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믿음

 

1986. 1. 26. 주일오후

 

본문:누가복음 17장 5절∼6절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성구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이 성구를 늘 읽는 것은 여러분들을 복잡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한 성구를 똑똑히 잡고 진리를 바로 깨달으면 많은 성구들을 다 잡고 깨달은 것이나 꼭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분문에 대한 복잡성을 다 제하고, 이는 한 성구니까 환하게 다 외어 가지고 있으니까 본문에 대해서는 부담이 없고 거게 대한 진리를 깨닫고 바로 믿는 사람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은 또 그 성구를 읽는다 이래서 좀 권태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제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권태감을 가지는 사람은, 그 사람은 아직까지 깨닫지 못해서 그런 것이지 깨달으면 그럴 리가 없는 것입니다.

오후에는 오전에 말한 것을 좀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땅 위에 오셔서 하신 일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조금도 틀림없이 고대로 세상에게 나타내서 다 보고 알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요, 그 일을 완성하신 것이 예수님의 오신 목적의 완성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신인 양성 일위로 오셔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의 어떠하심을 예수님께서 인성을 통해서 나타내셨으므로 사람들이 보고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신성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영원 전 가지고 계셨고 예수님의 인성은 도성 인신하셔서 신인 양성 일위의 예수님으로 나타나실 그때에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시고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가지신 하나님의 형상을 그대로 세상에게 나타낼라고 할 때에 세상은 많은 방해를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방해를 받지 아니하고 그대로 나타낼라고 하셨음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됐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도 볼 수 없는 하나님의 그 형상을 조금도 가룸 없이 그대로 나타내셔서 성공을 하셨습니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그 능력도 하나님의 형상이요, 지혜도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거룩도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사랑도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무형의 존재로서 완전하신 그 형상을 가지신 것을 유형의 인성으로 오셔서 그 사실을 다 나타내셔서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그것은 뭐 별다른 일인가? 별다른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그 사랑의 형상을 볼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나타내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으로, 대형, 대행, 대화친의 대속을 이루시고 삼 일 만에 다시 부활하신 그 부활이 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의 그 형상이 볼 수 있게 나타난 것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새것을 만드신 것이 아니고 이미, 인간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그 무한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그 완전성 그 신격성 그 속성 그를 우리에게 알 수 있도록 나타내서 역사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신 그 방법은 무슨 방법이냐 하면 순전히 아버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그 순종 그 한 방편으로서만 나타냈습니다. 순종 외에는 나타내는 그런 방편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삼십 삼 년 사 개월을 지낸 후 십자가 못 박혀 죽으심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이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나셨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또 나타나셨으니 볼 수 없는 하나님의 그 형상이 볼 수 있는 형상으로 온전히 갖추어져 가지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씀하셨고, 그 형상이 없는 가운데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미 있는 그 형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나타나셨는데,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그 능력이, 그 사랑이, 순전히 객관의 그 능력이 역사하셔 가지고서 우리를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써 죄 없는 자로,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화친된 자로 만드셨으니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형상을 우리 대신 만드셔 가지고서 우리의 형상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만들어 놓으신 우리 형상 만들어 놓은 우리 형상은 어떻게 만든 형상인가? 곧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난 신인 양성 일위의 그 형상과 꼭 같은 형상으로 만들어진 그 형상이 우리의 형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서 우리들이 다 알 수 있도록 볼 수 있게 영체와 물체의 이 형상을 가지고 나타나도록 하시는 데에 순전히 아버지에게 순종으로만 하셨습니다. 털끝만치도 거게서 동등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이러니 저러니 이유가 하나도 없고 순전히 순종으로만 이루어졌는데 순종으로만 이루어 가지고 이루어진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입을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우리가 입을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가지고 이 형상을 우리에게 지금 입혀 주실라고 하신 것이 부활하셔 가지고 그리스도의 영과 또 진리와 그리스도의 이 세 가지 대속을 가지고 우리에게 그 형상을 실상으로 우리에게 입혀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는 데에도 다른 방편 없고 순전히 순종이라는 이 방편만 가지고서 입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순종으로 입는데, 순종으로 입으면 순종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 형상을 만드느냐?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형상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을 우리가 그 형상을 은혜로 공짜배기로 받아 가지고서 내가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오는 처소로 덧입는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는다, 또 이루어간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구원은 무엇인고 하니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과 꼭 같이 되는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복잡하게 해 가지고서 그저, 예수님은 우리의 원형입니다. 원형. 예수님과 같은 그런 예수님의 모형을 우리가 갖추어 가지게 되는데 그 형상 가운데에는 무슨 이런 요소도 있고 저런 요소도 있으니까 또 이런 요소를 닮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요소를 말해 주고, 또 저런 부분을 만들기 위해서 저런 부분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이라니까 심히 복잡해져서, 그러면 기독교는, 이것이 무슨 기독교는 도덕 종교인가, 사상 종교인가, 무슨 그러면 절제 종교인가, 무슨 경건 종교인가, 거룩 종교인가, 이렇게 여러 가지로 사람들이 분해해 가지고 뭣이 기독교의 구원인가? 이렇게 간추려서 잡지를 못해 가지고 그저 어떤 사람은 기독교 도덕주의에서 일생을, 기독교 윤리주의에서 일생을, 기독교 철학주의에서 일생을, 기독교 정치주의에서 일생을, 기독교 그 모든 유물주의에서 일생을 이렇게 해 가지고서 이 면을 힘쓰는 사람은 이 면이 되면은 축복받았다. 저 면을 힘쓰는 사람은 저 면이 되면 축복받았다. 이래 가지고서 각각 한 기독교인데 여러 가지 종류로 이렇게 퍼져 나갔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또 사람들이 합리화시켜서 말하기를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다고 말씀하신 대로 여러 지체가 있다는 그대로, 그렇기 때문에 이 교파도 있고 저 교파도 있고, 이렇게 구원 이루는 것도 있고 저렇게 구원 이루는 것도 있다 그렇게 합리화를 시켜 가지고서 말을 합니다. 그러나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다는 말은, 눈의 하는 일이 따로 있고 귀의 하는 일이 따로 있어서 꼭 같은 그리스도인들이지마는 세상 이런 저런 분야에서 하는 직책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그 자체의 생명이라든지 그 모든 자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꼭 같이 단일성의 사람으로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그저 간단하게 요것을 꼭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꼭 닮아서 아버지와 꼭 같이 고렇게 나타났습니다. 아버지와 꼭 같이 되어지는 게 아니고, 아버지와 꼭 같음을 나타냈습니다. 나타내서 우리들이 알 수 있도록 나타내는 가운데에 우리는 또 예수님의 그 형상과 같은 자가 되도록 우리를 위해서 역사하셔 가지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예수님의 형상과 같은 그 형상을 우리에게 만들어서 주신 것이 예수님의 구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구원을 힘을 씀으로써 만드는 것 아니고 만들어 가지고 주시는 그 구원을 우리가 공으로 받아서 가지는 것입니다. 가지고 그 구원을 버리지만 안하면 우리 구원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에게 만들어 주신 것이 뭐인가? 그는, 죄 없는 자로 우리를 만들어 주셨고, 의로운 자로 만들어 주셨고, 하나님과 친합된 자로 만들어 주신 것이 우리의 구원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죄를 만들어 주셨으니까 이 사죄를 우리가 공짜배기로 받아서 입고 벗지만 안하고 이 사죄를 입고 살면 죄는 멸망받았습니다. 죄는 없습니다. 죄가 없으니까 마귀도 거게는 용납되지를 못합니다. 사망도 용납되지를 못합니다.

사죄에서 마귀가 없어지고 죄가 없어지고 사망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입니다. 또 칭의를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칭의를 내가 입고 있을 때에 영감과 진리는 나의 영감과 진리가 됩니다. 내가 칭으를 입고 있을 때에 영감은 나를 떠나지 못하고 진리도 나를 떠나지 못하고, 내가 칭의를 입고 있을 때에 영감과 진리는 나를 잡으시고 보호하시고 나를 붙드시고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온갖 축복은 다 나의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한 화친을 만들어 놓아 가지고 이화친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이 화친을 내가 벗지 아니하고 화친받은 자로 살 때에 전능자로 사는 것이며 전지자로 사는 것이며 완전자로 사는 것이며 대주재의 것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주재자가 되지 안하나 대주재자에게 붙들려서 대주재에게 속해 가지고 대주재자로 사니까 내 모든 언행 심사는 대주재자의 언행 심사가 되고 나는 그의 지체가 되고 그의 몸이 되고 그는 나의 머리가 되고 이렇게 영생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우리가 은혜로 받는데 그것을 받아 가지는 그 일을 지금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구원을 받아 가지는 데에는 하나님을 닮는 구원이요, 하나님과같이 되는 구원이요, 하나님을 본받는 구원이요, 배우는 구원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배워 가지고 또 본받아 가지고 예수님과같이 되어지는 구원이기 때문에 이거는 순전히 듣는 것과 인정하는 것과 순종하는 것 이 세 가지로만 됩니다.

하나님은 역사하실 때에, 그분은 영이시기 때문에 없는 가운데서 만물을 만들어서, 물체 영체를 만들었지마는 그분이 역사하실 때에는 물체나 영체로 가지고 역사하시지 아니하시고 다만 영감으로 역사하시고 진리로 역사하시고 영감으로 역사할 때에 그 영감이 나오면 진리가 되고 진리가 나오면은 곧 능력이 되고 능력이 나오면 이 모든 영체나 물체나 이런 것들을 만들어서 그런 것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일하실 때에 순전히 영감으로 일하십니다. 영감으로 일하시니까 영감이 끄트머리 나오면 우리에게 말씀 아닙니까? 말씀인데 그 말씀이 뭣해? 말씀이 고대로 말씀대로 행하면 실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말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나타난 그 말씀을 고대로 실행하면 실상이 된다 하는 그런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구원은 순종으로만 이루어지지 순종 외에 딴것으로써는 이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순종으로 이루어지는 이 구원 곧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 예수 그리스도와 꼭 같은 자ㅡ이거 참 믿음 없기 때문에 도무지 세상에 믿음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들어도 항상 그저 헛되이 듣고 버립니다ㅡ예수 그리스도의 형상, 예수 그리스도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그러면 말하자면 우리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과 꼭 같은 자 되어지는 것입니다. 볼 수 없는 영원 자존하신 그분이 우리에게 볼 수 있도록 나타난 분이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우리가 만들어져 가지고 나타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면, 만들어지면 우리가 만드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하는 것은 이것을 완성해 놓으신 것을 선포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래 만들어 놓은 걸 우리가 은혜로 입는 것인데, 은혜로 입는 것은 언제 입느냐? 입는 이것은 과거 가지고도 입을 수 없는 것이고 미래 가지고도 입을 수 없는 것이고 언제든지 현실에서만 입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나는 그 말씀을 인정하고 또 그대로 순종함으로 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인정하는 것도 그 인정의 실상이 되는 것은 현실에서만 인정의 실상이 될 수 있고 행동이라 하는 것도 현실에서만 그 행동의 실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구원은 현실이라는 이 현실 외에서는 우리 구원을 받아 가질 수가 없다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면 현실에서 우리가 주님이 이루어 놓은 그 구원을 받아 가지는 데에는 현실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받아 가질라고 하면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가 받아서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우리가 가지게 되고, 예수님의 생각과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고 예수님의 성질과 같은 성질을 가지게 되고, 온갖 그 요소들이 많이 있는데 우리가 성경을 안다고 하지마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요소가 더 많습니다. 그러면 현실에 주님께서 우리는 모르나 고 현실에서 만들어서 주님이 내게 주실 때에 고 현실에 어떨 때는 내 마음을, 내 마음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성화시키기 위한 현실도 있고, 내 사상을 그리스도의 사상으로 변화시킬 그런 현실도 있고, 각양의 현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현실이 있을 때에 그때에 내게는 내가 본받아야 될 원형, 내가 본 받아야 될 원형인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내 현실에 나타나고, 또 내가 벗어 버려야 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마귀의 형상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나를 죽인, 죽여야 되고 벗어 버려야 될 옛사람의 그 형상이 내 왼쪽에 나타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내 오른편에 나타나고 있을 때에 나는 중간에 거게서 왼쪽을 내가 영접하느냐 오른쪽을 영접하느냐 하는 데에서 왼쪽을 닮아서 영원한 사망으로 그 현실이 끝나는 것도 있고 오른쪽을 닮아감으로써 영생으로 성화되어서 영생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 있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현실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일이 뭣 때문에 못 박혔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어 놓은 그 형상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못 박혔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이 예수님에게 와 가지고 나타나 예수님을 통하여서 그 형상이 우리에게까지 와서 나타나서,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모형이요, 모형이요, 우리는 예수님의 모형이요, 모형으로 이렇게 되어지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 일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러면, 참 믿음이 없으면 참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목적을 정하신 것이 뭐인가? 목적을 정하신 것이 뭐인가? 이것이 여러분들은 자꾸 이래 아무나따나 듣고 있기에, 이런데 요게 좀, 요게 좀 세계의 대신학자들이 와 가지고 지금 시비를 걸고 이런 일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진수라고 할 수 있고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게 대해서 사람들이 거게까지 가지를 안하고 그만 중간에 가다가서 그만 하나 기독교는 선한 사람이라, 착한 사람이라, 사랑의 사람이라, 그저 온유한 사람이라, 겸손한 사람이라, 화평한 사람이라.

이따위 껍데기 여게서 그만 머물고 맙니다. 그까짓 게 하나님의 형상 아닙니다.

그거는 껍데기 중의 껍데기입니다. 차가 지나가면은 그저 먼저 일어나는 거와같이 그런 것이지 그 속의 실상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 자존하신 당신이 당신의 형상이라면은 우리말로 형상이라 하는데, 당신의 그 신격성, 당신의 신격성, 당신의 그 모든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 그것을 이 피조물들에게 주어서 피조물을 당신과 꼭 같은 닮은 자를 만들려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창조하시고 오늘까지 보존하시고 섭리하시고 관리하십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이 또 도성 인신해서 오셨습니다. 도성 인신하기 전에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실 때에 그때에 이 목적이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고, 정한 그것이 때가 되니까 도성 인신하셨고, 때가 되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때가 되니까 삼 일 만에 부활하셨고, 때가 되니까 우리에게 지금 교회를 세워 가지고서 날마다 성화 역사를 이루시고 있는 것이 오늘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 곧 그리스도의 형상, 그리스도와 같은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큰 비용을 들였고 큰 자금을 들였고 큰 역사를 이루어 놓은 이것을 좀 알아야 이 일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가를 생각한다 그말이오. 거게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어. 심령이 어두워서 거게 대해서 도무지 느끼지를 못하고 밤낮, 돈 그까짓 거야 하나도 보지 안해도 삽니다. 그까짓 거는 아무 상관 안 해도 돈이 없어 못 살지 안합니다. 양식 없어 못 살지 않습니다. 그분에게 다 사고가 있는 것이지.

그런데,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시요, 그리스도의 형상을 덧입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다 이랬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형상을 우리에게 입혀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큰 힘을 쓰시는데, 그리스도의 이 형상을 우리에게 입혀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자 되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신데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어떤 것을 준비했습니까? 준비한 것 중에 좀 누가 몇 가지 들어서 좀 말해 보십시오.

어떤 걸 준비했습니까? 뭘 준비하셨지요?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 곧 영원 자존하신, 볼 수 없는 그분의 형상은 예수님이시요.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계시니 그분은 곧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 형상을 우리에게 입혀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모든 설비를 하셨으니 그 설비하신 것이 어떤 것입니까, 한번 말을 해 보십시오. 그 설비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정. 하나님의 예정. 이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을 하셨습니다. 이거 큰 자본 아닙니까? 창조를 하셨습니다.

이걸 알아야, 나를 예수님의 형상을 갖추어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큰 투자를 한 걸 생각해야 내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는 이 일이 중대한 일이니까 여기에 전지 전능이 와 가지고 역사하신다 하는 그것을 인정을 하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인정을 안 한다 그말이오. 예? 겨자씨 믿음. 현실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에게 영감시켜 주는 고 영감대로 행하는 고것은 전능의 행위라, 전지의 행위라. 창조의 행위라, 만능이라, 만날 해 봤자 여러분 속에 요만치도 안 들어갑니다. 요만치도 안 들어가요! 믿음이 없어! 요만치도 안 들어가! 안 믿어! 요만치도 안 들어간다 그말이오. ‘말로 자꾸 저렇지’ 이렇게 생각하지 안 들어가. 요만치도 안 들어가.

이 일을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창조하셨고, 뭐 하늘이고 땅이고 우주고 미국이고, 그까짓 게 뭐이요? 그게 전부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런 것들을 다 만들어 가지고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이 현실에 영감시켜 주시는 것, 곧 성령이 우리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도하시는 그 지도, 그 지도하는 그 지도가 모든 것을 예정하신 그 능력이며 창조하신 능력이며 나에게 요렇게 해라 조렇게 해라 명령하시고 영감으로 인도하시는 그 인도가 예정보다 크고, 우주 창조보다 더 크고 지구 땅덩어리 억억억억만 배보다도 더 크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믿습니까? 믿습니까? 믿으십시오. 이걸 믿지 안하기 때문에, 이 겨자씨 믿음을 가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안 믿습니다. 내가 올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믿는다고 말하지마는 따져 보면 믿음이 없습니다. 따져 보면 믿음이 없소.

이 주일학교 학생들은 믿겠는데, 어른들에게 소망이 없어. 여러분들 여기 이렇게 있지마는 소망이 없어. 봐야 믿음이 없어. 속에 없어. 주일학교 학생들은 믿어요.

여기 지금 중간반 학생들 여기 더러 와 있으니까 이거는 믿는 지를 몰라.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믿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믿으면 참으로 과연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시며 이렇게 역사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너희들이 놀랠 일을 너희들이 보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안 믿으면 안 됩니다. 안 믿으면 헛일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에 하나님이 이렇게 해라 하신 그 하나님의 뜻, 바른 뜻은 그게 내나 영감이요 하나님의 바른 뜻인데, 내 현실에 사람들이,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서 내라는 존재가 뭐인데 그까짓 거, 내 현실에 내 현실에 하나님의 영감이 요렇게 해라 조렇게 해라, 영감을 몰라도 요 현실에 성경 말씀이 요렇게 해라 조래라, 성경 말씀이 말하는 것도 있고 영감이 말하는 것도 있으니 내가 현실에 다른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 너 죽인다. 예수 안 믿는다 해라.’ 할 때에, 고럴 때에 ‘아, 내가 안 믿는다 할 수가 있습니까? 예수 믿겠습니다. 하는 고런 것은 어떻습니까? 고것이 내 현실에 영감인 줄을 몰라도 고거 영감이겠습니까? 영감이 아니겠습니까? 뭐입니까? 그러면 고것은, 고렇게 안 믿는다고 하지 안하고 믿는다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딱 들어맞아서 하나님의 뜻과 내 행동이 일치가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일치가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일치가 됐으면 하나님과 나와 연결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연결이 됐습니다. 그러면 고것을 가리켜서 무슨 믿음이라고 말했습니까? 산 믿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산 믿음인데 ‘산 믿음은 전능이라, 전지라, 만능이라, 대주재의 능력이라, 주권자의 능력이라, 만왕의 왕의 능력이라’ 우리가 막 그렇게 지금 말을 했지마는 입술뿐이지 믿지 않는다 말이오. 믿어 보라 그말이오. 현재에 믿어야 능력이 나오지, 믿어야 능력이 나오지 안 믿는데 무슨 능력이 나옵니까?

그럴 때에 겨자씨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생명 있는 믿음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니까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 그게 생명 아닙니까? 요걸 여러분들이 아십시오.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이 산 믿음인데 산 믿음 고것을 가리켜서 겨자씨 믿음이라고 고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겨자씨가, 겨자씨가 땅 속에 심기워졌을 때에 땅에서 지기가 오면 겨자씨가 커서, 땅화되지 안했습니까? 땅화됐다 말은 흙이 됐다 말이오. 겨자씨가 흙이 안 되고 흙을 먹고 겨자씨가 자라가는 것은 그것은 겨자씨가 커서 그렇습니까 강해서 그렇습니까 어째 그렇습니까?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잡으십시오. 이게 천천 금은보다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 낫습니다.

마귀가 꼬아서 돈만 생각, 돈 그까짓 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이구 그라면 연보 안 하면? 아, 연보 그거 하는 거 그거, 믿음 없이 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까짓 거, 요렇게 겨자씨가 땅 속에 심기워져서 땅의 지기가 올 때에 생명 없는 씨라면은 겨자씨 십 배 큰 씨라도 고만 즉시 썩어서 흙화됩니다.

흙이 되고 맙니다. 겨자씨는 작지마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생명 힘 그거 가지고 흙이 되지 안하고 흙을 먹고 그것이 자라게 됩니다. 생명이 없고는 그 종자가 썩어서 흙이 안 될 수가 없고 생명이 있고는 흙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해석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이 현실을 만났을 때에, 현실을 만나지 안하면은 내 구원은 성공을 못 합니다. 겨자씨가 땅을 만나지 안하면 그 겨자씨는 성공을 못 합니다. 땅을 만나고 난 다음에는 지기가 와 가지고서 겨자씨를 지금 썩힐라고 달라듭니다. 썩힐라고 달라드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현실에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나님이 내게 인도하시고 지시하는 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이룰라고 할 때에 현실이 아니면 이룰 수 없기 때문에 흙과 같은 현실을 만나 가지고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할라고 하면은 거게서 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이 옵니다. 땅 속에 심으니까 지기가 그 겨자씨를 썩힐라고 막 달라듭니다. 달라들 때에 겨자씨에 생명이 있으면 달라드는 그 지기에 삼키워져서 흙이 되지 안하고 생명이 있으면 그것을 삼켜서 겨자씨가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현실을 만나 가지고서 현실에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할 때에, 내게 대한 하나님의 영감대로 내가 살라고 할 때에, 그때에 이 세상에 방해물이 필연적으로 있습니다. 아, 겨자씨 심어 놨으니까, 수분이니 온도니 질소분이니 막 지기가 막 와 가지고서 지금 그 겨자씨를 썩힐라고 올 것 아닙니까? 오는데 생명이 없으면 썩어 버립니다. 생명만 있으면 오면은 잡아 먹고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현실에서 살라고 할 때에 그때에 살지 못하게 방해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니엘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게 하나님의 뜻인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생활 기도하는 생활하지 못하게 하고, 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는 우상에게 절 안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절을 하라고 달라들고, 환경에서 이와같이 그런 어려운 일들이 오는 그것이 요 겨자씨 비유에서는 지기가 와 가지고서 그 겨자씨를 썩힐라 하는 거와 꼭 같다 그말이오.

그러면 같은데, 그때에 그 겨자씨가 오는 지기를 이기고 자기에게 패전을 해서 흙화되지 아니하고 그것을 먹고 겨자씨가 자라는 것처럼 그 현실을 만나서 현실에 미혹하는 방해나 또 악의 세력이 위협이나 모든 무력을 가지고 방해할 때에 내가 그 방해에게 지면은, 방해에게 지면은 내 믿는다는 그 믿음은 뭐이 되게 됩니까? 지면은 뭣 됩니까? 예? 지면 뭣 됩니까? 지면 세상화 안 됩니까? 세상 안 됩니까? 지면 세상 안 됩니까? 다니엘이 졌으면 파사 나라와 같이 되지 안했습니까? 파사 나라가 되지 않습니까? 다니엘이 졌으면 썩어서 파사 나라가 되고, 다니엘이 그 파사 나라의 주장에게 정복을, 설복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대로 신앙을 지키고 있으니까 마지막에 사자 구덩이 집어 넣었지요? 집어 넣었지마는 그 사자 구덩이에서 살아 나온 그것이 다니엘의 각오로 그렇습니까, 결심으로 그렇습니까 다니엘의 기술로 그렇습니까, 다니엘의 요술로 그렇습니까, 다니엘의 무슨 체력으로 그렇습니까, 뭘로 그렇습니까? 뭘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났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어떻게 다니엘에게 같이 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다니엘이 끌어온, 그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온 것은 다니엘의 무엇이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 왔습니까? 예? 산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 왔습니다. 산 믿음이 내가 이렇게 이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요것은 전능자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능자와 나와 하나되어서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이 행동은 전능의 행위요 전지의 행위기 때문에 피조물이 어떻게 하겠느냐? 요것을 요거 믿는 믿음을 가지고서 요동치 안하니까 믿음으로 인해서, 당신의 모든 능력은 믿음으로 올라 했으니까, 믿음으로 인해서 그 능력이 와 가지고서 사자 구덩이에서 벗어나서 그 파사 나라에 모든 큰 변화가 크게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걸어오라 할 때에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푹 뛰어내려서 걸어가니까 그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다가서 바다 위로 갔는데 가던 사람이 내나, 푹 빠질 때 예수님이 그 판단하기를 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을 버려서 네가 물에 빠졌다 그렇게 말씀하시지 안했습니까? 믿음은 이렇게 오묘한 것입니다. 믿으면 지극히 큰 능력이 와 역사할 수가 있고 믿지 안하면 하나님의 능력은 와서 역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겨자씨가 생명이 없으면 흙이 돼 버리고 말지요. 썩어 버리고 말지요.

흙의 것이 되고 말지요. 흙의 소유가 되고 말지요. 생명을 버리지 안했을 때에는 흙이 삼켜져서 흙이 변해서 겨자 나무가 됐지, 겨자나무가 됐지 겨자나무가 흙이 되지를 안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현실에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을 때에 고 뜻대로 하는 데에는 하나님의 이 전능의 능력이,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여게는 전능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이며, 전능의 능력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라, 전능의 능력에게 붙들려 하는 것이라, 전능의 능력의 역사라, 전지의 능력의 역사라, 만왕의 왕의 역사라, 만주의 주의 역사라 하는 요것을 고 사람이 고 능력을 어떻게 하면 고 능력이 버려지며, 고 능력을 자기가, 전지 전능을 가지고 역사하면은 어떻게 하면 역사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전지 전능의 그 능력을 가지고 역사할 수가 있으며 그 능력을 버릴 수가 있습니까? 예? 어떻게 하면 그 능력을 자기가 가지고, 자기를 상대하는, 자기를 방해하는 그거로 더불어 싸우는, 전지 전능을 가지고 자기를 방해하는 것으로 더불어 싸울라고 하면은 그 본인은 어떻게 하면 그 능력을 가지고서 그 모든 피조물로 더불어 싸울 수 있습니까? 예? 뭘 가지면은 그 능력을 가지고 싸울 수 있습니까? 예? 산 믿음, 어리석어서 자꾸 복습시키는 거 같으니까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실은 모릅니다.

실은 모릅니다. 믿으십시오. 믿을 때에 그 능력이 와서 역사합니다. 믿을 때에 그 능력이 역사합니다. 역사하면 그 투쟁으로써는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삼켜서 제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것을 통치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어떤 현실을 닥쳤을 때에 요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알 것이 더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 만한, 확실히 알 만한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예를 들면은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립니다. 이 시간 예배를 드릴 때에 아, 예배를 드리니까 내가 이 시간에는 정성을 들여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참 목숨을 다해서, 내 모든 성심 성의를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이렇게 예배를 드려야 되겠다 하면은 고것이 뭐입니까? 고렇게 정성을 드려서 예배를 드리는 고것이 하나님의 영감의 뜻에 명중이 된 것이겠습니까 혹 명중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겠습니까? 명중입니다. 명중입니다. 그러면 명중이면 그 명중 그것은 무슨 능력을 가졌습니까? 요걸 믿는 게 문제입니다. 요걸 믿는 게 문제입니다. 요걸 믿는 게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서, 자기가 시장에 가서 시장을 봤습니다 시장을 보니까 그 점포 주인이 가전을 내어 주는데, 가전을 내어 주는데 보니까 이 가전이 백 원 받아야 될 터인데 이백 원이 왔습니다. 그러면 이백 원이 왔으면은 백 원 고것을, 아, 이거는 백 원이 더 왔으니까 백 원을 여기 더 와서 백 원을 도로 돌려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딱 들어맞은 일일런지 안 돌려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은 일일런지 그러면 슬그머니 넣어 가지고 가는 것이 뜻일런지, 어떻습니까? 뭐입니까? 돌려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요. 고거는 사소한 것 아닙니까? 사소한 건데, 그 백 원을 돌려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백 원을 ‘여거 더 왔습니다’ 백 원을 돌려 주는 고 행위가 무슨 행위지요? 고게 무슨 행위입니까? 고게 무슨 행위입니까? 전능의 행위입니다. 요걸 믿으십시오. 전능의 행위입니다.

전지의 행위입니다. 또 무슨 행위입니까? 만능의 행위입니다. 대주재의 행위입니다.

그러면, 그 행위가 뭘 한다고 했습니까? 그 행위가 무슨 능력을 가지고서 뭘 한다 했습니까? 몇 가지 한다 했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세 가지 뽑고 옮기고 심는 능력합니다. 그러면 뭘 뽑았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백 원 하나를 고렇게 하는 산 믿음 지켰기 때문에 고 믿음이 들어서 자기에게 일생 동안 완전히 실패할 그 사업에 실패를 확 뽑아 나갔는지 그거 모릅니다, 우리는. 실패를 뽑아 놓았는지 모릅니다. 자기도 모르는 그는 대성공이 그 속에 심어졌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뭣이 뽑히고 뭣이 옮기고 뭐이 심어졌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크고 작은 것이 없이 현실에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으면 고 뜻은 전지 전능의, 만주의, 만능의 대주재의 이 지극히 큰 능력이 나를 붙들고 역사했기 때문에 이것은 그 결과로 무슨 결과를 이루는가? 뽑고 옮기고 심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완전히 이루는 이 지극히 큰,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을 내가 상속받아 가지고서,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거와같이 이기고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신다고 하신 그리스도로 더불어 영원히 왕노릇할 수 있는 이 지극히 큰 성공이 우리에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에 이것을 공으로 주는 것입니다. 요것을 믿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다가서 아주 뜻밖에 나에게 아주 억울한 소리를 합니다. 억울한 소리를, 애매한 소리를 하고 억울한 소리를 할 때에 그때에 그것이 달라들며 억울한 소리할 때에 우리는 뭐 옳은 거는 옳다 아닌 거는 아니라 고 더 이상은 하지 못합니다. ‘아, 이것은 나는 그렇지 않다.’ 할 때에 그가 나한테 그렇다고서 억울하게 들이 몰아 세우면서 나에게 우겨대 가지고서 그걸 나에게 억울하게 두터 씌워 가지고서 매장을 시킵니다. 매장을 시킬 때 그때 우리는 아니라고 말만 하고, 아니라고 말만 하고, 악을 악으로 대항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이상 하지 아니하고는 나는 ‘그렇지 않다.’ 다만 나는 `이렇고 이러니까, 나는 그런 일은 나는 그거는 내게는 상관이 없다. 나는 그런 일 하지 안했다.’ 이렇게만 하고 억울하나마 그 사람이 참고 고것을 견디면 어찌 됩니까? 고것은 하나님의 뜻에 명중이 된 겁니까 안 된 겁니까? 녜? 된 겁니까 안 된 겁니까? 됐으면 그 행위는 무슨 행위입니까? 전능의 행위입니다. 믿습니까? 믿으십시오.

전능의 행위입니다. 전지의 행위입니다.

그러면, 전지 전능의 행위니 그 행위는 세 가지 큰 능력으로 역사합니다. 그 한 마디, 그 한 토막 그까짓 것이 다 무슨 의가 됩니까? 무슨 선이 됩니까? 그까짓 거 뺨 한 번 맞고 참은 것이, 억울하게 욕 얻어먹고 한 발짝 차이고 참은 것이 그것이 무슨 선이며 무슨 의입니까 마는! 자기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영감의 뜻을 명중은 했다 말이오. 영감대로 명중은 했습니다. 겨자씨 믿음이 됐습니다. 산 믿음이 됐습니다. 그것은 전지 전능의 능력과 나와 동행한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전지 전능의 그 능력을 내가 삼았습니다. 고 한 토막으로 내것 삼았습니다.

삼았으면 그 능력은 무슨 큰 일을 할란지 모릅니다. 우주를 차지할란지, 한국을 제 한국으로 만들어 버릴란지, 이 동서양을 제걸로 만들란지 뭐 만들란지 모릅니다.

그까짓 게 무슨 큰 일입니까? 그 전지 전능이 할라 하면 못 할 일이 뭐 있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우리 현실에서 닥친 일, 무슨 일이든지 ‘아, 내가 오늘은 아무래도 이거 좀 기도를 해야 되겠는데.’ 현실에 자기가 ‘오늘은 내가 바빠서 뭐 이런 것이 분주하지마는 그것보다도 아무래도 내가 이거 좀 기도해야 되지 바쁜 일만 이래 가지고는 안 되겠다’ 만일 자기가 기도할라고 할 때에 그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고 뜻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 시간 하나님께서 분주한 걸 다 제거해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은 그때 기도할라고 하니까 여러 가지 손해와 일어나는 파동이 많습니다. 파문과 파동이 심히 많습니다. 많아도 아무래도 내가 지금 이 시간 기도해야 되지 기도하지 안하면 안 되겠다는 그것을 자기에게 영감으로 와 가지고 기도할라 하면은, 기도할라 할 때에 그 여파의 파동이 많은데 자기가 하나님의 뜻에 명중해서 기도하게 된다면은 고 기도하는 것은 어떤 행위입니까? 그거는 어떤 행위요? 전능의 행위요? 전지의 행위요, 대주재의 행위요, 만능의 행위요, 만왕의 왕의 행위요, 그보다 더 큰 능력의 행위가 어데 있겠습니까? 뭣이 그보다 유익이 더 크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고 현실에서 크고 작고 하는 무엇이든지 내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에 딱 들어맞는 고 일 하는 것은 겨자씨 믿음이니 그는 세상을 이기고 삼키는 믿음이며, 그것을 내 밥을 삼는 믿음이며, 그 능력은 전지 전능의 능력이라.

그거는, 왜? 전지 전능의 능력이라, 하는 것이 뭐이 나타났느냐? 뽕나무를 뽑혀서 바다에 심기우라 이렇게 하였을 것이라 했으니까 뽑히는 것도 전능이요, 옮기는 것도 전능이요, 심기는 것도 전능 아닙니까? 그걸로써 뽑고 옮기고 심는 전능의 역사가 나타난 것을 여게 말하지 안했습니까, 우리는 현실에 크고 작고, 말로 할 것, 마음으로 할 것, 생각으로 할 것 각각 다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마음으로 할 거 그까짓 것 마음으로 하는 거야 이래 먹었다가 저래 먹었다가 될 것 아닌가? 아니오. 내가 요 마음을, 현재. 요 마음을 하나님이 가지라 할 때에 고 마음을 가지는 것이, 가지라는 고 마음을 가졌으면 고 마음으로 전지 전능을 내것을 삼은 줄 아십시오. 전지 전능은 나와 같이 하는 줄 아십시오. 고 마음 고것은 뽑고 옮기고 심는 지극히 큰 능력의 결과를 맺는다는 걸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내가 만일 어떤 취미를 하나 가지고 있을 때에, 아, 우리가 그래 가지고 다 죽습니다. ‘아, 내가 테레비를 보니까 재미는 있다마는서도 아무래도 내가 오늘 저녁에 기도하지 안하고 이 테레비를 보는 이거는 안 된다. 이 시간 지금 이 테레비 보는 거는 그만 두고서 내가 기도를 해야 되겠는데, 하루 삼십 분 기도를 해야 되겠는데, 이거 테레비는 재미있다’ 할 때 그때에 ‘아, 삼십 분 기도하는 이 기도를 해야 되겠다, 테레비 보는 거는 그만 두고서 기도해야 되겠다.’ 그랬으면 혹 그게 하나님의 뜻에 명중되는 일일까요? 혹 안 되는 일도 될까요? 어떻습니까? 내가 삼십 분 기도할 것은 내가 하지 못하고 지금 잘 시간은 됐는데, 테레비 본다고 앉아 있는데 내 마음에 ‘내가 삼십 분 기도도 못 하고 테레비 보고 앉았으니까 테레비 보는 걸 고만 이걸 덮어 버리고 내가 기도해야 되겠다’ 하는 고 마음 고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혹 뜻이 아닐 수도 있을까요. 고거 어떻습니까? 고게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습니까, 틀림 없는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녜? 틀림없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틀림없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 아닐 수도 있지만 고건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가 삼십 분 기도 안 하고 고와같이 지금 그거 봐야 소용 없는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기가 고 마음을 가진 고 마음대로 실행하면은 그 실행하는 것은 뭘 점령하는 것입니까? 예? 자기가 그렇게 그 테레비 보는 걸 두고서 지금 기도를 하기로 시작했으면은 자기는 뭣을 지금 점령을 했습니까? 예? 하나님의 전능을 점령했습니다. 하나님의 전능은 내것됐습니다 전지는 내것됐습니다. 만능은 내것됐습니다. 대주재는 나와 하나됐습니다. 나하고 하나됐습니다. 한 덩어리됐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그때에 우리는 모릅니다. 그 한 토막 내가 산 믿음 겨자씨 믿음으로 지킨 고 하나가 어떤 뽑는 역사를, 어떤 옮기는 역사를, 어떤 심는 역사를 하는지 나는 모릅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그게 들어서 몇십 년 후에 어떻게 자기가, 자기가 죽어야 되는 그걸 거게서 미리 뽑아서 닥치지 안할 수도 있고 자기가 이것은 참 자기 평생 애 써도 할 수 없는 것이 뜻 밖에 와서 심어지는 그것을 심을 수도 있습니다. 뭘 심는지 뭘 뽑는지 무엇을 옮기는지 모르나 당신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당신의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변하지 않는, 당신이 겨자씨 믿음만 가지면 뽑고 옮기고 심는 능력이 있다 했으니까 우리가 현실에서 산 믿음을 지켰으면 겨자씨 믿음 지켰으면 그 믿음으로 통해서 무엇이 뽑혔는지 무엇이 옮겨졌는지 뭐이 심겨졌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가 이 산 믿음을 지킬라고 할 때에 우리는, 예를 들어 밥을 할라고 하면은 밥이 되는 데에는 밥이 되는 데까지의 여러 가지 구비 조건이 있지 않습니까? 구비 조건이 있어 가지고서 그 구비 조건 가운데에 하나만 없어도 밥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산 믿음으로 지켜 나갈라고 할 때에, 그것이, 예를 들어서 다섯 가지가 있으면은 네 가지는 내가 지키지 못하고, 한 가지만 산 믿음을 지켰습니다. 산 믿음 지켰으면 이 다섯 가지를 다 지켜야 이루어 질 수 있는 그 성과는 이루어질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네 가지는 지키지 안하고 하나만 지켰으면 사분지 일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사분지 일은 이루어지니까 사분지 일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내게 뽑힐 것이 뽑히고 심길 것이 심기고 옮길 것이 옮겨졌으니까 사분지 일은 성공이지만 사분지 삼이 안 됐기 때문에 밥은 안 됩니다. 내가 그렇게 산 믿음을 지켜도 그때에 이 말씀한 대로 고만 이 능력이 와 가지고서 뚜렷이 보기에 이렇게 큰 기적과 축복이 와 가지고서 이루어지는 일이 안 된다.

그말이오. 사분지 사가 안 됐기 때문에, 안 됐지마는 사분지 일 한 이것이 들어서 뽑고 옮기고 심는 일 했기 때문에 이게 들어서 이 사분지 사 있는 것을 서이를 확 뽑아 버렸는지 너이를 뽑아 버렸는지 나는 모른다 그말이오. 이게 뽑았다 말이오. 뽑는다 말이오. 이 뽑으니까 그저, 우리가 다 모르면 다 구비하지 못할지라도 하는 대로 자꾸 하면, 함으로써 뽑힐 게 뽑히고 옮길 게 옮기고 심길 게 심겨지고 자꾸 이러니까, 이래 하다가 자꾸 해 나가고 해 나가다 보니까 뽑힐 게 다, 뽑혀 버렸어. 옮겨질 게 다 옮겨져 버렸어.

심겨질 게 다 심겨졌어. 이러니까, 고것이 밥을 하는 데에 구비 조건이 뒤에 완성될 시는 밥이 풀풀 눌어 가지고서 좋은 밥이 될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끝 없는 믿음을 가지고, 요 진리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산 믿음을 놓지 마라 산 믿음은 전능이다 하는 것을 잡고서 요렇게 하는 사람은 큰 권능을 볼 겁니다. 요런 사람은 반드시 자기는 기적 속에 살 것이요 축복 속에 살 것이요 날마다 기적과 축복으로써 살아날 것입니다. 요걸 믿어야 됩니다.

현재에, 만일 나에게, 어떤 사업을 하는데 이 사업에 서로 거래처와의 관계가 있어서 이 거래처와의 관계가 이래 됐는데 고때사 믿고 하나님이 거래처 관계에다가 꼭 하나님의 계명을 딱 지킬라 하면은 고만 그 거래처 일이 낭파가 되겠고, 낭파 안 될라 하면 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야 되겠고 고렇게 외통목으로 모는 것이 하나님이 그 현실을 만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럴 때에 자기가 이 겨자씨 믿음의 도리를 깨닫고 자기가 산 믿음을 지킬라고 이래 하면은 그 모든 것이 다 절단이 되고 낭파가 돼서 그러면 그뭐 이제까지 하던 사업이 다 절단이 나고 그뭐 사업체에 따라서 뭐 몇천만 원이 아니라 몇억이 오고 가고 하는 이런 지금, 이런 일이 있다고 해도 자기는 산 믿음의 가치를 깨닫고 ‘산 믿음을 내가 가지느냐, 산 믿음을 던지고 내가 이것을 가지느냐’ 그 둘을 평가해 가지고서 그때에 산 믿음을 가지면 사람 보기에 그것이 실패가 돼 가지고 낭파가 됐습니다. 낭파가 됐다 합시다. 낭파가 돼도, 그게 사자 구덩이 들어갔지마는 살아나오는 날이 있습니다. 낭파가 돼도 그게, 낭파가 돼도 믿어 두고 그대로 냅두면은 그것이 언제 어느 기회에, 어데서 뭘로 변동이 돼 가지고 어쨌든지 당신의 계약은 변함 없기 때문에 반드시 뽑고 옮기고 심는 그 결과가 나타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우리의 산 믿음인데 그럴 때에, 내가 보면, ‘아, 이거 이 사업의 성패가 여게 달렸는데 이래 가지고 내가 부득이 해서 하나님의 뜻은 이거 어기는 거는 어기는 것이지마는 어짤 수 없다 요번만은 하나님의 뜻을 어길 수밖에 없다.’ 하고서 겨자씨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고것을 양보하고서 이제 고 현실을 따라서 산 믿음을 저버리는 고게서, 고게서 우리가, 내가 얼마나 약하다는 것을 그걸 알아야 되겠고, 거게서 ‘이렇게 산 믿음 지키는 게 힘이 드는구나’ 그렇기에, 산 믿음을 지키는 데에는 뭣을 가져야 돼요? 산 믿음을 지키는 데에는, 어짜고는 산 믿음을 지키지 못한다고 했어요, 오전에 말한 거? 녜? 무엇이든지 가지고는 산 믿음 가지지 못합니다. 물론 산 믿음도 산에 올라가듯이 처음에 시작할 때는 그게 되고 되고 하지마는 차차차차 대성과가 지금, 성패가 결정되는 절정에 올라갈 때에는 무엇이든지 가지고는 산 믿음을 가지지 못합니다.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다 버려서, 있는 것을 다 버리기 전에는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그 말씀과 꼭 같은 말씀입니다.

이러니까 요렇게 해서, 우리가 평소에 산 믿음 가지는 일을 사소한 일에서부터 자꾸 산 믿음을 가지면 산 믿음 가짐으로 내가 모르는 거 뽑힐 거 뽑고, 심기워질 게 심기워지고, 또 옮기워질 게 옮기워지고 자꾸 이 역사가 있으니까 내가 자꾸 뽀스래기 산 믿음을 자꾸 지켜서 이래 나가면은 차차차차 정리돼 가지고서 마지막에는 이제 산 믿음이 장성해지고 큰 산 믿음을 가지게 되고 또 그때에 큰 마찰이 와도 그때 경험해 봤기 때문에 이 산 믿음을 계속해서 지킬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오늘 요 인식할 것은 우리 현실에 하나님의 뜻에 명중되는 것은 큰 것이든지 작은 것이든지 내가 마음 한번 먹는 것이든지 또 생각 한번 그렇게 하는 것이든지, 다른 사람이 내게 그럴 때 ‘그놈 괘씸하다. 분하다.’ 할 때에 분함이 있습니다. ‘분하다' 이럴 때에 그때에 성령은 분명히 ‘야, 네가 악한 것을 기억지 말아라. 그 원통함을 품지 말아라.’ 그러면 그럴 때에 성령의 감동으로써 그와같이 되면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그때에 이제 그 마음을 품지 않는다는 그게 사소 한 것 아닙니까? 그게 무슨 큰 일이겠소? 그러나, 그것이 전능을 점령했고 전지를 점령했고 만왕의 왕으로 더불어 하나됐기 때문에 내가 그마음 하나 먹은 그거 가지고서 내게 나를 망칠 뭣이 뽑혀 나갔는지 나는 모릅니다. 내가 그거 그 마으 한번 먹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어떤 보배가 하나 심기워졌는지 나는 모릅니다. 무엇이 옮겨가고 옮겨왔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크고 작은 것이 상관없이 내 현실에 모든 평범한 생활 가운데에, 모든 평범한 생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이 분명한 고것을 찾았으면 놓지 마십시오. 놓지 마십시오. 그것이 들어, 진합 태산이라고 그게 들어서 하나님의 전능을 자꾸 점령하고 하나님의 전능은 내 전능이 되고 하나님과 나와 동행이 돼 가지고서 그것이 마지막에 합해서 세상을 이기는 이김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요번에도 우리 연보할 때에 어짜든지 연보를 무리하게 하지 말아라 하고 연보에 대해서 아마 구역장들도 그렇게 권면한 일이 없는 줄 압니다. 없고 그저 연보할 때에 잘못 알아서 해야 될 사람이 안 할 때에는 그거 권면도 했을 것이고 또 많이 한 사람은 그래 하면 안 된다고서 이래 제재를 두었을 것이고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래 요번에 연보에 대해서는 도무지 그렇게 강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우리 요번에 연보의 사상이요 또 앞으로도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억지 연보하지 마십시오. 자기 꼭 받은 은혜 있으면 하십시오. 받은 은혜 있고, 받은 은혜 있고 그 씨를 심어야 될 때 씨를 심지 안하면은 하나님 앞에 저주받아서 안 될 고것도 알고 또 무리하게 허영이나 모두 도박 연보해 가지고 작은 거 내면 큰 거 받지 싶어서 그런 거 노름쟁이 연보 같은 그런 더러운 연보도 하지 마십시오.

꼭 받음으로, 꼬박꼬박 말씀을 지켜 행하니까 하나님의 축복 하나받았고, 하나받았으면 반은 내가 어떻게 하고 반은 또 어떻게 하고 또 둘받았으면 그렇고, 한 대로 고대로 꼭 해 가지고서 우리가 이제 이거는 뭐 연보하는 것을 한 번 두 번 할 게 아니고 뭐 해마다 할란지 뭐 달마다 할란지 모릅니다. 왜? 있으면 또 옹담샘에 물 퍼쓰고 나니까 물 잡히면 또 퍼 쓰고 자꾸 그랄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서, 행해서 하나님 축복받으면은 축복받아 가지고 연보하고 또 연보해 가지고 또 무슨 선한 일 하고 또 때가 되면 또 축복받아 가지고서 또 저장된 것 또 연보하고 이랄 것 아니겠습니까? 이러니까, 어짜든지 우리가 이번에 겨자씨 믿음을 하나님이 주셨는데 요 겨자씨 믿음을 지키면 반드시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자기에게 따를 것입니다. 기적과 축복이 따르기 전에는 죽는다 하는 그게 옵니다. 그게 십자가의 도입니다. 죽는다 하는 게 왔는데 죽을 요량하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니까 죽고 나서 사흘 만에 부활했습니다. 부활해서 죽음을 완전히 다시 보지 안하고 완전히 해결을 지워 버립니다. 실패를 완전히 해결을 지웁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크나 작으나 공장의 직공들도 그렇고 직원들도 그렇고 사업가도 그렇고 다 이런 경험과 체험이 있는 자는 담대합니다. 했는데 보니까, 주를 위해서 죽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살아났고 주를 위해서 버렸는데 얻었고 이러니까 주를 위해서 했다는 것이 나중에 보니까 전부 저를 위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안 했으면 그 일이 안 된다는 것을 보고 알 수가 있다 그말이오.

그래서, 이번에 연보를 많이 했습니다. 이번에는 아무 그런 거 안 해도 그저 다 자기네들이 알아서 그래 했지 뭐 많이 하라 소리는 아무도 한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 말라고, 할라 하는 것 못 하게 제재한 사람 많았었습니다.

그랬는데, 어떤 구역장 보니까 다 적어 놨어요. 일회 연보 때 얼마 하고, 누구 얼마 누구 얼마 다 적어 놨어, 다 적어 놓고, 이랬는데 고때에 이 사람은 그랬는데 작대기를 그어 놔서 이러니까 보자 뒤에 오그랑망태기가 돼져 버렸고, 이거는 다 믿음으로 했으니까 또 보자, 자꾸 올라가고, 이러니까 되는 거는 자꾸 되고 되고 되고 자꾸 되고, 안 되는 건 안 되고, 허영이나 그런, 그런 것은 안 돼요. 꼭 진실되게 한 것은 고만 그대로 자꾸 성장돼 나가요. 이러니까 요 믿음만 지켜서 이래 나가면은 이 서부교회만 그래도 이 경제 가지고서 뭐 세계라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가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오후에 이 겨자씨 믿음에 대해서 현실에서 어떤 것이라도, 겨자씨 믿음인 요걸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어떤 사람에게 위신에 관한 말인데, 위신에 관한 말인데 그 말을 하면은 듣는 사람도 재미 있을 것이고 모든 사람이 기대하고 있을 터인데 그 위신에 대한 말인데 고 말을 한 마디를 할라고 하니까 고 사람이 생각할 때에 요 말을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안하시겠고, 사람들은 기뻐하겠고 하나님은 말하지 않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할 때 고 사람이 ‘아, 요거 내가 말을 하면은 겨자씨 믿음을 팔아먹어 버리는 것이고 내가 말 안 하면은 요 겨자씨 믿음을 가진 게 된다, 하나님은 요 말을 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면 하고 싶지마는 하지 안하면 겨자씨 믿음을 가지는 것이고 요 말을 고만 하고 싶은 대로 해 버리면 겨자씨 믿음을 요걸 그만 다, 생명 없이 그만 썩혀 버리고 만다. 요래 가지고서 고 말 한 마디 할라 하다가 안 하고 중단하는, 고 중지하고 말하지 안하는 중단하는 고게도 고것이 뭐이냐? 전능이라. 고것이 전능이요 전지요 만능이요 대주재요 그것이 내게 있어서 뭣을 뽑을란지 뭣을 옮길란지 뭐이 심길란지 무슨 축복이 될란지 모른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에 하나님의 그 뜻을 발견했으면 그걸 놓으면은 고만 천하를 얻는 것보다 저는 손해 갔습니다. 그걸 놓지만 한하고 잡고서 그대로 나가면 잠시 잠깐 후면은 크게 이 세 가지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꼭 요대로 사십시오. 요대로 살면 왜 부자가 안 됩니까? 왜 부자가 안 됩니까? 왜 출세를 못 합니까? 왜 성공을 못 합니까? 자꾸 안 나갑니까? 왜 뭣 때문에 평안을 못 가집니까?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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