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개오의 신앙

 

1983. 4. 12. 화새

 

본문 : 눅19:1-10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어제 아침에는 누가복음 l5장에 있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와 또 잃은 한  드라크마에 대해서 찾은 것을 본문을 가지고 해석을 했습니다. 그 성경이 어떻게  가르치는 그 해석을 모르고 덩더꿍이로 예수 믿는 사람은 암만 신앙 생활 해도  그저 잡탱이입니다. 뼈도 없고, 눈도 없고, 코도 없고 온 몸이 체계가 없는  것처럼 뚤뚤 뭉친 그저 한 뭉텅이처럼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건 병신입니다.

 어제 아침에 많은 시간을 걸쳐서 왜 이렇게 해석을 하느냐? 이 해석하는 것이  성경 어데를 근거하고 성경 어느 속에 이것이 들었느냐 하는 것을 그것을  여러분들에게 긴 시간을 걸쳐서 가르쳤습니다. 어느 설교든지 다 그렇습니다.

그걸 깨닫는 자는 자기가 생활하는 그 생활에 이것 저것을 구별해서 바로  깨닫지마는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생활에 있어서 뭐인지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만, 엉뚱한 짓만 하게 됩니다.

 그 결론으로 그거 말한 것, 회개는 양이 목자에게 안겨서 목자를 찾아간 것  아닙니다. 목자가 양을 찾아갔습니다. 그 잃은 양이나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것은 죄인이 회개하는 것이라고 그 밑에 똑똑히 해석을 했습니다. 그러면 죄인이  회개하는 것은 죄인이 회개를 제가 먼저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회개를  시키신다 하는 그것을 거게서 똑똑히 그 밝혀졌습니다.

 그것을 이래 알아도 되고 저래 알아도 되는 것 아니오. 죄인이 회개를 한다는  것과 주님이 죄인을 회개시키신다는 것, 시키신다는 것은 성경이요 죄인이  회개를 한다는 것은 성경이 아닙니다. 그럴듯하지마는 그게 아닙니다. 그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하는 사람들은 떠둘러 대면 사람들이 듣고 그같이 여기지마는  실지로 회개 생활은 안된다.그거요, 그것 가지고는.

 또,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은 것은 여인이 찾았지 잃어버려진 드라크마 제가  들나 가지고 여인의 손에 쥐인 것 아닙니다. 그러면 회개는 주님이 죄인을  회개시켜서 당신에게로 인도해서 당신이 붙드시지 죄인이 회개를 해서 하나님을  붙들어 가는 것 아니라 말이오. 이것 천지 차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망이요  하나는 생명입니다. 이 구별 못하면 헛일이오. 이 구별 못하는 사람은 신앙  생활이 헛일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는 걸 보면 전부 육백육십육이라. 판단하는 것 보면  모두 마귀의 판단력이요 세상 판단력이지 성령의 판단력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인본주의라 그말이요, 인본주의.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회개시켜 가지고 우리를  당신에게로 인도하시는 이것이 회개의 순서라는 것을 거게서 말씀했고,  또 그 다음에는 그러면 주님이나 여인이나, 여인은 주님이 머리된 교회를  상징해서 비유했고 또 목자는 주님 자신을 상징해서 비유한 것인데 주님이나  여인이나 그때에 온 정신과 마음이 어데 가 있었는가? 그것을 똑똑히 알아야  돼요. 어데 가 있었습니까? 양 아흔아홉 마리에게 있었습니까 한 마리에게  있었습니까? 한 마리에게 있었습니다. 요걸 아는 요게서 신앙 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여인도 열 드라크마에서 아홉 드라크마에 거게 마음이 있습니까, 한,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에 마음이 있습니까? 거게 있었습니다. 마음도 거게 마구  집중돼 있었고 또 그러면 노력은 뭐해서 노력했습니까? 그 잃어버린 하나 거게  그걸 위해서 전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면 주님이나 교회가 근심하는 것이  어데 있습니까? 잃어버린 것을 찾지 못한 거기에 막 근심이 똘똘 뭉쳤습니다.

그러면 그게 하나 찾아질 때에 또 기쁨도 거게 똘똘 뭉쳤습니다.

 이러니까, 그러면 잃어버린 그것이 예수님이 안 믿는 택한 자만 가리켜 말한  것이냐 믿는 자가 한 건 한 건 회개하지 않은 그것을 포함에서 말씀하신 것이냐?  회개는 둘이 있는데 기본회개라 하는 것은, 기본회개는 자기 모르게 되는  것이오. 기본회개는 자기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기본회개는 자기가 알게 되는  회개가 아니고 자기 모르게 되는 회개요.

 기본회개는 뭐인데? 마귀를 향하여 있던 자가 하나님을 향하고, 마귀의 그 왕권  아래에 있던 자가 하나님의 왕권 아래로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요것은 그 영이  성령과 물로 중생 되는 것입니다. 중생 되는 것이 기본회개입니다.

 그러면 중생 되는 것은 본인이 안다고 했습니까 모른다고 했습니까? 모른다고  했습니다. 바람이 불지마는 그 바람 부는 게 눈에 보이지도 안하고 또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바람이 물건에 부딪칠 때에 부딪치는 소리가  나옵니다. 또 그 바람이 흔들 때에 물건이 흔들려지는 것은 봅니다.

 이러니까 바람이 왱 하면 그 바람 소리인 줄 알아도 바람이 물건에게  부딪치니까 부딪치는 그 소리요. 바람은 바람 그 자체 소리는 모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생 되는 것도 사람들이 보지 못한다, 바람 부는 거와 같다 그렇게  주님이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기본회개는 본인은 모르는 것이오. 기본회개는 본인은 모르는 것이오.

그러면 여게 회개는 뭐입니까? 여게는 평생회개인 예수 반대하던 사람이 그  사람이 예수 믿기 시작한 그때부터 하나둘 회개하는 그 회개를 여게 가리켜서  말씀해 놓은 것입니다. 제가 그 사람은 이름은 내가 잊어버렸는데 제가 어떤  사람을 만나 가지고 얘기를 하는데 그 사람도 역연 예수 믿는 도를 받은 것을  생각하면 한 십여 년 전에 받아 가지고, 믿기 시작한 것은 십여 년 후에 믿기  시작했다 하는 그런 것을 자기는 느끼고 있다 하는 그 말을 제가 들었습니다.

저도 열두 살 먹을 때에 학생들과 같이 학교를 가면서 고운서-지금 목사님 돼  가지고 순교했습니다.-그 목사님이 길을 썩 지나가면서 우리 학생들보고 '예수님  믿고 하나님 공경하십시오' 이 말을 썩 하면서 지나갔습니다.그 말을 그때들을  때에 내게 턱 오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다면,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하나님에게 속해서 하나님을 받들어 섬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이상  높은 지위도 없고 가치 있는 일도 없는데 과연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을까?' 그것이 내게 숙제가 됐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학교에 다닐 때에 급장으로 다녔어. 요새 급장과 달랐어.

급장이면 공부 시작할 때에 종치면 급장이 떡 나서면 앞에 줄 딱 섭니다. 줄 딱  서면 앞에 인도해 가지고 가고 또 시간 마치면 나와서 줄 딱 설 때에 급장이  요에 서면 급장 앞에 절하고 그래 인사하고 그래 또 나뉘고 그래 합니다. 아주  권리가 있었어.

 그랬는데 그 말 들은 이후로부터는 '보자, 예수 믿는 사람이 어데 있나?' 저거  한 학년에 정봉조라 하는 지금 목사 돼서 총신파의 총무로 내치 계속해 있더니만  요새는 신문에 잘 안 나옵디다. 같이 다녔는데 예수 믿는 아이요. 또 하나는  양씨인가 강씨인가 또 한 학년에 하나 있었습니다. 두 학생에 대해서는 나는  그때부터 주목입니다. '예수 믿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인고?' 이래 가지고 좀  시달리게도 해 보고 핍박도 해 보고 흔들어도 보고 뭐 이렇게 해 가지고 그  아이들을 이렇게 많이 취급을 이래 관련을 가지면서 이래 했습니다. 늘 그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후에 스물 다섯 살까지는 세상에 빠져 가지고, 깊은  속에는 있으면서 믿지 않았습니다.

 스물 다섯 살 먹어서 예수 믿기 시작할 때에 저는 술도가 한 사람인데,  술장사인데, 그때는 사업이라 하는 건 우리 한국 사람으로서는 사업이라 하는  것은 술도가가 제일 큰 사업이었습니다. 뭐 공장이니 기업 이런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떤 전도사인데 그 사람이 지금 윤봉기, 윤봉기 목사님으로 세상  떴습니다. 떴는가 내가 잘 모르겠습니다. 뜬 것 같은데. 서울에 중앙 교회에  시무했는데. 그분이 고신에 뭐 총회장도 하고 그랬습니다. 윤봉기 목사님이  전도하러 지나가면서 술도가는 전도하지 않고 바로 지나갑니다.

 그때 내 마음에는 '우리 술장사하는 것은 사람으로 취급을 하지 않는구나.

세상에서는 술도가 한다 하면 그 지방에서는 제일 대가리인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구나.' 이래서 내가 불렀습니다. '뭘 하러  다닙니까?'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인데 전도하러 다닙니다.' '그러면 전도하면 왜  우리 집에는 전도를 안합니까?' '어이구 미안합니다.' '그러면 오늘 저녁에는  전도 강연하려면 우리 집에 여기 와서 좀 해 주실 수 있습니까?' 이러니까 '예,  감사합니다.' '그라면 제가 동민을 모으겠습니다.' 그 지방인을 모이는 대로하나  집에 가뜩 차게 모았습니다. 그때는 말하면 쭉쭉 모아드니까. 그래 가지고 그  전도 강연을 듣고, 속으로 작정을 하고 그 다음 주일에 교회 나갔습니다. 교회  나가니까 황보기 장로님이라고 설교를 하는데 창세기 l장 설교를 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다. 그럴 때에 모든 존재에 대한 의문이 있었는데  모든 존재는 창조주가 있다 하는 그 한 마디에 해결 다 돼 버렸습니다. 그만  거게서 작정하고 뭐 담배는 그날부터 끊었고 또 술도가는 사흘만에, 주일에 갔다  온, 월 화, 화요 일날, 주일날 갔다 와 가지고 화요 일날 다 처분했고 또  누룩도가는 열 이레만에 처분해 버렸고, 술은 처분하는 그날 술 끊어 버렸고.

그래 예수 믿었습니다.

 그러면 그게 중생은 된 지가 오래 돼도 속에서 성령이 역사를 이래 해 가지고  믿게 되는 것은 상당히 시일이 걸려 가지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도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아직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을 그 사람을 믿도록 해 가지고  당장에 새벽기도까지 다 나오도록 이래 한다는 것 그거 무리입니다. 그게 중생  돼도 중생된 것이 속에서 오래 동안 내부 역사가 돼 가지고 변화가 돼서 예수  믿기 시작하고 예수 믿기 시작하면 주일을 지키다가 또 빼다가 또 죄를 짓다가  회개했다가 이래이래 가지고, 아이도 하나 나면 그것이 병도 하고 오만 재도  저지르고 이래이래 해 가지고 사람이 되는 것처럼 영은 더 그러합니다.

 이러기에 여게 잃어버린 양을 찾는 그것이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으로 그렇게만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해석은 사람을 죽이는  해석입니다.

 이러니까 이 성경은 우리가 열 가지 죄가 자기에 있는 사람이라면 거게서 아홉  가지를 회개했다 할지라도 한 가지 회개하지 않은 그것 때문에 죄인인데 그 한  가지 회개하지 아니함으로 죄인 된 그 죄인이 그거 회개하는 거기에 하나님도  교회도 전 마음과 능력과 근심과 기쁨이 거게 집결돼 있다.

 집결돼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그와 같이 지금 그 마음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능동으로 우리를 찾아서 회개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면 회개를  시키면 어떻게 시키느냐? 회개시키면 손으로 거머쥐고 끌고 가느냐? 무형의  존재기 때문에.

 다만 그 회개시키는 역사는 사람을 통해서 나에게 깨닫게 하든지 그러면 성경을  보아 깨닫게 하든지, 또 내 마음을 감동시켜 깨닫게 하든지, 깨닫게 하는 그가  바로 만유의 대주재신 주님이요, 십자가 못박히신 주님이시요, 또 세상에 빛이  되는 교회 운동이라 말이오.

 막바로 그를 내가 영접하는 것이 주님 영접하는 것이요 그를 배척하는 것이  주님 배척하는 것이요 그를 영접해서 그 감화 속에 들어가는 것이 그것이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요 영생 안에 들어가는 것이라 그말이오. 요것을 굳게  잡아야 됩니다.

 오늘 아침에 봉독한 말씀도 그와 같은 말씀입니다. 여기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갔을 때에 주님이 보고 "삭개오야 내려오라" 많은 사람들 가운데 다른  사람은 부르지 않았는데 삭개오를 불렀습니다.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간 것보고 부른 게 아니라 주님이 부르실 때가 돼서  삭개오가 뽕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 순서가 삭개오에게서부터 시발돼 가지고  삭개오가 원인이 돼 가지고 거게서부터 시발돼 가는 게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된  그것이 삭개오에게 퍼치워 나가는 것이라 말이오. 이것이 신본주의의  믿음입니다. 인본주의 믿음과 신본주의 믿음, 인본주의 믿음은 사람들이 잘  듣는데 신본주의 믿음은 잘 안 듣는다 그말이오. 그러기에 설교를 해도  인본주의로 제대로 듣고 하는 사람, 신본주의로 듣는 사람, 각각 달라.

 '내려오라. 내가 너거 집에 유하겠다.' 이러니까 삭개오가 무슨 말했습니까?  그는 부자인데 무슨 말했습니까? '내가, 아, 그렇습니까? 제가 소를 잡겠습니다.

제가 선생님이 오시면 좋은 양복을 한벌 해 드리겠습다. 우리 집에 거처가  좋으니까 비단 요를 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이래 다니시면 여비도 들 터인데  여비를 얼마 드리겠습니다.' 그런 소리했으면 주님이 두말할 것 없이 그럴  것입니다. '네가 재물로 더불어 망하리라' 이랬을 것이오.

 사도들이 말할 때 보면 다 그랬습니다. 베드로도 시몬이가 있다가 돈을  드리면서 '나도 이 안수의 능력이 있도록 해 주옵소서' 할 때에 '네가 은과 함께  망하리라' 그렇게 말했어. 대번 망해 직사되는 건데 그래 놓고 빨리 말하기를  '네가 회개하면 혹 사해 주실 것이다.' 그 즉시 그 시에 회개했어.

 우리 사람들도 참 굶어서 아주 기진한 사람이라도 그 인격에 따라서 배고파도  배고프면서 그 집에 찾아간 것은 찾아간 목적이 있고 이유가 있고 소원이 있는  것인데 소원 그것을 말하고 그것이 이루어져야 되는 것이지 목적은 딴데 있는데  고량진미 내놓는다고 그 고량진미 그게 맛이 있겠습니까? 여러분들 그렇습니까?  그런 사람은 그렇소. 뭐 이거고 저거고 목적도 없이 형편 사정 환경에 따라서  되는 대로 기뻐하고 되는 대로 좋아하고 이래 하는 그런 사람은 그렇지마는 목적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거요.

 자기는 지금 거게 찾아간 것은 그 사람이 무슨 일 하나 하는 그것을 마음에  걱정이 돼서 그 일을 그만 중단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권찰님이 찾아갔습니다.

찾아갔는데 그것은, 그것 때문에 근심도 하고, 그것 때문에 걱정도 하고, 그것  때문에 기도도 하고, 마음에 고통스러워 지금 권찰은 죽을 지경이요 목회자는  죽을 지경인데 가니까 그것은 말하지 않고 뚱딴지같이 엉뚱한 소리만 말하면서  돈이나 한 봉다리 내면서 '이거 뭐 적지마는 쓰십시오' 그럴 때에 돈 내놓으면  돈이 받고 싶소?  좋은 음식을 내놓으면 '잘 먹겠소' 하겠소? 그것은 혹 그렇게 한다 할지라도  음식을 먹지는 않을 것이요, 목적이 있기 때문에. 혹 그것 당장 배척하면 오히려  마음을 불 켜서 반동될까 해서 '예, 고맙습니다.' 해도 속으로는 딴게 뭐 있다  그말이오. 그것을 말하지 않고 덮어놓고 엉뚱한 소리만 하면 거게서도 기가 찰  거라 그말이오.

이러나 가니까 '예, 권찰님, 목사님, 장로님, 저에게 찾아온 뜻을 제가  알겠습니다. 너무 걱정을 끼쳐서 미안합니다. 무엇무엇 그걸 내가 그것을 이래  오셔서 너무 걱정을 끼쳐서 미안해서 내가 지금 그것을 그만 돌이키기로,  안하기로, 어떻게 하기로 작정을 합니다. 안심해 주십시오. 그게 대접입니까  음식이 대접입니까? 뭐이요? 어떤 게 대접이겠습니까? 그것이 대접이오.

 그러면 안 먹어도 힘나고 기운 나고 기뻐 즐거워서, 어떨 때는 그럴 때에  눈물아 쏟아집니다. 왜? '이 강퍅한 죄인도 이를 회개를 하는구나. 이제까지  제가 얽매여서 참 고치기 어려운 이런 것을 고치겠다고 지금 하는구나.' 해서 그  고치는 걸 볼 때에 마음에 아주 어려운 것은 그 고치는 걸 볼 때에 그저  '그래요? 고맙소.'가 아니오. 자기가 그 고치기 위해서 근심한 것만치, 걱정한  것만치, 노력한 것만치, 애가 터진 것만치, 기가 막힌 것만치, 내 심신의 인격과  정력이 기울어진 것만치 그걸 돌이킬 때에 감격해서 못 견뎌서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그거 하지 않고 엉뚱한 짓 하면 돈에 팔린 자나 그렇지 인격 있는  사람이 그런 데에 팔려 가지고 만족을 하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여게 삭개오는 자기에게 당면한 것, 자기는 부자기 때문에  주님 척 만날 때에 '나는 부자인데 이것 나만 잘 살라고 나만 알고 있었고 이  부자 가지고 나만 위해서 이 모든 재물을 썼으니 이거 참 주님 앞에 부끄럽다.'  이래서 '반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줘서 구제하겠습니다.' 그 말을 딱 하니까  그 말이 주님이 울고 불고 고통스러워 마음 가운데 근심 걱정되어 있던 그  삭개오에 대한 일인데 그걸 삭개오가 딱 '내가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반을  구제하겠습니다.'  또 세리니까 토색하기 쉬웠을 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내가  혹 토색한 것이 기억 안 나지마는 토색한 것을 알려 주시면 내가 사 배나  갚겠나이다.' 주님에게 만족이라. 그 이상 주님에게 대접할 것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됨이로다 만족하고 그  구원이 이루어진 걸 발표했습니다.

 우리가 모든 죄가 있지마는 한 죄 거기에 하나님이 집중돼 있다는 그것을  기억해서 압니다. 자기는, 이 사람은 '주님이 지금 어느 점을 제일 걱정하고  있고, 근심하고 있고, 요구하고 있다. 제일 주님에게 걱정거리다. 근심거리다.

또 주님께서 애타서 노력하는 건이다. 어느 것을 회개하면 주님이 제일  기뻐하시고 만족해 하실 것이다.' 하는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성신의 빛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교회만 나왔지 아직까지 구원에 착수 안한 사람이오.

 그러면 그것이 중생된 사람이라면 다 있습니다. 없는 것 아니오. 있지마는  자기의 세상 이런 욕심 저런 욕심 모든 그런 것들이 다 덮어 가루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게 빛이 보이지 않아.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너무 탁하게 올라오기 때문에  햇빛이 비추어도 보이지 않는 것을 요한계시 9장에 말했습니다. 그게 뭐이냐? 그  사람이 지금 뭣인가 지금 지나친 욕심이나 자기 주관이 하나님의 성령의 감화의  빛을 가루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리가, 이 부자인 세리가 그것 둘을 말할 때에 주님이 만족했고  구원이 이르렀다 그게 구원이오. 그 둘을 말한 그게 구원입니다. 그러면, 그러고  나면 그 다음에 또 딴것 나와.

 이러니까 우리가 헛되게 날뛰면서 그저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런  소리 백 번 해야 주님은 근심만 돼지고 걱정만 돼지지 주님에게 아무런 위로와  기쁨이 뒬 게 없습니다. 자기에게 당면된 죄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각각 있어.

그걸 말해야 됩니다. 그것을. 그것을 말할 때에 주님이 기뻐하시고 자기에게도  영감이 더 충만하게 돼지지 그것 냅두고 제가 딴것 암만 해 봤자, 회개는 단일  회개라 했습니다. 그 하나, 주님의 마음도 능력도 소원도 거게 막 집중되어 있는  그게 있는데 그걸 회개해야 되지 그거 회개 안 하고 제가 뭐 다른 걸 암만 해  봤자 주님과 원수 되기 때문에 주님과 원수된 제가 온 천하를 차지하면 뭐할  것입니까? 온 천하를 차지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 육십육 권 도리를 제가  외우면 뭐할 것이요? 어리석소. 성경은 하나님을 자기와 어떻게 가깝게 하며,  어떻게 섬기며, 어떻게 사귀며 또 하나님이 나에게 뭘 요구하시며 명령하시는가  그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성경이지 성경이 우리 구주 아닙니다. 성경이 우리  구주 아니오.  아무리 성경대로 한다 할지라도 주님을 생각하면서 주님을 섬기는  일로 성경대로 하는 그것이면 생명이지마는 주님은 상관없이 성경의 법칙만  세우면 그 사람 아무리 법칙 섬겨 봤자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망이지 생명의 역사는 거기 없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는 각자가, 삭개오가 주님 만났을 때에 그 두 가지  고백하는 것, 주님이 삭개오에게 찾아와서 요구하시는 그 요구, 주님이  삭개오에게 회개케 하는 영감 그것을 삭개오가 딱 들어서 말할 때에 주님이  발표했습니다. "이 집에 오늘 구원이 이르렀다.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됐다!" 이랬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그저 망령되게 이렇게 범벅 생활로 가증스럽게 그래 가지고,  제가 회개할 회개에 지금 당면된 일호 범죄가 있는데, 자기로서 크든지 작든지  자기로서 일호가 있다 그거요. 제일 큰 죄가 일호가 아니오. 큰 죄가 일호가, 큰  죄가 대번에 회개가 돼집니까? 일호는 자기가 지금 회개할 수 있는 일호 죄가  있다 말이오. 일호죄 그것을 회개하는 거게서 성령을 영접하는 것이요, 능력을  힘입는 것이요,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지는 것이지  딴데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는 주님이 요구하시는 그 한 죄, 이것 모르고, 어떤  사람은 아주 참 어리석은 자 있소. 도덕적으로 얌전하게 하는 그 사람 속에  흉측한 게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평생 대면 못할 게 속에 들어 있습니다.

 불교인이 예수 믿으면, 유교인이 예수 믿으면 얼마나 그 행위야 훌륭합니까?  소용이 없어. 유교 그걸 뽑아야 하나님과 연결되지 그게, 그것이 우상이 돼  있는데 하나님과 연결이 됩니까?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는 '내가 지금 내게 대해서 주님이 마음과 능력과 모든  근심 기쁨이 다 집결되어서, 천군 천사도 운동하고, 성도의 기도도 집중하고,  성령의 감화도 역사하고, 진리도 역사하고 이 전체의 힘이 총집결해 가지고 내게  지금 회개시키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걸 찾아 가지고 회개하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이요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산 신앙이지 그것 없는 신앙은  소용이 없어. 엉뚱한 소리만 하고 엉뚱한 마음만 가져.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애먼한 사람되고, 내가 요새 뭣인가 광고가  왔는데 그것도 보니까 뭣이 떠들썩 '은혜로' 뭐해 가지고 광고가 통지가 왔는데,  속에 뭐이냐? 돈벌이하는 장사라. 요새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또  상조회에서 아주 할인을 해 가지고 '반을 할인해 준다, 할인해 준다' 이래 했기  때문에 하도 우리 차비가 많아서 뭐 그런 건가 뭐 이래 보니까 그래 떠들어 놓고  마지막에는 장례 하는 데에 그 널, '널을 얼마짜리인데 얼마, 십만 원짜리인데  오만 원에 해 줍니다. 얼마 해 줍니다.' 하는 거 딴데 가면 오만 원도 안 줘도  다 사는 거야. 그런데 배나 값을 불러 가지고 반은 할인한다. 그것이 배암의  지혜,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고 그래 내가 확 집어 뜯어 내 버렸어. 예수  믿는 사람들의 마음이 제일 더럽고, 제일 사기꾼이고, 제일 협잡꾼이고, 제일  잔인하고, 죄를 지어도 뻔뻔하고 아무런, 남을 암만 매장시켜도 아무 책임도  없고, 그러기에 배나 지옥의 자식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천국을 원하면 자기에게 당면된 죄를 하나씩 똑똑 회개해 나가야  됩니다. 회개하는 요거 없이 제가 암만 껍데기로 뭐 인간에게 다 인정받으면  뭐할 겁니까?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들의 폄론이나 또 모든 사람의 폄론이나 내가 매우 적은  것으로 안다. 또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 내 양심에 자책할 게 없지마는  이러기 때문에 나는 죄인이다. 왜? 내 심령이 어두워 그런데 나를 판단하실 이는  오직 주님이시니 그는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다. 그분 앞에 우리가 모든 것이  환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분을 보면서 회개하는 이런 것을 하지 않고 사람들만 맞춰 가지고 그 사람들  입이나 맞추고 또 귀나 맞추고 눈이나 맞춰서 사람들에게만 인정받으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그런고로 좀 실질적으로 회개를 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임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 하나, 그게 자기에게 멸망이요, 자기 전체는 멸망하는 것이요 자기에게 속한  구원은 완전히 중단해 가지고 있습니다. 그 뭐 살아봤자 죽은 것 한가지요. 그것  안하면 구원은 전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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