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 나눠 주는 자


선지자선교회 1985년 8월 17일 토새 

 

본문 : 마태복음 24장 37절∼51절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 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 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우리는 말세에 대한 그 일곱 가지를 언제든지 우리가 밤에나 낮에나 평소의  생활에 늘 생각하면서 거게 준하여 살아야 하겠습니다.

 노아 때와 같이 그렇게 우리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택자 중에 많이  있고, 또 안다는 것과 자기가 깨닫는 거와 다릅니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아는 사람들은 듣고 보면 아는 것이지만 깨닫는다는 것은 아는  거게서 자기의 무슨 각오가 깨달아 생겨지는 것을 가리켜서 깨달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노아 때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게 그때에 모든 사람들이 다  땅에 속한 일 하느라고 거게 분망해서 이 구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땅에  속한 그런 일들보다 지금 불심판에 대한 이 중대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관심들은  다 그리 기울여지고 거게 준해서 모든 생활이 되어져야 할 터인데 이런 깨달음을  가지지 못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말세에 대한 그 일곱 가지를 언제든지 우리가 밤에나 낮에나 평소의  생활에 늘 생각하면서 거게 준하여 살아야 하겠습니다.

 노아 때와 같이 그렇게 우리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택자 중에 많이  있고, 또 안다는 것과 자기가 깨닫는 거와 다릅니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아는 사람들은 듣고 보면 아는 것이지만 깨닫는다는 것은 아는  거게서 자기의 무슨 각오가 깨달아 생겨지는 것을 가리켜서 깨달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노아 때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게 그때에 모든 사람들이 다  땅에 속한 일 하느라고 거게 분망해서 이 구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땅에  속한 그런 일들보다 지금 불심판에 대한 이 중대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관심들은  다 그리 기울여지고 거게 준해서 모든 생활이 되어져야 할 터인데 이런 깨달음을  가지지 못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갑자기 올 터인데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고 땅위에는 이 말세의 칠 년  대환난의 전쟁의 일어나고. 또 그때에 전쟁은 다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전쟁입니다. 어쨌든지 저희들은 사람 보기에는 실력 다툼이요, 과학 다툼이요,  또는 민족 다툼이요, 또 영토 다툼이요, 나라끼리 다툼같이 보여지지만 그  실상은 택한 자들의 그 의를 빼앗을라고 하는 것이 그들의 전목적인 것입니다.

 이럴 때에, 40절에 보면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임이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혹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그 마음의 감동을 많이 받고 거게  대한 깨달음과 충격을 많이 받게 되면 잘못하면 사람들이 '아, 주님 구름 타고  뭐 오늘 올지 내일 올지 모르니까 뭐 이런 거 저런 거 힘쓸 필요가 뭐 있나?  주님 맞이할 준비나 하면 되지.' 이렇게들 생각을 가져서 도리어 그 타락하기  쉽습니다.

 제가 가조 교회 집회할 때에 보니까 어떤 교인이 하나 참석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교파에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그분에게 물으니까 그때에 ○○파는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신다고, 8월 15일날 구름 타고 오신다고 그전에 모든  신자들이 가진 재산 다 팔아 가지고 서로 8월 15일까지만 우리가 땅에 것 먹고  살면 되지 뭐 그 이후에는 필요 없다 그래 가지고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가지고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예복을 마련 한다고 모두 다 꼭 같은 그 흰옷으로  깨끗하게 지어 가지고 재산이 있든지 없든지 같은 준비를 하고 같이 먹고 살면서  십오일이 가까와질 때는 이 도시에 있는 데에서 철거해 가지고 저 경북 어디  거게, 내가 그 땅은 잊어 버렸습니다. 거게다가 전부 집합을 해 가지고 거게서  8월 십오일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기다려도 팔월 십오일날 예수님이 재림하시지  아니하시고 그날 우리 나라의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에 ○○파의  지도자는 그만 불신임을 당하게 되고 ○○파들은 다 흩어져서 이리저리 모두  흩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그때 옥중에서 나온 사람입니다. 신사 참배 안 할라고  옥 중에 가 가지고 옥고를 한 사람 중에 기독교인 중에는 제일, ○○파가 제일  많았었습니다. 그렇고 다른 뭐. 감리교나 또 성결교 이런데 서는 별로  없었습니다. 성결교의 제일 머리가 되고 그 신학교 교장이고 또 유명한 그런  목회자가 있었는데 그분이 유력했습니다. 그분이 ○○○목사님이라는 그  목사님인데 그분도 신사 참배를 견디지 못하고 다 굴복을 해서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제일, 신사 참배때 이긴 사람들이 어디 많았느냐 하면 ○○파에  제일 많았고, 또 그 다음에는 장로교에 많았었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왔으니 뭐 이런 거 저런 거 할 필요가 있겠느냐 이렇게 생각을 하고  다, 모두 행동을 달리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위주로 해 가지고  상고하지 안한 연고로 그런 실수를 하게 됐습니다.

 여게 보면 예수님의 재림은 일을 하다가 다 맞이했습니다. 똑 꼭 같은 일을  외모로 보기에는 하는데 그 속이 달랐습니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는 그런 신앙  행위를 했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는 그런 신앙 행위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주님의 재림이 가까와 올 때 재림하실 그때까지 일을 하다가  주님을 맞이 해야 된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첫째로 기억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일을 하다가 맞이하게 되면 일을 하는 데에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그  사람이 일을 하는 데에 자기의 어떤 분야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가 일하는  그 일이 평소보다 점점 진실해지고 점점 거룩해지고 점점 경건해져야만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 사람이 재림을 맞이할라고 할 때에  맞이하는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준비를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불에  타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것이 되어져야 된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거룩과 경건이라 말은 무엇이든지 자꾸 거게서 아닌 것을 제거 하고  옳은 것을 찾아서. 그러면 이것은 틀렸다 요게 옳다 그랬으니까 한번 거게서  구별을 한 것이겠습니다. 구별한 것을 또 구별합니다. 구별해 놓고 나서 '아  요거는 또 잘못됐다. 요것이 옳다.' 그렇게 구별 구별해서 자기의 생활 과거는  그것을 돌아보면서 반성하면서 과거를 또 구별해서 잘못된 게 있으면 또 주님  앞에 사과를 하고 사함을 받고, 자기가 옳다고 인정한 그것도 항상 마음에 주님  앞에 심판을 받을 자이기 때문에 또 미진하고 미진하고 마음에 불안하고 불안해  가지고 자꾸 그저 '어디 틀린 게 있는가?' 과거는 반성하고. 또 현재는 구별을  하고. 또 미래에 대해서도 자기가 구별을 해서 내가 이런 소원이나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이 이런, 계획을 가지는 것이 틀렸는가 하는 그것을 늘 계속해서  마음에, 자기 양심에 자책할 것이 없어도 이것이. 내가 어두운 줄 알기 때문에  내 양심에 틀렸다는 것을 발견 못 할 정도라고 해서 안심할 것이 아니고.

 이렇게 그러면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 올수록 우리 하는 일은 어떻게 되는가?  평소보다도 더 구별하고 구별하고, 이라면 충성이 되나 안 되나. 이라면 게을이  되나 안 되나, 이라면 진실이 되나 안 되나, 이러면 내가 주님 앞에 맡은 일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덕이 되나 안 되나? 때를 따라서 양식을 나눠 준다는 그  말은 그 기회나 모든 형편을 가리켜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내가 혼자 있을 때도  하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이 혹 오래 후에 들을 수도 있고 볼 수도 있습니다.

때를 따라 양식 나눠준다 말은 무슨 양식이냐? 그것은 인격의 양식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믿음의 덕을 줘서 믿음을 북돋우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소망을  더 배불리게 하고 소망을 더 강하게 하고, 다른 사람의 회개를 강하게 하고,  다른 사람의 인내를 강하게 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현실 생활하는 그  언행심사의 행동으로써 다른 사람의 구원 준비하는 그 모든 믿음 생활에 도움이  되는 그것을 가리켜서 양식을 준다, 때를 따라 양식을 주어 먹게 한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와 올수록 다른 사람에게 덕 세우기를, 신덕  세우기를 더 힘을 써야 되겠고, 다른 사람들에게 감화 주기를 더 힘써야 하겠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모본이 되기를 더 힘을 써서 다른 사람들이 보든지 듣든지  접촉을 하든지 그들에게 다 믿음의 양식. 그러면 그 사람들의 온갖 신앙생활이  나로 인해서 새로와지고 더 간절해지고 더 힘을 써서 믿음에 잠자는 사람들이  믿음을 깨어서 믿음에 전심 전력을 기울이는 그런 일이 되도록 하는 그것이  양식을 주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 양식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때를 따라 양식을 줘라. 주인이 올 때에 이렇게 "자기 맡은 식구에게  양식을 주는 그자에게 복이 있다. 뭣 때문에 복이 있느냐? 그것은 주인이  오시면. 주님을 가리켜서 주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때를 따라서 양식을 나눠 주는 그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라. 왜 복이  있겠나? 복이 있는 그 이유는 주인이 자기의 소유를 다 그 이에게 맡기리라.

끝까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분담시켜 준 자기 분야. 자기 현실에서 자기 현실  감당을 믿음으로, 진실로, 충성으로, 잘 감당하는 그것이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봄으로서 자기 현실에서 잘 감당하도록 그렇게 힘을 주는 그런 좋은 본이  되어지는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 끝까지 이렇게 자기의 분담된  분야에서. 자기 현실에서 자기 의무와 책임을 그것을 감당하기를 뭐, 기도하는  것도 우리 의무와 책임이요 성경 보는 것도 의무와 책임이요, 또 전도하는 것도  의무와 책임이요. 다른 사람에게 좋은 본을 보이는 것도 그런 것도 의무와  책임이요, 온갖 우리가 다른 사람의 믿음에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믿음애 손해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에 신앙에 도움을 주고 힘을 주는 그 일을 언제까지 하느냐,  그일 하다가 주님을 만나는 사람이 븍이 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파에서 준비한 거와 같은 그런 준비는 다 성경적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다가 '아 주님의  재림이 이렇게 임박하다고 했다면 내가 지금 뭐 하던 일이 나 슬슬 할 일이지  내가 새로운 계획을 뭘 가질 것인가?' 그 계획을 제 뜻대로 가지는 것이라고  하면 그것은 안 하는 게 좋을 것이고, 하면 죄가 될 것이고. 만일 하나님의  뜻대로 계획하는 것이라 하면 주님의 재림이 임박할수록이 자기는 계힉을 더우기  철저하게 가져야 되겠고, 그 계획에서 열중해야 되겠고, 그 계획에 대해서 참된  충성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왜?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래서, 자기의 소유는, 자기의 소유가 있고 자기의 몸의 건강이나 지식이나  총명이나 언변이나 자기의 몸이나 자기 생명이나 그런 것이 다 자기 소유인데 그  전부을 다 해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믿음의 유익을 줄라고 신덕의, 힘을 쓰고,  믿음의 덕에 힘을 써서 다른 사람에게 다소나마라도 자기의 하는 것이 좋은 본을  끼쳐서 그분들에게 회개하는 것이나 소망하는 것이나 간절하는 것이나 열심하는  것이나 충성하는 것이나 참고 견디는 것이나 어떤 것이라도 다른 사람이 자기를  봄으로 깨어서 모든 신앙 행위의 유익을 봐서 마치 배고픈 사람이 밥 먹으면 힘  나는 것처럼 자기 신앙생활이 이 사람의 언행심사의 그와같은 행위를 보고 힘을  얻어 가지고, 믿음의 힘을 얻어 힘 있게 믿음 생활을 하는, 그 사람이 복이  있다.

 그러면, 자기의 모든 거 가지고 끝까지, 하나님이 원하시고 계시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거 모든 사람에게, 양식 주는 것은, 예를 들면 그  사람이 배가 고픈데 나는 밥이 있으면 밥을 줘야 될 것이고 그 사람은 지금  병들었고 나는 건강하니 건강한 사람으로서 병든 사람을 봉사할 때까지 해야 할  것이고, 또 그 사람이 무지해 모르면 나는 내 지혜를 가지고 그 사람을  지혜면으로 도와야 될 것이고 깨달음면으로 도와야 될 것이고 모든 면으로 다른  사람의 인격을 도와서 인격이 힘을 얻고, 인격이 행동하는 행동의 힘을 얻고,  인격이 소망하는 소망이나 뭐 희로애락이나 옳고 바른 것으로 자꾸 힘을 얻도록  그렇게 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 그러면 자기의 전부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의  자기의 이웃에 유익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복 있다. 왜 복 있느냐?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무궁세계의 모든 것은 그에게 맡깁니다 맡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 그러기 때문에, 네가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큰 것으로 맡긴다는 말은  작은 것이라는 것은 잠깐 있다가 없어질 수 있는 세상 생활에 충성을 하기  때문에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겠다는 것은 영원 무궁세계에 하나님의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겠습니다. 왜? 그에게 맡기면 그 사람이 모든 사람 유익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도 이루어지겠고, 하나님의 소원도 만족하시겠고, 또  그로 인해서, 그가 있는 것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다 유익을 보지만, 땅에  있는 거 모양으로 있으면 있는 거만치 다른 사람을 해합니다. 있는 거만치  교만합니다 있는 것만치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나는 이게 이게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 집니다. 니고데모가 주님 앞에 찾아 갈 때에 왜 찾아 가지  못했느냐 하면 자기에게 있는 게 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부끄러워서 주님에게  낮에는 찾아 가지 못하고 밤에 찾아 갔습니다. 그러면 자기의 땅위에 있는 거  위신이나 권위나 지위나 명예나 이런 거 있다는 그것이 들어서 자꾸 하나님과  자기와 멀어지게 만들고 아이같이 그렇게 솔직하고 순진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일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다 자기를 속이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모든 거 가지고 첫째로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할까  하는 그것이 경건이니까 그렇게 경건에 주력하고, 또 내가 이래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조그만치라도 거리낌이 될라, 또 유익을 끼치지 못하고 손해를 줄라.

또 사람들뿐 아니고 모든 사물들에게 내가 유익을 주지 '못하고 사물들에게 손해  보일라, 이것이 무슨 생활입니까? 그러면, 사람들에게 손해를 보일라,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보일라, 모든 일들에게 대해서 내가 해를 끼칠라, 물건에  대해서 해를 끼칠라, 이렇게 지금, 하는 그 생활을 하는 것을 가리켜서 다른  말로 하면 무슨 생활입니까? 저게 ○○교회에 ○조사님, 그게 뭐이지요? 그게  무슨 생활이지요? 그 무슨 생활이오? 경건. 또 여기 저 ○조사님 대답해 봐  뭐이지? 아들은 거룩이라 하고 저기는 경건이라 하고 누가 맞았어? 그 생활이  경건이라는 말이 대답이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손 들어 보이소. 그러면 그것이  거룩한 생활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대답한 것이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맞는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봐요. 이거 모두 다 모르네. 아. 그것이 거룩  아닙니까? 그게 거룩이오. 이리 말하면 이 말로 하지만 저리 말하면, 그러니까  그 생활이 다 실지의, 지식과 자기 깨달음이 같이 되지 못하고 지식으로는 알고  있는데 거게 대해서 자기의 깨달음이었기 때문에 각오가 없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실제의 생활에 닥쳐서는 헛일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그 생활 그 자체가 바로 거룩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나 만물에게 모든 사물들에게 주님에게 혹은 그것이 기쁨 이 되지  못하고 유익이 되지 못하고 도움이 되지 못할까 해서 자꾸 '아, 요거는 도움되지  못하겠다 요거는 유익을 주겠다' 유익 주는 고 일을 또, 또 삣고 깎습니다.

유익을 주는데 '아, 유익을 주나마 요 면이 없으면 해는 하나도 안 주고 더  유익을 주겠다' 자꾸 이렇게 구별해서 한 가지를 자기가 구별했으면 그것으로  끝마치는 게 아니라 또 구별하고 구별하고 구별한 것을 또 구별하고 기회가 있는  대로. 그러면 그 사람의 전생활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경영 이 모든 것에  대해서도 구별하는 게 제 생활이라. 만날 요거는, 아, 요게 틀렸나? 아. 요게  틀렸다. 아, 요래야 되겠다.' '요래야 되겠다' 하는 그것도 또 구별합니다.

'요거는 틀렸지만 요거는 또 요게 옳다.' 자꾸 이렇게 하니까 그것이 무엇하기  위해서 그래 하는가? 하나님의 뜻에 맞아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일이  되기 위해서 하는 것이요. 호리라도 조그만치라도 하나님의 뜻에 거리낌이 될까  하는 그것 때문에 거게 맞춰서 구별하는 것이요, 또 모든 인간과 모든  사물들에게 대해서 잘못돼서 거리낌이 될까 거게 대해서 구별하는 것이요,  이러니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구별하는 것이 되고, 이러니까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이 진리를, 교훈과 이 모든 진리를 준비해서 구별하는 것이 되고  영감을 준해서 구별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거룩한  행실입니다. 이것으로서 주를 기다리고, 또 경건으로서 주님을 기다립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고 세상은 다 불탈 것인데 '그게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르니까' 하는 이것으로서 자기의 하는 일과 자기의 경영하는 일이  그것이 조그만치라도 쇠퇴해지겠습니까, 그것이 주님의 구름 타고 오실 것과 불  탈 것을 자기가 깨닫고 보니까 자기의 모든 면으로 자기 의무와 책임이나 자기의  지위나 그 감당하는 일이 점점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 올수록 뜨거워지겠습니까  이제는 그만 허리끈 풀어 놓고. 이제는 식어지겠습니까 뜨거워지겠습니까, 더  열심해지겠습니까 더 게을해지겠습니까, 더 심각하게 이거는 털끝만치라도  틀리면 안 된다고 더 심각하게 조심하는 것과 열심하는 것과 거게 대해서 힘쓰는  그 면이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 올수록 모든 사람들의 그 힘씀이 점점  강해지겠습니까 해이해 지겠습니까? 풀어지겠습니까. 강해지겠습니까?  강해지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네, 강해집니다.

 이 ○○파는 이걸 잘못해 가지고 실패를 했습니다. 제가 그때 물으니까 감옥에  얼마나 들어갔다 나왔냐 하니까 감옥에 갔다 온 사람들이 그때에 뭐 헤아릴 수  없이 아주 많았었습니다. 그때 갔다 온 사람들이 수십 명 됐었습니다. 수십 명  됐었는데 장로교에서는 갔다 온 사람들이 불과 한 이 십 명, 이십 명이 아니라  그때 여러분들 그 숫자 세어 놓은 것 안 봤습니까? 옥중 성도라면서. 출옥  성도라 하면서 그때 사진 박았는데 열 둘입디까 열 몇입디까? 예? 열 둘? 예? 열  두 사람이든가 열 네 사람이든가 모르겠는데, ○○○씨가 있으면 그런 걸 잘  기억하고 있는데, ○○○집사님. 오늘 아침에는 저 뒤에 늦게사 저 뒤에 오는가,  늦게 와서 뒤에 앉았는가 그래 그때에 그거 밖에는 안 됐습니다. 그런데 그때  ○○파에서는 8,15해방 되는데에 그때에 나온 사람들이 아주 수십 명이었습니다.

좀 잘 믿는 사립들은 신사 참배 반대하다가 감옥에서 지금 주님 맞이할라고  그렇게 하고 남은 사람들은 또 그 교훈과 지도를 받은 대로 다 횐 옷 입고  살림살이 다 팔아 가지고 주님 맞이한다고 이라다가 헛일 한 사람, 그래서  그때에 ○○교회가. ○○파가 깨져 버렸습니다.

 ○○파가 깨졌는데, ○○파가 제가 알기로는 이 부산에 지금 뭐 초장 동인가  초량동인가 어디 ○○파가 하나 있습니다 저 ○○○권사님 잘 알지? 어디  있습니까? 아. 영주동에 있는데. 거기에 우리 교회에 잘 믿는 여집사 한 분이  그리 갔습니다. 그분은 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요 그렇게 유식한 사람인데  ○○교파 그것이 거짓부리라고 해도 그리 끌려갔습니다. 그러니까 그거는 주관  행위입니다. 그 사람들은 무슨 일 하고 있는고 하니 '오늘은 누가 내게올 건고?'  오늘 자기 집에 찾아올 사람을 압니다. 또 어떤 일이 생길 것을 압니다. 거기에  현혹해 가지고 거기에 매력을 느껴 가지고 ○○파로 들어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다 성경적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무슨 일 닥쳤을 때에 그렇게 무슨 꿈을  꾸고 뭘로 가지 그 한다는 그런 것이 다 비 성경적입니다. 그랬는데 제가 여게  수원지 굴에 가 가지고 혼자 기도하고 있으니까 어떤 목사가 거게 아마 기도하러  다니는 흔적이 있어서 어떤 사람인가 한번 만나기를 원했는데, 제가 기도하고  있으니까 어떤 목사가 한 분 왔습니다. 그분이 그때 ○○교회 목사님이라고  이라면서 그때 왔었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잠깐 나하고 이야기했는데 그라고  난 다음에 도무지 그 굴에를 오지를 안 합니다. 오지를 안하고. 그래 내가  ○○교파 그것이 틀렸다는 걸 그때 그 사람 만나 가지고 잠깐 증거를 하기는  했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데에는 거룩과 경건으로 준비해야  되니까 그저 거룩하고 경건한 언행심사가 될라고 애를 써야됩니다. 내 마음도  거룩과 경건의 마음이 돼야 되겠고. 내 행동도 돼야 되겠고. 내 말도 그렇게  돼야 되겠고, 내 생각도 그렇게 돼야 되겠고, 내 마음도 그렇게 돼야 되겠고  어찌 됐든 간에 거룩과 경건에. 다른 사람이 미쳤다고 할 만치 전부가 다 거룩과  경건 여기에 집중되고 여기에 기인되고 이렇게. 여기에 모두 다 매여서 이  감동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거룩과 경건의 언행심사를 하는 가운데서 거룩과  경건으로 인한 그 희로애락이 됩니다. 우리의 희로애락이 거룩과 경건 때문에  희로애락이 되는 것이라야 되지 거룩과 경건은 다 떨어져 버리고 돈 때문에  희로애락이 된다. 사람들이 무슨 대우하니까 어찌 된다, 제 욕심이 이루지니까  된다 하는 그런 것은 다 그 것은 다 불탈 것들입니다.

 이래서 거룩과 경건의 희로애락이 되고. 그러면 그런 가운데에서 거룩과 경건의  언행심사가 되고 희로애락이 되면 뭐이 되어지는고 하니 거룩과 경건은 이  이목구비 수족이 됩니다. 이목구비 수족. 눈도 거룩과 경건의 눈이 되고 귀도  되고 수족도 되고 모든 행동이 되어지고 그라는 가운데에서 비로소 제일  마지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거룩과 경건의 사람들이 되어집니다. 그러면 이것이  진실한 자는 이기리라 하는 것은 이렇게 노력해 가지고 진실에 도달한 사람,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지식을 가졌고,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행위를  가졌고, 하나님 말씀대로의 사람이 된 그 사람을 가리켜서 진실한 사람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아침에 중점적으로 말하는 것은 무엇을 가르쳐 말하는고 하니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 그때가 가장 그 사람이 자기 맡은 일에 충성할 때요 충성할 때요.

가장 진실할 때요, 가장 열중할 때요, 가장 조심할 때요 그러니까 ○○파와  반대로, 게을 부리고 인제 됐으니까 이제는 손 놓고 쉬자. 반대로 왜 그렇게  열심하고 충성해야 되는가? 우리의 거룩과 경건 타지 안할 수 있는 멸망 받지  안할 수 있는 의가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우리의 그 의가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우리의 의가 수많은 세윌이 있으면 수많은 세월에서 우리의 의가 만들어지는가?  아닙니다. 수많은 세월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우리의 의는 그 현재라는 그  현실이라는 거게서 만들어집니다.

 그러면 현실이라는 거게서 만들어지면 그 현실에서 어떻게 만드나? 그 현실에서  주님이 자기에게 교훈하신 교훈대로, 명령하신 명령대로, 약속하신 약속대로,  주님에게 대속을 받았으니까 주의 것이 된 대로, 주의 것이 최고로 그 최고로  주의 것이 더 될 것이고. 최고로 주의 것이 될 것이고 최고로 주의 종이 될  것이고 최고로 주의 성전이 될 것이고 최고로 주의 지체가 될 것이고 최고로  주의 몸이 될 것이고 최고로 주님의 상대자가 될 것이고 최고로 주님의 나라가  될 것이고 최고로 주님의 백성이.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고 최고로 주님의  제사장 노릇을, 최고로 할 것이고 선지자 노릇을 최고로 왕 노릇을 최고로 이제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최고로 옳고 바르고 참되게 견고하게 맺어지는 것이  그것이 주님을 바라보는 그 사람의 주님과 만나는 최종 시간이 아니겠습니까?  이런데 이 정반대로 '아, 이리 되니까 뭐 그렇게 열중할 게 있느냐?' 하고  사람들이 마음이 풀어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이 불 타지 안할 여게  대해서 깨달음을 가지고 거게 대한 각오를 가지고 하는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살필 때에 그러므로 말미암아 이제 과거에는 예사롭게 생각했는데 조심이 더  되고 '아, 이게 잘못됐나?' 과거에는 뭐 한 번만 이거 보 그 '아 잘 됐다.' 하면  됐는데, 이제 주님이 올 터이니까, 만날 터이니까 잘 됐다 싶은데 잘 된 걸 또  심사하고 또 심사하고 자꾸 심사가 자꾸 심해지고 자꾸 조심이 심해지고 이게  틀렸으니까 걱정이 심해지고 하는 그런 것을 말한 거 아닙니다 '자기 맡은  식구에' 자기 맡은 식구는 어떤 사람 이 자기 맡은 식구입니까? 자기 맡은  식구는 자기를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은 다 자기  맡은 식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은 내가 맡은  식구요, 나는 그 사람이 맡은 식구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물론  눈으로 보는 것도 있지만 말로 듣는 그것도 그것이 들어 가지고 유익이 되면  좋겠는데 나쁘면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래 저도 늘 걱정하는 것은 아 이  백목사는 이단이라 이라는데 이단이란 이말이 주님 만나기 전에 다 없어져야 될  터 인데 이단이라 하는 그걸 그들이 잘못 알고 말하는 것은 말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함으로 다른 사람이, 양식을 먹을 사람이 양식을 먹지 못 해.

 어떤 사람이 '아, 이 설교록 이거 뭐할라고 볼꼬?' 그 사람이 며칠 전에  들으니까 눈물을 흘리면서 어쩌든지, 회개를 하면서 자기가 죽은 생활했다고  눈물 흘리며 회개한다 하고, 그런데 그 사람이 죽을 병이 들어 가지고 죽느니  사느니 하다가서 눈물 흘리면서 회개한다 하고 나서 건강을 가지고 또 인제  사업에 착수해 가지고 돌아다니는데 또 요새는 말 들으니까 아. 설교록을 보고  '이거 뭐할라고 사람들이 이걸 보고 있을꼬?' 이라며 훼방을 한다 하더니만 또  그 사람이 병들어 가지고 입원해 가지고 드러누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람이란 이렇게 자꾸 변해집니다. 자기를 망치는 미혹시키는 마귀의 유혹에  자꾸만 듭니다.

 이러니까, 주님은 밤새 도적같이 온다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자기  맡은 식구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주다가 주님을 만나는 사람이 복 있다는 것을  요것을 단단히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일하다가 주님 만나는  사람입니다. 일 안 하다가 만나는 게 아니고 일을 주님이 시키신 분이니까  그분이 올 때에 철저하게 일을 해야 되지 그 일을 게을리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면. 자기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자 공장장이 지금 몇 시되면  순찰한다. 공장장이 몇 시 되면 순찰한다 하면 순찰할 그 시간이 가까이 왔으면  자기의 하는 일에 대해서 조심과 열심이 더 되겠습니까 덜 되겠습니까? 예? 일반  사람으로 다 더 됩니다. 또 아주 그 옳은 사람 경건이 주님 맞이할 그것이  '무거운 짐진 거와같이 나는 탄식하면서 고민된다' 하는 그것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이야 뭐라 하든지 우리는 불탈 것인 것을 알고 뭐이 것도 불  탈 것 저것도 불 탈 것 불 탈 것인데 잘못하면 '불탈 거 이런 거 다 끝난다.' 이  '끝난다 불탄다' 이렇게 됨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두 가지로 갈라집니다. 하나는  이러니까 뭐 그까짓 거 자꾸 뭐 힘쓸 거 뭐있느냐 살필 거 뭐 있겟느냐? 그만  아무나따나 해도 된다. 이러니까 그 사람의 하는 모든 일이 해이해지는 사람이  있고. 손을 떼는 사람 있고, 이러기 때문에 이제 다문 조그만치라도 이걸 잘못  됐을까 해서 그 열중되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시험을 칠 때에 공부를 잘 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그렇지 않습니다.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은 시험지 오면 벌써. 오면 퍼득 써 버리면 다른 사람 쓰기 전에 다  써서 갖다 내놓는데도 디 백점으로 이래 가지만 일반 사람은 시험만 하면 그  시간이 있어서 '자, 내십시오. 내십시오.' 하면 '내십시오', 할수록 어찌  됩니까? 그 사람이 자기 시험 답안 쓴 것을 그만 그냥 '아이고 내라 하니까 그만  치워버려야지,' 그라는 사람 있고 '내십시오' 하니까 그때까지라도 뭣이  틀렸는가 자꾸 조사를 더 하고, 또, 그 못 쓴 게 있으면 연구를 더 하고 이렇게  해서 그때에 내라고 독촉할 때가 닥쳐올수록 그 사람의 힘씀이 더  심해지겠습니까 약해지겠습니까? 어떻게 되겠소? 심해지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네, 그렇습니다. 고겁니다. 바로. 자기가 참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그 정신이 바로 돼 있고 바로 깨달은 사람이라면 거게다가 점점  고게 조심이나 열심이나 그 심사해서 무엇이 걸릴까 이것이 더 심해지고 더  철두철미해지고 더 자기에게는 강경해지는 그것이 정상인데 그렇지 안하고,  그러니까 이제 마음이 허리띠 풀어 흐려지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잘못  깨달은 그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조심해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는가? 때를  따라 맡은 식구들에게 양식 나눠준다.' 맡은 식구라 말은 자기 맡은 지권찰의 그  식구나 원권찰의 식구나 그 목사의 식구나 장로의 식구나 이 한 사람은 그라면  그때는 게을하게 할까 제까짓 게 게을하면 암만 평소에 잘해도 그때 '뭐 내가  주인 온다고 내가 그라고, 공장장 온다고 내가 열심히 해?' 그렇게 해서 평소에  일은 많이 해 놨다 할지라도 그때에 게을리 하면 공장장한테 그는 한 대 맞는다  그말이오. 왜? 네가 평소에 암만 일은 많이 해놔도 공장장에 대해서 '아, 그분이  오면 이거 좀 아무래도 내가 열심히 하는 걸 봐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명령이나  그 권위를 세워 줘야 될 때 권위를 안 세워 주니까 빳다 방망이로 때 릴 거라  말이오. 그리 아니면 그만 쫓아 보내 버릴 거라. 암만 일을 많이 해도. 이러니까  일반 사람은 다 조심할 것이고.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자기가  깨달을수록 모든 일에 열중하고 조심되고 더 심각하게 살펴서 세밀히  철두철미하게 할라고 하는 그것이 생겨지는 것이 정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어쩌든지 보면, 자기 좋게 하면 좋아합니다. 자기  좋게 하면 좋아하고 자기 나쁘게 하면 싫어합니다. 자기 좋게 하면 좋아하는  사람. 자기를 높여 주니까 좋아하고 자기를 위하니까 좋아하고 하는 그것이  뭐이냐? 대부분은 그게 옛사람입니다. 만일 진리를 좋아하고 복음을 좋아하고  이것 때문에 좋아하는 것은 자기 좋아하는 것이 진리 좋아하는 것, 복음  좋아하는 것이지만 그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세 가지 외에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기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이 보고 본받고  좋아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추켜 올리는 것도 옛사람을 추켜  올리는 것인지 새사람을 추켜올리는 것인지, 우리를 복돋우는 것도 옛사람을  복돋우는 것인지 새사람을 복돋우는 것인지. 우리를 삣고 깎는 것도 옛사람을  삣고 깎는지 새사람을 삣고 깎는지 그것을 똑똑히 구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든지 좋고 나쁜 그것만 구별할라고 애를 쓸 게  아니라 이게 경건이 되느냐 의가 되느냐, 이것이 주님의 거룩이 되느냐. 이것이  주님이 기뻐하시겠나 기뻐하지 않겠느냐 하는 그런 것을 우리가 잘 심사해서  거룩을 자꾸 조사를 해야 되겠습니다. 거룩하냐 거룩 안 하냐?   그런데 거룩보다 먼저 우리가 해야 될 것은 뭐입니까? 거룩보다 먼저해야 될  것이 뭐인지 목사님들 가운데에 한번 대답해 주십시오. 우리가 이 거룩이냐 거룩  아니냐 자꾸 재심 재심 재심 재심 자꾸 연심을 해야. 계속 연해서 심사해야  되겠고. 재심 재심해야 되겠는데 이 거룩 이거는 거룩이냐 거룩 아니냐 이렇게  재심 재심 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이렇게 심사를 해야 되겠는데, 심사 그것보다  먼저 할 일이 있는데 그 먼저 할 일이 무엇인지 목사님들 가운데에서 대답을  한번 해 보십시오. 거룩보다 먼저 할 일 이 뭐인지? 먼저 할 일이 뭐입니까? 예?  한번 대답해. 목사님들 여러분들 계시네요. 한번 대답을 해봐요. ○○목사님.

그러면 그래 말하지 왜 대답 안 합니까? 지식 대답을 바로 했습니다. 지식부터  우리가 바로 세워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꾸 자기가 아무리 거룩할라고 이렇게 애를 쓴다고 해도  지식을, 지식은 세상에 두 지식이 있는데 뱀의 지식과 하나님 의 지식이 있는데,  하나님의 지식은 신구약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지식이요 뱀의 지식은 이 땅에  있는 성경 말씀 외에 것은 전부 다 뱀의 지식입니다. 뱀의 지식은 우리를  꾀울라고 유혹시키는 지식이오. 거짓말하는 지식이요. 거짓말 아비의 지식이요,  그 지식은 사람들을 죽이는 지식이요, 죽은 지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지식부터 먼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지식을 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대로  '어느 것이 거룩이냐, 어느 것이 옳고 바른 것이냐?' 이래야 되지 지식부터 먼저  선택하지 안하고 지식을 혼돈시켜 놓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대로, 알고 있는  지식대로 '이게 옳으냐, 저게 옳으냐?' 이렇게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뱀의  지식을 가지고 자기가 거룩을 선택하게 되기 때문에 참 거룩은 다 불의라, 또  불의는 거룩이라 그렇게 꺼꾸로 자기가 선별하기가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제일 중요한 것이, 두 가지 지식이 있으니까 하나님의  지식으로 내 지식을 삼으라는 그것을 꼭 잃지 말아야 됩니다. 예사로 여길 게  아니라. 잊지 안해야 됩니다. 사람들 다 보면 자기의 있는 지식 가지고 그만  이해 판단합니다. 자기 지식 가지고 판단할 때는 백프로 그것이 다 뱀의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거리가 멉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처음에  연습을 해서 하나님의 지식이냐 뱀의 지식이냐 자꾸 연습해서 뱀의 지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이와같이 판별할라 하니까 그 판별도 잘 돼  나가지 않고. 서투럽지만 자꾸 하나님의 지식으로 연습해서 오래 동안 연습하고  연습한 그 사람이 뭐이든지 이래하면 하나님의 지식으로 판단하기가 쉽지, 그  사람도 하다 보면 그만 뱀과 지식 가지고 판단해서 말한 것을 후회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지도한 것을 후회를 하고 그렇게, 후회를 합니다. 그라고 나면 오래  동안 마음에 괴롭습니다.

 내가 며칠 전에도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하는 것을 그거 그라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없고, 이라니까 하지 말라고 이렇게 말하고 한 그것을 내가 여러 날 동안  고통을 했습니다. 왜? 그것은 그렇게 하기는 해야 되는데 하기는 해야 되는데  내가 그때 기도하면서 이라다가 했지만 '이게 틀렸다' 나중에 그거 고민이 오는  거 보니까 잘못됐다 말이오. 내가 그러면 어떻게 했으변 줘으냐? 그것을 아무도  모르게 살며시 그 사람에게만 귀에 대고 '이렇고 이렇고 이러니까 이거는 옳다,  이거는 틀렸다' 옳은 거는 옳고 아닌 거는 아니라그 만 그렇게만 하고 그 소리를  남용하지 안하고 거게만 은밀히 했더라면 내 마음이 기쁘고 즐겁고 상대방이  어떻게 하든지 말든지 내게는 평강이 변동이 없을 터인데 그걸 안 해 평강이  변동이 생겨진다 그 말이오. 그런 거 뭐이냐 하면 하나님의 지식으로 이렇게  자꾸 한다는 '하나님의 지식 가지고 나는 구별 할란다,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표준 해서 구별할란다' 이렇게 자꾸 연습을 해 나와도 가다 보면 그것이  실족하기 쉽다 말이오. 그러니까 자꾸 그것이, 사람의 실수입니다.

 그러니까, 지내 놓고나서 보면 또 틀린 거 많고, 또 틀린 거 있고, 자꾸  이러니까 하나님의 지식을. 지식을 바꿔서 하나님의 지식을 내 지식으로 삼는  것부터 먼저 하고 난 다음에 옳으냐 그르냐 하는 그것을 그 다음으로 이제  착수해서 구별할 일이지, 하나님의 지식이냐 사람의 지식이냐 그것도 구별하지  안하고 막 타 놓고 옳으냐 그르냐 구별하는 것은 전부 마귀 구별입니다. 그게  자기 망치는 것이요. 그러기 때문에 그때 그 구별은 옛사람이 구별하는 것이기  때문에 옛사람 표준으로 옛사람 좋게 하는 걸 좋아하지 새사람 좋게 하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는 자꾸 망할 것만 원하고 자기 살리는 것은 다  원수로 삼을 수밖에 없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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