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하늘과 새 땅은 의인의 것


선지자선교회 1985년 8월 25일 주후 

 

본문 : 베드로후서 3장 11절∼13절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에누리하는 자기가 되지 안하도록 심히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우리 마음은 자꾸만 순응성 있는 마음이요 심히 또 날래고  요동성 많은 그런 마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위와 환경은 수없이 변해  가는데 그 수없이 변해 가는 환경이라는 그 자기 현실이 공연히 있는 것 아니고  다 주님이 우리 구원을 위해서 만들어 주신 것인데 우리는 어떤 그 현실을  닥쳤든지 주님이 우리 구원을 위해서 만들어 주시 현실이요 그 현실로 더불어  우리는 싸움을 싸우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현실에게 지면 나는 현실의  것이 되고 현실은 내 상전이 되어서 그 현실은 다 세상으로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인데. 그러면 나는 세상것이 되고 세상은 내 왕이 돼 가지고 나를 주관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내 구원을 위해서 주님이 만들어 주신 이 사실을  이것도-믿음입니다.- 사실을 믿고 우리가 실로 더불어 싸워서 이기기만 하면  현실은 나의 종이 영원 히 되었고 나는 현실을 인해서 현실을 음식 먹듯이  현실을 먹어 이용해서 현실로 말미암아 우리의 심신의 기능과 영의 기능은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실로 더불어 어떻게 싸우는가? 싸우는 것은 나는 현실에게 지지  안하고 현실에 대해서 내가 자유할라고 그 현실에 대해서 나대로 할라고 히는데  현실은 제대로 하라고 합니다. 현실은 나를 제대로 하라고 현실 제 마음대로 제게  복종해서 제대로 하라고 하고 나는 현실을 대할 때에 나대로 내 자유대로 할라고  애를 쓰는 그 다툼이 그것이 우리의 전투인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나대로 살라고 하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첫째로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를 입은 대속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속을 받은  사람으로 살려고 애를 씁니다. 사죄를 받은 사람이요 칭의 받은 사람이요  하나님으로 더불어 영원한 화친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이것이 내기 때문에  내대로 살라고 합니다. 또 나는 성령으로 중생됐고 진리로 중생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감으로 내가 사는 것이 내요, 영감으로 된 내기 때문에 영감으로 사는  것이 내 자유로 사는 것이요 내가 사는 것입니다. 진리로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요 내 자유로 사는 것입니다. 주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된 나는, 이  세 능력으로 살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내 환경은 이 세 능력으로 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면 세 능력으로  살면 내가 중생된 그리스도인으로 산 것이요, 이것으로 살지 못하고 꺾어져서  만일 셋 이 능력으로 살지 못하고 세상 그 현실에게 못 이겨서 셋을 그 현실에게  빼앗겨 버리고 내가 현실 따라서 현실시키는. 대로 살았으면 나는 현실에 종이 된  것이요 나는 푹은 것입니다. 뭐이 죽었는가? 진리로 된 그 현실의 내가  죽었습니다. 영감으로 된 그 현실의 내가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으로 된 그  현실에의 나는 죽었습니다. 현실에 내가 죽었다고 나는 그것으로써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죽었으나 남은 또 남은 것이 있습니다. 남은 진리로 된 내가 있고  영감으로 된 내가 있고 주님의 대속으로 된 내가 있지만 그것들도 낱낱이 다  싸움을 해서 승부의 그 결정에서 영원히 사느냐 승부의 결정에서 영원히 죽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게 지나간 모든 것은 다 이 세상으로 더불어 싸워서 이겼든지  졌든지 했으니 진 것은 죽었고 이긴 것은 다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 난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투하지 안한 과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지 안할 때 것은  모조리 다 죽었습니다. 세상이 하라는 대로 세상을 따라 살았지, 세상과 대립할  만한 그 생명도 우리에게 없었고. 또 능력도 우리에게 없었던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는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 현실은  주의 피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살아난 나와 이 현실과는 일단 한번 전투가  있습니다. 일단 전투 있는 것이 이것이 현실입니다. 일단 전투가 있어서 이  전투에서 지든지 이기든지 반드시 판정이 납니다. 지면 영원한 둘째 죽음으로  죽었고 이기면 다 영생이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 현실은 진리와 성령과 주의 공로로 살아난 것이 우리 새  사람이요, 그것이 그리스도인이요,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요, 그것이 영생을  가진 자요, 그것이 하나님의 후사가 될 자이요, 그자가 제사장이요 선지자요  왕이요, 그자가 그리스도의 지체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것이 그리스도의 교회요.

또 그리스도의 나라요 그리스도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값주고 산  그리스도의 것이요. 또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영원히 그게만 따라서 피동으로  살아야 될 종인 것입니다. 이래서 과거도 낱낱이 다 전투를 통과한 그 과거기  때문에 과거에는 많은 것이 죽고 많은 것이 살았습니다. 또 현재도 지금 사느냐  죽느냐 하는 전투에서 영원한 생명의 영생을 하든지 그렇지 안하면 둘째  사망으로 영원한 사망을 하든지 둘 중에 하나가 결정되는 것이 현실이요, 우리의  미래가 몇 해가 남았든지 몇 십 년이 남았든지 우리 미래의 그 전부는 현실로 다  되어 있는 것이 미래인데, 그 수많은 미래는 다 현실이라는 토막토막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서 그 현실은 다 전투로 거기서 승리하면 영생하고 패전하면  둘째 사망되어지는 것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현실에서 거기서 나와 또 주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와  이렇게 넷 인데 내 옆에는 또 뭐이 들어 있는고 하니 또 악령과 악성과 악습인  또 셋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왼편에 셋, 오른편에 셋, 나는 가운데 들어있는 나  하나, 그래서 일곱 숫자가 됩니다. 이래서 나는 유한한 자유는 자유지만 이 자유  가지고 우리는 선택을 합니다. 자유 가지고 선택을 해서 내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 생된 그것은 새사람 내요, 또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것은 옛사람  내입니다. 이것은 다, 우리를 살린 그것도. 곧 나를 새사람되게 한 것도 그것이  주인이요, 또 옛사람되게 한 그것도 주인입니다. 우리는 여섯은 다 우리의  주인이요 우리는 여섯의 소유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실 때부터. 지음을 받을 때부터 우리는  진리에게 지음 받은 것이요, 또 영감에게 지음 받은 것이요. 하나님께 지음 받은  것인데 우리는 지음을 받을 때부터 우리는 진리와 동등되는 그런 권위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리에 속하고 영감에 속하고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과  영감과 진리의 소유가 되고 그들은 우리의 주격이 됩니다. 우리의 영육은 다  그들의 소유가 되고 그들은 우리의 주격이 됩니다.

 이랬었는데 에덴 동산에서 우리가 이 자유성을 잘못 택해 가지고 자유성을  가지고 우리의 처음 주격인 이 셋으로 되어 있는 주인, 주격을 배반하고  도적놈으로 그 옆에서 들어와 가지고 간교하게 한 그놈에게 유혹을 받아 가지고  그놈을 주인으로 삼아서 주인을 바꿔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령과 악성과  악습의 것이 되고 그것들은 우리의 주격이 되고 주인공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랬는데,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악령과 악성과 악습인 이것을 싸워서  예수님이 이겼습니다. 이겨서 그것을 완전히 승리해서 이 세 가지는 주님의  소유가 되었고 주님은 그것의 주격이 되어 겼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이 승리한  것을 우리를 대표해서 승리했기 때문에 우리는 법적으로는 벌써 승리한 사람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에서는 우리가 승리했기 때문에 지성  지공법에는 우리를 정죄 할 수가 없고 우리를 자유 해방케 해서 우리는 거기서  해방되어서 죄와 마귀와 사망에 대해서 자유하는 우리가 되어져서 있는 것입니다.

 그랬는데 우리를 궁극적으로는 이 악령과 죄, 이 사망, 죄라면 원죄와 본죄가  있는데 원죄는 악성이 원죄요, 본죄는 악습들이 모아서 악습을 모 아서 본죄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요 이 악령으로 말미암아 악성 악습으로 된 이 죄 삐뚤어진  걸 인해서 우리는 사망하게 된 것입니다. 이랬는데 우리를 대표해서 승리하신  주님이 하나님의 지공의 심판에서는 우리를 승리자로 거기서 간주해서 우리는  공심판을 승리한 자로 영생의 구원을 얻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고, 다 진리의  것이 되어서 중생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이 대속과 영감과 진리를 우리가 입고 있고, 가지고  있고, 이것으로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로 살아났는데 살아난  우리들이 다시는 이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살고 배반치 안해야 될  터인데, 그 현실은 예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는 현실이요, 믿느냐 안 믿느냐.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시험하는 현실이요 우리는 그 현실에 안 믿는 것으로  패전하든지 믿는 것으로 승리하든지 우리는 그 현실이 전투하는 현실이 되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믿을라고 하고 또 악령 악성 악습은 믿지 못하게 할라고 하고  거기서 이 믿음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믿음의 선한 싸움을 힘써 싸우라  했는데, 믿음의 싸움인데 우리가 믿음이 지면 패전해서 영원한 사망이 되어지고  믿음이 싸워서 이기면 영생이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그 현실은 믿음의 싸움인데, 우리 현실에서 내가, 진리로 내가  살아난 자이기 때문에 진리로 내가 살라고 하고, 진리로 살지 말고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더불어 살라고 이렇게 할 때에 내가 그것을 영접하지 안하고 이렇게  중생된 새사람 나로 살면 그것을 이기게 되고 새사람 나로 살지 아니하고 그것을  내가 유혹을 받아서 그것에게 떨어지든지 협박에 떨어지든지 강압에 떨어지든지  떨어져서 그만 그것을 영접하고 내가 세 가지를 버려, 세 가지. 주의 피공로를  버리고 또 성령을 버리고 진리를 버리고 이 셋을 버리고 왼쪽에 있는 주인  악평과 악성과 악습. 악령은 자기 중심으로 사는 그것이 악령의, 영이 악한 것을.

자기 중심인 영을 가리켜서 악령이라고 말하고, 악성이라고 하는 것은 내,  사람이라는 내 자체가 내 중심으로 살라 하는 그것이 악성이니까 악성하고. 또  악습이라 하는 것은 내가 과거에 살 때에 내 중심으로. 내 위주로, 내 주관으로.

내 사욕으로, 나로, 내가 중심이 돼 가지고 산 그 모든 생활을 가리켜서 악습이라  이랍니다. 악습. 습이라 말은 익힐 습(習)자. 한 번하고 두 번 하니까 자꾸 그것이  익혀져서 그것이 습관이 되고 습성이 되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내가 따라서  현실을 통과하느냐, 오른편에 있는 이 셋을 따라서 통과하느냐 하는 것으로써  영원한 결정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시간에 해당된 내 마음과 몸의 기능이 있습니다. 몸은 내나  하나이니까 변하지 안하지만 그 현실에 해당되는 기능은 그 현실로써 영원히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이고. 또 마음의 기능도 몸 의 기능도  영원히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고 영도 그 현실에서 자기의  심신의 기능을 영이 점령을 하느냐 영원히 뺏겨 버리느냐 하는 것이 그것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그 현실에서 자기가 오른편 것을 영접하고 오른편 것으로  살고 오른편 것을 배반하지 안하면 새사람으로 그 시간 살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출전한, 그 시간에 전쟁에 나온 말이오. 그 현실에 출전한 영의 기능과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은 다 영생이 되어졌고, 그 현실에 출전한 것이 왼쪽의 서이에게  따라갔으면 그 영의 기능은 승리하지를 못했기 때문에 영의 기능은 아무런  수입을 얻지 못합니다. 영의 기능은 자기의 심신의 기능을 뺏겨 버렸습니다.

심신의 기능을 뺏겼기 때문에 그 면으로써는 영은 거지가 됐습니다. 그 면으로는  영이 무능한 영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거는 영원히 변동 못 합니다. 무능한  영이 돼 버렸고, 또 그 시간에 출전한 그 마음의 기능이나 몸의 기능은 영원한  둘째 사망으로서 사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현실은 그 현실에 해당된 것이 내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 또  영의 기능 이 세 가지가 현실에 해당되는데, 그 현실에서 패전을 하면 영의  기능은 손해가 무슨 손해냐 하면 자기의 소유인 심신의 기능을 뺏겨 버렸습니다.

심신의 기능을 뺏겼기 때문에 그만침은 영이 거지가 돼 버렸습니다. 거지가 돼  버렸고, 영이 뭐 정죄 받아서 지옥 가는 건 아니 지만 자기의 영원한 소유인 그  심신의 기능을 뺏겼기 때문에 그만치 영은 거지가 됐고, 또 그때에 그 심신의  기능으로 해당된 심신의 기능은 그것은 왼쪽에 세 가지의 것이 됐기 때문에 둘째  사망으로서 영원한 사망 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라는 그 마음은 수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 현실을 통해서 마음이라는 것은 졌으면 거지가 됐고, 또  마음 그 마음이라는 것이 현실에 이겼으면 마음이 부자가 됐습니다. 또 몸뚱이는  하나입니다. 몸뚱이는 하나인데 그 몸뚱이도 현실에서 그 기능을 이겼으면 그  몸뚱이는 부한 기능이 됐고 현실에 졌으면 거지 그 몸뚱이가 됐습니다. 그대로 이  다음에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간에 내가 이것을  말할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이미 주의 피와 영감과 진리 이 셋으로 내가 살아나서 이 셋은 내  힘입니다. 이 셋은 내 힘이요 내 생명입니다. 내 능력입니다. 그러면 이 셋으로  우리가 영생하고 이 셋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됐고 이 셋으로 하나님의  지공 지성의 공심판을 우리가 다 승리하고 통과해 나온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 가지로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이 세 가지로 살아 있습니다. 이 세  가지로 살아 있는데, 살아 있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계약에서 살아났고  하나님의 법에서 살아났습니다. 법적으로 살아났고 계약으로 살아났지 실지로는  살아나지를 못했고, 계약으로 살아났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지공 지성의  법으로 살아났습니다. 법으로 살아났고 또 계약으로 살아났고, 심판으로  살아났습니다.

 살아났는데, 이 우리 앞에 남은 현실이라는 것이 천 개인지 만 개인지 억만  개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 현실이 어떨 때는 같은 현실이 한 시간 지나갈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일 분도 계속되지 않는 그런 현실이 많습니다. 분분마다  바꾸어지는 현실들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현실이 숫자가 많은지  적은지 우리는 모르나 우리 앞에 다가 올 그 현실은 우리는 참 웃어야 되고  울어야 될 그 현실입니다. 왜 웃어야 하느냐? 웃어야 하는 것은 계약적으로,  법적으로, 심판적으로 이렇게 영생을 가진 것이 그것이 실상으로 영생을 가질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이 세 가지, 계약적으로, 법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적으로  영생을 가진 것이 실상으로 영생을 가지는 일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현실은 우리가 심히 기뻐하여야 할 그 현실입니다. 그러나 또 현실은 심히  근심하고 슬퍼하여야 할 현실입니다. 이래서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무거운 짐진  거와같이 탄식한다고 말했고, 로마서 8장에 보면 첫 열매로 익은 중생된 영들이  다 탄식을 한다고 말을 했고 성령도 탄식을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왜 이렇게  탄식하는 이 걱정을 하느냐 하면 닥쳐오는 그 현실에서 세 가지로 영생으로 살아  있는 이것이 실상으로 영원한 죽음으로 죽어 버릴란지 모릅니다. 죽어 버릴란지  모릅니다.

 이러기에 기쁜 것은 이게 하나의 법적이지 실상은 아니요, 또 계약적이 이  실상은 아니요, 또 하나님의 심판적이지 실상은 아닌 것이 실상으로 살아나게  되기 때문에, 살아날 수 있기 때문에 기쁘고 즐겁지만 잘 못하면 산 것이 영원히  죽게 되기 때문에 그 현실을 통해서 완전히 영원한 멸망이 되든지 완전한 영원한  영생이 되든지 하기 때문에 우리는 닥쳐오는 그 현실을 두고 그저 일희 일비라  한 편으로는 참 기쁘고 한편으로는 슬프고 한 편으로는 즐겁고 한 편으로는 크게  고민하는 것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바로 깨달으면 이래야 됩니다.

 그런데, 이 현실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지를 안하고 악령에게 꼬여 가지고 현실은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일 년이나 이태나 뭐 일월달이나 중간 유월달 칠월달이나  십이월달이나 항상 자기는 그 현실을 돈에만 대고 노력해 가지고 이 돈이 어찌  되느냐, 현실을 돈만 가지고 걱정하고 노력하고, 어떤 사람은 지식이나 가지고  걱정하고 노력하고, 어떤 사람은 가정이나 가지고 걱정하고 노력하고, 어떤 사람은  또 이 세상에 뭐 지위나 권세나 직장이나 사업이나 그런 거 가지고 걱정하고  노력하고 있는 그자가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가리켜서 다 꿈꾸는 사람이라, 다  자는 사람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꿈꾼다 말은 꿈이 깨고 나면 소용없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 세상이 퍼뜩, 오늘이라도 주님이 구름 타고 오셔서 세상이 불타  버렸으면 무슨 대 사업가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세계 뭐 유엔 총회에서 뭐 내일  어떻다 모래 어떻다 하는 그까짓 게 무슨 소용 있습니까? 뭐 소련에서 군함을  동남아에 주변에 들이 주 몰아놨다, 뭐 어떻다 어떻다. 시시합니다. 그게 뭣  됩니까 오늘이라도 불타 버리면 그거 다 타서 바짝 타서 없어져 버릴 건데 뭐  지금 불 앞에서 뭐 있겠습니까! 노아 홍수 때에도 그 모든 것들이 다 그 앞에  서지 못한 거와 마찬가지로 이제 불이 오면 다 그와같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현실에 대해서 이렇게 하늘의 근심 걱정 하늘의  기쁨 이 회로 애락을 가져야 이것이 참 것인데 이 희로애락은 가지지 안하고 땅  위에 돈이 오니까 기뻐하고 돈이 가니까 슬퍼하고, 제 욕심이 달성되니까  기뻐하고 제 욕심대로 안 되니까 슬퍼하고 욕심대로 되면 그 뭐 합니까?  욕심대로 된 그게 다 사망이요. 또 땅 위의 것으로써 기뻐하는 그 기쁨은 다  없어질 기쁨이요 영생의 기쁨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의 기쁨과  주님과의 관계를 맺는 그 기쁨 외에는 다 생명 없는 기쁨이라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현실은 이런 것인데, 지금 내가 말할라고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이  현실에서 나와 진리와 나와 영감과 나와 피공로와 한덩어리가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이것이 현실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똑똑히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내가 현실에서 죽어도 진리를 놓지 안하고 진리 때문에 죽었으면 진리는 내  진리요 나는 진리의 것이 됐습니다. 어떻게 진리가 나를 버리겠습니까? 나는  죽어도 진리를 버리지 안하고 진리를 따라서 진리를 모시고 진리 따라 있었는데  어떻게 진리가 버립니까? 내가 생명을 다 빼앗겨도 내가 진리를 뺏기지 안할라고  진리를 오시고 진리를 내가 내 놓지 안할라고 진리를 모셨는데 그 진리가 나를  내놓는다면 그 진리는 저주를 받아야 됩니다. 진리는 저주를 받아야 됩니다.

진리가 그래 합니까? 안 찹니다. 여러분들 믿으십시오.

 또 내가 영감을 모시고 영감을 따라서 움직일라고, 영감이 가라 할 때 가고,  오라할 때 오고 영감이 말하라 할 때 하고 영감이 하지 마라 할 때 안 하고  영감이 노하라 할 때는 노하고 영감이 기뻐하라 할 때는 기뻐하고 영감이 자라  할 때 자고, 영감이 욕심을 내라 할 때 욕심을 내고, 영감을 따라서 희로애락과  지정의가 다 움직이는데 이렇게 움직이려고 하니까 세상은 이렇게 움직이지  못하라고 여러 가지로 꾀우다가 안 되면 나중에 가서는 또 협박도 하고 나중에  안 돼서 우리에게 있는 것을 가해를 해서 소유도 절단내고 몸도 절단내고 감옥에  가두기도 하고 어떨 때는 형벌도 주고 어떨 때는 마지막에는 죽이는 일도 있다  그말이오. 암만 죽어도 내가 현재에 내가 영감대로 살라고 한 그 영감 생활이  변동 안하고 내가 영감을 배반치 안하고 영감 모시고 영감 따라서 내가 살라고  영감의 것이 돼 가지고 영감따라서 살라고 내가 하다가 오만 박해를 당했는데  영감이 나를 버립니까? 안 버립니다. 영감은 내 영감이 됐고 나는 영감의 것이  됐습니다. 영감은 주인이요 나는 영감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 지위적으로  말하면. 이렇게 해서 내가 영감의 것이 되는 것이오. 성신의 감화를 받아라 말은  우리 말로 알아 듣기 쉽도록 성신의 감화를 받으라는 것이지 그 말을 바로  말하면 네가 성신의 것이 되라 그말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내거 됩니까? 작은 것이 큰 것의 것이 되지 큰 것이 작은 것의 것이  됩니까?  이래서 나는 진리의 것이 되고 진리는 내가 모신 진리가 되고. 나는 영감의 것이  되고 영감은 내가 모신 영감이 되고, 내가 예수님의 이 세 가지 대속을 입고  살라고 하니까 세상이 예수님의 대속을 벗으라고 다니엘도 이거 벗으라고. 사드락  메삭도 이거 벗으라고, 요셉도 그 형제들이 이거 벗으라고 해도 끝까지 이를 벗지  안하고 모시고 산 사람은 다 세상을 이겼습니다. 모시고 산 사람은 다 세상을  이겼습니다. 이렇게 모시고 살라고 하니까 세상이 저희들이 권리가 있으니까 돈을  뺏들었다가 직업을 뺏들었다가 직장을 뺏들다가 또, 그거 저거 패가 돼 놓으니까  회개하지 안하는 가족을 뺏들었다가 이렇게 오만 야단을 쳐도 다 뺏기고  마지막에 내 생명을 빼앗겨도 내가 주님의 대속을 버리지 안하고 대속을 모시고  대속의 것이 되어서 삽니다. 그러면 나는 대속의 것이 됐고, 대속의 종이 됐고,  대속을 모신 대속의 성전이 됐고, 대속의 지체가 됐고, 대속의 몸이 됐고 대속 의  백성이 됐고, 대속의 나라가 됐고, 대속의 제사장이 됐고 대속의 선지자가 됐고,  대속의 왕이 됐고, 대속의 신부가 됐고, 대속의 것이 되었고 나는 대속의 것이  되었고, 대속은 나의 주가 되었고, 나의 왕이 되었고 나의 주격이 되었고, 나의  보호자가 되었고, 나의 권위가 되었고. 됐으니 이것을 세상이 어떻게 날 할  것입니까? 네? 어떨게 할 것입니까? 요걸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또, 이제 말한 대로 내가 영감으로 그래서, 나는 영감의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영감의 것이 됐습니다. 죽을 때도 영감의 것이 변동안 했습니다. 죽일라 해도  영감의 것을 변동안하고 영감의 것이 됐습니다. 영감의 것으로 죽었습니다.

영감의 것으로 거지가 됐습니다. 영감의 것으로 뺏겼습니다. 영감이 준 부자가  됐습니다. 영감이 준 세계를 차지했습니다. 어쨌든지 가난해도 영감으로 가난했고,  부요해도 영감으로 부요했고, 살아도 영감으로 진리로 주의 공로로 살았고 내가  고난을 당해도 진리와 영감과 주의 공로로 고난을 당했고, 내 모든 회로 애락,  빈부 귀천, 존비 귀천 흡망 성쇠 이 모든 것이 세상으로 인한 게 아니라 이 세  능력으로 인해서 내가 이렇게 됐습니다.

 이 세 가지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 세 가지를 배반치 않기 위해서 세 가지의  것이 되기 위해서, 이랬을 때에 내가 세 가지의 것이 됐을 때에 세상은 나를  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죄도 왕이 되지 못하고 마귀도 왕이 되지  못하고, 악령도 왕이 되지 못하고, 악성도 왕이 되지 못하고, 악습도 왕이 되지  못하고, 모든 땅 위의 불법도 왕이 되지 못하고. 사망도 왕이 되지 못하고, 왕이  되지 못한다는 그것은 주님이 우리를 두고 시험으로 씨름을 한번 시켜서  연습하라고 한번 시험해 보기 위해서 씨름을 붙일 때에 배반하느냐 안 하느냐  씨름 붙이는 시험에 배반치 안 할때에 영원한 주의 것이 됩니다. 시험할 때 내가  떨어져 버리면 그는 영원한 실패가 됩니다.

 여러분들, 진리와 영감과 주의 공로를 주고 세상을 차지하면 세상을 차지할 줄  압니까? 어림도 없소. 참, 차지할 줄 알고 이 세 가지를 배반했더니만 낯이  뻘거이 추접하게 더럽게 이제 얻을까 싶어서 그거 차지하고 이 세 가지 배반하고  나니까 주님이 있다가 홱 뺏들고 주먹으로 탁 때려서 지옥불로 확 던져 버리고  맙니다. 수치만 당합니다. 제게 무슨 권리가 있는 줄 압니까? 어리석소. 어리석어.

마귀란 놈이 우리를 어리석게 만들어 가지고 이와 같이 어리석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현실에 내가 진리의 것이 되고 진리는 내 생명이 되고. 내가  영감의 것이 되고 영감은 내 생명이 되고, 나는 공로의 것이 되고 공로는 나의  생명이 되고, 이래서 내 생명이 되니 곧 내가 그로 말미암아 나왔고 그에게  속했고 그로 말미암아 움직입니다. 모든 육체가 움직이는 것이 생명을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까? 생명으로 움직이는 거와 마찬가지로 내가 이제 진리의 것이  됐고 영감의 것이 됐고 주님의 대속의 것이 됐고 그것은 내 생명이 됐기 때문에  내가 움직이는 것이 진리로 움직이고 영감으로 움직이고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움직이니까 이것을 여러분들이 좀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에 주님의 대속은  삼위일체가 다 들어 있는 거라. 그거 조금 있으면 말하겠습니다. 들어 있는데  이제 나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움직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움직이고,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움직이시는 역사 당신이 움직이는 그 능력 곧 영감으로  나는 움직입니다. 그 영감이 나와 가지고 문서로 나타났으니까 이것이 진리인데  진리로 움직입니다. 그러면 내가 움직이는 동기가, 내가 움직이는 그 원동이  그것이 하나님이요 영감이요. 진리요, 예수님의 대속인데 대속인데 세상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것으로서 불타지 안하고 영생합니다. 이것만이 불 안 탑니다.

나머지기는 다 타 버립니다. 나머지기는 다 타요.

 영원 자존하신 분이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이한 분뿐이신데 한 분 하나님이  역사하시기를 세 가지로 나눠서 역사하실 때에 하나는 성부라고 하고 하나는  성자라고 하고 하나는 성령이라고 이렇게 해서 삼위라고 했습니다. 그 삼위는  하나님 본체를 말한 것 아닙니다. 삼위는 하나님이 직위를 가질 때의 그 직위를  가리켜서 일위라, 이위라. 삼위라 말했습니다. 직위.

그러기 때문에 일위도 본체는 하나님, 이위도 본체는 하나님. 삼위도 본체는  하나님 그러면 삼위도 하나님의 본체, 이위도 하나님의 본체 성부도 하나님의  본체, 이런데 다만 직위, 직분의 위, 직위가 삼위요. 직위는 삼위지만 본체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 삼위일체인 하나님이 제일 능력 있고, 제일 능력 있고, 그 다음에는  영감이 제이 능력을 가졌고, 영감이 제이 능력을 가졌고, 영감은 뭐이 영감인데?  영감은 삼위일체의 뜻이 영감입니다. 성부 영감이 있고 성자 영감이 있고 성령의  영감이 있지만 성부의 직책을 할 때는 성부의 영감이라. 성령의 직책을 할 때는  성령의 영감이라 성자의 직책을 할 때는 성자의 영감이라 이렇게 말하나 그  영감은 삼위일체의 영감입니다. 한 영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삼위일체가 일을  하실 때에 뭘로 하느냐? 한 영감 가지고 일합니다. 한 영감 가지고, 이 일 할  때에는 이 영감이라 저 일 할 때에는 저 영감이라 이러나 삼위일체 가 역사하실  때에는 영감으로 일했기 때문에 그 영감을 가리켜서 성신의 감동이라 그리스도의  영감이라, 이는 하나님의 영감이라, 아버지의 영감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삼위일체가 환하게 깨달아지지 못하는 그런 심령은 좀 이 진리를 들어서  깨닫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이 제일 능력이 컸고, 그 다음에는 영감이 거기서 나온  능력인데 제이로 영감이 능력이 제일 크고 크기도 하고 깨끗하기도 하고  완전키도 하고 능력이 제일 크고 다시 말하자면 첫째는 하나님의 본체  삼위일체의 본체 둘째로는 삼위일체의 역사인 영감, 세째로는 이 영감이 우리에게  가깝게 접촉할 수 있도록 접근해 온, 진리가 있으니 그 진리를 가리켜서 문서  계시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번에 장생골에 가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들이 접하기  쉬운 것으로서 나타나신 걸 다섯 가지를 말했는데 그것을 여러분들이 잘  기억하고 있는지, 제가 평생 예수 믿어도 한 마디도 그런 걸 못 듣습니다.

삼위일체가 뭐이냐 하면 저는 모릅니다. 말만 들었지. 삼위일체가 어떻게 된  것이며 뭐이냐 하면 모릅니다. 성경을 봤으면 알지만 성경 안 봤기 때문에  이런데, 그러면 제일 큰 능력. 영원히 변치 않은 능력, 완전한 능력 제일 큰 능력  이 세 능력 외의 것은 수많은 능력들이 있지만 그 능력들은 이 세 능력이 만든  것들의 능력입니다. 이 세 능력이 크고, 이 세 능력 외에 수많은 능력이 있지만 그  능력들은 다 이 세 능력이 만든 것들의 능력입니다. 만든 것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이세 능력 이 만든 능력입니다. 그러면 이 세 능력은 다 자체에 독립적인  자체적인, 독자적인 능력을 가진 것이 이 셋이 있는데 세 능력은 제일 큰 지극히  큰 능력이요 완전한 능력이요 영원한 능력이요 불변의 능력이요 전능의 능력이요  전지의 지혜입니다. 이 세 능력이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보존하고 통치하는데 영원히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시켜  가지고 통치한다는 것도 이 세 능력이 통치하고 이 세 능력이 그 모든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능력 이 지극히 크기 때문에 이 세 능력과 하나가  된, 이 세 능력과 결합이 된 것은 피조물이 해하지를 못합니다. 이 세 능력과  결합된 것은 피조물이 해하지를 못합니다. 이 세 능력과 결합된 것은 해하지를 못  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이뭐 뒤숭뒤숭 이리 쌓고 있지만 현재 정권은 ○대통령,  ○정권이 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권으로 더불어 하나가돼 가지고 있으면  이 정치 내에는, 이 영토 내에서는, 이 정권 내에서는 아무것도 해하지를  못합니다. 해하지를 못하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뭣 인지 이상이 있습니다. 아무 말  없이 오곳오곳하게 자꾸 건설만 해 나가고 재미있게 살아 나왔는데. 이제 뭣인가  지금 심히 복잡해겼는데 복잡해진 것이 이게 유익이 있을란지 나라를 망칠란지  그것은 여러분들이 자연히 양심을 가지고 생각해 보면 알 것이요, 지금 큰 고장은  붙었는데 아 고장이 좋을란지 나쁠란지, 실패가 변해서 성공이 될란지 손해가  변해서 유익이 될란지 어지러운 것이 도리어 평화를 일으킬란지 모르나 좀  어지럽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심히 어지럽습니다. 이래서 뭐 언제. 여기서  어지러우니까 그거 수습하고 저거 수습하고 그거 수습할라 하니까 언제 건설은  못 합니다. 지금은 건설 없습니다. 건설 못 해 나갑니다. 자꾸 그거 수습하니까 아,  집구석에 싸움이 안 일어나야 뭐 살림도 살고 또 논도 밭도 사지 자꾸 싸움이  일어나니까 그놈 싸움 일어나니까 삐꾸는 거 달래야 되지 자꾸 불뚱거리는 거 또  입을 막아야 되지 또, 뭐 그래 쌓아니 이거 저거 막을라 하니까 언제 건설됩니까?  그러기 때문에 가정이 십 년이 싸움이 없으면 부자 안 될 가정 하나도 없습니다.

십 년 동안 싸움 없고 병 없으면 다 부자 돼요. 암만 뭐 못나고 돈벌이 못 하는  사람이라도. 그 가운데는 여러 가지 고장이 있어 가지고 다 가난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다 견해는 다 각각 다르겠지만 심히 어지러운 시대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안 정한 가운데서 구원을 이루도록 여러분들이 현 이 정계에  대해서도 기도를 해서 모든 불법은 죽여 버리라고 말이지. 불법은 무저갱에  가두도록 마귀 그놈은 무저갱에 가둬야 돼요. 마귀 그놈은 무저갱에 가둬야 돼요.

이래 가지고 무정갱에 가두고 마귀 든 사람들은 전부 거기서 해방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이 우주와 영계라는 이 모든 이 모든 이 존재 속에는 이 세 능력이 제일  큽니다. 이 세 능력이 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 능력은 합하여서  하나입니다. 이게 영원 자존자입니다. 이런데 이 세 능력과 결합된 분이 있습니다.

이 세 능력을 피조물이 이 세 능력과 다시 변동 없는 결합을 가진 익숙한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피조물로서 이 세 능력과 다시는 떨어질 수 없는 만족하는  결합을 이룬 존재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는 하늘과 땅에 하나가 있었는데 하나가  이 세 능력과 결합이 됐는데. 이 결합이 돼서 세 능력과 결합이 되니까 아무것도  해하지 못하고 이제 세 능력과 결합한 그 능력에게 그 자에게, 이 세 능력과  결합된 그 자에게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일 임을 시켰습니다. 이 세 능력이  합해서 일임을 시켰습니다. `일임을 시켜서 앞으로 하늘의 것과 땅의 것, 영계  것과 물질계의 이 모든 것은 세 능력과 결합된 그 자에게 일임을 시킬 것입니다.

일임시킬 것을 성경에 말씀해 놨습니다.

 그러면, 그자가 누군가? 그 자를 아는 분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저 뒤에는  모릅니까? 저 뒤에 오는 사람은 그만침 떨어졌구만 보니까 그만침 뒤에 떨어져서  꼼뱅이라 저 보니까. 한 몇 사람은 들고 있는데. 몰라? 모르거든 일찍 오지. 뭣  때문에 늦게 와 가지고 뭐, 지옥 갈라고. 천국은 가지 만 몸뚱이 기능도 지옥 가고  마음의 기능도 지옥 가니까 하늘나라에 가 봤자 벌거벗은 자와 같이. 아무 힘  없는 그런 뭐 송장 덩어리 같은 거 숨만 발딱발딱 남은 거 그 무슨 가치 있겠어,  가치있기를? 일찍 와요 일찍. 새벽 기도도 나오고 진리를 알아야지.

 사람이 뭐이든지 두 주먹을 거머쥐고 달라들어야 됩니다. 발 벗고 달라  들어야지. 그래 영생 이루는 것이 돈벌이보다 쉬운 줄 압니까? 영생 이루는 것이  박사되기보다 쉬운 줄 압니까? 영생 얻는 것이 땅 위에 정권 잡기보다 쉬운 줄  압니까? 아니오! 정권은 다 생명 내놓고 나서면 다 잡을 수 있습니다. 없는 게  아니오. 그거 뭐 그렇게 어렵지 안하요. 다 이것이 귀중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배설물로 여기고 다 여기에 몰두해서 나서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오전 예배 보고 ○○○조사에게 내가 전화를 했어. 전화를 해서 '오늘  처음 예배인데 어떻게 됐노?' 이름을 ○○이라고. 나는 이름 개명한 데 대해서  마음이 상쾌해요. 뭐 새 봉(鳳)자, 구슬 옥(玉)자. 뜻 없는 그것보다는 ○○이라  의로 영원히 나아가겠다. 하는 의로 전진하겠다고 ○○이라 했는데, 물으니까 주일  학생이 104명, 또 장년반이 16명. 이랬는데 교만하지 말고 자꾸 그래 힘을 쓰면,  어짜든지 주님은 죽자 살자 하고 달라드는 그자를, 천국은 힘쓰는 자의 것입니다.

힘 센자 것 아니오. 힘 쓰는 자의 것. 힘 안 쓰면 헛일입니다.

 이래서, 우리 진영 교역자가 여기 몇몇 와 있지만 우리 진영 교역자들은 다른  진영의 교역자보다 게을합니다. 힘을 안 써요. 그분들은 모르는 가운데서 진리를  연구해 낼라고 설교를 하면 하나 할라고 여러날 애를 쓰고 이렇게 야단을  지기지만 찍해야 와 가지고 녹음기 가져와 녹음기 그놈을 완전히 뚜드려 부숴  버리면 좋겠어. 녹음기가 저거 선생이라. 저거 주(主)라. 너는 녹음기 믿다가  녹음기하고 함께 망해 버려라! 녹음기 갖다 놓고 녹음기가 딱 들어 가지고  있으니까 뒤에 가르칠 수 있지, 뭐 아마 녹음기에 기록됐는데. 이러니까 가만히  이래 가지고 영감도 따라오지 안하고 능력도 받지 안하고 이래 있다가서  탈깍거리면 그 소리는 듣고 `탈칵 소리 나는가?' 그게만 일단 정신이라.

탈칵거리면 얼른 바꿔 끼워놓고 또 기다리고 앉았고. 그래 가지고 꾸벅꾸벅 졸고.

죽었어. 죽어. 다 죽었어. 여러분들 왜 이 복음 가지고 뭣 때문에 교회가 부흥이  안 돼, 안되기를? 뭣 때문에 앉은뱅이로 그래 돼 가지고 있어?  어제도 내가 그런 말 들었어. 이 진영 교역자들이 다른 진영 교역자보다 횔씬  게을하고 힘을 쓰지 않는다, 다른 교회 교역자들은 다 보면 굉장히 힘을 써서 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안하고 어떻게 무슨 뿌스러기의 노력이라도 해 가지고  교회를 부흥시킬라고 그렇게 하는 분들은 교회 가 다 부흥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게을해. 하나님은 힘쓰는 자를 원합니다.

 이랬는데. 제가 셋 제일 큰 능력과 다시는 떨어지지 안할 수 있는 세 능력에게  신임을 받았고, 세 능력에게 신임을 받았고 세 능력이 이리저리 암만 시험을 해도  이는 참 믿을 수 있고 손을 잡을 만 하다 해서 온갖 시험해도 손 잡을 만하고  이는 이런 피조물이 없다 해 가지고 손을 잡고 이제는 신용을 해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네게준 다, 이렇게 받아 가진 이가 누구냐 하면 예수님의  인성입니다. 예수님의 인성 예수님의 인성.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이요. 피조물로서 예수님의 인성은 이 셋 지극히 큰  능력으로 더 불어 영원히 변동 없는 결합을 가졌습니다.

 결합을 가졌기 때문에 죽였느냐? 영원히 죽지 안하는 것으로 살아났습니다. 이  세 능력으로 결합한 것을 죽여요? 죽일 수 있습니까? 이 세 능력으로 결합돼  가지고 결합을 뺏기지 안할라고 하니까 뺏을라고 `내놔라' 하면서 못도 박고 창도  찌르고 `내놔라 내놔라' 해도, 안 내놓고 숨이 딸칵 끊어져 버리고 나니까 안  내놓고 끝났소. 안 내놓고 생명이 끝나고 보니까 그 전부는 다 지극히 큰 셋의  능력이 되고 마니 내놓으라 하다가 내놓지 안했으니까 내놓으라 한 그자들은  영원한 종이 된 것입니다. 그것이 마귀가 패전한 것이요 세상은 패전했습니다.

이래서 주님은 내가 세상을 이겼다, 마귀를 이겼다, 죄를 이겼다, 사망을 이겼다  말씀했습니다. 사망과 죄와 마귀와 이 모든 것을 이긴 것은 예수님이 투쟁해  가지고 이겼습니다. 이겼는데, 어떻게 이겼느냐? 무슨 싸움이냐? 그 싸움이 무슨  싸움이냐? 그 싸움도 내나 그겁니다. 하나님 내놔라, 영감 내 놔라 진리 내놔라,  그 세 가지 싸움이오. 내놓으라 할 때에 예수님은 오만 걸 다 내놔도. 다 뺏겨도  안 내놨습니다. 이거 내놓으면 내가 천하에 있는 모든 영광을 네게 주겠다 해도  주님은 홀로 그에게만 경배하라 했다 하시고 내놓지 안했습니다.

 이래서 주님의 생애를 보면 주님은 마귀와 대화할 때도, 사람과 대화 할 때도  제사장과 대화할 때도, 장로들과 대화할 때도. 바리새 교인과 대화할 때도,  언제든지, 대화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 성경 말씀으로만 대화를 했고 그분이 일생  동안 노력하는 것은 선지자들이 예언해 놓은 성경 말씀 이 이루어지는 그것만  자기의 목적이요, 자기의 사명인 줄 알고 그 일만 이룰라고 해서 한 번도  하나님을 배반치 안했고 영감을 배반치 안했고 진리를 배반치 안했고 그로  더불어 하나 되어 그의 것이 될라고, 그에게 속할라고 그를 모실라고, 그로만  움직여 살라고 일편 단심 이 하나 가지고 끝을 마치 그것으로써 하나님도  만족했고, 영감도 만족했고, 진리도 만족을 했습니다. 이래서 이 셋 완전  결합으로써 완전 지극히 큰 능력에게 결합됐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은 그 앞에  복종하게 된 것이 이것이 이 전투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이요 예수님의 신성은 외부는 제이위 성자지만 제이위 성자 속에는 성부  성령 다 들어서 예수님의 신성은 삼위일체의 신성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오늘 우리들도 우리가 이 모든 우주가 불탈 때에도  불타지 아니할 것, 사망이 와도 사망의 해를 받지 안할 것. 하나님의 대심판이  오고 뭐 사심판이 와도 눈도 꼼짝거리지 아니하는 것. 만물의 지걸거리는 송사가  있어도 그 송사가 하나도 금방에 와서 붙지를 못하고 악령이 근방에 오지도  못하는 것, 이것은 뭣으로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이냐? 이것은 첫 열매이신, 첫  열매이신 예수님의 인성과 꼭 같습니다. 아무것에게도 해를 받지 않은 것은  지극히 큰 세 능력과 나와 결합이 돼서 나는 완전히 이 세 능력의 것이 됐고, 이  세 능력은 나의 생명이 됐고, 이 세 능력은 나의 책임자가 됐고, 나의 주가 됐고  나는 세 능력의 것이 됐고, 내 생명은 세 능력이 내 생명이고, 내 지혜는 셋의  지혜가 내 지혜고. 내 능력은 씻의 능력이 내 능력됐고, 내 모든 계획이나 영원한  내 할 일은 셋의 일이 내 일이 됐고 셋으로 더불어 나와 함께 되서 이 셋은 나의  피난처요. 나의 천국이 이 나의 안정처요, 나의 영원한 숨은 동산이요, 나의  영원한 골방이요, 영원히 신랑이 계시는 신부의 골방이요. 영원한 천국이요,  영원한 은신처요, 의의 나라요, 불의가 가까이 가지 못하는 나라요, 이렇게 되는  것은 불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에 하늘과 땅의 것을 불로 태울 때에 탈 수 있는 그런 것들은  영생을 못 합니다. 탈 수 있는 것들은 영생을 못 합니다. 세상 것들이 두렵게  만들 수 있는. 세상 것들에게 피동되어 두려워 할 수 있는 것 들은 영생을 못  합니다. 세상 것들에게 피해 받는 것들은 영생을 못 합니다. 세상 것들이 만질 수  있고 가까이 갈 수 있고 저와 동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영생을 못 합니다.

영생하는 것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공입니다. 이런 것들과 동등이 아니라 이런  것들을 탁월한 고차원의 것입니다. 그게 뭐인가? 진리요 영감이요 곧  하나님이신데 주의 대속의 공로입니다.

 그러면, 내가 피난하는 것은, 내가 영원한 사망할 것이 영원한 생명되는 것은,  내가 법적으로 계약적으로 입고 있는 것, 내가 계약으로 입고 있고 법적으로 입고  있고 하나님의 심판적으로 입고 있는 이것을 내가 실상으로 영원히 변동되지  않는, 다시는, 한 번 통과하면 무궁세계에서 내것으로 자유 자재로 영원히 쓸 수  있는 내 기능, 영계 가서 영원히 쓸 수 있는 내 기능, 물질계에서 영원히 쓸 수  있는 내 기능. 이 물질계를, 우주를 다 통치 할 수 있는 기능, 영계를 통치할 수  있는 이 기능. 그 기능 영원히 내 기능 이 내 기능이 심판을 이긴 기능이요,  계약적으로 영생한 기능이요, 하나님의 약속적으로 다 영생하는 이 기능인데.

이렇게 온전한 기능 이 기능을 내가 오늘에 가지느냐 영원히 죽여 버리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현실에 있는 것입니다. 현실에 있는 것. 로마서 8장 1절 이하에  너희들은 정죄함이 없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그말은,  그말은 계약적, 하나님이 구약으로 신약으로. 계약으로 선포해 놓은 계약적 구원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세 능력과 우리가 결합이 되어서 세 능력에 이 결합이  되면 살고 결합이 안 되면 죽습니다. 여러분들이 믿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오후  내 자꾸 이 말을 하고 자꾸 이래 하는 건 뭐이냐 하면 이 셋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이 되면 피조물은 거게 통치를 받아야 되고, 피조물은 저의 주로 모셔야 되고.

피조물은 그것의 것이 되고, 피조물은 해하지 못합니다. 악령과 죄와 사망은  가까이 오지를 못합니다. 뭣의 것이 되는 것이. 뭣의 것이 되는 것이? 우리의  피난처가 몇 개입니까? 셋 우리의 피난처는 셋이라. 진리와 영감과 하나님 이  셋은 하나인데 이 셋이 하나로 나타난 것 있으니 그게 뭐이냐? 예수님의  피입니다. 이 셋이 하나로 나타났으니 그것이 예수님의 피요, 분석하면 셋이요,  하나님 영감 진리. 이 셋이 하나로 뭉쳐 나타났으니 예수님의 피입니다. 우리의  피난처는 이 셋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이 셋입니다. 셋은 합하여 하나입니다. 이  셋으로 된 생명이기 때문에 영생입니다. 죽일 자가 없습니다. 왜? 이 셋으로 됐기  때문에 그는 죄가 없습니다. 심판이 해하지를 못합니다. 이 셋이 피난처요. 이  셋이 생명이요 이 셋이 능력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 셋은 불태우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늘 내가 설교 할 때에 듣는 사람은 듣지만 못 듣는 사람은 못 듣는데,  암만 해도 듣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이 그 속에 박히면 세상을 이기요. 하나님  말씀이 그 속에 들어가서 참으로 자리를 잡고 살면 세상을 이기요. 자기 현실을  이기요. 어떤 현실이 와도 털끝만치라도 질 리가 없어. 몰라서 유혹을 받고  어쩌다가 실수해 가지고 허물과 실수로 까빡 착각을 일으켜 졌으면 졌지  대항해서 싸우기로 딱 전투를 선전 포고 하고 난 다음에 지지 안해. 그까짓  것에게 지지 안해.

 그러기에, 사람들이 무슨 권력, 무슨 권력. 무슨 권력 말해 쌓지만 땅 위에는  권력이 없습니다. 땅 위에는 능력이 없습니다. 땅 위에는 힘이 없습니다. 힘은  없소. 없습니다. 힘은 셋 뿐입니다. 힘은 세 힘뿐이오. 하나님의 본체의 힘.

하나님의 역사인 영감의 힘, 진리의 힘 이 셋만 힘 있지 그 외의 거는 힘이  하나도 아니라. 이 세 힘이 만 든 것들인데 만들어진 것이라도 이 세 힘에  거슬리면 뭐 이 세 힘의 심부름 노릇하지 이 세 능력이 그런 것들을 통해서  나타나지 그런 걸 통해서 나타나지, 스피커가 백목사가 아니라 스피커는 백목사의  음성을 나타내는 것뿐이야. 이와 마찬가지로 땅 위에 돈의 힘이라, 과학의 힘이라  뭐 하지만 그런 거는 이 세 능력이 그런 것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뿐이지 이  셋이 스톱하면 그거 죽어 버렸어. 다 불타 버려요. 우리 마음은 강퍅합니다.

오늘이라도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어찌 될란지 생각해 봅니까? 이 모든 게  불타면 어찌 될란지 생각해 봅니까?  오전에서 온갖 마귀의 미혹을 다 벗어나라고 많이, 미혹될 것을 말씀을 해  줬습니다. 이제 오후에는 믿음에 대해서 말씀한다고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칼로 죽여서 죽음을 당할 수 있는 것, 불에 해를 당할 수 있는  것, 원자탄에 해를 당할 수 있는 것, 인간들의 그 중론에, 인민 재판에 해를 당할  수 있는 것. 독약에게 해를 당할 수 있는 것, 피조물들에게 해를 당할 수 있는 것.

하나님의 심판의 불에 해를 당할 수 있는 것 그런 거는 영생 못 합니다. 그런  거는 영생이 안 됩니다. 그런 기능은 다 둘째 사망의 해로 다 죽어 버리고  맙니다. 이제 현실에서 현실에서 법적으로 살아 났고, 계약적으로 살아났고  심판적으로 살아난 이것이 실상으로 살아나는 그것이 현실인데, 현실은 이 세  가지로 시험합니다. 이 현실은 모든 피조물로 더불어 이렇게 전투하는 것인데  모든 피조물을 이겨야 이 세 가지 의 것이 됩니다. 모든 피조물보다 이 세 가지를  존대해야 세 가지의 것이 됩니다.

 모든 피조물이 꾀우고 협박해도 협박해도 비웃고 네까짓 거 꾀워도 `네 까짓 거'  아무리 꾀어도 `네까짓 게 좋은 게 뭐 있노? 네게 좋은게 뭐있노?' 암만 좋은 게  있다고 꾀워도 `네게 좋은 게 뭐 있노? 여게 더 좋은거 있다.' 아무리 협박을  해도 `네까짓 게 무슨 실력이 있노? 여기 더 큰 실력이 있다.' 네게 대해서 어떤  뭐 행복이 있다해도 `거 기보다도 여기 더 좋은 행복이 있다.' 그저 세상에 어떤  것이 와도 보다 이게 `낫다' 하는 자 여게 속할 것이고 `보다 이것이 강하다 하는  자 여게 속할 것이고, 보다 이것이 제일 두렵다 하는 자' 여게 속할 것이고 `보다  나는 이것이 제일이다'하는 자 여게 속할 것이고 `보다 나는 다 버리고 이것의  것이 되겠다. 여게 속하겠다, 여게 따라 살겠다, 이것으로써 내 전부를 삼는, 나는  이것의 것이 되겠다, 이것에게 피동되어 살겠다, 이것으로 내 주를 삼고 이것으로  내 생명을 삼아서 이로 인해서 동하고 정하고 살겠다' 하는 그것이 현실에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결정됨으로 말미암아 결정 된 거기서 해당된  것은 영원히 살았습니다. 영원히 제것이 됩니다. 이것은 다른 것들이 해하지를  못해요. 부활해서 변화하나 안 하나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을 어떤 사람은 영생하는 기능을 많이 가진 사람 있고 적게 가진 사람 있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가졌고 어떤 사람은 적게 가졌소. 적게 가졌는데  가지고 있는 거는 세상이 해하지 안합니다. 가지고 있는 거는 해를 받지도 안하고  그 가진 것이 벌써, 가진 것이 오십 프로가 넘어가면 가진 것이 오십 프로가  넘어가게 되면 그런 것들에게 협박을 하나도 당하지 많습니다. 거게 대해서  염려를 하지 않습니다.

 주남선 목사님이 인민군에게 끌러가 가지고 감방에 가두며 `요놈은 우리를  전체를 욕을 하니까 요놈은 우리 해방시켜 놓고 난 다음에 아주 맛있게 요놈을  찢어서 잔치를 하자' 하면서 갖다 가두는데, 거게 그때 다른 사람 세 사람  갇혔는데 추 조사님하고 이 장로님하고 주 목사님하고 서이 가두었는데, 다른  사람은 뭐 겁이 나 죽겠고 그만 상이 새파래졌는데 주남선 목사님은 한 십분도  안 지났는데 그저 옆으로 기대 가지고 코가 거럴거럴거리면서 자더라고. 그런  거야 뭐 아무 두려움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그분은 순교할라고 일편 단심 소망을  가지고 언제든지 교인들 때문에 딴데가서 예배보고 월요일 날이면 꼭 와 가지고  폭탄 속, 사택에서 거처를 하고 있습니다. 사택에 거처를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순교 못 하게 되니까 못했어. 하나님께서 인민군 갈 때는 그 사람 만나지 못하게  해 가지고 순교를 못 했다 그말이오. 만났으면 순교했을 건데 만나지 못했어.

 이러기에, 오전에 말한 거와같이 이제 여러분들이 꽉 잡으십시오. 앞으로 세계가  다, 우주가 다 불탈 터인데 불탈 때에 타지 안할 것은 의입니다. 타지 아니할 것은  의입니다. 의가 되지 아니한 것은 다 그는 멸망을 받습니다. 그러면, 이 불에 타지  안할 뿐만 아니라 어떤 세상 시험이라도 그 시험에 걸리지 않습니다. 이 물질의  해, 피조물의 해를 받지를 아니 합니다. 왜? 조물주 지극히 큰 세 능력과  결합되었기 때문에 이런 것들에게 피해를 받지 안합니다. 죽음의 협박을 당하고  고문과 고형에 고난을 당하는, 고문과 고형에 고난을 당하는 것은, 고문과 고형의  고난을 당하는 것은 이것은 영생으로 통과해서 영생하는 것입니까, 아직까지  영생이냐 영원한 사망이냐 시험을 받고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어디 속한  것입니까? 대답은 옳게 했는데 자세히 기억해요. 그것은 아직까지 죄악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세 가지 (법적, 계약적, 심판적) 구원은 얻었지만 아직까지 옛사람  첫째 아담에게 속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아무리 그런 것이 고문과 고형이  와도 이제 진리의 것 영감의 것 하나님의 것이 된 것은 고문과 고형이 하지를  못합니다. 고문과 고형에게 해를 당하지 안합니다. 이것이 신비한 것입니다.

이것이 신비한 것. 해를 당하지 않습니다.

 해를 당하지 안하고, 그 사람이 해를 당하는데 모든 해든지 협박이든지  미혹이든지 하는 데 미혹이나 협박이나 해나 그것을 받을 수 있는 것이 그  사람에게 십분지 일이라면 십분지 일 그거는 미성화의 것이요, 백분지 일이라면  백분지 일이 미성화의 것이요 백분지 구십 구는 성화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 같이 한자리에 같은 일을 만나나 희로애락이 다릅니다. 담력도 다르고 평안도  다릅니다. 또 의의 힘도 다릅니다. 이래서 우리의 이 건설 구원이라는 것은 어떤  데는 완전한 행위라고 그렇게 말했고 이 건 설 구원이라는 이것은 이  피조물들에게 해를 받을 수 없는 것이 다. 건설구원에 들어 갑니다. 이  건설구원을 그렇게 이래 시쁘게 보고 전부 어리석게 보고 다 에누리하고 있기  때문에 마귀란 놈이 여기서 큰 수단을 보고 있습니다. 건설구원은 온전한 행위가  아니면 안 됩니다. 이긴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다시는 불로나 세상 피조물에  어떤 가해라도. 가해를 할 수 없는 것, 가해를 받지 안할 것, 가해에 대해서는  상관도 없는 이런 것이 다 진리의 것이 되고 영감의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피의  것 곧 하나님의 것이 된 이것이 다 성화된 것이요 영생하는 것이요, 영원히 죽지  안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 벌 시공을 초월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건설구원의 것은 아무리 땅 위에서 해를 안 받고 해를 안 받음으로  예수를 내놓지 않고 갔으니까 다 됐지 싶으지만 어리석습니다. 예수를 내놨든지  안 내놨든지 그 실상은 하나님의 심판에서는 다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거역하지 안하고 주님을 믿는다 그만 하고 이렇게 일생 동안 믿는다고 지냈지만  나중에 가 보면 죽음을, 생명을 내놓아야 되는 생명을 내놓을 때에는 생명 안  내놓기 위해서 진리와 영감과 주를 내 놓을 수 있는 그런 요소는 다 그때 나타나  가지고 다 불타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그런 시험을 안 만나고  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죄를 짓지 안하고 갔으면 좋겠다. 안 짓고 가나 짓고 가나  꼭 같습니다. 지었으나 죄를 짓지 안할 수 있는 거. 죄를 지을 수 없는 거, 죄와  상관이 없는 거 그것만이 다 부활한 자의 권능이 되는 것이고 기능이 되는  것이지 뭐 안 지으나 지으나 내나 그게 그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불타지 안할 수 있는 거, 피조물들에게 해를 받지 안할 수 있는 거, 어떤 가해라도  받지 안할 수 있는 거, 사망의 해를 받지 안할 수 있는 거 그 기능이 우리가 된  것이라야 부활할 때에 부활한 자의 기능으로써 영생하는 기능이 되어지는 것인데  그 기능을 만드는 것은 뭘로 만드느냐? 믿음으로 만듭니다. 이것을 오후에  말할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만듭니다. 믿음으로 만들면 언제 만드는가?  현실에 만듭니다. 현실에 만듭니다. 믿음으로 만들다니? 믿음으로 만들면 믿음은  뭐인가? 믿음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지식하고 말씀하신 대로 지식하고, 그  사실을 그대로 변동 없는, 절대 변동 없는 실상인 것을 인정하고. 그다음에는  그대로 현실에서 살면 됩니다. 살면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이 셋을 가리켜, 더  한 말로 말해서 믿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살면 됩니다. 살아서. 영감과 진리와  주의 공로 이 셋은 하나인데, 이 셋을 배반치 않기 위해서 죽임을 받았으면 어찌  뒬까? 죽임을 받았으면 죽었습니까? 죽임을 받았으면 이제 남은 찌끄러기가 전부  한목 도매금으로 몽땅 진리의 것이 됐고, 영감의 것이 됐고, 하나님의 것이  됐습니다. 돼서 끝나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이것으로써 다 이루었다 하시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럴 때에, 우리가 알고 인정하고, 뭐 별 수 없어. 다른 게 없어. 별  어려울 게 없어. 말씀하신 대로 알고 그대로 인정하고, 알고 인정한 그대로,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돼. 알고 인정하는 그대로. 알고 인정하는 그대로 눈도  움직이고 입도 움직이고 발도 움직이고 손도 움직이고 그라면 가만 있으라면  가만 있고 그저,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의 언행 심사, 그대로의 이목 구비 수족,  그대로의 자기 그대로 돼 있으면 됐습니다. 딴게 없어. 별 수가 없어. 요게  믿음이라. 그럴 때에 그럴 때에 진리의 것이 되고 영감의 것이 되고 하나님의  것이 되고 될 때에 하나님의 능력 영감의 능력, 진리의 능력은 지극히 큰  능력이요 모든 피조물을 탁월한 피조물의 주격이 되는 그 능력인데 그 능력의  것이 되고 그 능력으로 더불어 결합됐으니까 그 능력에게는, 주격이기 때문에 그  능력의 소유가 됐고, 그 능력에 속한 것이 됐고, 그 능력에 속한 것이 되고 그  능력이 만든 모든 것들에게는 주격 이 되었고 모든 것들은 그에게 속한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모든 땅의 것이나  하늘의 것이나 이제 것이 나 장래 것이나 모든 것이 너의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거는 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의, 그대로의 이목 구비 수족, 그대로 의 언행  심사, 그대로의 사람이 되어 있으면 거게 그렇다고 뭐일까? 되어 있으면 뭐이  오는 줄 여러분들이 볼랍니까?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실 때에 베드로가 말하기를 `만일 주시어든 나를 물 위로 오라 하소서'할  때에 예수님께서 걸어오라 했습니다. 걸어오라 할 때에 베드로가 거기 툭  뛰어내렸습니다. 아무 것도 안 시켰습니다. 거기 딴 거 아무것도 없어, 아무 것도  없고 이제 알았어. 바로 알았어. 주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바로 알았고. 그분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을 인정했고, 그분이 오라 하니까 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고, 알았고 인정했고, 그대로의 발을 움직였어. 그대로 뛰어 내렸어.

알고 인정하는 그대로 뛰어 내렸어. 그대로 뛰어 내리니까 물 위로 걸어서  갔습니다. 가다가 푹 빠졌습니다. 빠질 때에 빠진 고장을 주님이 말하시기를 `이  적게 믿는 자 야 왜 의심하였느냐?' 말했습니다.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 그  사람에게 무슨. 귀가 달라졌습니까, 눈이 달라졌습니까, 뭐 수족이 달라졌습니까,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습니다. 행동이 달라졌습니까?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소.

다만 믿음이 없어졌습니다. `적게 믿는 자여' 믿다가 믿음 이 끝났습니다. `적게  믿는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의심하였느냐 그 말은 믿음이 없어졌다 그말입니다.

믿으면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하고 믿음을 버리면 능력이 당장  없어집니다. 믿으니까 물 위로 걸어왔고 믿음 없어져 버리니까 물에 빠졌습니다.

이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믿을 때에 불이 그를 해하지 못했습니다. 불이 해하지  못한 그 요소를 가지고 살았는데, 그분이 죽을 때까지 만일 하나님 외에는 나를  죽일 자가 없다. 불도 못 죽이고 칼도 못 죽이고 만일 어떤 기계에 대놓고 나를  뭐 갈기를 여러 수백 번 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죽게 하셔야 죽지 간다고 죽는  것 아니다 하는 믿음으로 버텨 가지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죽게 하지 안하면  가루를 몇천 번 냈더란대도 내나 그 사람으로 내나 그대로 살아납니다. 그대로  살아나요. 아무도 죽일 자가 없습니다. 생사는 주님이 주권하고 있다는 것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믿었고, 불이 주권하지 않다는 것을 그가 믿고 그  믿음을 요동치 안했을 때에 믿는 그대로 그 책임을 주님이 오셔 가지고 짊어지고  불 냄새도 나지 않게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믿음의 능력은 신비한 것입니다. 믿음의 능력을 써보지 안한 자는  모릅니다. 이 믿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경험해 보지 않은 자는 업신여깁니다.

과학만 힘 있는 줄 알지, 과학만 힘 있는 줄 알지 세상에 있는 권세들만 힘 있는  줄 알지, 피조물들만 힘 있는 줄 알지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서 계약을 믿는 이  믿음의 능력 있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 경험 하고 체험한 자 외에는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영계를 누구에게 맡깁니까? 당신을 알고 당신을  인정하고 그대로 동하고 정하는 자에게 하늘과 땅의 것을 맡깁니다. 일차로  성공자가 예수님이 일차로 성공자인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이 비밀을  모르고 살면 다 외식이요 껍데기요, 다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이. 어리석지 맙시다. 이 믿음이 현실을 닥치지 안하고  실상을 닥치지 안하면 다 믿습니다. 현실을 닥치지 안하고 실상을 닥치지 안하면  다 믿소. 그러나 그것이 현실을 딱 닥치면 그만 못 믿습니다. 그 실상을 닥치면  그만 못 믿습니다. 믿음은 현실에 있고 실상에 있는 것입니다. 현실에 안 믿고  실상에 안 믿으면 소용없습니다. 현실에 믿고 실상에 믿는 것은 다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속지 마십시오. 뭣을 탐할 게 있습니까! 오늘 불이 타 면  여러분들의 아기자기 하는 것이 무슨 가치 있습니까! 잘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큰 게 어디 있습니까! 불보다 큰 게 어디 있소! 불보다 세력 강한 게 어디  있습니까! 이보다 두려워할 게 어디 있습니까! 이보다 중대한 문제가 어디  있습니까? 밥 먹을 거 없는 게 중대한 문제입니까! 굶어 죽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지 안 했습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 큰 문제를 두고 이것은 시시하게  여기고 자기 백 원짜리직공은 백 원짜리 직장 떨어질까 싶어서 뻘뻘 떨고. 천  원짜리 직장자가 말하기를 `저 자식 미친 자식 백 원짜리 그 직장에 뺄뻘 떨고  있네. 내야 하 그래도 하루 천 원이기 때문에 뻘뻘 떨지만.' 네가 더 미친 자다.

백 원짜리 직장에 뻘뻘 떨고 하늘이 불타고 땅이 불타는 그런 것을 문제시 아  하고 그것으로만 큰 줄 알고 백 원짜리 직장에 뻘뻘 떠는 자나 만 원 짜리  직장에 뻘뻘 떠는 자나 백만 원짜리 직장에 삘뻘 떠는 자나 억만 원 짜리 직장에  뻘뻘 떠는 자나 세계에 재벌인 일대 재벌을 두고 뻘뻘 떠는 자 나 세상에 제일  큰 정권을 가지고 밸뻘 떠는 자나 너도 미친 자, 너도 미친자. 다 어리석은 자요,  정신 없는 자지 이 불보다 크다고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는 다 정신 없는 자라.

모두 정신 이상자라. 정상이 아니라!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리석지 맙시다. 우리는 매일 여게 대해서 생각하고 매시간 생각해서 여기에  합당한 사람으로서 준비합시다. 썩지 안할 것으로 준비합시다. 썩지 안할 길이  있습니다. 안 죽을 길이 있습니다. 더러워지지 안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한 번  좋아지면 영원히 좋습니다. 한 번 살았으면 영생합니다. 그거는 현실에서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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