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깨달음으로 살아야


선지자선교회 1980년 3월 29일 토새

 

본문 :  빌 3:8-9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세상에 있는 자기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모든 것과 비교할 수 없고 오히려  정반대가 되는 그리스도 예수가 자기에게 필요함을 깨닫고 여기에 집중해  노력하다보니까 그만 세상에 있는 필요한 그 모든 것은 왔든지 갔든지 이것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다 망각하고 잊어버리고 또 그것을 실지로 다 자기에게는  느끼지도 못했고 모든 것을 다 빼앗겼고 또 세상에 있는 이미 자기에게 필요하게  되어 있는 것, 또 자기에게 해라고 되어 있는 것, 현실에 이해가 어떤 것을  당하든지 이 현실에서 그 현실 속에 내포되어 있는 이 그리스도로만 자기의  수입으로 자기의 유익으로 삼아 어디서나 그리스도로만 섭취하고 그 나머지기는  다 배설해 버리는 이 생활로 이 사상으로 이 노력으로 살게 된,

그리스도가 어떤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필요하기 때문에 어떤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필요하며, 그리스도가 어떤 것이기에 이렇게 필요하며, 또 이렇게 주력이  됐으며, 또 모든 세상살이 전부에서 감추어 있는 이 그리스도만을 얻고 그 외의  것은 하나도 자기에게는 상관없는 배설물로 이렇게 삼은, 삼게 된 그 그리스도가  어떤 존재이며 무슨 유익을 주는 것인가 하는 것을 이제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성령의 사람들과 성령님은 그리스도 예수를 이렇게 필요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필요하게, 중요하게 그만 이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사람, 이것만 아는  사람, 이것만 바래보고 이것만 위해서 노력하고 이것만을 섭취했지,  세상살이에서 이것만 자기의 수입으로 삼아서 섭취를 했지, 그 외의 것은 하나도  하지 아니한 이 그리스도 예수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성령의 사람과 성령님은  이러하셨는가 하는 것을 이제 증거하겠습니다.

성경에 나타내실 때에 그리스도 예수라, 예수 그리스도라. 앞뒤에 붙이는 그  차이가 있습니다. 어떨 때는 그리스도를 앞에 붙이고 어떨 때는 그리스도를 뒤에  붙여서 예수 그리스도라, 그리스도 예수라. 이렇게 나타내실 때에는 그리스도  예수라고 나타낼 때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그 태초부터 하나님의 구원이 태초부터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그 과정을 중점적으로 나타내실 때에는 그리스도 예수라  그렇게 말씀했고, 또 예수 그리스도라 이렇게 말씀할 때에는 우리의 대속주,  중보자의 이 구속의 은혜를 힘입어서 무궁한 하늘나라에 있는 이 구원을  건설해가는 이 구원을 건설해가는 이 구원을 이루어가는 이 면을 중점적으로  나타내실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라 이렇게 성경에 나타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는 위에서부터 내려 올 때고, 모든 구원이 위에서 내려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게 온 것을 나타낼 때에 그리스도 예수라.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은 내가 완전성, 무궁성, 영원성의 이 구원을 향하여  이루어 나아갈 이것을 표시할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이렇게 나타내서  구별하십니다.

예수라는 말이나 임마누엘이라는 말이나 같은 말이고 또 그리스도라는 말이나  메시야라는 메시야 구원, 메시야라는 말이나 같은 말의 뜻입니다. 같은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원전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자존하신 그 계신  때가 없고 영원전 이라고만 표시하지 그 어떤 때라고 할 수 없는 시간의 시작이  없는 영원전 하나님의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이 그리스도는 영원전 하나님의  이름이요, 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말씀도 영원전 하나님의 이름이요, 또  성자도 하나님의 영원전 이름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그 인성은 피조물이지마는 그 신성은 하나님이신데 예수님의  신성을 예수님의 신성인 하나님을 가르쳐서 메시야라, 그리스도라, 말씀이라,  성자라, 여호와 하나님이라, 영존하신 아버지라 이렇게 나타냈습니다. 이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신성의 이름과 신인양성일위가 된 뒤의 이름이 다르니  신인양성일위가 된 인성을 가진 뒤에는 이름을 가르쳐서 임마누엘이라 하라.

예수님이라 하라. 이렇게 말씀해서 예수님이라고 이름하는 것은 예수님이  사람되어 오신 이후의 이름입니다.

나시기 전에 이름이 있었지마는 그 이름은 도성인신해서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되어 오셨을 때에 사람되어 오신 그 후에 예수라고 하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사람되어 오신 후에 예수님이라고 하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어떤 경우에는 이렇게 하나님으로 칭호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이래 말씀할 때도 있지마는 인성이 붙어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성이  붙어 있기 때문에 그 하나님만으로 이렇게는 표시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사람되시기 전에 천지만물을 모두 다 창조하셨고 예정하셨고  이렇게 하셨지마는 예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했다. 세상을 창조했다. 이렇게는  말을 못하고 이렇게 말할 때는 반드시 거기 해석이 붙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도성인신하시기 전에 사람되어 오시지 전에 이런 일을 해놓고 오셨다. 이렇게  붙여야 되지 붙이지 아니하고 이렇게 말을 하면 예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이러면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인데 피조물이 천지만물을 창조했다는 이런  모순된 말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는 못하고 예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고  이것을 표시할 때는 반드시 예수님의 신성이 그랬다는 요것을 그 해석을 붙여야  그 모순이 없게 됩니다.

구약에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이렇게 많이 하나님이 나타나셨는데 그 하나님 곧  그리스도인 하나님이시요, 그 하나님이 곧 말씀이신 하나님이시요, 그 하나님이  곧 예수님의 신성이십니다. 구약에 여호와로 나타나서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은  예수님의 신성이요, 에덴동산에 역사하시던 그 하나님도 예수님의 신성이시오,  또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물 위에 운행하셨다 하는 그 하나님도 내나 예수님의  신성이시오, 이 신성은 영원전 그리스도라고 이렇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러기에 그리스도라고 이렇게 하나님을 나타내셨을 때에는 하나님이 어떤 그  역사를 할건가? 하나님의 그 역사하실 직명입니다. 직명 직책을 표시하는 그  직명이요, 또 말씀이라고 이렇게 하신 이 이름은 영원자존하신 은밀한 존재를  은밀한 존재를 드러내서 나타내는 그 역사를 하나님이 하실 때에 그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르쳐서 말씀이라, 말씀이 모든 것을 그 목적하신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이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인데 만물을  창조하신 이것도 만물 창조로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라는 것이 나타난  것입니다. 만물을 짓지 아니했으면 하나님이 나타나지를 못하는데 만물을 지으신  것은 당신은 만물을 지으심으로써 아!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라. 지으신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타나신, 나타나셨습니다.

그러기에 만물을 창조하신 그 역사를 하신 하나님을 가르쳐서 말씀이라. 또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 이렇게 하실 때에는 비로소 하나님께서 예정을 이루신  후 또 창조하시고 사람들에게 이 계약을 선포하신 그 모든 선포들을  통해가지고서 통하고 난 다음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렇게 계약을 선포하고  이행하신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나타내시고 나타내신 그 뜻대로 하나님께서  이행하시는 그 직책을 하실 때의 하나님의 이름을 가르쳐서 여호와라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신성은 하나님이신데 이럴 때는 이렇게 이름하고 저럴 때는  저렇게 이름하고 해서 하나님은 한 분 뿐이신데 한 분 하나님이 그 위가 삼 위라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라.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이 여러 가지 여럿이 있지마는  여럿 있는 그 이름을 이 삼위로 나누면 나뉘지게 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이 삼위, 삼위일체라고 하는 이 위는 셋인데 본체는 하나라 성경에  그랬기 때문에 삼위일체라 이렇게 말하고 또 에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사람을 지으실 때에는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람을 어떻게 지을꼬? 하는  의논을 할 때에 우리라는 거기서 복수가 나왔습니다. 이것이 이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나타내신 것인데 이 하나님은 한 분뿐이신데 이 한  분 이 하나님이 위가 셋이라, 위라는 그것은 직책을 따랐습니다. 위라면 그  장관위치, 국장위치, 동장위치, 통장위치, 또 호주위치, 남편위치, 또 부모위치,  선생위치, 제자위치 그 위라는 그것은 자기의 그 처소, 자기의 처소 그것을  나타내서 위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래서 지위를 지키지 아니한 천사라. 그 말은 자기가 머물 수 있는 그 위치,  거게는 자기가 머무는 그 위치는 자기의 책임도 있고 자기의 분수도 있고 또  자기의 권위도 있고 그 자기에게 따른 그 모든 것이 있는 고것이 자기  위치입니다. 위치라는 것은 권세도 가졌고 책임도 가졌고 의무도 가졌고 또  영광도 가치도 대우도 가진 그 무형의 무형의 그 역사 위치를 가르쳐서 우리들이  그 위라 지위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의 말로 이렇게 표시했기 때문에 삼위일체라. 하나님은 한 분  뿐이신데 한 분 하나님이 이런 일 저런 일 여러 가지 일을 하실 때에 그때에 그  일을 하시는 그 직책과 그 위치를 나타낼 때에 성부라, 성자라, 성령이라 이  위를 말한 것이라, 그렇게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은 왜 그런고 하니 하나님은 이 무한하신  분이신데 무한하신 존잰데 무한한 존재를 유한한 존재로서 가지고서 이와 같은  것이라 이렇게 국한시켜 유한시켜서 발표할 수가 없고 발표될 수도 없기 때문에  그저 우리가 그렇게 삼위일체에 대해서는 이런 비유도 하고 저런 묘사도 하고,  또 저런 상징도 하고 하지마는 그것이 맞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자기가 성신의 감동으로 깨달은 것을 인간의 말로 표시를 할라 하니까  삼위일체는 이와 같다. 한 가정에 사람이 한 사람 있는데 그 사람이 남편으로도  나타나고 아버지로도 나타나고 호주로도 나타난다. 그러면 이 세 가지로  나타나지만 한 사람이 자기의 직책과 의무와 자기의 위치가 달라서 남편 위치를  말할 때는 남편이라 이렇게 말하면 남편에 대한 의무와 책임과 본분이 있고  지위가 있다. 또 호주라면 호주의 위치와 지위와 본분이 있다. 또 아버지라면  아버지의 책임과 본분과 위치가 지위가 있다. 이제 그런 거 모양으로 한  사람인데 위가 셋으로 아버지의 위치로서 또 호주 위치로 남편 위치로 이렇게  나타낸 거와 같다 그렇게들 말하고 또 태양은 하난데 태양은 그 본체는  하나뿐인데 그 태양에서 빛도 나오고 열도 나오고 또 태양이라는 그런 형체도  나타내고 하는 거와 같다고 이렇게 저렇게들 말하지마는 맞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한 분 뿐이시라는 것, 한 분인데 이 한 분이 이런 위로  나타나고 저런 위로 나타나는 그 성경대로 거게는 근원이 되기 때문에 그것은  벌로 말은 못합니다. 한 분 뿐이신데 성부의 위로 나타났고 성자의 위로  나타났고 성령의 위로 나타났다. 한 분 하나님이신데 이 분의 이름을  여호와라고도 나타냈고 또 그리스도라고도 나타냈고 말씀이라고도 나타냈고  하나님이라고도 이렇게 나타났다. 여게 대해서 우리는 성경이 말한 성경이 말한  그 이상을 자기가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또 말을 해서 안되는 것은 이 하나님이  모든 것의 시발점입니다. 모든 것의 시발점이요 그것이 초점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이 지식이 신관, 신관 말입니다. 신관. 하나님을 어떻게 보느냐  신관 인관 신관 만물관 그렇게 말하는 것, 신관, 하나님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이 신관이 조금 잘못되면 그 다음에 만물관은 전체가 비뚤어져 버립니다.

이렇게 마치 요 초점이라면 그 지남철, 지남철을 요렇게 그 열 십자로 돼 가지고  안 있습니까? 하나로 딱 밑에 바늘 쇠로 딱 요래 끼워놓고 요래 있는데 요것은  정남을 가르치니까 한 쪽면은 정 북을 가르치는 것인데 요것이 요 기둥위에 예를  들면 만일 지남침을 길이 이만한 것을 하나 만들었다 합시다. 이만한 걸  만들어가지고 거게다가서 이제 고 기둥을 딱 해서 요걸 한군데로도 기울지  아니하도록 요래 딱 고정해서 딱 놓으면 요게 뺑뺑 돌아가도록 딱 요래 고정해  놨는데 요걸 아무리 요래 돌아놔도 돌려놔도 고것이 도로 남쪽을 가르치는 것은  남쪽 가르치고 북쪽 가르치는 것은 북쪽 가르쳐서 요렇게 그 지남침이 남쪽  가르치는 고 성질이 있으라고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것이 남쪽만 딱 가르친다  그기요. 그러면 요 나침반 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며는 요 기동 있는데 요게는  어찌됩니까? 요게는 남쪽이나 북쪽이나 동쪽이나 서쪽이나 꼭 한테 붙어  있습니다. 붙어있지마는 인제 요게서부터 조금 틀리면 요게서 쪼금 틀리면 저  끄트머리 가서는 많이 틀려지겠습니까? 어떻겠습니까? 요 꼭 남쪽을 가르치는  것인데 요쪽에 무슨 그 방해물이 있단 말이요. 방해물이 있어서 무슨 철물이  있으면 요것은 요 쇠하고 이래 들어붙는 성질을 가진 것인데 요 옆에 쇠가  오른쪽에 있으면 요 지남침이 어디로 돌아가겠습니까? 요 쇠 있는 대로 조금  당겨진다 이기요. 조금 당겨져 조금 당기지는데 요 밑에 기동 받쳐 놓은데는  당겨지는 것도 표도 없고 조금도 뭐 별로 당겨진게 없지마는 조금 당겨졌지마는  요것이 한 발이 나가면 남쪽을 가르치는 요것이 한 발 그 나가가지고 보며는  남쪽 가르치는 것이 오른쪽이면 북쪽인데 북쪽으로 이렇게 기울어진 기울어진  것이 한 뼘 나가면 남쪽 것이 북쪽으로 기울어진 그 거리가 멉니까? 반 뼘  나갔을 때 거리가 멉니까? 어떤 게 거리가 멀겠지요? 삐뚤어진 게 얼마나 어는  기 많이 삐뚤어지겠습니까? 그 길이 한 뼘 나갔을 때 더 많이 삐뚤어졌겠소? 반  뼘 나갔을 때 더 많이 삐뚤어졌겠소? 한 뼘 나갈 때 많이 삐뚤어졌겠지요? 또 그  그것이 길이가 열 발 되면 그 한 뼘 나간 것보다 더 많이 삐뚤어졌겠소? 적게  삐뚤어졌겠소? 예? 다 알겠어요? 요 모르는 사람들 가르치기 위해서 아는 사람들  뭐 필요가 없는 말인데 더 많이 삐뚤어집니다. 이것이 요 방어쇠 요게서는  기둥있는 데서는 고 게 일 푼도 안되고 그게 뭐 얼마 안되는 거리지마는 가면  갈수록 뒤에 가서는 여러 천 리, 만 리, 여러 천 리, 만 리, 억만 리도 될 수  있습니다. 네. 그만큼 삐뚤어진다 그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처음에 조금 삐뚤어진 것이 세월이 가면 갈수록 자꾸 많이  삐뚤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무슨 주장을 하든지 말을 할  때에 일시 인기나 끌고, 일시 사람들에게 그 환영이나 받고 이러기 위해서 고  자기 지혜, 양심 전부를 기울여서 요것은 틀림없는 옳다 하는 그것이 아닌 것을  말하는 자는 참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것이 지금은 틀린 줄로 사람들이 똑똑히  모르지마는 십년 가면 틀린 걸 압니다. 백년 가면 더 드러납니다. 천년 가면 더  드러납니다. 만년 가면 더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면 그거는 말로 다  할 수 없이 드러납니다. 영원 무궁세계는 더 이제 틀린 걸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확신이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 그는 심판을 모르는 사람이요. 또  일시 명예나 인기나 사람들의 그 호감이나 이런 것을 위해서 움직인 사람은 그는  참 너무 철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일할 때에 오늘은 이렇지마는 내일 이것이 어찌 되겠느냐  모래 어찌 되겠느냐 이것이 천년 후면 어찌 되겠느냐 만년 후면 어찌 되겠느냐?  자기가 상상적으로 많을 세월을 거쳐서 길게, 길게 가게 되면 이것이 어디로  탈선이 되고 어디로 삐뚤어지게 되겠느냐? 자기가 일시에 삐뚤어진 걸 알지  못하면 요것이 오래 세월이 가면 이런 사람도 있고 조런 사람도 있고 있어서  이것을 이렇게도 흔들고 저렇게도 흔들고 이런 후계자도 있고 저런 후계자도  있고 하며는 그것이 맨 끄트머리 가 가지고서는 이것이 어떻게 탈선이 되겠느냐?  탈선이 되겠느냐 자기 역량껏 그것을 생각해 가지고서 오늘에 주장을 해야 되지,  그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철없이 일시 인기를 끌기 위해서 아무나 따나 자꾸 더  붙여 가지고서 주장을 하는 것은 너무도 그것은 철이 없는 위험천만의 화약 지고  불로 들어가는 거와 같은 그런 참 위험스러운 일입니다.

이 지남철과 같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조금 틀리면 하나님이  시발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시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이 깨달음이 조금  틀렸으면 그 밑에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에 대한 깨달음 그거는 말할 수도 없이  틀려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관이 바로 되어있지 않는 그 지식은 요거 하나로서 그만 신관이 바로  되어있지 않은 그 지식은 말할 것 없이 그거는 틀리고, 틀리고 그만 얼마든지  갈수록 더 많이 틀려진다 하는 그것을 정죄하고 말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그 철학이나 많은 종교나 많은 사상이나 그것을 그래도 다 같은  인간인데 일생동안 머리를 짜매 가지고서 수천 수백의 인간들의 머리를 짜  가지고서 종합을 해놓은 불경이라든지 무슨 철학이라든지 무슨 학문이라든지  사상이라든지 그것을 제가 가서 나벼보고 하나 하나 나벼보면서 요기는 요렇기  때문에 틀렸다. 조거는 조렇기 때문에 틀렸다. 요것을 진찰할 때에 거게 들어가  가지고 진찰할라고 하며는 호호망망입니다. 네? 거게서는 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습니까? 그 세계와 그 천지는 얼마나 종류가 많고 넓은지 제까짓기 평상  가 가지고 심사해봤자 거게 있는 몇분지 일도 심사도 못하고 말고 맙니다.

이러니까 저 또 심사한 것이 그 안에 내포됐기 때문에 헛일 되고 맙니다. 고런  심사는 그만 저 끄트머리 가서 있는 거 보다도 대목으로 찾아갑니다. 대목으로  찾아가요. 제일 대목에 보자. 이게 틀렸나 보자. 저 끄트머리 가 가지고  틀렸다며는 예를 들면 그 틀린 그것이 가지가 뻗어가지고 가지가 만 가지가 뻗어  뻗었는데 만 가지가 뻗었는데 만 가지 중에 한 가지 가지 한 개를 끊어 가지고서  이게 옳으냐 틀렸냐 여게서 아는 것 보담은 만 가지도 더 되는 만 가지의 원인은  가보며는 한 백 가지, 가지가 백 개쯤 있으니까 백 개 있는 거게 가 더듬어  찾아보고 백개 있는 그기서 찾아보는 것보다는 원둥치 한 개 되어있는 거기 가서  찾아보면은 그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모양으로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을 비판할 때에 이제 그 신관으로 더듬어  올라가 가지고서 그 신관이 어찌 되느냐? 그 신관이 어찌 됐느냐? 신관이  잘못되었으면 그 다음에 거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모조리 작대기로 쫙 그어  버리고 이거 다 틀렸다 이렇게 정죄할 수가 있다 그말이요. 이러기 때문에 세상  것을 단번에 정죄하는 것입니다. 그 정죄한 것이 틀림없이 정확하게 됐습니다.

이래서 이런 진찰법으로 세상에 있는 도덕은 다 틀렸다. 공명이 그거 지옥  밑층에 갔다. 석가모니가 지옥 밑층에 갔다 하는 것을 단번에 정죄해 가지고서  이렇게 하는 것이지, 불경 하나하나를 그걸 다 조사해 가지고서 심사해보고 그래  정죄한 것 아닙니다.

지금은 이 지식이 벌써 우리나라에는 충만해 있습니다. 해방 직후에는 해방  전에는 이 지식이 그 때는 필요없는 때라서 그걸 그렇게 고조하지 않았습니다.

해방 바로 직후에 제가 마산가서 집회를 할 때에 집회할 때에 아니 마산가  집회한 게 아니라 대구가 집회할 때에 대구가서 집회했는데 은혜가 있다 하니까  이제 대구에 있는 모든 그 사람들이 구경하러 온다고 그렇게 와 가지고 이래  있다가 고만 종교 창설자 동양에 있는 그 도덕의 그 초월자라고 해서 공자는  공부자라. 이런 공부자. 지아비 부(夫)자는 그 하늘 천(天)자 위에 꼭대기를  뚫었는데 하늘 위에 쑥 올라갔다 초월했다 그 말이요. 공부자 지아비 부(夫)자를  써서 공부자라 하는 공자, 이런 분들도 다 지옥갔다는 그것을 정죄해서 지옥간  것을 발표를 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 마구 대구 시내에 있는 장로들이 유력한  장로들이 다 몰려왔어.

세상에 공자를 지옥갔다 하다니 요런 그나마 목사도 아니고 전도사라는 것이 와  가지고서 요래 와 가지고 이런다고서. 마구 총공격할라고 대구에 대가리 장로가  전부 다 왔는데 마침 그때 제가 집회하는 그 교회 장로가 호랭이 장로라. 그  아주 정장로라고 제일 무서운 장론데. 그 약장사 정장로 아닙니다. 약장사 하는  그 정장로는 그 어림도 없습니다. 이는 참 호랭이 장론데. 그 장로가 그만 이  혈기가 흐르요. 호랭이 장로. 혈기가 있고 막 오기가 있고 이러니까 누가 그  (**) 안하는 장론데 이 장로가 나서 가지고 그거는 변호도 아니하고 우리 교회  강사로 온 이 강사를 너거들이 해대로 와? 죽어도 한번 해보자. 그 아들도 없는  사람이요. 돈만 많고 죽어도 한번 해보자. 이래 놓으니까 그 싸우다 못해서  갔는데 나는 그걸 몰랐는데 그 뒤에 알았습니다. 그래 그 뒤에 알아가지고 그  집회 때 집회가 끝나기 전에 거게 대해서 마구 이런 면에 좀 힘을 써야겠다고  마구 빠사대고 대구의 이 신앙들이 다 뭐이냐? 장로들의 이 신앙이 뭐이며 이  목사들이 뭐 가르치느냐고 이렇게 되게 호통을 쳤습니다. 그 마지막 며칠동안 그  대해서 그만 설교를 해버렸소.

이랬는데 그 인제 그걸 마산에 와 가지고서 집회할 때 이인재목사님이 거기  참가를 했는데 제가 그것을 이야기를 했더니만 그 이인재 목사님도 아 그거는  우리가 이거 고쳐야 되겠어. 우리 총회서도 그 공자나 맹자나 그 모든 도덕가들,  뭐 석가모니 이런 분들, 도덕가들, 모두 종교가들은 다 양심시대에 그 율법시대,  뭐 양심시대, 율법시대, 뭐 은혜시대 이래가지고서 그 인간들이 만들어내 가지고  양심시대 있는 사람들은 양심만 썼으면 다 구원을 얻었다고 이래 하는데 이리  됐으면 이거 안됐다고 해석을 듣고 남은 때 이거 고쳐야 되겠다고 그래 인제 그  자기가 총회원이요 노회원이기 때문에 그 총회에 가 가지고 총회에서 만들어놓은  공과를 고쳤습니다.

그 공과를 이 양심시대에 있는 사람들은 다 양심 쓴 사람은 구원 얻었다. 예수님  없어도 구원 얻었다 하는 그것이 공과로 나왔습니다. 그때 그 해 공과로  나왔습니다. 그해 공과로 나왔는데 나는 그 공과는 아예 보지 않으니까 그런  공과는, 이인재목사님이 그 공과를 들고 나와 가지고서 이러니까 이렇고  저러니까 어떻고 해서 마산서 저하고 이 얘기를 거기 가서 이렇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고쳐야 되지 이거 예수교를 아주 그만 잡탱이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깨로 올 사람이  없다' 고 예수님이 딱 단정을 지워놨는데 뭐 이런 것을 말합니까? 예수님의  대속이 어떤 것인데 그 구약 때 피로 제사지냈고 아벨이 제사를 드린 거와 같이  그것이 내나 인류시조 때부터 아담에게 또 여인의 후손이라는 그 약속을  의지해가지고서 아담도 구원 얻게 된 것인데 인류시조 때 본 그런 그 예수님의  피 역사, 대속의 역사가 역사해 가지고 된 것인데 예수님 없이 구원 얻었다는  그런 도리가 어디 있습니까? 그거는 몰라 그런거니까 어쨌든지 그것을 주장을  하십시오.

총회 때 가서 주장을 하고 그걸 말을 하니까 그분들도 뭐인지 그만 예사로  알았는데 그걸 논평을 하고 보니까 그게 틀렸다 그말이요. 그래서 그 해에 그  공과를 고쳤습니다. 공과가 고쳐졌소. 그래서 지금은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고는 구원은 못 얻는다. 한 사람도 예수님의 공로 의지 않고 구원 얻은 사람은  역사에 하나도 없다. 하는 이 지식은 우리 한국에는 충만해 있습니다. 한국에  충만해졌소. 그 전에도 있었지마는 그것을 밝힌것은 제가 대구에서 시비하고  마산에서 말해 가지고서 이인재목사님이 그 총회 때 공과를 고치면서 된  것입니다.

뭐 어찌 된 것인지 여러분들은 몰라도 지금은 교리가 그때 교리와 수정이 많이  됐습니다. 제가 고려신학교 오기 전에 여기서 소식이 내려가니까 고려신학교에서  그 이단이라고 정죄한 그것이 뭐 몇 가지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다 수정됐습니다. 다 그들이 따라왔소. 다 통일이 됐습니다.

제가 여수에 가 가지고서 애양원교회 집회할 때에 그 때 그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이라는 그것을 말을 했더니마는 당회에서 그만 나서 가지고 장로들이 나서  가지고 이거는 이럴 수가 없다. 예수님이 피조물이라니 이거 무슨 소리냐? 이래  가지고서 시비가 나 가지고서 아주 분쟁이 일어났는데 그 때 장로들은 그것을  판정하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어요.

목사는 서목사인데 서목사도 판정을 못해요. 이런데 그때에 여 집사들이 문둥이  여집사들이 와 나서 가지고서 아 예수님의 인성은 동정녀 마리아의 피와 살을  타고 났는데 피조물이지 그 뭐이냐고 우리는 지금 몰랐는데 들으니까 피조물이  분명하다 이렇게 시비를 해 가지고서 장로 하나는 참석을 안하고 있다가 마지막  날은 자기가 자복을 하고서 와가지고 참석을 했습니다.

참석을 했지마는 고것을 요 한명동목사님이 그때 저를 지금 아주 정죄하고  대적해서 한창 대적하고 있는 판인데 고 때 고게 담임목사 서목사라로 하는 그  목사님이 믿음이 없어요. 손양원목사님이 후계자로 세웠는데 믿음없는 사람을  세웠어. 그런 면에 보면 사람에 대한 무식이라. 지난 뒤에 보니 무식 같애요.

그분을 세웠는데 그분이 알랑거리기를 잘하는 사람인데 한명동목사님에게 와  가지고서 이렇게 높이 들리게 돼서 나를 팔았다 그거요.

그분이 와 가지고 집회를 하는데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이라고 그렇게 말했다  이러니까 고려신학교에서 발칵 뒤집혀졌습니다. 그 불가침, 불가침의 그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의 인성을 뭐 피조물이니 뭣이니 이 따위 소리 한다고.

고려신학교에서 크게 발칵 야단이 났는데 그것이 널리 퍼져나가지는 못했습니다.

야단이 났는데 가만히 재고해서 보니까 그것을 예수님의 인성을 피조물이 아니고  그러면 창조주라 해야 되겠느냐? 피조물이라 해야 되겠느냐? 이것을 조금  생각해보니까 그들도 확실히 판정이 나서 그만 아 이걸 주장하면 우리 수치다  해가지고 다시 주장을 안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이 한 한 달포 나갔습니다. 한 달포 그 안에서 우글우글 끓다가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이라 그러나 피조물이지마는 말하자면  피조물이지마는 예수님의 인성을 피조물이니 뭐 창조주니 그렇게 구별할 기 뭐  있느냐? 이래 가지고서 범벅거려서 그만 피조물이지마는 그렇게 할 게 뭐 있느냐  그 말하는 것은 너무 당돌하다. 이렇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말했지마는 예수님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의 마음,  그리스도의 마음이 예수의 마음인데 예수의 마음이라는 것은 예수가 이래 가지고  모든 피조물 위에 올라간 지위를 얻었기 때문에 우리도 그 마음 품고 그  생활하면 올라갈 수 있는데 예수님의 신성이 올라갔으면 올라갈 게 뭐 있으며  예수님이신데 올라가고 내리갈끼 뭐 있습니까?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인데 피조물로서는 그래 가지고서 올라갔기 때문에  우리도 피조물인 우리들도 예수님의 이 인성의 공로를 힘입어서 그 마음을 품고  그 생활하며는 예수님의 피조물인 예수님의 인성이 올라간 그 위치에 피조물인  우리들도 올라갈 수가 있다 그말이요.

그래서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 같이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은 예수님의 인성을 말하는 것이지, 예수님의 신성은 근본 하나님이신데  뭐 그 보좌에 새로 어데 앉을게 뭐 있습니까? 그 대해서 인성을 말하는 것이니까  그 도리를 똑똑히 들어 인성을 피조물이라 하는 것을 드러내야 우리 구원이  확실하지 거게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 말이요.

그래서 시대마다 시대를 따라 하나님께서 필요없는 그 교리와 신조를 나타내지  아니하고 그 시대에 세상이 자꾸 이렇게 타락해가고 자꾸 세상이 제일주의로  나가는 이 세상이 악으로 자라가는 그 키에 따라서 하나님의 진리도 나타나 가야  되기 때문에 그 사도들은 성경을 기록했지마는 사도들에 대해서 영 언급을  못한다 이렇게 말하지 그러면 속사도. 사도 바로 직계제자, 속사도들이 깨닫지  못하던 것을 지금 주일학교 학생들도 다 깨닫고 있습니다. 속사도들이  삼위일체를 깨달아 삼위일체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또 세례 요한은 여인의 후손으로 난 자 중에는 예수님에게 대한 지식이 제일  최고에 있는 최고인입니다. 제일 컸습니다. 이렇지 마는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 보다 크다 그말은 예수관이 더 정확하다 그말입니다. 그는  천국은 신약교회를 가르쳐서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대를 따라서 하나님이 나타낸 것이 때문에 옛날 그 시대를 그 시대를  감당할 수 있는 그 깨달음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써 가지고서 그 시대를  감당하게 적당하게 하실 것이고 그 시대를 감당할 그 외의 것은 하나님이  나타내지 안했고 또 그 후 시대는 후 시대를 감당하도록 하나님이 사람을 써서  이렇게 나타냈으니 쓰인 사람은 그 사람이 위대해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막대기를 들어 가지고서도 홍해 바다를 갈라트린. 그 갈라트린 것이 막대기가  힘이 있어 그런 게 아니라 막대기를 잡으신 하나님이 힘이 있어 그랬지 막대기가  커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말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쓰시는 것은 막대기 쓰신 것처럼 다 같은 그런 동등의  종류인데 하나님이 쓰시면 그것이 권능있고 커졌다 그러니까 그 막대기를  놓으니까 막대기 됐고 쓰니까 또 권능 됐고 또 그 막대기에 막대기지 마는  하나님의 권능을 덧붙여 놓으니까 그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왔고 죽어 바짝  마른 거기서 싹이 나왔고 이제 그런 것은 하나님으로 인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모든 신관에 대한 지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대한 이것이 조금 틀리면 그 다음은 전체가 틀립니다. 이단은  하나님에게 대해서부터 틀린 그것이 있고 예수님에게서 틀린 그것이 있고 또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성경도리에 대해서 틀린 게 있고 이단도 층어리가  많습니다. 성경 해석을 잘못한 이단도 있고 또 예수관이 잘못된 이단도 있고 또  하나님이 잘못된 신관이 잘못된 이단도 있고 이런데 제일 조상 이단은 그  무엇에서 틀린 것이 조상 이단입니까? 박집사님? 박금택? 네 저 뒤에서  말했습니다. 그 신관, 신관이 잘못된 여기에서 이단된 것이 조상 이단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기독교가 시작한 이후 세계적으로 제일 큰 회의 셋이 있었지요?  그 뭐이요? 첫째, 니케아, 또? 콘스탄티노플 또? 칼케톤 회의. 에베소 회의. 또  그 다음에 칼케톤 회. 이 네 회의가 큰 대회. 대회가 큰 공회 네 번 모인 큰  대회가 있었는데. 그 대회는 다 모두 예수관이 잘못된 거게서부터 시작된 아들된  이단입니다. 저 신관이 틀린 데서는 아니고 거게서는 한층 내려온 그 이단의  아들이요.

그 위에 그 문선명이 통일파는 그것이 조상입니까? 아들입니까? 아들 이단이요?  조상 이단이요? 무슨 이단입니까? ○○○목사님? 그 조상 이단입니다. 조상  이단. 그 신관이 틀린 겁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의 신성 부인론. 인성 부인론, 그  다음에는 그 혼합론, 그 다음에는 삼위일체를 거부론. 이렇게 나와 가지고서 그  회가 있었는데 거게서 이단을 정죄해 가지고서 우리 기독교에 큰 예수관에 대한  교리가 확정이 되고 판정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 하나님에게 대한 신관이 잘못 되면 굉장히 틀려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신관이 바로 되야 되는데, 그 신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건드리려고  하지를 아니하고 신관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요새는 이  기독교의 신관이 틀렸습니다. 신관이 틀렸지. 예수관이 틀렸지. 이게  틀려놓으니까 이게 틀려놓으니까 아 고만 기독교가 혼합되고 또 천주교를 이걸  개혁교와 개혁교 이 개혁교입니다. 신교라.그들이 말하기를 신교라 말하지  신교가 아니고 개혁교요. 이 천주교는 타락교회요.

이 새로된 이 모두 장로교 예수교 하는 이 현실교회는 정통교회는 이거  개혁교입니다. 개혁된 교회요. 그들은 천주교는 타락된 교회인데 이 타락에서  개혁해 나올라고 개혁하면서 벌써 수백 년을 두고 수백 년을 두고 선지자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이 천주교가 틀렸다고 증거하고 바른 길을 주장하는 사람  천주교에서 마구 학살을 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수백 년을 두고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모릅니다. 이 교리를 고칠려고 그러니까 이 기독교가  변질돼 잘못돼 놓으며는 이 세상 세력을 거머쥐고 이 기독교를 변질시키기  위해서 그들이 뭐 세상 권력을 마귀가 그리 다 줘 가지고서 세력을 부리고 또  이것을 바로 잡아 나올라고 하는 데에는 얼마나 피를 흘려야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천주교를 이거 개혁하느라고 개혁할 때는 천오백 얼마라 했지마는 그  전에 이 진리를 보수하는 사람들이 죽은 숫자는 뭐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하고 그 개혁하는 바로 고 당시 고 내가 어느 책에  보니까 한 달 동안에 한 달 동안에 죽은 개혁하기 위해서 죽은 순교자의 숫자가  십만 명이라. 한 달 동안에 이 진리를 보수하고 진리를 양보하지 안하고 이  진리를 주장하다가 죽은 사람이 십만 명이나 죽여 피를 흘려 가지고서 이 보수  진리가 나온 것인데 오늘 그 손가락에 피 하나도 예수 위해서 흘리기 싫어하는  고런 인간들이 천주교와 이 오늘 이 개혁교와의 성경번역을 공동 번역을 하자  이래 가지고서 공동해 가지고 서로 그 흥정해 가지고 서로 서로 양보해서 번역해  가지고 잡탱이 이 성경 번역을 해내는 이것을 울분히 여기는 사람도 없다 그  말입니다. 뭐 그거 다 괜찮다. 보통으로 여기고 어리석게 그리 있는 것이 오늘의  목사들입니다. 네. 어떤 정죄를 받고 형벌을 받을는지 모릅니다.

여게 대해서 팜플렛트을 내 가지고서 그 싸운 사람이 누구냐 하면은 앗따 그  뭐꼬 이 우리 강단에 와 가지고서 몇 번 설교하고 여름이면 꼭 찾아옵니다.

여름에는 꼭 찾아와 가지고서 여 와서 며칠 있다 가는데. 아. 하종택. 네.

하종택목사님이 거게 대해서 팜플렛을 냈습니다. 내기 전에 저한테 한번 왔어요.

아. 이런데 이거 어찌 됩니까?  그것은 무더기 죽음하는 건데. 그 안된다고서.

그래 가지고서 자기가 그것을 찻간에서 써서 싸우다가서 어데 집회가서 목사들  많이 여러 수백 명이 모였는데 거기서 와 가지고 그들과 싸우다가 왔다가  분하다고 있다가 바로 내려왔어. 내려와 가지고서. 그래 그것은 요렇고 요러니까  고기 아주 틀렸고 고거 정죄를 얼마든지 해야 되는 것이니까 그런 것을 의논해  가지고서 자기가 그 팜프렛트를 냈습니다. 냈는데도 뭐 그것은 다 묵살해버리고  그것이 총회에 거론이 됐지마는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싹 일사천리로 다 그런 거  막아버리고 말고 그것이 아무 무효라 그 말이요.

그 해방 직후에 신사참배 평양서 결의할 때에 그때 총회에서 딱 결의해 버리고  결의해 버리고 그 때 그 부인하는 것은 주기철 목사님이 거기서 외치면서  부인했다 그거요. 이랬지만 그 뭐 소용없으니까 그때는 결의 안됐습니까? 이거  모양으로 그리 했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제 그런 사람은 어느 모로도  갚아요.

그 분이 뭐 그렇게 유능한 분이 아닙니다. 제가 고신에 있을 때에 같이 있을  때에 고신에 나 반대한다고 그 사람도 왜 목사님 옳은데 조사님 옳은데 그러냐  이래가지고 그 저를 옹호하다가 그때 미움을 받아 가지고서 여게 부산에 있다가  그만 쫓겨서 저 여수 교회 갔습니다. 여수 교회 여수 갔다가 지금 여수 그 무슨  교회입니까?  제일 교회. 여수 그 아마 고신에 제일 큰 교회일 겁니다. 그  본교회인데. 그 교회로 쫓겨갔소. 그거는 형편이 없는 그 때 조그만한  교회였는데. 그리 그만 귀양살이 가 버렸소. 거 갔는데 그래 그 가가지고 저를  또 청했소. 또 집회를 또 청했어. 또 청해서 그 가서 집회하고 나니까 은혜를  받았는데 그러니까 거기서도 쫓아내버렸습니다. 거서 쫓아내서 그때 쫓겨나  가지고서 아무데도 갈 데가 없습니다.

이래 가지고서 흘러서 흘러서 쫓겨 돌아다녀 쫓겨 가 가지고서 이제는 다른 데는  아무데고 고신 발을 붙이지 안한데 가야 되기 때문에 저게 원주에 갔습니다.

원주에 가 가지고서 조그만한 교회를 세워 가지고서 그렇게 하면서 늘 연락하고  이래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세워서 원주에서 제일 큰 교회 그거 해가지고  있소. 그분을 통해서 큰 기도원을 세웠습니다.

저 먼저 편지가 왔는데 이번에 그 미국으로 또 카나다로 또 또 어데더라? 어데  소련이던가? 어데로. 불란서인가 그 어데로 또 일본으로 그래 이 모두 순회  집회를 하고 어제 돌아왔습니다 하는 편지가 저 한테 왔어요. 하나님께서 그런  분을 하나님을 당신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당신을 아니까 당신을 아니까  허무했습니다. 그 뭐 설교도 그렇게 능한 분도 아니요. 여 들었지요? 그래도  속에 뼈가지가 있어 속에 하나님을 아는 게 있다 그거요. 그분을 들어가지고서  세계를 이렇게 일주를 하다시피 그분을 들고서 집회를 하고 또 가는 곳마다  성황을 했어.

이러니까 암만 잘나도 하나님 배반하면 그까짓거 다 똥입니다. 암만 못나도  하나님 아는 사람은 여호와를 존대하는 사람은 존귀히 여기는 사람이라야 시온  산에 갑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에 대한 이 신관. 이 신관이 잘못되면 굉장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 신관에 대해서는 벌로 이 말을 못하고 벌로 경솔히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있는 것만 말하지 성경에 명문되어 있지 않은 것은 말할  수가 없다 그거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 그만 그리스도를 말할라고 했는데 이거는  말하지 못해서 혹 지나갈지 몰라서 잠깐만 말하겠습니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인데 첫째는 제일 중요점이  제사장입니다. 그 다음에 선지자 왕이요. 제사장 하나 말하면 그 다음은  알겠는데 제사장은 어떤 것이 제사장인고 하니 모든 피조물.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에게 거슬리는 거. 모든 피조물로 하나님에게 거슬리는 그 모든 거슬리는  것을 제가 그 희생을 해가지고서 거슬린 값은 제가 받아가지고 거슬리는 것들을  하나님께 거슬리지 않도록 하는 역할 하는 것이 제사장입니다. 또 제사장은  하나님의 그 모든 것을 이 피조물들에게 갖다 줘야 되는데, 피조물에게 갖다  줘야 되는데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모든 것을 피조물에게 갖다 주도록 운반해  주도록 받아가지고 올 실력이 없는데 자기의 모든 희생으로서 그 실력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의 것을 끌어오는 그 모든 실력을 제가 희생해서 대가로 내서  실력을 갖추어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피조물에게 갖다주고 피조물의 모든 것을  잘못된 것을 다 자기의 희생으로 대속해 가지고서 하나님께 드리는 이것이  제사장직입니다.

그러기에 그 요한계시 1장 6절에는 보며는 '그의 피로 우리 죄를 해방하사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았다' 하는 나라가 큰 게 아니라  제사장이 큰데 나라는 원체 위치가 있어야 되기 때문에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존귀가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렇게 말씀했고  요한 계시 11장에 보며는 하늘나라에서 상을 줄 때에 선지자 상을 제일 먼저  주고 제사장 상은 없습니다. 제사장 상은 없소. 제사장 상은 그만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의 몸이요 하나님 안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이 제사장.

그러면 제사장은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 소제, 요제, 모든 제사를  드리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데 그 제물된 그 제물은 짐승으로  구약시대에 제사장들이 제물했지마는 예수님은 당신으로 제물되어 가지고서 이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이 제사장은 창세기 13장에 보면은 그 멜기세덱이라고 하는 예루살렘 왕으로,  예루살렘 제사장으로 왔었는데 그 제사장 멜기세덱이라는 그 제사장의 반차를  이어서 그 제2순위로 멜기세덱의 그 순위로 이제 예수님께서 대제사장 됐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말씀했는데 예루살렘 왕이요 제사장인 그 처음 제사장인데  그 제사장은 부모도 없고 난데도 없고 죽은 데도 없는 분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와 가지고서 제사장하고 예루살렘을 잠깐 통치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통치한다는 것을 보여서 통치하시고 제사장은 이런 직책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  보여서 잠깐 동안 그 직책을 행하시고 난 다음에는 그대로 승천해서 보이지  안했습니다.

그분이 막바로 누군고 하니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있을 때에 예루살렘에 와  가지고서 신정국가인 그 예루살렘에 와서 그 제사장으로 예루살렘 왕으로 이렇게  역사하시다가 다시 승천해서 올라가셨는데 그 제사장에게 안수받고 축복받은  사람이 누구지요? 네? 네.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 고모라성 그 소돔  고모라성에 그 전쟁있는 그 전쟁을 치르고 오면서 왔을 때에 예루살렘에 이  멜리세덱 제사장이 나와 가지고서 아브라함을 영접해 가지고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그 이가 이제까지 몰랐던 것을 소개해주고 하나님의  축복을 그에게 빌어줬고 아브라함이 거게다가 십일조를 드리는 일을 처음으로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제사장이라는 건데 우리가 그리스도를 얻으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직책으로서 그리스도가 와서 역사할 것은 우리를 제사장 만들고  우리를 선지자 만들고 우리를 왕 만드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제사장 되는 거,  하나님의 선지자 되는 거, 하나님의 왕 되는 거 이것이 모든 것 보담 크기  때문에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거 떠 보니까 모든 걸 이제  잊어버리겠다. 또 모든 것 속에 이것을 제사장 자격을 제사장 실력을 이루는  요것이 진짜기 때문에 요것 얻기 위해서 요것만 탐하는 것이지 그 외에 요거  외에는 다 요것을 내포하고 있는 찌끼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기 때문에  과거에는 찌깽이 보고 날뛰었는데 이 찌끼 속에 세상 보고 날뛰었는데 세상 속에  이 제사장 알맹이가 들었고 선지가 알맹이가 들었고 왕의 알맹이가 들었고 이  실력의 알맹이가 들어있다 하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면 제사장이면 또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아 세상은 존귀한 게 뭐이냐? 하나를  자유로 종으로 부리는 것은 그만치 영광이 있고 백 명을 종으로 부리면 영광이  더 크고 가치가 더 크고 세력이 더 있는 줄로 이리 아는데 제사장 직은 똑똑히  알아. 제사장 직이 그거 아닙니다. 제사장 직은 자기의 희생으로 하나를  구출하느냐? 둘을 구출하느냐? 자기 희생으로 많이 구출하는 거. 또 자기 희생을  하나 하느냐? 둘을 하느냐? 많이 하는 거, 희생의 능력이 그것이 제사장의  능력이요 또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것으로 유익되게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  앞에 저주 정죄 받은 것을 없애는 세력.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게 하는 세력.

하나님의 그 진노를 제감하는 세력. 하나님의 모든 것을 그의 소유로 부여시켜  줄 수 있는 그 세력이 제사장 세력입니다. 그 세력이 제사장 세력. 그런데 그  세력은 자기가 희생되므로 이루어지는 세력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거는 사랑의 세력이요. 네. 그만하면 집에 가서 돌아가서 연구하면 알게 될  것입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부득이 자꾸 녹음으로 녹음으로 이것이 아마 세계에 퍼져 나갈 것입니다. 이래도  여러분들은 그런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그들이 가져가는 것은 그들에게 책임이  있지마는 여러분들이 거게서 사람이 가서 전하는 것은 전할 수 있지마는 그렇게  이것을 도용하는 거와 같이 할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은 안돼.

신목사님에게 그 전해서는 안 돼. 그 분이 그래야 또 알지. 그분도 자기대로 될  것을 알고 자기대로 또 연구해서 하나님이 그를 통해 가지고 또 우리가 모르는  것을 또 발견해가지고 어떤 거 할 줄 모르니까 하나님이 직접 쓰시도록 그렇게  하고 이런 것을 뭐 뉘가 녹음을 해서든지 필기를 해서든지 그런 것을 전달해  주며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가로막는 일이 됩니다. 그를 해하기 위함도 아니고  유익되기 위함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랬으니 어떻게 쓰실란지 하나님이 직접  쓰시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고 또 틀리면 틀린다는 것을 알게 되고 여게서 금해서  여게서 금해서 얼마동안 나가지 안하고 금해 지니까 그와 이와 비교를 하니까 확  틀린 것이 알아서 그들이 거기서 다시 소욕을 가지게 되었는데 가지게 되었는데  지금은 벌써 이것이 녹음으로 나가 가지고서 그기 나가면 뭣 되느냐? 그것을 그  사람들이 도용할라고 하기 때문에 전부 자기가 한 것 같이 이렇게 해서 자꾸  이렇게 나타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혼돈을 줘서 하나님이 써서 복음 전하는  이것을 그 혼돈 돼서 갈랫길을 만들기 때문에 그 힘이 없어지게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여호와의 증인이 우리를 만났을 때에 고 들은 하나 말하면 틀리기는  틀리니까 틀림없이 하나 가지고서 고 틀린 고것을 밝혀서 자꾸 고놈을 밝혀  가지고서 나중에는 요거는 잘못됐다 정죄해서 요것 네가 보니 틀렸지 저와 다른  사람들이 다 틀렸다 합니다. 네가 틀리니까 도장을 찍어라. 고 다음에 또 문제  내 보자. 요렇게 나갔으면 요거 틀린 거 도장 찍어라 하면 고만 항복을 하고서  고만 말하지 않고 도망쳐버립니다.

그걸 어리석게 자 고만 그러면 그거는 자 내버려두고 이거는 줄 줄 따라서 그  틀린 걸 정죄하지도 아니하고 이거는 하면 또 따라가 보자 그거는 말해 보자. 또  제가 틀릴 상 바르면 자 그러면 이거는 이러니까 실컷 제 것만 빼어 가지고서  여호와의 증인이나 우리 그 정통교리나 누구든지 일반 교인들이 분별하지 못할  만큼 이래 타놨습니다. 이 타놔서 여호와의 증인도 이렇다 그러니까 이 개혁교의  정통의 교리와 신조를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그 주장을 보강시킨 것이라. 거게  이용을 당했지 그 주체라는 그것을 멸해서 이걸 고쳐 세운 것은 아니란 그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요것을 똑똑히 사람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그 지식의 주체성 그게 뭐이냐? 잘못된 지식의 주체성에 다 진리가  이용되어 가지고 가며는 잘못된 지식이 더 커지고 강해지고 높아지고 많은  사람을 점령하게 되기 때문에 이제 실패가 크니까 책임이 무겁다 이거요. 그러기  때문에 저절로 나가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지마는  우리가 아는 한 이걸 정확하게 우리가 이렇게 전하기는 전하지 마는 그런 것은  그 여호와의 증인에게 이용당하기는 하지 안해야 된다는 것과 꼭 같은 것입니다.

저는 그래요. 교인들 만나거든. 여호와의 증인이 오면 뭐이든지 하나 말해라. 자  이거 이거 틀리지 안했느냐 저거가 말하든지 이쪽이 말하든지 말 하며는 그래 그  사람들이 성경에 이렇게 말했다 이럽니다. 말하거든 고거 성경에 들고서 그러면  자 요것을 우리가 구별해 보자. 모르면 좀 미뤄도 됩니다. 모르면 미뤄도 되요.

나는 성경에 무식하기 때문에 요것을 두고 두고 요 너 주소 있고 나 주소  있으니까 요것을 두고서 그러면 나도 또 성경대로 연구해 가지고 한번 또  대결하고 대결하고 그래 한번 하자. 고 문제 두 문제를 두지 말고 그 문제를  두고 말해요. 그러면 반드시 이쪽 교리가 자기가 몰라도 옳은 것이기 때문에  성경적으로 연구해 가지고서 아는 것은 아는 대로 비판하고 비판하면 그러면 그  사람들이 질상 바르고 그 사람들이 틀린 상 바르면 고만 그거는 내버려두고 자  그러면 이거는 내버려두고 이거는 고럴 때에 술에 빠지면 안돼. 고 미혹을  받으면 안돼요. 고럴 때는 따라 나가지 말고 이것 부텀 밝혀라. 이거 부터  밝혀서 네가 틀렸든지 너거 여호와의 증인이 틀렸는지 우리가 틀렸든지. 요것  부터 밝히자. 요놈을 거머쥐고 놓지 않고서 자꾸 밝히자 합니다. 벌써 틀린 게  보여지니까 저거가 주장을 안하고 딴데로 옮길라 하는 거거든. 다른 문제를  내세운다 말입니다.

그럴 때에 후퇴하지 말고 따라가지 말고 아니다. 요것 부텀 밝혀 놓고 세월이  있지 않느냐 또 하자 요것 밝히자 요거는 너거가 틀렸나 우리가 틀렸나 요거  밝히자 고놈 하나만 거머쥐고 밝히면 나중에 가 틀렸다는 걸 자꾸 그럽니다.

틀렸다 소리 아니하고 자 놔두고 이걸로 가자. 이걸로 가자. 아 성경봐라. 자 이  네가 틀렸는가 이 쪽 편이 틀린 걸 말해라. 너는 이러니까 틀리지 안했느냐 그래  가지고서 자 요 틀렸으면 네가 요 도장을 찍고 내가 틀렸으면 도장을 찍고 항복  도장을 찍고 그리하자. 요거 판정을 지워 고거 찬정 지우자 하며는 두 말하지  아니하고 도망쳐버립니다. 네? 그 이거 말하자 하니까 그거 말하고 자꾸 그거만  고집 피우고 하지 아. 말 못할 사람이라 하고 고만 도망쳐 버리고 맙니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증인이 이 부산에서 서부교회 교인이라 하며는 그들이 또  떱니다. 잘 달라들지 안하요. 그런데 저 먼저 언제 말 들으니까 여호와의 증인이  우리 교인 어떤 사람에게 또 하나 침범했다 하는데 그 어느 구역인지 몰라도 그  구역장이 그런 것에 다 능가할 수 있지가 안해요? 고만 그라면 돼. 왜? 그들은  자꾸 이것 저것 말하는 것은 우리 에게 있는 모든 상식되어 있는 이 교리 신조를  저거 여호와의 증인 교파가 붙여 가지고서 여호와의 증인을 보강해서 여호와의  증인 그 이단인데 아주 틀린 것인데 그 주체는 틀렸는데 주체 틀린 것은 외부에  나타내는 색깔은 이 정통으로 해가지고서 정통있는 사람들이 그 미혹받아  가지고서 여호와의 증인이나 이거나 다 같지 않느냐 해서 미혹 받아 그리  쏠려지도록 하기 위해서 그것을 삼킬 전술로 쓰이기 때문에 그 개혁교의  정통교리를 이것을 그들이  전할 것은 전해도 자기가 지킬 것은 지켜야 됩니다.

이스라엘이 지킬 법은 이스라엘이 지켰어야 하나님이 의로 여겼고 또 그것이  신약교회가 출발될 때에는 이스라엘이 지키던 교리와 신조와 정 모순되고  반대되는 신약 교리와 신조를 지켜야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 이 시대에 지킬 교리와 저 시대에 지킬 교리와 달라. 또 이  시대에 퍼질 범위와 그 다음 퍼질 범위와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걸 조절해서 그 시대에 필요가 없는 교리와 신조는  하나님께서 당신들의 종을 통해서 나타내 주시지 않습니다. 나타내 주지  아니하고 고 때만 필요한 것을 나타내 주시고 고 다음 세대에 또 사람들을  통해서 아무라도 당신이 나타내면 되니까 통해서 나타내주시고 이렇게 하신다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가 이 신관에 대해서 아주 조심해서 이것을 바로 가져야  됩니다. 통일파는 조상 이단입니다. 그는 에덴동산에 있는 신관이 잘못된 데  대해서 잘못 돼 가지고 탈선된 것입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또 그분이 여 또 집회에 금요일날 내려와 가지고서 참석하는 것도 내가 원하고  있어요. 또 그분에 대해서 기도도 하고 있어요. 그러나 와서 들어가지고 하는  것은 자기 책임이기 때문에 그 어떻게 이용하든지 하지마는 여러분들이 그  짓하지 말라는 거기 대해서 좀 엄격히 좀 구별해야 됩니다 심령이 어두우면 그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분이 와서 들어가지고서 바로 들어 깨달아서 전하는  것을 원하고 있어요. 금요일 날 오기를 원해요. 우리와 같이 안 나가도 금요일  날 오기를 원해. 또 대 집회 때 와서 참석하기를 원해요.  그러나 여게서 그것을  동지자들 동역자니까 그분들이 거게 잘못 전하는 그런 전하는 일은 하지 말라는  그거야. 그러면 그거는 원하는데 이거는 원치 않는다는 그걸 여러분들이 잘  구별해야 되지 잘못하면 이게 좁은 게  아니고 한없이 넓어서 말하는 건데 좁게  생각하기 쉽다 그말이요. 자기가 좁으니 좁게 생각든다는 말이요. 좁은 게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보면서 책임상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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