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 신앙

 

1984. 6. 14. 목새

 

본문 : 마태복음 16장 24절∼25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여기에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고 또 주를 위하여 목숨을 빼앗기면 다시  찾는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우리에게 온갖 물질도 있고 또 기쁨도 있고  평강도 있고 여러 가지 또 예술도 있고 별별 좋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일 좋은 것은 생명입니다. 또 이런 것 저런 것 빼앗기게 될 때에 우리는  아깝고 원통합니다. 그러나 빼앗기는 것 중에도 생명을 빼앗기는 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을 두고 말씀하신 것은 생명 그 아래에 있는 것은 다  종합해서 하는 말씀입니다. 생명을 말씀하는 것은, 최고의 것이 생명인데 생명도  이러하다 하는 말씀은 생명 그 이하에 있는 그 모은 것도 다 이러하다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모든 것은 다 사람이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주님을  잊어버리면 다 그것은 잊어버리게 되고 또 무엇이든지 주님을 놓지 않기 위해서,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런 것들이 손해 간 것은 다 도로 되찾게 된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종합해서 말하면 모든 것을 주님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은 다  없어지게 된다 하는 말입니다. 또 모든 것보다 주님을 크게 좋게 여기면 모든  것은 다 거기에 있게 된다 하는 그 말씀입니다. 이것으로서 우리는 이 세상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온갖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잡아야겠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든지 그것보다 주님을 좋게 여겨서 주님을 위하여 그 모든  것을 가지고 또 놓고 낮추고 하는, 그 모든 것, 그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하여  주의 뜻대로 관리하면 그 모든 것이 다 부강해지고,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을 주님보다 좋게 여겨서 그것을 인하여 주님을 버리면 다 빼앗기게 된다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을 우리가 관리할 때에 어떻게  관리해야 되느냐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진리입니다.

 또 그리고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부인하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그 위에서 배웠는데 주관 신앙을 부인하라 그말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라 그 말은 주관 신앙을 부인하라 하는 그 말입니다. 주관 신앙은  자기가 자기를 책임진 그것이 주관 신앙이요, 자기가 자기를 다스리는 것이 주관  신앙이요. 자기가 자기에게 지배를 받고 다스림을 받고 주관을 받는 그것이 주관  신앙입니다. 또 자기가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가 자기를 믿고 책임지고 자기가  자기를 의지하고 자기를 바라보고 하는 그것이 다 주관 신앙이니 자기에게서 난  고장입니다. 자기는 그런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다른 것의 도움을 받아서 살도록 고렇게 하나님이 만들어  놨습니다. 다른 것의 도움을 받아서 살도록 만드신 것은 다른 것 뭐? 자기 아닌  창조주, 나를 없는 가운데서 만들었기 때문에 내 생사화복, 또 모든 길흉,  흥망성쇠 이것을 홀로 주관하시는, 그것을 다 가지고 계시는, 좋은 것은  주님에게만 있지 딴 데는 없습니다. 마귀에게도 없고 사람에게도 없습니다.

사람에게 있는 것같이 보이지마는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없습니다. 또 있는 줄  알고, '정말로 여기에는 참 좋은 것이 있으니까' 얻을 만한 것이 있고 의지할  만한 것 있고 바라볼 만한 것 있다고 생각하고 착 바라보고 의지하고 취해 보면  헛탕입니다. 텅 비었소. 아무것도 없고 그림에 있는 떡 모양으로 겉뿐이지 아무  속에 실상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사람은 자기 아닌 것의 도움을 입어서 살 수 있도록 요렇게 만드신  것은 자기 아닌 주재. 주권자, 창조주, 이 구주 이 주님을 의지하고 살도록  이렇게 해 놨는데 마귀란 놈이, 요걸 딱 삐틀어 가지고서 주님 외에 딴것을  의지하도록. '돈을 의지 안 하나? 돈 그거는 우리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돈과 실력을 비교하면은 그 천층만층도 넘습니다. 사람보다 저 밑에 있는  것입니다. 또 세상에 있는 '사람은?' 이렇게 말해 사람 그는 나와 동등이기  때문에 나를 책임질 만한 그런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또 세상의 지식을  가지고서, 이 과학을 말하지마는 과학 그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사람 이상의 힘을 가지지 못하고, 사람이 사람을 잊어버린, 사람이  변질돼서 물질된 고자들을 다스릴 수 있고 그자들에게 호령을 칠 수 있지 사람이  사람으로 있고 변질되지 안한 사람은 물질이 호령치지 못합니다. 뭐 천하에 있는  물질, 원자탄이 다 온다 해도 변질되지 안한 그 사람은 그것들을 호령치고  그것이 털끝만치 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왜? 그것이 만일 죽이고 불로 태웠으면  해한 줄 압니까? 참사람이 변질되지 안 하고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요래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그래 가지고 있다고, 하나님으로 되어 있고 진리로 되어 있고  하나님과 진리에게 속해 있다고 그것이 해하면 해할수록 그것은 영원히 나를  찬양하고 내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해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렇게 사람은 하나님 다음의 존귀한 것으로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고 그의 도움을 입어서 살도록 했는데 마귀란 놈이, '사람은 도움을  입어야 산다.' 아, 도움을 보니까 입을 수 있고 도움을 입으니까 좋거든.

이러니까 도움 입는 그 대상을 하나님으로 삼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셨는데,  하나님은 빼놓고 제가 만든 것. 제가 만든 것 인생들이 만든 것, 인간보다 밑에  천한 것, 인간보다 밑에 훨씬 떨어져 있는 것, 과학은 물리인데, 물질이라 하는  것은 만물의 영장인 사람과 그 지위라는 것이 굉장히 차이 있는 것입니다. 저  밑에 감감한 밀에 있는 것입니다. 그걸 의지해서, 또 제가 뭘 만들어 놓고는  제가 만든 걸 번연히 알면서 제가 만든 것 그것을 의지하고 거기에다가 생명을  들이댑니다. 제가 만들어 놓은 무슨 지위나 권세나 학문이나 제가 만들어 놓은  그것이 자기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해 가지고서 통통 그걸 의지하고 바라보고  딱 소속해서 사니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얼마나 어리석어. 이 마귀가  들어서 사람을 이렇게 어리석게 만들어 놨소.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라 그 말은 말하자면 주관 신앙을 부인하라 그말입니다.

부인하라 말은 자기를 아주 없애 버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것같이 자기가 없는  무아주의로 들어가라 말 아니오. 부인하라 그 말은 하나님보다 자기를 부인하라  말이오, 하나님보다 주님보다 자기를 부인해. 주님과 자기와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를 주님과 비교하려고 이렇게 생각지 말아라 너보다 주님은 지극히  크신 분이시기 때문에 주님 앞에서 너를 내 세우고, 너를 생각하고, 너를 너  주장으로 세우고, 너를 너 인도자로 너를 네 책임자로, 너를 네 보호자로, 너를  너를 복되게 할 자로 네가 너를 행복되게 할 자로 네가 너를 바로 가르칠 수  있는 자로 안 된다. 너는. 이 하나님과 네가 있는데 어쩐다고 네가 하나님  부인하고 너를 주장하느냐? 너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영접하라는 그 말이지  자기를 물질보다 천하다 그렇게 말한 것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자기는 못하기  때문에, 자기보다 하나님은 크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거기에서, 하나님을 대항하고 이것이 주출 주춤 나오면서 주인인 체 하고서 제가  하나님보다 내 게 좋은 것을 해 주리라 생각하고 제가 회뜩 퍼뜩 나서 가지고서  하나님 의지할라 하니까 반대를 척척 할 때에 그때에 자기를 꺾어서 완전히 부인  해 버리라 그말입니다. 자기 부인하라 말은 주관 신앙을 부인하라는 말씀이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좋으라 그 말은 영감 신앙대로 하면은, 영감  신앙은 어떤 일 하는고 하니 영감 신앙은 죄를 멸하는 것이요, 마귀를 멸하는  것이요 사망을 멸하는 것이요, 자기를 꺾는 것이요, 이러기 때문에 영감  신앙대로 살라고 하면은 마구 세상이 달려들어서 영감 신앙대로 살지 못하게  합니다. 영감 신앙대로 살지 못하게 해. 또 영감 신앙으로 살지 못하게 하기를  마귀가 영감 신앙대로 살지 못하게 하고 죄가 영감 신앙대로 살지 못하게 하고  인간의 지식들이 영감 신앙대로 살지 못하게 하고 모든 죄악에 속한 이  권세들이, 죄와 사망과 악령에게 속한 것들은 사람이든지 물질이든지 논리든지  귀신이든지 뭐이든지 다 영감 신앙을 반대합니다. 왜? 영감 신앙이 오면  그것들이 다 전멸됩니다. 다 죽어 버려. 영감 신앙은 그것 죽이는 것이 영감  신앙이기 때문에 그걸 죽여 버리니까 그것들이 영감 신앙생활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그들이 온갖 협박도 하고 온갖 방해도 하니까. 네가, 영감 신앙대로  살라고 하는 네가 아예 고난을 네가 피하려고 천대를 피하려고, 가난을  피하려고, 죽음을 피하려고 이렇게 하면 고것 피하려고 하면은, 죽음 피하려고  하면은 죽음 가지고 '네 이놈 죽인다 죽인다 영감 신앙 버려라' 이랍니다.

가난을 피하려고 하면은 가난을 가지고 와 가지고서 '너 영감 신앙 안 버리면  내가 가난으로 가지고서 아주 폭 둘러 싸 버릴 것이다' 이러니까 할 수 없어서  '영감 신앙을 내가 소유 할라 하면은 가난을 내가 취해야 되겠고, 영감 신앙을  이것을 버려야만 가난을 면해서 부요를 취하고 이랄 터이니까 어째야 되나?'  이것들이 와서 협박합니다.

 이러니까, '십자가를 지고' 하는 그 말은 영감 신앙으로 살라고 할 때에 무엇을  방해하든지 네가 그것을 안 뺏길라고, 그것을 안 뺏길려고, 그것 손해 안 볼라고  하면은 영감 신앙 내놔야 된다. 무엇이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영감 신앙만 놓지  안하면 그 모든 것이 다 거기에 있는 것이니까 네가 아예 '목숨을 빼앗겨도  영감은 뺏기지 않겠다. 물질을 다 뺏겨도 영감 신앙은 뺏기지 않겠다. 내가  어떻게 천해져도 영감 신앙만은 뺏기지 않겠다.' 영감 신앙 하나만 네가  보존하고 뺏기지 안하려고 달려들어서 영감 신앙 하사에만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되지 영감 신앙 외에 어떤 것이라도 네가 하나 가지고 가겠다 하면 고놈에게  마귀가 낚시를 딱 걸어 가지고서 잡아당기기 때문에 너는 결국은 사로 잡혀서  죽게 된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라 말은 주관 신앙을 부인하라 말이오, 또 십자가 지라  말은 영감 신앙생활 할라 할 때에 그로 인해서 일어나는 모든 충격이나 파동이  일어나는 그것을 겁내지 말고 어떤 게 희생이 된다 할지라도 영감 신앙만을  놓치지 말아라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자들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은 다 필요 없는 것들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이 세상을 지으신 것이 우리 신앙 위해서 지었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 우리 신앙을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  창조하신 것을 부인하라 말인가? 와 그러면 세상에 있는 그런 것을 가지고서 다  버려도 영감 신앙만 가지라고 그렇게 말하는가? 그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네,  그것을 왜 버리느냐? 그것은 내가 주인이 돼 가지고 그것을 내가 이용해야 될  터인데, 내 주인은 주님만 내 주인이 되고, 주님만 내 주인이 되고 나는  주님에게만 복종하고 그에게만 속해서 살고 모든 만물은 내가 다스리고 써서  만물의 주인이 돼야 될 터인데 이제 이것이 그것을 주인으로 삼고 그것에게 종이  돼 가지고 그것에게 피동되고 그것을 하나님보다 크게 여기기 때문에 네가  그것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취하지 못하니까 하나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그런  것들을 다 버리라 하는 것입니다. 인제 다 버렸습니다. 주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다 버렸습니다. 버렸느냐? 버렸습니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다 너의 것이니까  네가 이제 자유로 사용하라 이랍니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그것을 내가. 주님이 내 주인이 되고 내가 주께 속하고 주님에게  피동되면 모든 피조물은 내가 자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내가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사용하면 그것이 사용을 달게 받아서 사용당하는 것도 있고,  내게 순종해서 사용당하는 것도 있고 사용 안 당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  달게 받아서 사용당하는 것은 그것도 만물을 새롭게 할 때 구원 얻어  버렸습니다. 완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그걸 사용할라 할 때 그것이 사용 안  당할라 합니다. 사용을 안 당하려고 하고 오히려 그것이 들어서 나를 강제로  꺾어서 주님에게 속하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쓸 때에 그들이 내게 대해서 어떻게  박해를 가한다 할지라도 나는 주님에게 속한 것을 양보하지 안하고 주님에게  속한 것으로, 주님으로 합께 동하고 정하는 것으로서 그것들에게 피해를 당하면,  피해를 당하면 나는 그것들을 점령했고 나는 살았고 그것들은 영원히 나의 것이  됐고 그것들은 다 죽음에 속해 버리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우리가 주님에게 속하여 주님에게  피동됨으로써 그런 것을 내가 다스리면. 그런 것을 내가 네게 대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을 그것들이 하든지 안 하든지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때에 그들이 순종하고 안 하는 것은, 내가 하는데까지 순종시키고 못 하는 것은  내비둡니다. 순종을 시키는, 순종을 하도록 하나님의 뜻을 그들에게 선포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데 그것이 순종할 때는 그것이 구원 얻습니다. 순종할  때는 그것이 구원 얻고 순종하지 안할 때에는 그것이 멸망받고, 또 그것들이  순종하지 안하고 나를 대항해 가지고 나를 죽여 버립니다. 죽이면 내가  죽습니까? 죽이면 내가 죽지 아니하고 그로 인하여서 나는 더 주님과 더 떨어질  수 없는 결정을 지웠고 진리와 떨어질 수 없는 완전히 결정. 결의해 가지고  성공하는 결성, 결성을 완전히 이루었기 때문에 나는 튼튼해졌고 그것은 죽었고.

죽었는데 죽은 그것은 뭐이냐? 죽었는데 죽음 속에서 영원히 나를 찬양해야 되는  것입니다. 죽음 속에서 영원히 찬양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지옥에 있는  것들 이 다 주라 시인해서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렸다 하는 것은 그들이 다 주님  반대하다가서 멸망을 받았지만은, 멸망을 받았지마는 멸망받은 그것이 멸망받은  그것이 이제 주님과 시비해 가지고서 주님을 멸하고 그것들 이 승리했기 때문에  주님은 거기에서 멸해지나 멸해진 것이 진리가 멸해진 것이 아니고 아버지와  연결이 멸해진 것이 아니고 생명이 멸해진 것이 아니고 그것이 더 튼튼하게  완성됐고, 완성됐고, 그것들은 주님을, 진리를, 생명을 옳은 것을, 하나님을  멸했기 때문에 그것은 멸망을 받습니다. 멸망을 받는데 마지막에 가 보니까  주님은 옳았고 저희들은 틀렸습니다. 이러니까 지옥에 가 있어도 '우리가  죄지었습니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대한 것은 꼭 우리를  구원하도록, 구원 얻도록 바로 말해서, 바로 대하고 바로 말하고 바로  인도했는데 우리가 대항해서 우리가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는 과연 구주입니다.

그는 옳고 바르고 참됩니다. 그는 모든 것의 구주요 옳고 바르게 인도 하는  존재인 것을 시인합니다. 하는 것이 주라 시인해서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한 층이 있고 두 층이 있고 세 층 있고 자꾸 이렇게 있는  것이기 때문에 조브라운 신앙 가지고서 바로 직관적으로 직면적으로 일차  적으로만 이래 생각지 말고, 일차가 있고 이차가 있고 삼차가 있습니다. 일차는  이차를 위해서 준비해야 되고 이차는 삼차를 위한 것이 되고 삼차는 사차를 위한  것이 되고 그 다음에 마지막은 최종의 승리를 위한 것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일차 승리가 이차 패전의 원인이 돼 버리고 이차 승리가 삼차의 승리의 패전이  돼 버리고 이제 마지막 모든 승리가, 모든 승리가 최종 승리의 패전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면 그 사람은 실패했습니다. 모든 실패가 최종 승리를 위한 만반의  준비가 돼 가지고 최종 승리의 원인이 되었다고 하면은 그것이 패전이 아니고  승리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넓어야 돼요. 모든 것을 알아야 돼요. 모든  것이 다 통해 가지고 있어야 돼, 통해. 도통이라. 이 도가 환하이 통해 가지고  있어야 돼요. 이러니까, 그런 염려 할 것이 없어.

 그런데, 여론 신앙이 무엇이 여론 신앙이냐? 여론 신앙은 자기 아닌 것에게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여론 신앙입니다. 신앙 이란 피동이라, 말이요, 신앙은  순종이라 말인데, 자기 아닌 것들에게 피동되는 그것이 여론 신앙 인데 자기  아닌 것, 창조주 조물주 그분에게 피동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 이 조물주 그분  외에 딴것에게 자꾸 피동이 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여론 신앙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그 사람의 말에 꼬임 받는  그것도 여론 신앙이요, 그 사람의 계획에 내가 끌려 가지고서 거기에 피동되고,  주님에게 피동된 것을 바꿔 가지고 거기에 피동되는 것도 그것도 여론 신앙이고,  또 이 고문과 고형을, 자기 아닌 것들이, 주님 아니고. 주님이 아니고 자기 아닌  것, 주님 아닌 타, 주님 외의 타 그런 것들이 고문 과 고형이라는 공작을 꾸며  가지고서 나를 거기에 피동되게 할 때에 내가 고문과 고형을 견디지 못해서,  아픔을 견디지 못해서 그만 아픔에게 피동돼 가지고 진리를 배반할 수도 있고,  아픔에게 피동돼 가지고서 진리를 잊어버릴 수도 있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것이 다 여론 신앙이니 여론 신앙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주여, 고문과 고형 그것에게 내가 피동되지 안하고 고문과 고형 속에서도  주님에게 피동되고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좋아하고 주님을 높이고 주님만 증거 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고문  고형에서도, 독침 앞에서도, 불속에 타면서도,  이랬는데 그 싼다싱이 서장에 가서 전도를 할 때에 제일 어려운 시험 하나  당했는데 거기에는 열대 지방이라서 이 거머리가 아주 이만침 하답니다. 거머리  몇 마리만 하면 사람 피를 쪽 빨아 먹어서 그만 죽어 버리고 맙니다. 이랬는데,  갖다가 놓고 발가벗겨 놓고 묶어 놓고서 그 거머리를 한 무더기 갖다 들어부어  놨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 거머리가 주 당길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사람이  죽지.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떡 앉아 가지고 있으면서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못 박히신 혼적을 내 몸에 지금 기록하고 있다.' 이놈이 무니까  상처가 나 가지고서 흉터 아닙니까? '주님의 십자가의 못자욱을 생각하면서 그  자욱을 내가 기념하고 있다' 그라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했다고.

 다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했는데, 해골 구덩이라는. 해골 구덩이라는,그  나라에는 사람을 사형을 시킬 때에 목을 끊거나 뭐 그런 사형을 시키지 안 하고  구덩이를 아주 깊은 구덩이를 파 가지고서 거기에다가 철문을, 딱 해 놓고 사람  범죄한 사람이면 거기다가 고만 집어넣어 버려요. 집어넣으면 그 안에서 죽어서  썩고 이라는데, 거기에 싼다씽을 전도한다고 잡아다 넣어 놨는데 거기에서 제일  어려운 시험을 당했다고 그렇게 기록했습니다. 거기에 가니까,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공기 하나도 안 들어가지고만 사람 썩은 그것이 꽉 들어찼지  이러니까 산소라 하는 것은 하나도 있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래 놓으니까 못  견뎌서 거기에서 산다씽이 좀 어려움을 당했소. 그래 가지고 '주여. 내가 어째,  나에게 어찌 됐든지' 모든 시험 좋아 했는데 거기에서는 '주여, 내가 이거, 감당  못 하겠습니다. 나를 여기서 구원해 주옵소서.' 그래 그때에, 어떤 시험이든지  달게 받고 감사히 받고 즐거워 원해 받았는데 그거는 견디지 못해 '주여, 내가  이거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날 구출해 주옵소서.' 이라니까 위에서 문이 척  열리더마는 줄을 두르르 달아서 밑에 넣어서, 사람 탈 수 있는 것을 이래 해서  내려 보내기 때문에 보내면서 '네가 여기 올라타라.' 떡 타니까 주르르르  올라가니까, 올라가서 떡 구덩이 밖에 척 나갔는데 문은 딱 닫겨 버렸고 보니까  아무도 없어. 또 다시 거기에서 또 전도했고 또 전도 했는데, 왕이 가만히  생각하니까 가두고 왕의 인도치고 모든 대신 인도 찍어서 봉인을 했는데 어떻게,  가보니까 봉인이 그대로 있거든 봉인은 그대로 있는데 사람은 나왔다 그 말이오.

그래 가지고서 그 다음에는 '이 사람을 해하지는 못한다. 이거는 참 특별한 권위  있는 신의 사람이기 때문에 해하지 못하니까 사정을 해야 되겠다'그래 가지고  여기는 전도를 그만 하고 어짜든지 좀 딴데 나가 달라고 그래 사정을 해서 '내가  며칠만 전도하고 가겠다.' 하고서 그래 인제 전도하고 나왔다고 합니다.

 그럴 때, 그 해골 구덩이 거기에 가면은 물속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그럴 거고  뭐 불속에 들어가는 것도 좀 그와 같을 거라. 그럴 때에 그것이 불에 태우니까  환경 아닙니까? 환경에, 불에 타니까 불에 타서 고통을 못 견뎌서 자기가  움직였으면. 고통을 못 견뎌서 자기의 사상이 고통으로 인해서 주님을 향한 것이  변해서 고통으로 옮겨졌다면, '아이구, 뜨거워 못 견디겠다.' 그 산다씽은 그  시험에 들었어. '뜨거워 못 견디겠다' 이랬는데 해골 구덩이에 가 가지고  '아이구 이거 악취가 나 가지고 도무지 여기서 못 견디겠습니다.' 했으니까 주를  향하기는 했지마는서도 처음에 과거에 주님을 향하던 거와는 옮겨지고 변질이  됐다 그말이오. 그러면, 해골 구덩이의 아주 독소에 피동됐다 그말이오. 그런 것  아닙니까? 독소에 피동이 됐소. 그러니까, 불로 화형을 할 때에 불에 피동되는  그것도 여론 신앙이요. 환경 신앙이라 그말이오. 환경 신앙. 모든 환경 주위  신앙. 이러니까, 거기에 피동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해야 됩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어떤 환경이라도 환경에 피동되지 안하고 어떤 데 민첩하게 나 아닌 나 이놈이  떡 나서 가지고서, 내 욕심이 주관이 되고 뭐 감정이 주관이 되고 뭐이 된다  할지라도 내라는 놈한테도 절대 복종, 안 하고 나 아닌 밖에 모든 주님 외에  어떤 것에게 복종하지 안하고, 불에도 물에도 복종하지 안 하고 어떤 것에도  피동되지 안하고 주님에게만 피동되고, 요 신앙, 주님에게만 피동되는 것이  요것이 영감 신앙이라 말이오, 영감 신앙. 주님에게 만 피동되고, 주님만 높이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에게만 소망하고 주만 좋아하고 주님만  기쁘시게 하고 요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결정해야 합니다.

 이러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하는 것은 자기 안에서 하는 이걸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 그 말은 이 환경의 주위들이 불로 가자고 시험할 때도 불이  시험할 때도 내 몸이 죽었고 몸이 탔고 했으면 했지 이제 그로 인해서 영감  신앙을, 주님에게 피동되는, 성령에게 피동되는 것을 변질되지 말아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런 도리를 깨달아서 자꾸 기도를 많이 해야  됩니다. 기도를 많이 해서 그라면 뭐 공산주의 독침 앞에서야 그까짓 것 문제가  뭐이겠소? 독침 앞에서야 주님의 사랑의 손이 와 가지고서 연애하는 것이지.

독침을 가지고 찌른다 찌른다 할 때에 그때 주님이 그와 같이 지금 주권하셔  가지고 그를 통해 가지고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까르르 웃어야 될 거라  그말이오. 옷어야 될 거라. 손양원 목사님은 모든 하는 거 웃음으로 받아  들였소.

 어떤 선교사가 선교 갔다 오면서, 옛날은 이런 배가 없으니까 조그만 조각배  이것 타고서 지금 건너는 데 하도 풍랑이 심해서 그만 그 사모님이 그만 견디지  못해 가지고서 이래 있으니까 자기 남편은 쿨쿨 잠만 자거든. 그래 '내가 이거  죽게 됐는데 이 남편이 남편 책임도 못 하고 이런다 싶어서 주 흔들어 가지고  여보 내가 지금 이 풍랑에 죽게 됐는데 잠만 자고 이거 무슨 짓이냐고 이라니까  암말도 안 하고 떡 일어나더마는, 옛날은 전도하면 칼을 가지고 다녀요. 칼을  가지고 이 칼을, 쑥 빼디마는서도 콱 찌를라고 이라니까, 까르르르 웃거든. 왜  칼로 찌를라 하는데 왜 웃었느냐고서. 당신이 날 칼로 찌르지 안할 줄 알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 재미라 말이오. 하나 연애라 말이오. 까르르 웃거든.

'주님이 이 풍랑 가지고 우리를 연애하시는 것인데 왜 놀래, 놀래기는?' 그래  그만 꺼꾸러졌어. 신앙의 사람들은 다 그게 또 공연히 논리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말이오, 사실이.

 그러기 때문에, 그 환경에 피동되는 그것이 여론 신앙이요, 또 어떤 자기든지  자기에게 피동되는 것이 주관 신앙이니까 자기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주님 외에  다른 피조물들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주님에게 피동이 되면 이것이 이제 영감  신앙이니까 요것이 영생입니다. 우리는 여기에만 참 평강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게 있어요.

 내가 그 이름을 잊어 버렸는데 어떤 성자는, 이거는 그냥 사형을 시킬 게  아니라 무소 가죽, 무소 가죽은 이렇게 늘어진, 그거 전부 물로 된 것이기  때문에, 물하고 풀하고 된 것이기 때문에 이게 딱 그래 놓으면 이렇게 넓은게 똑  요 주먹만하게 딱 오그라 붙어 버려요. 그런데 거기다가 이 사람을 잡아넣어서  딱 꿰매 놨다 말이오. 꿰매 가지고 공중에 볕에 달아 놓으니까 이게 차차 오그라  들어갈 것 아닙니까? 조여 들어가니까 이거는 기름을 짜는 것 같다 말이오. 요래  조여 들어가서 대 번에. 푹 짜는 게 아니라 그래 딱 되는 거라. 그랬는데, 그래  놓고 나서 밀에서 가만히 듣고 '보자 뭐라는고 보자' 이라니까 '주여,  감사합니다. 기쁩니다.' 아, 기쁨과 감사가 그 무소 가죽 속에서 충만한 것을  보고서 그 사람들이 놀랬소. '야, 이는 인간의 힘이 아니다. 이는 여기는 참  신이 있다.' 그래 가지고 복음이 전해졌소.

 이러니까, 우리가 불속에 들어가고, 독침 앞에서, 가죽을 벗기고 눈을 빼고  뭐한다 해도 주님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신다면은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기쁨과  감사와 넘칠 수 있는 평강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그걸  주셔야 되겠다 그말이오.

 통성으로 기도 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공연한 궤변이  아닙니다. 이거는 조그만치도 사람들이 공연히 무책임하게 한 말이 아닙니다.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변하지 않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이 세계가  있으니까 우리가 이 세계에 들어가야 될 것 아닙니까? 이 영감, 그러니까.

모두가 다 이 세상 것은 우리가 이용하기 위해서, 영감 신앙을 하기 위해서 있는  것들입니다. 이용하면 온 천하에 버릴 것이 하나도 없오.

 '요거 한 마디만 내가 하고 가겠는데, 이 세상에 모든 주관, 모든 객관, 객관  공부가 있고 주관 공부가 있습니다. 심리학이니 뭐 이런 것은 다 주관 공부요.

객관 공부는 이 세상의 모든 과학이니 모두 다 객관 공부인데 그거 무엇 때문에  하느냐? 주관 공부 객관 공부 이 두 가지 지식뿐 이오. 주관 공부 객관 공부를  하고 있는데 주관 공부를 뭐 하려고 하느냐? 주관을 알기 위해서. 주관 공부를  뭐하려고 하느냐? 객관을 알기 위해서. 그거 알아서 뭐 하려고? 그걸 모르면  내가 주관인 줄을 모르고 주관에 빠지기 쉽고, 객관인 줄 모르고 주관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그건 알아서 요거는 주관이다, 영감 아니고 요거는 객관이다,  요거는 영감 아니고 요거는 객관이다 요거는 객관인데 요것 아닌 영감을 어해야  된다, 또 요거, 여론 요것 아닌 영감을 취해야 되겠다, 그렇게 모든 여론에 속한  것 주관에 속한 것이 모든 것을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그것을 알아서 그것을  대적하기 위해서 그것을 벗어 버리기 위해서, 거기에 미혹 받지 않기 위해서,  그것을 영감인 줄 알고 사이비하기 때문에 거기에 끌리지 않기 위해서, 똑똑히  그런 것을 배격하고 영감에 자기는 피동되기 위해서 영감을 바로 찾기 위해서,  이것도 아니다. 이것도 아니다. 이것도 아니다.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그것이 뭐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고 해 가지고 그것 가지고 복음 운동하고  그것 가지고 뭐 자기가 피동되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구별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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