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방편


선지자선교회 1982년 5월 9일 주전

 

본문 : 계 3:1-6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오늘은 제직회가 있어서 설교를 좀 짧게 하겠습니다. 왜 이 말하는고 하니  전과같이 예배시간이 으레 길 터이니까 어떤 사람은 좀 마음을 누굴려 가지고  그렇게 예배를 드리는 그런 안된 습성이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정신차리자  예배 끝나기 쉽다는 것입니다.

 사데교회에 주님이 나타나실 때에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사데교회에  말한다 그렇게 했습니다. 일곱 영은 성령님을 가리키고 일곱 별은 하나님이  장중에 잡으시고 쓰시는 하나님의 일군들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자로다」  구역에는 보면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그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뭐 이 번역이나 저 번역이나 다 잘된 줄 압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다」 하는 이 말은 예수 믿어 구원  얻은 자라, 저 사람은 예수를 믿어 구원 얻은 사람이라 다른 사람들도 말하고  실상은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산 것은 구원받은 것이 산 것이고 죽은 것은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 죽은 것입니다.

 「살았다는 이름 있다」 그 말은 구원받은 명칭은 가졌다 그말입니다. 구원받은  명칭이라니.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고, 우리가  행하지 못한 것을 대신 행했고, 우리가 원수된 것을 대신 화친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우리 구원을 예수님께서 대신해서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죄에 대해,  의에 대해, 하나님께 대해서 완전한 구원을 주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법적으로 완전한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완전한 구원을 받은 자의 명칭은 가지고 있으니까 완전한 구원을 받은 자의  이름을 명칭은 가져서 완전한 구원을 받은 자인데, 「실상은 죽은 자라」 이  말은 명칭을 가지고 이 명칭대로 하려고만 하면 했을 터인데, 이 명칭대로  하려면 할 수 있는데, 왜. 예수님이 대속하지 않은 자는 생명을 떼 놓고 날뛴다  할지라도 마귀를 일보도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죄도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또  자기라는 이 원죄 자기도 꺾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과 화친을 이룰 수는 절대  없는 것입니다.

 이러나 예수님의 대속을 받은 자는 법적으로, 명칭으로 산 자 되어 있고,  법적으로 산 자 되었는데 이 산 자로 현실만 통과해 버리면 이제 영원히 산 자가  되는 것인데, 산 자의 명칭도 가졌고 법적으로도 가졌지마는 현실을 턱 당했을  때에는 산 자가 모든 산 것을 망한다고 벗어버립니다. 사죄도 벗어버리고 칭의도  벗어버리고 하나님과 화친도 벗어버리고 내나 원죄 그대로 제가 저를 주장하고  제 뜻대로 제 욕심대로 제 맘대로 살았기 때문에 죽었다 그말입니다.

 이제까지 살아 나온 그 모든 삶은 법적으로 산 자요 산 자의 명칭을 가졌지마는  현실을 만났을 때에 이 산 자로 살 수 있고 또 법적으로도 산 자가 되었기  때문에 아무도 정죄할 자가 없는데, 제가 들어서 이 현실에서 산 자의 명칭도 다  벗어버리고 또 법적으로 산 것도 벗어버리고 죽은 자로 살고 보니까 실상은  죽었다.

 그러면 5년을 살았든지 10년 살았든지 신앙생활한 그 신앙생활은 너는 그  현실을 만나기 전에는 산 자요, 법적으로 산 자요, 산 자하는 그런 구원 얻은  자의 명칭도 가졌고, 구원을 얻어 가지고 있었는데 내 현실에서 구원 얻은 자로  통과만 되면 그것은 영원히 살 것인데 그 현실마다 구원 얻은 자로 통과하지  못하고, 내 현실은 구원 얻은 자로 통과돼 가지고 구원된 자가 안되고 구원 얻은  것을 다 팽개쳐 버렸습니다.

 그 현실에서 구원 얻은 것을, 법적으로 된 구원, 명칭으로 된 이 구원을  현실에서 이것을 영원 불변의 완전으로, 참 이 얻은 구원을 튼튼케 해서 완전히  이 구원을 완성시키는 현실로 주님이 주시는데 완성시킬 이 현실에서 전부 다  죽여 버렸다 그말이오.

 「실상은 죽은 자라」 하나님께서 현실을 주신 것은 주님이 법적으로 대신  살리셨고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이런 죄 없는, 의로운, 하나님과 화친자로 산  자로 공심판을 통과해 가지고 산 자인데, 이 산 자가 현실을 산 자로 통과하면  그것으로써 완전히 결정돼 버리는데, 이 현실에서 자기 산 자라는 이름이  완성되고 법적으로 된 일이 이제 실상으로 완성되는 이 현실로 주셨는데 이  현실에 법적인, 명예적인 이런 구원을 완성하는 현실로 하나님이 주셨는데 너는  이 현실을 죽이는 현실로 했기 때문에 전부 너는 현실에서 다 죽이고 말았다  그말입니다.

 어떻게. 그 앞에 보니까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이랬습니다. 그러면 이  구원은 법적으로 된 구원, 명예적으로 된 이 구원이 행위로 완전히 산 자도 되고  행위로 이 산 것을 벗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제가 그 현실에 주님의 이름, 주님의 대속하신 그 법적 대속도 안한다고 주님이  대속했지마는, 나는 현실에 내 맘대로 삽니다. 내 욕심대로 삽니다. 내 뜻대로  삽니다. 하니까, 예수님이 대속한 것을 벗어 버리고 내가 내 마음대로 살지  예수님이 무슨 상관 있느냐 하고 그래 살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이미 얻은 바의  구원을 완전히 완결을 시키는, 이미 얻은, 대속으로 얻은 구원을 이 현실에서  완료 완성시키는 현실인데, 너는 현실에서 이미 얻은 구원을 완전히 팽개쳐서  던져 버렸기 때문에 네가 살아 온 현실은 몇 해가 되든지 며칠이 되든지 몇십  년이 되든지 너는 그 현실에서 법적으로 얻은 구원을 영생으로 완성시키는 그  행위를 하지 않고 완전히 죽이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너에게는 산 것이 없다,  이제까지 예수 믿었지마는 너에게는 산 것이 없다, 다 죽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 그  말은 행위로 이미 얻은 구원이 완성도 되고 행위로 이미 얻은 구원을 집어 던져  버려서 죽은 자 되는, 이 죽음도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구원을 가리켜서 행위구원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따라 합시다.

 행위 구원  행위 구원  행위 구원  이것이 행위구원입니다. 이 행위로 이미 얻어 가지고 있는 구원을 완성을  시키는 이것도 행위로 완성을 시키고 이미 얻은 바의 구원을 제가 말다고 집어  던져서, 완전히 배반해 버려서, 얻은 구원을 완전히 집어 던져서 죽은 자  되어지는 것도 행위로 된다는 것을 여기 말씀합니다.

 2절에, 「너는 일깨워 다시 돌아서라」 자는 자가 깨니까 자는 자의 반대가 깬  자 아닙니까. 「너는 일깨워」 이제까지 하던 그 방식으로 구원 얻으려고 하던  그 구원 방식을 다 버리고 돌아서라.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는 어떤 데 쓰이는고 하니 기본구원에 쓰입니다.

대속의 공로를 받은 사람들은 지옥 안 갑니다. 하늘나라 갑니다. 영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자기가 가서 활동할 소유와 권위와 영광에  대해서는 꼭 행위를 통해서 되어지지 행위 통하지 않고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공로는 그 뒤에는 행위에는 소용이 없는가. 왜, 소용이  있습니다. 인간이 제가 하려고 해도 인간 단독으로는 아무도 할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자는 대속의 공로가 그를 도와서 저만  하고자 하면 할 수 있습니다.

 이러기에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이제까지 네가 사는 가운데에 그 현실에서 법적으로 명예적으로  얻은 구원을 실상으로 만드는 것이 현실인데, 네 현실마다 이 구원을 완성하는  현실로 쓰지 않고 이 구원을 집어던진 배반하는 현실로 썼기 때문에 너에게는  수십 년 예수 믿었지마는 산 부분이 하나도 없다, 산 것이 하나도 없다.

 또 어떤 자는 10분의 1은 살렸고 10분의 9는 죽였다. 너는 100분의 99는  살렸지마는 100분지 1은 죽였다. 이 지나간 현실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얻어진 구원을 완전히 제것을 삼느냐 이 구원을 완전히 던져 버리느냐 하는 것이  현실 행위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이미 죽은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너는 일깨워 남은 바」 남은 바,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이미  죽여 놓은, 죽여 놓은 것은 이는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아직까지 죽지  아니하고, 네가 종전 행동대로 그와 같이 하면 남은 것, 아직까지 죽지 아니하고  지금 남아 있는 그것도 죽는다.

 이러기 때문에 죽지 않고 남은 것이 많이 남았든지 적게 남았든지 남아 있는  그것을 죽지 않도록 네가 해라, 죽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행위로  해야 된다, 이 건설구원, 행위구원은 행위로 죽이고 행위로 살립니다. 행위로  죽이고 행위로 살린다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완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이제까지는 하나님  앞에서 과거 현실 현실에서 너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이렇게 했지마는 네 행위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온전한 행위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면 온전한 행위는 어떤 것인가. 하나님의 법대로 된 행위 위에 영감대로 된  행위, 법인, 하나님의 법인 이 말씀이 정죄할 수가 없고 이 말씀이 인정해야  되고, 암만 말씀에 걸릴 것이 없어도 소용없습니다. 성령이 인정해야 됩니다.

이러면 이제 행위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하나도 없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에서 행위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그 행위가 어느 정도 되어야  되느냐. 하나님 앞에 온전한 행위 된 이것만 구원이 되지 온전한 행위 되지 않은  이것은 구원이 안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행위 가운데에 10분지 9는 범해도 10분지 1만 맞았으면 다 됐다 이렇게  흔하게 봅니다. 여기에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온전한 이것으로 얻어져 있는 구원이 완전 영생으로 살아나는  것인데 내게는 행위를 했다고 하는 것도 이 온전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걸 우리가  똑똑히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온전에 도달하지 못했다, 온전에 도달치 아니하면  행위구원은 안 된다.

 그러면 온전에 도달하는 것은 어떤 행위인가. 껍데기는 하나님의 말씀의  법칙대로 된 그 껍데기를 가지고 알맹이는 성령님께서 인정을 해야 됩니다.

아무리 성경 말씀대로 했다 할지라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는 이것이 아니면 영생이 안됩니다. 영생이 될 수 있는  이 행위를 가리켜서 온전한 행위라. 온전한 행위 하려면 이것 다해야 되는데  다하면 성령이 인을 쳐주십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인을 맞았다고 요한계시 7장에 인 맞은, 하나님의 인,  하나님의 인은 성령의 인인데, 현실 현실 행위에 자기는 100분지 1만 하나님  말씀대로 해도 다 된 줄로 알고 있고 이런데 하나님께서는 요구하시는 것이  어떻게 요구하시느냐. 영생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법에 맞아서 하나님의 법이  정죄할 수가 없어야 되고, 하나님의 법이, 네가 보자. 네 행위를 하나님의 법전  가지고 따져 보자. 하나님의 법전으로 따져서, 법전이 따져서 정죄할 수 없는 이  행위라면 됐느냐 아니라 그말이오. 법 속에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성령님께서  거기 대해서는 내가 인정합니다. 성령님이 인정한다고 그 현실 행위에 도장을 콱  찍어 줘야 된다 이거요. 도장을 찍어 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그 행위가 어떤 행위인가. 그 행위가 온전한 행위라. 그러면 온전한  행위 그것이 영생인데, 온전한 행위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있는 것  다해야 된다.

 하나님은 당신이 영생이 이루어지는 것은 흠과 점이 없어야 영생이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에게 선포해 주셨는데 우리는 구원을 너무 헐하게 생각합니다. 자기  있는 전심 전력, 제 욕심대로 다하고 제 욕심에 10분지 1만 주님을 위해서  절제하고, 100분지 1만 제 욕심을 덜 취해도 이렇게 큰 일, 의 했으니까 구원이  됐겠지, 너무 우리는 교만해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무시합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제가 무슨 말씀을 증거해 주시렵니까 하는 것을 기도할 때에  이 말씀은 한 너덧 시간 전에 제가 받았습니다. 사데교회에 대해서 이 말씀은 뭐  해석이 필요 없습니다.

 「내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면 온전한  행위라야 구원이 된다 말입니다. 행위구원은 온전한 행위된 그것만 구원이  됩니다.

 그러면 자기가 현실을 백 개 현실을 만났을 때에 한 개 현실에 온전한 행위가  됐으면 한 개 온전한 행위된 그 현실에 대한 구원은 영생이 됐습니다. 영생이  됐습니다.

 그러나 자기는 일생동안 믿는 행위를 했지마는 현실 현실마다 99점이고 100점이  안됐으면 그는 영생은 되지 못했습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법과 또 하나님 자신이  정죄할 수 없어야 영생이 되는 것인데, 온전한 행위 그것만 영생이 된다 말이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에누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에누리하시지 않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여기 죽었다 살았다, 죽었다 살았다 하는 것은 뭘로 죽고 사는가. 행위로 죽고  산다 하는 것을 여기 똑똑히 밝혀 왔소. 행위로 죽고 산다. 행위로 죽고 살면  죽는 행위는 어떤 행위냐. 온전치 못한 행위는 다 죽는 행위입니다. 사는  행위는, 영생을 얻는 행위는. 온전한 행위라야 영생을 얻는다.

 너는 모든 사람이 너 구원 얻은 사람으로 알고, 구원을 이루어 가고 있는  사람으로 알고 있지마는 실상은 네게 수십 년 예수 믿었지마는 산 것은 하나도  없다. 산 것은 하나도 없다니. 실상은 죽었다. 산 것은 하나도 없다 왜 산 것이  하나도 없습니까. 네 행위가 내 하나님 앞에 온전한 행위는 한 현실에도 없다.

이 현실에도 온전을 이루지 못했고 저 현실에 온전한 걸 이루지 못했고 수많은  현실을 네가 통과했지마는 그 현실에는 50점, 60점, 70점, 80점, 90점, 99점,  99점 돼도 안 된다. 100점인 온전한 행위라야 영생이 된다 이것을 여기서  밝혀냅니다.

 3절에,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그러면 다 죽고, 다 죽고 남은 것 얼마 안 남았는데, 만일 사람이  70을 산다고 하면 50되는 사람은 50은 다 죽고 20 남았겠고, 또 나이가 스무 살  먹는 사람은 70이라면 20은 죽었고 50 남았는데, 20 산 그 20이, 그 20이 10분지  1이 산 사람도 있을 것이고, 100분지 1이 산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하나도 산  것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100에 100이 산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만 다하면, 마음 다하고 목숨도 다 내놓고 힘 다하고 뜻 다 하고 성품  다하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의 공로를 입기 때문에 할 수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에누리해서 이만침 믿어도 구원이 되지 않았겠는가 하는 거기에서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참 사람으로서 천한 사람은 귀한 개보다 얼마나 천한지 모릅니다.

그거 암만 천한 사람이라도 사람 말을 한 두 마디라도 할 줄 알고 또 용모가  사람 용모를 가지고 있으니까 개보다는 나을 것인데, 개는 개 한마리에  몇천만원을 주고 사 가지고 가기도 하고 공기밥을 대접하지마는 천한 인간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천히 보고 그 사람을 한달에 돈을 얼마씩 줄  터이니까 그 사람을 봐 달라 해도 아무도 봐 줄 사람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다 같은 사람이지마는 천한 사람은 얼마나 천합니까. 귀한 사람은  얼마나 귀합니까. 그러면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입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늘나라 가니까 그만하면 족하다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늘나라 간 사람으로서 그 귀하고 천한 차이가 세상만침 있는가.

세상으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을 고린도전서 15장에 말씀해 놨습니다.

 그것이 뭘로 그런가. 기본구원은 꼭 같습니다. 기본구원 영생도 꼭 같이  영생하고 또 하늘나라도 가고 하나님 아버지 아들도 아들이고 이렇지마는 그  사람의 영광과 존귀와 실력과 지위와 소유와 하나님의 인정과 모든 피조물의  환영이 다릅니다. 이것은 자기 현실에서 이루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아직까지 죽지는 않았고 현실을 통과 안한 남은 구원이 있습니다.

현실을 통과 안한 남은 구원이 있는데, 현실을 통과 안한 남은 구원 이것을  가리켜서 죽어가고 있는 남은 바, 다 죽고 10분지 1이 남았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오늘 죽는다면 뭐 남은 것 얼마 더 있겠습니까. 그것을 그러면  아직까지 죽지 아니하고 남아 있는 그것은 영원히 살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으니 그것을 살리는 데에는 어떻게 해야 살리느냐 하는 살리는 방편을 여기  말씀했습니다.

 살리는 방편은 어떻게,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들은 것 받은 것, 들은 것 받은 것, 들은 것은, 들은 것을  어떻게 하랍니까 들은 것은 네 현실에 들은 것을 가지고 생각해라 네 현실에  들은 것을 가지고 생각해라.

 네 현실에 마귀의 지식, 세상에서 배운 것, 인간에게 배운 것 그것 가지고 네  현실을 생각지 마라. 네 현실을 학교에서 이래 배웠다, 이 세상에 잘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더라, 그거 다 죽이는 말이요 죽은 지식이기 때문에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이 말씀 가지고 현실을 생각해라. 이 현실에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현실에 어떻게 해야 될 것을 네가 들은 말씀 가지고 생각해라. 그러면 이 말씀은  누가 해 주는데.

 「일곱 별을 잡으신 이가 가라사대」 「일곱 별을 잡으신 이가 가라사대」 일곱  별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말해 준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말해 준  그 사람이 성경을 기록해 주고 또 하나님 말씀을 너에게 강권해 준 그 사람이 네  보기에는 사람 같고 세상에 대학자만 못한 것 같고 세상에 대통령이나 왕이나  그런 사람만 못한 것 같지마는 그는 내 사자 다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가라사대」 일곱 별은 하나님의 사자라고 요한계시 1장에 해석을 해 놨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 준 그 해석은 내가 가진 일곱 별이 말했다. 내가  내 사자를 통해서 내가 말해 줬다.

 이러기에 네가 사람의 말로 듣지 마라. 내가 말한 것이다 내가 너한테 말한  것이다 내가 너한테 말해 준 말인데, 이 말을 네가, 닥치는 현실을 네가 들은 이  말씀 가지고 생각해라. 현실은 들은 그 말씀대로 하면 이 현실은 어떻게 되느냐.

그것이 아직 안 죽고 살아 있는 그것을, 남아 있는 그것을 죽이지 않고 살리는  것이다.

 또 어떻게 받았는지 받은 이것을 네가 지켜야 된다. 받은 이것은 생각해서는  소용없고 받은 이것은 지켜야 된다. 그러면 받은 그것은 누가 준 것이냐 일곱  영이 줬다. 성령이 너에게 줬다. 하나님이신 성령이 네게 줬다 네가 받은 것은  지키고 귀로 들은 것은 현실에서 생각해라. 그러면 이제까지 다 죽었지마는  아직까지 죽지 않고 남아 있는 그것은 안 죽고 영원히 살 수 있다.

 그러면 받은 것은 무엇인데. 네가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이 너희에게 준 것이  있지 않느냐. 성령이 준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이 줄 것은 네가 하나님 말씀을  귀로 들을 때에 성령이 너에게 깨닫게 해 준 것 있다. 내가 네게 깨닫게 해 준  것 있다. 네가 그때 깨달은 것이 있지 않느냐. 깨달았으면 깨달은 그것은 네가  현실에서 생각해 서는 안 된다. 깨달은 그것을 현실에 생각하면 안 된다. 깨달은  그것은 다른 데서는 실행할 수 없고 깨달은 그것은 현실에서만 행할 수 있다  깨달은 그것은 현실에서 행하라. 이것을 성령이 주셨다.

 또 성령이 주신 것 또 하나 있다 뭐이냐. 네가 작정한 것 있다 네가 작정한  그것은 네 작정이 아니라 성령님이 너희에게 생명에 속한 것을 작정하도록  너에게 작정시켜 줬다. 일곱 영이 작정시켜 줬다 네가 작정한 그것도 현실에  네가 아무 연분에 그렇게 작정했는데 생각하면 안 된다. 그것은 현실에 작정한  것을 실행해라. 행해라 받은 것은 행해라. 들은 것은 생각해라. 그러면 아직  죽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살아날 수 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하나는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서, 내가 내 사자를 통해서 너에게 가르쳐 줬다.

하나는 내가 보낸 하나님이신 성령님께서 너에게 작정시켜 줬다. 깨닫고  작정하게 해 줬다. 이러니까 깨달은 그것과 작정한 것은 실행하라.

 이번에 우리가 대구집회에서 들은 말씀이 많은 줄 압니다. 이 말씀은 현실에 이  말씀 가지고 생각하면 안 죽습니다. 우리가 깨닫고 작정한 것 각각 모두 있는 줄  압니다. 이것을 현실에 실행하면 삽니다. 만일 버렸으면 다시 잡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다시 닥치는 이 현실에서 실행하면 됩니다. 무엇을 실행해. 두 가지를  실행하면 받은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뭐. 깨달은 것. 깨달은 그대로 행할 것. 하나는 뭐. 작정한 대로, 주여  내가 이렇게 하겠습니다. 작정한 그대로 할 것. 그러면 이제까지는 내가  현실에서 다 죽였지마는 아직까지 죽지 않고 남은 것이 많이 남았는지 적게  남았는지 모르지마는, 죽지 않고 남아 있는 것 이것은 죽지 않고 이렇게만 하면  네가 안 죽고 이것을 영원히 살릴 수 있다.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이렇게 이 권고의 말을 네가  듣지 아니하면 도적같이 온다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도적같이 온다 그 말은  던져 버린다 그말입니다. 침상에 던진다는 말씀같이 같소. 던져 버린다, 던져  버린다, 도적같이 온다.

 도적같이 주님이 와서 이제는 주님이 그에게, 모든 것을 너는 다 빼앗기는 자가  된다, 잊어버리는 자 된다 이렇게 인쳐 놓으면 그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도적같이 오신 그 이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근 2천 4백여년을, 2천 근  4백여년을 구원을 하나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이 2천년은, 2천 4백여년이라는 그 기간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골탕만 쥐먹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박해만 당했지 그들의  수입은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2천 4백여년을 다 도둑맞고 말았습니다. (저  OOO씨 딸, 왜 졸아 졸았지 왜 안 졸라 안 졸기는 분 바르지 마. 남편 죽었는데  뭐 하려고 분 발라 분 바르기를. 머리 거석하고. 자식도 회개 안하면 죽어, 내가  알고 있어. 이 말씀이 어떤 말씀인데.)  예수 믿어서 택한 자가 오만 죄 짓고 돌아다니는 그자나 현실에서 온전한 능력  도달치 않은 그것이나 다 죽은 것이요 구원은 못 이룹니다. 구원은 온전한 행위  그것으로만, 이 현실이 온전한 행위에서만, 이 현실에 온전한 행위 그것만 구원  얻습니다. 그것만 구원 얻습니다. 그때에 눈에 대한 것이나 뭐 그것이 구원에  천분의 일이 될런지 만분의 일이 될런지 모르나 그때에 그 한 그것만큼은 구원이  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하나님께서 우리가 회개하는 것을  그렇게 기다리고 좋아하시지마는 때가 지나가면, 하다 하다 안 들으면 나중에는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내가 그들을 버려서 그들이 혹 누구의 말을 듣고 회개를  할까 내가 두려워한다 이랬습니다. 회개하기를 원했지마는 저게 혹 회개해서 그  멸망에서 벗어 나올까 두려워한다 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 마음과 꼭 같은  마음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도적같이 온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참고 또 말하고 또 말하고 또 권고하고 또  권고하니까, 이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으로 언제든지 이런 하나님이라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회개치 않으면 내가 도적 같이 오리라 그말은 회개치 않으면  지금부터 너는, 남은 여생은 전부 네 구원은 다 도적 맞도록 내가 결정지워  버렸다 하면 하나님의 권고의 긍휼이 다시 없습니다.

 그 뒤에는 죽는 날까지 죄 짓고 살아도 양심의 가책도 없고 마음에 아픈 것도  없고 하나님의 징계도 없고 그대로 뻔뻔히 나가다가 하늘나라 가 보니 구원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너희에게 징계가 없으면 사사로운 아들이라  하는 것은, 참 아들이 아닌 것은 버린 자식이라 그말이오, 버린 자식. 이름만 내  아들이지 실상은 내 아들이 아니라 그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고가 계속한다고 업신여겨서 마음을 강퍅하게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모든 것 다 도적 맞도록 선을 그을는지 언제 선고를  하는지 선포할런지 모릅니다. 그러고 나면 헛일이오.

 그러기에 여러분들, 우리가 많이 봅니다.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아마 10분지 9  이상 안 되나 싶습니다. 보면 그 사람 예수 믿는 사람이지마는 아무 감동도 없고  아무 자극도 없고 아무 가책도 없고 아무 징계도 없고 당장 벌 받을 만한 그런  일을 계속하고 있지마는, 벌 받을 일을 계속하고 있지마는 그 사람 밥 먹고 옷  입고 목사 노릇 하고 그대로 있습니다. 그대로 지나갑니다. 영감이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아무런 깨달음이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니까  남의 주석이나 보고 주석이나 외우고 이래 가지고 목회한다고 일생을, 목사도  그러니까 평신도는 얼마나 그럴 것입니까. 이것을 가리켜서 성전 밖마당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너희에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그 몇 명 있어 흰옷 입고 다니는데,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 그말은,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 그말은, 이 옷은 사죄와 칭의와 화친입니다. 주님이 대속해  주신 이 대속을 잊어버리지 않고 살았다 그말이오.

 더럽히지 알았다 그말은 이 대속을 잊어버리지 않고 이 대속을 입은 자로, 이  대속대로 살려고 애를 쓴 그 자는, 이 대속대로 살려고 애를 쓴 그 자는 흰옷을  입게 됐소. 흰옷은 성화된 것을 말합니다. 성화된 것. 주님의 대속을 생각하면서  대속을 벗지 않고 이 대속 받은 자로 살려고 애쓴 자는 다 흰옷을 입게 됐다  말이오. 다 성화가 됐어.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임을 것이요」 이 말씀을 듣고 들은 것과 받은  것이 두 가지를 자기가, 하나는 들은 것을 생각하고 받은 것은 지키고, 그러면  이것이 이기는 사람인데,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 입고,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 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고 그 이름을  아버지 앞에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생명책에 흐리지 않는다는 그 말이 무슨 말입니까.

생명책에 흐리지 않는다 그말은, 이렇게 애쓰는 자는 생명책에 흐리지 않는다.

이 사람은 승리할 사람으로 내가 구별하겠다 그말이오. 승리를 원하기 때문에  승리할 사람으로 구별하고 이 승리의 역사를 내가 그에게 해 주겠다.

 주님이 그 사람은 승리하도록 도와 주시고 그 사람만 아니라,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도 시인하리라」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이라 말은 심판에서 보증하는  것을 말하는 동시에 이 모두 하는 일이 아버지가 하는 일이오. 이 섭리가 다  하나님이 하시는 섭리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이 섭리에마다 따라다니면서 그 섭리가 자기 현실인데  현실마다 주님이, 이는 나와 동행합니다. 이는 내가 인정하는 자입니다. 이렇게  해서 동행할 것을 말씀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행위로 죽고 행위로 사는 이것, 행위로 죽고 행위로 사는 이것, 행위로 사는 이  사는 행위, 영생하는 행위는 온전한 행위라야 되는 것, 온전한 행위 하나님의  요구는 이렇습니다.

 온전한 행위는 어떤 것이 온전한 행위인데 말씀대로 하고 성령이 인정하는  행위인데 그 행위를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합니까. 들은 것으로 현실을  생각하고 받은 것 그것 지켜 행하면 됩니다. 간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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