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 시험


선지자선교회 1985년 10월 23일 삼일밤

 

본문 : 마태복음 4장 1절∼11절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다음 주일 공과는 지난 주일 공부한 것을 한번 더 공부합니다. 이제 그것은 반사 선생님들이 벌써, 진리는 알았으니까 그 진리를 기도하면 자기에게 하나님이 가르쳐 줄 것입니다. 주일학교 오후 예배 때 어떤 반사가 가르치는데 꽤 잘 가르치는 것을 봤습니다. 세상 빛이라는 것,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주님을 위해서 좋은 모본을 보이고 주님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그렇게 하는 그런 것을 많이 말했는데 그거는 반사 선생님들이 다 연구를 해서 얼마든지 한 번 더 가르칠 필요가 있다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번 주일에는 반사 선생님들이 어떻게 하는 게 빛인가, 내가 거느리고 있는 이 학생은 어떻게 해야 좀 빛노릇을 하겠나 자기가 생각한 대로 좀 마음에 학생들이 그렇게 해 줬으면 좋겠다 싶은 그 아쉬운 그것을 학생들에게 이 기회를 충분히 말을 해서 가르쳐서 그 학생들이 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그런 빛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한번 더 여러분들이 연구한 것을 가르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한 주일 더 주는 것입니다. 그저 자꾸 목 매인 송아지 모양으로 끌려 다니면서만 하지 말고 자기가 기도하고 자기 맡은 학생이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다 싶은 그런 것이 여러분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학생들에게 잘 가르치면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다는 말하지 안하고 몇 가지만 우리에게 가르치는 도리를 증거 하겠습니다.

"그때에"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복음 전파를 하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이제 사생활을 내치 하다가 공생활에 나서 가지고 지금 복음 전파를 하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그러면, 예수님께서 시험받기 위해서 성령님에게 이끌리어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꼭대기로 또 끌려 가셨습니다. 또 높은 산으로 끌려 가셨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아담이 마귀에게 졌기 때문에 마귀의 종이 됐고 마귀의 것이 됐습니다. 예수님께서 죄는 없으시고 신인양성일위이신 곧 참 하나님이요 참사람이시지만 우리 죄를 대속하실라고 대신 담당을 하시다가 보니까, 담당하시고 보니 마귀에게 복종 안 하지만 마귀를 계속 상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첫째 아담이 패전한 패전의 그 값을 예수님이 다 배상하시고 또 마귀에게 다시 도전을 하신 것입니다. 이러니까, 마귀가 죄인에게 대해서 하듯이 하는 그 일을 예수님이 당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대신하기 때문에 당하십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마귀에게 패전한 그 패전의 값과 그 종노릇하는 것을 일변으로는 안 할 수 없습니다. 종노릇한다 말은 복종한다는 말이 아니고 그 죄값으로 형을 하는 것을, 그 형을 안 받을 수 없고 또 마귀가 이렇게 저렇게 가는 데에 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귀하고 다시 새로 이제 지느냐 이기느냐 하는 그 전투를 시작했기 때문에 마귀가 전투하자 하는 데에 따라가지 안하면 예수님은 전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마귀가 여기 가서 전투하자 하면 그리 따라가야 되고, 저게 가서 전투하자 하면 거게 따라가야 되고, 마귀는 예수님이 전투를 안 했으면 싶습니다. 예수님이 전투를 안 하면 첫째 아담으로 더불어 싸워서 이긴 그 승리 가지고 세상 왕노릇을 하고 좋을 터인데 이 둘째 아담이 나서 가지고 지금 첫째 아담이 잘못한 것과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들이 잘못한 그 모든 것을 그 댓가를 다 치르니까 '그 댓가를 다 치르겠다, 그 형벌을 다 받겠다' 하니까 뭐 다시 더할 수는 없고, 또 '이제는 첫째 아담과 같이 내가 너희에게 유혹을 받아 가지고 패전하거나 네 세력에, 억압에 눌려 가지고 패전하거나 네가 어떻게 하는 방법에도 내가 범죄하지 안 하고 지지 안하겠다.' 하는 이 도전 선포를 하시고 나니까 마귀는 제 마음대로 예수님을 이리 끌고 가고 저리 끌고 가고 끌고 갑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끌려가는 것이 마귀에게 복종하는 게 아니고 마귀로 더불어 다시 재승부를, 이기고 지는 그 승부를 이루기 위해서 지금 도전하러 가시는 것입니다. 이, 그가 '자, 여게 가서, 여기서 그만 한번 서로 우리가 한번 힘을 대결하자.' 그러면 또, '그라자' 따라가고, 또 저리 가면 저리 하고 그래 가지고 예수님이 이리저리 끌려 다니시면서 그렇게 도전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려고 광야로 갔었습니다. 마귀에게 시험 받는 것은 마귀가 시험을 해서 예수님을 어짜든지 낙제해 떨어지도록 예수님을 시험해 가지고 어떻게 뭐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시험을 하든지 예수님을 그만 낙제가 되도록 이렇게 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 방법을 쓰고, 예수님은 마귀가 어떤 시험을 해도 그 시험에 불합격이 되지 안하고 그 시험을 이겨서 합격이 되게 할라고 그렇게 날뛰고 하는 그런 일을 가리켜서 '시험을 받으러' 했습니다.

그러면 이 시험받는데, 예수님이 시험받으시는 이 시험은 마귀가 이겼기 때문에 마귀로 더불어 이와같이 지금 다시 재전투를 시작하고, 처음 전투에서 패전한 댓가를 치르고 이 두 가지 일을 하시는데, 예수님이 시험받으시는 이 시험은 어떤 시험인고 하니 하나님의 공심판 앞에서 받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의 공심판 앞에서, 첫째 아담이 하나님의 공심판 앞에서 패전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제는 하나님 공심판 앞에서 처음에 패전한 댓가를 영원한 사망으로 다 댓가는 치르고, 그걸 치르니까 이제는 첫째 아담이 패전한 그 패전의 댓가는 다 치렀습니다. 패전의 댓가는 예수님이 영원한 사망으로 다 치렀습니다. 그라고, 이제는 첫째 아담이 이 사탄으로 더불어 서로 에덴 동산에서 대결한 거와같이 둘째 아담이 이제는 이 마귀로 더불어 서로 대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전투는 하나님의 공심판 앞에서 전투를 하는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처음 전투 한 패전한 그 값은 영원한 사망으로 댓가를 다 치렀기 때문에 처음 승리 한 승리는 그만 그거는 무효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거는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아, 범죄했는데 죄의 값은 사망인데 사망을 받았으니까 그 범죄한 그 효력이 그만 하나도 없게 돼 버렸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제 마귀로 더불어 일대 일로 이제는 투쟁하는 이 도전이 시작됐습니다.

마귀는 이런 새 전투가 있기 전에는 사탄은 완전 승리한 세상의 왕입니다.

세상은 그의 나라가 됐고 점령했는데, 그러면 이 마귀는 예수님이 도전해 오시는 것을 이것을 원하겠습니까 안하겠습니까? 원하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원치 안하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을 들어 봅시다? 네, 원치를 아니합니다. 이 사탄은 원치를 아니합니다. 원치를 아니하니까 이제는 예수님께서 자꾸 뿌진뿌진 달라들어 가지고 자꾸 한번 '이제 전투하자' 하고 자꾸 예수님이 달라붙어야 되지, 그 마귀는 안 하면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마귀가 산으로 끌면 산으로 가고 들로 끌면 들로, 성전으로 가면 성전으로 이래 가 가지고 거기서 서로 전투한 것입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들이 '아, 예수님께서 어찌 마귀가 가자 하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녔습니까?' 거게 대해서 의문이라고 해 가지고 묻는 사람들을 내가 많이 봤습니다. 또 이것이 난해절입니다. 이래서, 거게 대해서 왜 예수님이 끌려 다녔다 하는 것을 해석해 놓은 주석을 내가 아직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말을 자꾸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도전하시고 이 마귀는 다시 한번 전쟁을 붙으면 질란지 이길란지 이거는 모르겠고, 한번 이긴 것 가지고 그만 그걸 가지고 영원히 왕노릇하면 하겠는데 이 뭣이 하나 나서 가지고 또 새로 한번 재전투를 붙자 하니까 이거 걱정이라 말이오. 그런 거 아닙니까? 지금 이 세상에서 모두 그와 비슷한 거. 이 사람이 세계 뭐 복싱 참피온을 땄다.

그러면 세계에서 복싱으로서는 제일 일등됐다. 그러면 그 사람 일등인데, 뒤에 아무도 그 사람에게 와서 도전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는 항상 세계 일등입니다.

일등인데, 뭐 어떤 사람 이 도전을 해서 자기가 그로 더불어 씨름을 대결할 수 있는 그런, 밑에 순서를 밟아 와 가지고 이제 한번 마지막으로 우리하고 한번 붙어 보자 이라니까 그 승리한 사람은 걱정이라 말이오. 잘 돼 봤자 본전이고 못 되면 패전이니까 그 걱정 아니겠습니까? 사탄도 그런 입장이라.

그러니까, 자꾸 도전하는 사람이 '한번 다시 한번 나와 한번 붙어 보자 한번 싸워 보자. 씨름해 보자. 한번 싸워보자.' 이러니까 예수님께서 그 사탄을 찾아 다녀야 되지, '나하고 붙을라면 이리 오너라' 해 가지고 예수님이 마귀를 부를 수가 없다 그 말이오. 그거 이해가 됩니까? 그거 아니면 딴 데 길이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제 '시험 받는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누가 이기 그 하번 실력 대결하자 하는 그 말이오. 여기 시험이라 말은 실력 대결할려고 광야로 가는데 그 실력 대결할 때에 그 대결하는 그 대결에 안내자가 누구입니까? 누가 안내를 했습니까? 누가 안내를 했습니까? 성령님 이 안내를 했습니다. 성령님이 안내를 했어. 안내를 했는데, 예수님의 이 도전은 하나님의 공심판 앞에서 도전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게서, 예수님이 우리 인류를 대표해서 도전할 수가 없지요.

도전할 수가 없는데, 이 도전하기 위해서 도전할 수 있는 그 길을 마련한 것은 어떻게 한 것이 우리를 대표해서 이 마귀에게 도전할 수 있는 그런 길을 마련했습니까? 어떻게 해서 마련했습니까? 저 OOO교회 O선생 어떻게 해서 도전할 길을 마련했어? 예? 안 들리는데. 뭐 엉뚱이같이 모르는 것 같애. 어짠지 모르는 것 같애. 내가 보니까 아까 손 안 드는데 잘 모르는 것 같애. 그 옆에 있는 안경 쓴 조사님, 아, 인류가 사탄하고 싸워 가지고 패전해 버렸는데 또 패전한 인류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어떻게 도전해, 도전하기를! 그쪽에서 사탄이 붙어 줄라 하는가? 실력 대결을 한번 시험을 해 볼라 하는가? 안 해 볼라 한다 그 말이오. 그런데 사탄이가 실력 대결의 이 시험을 '다시 재시를 한번 해 보자.' 재시를 한번 할 수 있도록 그렇게 갖춘 준비가 뭐이냐 그 말이오. 조사님, 안경 쓴 조사님. 저 OO선생, 예? 도성인신? 또 우리 O장로님 그 옆에 있는 또 O선생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기 때문에? OOO장로님, 이거 아무도 모르네. 이러니까 만날 설교 하나만 해도 되겠어. 못 알아들으니까 또 하고 또 하고, O조사님, 예? 뭐라 하노. 사십일 금식, 기도를 해서? 또 O선생, 예? 그래. 아, 일차 패전한 값은 뭐이냐 하면 일차 패전한 값은 죄값인데 죄값을 다 받았으니까 죄값 다 받으면 죄 있소 없소? 예? 어때? 일차 패전한 것이 남아 있습니까 일차 패전한 것이 없어져 버렸습니까? 어찌 됐어? 예? 이제 좀 귀가 좀 뚫혀? 그거 그렇츰 모르면 안 되는데.

예수님께서 암만 사람이 됐다 할지라도 당신은 도전할 수 있지. 우리를 대표해서는 도전할 수가 없어. 알겠소? 도성 인신 가지고는 우리를 대표해서는 도전하지 못해. 우리는 패전했는데, 패전해서 패전했으니까, 승리했으니까 그분 승리했는데 뭐 우리한테 도전하면 붙어 주는가, 패전했으니까 왕이 됐는데 왕에게 어떻게 달라들어. 도성인신 가지고 사람이 됐기 때문에 그와 도전할 수 있지.

도전할 수 있지만 도전하는 것은 당신 혼자 도전했지 우리를 대표해서는 재차 전투는 안 된다 그거요. 재차 전투는 안 돼 재차 전투 안 된다는 것을 이 조사님 알겠어? 이 조사님, 바로 바로 자기 말이야. 그래 이거 이렇츰 깜깜하나? 참, 그건 쉬운데 자기로서는 사람 그기 때문에, 그거야 '첫째 아담은 너하고 씨름해 가지고 패전해서 네가 왕이 됐고 네 종이 됐지만 나하고 한 번 붙어 보자 나하고 한번 붙어 보자.' 예수님이 나하고 한번 붙어 보자 하는데, 도성 인신 했기 때문에 나하고 한번 붙어 보자 하면 사람됐기 때문에 마귀하고 한번 서로 전투를, 한번 씨름을 한번 할 수 있습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할 수 있는 것은 그 씨름은, 그 씨름은 어떤 씨름으로 할 수 있습니까, 어떤 씨름으로 할 수 있습니까? 저 OO교회 O조사님, 예? 일대 일로. 그렇지, 일대 일로는 씨름할 수 있지. '나도 한번해 보자, 나 너한테 지지 안했다.' 그러나 일차 패전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를 대표해서는 도전할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

그래 없는데, 도전을 할라고 하면 무슨 일을 해야 되겠습니까? 예? 도전을 할라면 무슨 일을 해야 되겠어? 일차 패전한 댓가를 다 내야지. 그렇지 안해요? 예? 알아 듣잤어요? 일차 패전한 댓가를 다 내서 대형 대형하고 났으면 '나와 한번 도전하자. 내가 전인류를 대표해 가지고, 택자들을 대표해 가지고 내가 한번 싸워 보겠다.' '택자들이 다 나한테 패전하지 안했느냐?' '패전한 댓가는 내가 형벌을 다 받았으니까 패전한 그거는 이제, 패전한 댓가는 내가 다 댓가를 받았기 때문에 패전한 것은 없지 않느냐? 네가 승리한 그 승리는 없지 않느냐? 네가 형벌 안 받았으면 네가 승리한 그게 있지만 형벌을 받았기 때문에 승리한 그 승리의 그 가치는 없어지지 안했느냐?' 고게 이치에 맞아요! 법리에 맞아요 안 맞아요? 맞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이거 모르면, 이래 어두워.

이렇츰 어두워 놓으니까 중생된 영이 죄를 짓느냐 안 짓느냐 하니까 그거 전국이 날뛰어도 그걸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그라고 있지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 사회 공부는 제일 필요한 것이 법학입니다. 법학이 필요해. 성경 연구하는 데는 법학이 필요해요. 그러기 때문에 법학한 사람들이 종교 개혁을 했고 모두 다 진리를 똑똑히 알고 쪼갰지 그 뭐 철학한 자들은 전부, 어리석게 철학하면 그것이 무슨 기독자의 신앙 가지는 줄 알아도 철학은 이단이요, 그거는. 철학한 자 쳐 놓고 신앙을 바로 가지는 자가 없읍귀다.

철학자라 하면 벌써 그 사람은 뭐 거의 가짜요 거짓부리라 그렇게 봐도 옳습니다.

그 철학이 뭐인지도 모르고.

그래서, 예수님이 지금 이 마귀에게 도전하신 일은 이것은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지면 영원 사망을 받고 이기면 영생을 가지는 하나님의 공심판 앞에서 도전하는 도전입니다. 이게 이해가 됩니까? 예? '어떻게 한번 졌으면 그만이지 도전 할 수가 있는가?' 한번 진 값을 대형으로 대신 다 형벌 다 받았기 때문에 없어져 버렸어. 아, 예를 들어서 어떤 이 세상법에서도 도적질을 했으면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지었는데, 도적질해서 죄를 지었는데 그 죄 지은 것을, 석 달이면 석 달 거게 대해서 징역을 살고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 그 죄가 남아 있습니까 없습니까? 죄가 남아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졌어.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마귀에게 패전한 그 댓가를 예수님이 치르느라고 대형으로서 영원한 사망을 받으셨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이 대형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마귀에게 패전한 것이 없어졌습니다. 승리도 없고 패전도 없습니다.

이랬는데, 예수님이 대표해서 이제 마귀하고 싸워 가지고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서 이겼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마귀에게 승리가 있습니까 패전이 있습니까? 승리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도전하신 일은 하나님의 공심판 앞에서 하는 도전인데 우리도 시험이 있습니다. 우리도 시험이 있소.

예수님같이 우리도 시험이 있는데 우리가 시험하는 것은 누구하고 하느냐 하면 마귀하고 지금 씨름하는데 마귀하고 씨름해서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이거 시험을 우리가 받 그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시험받고 있는 것은 이건 지옥이냐 천국이냐 하는 공심판 앞에서 우리가 시험을 받는 것입니까, 마귀와 도전하는 것입니까, 공심판 앞에서가 아니고 사심판 곧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서 우리가 지금 도전을 하는 것입니까, 어떤 것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서 도전합니까 공심판 앞에서 도전합니까? 심판은 둘이 있는데, 공심판은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에서 사망이냐 생명이냐 이것을, 지옥이냐 천국이냐 결정하는 것이 그것이 공심판이고, 그리스도의 심판은 사심판인데 이것은 지옥 가고 천국 가는 것을 결정 지우는 그 심판이 아닌 것이, 다만 그리스도의 그 직책에 실력이 어느 정도 있느냐 하는 그것을 심판해 가지고 하늘나라에 가서 그 직책을 맡고 상급을 받는 그런 시험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시험받는 것은 예수님이 시험받는 거와 다릅니다.

예수님이 시험받은 것은 예수님 당신이 지금 이 시험을 마귀하고 대결해서 싸웠습니까 우리를 대표해서 싸웠습니까? 우리를 대표해 싸웠습니까 예수님 당신이 일대 일로 싸웠습니까? 아까 저게 O조사님 대답하기를 일대 일의 전투를 할 수 있지만 우리를 대표하는 전투는 할 수가 없다 하는 그 대답했는데 그 대답이 백점이라. 그게 잘 됐다 그 말이오. 일대 일의 전투하는 것이지만, 그러면, 예수님은 일대 일의 전투입니까 우리를 대표한 전투입니까? 우리를 대표한 전투라 그 말이오 대표한 전투.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대표한 전투로서 이 전투에 사탄을 이겼습니다.

이겼는데, 이겼으니까 하나님의 공심판에서는 다 우리가 승리자로 돼 가지고 다 나왔습니다. 승리자로 돼 나왔는데 승리자로 돼 나온, 승리자로 돼 나왔지만 실상은 우리가 승리한 게 아니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마귀를 이긴 자로 이래 승리해 나 왔다 말이오. 승리해 나왔지만 실상은 예수님의 공로로 이겼지 우리가 개적으로 이긴 거는 아닙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이 다 대표해서 승리자로 이래 막 끌어 나와 가지고, 승리자로 뭐 전부 이래 그 나와 가지고 공심판에 다 이렇게 승리자로 이렇게 인정을 받아 끌고 나와 가지고 이제 우리를 하나하나 조사를 합니다. '네가, 내가 너를 대신해서 대형으로 사죄됐고 대행으로 칭의됐고 대 화친으로 새생명 받았으니까 이 대속의 공로를 네가 참으로 믿나 안 믿나? 믿으면 공으로 줍니다. 믿으면 공으로 주는데, 믿느냐 안 믿느냐 이 시험하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이 마귀로 더불어 싸우는 시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시험은 공심판 시험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심판 곧 사사로운 사심판, 사심판의 이 전투요 시험인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우리가 이 현실에서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이 현실에서 내가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예수님이 대신해서, 입었기 때문에 입었기 때문에 이 입은 것을 현실에서 벗지만 안하면 되는데 이것을 벗길려고 마귀란 놈이 이렇게 막 야단을 칩니다. 이렇게 자꾸 오만 수단을 부립니다. 이럴 때에 내가 이 대속의 공로를, 이게 꼬아 가지고 '대속 그것보다도 이게 좋다 대속 그거는 거짓부리다.' 또 '대속 안 내놓으면 죽인다.' 뭐 미혹도 주고 협박도 해 가지고 대속의 공로를 현재에 내놔 버렸으면! 내놓으면 그만 대속의 공로는 저의 것이 안 되고 만다 말이오 저의 것이 안 되고 마니까 그 사람은 대속의 공로를 그만 입지 못해요 대속의 공로를 제가 벗어 버렸기 때문에, 벗었으니까 이 그리스도의 심판에서는 대속의 공로를 벗었으니 이 공로는 네가 벗었기 때문에 할 수 없다 해 가지고, 벗었으니까 벗은 그자는 마귀에게 졌으니까 그 사람운 유황불 구렁텅이에 갑니다.

그 기능이 말이오.

전체의 중생된 영은 안 가지만 심신의 기능은 가는데, 심신의 기능이 가면 첫째 아담의 패전으로 말미암은 그 원죄로 가는 것입니까? 믿는 사람의 심신이 현실에서 그리스도의 공로를 부인해 가지고 유황불 구렁텅이로 가게 되는 것은 이것은 첫째 아담이 패전한 그 죄값으로 가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둘째 아담이 대신 승리한 승리를 입혀 줬는데 그 승리를 제가 벗어 버려서 가는 것입니까, 어느 것입니까? 첫째입니까 둘째입니까? 그러면 첫째 아담으로겠습니까, 둘째 아담이 입혀 준 것을 벗어서, 벗었으니까 없다 말이오.

부인하고 벗어서, 벗으니까 그 공로가 없으니까 이제 가는 것입니까, 첫째 것으로 말미암아 첫째 것의 그 범죄로 가는 겁니까 둘째 아담이 입힌 공로를 벗어서 가는 것입니까? 벗어서 가는 것입니까, 첫째 아담의 패전 그거로 인해서 가는 것입니까, 어떤 것입니까? 자, 첫째 아담의 패전으로 말미암아 간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하나도 없고, 그러면 첫째 아담의 패전으로 말미암아 된 거는 둘째 아담이 다 담당했기 때문에 해결이 됐는데 둘째 아담이 대신해 주신 것을 제가 입지 안하고 벗어 버렸기 때문에 간다고 믿는 사람들 손들어 봅시다? 네, 그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것을 가리켜서 둘째 사망의 해라 그렇게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둘째 사망의 해라.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시험을 받는 것은 어떤 시험이냐?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서 받는 시험이요,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것은, 우리를 대표해서 시험받으신 것은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공심판에서 우리 대신 시험 봐 가지고 승리를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담당한 사람들은 다 승리자로서 공심판을 다 면제하고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와 사망과 마귀가 왕노릇을 못 한다 그렇게 로마서에 기록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이 시험과 다른 게 뭐이냐 하면 공심판 시험이 아니고 우리는 사심판 시험이 다르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하신 것은 공심판 시험이 다른 이것만 다릅니다. 그러나 시험 방편은 같다 그거요.

같은데, 지금은 마귀를 시켜서 우리를 시험합니다. 시험하는데, 마귀를 시켜 시험하는 것은 이 마귀가 우리를 해할라고 제 독단으로 우리를 지금 시험합니까, 예수님이 시키셔서 시험을 하고 있습니까? 독단으로 하고 있습니까 시켜서 하고 있습니까? 시켜서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저 뒤에는 손 안 드네. 시켜서. 하는 거라, 시켜서 지금 마귀가 이제 예수님이 부리는 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켜서 시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시험하는 것은 마귀가 제 단독으로 시험할 때에는 제 수단 방법을 다 남김 없고 다 들여 가지고 어짜든지 이기도록만 시험을 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시험하는 시험은 예수님께서 조절을 해서 시키는 대로 시험하다 보니까 마귀 제 마음대로는 시험을 하나도 하지 못합니다. 이제 예수님이 조절시키시는 대로만 시험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시험이 오는 것은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와요 감당치 못할 시험이 와요?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옵니다. 감당치 못할 시험은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시험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심판에서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이거 참, 승부를 결정하는 그 공심판의 결정을 받기 위해서 우리 대신해서 시험을 받으셨고, 우리는 이 예수님이 구출해 놓은 이 가운데서 예수님이 '내 대속을 네가 참말로 믿나 안 믿나' 하는 이 시험이오 믿나 안 믿나 하는 이 시험으로 시험하는 그 시험을 우리가 받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시험을 안 받을 자는 없는 것입니다. 이 받아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는지 안 믿는지 알지, 안 믿는 자에게 그 자에게 줄 수는 없다 말이오. 그러니까, 자꾸 대속의 공로를 믿어라 믿어라 하고 난 다음에 참 믿나 안 믿나 보자 하고 현실에서 믿나 안 믿나 이렇게 시험을 해 보면 그만 시험에 뚝 떨어져 가지고 그때 가면 '아이구 나 안 믿습니다.' 그만 집어 던져 버리는 사람 있고, 그때까지 믿는 사람 있고 여기서 판정이 나는 것이라 그 말이오. 그래서, 우리는 이 시험에서 이겨야 예수님의 대속을, 대속의 공로를 우리가 입고 있지, 지는 것은 뭐이 지는 것이냐 하면 대속의 공로를 벗어 버리는 것이 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악령은 지금 우리의 이 입은 대속의 공로를 벗길라고 애를 써요 벗길라고 애를 쓰는데 벗길라고 애를 쓰는 그것은 아주 벗겨 버릴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벗길라고 애쓰도록 하는 이가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벗기는 것이, 그것이 아주, 벗지 안하고 입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그와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힘만 쓰면 안 벗을 수 있을 정도로 해 가지서 안 벗으면 됐다 하고 이제 합격을 시킬라 하는데 그만 벗어 버리면 헛일이라 그 말이오.

그러니까,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그 시험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시험에 이기도록 하기 위해서 그 시험이, 그 시험이 왔습니까, 예수님을 지도록 하기 위해서 그 시험이 왔습니까, 예수님이 마귀하고 둘이 시험한 그 시험은 마귀나 이제 하나님이나 이 모든 데 대해서 예수님이 그 시험을 지지 안하고 이기도록 예수님의 실력을 기르도록 하기 위해서 그 시험이 왔습니까, 그렇지 안으면 예수님을 패전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시험이 왔습니까, 어떻게 왔습니까? 패전하도록 하기 위해서 왔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승리하도록 하기 위해서 왔다고 생각하는 분 들 손들어 봅시다? 아이구 참, 이거 뭐 말귀 하나도 못 알아 듣는 거라 예수님이 시험 받은 것은 마귀란 놈도 '네가 안 죽으면 내가 죽는다 내가 안 죽으연 네가 죽는다.' 이 대결이기 때문에 그 마귀는 어짜든지 예수님을 시험에서 꼭 잡아 넘겨, 첫째 아담같이 꼭 잡아 넘기기 위해서 달라드는 시험입니다. 그 시험이, 그렇기 때문에 공심판 앞에서 하는 시험이오. 우리 시험은, 우리 시험은 잡아 넘기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굳게 세우기 위해서 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이거는 사정 있는 시험이라. 그렇기 때문에 마귀란 놈은 이거 잡아 넘겨 버리면 싶으지만 예수님께서 잡아 넘기지 못하도록 있는 힘만 다 기울이면 이길 수 있도록 그 정도로, '요 조금만 더하면 안 됩니까, 조금만 더 하면 안 됩니까?' '아, 안된다.' 그래 가지고 예수님이 조절해서 우리에게 오는 시험은 이 시험을 승리하도록 하기 위해서 있는 시험이고, 예수님의 시험은 이제 패전하도록 하기 위해서 냉정스러운 부정한 시험이라 말이오. 공심판에 무정한 시험이라.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것을 기어코라도 이겼기 때문에 이 겼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시험받는 것과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것과 다르다는 걸 그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될 터인데 여게 대해서 영 모르네. 영 아주 깜깜한데 보니까 이 양성원 학생들도. 예수님의 대속에 대해서 잘 안 배워 그래서, 우리의 시험은 이제 예수님의 대속으로 구원받은 자들이, 구원받은 자들이 모여 가지고 예수님께서 네가 내 대속을 참 믿나 안 믿나 그 시험이오 참 믿나 안 믿나 그 시험 있는 것은 그래 참 믿도록 하기 위해서, 믿도록 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조그만한 시험해 가지고 또 인제, 또 이기면 또 조금 크게 하고, 또 크게 하고 자꾸 요래 가지고 지금 우리를 길러 나가기 위해서 하는 시험이고, 예수님의 시험은 길러 나가기 위해서 하는 시험이 아니고 이제 패전한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 마귀가 지금 달라들어 가지고 하는 것이라 그 말이오.

마귀가 예수님에게 달라든 것과 우리에게 달라들어 가지고 시험하는 것과 그 시험이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인식이 됩니까 안 됩니까? 인식이 돼요 안 돼요? 이 양성원 학생들 쳐 놓고 좀 인식되는 사람들 손 한 번 들어 봐 이거 잘못 가르쳐 놓으면 이거 뭐 큰일났는데. 그래, 이래 인식이 돼야 돼요 이거는 우리한테 시험하는 것은 이거는 사적으로 연습하는 시험이야, 연습하는 시험. 이제 아주 연습하는 시험인데 다만 예수님의 공로를 이제 입혀 줬는데 이거, 입혀 줬는데 믿느냐 안 믿느냐 시험 해 가지고 믿지 않는 자는 할 수 없이 그걸 이제 삭제를 해 버리고 믿는 자는 그대로 입혀 냅둬 버리고 이러니까, 이 시험에 졌지만 기능만 지옥 가지 그 사람의 영은 지옥 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영이 지옥 가는 것은 아니오.

그래서 이 성령이 시험을 받도록 인도하셨는데 우리는 시험을 언젠 받습니까? 현실에서 받습니다. 그러면, 현실로, 현실로 누가 인도해요? 성령이 인도해요.

성령이 인도한다 말은 현실을 만들어 놓고 날 인도합니까 현실을 내게 부딪칩니까? 현실을 내게다가 끌어다 붙입니까 나를 현실로 끌고 갑니까? 예? 현실을 내게 끌고 오지 안해요. 나는 이 자리에 섰는데 이런 현실 저런 현실 자꾸 딴 현실이 오지 안해요? 내가 그 현실을 거기 있다고 찾아가는 게 아니고. 현실이 찾아온다 말이오 현실이 찾아오지 우리가 현실을 찾아가지 안하지 안해요? 현실이 찾아오는데 그 현실이 찾아오는 그 현실을 누가 우리에게 끌어다 댑니까? 예? 성령이 끌어다대요. 성령이 끌어다대기 때문에, 현실을 성령이 끌어다댄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성령이 우리를 그 현실로 인도하는 것이라. 요게 '성령이 예수님을 이끌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려 광야로 가사' 이 성령이 이끄는데 우리가 이끄는 것은 뭐이냐 하면 우리에게 현실을 요런 현실로 우리를 만들어 가지고 현실을 만나게 되고 저런 현실을 만나게 하니까 현실을 만드신 이가 성령님이시요, 현실을 만나게 하신 이가 성령님이시라. 그것이 이해가 됩니까? 요 확실히 이해가 돼요. 요거 심령이 밝아져야 돼요. 이해가 돼야 돼요.

법을 꼭 공부한 사람이 이걸 알고 법을 공부 못 하면, 여러분들 법학을 요새 좀 모두 배우는데 그거 잘 공부해요. 그게 중요합니다. 다른 데서는 법을 가르치지 안해요. 그런데 여기 우리 양성원은 내가 법을 가르치라 했어요. 그래 내가 제일 주장하는 것은 법학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그 다음에는 사학을 둘째로 중요하게 여기고, 뭐 과학에 돈벌이하는 그까짓 것 나는 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왜? 사람 구원하는 인간을 만드는 데에 이 두 가지 학이 제일 필요하다 그 말이오. 그 다음에는 경영학과를 좀 가치 있게 봐요. 경영학과도 여기 한국에 있는 것은 경제 경영학과뿐이오. 경제 경영학뿐인데, 이제 아마 다른 데서는 경제 경영학이 아니고 사회 경영학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이 아마 다른 나라에는 내가 있다는 말 들었는데 이러니까, 우리는 이런 이치를 깨닫고, 우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나 이 시험 이것은 무정한 시험이 아니고, 무정한 시험이 아니고 사랑의 시험이라 그 말이오.

자, 벌과 징계와 다른데 우리는 하나님이 여러가지 어려움을 이렇게 주는데, 어려움 닥치는 그것이 그거 뭐입니까? 어려움 닥치는 그것이 그 징계입니까 그게 벌입니까? 징계나 벌이나 매도 꼭 같고 형도 꼭 같습니다. 그러나 징계라 하는 것은 소망을 가지고 그 유익되게 하는 것이고 벌이라 하는 것은 심판적이라 그 말이오. 이 심판적인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거는 그만치 두고,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서 사십 일을 금식하고, 밤낮 금식하신 후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 덩이가 되게 하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제 예수님이 여기서 세 가지 시험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돌로 떡되게 하라 그 시험받았고, 또 둘째로는 '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그라면 성경에 기록한 대로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 가지고 네 발을 받들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요 성구를 딱 이용하면서 그 시험을 했고 또 셋째로는 높은 산에 데리고 올라가 가지고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이면서 나한테 엎드려 절하면 내가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또 이렇게 시험하고, 세 가지 시험을 했습니다. 시험을 할 때에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홀로 그만 섬기고 그에게만 경배하라 했다. 그만 섬기고 경배하라 했다' 이러니까 그만 마귀가 달아나고 천사는 와서 수종들었습니다. 요 세 가지 시험했는데, 고걸 그러면 근본까지 말할라면 여러분들이 잘 모르니까 요 세 가지 시험한 것을 간추려서 간단하게만 말하겠습니다.

첫째 시험은 예수님께서 사십 일 동안을 금식을 하시고 나니까 배가 되게 고팠다 말이오 배가 되게 고프니까 마귀란 놈이 시험할 때에 '이 돌로 떡되게 해라' 그런 고걸로 가지고 시험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때 로마의 식민입니다. 로마의 식민지로서 식민 정권하에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참 경제에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정권을 돈을 주고 사 가지고 세금을 얼마든지 받아 가지고 상납하고 난 다음에 제가 먹기 때문에 백성들이 먹고 살 것이 없을 만치 마구 짜냈습니다. 이러니까 이스라엘의 경제가 심히 극도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그때니까 그 예수님이 되게 시장하시니 마귀란 놈이 그 기회를 타 가지고 와서 '봐라 네가 사십 일 동안 금식하고 보니까 이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냐? 이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경제에 타격을 만나 가지고 곤고하니까 네가 이스라엘을 구원할라고 온 구주거들랑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경제 문제를 해결해 줘라 해결해 줘서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도록만 해 주면 너를 구주로 알고 모두 다 믿을 터이니까 경제 문제부터 해결해 줘라.' 하는 그런 시험을 마귀가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배고픈 그 시장하신 것을 알고 떡 와 가지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로 떡되게 하라' 예수님이 돌들로 떡되게 하는 그것은 뭐 쉽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돌을 '돌아 떡이 되라' 한마디면 전부 떡 다 된다 그거야.

온 천하가 다 떡덩이 되라면 떡덩이가 될 수 있다 말이오 이런데, 이러니까 예수님이 시장하신 그 기회를 틈 타 가지고 '이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냐? 시장해 보면 알지 않느냐? 이러니까 이스라엘 구원하는 데는 경제 문제를 해결해 줘야 된다 이러니까 이 돌들로 떡이 되게 하라.' 요렇 유혹을 준 것입니다. 그 유혹을 줬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때 말씀하시기를 '기록하였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으므로서 마귀가 패전을 했습니다.

요게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거는 뭘 가르치느냐 하면 마귀란 놈은 언제든지 우리를 시험할 때에 우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제일 요긴하고 필요하고 중요하고 없어서는 안 될, 참 요긴하고 필요하고 중요한, 이 중요한 요것을 가지고 꼭 시험을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요것을 요게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시험할 때에는 제일 요긴하고 중요한 것이 뭐인지 알아요 밥이 중요할 때에는 밥 가지고 시험하고, 돈이 중요할 때에는 돈 가지고 시험하고, 병이 중요할 때는 병 낫는 것 가지고 시험을 하고, 자기가 지금 죽을 지경에 들었으면 그 생명이 살아나는 그것이 필요할 때는 생명 살아나는 그것을 가지고 시험하고, 어짜든지 마귀가 우리를 시험할 때에는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 제일 중요한 것 고걸 가지고 딱 거머쥐고 '요게 얼마나 중요하냐? 요게 중요하니까 요것을 네가 마련해야 되지 않느냐?' 고걸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네가 지킬라고만 할 게 아니라 요거 마련해야 되지 않느냐!' 하는 그런 시험이 우리에게 오는 것이, 요 것이 마귀가 항상 우리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가 우리 시험하는 것은 우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제일 요긴하고 필요하고 중요한 고걸 가지고 우리를 유혹시킵니다.

유혹시켜서 '네가 요것을 차지할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네가 어겨야 회고 하나님 말씀을 지킬라 하면 요걸 차지하지 못한다.' 요래 가지고 우리를 유혹을 한다 그거야.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 넘어갑니다. 넘어 가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사십 일 동안 단식하시고 시장하실 때에 떡을 가지고 말했지만 예수님은 그 시장하신 데에 마귀란 놈이 '음식이 얼마나 중요하냐? 이 식물 이걸 네가 아무래도 이렇츰 중요하기 때문에 네가 이 식물을 많이 마련해야 이제 인간들을 구원한다' 그렇게 유혹을 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하였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이렇게 대답을 해서 승리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설교할라 하니까 못 알아듣는 사람뿐이라서 도무지 이거 뭐 처음 오는 사람도 대번 알아들을 수 있는데 이 모두 뭘 잘 어째 배웠는지? 여기서는 뭘 가르치느냐 하면 마귀는 우리에게 제일 요긴하고 필요한 그것을 알기 때문에 언제든지 시험할 때는 요때는 요 사람에게 뭐이 제일 요긴하다. 요 사람에게는 제일 뮐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제일 필요성, 중요성, 갈급성, 또 요긴성, 제일 좋아하는 것 그것을 딱 들어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어기도록 할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귀의 유혹입니다. 마귀의 유혹은 잘 알아요. 그러기 때문에 마귀란 놈이 그 환경 사람들을 통하고 요렇게 해 가지고 제일 요긴한 그것을 가지고 네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요거는 내가 뺏든다. 요걸 뺏든다 하나님 말씀을 어기면 요거 내가 주마.' 요거 가지고 시험을 하기 때문에 그때 사람들이 미혹을 받는데, 이 첫째 우리에게 뭘 가르치는고 하니 사람이 아무리 요긴한 거라도, 요긴한 것이라도 하나님의 말씀 만치 요긴한 것은 없다.' 하는 것을 첫째 이 시험에서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십 일 단식에서 배가 고프니까 식물이 그렇게 요긴한 그것을 기회를 나 가지고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안했는데, 그거는 예수님이 단독 독단으로, 자기 주권으로, 자기 능동으로 요런 일 하도록 했으니까 예수님이 그말 듣고 '그 참 떡이 필요하다' 떡이 필요하다고 떡이 되라 하면 떡은 됐는데 그만 예수님은 그만 패전해 가지고 그만, 그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에 배고프시고, 또 그 마귀가 떡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이렇게 말을 하고, 여게 말하기는 간단하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로 떡덩이 되게 하라' 이렇게 간단하게 써 놨지만 여기 안 쓴 그 내용은 많이 있다 말이오.

많이 뭐 있느냐? '네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 이스라엘을 구출할라고 온 이스라엘의 메시야가 되고 이스라엘의 구주로 왔거던 이스라엘은 이 경제에 타격이 헐마나 가지고 있느냐? 경제에 타격을 이렇게 받고 있으니까 경제 문제부터 해결을 해 줘야 구주로 인정하고 다 믿게 될 터이니까 경제. 문제를 해결해 주라,' 하는 그것을 지금 마귀가 말하고 이랬는데, 요게는 간단하게 요래 쓰였다 말이오.

쓰였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때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아,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요렇게 말씀을 했기 때문에 승리를 했습니다. 그러면, 승리한 예수님은 당신에게 필요하고 요긴한 것, 어떤 요긴하고 중요한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고 요긴하다. 그러기에, 우리 기독자들은 자기에게 어떻게 필요하고 중요한 것,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더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는 요것을 굳게 잡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지금 죽을 지경에 빠졌어. 사경에 빠졌습니다. 사경에 빠져 가지고, 사경에 빠져 가지고 살아나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경에 빠져 가지고 살아나는 길이 있는데 이 살아나는 길을, '네가 이 살아나는 길로서 살아날라고 하면 요럴 때는 요 말씀만 어기면 너는 살아날 수 있다. 그 이제 죽음에서 살아나오는 그때에 요 말씀만 어기면 살아 나올 수가 있다. 또 지금 네가 경제에 빈곤함을 당하고 있는데 요 말씀만 어기면 너는 큰 재벌가가 될 수가 있다. 또 네가 지금, 네가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데 네가 정권 잡고 있는 이걸, 지금 네가 지금 정권을 잡을라면, 네가 정권을 잡을라면 네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되는 요런 일을 하나 하면 대번 네가 정권을 잡을 수가 있다. 네가 지금 큰 낭파로서 네가 절단날 수 있는 큰 일이 생겼는데 요때는 네가 성경 말씀을 떠나서 요렇게 한 가지만 하면 그 어려움을 면할 수가 있다.' 요렇게 마귀 그놈이 시험하는 것이 우리를 시험하는 것이라 그 말이오. 이거 도무지 통하지 안하는데. 여러분들이 못 알아 듣는 것 같애.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 생명적으로 요긴한 일이 많고, 경제적으로 요긴한 일이 많고, 자기 출세적으로 요긴한 일이 많고, 입신 양명적으로 요긴한 일이 많고, 가정적으로 요긴한 일이 많고, 사회적으로 요긴한 일이 많고, 공명적으로 요긴한 일이 많고, 또 자기의 쾌락적으로 요긴한 일이 많고, 요긴한 일이 많다 말이오.

요긴한 일이 많은데 반드시 요긴한 일이 있을 때 그때는 마귀란 놈이 '요 요긴한 것을, 요것을 네가 취할라면 지금 요렇게 범죄해야 된다. 요 요긴을 취할라면 요렇게 하나님 말씀을 요 말씀만 저버리면 요걸 취할 수 있다.' 똑 요렇게 들이다 붙인다 말이요, 마귀란 놈이. 왜? 그거는 안 믿는 사람들은 전부 다 제것이기 때문에 제가 할 권리가 있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갖다 붙이는데, 그러니까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평소에는 꼭 지키고 하고 싶지만 이 요긴한 것이 있으니까 이 요긴한 것과 하나님 말씀과 둘을 비중을 달 때에 '아무래도 요긴한 이것이 하나님 말씀보다는 그래도 말씀을 잠깐 어겨도, 요긴한 이거는 한번 잃어 버려 놓으면 평생 못 찾을 것이고 하나님 말씀은 오늘 어기고 또 내일 지키며 되지 않느냐? 이래 가지고 요긴한 이것보다 하나님 말씀은 중하게 여기지 안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한번 저버려도 뒤에 지키면 되지 않느냐? 해서 하나님 말씀보다 요긴한 것 이것을 중점적으로 여겨 가지고 이걸 취하기가 쉽다 그 말이오. 취하기가 쉬운데 그것을 여게 하나 알리기 위해서 했다 그 말이오. 우리도 뭐 배고픈 것보다야 뭐 더 생명 문제가 있지 안해요? 생명 문제도 그와 같은 것이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는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으로만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이렇게 하신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종류의 요긴한 일이라도 요긴한 일일지라도 요긴한 일 고걸 취할라고 하면 하나님 말씀을 버려야 되는데, 어떤 요긴한 것이라도 네가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취할 것이 없다. 어떤 요긴한 것보다 그때에 더 무한히 요긴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현실에서 요긴한 것이라고 해서 요긴한 거 그것을 잡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자가 되지 말아라. 네게 죽음에서, 죽음에서 네가 살아나는 것은 얼마나 요긴하냐? 죽음에서 살아나는 그것이야 얼마나 요긴하냐? 아, 죽음에서 벗어 나오는 거야 얼마나 요긴하냐? 죽음에서 살아 나오는, 그 살아 나오는 그 요긴한 것보다 그때에 살아날라고 하면 하나님 말씀을 어겨야 되고 그때 이제 하나님 말씀 안 어길라 하면 죽어야 되고 할 때 그때에, 죽음이냐 하나님의 말씀이냐, 이제 죽음에서 살아 나오는 것이냐 하나님 말씀이냐, 살아 나오는 것이냐 하나님 말씀이냐 할 때에 사람들이 살아 나오는 그것을 하나님 말씀보다도 중하게 여겨 가지고 이제 살아나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을 버려나, 살아 나온 그것보다도 하나님 말씀은 몇 억 억만 배가 아니라 무한히 가치 있는 것이다 하는 요것을 요게서 지금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라면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그러면 떡이 필요 없다는 말 아닙니다.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그러면 하나님의 모든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했으니까 이 말씀은, 떡은 필요가 있다 말입니까 없다 말입니까? 있다 말입니까 없다 말이오? 없다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없다 말은 아니지요 그런데,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대로 살면, 살면 네가 떡은 하나님께서 적절하게 너에게 해 주신다. 근근히 사는 것이 필요하면 근근히 살게 해 주시고, 잘 먹고 사는 것이 필요하면 잘 먹게 해 주시고, 굶는 게 좋으면 굶게 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것은 너에게 전지 전능의 사랑의 주님이 너에게 적당하게 하시기 때문에 너는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잡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복종하는 요 일을 해 나가면 떡 문제 그런 것은, 죽음 문제나 그런 것은 하나님께서 너희를 책임 지워서 적절하게 해 주시지만 말씀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면 너는 절단 난다 하는 그것을 여기서 가르쳐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마귀가 우리를 시험할 때에는 제일 요긴한 것 고걸 가지고 시험합니다. 그러기에, 그 신앙에, 신앙에 늘 경험 있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무엇이든지 '요긴하다. 아, 이거는 참 요긴하다. 이거는 좋다 이거는 보배다 이거는 참 하나님의 축복이요 참 요긴하다. 중요하다.' 그럴 때에 성도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는지 아십니까? 그럴 때에 성도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겠습니까? '아, 요거는 중요하다. 요게는 참 좋다 요게는 참 필요하고 좋은 것이다. 좋다.' 그럴 때에는 성도들은 생각을 어떤 생각을 가지시는지 압니까? 저 OOO조사님, 못 알아들어.

엉뚱한 소리하는구만, 엉뚱한 소리. 성도들이 무슨 마음을 그때 가졌을까, 가질까? OOO장로님, 예? 예? 두려움? 아직 그라니까 그래. 요거는 모두 멀어요. 그럴 때에는 이삭이 말이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백 세에 낳아 가지고 좋아하지 않습니까? 이삭을 참 사랑했습니다. 참 사랑하고 좋아하니까 좋아할 때는 반드시 요게 하나님의 시험이 온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됩니다. 성도들은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뭣이든지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있으면 아, 요 일에 하나님의 시험이 반드시 온다 고걸 미리 알고 대비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험에 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시험을 잘 통과해야 그것이 소화 가 잘 되고 그게 참말로 행복되지 그게 아무리 좋은 거라도, 좋은 것이라도 이게 좋으니까 좋다 기뻐만 하고 있는 사람은 다 떨어지고 맙니다.

반드시 좋으면 좋은 것 거게 대해서는 하나님이 시험이 있습니다.

시험이 있는데, 시험이 무슨 시험이 있는고? '네가 그렇게 좋아하니 보자' 그 좋아하는 그것과 하나님의 말씀과 비중을 달아서 하나님이 딱 그렇게 현실을 만들어 줍니다. 아, 좋은 것 이것을 위할라 하면 하나님 말씀을 어겨야 되겠고 하나님 말씀 안 어길라면 이걸 버려야 되겠고 그런 시험이 올 것을 미리 알고 함부래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뭐 좋은 일이 있으면 '아, 이 일에 대해서 시험이 오지. 시험이 이제 오지. 곧 오지 곧 오지' 기다리고 있어. '곧 오지. 곧 오지.' 딱 오면, 미리 기도 딱 했기 때문에 딱 오면 그때 하나님 말씀대로 탈칵 행하고 거게, 요긴 한 거게 피동되지 많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그 요긴한 것에게 축복을 해 주십니다. 이래 가지고, 이삭에게 축복을 해 가지고 이삭은 그 제단 위에 번제로 드리기 전과 그 후와는 아주 다릅니다. 그후에는 이삭 이 참 보배로운 축복을 받아 가지고 굉장한, 천하를 구원할 수 있는 그런 보배로운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걸 지금, 가르쳐야 되겠는데, 이걸 모르는대요. 이걸 아무래도 가르쳐야 되겠는데, 뭐 시간은 다 됐지. 여러분들이 여러 번 읽어 보십시오. 이 첫 시험은, 제일 처음에 시험은 뭐이냐?' 사람이 요긴한 것을 거머쥐 그 마귀가 시험한다 하는 그것도 있는데, 그러면 사람에게는 어떠한 요긴한 것이라도, 어떠한 요긴한 것이라도 말씀이 더 요긴하냐, 이 피조물 가운데에 어떤 게 요긴하냐? 피조물 가운데 어떤 것이라도, 생명이든지 죽음이든지 뭐이든지 피조물 가운데에 어떤 요긴한 것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더 요긴하다 하는 것을, 그것을 여게 말씀하신 그 시험입니다.

이래서, 이제 그거는 여러분들이 모르니까, 너무 깊으니까 외부의 껍데기를 말해 주겠습니다. 그 속에 알맹이는 그걸 말해야 통하지 안하는구먼 요 사람이 물질을, 물질이 있어야 된다. 물질이 있어야 된다는 그것을 마귀란 놈은 자꾸 권고합니다.

개척 교회하는데 물질이 있어야 된다. 교회도 물질이 있어야 된다. 뭐 있어야 된다. 자꾸 물질에다가 가치를 두고 물질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중점을 두기를 어디다 중점을 두느냐? 물질에다가 중점 두는 그것이 이 첫째 시험입니다. 이건 껍데기입니다. 이거 이것도 알아야 돼 이것 모르니 이걸 알아야지. 물질에다가 중점을 두는, 하나님의 그 말씀에다가 중점을 두느냐, 어디다가 중점을 두느냐? 물질에다가 중점을 두느냐 하나님의 말씀에다가 중점을 두느냐?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다가 중점을 두고, 마귀는 물질에다가 중점을 두라고 그렇게 말을 했고, 또 둘째 시험은 이거 껍데기 말합니다.

둘째 시험은 자,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오면 거기서 안 죽고 턱 살아나면 '하, 권위 있다. 그건 참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는 메시야인가 보다.' 이렇게 하는, 인간의 권위 인간의 권위! 실력이냐 인간의 권위냐 인간의 실력이냐, 인간의 권위냐 인간의 실력이냐, 인간의 권위냐 인간의 실력이냐, 하나님에게 피동이냐, 요 두 가지 중점을 어디다가 두느냐 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하니까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그말은 하나님이 성전에 뛰어 내려 오라 해서 뛰어내려오면 하나님께 순종이지만 뛰어 내려 오라 하지도 안하는데, 권위와 위엄을, 시위를 보이기 위해, 권위를 보이기 위해서, 실력을 보이기 위해서 하나님이 시키지 안한 일을, 성전에서 뛰어내려오면 뛰어내리면서 그래도 하나님이 들어줘서 돌이 부딪치지 아니하리라 하는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지 안하고 제가 주관적으로 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래도 해 주지 않겠느냐 하니까 하나님을 자기에게 피동시킬라고, 뛰어내렸는데 하나님이 그때 받들어 주니까 하나님이 피동되고 자기는 그 능동되는 것 아닙니까? 능동되는 것인데 고걸 '네가 이제 이 실력을, 실력을 갖추는 것, 뛰어내리는 이런 실력을 사람들에게 위엄을 보여라. 시위를 보여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를 받들어 보호해 주실 자이다.' 이렇게 말할 때에 예수님이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하지. 안하고 네가 능동으로 행동하면서 하나님이 너를 따라서 무엇을 해 주리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하지 말아라 하니까 마귀가 패전을 했습니다.

그게서는 뭣을 말하는 것인고 하니 사람들이 자기가 무슨 어떤 권세나 어떤 실력이나, 권세나 실력이나 무슨 지식의 실력이나 돈의 실력이나 정권의 실력이나 어떤 뭐 무슨, 무슨 뭐 과학의 실력이나 어떤 실력, 경제 실력이나 어떤 실력이나 이제 실력이 있어야, 마귀란 놈은 이 실력이 있어야 된다 이제 뛰어내려서 이제 실력을 보여야 뛰어내리는, 그거 그 뛰어내려 안 죽으면 실력 아닙니까, 그거? 능력 아닙니까? 이제 이렇게 실력의 권위를 보이고, 권위를 보이고, 이렇게 위엄을 보이고, 이렇게 이 실력을 보여 줘야 모든 백성들이 아, 메시야라 하면서 이래 쭉 따를 것이 다 마귀란 놈은 실력을 주장해 가지고 예수님으로 실력을 자꾸 이같이 지금, 실력 위주, 실력 위주로 하라고 지금 이렇게 말할 때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는 것은 실력보다도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그것이 더 능력 있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 시험은 인간들은 이 모든 피조물의 실력을, 피조물의 힘을, 이것을 크게 여기고 예수님께서는 피조물의 그 힘보다도 하나님에게 네가 능동하지 말고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순종하는, 피동되는 그게 더 힘 있다. 천하 힘을 다 뚤뚤 뭉치는 것보다도 하나님에게 피동된 그 실력이 더 강하다 하는 것을 그것을 예수님이 둘째 시험에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또, 셋째 시험에 말씀하시는 것은 '높은 산에서 네가 나한테 엎드려 절 하면 만국과 만국의 영광을 다 너에게 주겠다' 이라니까 예수님께서 '홀로 그만 섬기고 그에게 경배하라 하였느니라. 그만 경배하고 그만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하니까 마귀는 도망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이 셋째 시험은 뭐이냐? 천하에 있는 것을, 천하에 있는 것을 네가 다 차지하는 이것이, 차러하는 이것이, '천하의 것 다 줄께. 나 한테, 하나님에게만 경배하지 안하고 나한테 절 한 번만 하면 천하 모든 것을 너에게 다 주겠다.' 이라니까 주님 말씀하시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홀로 그만 섬기라고 하셨다' 이라니까 마귀가 떠나갔습니다. 요거는 뭘 말하는고 하면 이 세상에서 어떤 것을 차지하는 것보다, 이 세상에서 어떤 것을 차지하는 것보다 어떤 것을 차지하는 것보다 하나님 섬기는 것이 더 가치 있고 존귀하다 그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것도 너무 거리가 멀어서 모르는데 아, 이거 참 오래 좀 공부를 해야 되겠습니다.

셋째 시험은 온 천하 만국을 차지하는 것 그것보다도 홀로 한 분이신 그분께 경배하고 그분 섬기는 그것이 더 가치 있고 성공이요 위대하다. 그분 한 분만 섬기면 다 그거는 다 되지만, 다 되지만 그분 내버리고 이거 암만 다 차지 해 봤자 소용이 없다 그 말이오, 또 온 천하 실력을 다 가졌다 할지라도 그분에게 피동되는 그거 없으면 다 헛일이오. 그분에게만 피동되면 천하 것 차지하나 안 차지하나 그거는 다 '내것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거 너무 심령이 참 어둡고 그런데, 새벽 기도 좀 나오십시오. 내일 새벽부터 이 말씀을 계속하겠습니다. 지금 아주 껍데기를 지금 말해도 모르는데, 아주 그만 너무 얼토당토 안한 소리같이 모르는구먼. 나도 당체 막혀서 말이 안 나가는데.

나는, 이 말씀을 가지고 오늘 종일 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전에도 설교를 몇 번 하기는 했는데, 의례히 지금 잘 알아듣지 했는데 양성원 학생들도 전연히 못 알아듣는구먼.

그러면, 이제 그거 세 가지 말하니까 가서 좀 많이 연구를 하십시오. 첫째는 마귀란 놈이, 우리 믿는 사람들이 물질이 있어야 뭐이 된다. 물질 위주로 마귀가 유혹을 하고, 하나님은 말씀 위주로 우리를 지도하고 요것이 다릅니다. 또, 마귀란 놈은 이제 인간의 모든 피조물의 실력 위주로 자꾸 이제 우리를 자꾸 유혹을 시키고, '실력이 있어야 돼' 실력 위주로 유혹을 시키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에게 피동 위주로, 하나님에게 순종 위주로, 내가 뭐 시험할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라 하면 하는 것이지 네가 백지 너 혼자 능동으로 해 놓고 하나님이 도와줄 거다.

하나님을 너에게 피동 시킬라 하는 거 말고 네가 하나님에게 이제 피동되는, 천하 실력보다도 하나님께 피동되는 그것이 더 실력 있는 것이다. 온 천상 천하를 다 차지하는 것보다도 하나님 한분을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 더 가치있고 실력 있는 것이다. 이걸 여러분들이 무슨 말인고 모르는데 이걸 가서 좀 잘 새김질 해 가지고, 이거 알아야 되지. 이래 가지고는 도가 너무 멀어서 변화가 안 돼요.

그러니까 만날 장 뻘뻘 떨고, 장 세상 사람 노력만 하고 이 세상을 이기지 못하지요.

다 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이 사랑하는 남녀 성도들이 여게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답 답해 하고 있사오니 무한하신 성령님의 이 지혜의 말씀을 유한한 저희들이 어떻게 단독 이를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까? 성령님의 감화가 아니면 깨달을 수가 없다는 것을 저들이 확실히 압니다. 주님께서 성령으로 감화 감동시켜 주시고 진리로 역사하사 주님의 피공로를 힘입을 수 있는 지혜가 있게 하시고 주님의 피공로로 인하여 저들에게 영감의 은혜가 충만케 하사 이 도리를 밝히 깨닫고 이 도리대로의 사람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새벽 기도 어짜든지 다 나오도록 하십시오 못 알아 들으니까, 말을 해 도 못 알아 듣는데 어째 실행할 수 있겠습니까? 실행은 그건 참 너무 거리가 멉니다.

이러니까 알고 원하고 원하고 해도 그 실행이 어려운데 알아 듣지도 못하는데 무슨 실행을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내일 아침부터 새벽 기도 어짜든지 다 나오도록 하십시오 나오면 여기 내일 아침에 이 말씀을 하나씩 그저 또박또박 그렇게 가르쳐서 다 알도록 가르칠 터이니까 새벽 기도 꼭 계속해서 나오도록 하십시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새벽 기도 다 나와요. 나와서 배워야 되지 모르면 안 됩니다. 뭐 세상 다 차지하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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