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처녀 비유

 

1984. 2. 1. 수저녁

 

본문: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 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선지자선교회  우리 기독자들의 소망은 하나뿐입니다. 뭐인고 하니 하나님을 성경이 말 한  대로 자기 하나님 삼는 이거 하나가 우리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어느 정도 삼을 수 있느냐 육신의 그 사이좋은 부부 정도로 자기  것을 삼을 수가 있느냐? 아닙니다. 그러면 부모와 자녀의 정도로 자기 하나님을  삼을 수가 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모든 정객들이 자기 위에  상관이나 혹은 정권을 가진 사람으로 더불어 아주 친밀한 그 관계를 가진  거와같은 그런 정도의 관계를 가질 수 있는가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아주  유력한 자기 위에 상관이나 혹은 자기 위에 주인 그 사장이나 그런 분들과 아주  밀접한 친밀을 가진 거와같은 그런 정도의 친밀을 가질 수 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이 하나님을 몸이 머리와 연결된 거와같은 이런  밀접함을 가질 수 있다 하는 것을 성경이 말씀 했습니다. 머리와 몸을 나누면  머리 몸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마는 머리하고 몸하고는 하나입니다. 이래서 머리가  상하면 몸이 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해를 받고 또 몸이 상하면 머리는 상하지  안해도 머리가 상한 것처럼 그렇게 해를 받고 그 머리와 몸은 하나로서  희로애락을 다 같이 누릴 수 있고 또 같이 거처도 할 수 있고 같이 행동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떤 그 관계보다도 밀접한 관계로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 삼을  수 있다 하는 것을 성경이 말했습니다. 또 포도나무 비유에서는 하나님은  포도나무 둥치요 몸통이요 우리는 가지라 가지와 포도나무가 그렇게 딴게 아니고  한 나무로 되어 있어 포도나 무 둥치의 것이 다 가지의 것이요 가지에 대채 모든  것을 둥치가 다 책임지고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다 둥치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이 비유도 둘 이 아니라 하나라 한 몸이라 이렇게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우리 기독자들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영원 자존 하신  하나님 이시요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요 이분은 완전자시며 전지전능자시며  영원 불변자이십니다. 또 이분이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또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창조된 모든 것은 이분의 것입니다. 또 이분이 주권을 가지고 크고 작은  나타나고 나타나지 안한 그 모든 것을 다 홀로 주권적으로 이 모든 것을  운영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이분을 자기 머리로 삼는, 이분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이분만 자기 하나님으로 삼아  놓으면 이분의 모든 것은 자기의 것입니다. 이분의 지혜도 능력도 또 소유도  영광도 자기의 것이요 또 이분의 모든 완전성도 자기의 것이요 영원성 불변성도  자기의 것이요 그 전능하는 그 전능의 능력도 자기 것이요 전지의 지혜도 자기의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면서 사람되어 오셔서 십자가의 대속을  하시고 또 죽음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되찾아 가지고 다시 찾아 가지고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이렇게 삼아서  영원히 자기 하나님이 되되 몸과 머리와 같은 이런 밀접한 관계로서 자기의  하나님이 되게 하는 이 일을 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오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자기 주님으로 이렇게 모신 사람은 전능을 모신 사람이요  전지를 모신 사람이요 완전을 모신 사람이요 또 대주재권을 가진 사람이요  주권의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이라 아무것도 아니지마는서도  하나님이 그 전부를 가지시고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에 이분만 자기  하나님으로 완전히 삼아 놓으면 하나님의 모든 것은 자기의 것입니다.

 그러면 이분이 자기의 것이 되면 자기 몸 밖에 이 머리는 머리대로 그래도  붙기는 붙었지마는서도 머리대로 이래 있고 몸은 몸대로 그래 있는게 아니고  이분이 우리와 하나 될 때에는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 영 안에 계시고 우리  마음 안에 계시고 우리 몸안에 계시고 또 우리의 모든 생활 안에 계십니다.

이래서 그것을 표시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주인이요 우리는 하나님이 거처하는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실 때에 무슨 콩알 만한 그런 형체라도 가지고  계시면 그 형체가 우리에게는 꺼리낌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무형의 존재입니다.

형체는 없고 전능하신 능력, 전지하신 지혜, 완전하신 완전, 이로만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이분이 우리 안에 계셔 가지고 마치 몸을 머리가 통치하고  주관하고 머리에게서 모든 것이 나와 가지고서 몸이 작용하고 또 움직이고 사는  거와같이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그분의 지혜가 나올 때에는 우리를  통해서 그 지혜가 나옵니다. 이러니까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은 보이지 안하고  그 전지한 지혜만 우리에게 나오니까 모든 피조물은 우리를 전지자로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전능자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이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이 전부가 되시되 완전으로 되시고  전능으로 되시고 전지로 되시고 영원으로 되시고 주권으로 되시고 모든 것의  주인이 되는 대주재로 계시고 우리는 우리 안에 그분이 계셔 가지고서 이런  하나님의 형체 없이 우리 안에 계셔 가지고 역사하니까 그 모든 것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전지가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고 전능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고 주권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고 완전이 우리 통해서 나타나고 이래  가지고 그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어데 나타나는가 만물에게 나타납니다.

 이래서 만물 안에 있어 가지고 만물 안에 우리가 있고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이래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 하는 것이 우리로 통해서 나오고  우리를 통해서 나온 그 모든 것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이  하나님의 것이 우리를 통해서 나와 가지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충만케 되어지는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요. 또 영원한 나라에서 사는 것은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요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의 무한과 창조가 우리를 통해서 만물에게  나타나는 만물이 오늘도 그것 가지고 살고 또 내일도 그것 가지고 살고 또  모레는 또 모레 또 새것이 나가서 살고 모레 글피는 모레 글피 새것이 나가서  살고 이래 가지고서 하나님은 그 무한하심을 가지고 우리의 전부가 되고 우리는  그 무한함을 받아 가지고 천상천하의 모든 만물들에게 전부가 되어지는 그것이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사는 우리의 생애입니다.

 이것은 너무 크고 무한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생각하기를 그렇게 믿어 지지 않는  그런 생각을 가지기가 쉽습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하는 역사를 모두 다 믿어질  수 없으나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모든 이적이요  기사들입니다.

 애굽에서 장자 재앙 내릴 때도 하나님께서 양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왕으로도  감당 못하는 그 무서운 장자 재앙이 양의 피 있는 데는 하나도 상하지 안하고  넘어 갔습니다. 말대로 그대로 됐습니다. 또 나아만 대장 그 일국에서 고치지  못하는 병도 하나님께 하나님의 종을 통해 가지고서 요단강에 가서 씻고 가라  했는데 씻으니까 그와같이 어린아이 살같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불가운데 들어 갔지마는서도 하나님이 불냄새도 내지 않게 그렇게  불의 상함을 받지 아니하도록 했습니다. 또 사자굴에 들어갔는데 하나님께서  사자도 상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해가지고서 나왔습니다. 또 나사로는 죽은 지가  나흘이 되어서 벌써 썩어서 냄새가 나는데 살아난다 말씀 하신 대로 주님이  부르니까 대답하고 일어서서 살아 가지고 그 뒤에 오랫동안 살다가 이제 세상을  떴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말씀 하신 것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하나님이 말씀 하신 것은 다 그대로 된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우리가 무엇이라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셔  가지고서-만물 가운데는 천사도 있고 천군도 있고 넓은 우주도 있고 영계도 있고  넓은 바다도 있는데 이 다음에는 바다와 모든 육지, 우주 전부 그게 다 우리  바라고 살고 우리가 명령한 대로 순종하고 복종하고 그렇게 될까 그거는 너무  과장한 말이다 너무 지나쳐 그럴 수가 있겠나? 이걸 안 믿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을 대접하지 않는 것이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 하신 것은 인간 생각에  지식에 아무리 안될 것으로 그렇게 보여져도 하나님 그 분이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이 하실 수 있다 하는 것을 믿는 그것이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세상에 오되 사람들이 그 분을 대접하지 안했다.

대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의 능력을 줬다. 대접하는 자는 어떤 자가 대접하는  자인가? 그를 믿는 자가 그를 대접하는 자라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오늘밤 말씀에서는 이 하나님을 창조주요 조물주요 주재시인  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은 어떤게 대접하는 것인가 일차적으로 대접하는 것은  그 분이 말씀하신 이 말씀을 사실인 것을 인정하고 이대로 될 것을 인정하고  바래 보면서 그대로 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 믿는 사람입니다. 대접하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이요 대접하는 사람인데 믿고 대접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준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소망은 이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삼아서 이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이 되어  이 하나님이 자기의 전부가 되고 자기 행동의 전부가 되고 자기 실력의 전부가  되고 이분이 자기의 전부가 된 사람은 그 사람은 그 사람의 행동은 다 완전하고  만물을 살게하고 만물을 충만케 하는 그 결과를 맺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을 삼는 방편을 여기에 다가 말씀해 놓은 것이  이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열 처녀를 여기에 나타냈는데 열 처녀 가운데 다섯 처녀는 그만 신랑에게  배척을 당해 버렸습니다. 다섯 처녀는 또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다섯  처녀는 이 신랑에게 환영을 받고 자기 신랑을 삼았고 다섯 처녀는 배척을  당했다. 그러면 이 신랑으로 비유한 것은 이 하나님을 비유해서 이렇게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어떤 사람은 배척을 당하고 어떤 사람은 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영접해서 살고 할 수 있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다섯 처녀는 미련해서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지 못하고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았고 쫓겨남을 당했고 자기  하나님으로 삼지를 못했고 다섯 처녀는 자기 하나님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삼고 못 삼은 이것은 그 사람의 행동에 따라서 삼은 사람은 삼았고  행동에 따라서 자기의 주님으로 삼지 못한 사람은 못했고 이러니까 그 행동을  따라서 이렇게 됐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의 구원 중에 두 가지 구원이 있는데  기본구원에 대한 말씀은 아니라 이렇게 구별 할 수가 있겠습니다. 왜? 그 행동이  이런데 따라서 그는 주님을 자기 주님으로 영접하고 행동이 저런데 따라서 자기  주님으로 영접하지 못했다. 행동에 따라서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그  기본구원이라 하는 것은 인간의 행동에 따라서 되는 것이 아니고 너희들의  행함으로 말미암아 얻어진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 은혜로 주셨다. 전적  은혜입니다. 우리 행동은 그게 상관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구원은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이 아니고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이라 그렇게 우리가 판정을  내리고 확정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노력하는 것은 기본구원을  얻을려고 노력을 하느냐 그것 아닙니다. 기본구원은 얻은 사람들로서 건설구원  성화구원 그것을 얻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본구원 열 가지를  여러분들이 잘 외우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기본구원 열 가지를 얻기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예수 믿는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이매 기본구원 열  가지를 얻어 있는 우리들이 하늘나라에 가기는 가는데 가 가지고 영광이 있나  없나? 권위가 있나 없나? 실력이 있나 없나? 그것을 지금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같이 하늘에 갔는데 어떤 사람은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이 영광이 하나도 없고 수치스러운 그런 구원을 부끄러운 구원을 얻어 가지고  가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영광스러운 구원을 얻어 가지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행동에 따라서 된다고 여기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영광 있는 구원은 이 주님을 자기의 주님으로 자기  행동에 모신다는 말입니다. 자기의 행동에 이 주님을 모신다 말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주님으로 모신 사람의 행동이 다르고 자기의 주님으로 모시지 못한  사람의 행동이 다르고 그러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신 그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신 행동은 전능할 것이고 또 전능하신 하나님을 하나도 모시지 못한 것을  인간의 힘은 거기서 하나도 없게 되다 보니까 실력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일  것이고. 이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삼으며  어떻게 하면 자기의 하나님으로 삼지 못하고 이 하나님에게 배척을 받느냐 하는  그것을 오늘 밤에 말씀해 놓은 이것이 이 비유입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을  전능을 자기 전능으로 하나님은 형체가 없기 때문에 형체가 없고 그 능력만 있기  때문에 전능을 자기능력으로, 전지를 자기 지혜로 주권을 자기 주권으로, 만주의  주를 자기의 주로. 자기가 만주의 주로 만왕의 왕으로 된 것이 아니라 만왕의  왕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됩니다. 이것이 너무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 주관을 두고는 인정을 못합니다. 자기 주관을 둔 것 만치  인정을 못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해야 된다. 부자가 천국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 그 말을 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기의 것을 무엇이든지 가지고 있으면 그 놈이 들어서 이 사실을 믿지  못하게 하고 인정하지 못하게 하고 바래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안 된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구원이 이렇게 우리의 구원이 지극히 큰 구원인데 이 지극히 큰  소망입니다. 이 구원을 이루는 방편을 여기에다 말했는데 슬기 없는 처녀는  어떻게 해서 그 방편을 어떻게 했기 때문에 이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삼지  못하고 영영히 참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지 못하고  버림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자기 하나님으로 삼게 되었는가? 그러니까 슬기 없는  다섯 처녀의 그 행동을 우리가 연구하고 슬기 있는 다섯 처녀의 행동을 연구해서  슬기 있는 다섯 처녀의 행동을 우리가 가져야 되겠고 슬기 없는 다섯 처녀의  행동은 우리가 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것을 지금 살펴 봅시다. 슬기 있는 다섯 처녀의 행동과 비유한  처녀의 행동이 처녀는 우리를 비유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을 다 비유해서  성도라 신랑은 주님을 비유한 것입니다. 등을 가진 것은 이 등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빛 노릇을 할 수 있는 그 모든 지위와 권세를 다 우리가 받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또 거기에 등불은 이 세상에 빛되는 것을 말하고 기름은  성령과 진리의 그 능력을 가리켜서 기름이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파는 자는  이거는 파는 자는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기름을 팔고  계십니다.

 그러면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영접했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쫓겨남을 당했는데  그 두 사람의 행동이 같은게 뭐이냐? 같은 것은 다 같은 처녀입니다. 그  처녀성이 꼭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 구속받은 성도는 다 같은 성도라 그  말입니다. 또 다같이 신랑을 맞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다 자기 하나님으로  전능을 자기 전능으로 전지를 자기 전지로 이렇게 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영접해서 이 하나님이 자기 속에 와서 역사 할 수 있도록 이렇게 할 수 있는  신랑을 영접할 수 있는 권세가 열 처녀가 꼭 같습니다. 또 기다리기도 꼭 같이  기다렸습니다. 이것은 다 주님을 자기 주님으로 영접할려고 다 소망하고 노력을  하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또 등을 가졌습니다. 세상에서 빛 노릇을 할 수 있는  그런 다 책임과 지위와 권세를 우리가 다 가졌고 또 세상에 빛이 될 수 있는  그런 자격을 다 갖췄습니다. 그것은 뭐이냐?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새생명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런 지위와 권세를 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데 또  일찍부터 기다렸습니다. 밤중도 같이 만났습니다. 꼭 다 같습니다.

 다 같은데 다른 것이 있으니 다른 것이 뭐이냐 다른 것은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미리 준비했고 미련한 처녀는 준비 안 했고 그것입니다. 그게 다릅니다.

하나는 준비를 했고 하나는 준비를 안 했다 그게 다릅니다. 그러면 또 또 다른  것이 뭐인가? 준비한 처녀는 기름을 가졌고 준비하지 안 한 처녀는 기름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준비한 성도는 진리의 능력과 그 성령의 능력을 이 능력을  가졌습니다. 진리의 지혜 능력, 진리의 지혜를 가졌고 또 성신의 감화의 능력을  가졌습니다.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그것을 가졌고 슬기 없는 미련한 처녀는  기름을 가지지 안했습니다. 기름을 가진 것은 그 능력과 지혜, 성령과 진리의  지혜의 능력을 가리켜서 기름이라고 말했는데 성령과 진리의 능력과 성령과  진리의 지혜. 그러면 지혜와 능력을 가르쳐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지혜와 능력  마귀의 궤계를 다 판단 할 수 있는 지혜와 또 이길 수 있는 능력 이 지혜와  능력을 가리켜서 여기 기름이라 그렇게 비유했습니다. 그러면 기름 있는 처녀,  기름 없는 처녀 그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준비 한 사람들은 신랑을 맞이했고  준비 못한 사람은 쫓겨남을 당했다. 그러면 준비한 사람들과 안한 사람들이 뭐이  달랐기에 준비한 사람들은 밤중에 등불을 켜 들 수 있었고 준비 안 한 처녀들은  등불을 켜 들지를 못했습니다.

 이러니까 밤중은 무엇으로 비유한 것인가? 밤중은 가장 지혜적으로 가장  ○○○? 가장 뭐이지? 가장? 두 가지인데 무엇인가? 하나는 가장 구별하기  어려운 그것이 밤중입니다. 밤중은 가장 구별하기 어려운 때 어려운 사건 가장  구별하기 어려운 것을 비유해서 밤중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하나는 가장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기 어려운 그것을 가리켜서 밤중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밤중은 제일 어려운 때인데 제일 어려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옳고 바른 것은  하나고 삐뚤어진 것은 천도 만도 넘은데 삐뚤어진 것은 삐뚤어진 것은 밤중의  어두움이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하나님 말씀에 반대된 삐뚤어진 행위는  밤중입니다. 삐뚤어진 판단, 그러니까 삐뚤어진 지혜 지식 삐뚤어진 행동 그것이  밤중입니다. 온 세상이 다 삐뚤어진 지혜 지식의 판단 삐뚤어진 행동 이것이  제일 최고로 강하게 되는 것을 가리켜서 밤중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등불은 또 뭘로 가지고서 등불이라고 말했는가, 등불은 제일 정평 정가하기  어려운 제일 바로 알기가 어려운 제일 바로 알기가 어려운 제일 바로 알기가  어려운 그때에 바로 아는 그것이 등불입니다. 그때에 바로 아는 것이  등불입니다. 또 바로 행하기가 제일 어려운 때에 바로 행하는 그것이  등불입니다. 그러면 등불은 무엇을 비유했는가? 밤중은 무엇을 비유했는가?  여러분들이 잘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바로 알기 어려운 바로 알기 어려운 제일 알기 어려운 때 너무 비슷  비슷해서 뭐인지 모르겠다 그말이요. 모든 사람이 이게 옳다 이게 옳다 하니까  사람들이 그리 따라 가는데 바로 알기가 제일 어려운 때가 밤중이요 바로  행동하기가 제일 어려운 때가 밤중이라.

 그런데 이 밤중에 바로 알고 바로 행동하는 것은 무슨 힘으로 할 수가  있습니까? 무슨 힘으로 할 수 있지요? 이제 기름은 뭐이라 했습니까? 진리와  성령의 감화의 지혜로만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알 수가 있어. 또 바로  행동을 하는 것은 무슨 힘으로 할 수가 있는가? 그 진리의, 진리는 전능의  힘인데 진리의 힘과 또 성신의 감화 감동의 힘 이 두 가지의 능력으로만 바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언제 준비 되느냐? 이 준비는 미리 준비해야 된다 그  말입니다. 미리 준비해야 된다. 미리 준비하는 사람이 슬기 있는 사람이 다  그말입니다. 미리 준비를 해야 되는데 미리 준비를 어떻게 해야 되는가 미리  준비를 이 준비가 무슨 준비인고 하니 실력 준비입니다. 실력 준비. 미리  준비해야 될 것은 실력 준비요 따라 하십시오. 실력 준비! 실력 준비! 그러면  무슨 실력인가? 사이비 하고 복잡해서 천인 만인이 다 삐뚤어지게 잘못 아는데  바로 딱 알아맞히는 그것이 실력입니다. 바로 아는 실력. 또 무슨 실력인가?  천인 만인이 다 삐뚤어지게 잘못하는데 천인 만인이 다 잘못하는데 똑바로  행하는 그 실력, 그러면 바로 아는 실력, 바로 행하는 실력 이것이 기름입니다.

그래 가지고 어두운 어두움은 잘못 알고 잘못 행하는 것이 어두움인데 천하가  잘못 알고 잘못 행하는데 자기 혼자 바로 알고 바로 행하면 그것이 깜깜한  밤중에 홀로 등불 든 그 등불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준비하는 것은 실력 준비라 이것을 또 기억 합시다. 실력 준비  실력 준비인데 몇 가지 준비합니까? 몇 가지 준비지요? 실력 준비는? 바로 아는  지혜 지식의 준비 지혜 지식의 준비 또 바로 행하는 준비.

 그러면 행하는 준비는 행하는 준비는 어떻게 하며 또 바로 아는 준비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바로 아는 준비는 자꾸 바로 알 수도 있고 삐뚤어지게 알 수도  있는데 바로 아는 일을 자꾸 바로 아는 일을 자꾸 여러번 하면 요것도 알아보고  아 요것 잘못 알았다. 요건 바로 알았다. 그 바로 아는 일을 자꾸 이렇게 또 해  보고 또 알아보고 또 알아보고 자꾸 바로 아는 이 일을 자꾸하면 바로 아는 그  실력이 차차 더 높아지겠습니까 작아지겠습니까? 높아지겠지요. 바로 아는 그  실력을, 자꾸 아이들 공부 할 때에 또 예비고사를 칠 때 보자 이러니까 또  저거는 혹이 하나 틀렸다 요거는 한 자 틀렸다 자꾸 이래 가지고서 자꾸 예비  시험을 많이 치르고 이라면은 차차 나중에 바로 아는 실력이 크지지요? 그것  모양으로 바로 아는 실력을 자꾸 이와같이 장만할려고 바로 아는, 잘못 알고  삐뚤어지게 아는데 그 속에서 바로 아는 연습을 해보고 또 아이구 잘못 알았다  또 새로 해보자 또 바로 알고 몇 번해서 바로 알고 그러니까 바로 아는 그것을  자꾸 하면 그것을 뭐이라고 하겠습니까? 뭐 한다 하지요? 연습, 이 연습입니다.

바로 아는 연습을 자꾸 합니다. 바로 아는 연습을 또 하고 또 하고 자꾸 바로  아는 연습을 자꾸 합니다.

 또 바로 행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바로 행하는 실력이 자라겠습니까? 바로  행하는 실력은 어떻게 하면 자라지요? 그것도 연습입니다. 그것도 연습, 바로  하는 실력을 자꾸 연습해서 기르고 또 바로 아는 것을 연습해서 자꾸 바로 아는  실력을 자꾸 기르고 그러니까 연습을 하는데에서 실력 이 나옵니다. 연습을  하는데에서 실력이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가 평소는 평소는 뭐하는 때라고 했습니까? 평소는 준비하는 때인데  준비를 어떻게 합니까? 연습해야 됩니다. 평소는 연습하는 때라, 연습하는 때라,  준비하는 때라. 뭐하려고 연습하노? 준비하느라고. 무슨 준비? 실력 준비.

 그러니까 밤중인 천하 인간이 다 사이비하니까 몰라서 다 잘못 알고 그  삐뚤어져 나가는데 천하 인간이 다 잘못 아는 그 때에 바로 알 수 있는 그  연습을 우리가 자꾸하고 그러는 데는 자꾸 연습을 해서 그 바로 아는 실력이  자라간다 말이오. 또 바로 행하는 것도 한 번 행하니까 백분지 일쯤 맞았고  백분지 구는 틀렸습니다. 두번, 열번, 백번 자꾸 하니까 나중에는 백에 백이 다  맞아서 백점 맞을 만치 그 실력이 연습해서 자라가지고서 실력이 생겨졌습니다.

 그 실력을 길러 가지고 평소에 자꾸 연습하는데 무슨 연습하느냐? 두 가지  연습해 가지고서 그 실력을 기르는데 그 실력을 얼마나 기르느냐 그 실력을  어데까지 표준을 잡고 기르느냐 어데까지 표준을 잡고 기르느냐? 밤중까지를  표준 잡고 기릅니다. 최고로 구별하기 어려운 최고로 구별하기 어려운 때에  구별을 바로 딱 할 수 있는 그 실력이 되도록 이거는 뭐인가? 지혜 지식의  실력입니다. 또 최고로 바로 행하기 어려운 그 때에 바로 행할 수 있는 실력을  기릅니다. 이거는 행동의 실력입니다. 요거는 행동의 실력. 이러니까 이 두가지  실력을 길러 가지고 그 밤중의 어려울 때에 그 때에 그 기른 실력이 있는 사람은  바로 알고 바로 행해 가지고서 그 사람을 주님이, 그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은 그 사람을 환영하게 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뭐할라고? 뭐할라고 그렇게 할까? 왜 이 신랑이 이런 사람들만 자꾸  뽑을까? 그게는 인물 잘난게 아무 소용없습니다. 우리를 지금 뽑는 것은 어떤  실력가를 뽑느냐? 바로 아는 것 아무리 어려워도 바로 아는 것, 바로 행하는 것  그 두 가지 실력가를 뽑는데 뭐할라고? 그 나라에는 돈도 필요 없고 사업의  기능도 필요 없고 학자도 필요 없고 아무도 필요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필요 없고  요것 뿐입니다. 뭐할라고? 모든 피조물보다 바로 아는 것이 뛰어나고 모든  피조물보다 바로 행하는 것이 뛰어나고 그보다 나은 이는 하나님이시지요.

하나님 다음으로는 제일 바로 알고 바로 행하지요. 그러면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만물 위 으뜸으로 세울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 만물 위에 으뜸으로 세울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세울 수 있지요? 세우는 그 사람이 실수할 수 있겠소  없겠소? 없지. 이러기 때문에 이거는 필연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이것이 우리의  소망인데 그 일은 어떤 실력가라야 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을 수  있는가? 지혜 지식의 실력가 또 행함의 실력가 두 가지 그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야 주님을 영접할 수 있다. 왜? 이 실력을 가진 자라야 이 하나님이  뽑는데 필요 하지 그 실력 없는 자는 아무리 뭐 그 사람이 체육을 잘하고 뭐  운동을 잘하고 뭐 사업의 기능이 있고 용모가 훌륭하고 뭐 세상 지식이 많다  그거는 하늘나라에 필요가 없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아, 은행에서 직원을  선출하면은 제일 그 계산 빠른 사람 또 그 사람이 정직한 사람은 보증인을 다  세우기 때문에 담보인을 세우니까 돈 가지고 도망가면 그거는 담보인이 다 그래  보증하는 것이고 제일 계산 빠른 사람을 그 사람을 채용하지 않습니까? 이것  모양으로 하늘나라는 모든 피조물보다 바로 알고 바로 행하는 이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왜? 하나님 다음에 모든 것을 대리로 다 집행할 수 있는 그런  사함이기 때문에 이 실력이 아니면 안돼. 이 실력을 기르기 위해서 우리를  세상에 두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자기 주님으로 영접하는 이 실력은 밤중에 등불  드는 실력인데 세상이 어두움으로 삐뚤어짐으로 깜깜하고 삐뚤어진 판단과  평가로 깜깜하고 삐뚤어진 행동으로 깜깜한 이 세상에 온 세상이 다 잘못 알고  잘못 행동하는 이 세상에도 자기 혼자만은 바로 알고 바로 행할 수 있는 이  실력가를 하나님이 환영하시고 뽑고 우리는 또 이 실력가가 되기 위해서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준비를 하는 것은 평소에 해야 돠는데 이 지혜 지식을 준비하고 또  행동의 그 실력을 준비할려고 하면은 이 준비는 뭘로 되느냐? 이것은 연습으로  됩니다. 또 한 번 해 보고 또 한 번 해 보고 또 한 번 해 보고 그러면 무엇을  표준해서 하나님께서 그거 다 표준을 내세워 놨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표준으로  내세워 놨고 또 성신의 은사를 표준으로 내세워 놨기 때문에 이를 힘입어서  자기가 연습함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평소 생활은  준비 생활이요 준비 생활이요 무슨 준비? 지혜와 능력의 준비 이게 준비  생활이니까 우리의 생활은 다른 말로 하면은 연습 생활이라 연습 생활이라 그  말입니다. 그말이 같은 말이 인정이 됩니까? 연습 생활이라.

 그러면 연습 생활이면 무슨 연습입니까? 한 번 대답해 보십시오. ○○○ 조사님  바로 아는 연습 바로 아는 연습 또 하나는? 바로 행하는 연습 이 두 가지 뿐이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두 가지 연습뿐이요. 바로 아는 연습, 바로 행하는 연습.

이러니까 바로 아는 연습을 할라고 하니 하나님께서 요것도 연습을 시켜야  되겠고 저것도 연습을 시켜야 되겠으니까 요래 삐뚤어진 것도 연습을 시켜서 그  삐뚤어진 것도 알고 그 삐뚤어지지 안하고 바로 알고 또 요렇게 넘어가는 것도  또 연습을 시켜 넣어가지 안하겠고. 그러니까 이 연습을 시킬려면 우리에게 한  가지만 줘 가지고 되겠습니까? 여러가지를 줘 여러가지 연습을 하겠습니까?  여러가지 일을 줘야 여러가지 연습을 하겠지요? 그러면 그것을 연습하도록  주는데는 주는 그것을 가리켜서 그때를 어떤 때라고 합니까? 그 현실입니다.

우리 현실 현실을 요 현실에서는 요거 연습하고 저 현실에서는 저거 연습하고  자꾸 그러니까 현실이 많이 바꿔져야 연습이 골고루 넓게 그렇게 연습을 할 수  있습니까? 한 가지만 연습하면은 그 연습이 여러 면으로 그 실력이  갖추어지겠습니까? 여러 면의 현실을 줘야 여러 면에 실력을 갖출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 그러니까, 자 여러분들 변하는 현실을  원합니까? 변치 않는 현실을 원합니까? 자꾸 이리저리 변하는 현실을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저 뒤에는 깜깜해 못 알아듣는 거라 못 알아듣는  거 자. 변하는 연습 안 하고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안하는 그 환경, 그  변하지 않는 현실 변하지 않고 거기에 서 등 따시고 배부르게 변하지 않는  현실에서 살다가 죽고 싶은 사람 손 한번 들어봐요? 이제 모두 다 거짓말쟁이라  모두다. 아까는 손 안들고 그것도 안 들고 여기에 도 안 들고 정말로! 한번 한  가지 연습 하면은 한 가지 알 것이고 두 가지 연습하면 두 가지 알 것이고 많이  연습 하면 많이 알 것이고 적게 연습하면 적게 알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그  연습은 그런 것을 당해야 알지요, 연습하지요. 자 이것 예비 시험을 칠때 이것  알아라 이것 써봐라 요 자 써봐라 이라니까 그 자를 썼습니다. 또 요 자 써 봐라  항상 그 자만 쓰라 하면은 그 글자만 쓰라 하면은 그 사람이 두 자를 알 수 있소  한 자만 알 수 있겠소? 한 자 밖에 모르지. 이러니까 자꾸 이 자 이 자 열 자를  자꾸 연습을 시키면 열 자 알 것이고 만 자 연습을 시키면 만 자 알 것이고.

그러니까 이런 현실 저런 현실을 전야 되니까 자 이제 바로 그 아는 지혜의  실력이 광대하기를 원하기는 다 원할 것입니다. 또 행하는 그 행함의 능력이  광대하고 구비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면 광대하고 구비하기를 원하면 이  구비하고 광대한 변하는 여러가지로 복잡한 이 광대하고 구비한 여러가지 현실을  만나야 되겠습니까 한 현실에서 살다가 가야 되겠습니까? 그 여러가지 현실을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봐요. 녜 이것 꼭 잡아야 됩니다. 이것 잡아가지고  자기가 깨어 살면 깨어 사는 것은 이 진리를 알고 사는 사람이라 말이오. 이  진리 알고 사니까 어제 없던 오늘 딴 현실 왔으니까 그 현실에서 또 배웁니다.

그 현실에서 또 배우요. 아 이제 모르는 현실이 왔으니까 여기에 또 새로 배울게  있겠다. 또 어려운 현실이 오니까 여기에 또 배울거 있겠다. 또 연습할게  있겠다. 자꾸 이러니까 오라 오라 자꾸 새 현실만 오라. 새 현실 얼마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나는 연습을 해 가지고 착착 실력을 내가 기르겠다. 무슨  연습을 해가지고서 두 가지 연습. 하나는 뭐 연습이요? 바로 아는 것. 하나는?  바로 행하는것. 간단합니다. 두 가지 연습 가운데서 실력을 해서 자꾸 이래 길러  났다 말이오. 이제 뭐 시험을 친다 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이래 가지고 온 전국  교회가 온 교인들이 또 세계 교회가 모르는 하나님이 최고로 어려운 시험을 내서  아무도 그게 대해서 옳고 그른 것을 바로 알 수 없는 바로 알 수 없는 그런  사이비한 것들로 가득 찬 이 세상을 만들어 놨는데 그때 그 시험을 내 놓으니까  모두 다 삐뚤어지게 삐뚤어지게 알아서 뚝 낙제에 떨어졌다 말이요. 그럴 때에  바로 알 수 있는 것은 평소에 바로 아는 연습을 자꾸해야 바로 행하는 연습을  해야 거기에 서 실력을 얻지 다른 데서는 실력을 못 얻습니다. 이러니까  등불들지 아니하는 처녀는 쫓겨나 버렸어. 버림당했어요. 이 뭐 밤중은 무슨  밤중인데 이 공간 밤중. 물질 밤중. 태양이 넘어가야 밤중 이것 말하요? 이거는  비유요. 이러기 때문에 어두운 것은 삐뚤어진 것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비뚤어지게 삐뚤어지게 아는 삐뚤어진 지식이 어려운 것이요 삐뚤어지게 아는  것이 그게 어두운 것이요 삐뚤어진 그 행동들이 다 어두운 것입니다. 그 두 가지  뿐이오. 두 가지로 판단하면 다 들어갔어요.

 이러니까 그럴 때에 바로 아는 지혜 그것은 진리의 지혜와 성령의 지혜가  아니면 안돼 그분에게 안배우면 안돼, 기름 팔 자는 그분이라. 이러니까  그분에게. 언제 배우는가 평소에 배워. 평소에 그분의 진리와 성경말씀이 이래라  할 때 그대로 해 보니까 틀리는가 안 틀렸는가 알거든. 또 영감이 시키는 대로  해 보니까 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현실을 당했을 때에 악령의 군병과 자기의  믿음보다도 떨어진 믿음은, 자거 믿음보다 어린 믿음은 그 현실을 당했을 때  요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하는 천인 만인이 있는데 자, 그게 올바로 아는 것은  누가 아는 데로 알면 올바로 아는 것 되겠소 누가 아는 대로 알면 올바로 아는  것 되겠소? 목사 아는 대로 알면 올바로 아는 것 되겠소 장로 아는 대로 알면  올바로 아는 것 되겠소? 누구 아는 대로 알아야 올바로 아는 것이 되겠습니까?  ○○○집사 말해 봐 어? 이제 진리와 영감이건 입에 익어서 자꾸 이러는데 그것  좀 알고해야 돼요 성령이 가르쳐 주는 그대로 알아야 바로 아는 것입니다.

성경진리에 삐뚤어지지 않게 그대로 알아야 바로 아는 겁니다. 이러니까 그분이  그때에 가르쳐 주는 대로 해야 되겠으니까 이렇게 깜깜할 때에 우리가 바로  알려면 또 누구한테 배워야 되겠습니까? 성령에게 배워야 되고 진리에게 배워야  되겠습니다. 또 이 바로 행할 수 있는 힘은 또 누구에게 받아야 되겠습니까? 또  성령과 진리에게 받아야 되겠습니다. 다른 데는 받을 데가 없어.

 이러니까 평소에 그분에게 자꾸 배우고 가르치니까 가르치니까 배워서 또  지식하고 행동하고 가르치니까, 아 가르쳐 주니 딱딱 배워 가지고 그대로 인식을  딱딱하고 시키는 대로 딱딱 하니까 가르쳐 주는 분이 그 연습을 시키는 분이  재미가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재미있지 가르쳐 줘 봤자 암만 가르쳐 줘도 목이  타도록 가르쳐 줘도 속으로 딴 거 가지고 아이구 그 맞도 않는 소리, 이러니까  가르쳐 줄 맛이 있습니까? 또 자기에게 요거저거 하도록 이래 시켜 봤자  안하니까 그 시킬 맛이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기름 준비는 평소에 주님에게  바로 아는 지혜 지식의 가르침을 받아야 됩니다. 가르침을 받는 요것은  믿음이요. 또 요렇게 행동하라 할 때에 자기가 행동에서 자기 힘이 모자랄 때는  주님이 또 도와줘서 행동을 합니다.

 이러니까 성령과 진리에게 가르쳐 줌을 잘 받는 사람이면 성령과 진리가 잘  가르쳐 줍니다. 또 성령과 진리의 가르쳐 줌을 연습하고 연습하니까 아, 가르쳐  준 대로 그대로 실행 딱딱 하니까 이제 인간이 알 수 없는 아주 새로운 문제. 알  수 없는, 전지자나 알 수 있고 전지자나 할 수 있는 그 새로운 일을 할 때에  이제 까지 가르쳐 준 대로 딱딱, 시키는 대로 딱딱, 요래 했으니까 그 사람에게  인간으로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취고의 어려운 문제 최고로 행하기 어려운 일  그럴 때에 이제까지 그분이 가르친 대로 졸졸하고 시킨 대로 졸졸 했으니까  그분이 가르쳐 주겠소 안 가르쳐 주겠소? 가르쳐 줍니다. 이제까지 해도 한 번도  가르쳐 줌을 받도 안했는데 그 사람이 가르쳐 주겠습니까? 가르쳐준 걸, 자  기역하니 기역 이응은 가르쳐 준 대로 이래가지고 가르쳐 준 대로 해 가지고 그  대학원까지 끌고 가니까 줄줄 배웠는데 이러니까 대학원에 가 가지고는 뭐 이래  가르치는 것을 높은 지식을 가르치니까 척척 알아서 자꾸 감당하지마는서도  기역도 배우라 하니까 부인하고 배우지 않는 그 자에게 그 지식을 가르쳐 준다고  알 수 있습니까? 모릅니다. 가르쳐 줄 맛도 없을 뿐 아니라 가르쳐 줘 봤자  감당도 못하고 안 됩니다.

 이러니까 평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되 그 지혜를 받아서 또 해보고  또 그 능력을 주어서 또 줄 때에 그 능력을 받아 가지고 또 해 보고 자꾸 이  연습을 많이 한 사람으로서 바로 아는 실력과 바로 행하는 실력이 있어 천하가  깜깜해서 다 바로 알지 못하고 바로 행하지 못하는 그럴 때도 바로 행할 수 있는  그 사람을 등용해 가지고서 하늘나라의 당신의 배우자로 당신의 짝으로 당신이  손잡고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등용합니다. 만물위에 위치 잡아 가지고서  만물을 통치하는 그 위치와 권세를 줘 가지고서 쓰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요  평소에 요 연습을 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이러니까 기름준비는 실력 준비요 실력 준비. 무슨 실력 준비? 몇 가지 실력  준비? 두 가지 실력이요. 요거 잊어버리지 말아요. 여러분들 요것 예사로 알면  안 돼. 레위기 12장에 보며는 '쪽발로 가지 않는 자는 더럽다 새김질하는 짐승은  더럽다.' 그 짐승은 성도를 비유해서 하나 형식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이렇게  때문에 그 두 가지로 구별하지 안하면 안 되요. 다섯 발 쪼가리로 되어 있는  것은 더럽다 이래 버렸어. 이러니까 우리가 두 가지 실력 바로 깨달는 실력 바로  행하는 실력. 두 가지 실력 요라면 이게 되지지만 쪽발이 되지지마는서도 이게  아니고 거기에 서 다른 주를 달아 가지고 이런 거 저런거 여러가지로 말하면은  헛일입니다. 그거는 바로 나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두 가지 실력을 우리가  준비합시다. 두 가지 실력을 준비해서.

 밤중은 뭐이냐? 알기 어려운 때가 바로 알기 바로 알기가 어려운 때가 밤중이요  바로 행하기 어려운 때가 밤중입니다. 왜정 말년에도 모든 사람이 아 그 신사  참배 그거는 국가 의식이기 때문에 해야 된다. 이러니까 모든 사람이 다 해야  된다 하는데 그때 모든 사람이 다 삐뚤어지게 아는데 바로 알기가 어렵다  그말이요. 또 바로 행하기가 어렵다 이거요.

 내가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나는 뭐 그런 것 저런 것  내가 생각지 안했는데 그래도 무식한 사람 일자 무식꾼인데 왜정 말년에 동방  요배 황거요배 위대한 목사들도 다 했는데 그거 안 할라고 쫓기고 그거 안  할라고 쫓겨 다니고 그거 안 할라고 살기도 딴데 가서 예배도 딴데 가 보고  그래. 그러면서 그거 안 하니까 주목을 당하고 또 신사 참배 안 하니까 주목을  당하고 가 보면 일자 무식이 바로 알고 바로 행해서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이  있고 아주 위대한 사람들이 바로 모르고 바로 행하지 못해서 삐뚤어진 것  많습니다. 요새도 보면 무슨 일을, 교역자도 떡 만나 가지고 이래 이야기를 해  보면 바로 안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 사람이 다른 면이 암만  위대하고 훌륭해도 바로 아는 그게 뻐뚤어졌으면 저 하는 행동은 전부 다  헛일입니다. 또 바로 행함이 없어도 또 헛일이요.

 그러니까 바로 아는것, 바로 행하는 것 요 두 가지가 제일 중요한데 밤중은  바로 알기 어려운 때가 밤중이요 바로 행하기가 어려운 때가 밤중이다. 그러면  이것은 뭣이라야 바로 알고 바로 행할 수 있느냐 기름이라야 된다. 기름은  뭐이냐? 성령과 진리의 능력을 말한다. 성령의 능력과 진리의 능력이 아니면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성령은 하나님이시요 진리는 우주를 창조한 참 이치의 참  이치의 능력이요 그 도움이 아니면 안된다.

 그 도움을 받을려면 언제 받아야 되느냐? 평소에 받아야 된다. 평소에 자꾸  받아 가지고서 친해야 됩니다. 평소에 주님이 자기를 가르쳐 주는 그 지혜를  달게 받는 사람이라야 되고 한 번 가르쳐 주니까 거부하고 한 번 가르쳐 주니까  거부 하고. 이러니까 너희들이 성령의 감화를 소멸치 말아라 성령의 감화를  소멸치 말아라. 안 배우고 그랬으니까 안 배우고 그랬으니까 가르쳐 줄 맛도  없을 뿐 아니라 또 가르쳐 줘봤자 1학년서부터 잘 배워야 나중 6학년 과목을  가르치면 알지. 1학년 것도 거부하고 안 배웠는데 그 자에게 6학년 걸 가르쳐  봤자 배울 수가 있습니까? 가르쳐 줘도 못 배우고 또 가르쳐 줄 맛도 없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현실 현실 하루 하루 현실 현실에 주님은 우리를 가르쳐  주시고 또 우리에게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이러니까 현실 현실에서  가르쳐 주시는 그분이 섭섭 하지 않도록 해라. 성신을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말아라. 가르쳐 주심을 그분을 섭섭하지 않도록 해라. 또 그분이 나에게 실력을  줄 때 거부하지 안하고 달게 받아라.

 그래서 모든 현실은 요것은 삐뚤어짐과 바로되는 요것이 있는 것이 현실이라.

삐뚤어짐과 바로, 삐뚤어짐과 바로되는 요 두 가지를 섞어 놓은 것이 삐뚤어짐은  천도 만도 넘고 바른 것은 하나뿐이라. 여기 삐뚤어진 것과 바른 것이 한데 섞여  있는데 아, 요게서 삐뚤어진 것은 뭐이고 바른 것은 뭐이라 거기에 서 바로 아는  연습하는 것. 그러면 현실은 우리가 바로 아는 연습하는 현실이다. 바로 행하는  연습하는 현실이다.

 이걸 귀중함이라고, 이게 뭐입니까 이게 뭣 하지요? 바로 아는 연습이 뭣 차지  하지요 바로 행하는 연습이 뭣 차지해요? 수입이 뭐이지? 사장 돼? 사장? 여기  ○선생 사장돼? 정권돼? 하나님 차지해. 이보다 더 큰 수입 없어. 큰  수입입니다.

 어북 사각 모자 쓰고 다니는 그거는 큰 줄 알지마는서도 그거는 해봤자 활지될  그 지식이지마는서도 그 지식도 그것도 요 바로 알기 위해서 하나님이 가르쳐 준  그게에 보조 지식으로 가지면 좋지마는서도 그것이 제일 인줄 알고 하나님의  지식을 버리는 지식으로 알면 그것이 음행의 포도주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그 현실에 바로 아는 요 연습하는 현실이다. 여기서는 어떻게  바로하는가 보자. 현실 현실 마다 바로 알기를 두려워하고 바로 행하는 일을  두려워하면은 그게 뭐인데? 하나님 차지하는 것이라. 판사 되고 정권자되고  사장되고 교수되는게 아니라 그게 하나님 차지하는 것이라.

 이런 줄 알고 현실에서 하나 하나 바로 알고 바로 행하는 요것을 하나씩 알아  가지고 잘못알고 잘못 행한 것은 좀 지나가면 과거가 되면 알 수 있거든 이래  가지고서 요 두 가지 연습을 하는 것이 지극히 큰 소망이 있는 것이니요 일을 두  가지 요 연습 준비를 해가지고서 연습하는 것도 배우는 것도, 자꾸 배워야 돼.

배우고 또 얻고 실력을 갖추는 것은 얻어야 되고 또 지혜로 얻는 것은 배워야  되고 배우고 얻고 배우고. 어떻게 받았으며 하는 것은 실력을 받는 것. 어떻게  배웠으며, 지혜를 받는 것. 지혜와 능력을 현실 현실에서 받아 가지고 자꾸  저축해. 저축해서 자기가 어떤 현실을 닥치면 요 눈이 어두워서 현실 닥치면  요래야 돈에 유익할까 저래 야 돈에 유익할까? 요래야 현재 당한 사건에  유익할까 저래야 사건에 유익할까? 요래야 내 직장아 요리될까? 그거는 양심이  눈이 화인에 맞아 서 멀어 버렸어, 눈이 멀어 버렸어. 사업이야 어찌 되었든지  제 생명이야 어찌 되었든지 제 지위야 어찌 되었든지 권세가 어찌 되었든지  경영이 어찌 되었던지 어짜든지 바로 아는 거 이보다 더 큰 수입이 없다.

 바로 아는거 바로 행하는거 요것만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 현실은 전부 바로  아는 준비요 바로 행하는 준비라. 이러니까 연습도 되고 또 새로 가르침도 받고  자꾸 가르침을 받아야 돼. 주님이 요랄 때 가르침 받고 또 주님이 주실 때 또  받아야 돼. 그래서 바로 행하는 바로 아는 요 두 가지가 요렇게 중요 하다는  중요성을 깨닫고. 자기 현실에서 그저 이래야 우리 펴 이 유리하겠나? 이래야  우리 편이 유리하겠나? 이래야 내 편이 유리하겠나? 이래야 사업이 유리 하겠나?  죽은 자요 눈먼 자요 망한 자입니다. 어리석은 자요. 그러면 이 사업에 이래  유익하면 사업 그게 하나님이요? 사업이 자기 구원할 수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요 바로 알고 배워? 바로 아는 게 뭐인데? 하나님 아는 대로 바로  아는 것이요 하나님이 행하는 대로 하는 것이 바로 행하는 것이니까 이 큰  수입이 있는 것을 땅에 있는 그것을 보고 하니까 그만 그리 치우쳐 가지고 다  헛일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 바로 아는 것은 하나님 차지하는 것이요 바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 차지하는 것이오. 이러니까 이보다 더 이해(利害)가 큰 문제가  없습니다. 이런 줄 알고 자기 현실 당했을 때 햐, 이거 바로 모르면 하나님  잊어버린다. 바로 알고 행하면 하나님 차지한다. 이렇게 중대한 문제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이 현재를 어떻게 알아야 되느냐 이렇게 요것을 판단해서 생각하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런데 우리가 요 첫을 잊어버리고 요것을 잊어버리고 돈  욕심이든지 지위 욕심이든지 젊음의 욕심이든지 용모의 미의 욕심이든지 예술의  욕심이든지 뭐이든지 우리 속에 욕심이 가질 때 욕심 그놈을 뭐라고 했습니까?  미혹의 욕심, 따라 하입시다. 미혹의 욕심, 미혹의 욕심. 우리 욕심은 전부이  우리를 꾀우고 속이는 욕심이라 그렇게 이름을 딱 붙여 놨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에게 걸리지 말고 어짜든지 현실에서 바로 아는 연습하고 바로  행하늡 연습해서 바로 아는 실력, 바로행하는 실력을 가지고 밤중되는 온 천하가  캄깜한 온 세상이 삐뚤어지게 알고 삐뚤어지게 행하는 그 최고의 밤중에도  자기만은 바로 알고 바로 행하는 요것을 가질 수 있는 요것이 등불이요. 주님을  맞이하고 주님 차지하고 주님 차지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다음의 위치. 예수님이  그래 가지고서 그 위치 잡았습니다. 다른 거 없습니다. 이것이 성공자지 땅에  오늘 이라도 생명 부르면 없어질 거 그런 거 가지고저 성공이라 실패라 그렇게  평가하지 맙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자꾸 배울게 있어 현실마다 자꾸 배울게 있어 나는 좀 전에도 또 크게 배우고  왔어요. 좀 전에도 배우고 왔어. 하나님이 사람을 이일에 이렇게 해 가지고  배우고 저 일에 저렇게 가지고 배우게 하고 이렇게 해 가지고 자꾸 배워서  배우고 배우고 배워! 자꾸, 어짜든지 쉬지말고 배웁시다. 쉬지말고 능력을  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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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 열처녀 비유/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840201수야 선지자 2015.12.07
674 열처녀 비유/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860326수새 선지자 2015.12.07
673 열처녀 비유/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840129주후 선지자 2015.12.07
672 열처녀 비유/ 마태복음 25장 3절-13절/ 831105토새 선지자 2015.12.07
671 열처녀 비유-기름준비/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800826화새 선지자 2015.12.07
670 열처녀.영감의 진리 마련순서/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830708금새 선지자 2015.12.07
669 열처녀비유-기름준비/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860328금야 선지자 2015.12.07
668 열처녀비유-환난 준비-기름 준비/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860330주후 선지자 2015.12.07
667 열처녀비유-환난 준비-기름 준비/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860330주전 선지자 2015.12.07
666 영죽을 과 영죽은/ 고린도전서 15장 37절-39절/ 880609목새 선지자 2015.12.09
665 영감 신앙/ 마태복음 16장 24절-25절/ 840614목새 선지자 2015.12.09
664 영감과 진리 안에/ 디모데후서 3장 16절-17절/ 831018화새 선지자 2015.12.09
663 영감과 진리로 살아난다/ 요한복음 3장 5절-8절/ 831017월새 선지자 2015.12.09
662 영감과 진리의 능력/ 디모데후서 3장 16절-17절/ 831019수새 선지자 2015.12.09
661 영감과 진리의 능력/ 요한복음 15장 1절-14절/ 830703주전 선지자 2015.12.09
660 영감도리 순종생활/ 마태복음 16장 15절-17절/ 791208토새 선지자 2015.12.09
659 영감된 사람/ 마태복음 16장 13절-28절/ 840610주전 선지자 2015.12.09
658 영감된 사람/ 마태복음 16장 13절-26절/ 840613수야 선지자 2015.12.09
657 영감론/ 디모데후서 3장 15절-17절/ 850805월밤집회 선지자 2015.12.09
656 영감론/ 디모데후서 3장 15절-17절/ 1985. 8. 6. 화새집회 선지자 2015.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