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활대속 완성

 

1984. 4. 5. 목새

 

본문: 히브리서 5장 7절∼10절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가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선지자선교회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것은 첫 열매이신 예수님을 표본으로 삼아서 신앙 성공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신앙 형태나 그 행위가, 어떠 하심을  우리가 알고 그대로 행할 때에 예수님이 베풀어 주신 이 구원을 우리가 받을 수  있고, 또 예수님이 약속하신 그 구원의 성공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우리 믿는 모든 사람들의 표본이요 또 원형입니다. 그  모양, 그 태도, 그 중심, 그 사상, 그 행동 그 방편이라야 되지 다른 새 방편이  없습니다. 그 방편을 취하지 안하면 그 방편을 취해서도 일들은 달리는 암만  해야 안 됩니다.

 우리의 신앙 행위의 성공은 예수님의 성공해 놓으신 그 성공을 우리가 배정받는  성공입니다. 우리가 새로 우리 구원을 이루는게 아니고 주님이 이루어 놓으신 그  구원을 우리가 공짜로 받는 구원입니다. 받으면 됩니다. 그 구원에 뭐  억억만분의 일이라도 우리는 그 구원을 우리 힘으로 마련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그 구원은 억억만분의 일이라도 마련은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구원을 마련하는 줄로 이렇게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그는 전지전능의  자존자이신 그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서 신인 양성 일위이신 그분만이 이룰 수  있는 일이지 그분이 아니면 이루지 못합니다. 우리는 신성을 가지지 못한 자요,  또 우리는 인성이 신성과 일위가 되지 못한 자입니다. 다만 그분이 이루어 놓은  구원, 얼마나 어렵고 힘들고 존귀한 구원을 우리 대신 이루어 놓으셨는데 이루어  놓으신 모든 구원의 부분 부분을 우리가 배정받는 것입니다. 그 구원을 우리  개인의 구원으로 삼는 일이요, 또 그 구원을 우리 개인의 구원으로 삼아 가지고  세상에서 그 구원으로 한번 살아 보는 일입니다. 한번 살아서 그 구원을 우리가  확실히 받아 가지고 그 구원으로 살 수 있는 자 되면 됩니다.

 살 수 있는 자로 그러기 때문에 우리 모든 구원은 첫째 아는 것이요 다음에는  아는 것을 그 다음에는 우리가 인정하는 것이요, 인정하는 것을 소망하는  것이요, 소망하는 것을 우리가 실행하는 것인데 그러면 이것을 연습합니다.

우리가 이루어 놓으신 그 구원을 내가 참으로 아느냐, 그 구원을 인정하느냐, 그  구원을 내가 확실히 지금 내 구원으로 바라 보느냐, 또 그 구원대로 내가 한번  살아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을 우리가 성공하는 데는 예수님이 어떻게 하셔 가지고서  성공을 하셨는가 하는 성공하신 그 방편대로 우리가 방편을 써야 만들어 놓은  구원을 공으로 우리가 받지마는서도 그것을 받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그 구원은 그 구원을 이루실 때의 그 방편과 같은 방편을 우리가 쓰면  공으로 받을 수가 있습니다. 써 보면 잘못하면 그 구원을 받기 위해서 노력한 그  노력을 본인이 아는 대로는 힘껏 노력했기 때문에 제 노력을 가지고 그 구원이  만들어진 것으로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그거는 벌써  주님의 대속을 잊은 사람입니다. 만드는게 아니고 그 구원을 공으로 받는 그  노력입니다. 받는 노력, 받는 노력이 고 받는 그 힘에 불과한 것이지 그것이  구원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그 구원을 받는 데는 어떻게 받으라고 했는가? 간단하게 말해서 '사라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 하라' 사라, 사라 자꾸 이렇게 사라 했습니다. 또 다른  데는 보면 '돈이 없어도 사라' 이랬습니다. 돈이 없어도 사라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그 은혜를 우리가 얻는 데에는 은혜의 댓가가 될 만한 댓가가  우리에게 있는 거는 아닙니다. 예를 들면은 만 원 짜리면 만 원어치가 있어야,  금이 만 원어치가 있든지 그리 아니면 일반으로 인정하는 지화나 온전이나 뭐 만  원어치가 있든지, 그러면 그 사람에게는 만 원짜리 물건을 돈이 없으면 내게 만  원짜리 물건을 뭘 줘서 서로 물건과 물건을 바꿔도 바꿔야 되는 것이지 그  댓가가 있어야 되지 댓가가 있지 안하며은 그거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베풀어 놓으신 구원을 그 구원을 받을 만한 살 만한  댓가는 하나도 없습니다. 억억억억만분의 일도 살 만한 댓가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사라 했는가? 그러기에 돈 없어도 사라 이랬습니다.

 돈 없어도 사라 그 말은 사는 것은 파는 사람이 요구에 응해야 사지 그렇지  않으면 사지 못합니다. 파는 사람은 꼭 돈을 받을라 하면 내가 돈을 줘야 되지  다른 것 줘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이 구원을 마련해 가지고서 파시는  이는 주님이신데 이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뭐이냐? 요구하시는 것이  사라, 돈 없어도 사라 하는 '사라' 말은 네 언행심사의 전부가 왜 죽었느냐?  언행심사의 전부가 하나님을 딿지 안하고 제 생각, 제 욕심, 제 성품, 제 뜻대로  해서 죽은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 마음. 제 생각. 제 욕심. 제 뜻대로  하고는 하나님이 주시는 이 구원을 받을 수도 없고, 받아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라 그말은 자기를 완전히 옛사람 자기를 부인해서 고놈을  버리고, 하나님의 성경에 위반되 것 제게있는 단점은 모르고 남에게 있는 단점을  말하는 그자는 마귀입니다. 바로 마귀 자식입니다. 또 자기가 자기의 주장이나  자기의 감정이나 자기 욕심이나 그대로 움직이는 그것도 내나 옛사람 그 마귀,  악성, 악습으로 만들어진 자인 것입니다. 이것을 부인하라 말이오. '사라' 말은  이것을 부인하고 이놈을 쫓아 내고 하나님을 모시고 이제는 하나님에게 네가  복종하는 자 돼라 그말입니다. 네가 하나님에게 바쳐서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자  돼라 그말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사라' 말하는 것입니다. 네가 이제는 너를  네 마음대로 하지 말고 너를 하나님이신 당신에게 바쳐서 당신이 하라 하는 대로  하는 자 돼라 이것을 가리켜서 '사라' 말했습니다.

 이게 안 되면 구원은 안 됩니다. 구원이 될 길이 없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약속을 해서 된 것도 그러하지마는서도 이 구원은 바로.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에게 다 맡겨서 복종하는 그것이 구원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이지 그게  아니면 구원을 방해하고 자꾸 반대하는 것인데, 어떻게 반대하는 구원을 받아서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고로 우리가 구원 성공하는 데에는 이 8절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그러면 하나님의 독생자이시지마는 이 하나님에게 순종할라 할 때에 그저 쉬울  때만 순종 하는 거 아니라 순종해 가면은 차차 차차 순종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순종하기가 점점 어려워져도 그 어려워지는 것을 무릅쓰고 그 순종하기가 심히  어려워 아주 고난을 받게 돼도 어렵다고 그 순종을 버리지 안하고 어려워도 그  순종을 계속함을 인해서 온전함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면, 주님도 순종으로 성공은 했는데, 순종으로 성공할 때에 쉬운 순종이  아니라 쉬운 순종이 아니라 더 이상 없는 그 어려움에도 순종이 요동치 아니함을  인해서 온전함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온전함을 이룰라고 하면  순종이라는 그 순종. 완전자에게 이렇게 이렇게 인도하는 대로 고대로 인도를  받고 고대로 가르치는 대로 가르침을 받고 어짜든지 모든 것이 순종인데 마음의  순종과 몸의 순종인데. 순종을 하되 쉬운 순종만 하지 말고 어떻게 어려워도  순종할 것, 순종을 조금만 순종할 거 아니라 끝까지 순종할 것 끝까지 어떻게  어려워도 이 순종이 요동치 안하고 끝까지 순종을 하면 우리는 우리 구원을  성공을 하게 됩니다.

 그런고로, 순종없이 구원을 이를라고 하는 사람은 그것은 제 맘대로의 하는  사람이지 하나님의 도에는 상관이 없습니다. 또 순종하되 쉬울 때만 순종하고  기분 좋을 때만 순종하는 그 자는 구원을 이루지 못합니다. 저 좋은 대로 저  기분대로 하는 그자는 열 이스라엘이 자기네들 하고 싶은 대로 기분대로 해  가지고서 그 열 지파는 한 사람도 남김이 없었습니다. 앗수르로 잡혀 갔으니까  앗수르에 가서 있는 줄 알지마는서도 사람이라 하는 것은 오랫동안 그 유전성,  민족성 또 방언성 그것을 못 고칩니다. 아무리 수천 년 지나가도 그것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데 앗수르로 잡혀 간 북쪽 이스라엘은 이 잡혀 간 그 후에 역사에  아무 데 봐도 남아 있는 데가 없습니다. 완전히 전멸됐습니다. 그만 종자를  완전히 없애 버렸습니다. 여자만 남아도 그럴 건데 남자가 완전히 인종이 완전히  남여 인종이 완전히 전멸 됐습니다. 그 전멸이 뭘로 됐는가? 제 기분대로 한  것이요, 제 감정대로 한 것이요, 제 오기대로 한 것입니다. 그걸로써 망했어.

 이러기에, 우리가 이 순종으로 성공하는데 순종할라 하면 뭐 좋을 때야 누가  순종 못 하겠습니까? 쉬울 때 누가 순종 못 하겠습니까? 이러나 그것만 가지고  아니고. '아들이시라도' 8절에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그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는 거기에서도 고난을 당해도 순종하고.

고난당해도 순종하고 이러니까 어려워도 순종하고 고난을 당해도 순종하고, 배가  고파도 순종하고, 참 아파도 순종하고, 두려워도 순종하고 이라니까 자꾸 그래  순종하니까 그 순종이 차차 차차 익숙해지고 강해지고 견고해지고 그 순종이  요동치 않는 순종이 됐습니다. 이래서 순종이 성공이 됐을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베풀어 주시는 모든 그 역사도 다 성공하게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순종 성공이 우리 구원 성공입니다. 순종 성공을 할라  하면 순종 성공하는 데에는 이런 저런 연단을 많이 받고 애로를 많이 거쳐야  되지 조금 이런 어려움에도 모든 어려움에도 다 순종할 수 있고, 모든 마찰에도  순종할 수 있고, 모든 고난에도 순종할 수 있고, 아무 마귀 이 세상이 우리의  순종을 없앨라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도 그 방법과 수단에게 우리 순종이  꺾어지지 안하고 깨지지 안해야 그 순종이 성공하는 것이지 마귀에게 깨지면  마귀 그까짓 것 깨 버리는데 순종을 냅둡니까? 이러니까 순종을 온전케 하는  것이 곧 우리 구원을 온전히 성공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여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했으니까 우리도 그렇게 해야 됩니다.

 또, 우리가 요새 기도하고 있는데 우리가 기도하는 데는 예수님이 기도 하시는  그 본을 따라서 그 형식을 갖추고 또 그 간절을 갖추고 그 중심을 갖주어야 우리  기도가 성공이 됩니다.

 그러면, 주님의 기도는 어떻게 기도했던가? 첫째가 주님의 기도에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소원. 우리가 간절한 그 소원이 없는 것을 가도하는 것은 그것은  주님이 들어 주실 수는 없고, 간절한 소원이 없어도 기도하면 그 기도는 그래도  황입니다. 황이지마는 간절한 소원이 없으면서도 이렇게 자꾸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뭐 기도 안할 때보다 죄 지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 기도하면 아무리 그 사람이 못 쓸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기도할 때는 그래 마음이 조매라도 다소라도 고쳐집니다. 옳은 걸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함으로 자기가 고쳐지는 일은 된다 할지라도 기도의  응답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가 요번에 교역자회 때도 그런 증거를 제가  한 시간 했습니다. 모든 역사에 보면. 그 일이 이 세상이 우리 구원 이루는 일을  방해를 해서 대적이 많을 때 그 대적을 우리는 그 대적을 어떻게 해결 짓지를  못했습니다. 인간은 대적을 해결 짓지 못했는데 대적이 심할 때마다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척 한번 역사하시면 그만 사람들이 보고 '아이구 저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 이래 가지고 그 일이 대적은 다 꺾어지고 성도들이 승리했지 하나님의  그 기적이 나타나지 안하면 일이 안 됐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제목에 우리가 무엇이든지 기도할 때에 그 기도가  이루어지든지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그만하라고 그 기도를  옮겨서 다른 기도하라고 옮겨 주시든지 그리 아니면 그 기도에 대해서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시든지 무엇이 끝장이 나도록까지 기도하라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가 기도는 끝없는 기도하자 결과있는 기도하자 하는 그것이 우리 기도하는  제목 가운데에 한 제목으로 들어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기도하면서 앞으로 큰 환난이 우리 앞에 있을 것이라.

그때는 안 믿는 사람은 천이면 천. 만이면 만 명 천만이면 몇 천만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세력에게 다 꺾어지고 말지 그 세력에게 꺾어지지 안할 사람이 없고  그 세력으로 인해서 패전해서 손해보지 안할 자가 하나도 없을 터인데 다만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면 손해보지 안하고 더 유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니까, 앞으로 오는 이 환난이 오기는 오는데, 이 환난이 우리는 꼭  온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 우리는 그거는 하나님이 아시지 우리는 꼭  이라고는 모르지마는 환난이 또 오든지 안 오든지 환난이 와도, 그 환난으로  말미암아 손해보지 안할 수 있는 그 신앙 준비가 돼 가지고 있어야 무궁 세계의  성공이 되어지는 것이지 환난이 안 왔으면은 그 환난으로 꼭 굴복을 해서  불의에게 머리를 숙이지 안했으면. 그 환난이 안 와서 안 했으면 환난이 오면 할  수 있는 그것이 환난이 안 와서 굴복을 안 했다고 해서 그것이 승리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에 그대로 심판하는 것이니까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앞으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큰 환난이 올 터인데, 이  환난에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거나 신앙을 배반하거나 배반한 우리를 죽인 악령과  악성과 악습인 이 세상이 우리를 위협하고 우리를 꾀우고 우리를 이렇게  무력으로 강제할 때에 우리가 다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배반하고서 그것에게  굴복하는 이 종이 되는 이 일을 우리가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이 있다 할지라도 다시 마귀의 종이 될 수는 없다,  다시. 사망의 종이 될 수는 없다, 다시 죄의 종이 될 수는 없다. 다시 예수님의  사죄를 벗을 수도 없고 칭의를 벗을 수도 없고 하나님과 이 죽기까지 하시  가지고 화친해 주신 이 세 가지 구속을 벗을 수는 없다. 이렇기 때문에 벗게  할라 하는 것이 그들이 하는 일이요, 앞으로 환난은 그것을 벗길라고 하는  것이요, 우리는 그 환난을 환난에서 이 구속을 벗지 안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어렵다고 죽으심으로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우리가 좀  어렵다고서 이 구원을 집어 던질 수가 어떻게 있겠습니까? 이렇게 어떻게 정조를  팔수가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이것을 생각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이 구속을 팔지  안하고 이 구속을 내어 주지 않는 이런 자가 되고자 하는 그때에 이 구속의 이  지조를 팔아서 정조 판 창기와 같이, 요새는 세상이 더러워졌기 때문에 정조  있는 남자와 여자가 그렇게 뭐 아주 희귀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정조라 하는  거는 무슨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울 때 하는 이야기처럼 이 사람들이 웃습니다.

이럴 만큼 우리는 지금 이 세상이 이렇게 되기 때문에 우리가 속화되게 되기  쉽고 속화되는 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신앙의 정조를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다시 이 신앙의 정조를 팔 수 없다 하는 이게 마음 가운데 소원이 돼야  되고 간절한 소원이 돼야 됩니다. 이 간절한 소원이 없이 아무리 와서 우리가  해도 안 돼. 이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 됩니다.

 지난 밤에도 ○○○목사님, 내가, 설교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지난밤같이 그렇게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조금만 조심해서 설교를 하면 앞으로 목회를 잘  할 수 있습니다. 주일 학교 가서 설교하는 데서는 그거는 무대에서 연극하는  것이지 그거는 아이들도 웃기나 하지 은혜 하나도 못 받습니다. 내가 번번히 볼  때에, 이런데 지난밤에 설교할 때는 조금 설교의 좀 경건성을 가지고서 설교하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내 말은 못하지마는서도 왜정 때에는, 6·25 때에 그때에 신앙 지킨다는 것이  어렵지 않았느냐, 그 어려움을 여러분들이 생각지를 말라 해도 생각지를  못합니다. 그 뭐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서 대번 죽일라고 지금 호위해 가지고  있고 또 날마다 죽인다고 사형 선고에 사형 선고를 딱 판정해 놓고 이민  재판에서 죽일라고 그렇게 자꾸 이래 하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그렇게 그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하루 세 번 예배드린다는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사람이 죽음에 떨지 안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기 ○○○ 장로님이 여기 지금 양성원 공부하는데 그때에 주일 학교  부장입니다. 부장인데, 그때에 집회할 때에 인민군들이 다 포위하고 저거는 지금  저놈들은 우리 망하라고 지금 기도하고 있으니까 저놈을 어짜든지 잡아 죽여야  된다고 하는 그것을 늘 날마다 통보가 왔습니다. 통보가 와도 우리는 하루 세  번씩 꼭 예배 보는 그것이 내 힘이 아니요 그거 내가 한 걸로 자랑하는 거 내  힘이 아니고 하나님이 해 주셨기 때문에, 그때는 아마 제가 알기로는 거창 지방  뿐 아니라 경남에서 기도에 대해서 힘쓰기는 저 만침 기도에 대해서 힘쓴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모두 이 산 기도가 나왔고 뭐 금식 기도가 나왔고 자꾸  이렇지마는 그때는 산 기도니 금식 기도라 하는 것이 별로이 없었습니다. 저는  늘 산에서 살다시피 산 기도를, 그래서 내가 여기에 부산에 처음으로 나오니까  얼마나 소문이 퍼졌는지 만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렇게 산 기도를 많이  하셨다지요, 그렇게 금식 기도를 많이 하셨다지요 나는 그렇게 한 생각이 그렇첨  많이 했다고 보이지 않는데 아마 소문이 많이 났던 모양이라. 이래 오니까 모두  전부이 저 사람은 산 기도 많이 한 사람이라, 금식 기도 많이 한 사람이라, 이  기도 많이 한 사람이라 그렇게 그 소문이 나 가지고 그런 사람으로 호가  붙었더라고요. 붙어서 생전 보지 못한 사람 인데 간간접으로 그 사람이 여기  왔다가 요번에 ○○신학에 왔다는데 그래 ○○신학 바로 첫학기입니다. 첫  시작하는 ○○신학교 시작하는 첫 강단에 제가 와서 참석을 했습니다. 처음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때 모두 다 간접적으로 '그런 사람이 여기  왔다는데 그 사람이 누군가' 이래 가지고 모두 이래 간접적으로 이래하는 것을  봤습니다. 봤는데 그때 저는 거기에 있다가서 속에 불이 나서 그걸 배운다고  거기에 앉아서 쭈그리고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아, 나는 여기서 그만하고  나가서 복음 전해야 되겠다'고 그래 가서 나흘 공부하고 난 다음에 그만  거기에서 퇴학을 하고서 갔었습니다.

 이래는데, 그때에 내가 한 기도와 같은 그 기도가 내게에 없으니 내가 앞으로  그런 승리를 하지 못할 자라, 이래서 그런 기도가 있어야 이제 그런 승리가 될  터인데 그때는 참 감옥에 가 가지고 신사 참배 때문에 감옥에 가 가지고서 한  사람도 자랑하고 참 그거는 위대하지마는서도 나는 감옥에 안 갔습니다. 감옥에  안 갔다고. 내가 그때 교회를 목회 안 한게 아니고, 또 내가 있는 면이 제일  박해가 제일 심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잡아다가 전부 지서에 갖다 놓고서 다  항복을 받고 각서를 새고 도장을 찍으라 했었습니다. 그런 면에 제일 유명한  교회입니다. 제일 핍박 많고 신앙생활 때문에 이 세상과 대립이 제일 많은  것이기 때문에 주목이 제일 많았습니다. 이래도 매일 그 일본 부장이  찾아왔습니다. 매일 와 가지고 매일 조우고 따졌습니다. 그래도 그때에 내게는  두려움 하나도 없었고 신사 참배 안해도 그들이 잡아 가지도 못했고 교인 하나도  잡아 가지 못했습니다. 그때 제 밑에 있는 교인은 신사 참배 하나도 안 했어. 그  일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된 것이지 그것이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것은 그때에 내가 누구보다도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이 아닌가.

그 기도를 듣지 안했는가, 그걸 내가 기도를 제일 많이 했기 때문에 그때 승리를  제일 승리를 잘했다고 나는 그렇게 하나님이 잘하게 하셨다고 내가 그렇게  봅니다. 왜? 그들 앞에서 신사 참배를 반대하고 돌아 다녔지마는서도 자기네가  잡아다 주지도 못하고 잡아다 가져 가지도 못하고 자꾸 이야기하면서 심지어  그때 그들이 천조대신이 그게 내나 신사인데 '천조대신 이 천조대신 그것을 날  달라, 내가 너거 앞에서 불에 사루께' 그 말이 어디 있습니까, 그 말을 해도  그들이 날 어떻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또 일본 국기를 그리 쌓으니까 일본  국기는 일본 나라의 표시 아니냐 그것들은 신으로 보기 때문에 일본 국기의  히노마루(ひのまる)의 신을 모르느냐고서 태양신을 모르냐고서 '아, 그래 태양신  그 태양신 그것 지금 나한테 달라, 내가 불에 가서 너거 앞에 사루께, 그러면  내가 벌받을 것 아니가, 벌을 안 받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벌 받으면 될 거  아니가.' 일본 부장. 일본 한국 순사 전부 지서인들 전체 있는 앞에서 내가 불려  가 가지고 내가 이야기 했습니다. 이래도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니까 그들이 손을  못 대서 말 만했지.

 6·25때도 그런 것이 그때는 내가 기도를 그렇게 했는데 8·15도 내가 저  덕유산이라는 그 산봉에 가 가지고 기도하다가 8·15를 맞이 했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했는데 내가 지금은 여기 와 가지고 이라니까 그만 기도를 못 하고 거도 못  하고, 또 내가 작정하기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힘을 주시면, 설교만 하고  성경만 읽어서 연구하고 기도하고 요 세 가지만 하겠습니다.' 이렇게 했는데  내가 며칠 전에도 사람이 와 가지고서 딱한 사정을 말하니 말하지 안할 수  없어서 말하다가 늘어져 가지고서 내가 여러 시간 설교을 못했다 그거요. 내가  그렇게 남용을 해서, 그래 내가 개인을 만나지 안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렇게 기도 해 가지고 성공을 한 것을 과거에 성공한 것을 지금은 다 이  실패자야, 내가. 실패자이지마는서도 과거에 성공한 것을 그것을 내가 봤기  때문에 다시 성공을 새로하기 위해서 지금 이 기도회를 작정하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작정한 거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와  같이 다른 사람은 환난이라 죽는다고 토닥거리는데 그 하나님의 권능이 같이  하니까 웃음으로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원함으로써 이렇게 환난을 이겨 나간 것.

 나는 그것도 참 기쁨니다. 왜? 조그만한 승리도 승리했다고서 온 전국이 야단을  지기고 이랬는데 그런 승리도 승리한 그것을 감춰 버려서 내가 말하지 안하고  감춰 딱 가둬 놓으니까 아무 말이 없이, 아무 말 없이 감추어 가지고서 그렇게  그것으로 우쭐거리지 안하기까지 하나님이 해 주었다 말이오. 승리하고 승리해서  우쭐거려 가지고 승리해서 다른 사람이 승리 했다고 이렇게 찬양을 하고 이렇게  높여 주었으면 나도 말할 것 없이 뚝 떨어졌을 터인데 그런 일 없기까지 당신이  해 주셨다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기도함으로서 하나님이 승리를 하되 또 더 많이 기도하면  기쁨으로 승리하고, 또 많이 기도하면 기쁨으로 승리할 뿐만 아니라 승리하고 난  다음에도 교만하지 안하고 겸손으로 끝까지 열매 맺을 수 있는 여기까지 하게  하시는 이것이 당신이 어떤 분이신 것을 인정하고 그분에게 간구해야 되는  것인데. 이것 때문에 무리가 기도를 시작했는데. 우리가 기도를 한다고 이래  오기는 오지마는서도 간절한 소원이 우리 속에 없으면 안 됩니다. 간절한 소원,  어짜든지 그때 그럴 때에 내가 다시는 신앙의 정조를 팔지 안해야지. 신앙의  정조라 하는 것은 사죄를 벗지 안하는 것이 신앙의 정조요 칭의를 벗지 않는  것이 신앙의 정조요 하나님과 더불어 화친한 이 화친을 다시 배반치 안하는  이것이 신앙의 정조입니다. 신앙의 지조 정조 이 세 가지가 신앙의 정조인데  신앙의 정조를 우리가 날마다 이 정조를 파나 안 파나 하기 위해서 요럴 때에는  뭐 어떤 억센 일이 와도 신앙의 정조를 팔지 안했는데 고만 평안할 때에 이  사소한 일에 마음 놓고 있다가는 지나가 보면 딱 넘어 가 버리고 사소한 일에  진다 그말이오. 강한 일에는 이겼는데 사소한 일에 지고, 또 어려울 때는  이겼는데 쉬울 때에 지고, 아주 나쁠 때에는 이겼는데 좋을 때 지고, 또 좋을 때  이겼는데 이래하다 보면 고만 그 면만 힘쓰다 보면 나쁠 때 그만 푹 져 버린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현실 저런 현실 자꾸 줘 가지고서  우리로 하여금 참 신앙의 정조를 지켜서 아무 흠이 없는 자 되어 가지고서  무궁세계에 만물들에게 호령을 칠 수 있고 만물들에게 이렇게 정조를 지킨  신앙의 사람으로서 만물을 통치하고 만인간을 다스릴 수 있는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연성시키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에게 첫째는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 됩니다. 그 앞으로 어떤  대환난이 와도 다시는 주님의 사죄를 죄 없이 하심을 벗지 아니하고 또 죄가  있게 되면은 죄 없이 하심을 벗는 거라 말이오. 사죄를 벗지 아니하고 칭의를  벗지 안하고 화친을 벗지 안하고서 죄 없는 자로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이게 다시는 내가 변동하지 않는 이것이 우리에게 소원이 있되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 됩니다. 주님도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

간구는 간절 아닙니까? 간절한 소원이 주님에게 있어 가지고 되었어요. 간절한  소원, 그러면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기도할 때에 어떻게 기도했느냐? 눈물과  심한 통곡, 눈물과 심한 통곡이 나기까지에 이 기도로서 기도해서 주님이 그  기도를 아버지가 들으시고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러니까, 간절한 소원이 우리에게 있어야 되겠고, 간절한 소원 있는 이 소원을  하나님에게 우리가 기도할 때에 눈물과 통곡으로 기도하는 이거 뭐 그저  간단하게 와서 삼십 분 기도한다고 이래도 삼십 분 기도하는 가운데서도  되지마는서도 삼십 분 기도 가지고는 참 그래요. 그러니까 할 수 있으면 좀 그런  기도의 기간을 둬 가지고서 참, 우리 마음이 강퍅한데 자꾸 이렇게 새기고  새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고,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를 요 전번에 일곱  가지를 말했습니다. 일곱 가지를 말하면 자꾸 마음에 감사와 또 부족과 후회와  또 너무 내가 어떤 죄인이라는 걸 알게 돼서 자꾸 시몬도 되고 또 베드로도 되고  이렇게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그래 가치고 우리는 참 눈물 있는 기도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눈물 있는 기도가 있어야 되겠고, 또 못 견뎌서 그만 옆에 사람이  뭐라 하니 그것도 모르게 고만 통곡이 나오는 이 통곡 기도가 있어야 되고 눈물  기도가 있어야 그래야 무슨 일이 돼집니다.

 그런데, 저는, 요새는 말이요 그저 눈물이 나와도 그저 자꾸 눈물이 나오고  마음에 참 감사의 눈물이나 또 잘못된 회개의 눈물이나 있지마는서도 그렇게  주변의 사람이 보이지 안할 만침 그렇게 심한 통곡이 지금 없어. 심한 통곡이  있나 없나 이것이 앞으로 승리를 하나, 승리를 해도 죽을 고생을 하고 제가 그걸  경험 했어. 6·25 때에 한 달 동안은 죽을 고생으로 승리했어. 승리는 승리지만  죽을 고생으로 승리했다 말이오. 그러나 두 달 동안은 웃음으로 승리했어요.

그들이 오면 뭐 웃으면서 대하고 뭐 저거들은 죽인다고 그란다고 해도 그 아무  그저 죽으면 더 좋고 이러니까 죽으면 더 좋고 이랬는데 나중에 은혜가 떠나니까  죽기가 싫으니 죽을 지경이라. 죽음이 두려우니 죽음이 두려우니 죽을 지경이고,  고만 이제 죽기로 작정 하고 하면 고만 평안하고 즐겁고,  이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감이 와야 우리가 담대한 사람도 있고 평안한  사람도 되고 용기도 나고. 또 성령이 우리와 같이 해야 성령이 같이 해야,  성령은 빛과 한가지인데, 성령이 같이 해야 어두움의 마귀들이 금방에 왔다가  뻘뻘 떨고 와 가지고서 '천조대신 가미다나를 나 한테 내라, 내가 불에 너거  앞에 사루께. 국기를 날 달라, 불에 사루께.' 이래도 그들이 해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같이 하기 때문에 그들이 손을 못 대고 하지 못했어. 그리 아니면  그거 뭐 어데 어림이나 있겠습니까? 이라니까 거창서 제일 독한 그 부장 일본  부장을 올려 보냈어. 독한 부장을 '네가 가 가지고 그놈을 꺾어야 된다.' 독한  부장을 올려 왔지마는 그 사람도 나한테 대하기까 부들부들해서 '신가파  함락하는데 내일은 꼭 나오셔야 합니다.' 그래 내가 '생각해 보고 하겠습니다.'  뭐 한 여나번 따져도 생각해 보고 하겠습니다. 그래도 생각해 보고 그라면 뭐  따른 사람 같으면 이놈의 새끼 하면서 그만 거기에서 뭐 떡이 되도록 맞을 건데,  손도 못 대. 이라고 그 이튿날 안 갔습니다. 그 이튿날 안 가고 나는 산에  기도하러 가 버렸어. 이래도 아무도 손 못 대.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까, 다니엘에게 하나님이 합께 하시니  사자가, 그도 해하지 못했고 전국이 죽일라 해도 그 두려움이 그 다니엘 근방에  와서 붙지도 못했고 이러니까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도 평안이요, 밖에 있어도  평안이요, 그는 항상 즐거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여전히 세 번씩  기도했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니 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이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이 다 물러가고 평안하고 즐겁게 이렇게 신앙생활할 수  있는데 이것은 뭐이냐? 우리가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 첫째 되겠고 간절한 소원  있는 이것을 참 눈물로 하되 심한 통곡의 눈물이 우리에게 있기까지 이렇게  기도가 돼져야 이 일이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이 기도회에 예사롭게 생각지 말고 어짜든지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그래도 이 하시는 일을 보니까 서부 교회를 당신이 버리지 안하시고 놓지  안하시는 것이 분명해요. 이 기도회를 시작한 것, 또 한 마디 한 마디  하나님께서 증거하게 깨닫게 해 주는 것이 뭐 진주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진주를 설교하게 해요. 여러분들이 듣고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나는 내가  설교했지만 그거 내가 설교한 것 아니야. 나중에 그 설교한 재독을 들을 때 재독  내가 한 번도 안 빠집니다. 재독을 들을 때에 참 주님이 그렇게 했지 내가 한 것  아니야 그렇게 나는 재독할 때 내가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승리케  하실라고 승리하는 이 좁은 길 바른 길. 좁은 길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  말이오. 알려 주고 있으니 요대로만 하면 돼요. 그렇지. 기도회를 시작해서 하라  하지 이러니까 이거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승리케 하실라고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 주일 학교도 아무것도 아닌데, 그러기 때문에 내가 지금 애가 터지는  것입니다. 이 주일 학교가 이렇게 자꾸 이리 되니 세계적으로 이렇게 말이 나는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 이래 가지고 우리가 무슨 나아서 그러게 아니라  당신이 이것을 붙들고 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뜻이 영원전 예정 했기 때문에  예정대로 되는 그 순서라 그말이오. 그런고로 또 이라다가 승리를 못 하면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앞으로 환난에도 승리해서 과연 그 교회가 환난에도  승리했다, 과연 그 교회가 했다. 끝까지 하늘나라 가도 그때 그 주일 학교가  그리 되고 어떻게 한 그것이 가짜가 아니다. 과연 환난에서도 성공을 했고  끝까지 그리 됐고 하늘나라 와서 보니까 과연 그것이 바로 되고 옥이 되고  정금같이 바로 됐다, 이것을 하나님이 보이시고 자랑하시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이 입장을 우리가 처했으니 얼마나 우리가 조심하고 얼마나 책임이  무겁고 얼마나 그 은혜를 신중히 우리가 받아야 되겠습니까?  이래서, 제가 저 망운산, 구름을 바라본다는 높은 산 망운산이라고 남해에  있는데 망운산에 가 가지고 제가 얼마동안 거기에서 단식기도를 하고 있을 때에  하루밤에는 그 정금 등대를 말해 '정금 등대만이 승리한다! 정금 등대가  승리하는데 정금 등대라고 이래 말하면서 나는 그때 갑자기 내가 몰라서 정금  등대라니 정금 등대가 어데 있나 이랬는데' 그라니까 거기에서 말하기를  '스가랴서를 보라' 이래서 스가랴서에 내가 정금 등대를 봤습니다. 정금 등대와  같이 정금 등대가 순교하지 다른 사람들은 다 죽지 않는다. 정금 등대만이  순교한다. 그것을 제가 받고 그라고 난 다음에 본 것은 내가 정금 등대에 대해서  그 다음에 내가 말을 들은 것은 여러분들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정금 등대. 세상은 깜깜한데 세상에 빤짝빤짝 빛을 내는 세상 온 세상은 다 이리  기울어지는데 기울어지는데 하나님을 향해서 바로 가는 그것이, 정금 등대요  그것이 그 정금 등대의 교파 그것이 정금 등대의 교회요, 그게 정금 등대의  개인이라. 이 어두운 세상에 변하지 않는 등대,  그런고로 우리가 이번 이 기도회에 게을리 하면 안 됩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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