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절


선지자선교회 1981년 12월 30일 수새

 

본문 : 벧후 3:10-12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우리는 이 현실 속에 살고 있지마는 현실에게 파뭍히면 죽습니다. 현실을  다스려야 하고 또 지켜야 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현실에서 제일 거리 먼 데가  어데인고 하니 자기의 종말 시간, 우주의 종말 시간이 거리가 멀고, 또 현실에서  지극히 높고 권위있는데는 어디인고 하니 구속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현실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면 모든 현실을 다스려, 다스려 잘 이용할 수 있고  또 현실에서 제일 먼 거리 자기의 종말과 우주의 종말 거기를 왔다 갔다 자유로  왕래하게 되면 현실에서 자기의 할 일을 바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실은 어떤 것이 현실인가? 현실은 무엇 무엇이 합해 가지고 현실이  되는가? 현실은 시간과 공간과 모든 만물 그것이 합해서 자기의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시간으로 말하면 다른 시간 다 내두고 현재라는 시간, 현재라는 시간과  공간으로 말하면 뭐 이 우주의 넓은 공간들이 많이 있지마는 자기 현실은 자기가  현재 있는 그 장소 그것과, 자기가 이 현재 있는 그 장소에 관련되어 있는 만물  그 만물은 사람도, 관련될 때 있고 안될 때 있고, 또 짐승도 모든 이 물건도, 또  이런 식물 동물 무생물 또 이 자연의 역사, 비가온다, 눈이 온다, 춥다 덥다, 또  사건, 지금은 전쟁이 났다, 자기에게는 큰 어려움을 닥쳤다 자기에게는 기쁜  일을 닥쳤다, 좋은 경치를 만났다 뭐 이런 것이 다 합해서 자기의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실이라면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면 현실에 어떨 때는 그 현실이 여러가지로 종류가 더 많은 종류로  만들어진 현실도 있고 좀 종류의 수가 적은 수를 가지고 만들어진 현실도 있고,  또 어떤 현실은 참 흉악하고 징그러운 그런 것으로 만들어져 있는 현실도 있고,  어떨 때는 너무 좋아서 못 견딜만한 그런 재미있는 현실로 만들어진 때도 있고,  아주 위험천만 해서 빠지면 죽는 그런 그 큰 미혹으로 되어 있는 그런 현실도  있고, 너무 두려워 떨려서 기절할 만한 그런 현실로 만들어져 있는 현실도 있고,  그렇지 않습니까? 현실이라는 것은 그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현실에서 우리 할일이 제일 귀한 일이 뭐인고 하니, 첫째, 둘째,  셋째 것을 말했는데, 우리의 할일 중에 제일 귀한 일은 어떤 것인고 하니 거룩한  행실과 경건 이 두 가지가 제일 가치있는 일입니다. 우리 현실에서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 이 두 가지가 제일 가치있고 귀중한 일입니다. 이것만 현실에서  만들어 놨다고 하면 이것은 참 그 시간에도 자기에게는 다른 사람에게는 다  구원이 되어지는 일이요 하나님께 영광되는 일이요, 무궁세계 가서는 더군다나  더 존귀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룩한 행실은 어떤 것이 거룩한 행실인가? 거룩한 행실은, 자기 현실에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되는 길이 열도 되고 어떨 때는 참 생각하면 백도 될  수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령하시고 요구하시면 하나님의 뜻,  자기 현실에 거기에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이래라 저래라  시키시는 대로 하는 그것이 거룩한 행실이 되는 것입니다.

 경건이라는 것은, 자기가 거기서 옳고 바른 일을 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거룩한 행위는 되겠습니다. 거룩한 행위는 되어도  그것이 경건은 안될 수도 있고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거룩한 행위를 했는데 거룩한 행위를 한 중심이, 동기가, 목적이 어디  있는고 하니 자기를 구속하신 자기 주를 위한 동기에서, 그의 구속을 받아 그의  것이 된 것으로 그를 위해서 한 거룩한 행실이라면 비로소 경건이 되는  것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뜻대로만 하면 거룩이 되는 것이요, 경건은 하나님의 뜻대로  한 그것이라도 구속하신 주를 위해서 한 것이어야 경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룩한 행실이 된다 할지라도 그것도 별별 동기와 목적에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 보기에는 거룩한 행실이라면 꼭 같이 보여지지마는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도 있고 하나님보다 자기를 뭐 어떻게  복되게 유익되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라든지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거룩한 행실 위에 그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을, 구속하신 주님을 위해서  한 그것이라야 경건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말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거룩한 행실이나 경건을 할 때에 크고  작은 일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자기 가정에 있으면서 '이  시간에는 아마도 좀 청소를 해야 되겠다. 또 이 시간에는 기도를 해야 되겠다.

이 시간에는 밥을 지어야 되겠다. 이 시간에는 주부 같으면 가족들의 빨래 벗어  놓은 것이 있으니까 이것을, 빨래를 해야 되겠다.' 그것도, 뭐 이거 하나 저거  하나 다 같다 싶지마는 그런 게 아니고 그 때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 말이오.

 빨래 하라 할 때에 빨래를 하지 않고고 기도를 한다든지 또 밥을 한다든지 하면  그거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났다 그 말이오. 그러기에 믿음으로 하지 않은 것은  다 죄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가정에 있는 한 여인으로서 이래 있어도 하나님의 뜻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거요. 또 자기가 어린 학생이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말이오. '지금은 자거라.' 자야 되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일 때도 있고 지 금 나가서 뛰어 놀아야 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일  때도 있고 지금은 숙제를 해야 되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일 때도 있고, 지금은  아버지 와 어머니의 심부름을 해야 되겠다 그것도 하나님의 뜻일 때도 있고,  지금은 기도해야 되겠다, 성경봐야 되겠다, 예배 드리러 가야 되겠다. 그거 다  하나님의 뜻이 세밀히, 받음으로 하지 않은 것은 죄라 그말은 하나님께 순종을  하지 않은 것은 죄라 그말인가? 그말 입니까? 하나님의 시키시는 대로 하지 않은  것은 죄라 이러니까 그 사람의 움직이는 것, 마음의 움직이는 것이나 또 몸의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그 지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성경에 말해 놨습니다.

 이러니까 그런 일은 해봤자 사소한 일로 우리가 여기지 않습니까? 사소한  일이고, 이 사람이 이제 정치가입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이 전쟁할 이  준비를 해 가지고 지금 모든 군인들을 동원을 시키야 되겠다. 또 지금은 누구를  보내 가지고 아무 나라에 파송시켜 가지고 국교를 이것을 해야 되겠다. 또  지금은 우리나라에 이 산업에 대해서 산업된 그 관련자들을 모아 가지고 이것을  타협을 해봐야 되겠다, 이거 명령을 해야 되겠다.' 그거는 참 아주 큰  일이겠습니다.

 큰 일인데, 그러면 가정에서 하는 그 일과 국가에서 하는 일, 자기의 위치가 또  만일 대학 총장이 되어 가지고 있다면 그 총장이, '아, 이 시간에는 지금 어떤  것을 내가 연구해 가지고 이것을 교수들에게 발표해서 이런 교육의 이념을  가지고 해야 되겠다. 또 저런 것을 중단을 시켜야 되겠다. 학생들을 어떻게 좀  한번 단속해야 되겠다.' 이런 것은 제법 큰일이고, 그보다는 국가에 정권을 잡은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은 참 큰일이겠습니다. 가정에서 뭐 밥해야 된다.

청소해야 된다. 빨래해야 된다 하는 이런 것은 작은 일이겠습니다.

 그러면 그 작은 거룩이나 큰 거룩이나 작은 경건이나 큰 경건이나, 그 작은  거룩이나 큰 거룩 그것을 말하면 그 거룩에는 무엇이 거기에 관련되어 있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이 관련되어 있고, 하나님의 뜻이 관련되어 있고, 또 그 뜻대로  하는 것을 원하는 영감이 그 사람에게 관련되어 있고 또 그 일을 못하게,  거룩하면 지금 마귀가 죽는 일이기 때문에, 절단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 마귀가  방해를 하는데, 거룩한 그 행실을 할 수 있는 영능이, 할 수 있는 성신의 능력이  거기에 관련 되어 가지고 있고, 또 거기 그 사람이 관련 되어 가지고 있고, 또  그 일이 관련되어 가지고 있고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그거 잘 아십시오. 거룩한 행실이라 하면 작은 거룩한  행실이나 큰 거룩한 행실이나, 국가를 경영해서 전 국민을 이렇게 책임지고 하는  그런 거기에 대한 거룩한 행실이라면 큰일 아닙니까? 큰 거룩한 행실, 또  가정에서 사소하게 이런 일 저런 일 한다고 하면 그거는 조그만한 아주 작은  거룩한 일 아니겠소?  그러면 일이 사람 보기에 큰 일이 되고 작은 일이 되고 그 일에 대해서 크고  작은 차이가 참 크게 많습니다.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알맹이는 어찌 웜니까? 알맹이가 뭣뭣 있지요? 큰 거룩한 일이나 작은 거룩한  일이나 거기 하나님이 관련돼 있는데 이 하나님이 큰 하나님 작은 하나님입니까  같은 하나님입니까? 같은 하나님 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뜻이 있는데 하나님의 뜻이 큰 뜻이 거기에 들어  있습니까 작은 뜻이 들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뜻이, 큰 뜻이든지  작은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지요. 그러면 거기에 또 그 사람이 그렇게 하고 싶은 그 마음, 그 마음이  그 속에 들어 있는데 그 마음이 성신의 감화의 마음입니까 마귀 마음입니까 제  마음입니까? 성신의 감화의 마음이지요. 성신의 감화의 마음이 또 거기에 같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면 또 그대로 하려고 하면 참 방해하는 일 많은데 그 할 수 있는 권능이 그  안에 들어 있는데 그 권능이 큰 일 작은 일 들어 있는데 그 권능이 같은  권능입니까 크고 작은 차이있는 권능입니까? 그 권능이 어떤 권능입니까? 그  권능이 차이가 있습니까? 그 권능의 실력이 차이가 있습니까 그 실력이 차이가  없습니까? 실력의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 권능의 실력이 차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차이없습니다. 하나님의 권능 아니오? 하나님의 권능이니까 여기  하나님의 권능 저기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라 그 권능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 지금 이제 말한 거 몇 가지 말했지요? 하나님, 하나님의 뜻, 또 성신에  감화, 성신의 권능 이제 네 가지 말했습니다.

 네 가지는, 네 가지는 크고 작은 이 종류가 다른 종류입니까 한 종류입니까?  하나입니다.

 이건 전능이요 전지요 만능이요 완전이요 하나님이요, 네 가지는 같습니다.

같은데 거기에 남은 요소가 있으면 뭐이냐? 사람, 사람이 큰 사람 작은 사람,  어떤 사람은 대인, 어떤 사람은 참 못난 사소한 사람, 사람, 사람은 크고 작은  게 차이가 있습니다. 또 그 사건에 대해서는 크고 작은 것이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크고 작은 사건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또 자기가 있는 그 자기  있는 배경, 분위기라든지, 이 사람은 가정에서 하고 저 사람은 지금 중앙청에서,  참 백악관에서, 여기서 지금 온 국사와 세계를 의논하고 있는 그 자기있는 그  배경, 분위기, 현실 그것은 커고 작은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차이가  있습니다.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인적은 차이가 있고 사건적으로는 차이가 있고 또 그  배경적으로는 차이가 있습니다. 배경이라면 자기 분위기 그걸 배경이라 하는데  배경적으로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차이는 이 피조물적으로는 차이가 있고 이 안에 있는 네 가지 절대자  완전자 그분에게 대해서는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그 일에 대해서 가치가, 그 안에 있는, 안에 있는 네 가지 거기에  가치가 있습니까 겉에 세 가지 거기에 가치가 있습니까? 녜, 여러분들이 잘  알았습니다. 안에 있는 거기에 가치가 있습니다. 거기에 가치, 그 가치요 그  가치지 껍데기 그까짓 거는 가치가 뭐 별 것 아닙니다.

 이러니까 껍데기 그것을 사람들은 보고 크다 작다, 안에 있는 그 분으로 보고  크다 작다 하는 것을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속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작은 의라 할지라도 그 속에, 국사를 경영하는 그 속에 있는  이 네 가지나 자기 가정에서 사소한 일을 하는 그 거룩한 행실 속에 있는 이 네  가지나 같습니다.

 이러니까 자, 비유컨대 상자가 아주 상자를 집채 무더기만한 상자 하나  왔습니다. 상자를 보니까 상자 속에 상자 들었고 상자 속에 상자 들었고 어떻게  집채만한지 그 속에 이제 비단이 들었고 비단이 들었는데 그 속에 보니까  주먹덩이 만한 보석이 들었습니다. 보석이 들었습니다.

 그 한 뭉텅이가 왔고, 또 한 뭉텅이는 보니까 조그만한 여기에 요새 밀감상자  만한 게 하나 왔는데 그 속에 보니까 밀감상자 속에 또 상자가 하나 들었고 그  속에 또 무엇이 들었고 들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주먹덩이 만한 보석이 하나  들었습니다. 보석이 하나 들었소 또 이거는 상자도 없이 뭘 칭칭 동여서 이런  종이로 똘똘 뭉쳐 가 찬찬 동인 것이 요만한 뭉텅이가 하나 왔어. 하나 왔는데  그걸 풀고 풀고 보니까 그 속에 주먹덩이 만한 보석이 들었습니다. 그 속에  보석은 집채 무더기 만한 궤짝 속에나 또 밀감 궤 만한 궤짝 속에나 똘똘 뭉친  조그만한 뭉텅이, 종이 뭉텅이 속에나 안에 든 보석은 같습니다.

 그러면 그 가치가 어찌 됩니까? 그 가치가 큰 궤짝과 조그만한 그 궤짝과  조그만한 종이 뭉텅이와 그 가치가 크게 차이가 있습니까 별 차이가 없습니까?  별 차이가 없습니다.

 왜? 껍데기 그것으로 가치가 아니고 속에 알맹이로 가치이기 때문에 껍데기  암만 집채만치 커 봤자 그거 크니까 이거 작은 종이 뭉텅이 비교하면 그거  몇백개도 당할 수 있지마는 그거와 이거와 가치가 별 차이가 없고, 그러면 이거  두 개 주고 그거 한 개 바꾸겠습니까? 안 바꿉니다. 이거 한 개나 그거 한 개나  가치가 같다 그 말이오. 그런 게 아닙니까?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거룩한 행실에는 왜 가치가 있느냐 하면 거기에 신적 요소, 신적  요소가 있는 데에서 가치를 정하는 것이지 인적 요소나 이 피조물 요소 그것이  가치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작은 거룩한 행실이나 큰 거룩한 행실이나  그렇게 가치에 차이를 두지 말라 말입니다.

 그것의 가치는 그 속에 하나님이 이제 주장이 됐고 진리가 역사를 하고 성신의  감화와 성령의 권능이 그 속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그래 가치가 있고 큰  것입니다.

 가치를 여기 두면 자기는, '아 이거 뭐 사소한 일 이것을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한다는 그것이 뭐 뭐 해 봤자 몇닢푼치 되나?' 이렇게 사람들은 생각하는데 그  사소한 일이나 일국을 경영하는 그 일이나 그 중량이나 가치는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룩한 행실이라면 크고 작은 것이 없습니다. 가치가 더 있고 덜  있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껍데기에다가 가치를 치중하기 때문에, 큰  일이라고 자기는 어떤 일은 해 놓고 난 다음에 이 일은 참 가치가 있는 일  했다고 우쭐해 가지고 거석해지지. 또 자기는 사소한 일 그거 '이거 해 봤자  이거야 몇닢푼치 되는냐?' 해 가지고 할 마음도 내지 않지, 또 힘을 써서 해야  될 만한 가치성으로 느끼지도 않으니까 하지도 못하지 해놓고 난 다음에도 그  까짓 거 사소한 일로 본다 그 말이오. 거룩한 행실이면 크고 작은 것인  없습니다. 경건이라면 크고 작은 것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우리는 '이거는  큰 거룩한 행실이기 때문에 힘이 많이 들어도 해야 되겠다. 이거는 사소한 일,  해 봤자 거룩한 행실이지마는 사소한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뭐 그렇게 힘쓸  가치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그런 잘못된 마귀의 유혹받은 그 인본적인  생각을 가지고 실패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면 오늘 아침에는 현실이라는 현실을 한번 더 새로 깨닫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의 껍데기는 차이가 있어 인적 요소나 이 모든 물적, 어쨌든지 피조물적인  요소는 차이가 있지마는 그 속에 참 가치인 하나님과 진리와 영감과 영능 그것은  가치가 다 다르지 않고 하나라. 한 가치요 한 권능이요 한 존재라.

 이러기 때문에 마치 비유컨대 보석이 왔는데, 보석 뭉텅이들이 왔는데 큰 집채  같은 궤짝 속에 든 것도 있고 주먹덩이 만찬 그런 조그만한 종이 보따리 속에 든  것도 있는데, 그 속에 알맹이 들어 있는 보석은 같으면 그거는 집채 같은  궤짝이나 조그만한 누룩짝같이 만든 종이 뭉텅이 가치나 그 가치는 그 가치가  보석에 있지 나머지기 그건 다 뜯어 버리고 없애버리고 이러기 때문에 가치있는  그 속에 보석은 꼭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까 껍데기 뭉텅이 크고 작은  거기에 대해서 가치가 논해지지 않는다.

 껍데기는 다르지만 속에 그 가치가 뭉텅이 가치는 같다, 그런 비유와 같이,  우리 거룩한 행실이나 경건은 이것은 껍데기는 다르나 알맹이는 같기 때문에  이것을 깨닫고, 우리는 그러니까 우리가 하기에는 쉬운 그것이 하기 쉬운 것으로  보이지마는 쉽지도 않습니다.

 이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지극히 작은 데 충성된 자는 큰 데도 충성한다.

지극히 작은 불의는 큰 데도 불의하다.' 작고 큰 것이 작은 것이 큰 것이요 큰  것이 작은 것이라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평소에 하기 쉬운 평범한, 하기 쉬운 여기에서 거룩한 행실을  하는 이것은 그 속에 알맹이는 지극히 크고 어려운 것이라도 할 수 있는 그분이  알맹이가 들어 있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이 거룩한 행실 이것을 하는데  연습해서 능숙한 그것은 지극히 큰 거룩한 행실, 천하 인간이 다 달려들어도 할  수 없는 것, 참 제일 어려운 그런 거룩한 행실도 할 수 있는 그 속에 알맹이 이  신적 요소 이 네 가지가 속에 이루어지는 것은 같기 때문에 이것은 가치있는  것이니까 우리가 작은 것이라고 적게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이러니까 그게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지극히 작은 데 노력하는 사람이 지혜있는  사람이오. 이제 거룩한 행실이나 경건에는 그 속에 신적 요소가 몇개 있습니까?  신적 요소가 네 가지 있습니다. 또 이 피조물적 요소가 몇가 지 있습니까? 세  가지. 그러면 이 일곱 가지가 들어있다.

 이 거룩한 행실이나 경건 외에는 없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서 깨달아  가지고 '아, 이치에 맞다.' 꼭 잡으라 말이오. 잡고, 이것을 자기가 잡아 가지고  이 시간에 '아, 이게 맞다. 그러면 나는 이 현실에서 나는 이렇게 살겠다.

살도록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자꾸 자꾸 맞아  가지고 '이렇게 살기를 원합니다. 살게 해주옵소서. 나는 이렇게 이제 살겠다.

살기로 작정했다. 아, 나는 이 시간부터 지금 이렇게 산다. 그만 이 시간도, 이  시간도 또 거룩이 있기 때문에 이 시간부터 산다.' 이렇게 다져 가지고 그  자리에서 떠나야 되지, 말씀을 받고 난 다음에 '이제 들었으니까 간다.' 하면  들었으니까 간다 하니 그 사람은 지식밖에는 안되는 것이니까 지식으로만 있고  변하지 않을 때에는 그 지식은 자기를 교만케 합니다.

 교만케 하고, 그 지식은 어데 쓰이느냐? 그 지식은 자기 행동하는 데에는  쓰이지 아니하고 남 행동하는 것을 비판하고 평가하는데만 쓰여집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이 교만해지고 자기 망한다 그 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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