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제사- 산 제물

 

1981. 3. 1. 주일오후

 

본문:로마서 12장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를 해하는 말씀이  아니요 또 우리에게 자비 없이 무자비하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는 이것을 잘못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자비한 요구를 하시는 것같이 그렇게 여기기 쉽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비한  자비를 가지고 권하는 말씀이다 이렇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몸을 제물로 드리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를 극히 사랑하시고 우리를 유익되고  복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우리 몸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치는 이것이 복있는 생활이요,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생활이요, 성공하고  존영하게 되는 생활이지 자기 몸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치지 아니하는 다른  생활은 어떤 생활이든지 다 자기를 속이는 생활이요, 자기를 해하는 생활이요,  자기를 말할 수 없는 천하게 만드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잘못된 지식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무자비한  요구를 우리에게 하신다 이렇게 보여질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들을 권하노니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그렇게 하나님의 자비라는 말씀을 거게 붙여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첫째는 우리 몸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쳐야 복이 된다 하는 요것을  확정을 지워야 합니다. 그러면 제물로 바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제물로  바치는 것인가? 첫째는 자기 몸을 자기가 자유대로 하던 이것이 완전히 없어져야  됩니다.

제물은 제 맘대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이리 가고 저리 가고, 이것 먹고 저것  먹고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던 그 몸을 완전히 잡아서 이제는 그 잡혀 있는  짐승이 제 마음대로, 제 욕심대로, 제 소원대로는 하나도 할 수 없도록 제  자유대로 하는 이것이 완전히 잡아서 죽여 놓은 그것이 제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는 데는 내 몸을 나를 내 맘대로 하는  이것 죽이는 것이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나를 내  맘대로 해서 내 맘대로, 가는 것도 오는 것도,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취하는 것도 버리는 것도 순전히 제 몸을 제 맘대로 하는 이것이 자유요 좋은 것  같지마는 그것이 멸망입니다.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은 첫째로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이것을 완전히  꺾어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이것을 첫째 죽여야, 양을  잡아 제사로 드릴 때에 양이 첫째는 잡아서 양이 죽어야 제물이 됩니다. 산 양을  누가 하나님의 제단 위에 제물로 안 올려놓습니다. 첫째는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자기에게 대해서 자기가 자유하는 것,  자기 욕심대로, 자기 자유대로, 자기 소원대로, 자기 성질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오기대로, 자기 기분대로 자기 몸을 사용하는 이것을 죽이는 것이 첫째로  제물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렇게 해 가지고 누구에게 바칠 것인가? 나라에 바칠 것인가, 사회에  바칠 것인가, 문화에 바칠 것인가, 인류에 바칠 것인가, 가정에 바칠 것인가,  어디다가 바칠 것인가? 그러면 자기를 자기가 자기 마음대로 쓰던 이것 완전히 죽여 가지고, 자기가  자기를 쓰던 그것을 완전히 죽여 가지고 죽여 놓은 자기는 어데다가 바칠  것인가? 이것을 아무것에게도 바치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이 이것이  제물입니다. 하나님에게 바칩니다. 자기 몸을 이제는 하나님에게 바칩니다.

셋째로는 이제는 아무도 사용 못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만 사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위해서 사용되는 것이 제물입니다. 이렇게 이 세 가지가 구비해지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 산 제물이 됐습니다. 자기가 비로소 살아 있지마는 제물이  됐습니다.

이 세 가지가 이루어진 제물이 됐다면 이 제물은 어떤 피조물도 손을 못 댑니다.

이 제물에 손 댔다가는 당장 죽든지 병신이 되든지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이 제물에 벌로 손 대고 행동했다가 죽은 자도 있고 병신된 자도  있고 그런 것으로 우리에게 보였습니다. 아무도 해하지 못합니다.

다니엘 같은 사람도, 요셉 같은 사람도, 엘리야 같은 사람도, 모든 선지  사도들도 이 제물이 되었기 때문에 이 제물은 아무도 손 못 댑니다.

전국이 이 다니엘을 해하려고 사자구덩이 넣으니까 저희 마음에는 이제는  끝장났다 싶었지마는 사자는 이 다니엘의 몸에 손을 못 댑니다. 해를 못 합니다.

요셉이도 요 세 가지를 요동치 안했고 하나님 앞에 산 제물 되는 요것을 떠나지  안하고 산 제물로 있었기 때문에 그는 아무도 해하지 못하고 접촉하면 결국은  그에게 이용당하고 맙니다.

이 산 제물이 됐을 때에 아무 피조물도 해하지 못하고 이 제물을 해하려 하면  그것이 해를 받아 절단이 납니다. 이 제물에게 이용만 되어졌고 이 제물을  복되게만 하지 이 제물은 아무도 해하지는 못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한 피난처에 은신처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막바로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떠났을 때에 그는 벌써 사망의 것이요, 악령의 것이요,  저주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권위 있는 사람이냐?  권위 있는 사람은 이 제물되어 있는 사람이 권위 있는 사람입니다. 제물되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해하지 못합니다. 이 제물되어 있는 자를 위하면 저도 복이  되고 해하면 제가 화를 받습니다.

그러기에 인생이 금생이나 내생이나 영원무궁토록 제일 권위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무서운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아무도 해할 수 없는 완전한 은신처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 다음으로 제일 귀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이 제물입니다. 산 제물로 되어 있는 사람 이 사람이 제일 귀한  것입니다. 존귀하고 능력 있고 복있고 가치 있습니다.

이 제물은 세 가지를 겸한 것, 첫째는 자기가 자기에게 대해서 자유했던, 다른  돈이 나를 자유했던, 권세가 나를 자유했던, 뭐 세상에 이런 것 저런 것이 나를  제 맘대로 사용하고 제 맘대로 하던 그런 것을 완전히 죽여서 내라는 이것은  아무도 어떤 피조물도 제 맘대로 할 수 없는 것 만드는 것이 이것이 제물의 첫  순서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아무도 사용할 수 없는 것, 자기도 어떤 권세 있는 인간도  사용할 수 없는 이것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물의 둘째 순서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셋째로는 하나님만을 위해서 하나님 뜻대로 쓰시는  것뿐입니다. 이 제물은 손 대면 손이 당장 말라버립니다. 이 제물은 침노를 하면  당장 죽습니다. 이러기에 아무도 해할 수 없는 자입니다.

그러면 잡아서 하나님께 바쳐놓은 자기 몸을 자기를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해서  뜻대로 쓰는 요 셋째 것, 하나님만을 위해서 쓰는 이것은 어떤 것이 하나님만을  위해서 쓰는 것인가? 그것은 여러가지 생활이 있지마는 그것은 다 이 안에  내포된 것입니다.

우리는 간단하게,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쳐놓은 것이 하나님만을 위해서 그것이  쓰여지는 것 하나님의 뜻대로만 쓰여지는 것 그것이 어떤 생활인가 하는 것을 또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죄와 상관없이 사는 것이 하나님만을 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쓰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의롭게 사는 것이 하나님만을 위해  사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쓰여지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것이 하나님만을 위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쓰여지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산 제물 되는 것이 쓰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첫째는 우리가 이 세 가지 요소를 구비한 산 제물이 되어야 하겠고, 산  제물이 되고 난 다음에는 이 세 가지로 쓰여지는 것이 그것이 제물로서 제물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이 자유를 죽이기 전에는 하나님에게 바쳐지지를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치지를 못합니다. 또 하나님에게 바친 것이 아니면 제물 노릇을 못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죄와 칭의와 하나님과 화친된 이 새생명을 받은, 예수님에게 구속을  받은 구속받은 자의 행위를 하는 데에는 자유를 완전히 죽여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완전히 바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 가지 대속을 입혀  주신 이것만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은 여섯 가지로 없어져야 합니다.

소유와 몸과 생명은 여섯 가지로 다 없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소유와 몸과  생명이 있어지는 것이 성공이 아니고 남아 있는 성공 아니고 다 쓰여져 없어지는  것이 우리의 성공인 것입니다.

이것이 죽을 것이 생명화됐고, 약한 것이 강하게 됐고, 없어질 것이 영원히  있어지게 됐고, 죽은 것이 영원히 살아난 것이 된 것입니다. 이는 영원합니다.

이는 만물 위 그리스도 우편에 앉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사망 안에 없어진 것입니다. 불완전한  세계에 매여 있는 것이 완전한 세계로 옮겨갔기 때문에 불완전한 세계에 없어진  것입니다.

여섯 가지로 쓰여져서 없어져야 된다는 것은 하나는 우리를 범죄케 하려고 애를  쓸 때에 악령과 이 세상이 사죄받은 우리들을 범죄하게 하려고 할 때에 그 세력  앞에서 범죄하지 아니하려고 하면 위협을 줍니다. ‘네 소유를 절단낸다. 소유가  절단나기 싫거든 범죄해라.’ ‘소유가 절단나도 범죄하지 않겠다.' 하면 소유를  절단냅니다. 소유를 절단을 당해도 ‘소유가 절단났으면 절단났지  나는 죄는 지을 수 없다.’ 이러므로 소유가 절단이 납니다.

그러다가 안 되면 ‘네가 범죄하지 아니하면 네 몸을 절단을 낼 것이다.’  합니다. ‘몸이 절단났으면 절단났지 범죄하지는 않겠다.’ 하면 범죄하지  안하려고 함으로 세상이 우리의 몸을 절단을 냅니다.

이래도 안 되면 ‘네가 범죄하지 안하면 네 생명을 이제는 절단을 내겠다.’  `생명 절단을 당했으면 당했지 죄는 범할 수가 없다.’ 이럼으로 소유와 몸과  생명이 죄를 짓지 아니하려고 함으로 절단나는 것이 우리의 소유와 몸과  생명입니다.

그다음에 하나는, 우리를 범죄케 하려고 할 때에 범죄 안 하니까 이 세 가지를  절단냈는데 또 하나는 이런 현실 저런 현실에서 죄를 멸하는 일, 내 안에 있는  죄를 멸하고, 내 밖에 있는 죄를 멸하고, 이웃에게 있는 것, 동족에게 있는 것,  원수에게 있는 것, 모든 미개국에 있는 죄 가운데 있는 그 형제를 그 죄를  멸하고 죄 가운데 있는 그 형제를 죄를 멸하고 구출하기 위해서, 우리를 범죄케  하려 할 때에 범죄하지 안하려고 함으로 멸해졌지마는 이제는 우리가 죄를  멸하기 위해서 내 소유를 투자하고, 죄를 멸하기 위해서 내 몸을 투자하고, 죄를  멸하기 위해서 내 생명을 투자하는 이것이 우리의 둘째 생애입니다.

그다음에 셋째는 악령과 세상이 모든 이웃이 우리로 하여금 불의를 행하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불의는 어떤 불의 인고 하니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  불의입니다. 의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완성을 한 것을 가리켜서 의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도록 하려고 세상이 내게 대해서 애를 씁니다. 다니엘을 기도  못 하게 한 그것은 다니엘로 하여금 불의를 행하게 하려고 애를 썼던 것입니다.

그럴 때에 ‘네가 하나님의 뜻을 어기지 안하면, 불의를 하지 안하면 네 소유를  손해케 하겠다.’ 물론 소유도 손해 안 보고 하나님의 뜻도 어기지 안하면  좋겠는데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 권세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어기지 안하면 소유를 손해보이겠다’ 이럴 때에 우리는 소유를 내가 손해를 안  보느냐 불의를 행해서 의를 손해 보느냐? 어느 것을 손해보고 어느 것을 손해 안  보느냐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게 하는 그 불의를 하면 의에  손해이기 때문에 의에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자기 소유를 손해보고,  마지막에는  몸을 가지고 세상이 날뛸 때에 몸에 손해를 봤으면 봤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일은 하지 안하는 그것은 몸이 손해가도 의는 손해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네가 하나님의 뜻을 어기지 안하면 죽인다.’ 모두 신사참배라든지  인민군 때라든지 그런 것은 다 생명에 관한 문제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지 안하면 죽이겠다.’ ‘생명은 네가 네 맘대로 하지마는 이거는 네가 암만  할래야 못 하니까 네가 생명을 네가 어떻게 죽이고 해할지라도 나는 하나님  말씀을 어기지 않겠다.’ 이것이 불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소유와 몸과 생명을  해를 보는 것입니다. 그게 셋째입니다.

넷째는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의를 행하기 위해서, 누가 내게 대해서  강제하는 사람이 없지마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서 자기 소유를 투자를  하고, 자기 몸을 투자를 하고, 자기 생명을 다해서,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해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의를 건설하려고 애를 써서 이 의를 건설하는 데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을 밑천으로 비용으로 들이는 것이 이것이 넷째로 제물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악령과 세상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 대신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영접하고 모시고 살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 모시고 사는 생활을 하나님  모시는 일 그것 버리고 저를 모시라고, 저를 위주로 살게 하려고 애를 쓸 때에  그때에 내가 하나님 버리라는 그것을, 하나님 배반하라는 것을, 하나님을 멀리  하라는 것을, 하나님을 제이로 제삼으로 돌리라고 하는 것을 안한다 할 때에  세상은 우리의 소유를 거머쥐고 힐난합니다. 힐난해서 우리 소유가 어느 지경의  손해가 갈지라도 ‘하나님 배반치 않겠다.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겠다.’ 하면 이  도수가 차차 올라가서 그다음에는 우리의 몸을 가지고 시험합니다. 네가 하나님  배반 안 하면 네 몸뚱이를 절단 낸다 해 가지고서 감옥에도 넣고 때리기도 하고  고문과 고형도 하고 합니다.

‘고문과 고형을 해서 내 몸이 어데까지 절단 날지라도 나는 이제는 하나님을  배반할 수는 없다.’ 이러다 보니까 그 몸이 절단이 납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배반치 안하니까 마지막에는 생명을 가지고 세상이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생명 끝나면 끝나버리고 더 할 것은 저거가 없습니다. 더 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생명을 끊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한 기한 전에는  생명이 안 끊어지는 것입니다.

생명을 빼앗으려고 위협을 하고 또 생명이 끊어질 만한 그런 고문과 고형을 해도  하나님을 배반치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배반 안 하려고 함으로 소유도 몸도  생명도 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여섯째는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려고, 자기의 소유를 다 들여서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려고, 자기 몸을 다 바쳐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려고,  자기의 생명을 바쳐 하나님과 동거 동행을 하려고 하는 것이 여섯째로 제물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사람 보기에는 이러면 당장 없어질 것 같지마는 없어질 정한 때가  되면 없어지지마는 없어질 때가 되기 전에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생명도  일각이라도 줄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없어졌으나 하나님께서 다시 더 제물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여러 배도 주시고 혹 백 배도 주십니다.

다니엘이 이렇게 생명까지 이 세 가지, 세 가지, 다시 말하면 한 가지가 두  가지씩, 소극면에와 적극면. 다니엘이 이 세 가지를 위해서 다 투자한 사람이요,  이 세 가지를 둘로 나누면 곱을 하면 여섯 가지인데 여섯 가지를 인해서  다니엘은 모든 것을 다 바쳐 없어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있는 것 다니엘이 다 바쳐 없어졌고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새로 그에게 다시 소유도 몸도 생명도 지위도 모든 거게 따른 것을 줬는데  다니엘이 이전에 가졌던 것과 제물되어 끝장나고 난 뒤에 새로 가졌던 것은  그전에 백 배도 더 됩니다. 그는 권위 있었습니다.

“나와 내 도를 위하여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처자나 그  전토 어떤 것이라도 버린 자는” 그말은 바쳐 썼다 말입니다. “세상에서 여러  배 혹은 백 배를 얻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자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얻을 때에  다 핍박을 겸하여 받는다” 그 말씀을 거게 딱 붙여 놨습니다.

이렇게 주를 위해서 산 제물로 살면 다 없어졌는데 새로 있어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없어질 때는 사람들이 다 제 삼자들도 보면은 아프게 생각하고 참  불행스럽게 생각하는 요 불행을 통하여 행복이 옵니다. 요 죽음을 통하여서  생명이 옵니다. 완전히 손해를 통하여서 유익이 오는 것이 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십자가의 도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할  자들이 볼 때에는 미련한 것이나 구원 얻은 자들이 볼 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렇게 말씀을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가는 길이 어떤 길이며 우리의 생애가 어떤 생애인가? 우리는  산 제물로 바치는 것이 우리의 모든 준비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능력 있게, 가치  있게, 권위 있게, 아무도 해할 수 없는 모든 피조물 위에 있는 자로 자신을  만드는 것입니다. 산 제물로 만드는 것.

그러면 그다음에 둘째로 우리 할 일은 뭣인가? 산 제물이 되었으니 제물 노릇  하는 것입니다. 제물 노릇 하는 것은 이제 말한 대로 여섯 가지, 죄에 대해서 두  가지, 의에 대해서 두 가지, 하나님과 동거 동행에 대해서 두 가지, 우리의 것을  깨뜨리려고 할 때에 한 깨지려고 함으로 다른 것을 그들이 깨뜨리는 것, 다른  것이 깨져도 이 세 가지는 깨어지지 안하려는 것, 또 하나는 우리의 가진 것을  다 들여서 이 세 가지를 보강하려고 이 세 가지를 충만케 하려고 만드는 데  투자하는 것 이것이 산 제물 생활입니다.

이럴 때에 추호도 원수는 해하지 못합니다. 해하는 것 같으나 그 해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이 썩을 것을 썩지 않게 만드는 역사요, 그것이 약한 것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요, 저주받은 것을 하나님의 축복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요, 사망과  저주 아래 있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 밖에  쫓겨난 것을 하나님 안으로 피난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산제물로 이 세 가지를 위해서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바친 자는  하나님께서 예정대로 끝날 시간 됐으면 늙어 병들어 끝날 것이 하나님께 바쳐  끝났으니까 이는 참 가치 있게 쓰여졌고 아직까지 끝날 시간이 안 됐으면  하나님이 작은 것 산 제물로 바치면 그다음에는 큰 것 을 주어서 큰 것으로 산 제물로 바치게 하고, 큰 것을 산 제물로 바쳤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더 큰 것을 주어 가지고 더 큰 제물로 바치게 해서 “의의 열매를  가득하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신 대로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믿는 우리 하나님은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요, 능치 못할 것이 없으신 하나님이시요, 또 알지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속지 않습니다. 우리를 사랑함으로 모든 부요와 영광과 생명까지를  희생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이분의 사랑을 든든히 믿어야  되고, 이분의 능력을 든든히 믿어야 되고, 이분이 약속한 약속을 든든히 믿고 산  제물로 바쳐 산 제물 생활을 안심하고 우리는 하여야 합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산 제물로 바쳐 산 제물 생활 할 때에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나에게는 한없는 복이 되고, 이웃 사람에게는 구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 생활이기 때문에 ‘이러면 가난해질까? 이러면 약해질까?  이러면 죽을까?’ 그런 것은 우리가 할 염려는 아닙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하나님 앞에 산 제물로 바치는 것이 우리 할 일이오.

바쳤느냐? 바친 이것을 제물 생활 하는 것이, 제물 생활은 죄에 대해서 두 가지,  의에 대해서 두 가지, 하나님과 동거 동행에 대해서 두 가지.

이것을 못 하게 하니까 내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손해봐도 이 세 가지를  손해보지 않는 것이 우리 생활이오. 또 우리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들여서 이  세 가지를 완전케, 이 세 가지를 든든케, 이 세 가지를 충만케 우리는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생활입니다.

이것이 우리 생활이기 때문에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하나님 앞에  바쳐서, 내 맘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이  당신만을 위해서 쓰도록, 당신만을 위해서 살도록 하신 그 생활, 당신만을 위해  사는 것은 뭣인가?  죄를 짓지 안하려는 그것이요, 또 불의를 하지 안하고 의롭게 살려고 하는  그것이요, 하나님과 동거 동행 생활을 하려 하는 그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자기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아끼지 않고 다 들여서 이렇게 사는  자가 예수님 안에 있는 이 영광된 구원을 차지해서 자체도 한없는 권위 있는 자,  영광스러운 자, 거룩한 자, 깨끗한 자, 의로운 생애, 복된 결실, 또 하나님이  소유도 더 줘서 풍성하게, 몸도 더 줘서 장수하게, 생명도 더 줘서 튼튼하게  이렇게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자들이 가진 것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진 것은 하나님 앞에 산  제물로 바쳐서 제물 생활 할 것이요, 우리의 가진 건 제물 생활 할 것이요 이럴  때에 하나님 앞에 많이 받을 자는 누구냐? 있는 것을 이렇게 제물로 바쳐 제물  생활 할 때에 하나님은 그자에게 더 풍성하게 줍니다.

하나님 앞에 물질이나 온갖 다른 지위나 권세나 몸이나 생명이나 하나님 앞에  풍성하게 받을 자가 누구뇨? 이미 있는 것 하나님 앞에 바쳐 제물 생활 하는 자,  이것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있는 것 제물 생활하고 또 하나님에게 받아서 또 제물 생활 하고, 둘 바쳐 제물  생활 하니까 하나님께 너이 주시니 너이 받아 가지고 제물 생활 하고, 넷을 바쳐  제물 생활 하니까 하나님께서 여덟 주시니까 여덟 받아 제물 생활 하고,  그다음에는 백을 주시니까 백 받아 제물 생활 하고, 천을 받아 제물 생활 하고,  만을 받아 제물 생활 하고, 이것이 기독자가 세상살이에서 자기를 키우는  생활이요, 자기를 부강하게 하는 생활이요, 자기를 영광스럽게 하는 생활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주실 때에 우리가 무가치 한  일을 할 때에 이것을 많이 주시면 주시는 것은 좋지마는 결과가 좋지를  안하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많이 주시는 것은 우리가 요 세 가지  가치 있게 사는 생활 할 때에 가치 있는 생활 하게 하려고 많이 주시니까 주시는  것도 고맙지마는 주신 것을 쓰는 것도 요렇게 쓸 때에 당신이 좋아하시는 이것은  더 고맙습니다.

어떻게 쓰는데? 내가 죄를 지으라고 할 때에 죄 안 지으려고 죄를 멸하려고,  죄를 안 지으려고 하는 데에 쓰여지도록 자꾸 자본을 주고 죄를 멸하는 데에  쓰라고 자본을 주고, 불의를 안 행하려고 하는 데에 비용 내는 자본을 주고 의를  건설하려고 하는 데에 자본을 주고, 하나님을 배반 안 하려고 하는 데에  손해가는 것을 다 자본을 주고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려고 하는 데에 드는 자본을  주시니까 이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풍성하게 더 더 주시는 것도 고맙고 주시는  이것을 잘못 쓸 때는 당신이 돌아서고 바로 쓸 때에 당신이 우리를 칭찬하고  얼마든지 응원하니까 우리를 바로 쓰게 해 주시니 감사하고, 바로 쓸 때에  얼마든지 주시니 감사하고,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요걸 깨닫고 요걸 굳게  잡고 요대로 사는 자는 복이 있고 요것을 반대하고 어쩌든지 있는 것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이 다 부끄러워하는 악용하고자 하는 우리 욕심대로 쓰구로 내비두면  이것이 참 원수일 터인데 이렇게 살지 못하게 하고, 이렇게 살 때는 우리에게 더  주시지를 안하고 있는 것도 빼앗으면 하고 우리가 이렇게 바로 살 때에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주시니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고로 여게 정반대로 자기 있는 것을 잘못 쓰려고 하는 그자도 불행스러운  자, 바로 쓰지도 아니하고 잘못 쓰지 안할지라도 가만히 가둬 두고 죽을 때에 손  쭉쭉 펴고 가는 그자도 불쌍한 자, 있는 것만 가지고 더 받지 못하는 자도  불쌍한 자, 있는 것 죄악으로 잘못 쓰는 자도 불쌍한 자, 이것은 다 우리 생활  아닙니다.“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들을 권하노니 너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그말은  제물 노릇을 해라, 제물 생활을 해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확정을 지워야 합니다. 자기와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 자기는  거게 대해서 자유하려 하는 것을 죽이십시오. 제 소유를 제 맘대로 하려는 것,  제 몸을 제 맘대로 하려는 것, 제 생명을 제 욕심대로 하려는 것, 더 살고  싶다고 생명에 대해서 제 욕심대로 하려는 것, 생의 애착욕 그것도 다 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버리고 소유와 몸과 생명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 생활 할 것, 기뻐하시는 제물 생활이 뭣인데? 세 가지. 죄를  지으려 할 때에 죄를 안 짓기 위해서 내 소유와 몸과 생명, 안 짓기 위해서  이용하는 것, 죄지으라고 할 때에 소유를 깨뜨리면 그다음에 죄지으라 소리 안  합니다. 우리 생명을 뺏아가 버리면 우리 죄지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죄짓지 않기 위해서, 불의를 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 배반치 않기 위해서 우리  소유 다 원수에게 손해보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우리를 해하려고 할 때에  다른 것을 내놔서 다른 것이 깨지고 우리는 상하지 않습니다. 마치 원수가  우리를 때리려고 할 때에 어떤 보배로운 보배를 내대니까 그 보배가 깨지고  때리지 않는 것, 또 우리의 보배를 던지니까 보배 그놈 주울 판에 우리는 피해서  도망가는 것 그것처럼, 소유와 몸과 생명은 저거에게 내줄지라도 사죄는 내주지  안하고, 칭의는 내주지 안하고, 하나님과 화친은 내주지 안하고, 이 세 가지를  달라고 할 때에, 원수가 달라고  할 때에 이 세 가지를 내주지 않기 위해서 소유를 내대고, 몸을 내대고, 생명을  내대고 할지라도 이것을 내주지 않는 것이 우리 남은 여생이요, 시간 있으면 이 죄를 멸하기 위해서 의를 건설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동거 동행을  위해서 기회 있는 대로 내 소유와 몸과 생명을 애끼지 않고 들여서 운동합니다.

반사들이 지금 오며 가면서 근근히 품 들어 가지고서 먹기는 근근히 먹고 살고  이는 토큰에 이 주일학교 반사들이 뭐, 요새는 품도 없어서 근근히 벌어  가지고서 참 근근 연명해 살고 토큰 값이 한 달에 만 원 드니 뭐 몇 만 원 드니  이렇게 하는 것 그것 뭣입니까?  자기 소유 죄 멸하는 운동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의롭게 만들기 위해서  투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로 하나님과 화친을 일으키기 위해서 투자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냉수 한 그릇의 수고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썩을 것으로 썩지 아니할 걸 했기 때문에 피곤치도 안하고  기쁘고 즐겁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물 생활 합시다. 산 제물로 드려 제물 생활 할 때에 우리  교회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의 사람들이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죄악을 깨뜨리는 영적 권능의 사람이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부자가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또 세상 소유와 모든 물질  온갖 권세 이런 부자가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렇게 살 때에 우리 서부교회는 영적 온갖 병신도 다 치료받을 것이요 육적  온갖 병신도 다 치료받을 것입니다. 과거보다 금년에는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이  더 클 것이고 더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런고로 요 산 제물 생활 요것을 함으로 우리는 부자도 되고, 요것을 함으로  출세도 하고. 요것을 함으로 사업도 크게 되고, 요것을 함으로 인격자도 되고,  권세자도 되고, 요것을 함으로 성신의 충만도 받고, 요것을 함으로 부흥사도  되고, 요것을 함으로 세상을 이기는 절제가도 되고, 신앙의 용사도 되고, 모든  세상의 죄악을 다 이기는 승리자도 되고 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믿는 대로 됩니다. 하나님에게  인정으로 순종하고 행동으로 순종하는, 하나님을 대우하는 대로 하나님도 우리를  대우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소망하는 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갚으십니다.

의심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은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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