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소망

 

1988. 10. 9. 주일오후.

 

본문: 베드로전서 1장 3절∼7절.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앉고 더럽지 앉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음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짐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찬송하리로다 함에 대한 찬송할 이유를 몇 가지로 나눠서 증거하겠습니다.

기록하실 분은 기록하시면 좋겠습니다.

 첫째, 구원의 사랑과 수고를 알려는 노력. 구원의 사랑과 수고를 알려는 노력.

둘째, 구원을 앎과 가져 누리기를 노력. 구원을 앎과 가져 누리기를 노력. 셋째,  구원의 사랑 기념하기를 노력. 다시 첫째, 사랑 속에 녹아져 없어지기를 노력.

사랑 속에 녹아져 없어지기를 노력. 둘째, 구원의 사랑 속에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  노력. 세째, 이 사랑의 구원 전함에 나 전부 다 바치기를 노력. 녜, 이 여섯 가지로  잠깐 좀 설명을 가하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의 사랑이 수고하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  혼자 계시고 아무것도 영계도 물질세도 없었을 때에 혼자 계시면서 우리도  없었는데 당신이 사랑하는 존재를 창조하시려고 목적을 정하셨습니다.

 그러고 우리를 하나님의 목적대로 하나님의 형상의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정하셨습니다. 그러고,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예정하셨습니다. 이 구원을 위해서 영원을 예정하셨습니다. 그저 천 년  만 년 억만 년이 아니고 영원 무궁을 이 구원을 위해서 예정하시고 이 구원을  위해서 창조하시고, 그러면 모든 존재는 이 구원을 위해서 창조된 것이고 역사에  모든 순서가 나타나는 것은 이 구원을 위해서 순서적으로 전개되도록 영원을  하나님이 예정하셨습니다.

 또 우리를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완전히 승리하고 이런 것들을 무한히 탁월해  가지고 그런 것들을 다 영원히 통치할 수 있는 자 되게 하기 위해서 타락을  허락하셨습니다. 인간 타락을 허락하시고 죽음을 허락하시고 사탄을  허락하셨습니다.

 이러고 우리를 다시 죄의 염려와 또 하나님의 절대적인 전지의 지혜에 거치지  아니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친히 사람되어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것은 창조주가 피조물 되어 오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피조물이 되어서  죽으시고 살으심으로 우리를 대속하셨습니다. 이뿐만 아니고 또 주님이 우리를  영원히 온전한 자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신인 양성 일위가 우리를 대속하는  부활을 하셨습니다. 또, 그후도 계속 영원 무궁토록 우리를 위해서 아버지  우편에서 기도하시고 영원 무궁세계에도 항상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 밖에  계셔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지체와 몸이 되게 하시기까지 해서 완전자로 더불어 한 몸의 결합을 가지도록  이렇게 하신 것이 주님의 그 사랑의 수고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어떤 희생을 하셨으며  어떤 수고를 하셨는가 하는 그것을 우리가 늘 연구해서 알아가도록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또 우리를 구원하신 이 구원은 대주재이신 하나님으로 더불어 완전 결합을  하셔서 영생을 하게 됐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상호  내주하는 이 구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상호 내주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과 꼭 같은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우리를 성화하려고 역사하신 구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위인이나 어떤 대인이나 어떤 그런 성자나 어떤 현자나  그런 사람의 형상을, 인격을 닮은 것이 아니고 완전자 하나님의 인격을 닮아서  하나님과 꼭 같은 인격 존재가 되도록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며 지혜는 전지의  지혜를, 능력은 전능의 능력을, 또 영원히 늙지도 쇠하지도 더러워지지도 병들지도  낡아지지도 않는 이 몸으로 영생을 하고 우주가 넓다 하지마는 이 우주에 대해서  일 초 동안에라도 이 우주를 얼마든지 순행할 수 있는 그런 존재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입니다.

이 구원을 우리가 알고 이 구원을 누리기를 우리는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완전자로 살아 누리고, 하나님과 참으로 상호 내주하는 동거동행자로  누리고 전지자로 살아보고 전능자로 살아보고 완전한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 볼  수 있는 이것을, 우리가 이 구원을 받아 가지고 우리가 누려서 우리 안면에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 감사와 기쁨이 그들에게 환하게 볼  수 있도록까지 우리들이 이 구원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되도록 우리가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우리 구원은 영생 가진  구원이기 때문에 거게는 죽음이 없는 자로 살고 있는 그 기쁨, 죽음이 없는 자로  사는 죽음이 없는 구원을 우리가 누리고 완전의 구원을 누리고 전지자의 구원을  누리고 전능자의 구원을 누려서 이 구원을 우리가 가진 자인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이 구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지고 사는 것을 그들에게  누리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도록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가졌다 하지마는 참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을 가진 것을 죽음  앞에서 영생 가진 자인 것을 우리가 깨닫고 영생 가진 자로 살면 보고 듣는  접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보여 주는 그 빛은 심히 광명할 것입니다.

 우리가 전지 전능의 구원 얻었으니 전지 전능의 구원을 가지고 사는 것을 세상  모든 악한 세력과 능력을 대할 때에 전지 전능자의 이 능력을 우리가 가지고  사는 것을 그들에게 실상으로 보여 줄 배에 이는 세상이 놀랄 것이요 세상에게  크게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또 세째로 우리들은 구원의 사랑을 기념하기를 노력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주님의 주신 구원, 주님과 주님의 구원 주신 이 구원을 우리가 가지고 누리려고  할 때에는 우리들에게는 별별 마찰들이 많이 생겨집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주님과  이 구원을 위해서, 주님이 주신 구원이라면 어떤 구원인가 하면 죄 없는 구원이며  의로운 구원이며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구원입니다.

 노아 시대에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함으로 천하 인간들에게 다 박해를  당해서 여덟 사람 외에는 다 하나가 되었고 노아의 여덟 식구만 고독한 독보의  걸음을 걸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주님과 이 구원을 주님이 우리에게 어떤  구원을 주셨다는 그 구원 주신 순서와 또 이 구원을 누릴 때에 세상에서 어떠한  마찰이 있고 악으로 더불어 어떤 대립이 되어지는 이 사실을 자신이 실질적으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가 이 구원과 주님 때문에 낮아지는 그런 일이 있을 때에 그  낮아지는 일을 단마음으로 우리가 낮아지고 또 주와 이 구원을 보존하기 위해서  주님과 이 구원을 우리가 가지기 위해서, 이 구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우리는 낮아지는 그 무한히 낮아지는 일도 생겨지겠고,  또 손해가는 일도 생겨지겠고, 또 여러 가지 박해를 당하는 일도 생겨지겠고,  말할 수 없는 매장당하고 죽임당하는 그런 일도 있을 때에 우리는 죽으면서 이  기념을, 죽으면서 이 구원을 놓지 안하고 가지고 있고 낮아져도 이 구원은  낮아졌으면 낮아졌지 이 구원에는 손해 보지 안하고 여러 가지로 고난을  당했으면 고난을 당했지 이 구원에 대해서는 조그만치도 상하지 안하도록 주님과  구원을 자기가 가지고 보존하려고 할 때에 그때에 우리는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모든 그 각종의 어려움을 우리 다 좋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주님이 죽음이 와도 나를 구원하시는 그 구원을 조금도 꺼리지  아니하시고 달게 죽음을 취해 내 구원을 주신 이 일을 나는 내게 죽음이 와도  죽음을 내가 면키 위해서 이 구원에 거리끼지 않고 달게 죽어 이 구원을  기념하는 것이 그것이 기념인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온갖 그  사랑의 수고를 끼친 그 일을 내가 이미 주님이 나를 구원해 주신 이 구원을 내가  잘 보존하고 강직하고 또 이 구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이 구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하는 데에는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한 온갖  어려움을 우리도 겪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자신이, 구원을 위해서 겪는다 말은 주님이 죄를 없애기 위해서  죽으셨고 의를 보존하기 위해서 죽으셨으니 나도 죄 없이 살기 위해서 어려움,  의롭게 살기 위해서 온갖 어려움을 당해 주님이 어려움 당한 거와 같은 그런  어려움을 당해도 내가 이 구원을 보존하고 놓지 아니하는 그것이 이 구원을  이루실 때에 주님이 어떻게 어려움으로써 이 구원을 이루어 주신 이것을 우리가  내 몸에서 기념하는 일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주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 구원하기 위해서  어떤 수고와 노력이 있었는가 하는 그것을 우리 몸소 이 구원 때문에 그런 모든  일들을 경험하고 실험하고 그렇게 해서 이 구원을 기념하는 일을 우리가 뒤로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해서 우리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몇 종류의 고난을 당했으며 어떤 정도의 고난을 당했으며 어느 정도의  희생을 당했는가 하는 것을 우리 몸소 이 구원 때문에 체험해 가면서 사는  그것이 이 구원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포도주와 떡을 가지고 만찬을 베푸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걸 먹을  때마다 내 피를 기념해라 내 살을 기념하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사죄, 칭의, 화친 이 세 가지 때문에 살은 어떻게 됐으며 피는 어떻게  됐으며 생명은 어떻게 됐는가 하는 그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도 이  구원 위해서 그건 어려움을 당해도 이 구원을 잘 보존하고 이 구원을  조그만치라도 손상시키지 아니하는 그것이 주님이 이런 십자가로 나를 구원하신  이 구원을 내 몸소 체험하며 기념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한 그때의 어려움을 오늘에 내  현실에서 내가 이 구원을 보존하고 버리지 아니하려 하는 이로 인해서 어려움음  당하는 이것으로써 주님의 구원 역사를 내가 기념하는 일이 되겠습니다.

 이런 생활을 하는 가운데에서 우리가 주님이 주신 구원을 내 몸소 현실 현실  생활에서 그분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는가 하는 것을 내 현실에서  이 구원을 내가 벗지 아니하고 이 구원을 잘 보존하려고 하면 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때에 어려움 당하는 것이 어려움을 당해도 이 구원을 뺏기지 아니하고 이  구원을 잘 보존하는 것이 주님이 어려움을 당해도 이 구원을 중단하지  아니하시고 기어코라도 이 구원을 달성하신 그 기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구원을 기념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 내가 하고자 할 때에, 그 일을  범죄하고자 할 때에, 죄를 범하고자 할 때에 내가 주님의 법도를 어기고자 할  때에, 주님의 뜻을 어겨서 뭣을 가지고 취하고 누리고자 할 때에 그때에 내가  누리지 아니하고 취하지 않으려고 할 때에는 내라는 욕심도 생각도 정욕도  성질도 내 뜻도 완전히 바싹 빠사져야만 되어지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  주님이 이렇게 모든 것을 다하셔 가지고 나를 구원하신 이 구원을 내가 세상에서  벗지 안하고 입고 살고 이 구원을 잘 보장하려고 할 때에는 이 구원을 이루신  주님의 어려움과 같은 그런 어려움을 내가 당하고 좋게 될 때에 그것이 우리  몸소 주님의 구원을 기념하는 일이 되겠습니다.

 암만 해도 우리가 주와 복음을 위해서 아무리 낮아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사람된 것같이 그렇게 낮아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낮아질 때에 그때에 주님이  나를 위해서 낮아지심으로 이 구원 주신 것을 내가 낮아져도 이 구원을 버리지  안하는 가운데서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되겠고 사랑의 수고를 우리가 알게 되겠고  이것이 곧 주님의 사랑을 내가 기념하는 것이며 찬양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내게 어려움이 있고 하고 싶은 거 원하는 거 그것을 주님의 이  죽으심으로써 대형해서 사죄해 주셨는데 지금도 내 하고 싶은 거 원하는 거 내  성질대로 내 욕심대로 하기 위해서 다시 죄를 범한다면 이 사람은 주님의 몸를  범하는 사람이요 주님이 주신 구원을 그 생활에서 기념하는 것이 안 되고 주님이  나를 주신 구원의 고난을 되풀이해서 나도 그 구원을 내 몸에서 몸소 겪는 그런  일을 안 하는 사람이 되어지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구원의 그 사랑의 수고, 주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했는가 이것도  성경으로, 우리가 모릅니다. 성경으로는 모르고 성신의 감화가 와야 아는 것이  제일 잘 알고 또 자기가 몸소 경험하고 체험하는 데서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다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내가 낮아져 볼 때에,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내가 낮아져 볼 때에, 천해져 볼 때에, 가난해져 볼 때에, 억울함을 당해  볼 때에, 내가 또 이 구원을 스스로 내가 보존하기 위해서 각종의 어려움을 겪어  불 때에 비로소 예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셨구나.

 우리는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자기의 생명에 위험한 일이 있으면 그것을 그만  돌보지 못하고 버리기 쉽습니다. 과거 6·25 때에도 부모네들이 뭐 자녀를  사랑한다 하지마는 저 죽을 판이 되니까 다 평개쳐 버리고 나중에 야단지기다가  정신 차리고 난 다음에 찾았지마는 찾지를 못해서 그때에 모두 생겨진 것이 이산  가족이 생겨졌던 것입니다. 제가 아는 내 밑에 있던 어떤 그 여집사 하나  있었는데 그 여집사는 자기 집에 불이 났을 때에, 그때 벌써 다른 데 갔다오니까  불이 났는데 그 아이가 벌써 안에서 불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자기가 쫓아  들어가서 아이가 둘인데 하나는 뭉쳐서 밖에 내던져서 살았고 하나는 뭉치다가서  던지지 못하고 같이 그 불에서 타서 죽었습니다.

 그런 것도 그 사랑의 자녀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생명을 바쳐 본 그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을 겪을 것이고 또 그렇지 않고 사소한 것이라도 우리가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수고해 보고,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고난을 당해 보고,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손해를 봐 보고, 낮아져 보고, 사랑하는 자 때문에 억울한 욕도 얻어먹어  보고, 여러가지로 매장도 당해 보고 그래도 그 사랑하는 자를 잊을 수 없어서 그  사랑하는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가 온갖 희생을 하는 그런 가운데에서  주님의 사랑을 짐작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그렇게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날 사랑하심으로 하신 그  사랑의 수고는 우리가 감히 그 억만분의 일도 비출 수 없는 것이지마는 우리가  주님의 구원을 보존하려고 하는 것과 다른 사람을 구원하려고 하는 데에서 여러  가지 수고를 하는 그것으로서 주님의 사랑의 수고를 차차 차차 짐작하고 아는  가운데서 자라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죄악을 이기려 할 때에 참 그 죄가 이기기 어려운데 그 죄악을 그것을  이기기 위해저, 어떤 사람은 자기 이 남녀 이성에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요  결혼하지 않은 사람인데 주를 위해서 살려고 했는데 그 성욕이 발동할 때에  견디지를 못해서 자신이 땅가시밭에 가 가지고 구불러서 온 몸이 전신이 다 피가  되고 몸에 피가 거의 빠지니까 비로소 그 성욕이 빠져 나가고 거게서 구출이  됐다고 하는 테레사라 하는 그 여성은 그렇게 했습니다. 이래서, 죄악을 도말해서  이것을 끊어 뽑아, 버리는 데에는 얼마나 고생이 있고 얼마나 수고가 있다는  여기에서 주님이 우리 속에 죄악을 다 도말하기 위해서는 그분이 대신 고통당한  것이 얼마나 고통당했는가 이런 종류의 고생을 당하는 가운데에서 비로소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주님의 구원의 사랑을 우리가 누린 사람마다 누리면 옆에서  보는 사람이 보고 그 사람에게 큰 빛이 됩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그 사랑을 당신이 받아 누리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보고 참  거게서 양식을 얻고 제이 손양원 목사님 하는 그런 목사님들이 많이 났었습니다.

또, 조그만한 일이지마는 이복순 집사도 이 구원의 기쁨을 그가 잠시간  누렸습니다. 한 며칠간 누리고, 한 열흘 누렸는가 누렸는데, 그 구원에 대해서  기쁨을 누리는 그 기쁨을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어졌었습니다. 그  암으로서 최종에는, 그 장암이 암 중에는 제자 고통스러운 암입니다. 유암이니 뭐  자궁암이니 하는 그런 거는 그렇게 안 아프고 폐암이나 간암이니 하는 것보다도  장암이 제일 고통이 심한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이 그렇츰 심해도 주님의 구원으로 인한 기쁨은 그 고통이 그에게  고통을 주지 못하고 그 고통을 이기고 남음의 기쁨으로써 오히려 그 구원의  기쁨을 우리들에게 자랑을 했고 그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것을 저희들이  보았습니다.

 이번에도 OO대학 그 부총장으로 와서 있던 OO대학 법대 대학원 원장으로 계신  김정환 그 집사님이 토요일날 세상을 떴는데 그러니까 그 가족들에게는 비관이  많을 터인데 제가 전화를 했었습니다. 나는 임종시에 전화한다고 전화를  했더니마는 이미 운명하신 지가 이십 분이 됐다 이래서 이십 분 전에 전화를  했으면 될 건데 그만 그때에 전화를 못 하고 운명한 지 이십 분 후에 전화를  했습니다. 했는데 그 아마 가족들에게 큰 슬픔이 있지 않겠느냐 이랬는데 첫째 그  전화할 때에 아들을 만났는데 아들 속에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 부인을 만났을  때도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이 김정환 교수가 주님의 이 지극히 큰 구원을 자기가  이제 떠날 때가 되니까 더군다 더 이 구원을 깊이 느껴서 이 구원의 기쁨과 이  구원의 그 행복됨을 감출 수 없는 그 기쁨이 충만한 그것을 살아 있는 그 모든  사람들이 보고 오히려 기뻐하고 그와 함께 그만 주님의 나라에 가기를 원할 만치  그렇게 그 기쁨 누젖 것을 제가 전화로 알고 감사를 했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라는 것이 자기가 돈만 좀 많이 있어도 돈 많은 그 태도와 돈 많은 그런  든든함과 그런 것을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 보이려고 하지 안해도 나타내  보이게 되고 자기가 평소보다 극히 높아진 지위나 권세나 가지게 됐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가 나타내 보이지 않으려고 해도 그것이 자연히 배서 나오게  됩니다. 나타나서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 구원을 자기가 가져서 누리는 사람들은 그 누림에 대해서 접하는  사람들이 다 구원을 보고 놀랐고 구원을 보고 놀라서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쳐서 여생은 이 구원을 위해서 전세를 바치고 이 구원 안으로 들어간 것이  많이 있는데 우리는 이 큰 구원을 가지고 지금 우리가 가지고 누리지를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이 구원이 없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 구원이  우리에게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가졌으면 그들이 보고 우리의 가진 구원을  보고 그들이 좋아하고 욕심을 내고 소원을 하고 할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이 구원을 자기가 실지로 가지고 살기를, 가지고 산 것이  제삼자들에게 참 그는 가를 수 없을 만치 나타나도록, 우리 세상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도 가지면 가진 것이 표가 나고 아무리 자랑 안 하려 해도 자랑하고  우쫄해지지 안할래도 우쭐해지고 머리를 들지 안하려 해도 머리가 들려지는데 이  구원의 진상을 우리가 알고 실지로 이 구원을 자기가 가졌다고 하면 가진 것은  제삼자가 암만 더듬어 봐도 보입니다. 아무리 가축 속에 싸여도 보입니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보여집니다. 우리는 쉬 구원을 우리가 가지고 누리기를, 이 구원을  실지로 누리는 사람이 되기로 자꾸 애를 써서 이 구원을 생각하고 연구하고 성경  말씀을 읽고 자꾸 이 구원을 생각해서 이 구원이 우리 생각 속에서 떠오르고  우리 지식 속에서 떠오르고 우리 감정 속에서 떠오를 싹에는 우리는 이 세상에  의식주 그런 모든 생사 그런 것이 다 이 구원을, 조그만치라도 구원 속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고 이 모든 원망, 시비' 낙망 . 비관, 불만 . 불평, 시기 하는  이런 모든 죄악은 이 구원을 우리가 생각해서 차차 가지게 될 때에 이런 것들은  간 곳이 없고 다 사라지고 이런 어두움은 하나도 우리 마음을 어둡게 하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러고 주님이 나를 구원하신 그 어려움을 내가 이 구원을 보존하면서 우리는  당하는 어려움에서 체험할 수가 있고 또 이 구원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면서 우리가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한 그 어려움 그것을  우리가 꿔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이 구원을 보존하기 위해서 이  구원을 주님 앞에 감사하면서 형제에게 전달해 주기 위해서 낮아져 본 사람,  천해져 본 사람, 억울함을 당해 본 사람, 손해 본 사람, 자기의 모든 욕심과 모든  소원을 죽여 본 사람 이런 데에서 우리는 이 구원을 기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구원 기념을 우리는 부절히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이 구원의 사랑 속에 자기가 깨달아진 사람은 깨달으면서 이 구속한 사랑만  보여지지 사랑 속에 내가 어찌 되나,내 형편이 어찌 되나, 내 명예와 권세와  사업이 어찌 되나, 내 위신이 어찌 되나, 내 뭐 금생 내세의 구원이 어찌 되나  그런 것은 다 없어지고 완전히 자기는 이 사랑 속에 녹아서 자기라는 존재는  완전히 없어지고 이 사랑에 녹아 이 사랑화되어서 이 사랑으로만, 사랑 속에  떠나지 아니 하고 이 사랑 속에서 자기는 완전히 없어지고 이 사랑으로만  충만해서 자기 없는 가운데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차차 될 것입니다. 이런 것도  우리가 노력해야만 됩니다.

 또 이 구원을 연구할 때에 구원의 사랑 속에 영원히 살고 싶지 구원의 사랑  밖에 돈 보고 살고, 권세 보고 살고, 시기하며 살고, 원망하며 살고, 도적질하며  살고, 음행하면서 살고, 사람 미워하면서 살고, 원망 불평 하면서 살고, 땅의 것을  보고 그렇게 범죄하면서 사는 그런 생활을 하기 싫을 뿐만 아니라 꿈에도 할  마음이 없는, 이 구원 속에서만 영원히 살고 싶은 이 사람으로 우리가 화해지기를  노력해서 이 세상에서부터 이 구원 속에서 살다가 죽음 없는 사람으로서 세상을  떠나 영원한 나라로 옮겨가야 할 것입니다. 그는 죽음의 순서가 올지라도  그에게는 죽음이 아무 죽음의 감각이 없을 것이고 영원히 이 사랑 속에서  안전하고 평안하게 사는 것만 그에게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의 구원을 전함에 있어서 자기의 전부를 다 기울여서 이 사랑 이  구원을 전하고 이제 가고자 하는, 사람이 그렇게 못해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밤낮 소원하는 것은 이 사랑의 구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서  한 사람이라도 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구원을 깨닫고 이 구원에서 만족하고  기뻐하고 다시 죽음이나 늙음이나 병듦이나 고통이 없는 영생에서 살도록 이  구원을 전하는 데에 자기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다 바치기를 밤낮 원하고  바치고도 남아 있으면 다 바치기를 원하는 이 사람으로 다 살고 갔으니 우리도  이 면에 대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래서, 구원의 사랑과 수고를 알기 위한 노력, 구원을 앎과 가져 누리기 위한  노력, 구원의 사랑을 기념하는 노력. 또 새로, 사랑 속에서 자기가 완전히  녹아지는, 사랑 속에서 녹아지기를 원하는, 사랑 속에서 자기를 잊어버리고 완전히  그 속에서 그만 자기가 그리스도의 사랑화돼 버리고 자기는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사랑화돼서, 마치 나무가 불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나무지마는 들어가고 난  다음에는 불에 타서 다 불이 돼 버리고 나무는 하나도 없어지는 것처럼, 이 사랑  속에 들어가서 그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자기는 다 타서 없어지고 이  사랑으로만 충만해지고 사랑으로 완전히 화해지는 이 사랑 속에 살기를 원하는  이 소망을 가지고 우리가 노력해야 되겠고, 구원 속에서 다른 데 이탈되지 않고  이 구원 속에서만 영원히 살기를 노력하는 우리들이 돼야 되겠고 이 사랑의  구원을 다른 사람들에 전하기 위해서 소유와 몸과 생명이 아낌없이 지체없이  뒤로 미루지 안하고 솔빡 다 바쳐지는 이 사람이 되기를 우리가 노력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그래서, 이 여섯 가지를 여러분들이 가서 읽고 생각하면 거게서 여러분들이  명상하는 가운데서 깨달아질 것입니다. 제가 말로 전한다 해도 이것은 억만분의  일도 안 됩니다. 느끼면 여러분들에게 성신의 감화로서 여게 대한 깊은 깨달음과  실상이 여러분들 속에 이루어져서 우리는 이 그리스도 밖에 있는 마치 노아의  방주 밖에 사망의 홍수뿐인 거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사랑의 구속 밖에는  전부 사망뿐이지 거게는 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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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823 산 믿음/ 누가복음 17장 5절-6절/ 860126주후 선지자 2015.11.03
822 산 믿음은 세상을 이긴다/ 누가복음 17장 5절-6절/ 860126주전 선지자 2015.11.03
» 산 소망/ 베드로전서 1장 3절-7절/ 881009주후 선지자 2015.11.03
820 산 소망/ 베드로전서 1장 3절-4절/ 881009주전 선지자 2015.11.03
819 산 제사/ 로마서 12장 1절-13절/ 810118주전 선지자 2015.11.03
818 산 제사- 산 제물/ 로마서 12장 1절/ 810301주후 선지자 2015.11.03
817 산기도, 예수님과 말씀 순종/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830716토새 선지자 2015.11.03
816 산믿음 죽은믿음/ 신명기 28장 1절-6절/ 851209월새 선지자 2015.11.03
815 산제사를 드려야하는 이유와 방법/ 로마서 12장 1절/ 800418금새 선지자 2015.11.03
814 살리는 반사직/ 마태복음 6장 31절-33절/ 840408주새 선지자 2015.11.03
813 살리는 방편/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820509주전 선지자 2015.11.03
812 살리는 복음/ 베드로전서 1장 24절-25절/ 820704주새 선지자 2015.11.03
811 삶의 가치/ 누가복음 12장13절-21절/ 800108교역자회 선지자 2015.11.03
810 삼 계급의 우상/ 요한계시록 14장 9절-12절/ 870406월새 선지자 2015.11.03
809 삼 계급의 우상/ 요한계시록 14장 9절-12절/ 870405주전 선지자 2015.11.03
808 삼 계급의 우상/ 요한계시록 14장 9절-12절/ 870401수야 선지자 2015.11.03
807 삼 계급의 우상/ 요한계시록 14장 9절-12절/ 870404토새 선지자 2015.11.03
806 삼 계급의 우상/ 요한계시록 14장 9절-12절/ 870405주새 선지자 2015.11.03
805 삼 계급의 우상/ 요한계시록 14장 9절-12절/ 870405주후 선지자 2015.11.03
804 삼 단계 믿음/ 히브리서 11장 7절/ 810225수새 선지자 2015.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