 또 여호와로 피난처를 삼아라, 여호와는 나의 요새다, 내게는 좋고 원수에게는 해롭다, 그런 뭐 어데 뭐 호랑이 담배 피우는 소리 꿈꾸는 소리 한다고서, 그 말은 안 믿어져.

그 말은 믿어지고 인간들의 말하는 말이 믿어지지 안하고 그말은 아멘 하고서 자기가 생명 내놓는 그런 어려움에도 염려하지 안하고 뚝뚝 기어들어가는 그게 뭐이냐 하면 성령의 사람이라. 하나님은 그 사람 원해. 생각해 봐요. 당신이 알지 못하심이 없고 능치 못하심이 없고 주권하고 조그만한 먼지 하나도, 개미 한 마리 나고 죽는 것도 주권하고 계시는 그분이 절대 권리를 가지고 있는데 당신을 그렇게 믿고 의지하면 좋겠소, 그거 다 아이구 그거 가지고 안 된다. 이 세상에 모든 이 학자들이나 이 과학자 이런 걸 의지하고 하는 그걸 하나님이 좋아하겠소? 누구 좋아하시겠소, 어느 걸 좋아하겠소? 하나님이 그거 좋아하셔.

하나님을 참 뭐 이런 허수아비같이 이렇게 목상같이 이렇게 믿는 사람은 그렇고 하나님이 살아 계심으로, 그러니까 그분하고 자꾸 대화도 하고 그분하고 말을 주고 받고 교제도 해 보고 그분 앞에 거스림도 해 보고 그분 또 인제 기쁘게도 해 보고 그분하고 마찰도 해 보고 동행도 해 보고 이래서 그분이 어떤 존재인가? 그분의 실존의, 그분이 살아 계는 그 실존을 자기가 경험하고 체험해야 되지 그전에는 안 됩니다.

이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은 자기가 그 말씀대로 행할 때에 자, 자기가 그 말씀대로 행할 수 있을 때에 그분 만나니가 쉬워요 자기를 완전히, 그분 말씀대로 행할라고 하면은 자기를 완전히 부인해야 그 말씀대로 행하지 자기를 가지고는 행할 수 없을 때에, 자기 가지고 행할 때에 그분 만나기가 쉽겠어요 그분을 만날라면 그 말씀대로 행해야 되겠는데 그 말씀대로 행할라고 하면은 자기는 완전히 부인해 버려야 말씀대로 행할 수 있을 때에 그때에 주님 만나기가 쉬워요, 언제 만나기가 쉬워요? 이러니까 안 행하는 자는 주님을 만나지 못하기 마련이라. 만날 수 없어.

그 말을 들어보면 설교 듣고 그 안에 보면 ‘저거는 말쟁이다, 실제 해 보지는 안하고 자꾸 저 지금 말만,’ 암만 강조를 해도 말만 하는 것 알고 해 본 것 알고 다 알아요. 그라면 자, 자기가 지금 실지로 실행하는 사람은 실행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아멘이 되겠소 실행 안 하고 말만 허풍짜로 하는 그말 들으면 아멘이 되겠소? 설교를 같이 듣지마는서도 그래 듣는 귀가 달라요, 듣는 귀가. 이러니까 꼭 여게서 실행하는 요것을 가지고서 실지로 이 복음 믿어야 됩니다.

왜? 요번에 우리가 요번 주에 가르치기를 뭐 말했지? 그러면 첫째 하나님께서 이 모두 다 역사하시는 것을 제일 처음에는 어데다가 주력하라 했지, 세 가지로 말했는데? 아는 데에 주력을 해요. 우리 구원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알라면 뭘로 가지고 알아요, 하나님의 사랑? 고난받은 것 보니까 그분이 날 사랑했거든. 사랑으로 그분의 고난을, 어찌 사랑했노? 고난을, 그분의 고난을 살펴 보니까 그분의 사랑을 알겠고 또 고난을, 고난을 보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겠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니까 고난을 알겠고 이래서 이거 여게 대해서 체험하는 그거, 둘째로는 뭐하는 것이라요? 누려보는 것. 참말로 내가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있나? 전능자의 품 안에 안겨 있나? 이게 안 누려져. 안 누려지니까 이 연습을 자꾸 해 가지고서 실지로 한번 누리고 두번 누리고 자꾸 누려면 나중에 실지로 누려지는 게 돼. 그러니까 이 성경을 제가 믿는 게 아니라 믿어 가지고 그걸 누려야지. 안 누리면 거짓부리라. 거짓말쟁이야. 그 누려지나 안 누려지나? 자기가 그것을 가지고 참말로 그 효력을 자기가 지금 보고 있나 효력은 전연히 없나, 말뿐이지 효력은 없나? 이러니까 어떤 귀신이 왔는데 집사가 가니까 그 귀신이 그만 뻘뻘 떨고 이래 가지고 그만 항복을 하거든 그라니까 이 그 뒤에 귀신이 또 들어왔다 말이오. 목사가 왔다 말이오. 목사가 ‘그 집사 그까짓 게 그랬으니까 내야 내가 가면 더 복종하지’ 가 가지고 사탄아 물러가라 이라니까 그 사람이 있다가 이놈의 새끼 네까짓 놈이 뭐인데 나를 그라냐고서 멱살을 거머쥐고 달라드니까 얼마나 혼이 났든지 그만 막 도망을 그 목사가 빼버렸어. 그래 그 교회 있지도 못하고 그만 사면했다 말 들었어.

귀신들도 다 알아요.

그 효력을 안 믿는데 그 갈 수 있는가? 안 믿는데 가지 못하지. 믿는 데는 가지.

믿느냐 안 믿느냐? 그거 자기가 그래 혼자 시험해. 내가 믿나 안 믿나, 그래서 스스로 자기가 믿음에 있나 없나 시험해 보라 했지요.

그라고 난 다음에는 셋째로 뭐하라 했어? 기념해. 주님이 피와 살을 먹을 때에 내 피를 기념해라, 내 살을 기념해라 하셔. 기념하라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뭣 때문에 죽으시고 뭣 때문에 피를 흘리시고 그 창을 찔리셨는가 하는 것을 그때에 된 광경을 내가 어데서 실험해 봐요? 내가 사죄를 보수할라 할 때에 칭의를 보수할라 할 때에 하나님과 화친을 보수할라 할 때에 그런 어려움이 올 때에 그때 내가 어려움이라도 예수님의 대속을 벗지 안하고 있을 그때가 뭐이냐 하면 예수님의 대속을 기념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래야 예수를 믿어지고 되는 것인데 그냥 생전 근방에 가지도 안한 이래 말 가지고 자꾸 이래 하니까, 왜? 거짓말쟁이 말은 그 쉽거든. 거짓말쟁이 말은 쉽게 되니까 듣는다 말이오. 쉽게 되니까 쉽게 되는 게 아니라. 그 순서가 없이는 되는 법이 없어.

이번에는, 먼저는 그 성경 공부 뭣 했지요? 그거는 하다 못 하고 말았지요? 그거 다 하다가 못 하고 말았지요? 그래 여러분들이 그런 제목이 있어 못 했기 때문에 그걸 지금 뒤에라도 가 가지고 하나님이 하라는 것 하지 말라는 것, 또 내가 그 성경에 보면 하라는 것을 안 한 사람들, 또 하지 말라는 것을 한 사람들, 하라는 것을 아니 한 사람들이 그 결과가 어찌 됐으며 하지 말라는 걸 한 사람들 그 결과가 어떤가? 요것을 쪽 빼 놓는 것이 일생 목회에 유익합니다. 그러니까 그게 일생 동안 목회에 전 설교라.

봐라, 이렇고 이렇고 이래 하지 말라는 것 누구는 하지 말라 했는데 그거 해 가지고 이래 되지 않느냐? 누구는 하라 하는 것 그때는 도무지 부인이 됐지마는서도 하니까 그 결과가 이렇지 않느냐? 그 전 설교 아니요? 이거 뭐 목회 전체를 이라기 때문에 여게서 바로 하면은 다른 데 뭐 십 년 돼야 이거 목회 권위자 될 것을 여게서는 이삼 년이면 권위자 돼. 이라면 다 속성이 되기는 되는데 믿지 안하니까 이 낭파라.

그냥 그만 말만 듣고 실행을 안 해.

다른 진영에서는 일생 동안 목사노릇 해도 집회 인도 못 합니다. 강사로 가서 인도할 수가 있는 줄 압니까? 오라 하면 거기 가서 하는 줄 알아요? 못 해요.

○○신학교에 졸업한 사람도 일생 동안 목회해도 부흥사로 다니지를 못해요.

부흥사로 다니는 사람은 그거는 참 별로이 없어요. ○○교파에 작년에 내가 알아 보니까 그 부흥사로 다니는 사람이 뭐 둘인가 셋인가 그래밖에 없어요. 여게는 이거 뭐 전부 부흥사로 보내도 다 돼. 부흥사로 보내면 뭐 다 할 거라. 여기 조사로 나간 사람들도 어데 안 청해 줘 탈이지 청해 주면 그게 일주일 동안은 뭐 강단 뚜드리며 마구 대부흥사노릇을 다 할 거라. 청해 주지 안해 그렇지.

그게 뭐이요? 바로 배웠기 때문에 속성이 되는 거라. 이래 그걸 뭐 너무 쉽게 알아지니까 인제 그만 헐한 줄 알고, 예수님이 은혜로 구원 얻는다 하니까 공짜배기라 하니까 그만 예수님의 구속은 영 아주 그만 허무한 것으로 이래 알고 있다 그거야. 그와 꼭 마찬가지라.

그래 이번에는 야고보서를 여러분들이 외우도록 하십시오. 외워서 서로서로 강을 받는데, 여게서 말해. 내가 그말 들었는데 학생들이 뭐 시험친다 하면 책 보고 쓰고, 책 보고 쓸 것 따로 있지. 책 보고 쓰고 또 책상에 뭘 이래 써 놓고 이래 덮어 놓고 이래 가지고서 뭐 이래 한다 하는데 그까짓 걸로 할진대야 뭐할라고 그거 뭐, 그거는 다 자기 망치는 일입니다.

암만 여기 졸업해도 목사 안 돼요. 그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인제 목사의 자격이 있어야 목사 주지 그리 아니면 안 줍니다. 자꾸 처음에는 이래 했다가 그 목사 너무 영광을 가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안해요. 그만 여기 안해도 좋아요. 양성원 안 해도 목사 돼요. 안 하고 목사 하는 사람을 지금 나는 자꾸 지금 보고 있어. 여기 양성원 안 하고 이 사람은 목사 줘야, 막상 목사 준다 해 가지고서 이 총공회서 반대하면 나 혼자 안수해 가지고 목사 주겠어요.

그 사람이 성경에 대해서 잘 알아, 성경대로 믿음 행위를 잘 지켜, 또 그 사람이 목회를 권위 있게 잘해, 또 설교 잘해. 모든 신덕이 모든 사람에게 덕이 있어.

그러면 목사 주지 뭐 양성원 이게 뭐이요? 신학은 그 뭐이요? 신학대학 그까짓 거 뭐이요? 이거 구비하면 다 목사 주지. 성경에는 또 혼자 안수해 가지고 목사 시킵니다. 그게 성경이오.

이러니까 지금 그걸 안 하는 것은 왜 안 하느냐? 자꾸 이래 하면 남발돼서 이래 하기 때문에 부득이 자꾸 여러 사람을 모아 가지고 이래 한다고 이래 하는 것인데 이 암만 양성원 졸업해도 여게서 졸업된다고서 목사 안 됩니다. 인제 목사 될 만한 뭣을 해야 목사가 됩니다.

언제 누구를 말한다 했지, 누가? 졸업한 사람 목사 임직 원하는 사람 누구라 했지? 지금 현재 양성원 졸업하고 난 다음에, 졸업한 사람으로서? 그래 ○○○조사는 목회도 그만치 하면 엔간히 했고 또 자기가 그래도 뭐 교회가 자립하고 이래 하니까 됐고 이런데 조금 더 그 속에 얄궂은 신학을 해 놔서 그 신학이 그게 완전히 빠져 나가서 확고히 서야 돼지지 그 신학이 흐린 사람이면 시킬 수가 없어.

뭐 누가 뭐라 하든지 내 보기에 틀렸다 하면 내가 말하다가 저거한테 안 되면 뭐 쫓겨나고 밟혀도 나는 그대로 옳은 것 말하다가 가지 뭣 때문에 옳은 거 하고 하나님하고 한가지인데 옳은 것 버리면 하나님 버리는 것이고 옳은 걸 주장하면 하나님하고 하나되는 것인데 하나님 내 버리고 뭐 취할 거라? 깨달은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안해요.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그거 문제가 아니고 어짜든지 실력을 기르십시오.

이러니까, 야고보서를 아마 여러분들이 제일 먼저 야고보서 외우는 게 좋을 것입니다. 여게서 제가 가르치기를 성경보감을 내가 다 한번 전부 여러 번 열람을 하라 했고 또 요리문답을 다 열람을 하라고 했었고 또 뭐 했지? 통신과 또 하고, 성경 통신과 안 한 사람들 있어요? 성경 통신과 다 마친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이 통신과도 다 해야 돼요, 통신과 그거. 그런 것이 신학의 뭐 신학대학의 대학 대학 몇 개를 졸업 맡아도 그거 하나만도 못 해요. 목회할라 하면 실제 아무것도 없는데 어짤 거라? 여게서 통신과 초등강 한 사람 손 들어 봅시다. 나머지기는 안 했네, 그러면. 다 해야 될세? 이 서부교회는 반사들 또 청년들, 남녀 청년들, 통신과 초등강 고등강 다 했어요. 그분들이 그래 놓으니까 설교 하면 진짜 가짜를 다 알고 있어. 아마 그거 다 한 사람들이 몇백 명이 될 거요. 몇백 명이 더 될 거다.

여게서도 그런 게 그것이 참 자기의 실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앞으로 그런 것 안 한 사람들 숙제를 내 가지고서라도 자꾸 그렇게 해서 어짜든지 실력을 길러야 돼요. 실력을 길러야 앗기지 안하지 실력 없으면 안 돼요.

실력만 있으면 아무데 가도 앗기지를 안해, 뭐. 나는 어데든지 철학자들 이래 거석해 가지고 철학자들 그거 말해 쌓는데 한 마디 하면 뭐 떨어져 버려. 너 이래 말하는데 여게는 뭐이야 하면 그만 그만이라. 이러기 때문에 불교 그거 참선자라 하는 거는 ○○이 저거 외삼촌은 전국에 참선 중으로서는 제일 으뜸가는 중이야. 참선 중은 명상 중이라 하는 건데 불교에 대해서 깊이 명상하는 사람이라. 그라는데 그 사람은 나하고 세 번 만나 가지고서 나중에 예수 믿고 죽을 때는 여기 와서 중들에게 기별 못 하구로 하고 여기 숨어서 여게서 죽었어. 김해 묘지에 묻혔어. 그라고 난 뒤에 그 뒤에 탐소문을 해 가지고서 알아 가지고서 뭐 야단을 지겼지만 뭐 장례한 걸 어째? 그래 요거 다 외우고 시험은 목요일까지 시험을 치겠습니다. 시험치고 금요일날은 거게서 모르는 것 묻도록 하십시오. 모르는 것, 외운 사람이 아니면 모르는 걸 물어도 안 가르쳐 줍니다. 외우면 저절로 알아질 것인데 내가 뭐 가르쳐 줄 게 뭐 있어야지. 외우면 저절로 알 것인데.

이러니까, 목요일까지 야고보서 몇 장이요? 5장이요? 뭐 여러분들은 외울라면 그렇게 어렵지 안해요. 외워서 요다음에 강을 할 때에 서로서로 이래 강을 받는데 두 자 틀린 거는 그만 통과시키고 두 자 이상 석 자 틀린 거는 틀렸다고 해서 지적을 해서 그래 표시하면 점수를 매길 것입니다. 그거 다 외우도록 해요. 그 몇 장입니까, 야고보서가? 장 수는 오 장인데 페이지로 몇 페이지? 여섯 페이지? 5장이 여섯 페이지야? 그러면 너무 가볍구만. 또 야고보서 이런 거는 외우기가 쉬워요.

행함과 결부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 그라면 월, 화, 수, 목 이렇게 나흘 공부해 가지고서 금요일날 아침부터 시험치고 그다음에 질문할 거 있으면 질문해서 그라면 제가 모르는 거는 제가 아는 대로는 가르쳐 주겠습니다. 그거 그라면 좋아요? 그래 하는 것 좋아요 그저 좀 마음에 섭섭해요? 그래 한번 맛을 해 봐요. 어짜든지 우리 인제 참 산 신학을 합시다.

저는 ○○신학교 다닐 때에 뭐 가르치는 게 거석해 나는 별로이 거기서 공부 안 했어요. 또 그라고 언제든지 새벽예배 보고 나면은 남아 있는 거는 나밖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어. 그만 기도 안 하고 설교 끝나면 그만 가 버립니다, 공부한다고.

그래 놓으니까 내음새가 하나도 교역자 내음새가 하나도 안 나고 신자 냄새가 하나도 안 나. 전부 안 믿는 사람 장돌뱅이 같아, 모두 다. 전부.

여게도 그 식사 시간 바꾸라 했습니다. 일곱시 해서 반 시간 먹어서 일곱시 반까지 먹고 식사하고 난 다음에 반 시간 좀 쉬고, 그라면 돼요? 어째? 반 시간이면 밥 못 먹습니까? 일곱시에 식사 시작해 가지고서 일곱시 반까지 식사하고 인제 일곱시 반에서 여덟시까지 쉬어 가지고 공부하고 세수는 아침 일어나던길로 하고, 일어나던길로. 저도 대개는 세시에 일어나요. 일어나 가지고서 그래 세수하고 그래 가요. 그런데, 일곱시에 식사 시작합니다. 그라면 여게서는 일곱시까지 방에 딱 차려놓고 그래 하고 그거 좀 규칙적으로 그래 해.

그라고 뭐 여기서 기도 안 하고 또 저 산에 기도한다 하는 그것도 운동도 겸해서 좋습니다. 그러면 그런 걸 다, 죽은노릇도 있고 산노릇도 있어. 그러며 가면서 기도하고 오면서 기도하고 자꾸 명상하며 그냥 걸으며도 기도하고 또 그냥 이래 뛰어가면서도 이래 할 수가 있고 또 그때 외우는 것도 한번 복습을 해 보기도 하고 자꾸 이래 해서 어짜든지 노력을 해야 됩니다. 부지런히 안 하면 안 돼요.

이런데 죽자껏 부지런히 해도 안 되는데 뭐 행함을 강조하면 안 된다고 자꾸 게을을 파고 이래 가지고 여러분들이 뭐하는 게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해. 영 게을해. 지금 뭐 나이가 팔순된 나보다 여러분들이 더 게을해요, 보면. 그래 가지고 목회 못 합니다. 목회는 부지런해야 돼요.

자, 그라면 그렇게 하기로 하고 잠깐 기도합시다.

주님, 주의 종들을 양육하는 기관을 두시고 몇 사람 되지 않는 일군들을 모아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는 숫자가 문제가 아니고 주님과 함께 하는 자와 주님을 정말로 바라보고 힘입어 하려는 자가 문제인 줄을 압니다. 인간이 무엇을 가르치겠습니까? 여게서는 주님이 친히 주장하사 믿는 믿음을 공부하고 실천을 공부하고 주님을 찾아 만나는 일을 공부하게 하사 점점 경건을 연습하여 자라가도록 은총을 주시옵소서.

이번 기간은 주의 말씀 야고보서를 외우고 거게 대한 진리를 깨닫고 확정짓고 욕망하고 단행하기로 발족하는 이 은혜를 저들에게 주시고 이 말씀의 능력이 저희들 안에 충만케 하사 피조물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주님 한 분으로서 전부를 삼아 갈 수 있는 산 신앙을 가진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선지자선교회 시험은 금요일날 새벽부터 치겠습니다. 그러면 그때는 제가 여기 오겠고, 그래 서로서로 이래 외울 것입니다. 서로서로 외워도 들려도 뭐 거석하는데 어데 장소가 그렇츰 있소? 예배당에도 되고 이러니까 그때 짝을 지워 줄 터이니까, 내가 와서.

{누구는 누구하고 강을 받고, 강을 받는데 서로 마주 받지 안해. 마주 받으면 나도 너 후하게 해 줄 터이니까 너도 나 후하게 해 달라. 그렇게 또 마귀란 놈이 또 거게도 있다 그말이오. 아예 강만 받기만 받지 아무 그 부가 없습니다.} 이래 가지고 여러분들이 그거 자꾸 연구하는 방법을 말하는 겁니다. 노트를 가지고서 읽으면은 그냥 좔좔 읽을라 하는, 그거 외울라고만, 외울라고만 하지 말고 자꾸 깨달으면 저절로 외워져요. 외워지는 건 저절로 외워지고 자꾸 깨달을라하고 하는 그걸 가져야 돼. 그러니까 1장을 읽으면서 요거 무슨 말인가 첫째는 알아야 외워지지 모르는 것 외워야 소용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자꾸 이렇게 알라고 요래 하면 요거는 모르겠다. 그러면 그걸 또 기록해 놓고 그다음에 또 읽고 자꾸 이렇게 하면은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어보면은 요긴하다 하는 것이 자꾸 바꿔집니다.

요긴하다 하는 게 자꾸 바꿔지고 또 모르는 게 자꾸 바꿔집니다. 아는 줄 알았는데 그거는 모르고 그 모른다 하던 거 그거는 쉽고, 그래서 자꾸 성경은 읽고, 또 읽는 것보다 또 외우면 또 달라요. 외우면 또 거게 대해서 읽는 것 보다 관심이 더 깊습니다. 이러니까 깨달아짐이 다른 것이니까 이렇게 해서 ‘아, 이러니까 자꾸 읽고 이래 하니까 성경이 깨달아지는구나.’만일 여러분들이 외우기까지 해 가지고서 그만 물을 것 없이 그만 다 안다 해 버리면 그게 그만 달통이라, 그만. 모든 성경을 그라면 다 돼 버려. 이러니까 그런 것을 실지로 한번 해서 그렇게 공부하도록 그렇게 합시다.


(녜, 저 누고 인제 오노? 보자, 누고? 왜 인제 오노? 심방? 심방갔다가? 차가 밀려서? 일찍 오지 그라고 있어? 아, 뭐 저 무슨 신학이고? 부산신학 졸업하니 여 이까짓 거야 시시한 것 여게 오는 것 이거야 여기 늦게 가도 되고, 그말 속담이 있어. 아, 요까짓 놈의 동리 앞에서야 갓쓰고 똥 못 눠. 갓쓰고 똥 누면 쌍놈이라고 벌받거든. 이라니까 아, 요까짓 놈의 동리일밖에야 갓쓰고 똥 못 눠. 이것모양으로 그런 거 아니가? 그라면 안 된다. 천하에 나중에 가서 보면 신학은 여게가 제일 일등 신학이다, 나중에 봐라. 그래 하면 안 돼. 그거 또 누가 안 왔다 했노? 합정동교회? 헤이구 뭐 성경 공부 그거야 이 무슨 또 사학이니 세상에 철학이니 뭐 그게 와야 가치가 있지 아, 만날 백 목사님 성경 하는 것 그거, 그라면 그 사람이 누구든지 옳게 목회 못 해요. 그거 그런 사람이 어째 하나님 만날 거라? 자, 그라면 다 외워서 그 만점을 맞도록 그래 하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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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 사역자를 위한 기도제목/ 에베소서 6장 18절-19절/ 890115여전도총회 선지자 2015.11.03
838 사욕과 공욕/ 이사야 1장 1절-20절/ 851230월새 선지자 2015.11.03
837 사울 멸망의 4가지 교훈/ 사무엘상 15장 17절-23절/ 880208교역자회 선지자 201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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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5 사울과 다윗의 순종/ 사무엘상 15장 22절-23절/ 850223토새 선지자 201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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