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주님 사랑

 

1984. 4. 29. 주새 

 

본문: 요한복음 15장 9절∼13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앉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우리를 모든 면에서 가장 복 되게 하시기  위한 일을 행한 것이 그의 사랑의 증거가 됩니다. 사랑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기울여서 상대방을 복 되게 하여 자기가 상대방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그것이 사랑입니다.

 아버지가 주님을 사랑하셔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었다 그 말은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성자를 사랑하사 성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희생해서 성자를 가장  복되게 -복되다는 말을, 그 말을 한 마디로 표시할라 하니까 복되다는 것이지  복된 것은, 생명적으로 복된 것은 생명의 완전이요, 소유적으로 복된 것은  소유의 완전함이요, 또 영광의 복된 것은 영광의 완전함이요 모든 것을 완전한  것을 가리켜서 복되다 그렇게도 말할 수 있고 좋다 그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셔서 아버지의 그 전부를 다 아들에게 다 맡기고, 주고,  아들 복되도록 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전부를 다 기울여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있는 그것은 아들을 사랑하신 것이요, 아들이 그것을 받는 것이 사랑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랑은 하나님만 가지지 사람은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사람은 상대방을 아무리 사랑한다 할지라도 상대방을 모든 면에 완전 무결하게  할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 지능이 없습니다. 또 사람은 있다고 하는 것도  다 유한한 것이기 때문에 끝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사랑은 완전한 자,  전지전능자, 무한한 자, 영원한 자, 불변자, 이것을 갖추어 가진 이만 참사랑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 도리어 결과적으로  역효과가 되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자기가 권세를 가지고 사랑하다가 권세자가  끝나면은 권세자의 사랑을 독점 하던 그는 다른 권세가 오면 그만침 미움의  대상이 돼 가지고 절단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사랑을  가질 수 있는 이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독생자를 사랑하신 것은 무엇이 독생자를 사랑하셨는가?  사랑하신 그 표시가 사랑하시는 그 역사를 이룰 때에 어떻게 하셨던가 하는 것을  성경에 기록해서, 독생자를,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영원 무궁한 완전한 구속을  해서 모든 피조물들이 진정코 무릎을 꿇고 경배를 하고 중심으로 감사를 하고 또  모든 피조물이 다 행복되게 했습니다.

 그러면, 모든 피조물이 행복된 것이 어떤게 행복된 것인데? 악령이 와서  피조물이 피조물 제대로 살면은 복되다 이런 유혹을 줘서 그 소리를 한 마디  들었다가 완전히 멸망을 받았습니다. 이랬는데, 모든 피조물을 자존주, 창조주  주재자 그분에게로 돌아가서 그분에게 붙어서 그분에게 속해서, 그분으로 인하여  그분의 모든 은총을 다 받을 수 있는 이것이 피조 물의 행복이요, 또 창조주의  만족이요, 기쁨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이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이 일을 맡기시고, 이 일을 하게 하시고,  성공하게 하신 그것이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한 표입니다. 성부가 성자를  사랑하는데는, 제일 행복되게 하는 데에는 그 길이 제일 행복되게 하는 길이기  때문에 그 길을 맡겼습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이해가 되는지, 잘 아마 안  될런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자라야 이해가 됩니다. 자라기 전에는,  성부가 성자에게 천하를 차지하고 우주를 차지해서 권세그 가지게 하고 모든  것을 통치를 하게 한다고 해도 그것은 흠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받아서 아버지가 주신 직책, 아버지에게 받아 가지구서 행하신 그 일, 누리는 그  일 그것은 아버지도 하나도 흠점 없이 그저 모든 면에 만족한, 그 이상 만족이  없는 만족을 하실 수 있는 그 일을 맡기셨고 또 피조물들도 속에 끼어 있는 것  없이 깊은 속속들이 다 감탄하면서 경배하면서, 존경, 숭배하면서 영광을 돌리게  하는 이런 일을 했습니다.

 ○ 대통령 같은 그런 정권자들은, ○ 대통령이 참 그분이 국부라고 할 만치  나라를 위해서 희생을 그 부부가 다 했습니다. 이렇지마는 일면에 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느 정권자, 어느 정권자도 다 그렇습니다. 그저, 어제인가  신문에 보니까, 그 천주교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다 하는데 이거는 참 한국에  대해서는 뭐 아주 영광이라 하고 굉장히 기뻐하고 있는데, 암살하려고 지금 벌써  암살단들은 벌써 조직을 하고 이렇게 하고 있다고, 그런 사람도, 그분이, 교황  바오로가 아주 하는 일이나 보면 아주 훌륭한 일합니다. 보면 소인이 아니고  대인이고 아주 하는 일이 훌륭하게 하는데 그렇게 참 원수를 사랑하는 그 일을  하는데 그래도 일면에서는 저놈을 죽여야 되겠다 하는 원수들이 많다 그말이오.

 세상에 무슨 일을 한 사람도 원수 없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독생자에게 맡겨서 독생자가 한 일은 원수가 없습니다. 원수가 있는 것 같았으나  그들이 몰라 그렇지 음부에 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로 시인하고서 영광을  아버지에게 돌리면서 참 감탄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완전한 직책 이것이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한, 사랑해서  -아버지가 아들을 어떻게 사랑했는가? 아버지가 아들을 어떻게 사랑했는가 하는  그것을 우리는 그 깊이와 넓이를 구경도 못합니다. 우리가 너무 무식하고  천박하고 협착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사랑하는가,  그 넓이와 깊이를 우리는 모르나 일면에 나타난 것을 볼 때에, 하나 예를 들면은  모든 피조물의 대속주 되는, 대속주 노릇 하게 하는 이 일을 맡기신 것이  사랑이라 그말이오. 이것도 깨닫지 못하면 '아들을 저주했다' 이렇게 보일  것입니다. 그게 참 사랑하는 것이오.

 어제도 어떤 사람이 부활에 대해서 아주 설교를 하며-어떤 교수인데- 말은  유창하게 해서 참 멋진 말을 했어요, 모두다. 아주 들으면 사람들이 뭐 말에다  취미를 붙인 사람은 참 살살 녹을 만침 했는데 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데 대해서 하나님의 사랑이라 하는 것은 근방에 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했더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십자가 상에 달릴 때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이것이 참 '내가 이거 감당도 못  하는데, 감당 못 하기 때문에 이 잔이 내게서 떠나, 내가 마시지 않고는 안  되겠습니까? 나보다 좀 감당을 좀 잘 할 이가 있으면 잘 할 이를 보내야 되지 이  귀중하고 이렇게 중요하고 제일 영광되고 제일 복되고 제일 좋은 이것을 감당 못  할 나에게 맡기십니까? 나보다 좀 감당할 수 있는 이가 있으면 맡기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라다가, '그러나 내가 주장하는 거는 아니고, 주님이 참  맡기시면 황송하게 감사히 맡지마는 나는 부족하니까 이걸 맡기시는 데에는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뒤를 싸서 다하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해 가지고  나중에 아버지의 응답을 받고 난 다음에는'이제는 안심하라. 이제는 자고 쉬라.

가자.' 그러셨기 때문에 십자가 상에서 마지막 운명하시면서 찬양하는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이 직분을 맡기셨습니까? 나를,  나를 버려 모든 피조물을 대속하시는, 나를 버리는 이 사랑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대속의 이 중보가 되게 어떻게 이 일을 하게 하셨습니까?' 감탄해서  십자가 상에서 찬양을 한 것입니다. 그거는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어떻게 이  직책을 맡기셨습니까? 어떻게 이 일을 나에게 맡기셨습니까? 어떻게 나에게 이런  사랑을 베푸셨습니까?' 하는 그 찬양의 말입니다.

 찬양의 말인데, 사람들은 항상 죽기를 두려워하는 그 옛사람 그놈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도 십자가 상에서 얼마나 고통이든지 아파서 못 견뎌서 그래  지금 원망스러운 말을 하다가 다시 생각하고 돌이켜서, 십자가에 원망하는 것을  돌이켜 가지고서 그렇게 하셨다.' 고런 말로 해석을 해서, 어떤 신학교 설교  교수입니다. 설교 교수인데, 그렇게 해 놨습니다. 그 뜻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

죽음 밑에 있는 사람 말이지, 예수님의 심정은 하나도 알지도 못하고, 예수님은  원하고 원하셔서 그랬는데 그렇게 하신 주님이 십자가에 고난 당하니까 그때에  변질이 돼 가지고서 불만했으면 벌써 하나님의 지공법에서는 대속은 못합니다.

원치 안하고 강제했으니까 대속이 됩니까? 모르고 한 소리라 말이라. 다 어두운  소리.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그거는 넓이와 깊이를 우리는 모릅니다. 무한하신 분 이 무한하신  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무한한 사랑을 모르나 그 사랑에 하나의 표현이 된  것이 뭐이냐? 독생자를 대속의 제물로, 화목의 제물로 이렇게 이 직책을 맡겨서  이 일을 하게 하신 그것이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그 하나의 표현으로 우리가  나타나서 봤다 그말이오. 세상에 억만 인을 죽여 복종시키는 것보다 한 사람이  원수가 되어서 불목하고 마음에 항상, 평생 원수의 불만과 불목과 고민을 가지고  있는 그것을 새로 화평을 시켜서 너 아니면 나 못 살고 나 아니면 너 못산다  하도록 그렇게 화목으로 변화시키는 그것이 억억만 배도 더 큽니다. 그런 일을  주님이 다 하셨다 그 말이오.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얼마나 기쁘겠소? 이것도  안해 본 사람은 몰라요. 해 본 사람은, 그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억만 명을  복종하는 것보다도 한 두 사람이 원수된 그것을 화목을 시켜서 그 원수된 것은  싹 뽑혀 나가고, 참 깨닫고 해결해서, 서로 사랑해서 위해서 목숨을 버릴 만침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자로서 그 원수가 화평으로 변화시켰다면은 그 일은  인격자로서는 참 지상의 쾌감을 가질 것이라 그말이오. 이런 직책을 아버지가  주셨어. 아버지가 고렇게 사랑하신 것이오.

 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은 어떤가? 우리를 사랑하실 때 어떻게  사랑하셨츠냐? 독생자로 가지고서 우리를 죄에서, 과거. 현재.미래 영원  무궁토록 삐뚤어진 데서 우리를 구출했다 말이오. 삐뚤어진데서 구출해서 영원히  삐뚤어짐이 없는 구출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독생자를 통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또 사랑이라 그말이오. 독생자에게 이 직책을 주니까  독생자가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은 무슨 사랑했느냐 하면은 우리를 사랑한 사랑은  영원 무궁토록,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영원 무궁토록 삐뚤어진 것을 다 고쳐서  삐뚤어짐이 없게 하는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여러분들! '한국 땅떵어리를 세계 땅떵어리를 줄 터이니까 이것을 차지 할래?  너희의 과거 현재 모든 언행심사의 전부에 삐뚤어진 것이 하나도 없게 하는 이  축복을 받을래?' 하면은 어느 것 받겠습니까'? 이 우주를 선물로 받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몰라 말은 그래 손은 안 들지마는.

그렇지요. 우주 그까짓 것 하는 것 보다도 자기 언행심사에 영원 무궁토록  삐뚤어짐이 없게 하는 그것이 크지요. 그컷 받지요. 만일 자기가 모든 것을 다  받았다 할지라도 삐뚤어진 것이 하나라도 있다고 하면은 언젠간가 정죄는 받고  맙니다. 언젠가 그거는 그대로 삐뚤어져 자기에게는 암으로서 그는 완전한  인격이 아니오. 그거는 삐뚤어짐 이 있기 때문에 완전하 기쁨도 있을 수가 없고,  완전한 생명도 있을 수가 없고, 완전한 승리도 가질 수가 없고, 완전한 쾌감도  가질 수가 없고, 완전한 안심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삐뚤어진 것이 하나  있으니까, 이렇게 삐뚤어진게, 이 죄가 무서운 것인데 이 삐뚤어짐을 완전히  도말했습니다.

 또 절대자이신, 완전자이신 그분에게 속해서 그분이 동하면 동하고 그 분이  정하면 정하고, 피조물인데 그분으로 하나되어 움직이는, 그분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고, 그분이 기뻐하면 기뻐하고 그분이 슬퍼하면 슬퍼하고,  희로애락의 모든 전부가 다 그분에게 피동되는 요 일을 우리에게 성공했습니다.

이것이 뭐 말 들어도 '그까짓 것, 돈이라야 그게 크지 그게 뭐 큰 거냐?' 이것을  아는 것도 그 사람의 아주 인격이 대단히 자라야합니다. 인격이 대단히  자라야합니다. 여기 동회에서 동장에게 총애를 받는 직원이라면 그것 복되다  하고, 조그만한 지역을 차지하는 시의 시장에게 사랑의 독점을 받는다 하면은  그것을 귀하다고 하고, 조그만한 소국의 정권자에게 총애를 받는다고 하면은  귀하다고 하는데, 총애를 받아서 그분이 뭐이든지 시키는 대로 하고 그 분과  서로 의논해 가지고서 그분하고 '아,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은 바로 대통령  말이다. 대통령하고 저 사람은 한 덩어리다. 대통령이 동하면 저 사람 동하고  정하면 정한다. 저 둘이는 떨어지지 못하고 한덩어리다.' 이것도 복되다고  하거든 자존자 대주재이신 이분과, 이렇게 그분과 하나 되어서 그분에게  피동되어, 그분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해서 그분하고 한 덩어리 되는 이것이  얼마나 영광입니까? 하나님은 아닌데 하나님 되는 것이오. 이 일을 우리에게 해  주셨다 그말이오. 이 일을 우리에게 해 주셨소.

 이 일을 해주시고, 이제는 그분이 자존자와 우리와 서로 이상이 없는, 아무것도  그 이상이 없는 이 유일한 사랑으로서 결합이 돼 가지고서 서로 친교를 맺었소.

하나님과 우리와 아주 사랑의 친교를 맺었어. 사랑의 친교. 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을 했지. 하나님으로 더불어 아무 거리낌이, 흠과 점이, 주름 잡힌  것이 없는 이 화친을 가졌지, 이로 인해서 모든 피조물과 서서히 화친을 가졌지,  지옥에 있는 원수들까지도 다 우리로 더불어서 화친해서 우리가 가면 다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웃고 환영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바랄 수 있는 이 모든  피조물이 이렇게,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이 화친을 가지게 하는 이런 영광스러운  일을 우리에게 베푸셨다 말이오. 이 세 가지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라 말이오.

 뭐 사랑에는, 사랑은 뭐 어떵고 어떻고 하면서 사랑 노래를 많이 부르지 마는  흉측합니다. 그속을 뒤벼 보면 흉측한 도적이야, 도적. 이제 다 자기가 먹어서  자기 욕심을 채우자는 것이야. 다 삼켜서 욕심을 채우자는 것이지 뭐 하나  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이다음에 이 구겨거리가 좋을 것이 서로 사랑해서 못  산다는 남녀 사랑, 친구 사랑 이 사랑이 가서 휘뜩 껍데기를 벗겨 보고 보면  나중에 가서 원수가 돼서 서로 쥐 박을 것이오. '이놈 내 원수 중에는 이놈이  원수구나. 원수 중에는 이 계집이 원수로구나. 원수 중에는 이자가 원수로구나.'  나중에 그것이 알고 보면 다 마귀가 들어서 다 속이고 그랬기 때문에 이다음에  그게 깨닫게 되면, 지옥은 싸우는 지옥입니다. 깨닫고 보니까.

 하나님으로 더불어 우리가 화친을 가진다는 것이, 모든 인류를 더불어 화친을  가진다는 것이, 화평을 가진다는 것이, 그들이 지금이야 화평 안 가지지요.

그러나 우리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마지막에 그들이 깨닫고 보면 우리로 더불어  화친해서 나도 그와 화친하고 그도 나로 더불어 화친하고 모든 만물도 화친하는  이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이 일을 시키셨는데 이 일을 하심으로 주님이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었습니다. 우리를 이 사랑으로 사랑하시고, 이 사랑으로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이 사랑 안에 있어라 합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있으리라.'  아버지가 날 사랑하셔서 이 일을 맡기셨고 내가 이 일을 했을 때에 아버지의  사랑을 받게 됐고, 사랑 안에 있게 됐고, 사랑하게 됐다. 이 모든 피조물을  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피조물을 구원하는 이 구원을 하지 안했으면 아버지의  사랑을, 이렇게 귀한 직책을 줬는데 거부한 것이 되는 것이요 또 아버지치  사랑을 거부하기 때문에 사랑 안에 있을 수 없고 사랑을 받을 수 없는데, 이  일을 함으로 사랑 안에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버지가 날 사랑하심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 사랑 안에  거하라.' 어떻게 거할까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한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계명을 지키다니?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이는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는 그 일을 내가 잘 감당함으로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는 것같이 내가 너희들에게도 내 계명올, 내가 너희들에게 사랑을  주는, 내 계명은 이것이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 하신 것같이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들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한다.

 그러면, 계명이 뭐입니까,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 가지고 너희들을  사랑한 그대로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이것이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같이 너희들도 내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아버지가 날 사랑하는 것은 모든  되조물을 구원하라고 하는 이것이 아버지가 나를 사랑해서, 일을 맡긴게 아니라  이것이 나를 사랑하심이다. 이거 제일 복되고 존귀한 일을 나에게 맡기시고 하게  했다 말이오. 이 일을 잘 함으로써 아버지가 날 사랑하는 것을 내가 사랑을  받았고, 사랑 안에 거하고. 또 아버지는 나를 영원히 사랑하게 되었고, 이와  마찬가지로 너희들도 형제를 구원하라. 내가 너희들에게 한 것같이 너희들이  형제들에게 하면은 곧 내 계명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아버지가 이들을 사랑하셨는데 사랑하시는 것 보니까, 뭘 보니까  사랑하십니까?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시는 그것을 우리가 다  모르지마는 일부분이라도 아버지가 그 아들을, 성자를 사랑 하시는 그 사랑을  우리가 무엇을 보아서, 무엇에서 표시가 됐습니까? 무엇에서 표시가 됐습니까?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시는 증거가 무엇에서 표시가 됐습니까? 무엇에서 표시가  됐지? 저 ○○○씨, ○○○, 계명을 지키는게 아니라 대속의 주로 보내는 거라  말이오. 대속의 주. 대속의 직책을 맡기는 그것이 '아버지가 아들을 정말로  이렇게 참 사랑하셨구나.' 사랑하신 증거라 그말이오. 고걸 알고 대답했는지?  그러면,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신 증거가 뭐인고? 일을 시킨 것 보면 아는데,  제일 가치 있는 일, 제일 복된 일, 제일 좋은 일, 제일 영광스러 운 일, 제일  환영 배는 일, 제일 가치 있는 일, 모든 사람볼 때 감탄할 수 있는 제일 존귀한  일, 직책을 시켰다 그거요. 그걸 봐서 아버지가 아들을 참 사랑하신 증거라.

전부, 아들을 제일 사랑하셨다 한는 것을 알수가 있다 말이오 그 증거로서.

 그런데,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는 뭘 봐서 알 수 있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는 무엇을 보아서, 그분이 우리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는  것을 보아서 알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하는 걸봐서 알 수 있지요? 어떻게 하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까? 그 증거가 뭘로서 나타납니까?  주님이 우리를 삐뚤어진 데서 해결을 받게 하셨고, 절대자에게 하나되어 가지고  동하고 정하는 것을 함께 하도록 하셨고, 또 절대자로 더불어 아주 화친을,  만물로 더불어 화친을 이렇게 하도록 이렇게 하는 그 일을 우리에게 해  주셨습니다. 그 일을 우리에게 해 줘서 우리는 복 됐습니다. 우리는 복  됐습니다. 복 됐는데, 이 복은 우리로 말미암아 당신에게 기쁨이 됐소. 알겠소?  우리로 말미암아 당신에게 기쁨 됐는데 당신으로 인해서 있으니까 우리는 사랑의  빚만 져 가지고서, 우리는 행복되기야 행복됐지마는 우리는 실상 따지고  궁극적으로 말하면 좋을 것 없소. 우리로 인해서 그분이 좋아졌소. 알겠습니까?  이거 무슨 말인지 아요?  내가 누구에게 선물을 받아서, 선물을 많이 받아서 가졌으니까 내가 부자가  됐습니다. 내가 참 비참하고 가련한 자리에 있었는데 나를 구출해서 이렇게 아주  복되게 해 줬으니 나는 복된 사람이 됐습니다. 복된 사람이 됐는데, 복됨을  인해서 진정 그 인격의 신격의, 인격을 쾌감을 누리는 것은 우리에게는 그  쾌감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저 ○조사, ○집사, 예? 예? 예? 뭐라하노?  쾌감을 느낍니까? ○○○ 집사, ○○○목사님, ○ 목사님은 없다 하는데, 안  살아서 그래. 안 살아 보니까 그런 거라. 안 살아 보니까. 없어. 그분으로  인해서 아무리 내가 좋아져도 마음에는 내가 행복 됐지마는, 내가 행복된게 쓸  데가 뭐 있습니까? 쓸모가 없어. 그분은 좋지. 그분은 날 이렇게 했기 때문에  좋지. 나는 이것 가지고서 내가 나와 같은 비참한 그자를 내가 구원해서 나와  같은 자를 만들어 놨을 때에 인격의 존재는 기쁜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내가 죽을 병이 들어 가지고서 그 병에서 누가 나쁠 돈을 들여서 구출해서 참  건강을 만들어 줬습니다. '아, 기쁘다. 이렇게 참. 나를 죽을 데서 살려서  기쁘다.' 하는, 그것으로서 만족하고 '기쁘다. 나는 건강하니까 기쁘다' 한다면  그자는 죽은 자요, 인격이 없는 자요. 마음에 '아, 그분은 날 이렇게 사랑해서  날 이렇게 해 줬는데 나는 그분에게 사랑만 받고 모든 것에 빚만 진 자이고 나는  이렇게 하지를 못한 이런 자이다.' 그 마음에 꿍 끼여 가지고서 뭣하다가 자기도  자기 있는 힘을 가지고서 그와 같은 자를 구출 하면서 '아. 누가 날 이렇게  구출한 그 사랑을 나도 베풀어야 되겠다' 하면서 그를 이렇게 구출하는 그때에  나를 구출한 그 분도 보기에 좋을 것이고. 내가 그렇게 구출을 할때에 구출이  됐으면 마음에 쾌감을 느낄 것입니다.

 내가 나를 구출한 그분을 대할 때도, 그분에게 뭘로 갚겠습니까? 뭘로 갚을 수  없는데, '내가, 당신이 날 이렇게 구출하신 이 사랑을 깨닫고 내가 나도  감격해서, 참 항상 마음에 무거운 짐진 것같이 빚졌다가 나도 누구 누구 이런  사람을 내가 당신의 사랑을 인해서 내가 그분을 이렇게 내가 해 가지고 나도  구출했습니다.' 할 때 그분도 좋아할 것이고, 그분 대할 때 안면이 펴일 것이고,  그랬을 때에 자기에게 쾌감이 조그매 생겨질 것이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우리가 이와 같이 주님의 대속을 받은 것은 주님의 기쁨이요 우리는 복  됐지마는 인격의 쾌감이라는, 영광이라는 것은 있을게 없습니다. 부자에게 받아  가지고 재산 많은데 뭐 영광 있을게 뭐 있습니까? 제 재산을 다른 데 써야  영광이 있지, 영광은 없다. 그말이오. 알겠소? 이거 무슨 말인지 알아요? 영광과  쾌감은 없는데, 영감과 쾌감은 '내가 너희들을, 아버지가 날 사랑한 것같이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 사랑 아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한 것같이 너희들이 내 계명을 지키면, 내가 너희들을 구원한  것같이 너희들이 인생을 구원하면 내 기쁨이 너희 안에서 충만케 되리라. 내  기쁨이 충만케 되리라.

 이러니까 아무리 병 낫아 건강해도 그저 마음에만 좋지, '나는 이래 건강해서  됐다' 하는 사람은 인격은 없는 사람입니다. 인격은 없는 사람이요. 종교성은  없는 사람이요, 철학은 없는 사람이오. 늘 한쪽머리 빚진 거와 같이 이래 꿍  끼어 있다가서 자기도 그를 사랑했을 때에 그게 됩니다. 이래서, '주님이 내게  대해서 오래 참으셨으니 내가 어떻게 할까? 주여, 주님이 내게 대해서 오래  참으셨으니 내가 죄인들에게 대해서 범사에 오래 참겠습니다. 이것으로서 당신의  오래 참으신 구인의 사랑을 내가 찬양하겠습니다. 구인의 사랑을  기념하겠습니다.' 기념할 때에 우리는 사랑의 대상인 당신을 대할 때에 대할  안면도 있고, 또 우리는 스스로 양심에 느낄 때에 쾌감도 있을 수가 있다  그거요. 무슨 말인지 알아 들려집니까? ○조사님 알아 들려져? 알아 들려져?  이치에 안 맞아, 비합리적이라, 그 사람이 돼야 이치를 알아요, 그 사람이 돼야.

성인이라야 능지 성인이라고 이제 해 보면 알아요. 아마 권사님들은 다 알거요.

권사님들은 아멘이 다 될 것이라. 그게 없으면, 인생은 받는 것으로서는 쾌감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받는 것에 쾌감 있는 그것은 아직까지도, 받는 것에 쾌감  있는 것은 유치한 때요. 독립을 하지 못하는 때요. 받는 것으로 쾌감이 있는 그  쾌감 보다 이제 내가 받은 걸 가지고서 줄 때에 쾌감이 있는 그 쾌감이 비로소  장성한 쾌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도 주일날 아침인데 형제를 구원하러 가는 이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요,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요, 주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요, 주님의 요구를 응하여 드리는 것이요, 이것이 주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서 그와 같이 모든 것을 재물로 희생하셔서 당신의 기쁨이 충만한  것처럼 이 은혜 받았었기 때문에 나도 이것 받아 가지고 형제를 사랑함으로  구원할 때에 우리는 거기에서 솟아나는 인격의 쾌감과 기쁨과 참 만족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기도록에 등록한 사람은 오천 육백 구십 오 명입니다. 권면도 하고 열심히 해서  구원하도록. 기도를 많이 하면 앞으로 환난이 기쁨이 됩니다. 밤중에 신랑  맞이하니까, 주님과 동행하니까 기쁨이 되고, 기도 안한 사람, 미리 준비하지  안한 사람은 환난 만났을 때에 주님과 서로 대립이 돼서 주님 배반하게 되고  자기는 그 환난으로 인해서 크게 비참한 사람 됩니다.

 오늘 새벽에는, 이거 광고를 언제 한번 해야 되겠는데. 주일날 새벽에는 꼭  사람이 적게 나와요. 그거는 반사들 회의나 하는 건 줄 알고 자기는 안 하는 건  줄 알고 그렇게 하는데, 이제는 광고를 한번 해야 돼. 한번 써 내요. ○○○  집사, 주일날 새벽에도 다 나와야 된다고. 새벽 기도 좀 광로 좀 써 내요. 내가  그만 설교할 때는 일편 단심이 설교에 기울어지기 때문에 광고할 것을 잊어 버려  버려요. 이 주일날 새벽 설교에 광고를 하면 새벽에 많이 나오는데 그만 잊어  버려 버려요. 잊어버리는 것은. 여러분들도 경험 있을 거라. 오데 뭐 복음을  인해서 갔으면은 가서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하는데 진정 복음에 다 바쳐서 하다  보면 다른 것은 다 잊어 버려 버리요. 그것만하고 딴 거는 못 하고 와요. 딴것  마음에 없어. 있으면 가짜라. 광고 좀 써 올려요.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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