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처녀비유-기름준비

 

1986. 3. 28. 금밤

 

본문:마태복음 25장 1절∼13절 그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1절에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하는, 같다 하리니 하는 이 말에서 이 말씀은 비유라 하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이 말씀은 비유입니다.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하는 이 말에서 이 말씀은 비유라 그렇게 우리가 확정을 지을 수가 있습니다.

비유는 어떤 그 실상을 그와 비슷한 것을 가지고 알기 쉽도록 나타내고 있는 것이 비유입니다. 그러기에 비유는 그림자라고 하면 비유는 나타내고 있는 그 사실은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언제든지 비유로 나타내는 그 내용은 비유보다 더 정확하고 권위 있고 실상인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비유에는 이러하지마는 참 그렇겠느냐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비유가 이러하거든 하물며 그 실상이겠느냐? 비유가 이러하거든 그 실상은 얼마나 비유의 내용보다 더 실상이고 정확하고 세밀하겠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면 사는 생활이 되겠고 비유로 이래 했지마는 실상이야 이러하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그 사람은 후퇴해서 타락하는 사람의 견해가 되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우리들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또 모르고 있는 점이 많습니다. 열 처녀 비유를 오늘까지 세계 교회가 내려오는 교리와 신조의 모든 전통들은 다 다섯 처녀는 지옥 간 처녀요 다섯 처녀는 구원 얻은 처녀라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 오늘까지의 모든 세계의 교리요 신조입니다.

그런데, 이 열 처녀는 다 구원 얻은 처녀인데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영광 있는 구원을 얻었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부끄러운 구원을 얻었다 하는 이 해석을 가진 것을 어느 노회에서 - 사실인 즉은 내가 잘 모릅니다 - 사십여 교회에 교역자들이 모인 그 노회에서 이 말이 나 가지고 그것은 전통을 깨기 때문에 그런 자는 죽여 버려야 된다 하는 그런 말들이 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깊이 수천 년 동안 내려오면서 파묻혀 있는 이 교리를 사람들이 오랫동안 모든 전통 또 정통 모든 성경학자들이 다 이렇게 깨달음을 가지고 해석하고 있는 이것을, 사람들이 이렇츰 깊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이 교리를 바로 알기도 어렵고 여간 안다 할지라도 이렇게 너무도 강한 전통이 이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전통을 꿰뚫고 나오지를 못해서 그대로 그만 삭혀 버리고 지내간 그런 일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누가복음 19장 5절에 보면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데 거기에 그 삭개오라 하는 사람이 하나 있어 가지고, 아무리 예수님 뒤를 따라봤자 앞선 사람 뒷꼭지나 따라가지 예수님은 만나 보지 못하게 되는 그 일에서 만족하지 아니하고 아무래도 주님이 만나 봐야 되지 여게 있는 수천이 모여 있는 이 사람들이 뒷꼭지나 등어리나 그거나 뭐 보고야 무슨 소용 있겠느냐 하고서 아무래도 주님을 만나봐야 하겠다고 하는 그 욕망에서 예수님이 가는 방향으로 앞서 가 뽕나무 위에 올라가 가지고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그 위에서 내려다 보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라니까, 예수님께서 거게 도달해 가지고 주님이 위를 쳐다보니까 뽕나무 위에 삭개오가 앉아 있는데 그 삭개오는 그 전에 주님은 모르는 사람이요 한 번도 보지 안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이라니까 삭개오는 놀랬습니다. 자기를 알지도 못하는 주님이 이름을 부르지 또 속히 내려오라고 하니 얼마나 좋았던지 그저 참 뭐 날다시피 급하게 뛰어서 내려왔습니다. 모든 대중들도 저 삭개오는 순 쌍놈 그 세리인데 저걸 속히 내려오라고 하니 그것도 이상하다. 또 저 삭개오하고 어떻게 주님을 그전에 알았던가 하는 것도 또 의문이 됩니다.

그런데, 내려오라 내가 오늘밤에 너거 집에 자겠다, 너거 집에 유하겠다 하니까 모든 사람이 더 놀래서 발칵 뒤지어졌습니다. 그 이상하다. 대제사장이나 서기관이나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집 교인들이나 그런 모든 신앙에 위인들 집에는 유숙한 일이 없고 항상 거기 계시면 산에 가든지 베다니에 가든지 가시지 그들 집에는 가지를 안했습니다. 안 가시면서 사람들을 알기 때문에 그들의 집에 가서 거처하지 안했고 사람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안한다고서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랬는데 삭개오는 주님이 얼마나 좋아하셨든지 삭개오야 급히 내려오라 이렇게 부르셨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뭐 때문에 그렇게 했는가?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이 저 안에 계시련 하고서 그저 앞에 사람 뒷꼭지만 보고 그저 뭐 줄줄 따라다니다가 무슨,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나 먹여 주니까 그런 거나 먹을까 또 병이나 나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따라다니고 예수님을 만나 보고자 하는 그런 높은 그 포부를 가지지 못하고 돌아다니는데 이제 이 삭개오는 앞질러 가 가지고 주님을 만나 볼라고 하기 때문에 그 모든 사람을 줄줄 따라가지 안하고 자기는 아무래도 주님을 만나 봐야 되겠다 하는 고 욕망을 가지는 그것을 주님이 귀하게 보시고 그렇게 불러 내리신 것입니다. 그라시면서 너희 집에 오늘 밤에 구원이 이르렀다 또 이 큰 말씀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은 우리가 삭개오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오늘까지 수천 년 동안 교리와 신조가 내려온 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마는서도 성경은 정확 무오하기 때문에 그대로 믿고 성경에 대해서는 뭐 별 다른 생각을 가지지 안하고 정확 무오하기 때문에 성경대로 믿고 행하고 이루어질라고 애를 쓰지마는서도 사람들이 이런 깨달음 저런 깨달음 가진 그것은 사람들이 깨달아 가지고 우리 선조들이 깨닫고 선배들이 깨달은 그 깨달음만 가지고 만족하고 항상 그 깨달음 뒤에 줄줄 따라다녀서 벌써 묵은 둥치가 돼 가지고 새 잎은 하나도 없고 그러니까 꽃도 열매도 맺을 수 없는 그 묵은 둥치만, 묵은 둥치와 같은 이 교리와 신조만 붙들고 있고 생명된 이 신앙이라든지 새로운 이제 영감이나 참 주의 역사를 찾아 만날라고 애쓰는 그런 것이 없는 사람들이 모든 대중들과 같고 이제, 이제까지 내려온 교리와 신조는 그대로 믿을지라도 이 교리와 신조는 벌써 여러 수십 세기가 지내갔기 때문에 오늘 벌써 이십세기에서는 원자니 전자니 하는 세상도 이렇게 많은 발달을 가지고 있는 이때는 옛날 수백 년 전에 깨달은, 이 시대에는 너무 해당 없는 그런 묵은 둥치 같은 그런 교리와 신조만 믿고 줄줄 따라다니는 그런 것으로 만족하지 안하고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영감 시켜 주시는 것이 무엇이며 오늘 시대에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인도하시는 복음이 무엇이냐 하는 그것을 찾는 사람이 삭개오와 같이 주님 앞에 사랑을 받을 사람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게 열 처녀 비유에는 처녀는 여게 보니 약혼은 해 놓고 결혼할 준비를 하고 있는 그 과정에 있는 처녀들을 가리켜서 여게 열 처녀라 이렇게 비유를 했습니다.

그러면, 그 열 처녀는 누구를 비유한 것인가? 그것은 택함을 입고 벌써 주의 세 가지 은혜로 중생된 성도들이, 중생된 성도들이 주님으로 더불어 결혼하는, 주님으로 더불어 결합하는 이 결합을 앞두고 만반에 준비를 해서 그 혼인 잔치 때에 혼인에 참여해 가지고 신랑으로 더불어 결혼하는 이 욕망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 모든 성도들을 비유해서 여게 열 처녀라 그렇게 비유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열 처녀 가운데에 다섯 처녀는 혼인 잔치에 들어가서 결혼식에 참여를 했고 다섯 처녀는 결혼식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참여하지 못하고 밖에 쫓겨났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믿는 중생된 사람이라면 다 주님으로 더불어 이 결혼되는 것을 소망하고 있지마는서도 이 결혼 이것이 되는 사람도 있고 안 되는 사람도 있다 하는 것을 여게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주님 되신 것은 첫째로 창조적으로 우리 주님이 되셨고 또 우리를 심판하시는 심판의 주님이 되셨고 또 우리를 대속하신 대속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심판의 주님으로 타락만 하고 그 다음에 대속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다 같은 지옥에 가서 멸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입니다. 이래서 창조의 하나님으로, 심판의 하나님으로, 거게서 우리를 대속하신 대속의 주님으로, 그 다음에는 중생시켜 주신 중생의 주님으로, 그 다음에는 역사 구원인데 곧 성화의 주님으로 이렇게 우리가 영접해 가지고서 영원 무궁토록 동거 동행하는 이 주님으로 모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창조의 하나님의 순서도 거쳤고 타락의 정죄의 하나님의 순서도 거쳤고 대속의 하나님의 순서도 거쳤고 우리가 중생의 주 하나님의 순서도 우리가 거쳤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우리가 어떤 단계를 가지고 있는고 하니 성화구원의 단계 곧 역사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하는 단계에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영감도 기록 영감, 성경 기록 영감이 있고, 성경 안에 있는 내재적 영감이 있고, 또 우리 안에 내적 조명의 영감이 있고, 우리를 중생시키신 중생 영감이 있고, 그 다음에는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 역사 영감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서 너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하는 그 말씀은, 문 밖에서 기다리는 것은 벌써 영은 중생했기 때문에 영 안에는 와서 계시지마는서도 아직 마음과 몸에는 건너오지를 못하셨기 때문에 우리 중생된 영 안에서 이 심신에 건너오실라고 지금 심신을 두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심신을 두드리고 있는데 주님을 영접해 들이면은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뜻을 다 이루시고 우리는주님을 통해서 다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을 가리켜서 서로 먹는다 이렇게, 양식을 먹는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중생 구원은 다 얻었는데 여게 혼인 잔치에서 결혼이 되고 안 되는 그 문제를 우리가 좀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에 곧 주님은 신랑이시요 우리는 신부입니다. 이런데 교회는 신부인데 이 세상에서 신랑 신부가 있으니까 신랑 신부 그것은 실상으로 있는 것이요 이 교회와 주님과의 그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이렇게 한 것은 하나의 비유라고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느 것이 실상이며 어느 것이 비유며 어느 것이 하나의 모형인가, 어느 것이 실상이고 어느 것이 모형인가? 주님과 교회와의 관계의 이 신랑 신부는 실상이요 사람들의 남녀의 부부의 신랑 신부의 결혼은 실상은 모형한 한 모형입니다. 그 실상을 나타내는 하나의 형식 계시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다 타락해서 그만 부부라면 부부의 모든 중요한 뜻은 다 버려 버리고 부부라면 마치 암 염소 수 염소 두 마리가 서로 교미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인생들도 부부라면 단 교미하는 이것만으로 전체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 이런 비유를 말하면 삐뚤어져 나가기 때문에 이 사실을 우리가 가르치는 것도 그렇게 강단에서 많이 가르치지를 안하고 또 듣는 사람들도 겸연쩍게 듣기 때문에 다 그런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성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와의 교회는 신부요 또 주님은 신랑되신 것은 다만 우리의 그 신랑 신부의 관계와 다른 것이 있는 것은 어떤 것이 다른 것이 있느냐? 주님은 무형의 존재의 완전자이시요 또 우리는 창조함을 받은 피조물인 존재인 것입니다. 또 주님과 우리 사이에는 육이 없기 때문에 육의 남녀 동침하는 거와 같은 그런 동침이 없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은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하셨지마는서도 무슨 동침해 가지고서 잉태한 것 아니고 성령으로 잉태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잉태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과 우리와의 이 결혼하는, 이 신랑 신부의 부부 사이에서 마치 육체로서 부정 모혈로 자녀가 나는 거와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우리들을 통해서 주님과 우리에 두 합한 이 사이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거게서 출생이 납니다.

생산이 납니다. 소생이 나는데 그게 뭐이냐? 그것이 믿음의 아들인 것입니다.

믿음의 자녀인 것입니다.

이래서,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 믿음의 자녀가 나는 것은 주님의 피공로와 성령님과 진리와 곧 내가 믿는 믿음의 행위와 둘이 결합이 돼 가지고 우리의 믿음의 자녀를 낳아서 그것이 차차차차 번식해 가지고 오늘 교회에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신자들이 생겨진 것입니다.

그런데, 부부에 대해서 잠깐 좀 간단한 시간에 조금만 소개하겠습니다. 우리 이 인간의 부부에서 하나님은 신랑이시요 우리 교회는 신부요 또 이 세상은 간부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간부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남녀가 결혼을 하는데 요새는 지금 죄악이 관영해서 부부라는 제도가 다 흐미하게 돼 버렸습니다. 이래서, 요새 사람들은 이 속화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부부의 그 정의라는 것을, 부부의 정의라는 것을 모릅니다.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부의 정의를 모르는 사람들은 주님과 우리와의 이 신랑 신부의 결혼이라 하는 데 대한 그 정의도 깨닫기가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변질된 이 타락한 부부의 이 관계를 말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은 정상적인 부부의 관계를 지금 간단하게 말하겠습니다. 첫째로는ㅡ우리하고 신랑 신부라 하니까 육덩어리 그 생각, 음란한 세대가 돼 놓으니까 육덩이 그 생각만 가지고 있으니까 이 진리가 속에 들어가지를 않는다 그 말이오. 주님과 우리와 결혼 안 되면 헛일입니다. 택한 자라도 결혼 안 되면 불쌍하고 비참합니다.

그러면, ‘교회로 말하면 수십억 수백억도 넘을 터인데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까 하나님은 그라면 일부 다처의 주의로구만. 남편은 하나고 아내는 그렇게 수없이 되니까 일부 다처다.’ 고런 거나 계산 대고, 고런 것이나 계산 대고 외나 여게서 나타내고 있는 진리는 모르기 쉽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 진리를 바로 듣지 안하면 헛일이오.

지금은 그 일들이 없지마는서도 옛날 군왕 시대, 임금이 있는 그 군왕 시대에는 어찌 됐던가? 임금이라면 임금은 삼천 궁녀를 둔 사람이 있다 이랬습니다. 삼천 궁녀를 뒀다 이랬습니다. 삼천 궁녀라는 말을 들은 사람 손들어 봐요. 삼천 궁녀라는 말을 듣는 사람 손들어 봐요. 꽤 많다.

삼천 궁녀는 어떤 건고 하니 왕으로 더불어 약혼은 됐는데, 왕으로 더불어 약혼을 했습니다. 아무 문중에 아무것이의 딸 몇 살 먹고 어떤 사람인데 그 사람이 도덕이, 지능이, 모든 용모가 다 아름다우니까 이분은 왕의 아내 황후가 될만 합니다. 황후가 될만 합니다 하면서 추천을 합니다. 이래 추천을 할 때에 그라면 저게서 ‘좋다’ 이렇게 답이 나옵니다. 왕에게서 추천할 때에 `좋다' 이렇게 하면 허락이 났습니다. 그러면 그게 약혼입니다.

약혼이 되면은 그 삼천 명이나 되는 가운데서 왕이 이렇게 이리저리 살펴보고 조사해 보고, 그저 뭐 만나 볼 여가는 없지마는 잠깐 이렇게 살펴보고 난 다음에 한 사람만 황후로 택하고 나머지기는 전부 궁녀로 둡니다. 궁녀라면 그 왕으로 더불어 벌써 한번 혼사 말이 있었고 약혼이 되다시피 됐기 때문에 그 처녀는 다른 데 시집을 가지 못합니다. 시집을 가면은 왕으로 더불어 이렇게 약혼하다시피 한 그 처녀가 딴데 시집가는 것은 그 왕에게 대해서 범성을 하는 것이라고 해 가지고서 사형을 시켜 버립니다. 그 처녀만 죽이는 게 아니라 그 문중까지 죽여 버립니다. 문중 삼 문중을 죽입니다. 외가 집 자기 친척집 이래 가지고서 또 결혼해서 딴데 갔으면 그 간 집 삼 족을 멸하기 때문에 한번 그만 그래 딱 정해 놓으면은 다시 그 여자는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독신으로 살되 제 마음대로 살지 못하고 그 왕이 있는 궁중에 삽니다. 궁중에 사니까 다른 사람 보기에는 궁중에 사니까 복있는 사람으로 보지마는서도 궁중에 사나 왕은 평생 한번 만나 보지도 못하고 왕으로 더불어 동침이나 그런 일은 없습니다. 평생 거게서 궁녀로 삽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궁녀라고 말하고 왕으로 더불어 결혼한 사람을 가려켜서 황후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 궁녀들이 거게서 못 견뎌서 도망을 갈라고, 못을 파놓고 이래 있는데 못 물 밑으로 도망하다가 잡혀서 죽고 또 밤에 어떤 사람을 거석해 가지고서 이렇게 성을 넘겨서 도망치다가 죽은 사람 많습니다. 거게 많은 사람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만 탈출하면 사형입니다. 이러니까 탈출도 못 하고 사형하기 때문에 다 죽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궁녀입니다. 다만 결혼한 것은 황후고.

황후는 이제 결혼이 되면은 어찌 되느냐? 결혼이 되면은 아내의 나쁜 것이나 좋은 것이나 그것이 다 남편의 것이 되고 남편의 좋은 것이나 모든 것이 다 아내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소유는 두 사람이 공동 소유가 아니라 단일 소유입니다. 두 사람은 한 사람이 돼 가지고, 두 사람은 하나가 돼 가지고, 이래서 재래 우리나라에서는 ‘부부 일신이라’ 부부는 한 몸이라. 부부 일신이라 그렇게 말했고, 성경에는 에베소서에 두 육체가 한 몸이 됐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두 육체가 한 몸이 됐다 말은 두 부부에서 한 자녀 났다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닙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두 사람이 두 사람의 육체의 구원을 이루었지마는, 두 사람이 두 사람의 육체 구원을 각각 이루었지마는, 심신의 건설구원을 이루었지마는서도 결혼하고 난 다음에는 건설구원이 하나라 말입니다.

건설구원이 하나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육체는 둘이지마는서도 건설구원은 하나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이렇게, 결혼이 되면은 한 몸이 됩니다. 주님과 우리와의 하나가 됩니다. 언제나 주님은 창조주시요 우리는 피조물이지마는서도 주님과 우리와의 하나되는 것이 첫째로 이 결혼입니다. 하나되는 것. 하나되는 것이 결혼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주님의 모든 것이 다 신부의 것이 됩니다. 주님의 모든 것이 다 교회의 것이 됩니다. 그분의 지혜나 능력이나 영광이나 존귀나 모든 소유나 권세나 그 모든 것은 다 교회의 것이 되고 맙니다. 신부의 것이 되고 맙니다.

또 이 신부의 저질러 놓은 모든 나쁜 것이 다 신랑의 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결혼하고 나면은 벌써 그 성도의 어떤 것이든지 모든 부족한 거 모든 나쁜 거 모든 것을 다 주님이 책임을 다 지시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것이 주님으로 더불어 결혼하는 것입니다. 다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동거하고 동행하고 또 영광도 하나이고 수치도 하나입니다. 우리가 신부된 자가 수치스러운 일을 했으면은 신부만 수치스럽고 신랑에는 수치가 안 되는 게 아니고 신부가 수치스럽게 되면은 신랑 되신 주님에게 수치가 됩니다. 또 주님에게 영광된 것이 신부된 교회의 영광이 됩니다. 교회의 영광이 되면 그것이 주님의 영광이 됩니다.

이래서, 영광도 하나요 거처도 하나요 몸도 하나요 소유도 하나요 권세도 하나요 지혜도 하나요 능력도 하나요 먹는 것도 하나요ㅡ먹습니다ㅡ누리는 것도 하나요 모든 행동도 하나요 대우도 하나요, 꼭같은 하나로 대우 받습니다. 이것이 오늘 사람들이, 요새 타락한 이 부부는 부부가 없어. 이 썩었어. 전부 결혼한 거 다 썩었기 때문에 지금은 이거 가지고는, 지금 말하면 몰라. 지금 말하는 사람은 몰라요. 지금 말하는 사람 이거 이 부부의 뭐 부부 일신이니 또 부부 유별이니 하는 그런 말을 지금은 전연히 모릅니다. 썩은 ‘사랑 사랑’ 배암 사랑 이놈만 가지고 취해서 다 뒈지고 말지 너무 기가 차고 불쌍하다 그 말이오.

이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하고 우리하고 뭐 동침하는 거 아니요. 하나님하고 우리하고 성교하는 것 아니요. 하나님은 완전자이신데 우리가 뭐이 되겠소? 다만 하나님의 그 완전하심과 우리의 불완전함이 합해서 하나되는 것, 우리의 모든 더럽고 부족한 모든 것을 당신이 다 책임지시는 거, 당신의 모든 것이 다 우리의 것 되는 것, 우리의 모든 더러운 것이나 좋은 것이나 다 당신의 것이 되는 거, 이래서, 둘이 합하여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되는데 그러면 둘이 합해서 하나가 되면은 주님하고 우리하고 밥을 비빔밥하듯이, 이거 물하고 술하고 섞는 것처럼 그래 되는가? 언제든지 주님은 창조주시요 주님은 완전자시요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이나 예수님의 피공로로 말미암아 이것이 결합이 되기를 이렇게 부부와 같이 이래 결합이 되는 것입니다.

결합이 돼서, 그러면 결합이 되면은 우리의 당한 일이 주님의 당한 일이요 우리의 패전이 주님의 패전이요 우리의 실수가 주님의 실수요 주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요 우리의 모든 고통당할 것을 주님이 고통당하시고 그러면 주님과 우리와의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존귀하고 얼마나 영광스럽고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이것도 자꾸 느끼고 느끼고 뭐 평생 느껴도 느낄 수 없는 일을 이거 그저 허투로 휘떡 지내 보내고 만다면 이거 참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이거.

이런데, 그거 다 말할 수 없지마는서도, 세상에 있는 것들은 자연 계시입니다.

세상에 있는 이런 저런 모든 그런 역사적인 그런 것들을 가지고서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해석해 주는 것을 가리켜서 자연 계시라 그렇게 말합니다. 자연 계시는 하나님의 창조와 모든 하나님의 섭리와 모든 인간들의 이런 저런 형태들의 그런 모든 구조 이런 것들을 가리켜서 자연 계시라 하는데 그런 것이 주님과 우리 사이를 잘 가르치고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말한 대로 삼천 명이나 됐지마는서도 황후는 하나뿐입니다. 그 삼천 명은, 궁녀는 그 궁녀 됐다고 좋은 게 뭐 있습니까? 물론 먹기야 잘 먹습니다. 먹기는 잘 먹지마는서도 거게서 뭐 자녀를 낳을 수가 있습니까? 남편이라고 한번 동침을 할 수가 있습니까? 구경을 합니까? 그저 한번 왕으로 더불어 약혼한 것뿐이지 그 뒤에는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는 것이 낫지 사는 것만 같지 못하기 때문에 거기서 죽은 사람들도 많고 이제 죽기는 그만 죽으면 싶으지마는서도 죽으면 ‘이것이 지금 이 자리를 만족지 안해 가지고 죽었으니까’ 하면은 그만 그 삼 족이 멸해지기 때문에 그게 문제라. 그러니 죽지도 못하고. 이건 죽지도 못하고 이래도 저래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걸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볼 때 ‘야, 하늘나라에 가면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다고 했는데 그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서’ 지옥을 갈라 해도 못 갑니다. 택한 자들은 지옥을 갈라 해도 절대 못 갑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절대 못 갑니다.

하나님보다 능력이나 크면 지옥갈까 몰라도 택한 자들은 좋으나 하잖으나 하늘나라서 살아야 되지 딴데 못 갑니다. 그러면 거게서 가 가지고서, 주님으로 더불어 결합 없이 살라 하면 그 얼마나 기차겠소? 얼마나 기차겠습니까?

요거 잘 알아야 됩니다. 이 열 처녀 비유가 우리의 그 모두 다 요긴한 말씀이지마는서도 교리와 신조에 대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 이것을 팍 파묻어서 다섯 처녀는 구원 얻고 다섯 처녀는 다 지옥 갔다 이라니까 교회 다니는 사람은 우리는 다 슬기 있는 다섯 처녀에 속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뭐 상관없다 이렇게 마구 쓸어 문대 버리고 마니까 얼마나 기가 찹니까? 이 우리가 전력을 기울일 것이 여게 있습니다. 전력을 기울일 것이 여게 있어.

다섯 쳐녀는 결혼식에 참여해서 결혼을 했고 다섯 처녀는 약혼은 됐지마는 결혼식에 참여하지 못해서 결혼을 못 했습니다. 삼천 궁녀와 같은 자입니다.

이런데 비유로 말하면 그 세상에서 삼천 궁녀의 그런 역사적인 그 현실들이 지나갔다는 것을 말하지 하늘나라도 삼천 궁녀 모양으로 그렇게 비참하고 가련한 그 불쌍한 구원이라 그렇게는 내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성경에 말하기를 자기의 공력이 불타면 구원 얻었으나 불 가운데서 구원 얻는 거와 같다 했으니까 불 가운데 그 구원을 어떻게 해석을 해야 될런지, 그 해석은 분명이 나옵니다. 나오지마는 그것을 사람들에게 말해 주지를 못합니다.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다는 그 구원을 해석은 할 수 있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구원을 얻되 벌거벗은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벌거벗은 구원. 벌거벗은 구원이라고 거게는 뭐 도덕도 입은 것이 없지 지능도 입은 것이 없지, 전부 주님의 걸 다 입어 있는데. 세상에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하는 것은 하나님으로써 자기의 전신 갑주를 입어서 하나님을 입고 사는 사람인데, 하나님의 전지를 입고 살고 전능을 입고 살고 하나님의 그 주권을 입고 살고 이 모두 입고 사는 것인데 하나도 못 입었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벗은 자들로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 고통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간단하게, 이제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서 벗은 자들도 있다 그러기 때문에 벗은 자들로 나타나지 안할라고 바울이 밤낮 탄식을 하고 무거운 짐진 거와같이 늘 마음이 눌려 있었다. 또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같이 부끄러운 구원을 얻게 된다. 또 하늘나라에서도 지극히 작은 자가 있다 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가 있다 이렇게 말씀했다 말이오.

이렇게, 이런데 우리는 다 택한 자이지마는서도 이 결혼이 돼야 되는데 결혼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결혼은 여게 말하기를 주께서 어느 때 어느 시에 오실런지 모르니까 너희들은 깨어 있으라 이라니까 우리는 결혼식이 한 번 밖에 더 있습니까? 이 결혼식이 한 번밖에는 없지요? 한 번밖에 없지마는서도 주님과 성도와의 결혼식은 여러 수백 번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주님과 성도와의 결혼식은 여러 수백 번 있습니다. 수백 번.

주님과 성도와의 그 결혼식이 수백 번 있다 말은 주님과 성도와의 이제 말한 대로 부부는 한 몸이라, 한 뜻이라, 한 영광이라, 한 소유라, 한 능력이라, 한 지혜라, 한 영광이라, 한 지위라, 한 행동이라 하는 이 결합이 말이요, 이 결합이 수백 번 있습니다. 이 결합이 수백 번 있습니다. 이 결혼 결합이 수백 번 있습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은 요 면은 주님하고 하나가 됐지마는서도 저 면은 주님하고 상관이 없습니다. 경제면은 하나가 됐으나 모든 자기 행동면은 상관이 없다.

행동면에서도 그 사람은 말은 주님과 하나가 됐지마는서도 마음은 주님과 하나가 되지를 못했다. 여러 가지 각도.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이 심신은 단일체가 아니요 종합체입니다. 종합체이기 때문에 좀 전에도 언제 양성원 학생이 저한테 묻는데 심신은 이 단일성 단일체가 아니요 종합체라고 말하니까 이해가 되는 갑습디다. 이런 것도 뭐 성경에 종합체니 뭐 단일체니 하는 그런 거 없습니다. 없는데, 그래도 또 성경에 찾아보면 깊이 찾아보면 또 다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런 것은 줄줄 봐 가지고는 도저히 모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단단히 살피고 성경을 상고하면 알게 될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심신의 종류는 그 개체가 여러 수천 수억의 개체로 되어 있는데 그 개체로 되어 있는 것이 다 개체로 되어 있으면은 이거는 이 개체 이 개체 그런 게 아니고 본질 본성이 꼭 같습니다. 꼭 같소.

여러분들 양성원 때에 그 공부할 때 보니까 뭐 세포에 대해서 공부하데요. 요번에 좋은 거 배웠는데 그 세포는 고 세포 하나도 개체입니다. 개체의 생명을 가졌습니다. 또 개체의 지능을 가졌습니다. 또 개체의 속성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고 개체가 전체인 그 본체와 꼭 같은 동질 동성 동본 또 동생명 동지능, 형체도 같고 성질도 꼭 같습니다. 그게 틀리면, 그게 틀린 것이 하나 있으면 그게 뭐이냐 하면 암균, 바이러스균이면 바이러스균, 그게 병균이 돼 가지고서 고장을 일으키고 마는 거라.

하나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런 것이 다 자연 계시요. 이러기 때문에 성도들이 억억만 명이 있어도 억억만 명이 한 분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을 똑 닮은 거 그분과 하나된 고것이 돼 가지고서 하늘나라 가지 하나님과 이질된 것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태워 버리고 맙니다. 그런 것이 가면 하늘나라가 다 병들 것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는 그분과 이질이 됐기 때문에 이 사망이라는 것이 생겨진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결합이 한 번만 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번 결합이 되는 데 결합이 됐으면 결합된 부분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입니다. 영원히 하나입니다.

영원히 하나라서 권위도 지혜도 영광도 존귀도 행락도 모든 것이 하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결혼식이 언제 이루어지는가? 요 비유가 간단하지마는서도 주님으로 더불어 결혼하는 그 혼인 잔치가 언제 이루어졌느냐? 낮에 이루어졌느냐 초저녁에 이루어졌느냐? 밤중에 이루어졌습니다. 밤중에 신랑이 온다 이랬어. 밤중에 신랑이 오니까 맞으라 이랬습니다. 밤중에 이루어진다 이랬습니다.

이것은 뭐를 가리켜 말한 것인고 하니 우리가 이런 면의 신앙을 지키든지 저런 면의 신앙을 지키든지 신앙을 지키는 어떤 면이든지 그 면이 신앙 지킨다고 그만 그 신앙 지키는 그것으로서 주님하고 나하고 결합이 되는 것이 아니고, 주님과 나와 결합되는 것이 아니고 그 신앙을 지켜 나가는데 그 종류의 면, 그 종류의 면에 신앙을 지켜 나가는데 그 신앙에 절정이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그 신앙의 절정이 있소. 그 신앙의 한 고비가 있다 말입니다. 신앙의 고비, 그 신앙의 잿만당, 신앙의 절정, 신앙의 고비, 제일 그 신앙을 지켜 나가는 데에 제일 어려운 때.

밤중은 제일 밤이 깊어서 어두움의 세력이 최고도로 짙고 강한 그때 아닙니까? 그것을 표시해서 밤중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여러 각도로 우리가 말로도 신앙 지키고 마음으로도 지키고 생각으로 지키고 물질에 대해서도 지키고 인간에 대해서도 지키고 사물에 대해서도 지키고 우리 신앙 생활은 다각도로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지켜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지켜 나가고 있는데 어느 종류의 신앙이든지 그 신앙 면에는 반드시 절정이 있는 것이다 그 말이오. 절정. 절정이란 말 압니까? 절정이라 말하면 잿만당이라 말입니다, 잿만당. 이 절정이라 재 상상봉 그것을 가리켜서 절정이라 말합니다. 그러면 신앙에는 절정이 있다, 한 상상봉이 있다 그 말입니다.

있는데, 그것을 비유해서 밤중이라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절정이 있는데 절정이 있는 그때에 주님으로 더불어 결합할 수 있는, 주님으로 더불어 혼인 잔치를 이룰 수 있는, 결혼을 할 수 있는 그때가 바로 밤중이라. 밤중이라. 최고도로 어려운 절정이라.

자기가 정직을 지켜 나왔으면 ‘나는 입으로 거짓말하지 않겠다’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했으면은 거짓말하지 않겠다 하다 평소에야 뭐 거짓말 안 할라 하면 뭐 힘듭니까? 거짓말 안 할라 해도 힘이 안들지마는 서도 이 거짓말 안 하고 정직한 말을 하는 것으로서 말로 주님으로 더불어 결혼이 될라고 하면은 이 평소에 거짓말을 안 할라고 정직하게 할라 하니까 돈 손해가 가더니마는, 그 다음에는 직장 관계가 있더니마는, 그 다음에는 명예 관계가 있더니마는, 그 다음에는 생명 관계가 있고 점점 말 하나도, 이제 말 하나도 그 말이 깨끗하게 해서 이제 말로서는 주님하고 나하고 한 덩어리가 딱 되는, 말로서는 주님과 나와 하나가 돼서 내 말이 주님의 말이요 주님의 말씀이 내 말이요 내 말과 주님의 말이 하나가 되는 이 결혼하는, 언어 결혼하는, 언어 결혼이 되는 것도 그 언어의 절정에서 결혼이 된다 하는, 언어의 절정에서 결혼이 된다.

그러면, 그 절정에서 결혼이 되는데 그 절정이 되니까 여게 비유에 보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이제 너무 피곤하니까 다 졸며 잔다 했습니다. 그러면 절정이 언제냐? 너머 사람이 피곤한 그 너머 절정이 있다 그 말이오. 신앙 생활에 피곤한 다음에 절정이 이른다. 말에 거짓말 안 하고 참말하고 정직하게 말할라고 하는 이 말에 정직을 가질라고 해 봐도 가져 봤자 무슨 수도 나지도 안하고 가져 봤자 좋은 희특한 명예 나오는 것도 없고 가져 봤자 아무 재미도 없고 이제 이 정직을 가지기만 힘이 들고 이러니까 다 졸면서 잔다 그 말이오.

이래 다 모두 피곤하게 이래 되는데, ‘밤중에 신랑이 온다’ 이제는 뭐 아무 때라도 평소에 늘 연습해 놨으니까 거짓말하지 안하고 정직한 말을 이렇게 하기는 하는데 이번에는 딱 어떤 일이 닥쳤느냐 하면은 네가 거짓말 하면은 이 지금 경제에 네가 곤란당하는데 거짓말 한 마디만 하면은 돈이 뭉텅 생긴다 하는 그게 오더니마는, 이러니까 그거짓말 안 할라고 하면은 돈을 안 거머쥐어야 되겠고 돈을 거머쥘라면 거짓말해야 되겠고 하니까 그것도 꽤 어려운 일이라 말이오. 어렵지만 이겼다 말이오.

이겼는데, 이번에는 거짓말을 안 할라고 하면 당장 내가 직장이 떨어져서 그만 먹고 살지를 못하고 식구가 다 굶어 죽을 지경이 돼 놓으니까 이거 참 거짓말 안 하고 직장을 다 떨어져서 가족이 굶나 또 굶어도 정직으로 거짓말을 안 하고 이와같이 내가 이제까지 정직을 지켜 나왔으니까 정직을 지켜 나가나 이 씨름을 하다가이제는 뭐 굶어도 정직을 해야 되겠다 이랬습니다.

그게 최고봉으로 이제 절정인 줄 알았는데 고다음에 절정이 또 있습니다. 그 다음에 있는 절정은 무슨 절정이겠습니까? 무슨 절정이 되겠소? 한번 뉘가 대답해 보십시요? 그래, 생명의 절정입니다. 거짓말을 안 하면 이제 당장 사형을 당하는 그런 생명 문제가 닥쳤다 말이오. 생명 문제가 닥쳤으니까 그 이상 더 절정이 없습니다. 생명 문제가 닥쳤을 때에 그때에 이제 자기가 이제는 내가 목숨을 가지고는 정직을 지킬 수가 없다. 정직을 지킬라면 목숨을 내놔야 된다 하는 그 밤중을 닥쳤습니다.

밤중을 닥쳤는데 그 밤중에 신랑으로 더불어 결혼하는 데에는 뭣을 가지고 결혼합니까? 신랑으로 더불어 결혼할 때에 이 세상에는 결혼할라면 뭐 분 바르고 연지 바르고 이라고 어찌 하면 되는데 그 결혼식에는 뭘로 가지고서 결혼식에 참석하고 못 하고 이같이 판정이 났습니까? 그 결혼식에는 뭘로써 이제 쫓겨 나왔고 뭘로써 환영을 받았습니까? 그 결혼식에서는 뭐가 위주가 됐습니까? 뭐가 됐지요? 저 뭐라 하노? 고함 질러 봐. 뭐이야? 입만 꼴작거려? 뭐? 기름이 어데 기름이 있어? 기름이 어데 있어? 기름 말도 없는데. 뭐야? 뭘로 가지고서 결혼식에 참여하고 결혼식에 참여를 못 했어요, 뭘로 가지고? 등불. 등불입니다, 등불. 기름은 무슨 기름? 등불이야, 등불.

등불은 어두움을 환하게 비추어서 어두움을 없애 버리는 거 아닙니까? 어두운 것은 죄악을 말하고 등불은 빛을 말하는 것인데 이제 그 때에 등불이 뭐이 등불이겠는가? 그때 등불은 ‘네가 거짓말 안 하면 죽인다’ 이랄 때에 거짓말 안 하면 죽인다 하는 그 세력이 어두움의 세력입니까 빛의 세력입니까? 어두움의 세력이지요. ‘거짓말 안 하면 죽인다’ 이럴 때에 그때 빛은 뭐이겠습니까? ‘죽어도 나는 거짓말 안 한다’ 이라면 이게 빛 아닙니까? 이게 빛 아니겠소? 거짓말을 안 하고 정직으로 주님으로 더불어 결혼식할 때는 그 절정은 뭐이냐 하면은 생명을 다, 생명까지 버리지 안하고는 이 정직을 보수할 수가 없다 하는 그런 최고 절정을 당할 그때에 그렇게 어두움의 세력이 거짓말, 전체가 거짓말 해라 모든 사람이 거짓말 다 하고 살기 위해서 거짓말 기독자들이 우리 교회에 뭐 삼천 명이니 사천 명 있어도 다 그라니까 모두 거짓말하고 목숨 살라 하는데 그때에 죽어도 나는 거짓말 할 수 없다 하는, 거짓말 하라고 하는 그 어두움을 바싹 깨서 멸해 버리는, 생명이 끊어져도 나는 거짓말 하지 않는다, 나는 정직하겠다 하는 정직의 빛을 드는 그 사람이 몇이나 될란지! 만일 그럴 때에 빛을 드는 사람이 우리 서부교회에 몇만 명 되는,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이 몇만 명이 되는데 이런 사람들이 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 ‘나는 죽어도 내가 정직을 지키지 내가 거짓말 하지 않겠다’ 생명을 딱 내 대고 정직을 지킨다고 하면은 그때, 그때 빛을 등불을 드는 거라 말이오.

그때 등불을, 그때에 정직을 지킨다는 그 빛을 반짝반짝하게 환하게 들면, 그때에 거짓말 안 하면 죽인다 하는 그 세력이, 이제 죽어도 나는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생명 내놓고 정직을 지킬 때에 그 세력은 깨져 버리고 이 세력은 이기게 된다 말이오. 그러면, 그때에 비로소 고 순서를 통과해 가지고, 그 순서를 통과해 가지고 예수님과 결혼을 합니다.

예수님과 결혼을 하는데 어떤 면이 결혼됐습니까? 어떤 면이 결혼됐습니까? 무슨 면이 결혼 됐지요? 정직한 말의 결혼입니다. 다른 정직은 아니라. 정직의 말의 결혼입니다. 정직한 말의 결혼이 됐어. 요 결혼이 딱 되고 난 다음에는 주님과 자기와의 언어는 하나입니다. 언어는 하나입니다. 그 사람이 말한 거 주님이 말한 것이고 주님이 말한 거 그 사람이 말한 것입니다. 이 언어는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요 결합이 됐기 때문에 이제 그 사람의 말한 거 다 주님이 다 책임지십니다. 그 사람의 말과 주님의 말과 하나입니다. 이제는 하나요 권세도 하나요, 영광도 하나요, 존귀도 하나요, 부요도 하나요, 하나입니다. 이제는 언어 결혼을 했습니다.

말의, 정직한 말의, 거짓말 안 하는 말의 결혼했습니다. 알겠습니까? 말의 결혼했습니다. 주님으로 더불어 말 결혼을 했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이제는 내가 우상으로 절하지 안한다. 이계명 이겠습니다.

우상에게 절하지 안한다 이랬습니다. 우상에 절하지 안한다 하니까, 우상에 절하지 안한다 하니까 집에서 제사 안 지낸다고 고초를 주다가 또 쫓겨나가 밥을 굶다가 나중에는 또 이렇게 하다가 나중에는 우상에게 절하지 안하면 그만 자꾸 잡아다가 감옥에 가둬 버리지 나중에 사형을 시킨다고서 벌써 우상에 절 안 할라 하다가 가 가지고 뚜드려 맞아서 사람이 죽어 나오지, 왜정 말년에도 그 신사 참배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는 그것이 나중에 가서 ‘전부 신사 참배 하라 하는 어두움의 세력이 꽉 덮어 가지고 차차차차 이 어두움의 세력이 짙어져서 마지막에는 신사 참배 안 하는 자는 가둘 뿐 아니라 신사 참배 하지 않는 자들은 다 이것은 사형을 시켜야 된다 그렇게 돼 가지고서 하니까 그때 몇 남지 안했습니다. 몇 남지 안했는데 감옥에 있으면서 갇혀 있는 사람이 몇 사람 남았고 감옥 밖에서 신사 참배 안 한다 하고서 돌아다니며 안 한 사람들은 그때 참 흰쌀에 뉘같이 없었습니다. 몇 사람 안 됐습니다. 제가 알기로 거창에는 그때에 거창은 몇 사람 있었습니다.

있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 앞에 대장이 싸우고 있으니까 뒤에 부하들은 닥치지 안한 사람들도 있었고, 도망갔던 사람들은 싸우지 안하고 그만 빠져 버렸어. 빠져 버려서 그런 사람 있고, ‘해라 말아라 해라 말아라’ 이런 신강을 해 가지고서 그때에 신사 참배 안 하고 잡히지도 안하고 자유하면서 이렇게 신사 참배를 반대하고 한 사람은 내가 알기에는 없었습니다.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없었습니다. 다 모두 어떤 사람들은 이래 하다가 그만 그 다음에는 그만 뒤에 그만 빠져 버려 가지고 말지, 없었습니다.

그래 가지고서, 신사 참배 우상 숭배인데 우상 숭배로 이제 ‘너는 죽인다. 우상 숭배 할래 안 할래?’‘안 할랍니다.' 하다가 나중에 몇 번 매 맞고 난 다음에, 석 달 갇혀 있다가 자복하고 나온 사람, 육 년 갇혀 있다가 자복하고 나온 사람, 끝까지 죽어도 안 한다고서 끝까지 안 한 사람, 이래 가지고 그때 우상 숭배를 안 하는 사람으로서, 우상 숭배를 안 하는 것으로써 주님과 결혼한 사람, 주님도 우상 숭배 안 하는데 우상 숭배 안 하는 것이 주님과 하나되는 이 결합, 우상 숭배에 우상 숭배를 거부하는 결혼, 우상 숭배를 거부하는 결혼 고 결혼을 하면은 고 면으로서는 그 사람은 다시는 우상 숭배니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는 우상 숭배에 그런 것은 다 승리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오지를 않습니다. 그라면 몇 가지 결혼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몇 가지 결혼했어? 녜, 두 가지 결혼했습니다.

인제, 그라고 난 다음에는 무슨, 자기가 최고로 어려운 것은 자기 중심이냐 하나님 중심이냐 하는 그런 게 어렵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중심 이것도 자기 중심을 하나님 중심으로 바꾼 것도 이것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마는 사는데 바쁘니까 그만 하나님 중심 잊어 버렸습니다, 바쁘니까. 장 주님 생각하고 주님으로 인하여 살고, 주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고, 주님이 언행 심사 맡아 주관해 달라고 하고 늘 주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지 제가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그런 일을 안 했지마는서도 그만 말하다 보니까 주님 잊어 버려 버리고 저 혼자 말했고 듣다 보니까 주님 잊어 버리고 말했고 그만 눈으로 보다 보니까 주님 잊어버리고 말했고 이러니까 이게 후회가 돼서 또 새로 재삼 재삼 해 가지고서 절대, 들어도 주님과 갈이 듣고 같이 보고 같이 말하고 같이 생각하고 같이 원했지 주님 두고서 저 혼자 하는 그런 일이 없도록 이 일을 자꾸 이랍니다.

이라는데 그것도 밤중이 있습니다. 그 밤중이 있어서 주님을 잊어 버리지 안할 수 없는 고런, 바쁘든지 급하든지 두렵든지 마구 싸이는 요런 일 있어서 최고로 밤중이 돼도 언제든지 주님으로 동하고 정하고 주님 모시고 주님에게 속해서 사는, 주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는 요 일이 절정이 돼서 이제 최고도로 밤중에도 그때에 주님으로 동하고 정하는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일을 살지 못하게 할라고 밤중에 그 절정에 어떤 일을 당해도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고 일이 반짝반짝하게,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거, 아무리 다급해도 위협이 나도 어째도, 큰 일이 나도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고것이 끊어지지 안하고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고것이 절정에 가 가지고도 인하여 사는 고 일이 탁 합격이 됐으면 이제 중심 결혼이 됐습니다. 알겠습니까? 중심 결혼이 됐습니다. 중심 결혼이 됐어. 중심 결혼이 됐으면 이제 중심은 주님의 중심과 자기 중심이 하나가 됐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변동이 없는 것입니다. 이 시간 많이 지나가니까, 이제 다른 것도 다 그렇게만 해석하면 다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우리가 주님으로 더불어 결혼하는 것이 단번에 다 되는 것이 아니고, 이 영은 단번에 됐습니다. 영은 단번에 됐지마는서도 우리 육은 수많은 종합체이기 때문에, 집합체이기 때문에 이 결합이 수백 번 돼야 됩니다. 수백 번 수천 번 돼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간 시간마다 결혼 결혼 결혼해서 요 면이 주님과 주님과 결합되고 조 면이 결합되고 주님과 결합 결합 자꾸 이리 결합이 돼 가지고 주님과 자기와 하나라. 주님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주님이 있어 주님과 나와 하나되는 이 일이 이루어지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주님은 주님이고 자기는 자기로서 항상 하나도 결합해 보지는 못하고 밤중에, 오히려 초저녁에 그만 기름이 떨어졌다 말이오. 꺼져서 그만 헛일돼 버렸어. 이런 사람 있어요.

이러니까, 우리가 오늘 저녁에는 뭐 간단한 시간에 다 나갈 수 없으니까, 주님과 우리와의 둘이 하나가 되는 이 결합 이것은, 이것은 언제든지 절정에서만 결합이 될 수 있다 고걸 기억하시고 자꾸 해석해 보십시오. 또 그 결합은 한 번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여러 가지 종합체이기 때문에 수백 번 수천 번 결합이 돼야 된다. 수천 종류로 결합이 돼야 된다. 절정에서 결합된 것은 다시는 재혼이 없다 결합된 것은 다시 이혼도 없고 그만 결합된 것은 영원히 결합인 것입니다.

되는데, 그때에 아무라도 다 평소에 주님으로 더불어 결합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그때에 다 원하기는 신랑 맞이하고자 했지마는서도 맞이 못 한 원인이 어데 있는가? 있는 것은 그때에 빛을 들지 못해 가지고서 결합이 못 됐습니다. 빛을 못 들어서. 그때에 어두움의 세력을 이기는 빛을 들지 못해서 결혼을 못 했습니다.

이제, 주님 중심으로 사는데 주님 중심으로 살지 말라는 그런 어두움의 세력이 왔을 때에 주님 중심으로 사는 그 빛이 그때에 어두움을 물리칠 수 있는, 등불을 들면 어두움은 도망 가 버립니다. 삭아져 버리고 맙니다. 그때에 이제 주님 중심으로 살지 말고 민족 중심으로 국가 중심으로 뭘 살아라 하는 고런 주장을 하는 고때에 어떻게 최고 절정이 와도 주님 중심으로 사는 고것을 이렇게 강하게 해서 주님의 중심으로 사는 그 빛을, 주님 중심으로 사는 그 빛을, 진리를, 그 영감을, 하나님의 전지 전능을 그 능력의 빛을, 다니엘이 그 사자구덩이에서 죽지 안하고 그 이튿날 나오니까 그만 그 세력은 다 물러가 버렸고 빛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와같이 빛을 들어야, 빛을 가져야, 그때에 신앙 생활 하지 못하게 하는 악의 세력을 다 녹힐 수 있는, 그것들에게 종이 되지 안하고 그런 것들을 다 극복해서 녹힐 수 있는 이 빛의 능력이 있어야 그때 결합이 된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을 또 하십시오. 빛의 능력이 있어야 그때 이긴다.

이러니까, 뭐 왜정 말년에도 처음에야 신사 참배 다 안 할라 했지요. 다 신사 참배 죄인 줄 알고 안 할라 했지요. 안 할라 했지마는서도 되게 몰아 대니까 못 견뎌서 다 신사 참배해서 그때 그만 참 우리나라에서 신사 참배에 우상 숭배 아니 하는 것으로서 주님과 결혼한 것이 일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일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 없는데,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신사 참배를 안 하는 것으로 주님과, 주님도 안 하고 우리도 안 하고 주님과 신사 참배 안 하는 것으로서 결혼한 사람들이 한국 교회에 얼마 남아 있어 가지고 그 사람들을 통해서 다시 이 한국 교회가 재건이 됐던 것입니다. 재건이 됐습니다. 그 사람들이 없어 버렸으면 내나 신신학으로 그만 그까짓 거 다, 다 썩어져 버리고 말지 뭐 그 없습니다. 일본의 교회는 지금, 일본 교회는 해방 후에도 진리의 영감의 그 깨끗한 교회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만치 그만침 다릅니다.

고거 기억하고, 한 가지 여러분들에게 말하는 것은, 그러면 그때 그 빛을 들어야, 빛을 들어 등불이 있어야 신랑을 맞이했는데 주님으로 더불어 결혼하게 됐는데 그러면 그때 결혼할 때에는 빛이 있어야 결혼했습니다.

빛이 있어야 결혼을 했으면은 그 빛은 그러면 등불 가진 자가 그 빛을 발할 수가 있었습니까?ㅡ잘 안 들으면 몰라요ㅡ가진 자가 빛을 발할 수가 있었습니까? 등불 가진 자는 누구입니까? 중생된 영 곧 심신의 주격자를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등불을 가진 자의 주격인 그 처녀도, 처녀도 그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처녀는 누군고 하니 이 처녀는 곧 중생된 사람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데 그 처녀도 빛을 발하지 못했습니다. 중생된 영도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또 등이 빛을 발하는가? 등도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등은 어떤 게 등인고 하니 중생된 사람들의 가지고 있는 심신이 곧 그것이 등입니다. 심신이 등입니다. 그거 비유인데 심신이 등이오. 심신의 등이라 말은, 다니엘은 사자구덩이에서 그 생명을 바쳐 가지고 이제 빛을 나타냈고 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불미 속에서 빛을 나타냈습니다.

빛을 나타냈는데, 그 빛을 나타낼때에 다니엘의 입으로 빛을 나타냈고, 기도를 하겠다는 입으로 빛을 나타냈고, 하면 사자구덩이 집어 넣는다 할 때에 사자구덩이 집어 던져져도 안 했으니까 그 몸뚱이로 빛을 나타냈고 그 이튿날 아침에는 또 살아 나와 가지고 빛을 나타냈고 그때 빛을 나타낸 것은 다니엘의 그 몸뚱이가 빛을 나타냈습니다. 또 다니엘의 그 마음이 빛을 나타냈어. 다니엘의 마음, 다니엘의 몸 다니엘의 심신이 빛을 나타냈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그 세 청년의 심신이 빛을 나타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빛을 나타낸 그 등은 뭐인가? 등은, 등불인 그 등은 곧 성도들의 심신을 가리켜서 등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랬는데 등은, 등은 빛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또 등불 가진 주인 그 처녀도 빛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빛은 똑똑히 말해서 기름이 있어야 빛이 나오지 기름 없으면 빛이 나오지 않습니다. 기름 없어서 빛이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이 등불을 들고 이랬으니까 불이 꺼져 가니까 얼마나 불을 켜기를 원했겠습니까? 기름 좀 달라고 하고 등아 불 좀 켜져라 커져라 하지마는서도 기름이 없으니까 불이 켜지지를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들이 자기 결심으로나 ‘뭐 그때 생명 내대지. 그때 가 생명 내대지. 그때 한 번 죽을 거 뭐 생명 내대면 되지.’ 제가 평소에 ‘생명 내대면 될 거 생명 내대지' 생명 내댈 각오했다, 내 생명 내댈 각오했다. 결심 했다.’ 뭐 한 번 죽을 거 뭐 나는 뭐 담대히 목숨을 내놓을 담대함을 가졌다.

결심을 가졌다. 의지를 가졌다. 나는 깨갱이가 있다. 나는 담력이 있다.’ 암만 해도 그것은 뭐입니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그것이 뭐입니까? 말하고 있는 것이 그 사람 뭐이지요? 그 사람 심신이 아닙니까? 요걸 똑똑히 알아야 돼요.

이렇게 뭐, ‘그때 생명 내대지. 죽으면 되지 그까짓 거 뭐 죽은 요량하고 하지.’ 이렇게 말하는 것이 그것이 그 사람의 뭐입니까? 심신입니다, 알겠습니까? 심신 곧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등이라 말입니다. 요거 알아야, 등이라 말입니다. 등은 빛을 못 나타내, 등은 빛이 아니야. 등은 속에 기름이 있어야 빛을 나타내지 기름 없으면 빛을 못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사람들이 평소에 결심하고 작정하고 ‘뭐 그때 뭐 죽으면 되지 뭐’ 이렇게 한다고 해서 그거 되는 게 아닙니다. 순전히 이것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가지고 같이 가졌다 이랬습니다. ‘그릇에 기름을 담아서’ 왜 그릇에 담았다 했소? 등에다가 기름을 담았다 소리 안 하고 그릇에 기름을 담아 가지고 같이 가졌다고 요렇게 주님이 비유하신 것은 요 기름은 따로 있다 그 말이오, 따로.

기름은 따로 있다 그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따로 강직되어 있는 기름으로만 그 빛은 나타낼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도 아니요, 자기도 그 빛을 나타낼 수 있는 거 아니요 자기 심신도 빛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다만 빛은 기름의 작용으로만 빛은 나타낼 수가 있다. 기름은 뭐이냐? 기름은 성령이라. 성령으로만 빛을 나타낼수 있다. 성령으로 빛을 나타냈을 때에, 성령이 빛을 나타낼 때에 그 사람의 마음으로도 나타내고 혀로도 나타내고 수족으로도 나타내고 그 몸뚱이로 나타내고, 나타낼 수 있는 건 기름이 있을 때에 그것을 통해서 나타냈지 그것은 기름은 아니라 그 말이오. 기름은 아니야.

그러기 때문에, 인간들의 심신의 이 주관 안에는 빛을 나타낼 만한, 그 절정에서 빛을 나타낼 만한 그런 실력이 없다는 것을 여게서 확정을 지워야 됩니다. 확정을 지워야 됩니다. 또 중생된 영도 빛을 나타낼 만한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을 확정을 지워야 됩니다. 그러면 뭐이 나타냈느냐? 이것은 별개의 성신의 은사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영감을 받아야 되는 그것밖에 없습니다.

이래서, 기름 준비한다 하니까 뭐 우리가 사람들이 이래 준비하면 준비하고 안 하면 안 되는 것같이 보이지마는 사람들이 알아 듣기 쉽도록 한 것이지 성령 준비는 무슨 준비냐? 성령 준비는 내가 성령을 내가 가지는 것이 아니고,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내가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이 성령을 내가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성령의 것이 완전히 되기 위해서 ‘요 면은 성령의 것이 완전히 됐다. 조 면은 완전히 됐다.’ 이 다섯 가지면 ‘요 면은 성령의 것이 완전히 됐다. 아직 요 너이는 멀었다. 요것도 성령의 것이 완전히 됐다. 성령의 것이 됐다. 성령의 것이 됐다. 성령의 것이 됐다 완전히 되는 데에는, 완전히 되는 것이 결혼식이다. 완전히 되는 데는 반드시 절정을 통과해 가지고만 완전히 된다.

그 절정을 통과할 때에 그때에 어두움을 멸시하고 모든 죄악의 세력을 깨뜨릴 만한 그러면 빛이 있어야 하는데, 능력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순전히 영감으로만 된다, 영감으로만 된다, 성령의 권능으로만 된다. 요것을 지금 오늘 저녁에 내가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번 중복적으로 결혼해야 된다. 이 결혼할 때에는 반드시 절정에서만, 절정의 밤중에서만 결혼식이 된다. 결혼하고 난 다음에는 다 부부 일신과같이 하나가 된다. 모든 소유도 하나요. 희로 애락이 하나요, 지능이 하나요, 다 책임지고 신랑이 책임지고 하나지마는서도 이 삼천 궁녀와 같이 택하고 중생했지마는서도 이 건설구원에 있어서는 요 절정에 빛을 들지 못한 자들은 결혼에서 다 쫓겨 나가기 때문에 주님과 결합되지를 못합니다. 결합되지 못한다.

이래서, 하나도 결합되지 못하면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마는서도 하나도 주님과 동행하는 게 없고 주님의 동질이 없고 권능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은 항상 주님과 함께 움직일 수는 없기 때문에 저는 저대로 처져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벌거벗은 구원을 얻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오늘 저녁에 말하는 것은 요겁니다. 그 빛을 나타내는 것이 등 자체 빛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그 빛을 나타내는 것이 등 자체에 있습니까? 등은 가졌으나 기름이 없기 때문에 빛을 못 나타냈습니다. 등 자체는 빛을 나타내지를 못합니다. 기름이 있으면 기름이 등을 통해서 빛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 심신을 통해서, 성신이 내주하시면 성신이 우리 심신을 통해 가지고서 이제 세상을 이기는 어두움의 세력을 깨뜨리는 빛을 나타낼 수가 있는 것이지 이 성령이 없으면 우리 심신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요거 단단히 기억하라 말입니다.

심신 가지고는 안 됩니다.

심신 가지고는 안 된다 말이 무슨 말입니까? 결심 가지고는 안 된다. 작정 가지고는 안 된다. ‘내가 그때 생명 내놓지’ 어림도 없습니다. 평소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내가 성신의 것이 완전히 돼서 성령이 나를 완전히 점령해서 나는 성령의 것이 돼서 성령에게 자유하지를 털끝만치도 못 하고 그의 것이 완전히 되고 그의 종이 되고 완전히 그로 말미암아 피동되는 요게 돼야 되는 것이지 이거 안 되고 제 결심으로 ‘내가 뭐 이런 논리적으로 아는데, 내가 설교도 잘하는데, 모든 이성 비판도 잘 하는데, 결심도 있는데. 나는,’ 썩어질 것은 결심 있어도, 썩어질 것은 하는 데에 결심이 있어도 옳은 결심은 없습니다. 여게 박사들 말이오. 여기도 박사 몇이 앉았지마는서도 박사들 보면 말이요, 박사들 보면 대가리 짜매고 공부하는 결심은 있지마는서도 주님 위해서 저 높은 산에 가 가지고 밥 굶으면서 성령받을라고 자꾸 기도하는 그런 결심은 없어요. 아이구 나는 그런 것은 못 한다고서. 박사 쳐 놓고 성령 받은 사람이 몇이나 있읍디까? 별로이 없어. 또 신사 참배 이긴 사람 있습니까? 하나도 없어.

일본도 하나도 없고 우리나라도 하나도 없어. 다른 데는 몰라도 우리나라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박사가 그때 신사 참배 하지는 안했지마는서도 저리 피해서 숨어서 도망간 그것이야 승리가 아니라. 그건 도망간 것이지. 도망간 건, 한다고 항복은 안 했지마는서도 그 피한 것이기 때문에 내나 패전이나 같지 다를 게 뭐 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것은 등에는, 등 자체에는 빛을 나타낼 요소가 없다.

또 등을 가진 주인인 중생된 영에게는 빛을 나타낼 만한 그만한 실력이 없다.

아무것도 없다. 다만 빛은 기름으로만 된다. 기름으로만 된다.

이러니까, 평소에 성령의 권능이 와서 성령의 권능에게 자기가 사로잡혀서, 평소에 성령에게 자유를 다 박탈당해서 성령이 내게 와서 자유하고 주장하지 나는 내 주장은 하나도 없고 성령이 와서 내 언행 심사를 주장하는, 완전히 나는 죽고 성령이 내게 주인이 되어 있는, 내가 완전히 성령의 것이 되어지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기름 준비를 한 사람이라 말이오.

그러면 왜 그릇이라고 딴걸 말했느냐? 이것은 너희에 이 모든 주님으로 더불어 행위 결합이 되어지는, 행위 결합이 되어지는 이 결혼식은 이것은 성령의 권능으로만 되지 성령의 권능이 아니면 안 된다. 성령의 권능은, 등과 기름이 따로 있다. ‘그릇에 기름을 준비했다’ 그릇에 기름을 준비했다 요거, 그릇에 기름을 준비해 가지고 등과 함께 가졌다 요렇게 말했습니다. 등이 기름이 아니다. 또 주인이 기름이 아니다. 주인이 암만 해도 빛은 못 나타낸다. 그거는 기름이라야 되지. 그러니까, 요 성령에만 전부 요 전체가 주권되어 있는 것을 요거 우리가 단단히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평소에 내가 성령의 것이 되기를 힘써야 됩니다. 성령에게 완전히 자유를 박탈당하고 성령이 내게 언행 심사를 주권하고 나는 성령에게 꼼짝 못 하고 그의 것이 돼서 성령을 거스릴 수 없는 이 사람이 되어져야 세상을 이기고 인제 혼인을 하고서 영원 무궁한 나라에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하나가 돼 가지고서 왕노릇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을 영접하는 방법이 뭐인가?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하는 거 있습니다. 소멸하지 안하면, 성령을 배척하지 안하면 성령이 내게 와 주관할 수 있습니다. 배척하지 안하면. 성령의 감화를 소멸하지 안하는 이것이 하나 있고, 소멸하지 안하는 것은 성령의 감화대로 순종하는 것인데 성령의 감화를 소멸하지 안하는 이것으로 성령의 충만을 마련하는 준비가 있고 또 하나는 누가복음 11장 13절에 보면 밤낮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렇게 말했어.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게 또 방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데 가서든지 기도할 때에, 나에게 성령을 주시옵소서.

성령님이 나를 주관하시고 성령님에게 털끝만치도 성령을 어기지 않게 해 주옵소서. 털끝만치도 성경 말씀을 어기지 안하고 말씀대로 살게 하시고 성령의 감화를 소멸하지 않고 성령의 명령이면 죽든지 살든지 복종하게 해 주옵소서.

이걸 평소에 자꾸 연습하고 기도하고 이래서 완전히 성령의 것이 되어질 때에 우리는 승리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이렇게 영광스런 구원이 있습니다. 주님하고 우리하고 결혼합니다.

주님하고 우리하고 결혼한다 하니까 추접한 생각하지 말고 주님하고 우리하고 결혼하는 것이 얼마나 고상하고 얼마나 고상한 것인가? 이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언제 내가 그 설교를 하니까 어떤 남편이, 애처가인데 ‘아이구, 그라면 이거 아내 안 뺏기겠나?’ 이래 생각하는데, 남편 너도 주님 신부고 아내도 주님 신부고 너거 아버지도 주님 신부고 너거 할아버지도 주님 신부고 너거 손자도 주님 신부고 전인류가 다 주님의 신부라. 이제, 주님은 신랑이라. 요 결합의 그 이유와 특수한 부부의 유별한 그 관계가 뭐라 하는 것을 잘 깨닫고 요거부터 확신을 가지고 이제는 등불 들고 아무래도 주님으로 더불어 나와 하나가 되어져야 되지 되어지지 않고서는 안 된다. 주님과 하나되지 않고 세상을 어찌 이기겠습니까? 못 이깁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여러분들이 새벽 기도에 나와야 이 진리를 배울 터인데 그만 저만침 좀 나나오다가서 그만 안 나옵니다. 그렇게 못난 사람이, 여러분들이 그렇츰 약한 줄 아십시오. 남편 사정에 못 나와, 아들 사정에 못 나와, 사업 사정에 못 나와, 이 신체가 되다 하니까 못 나와, 피곤하니까 못 나와, 뭐 이거 저거 다 떼 버리고 언제 예수 믿을 시간이 어데 있습니까? 새벽 기도에는 꼭 나오도록 하십시오.

어짜든지 어짜든지 나와서 지금은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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