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깨달음으로 살아야

 

1980. 3. 28. 금새

 

본문: 빌 3: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자기가 바울이 사도 되기 전에 이스라엘 중에 이스라엘 사람으로 모든 면에  진실을 갖추었던 그 바울이 자기가 지식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것 또  권위적으로 부요적으로 영광과 존귀적으로 모든 면으로 필요하고 유익한 그 모든  것을 아주 귀중하게 여겨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했고  또 그것을 가진 것으로 심히 자랑스럽게 여겼고 이랬지마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 것을 깨닫고 난 뒤에는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 비해서 비교도 상상도  못할 만치 그리스도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알았는 고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기 위하여 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이 모든 은혜가 그 모든 것보다 크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얻기 위해서  그리스도 안에 살기 위해서 다 그 모든 것을 자기가 버렸다 해로 여겼다.

 '해로 여겼다' 하는 이 말은 조금 묘한 말입니다. 다 유익하지마는 유익에  차질이 있다는 그 표시보다도 이 그리스도는 자기에게 무한히 유익하려는 이전에  자기가 필요로 여겼던 그 모든 것은 무한히 해가 된다 그 말은 그리스도와  그전에 필요로 여겼던 그 모든 것과는 차이가 심히 크다 차이가 심히 크다 그  차이점을 들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로 여겼던 것이 아니 유익을 여겼던 그것이 무한한 거기에 비해서는  무한한 해가 된다. 그러면 그것들이 유익이 된다면 이 그리스도는 자기에게 어떤  유익이 된다고 상상하고 측량하지를 못하게 된다 하는 그런 차이점을  말했습니다.

 "부모나 형제가 자매를 미워하지 안 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하는 그런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미워하지 안하고 사랑해야 되지마는 사랑해야 되고 또  사랑하는 존재고 하지마는 예수님을 사랑해야 된다는 그 비교 거기에다 비하면  예수님 다음으로 사랑해야 되겠느냐 예수님은 조금 덜 사랑해야 되겠느냐 그런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사랑에 비하면 그런 그 사랑에 거리가 정반대로 미워할  만치 그만치 거리가 멀다 하는 그런 좀 오묘한 뜻을 표시해서 거리가 심히 큰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자기의 혈육가족과 어느 것을 더 사랑해야 되겠느냐 어느  것을 더 위해야 되겠느냐 그런 것은 아예 대지도 못할 만치 그는 그저 비교를  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 대해 비추면 그만치 덜 사랑하다 덜 사랑하다 아주  사랑치 안 해야 된다 그런 것 아니라 미워해야 된다 거기까지 나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도 해로 여길뿐더러 그러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하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준 말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것을 내가 받기 위하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함이라는 것 그리스도를 위하여 잘못하면 내가 주를 위해서 우리가  그런 말을 잘하는데 주를 위해서 또 주를 높여서 주를 유익 되게 주를 좋게 내가  희생해서 주를 유기 되게 하는 그런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여기 그런 말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위하여'라는 말은 모든 것이지만 모든 것 중에 그리스도가 나에게  가장 필요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것이 나에게 가장 필요하기에 이 그리스도의  것 이것을 위주로 하기 위해서 이것 얻기 위해서 이것 위해서 이것 때문에 이걸  깨닫고 보니까 모든 것을 다 버렸다 버릴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해로 여긴다.

그렇게 그것과 그리스도와 우리에게 필요성의 차이 유익성의 차이 또 보배로움의  차이 그 차이점을 말합니다.

 8절에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내주라는 책임 맡은  내주, 주란 말은 모든 것을 책임 맡았다는 그 책임자를 나타내서 주라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내주 그리스도가 무엇인데 그렇게 보배냐? 내주, 나를 책임  맡으신 분이다 나를 책임 맡았는데  어떤 사람은 자기의 책임은 돈 밖에는 자기 책임질 것이 없다 이러기 때문에  돈을 많이 모아 가지고서 돈을 의지하고 바라보아야 된다 끝까지 자기를 책임져  줄 존재는 물질이다. 끝까지 자기를 책임져 줄자는 아무것이 사람이다 자식이다  남편이다 아내이다 또 끝까지 자기를 책임져 줄 존재는 두 말 할 것 없이 내  실력이다 그렇게 자기가 의지할 만하고 자기가 바라볼 만하고 참 자기에게  실제로 유익을 주고 끝까지 책임을 져 줄 그런 것을 사람들은 모두다 각각 달리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생각해볼 때에 아이고 뭐라고 싸도 참 속담에 '내 손이 뭐 내 손이 내  딸'이라고 '내 손이 제일 만만하고 내게 제일 필요하다' 하는 말과 같이  '아무래도 나는 목수기술을 배워야겠다 목수 기술을 배워야 되겠다. 내게 끝까지  이익 되고 나를 책임지고 내게 참 필요한 것은 목수 기술이다' 목수 기술 그렇게  작정한 사람은 목수 기술을 배우고 '뭐라고 싸도 내게는 운전 기술이 제일 낫다'  '아, 나는 뭐라고 싸도 내가 한자라도 더 배워서 유식해져야지 뭐 딴 것 없다'  그렇게 모두다 자기의 주를 찾는 것입니다.

 자기가 주라고 생각하는 것, 자기를 책임지고 자기에게 유익 되고 자기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가 되고 '무엇보다도 이게 낫다' 싶은 거기에 사람들은 심신을  기울려 시간을 기울려서 그 외의 자기에게 도움될 수 있는 그런 관계 맺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내주, 내주, 과거에는 이런 것 저런 것들이 있어서 '이게 있어야 내게  유익하다 저기 있어야 내게 유익하다' 자기에게 유익 되다는 것을 종류대로 갖출  것을 다 갖춰놓고 '모든 것을 나는 다 갖춘 사람이다' 이랬는데 이제 그런 것을  다 포기했다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해로 여긴다 이제 그것이 여기에  털끝만치라도 이를 얻는 데에 이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맺는 데에 조금만이라도  그것이 거칠까 싶어서 아예 이제 해로 여긴다 이런 것이 조금이라도 여기  거리낄까 해서 아주 그것을 멀리하고 집어던져 버리고 그 꿈에도 생각에도 그런  것이 도무지 나타나지 못하도록 아주 그 미워한다. 그런 뜻에서 말한 것입니다.

그렇게 이제 내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뿐이다.

 이래서 내주, 내주 그리스도 예수 나를 책임질 그 아주 유력한 분으로는  그리스도 예수뿐이다 하는 뜻으로 내주라고 말했습니다.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여기에  안다는 말은 지식적으로 지식 한다는 그런 의미는 아주 외부적이고 그 외부 속에  들어가서 안다는 아는 거기에 대해서 자기가 관계를 맺는 것 말합니다. 관계  맺는 것, 책임지는 것, 관계를 맺는 것,  그 사람은 그 사람에게 가 가지고 그 사람이 그래도 예의 체면이 있는데 좀  도의에 대해서 말하지 그 사람은 도의가 뭔고 돈 밖에는 모르는 사람이야 말해야  헛일이다. 그 사람에게 가 가지고 그래도 좀 타일러서 내가 이르면 앞으로  명에나 지위나 그 사회지위든지 네 명예든지 네 영광이든지 사업이든지 그런  데에 크게 해독이 되니까 그걸 타일러서 좀 말을 하지 하, 그 사람 그 사람은  요새 노름에 빠져 가지고 노름에 빠져 노름밖에 몰라 그렇게들 말하지요  노름밖에 몰라 그 사람은 노름만 하는 사람이라. 야, 그렇지만 그 사람은 가정도  파괴가 되고 모든 사업도 지금 막 회사도 물러나고 그라는데 그 사람 그래 되냐  그러면 말을 해 주지 그 사람은 요새 체육에 미쳐 가지고 체육에 마음이 기울려  빠져 가지고 체육밖에는 몰라 꿈도 체육밖에는 안 꿀 꺼라 그런 뜻의 아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것이' 그러면 안다는 말은 여러분이 여기에  깨닫겠습니까? 안다는 말이 이제 예수밖에는 모르지 예수밖에는 그리스도 밖에는  없소 뭐 그라면 가정도 아, 가정이고 뭐 그리스도 예수밖에는 그 사람에게는  없소 그 사람은 뭐 생명도 없소 죽고 사는 것도 상관없소 '죽는 것도 모르고  사는 것도 모르고 그리스도 예수만 알아' 하는 그런 말입니다.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이 이상이 없는 이것이 제일이요 이것이 전부요 이거 하나면 다라.

그런데 그것이 여기 고상이라는 것은 가치적으로 제일 높은 것을 말을 했고  권위적으로 제일 높은 것을 말을 했고 또 가치적으로 권위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광적으로도 그 이상이 없는 것을 나타내서 고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고상, 고상이란 말은 가치적으로나 권위적으로나 편리적으로나 요긴적으로나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이외 모든 것에도 이 외에는 없다. 이것이 제일 보배롭고  제일 중하고 제일 귀하다. 그런 것을 나타내서 우리말로 고상함을 인함이라.

고상이란 말은 쓴 것입니다.

 자꾸 그리스도를 아주 욕심을 냅니다. 이 그리스도, 그리스도 외에는 없는 것을  말을 합니다.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내가 그를 위하여 뭘 위한다 말이죠?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하는 말입니다. 그를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그  위에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하는 말은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위한다는 말은 내가 그리스도 예수를 좋게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좋게 한다는 말이 아니요. 위한다면 우리말로 위한다면 나는 손해고 그는  유익 되도록 내가 그를 좋게 하는 그런 말로 듣기 쉬운데 또 요걸 똑똑히 모르면  요 말을 똑똑히 모르면 요 해석이 다 그만 거꾸로 돼 버립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그를 위하여 라는 말은 그를 위한다는 말입니까 나를  위한다는 말입니까? 무슨 말이죠 그를 위한다는 말이 아니고 나를 위한다는  말입니다. 나를 위한다는 말은 나만이 아니고 나와 관련되는 모든 피조물을 다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자기와 자기밖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위하여 그를 위하여 피조물을 위하여  피조물을 위하다니? 그이가 자기와 모든 피조물에게 제일 고상하기 때문에 제일  고상한 그 은혜 그 구원 그 역사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그것을 이제 그것을  위하여 그거 위주라 말이요 그거 위주라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그리스도를 유익 되게 하기 위함이 아니고 자기와 자기에게  있는 것을 유익 되게 하기 위함이라는 그 뜻으로 여기 위한다는 말한 것입니다.

잘못하면 일반 말로 써서 그를 위하니까 주님 좋게 그런 말로 그를 유익 되게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털끝만치라도 바칠 수가 있느냐 줄 수가 있느냐 유익 되게  할 수가 있느냐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그러면 그가 자기와 모든 피조물에게  가장 보배롭고 유익 되기 때문에 그거 인제 그것만 안다 그 말이요. 그것만 안다  말이요 그만 위주로 한다는 그 말이요. 그는 자기가 그이에게 드려서 무엇을  갖다 한다는 그 말이 아니고 자기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갖추는 데에는 유익  된 것을 갖추는 데에는 모든 거 많이 있었지마는 다 이게 필요 없고 그 한 분이  내게 유익하다 한 분만이 필요 있다 그러면 그만 위하여 그만 알기로 그를  위하여 그 안에서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오 완전자의 이름인데 그는 우리가 아무것도 그에게  드리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에게도 드리지를 못합니다. 왜? 그는 나보다 크게  완전자이기 때문에 뭐라고 비유를 할꼬 여기에 푸른 물 그 재료가 있습니다. 그  푸른 물 지금 그 원료가 지금 있습니다. 새파란 물 원료가 가루로 되어있고  뭉텅이 되어 있습니다. 있는데 이제 그 물로 인해서 그걸 풀어 놨더니마는 한 되  되는 물이 아주 새파래졌습니다.

 새파래졌는데 그런 푸러진 그 물 가지고 지금 물들이는 그 원료 푸른 물 덩어리  물 덩어리 그것을 그 푸르꾸름하게 되어 가지고 있는 그 물이 그 물 덩어리를  푸르게 더 푸르도록 진하도록 해 줄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찌 됩니까? 해  줄 수가 있소 없소? 여반에 이 물을 한 통을 싸 왔는데 이것을 그저 조그매  쌀내끼 만큼 풀었디마는 아주 그 한 말되는 물이 시퍼래졌습니다. 푸르러졌소   그러면 푸러졌으면 한 말 되는 풀어져 풀어 가지고 있는 한 말되는 이 물을  가지고 이 박 속에 들어있는 이 물 덩어리 그 연료 물 재료 이것을 푸르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걸 푸르게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안에 있는  재료를 더 푸르도록 할 수가 있소 없소? 닥치면 둘이 만나면 이 물감 재료가 이  말에 있는 푸른 물의 덕을 봐서 이 재료가 더 푸르러집니까 이 물이 재료로  인해서 더 푸르러집니까? 어느 것이 유익이 됩니까? 예, 물의 것이 더  푸르러지고 유익되지요. 이 물 이것은 아무리 해봤자 이것을 더 푸르게 할 수  없습니다.

 저보다 진하기 때문에 저보다 진하기 때문에 거기서 얻을 것이나 있지 접하면  그 진한 것이 제게 오기나 하지 여기서 갈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말이요. 이  비유컨데 그저 이런 것 비슷한데 그리스도는 완전자이기 때문에 그를 접하면  그의 것을 내가 얻어오고 받아오지 그에게 드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는 완전자이기 때문에 예수님도 우리의 근원이시오 그는 우리보다 무한히는  아니지마는 완전이기 때문에 내가 그에게 뭐 그는 하늘과 땅의 것을 다 가지신  분인데 내가 무엇을 드려서 그에게 필요하도록 유익 되도록 하겠습니까? 접하면  얻는 것뿐입니다. 접하면 얻는 것뿐이지 내가 그에게 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누가 먼저 그에게 드려서 갚음을 받을 자가 없다" 그렇게  성경에 표시해 놨습니다. 그 성구가 어딘지 누구 압니까 성경에 있는 줄 압니까?  있는 줄 알면 됐습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 그 말은 자기가 그것을 안 뺏길 수 있지마는 이것을 차지할려고  하다 보니까 이것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다 빼앗기게 되었고 그 모든 것이 다  내게 없어지게 되었다. 자기의 모든 세상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찌끼로 여김 그 모든 것을 이제 찌끼로 여김은 찌낑이 깨를 가지고서 기름 짜면  기름은 알맹이요 콩깻묵은 찌낑이 아닙니까?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거기 영양을 섭취하고 나머지는 대변 소변으로 나오지  않습니까? 대변 소변 그런 것이 이제 찌낑이입니다. 배설물로 여김은 과거에는  성령으로 중생을 받아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기 전에는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겼지마는 그게 아니라 그거 속에 그리스도를 얻고 예수를 얻고  그리스도로 부강해지고 예수로 부강해지는 그리스도와 예수로 부강해지는 이  부강이 이 세상 속에 들어있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도 예수로 부강해지는 이 부강이 이 세상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도 예수로 부강해지는 것이 그것이 어데 들어 있느냐 이 세상 속에 든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 세상에 세상 속에든 그리스도 예수는 알맹이라는 것을  내가 발견을 했고 내가 과거에 유익 되다고 필요하다고 느끼던 그 모든 것을  그리스도 예수를 감추어 가지고 있는 찌낑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래서 이 세상 모든 살이에서는 그 속에 알맹이 되는 그리스도 예수를 자기가  얻고 부요해지기 위해서 이걸 부요해지기 위해서 그 안에 있는 알맹이로  부요해지고 세상 사람들이 보배로 여기고 귀하게 여기는 그런 것은 다 내게는  필요 없고 그것을 인하여 알맹이 그리스도 예수만 내게 필요하고 그 외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은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말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세상에 지위나 권세나 명예나 자기 목숨이나 자기 몸이나 자기의  모든 세상 것 이것은 그것만 자기는 것은 찌끼만 가지는 것이 되고 껍데기만  가지는 것이 되고 이것 속에 그리스도 예수가 감추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이래서 하나 하나 세상 현실 현실을 접촉하는 가운데서 그 속에 들어 있는  그리스도 예수만 내가 알맹이만 취해서 챙기고 난 다음에 그것은 다 배설물  찌낑이, 껍데기란 것을 알았다 배설물로 여긴다. 배설물로 알았다.

 천국은, 천국은 마치 보화를 주우니까 여기에 대한 도리를 모르는 사람은 이  도리를 아는 사람은 접촉을 하면은 시근이 이 도리대로 열려서 말이 통합니다.

이 도리를 모르는 사람은 마치 이북에 공산주의 밑에 있는 그 청년들이  공산주의밖에 세상의 모든 이치를 모든 실존을 말해도 그들은 부인하요. 왜?  김일성이 밖에는 모르니까 그 말 밖에는 모르니까 그것 모양으로 이 도리로  자라가지 안하고 깨달아 가지 안 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있는 주관 이미 기존  지식이 되어 있고 선입적 관념이 되어있고 자기의 체험 지식이 되어있고 하는  그대로 것이기 때문에 그 외에 것을 부인합니다. 전부 부인하요. 제게 있는 것만  위주로 삼아서 그 사람을 가르쳐서 주관주의라 그러니 안 통한다 그 말이요 그  사람은 저 잘난 재미로만 살지요 제 세계에서만 말하지요 그 범위나 모든 것이.

 그 모양으로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스데반을 죽일 때에 그때까지만 해도  자기는 찌낑이 그것 가지고 살았다. 찌낑이 그것 가지고 살고 찌낑이 그것이  자기 것 인줄 알고 찌깅이만 자꾸 끌어 모아오고 찌깅이 그걸 모으기 위해서  알맹이는 잊어버리고 또 자기는 손해보고 죽고 전부 그랬다. 이제는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찌깅이요, 보이는 것 속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어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하여 보이는 것이 있는 것을 알았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그것이 크다,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보이는 것이 생겨졌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오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이러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대해서 이제 산다.

 그러기 때문에 과거에 필요로 여겼던 그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버릴 뿐만  아니라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그것이 찌깅이인 것을 내가 깨달았다. 찌깅이인  것을 깨달았다. 세상 속에 그리스도 예수가 그 안에 있는 것을 내가 알았다.

그리스도 예수로 내가 부강해 질려고 하면은 들어있는 그 그리스도 예수를 내가  취해 가지고 내가 부강하게 되어진다.

 천국은 이 보화를 만난 자가 그리스도 예수를 발견한 자가 그 말이요. 보화를  만난 자가 있는 것을 다 팔아서 세상을 그 밭을 산 거와 같다. 자기 있는 것을  다 목숨, 몸 가정 자기 행락 건강 말할 것 없이 자기에게 있는 소유 전부를 다  이것을 희생시켜 세상을 차지했다 이것을 다해서 세상을 차지했다 세상을 자기  세상 만들었다.

 세상, 자기 세상 만든 것은 자기가 세상에게 이용당해야 자기 세상입니까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해야 자기 세상입니까 뭐이지요? 예 이런 것 다 어려운  말이요. 쉽고 어려운 말이요 어려운 말이기 때문에 모르고 산다 그 말이요.

 자, 세상을 자기 세상 만든 것은 세상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자기 세상 된  것입니까 세상을 자기에게 이용하는 것이 자기 세상 만든 것입니까? 대답 좀 해  봐요? 이용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세상이 자기 종이 돼야 세상이 자기 된 겁니까 자기가 세상의 종이 돼야  이제 세상이 자기 세상 된 겁니까? 세상이 자기 종이 돼야 자기 세상 된 거지요.

'밭을 샀다' 그 말은 세상을 샀다 그 말인데 세상을 살라 하니까 있는 걸 다  줘야 돼. 다 줘야 사지 그래 안 하면 못 사. 세상을 자기 세상 만들라고 하면은  있는 걸 다 해야 돼.

 다시 말하면 세상에게 자기가 이용당하지 안하고 자기가 세상을 자기 구원에  유익 되도록 이용하려고 하면 목숨도 아끼지 안 해야 되지 아끼면 안 된다 그  말이요. 이해가 됩니까?  요런 것을 꽉 잡아서 아멘, 꼭 잡아야 힘이 나오고 신앙이 되어지는 것이지  흐리멍텅한 그런 사람은 그자는 흐리멍텅한 그런 사람 지금 제일 답답해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다 흐리멍텅하게 무걸호인으로 둥글둥글하게 팔방미인으로 이래  사는 사람들을 좋아하는데 나는 그 사람이 제일 싫습니다. 제일 그 사람 볼 때에  답답해요 그걸 아무래도 고쳐야 돼요. 예.

 이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싫어하고 딱딱하다 하고 이렇지마는 나는 그게 안  늙을려고 애를 씁니다. 죽을 때까지 안 늙고 더 강해졌으면 좋겠어요.

흐리멍텅하게 누가 그따위 처세술 할 줄 누가 모르겠소 모르길 다 알지마는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면 자기가 나팔을 불러야지 안 불면 안 된다 그 말이요.

 자기가 아는 대로 옳고 그른 걸 바로 옳은 건 옳다 아닌 것 아니라고 이렇게  해야 되지 안 하면 뒤에 네가 왜 이 나팔 안 불렀노? 그 모든 잘못된 값을  어데서 되찾겠다 했소 여기 남반에 어데서 되찾는다고 했소 '자기 손에서  되찾겠다' 했소 그 말씀 어데 있습니까? 어데 33장 어데 33장에 '파수꾼이 나팔  불지 안 하면 저희는 저희 죄 가운데 죽으나' 몇 장? 에스겔 33장 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에게 참 한없이 부드러운 사람이 될라고 애를 쓰면서  한없이 그에게 옛사람과 죄악의 사람을 다 죽여서 완전히 멸하기까지에 이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드러운 것 만치 그 속에 강한 게  있어야지 그것 없으면 안됩니다.

 '배설물로 여김은' 배설물로 여김은 이제 배설물로 여긴다는 말은 배설물로  배설물인 것을 깨달았다 그 말이요. 밭을 사니까 뭐 때문에 샀소 밭 속에 보화  때문에 샀어 보화는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요.

 이 그리스도로 부강해지는 것은 이 세상에서 부강해지지 이 세상을 이용해  가지고 부강해지지 그리 안 하면 부강해질 수 없거든요 그리스도 예수를,  이러니까 이 세상이 세상뿐이라면 그거는 다 찌낑이요 소용없는 것이고 이 세상  속에 그리스도 예수가 있어.

 한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로 부요해질 수 있고 예수로 부강해질 수가 있다  그럴러면 이 자기 현실을 자기가 현실에게 지배를 받지 안하고 현실을 지배해야  되고 현실에게 이용을 당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현실을 이용해야 되니 자기 것을  만들어야 된다 말이요. 이 현실을 자기 구원에 유익하도록 이용할려고 하니까  목숨도 안 아끼고 돈도 안 아끼고 아무것도 안 아껴야 되지 뭣이라도 아끼면  그놈 때문에 그놈을 거머쥐고 흔드니까 할 수 없어서 그걸 놓지 안 하려고  하면은 현실에서 자기가 지배를 받아야 되고 현실에 종이 되어야 되고 현실에게  이용을 당해야 되지 현실을 이용할 수가 없다 요걸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르쳐서 '밭을 사는 것과 같다' '진주를 사는 것과 같다' 그렇게 말씀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내가 그 보화가 그리스도 예수요 예수님의 구원이요 진주가 그것입니다. 어째  오다 가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바로 받아 깨달았든지 자기가 인간이 구원  얻을 도가 어데 있는가 참 길이 없는가 이래 찾아다니면서 찾다가 깨달은  사람이든지 예수 믿는 도리를 바로 깨닫기만 깨달으면 이것 얻기 위해서 자기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투자한다 그 말이요. 배설물이라.

 그러면 음식을 먹으면 영양은 섭취하고 나머지기 배설물은 내 버려야 되지  않소. 그게 채여 가지고 있으면 어째 됩니까? 채여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 그  말이요. 그라면 또 어짜고요? 아, 또 이제 배설물과 영양이 둘이 합치 해 있는  걸 또 먹어야지요. 아침에 먹은 것을 또 영양 취하고 알맹이 취하고 찌낑이는 또  대소변으로 내 버리고 또 점심에 또 먹어야지 배설물 보내 버리면 이게 채여  가지고 있으면 병 아닙니까? 큰 병입니다. 이게 잘 나가야 되지요 배설물을 또  배설해 버리고 다 내버려 버리고 또 새로 갖다가 영양과 배설물도 한테 합하면  영양 그걸 취할라 하니까 부득이 찌낑이를 먹어야 되겠다 말이요  비유하면은 똥을 먹는다 그 말이요. 똥을 왜 영양이 그게 있기 때문에 영양  그거 취하기 위해서 똥을 먹었다 그 말이요. 똥을 먹다니? 아 밥을 먹었는데  나중에 영양 취하고 나머지기는 똥으로 나오거든 그렇지 않소? 그게 필요  없지마는 속에 영양 때문에 필요 있다 그 말이요.

 영양을 못 취하고 그걸 먹었는데 영양을 못 취하고 그만 설사를 해 버려도  그것도 자기에게 병, 또 영양을 취했지마는 배설물이 나가지 안 하는 그것도 병  자꾸 영양과 그 배설물이 둘이 한테 섞여있는 그것을 맘껏 먹고 영양 싹 취하고  배설물은 썩 내버려 버리고 또 새것 먹고 영양 싹 취하고 배설물은 썩 내버려  버리고 또 새것 먹고 자꾸 이라면은 건강한 사람이요 그게 자란다 그 말이요.

 우리 현실이라는 현실이 그겁니다. 현실이 우리 구원에 참 구원이 되는  그리스도 예수를 얻는 이 영양과 같은 우리 구원이 현실 속에 들었고 우리 구원  취하고 나면 나머지기 배설물이 있으니 그거는 버려야 되고 이런데 사람들은  영양은 하나도, 밥을 먹어놨더니마는 영양은 하나도 섭취 못하고 영양은 하나도  섭취 못하고 이게 속에 가 가지고 더 살아나서 막 배가 부르고 이래 가지고서  하나도 소변 할라해야 소변으로도 안나가지 대변으로도 안 나가지 영양도 하나도  못 취하지 이놈만 뱃속에 꽉 채여 가지고 있으면 자, 그라면 어찌 됩니까 그라면  어찌 되지요? 그라면 어찌 되겠소? 여기 세상 욕심쟁이가 보이지 안 해. 세상  욕심쟁이한테 보이면 좀 그걸 한번 물어보면 좋을 건데 그라면 뭐 죽지  어짜겠소? 나중에 배를 갈라 트리고 내고 또 꿰매봐도 또 안되면 그러면 죽지  어짜겠소?  이와 같이 '이 세상에 있는 걸 해로 여길 뿐 아니라 다 버린다' 그 말은 이  영양 취하고 나머지기 배설은 배설이 돼야 좋지 자기 현실에 만나면 현실에 만난  거 마다 전부 잡고 안 놓을라 합니다. 자기 현실에 닥친 것마다 돈 닥치면 돈 안  놓을라 하고 권세 닥치면 권세 안 놓을라 하고 어짜든지 닥치면 닥친 것을 놓지  아니 할려고만 애를 씁니다. 그라면 자기 죽습니다. 그게 큰 병입니다.

 권세가 왔습니다. 권세가 오니까 '아이구, 저 사람 권세 잡아 놨으니까 권세를  안 내 놓을 거다' 허 권세가 오니까 권세 속에 알맹이 자기에게 유익 된 구원만  탁 취하고 난 다음에는 권세를 확 배설해 버립니다. 배설해도 그 권세가 그  다음에 또 있으면은 또 있으면 그 권세 속에 이제 구원만 딱 취하고서 그 권세는  배설해 버립니다.

 이러니까 '날마다 단연코 말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는다' 날마다 배설한다 모든  것을 배설하지 안 하면은 이제 다시 그 속에 새것을 취하지 못한다 새것을  취하고 난 다음에는 배설해 버려라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안 하면은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말씀한 것입니다.

 네,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 깨닫지 안 하면 헛일입니다. 깨달아야 되지 어떤  사람은 와야 자. 자면서 그전에 알던 거 제일 처음에 제가 예수 믿으면서 들은  도리 항상 그것만 가지고 신앙생활하지 새로운 깨달음이 없으니까 새로운 생활이  안나와 변화가 없어 자기 신앙이 자라는가 안 자라는가 그것 문제는 둘로 보면  압니다. 자꾸 새로운 깨달음이 나오는 그것이 내적으로 자라는 것이요, 외적으로  새로운 깨달은 대로 그 생활 변화되어지는 그것이 외적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새로운 깨달음 가지고 새로운 생활하는 사람은 변하지 안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변했답니다. 그래 가지고서 서로 통하지 안하고 서로 조롱하요 저거  이단이다 정통은 이단을 훼방하지 않습니다. 그걸 자꾸 아니라고 고쳐 줄라고  애를 쓰지 이단이 정통을 정죄 하고 훼방하지 나은 자는 못한 자를 훼방하지 안  해요.

 나은 자가 못한 자를 훼방하는 것은 그것은 나은 자가 벌써 스스로 섰기 때문에  넘어집니다. 그 다음에는 나은 자는 못한 자를 훼방하지 안하고 못한 자를  안타까워 고칠라고 애를 쓰지 훼방하지 안하고 못한 자는 자기보다 나은 자를  언제든지 헐뜯는 것입니다. 그런 거만 봐도 환히 알아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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