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신앙


선지자선교회 1985년 10월 8일 교역자회

 

본문 : 창세기 32장 21절∼32절 그 예물은 그의 앞서 행하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경야하다가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이 야곱은 실수를 많이 한 사람입니다. 부모와 형제를 속인 사람이요 또 항상 자기 어머니 밑에 돌면서 그저 집안에서 뱅뱅 도는 그런 참 속담에 암남자라 못난 남자라 그렇게 평할 수 있고 그 형 에서는 영웅적이며 쾌활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면을 잘못 생각하면 참 야곱에게 대해서 우리는 다 그를 아무 못난 남자라 또 엉큼한 남자라 그렇게 야곱에 대해서 악평할 수 있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그 모든 생애를 본다든지 또 하나님이 그에게 대해서 평가한 것을 보면 대단히 야곱에게 대해서 호평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거 이유가 뭐인가? 그것은 야곱이 저거 조상들이 섬기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섬기는, 조상들이 섬겨 온 그 하나님을 빼앗기지 아니 할라고 또 그 장자의 기업을 빼앗기지 안할라고 그 욕망에서 이렇게 많은 인간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내용을 모르는 사람 쪽으로 보면 그는 너무도 예의도 체면도 윤리도 도덕도 없는 그런 아주 못쓸 사람이라 이렇게 생각하기 쉬우나 우리가 우리 일에서 경험해 본 데도 무엇이든지, 자기가 제 이로 제 삼으로 소망을 하고 기대를 가지는 데 대해서는 사람들이 유유한 여유성이 있읍니다.

그러나 자기가 제일 귀중히 여기는 제 일로 삼는 거게 대해서는 사람들이 그만 여유성을 가지지 못하고 각박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을 봅니다. 사람이 뭐 물질 문제나 이런데 대해서는 그 유유한 사람도 자기 생명이 딱 끊어지는 그런 지경되면은 당황을 하고 어짤 줄을 모르는 걸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거는 자기에게 생명이 제일 귀중하고 거게다가 제일 애착을 가지고 제일 그 중대한 가치로 두기 때문에 거기 대해서는 당황해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야곱도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 삼고 그 선조 때부터 내려온 하나님의 축복을 자기 축복을 삼을라고 여게다가 욕망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보니까 놀러도 가지 못하고, 혹 놀러 가면 그 아버지하고 어머니하고 어떻게 돼 가지고 자기의 그 축복이나 혹은 자기가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 삼는 데나 무슨 지장 있을까 해서 그 사람이 집을 떠나지 못 한 것도 그것이요, 또 거짓말한 것도 그것 때문에요, 의례히 그 형은 에서라 씩씩한 남자라, 영웅이라.

아, 이러니까 그 뭐 거리끼는 일 하면 당장 뭐 그때는 지금보다 다른 때입니다.

당장 죽여 버릴 터이니까 자기 생명이 그 위험한 그런 일이라 말이오. 그래도 생명의 위협도, 부모에게 속이는 것도 그런 것도 뭐 돌볼 만한 그런 여유 없이 장자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안하고 그와같이 함으로써 사람으로서는 많은 실수를 저지른 그 면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과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 이 소망을 인해서 그런 것을 한 번 생각해 볼 때에 하나님은 그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 점으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그에게 대해서 동정하지 아니할 수 없고 협조하지 안할 수 없고 책임을 지지 안할 수 없고 그를 절대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야곱은, 그래서 그 모든 것을 다 통례를 보면 야곱은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굳건히 가진 사람이다, 야곱은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아주 극심히 가진 사람이다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이 거짓말도 하고 실수도 했지만 하나님은 그 뒤에 야곱과 그 거짓말하고 실수하고 쫓겨나고 함을 인해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대해서 그 밀접한 친밀을 가졌고 야곱에게 대해서는 당신이 특별히 책임을 지지 안할 수 없는 그런 일이었었지 하나님이 범죄했다고 정죄해서 그렇게 쓸어버리지를 안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뭐 깨달을 것 있는 것 뭐냐? 우리가 이런 것 저런 것 뭐 있지만 하나님께 소망두는 이것을 하나님은 그렇게 기뻐하십니다. 아, 사람들도 어릴 때는 부모와 자녀의 사이가 밀접하고 차차차차 커지면 부모 사랑도 성글어지고 자녀가 부모 앙망하는 것도 성글어지고 뭐 효성 효성하고 말하지만 그거는 그저 의리의 이성 판단으로 효성하는 것이지 본능적인 그런 효성은 차차 성글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게 뭣 때문인가? 그것은 단지 부모에게 소망이 강하고 엷어지고 하는 거기에 원인이 된다고 그렇게 우리는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는 뭐 '부모 없으면 다 죽는다' 부모만 바라보고 부모 없으면 죽는다. 부모만 바라보고 부모만 의지하고 부모로 자기 전부해서 그 부모 떨어지는 데, 부모가 떨어지는 데 대해서는 뭐 죽을똥 살똥 모르고 날뛰는 그 관계를 가진 그 아이를 부모가 떼 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성해서 '아, 부모가 계시면 필요하지만 뭐 떠나시면 어짤 수 없지.' 해서 그 부모에게 떨어지는 거나 부모에게 대해서 위기나 그런 것 있어도 당황하지 안할 만치 부모에게 대한 소망이 성글어질 때에 부모도 거게 대해서 사랑도, 모든 책임도 성글어지고 또 자녀들도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기서 주님에게 소망 바라고 '이분이 아니면 나는 죽는다.

이분이 아니면 아 된다. 그분에게 소망을 가지는 이 소망 강한 이것이 주님의 그 마음을 감동시키고 끌 수 있다 하는 것을 우리가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렇게 하나님께 대한 소망이 참 견고했습니다. 또 그 사람은 하나님에게 대해서 믿는 믿음이 참 견고했습니다. 벧엘에서 밤에 잠자다가 그 꿈에 사닥다리에 오르내리는 하나님을 만나 보고 하나님께서 '이제 네가 여게 제단 쌓으면 내가 너를 축복해서 가서 크게 성공을 해 가지고 돌아오게 하겠다. 네가 이리 이리 하라.' 하니까 그 말씀을, 그 약속을 믿고 주님이 주시리라' 하고 독실한 신앙 생활했습니다. 그 신앙 생활 잘했던가 못 했던가 하는 그것은, 보면 그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온 것이 그게 증거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행할 때에 또 인간적으로 보면 조금 뭐 야비한 것도 있고, 또 허술한 것도 있고, 또 보면 어리석은 점도 있고, 있는 것 같으나 순전히 그것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을 믿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생겨진 일이라고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것,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 그는 또 아주 든든했습니다.

또, 그가 얍복 강에, '얍복 강을 건너서 네 친척 아비 집으로 돌아가라' 이렇게 말을 할 때에 그가 돌아가기로 출발을 해서 가는데, 그 가는 데는 자기 형에서가 사백 명 군대를 거느리고 있으니까, 가면 죽을 터이니까 그곳에 가는데 있어서 하나님에게 아무래도 내가 가기는 가야 되는데 내가 이번에 가면 그 형한테 지금 다 죽임을 당하고 내 모든 소생이나 모든 소산들도 다 이거 절단납니다. 이렇게 자기 속에 죽음이 가로막고 있지만 그곳을 안 갈 수 없어서 그곳을 가면서 그렇게 울부짖는 걸 보아서 그분이 하나님의 약속을 순종하는 것이나 또 하나님의 명령 순종이 얼마나 참 진실하고 어길 수 없다는 그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는 것을 또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 또 하나님을 믿는 것, 또 하나님의 명령 순종하는 것 이거 뭐 일등입니다. 또 그가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안심하고 가라. 야곱이, 사백 명 군대 거느렸다 하니까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서 야곱으로 더불어 함께 하는 천군 천사들이 많은 것을 보여 줬습니다. 이랬는데 하나님과 얍복 강가에서 싸운 것이 어떤 사람이라 이렇게 처음에는 나타났지만 나중에는 야곱이 말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났는데 죽지 않은 게 다행이다' 그러면 자기가 씨름한 그 대상이 하나님이라 하는 것을 자기가 마지막에는 깨달았었습니다.

깨닫고 하나님 앞에 아주 간구한 것이 그게 참 밤새껏 그렇게 하나님에게 간구한 그 간절한 기도, 간절한 그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라고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하는 데에 흠 없는 사람이라, 하나님 명령 순종에 흠 없는 사람이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데에 흠 없는 사람이라, 하나님에게 소망 두는 소망이 요동치 않는 사람이라. 이렇게 모든 면이 견고하고 참 흠 없는 사람이지만, 야곱에 대해서 하나님이 평하시기를, 이제 그 뒤에 보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평하기를 '이제 이 사람이 나로 더불어 씨름해 가지고 내가 이기지 못하겠다' 그러면 하나님을 하나님이 이기지 못할 만치 대항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마지막에 환도 뼈를 쳐 가지고 그 병신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병신 만들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네 이름이 뭐이냐?' 야곱이라 이랄 때에 '네가 야곱이라 하지말고 이스라엘이라 이제 후로는 네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지라.'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사람이, 하나님하고 시비해 가지고 하나님을 이겼다. 사람이 하나님하고 시비해 가지고 하나님을 이겼다. 이김으로 하나님 앞에 큰 징계를 받았다 징계를 받았는데 그 징계 받고 제가 회개했기 때문에 그랬지 회개 안 했으면 죽습니다. 이러니까 제가 회개하고 난 다음에는 내가 하나님을 만났으나 참 죽지 안한 것이 다행이라는 것을 자기가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여기서 보면 야곱이 모든 면이 좋았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소망도 좋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도 좋았고, 순종도 좋았고, 또 열심도 좋았고, 또 하나님에게 간구하는 그거 기도도 좋았고 이랬는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과거에는 만족했지만 얍복 강가에 와 가지고 하나님이 만족하지 안하셨습니다. 만족하지 안하고 안 되니까 환도 뼈를 쳐서 병신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그랬을까? 하나님 당신하고 다투는데, 당신하고 자꾸 이렇게 시비를 하고 다투고 당신에게 양보하지 안하고 지지 안하니까 마지막에는 그 환도뼈를 쳐서 병신 됐습니다. 그래도 안졌으면 야곱은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이 하나님하고 씨름하는 그 다툰 게 뭐입니까? 다툰 그 내용은 거기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라 안심하고 가라. 내가 가라 하니까 안심하고 가라' 하는데 야곱은 '안 됩니다. 에서에게 가면 죽습니다.' 이제 그 야곱이 모든 면이 좋았지만 자기 중심이라는 그 중심, 자기 중심이라는 중심, 자기 주관 고놈을 하나님 앞에 꺾어서 완전히 부인해야 되는데, 이제까지 어릴 때는 이렇게 저렇게 나왔지만 이제는 장성 해 가지고 마지막에 지금 인제 새 길을 걷고 가는 이런 거석인데, 그 최후적인 그런 걸음인데 거기서 자기를 비우지 안하고, 자기를 양보하지 안 하고 자기 주관을 세워 가지고, 과거에 이제 장가가고 뭐 아들 낳고 양 먹이고 할 그때 하던 그 버릇을 가지고, 이제 자기 중심 자기 주관을 가지고 끝까지 하나님을 향하여 자기 중심대로 할라고, 자기 중심대로 할라하고 하나님을, 암만 말해도 하나님에게 따라가지 안하고 자기 중심을 자꾸 주장을 세우고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못 이기심으로써 그 환도뼈를 쳐서 병신 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네가 야곱이라 이제는 하지말고 이스라엘이라 해라' 이스라엘이라면 무슨 이름인데? 하나님하고 싸워 가지고 이기다가 이제 징계 받았다 하는 그 이름이라.

이스라엘 이름은 그겁니다. 하나님하고 시비하다가 하나님을 끝끝내 이김으로써 하나님 앞에 징계 받았다. 하나님 앞에 멸망 받았다. 그것이 이스라엘입니다.

그 이스라엘 이름을 요새 모두 다 말하기를 뭐 왕자의 이름이라 뭘, 그런 거 다 순 조짜배기,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 그거는 어떤 거 아니고 뭐 언어학자가 무슨 학자가 말한다 해도 성경에 해석하기를, 그 이름을 말하기를 이랬어. 하나님으로 겨루어 가지고, 하나님으로 힘을 겨루어 가지고 이겼다하는 그 뜻입니다. 그러면 이기고 난 다음에 그래 가지고 징계받았다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가 그 다음부터는 회개를 하고, 회개한 게 무슨 표가 납니까? 처음에는 '못 갑니다. 가면 죽습니다. 가면 죽습니다.' 했는데 그 다음에 한 대 맞고 난 다음에는 이제 그가, '네가 다시는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해라. 네가 무엇이든지 막 주먹을 내대 가지고 욕심만 내면 되고 주먹만 내대면 되고 욕심만 부리면 되고 세워대면 되고 이렇게 꾀만 부리면 되고 했지만 야곱의 행동 그거 행하지 말고 이제는 네가 하나님 대항해 싸우다가서 징계받아서 지금 병신됐다 하는 그것을 기억하는 그것이 네 이름이니까 그것을 기억하는 자가 돼라.' 이랬을 때에 야곱은 그때부터 말하기를 그렇게 말했습니다. 27절에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부를 것이 하니" 다시는 네가 아버지 어머니 밑에서 에서의 장자의 축복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안하고 취하니까 됐다. 또 밧단 아람에 가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죽자껏 힘을 쓰니까 마누라도 둘 다 욕심대로 다 취했다. 또 이래 하니까 양떼들도 많이 됐다.

이것이 버르장이가 돼 가지고 자꾸, 그때 어릴 때는 어릴 때지만 마지막에 얍복 강에 가 가지고도 하나님께서 '이제 가라' 간다 해 가지고 출발하기는 출발했지만 에서가 죽일라 하니까 죽어도 순종해야 되니까, 죽으나 사나 하나님이 가라고 하니까 가야 될 터인데 '못 갑니다. 안 됩니다.' 요걸 세운 것이 그것이 야곱의 마지막의 씨름입니다.

그래 가지고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고 난 다음에는, 그때는 이제 회개를 하고 출발했습니다. '예, 제가 가겠습니다.' 가면서 뭐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 함이더라" 이래서 이제 그 다음에는 네가 무엇이든지 네 주관 '내가 하면 된다. 하면 되지 안 될 게 뭐 있느냐? 내가 믿고 하면 된다. 내가 하면 된다.' 이렇게 하는 그 주장의 그런 버릇을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이 계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약속했기 때문에 '하면 된다' 하는 그런 버릇을 이제는 하지 말고, 다시는 하지 말고 이제는 네가 하나님이 죽으라면 죽고 살라 하면 살고 하나님이 명령하는 데에 복종하는 네가 되어지고 네 주관을 완전히 하나님 앞에 꺾어서 정복을 당해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시고, 그때부터 하나님은 가라 했는데 그 말대로 순종해서 얍복강을 건너서 갔던 것입니다. 그 전에는 세워대다가 갔습니다.

그래 이제 한 대 맞고 난 다음에 가니까 그만 어찌 됐습니까? 한 대 맞고 가니까 자기라는 사람이 완전히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꿔졌습니다. 하나님 대항하면 죽는다. 그분이 이렇다 하면 이렇고 저렇다 하면 저렇지 그분에게 대항해서 '아이고 그래도 안 됩니다. 그래도 안 됩니다.' 이렇게 대항하면 자멸하는 행위라 하는 것을 굳게 잡고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에게 꼬박꼬박 '예'로 했지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 대항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 뒤에 역사의 전기를 보면 그러니까 자기가, 자기가 주관이 살아 가지고 예수를 믿고 따라 다닐 때에 그 사람과 이제는 자기가 완전히 주관을 하나님께 복종시켜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믿을 때와 자기도 완전히 변해졌습니다.

자기가 변해지고 보니까, 자기가 변해지고 보니까 그게 보니까 이제 해가 돋았더라 했는데, 그러면 그때 해 돋을 때가 되어 돋았지만 자기가 변화되고 보니까 깜깜한 밤이 다 지나가 버리고 광명의 낮이 됐습니다. 자기가 변해지면,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을 당해 가지고 완전히 그에게 복종을 당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굴복당하면 자신이 변해지고, 자신이 변해지면 모든 세계가 다 변화됩니다. 환하게 대낮이 됐으니까 깜깜함이 대낮이 안 됐습니까? 주위 환경이 다 변해지고 원수도 변해져서 아, 에서가 목을 안고 울지 안했습니까? 변해지고, 그래 가지고 그 다음 부터는 다시는 이스라엘 이름을 어쨌든간에 잊어버리지 안했습니다. 하나님 대항하면 죽는다. 하나님 대항하면 죽는다. 하나님 대항하면 죽는 다 하나님에게 복종하면 모든 것이 다 변해서, 망할 것 같은데 성공이, 천해질 것 같은데 존귀해지고, 죽을 것 같은데 산다 하는 요것을 명심하고 가진 것이 이스라엘의 이름의 뜻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왜 내가 이 시간에 지금 갑자기 얘기하다가 무슨 말씀을 증거할까 이래 생각하니까 이 말씀이 내게 생각 와서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어릴 때에 야곱이 부형을 속이고 장자의 그 기업을 도둑질할 때와같은 그런 때도 있지만 그때가 지나갑니다. 그때가 언제든지 있는 것 아니오 그때가 지나갑니다. 그 야곱이 제딴에는 그렇게 서둘렀기 때문에 장자의 축복 받았다 이렇게 하지만 가만히 드러누워 있어도 장자의 축복은 딴 데 안 갑니다. 딴 데 못 갑니다. 벌써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입니까? 아, 리브가가 벌써 아이 뱄을 때부터도 다 하나님이 예고해 놓고, 날 때부터 다 정해 놓고 이랬는데 그거 어디로 가겠습니까? 공연히 제가 당황해서 날뛰고 제 주관대로, 그러니까, 한 것 있으면 제가 해서 그렇다고 된 줄안다 말이오. 하나님이 축복했으니까 그 양떼 대해 가지고 그렇게 간교하게 뭐 버드나무 껍데기를 오려서 이래 붙이고 그 따위짓 안 해도 하나님이 축복했으니까 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전부 제가 해 가지고 제가 된 줄로 아는 요걸 마지막에 얍복 강에 가 가지고 확 게워서 이제 홀트리 게워 내트리고, 안 게워 내트리면 저는 죽어. 그러다가 나중에 하나님께 매 맞고 난 다음에 그것을 이제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이제는 내가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완전히, 안 됩니다. 하던 것이 완전히 거기서 한 대 맞고 난 다음에 회개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거 맞고 나니까 세계가 다 달라지지, 원수도 달라지지, 모두가 다 달라져 버렸어.

이러니까, 오늘 우리가 목회할 때에 처음에는 제가 나서 가지고 제가 하는 듯이 이래 하는 그런 때도 있지만 그게 끝까지 성공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뭣인가 가다가서 어려움이 들 때에는 두말할 것 없이 '아, 어려울 때 나 부인하라고 하는 것이다. 나 부인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제 나를 죽이라는 것이다.

나를 믿고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 부인하라는 것이오. 자기 부인하면 그만 형통해집니다. OOO목사님, 요거는 귀에 안 들어가지. 귀에 안 들어가면 끙끙거려 쌓아야 소용없어 야곱이 얼마나 끙끙거렸어? 끙끙거려 소용 있는가? 소용없어 이제 하나님은 자기 부인을 최고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기 부인하고 당신으로 전부를 삼아서 당신이면 다 돼. 당신이면 다 되니까. 아,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하는 것은 뭐이냐? 하나님은 나에게 축복해 주실 수 있도록, 당신이 기적으로 나와 하실 수 있도록 그거 하는 것이지 그분을, 그분의 마음을 감동시키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제가 해 가지고 뭐이 되다는 그런 생각 가지는 자는 다 야곱이오. 그거는 이스라엘이 아닌 야곱이오.

이러니까, 우리는 자기라는 것을 완전히 죽여서 하나님을 믿고 바라고 의지하고 그분이 해서 된다는 것을 알 때에 그 사람에게는 향기가 나오고 하나님은 함께하실 수가 있고, 그 사람에게 어려움이 없지, 제가 든 것 만치 반드시 고놈이 녹아지기까지 하나님은 기어코 세워댑니다. 하나님이 지는 줄 알지만 아, 이제 그거 환도뼈 쳤지. 환도뼈 쳤는데 제가 또 '아닙니다. 아무래도 가면 나 죽습니다.

아닙니다.' 했으면 그 다음 뭐 했겠소? 모가지 끊어 버렸을지 모른다 그 말이오.

모가지 끊어 버렸을지 몰라.

그러니까, 우리가 요것을 잘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면 예수 믿는 사람은 어깨를 축 쳐져 가지고 느준해 가지고 겸손하면 다른 사람한테 예예예 죽는 듯이, 여기 OOO목사 회개해야 돼요. 어디 갔노? OOO목사 어디 있어? 회개해. 뭐 까짓 이래 가지고 꺼죽하게 그래 가지고. 활발하게. 나 지금 좀 전에 OOO장로 전화했어 나 한테 와서 뭐뭐 전화를 가지고 이래 해 가지고 이라기 때문에 내가 이랬어 '이제 장로가 됐으면 장로 둘 아니가? 둘이면 교회가 평안하고 아무 일 없어야 되는데 일 없나?' 내가 이래 물으니까 '아무 일 없습니다.' '그라면 장로 됐지. 일 있으면 가서 장로 다 사면해야 된다. 장로 자격 없다' 그러니까 '아무 일 없습니다.' 뭐 저 먼저 그 뭐 예배 보는데 결혼식 하는데 뭐 밑에 어짜고 위에 어짜고 하기 때문에 내가 좀, 내가 대면도 안 하고 전화로 소식을 전했어. '그 소식 들었나?' 들었다고. '그래 하고 있나?' '예, 그래 하고 있습니다.' 뭐 어떻게 잘 순종하는지.

아, 이런건데 공연히 이걸 그 무자수를 독사로, 무자수라 하는 것은 뱀인데 그 뱀 그거 무자수는 물어도 독도 없는 것이오. 이 순한 뱀을 독사를 만든다 말이오.

자꾸 이래 턱 느준해 가지고. OOO목사님 좀 머리 좀 들어 봐요, 좀. 꽹꽹거려, 좀.

꽹꽹거리라고, 좀 어깨 축 쳐져 가지고 있지 말고. 어깨 축 쳐지는 거는 뭐 염려가 있어 쳐지는 것이 지 하나님과 저와 동행하고 진리와 동행하는데, 아, 진리하고 저하고 하나인데, 하나님하고 하나인데, 아, 제가 옳은 일 하면 진리하고 하나고 하나님하고 하나고 그게 동행 아닙니까? 제가 삐뚤어진 일 했으면 온 교인이 저를 다 지지하고 한국 교회 세계 교회가 다 지지해도 하나님과 이별했으면 제까짓 게 절단이지 무슨 배짱이 있겠소? 이게 지혜 있는 사람 치고 성신의 사람들이라 그거야 아, 하나님하고 나하고 무슨 일 처리할 때나 경할 때나 중할 때나 하나님과 동행하는데 하나님하고 동행하니까 진리하고 나하고 하나됐으니까 우주를 창조한 그 능력하고 나하고 하나 동행했지, 또 하나님하고 동행하니까 창조주하고 나하고 동행인데 누가 뭐 두려울 것이 있습니까! 그래 가지고 빨랑빨랑하게 지냅시다.

이래서, 이제 아침에 우리가 오전에 그말 했지요? 이거 오전이요? 언제 그말 했소, 우리가? 엊저녁에 그말 했습니까? 좀 빤들빤들하게 하고 기름도 찰찰 바르고 양복도 좀 매끈하게 입고, 왜? 이것도 사치로 이러는 건 죄가 되지만 '아, 예수 믿는 사람들은 꺼준하게 그렇다' 주님에게 영광 돌리기 위해서, '아, 예수 믿는 사람 그거야 등신들만 믿는 게 아니고 똑똑한 사람 믿고야, 그 사람들 빠리빠리하더라, 아주, 빨랑빨랑하더라.' 이래 복음에 영광을 돌리고 주님에게 영광 돌리기 위해서 이래 입으면 자 그거 나쁘겠소 좋겠소? 그렇게 깨끗하게 하는 거 나쁘요 좋소! 좋지. 나쁠 게 뭐 있습니까? 인제 OOO목사도 떡 이래 하지 말고 좀 빨랑빨랑 해요, 좀. 기름 바르고. 예? 양치도 매매쳐서 입에 내음 이 잇몸 썩는 내 쿨쿨 나구로 하지 말고. 그래, 구찌배니 발라 구찌배니 없거든 구찌배니도 발라, 발라 가지고. 이것이 주를 위해서 하는 것이 과연 주를 위한 그 결과의 효력이 있다고 하면 그보다 더 의로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이거 좀 우리 빨랑빨랑 해 가지고 '야, 총공회 산하에 있는 그 교회들 보니까 무엇을 아무것도 못 해도 뭐 할 것 같더라. 보니까 모두 기운 이 팔팔하게 살았더라 뭐 생기가 팽팽하더라.' 이래야 될 거라 말이오. 우리 처음에 나설 때는 그랬어요. 아, 저 지금 O교파에 아마 머리됐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O목사님이라고, OOO목사님 압니까? OOO목사님 왜 OO에 있는 그이가 목사되지 안 했어요! 저 OOO전도사님의 저거 제부 OOO이가 뭐 총회장도 했을 건데.

노회장도. 예? 노회장했어? 그런데 그분이 와서 보고 그렇다 해. '아이구야' 그 우리 총회에 가는 교역자 보고 '아이구 무섭다, 두렵다. 영 뭐뭐 호랑이를 잡아갈듯이 빨랑빨랑 눈동자가 또록또록하이 무섭더라.' 이랬다는데, 요새는 보면 '아이구 풀대죽같은 것들아' 이래 할 거라. 공연히, 공연한데 이래 겸손한 그거는 소용없고, 어짜든지 주님 앞에 겸손해서 죽으라면 죽고 살라 하면 살고 그분 앞에서 양보하고, 주님 앞에는 종이 되고, 모든 피조물에게는 또 뭣 됩니까? 예? 왕, 상전.

우리가 진리와 하나되면 진리와 하나되고, 진리는 뭐입니까? 성경 말씀 아니오? 성경 말씀과 나와 하나되면 주님과 하나되고, 구원은 내것 되고, 천상 천하의 피조물은 또 뭣 됩니까? 피조물은 뭣 돼요? 내것 돼 하나님도 내것 되고 진리도 내것 되고 모든 피조물도 내것 돼. 내것 되는데 내것 되는 방법이 달라. 현실에서 주의 말씀대로 행하게 되면 나는 진리의 것이 됨으로써 진리가 내것 되고, 나는 하나님의 것이 됨으로써 내것 되고, 모든 피조물은 그게 내것이 됨으로써 내것 돼져. 이러니까 그 질서와 조직과 모든 그것이 얼마나 균형이 바로 됐습니까? 지위가 얼마나 정연하게 되는 것이오? 이러니까, 내가 현실에서 요 진리를 지킴으로써 그 진리를 내 진리 삼고, 그러니까 진리 지켰으니까 나는 진리 것 됐지. 진리 지켰으니까 진리는 내 머리 했지 주님은 내 주님됐지. 나는 주님의 것 됐지. 아, 현실에서 내가 진리대로 사는 여기서 뭐이 이루어지느냐? 삼각이 이루어져. 내가 있는데 현실에 지킴으로 자, 지키면 진리는 누구 것 됐어! 내것 됐지 또 하나님은 누구 것 됐어? 내것 됐지.

그라면 하나님이 내 소유로 내것 됐습니까 내가 그분의 것이 됨으로써 내것 됐습니까? 내가 그분의 것이 됨으로 됐지. 또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 말씀대로 그때 내가 그대로 그 단행을 했으니까 그거는 내가 이겼어 졌어? 이겼지.

그러니까 그거는 정복으로 내것 됐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모심으로 내것 될 것은 모심으로 내것 되고, 또 통솔함으로 내것 될 것은 내것 되고, 정복함으로 내 것 될 것은 내것 되고, 어떻게 잘 되는지.

요 현실에서 믿음 지키는 요게 얼마나 보배로운지 모르요. 이걸 아는 사람이 뭣 때문에 현실에서 이 믿음 생활을 떠나서 엉뚱한 일을 하겠습니까?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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