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하나님의 영광만 생각


선지자선교회 1983년 6월 29일 수야

 

본문 : 창14:21-15:1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오직 소년들의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취할 것이니라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여러번 들어 쌓아서 잘 알 줄 압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 성애  살았는데 소돔 그 왕과 다른 나라의 왕과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소돔 왕 편은  다섯 왕이 동맹해 가지고 같이 싸우고 상대편은 넷 왕이 동맹해 가지고 같이  전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다섯 나라가 넷 나라에게 전쟁을 져서 모두 다 죽이고 생포로 또  잡아 가지고 가고 전쟁에 대한 그 모든 물질도 다 상대방이 취해 가지고 가고  그렇게 됐습니다. 그 소식을 아브라함에게 어떤 사람이 전달해서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조카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집에서 기른, 자기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길러 놓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다섯 나라가 연맹해도 이기지  못한 강한 세력을 다 이겨서 물리치고 그들이 사로 잡아 가지고 간 사람도 다  도로 빼앗았고 또 모든 물질도 다 빼앗았습니다.

 그때 그 소돔 왕이 아브라함에게 와서 말하기를 '아브라함이 이렇게 우리를  도와서 그 원수에게 사로잡힌 모든 백성들도 다 구원하게 됐고 또 빼앗긴 모든  재물도 다 도로 찾게 되었으니 감사하다'는 그런 인사를 하고 난 뒤에 '사람은  우리에게,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에게 각각 돌려 보내 주고 이 모든 취한  재물은 다 당신이 취하소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때에 아브라함 자기가 그 일에 대해서 기도를 하고 생각할 때에 아브라함에게  깨달음이 생겨졌습니다. '지금 이 재물은 많지마는' 그 재물이 요새 돈으로  말하면 혹은 뭐 몇 십억인지 그건 뭐 몇백억이 될런지 그거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재물을 취하면 사람들 알기에 아주 큰 거부가 되겠는데 만일 그리  되면은 모든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브라함이 그때 전쟁해서 그때에 취한 적산을  가지고 저떻게 부자가 됐다.' 이렇게 말을 하면 하나님이 내게 어떤 축복을  주신다 할지라도 하나님 축복 주신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이 모를 것이고 다만  '이 전쟁해서 그렇게 부요하게 됐다' 그렇게 할 터이니 그것이 좀 문제가  됐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자기가 기도하고 생각하는 가운데에 말하기를 그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네 말대로 하면 네나 모든 사람들이 생각 하기를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부강해진 것이 아니고 그때 그 전쟁에서  이겨서 취한 그것으로써 부강해졌다 그렇게 네가 말을 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 주시는 그 축복 주신 것은 다 가리워지고 그것 때문에 됐다고 이와 같이 할  것이니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겠고 하나님이 내게 축복하신 모든 것이  가리워지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할 수 없다' 하는 그것을 선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신들의 그 재물은 한 실나끈도 신들메도 내가 취하지 않겠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소돔 왕은 '참 어데 이런 사람이 있으며 참 이 사람이 섬기는  하나님은 복이니 그런 것은 다 뭐 자유로 하는 하나님이요 또 전쟁 이기는 것도  자유로 하시는 그런 능력 계시는 하나님인가보다' 하고 떠났습니다.

 소돔 왕이 떠나고 난 다음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네가 그렇게 많은 재물을 네가 취하는 것이 마땅한데 그 재물을 취하면 너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는 것이 될 터인데 네가 내 영광을 위해서  나를 그들에게 어떤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네가 그런 많은 재물을  손해보고 그렇게 타협을 해서 돌려 보냈으니 네가 그렇게 많은 재물보다 나를 네  하나님으로 삼는 것이 더 좋다 낫다 해서 그와 같이 네가 했으니 내가 네게  대해서 만족한 대우를 받았다. 네가 그렇게 수십억이 될런지-뭐 그 재산은  똑똑히 모르지만 그렇게 아홉 나라가 전쟁했으니까 상당히 전쟁에서 움직여진  재물이 많았을 것입니다.-이런데 그렇게 많은 재물을 네가 취하는 것 보다 나를  네 하나님으로 삼는 것이 더 좋아서 그것을 물리치고 나를 네 하나님으로  삼으려고 했으니 네가 내게 대해서 참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그런 대우를 했다.

나는 소돔 왕 앞에서 네게 그 영광스러운 대우를 내가 받았다.'  '이러니까 이제 후로는 내가 네게 대해서, 네가 이렇게 모든 것을 취하는  것보다 여호와 하나님 나를 네가 네 하나님 삼는 것이 더 유익하고 더 복되다고  네가 생각을 하고 이와 같이 했으니 내가 이제는, 이렇게 네가 나를 소원하고 네  하나님 삼으려고 애를 썼으니 이제는 내가 네 하나님이 되겠다.'  그리하여 '이제 후로는 내가 네 방패가 되겠다. 네 하나님이 되어 가지고 네게  닥쳐오는 모든 어려움은 어떤 어려움이든지 큰 어려움이든지 작은 어려움이든지  다 내가 그것을 담당해 주겠다.'  '또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겠다. 네게 대해서 내가 모든 것을 주되 선물로  주든지 또 네가 수고해 가지고 얻는 것으로 주든지 그렇지 안하고 꼭 승리의  상급으로 얻는 거와 같은 그렇게 영광스러운 취득으로 내가 너에게 주겠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그후에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주 달라졌습니다.

 오늘 저녁에 이 말씀을 증거하는 것은 우리가 그 소돔 왕과 아브라함과의  관계와 같은 그런 현실을 많이 만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닥치는 모든 일은,  우리가 만나는 크고 작은 그 일은 꼭 그 두 가지입니다. '피조물인 피조물을  네가 차지할래 하나님을 차지할래? 하나님을 네 하나님으로 삼을래 피조물을  네것으로 삼을래?' 요 둘을 두고서 '어느 것을 네것으로 삼으려느냐?' 하는 그런  시험은 우리의 생활에 늘 계속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물론 하나님의 법도에 어기는 일은, 하나님의 법을 어겨 가면서  무엇을 취하는 그런 일은 믿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줄 압니다. 그런 일은  하는 사람들이 많지 못하지마는 하나님의 법대로 해도 취할 수 있기는 있지마는  신앙 양심으로 생각할 때에, 그렇게 하면 상대방이 섭섭해하겠다. 또 하나님에게  돌릴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안 믿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은 다 일대 일이지  하나님의 그 능력이나 하나님의 축복이나 또 하나님의 그 마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는 그런 작용은 없고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이나 다 꼭 같이 살되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을 맞춰서 살기는 살지마는 법을 초월해서, 법만 따질 것이  아니라 법보다도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권위, 하나님으 이름을 위해서 하는  일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우리가 살기 쉽고,  또 우리가 모든 인인 관계를 가질 때에 '참 그 사람은 보니까 무엇 보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더라. 그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 보니까 침 하나님이  계시는가보더라. 또 그 사람이 무슨 처리를 할 때에 보니까 그뭐 눈에 보이는  그런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냐 안 기뻐하시느냐 그 면을 많이 강조를 하고  고조를 하고 있더라. 또 하나님이 이러면 축복을 하시느냐 안 하시느냐?  하나님의 축복도 안 하고 저주도 안 하고 그냥 일대 일로 그렇게 하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도록 그것을 택하지 안하고 어짜든지 보니까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애를 쓰고 또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하려고 애를  쓰더라.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더 귀중히 여기고  두려워하고 또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더 저거들에게는 참 필요 있는 그런  하나님으로 그렇게 섬기더라.'하는 이런 것을 보여주는 그런 생활도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우리가 자세히 거기서 분석해 보면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이 감동받을 수 있는 하나님이 참 '네가 참으로  나를 대우하고, 나를 두려워하고, 내 마음이 섭섭할까 해서 네가 참으로  무엇보다도 나를 제일 관심을 가지고 내게 대해서 제일 정성을 기울이고 조심을  해서 그렇게 사는구나.' 하는 그런 방향으로 그렇게 처리하는 우리가 되면 잘  되는데,  그만 그렇게 하지 안하고, 뭐 이거는 하나님의 법이니까 법에 위반 되지 안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어기지 안하고 정당한 일이니 이 일로 인해서 '뭐 하나님이야  섭섭하겠나 안 섭섭하겠나?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겠나 안 가리워지겠나?'  그런 거는 생각할 필요 없이 그만 눈을 지끈 감고 그때에 자기가 하나님보다  돈을 더 귀중히 여겨 가지고서 처리하는 일이 되든지, 또 하나님보다 자기  기분대로, 자기 하고 싶은 자기 소욕대로 그래 하든지,  그렇지 안하면 또 자기 소욕과 하나님과 이렇게 비교를 하면서 생각해서  '이러면 주님은 마음에 어떠하시며 나는 어떠냐?' 이것을 가려 가지고 참 자기가  섭섭하고 주님이 기뻐하셔야 마음에 평강이 오고, 또 자기가 주님 때문에 좀  손해를 보고 주님 때문에 할 것을 하지 못하고 이렇게 해서 주님을 대접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모든 일을 처리해 나가는 그런 사람도 있고,  그만 거기서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생각할라 하면 좀 생각할 수도 있고 자기가  거기서 좀 비판할 수도 있지마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렇게 처리를 하려고  하면은 하나님 안면이 부시니까, 안면이 부시니까 그만 하나님을 생각지 안하고  눈 지끈 감고 그저 하나님의 계명에 위반만 안 되면 그대로 처리해 나가는 그런  행사를 우리가 하기도 쉽습니다.

 저 지난번에 금요일날 밤에, 모세와 아론이 그 위대한 사람들이지 마는  광야에서 다 죽고 가나안에 못 들어갔습니다. 못 들어간 그 이유는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했다. 나의 거룩을 구별하지 안했다.' 그 말씀 하시면서 당장 그날  밤에 아론은 제사장 옷을 벗겨버리고 그날 밤에 그 산만당에서 죽어서  장사지냈습니다.

 모세도 또 그 뒤에 죽을 때에 똑똑히 말하기를 '네가 나를 거역하고 내 거룩을  나타내지 아니했기 때문에 너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죽어서 조상에게로  가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고 조금 내려와서 보면 '네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내 거룩을 나타내지  아니함으로 내가 섭섭하다' 하시고 너희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그  말씀을 딱 선포를 하고 그뒤에 말하기를 '하나님이 당신의 거룩을 나타내셨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을 연구 제목, 연구 과제로 해서 그때 모든 교역자들과 교인들 있으니까  이거 무엇인지 왜 이렇게 모세와 아론을 그렇게 충성되고 위대한 사람들을  가나안에 가지 못하도록 거게서 멸망을 받게 그렇게 하셨는가 하는 것을 연구해  가지고 오라고 하고 그날밤에 말하지 안 했습니다.

 그런 것이 다 이런데, 아브라함은 여게서 어떻게 했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네가 그렇게 많은 재물을 취하지 안하고 또 이랬으니 뭣이 앞으로  부족함이 있을까 그렇게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네 방패와 지극히 큰 상급이  되겠다.' 아브라함에게, 걱정 안 하지마는 다시 위로를 하고 그와 같이  하셨습니다.

 그게 뭐이냐? 아브라함이 소돔 왕 앞에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자기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소돔 왕에게 대해서 하는 그 행동을  인해서 소돔 왕이 '아, 아브라함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는 그  모든 언행심사의 행동을 보니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한 하나님이며, 또 전능한  하나님이며, 모든 만복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이요, 두려우신 하나님이라.' 하는  것을 아브라함이 소돔 왕에게 하는 그 행동을 인해서 소돔 왕에게 아브라함이  섬기는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그에게 똑똑히 보여 줬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만족을 얻은 대우입니다.

 모세와 아론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분노하셔서 그날밤에 무지한 사람들이야  하나님께 대해서 어떻게 하든지 하지마는 하나님을 아는 모세와 아론이 아스라엘  백성 앞에서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시라 하는 그분을 그렇게 대우하지 안한  그것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크게 모욕을 시킨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자기 혼자 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는 관계 없고 자기와  하나님과 단둘이요 자기가 자기 혼자 있으면서 행동하는 것도 그것이 하나님을  참 무시하는 일도 될 수가 있고, 모욕 주는 일도 될 수가 있고, 또 하나님을  아주 두려워하는 하나님으로 대우하는 일도 있고,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면서 그분이 감사해서 견딜 수 없는 참 감격해서 견딜 수 없는 그런  하나님으로 그렇게 대우하는 일도 될 수가 있고, 하나님을 아주 멸시하는 그런  하나님으로 자기가 대우 하는 것도 될 수가 있습니다.

 또 자기 혼자 있지 안하고 다른 사람으로 더불어 같이 있을 때에는 그것이 같이  있는 그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모욕시키고 무시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이런  것은 더 하나님이 모욕감을 더 많이 가집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혼자 있을 때에는 섭섭하고, '그것 참, 네가 내 앞에서 그럴  수가 있나?' 대단히 섭섭해하시지마는 또 다른 하나라도 더 있으면 더 하나라도  더 알게 모욕당하는 일이 되고 많은 사람이 있으면 더 모욕당하는 일이 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소돔 왕으로 더불어 같이 이렇게 전쟁 끝에 서로 의논을 할 때에  아브라함은 물질 그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크게 대우를 하고 혹 자기가 잘못해  가지고 그 소돔 왕에게 자기가 섬기는 그 하나님을 소돔 왕이 두려워하지 안하고  멸시를 하고 그렇게 할까 그 면을 두려워서 조심해서 그와 같이 했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하니까 소돔 왕도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이라는 것을 자기도  인식을 해서 참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이라는 것을 자기가  바로 인식을 하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것을 기억합시다. 어데서든지 무슨 일에서든지, 혼자든지  여럿이든지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또 하나님의 눈은 우리 눈보다 더  밝습니다. 또 하나님의 귀는 우리 귀보다도 더 밝습니다. 하나님의 그 감정은  우리 감정보다도 뛰어납니다. 수많은 인간들의 기이한 인간의 그 모든 정서를 그  감정을 만드신 분이 그 분이시오. 또 인간들의 그 희로애락을 아는 그 모든  그것을 만드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어데 갔다가, 어떤 사람에게 내가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분이  오는데, 자기 부모님이 차를 타고 오는데 차에 마중을 가면서 그 아이들을  데리고 갔는데 그 아이들을 그만 바빠 놓으니까 옷을 그만 구질구질하게 입히고  자기도 그렇게 그만 바쁘다 보니까 그렇게 좀 단정하지를 안하고 마중을  나갔는데 말은 안 해도 그 부모가 옆에 사람 보기에 낯에다가 불을 담아 붓는  것같이 부끄럽고 아주 좋은 말로 '바쁜데 뭐하려고 마중을 나왔노? 바쁜데 그만  나오지 말지.' 이래 해도 그 속에는 자녀가 부모가 오는 데에 맞이하는 성심  성의나, 부모를 존경하는 것이나, 또 두려워하는 것이나 부모 마음이 어떨까?  부모에게 대해서 관심 깊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거게 대해서 대단히  섭섭해하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 대단히 섭섭해하는 것을.

 그래서, 그래 또 다른 사람이 있다가 말하기를 '오늘은 지금 우리 아버지가  오신다는데 어머니가 오신다는데 오늘은 이 아이들을 다 가야지, 마중을 가야  되는데 갈 때 함부레 목욕도 시키고 옷도 좀 잘 갈아입히고 그래 가지고' 가  보면 아버지 마음이 기뻐 만족하고 다람 사람 볼 때도 의젓하게 '우리 아들 손자  이렇다' 자랑거리가 될 만치 그렇게 하는 것이 부모를 대접하는 것이고  마구잡이로 하는 것은 부모를 멸시하는 것이다 하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말은 안 해도, 어떤 데 내가 테레비를 저아레 보니까, 뭐  철이 없어 하는 거는 철없어 하지마는 제일 절정은 사람 이라는 것은 인격  존재이기 때문에 물질이고 뭐이고 그 모든 것이 인격을 대우하는 것이 되면은 다  그것은 참 대접이 되고, 아무리 좋은 물질 아무리 많은 물질이라 할지라도 그  인격을 대우하는 것이 아니면은 모욕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은 그분이 하나님이시오. 그분이  창조주시오. 그분이 모든 인간의 그 심리 구조를 다 그렇게 만들어 내신  분이니까 그분이 얼마나 인간보다 탁월하시겠습니까?  그러니까 그저, 성경에 말하기를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그러면 부모가 됐으면 '자식이 부모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하는  그대로 부모에게 하면 된다 그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율법이요 선지자라  그말은 하나님도 그렇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 때에 '하나님이 여게 계시니까 내가 마음대로  말 못 하겠다. 하나님이 계시니 그분이 어떻게 할까 해서 내가 너무 이해를  따지지 못하겠다. 또 그분이 좀 섭섭해하실까 해서 마음 대로 못 하겠다.

그분에게 혹 이 사람들이 욕을 할까 이래서 주님에게 욕이 돌아갈까 싶어서 내가  이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겠다.' 이렇게, 당신을 모든 고상한 인간의 인격을  창조하신 그 신성을 가지신 그 하나님으로 자기가 대우하는 이것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이것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신구약 성경입니다.

 이것을 참 우리가 몰라서 무지해서 그렇지마는 당신은 그 섭섭하게 하는 그  모욕을 그것을 하나도 감하지 안하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무슨 일 하든지 할 때에 나와 같이 계시는 그분을 우리가  잘못하면 그분의 위엄을, 그분의 두려움을 멸시하기 쉽고, 그 분의 성결을  멸시하기 쉽고, 그분의 그 존귀를 멸시하기 쉽고, 그분의 그 다정다감을  멸시하기 쉽고, 그분의 감정을 멸시하기 쉽고, 그분이 모든 것 다 가지셨는데,  다 가지셨는데 제가 해 봤자 사소한 건데,  아브라함이 그것을 취해서 몇십억이라 할지라도 몇십억 그것 가지고 하나님에게  대해서 조그매라도 섭섭하게 하는 그것은 하나님을 그렇게 여겨 그만치 가치  적게 여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많은 재물이 그래도 하나님에 대해서 그들에게 조그마치라도  '하나님이 볼 때에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나님을 조그마치라도 그들에게 보통  다른 신같이 업신여겨 그렇게 여길까?' 이것 때문에 그렇게 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더 귀중히 여기니까 '내가 그대로 내가 네  하나님이 돼 주겠다'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어데서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그 속성, 하나님의 그  신성, 그 신성을 우리가 대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신성을 대우하도록 우리가 조심해서 해야 되고, 왜? 신성을 대우해서 그분이  내 하나님이 된다 하면은 그 하나님은 억억만금보다도 더 크고, 뭐 온  세상보다도 더 크고, 왜 그분이 더 부요하고 그 모든 것 하실 수 있기 때문에.

 그런고로 우리는 어떤 이해 문제라도, 어떤 이해 문제라도 그 이해 보다  하나님은 더 크시고, 또 자기의 어떤 성공보다 하나님은 더 크시고 또 어떤 많은  것보다 그분은 우리에게 더 많이 줄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땅에 있는 무엇으로써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은 우리가  어리석은 일입니다. 또 우리가 땅에 어떤 무엇이 자기에게 어떤 손해가 져도 그  손해가 졌으면 졌지 주님을 섭섭하게 노엽게 멸시하는 일은 할 수 없다 하여  어떤 것보다 주님을 더 크게 대우하는 그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손해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서로 사람끼리 인인 관계에서나 어데서든지 우리는 그저,  어데서든지 하나님 손해보고, 하나님 손해보고 하나님 주고 따꿀 것 없습니다.

하나님을 내가 섭섭하게 해 하나님과 나와 멀어지고 이 무것도 취할 것  없습니다.

 이러니까 모든 것보다 하나님, 어떤 손해를 봐도 참 그 손해로 인해서 당신을  대우한 것이 됐다면, 당신을 기쁘시게 한 게 됐다면 그 손해는 지극히 작은  걸로써 큰 것을 얻은 것이 되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데서든지 그것으로써 하나님을 섭섭하게 이렇게  하나님을 멀리 하는 이런 일을 하지 안하도록,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안하도록,  어떤 것보다도 당신이 우리에게 요긴하고 크십니다.

 그런고로 어데서나 우리는 주님을 보면서 모든 인인 관계와 사물 관계를 해서  그 사물 관계에서나 인인 관계에서 주님을 섭섭하게 하는 것, 노엽게 하는 것,  멸시하는 것, 무시하는 것 그런 일 우리가 범하지 안하는 것이 성공입니다.

 자기가 주님을 참, 주님을 대우하기 위해서, 주님 때문에, 주님 그분 때문에 할  말 못 하고 참은 것, 그분 때문에 하고 싶은 것 못 하고 참은 것, 그분 때문에  분대로 하지 못한 것, 그분 때문에 이해를 가리지 못한 것, 그것을 당신이  그렇게 안 갚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오계명이 십계명이라, 자기가 가까이 보이는 부모를 존대 하는 그런  효성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은 만일 자기가 어떤 어른이나 이렇게 모시고 택시를 잡았으면  택시를 잡아 가지고 가다가, 분명히 그거는 요금 나오는 대로 주면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여게는 조금 이 벽지니까 암만해도 더 줘야 되겠습니다.' 할  때에 자기 혼자 같으면 '여기 내나 또 여기 오면 여기는 다 시내 가까운 데고  이런데 여기 무슨 요금을 더 줘? 요금 나오는 대로 주지.' 이러지마는 자기가  모시고 간 그분 때문에 그런 소리를 못 합니다.

 '예, 그래요 ? 얼마나 더 드려야 되겠습니까?' '얼마 더 주십시오.' 말도 같지  않은 소리를 해도 신강 안 하고 그 요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거는 뭐이냐?  그것이 자기가 모시고 가는 그 사람에 대접이요, 그 사람에 대접.

 만일 거게서 거석하면 그 모시고 가는 사람에게 모욕이 될까, 그분에게  조그마치라도 섭섭함이나 그 마음에 부담이 될까 이래서 하는 것인데,  우리 사람도 인격대 인격으로 교제하는 것은 이것은 참, 물론 물질도 있고 다  있는 그것이 여러가지 있지마는 그것이 인격과 인격 교제에 인격 대우하는 것이  돼져야 그게 돼지는 것이지 그게 없이 한다면 그건 참 짐승의 교제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거든 하물며 하나님이겠습니까?  그런고로 우리는 무슨 일을 주님 앞에서 하든지 할 때에 그분을 생각하고  그분을 대우하는 사람 됩시다. 그분을 대우하고 그분을 섭섭하게 하지 말고,  그분을 내가 어떻게 크게 그분을 여기고 대우했다 할지라도 손해 안 갑니다.

그분은 그보다 더 큰 분으로서 우리에게 대해서 역사해 주십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주님을 멸시하는 그런 일 하지 말고 땅위에 어떤 걸 취하는  것보다 그 사건에서 주님부터 먼저 취해야 됩니다. 주님을 내 하나님으로 삼고,  뭐 사건이 어찌 됐든지 '어떻게 하면 주님을 내가 기쁘게 해서 주님이 나를  좋아하시고 내가 주님을 모신 것이 되고, 주님을 모욕되게 하는 게 아니고  주님을 모신 것이 될까?' 요것부터 생각해서,  다른 것 모든 것보다 '여게서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내가 참 섭섭하지 않고  주님을 모신, 지극히 크신 어른을 내가 모신 이 행동과 태도와 마음과-그분은 속  마음을 다 알기 때문에-내 정성과 마음이 될까?' 요거 조심해서 당신을 참 모신  나로서 그분에게 기쁨이 되어지도록 그렇게 하는 그것부터 첫째 생각하고,  그다음에 둘째로는 '나만 이렇게 생각하고 저 사람이야 저렇게 무례한 소리  하니까 그 사람이야 뭐 하나님께 무례한 소리 하니까 하나님과 그 사람 멀어지고  하나님이 그 사람 볼 때에 섭섭하게 생각하고 도로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대해  노하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그것이 주님을 또 모르고 주님에게 아주 모욕을  주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그 사람까지도 어떻게 하면 그저 자기가 '그 사람이 우리 하나님을  자기가 조그마치라도 노엽게 대우할까?' 싶어서 떨면서 이리 저리 해 가지고 그  사람까지도 하나님을 그렇게 대우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되어지도록 하려는,  자기도 하나님 대우하고 그 사람도 하나님 대우하고 둘이 다 하나님 대우하려는  이것부터 일호 이호로 하고 그다음에 남은 것을 이런 무슨 공정이나 또 그런 걸  시비나 그런 걸 잘 가려서 이래 하는 그것이 우리가 돼야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요 또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을 취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내 하나님 만드는 그것이 제일  복있습니다. 그런고로 만나면 먼저 내가 하나님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  만족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분이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여기실까?' 그분의  비위를 서끌리지 안하고 그분이 기뻐하고 만족하실 수 있도록 그렇게 하려는  그것부터 첫째로 생각하고,  그다음에는 또, 그러고 난 다음에는 뭐 물질이나 그런 것 생각지 말고  그다음에는 그 사람까지도 내 하나님을 대우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려는 그  노력을 하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제삼으로 사건이나 물건이나 그렇게 취급해  나가는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요, 만족하는 것이요 그것이 주님 안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 혼자 있든지 여럿이 있든지 주님을 생각지 안 하고 주님을  한 장승같이 목석같이 주님을 주님으로 대우하지 안하는 것 당신이 뭐 엿새  동안에 만물 다 지었는데 뭘 원하시겠습니까? 땅을 원하겠소 돈을 원하겠소 뭘  원하겠소? 아니오. 당신을 당신으로 그 신성을 대우해 주는 것입니다. 신성을  대우하는 것.

 그런고로 그 신성을 대우하는 거기에서 우리도 당신의 형상을 입을 수가 있고  모든 하나님의 은총도 축복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광고 하나 합니다.

 거창집회가 한 주일 앞당겨져서 팔월 팔일부터 십이일까지로 변경이 됐습니다.

집회가 한 주일 당겨졌습니다. 그것은 학교 학생들 방학이 결정이 안 돼서 자꾸  이랬다가 이제야 그 방학이 조금 당겨졌다고 이래 확실히 결정이 돼서  부득이해서 아무래도 집회 갔다 와 가지고 얼마 좀 여유 시간이 있어야 준비도  해 가지고 학교 가겠고 또 가서 시험도 칠 것이고 이래서 부득이해서 한 주일을  당겼습니다. 그리 알고 휴가 맡을 분들도 또 다른 준비도 그렇게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삼십 분 기도 후에 종전과 같이 일층에서 재독도 있고 철야기도도 있습니다.

 또 주일학교 공과를 안 받아 가지고 가신 분은 예배 마치고 저 뒤로 가면서  다음 주일 공과를 다 받아 가지고 가서 좀 외우십시오. 자꾸 읽어 가지고 외워  가지고, 외워 가지고 아이들에게 이 공과를 보지 안하고 이래 가르쳐야 되고, 또  그대로 가르치지 말고 그대로 자기가 소화를 해 가지고 거게서 몇 가지를  간추려서 그 학생들에 가르치십시오.

 그 문답을 하는데 문답으로 가르치면 좋습니다. 문답 그것을 표준을 삼고서  가르치면 됩니다.

 공과를 좀 복잡하게 해 놓은 것은 반사들 여러분들이 그걸 보고서 읽고 자세히  알도록, 자기가 알고 가르치는 것과, 다 같은 말이라도 내가 알고 가르치는 것과  모르고 가르치는 것이 상대방에게 이해와 납득에 대해서는 아주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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