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처녀 비유

 

1983. 11. 5. 토새.

 

본문 : 마 25:3-1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주일학교 학생들 와서 기도하는 수 등록수 육백사십일, 중간반은 칠백삼십일,  장년반은 천오백이십구, 이래서 합해서 이천구백일 명이 등록을 하고 기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혹 하다가 며칠씩 빠지는 사람들은 빠졌다는 것을 기도록에 다  기록을 합시다 또 계속 하고 있는 것은 하고 있는 것으로 등록을 합니다.

'이것이 다는 아니라' 그렇게 무시하지마는 이것도 자기의 그 인품입니다.

자기의 또 사람의 힘입니다. 이것이 계속 못 되는 사람은 다른 것도 계속이 못  된다고 틀림없이 보아야 합니다.

 이 자리에 꼭 와서 하는 것 아니고 자기 직장에서도 할 수 있고 자기가 바쁜  일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성경 읽는 것을 모든 독서보다 그 양이  많아야 된다는, 성경 외에 외서를 사람들이 많이 보는데 그게 불가능하다  하지마는 아닙니다. 그것이 돼야 됩니다.

 자기가 외서를 하루 종일 사무를 결재하고 어떤 다른 학을 연구한다 할지라도  연구할 때에 주의 말씀을 계속함이 자기에게 없고 그 말씀을 자기를 주관하지  못했으면 자기는 벌써 원수에게 삼켜서 종노릇하는 것이요 자기 상전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몸과 마음은 달라서 내가 몸은 떠나 있으나 마음은 떠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바울이 믿는 자에게 대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마음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또 성경은 마음으로 하는 겻을 벌써 행위의  전부로 그렇게 봤습니다.

 마음이 행위를 지배하고 마음이 있는 데에 행위는 따라갑니다. 우리가 수많은  사람이 이렇게 한 자리 모였지마는 자기는 어디를 가느냐? 각각 제 마음 가는  대로 다 각각 흩어져서 우리가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기도록에 기록하도록 권면을 해서 하고 또 자꾸 오늘에 기도하도록  이렇게 권면해서 기도하는 사람 만드는 그것이 앞으로 멸망하는 멸망 가운데서  건져 주는 일입니다. 막바로 그것이 그것입니다.

 여기에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미리 기름을 준비했고 미련한 처녀는 그때에  밤중에 기름 준비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급하기만 급하고 당황만 했지 준비가 안  됐습니다. 우리 신앙이라 하는 것은 미리 준비를 해야 되지 그때 임시 당해서  그때에 말한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이 안 듣는 것은 아니지마는 그 사람은  현재적 영감을 받고 미래적 영감 준비적 영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에  영감을 받는 것은 그 사람을 놀래게 합니다.

 현재 영감을 받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이 진리를 떠나도 자기 마음에  두렵지 않습니다. 왜? 현재에 그 영감이 없기 때문에 무슨 죄를 지어도 아무  죄책을 느끼지 안하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영감을 받으면 현재 영감은 자기 하는 일이 현재 틀렸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에 틀린 일을 자기가 하려고 하니 옳은 일을 하려고  해도 하지 못하게 되니 그때는 고통이 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그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은 것은 그 고통으로 인해서 자기가  자기를 똑똑히 알게 되고 또 그때에 하나님을 부르짖게 되기 때문에 자기는  희개할 수 있는, 하나님 앞에 사유함을 받을 수 있는 그 사유가 그때 됩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불쌍한 것은 회고적 영감 지나가 다 지나가고 난 다음에,  그때는 모르고 죄를 마음대로 지었는데 뒤에 보니까 그게 죄라 하는 것은  후회하는 그런 영감입니다. 후회하는 영감은 그것은 자지에게 후회만 하게 되기  때문에 그것이 사함은 받지마는 그 승리하는 그 요소는 하나도 얻지 못합니다.

 성경에는 예비적 영감이 있고, 현실적 영감이 있고, 회고적 영감이 있어서 그  영감이 각각 다릅니다.

 또 영감은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중생시킨 우리에게 생명을 일으키는 영감도  있고, 또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역사하는 영감도 있고, 또 심판하는 영감도  있습니다. 또 신랑되는 영감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이 둔해서 언제든지 일방적으로 치우치기 쉽습니다.

이것을 이리는 알면 저리는 모릅니다. 일방적으로 치우치기 때문에 일방적인  지식이라 하는 것은 아무짝도 쓰지 못하고 화를 일으키는 것뿐입니다. 일방적인  지식은 안 됩니다. 전체적인 지식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기에 영감에 대해서도 성경을 기록해 준 영감도 있고, 또 하나님 앞에  목적을 정하실 때에 그때에 역사한 영감도 있고, 또 예수님을 십자가에 대속하게  하신 그 영감도 있고, 우리를 중생시킨 영감도 있고, 또 우리를 중생된 자로서  중생된 생명 생활을 하게 하는 영감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하나님이 예정한 영감도 있고, 창조한 영감도 있고, 또  그리스도를 이렇게 대속하게 한 대속의 영감도 있고, 대속을 우리에게 입혀 주는  영감도 있고, 이래서 보혜사 성신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내것을 가지고  가르치리라 또 진리 안으로 인도하리라 보혜사 성신이 오면 너희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서 알려 주리라 그렇게 말했고, 성경을 기록한 기록 영감도 있고,  성경 안에서 내재적으로 역사하는 내재 영감도 있고,  또 우리 마음 안에 와 가지고서 우리 마음을 비춰 주는 밝게 해 주는 그런  영감도 있습니다. 우리를 믿어지게 하는 영감도 있고, 한 영감이지마는 역사하는  그 면은 각각 다릅니다. 이래서 삼위일체라, 삼위일체라 하는 것도 본체는  하나라 한 하나님이지마는 한 하나님이 이런 일 할 때에는 성부라 저런 부분 할  때는 성자라, 저런 부분 할 때는 성령이라 그렇게, 일하는 것은 책임을 가리켜서  말하고 의무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책임과 의무가 각각 다르다. 한  하나님이지마는 책임은 세 가지 면으로 책임을 하고 의무는 세 가지 면으로  의무를 해서 세 가지 면으로 조성을 한다.

 그런데 그 위는 서이지마는 한 분이시다 그말입니다. 신인양성일위라는 것은  신성과 인성은, 언제든지 신성은 하나님이시요 창조주시요 인성은 피조물인  사람이지마는 신성과 인성은 혼합해 가지고 일체가 되는 것은 아니고,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고 신성 인성은 뚜렷이 언제까지나 영원히 가도 신성은  하나님이요 인성은 피조물이라, 그렇지마는 그 신성과 인성이 일 격위를  이루었다, 한 격위를 이루어서 역사할 때는 영원히 함께 한다, 같이 한다, 한  역사를 한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일위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열 처녀 비유에서 이 말씀을 굳게 잡아야 되겠습니다. 준비는 미리  하지 그때에 하면 차라리 모르는 사람들은 평안한데 아는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6·25 때도 보니까 현재적 영감을 받지 못한 그런 사람들은 보니까 그때에 뭐  6·25때에 하나도 두렵지 안하고 아주 좋아하고 있습니다. 왜? 아무 마음에  인민군으로 더불어 하나되는 그 행위가 같이 무신론자와 유물주의자와  하나되어서 그들이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라고 말할 때에 어기는 것이 자기에게  하나도 가책되는 일이 없으니까.

 기쁘고 즐겁고 뭐 농사짓지 안하고 그때는 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저 다니며 노니까 아주 기쁘고 즐거워하고 하나도 두려워하지를 안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현재적 영감을 받은 사람은 '이것이 죄라 이것이 의라' 죄라  의라 하는데 죄를 안 범하기가 힘들고 또 의를 행하기가 힘드니까 자기에게는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다섯 처녀 슬기 없는 다섯 처녀도 미리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다섯 처녀는  그때에 고민을 하고 고통을 한 것입니다. 아무 택자가 아니고 구원이 없는 그런  지옥 갈 사람 같으면 지옥 갈 사람이 뭣 때문에 주님을 신랑으로 영접지 못한 데  대해서 고통을 할 것이며 기다릴 것이며, 또 그렇게 애타하고 기름 준비를 못  해서 발동을 해 가지고서 급하게 서둘고 그렇게 버림을 당했겠습니까?  우리가 여기에서 슬기 없는 다섯 처녀도 구원받은 택한 성도들이라 하는 요것을  작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작정하지 못하고 그저 '이 사람은 이래 한다  저 사람은 저래 한다 하는 그 사람은 거룩이 없는 사람입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많은 것이 섞여 있는데 그것을 구별하고 구별하고 자꾸 구별해  가지고서 '이거라' 하는 그 참을 잡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을 거룩한 행위라  하고, 거룩이 됐다 말은 수많은 가운데서 구별하고 구별해 가지고서 참을  잡았다는 것을 가리켜서, 구별하는 구별에 성공이 된 것을 가리켜서 이제는  거룩이 이루어졌다, 그러면 구별에 성공이 이루어진 그 결과를 가리켜서  말하기를 진실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거룩하고 진실하사' 하는 거룩은 방편을 묘사한 것이고 진실은 그 결과를  표현한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우리가 진리를 대할 때에 진리는 둘이 아닙니다.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지. 그러니까 학자되면 미혹받기 쉽습니다. 학자가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는 것이니까 그것을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니까 자기도 모르게 자기라는 사람도 '수많은 사람은  이렇게 저렇게 말한다' '그러면 너는 어떻게 말하노?' 그것을 자기가 찾는 것이  거룩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하는 이것은 틀렸나 맞았나?' 이것을  구별하지 안하고 그저 '몇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자기는 한 사람이 말한 것보다  두 사람이 말한 것 말하면 능력 있는 줄 알고, 열 사람이 말하는 걸 말하면 능력  있는 줄을 알고,  그러기 때문에 신학의 권위는 어학의 권위라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있습니다.

신학의 권위는 어학의 권위다. 왜? 어학의 권위라 말은 많은 그 지방어, 많은  나라의 말 가지고서 알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을 그것을 봤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주장하는 것을 본 그것이 권위다.

 그러기 때문에 신학의 권위는 이 사람이 이런다 저 사람이 저런다, 다섯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 증거하는 것보다 열 사람이 말한 걸 증거하는 게 더 크고, 열  사람이 말한 것보다 백 사람이 말하는 증거를 하는 게 더 크고, 크고 더 큰 게  아니라. 그거 다 죽은 소리입니다. 그것은 열이 말챘거나 백이 말했거나 말해도  옳은 것 말하는 그것이 승리하고 그게 힘이 있지 여러 사람이 말한 그거 무슨  인간 종합을 해 놓으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이렇고 이런 가운데에서 '요거는 요래 틀렸고 저거는  저래 틀렸고'자꾸 이것을 구별하는, 이러기 때문에 '이런 면으로 맞추면 이건  틀렸고 저런 면으로 맞추면 틀렸고 이러니까 이것이 맞다.'  이렇게 옳은 것을 자기가 딱 거머쥐고 작정을 하고 그대로 하려고 해도 힘이  드는 것인데 그걸 알지도 못하고 이렇게 미결로 이래 두는 그 사람은 앞으로  실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려서 모든 것을 구별해서 그  선별할 것이라는 것 이것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하나님도 모르고 심판도 모르고 인간밖에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리  되면 나중에 가서 인본의 사람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주의할 것은 이 세상에서는 악령이 대선을 중선으로, 큰 선을 중선으로,  중선을 소선으로, 나중에는 그래 내려가 가지고서 선을 아주 무선으로 이렇게  아무 선이 하나도 없도록 이렇게 점점 타락시키는 것이 악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차차 이것을 키워갑니다. 처음에 무에서 유를, 소유를 중유로, 중유를  대유로 이래 가지고 완전으로 이렇게 자꾸 향상시키고 육성시켜 가는 것이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잘못하면 이용당합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악령은 그 꾀가 꼭  같습니다. 공산주의에 가입시키는 것도 그 사람이 끝만 있으면, 얼토당토 안한  반대자지요, 공산주의에 반대자지마는 그 사람이 나중에 가서는 공산주의를  주장하지 안하면 안 되고 또 공산주의가 자기에게는 정이 붙고 공산주의 편이  되고 공산주의의 반대되는 민주주의는 적이 되고, 민주주의는 자꾸 적이라  하니까 자기가 그 사람이 자꾸 공산주의에 붙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래서 과거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이런 방편을 써 가지고서 민주주의에 속한  사람을 공산주의를 많이 만들었는데 요번에 ○정권이 시작하고 난 다음에는 그  면을 발견해 가지고서 그렇게 만드는 일은 많이 적어졌습니다.

 이거 공산주의가 아닌데 공산주의로 들이 몰고 이래 조아 가지고서 그 사람을  민주주의를 공산주의로 만드는 '그런 것이 과거에 그 정권 자들의 하는  일이었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걸 하지 안하고 이걸 유하게 해서 공산주의나  민주주의나 자유로 어떻게 해 가지고서 그 사람이 하도록 이렇게 해서 강제로 그  사람이 본의 아닌 공산주의가 되어지는 이런 일 하지 아니하도록 그런 실수가  없도록 하기는 했는데 일장 일단이라.

 그 면은 장점이지마는 이것을 유하게 하니까 적색들을 자꾸 그저 용납하는 그런  얼마든지 자유로 활동할 수 있는 지하 활동에 열심이 더 가하게 되어지니까 또  그 면이 나쁩니다. 그 면을 단속하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이것을  단속하고 저것도 해야 되지 그저 유하게만 한다고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유와  강이 겸해야 되지 유만 가지고 안 됩니다. 강만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래서 마귀의 궤휼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처음에는 그들에게  동참해서 가깝게 하는 것, 될 수 있는 대로 자기가 알 때에 아니라 하면 아니라  하면 가깝게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성경에는 이단자를 영접하지 말아라.

이단자와 더불어 말도 하지 말아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전설이 그것 전설이 맞는 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마는 그래도 그런 말이  나왔는데 사도 요한이가 목욕탕에 갔다가서 자기가 보니까 자기가 아는 대로의  이단자가 거기 같이 목욕탕에 들어오는 걸 보고서 거기에서 목욕하고 나오고 저  사람 이단자라 이렇게 하지 안했고, 목욕하다가서 목욕탕에 이단자가 들어오니까  옷을 벗은 채로 옷을 거머쥐고 옷을 들고 빨리 목욕탕 밖에 옷을 발가벗고 벗은  몸으로 목욕탕에서 뛰어 나왔다고.

 왜? 이단자가 들어왔으니 하나님이 그를 진노해서 그 시간에 또 무슨 벌을  일으켜서 무슨 목욕탕을 폭발을 시켜 가지고서 목욕탕이 폭파돼서 치여 죽을까  겁이 나 가지고서 그렇게 벗은 몸으로 뛰어나 왔다고서.

 고게 사실 성도의 번개 같은 본질을 하나 예화한 것이 아니냐 그 말도 헛된  말은 아니고 그것 우리가 들을 때에 사도들은 그만치 틀린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틀린 것에 대해서'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것을, 언제 임할지  모릅니다. 실은 언제 임할지 모르기 때문에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라 그말이오.

 삐뚤어진 자와 같이 있는 그것이 삐뚤어진 이에게 하나님이 치시는데 그 치시는  것 언제 칠지 모르기 때문에 이단자 옆에 있다가 자기가 함께 그렇게 그 화를  당할까 겁이 나 가지고서 뛰어나왔다. 그만치, 그게 진실이오.

 그게 진실한 마음인데, 우리는 그저 이 세상에는, 이러기 때문에 한꺼번에 같이  썩어서 성경을 얼마든지 말을 했지마는 그 말한 그것을, 이것을 말하지 말든지  말을 할려면 자기가 그것에 대해서 비판을 해 가지고 이거는 이러니까 틀리고  저거는 저러니까 틀렸다,  신학 서적을 자기가 저술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의 신학자의 신학 사상을  인용하는 것은 좋기는 좋습니다. 인용하는 것은 좋지마는 인용하면 일거리가  많습니다. 인용했으면 반드시 자기는 '이거는 이렇기 때문에 틀렸다. 저거는  저렇기 때문에 틀렸다. 요거는 맞다. 나는 어떠냐? 나는 이런 신학을 믿는다.

이렇게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성경을 이렇게 믿는다.'  구원에 대해서 성경에 말한 뭐 구원관이라든지, 또 인론이라든지,  죄론이라든지, 속죄론이라든지, 말세론이라든지, 또 그것을 계시론이 라든지  뭣이든지 자기가 거기 대해서 말을 하면 아닌 것은 아니라고 구별을 해야 되지  그것 구별하지 안하는 그것은 사람들 죽이는 운동이라 그말이오.

 그런고로 여기에서 열 처녀는 다 구원은 얻되 다섯 처녀는 건설구원을 잘  이루어서 영광 있는 구원을 얻은 자고, 슬기없는 다섯 처녀는 기본구원을  얻었지마는 건설 구원은 없는 자라.

 왜 건설구원이 없느냐? 그 사람이 기본구원 얻었지마는 항상 기본구원을 벗고  기본구원을 버린 자니까, 자기가 벗을 수 없어서 못 벗었지 자기 주관적으로는  벗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는 그에게 가가지고 역사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이  공평된 그 자유성을 준 인간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죽은 자를 중생시키는 것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중생을  시키지마는 중생된 자가 그 심신이 성화되어지는 그것은 심선의 구원은 성령이  직접을 하지를 못합니다. 왜 직접 하지 못하느냐? 직접하지 못하는 것은 거기에  벌써 중생된 영이 주격이 돼 있기 때문에 심신은 그 영의 소유기 때문에 영을  통해서 이걸 영을 도와 가지고서 하지 영을 집어던져 버리고 월권적으로 그렇게  하지를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평이요 하나님 당신이 당신의 법으로서 당신을  다 스리는 그 자치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열 처녀가 택자냐 불택자냐 하는 이것을 구별해서 자기가  확정지어야 됩니다. 확정을 짓지 안하면 이 열 처녀 비유는 다 헛되고 맙니다.

확정짓지 안한 거기에서, 그게 근본인바 그걸 짓지 안하면 헛일이오.

 또 '열 처녀는 성경에는 일남일녀를 주장하고서 일부다처를 주장하지 안하는  것인데 어떻게 그렇게 열 처녀가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느냐? 그러면 이거는  일부다처의 사상이기 때문에 이것은 신부될 사람은 아니고 신랑을 축하하려고  맞이하는 그런 하나의 들러리 선 그런 사람이지 신부는 아니라.' 또 이렇게  되어지니까 요것도 해결을 지워야 그다음에 25장이 우리 구원 준비를 하는 게  되어지는 것이지 그게 안 되면 안 된다 그거요.

 그걸 뭐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이래 하는 사람도 있고 저래 하는 사람도  있다.' 그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거든지 저거든지 맞는 것은 하나뿐이지  맞는 것이 둘일 리는 절대 없는 것이오. 맞는 것이 둘 있다 그말은 진리가 둘  있다는 말과 꼭 같은 말이요.

 이것 지금 이 교계에 나가면 여기에 대해서 '다섯 처녀는 구원 얻었고 다섯  처녀는 멸망받았다' 하는 것이 지금 아마 이 세계에 전부라고 할 만치  전반적이라고 일반적이라 할 만치 이렇게 돼 있기 때문에 이 세력으로 더불어  우리가 싸워야 되니까 앞으로 그 유혹을 받지 안할 만치 자기가 확정을 짓고  확실히 깨닫고 단정짓고 있어야 되지 여기에 대해서 말을 예사로 지금 듣고 있다  그거요.

 여기에 고것은 신부라고 말한 것은 교회를 말했습니다. 교회를 말했지 개인을  말한 게 아니고 교회를 말했는데 교회는 하나뿐이오. 또 그러고 교회는 전체의  교회가 있고, 단일 교희지마는 전체가 한 몸같이 되어 가지고서 한 교회로 되어  있고 그 교회는 또 부분적 세포적의 분자적인 교회가 있어서 사회 교회도 있고,  시대 교회도 있고, 가정 교회도 있고, 또 개인 교회도 있고 이래 있는 것이니  그것이 다 합해서,  역사 교회라 하면 세월이 육천 년 동안 흘렀는데 육천 년 동안에 있는 그 모든  교회가 한 교회라 말이요, 또 시대적으로 있는 교회도 한 교회라 말이요,  사회적으로 있는 교회도 한 교회라 말이요, 우리 나라에 있는 이 교회도 한  교회라 말이요, 한 교회로 한 교회라.

그러기 때문에 교회의 단일성. 단일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통일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그것이 교회입니다.

 이러니까 통일 교회라 하는 게 나와 가지고서 이 통일이라는, 통일 이라는 이  단어를 쓰지 못하도록 마귀라는 놈들이 먼저 가 가지고 척 잡아 썼기 때문에  그만 통일이라 하면 무슨 이단같이 하지마는 통일이 이단이 아니라 통일이라  말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됩니다. 통일되는데 통일파도  그걸 거석해 가지고서 막기 위해서 했고 또 에큐메니칼은 그것은 한  교리적으로서는 신신학입니다. 그도 통일의 주장을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자꾸 이 타협을 안 해야 펍니다. 타협을 안  해야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자꾸 옳은 것을 양보해 가지고서 그른 것에 이  화합하는 것이 그것이 타협이요, 그것이 속화요, 그것이 죄악입니다.

 옳은 것이 옳은 것을 주장하나 옳은 것이 '나는 옳다' 해 가지고서 자기  독선으로 그대로 있으면 그것이 어데 걸리는가 하면 증거에 걸립니다. 증거를  하지 안한, 증인의 사명을 하지 안한 거기에 걸리고 또 그것을 하려고 거기  따라가면 또 내가 속화되는 데에또 걸려버리기 때문에 따라가도 안되고 옳은  데서 가지고서 그것을 언제든지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 이래 가지고서  그것을 얼마나 증거를 할 건가? 얼마나 할건가? "내가 너희들이 유익한 것은  하나도 빠짐이 없이 내 소유와 몸과 생명을 아끼지 안하고 다 전했다" 그것이  순교입니다. 그것이 보스라기 순교요.

 여러분들이 옳은 것을 옳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이래 증거할 때에 자기에게는  희생이 옵니다. 자기에게는 마찰이 옵니다. 마찰이 올 때에 그 마찰이 내나  보스라기 십자가요, 보스라기 순교요, 보스라기 희생이요, 그게 보스라기  성화되는 것입니다.

 옳은 것을 증거한다고 해서 옮은 것을 증거하면 세상이 와 가지고서 옳은 걸  증거한다고 때려서 팔도 뿌지를 수 있고, 때려서 병신을 만들 수 있고, 때려서  죽일 수도 있고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자기는 자기의 전심 전체 심신이 옳은 데 속해 가지고서 옳은 것과  하나가 되고 옳은 것과 하나됐다고 해 가지고서 옳은 것을 버리지 안한다고 해  가지고서 세상이 박해를 줘 가지고서 옳은 것이 절단났습니다.

 그러면 옳은 것이 절단났으면 옳은 것이 절단난 그것이 뭣입니까? 옳은 것이  절단난 그것이 이제는 세상에게 절단이 났으니까 옳은 것을 주장하는 그 심신이,  몸이나 그 모든 마음의 심신이 원수에게 박해를 당하면 원수가 그것 죽였으면  원수의 것이 됐습니까? 원수의 것이 되는 것 아닙니다.

 그 심신이 진리에 속했고 영감에 속했고 하나님에게 속했기 때문에 옳은 것은  죽는 일이 없습니다. 옳은 것은 썩는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옳은데 세상이 와 가지고서 예수님 십자가에 못뱍아 죽였으니까,  죽였으니까 예수님의 그 육체는 세상이 가지고 가고 마귀가 가지고 가고 마귀가  점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 됐고 진리와 영감의 것이 됐고, 옳은 것이  되어 있는 이 옳은 것을, 옳은 것을 내 놓으라고 자꾸 이렇게 하다가 안  내놓으니까 마지막에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죽이기까지 한 그거는 뭐이냐? 그럼으로써 완전히 죽음으로써 완전히 죽음을  승리하고 산 것 됩니다. 완전히 죽음으로 완전히 산 것이 된 것입니다. 완전히  죽음으로 완전히 산 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의 불법이나 불의나 이 세상의 세력 마귀의 세력은 그것이  하나님의 부리는 것으로서 내가 옳은 데 속해서, 옳은 데 속해서 옳은 것을  버리지 안하고 옮은 데 속해 가지고 옳은 행동을 하고 옳은 것이 되어서 옳은  행동을 한다고 해 가지고서 그것을 박해를 해서 없어지는 그거는 세상에게  빼앗긴 것처럼 세상이 차지한 것처럼, 그렇게 생각을 가지지마는 그것아 아니고  완전히 옳은 것이 되어 있는 이 옳은 것이 변동될 수 있는 옳은 것인데 완성되지  안한 옳은 것인데 그것을 완성시키는, 옳은 것이 되나 안 되나 자꾸 이렇게  시련해 가지고 완전히 이거는 옳은 것 돼 버렸다 말이오.

 옳은 것 돼 버렸다, 옳은 것 되어서 끝났다, 옳은 것으로 끝났다 하는 그것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것입니다. 없어지야 완전히 있는 것이요, 다 빼앗기면 다  얻은 것이요, 다 지면 다 승리하는 것이요, 다 죽으면 다 산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다만 악령과 이 세상은 이제 우리의 산 것을 완전히 살게 하는  그 일에 돕는 역꾼이지, 역꾼이지 그들이 옳은 것을 털끝 만치라도 차지합니까?  못 차지합니다. 어림이나 있습니까? 진리의 것 영감의 것을 어떻게 그렇게  털끝만치라도 차지하지 못해 차지 못 합니다. 털끝만한 것도 차지 못 하요.

 그것이 옳은 것을 옳은 것 되게 하는 그 역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했고 창조했고 모든 존재는 우리의 구원  구속을 위해서 다 이용당하기 위해서 거기에 돕기 위해서 생겨져 있는 것이라  하는 요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친척과 명예와 생명을 원수가 취한들 상관이 뭐 있느냐?' 원수가 취한다 하는  그것은 사람이 보기에 그렇다 말입니다. 사람이 보기에 원수가 취했지마는  원수가 취한 것이 아닙니다.

 원수가 취한 것이 아니고 그것을 완전히 하나님의 것을 만드는 역꾼으로서  만드는 일 했지 제가 어떻게 그 틀린 것이, 세상은 죄 안에 있는 것인데 틀린  것이 옳은 것을 어떻게 정죄합니까? 틀린 것이 옳은 것을 어떻게 이깁니까? 틀린  것이 옳은 걸 어떻게 해할 수가 있습니까? 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니엘이 사자구덩이에 들어 있으면서 그들은 사자구덩이 넣은 것아  다니엘을 그 심신의 그때의 기능을 그것을 완전히 생명화 시키고 영감화시키는  그 조력을 했는데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만 그때에 그 조력으로써 그때로서  다니엘의 심신이 완전한 것이 돼 버렸으면, 죽었으면 완전한 것이 다 됐는데  그들은 완전한 것 만들려고 역꾼으로 이래 가지고 다니엘을 사자구덩이에  넣었지마는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아직까지 완성될 때가 안 됐다 해 가지고서  완성되지 못하게 한 것은 다니엘을 살려낸 것입니다. 다니엘은 살아나온 것은  아직까지 그에게 미완성의 요소가 있고 다 진리화된 거는 아닙니다.

 그때에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가서 사자에게 먹혔으면 사람들과 사자가 합해  가지고서 다니엘의 심신이라 하는 것은 하나도 털끝만한 것도 남은 것 없이 전부  진리화됐고 다 영감화되어서 이것이 완성이 되어지는 것인데 완성을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기적으로 이걸 완 성하지 못하게 중단을 시켰기 때문에 그때  그것이 미완성의 것으로 살아나왔다 이거요.

 그런고로 우리는 요 현실에서 기름 준비를 해야 되는데 이 기름 준비는, 이  기름 준비를 진리요 영감이요 보혜사 성령의 바로 역사인 것을 우리가 이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밤중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어려운 환난이라 그렇게  해석 안 할 수 없습니다. 밤중은 환난이라 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밤중에  등불이 뭐인가? 밤중에 등불이 뭐이냐? 밤중에 등불이 깜깜 어두운 데에 빛이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까? 빛이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 어두울 때에 온 세상 어두워지고 온 인간이 전부 다  죄악화되어지고 세상화되어지고 인간화되어지고 완전히 하나님과 진리를  벗어버리는 이렇게 깜깜한 이 어두운 세상세 라을 나타내는 것이 무슨 힘으로  나타냅니까? 진리의 힘으로 나타내고 영감의 능력으로 나타냅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영감화되어 있느냐 진리화되어 있느냐 그것을 표시하는 것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왜정 말년 같은 그때도 신사참배가 처음에 오니까 나중에 차차 차차  이거 되게 조우게 되니까 모두 다 그만 등불이 꺼졌다 그 말이오. 등불이 꺼진  것은 그 사람이 진리화된 것이 빈약했고 영감화된 것이 빈약했기 때문에 된 것  만치는 이겼지마는 모자라니까 그때는 그만 영감화의 빛이 나타나지를 못했다  말이오. 등불이 꺼졌다 말이오.

 그러나 그럴 때에 모두가 다, 뭐 전국적으로 일본 통치 아래에 있는 나라는  전국적으로 노회적으로 총회적으로 시찰회적으로 당회적으로 전부 싹 고때 다  됐습니다. 안 된 것 하나도 없어. 다 돼 버렸어.

 다 되고 남은 거는 혹 어떤 사람은 외국으로 망명을 해 가지고 그때에 그들에게  삼켜지지 안하고 신사참배 하지 안하고 망명한 사람, 어떤 사람은 감옥에 갇힌  사람, 또 어떤 사람은 드러나지 안하고 숨어 있 으니까 그 사람은 예수 믿는지  안 믿는지 그 사람은 숨어 가지고 있 으니까 안 했지마는, 안 했지마는 그  사람은 판단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은 내나 숨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그저  그에게 삼켜지지는 안했지마는 승리한 사람은 못 됩니다.

 망명한 사람도 승리한 사람은 못 됐고, 감옥에서 갇혀서 한 사람이 승리한  사람이고, 망명하지 안하고 나타나서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모두가 다 알게  뚜렷이 하는데 그 신사참배 안 하고 다니면서 안 한 사람 그 사람도 신사참배  승리한 사람, 그러면 그 사람이 제일 옳은 승리한 사람이요 권능 있는 승리를 한  사람이오.

 왜정 말년에 황거요배가 있었는데 일본은 그때는 일본 천황 폐화를  신화시킬라고 애를 썼습니다. 신화시켜서 그때 벌써 천황 폐하는 그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 신화를 시켰습니다. 신화를 시켜 가지고서 의례히 천황 폐하  앞에 머리, 신당을 거석해 놓고 천황 폐하 앞에는 신과 같이 그렇게 제사하는  일을 벌써 시작하고 난 때입니다.

 그럴 때에 천황 폐하가 있는, 천황이 있는 황거, 천황이 거처하는 황거라 말은  천황이 거처하는 곳을 황거라, 황거요배라 거기에다 절한다. 이것을 동방요배라  하나 황거요배입니다. 황거요배를 그와같이 할 때에 황거요배 그것도 벌써 일본  나라가 살아 있는 그 천황 폐하를 신화시킨 그 신화에 동참해서 신화로 대우했기  때문에 그것이 내나 나타난 천조대신이라는 가미다나, 그거는 없는 자를, 죽은  자를, 없는 자, 하나의 신화로 만들어 가지고서 한,  신화라 말은 신화(神話), 신이 됐다 그것도 말하고 과거에 말이 거짓말을  꾸며내 가지고 사람이 한 그것도 신화라 하는 것인데 내가 지금 신화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을 하나님화시켰다 그런 말로써 지금 신화라 하는 그 단어를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요걸 착각하면 안 돼요.

 간음이라는 말 하니까 어떤 고등학생이 있다가'이 간음이 무슨 말입니까?'  세월을 가늠한다는 그 말 하는 그것은 그것 딴 말이고 또 여기에 간음은 남녀  이성의 그 부정을 가리켜서 간음이라 한 것입니다. 그와같이 말의 단어도  잘못하면 꼭 같은 말이 많이 있기 때문에 틀리기 쉽다 그거요  그래 가지고서 다 황거요배를 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간 가운데에 황거요배를  하지 안한 사람들이 좀 있었고 또 황거요배는 다 한 사람들이 좀 있었는데  황거요배는 죄라고 정죄를 하지 안했습니다. 죄라고 정죄하지 안한 그것이  어두운 것입니다. 황거요배는 죄입니다.

 안디바, 버가모 교회에서 안디바 감독이 순교당할 때에 그 순교당한 그것은  거기에 우상이 있는 곳이라, 우상의 위치에 있는 위치에 거기에 있다가서 그  우상 때문에 안디바 감독이 죽음을 당했다 했는데 그때 우상이 뭐이냐 하면 로마  황제는 살아 있는 로마 황제를 신화시켜 가지고서 로마 황제 신당이 있어 가지고  그 신당이 제일 그때에 강하게 백성들을 그 앞에 굴복시키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마치 느부갓네살 왕 때에 우상 만들어 놓고 거기에 절하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자주 있다 그말이오.

 천조대신이 그랬고, 또 천황 폐하를 그렇게 신화시켰고, 이북에서는 지금  김일성이를 신화시키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김일성이는 아마 그 신당을  만들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 아마 만들어 놨을 것입니다. 만들어 놓고 그  앞에 가 가지고서 김일성이 신당 앞 동상 앞에 가 가지고서 이렇게 모두 절을  하고 모두 이렇게 축도를 하고 그렇게 하도록 지금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했지요? 해 놓기 쉬웠을 것입니다.

 이 남한도 그렇다 말이요. 남한에 지금 이 동상을 애국자 건국자 이런 모든  사람들을 이렇게 동상을 만들어 놓고 무슨 그걸 신사라고, 단군 신사라, 또  기자의 무슨 신당이라 이렇게 지금, 또 뭐꼬, 이순신이가? 이순신 장군의 지금  신당이라, 이것 앞으로 인제 신당화될 때가 올런지 모릅니다.

 신당화되면 거기에 '애국자면 여기에 다 현충한 분들에게 여기에 와 가지고서  경배해야 된다.' 지금 저 위에 저 세워 놓은 게 뭐라 하더라? 충혼탑이라 이래  충혼탑이라 했는데 충혼탑인데 나중에 저기 가서 나중에 충혼 신당이 될런지도  모른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요.

 그래 가지고서 사람을 이렇게 저렇게, 지금 원하는 것은 뭐이냐? 한국 교회가  잠자고 있기 때문에 이제 적화가 돼 가지고, 적화가 돼 가지고서 한국 교회  전체를 다 시험해 가지고서 절단내는 이런 일이 오면 참 순진하게 자라는  어린이들이 다 무신론자들에게 점령을 당해 가지고서 도를 받지 못하고 자라지  못할 터이니까 이것은 참 전멸이 되는 전멸되는 것이고 이 가꾸는 것이 아니고  전멸되는 것이기 때문에 '공산화되지 안하도록 주께서 국방시켜 주옵소서' 하는  그런 거를 우리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마다 어떤 신당이나 무슨 여기서도 와 가지고 왜정 말 년에, 모든  사람 한목 죽이는 게 아니라 그 몇만 들어서 그렇게 죽이는 그 시험하는 그런  일이 있어 가지고 옳은 사람들을 들어 가지고 삐뚤어진 사람들을 경성시키고  하는 그런 일은 그뭐 없는 것보다 있는 게 좋다 이거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을 금우상을 만들어 느브갓네살 왕이 만든 그런  시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좋습니다. 또 사자굴에  들어간 그런 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인데 없는 것보다 있는게 좋다 말이오.

 그때에 자기네들이 전부 모둘때기로 한목 무더기 죽음 하지 안하고서 거기에서  개인 개인의 하나 준비한 사람 준비 안 한 사람, 이 대가리들 '내가 대가리다  네가 대가리다' 대가리 재판을 해 가지고서 서로 대 가리라고서 이래 가지고서  마땅히 사람들아 존경하고 본받고 따라가야 될 사람은 다 까뭉케 버리고 제가  대가리 아닌 것이 대가리로 이래 가지고서 이러는데 이런 것들이 가라앉을 수  있는 이 무엇이 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 그거요.

 과거에 국기 배례도 그것이 거의 국기를 신화시켰습니다. 신화시키 다가 참  하나님께서 그만 그것을 아닌 것을 '국가의 하나의 표징이지 그것은 신이  아니다.' 이래 가지고서, 그래도 신사참배 그 영향의 승리한 그 사람들이 남아  있음을 인해 가지고 이래 됐지만 그 사람들이 솔빡 죽어버리고 말았으면 국기  이것도 신화되고 말았을 것이라 그거요.

 일본 사람들이 내나 국기나 한가지입니다. 천조대신이나 국기나 같이 여겼소.

딱 하면은 국기 놓고서 절합니다. 국기 놓고 국기를 바라보고 절해서  군인들이든지 큰 회사든지 아침에 조회할 때에는 다 국기 보고서 전부 경례를  하고 난 다음에 그러고 난 다음에 이제 조업을 시작하지 그러기 전에는 조업을  시작 않습니다.

 교회는 딱 예배보기 시작하면 황거요배 딱 하고, 그 황거요배하는 것이나  신사참배하는 것이나 또 국기에 대해 가지고서 내나 신으로 알아서 절하는  것이나 꼭 같은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런 것이 언제 올런지 우리가 몰라. 그런 것 오는 것은 이  거짓부리가 공연히 명예만 탐해 가지고서 세상 마귀 법규로 해 가지고 당선이  되어서 총회장이 되고 노회장이 되고 뭐 당회장이 되고 뭐이 됩니다. 그것은  다수 가결이라 하는 것은 마귀 법칙입니다. 다수 가결은 마귀 법칙이오.

 이래 가지고 뭐 민주주의가 이거 교회가 법칙인 줄 알아. 민주주의는 교회  법칙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교회 법칙이 아니오. 민주주의는, 독재 법칙이  교회 법칙입니다. 민주주의로 어데 하나님께서 의논해 가지고 어데 일을  했습니까? 그런 게 아니라 그말이오.

 종다수 가결을 하다 보니까 깨달은 사람이 많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사람이  많고 또 인간 운동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 모든 인정을 많이 받기 때문에 종다수  가결을 하면은 반드시 당선당하는 사람은 인본 주의가 당선을 당하지 외나  신앙적인 사람이 당선을 당하지 못하니 이게 처음에 개혁이 되고 난 다음에는  신앙으로 위주를 하지마는 오래 지나고 나면 진리는 파묻혀 버리고 인간만  커지기 때문에 인간 그 주 장만 서지니까 결국 당선당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앞으로 환난 오면 교회를 무더기로 팔아먹을 그 원수라 그말이오.

무더기로 팔아 먹을 원수라.

 이러기 때문에 제가 앞으로 환난이나 모든 것 생각해서 '내가과연 이 위치를  생명을 내놓고 내가 파수해 가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빛을 보일 수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때에 내 생명이 아까와서,' 그때 사람들이 의지를  가지고서 '네 의지가 얼마나 강하냐? 네 결심이 얼마나 강하냐? 네 사상이  어떠냐?' 그걸 말하는 것 아니오. 그때 따지막에는 생명입니다.

 '네 생명이냐 이것이냐? 네가 이 생명을 차지할래, 생명을 차지할래 그러면  네가 이 진리를 내놓으면 네가 살고 이 진리를 가지면 생명을 내놔야 되니까  네가 이 진리를 내놓나 안 내놓나?' 하는 그것이 네 생명을 가지느냐 내놓느냐  하는 그걸로 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자식이 애비를 죽이고 애비가 자식을 죽이는 것이 그것이  그냥 죽이는 것 아니오. 아무래도 아비 생명이라도 제 생명만은 못하고 자식  생명이라도 제 생명만 못하기 때문에 제가 죽을 판이니까 제가 죽는 것보다는  자식 죽이는 것 낫고 제가 죽는 것보다 아비 죽는 것이 낫다, 생명을 어느  생명이냐 이렇게 견제하는 것이 크기 때문에 다 그런 결과를 내고 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앞으로 그런 일이 있으면 인간이 선거한, 인간이 선거한 그것이  무슨, 성경에는 보면은 "자기가 가진 진리를 힘 입어서, 진리를 힘입어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싸웠으므로 승리했다" 했는데 생명을 아끼는 자가, 또 진리의  능력을 힘입지 못한 자가 생명만 내 놓는다고 승리가 됩니까? 안 된다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는 앞으로 무슨 시련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이 거룩을  가지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거룩, 무엇이든지 거룩 "거룩하고 진실하사"  거룩을 가지는 사람,  그러면 거룩이는 것은 많은 것이 섞여 있는데, 보니까 '이것도 아니다.

이것보다 이게 낫다, 이것보다 이게 낫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다 이래  가지고 마지막에 완전이라는 그 하나에 도달하고야 안심하고 휴식'하고 '이제는  됐다' 하는 그것이 거룩이 있는 사람이오. 거룩의 방편을 가진 사람이오.

 거룩은 방편과 결과를 겸해서 말한 것이고 진실이라 하는 것은 그 결과된  그것만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뭣이든지 하나씩 따져 들어가자  그말이오. 따져 들어가.

 이번에 양성원에 학생들, 이 공연히 거짓부리 되니까 양성원 공부 하기는  공부야 아무것도 안 해도 다 백점 주고 아무것도 안 해도 합격 주고 하는데 그  양성원이 천대를 받을 수밖에 없어. 이번에는 시험 세 번 켰어.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을 외우라고 쳤는데 시험을 두 번 쳤어. 처음에 쳤는데 전부  낙제라. 전부 낙제했어. 한 점도 받지 못해. 전부 낙제가 다 되고 남았어.

이랬는데 두번째 시험을 쳐도 낙제 안 된 사람이 몇 있어.

 그래 가지고서 두번째 시험 쳐 가지고 했는데, 두 번에 시험 쳐도 기어코  백점을 맞고야 말아. 백점 안 되면 자꾸 시킬 것이요. 그 자리 자꾸 있어. 암만  여기 와서 공부해 봤자, 공부해 봤자 항상 못 올라가고 있어. 그 시험을 합격을  해야 올라옵니다. 들어오기는 들어 오지마는 나갈 때는 다 백점짜리만 내 보낼  것이오.

 이러니까 주기도문 시험 친 그것도 백점이 미달된 사람들은 그 사람들에게  교학실장이 다 그것을 다 '너는 몇점이기 때문에 너는 미결이니까 가서  공부해라.' 얼마든지 공부해 가지고 칠 수 있어. 방학 때 공부해 가지고  중간에라도 와 가지고 '나는 이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 계명 시험을 다시  치겠습니다.' 뭐 하루 열 번 와도 교학실장이 받아서 다 시험을 받아 줄 것이요,  칠 것이오. 그래 가지고서 백점되면 맡고.

 요걸 하는 사람은 될 거라. '내가 요렇게 못 해도' 얼마든지 시험을 치기를  허락하니까, 한번 시험쳐 가지고 시험 기간을 한 번만 주고 재시가 없고 삼시가  없으면 하지마는 우리는 십시도 있고 백시도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 백점 만점  되기까지를 목표합니다.

 이러니까 그것도 미달된 사람들은 그렇게 시키고 또 그다음에 유다서를 지금  외우는 것을 다 내가 그날 가서 '유다서를 좀 외우십시오' 이러니까 '유다서는  다 외워 놨습니다.' 그래서 유다서를 외워 놨다 해서 유다서를 한 반이나  공부했는가? 반 공부해도 남은 것은 그만하면 벌써 유다서는 다 통달할 만치  알게 됩니다.

 그렇게 했는데, 유다서도 외우는 데에, 그러면 외운다 하니까 강을 받으니까 강  받는 사람을 믿을 수가 없다 그말이오. 강 받는 사람을 믿을 수가 없어. 진실이  없기 때문에. 어느 목사를 믿으며 어느 전도사를 믿겠는가 말이요? 진실이 없고  전부 타협이오. '나 네 단점 말 안 할 터이니까 너 내 단점 숨겨 달라' 전부  이래 놓으니까 전부 속화돼 서로 죽인다 말이오.

 이래서 할 수 없어 '유다서를 외우는 것이면 너거가 글 쓸 줄은 알기 때문에  외우는 것이면 다 쓸 수 있지 않겠느냐? 시간은 얼마든지 걸려도 관계 없으니까  그 유다서를 외워 쓰라.' 이러니까 자기가 외우는 것이 정확하게 나타났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뭐 전부 틀려서 합격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이래서 새로 외워 쓰고 이래라 했는데 이제 외워 써 가지고서는 백점된 사람이  뭐 하나인가 둘인가 있다던가 이랬는데 그것도 교학 실장이 그 사람은 숙제로  둡니다. 백점 못 받은 사람은 또 숙제요. 숙제니까 숙제로 그걸 해 가지고서  집에 가서 얼마든지 익히고 외워 가지고서 와서, 시험은 뭐 학기 때만 칠 게  아니라 평소에 아무 때라도 와 가지고서 치려고 하면 칩니다.

 이러니까 그렇게 해서, 여기에 또 안 와도 됩니다. 안 와도 되니까 그 지방에  믿을 만한 누구든지 교역자든지 또 지방 공회장이든지 어떤 분 앞에 가 가지고서  그렇게 외워 쓰면 돼. 유다서 같으면 외워 쓰면 된다 말이오.

 외워 쓰면서 책 못 보구로 하고 외워 쓰면 제가 거기에서 외워 쓰구로 하면  되는데 그것도 외워 쓰니까 또 모르게 숨어서 요래 보고 조래 보고 칸닝구하는  것 그런 컬 하면 벌써 그 사람이 그렇다고 하면 그것은 그것을 회개하기 전에는  자기 속에 성령이 역사하지를 못합니다. 그것을 회개하기 전에는 성령이  역사하지를 못해요.

 성신이 우리에게 오기 싫어 안 오는 게 아니고 오면 우리 죽일 것이기 때문에  못 오는 것입니다. 성령은 불, 소멸하는 불이시오. 불이기 때문에 당신의 뜻에  합당치 안한, 요구가 다 완전을 원하는 건 아니고 그 사람 정도로서 요 정도가  됐을 때에는 요 정도의 영감은 갈 수 있고 요 정도로서는 성령이 가서 역사할  수가 있는데 그 정도가 안 될 때에는 성령은 오시지 못한다 말이요, 오면 소멸해  죽여야 되기 때문에. 이러니까 성령이 피하는 것입니다.

 그래 그것을 정확하게 강을 받아서 이제 시험치는 것 다 백점이 돼야 될  것이오. 이러니까 그날 시험을 켰는데 목사님들도 시험 쳤소. ○○○목사님은 그  양심은 속이지 안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같이 할 것이오  쓰기를 뭐라고 썼는가? 다 쓰다가 안 되니까 그 나머지기는 써 놓고  '여기에서부터 여기에까지는 못 써서 책을 보고 썼습니다.' 그래 그 시험지에 써  놨어. '책을 보고 썼습니다.' 못 쓰고, 그대로 하면 낙제 중에 우낙제라  이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진실되지 못하고 이런가?  그러기 때문에 앞으로 제가 시험칠 것 상식적으로서 이것만 알면 성경을  연구하는 데에 필요하고 해서 처음에 일학년 때에 성경을 연구하는 제목들이  있으니까 그과제가 중요합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데에는 처음에 일학년 때  그것을 원만히 완전히 해 놔야 자기가 이래 엎드려 가지고서 기도하고 눈감고  명상할 때에 성경이 쫙 떠오르고 하나님께서 "이 성구를 네가 살펴봐라. 이  성구를 증거해라." 하는, 하나님이 설교를 주시는 그 설교를 받을 수가 있지  제가 그것을 연구하지 안하면 설교를 받을 수가 없다 말이오.

 하나님께서 소리로 말해 줍니까, 뭘로 말해 줍니까? 영감으로 말해 주는 데는  성경을 아는 자라야 성경 가지고 말해 주지 그렇지 않으면 말해 주지를 못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이 공연히 하는 게 아니라 그게 참 성경 연구 하는데 일학년  때에 그 기초 지식을 가지게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일학년에 그저 개 머래  먹듯이 이래 떡떡 씹어서 내트리고 이래 해 놓은 사람은 그 뒤에 그것을 새로  성경 연구하기가 아주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고 유다서 공부한 데서, 유다서 공부한 데에서, 제가 그런 사람 많이 봤어.

어떤 사람 이래 만나니까 나는 모르는데 이래 가지고 인사를 하면서 '제가  고려성경학교 때에 목사님이 가르치는, 다른 것도 가르 치고 했는데 유다서  공부를 제가 그때 안했습니까? 유다서 공부를 제가 참여했습니다. 지금도 그  노트를 가지고 있는데 언제든지 그 노트 가지고 지금 내가 목회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대해서 뭐이 깜깜하고 모르면 그 노트 가지고서-이제 성경을 보고 읽어  가지고 또 성경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 내가 몇 사람 봤어.

나는 그 사람 안면은 모르겠는데.

 이러니까 유다서 공부한 것을 요다음에 다음 학기초에 시험을 칠 것입니다.

그때 시험 쳐 백점 안 된 사람은 항상 거기에 머물러 백점 되기까지 그것 해야  됩니다. 배우는 것은 배우지마는 시험을 쳐서 합격 안 하면 공부한 것이 되지  않는다 말이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양성원에 졸업한 사람이 뭐 세계에 교역자로서 제일 일둥  교역자가 될 수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런데 너무 진리만 말해  주니까 그만 업신여겨 가지고서 안 된다 그거요. 자기가 모르니까 술술 지내보내  버렸으니까 그렇다 그거요.

 그런고로 지난밤에도 이 말씀을 했지마는 여러분 지금 시간 없으니까 내가  현재에, 현재에 자기가 현실을 당했을 때에 하나님의 뜻과 자기 뜻이 둘이  대립되어 있고, 영감과 자기 마음이 대립되어 있고, 또 하나님과 인간이  대립되어 있기 때문에 둘, 중에 어느 것이냐 하는 그것이 바로 그때 내 현실에  내게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그 뜻 안에영감이 들었고 영감 안에 하나님  들었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자기가 업신 여기지마는 하나님의 뜻 그 뜻이 전능의 능력을  가진, 이차 창조를 한 전능의 능력 전지의 능력을 가진, 이차 창조 성화를  일으킬 수 있는 그 능력입니다. 곧 진리요. 그게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진리로 우주를 일차 창조할 때에 우주를 진리가 만들었습니다. 진리가  만들도록 진리를 호령친 명령이 뭐이냐? 영감이 명령했습니다. 영감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자존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현재에 이리 하나 저리 하나 할 때 내 현재에 하나님의  뜻 이것이 전능의 능력인 줄 알고, 또 하나님의 뜻을 내가 취할 때는 그것이  영감을 영접하는 것이라. 영감을 소멸하지 안하고 영감을 영접한 것이요, 그것이  주님을 내 안에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현실에 자기가 아주 부드럽게 쉽게 업신여길 수 있도록 그렇게  하나님의 뜻이 버리면 버려지고 가지면 취하니까 아주 시뻐 보지마는 그거  뭐이냐? 하나님이 풍채 없이 도성인신하셔 가지고서 인간들에게 얼마든지 욕도  하고 버릴 수도 있고 뭐 뺨도 때리고 마음대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하나님이시오.

 인간에게 자비로 사랑으로 부드럽게 아주 외유한 겉어머리 유하고 유함을  거석해 가지고서 이래 왔는데, 이러니까 사도 요한이가 주님에게 이렇게 품에  이렇게 기대 눕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이랬지마는 나중에 즘 장성해 가지고서  밧모섬에 가 가지고 주님을 보니까 기절해 죽었다 말이오. 주님을 보니까 해와  같이 빛난다 말은 그분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조금 더 깨달아 알고 보니까 그만  그 자리 기절해 죽었습니다.

 기절해 죽으니까 주님이 와 가지고서 어루만져 권능으로 다시 위로를 하면서  "나는 처음과 나중이다. 내가 네가 그때 내게 기대서 눕고 할 그때 그 하나님이  내나 지금 하나님이다. 네가 그때 부인을 하고서 이와같이 말해야 뭐 집어던져  버리고 너거는 고기 잡으러 가고 어짜고 하 그때 그 하나님이 곧 내다. 네 눈이  밝아서 냥가 달리 보였지 내가 변해진 것 아니다. 내가 사망과 생명을 다 이긴  내다." 이렇게 말하고 위로를 한 것을 그때에 받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현재에 내게 온 이 하나님의 뜻이 이게 전능자요,  전지자요, 주권자요, 창조주요, 대주재요, 이가 하나님이시요, 자존자시요.

이러기 때문에 이분을 영접하는 것이 내 환경의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내 현재에 대한 하나님의 뜻 이 뜻이 세상을 지었소. 이 뜻이 이것이 내 뜻이  아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이 진리인데'이 진리가 세상을 지었소. 세상이  아무리 떠들고 큰소리 해도 그것은 이 진리가 지은 진리에게 지음을 받은  것들입니다.

 지음을 받은 것둘인데 내가 진리를 영접하려 하니까 이 세상이 어떻게 합니까?  진리를 영접하고 진리를 양보하지 안하고 영감을 양보하지 안하고 영감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모신 하나님의 전으로 이렇게 자기가 살려고 이러니까 세상이  와서 어떻게 합니까? 세상이 와서 몽둥이로 때리지. 세상이 와서 고문을 하지.

세상이 와서 마지막으로 말하면 죽이지.

 죽이면, 죽이면 그것이 세상이 죽였으니까 세상 차지가 됐습니까, 세상 차지가  됐습니까 그것이 완전히 하나님의 차지가 됐습니까? 어찌 됐소? 세상이 저거들이  잡아 가지고 감옥에 가서 이래 거석하고 하니까 세상 차지가 되어서 자기 몸과  생명과 소유는 세상에서 내어 줬다,  그러면 세상에게 내 줬으면 세상이 차지했습니까? 세상에게 내 준 것 아니오.

요걸 똑똑히 아십시오. 세상에게 내 준 것 아닙니다.

 세상에게 내 준 것이 아니고 이것이 말로 마음으로 행동으로 하나님의 것이라  이와 같이 하는데 하나님의 것이라고 이와같이 하는 그것을 세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것 아니다. 하나님의 것 아니다. 네가 아니다. 아니다.' 이러니까,  아니라고 해도 요동치 안하고 하나님의 것으로 딱 요렇게 하나님의 것으로  요동치 안하니까 그들이 박해를 해서 죽였다 합시다.

 죽였으면 죽인 그것이 뭣 된 것입니까? 죽인 그것이 마귀의 것 됐소, 이제는  죽였으니까 옥의 생명은 마귀의 것이 됐습니까? 죽임으로써 누구 것 됐습니까?  죽임으로써 완전히 하나님의 것 된 것입니다. 완전히 살아난 것이오. 완전히  하나님의 것 됐소. 완전히 진리의 것 됐소.

 아직까지 미결에 있는 진리의 것 된 것이 아니고, 미결에 있는 영감의 것 된 것  아니고, 미결에 있는 하나님의 것 된 것 아니고 완전히 하나님의 것으로서  완전히 완결, 결정이 나 버렸소. 결정이 나. 그러기 때문에 없어진 것은 완전히  결정됐기 때문에 마귀가 다시는 시험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세상과 마귀는 우리를 껍데기로 보면 박해하는 것 같지마는 그것은  무슨 역할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세상 마귀의 것 됐던 것을  하나님의 것 된다고 이러니까 하나님의 것인가 아닌가 이래 시험을 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것이 되도록 하려고 애를 써 가 지고서 마지막 완전히 하나님의 것이  되도록 하는 역꾼이라.

 따라합시다.

세상은! 우리를! 하나님의것 되게 하는! 역꾼이라! 역사하는 역꾼이라! 요것을 깨닫고 굳게 잡읍시다.

 그래 가지고 현재에 주님을 배척한 그것이 환난 때에 나를 도울 수 있는 그  하나님을 배척한 것입니다. 능력을 배척한 것이오. 현재 내가 하나님의 뜻을  영접한 것이 진리 영접한 것이요 영감 영접하는 것이 성령 영접한 것이요 하나님  영접이기 때문에 현재 영접한 그것이 보잘것 없고 사람들 보기에 그렇지마는  지극히 큰 능력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믿음으로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은  것을 너회들이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는다' 믿음으로 지극히 큰 능력의 보호를  입었다, 무슨 말이요? 자기 현실에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고 그 뜻을 배척하지  안하고 그 뜻을 인정하고 그 뜻에 따랐다 그말이오. 따른 그것이 지극히 큰  능력이 됩니다. 지극히 큰 능력이 돼.

 그런고로 우리는 현실에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배척하는 것이, 뜻을 배척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배척하는 것이 하나님 배척이요, 막바로 하나님 배척이오.

지극히 큰 능력 배척이오.

 그러기 때문에 현실에 내게 닥쳐오는 내게 오는 하나님 뜻이 환난 때는 그것이  뭣 했습니까? 하나님 뜻이 뭐 했소? 환난 때는 녜, 빛을 만들었지요. 환난 때는  빛을 만들지 안했소? 환난 때는 빛을 만들었소, 등불 만들었소.

 등불을 만들었는데 그 등불이 무엇을 했습니까? 신랑을 맞이하게 됐어. 내나  말하자면 지금 현실에 내게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그 뜻이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요 그 뜻이 신랑입니다. 그 뜻이 신랑이오.

 이러니까 현재에 이렇게 평소에 버린 것이 주님 버린 것이요 마지막에  결정되어질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한다 네가 신랑을 영접하느냐 영접 안  하느냐 하는 그것이 결정될 시기, 결정될 시기, 암만 평소에 그랬더란대도  마지막에 결정될 시기 등불만 들었으면 되는 것인데 등불만 들면 신랑 맞이할 수  있지마는 평소에 준비하지 안한 그 사람이 등불 든 사람이 있습니까? 억만에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어.

 그러면 등불을 들어야 할 때에 등불 드는 것이 뭐이냐? 진리와 영감을 하나님을  배반치 아니한 그것이 등불로 나타났다 말이오. 배반치 안한 것. 등불로  나타나는데 그 배반치 아니한 진리, 배반치 안한 진리와 배반치 안한 영감  배반치 안한 성령님이, 성령님이 그 환난을 통해서는 무엇으로 우리에게 이제  상관을 가지게 됐습니까?  그것이 현재는 영감이요 진리요 하나님의 뜻이요 영감이요 그저 성령님으로  나타났지마는 이제까지 그렇게 역사한 것은, 그렇게 역사한 것은 뭐이요?  신랑하고 중매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신랑하고 이래 결혼하도록 결혼 중매  역할을 했소.

 중매 역할을 했는데 밤중을 지내서는 그것이 무슨 역할합니까?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 영감, 성령이 밤중을 지내고 난 다음에는 그것이 무엇으로서  바꾸어집니까? 녜, 신랑으로 바꾸어졌습니다. 신랑으로 바꾸어졌소.

 오늘 내게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이다음에 환난 때에는 세삯을 이기는 능력으로  나타나고 세상을 이긴 그자는, 세상이 다 달라들어도 주님을 배반치 안하고 이긴  그자는 오늘 내게 나타난 하나님의 이 뜻이 영원이 내 남편으로 나는 그의  아내로, 남편으로 나의 신랑으로 해 가지고서 영원히 나의 모든 것을 다  책임지시는 신랑으로 이제 바꾸어 역사를 한다 말이오.

 지금은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그 역사를 하는 위에 있고 지금은 그대로  순종하게 하는 역할하는 위에 있다가서 이다음에 신랑의 위치로 바꾸어집니다.

이러니까 그것이 우리의 완성이기 때문에 그 날과 그 시를 모른다 그말이오.

 '그 날과 그 시를 모른다' 네가 준비하는 준비 기간도 언제 끝날런지 모르고  밤중도 언제 올런지 몰라. 밤중 거기에서 이제 받은 그 바라보던 진리와 영감과  성령이 신랑이 될 터인데 신랑 되느냐 이제 버리느냐 하는 그땡가 언제 올런지  모른다.

 그때에 네가 빛을 들어야, 그때에 진리를 배척하지 안해야, 영감을 배척하지  안해야, 그러기에 우리가 환난 때에 영감과 진리와 성령을 배척하지 안하면,  내나 영감은 영감 속에 하나님이 들었습니다. 진리입니다.

 내가 환난 때에 진리를 배척하지 안하고 영감을 버리지 안하고 진리대로  영감대로 내가 사는 것은 내게 진리로 와서 역사하고, 영감으로 와서 역사하고,  나를 중생시키는 역사를 했고 한 모든 하나님에게 속한 하나님의 요소가 내게는  이제는 신랑으로 영원히 내게 역사할 수 있도록 그렇게 승격된다 그말이오.

나와의 관계가 달라진다 그말이오. 달라지는 것.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됐으니 안에 내주합니다.

내주하지마는 역사의 성령으로서는 지금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 성령이 와서  우리의 심신의 기능을 살립니다. 심신의 기능을 지금은 살리는 것은 뭐이냐?  하나님의 신부되도록 하기 위해서 살리는 것인데 이 살릴 때에 살아 가지고서  장성하게 되면 결혼할 수 있다 말이오. 장성하면 결혼할 수 있어.

 장성하면 결혼할 수 있는데 결혼식에 떡 결혼식을 시작하려 하니까 등불 안  들었으니 등불 안 든 것이 무엇을 배척한 것입니까? 등불 안 든 것이 뭘  배척했소? 진리를 배척했어. 또 뭣 배척했소? 영감 배척 했어. 또 뭣 배척했소?  하나님 배척했다 말이요.

 하나님 배척을 하고, 하나님 배척하고 하나님에게 오니까 하나님 배척한  자이니까 하나님은 필연적으로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필연한 일이라 말이오. 누가 버려? 누가 버렸느냐 말이요? 성도가 주님을  버렸습니까 주님이 성도를 버렸습니까? 성도가 주님을 버리니까 버렸다는 것을,  네가 나를 버렸다는 걸, 그러기 때문에 너와 나와의 상관이 없다.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는 결말을 표시한 것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에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 막바로 신랑될 분이요  창조주이신 분이요 주권자이신 분이라.

이러기 때문에 자기 현실에사 아무리 강한 세상이 있어도 내게 지금 감화 주고  있는 그 영감과 내게 깨닫게 하는 그 진리, 이 진리가 내 주변에 어떤 강한  것이라도 그것들이 이가 창조한 것이라. 이에게 지음을 받은 것이라. 지음을  받은 것이라 이걸 믿는 것이 믿는 것인니다. 그러면 잘못 믿습니까? 잘못  알았습니까? 그게 거짓부리입니까? 아니오.

 바로 내게 대한 현실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 그 뜻이 우주를 창조한 그 진리요,  그 뜻이 환난 때에 세상을 이기게 하는 그 능력이요, 그 뜻이 영원히 남편으로  역사하는 신랑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고 믿어야 됩니다. 믿어야지 안 믿으면  소용없어.

 이래 놓으니까 참 아는 줄 알았는데, 나는 이번에 양성원 학생들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이거 이래도 뭘 알고 이렇지?' 했더니마는 가서 가르쳐 보니까  아무것도 아니라.

 이런데 이번에 유다서 그것을 백점을 맞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그건 내가  가르친 그만하면. 다 백점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그걸 꼭 익혀서, 필기는 다 못  했는지 몰라도 거기에서 필기해서 말로 해도, 말로 해도 자기가 묵상을 하지  안했으면, 거기에서 묵상을 했으면 그게 그건데, 묵상을 했으면 나타나게 될  터인데 내가 똑 입으로 말하지 안해도 그 벌써 그걸 아는데 영감으로 같이 통해  가지고서 그게 그거니까 그것을 묵상한 사람은 답을 할 수 있을 거라 말이오. 그  지식적으로, 지식적으로 날뛰는 사람은 하나도 답을 못 하도록 될런지도 모른다  말이요, 문제 내는 것이. 그런고로 진실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왜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못하느냐? 밖에 있는 것이 세력이 강하고  하나님의 뜻은 약해 보이고 그거는 강하다 보이기 때문에 이것이 눈이 어두운  것이요 믿음이 없다 말이오. 현재 내게 온 하나님의 뜻은 그 뜻이 모든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요. 창조의 능력이오. 이걸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십 분 기도하고 난 다음에 권찰회 모입니다.

 안 믿으면 소용없어. 지식으로만 가진 사람은 그래. 이것 믿을 때에 자기가  믿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이 시간에 믿는 믿음은,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할 때에 독침 앞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공산주의 고문과 고행  앞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이제 그때에 공산주의가 내 눈을 뺄 때에 그때  하나님의 뜻이 내게 나타나고 영감이 나타나는, 내 마음은 영감으로, 내 행위는  하나님의 뜻으로  요렇게 하는 그것이 막바로 신랑을 영접하는 것이요. 그때 내 눈 빼는 세상이  만일 공산주의가 내 눈을 뺐습니다. 공산주의가 내 눈을 뺐으면 공산주의가, 내  눈을 차지했습니까, 내 눈을 완전히 영원한 하나님의 것을 만들어 하나님 안에  있는 영원한 내 눈으로, 완전한 내 눈으로 하나님의 신부의 눈으로 완전히  변화를 시키고 승격을 시켜서 완전을 만들었습니까 그들이 내 눈을  가져갔습니까?  뺏들어 갔소? 하나님의 것, 생명의 것, 썩은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더러운 것이 깨끗한 것으로서,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이렇게 바꾸는 역사를 하는 데에 그들이 조력해 가지고서 역사를 한 데  역꾼들입니까 그들이 차지했습니까? 자 차치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그들이 다 썩은 것들이기 때문에 산 것들의 역꾼은 되지마는 산  것들이 저희 주요 왕인데 어떻게 차지합니까? 차지 못 합니다. 산 것은 죽는데  이르지 못합니다. 거룩한 것은 썩는데 이르지를 못합니다. 죄가 없는데 어떻게  그걸 차지하겠습니까?  그것이 다 우리를 하나님의 것 우리 구원을 완성되도록 조력하는 모든 조력의  것 모든, 조력꾼들로 확신이 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조력꾼입니다.

요걸 똑똑히 구별해야 됩니다.

 십 분 기도한 후에 권찰회 모이겠습니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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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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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 열처녀.영감의 진리 마련순서/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830708금새 선지자 2015.12.07
669 열처녀비유-기름준비/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860328금야 선지자 2015.12.07
668 열처녀비유-환난 준비-기름 준비/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860330주후 선지자 2015.12.07
667 열처녀비유-환난 준비-기름 준비/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860330주전 선지자 2015.12.07
666 영죽을 과 영죽은/ 고린도전서 15장 37절-39절/ 880609목새 선지자 2015.12.09
665 영감 신앙/ 마태복음 16장 24절-25절/ 840614목새 선지자 2015.12.09
664 영감과 진리 안에/ 디모데후서 3장 16절-17절/ 831018화새 선지자 2015.12.09
663 영감과 진리로 살아난다/ 요한복음 3장 5절-8절/ 831017월새 선지자 2015.12.09
662 영감과 진리의 능력/ 디모데후서 3장 16절-17절/ 831019수새 선지자 2015.12.09
661 영감과 진리의 능력/ 요한복음 15장 1절-14절/ 830703주전 선지자 2015.12.09
660 영감도리 순종생활/ 마태복음 16장 15절-17절/ 791208토새 선지자 2015.12.09
659 영감된 사람/ 마태복음 16장 13절-28절/ 840610주전 선지자 2015.12.09
658 영감된 사람/ 마태복음 16장 13절-26절/ 840613수야 선지자 2015.12.09
657 영감론/ 디모데후서 3장 15절-17절/ 850805월밤집회 선지자 2015.12.09
656 영감론/ 디모데후서 3장 15절-17절/ 1985. 8. 6. 화새집회 선지자 2015.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