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뱅이의 표적


선지자선교회 1982년 8월 25일 수야

 

본문 : 행 3:1-10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제가 믿음을 잘 지키지 못함을 인해서 여러분들에게 근심되게 해서 미안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여러분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한 순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 분명히 단정하는 것은 과로라는 것을 나는 충성으로만 생각을 하고  절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절제하지 않은 죄를 회개했습니다. 무리한 일 내가 했었습니다. 너무  제가 주의하지 안하고 여러분들에게 근심을 끼쳐서 미안합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서 여러분들도 깨달은 바가 있을 것입니다.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이 거둔다는  그 말씀이 우리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닌가 그렇게 싶습니다.

 오늘 봉독한 날 때부터 앉은뱅이된 이 병신에 대한 일이 기록된 것을  봉독했습니다. 여기에는 나면서 앉은뱅이 된 그 병신 제일 불쌍한 병신 하나 있고  또 거기에 앉은뱅이를 구걸하도록 하기 위해서 날마다 성전 미문에 메어다 놓는  역꾼들도 있었고. 또 앉은뱅이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병이 낫게된 것을 보고  기이히 여기면서 놀란 그런 인물들도 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참가한 인물들을 분류한다면 제일 비참한 날때부터 앉은뱅이 된 그  사람이 있고, 또 날마다 이 병자를 통해서 구걸하기 위해 메어다 놓는 사람도  있고, 또 이 앉은뱅이가 병나은 것을 보고 기이히 여기면서 놀라면서 병나은  앉은뱅이를 집중하고 주목하면서 소동하는 이런 인물들도 있고 이렇게  너덧종류의 인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사도들이 거기에 일을 주동했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대로 보면 베드로, 요한 그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능력의 일을  수종드는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고 많은 핍박 가운데서 복음의 일꾼이  되어 복음의 역사를 하고 있는 그 인물들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 교회는 이와같이 너덧 종류의 인물들 모인 곳이 교회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우리가 추상하고 또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의 계시기 때문에  공연히 있는 것 아니고 우리의 현실 교회들에 대한 현황을 이렇게 하나의 형식을  통해서 알려준 일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첫째로 사도들과 같이 주님 편에 붙들려 주님의 일꾼으로 인간이 할 수  없는 초자연의 하나님의 능력 역사로 병든 자를 상하게 하는 인간병을 고치는  이런 일꾼들도 교회 안에는 있는 것입니다. 유명한 간판을 가졌다고 해서 결코 그  사람만 인간의 모든 질병, 원죄와 본죄 이로 인하여 어두워진 그 모든 어두움의  병을 고친다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미미한 극히 작은 자로 인정되는 그런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참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간의 사망의 병을 고치는 그런  권위 있는 역사를 일으키는 복음의 일꾼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이렇게 나면서 앉은뱅이 된 이 환자를 성전으로 메고 와서 구걸홰 가지고  살게 하니 그것도 봉사요 또 그러다가 못물 동할 때에 병이 낫게 하면 그것도  매우 자선과 구제도 되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기록하기를 그 사람을 구걸하도록 하기 위해 매일 힘들여 성전  미문에 메어다 놓는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된대로 그 사람들에게 대해서  해석을 자유로 가지겠지만 구걸하도록 하기 위해서 메어다 놓았다. 그러면 아마  구걸한 그 유익은 같이 나누게 될 것입니다. 말로는 전부가 그 병든 자가  애연스럽고 안타깝고 동정하는 그 말, 마음, 행동으로 가득했지마는 성경이  기록하기는 구걸하기 위해서 메어다 놓았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가 명문되어 있지는 안하지만 구걸하기 위해서 메어다 놓은 그 사람들은 그  환자를 가장 동정하고 친근한 사람들이지마는 이 사람이 갑자기 병이 나아서  뛰면서 자유하는 그 건강한 사람이 되었을 때에는 자기네들이 투자하고 있는 그  모든 이익의 줄이 끊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기뻐하기 안하고 도리어 그 병이  심해져서 보는 사람들이 더 많이 동정할 수 있는 그런 처지에 이르는 것을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혹 우리가 추상할 것은 오늘도 복음 운동을 자기의 이익의  재료로 삼아, 사람들을 이렇게 끌어다가서 믿는 사람 만든다고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인간병을 고쳐서 참 예수님의 대속의 구원을 입는 자, 사람이 변화되어서  이제는 의식주에 아무리 곤란해도 주의 법도대로 살아나와 내 도를 인하여  가난해지고 어려워지고 세상이 미련하다고 하는 그런 구걸하는 거지노릇하는  인간에게서 언제나 자기 유익을 중심해서 사는 그런 병을 고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어떻게 가난해지셨으며 무엇까지를 희생의 제물로 바쳐서 이  구원의 공로를 베푼 이 정상적인 참사람이 회복될 때에 오히려 탕자의 형과 같이  기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근심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만나는  대로 모조리 자기 유익을 위하여 수단과 방편을 가리지 아니하고 끌어 모으는 그  유익을 욕망하고 그 사람이 참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오히려 근심할 수 있는  땅의 소망을 가지고 인간 구원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내가 앉은뱅이를 메어다가 구걸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어쩌든지 사람을 접촉하거든 그에게서 유익을 얻고 내가 어떻게 비인간적인,  비공적인, 비복음적인, 이 병신 행동을 해서라도 많은 수입을 얻어 이익 배당이  풍부하도록 하자 이렇게 해석하고 이렇게 마음먹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는데  까지는 우리가 가기 어렵지요. 그렇게는 차마 못할지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이와같은 복음의 일꾼들이 여기 있다는 것을 하나 형식 계시에서 보여준 이것을  우리가 남의 일로 생각하고 한 역사의 토막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가면 후회할  날이 올 것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이 환자는 그 사람 중에 제일 불쌍한 사람이요. 저희 병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자기 병든 것을 이용해 먹도록 되는 참 죽고 또 죽은  그런 가장 비참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예수님의 제자들을 만나서 저는 몰라서  구걸하려고 했지만 그들이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할 때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되는 병이 고쳐지는 그 말을 귀 담아 듣지 아니하고 "은과 금" 네가  구하는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마는 내게 있는 것으로 주는데 곧 네가 십자가  못박아 버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가 일어나서 걸어가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이 다 부인하는 십자가 못박혀 죽어버린,  모든 사람들이 부인하는 이 예수님을 네 구주로 삼아, 모든 사람이 인간 중에  쓸모없는 해독만 끼칠수 있다고 오해하고 있는 이 예수로 네가 병을 낫도록 해라.

이 분으로 인해서 네가 병 고침을 받아라. 병고침 받으면 너도 당당한 일  개인이기 때문에 네가 구걸하고 그렇게 애걸하고, 하나 아프면 둘 아픈듯이 적게  아프면 많이 아픈듯이 있어도 없는듯이 그렇게 남한데 비참하고 가련해 보이고  너희 비정상의 모든 형편에서 다른 사람이 갋지 못하고 양보하는 그것을 이익의  근거로 삼는 그런 사람이 될 것이 뭐 있겠느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이 나아라 할 때에 그 말을 듣고 그가 일어서려고 부뜩거리니까  오른손을 들어서 일으킬 때에 병이 나았습니다.

 그때에 수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일 기쁜 사람이 이 앉은뱅이  병고친 사람일 것이요. 둘째로 기쁜 사람은 사도들일 것이요. 셋째로 기이하다  놀란 사람들은 청중들일 것이요. 병이 낫고 나니 자기네들의 모든 소망이 없이  끊어졌으니까 기뻐하는 것같이 하면서 속으로 근심하고 걱정한 사람은 메어다  놓은 그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것이 막바로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가기의 근본이야 인생 어떤면으로나  경제면으로나 총명면으로나 지능면으로나 용모면으로나 제일 못나도 좋다는  것입니다. 제일 무가치해도 좋습니다. 제일 무가치한 그것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고침받을 수 있다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자기의 모든 못쓸  점을 고침받아 구원 얻으려 하는 이것이 기독교에는 제일 복있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나는 선천 후천에 은총이 크다는 그것도 좋지마는 실은  유혹물입니다. 아무리 못나도 상관없고 그저 예수님 안에 나오는 사람은 예수님은  자기를 치료자인 줄 알고 자기의 지능면이나 도덕면이나 사업면이나 출세면이나  영과 육의 다 구주이시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든지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삼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는 고침받아 나도 주로 인하여 온전함에 이르겠다는 이  소망을 가지는 이 사람이 곧 나면서 앉은뱅이 같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제일 기뻤는데 이사람 기쁨은 날마다 벌벌 떨면서 구걸하던 돈  때문의 기쁨 아닙니다. 돈 때문에 얻은 기쁨 아니요 출세의 기쁨도 아니요. 그의  기쁨은 첫째가 병 나았으니 기쁘고 둘째는 병있는 자라 성전에 출입 못하던 자가  성전에 자유로 출입하게 됐으니 하나님의 전에 자유로 출입하게 되었으니  이것으로 인한 기쁨, 첫째 기쁨 둘째 기쁨 이 기쁨을 앉은뱅이가 가졌었는데 이  기쁨은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그 기쁨과 행복감을 누리고 있는 그것보다  탁월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혹 생각하기를 내가 예수 잘 믿어 경제 성공하고 출세 성공하고  자기의 목적 달성하고 이러면 크게 기쁘리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모든 사람이  공동고백에서 얻기까지는 그것이 기쁨이 됐는데 막상 얻고 나니까 아니라 다  권태를 느끼고 얻고 난 다음에 포기하는 그것이 성도들입니다.

 구했지마는 얻고 난 다음에는 주님의 가진 십자가의 그 길이 그리워서 예수로  인해서 부자되는 것보다 예수로 인해서 한번 가난해보고 싶고 예수로 인해서  형통한 것보다 예수님으로 인하여서 자기에게 태산같은 마찰을 당하고 싶고  마지막에 심지어 주로 존영한 것보다 주로 인해서 죽고 싶은 그것을 가져지는  것이 성도들이 점점 깨달음으로 자라감에 있고 자기가 예수님으로 인해서 잘못된  것이 고쳐진 이 기쁨은 어디서나 유일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암만 얻고도 그  기쁨에 대해서 후회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의 이모저모에 인간병 행위병 지능병 모든 사상병 모든 악성 악습 악령으로  인한 모든 그 병을 고친 것은 기독자에게 있어서 절대 권태도 안나고 후회가  없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온 기쁨은 그는 영영합니다. 또 자기가 고쳐지고 보니  주와 나와 가까와져서 주의 전에 출입하는 주와 가까워진 이 기쁨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기쁨도 얻어놓고 난 다음에 후회한 사람 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지상의 행복이라는 것을 우리가 여기서 볼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사람보기에  성전에 자유로 출입하고 참 모든 면이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마는 그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직접 관련된 이 은혜의 역사에는 참가를 못했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행복을 얻은 그 사람들을 보고 기이히 여기면서 놀라기만 한 그런  사람들도 많았던 것을 우리가 다시 또 한번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변화된 그 사람은 행복됐고 변화된 것보고 찬성하고  부러워하고 좋아하기만 했지 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변화된 이것을 실지로  받지 못하고 그저 껍데기로 성전 출입만 하는 것으로 다 된 줄로 알고 있는 이런  수많은 불행스러운 사이비하게 있는 것 같으나 없는 것 이런 수많은 숫자에  사람들 수에 내가 참가하고 있지나 않는가 우리가 이것을 고요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 앉은뱅이를 일어나려고 제가 뻐들거린 것, 뻐들거리는 것은 앉은뱅이가  뻐득거렸을 것입니다. 뻐득거리나 앉은뱅이가 일어서지 못하니까 사도들이 오른팔  들어서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사람 보기에는 뻐들거리고 일으킨 그것이 그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것 같이 보여지지마는 실상 발목과 뼈에 힘이 와가지고  성한 사람으로 일어선 것은 그것은 순전히 주님의 능력이요.

 오늘 우리 기독자들이 이와같이 신앙행위를 하려고 뻐득거리는 것 다른 사람이  도와주는 것 이것은 할 수 있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그 지능이 와가지고서 일으킨  그것만이 불타지 아니할 것들입니다.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금을 연단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연단이 있습니다. 그 능력이 와가지고 역사하는 것. 사람들이  한 것 아니요. 그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하는 것 그것이 알맹이요. 그것이 불타지  아니할 것들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 합시다.

 이 네가지 인물 가운데에 나는 어떤 그 종류의 인물인지 혹은 두 종류 인물인지  세 종류의 인물인지 혹은 네 종류의 인물이 다 합하여 나에게 지금 움틀거리고  있는지 그러면 버릴 것은 버리고 주력할 것은 주력해서 오늘에 우리가 시정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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