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 주신 것을 부인하는 것이 망함

 

1987. 3. 1. 주일새벽

 

본문:마가복음 10장 46절∼52절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이 소경 바디매오의 일은 이것이 육체로 된 일인데 육체로 된 이런 모든 형편을 가지고 우리에게는 신령한 도리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면 첫째로 이 소경이 자기의 비참하고 가련한 그 형편을 아는 거와같이 우리가 참 신령한 면으로 가련한 형편에 있는 것을 아는 사람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자기는 모든 것이 부요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이렇게 말을 하나 실상은 네가 가난하고 가련하고 눈 멀고 벌거벗은 네 가련한 신세를 네가 보지 못한다” 그렇게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읍니다.

또 누가복음 12장에도 보면 그 부자에 대해서 어리석은 부자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읍니다. 그는, “네가 세상 재물로만 네가 부요하면 되는 줄 알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주 거지가 되어 있으니 가련하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금생만 살다가 갈 사람이 아니고 영원 무궁을 살 우리들이요, 또 첫째 아담에게 속해서 그 멸망 아래에 있던 우리들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이 행복은 모든 없어질 것들이 아니고 또 사망에 속한 것들이 아니고 영원한 것들인데 우리가 이 면을 참 가난하고 불쌍하고 가련한 점을 우리가 보지 못하는 이것이 아주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성경이 가르치는 이 성경 지식대로 우리가 봐서 성경 지식대로 보는 그것이 믿음으로 보는 건데, 믿음으로 보는 것은 하나님에게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보는 것이, 내 주장대로 보는 게 아니고 내 지식대로 보는 게 아니고 세상 지식대로 보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그 지식을 따라서 보는 것이 믿음으로 보는 건데, 우리가 그 믿음으로 본다면 참 엿새 동안에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신 것과, 뭐 다 말할라면 한없지마는. 하나님이 그 무한히 크신, 또 전지 전능, 대주재,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시요, 또 그분이 모든 것을 다 주권하고 계시는 분이시요, 그분은 만유라고 했읍니다.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신다고 이랬는데, 이분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대속하신 이 하나님의 이 지극히 크신 사랑이라든지, 우리를 대속해 가지고 대속해 주신 이 사활의 대속 일곱 가지라든지, 또 우리에게 소망으로 주신 제사장 선지자 왕직이라든지, 영원 전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셔서 우리의 택함을 성취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창조하신, 이뭐 하나님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대속에 대한 것을 우리가 성경대로 본다면 그 중에 하나만 해도 뭐 이 우주나 영계나 그런 것하고는 바꿀 수 없는 지극히 큰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데, 우리가 여게 대해서 믿음의 눈이 어두워서, 믿음의 눈이 어둡다 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다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 따르는 눈, 그대로 배운 눈, 그대로 아는 눈,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대로 아는 것이 믿음으로 아는 것이요, 그분에게 따라서 아는 것이요, 또 세상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그대로 아는 것은 그 세상이 가르쳐 줘서 아는 것이요, 이런데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하는데 하나님을 따라서 아는 지식이 우리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비참하고 가련한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그네 세상이요 또 길 가는 행인같은 우리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이 장막 생활 이 세상 생활은 오늘이 끝날란지 뭐 이 시간이 끝날란지 우리는 모르는 우리들입니다.

이런데, 이 오늘인지 이 시간인지 끝날란지 모르는 이거 허무한 거 이것만 보고 우리가 전부 평가를 해서 이것만 보고 행불행을 평가하지 영원한 하나님의 이 약속의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변동 없는 하나님의 약속의 이 모든 빈부 귀천, 생사 화복에 대해서는 우리가 성경을 보지마는 믿지 않기 때문에 여게 대해서 눈이 어두워 있는 것입니다.

이 소경이 그 모든 불행의 비참이 보지 못하는 그것이 그저 원인입니다. 보지 못하는 고거 원인이지 그 소경이 눈 뜨고 난 다음에는 그만 그런 병신 노릇하지 안할 것이고 괜찮을 것입니다.

요걸 가지고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우리 택하고 중생된 사람들이 성경이 가르치는 이 모든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 보는 눈,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 아는 눈, 이 지혜가 우리에게 없는 이것이 우리의 불행의 원인입니다.

이것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든지, 뭐 말은 꼭 내가 말한 대로 이런 말 필요 없읍니다. 안 해도 좋읍니다. 어쨌든지 교훈하는 목적이 뭐이냐? 그 병신이, 소경이 보지 못한 그것이 그의 원인이 됐다는 거, 불행의 원인이 된 거. 요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의 눈이 어두워서 우리가 불행자가 된 것.

전능자가 우리 안에 계시는데, 전능자가 계시니까 내가 믿고 살면은 내가 전능자인데, 전지자가 내 안에 계시니까 믿고 살면, 믿고 산다 말은 전지자가 내 안에 계시니까 그 전지자가 나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그대로 모든 것을 지식하고 판단하고 또 전능자가 계시니까 그분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서 움직이면 능치 못함이 없는 것이고, 또 그분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시요 주권자이신데 그분이 내 안에 계시니까 나는 그런 자인데, 다시 말하면 나는 하나님과 꼭 같은 자인데, 하나님이 아니고 피조물이지마는 하나님이 내 안에 계셔서 하나님은 나의 생명이 되고 나의 지혜와 힘이 돼서 나의 모든 것의 원인이 되어 주시마고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그분을 내가 따라서 움직이기만 하면 나는 하나님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인데 우리가 이 사실을 보는 믿음의 눈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비참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의 눈이 없어서 택한 자들이 전능자로 살지 못한다, 전지자로 살지 못한다, 우주를 다 차지한 자로 살지 못한다,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생활을 하지 못한다, 또 모든 권능의 행위를 하지 못한다,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 보지 못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모든 축복과 은혜의 실상은 한없이 있는데 이것을 우리가 보지 못하고, 이걸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은 이거는 뭘로 보느냐? 이거는 믿음의 눈으로만 봅니다. 요 믿음의 눈으로만 본다는 요것을 단단히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될 겁니다.

믿음의 눈으로 본다 말은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이 말씀하는 대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눈이라 말이요, 순종하는. 하나님이 이는 ‘종이라’ 하면 `아, 종입니까?' `이거는 죽는 것이라' 하면 ‘아, 죽는 것입니까?’ `이거는 사는 것이라' 하면 `아, 사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의 우리에게 아는 눈이 없다 말이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의 아는 요게 없기 때문에 우리는 사고입니다.

요걸 뭐 우리 여기 반사들도 그러하고, 장년반도 그러하고, 학생들도 다 그러한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요대로 지식하는, 요대로 아는,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요대로 우리가 아는 요 지혜가 없어, 아는.

하나님은 이렇다고 가르치시나 안 그렇다 이라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요대로 우리가 안다고 하면 요거 가지고 다 되는데, 그만하면 우리가 딴것 구할 것 아무것도 없고 예수님 한 분으로서만 다입니다. 뭐 딴거 구할 게 있읍니까? 그분이 모든 것을 다 가지시고 또 지금도 전부 다 그분의 것인데 요 믿음의 눈이 없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렇게 봐라, 요렇게 알아라, 요렇게 봐라, 요렇게 알아라, 또 요렇게 행해라, 요렇게 하나님이 하시는 그것을 부인하니까 우리는 그만 병신이 돼 버렸읍니다. 그것 부인하니까.

제일 우리가 권능 있는 거는 뭐냐 하면은 하나님이 보라 하는 대로 보고, 알라 하는 대로 알고, 행하라 하는 대로 행하고, 소원하라 하는 대로 소원하고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따라서 내가 한다면은 나는 하나님과 꼭 같은 자 되는 것인데 하나님이 하라 하는 요대로 우리가 하지 안한 요게서 사고가 된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참, 홍포 입은 부자가 세상 것으로는 그렇게 부강했지마는 그가 오늘 떠날지 내일 떠날지 모르는데 세상을 떠나 가지고 보니까 그렇츰 비참한 사람이 없었읍니다.

우리도 홍포 입은 부자와 같이 오늘 떠날지 내일 떠날지 모르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해 주신 것은 이 세상이나 오는 세상이나 죽든지 살든지 뭐 영원 후나 지금이나 꼭 같은 변치 않는 이 모든 것에 구비한 행복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하셨는데, 이런 모든 행복이 다 우리의 것이 됐는데.

우리의 것이 됐는데 아무리 주님이 ‘이러니까 네가 이렇게 알고 이것을 가져라’ 해도, 가져라 해도 안 가지고, 쓰라 해도 안 쓰고, 먹어라 해도 안 먹고, 또 이대로 알라 해도 안 알고, 보라 해도 안 보고 당신이 시키는 대로 안 하는 요것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완전한 것 주시는 것은 하나도 얻지 못하고, 마귀란 놈이 주는 거, 오늘 있다가 없어질 거, 다 속이는 거 거짓부리 이런 것만 자꾸 보고 좋아하지 하나님이 주신 완전한 것은 암만 당신이 보여줘도 안 보지, 보라 해도 안 보지, 또 사용해 보라 해도 안 사용하지, 네가 가져 보라 해도 가져 보지도 안하지, 또 의지해 보라 해도 의지하지도 안하지, 바라보라 해도 바라보지도 안하지, 믿으라 해도 믿지도 안하지, 이러니까 우리의 고장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을 우리가 부인하는 데에서 우리는 비참합니다.

그러면, 기독자는 다 하나님이 알려 주시고, 보여 주시고, 또 우리에게 가지도록 해 주시는 이것을 부인하는 여기에서 모든 비참이 생겼읍니다.

그러면 비참이 생긴 것은 금생에도 이 믿음이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다 했는데 이것도 못 얻지 또 영원한 것도 더 못 얻지 이러니까 이 소경이 보지 못한 이 원인인 줄 알고 보는 사람 될라고 애를 쓴 요와같이 우리도 우리 기독자들이 요것을 애를 쓰는 요것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보지 못하는 요것이 나의 원인이라. 그러면, 하나님은 전능자인데 전능자로 내가 보고 전능자가 나의 아버지 된다면 문제가 뭐겠소? 이 세상에 잠깐 오늘 없어질지 내일 없어질지 모를 그 대통령이라도 자기 아버지라면 아버지의 그 세력을 의지해서 배경이 든든한 배경을 댈 것인데, 하나님은 말할 수 없는 전지 전능의 대주재이신데 이분이 우리 아버지 되었고 이분이 우리 주님이 되셨고 우리를 사랑하시되 생명을 바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요것만 믿는다 해도 확실히 믿는다고 하면은 우리에게는 염려 없읍니다.

그러기에 자기에게 대해서는 염려할 게 없읍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에게 대해서는 염려할 게 하나도 없고, 다만 다른 사람을 이거 참 비참하고 가련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염려인 것이지 제게 대해서는 염려할 게 없소. 아무것도 없읍니다. 사자굴 속에 가도 염려할 것이 없고 뭐 공산주의 속에서도 염려할 것이 하나도 없읍니다.

이런데, 우리가 이 눈이 가리워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전능의 세력을 가지고 있지마는 전능을 쓰지 못하지, 전능의 보호가 있지마는 벌벌 떨고 있지, 모든 천상 천하의 모든 게 다 자기 것이지마는 이 가난성을 빈곤을 느끼고 있지, 이것이 전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그 지식을 부인하는 데에서 우리의 모든 불행과 비참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것을, 첫째는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은 우리가 뭐 새로 행복을 만들라 하는 게 아니라 한없는 행복이 되어 있지마는 우리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안하는 통에 우리가 가련한 자입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인정하면 영원히 제것 되는데, 세상에서 하나님이 다 해 주셨지마는 인정한 대로 얻는다 했으니까 인정하지 안하면은 무궁세계는 거지입니다. 벌거벗은 자로 갑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이 사실이 믿어지도록 하는, 믿어지게 하는 이것이 이 바디매오가 보기를 원하는 거 같은 요 순서대로 우리가 신구약 성경에 약속되어 있는 무한한 이 소망, 이것이 나에게 실상으로 믿어지는, 실상으로 믿어지는 요 믿음을 우리가 가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 방편을 여게다가 가르쳤읍니다.

그러면 노력하는 방편은 간단하게, 보지 못하는 요것이 원인인 줄 알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걸 다 알려 주시는데 알려 주신 요걸 부인하는 통에 우리는 망하고 있읍니다, 요걸 부인하는 통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신 요것을 우리가 요대로 믿으면 뭐 딴거 탐하지 안하고 그만 하나님 한 분으로서 우리는 전부 될 터인데 요거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요 실상으로 돼 가지고 있어. 지금 만드는 게 아니라 실상으로 돼 가지고 있는데 내가 그만 그대로 믿어서 가지면 내것 되고, 누리면 내것 되고, 사용하면 내것 되고, 이런데 이걸 알지도 안하지, 또 보지도 안하지, 또 인정하지도 안하지, 또 누리지도 안하지, 사용도 안하지, 안하지만 해 보라 그말이오.

성경에 모두 다 가르치는 것은 해 보니까 됐어. 해 보니까 다 됐읍니다. 다니엘도 해 보니까 사자 입도 막았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해 보니까 불기세도 막았고 그런 것을 알고 해 보니까 됐다 말이오.

우리는, 요것도 시험입니다. 믿는다 안 믿는다, 믿으면 되고 안 믿으면 안 된다 이라는데 마음으로 인정 안 해도, 마음으로 인정 안 해도 하면 됩니다. 만일 다니엘이가 그때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계명을 지키면서 사자굴에 던지움을 받을 때에 ‘사자굴에 던지워도 사자가 나를 먹지 못할 것이다.’ 그거 다니엘이 안 믿어도 좋습니다. 계명을 지켜서 사자구덩이에 던져져도 하나님께 맡겨서 ‘하나님이 내게 대해 모든 걸 책임지시리라.’ 하고 사자구덩이에 던져져도, 사자구덩이에 던져지면서도, 던져지면서도 ‘주님은 내 안에 계시고, 나는 주님이 책임지셨고.’ 주님과 자기와의 두 관계만 생각하고 사자굴에 들어가거나 불 가운데 들어가거나 상관이 없어.

예를 비유를 들면은 수만 길에서, 원수가 수만 길에서 집어 던져서 떨어진다면 ‘떨어지면 그거 박살될 건데’ 박살될 걸 생각할 필요가 없어. ‘나는 수만 길에서 떨어진다’ 생각할 필요 없어. ‘이라면 죽는다’ 생각할 필요 없어.

죽거나 살거나 박살이 되거나 그거는 주님이 하실 일이고, 맡겨서 주님이 하실 일이고 나는 주님만 바라고 믿고 주님하고 결합되는 거, 주님은 나를 책임지고 나는 주님에게 맡겨서 ‘주님은 나를 책임지고 계신다.’ 나는 주님 모시고 주님하고 자기하고 둘이만 결합되는 요것만 놓지 안하고 있으면은 그대로 있다가서, 떨어져서 만일 박살이 돼도 주님하고 자기하고 둘이 사귄 고거는 그대로 있어서 그대로 영생이오. 그대로 인제 부활해 가지고 영생이오.

또 그래 가지고 당신이 또 안 깨지게 하면 안 깨질 것이고, 상하지 안하게 하면 상하지 안할 것이고, 또 그대로 떨어질 때 떨어지니 날아서 저 수만 리 밖에 날아가 가지고 떨어질라면 떨어지고, 당신이 능치 못함이 없기 때문에 당신에게 맡겨 놓고 당신과 나와의 관계에 밀접의 요것만 되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당신이 우리에게 하라 하는 대로, 보라 하는 대로, 알라 하는 대로, 가지라 하는 대로, 쓰라 하는 대로 당신 시키는 대로 하면 될 터인데 요게 대해서 암만 전능이 있지마는 전능이 나를 보호한다 하는 게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믿어지지 안하니까 세상이, 믿어지지 안하기 때문에 위협을 줄 때 그만 떨어집니다.

‘내가 너 어짠다.’ 믿어지면 그것들이 위협하는, 피조물이 위협하는 것의 위협에 떨어지지 안하는데 모든 것을 믿지 아니할 때에 이 피조물이 이렇게 저렇게 해할 수 있지 믿을 때에는 피조물이 털끝만치도 해할 수가 없읍니다.

믿을 때에는, 믿을 때에는 주님만이 우리를 주관하시고 주권하고 계시고 믿음을 떠날 때에는 피조물들이 우리를 천지만엽으로 우리를 찢고 쪼개고 찌르고 해하고 박살을 만듭니다.

내가 믿음을 가졌을 때에는, 요 성경대로 믿음을 가졌을 때에는 주님만 나를 주관하지 피조물은 손 못 댑니다. 주님이, 믿으라는 대로 믿을 때에는 주님만 내게 관련 있지 딴거는 상관하지 못해. 내가 믿음을 딱 떠나서 믿음을 딱 떠날 때에는 피조물들이 이렇게 저렇게 위협해. 위협만 할 게 아니라 실상 또 당해.

이런데, 요 믿음이 없는 요게 문제인데 요 믿음의 눈을 열도록 하기 위해서는 요 소경바디매오에서 잘 가르쳤읍니다. 첫째로 뭐이냐? 이렇게 믿음의 눈을 뜰라고 예수님에게, 예수님밖에는 믿음의 눈을 띄워 줄 이가 없고 이밖에는 우리, 우리 대속주밖에는 우리에게 이 모든 진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바로 보도록 믿음의 눈을 띄워 주실 이는 예수님밖에 없는 줄 알고 예수님에게 이 믿음의 눈을 바로 뜰라고 달라들면 방해물이 많애. 많은 사람들의 방해물이 많애.

방해물이 많애도 방해당하지 안하고 방해할수록이 더욱 심히 소리질렀다 했어. 요 방해물이 많다 요거 알고, 방해물이 많다. 내가 요렇게 믿음을 가질라고 할 때에는 방해물이 많다. 피조몰 전체는 다 방해할 수가 있고 방해물이 많다. 그래도 방해당하지 안하고 방해할수록이 더욱 심히 큰 소리로 주님 앞에 불렀읍니다.

요 방해 많다. 방해에 방해당하지 않는다, 요거. 방해 많다. 방해 많을수록이 더욱 더 심히 큰 소리로 호소했다. 방해 많다. 방해에 제재받지 안했다.

이라니까 주님이 권고하십니다. 주님이 서서 ‘오라 하라’ 이라니까 그만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막 야단치던 사람들이 ‘안심하라’ 위로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우리가 뭣을 하나님 앞에 이와같이 지금 간절히 기도하고 호소하고 있을 때에 그때에 그 호소하는 것을 하나님이 권고하시고 불쌍히 여겨서 들어 주실라 할 때에는 옆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협조를 하고 옹호를 하고 그만 천대를 안 합니다. ‘아, 안심하라, 지금 너 부른다, 너 부른다, 너 부른다.’ 야단났다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요렇게 세상이 방해하던 것이 주님이 나를 권고하시면 방해하던 것이 방해 반대로 우리에게 협조하는 그 일 합니다. 협조하는 그 일 할 때 그때 사람이 떨어집니다. 협조하는 그 일할 때에 그러면 그때 모든 분위기가 나를 다 위하는, 모든 분위기가 나를 위하는 게 됩니다.

나를 위하는 게 되면은, 그 반대하던 자가 나를 위하면, 반대하던 자가 나를 위하면은, 핍박하던 자가 나를 위하면, 위하면 그만 위하는 그리 눈을 돌리기 쉽다 말이오. 요게 아주 어려움입니다. 그리 눈을 돌리기 쉬워.

내 소원은 눈 뜨는 게 소원이 돼 주님에게 부르짖었는데, 옆에서 야단지겨도 제재받지 안하고 이래 부르짖었는데 요 부르짖어, 갑자기 이 모든 그 방해하고 잠잠하라고 야단을 치고 이래 하던 자들이 그만 정반대로 백팔십도로 전환이 돼 가지고 나를 동정합니다. ‘너 안심하라. 지금 너를 부른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동정하게 됩니다. 요거 무슨 말인지 느껴집니까? 요거 모르면, 대개는 요렇습니다. 자기 부부가 남편에게 이와같이 지금 아주 자기의 작은마누라를 얻어 가지고 이래 가지고 이라니까 분해서 지금 하나님에게 호소하니까 하나님이 그 호소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떡 권고하십니다. 권고하실 때에 권고하시면 옆에 주변의 방해되는 방해하던 사람들이 협조를 합니다.

이와같이 자기를 반대하던 그 남편이 자기를 옹호합니다.

옹호하면서 그만 사랑하고 이와같이 척 옹호하고 하면은 옹호하면 그만 옆에 사람들이 ‘너를 부르신다. 안심하라.’ 이와같이 협조하니까 그 협조하는 그리 눈을 싹 돌려버리고 소원하던 건 잊어버린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일이 될라고 하나님이 권고하셔 놓으면은 나중에 그 사람들이 옹호하니까, 옹호해 막 이래 협조하고 이래 자꾸 추켜 올리고 자꾸 위하고 이라니까 그만 그 자기 반대하던 자들이 자기를 환영하는 거기에 눈이 돌려 가지고 그만 그 환영하고 하는 그면으로 쏠려 가지고 하는 자기 소원을 잊어버린다 말이오. 목적을 잊어버려. 요럴 때 목적 안 잊어버려야 됩니다. 이런 거는 여러분들이나 듣지 학생들에게는 못 가르쳐요, 가르쳐 봐야 그걸 모르니까.

그래도 이는 있다가 다른 데로 돌리지 안하고 자꾸 부르짖습니다. 이러니까 이제 ‘너를 오란다. 오라 하신다.’ 이러니까 ‘오라 하신다’ 요 말을 듣고 난 다음에는 마구 뛰어 일어섰읍니다. `오라 하신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슨 소원이든지 소원을 가지고 호소할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그것을 우리가 볼 수 있읍니다.

부르시는 것을, 부르시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눈으로 육안으로 보는 게 아니고 ‘주님이 내 기도를 들으신다, 내 기도를 들으신다. 또 나에게 기도의 응답을 하신다. 지금 내 호소를 당신이 들으시고 나를 권고하신다, 은혜를 베푸신다.’ 그런 기미를 보인다 그말이오. 그런 기미를 보여. 그런 기미가 보여.

그럴 때에는, 주님이 기미를 보입니다. 이거 참 어려운 건데. 주님이 나를 권고하시고 내 기도의 소원을 들으시는 것이 자기에게 흔적이 보여집니다.

보여지고 ‘주님이 나를 돌아보신다. 내가 기도가 된다. 이상하게도 기도가 된다.’ 자꾸 기도가 나오고, 주님하고 멀어진 것이 주님하고 좀 가까워지는 것이 감이 생겨지고, 주님과 밀접해지는 것이 느껴지고, 또 주님이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이 자기에게 느껴지고, 뭣이 자꾸 이렇게 보여집니다.

이렇게 보여지면 그럴 때에 우리가 시험들기 또 쉽습니다. 그럴 때에 그럴 때 우리에게 뭐이냐? 기도가 자꾸 나오고 또 주님이 권고하시고 이렇게 은혜가 돼지고 이러니까 ‘이럴 때는 뭐이든지 하면 되겠다.’ 그 믿어집니다. 뭐이든지 주님에게 구하면 이것도 되겠고 저것도 되겠고 주님께 구하면 뭐이든지 되겠다 싶은, 우리에게 모든 면에 대해서 확신이 생겨집니다. 확신이 믿음이 생겨져요.

믿음이 생겨지면 그때에 그만 ‘이것도 하나님께 구하면 되겠고 저것도 구하면 되겠다.’ 해 가지고, 자기는 구하는 것이 단일 간구가 안 되고 여러가지로 그만 이것도 구하고 저것도 구하고 구하는 것이 한 군데로 단일의 간구가 되지 안하고 단일 간구가 여러가지로 흩어져서 분산 간구가 됩니다. 분산 간구가 돼요. 분산 간구가 되는 요것이 위험합니다.

분산 간구가, 자기에게 믿어질 때에 믿어질 때 주님이 나에게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나와 가까워진다, 요럴 때에, 그럴 때에 우리는 그 단일 간구를 하지 안하고 그만 이 우리의 간구하는 것이 하나만 소원하지 안하고 이 소원이 막 흩어지기 쉽다 말이오.

요게서 실패하고, 주님이 오라 하라 이럴 때에 모든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막 잠잠하라고 야단을 치고 아주, 이스라엘은 눈먼 그런 사람은 죄 때문에 전부 병이라고 다 그래 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죄인이 어데 입을 벌리노? 선생님, 거룩한 선생님이 지나가는데.’ 잠잠하라고 고함을 지르고 막 이 멸시를 하다가 갑자기 그 사람들이 뚝 변해져 버립니다. 변해져 가지고 ‘안심하라’ 저를 협조한다 말이오. `안심하라’ 협조하는 것은 주님이 서서 부르시기 때문에 그때가 그때라. 부르시니까 반대하던 자들이 옹호하는 그럴 때에 이제 자기를 핍박하던 자들이 자기를 다 핍박하지 안하고 옹호하면은 옹호하는 거게 그만 좋아서 옹호하는 거기에 좋아 가지고 옹호하는 그 면으로 눈을 기울여 가지고 그 좋아하는 거게서 그만 그거 소망하고 그리 기울어지고 이래 해 가지고 자기의 소망을 잊어버리기 쉽다 말이오.

이러니까, 요런 거 뭐 증거, 신앙에 안 느꼈으니까 안 느끼는 사람은 말해야 몰라.

요게 제일 위험입니다, 미혹. 환경이 자기를 권고할 때에 그때에 내가 그만 주님에게 간구하는, 주님을 향하는 눈을 마치 포수가 짐승을 쏘면은 딱 화살을 가지고 그놈만 겨누고 있는 거 모양으로 주님만 겨누고 요래 지금 요래 겨누어 가지고 있다가 그만 옆에서 환영하면은 환영하는 그리 내 마음이 기울어지기 삐뚤어지기 쉽다 말이오. 요거는 가르치지 말아요. 요거 지금 가르칠라면 학생 가르칠라면 다 잡아 버려요 못 해요. 자기만 알지.

요리 기울어지기 쉽고, 또 주님이 오라 이럴 때 갑니다. 오라 할 때 뛰어 가 가지고 주님 앞에 나타나니까 ‘네가 나한테 뭣을 구하느냐?’ 이랄 때 뭐이든지 주님께 구하면 다 될 것이고 그만 이것 저것 다 주님에게 구하면 다 된다. 요렇게 되어질 때에 그때에 그때 우리의 간구가 단일 간구가 되지 안하고 분산 간구가 될 때에 헛일입니다.

그런데 여기 소경은 그때에 ‘내가 너한테 뭐 해 줄까?’ 이러면 제가 없는 것이 돈도 없고 옷도 없고 뭐 세상에 모든 거 없으니까 간구할 게 많지마는 다 안 하고 그저 ‘보기만을 원하나이다’ 요라니까 주님이 `네 믿음이' 한 것은 뭐냐 하면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는 그 믿음이 무슨 믿음인가? 바디매오 그 믿음은, 그 믿음은 주님이 오만 거 다 줄라고 해도 다 싫고 보기만을 원하는 그 믿음, 또 핍박하던 사람들이 자기를 환영하고 막 추켜들고 이리 협조해도 그 협조하는 거게 놀아나지 안하고 그리 마음 기울어지지 안하고 그저 주님에게 기울어진 그 믿음, 또 이런데 방해를 해도 방해받지 안하고 더 간구한 그 믿음, 또 모든 자기의 불행의 원인이 꼭 보지 못하는 거게만 있다 하는 그것만 소원한 그 믿음, 요 믿음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들이 기도를 많이 하면 성령님이 알려 줄 것이기 때문에 그때에 여러분들의 입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치게 하는 그대로 가르치십시오. 이래 기도를 많이 하고 그때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만 자꾸 가르치라 그말이오.

나는 지금 이 말 하는 것이 지금 안 돼. 왜 안 되느냐 하면은 여러 반사들이 많은데 이렇게 저렇게 다 이라도록 이래 할라 하니까 안 돼. 자기가 가르치는 그대로 가르쳐요.

그러니까, 이 반사 공부할 때에 가르치는 것은 모든 반사들이 다 이렇게 가르치고 이래 할라 하니까 내가 설교를 옳게 못 해요. 장년반이든지 그래 아니면 내가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또 가르치면 할 수 있는데.

이러니까 여러가지를 지금 여러분들이 알도록 이리저리 이모저모로 말하는 것이니까 이게 속에 지식으로만, 믿음의 지식으로만 담아 가지고 기도를 해 가지고 자기 속에 계시는 주님께서 그때 가르치라 하는 대로만 가르치라 말이오.

‘목사님이 이렇게 말하더라.’ 하니까 요렇게 가르치려 그렇게 하지 말고 기도해 가지고 그때에 주님이 여러분들 속에서 가르치게 하는 그대로 말 나오는 대로 자꾸, 말 나오는 대로, 목적만 말이요, 어짜든지 보지 못하는 이 비참한 거, 보지 못하는 이 비참한 그것을 말해 주고, 보지 못하는 비참을 해결하는 데에는 이렇게 바디매오와 같은 이런 관계 이런 순서를 가지고 해결할 수 있다 하는 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하는 그 믿음, 고거 하나 알려 주기 위해 가지고 여러분들이 노력을 해서 가르치시면 좋겠읍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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