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과 롯

 

1981. 6. 24. 수요일 새벽

 

본문 : 창세기 13: 1 - 18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 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 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자기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출발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베델로 인도하시고 여기에 내가 머물라 해서 장막을 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거게서 머물었습니다. 머물다가 흉년이 심히 들어서 그들이  그 의식주가 너무 곤고하게 됨으로 슬슬 애굽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애굽에 갔다가 큰 붕변을 당하고 또 거게서 공재물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버리야 될터인데 그대로 취해 가지고 온 그것이 자손이 사백 년 동안 종 노릇 한  그 원인이 된 것으로 그렇게 우리는 추론할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가 삼대가 사백 년 동안이나 종 노릇 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순종한 그 걸음이 의식주의 곤고한 그런  형편을 당하게 됐습니다. 그럴 때에 그 의식주의 곤고한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고 영화롭게 한 것으로 그들이 이용을 했으면 저 바벨탑을 쌓다가 망한  그와 정반대의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걸음이 되겠습니다.

 그 사람이 그 사람들이 의식주의 곤란이 없이 하나님을 그대로 섭겼으면 하나님  섬긴 성의나 열심이나 그 질과 양이 그 보통이였을 터인데 그들에게 그 의식주의  심한 어려움을 닥쳤으니 그 어려움 닥쳐도 하나님 위하고 섬기는 일이 변함없이  그대로 섬겨 나갔다 하면 그들이 하나님 섬기고 위하는 그 일의 질과 양이  많아졌습니까, 적어졌습니까? 한번 대답해 보십시요. 예. 예. 많아졌지요.

 그러면 의식주의 곤고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을 더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나님  섬기는 데에 이용이 되어야 하는 것이 성경적인데 그렇지 않고도 의식주의  곤고가 자기들을 위하는 것의 이용하게 됐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자리에서 차차  남방을 그 애굽을 향해서 내려갔습니다. 그래 가지고 자기로서 참 당할 수 없는  그런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는데 하나님이 도우셔서 겨우 그것은 욕은 면하게  됐습니다.

 죄에 이르는 일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됐지마는 그게 아주 믿음의  조상으로서는 멸망할 그 길이였습니다. 만일 바로와 사라가 동침했다고 하면  거기에서 그 이삭 난다는 그런 계약이 다 허물어져 버립니다. 그 위에 보면  그들의 생애에 조금만 흠점이 있어도 그것 때문에 일이 지장됐습니다.

 여게서 우리가 깨닫을 것은 의식주의 풍부를 주면 그 풍부 가지고 하나님  높히고 하나님 기쁘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데에 쓰기 위해서 준 것인 것을  우리는 알고 그대로 살아야 되고, 또 의식주의 곤고를 주시면 무엇 때문에 그  곤고 주시는가? 우리를 위해서 모든 걸 창조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곤고를  주시는가? 곤고 주시면 곤고 그것 가지고 또 하나님을 높히고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주시는 것인 것을 알고 요대로 위하기만 하면  곤고를 가지고 하나님 위하라고 주신 것을 깨달아야 되겠고,  풍부 주시면 풍부 가지고 하나님 위하라는 것인 것을 깨달아야 되겠고, 또  자기에게 형통을 주시면 그 형통 가지고 하나님 높히라고, 자기에게 그 모든  절벽이 당하면 앞 길이 캄캄 막히게 되면 그 절벽 가지고 하나님을 높히는  일하라고, 절벽에서 무엇을 하나님을 높힐긴가? 형통에서 하나님 섬기는 그 양이  절벽에서 섬길 때문에는 절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더 영광을 받으시고  절벽에서 하나님을 섬김으로 영광 받으실 그 일은 그런 절벽이 아니면 그 섬김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거 원리를 우리가 단단히 잡아야 됩니다. 그 시날평지에서 그들이 실패한  것은 그들의 그 받은 은혜는 아주 빈약했습니까, 풍부했습니까? 이민영씨 예.

시날평지에서 그들이 바벨탑을 쌓을 때에 그들이 받은 은혜는 풍부했습니까,  빈약했습니까? 풍부했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하나님 앞에 받은 바의 풍부한 은혜는 어떤 것들입니까? 여게  뭣들이지? 이제 말했는데 네 그들이 건강했고 언어가 단일이였고, 그러면 언어는  마음과 그 뜻 표현인데 마음과 뜻이 하나였고 또 족속이 하나라 그들이 똘똘  뭉쳐서 한 단합입니다. 그게 은혜 풍성이요. 그게 은혜 풍성이요.

 그랬는데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높히고 하나님 섬기고 하나님을 위하는 그것이  성경 원리요.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지으시고 만물을 창조하셔서 구비해  놓은 이 목적인데 그들은 뭘 했습니까? 그들은 그것 가지고 두 가지 위했소.

그것 가지고 두 가지 위하는 일 했습니다.

 하나는 뭐이요? 저희들 높히는 것. 하나는 저희들 높히는 것, 저거 위하는 것.

또 하나는 뭐했습니까? 응 응 하나는 받은 바의 그 은혜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  가지고 있는 받은 바의 은혜 그것 잘 보장되고 그것 잘 보장되고 더 튼튼케  하려는 그거 하고 두 가지 하지 안했습니까. 그렇지 안했소. '우리가 흩어지지  않게 하자' 하니까 저들의 모든 일심 단합된 그것을 흩어지지 않게 그게 약화  되지 않게 그거 튼튼케 하려는 그것 저거 높힌 것. 요 두 가지 한 것이  그들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무슨 일 했느냐 하면 저들이 원하는 대로 보장하고  튼튼케 하려는 그 모든 것이 다 절단 안났습니까. 언어가 혼잡하게 됐으니까  하나인 구음이 하나인 것이 절단났지. 흩어지지 않자 했는데 지면에 마구  흩어버렸지. 바짝 깨지지 안했습니까.

 자 자기들이 받은 바의 은혜가 다 절단나 버렸지. 또 자기네들이 시작한 그  공사가 성공이 됐습니까, 안됐습니까? 성공이 안됐습니다. 자기가 하던 일  실패됐지. 있는 모든 축복 다 절단났지. 그러면 그들이 높아졌습니까,  천해졌습니까? 천해졌소. 이것이 성경 원리입니다. 그들이 위하는 것이 자기들  위하고 하나님 앞에 받은 바의 은혜 그 소유 그거 위하고, 자기 위하고 소유  위하고 그것이 소유 망하는 길이요, 자기 망하는 길이지. 요걸 우리가 굳게  잡아야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돈을 받았든지 권세를 받았든지 가정 화평을 받았든지 무슨  지위를 받았든지 무엇을 뭐 지식을 받았든지 어떤 기능을 받았든지 뭘 받았든지  받은 이거 가지고 자기들 위하고 또 이매 복이라고 가지고 있는 것 그거 위하고  그러는 것이 그것이 발벨탑 쌓는 것입니다. 발벨탑 쌓는 것.

 그러면 자기도 자기가 받아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도 이 자기와 받아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둘을 가지고 자기 위하고 받아 가지고 있는 그 소유를 잘  보장하고 또 튼튼케 하기 위해서 하고 하는 그것은 자기 망치고 자기 소우  망치는 길이라 하는 요 원리 원칙을 굳게 잡아야 됩니다. 뭐 성경이 다  이대로인데 이런 면으로 가르치고 저런 면으로 가르치는데 진리는 꼭같습니다.

 이랬는데 아브라함이 그 뒤에 하나님께서 자기네들의 본토 친척 그것 가지고  아브라함이 하나님 위했습니까, 자기 위했습니까? 그러면 자기들이 이매 받아  가지고 있는 그 소유 그것은 하나님 위했습니까, 자기 위했습니까? 아브라함이  거게 있는 모든 재물과 본토 그 모든 것이 다 친척 있지 않소. 그것 가지고 누구  위했습니까? 하나님 위했습니다.

 하나님 위하다니 뭐 하나님 위했어? 하나님이 버리라 할 때에 버리니까 하나님  위한 것이지. 그렇지 않소. 거게 붙어 있는 것 하나님이 가라 하는데 갔으니까  그게 없으면 가도 그만이지만 그게 있는데 버리라 하니 버렸고 버리고 가거라  하니까 갔으니까 그것이 하나님 위했다 그말이오. 그 바벨탑을 쌓는 것과  반대입니까, 바벨탑을 쌓은 것입니까? 반대입니다.

 '그러면 복받는다. 너는 복의 기관된다.' 이렇게 말씀했다 말이요. 가가지고  베델에 가서 거게서 장막치고 제단 쌓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애굽에는 풍년  주시고 거게는 뭐 흉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아브리함을 미워서 그랬겠소,  능력이 없어서 그랬겠소. 그랬데 하나님께서 거게 흉년을 차차 차차 들어서  의식주에 곤고해서 심하게 곤고하게 만들없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하신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인데 공연히 하나님이 몰라서  그랬겠습니까, 고의적으로 아브라함을 해치기 위해서 그랬겠습니까, 이것으로  상상도 못할 만유의 대주제이신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이 관계를 바로 맺으려고  지금 하나님과 하나님이 모든 것 아브라함에게 주실려고 이렇게 이 공작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브라함을 몰라서 이랬습니까, 잊어버려 이랬습니까, 해칠려고  이랬습니까, 뭐입니까? 요 확실히 확정을 지우고 가십시요.

 분명히 위하고사랑하고 더 좋게 하기 위해서 하신 것이지요. 이 바벨탑을  쌓는다면 망령부리다가 다 자기들 위하고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소유 위하고 이  망령 부리다가 절단난 그 족속 가운데에 난 이 아브라함에게 자기의 가진 모든  것 가지고 하나님 위해 봐라 하니까 딱 위했다 말이요.

 위하니까 하나님이 떠나서 인도대로 가니까 베델에 턱 갔을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시 가지고 네가 여게 있으라 하면서 축복했으니까 하나님이 그 걸음을  만족한 것 아닙니까. 베델에 있으라고 작정도 해주시고 그렇지 않습니까. 제단  쌓고 거게 있었다 그말이오. '이제는 네가 있는 것 가지고 나를 위해서 살므로  복의 기관된 일을 했는데 네가 이제는 없는 것 가지고 나를 위하는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이 자격을 마련해라. 없는 것 가지고 나를 위하는 일을 해봐라.'  하고서 없게 하신 것이라 그말이오.

 없게 했는데 없게 하시니까 있는 것 가지고는 주를 기쁘시게 하고 주의 뜻대로  이래 하더니만 없으니까 주님의 뜻을 슬슬 어기 가지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니까 그 결과가 어찌됐는가? 하나님이 약속한 그 축복 다  절단났지 또 자기 가정 절단났지.

 하나님만 같이 하지 안했으면 난중에 그것이 남편이라는 것이 발견 됐으면  아브라함 죽습니까, 안 죽습니까? 남편이 발견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난중에  그 바로의 아내가 되면 나중에 아브라함이라는 아브라함이 남편이라는 기  발견됩니까, 안됩니까? 예. 예. 발견되는 기 환하지 않소. 발견되면 아브라함이  죽습니까, 삽니까? 죽습니다. 죽이야 그 여인이 바로에게 사랑이 집중되지지.

 그 길이 어떤 길이냐? 가난 가지고 하나님 위하지 않고 자기 생각하고 자기  소유 생각했다 말이요. 소유가 가난해지니까 양식 많도록 하기 위해서 의식주  많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 위해서 이렇게 간 그 길이 자기 소유 망하고, 자기  가정 망하고, 하나님의 주신 축복 망하고, 자기 생명 망하고 완전히 전멸된 그  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대로 두시지 아니하시고 바로에게 큰 재앙을 내리니까  바로가 어쩐 일인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이에게 나타나서 '네가 아브라함을  데렸는데 아브라함은 그는 의인이요 내가 축복한 사람인데 그이 아내를 네가  데려왔으니 너와 너거 나라가 전부 절단날 것이다.' 하니까 그들이 놀래서 다시  물리쳤지요.

 그러면 그 걸음에서도 하나님이 구출 안했으면 멸망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 어떤 재앙을 받았으며 그 재앙에서 하나님이 구원하지 안했으면  안된다는 요걸 우리는 영력히 명심해서 찾지 않고 떠나서 망했다가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다시 회복이 되니까 이 세상은 만당있으면 골짝있고 골짝있으면  만당있다.

 이렇게 순환 돌아가는 이치로만 생각하지 이것을 망하는 길이라는 것을 측량을  못합니다. 이것이 믿음없는 사람이요. 이것을 아는 사람이 성령에 충만한  사람입니다. 이런 것을 깨달아서 아는 알아 가지고 그대로 사는 것이 성령  충만이지 뭐 뜨거운 것이 성령 충만이요. 자기에게 떨리는 것이 성령 충만이요.

 그 이랬는데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되찾아 가지고 그러면 참 회개를 해야  될터인데 회개를 하기야 했겠지마는 바로왕이 모든 예물이니 뭐 짐승이나 많이  주니까 이걸 받아 가지고 그저 올라왔다 말이요. 이걸 받아가지고 그걸 안  받아야지 그 받은 것은 마귀라는 놈이 이매 아브라함의 아내를 뺏들어 가지고  멸망시킬라 하다가 그 일은 못하니까 대성을 소성으로 바꾸었지. 작은 성공으로  바꾸없지요. 그렇게는 망치들 못하고 살짝 아브람함에게 공재물을 줬다 말이요.

 공재물을 주니까 '아나 이거 차지해라. 이거 가져가라' 이러니까 이거는 괜찮을  줄 알고 받아 가지고 나왔지요. 나온 이것이 그들에게는 큰 시험거리가 되지  안했습니까. 무슨 시험거리가 됐어. 이것이 롯하고 롯으로 더불어 난중에 시비한  그 시비가 일어나 가지고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포기했소. 그  아브라함이 이 가나안으로 이리 이 편으로 가는 데에는 거게는 아주 발간  자산이라서 풀이 없는 곳이라서 그만 자기네들 소유라는 것은 완전히 포기하는  것입니다. 포기하는 것.

 그리가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그걸 그리 안 가고 서로 시비하면 하나님이  노여워 하실 것이고 또 이쪽으로 가면 그 숙질간에 싸움이 인제 더 심해질  것이고 가나안 자산으로 이사야 49장에 말하지 안했습니까. 자산 빨간 자산 아무  풀이 없는 곳이라. 자산에 무슨 목축이 됩니까. 자기의 소유를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그때 포기할 때에 하나님이 노여움을 다시 풀없습니다.

 왜? 그 자기 소유를 포기해야 되는 그런 꼬라지를 왜 당했느냐? 당하는 것은  그것은 공재물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그 자기의 소유가 자기에게  거리끼는 죄가 되었기 때문에 일단 그것을 버리야 그게 치료가 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버리는 순서를 줬을 때에 버리는 순서에 단마음으로 버렸으니까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축복할 수 있는 그 암병이 이제 치료가 됐다  이기요.

 이래서 아브라함이 그 자리를 떠나서 이제는 베델을 향하여 올라옵니다. 베델로  올라가자 하고 그 거느리고 베델로 올라가니까 올라가는데 하나님이 축복해서  점점 많아집니다. 모든 것이 풍부해졌습니다. 베델로 올라갈 때에 풍부해졌소.

 그 베델에 와서 얼마 있는 동안에 얼마나 풍성했든지 서로 시비가 나 가지고 그  밑에 부하들이 시비가 나 가지고 그 한자리에 있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것은  너무 소유가 부요했기 때문에 그 면적에는 처음에는 빈들판 같았지만 너무  많아지니까 그 있을 수가 없도록 충만해졌다 그말이오. 그래 가지고 시비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우리에 뭘 보이느냐? 인간이 이렇게 의식주의 곤고로 인해서 타락을  하면 반드시 거게서 하나님이 돕지 안하면 안될 화간을 만나게 된다. 하나님이  돕지 안하면 안될 화간을 만나게 된다. 돕지 안하면 안될 화근을 만났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불의하게 생기는 것을 하나도 먼지  하나도 붙이지 않고 똘똘 다 털어버리고,  '네가 그 성을 나올 때에 발에 먼지를 떨라' 말씀하신 것은 요렇게 깨끗하게 딱  구별해서 아브라함이 거게서 나섰더라면 베델까지 오는 데에 거지가 됐겠소,  하나님이 그 소유를 풍부하게 해주겠소? 얼마든지 더 풍부하게 깨끗한 걸로  풍부하게 해줬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 그말이오.

 이랬지마는 그것을 가지고 올라와도 베델을 향할 때에 모든 소유가 풍성해졌다  요것을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인간이 연약해서 자기와 자기 소유를 위해서  걸으면 아브라함은 자기와 자기 소유를 위해서 애굽으로 내려간 것 아닙니까?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이 돕지 안하면 자기가 전멸될 수 있는 그런 경우를 만나게  된다.

 이라도 하나님이 해서 전멸해서 구출해 놓을 때에 이것이 망령을 부리고 다시  그 자리에서 있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나서 하나님이 여기 있으라 하던 베델을  향해서 올라왔습니다. 베델을 향해서 올라가니까 하나님이 축복했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보입니다.

 우리가 타락을 해도 그 자리에서 다시 돌이키 가지고 이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의 하나님의 뜻 자기가 살아야 될 그 위치를 찾아서 살라고 회개를 하면  하나님을 향하여 걸어가면 그만 가는 그 걸음이 모두 다 축복입니다. 그  축복이요.

 믿는 사람은 축복으로 되고 저주로 망하는 요거 둘뿐입니다. 축복으로 되고  저주로 망하는 요 둘뿐이요. 올라가 가지고 시비가 났습니다. 룻과 아브라함의  그 부하들이 시비가 났는데 시비가 났는데 시비날 때에 룻은 자기가 삼촌이니까  삼촌 좋은 것 주고 자기는 나쁜 것 해야 될터인데 삼촌이 네 마음대로 택하라  이라니까 좋은 것 제가 가지고 나쁜 것은 삼촌에게 맡기고 좋은 것 가지고  왔지요. 그것이 룻이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뭐 위한 것이요? 자기와 자기와  함께 있는 사람들 위했고, 또 뭐 위했소? 응 소유 위했고,   그러면 그게 바벨탑을 쌓은 거와 다릅니까, 같습니까? 꼭 같습니까? 꼭  같습니다. 성경에는 성경은 간단합니다. 꼭 같소.

 이러니까 그 걸음 걸어 가지고 롯이 소유가 풍부해졌습니까? 나중에는 저거  알몸둥이만 남았고 알몸둥이도 다 남지 못하고 무엇이 절단났습니까? 소유야 뭐  다 절단났지. 뭐 빈몸으로 도망쳤으니까 다 절단났지 또 예. 아내도 절단났지,  사위도 절단났고, 딸도 절단났고, 애비도 절단났고 딸하고 애비하고  동침했으니까 그 절단난 것 아닙니까? 망한 것 아닙니까?   5. 30. 토  그래 가지고 멸망의 조상이 안됐습니까. 요렇게 우리에게 보입니다. 롯은 자기  소유 튼튼케 하기 위해서 기름진 그거 택했고 자기와 함께 하는 가족들과 그  사람들 원하는 그 비유 맞춰서 그 좋게 하기 위해서 그들 좋게 하기 위해서  자기들 위하고 자기 소유 위해서 그길 택했고, 아브라함이 삼촌이요 삼촌 위해서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것을 다 그는 알고 있는데 자기에게 소유가 절단나는 것,  가족들 소원이 다 깨어지는 것,   그러면 가족들이 원하는 그 소원을 깨트리고 또 자기들의 소유가 다 절단나고  하는 그 모든 것 가지고 뭐했습니까?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과 그 소유 가지고  누구 위했습니까? 예. 아브라함이 누구 위했소? 자기 위하지 안해. 하나님  위했지요. 하나님 위했습니다.

 가족들도 '아무래도 우리가 큰집인데 어데 그럴 수가 있습니까.' 하면서 밑에  많이 말했지만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까지도 그 원했을 것이라. 그건  분명히 이렇지마는 '안된다.' 그 가족의 소원 그 전부 가지고 가족의 소원대로  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했으니까 가족의 소원을 반대해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을  높히는 일 했으니까 가족의 소원 그것 가지고 가족 위했소, 하나님을 위했소?  하나님 위했습니다. 사람 가지고 하나님 위했소.

 그러면 자기들의 소유가 이렇게 풍성한데 자산으로 가니까 다 절단나버릴  것이니 자기들의 소유 가지고 자기 소유를 위했소, 자기를 위했소? 하나님  위했소. 하나님 위했습니다. 이 걸음을 가니까 자산에도 푸른 초장이 있었다.

풀없는 밭에도 풀없는 산에도 목축이 잘될 수 있는 푸른 초장이 있었다. 인간이  모르는 푸른 초장이 있었다 하는 그것이 이사야 49편에 말씀해 놓은 것  아닙니까.

 발간 붉을 자자 자산에도 푸른 초장이 있었다. 하나님이 하실려면 못할 것 뭐  있겠소. 내나 흙이 풀되고 풀이 뭐 흙되는 것인데, 풀은 없지마는 흙은 있지  않소. 그거 아마 흙먹고 큰 모양이라. 그 요새 목축에서 낙농하면서 풀만 가지고  안되요. 낙농이 잘되는 곳은 그 흙을 먹으면 흙을 먹으면 가속도로 그 소가  살이찌고 잘되고 이래서 목축할 때에 풀이 잘되는 이 비료를 먹이요. 풀이  잘되는 비료를 먹여서 소를 길러요. 비료하고 흙하고 먹여서,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실려는데 뭐 흙만 먹어도 뭐 이도 살찔 수 있지. 이래  가지고 아브라함은 그렇게 부강해지지 안했습니까? 그 간단하다 그말이오.

 자기와 자기의 소유를 가지고 하나님 위하는 자기 하나님 위하는 소유되면  풍성해지고 그것 가지고 자기 가지고 자기를 위하고 자기 소유를 가지고 소유  위하고 자기와 자기 소유들이 자기와 자기 소유 이거 위해서 노력하는 자는  멸망이라 하는 것이 이것이 우리에게 택한 자들이 사는 길을 가르친 것입니다.

요 굳게 잡아 요대로 살아야 되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여게 어기면 하나님이 어떻게 축복하겠소. 뭐 우리 서부교회는 가난한 교회인데  무엇을 지금 현재 나오는 교인들이 넉넉한 장소를 가질라면 지 금 이거 가지는  것. 배나 되야 되는데 배가 될라고 하면 아마 몇억이나 해야 될런지 그럴러면 한  아마 몇십억은 될란지 몰라도 어쩌든지 십억은넘을 기라 말이요.

 그 뭣 가지고 되겠나? 뭣 가지고 되겠나? 자산에 푸른 초장이 있지. 없는  가운데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 하시지. 아무것도 아닌 자를 아무것도 아닌  목동이를 왕을 만들지 죄수를 총리대신을 만들지 거지를 대사장을 만들지 못할  기 뭐 있는가요.

 우리가 하나님의 법도를 똑똑히 알고 지키면 영육이 다 살고 안 지키면  망합니다. 그 우리는 똑똑히 있는 것 가지고 하나님 높히고 없는 것까지도  하나님 높히야 되요. 우리가 요 산생명 가지고도 하나님 높히야 되고 우리에게  죽음이 닥치면 그 죽음 그거 가지고도 하나님 높히야 되요. 요 원리만 잡으면  우리는 성공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 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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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5 아는 것과 믿는 것(교단 등록)/ 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860317월새 선지자 2015.12.01
854 아담 하와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 창세기 2장 15절-17절/ 1988. 9. 15. 목새벽 선지자 2015.12.01
853 아들구원=그리스도구원=심신기능부활/ 에베소서 1장 3절-14절/ 850714주전 선지자 2015.12.01
852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고린도전서 3장 18절-23절/ 880716토새 선지자 2015.12.01
851 아버지 우편/ 에베소서 1장 15절-23절/ 820411주전 선지자 2015.12.01
850 아버지의 주님 사랑/ 요한복음 15장 9절-13절/ 840429주새 선지자 2015.12.01
» 아브라함과 롯/ 창세기 13장 1절-18절/ 810624수새 선지자 2015.12.01
848 아브라함과 롯/ 창세기 13장 8절-13절/ 830522주전 선지자 2015.12.01
847 아브라함과 롯의 신앙노선/ 창세기 19장 31절-38절/ 881224토새 선지자 2015.12.01
846 아브라함의 3계단 믿음/ 히브리서 11장 8절-12절/ 881230금야 선지자 2015.12.01
845 아브라함의 길/ 창세기 13장 6절-15절/ 890215수야 선지자 2015.12.01
844 아브라함의 단순/ 창세기 13장 1절-14절/ 860403목새 선지자 2015.12.01
843 아브라함의 믿음/ 사도행전 3장 6절-10절/ 860928주새 선지자 2015.12.01
842 아브라함의 믿음/ 로마서 4장 1절-8절/ 830430토새 선지자 2015.12.01
841 아브라함의 신앙/ 창세기 12장 1절-4절/ 810622월새 선지자 2015.12.01
840 아브라함의 신앙/ 창세기 14장 20절-15장 1절/ 810625목새 선지자 2015.12.01
839 아브라함의 신앙/ 창세기 15장 1절/ 810626금야 선지자 2015.12.01
838 아브라함의 신앙/ 창세기 13장 14절-18절/ 840525금새 선지자 2015.12.01
837 아브라함의 신앙/ 창세기 13장 14절-18절 / 840525금야 선지자 2015.12.01
836 아브라함의 신앙/ 창세기 14장 21절-24절/ 820606주일오후 선지자 2015.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