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자유

 

1988. 9. 14. 새벽

 

본문:갈라디아서 5장 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 하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 자유는 양심 자유를 말하고 또 신앙 자유를 말하고 또 소망 자유를 말합니다.

양심 자유라는 말은 자기가 신구약 성경 말씀을 보고 깨달은 그대로 이렇게  살아야 바로 사는 것이며 옳게 사는 것이다 하는 그 양심이 판단하는 그  판단대로 살라고 하면 주위 환경과 마찰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가  양심대로 살라고 하면 주위 환경에는 자기 양심에 맞은 주위 환경이 혹 있을  수도 있지마는서도 대개는 자기 양심과 반대되는 인간의 생각, 인간의 마음,  인간의 뜻 그런 것이 주위 환경에 가득히 찼습니다.

이래서,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하는 말은 주위 환경이 전부 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사람들이 가득 차 가지고 각각 모두 제 중심의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서 서로 합하는 것은 내가 네 중심을 용납하니까 너도 내 중심을 용납하라.

또 중심은 다르지마는서도 우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네 중심에 내가 협동할  터이니까 너는 내 중심에 협동하라 하는 이것이 타협 생활이요 타협주의입니다.

모두 세상은 그렇게 빳다제로 이래 가지고 사는 이 세상입니다.

이래서, 옳고 바른 것을 용납지 않는 것이 세상인데 자기는 신앙 양심대로, 성경  말씀대로 양심대로 살라고 하니까 그 환경과 맞지를 않습니다. 그럴 때에  사람들이 대개는 ‘뭐 그저 내 속만 두고 겉어머리는 이렇게 해서 외식 생활로’  이렇게 모두 하는 것이 처세술입니다. 그러니까 껍데기는 하나되는 것  같지마는서도 속으로는 제각각 다 자기 중심이요 다릅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양심 자유하는 것은 옆에야 내가 양심대로 살라고 할 때에  마찰이 되든지 대적이 되든지 원수가 되든지 손해가 가든지 자기가 양심대로  살라고 하면 옆에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내가 찬성을 안 해야  되겠고 그 사람의 행동에 내가 따라가지 안해야 되겠고 그 사람의 말하는 데에  내가 부정하고 반대를 해야 되겠고 이럴 때에 그때에 자기에게 여러 종류대로의  손해가 옵니다. 마찰도 오고 미움도 오고 대립도 오고 서로 불목도 오고 또  악으로 더불어 모두 다 대립이 됩니다. 그럴 때에 자기가 그 환경 속에서  양심대로 사는 것이 자유인데 양심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가  꺾어져서 죄에 종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이 말은 우리를 대속하신 주님께서 죄에 자유 의에  자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자유 이 자유를 하도록 ‘우리를 불러서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라’ 그러니까  자기가 옳다 바르다 생각하면 자기 손해, 유익, 또 마찰, 대립, 뭐 낭파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 때문에 옳다고 판정되는 양심을 꺾고 거게 일치되지 아니하고 어떤  희생을 당해도 자기가 뭐 자기 어떤 몸이 절단나고 사업이 생활이 다 절단나도  양심 그거 하나를 살려서 그대로 사는 것이 양심 자유입니다. 요것 때문에 우리를  예수 믿도록 만든 것입니다.

또, 사람이 양심대로 살라고 할 때에 다른 사람이, 마귀란 놈은 거짓말을  잘합니다. 간교한 말 해 가지고서 우리들을 그만 이렇게 충격받고 저렇게  충격받아 가지고 그만 양심 생활을 버리기 쉽습니다. 양심 생활을 뺏기지 안하고  자유할라 하면은 뭐 아름다운 것도 다 부인해야 되고 유익된 것도 부인해야 되고  해가 되는 것도 부인하고 뭣이든지 어떤 것에게라도 그 양심을 뺏기지 안하는  것이 그것이 양심의 자유입니다.

이거는 아주, 그 양심의 자유는 무엇보다도 제일 중한 것인 것을 자기가 깨닫고  양심의 자유를 잊어 버리면 환경에 종이 된 것입니다. 양심에 거리끼는 그것에게  종이 되든지 양심에게 순종해서 양심대로 살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내가 신앙 양심대로 살라고 할 때에 환경에 이 양심 생활에 대립이 되고  마찰되는 일이 있을 때에 ‘내가 여게서 자유를 뺏겨서는 안 되겠다. 자유를  뺏겨서는 안 되겠다.’ 자유를 뺏기면 곧 영생을 뺏기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라’ 그 말은 종이라 말은  죄의 종을 가리켜 말한 것인데 죄의 종의 멍에를 메지 마라. 멍에는 소가 밭을 갈  때에 멍에를 씌워 가지고서 갑니다. 그러면 멍에를 씌운 그 소는 꼼짝 못 합니다.

꼬박꼬박 갈아야 되지. 이래 가지고, ‘죄의 멍에를 메지 마라’ 죄의 멍에를 메어  가지고서 죄짓는 일을 시킬 때에 꼬박꼬박 죄짓는 것에게 종이 돼서 죄짓는 일만  계속하고 있는 그것이 죄의 종이요 죄의 종의 멍에를 멘 것입니다. 멍에 멘 거는  그러면 자꾸 범죄하는 일만 계속하는 것이 그것이 죄의 종의 멍에를 멘 것입니다.

또, 신앙 자유라 말은 또 내나 같은 뜻인데 신앙의 자유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 또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또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 이것이 신앙인데 신앙,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 바라보는 것, 또 순종 생활하는 것 이것을 할라고 결심을  하고 했지마는, 결심을 하고 시작했지마는 그만 어떤 옆에 어려움이 하나 충격이  오면은 그만 다 포기해 버립니다. 그 사람은 자유가 없는 종입니다.

이래서,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 행하라 그말은 네가 그 상대방이 너한테  억울하게 어떻게 촉분을 지기고 너를 멸시하고 천대하고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네가 자유를 뺏기지 말아라 그말입니다. 자유를 뺏기지 마라. 거게 피동되고 거게  충격되지 말아라. 어떤 것에게든지 피동되지 말고 네가 하나님의 그 법도  하나님의 그 말씀 이 생애 법칙 여게만 네가 피동되고 순종하지 다른 데는  피동되지 말고 순종하지 말아라.

네가 만일 진리에 순종하는 이 순종을 뺏기면 신앙의 자유를 뺏긴 것이고 자기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할라고 할 때에 죽음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그것을 죽음이 두려워서 피했다면은 그 사람은 죽음에게 종이 되고,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 동안 종노릇한다고 말씀하신 대로 죽음의 종이 되고  진리의 종은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진리의 종이 되고 그 모든 죄악의 종이  되지 않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자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예수님에게 종이 됐다 그말은 예수님의 것이 됐고  예수님에게만 순종하고 우리는 진리의 종이요 예수님의 종이요 또 의의 종이요  하나님과 화평의 종이요, 예수님의 대속을 믿으면 예수님의 것이요 예수님의  종이니까 이것을 뺏기지 말아라. 신앙의 자유를 뺏기지 말라 그말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이 생활을 뺏기지 말아라.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무슨 충격 주는  사람, 또 이런저런 여러 가지 애로가 있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  생활을 그만 뺏기기 쉽습니다. 이걸 버리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자유한다는 요것을 자꾸 기억해 가지고 ‘나는 내 양심에  자유하겠고 신앙 자유하겠고’ 또 하나님께 대한 이 소망하는 것을 요 소망을  뺏기지 않는 것이 자유를 뺏기지 않는 것이요 요 소망을 뺏기는 것이 자유를  뺏기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제일 원수가 어데 있느냐? 원수는 마귀의 유혹입니다. 유혹만  받으면 헛일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주를 위해서 참 순교적인 신앙을 할라고  생명을 바쳐서 살라고 이렇게 결심을 했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말 몇 마디  꾀우면 그만 돌아서서 포기해 버립니다.

그래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이, 교역자로 파송을 시켰는데 삐뚤어진 말을 우리  총공회가 틀렸다고 이래 가지고서 얼마나 역설해 놨던지, 역설을 해 놓고 와서 또  자세히 들어 보고 조사해 보니까 또 틀리지 안했다 그말이오. 틀리지 안했으니까  또 가 가지고 ‘아이고 내가 과거에 잘못 말했다. 내가 그런 죄를 지었다. 내가  잘못 말했다.’ 아무리 말해도 원청 너무 심하게 말해 놓으니까 그 교인들이 듣지  안해. ‘네가 그렇게까지 말해 놓고 또 인제 총공회가 안 틀렸다고 옳다고 어데  그런 소리 하노? 네 말은 듣지 않겠다.’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이 거게서 목회를  못 하고 그만 말았어. 그러면 또 이제 그랬으면 그대로 나가지 안하고 또 가  가지고서 또 말을 또 들으니까 ‘아무래도 내가 거게 있어 가지고는 안 되겠고  내가 또 이리 가야 되겠다’ 또 그래 가지고 또 총공회 옳다 하다가 또 틀렸다  하다가 또 그래 됐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말을 듣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그것은 속에 생명이 없는  증거입니다. 속에 성신의 감화가 없는 증거요. 사람의 말은 뭐 콩을 팥이라고  얼마든지 변증할 수 있고 또 팥을 콩이라고 그렇게 변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람의 말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말을 따라서 움직이는 그 사람은 그것은  세상의 종이요 마귀의 종이지 하나님의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이 자기 안에 와서 계시도록 할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셔야 이런저런 그 유혹을 받지 안하지  하나님이 계시지 안하면 유혹받습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한다 할지라도 자기 의지로 가지고 하고 자기 이성 판단으로 하고, 이성 판단으로  하고 의지로 한 그 신앙 생활이 좋은 것 같은데도 틀렸어. 안 됩니다. 속에  ‘기름 부음이 너를 옳고 바르게 가르쳐 주나니’ 속에 성령의 감화를 받아서 그  감화가 나를 인도해 줘야 되지 성신의 감화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꾀이지  안할 수가 없습니다. 뭐 별별 꾀임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너희 안에 기름 부음이  있으니 그 기름 부음이 너에게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쳐 주는 그대로 있으라  이랬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평소에 성령의 감화를 받을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곧 하나님이신데 성령이라 말은 우리에게 옳고 바른 것을 넣어  주는 것이 성령이요 우리에게 옳고 바른 것이 있을 때에 성령이 들어오시고  삐뚤어진 게 있을 때에는 즉시 떠나는 것이 성령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평소에  그 사람이 성령을 모실라고 옳고 바른 양심을 버리지 안하고 양심 생활을  계속하면 영감을 받습니다. 양심 생활을 계속해야 영감받고 영감을 받아야 그  다음에 하나님이신 성령이 자기 안에 계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야 그 사람이 이  자유를 뺏기지 안하지 그렇지 안하면 자유를 뭐 뺏깁니다.

그 미혹을 받아 보십시오. 에덴 동산에 하나님께서 ‘이거 먹고 선악과는 먹지  말아라. 이거 먹으면 네가 죽는다. 바로 이 선악과 이것이 너의 영원한  사망이다.’ 그러면 사망을 자취할 사람이 어데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그거  사망인 줄 알았지마는서도 마귀에 딱 유혹받고 보니까 그 사망이 사망으로  보였습니까 어떻게 보였습니까? 사망으로 보이지를 안했습니다. 사망으로 보이지  안하고 참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얻을 만치 그렇게 아주 욕심이 나도록  그렇게 만들어 버렸어. 배암 들어가면 모든 것이 꺼꾸로입니다. 이러니까 아무리  옳고 바른 소리를 들어도 그 사람이 결심을 해도 그 배암의 말 이말 저말 한  마디만 몇 마디만 들으면 그만 헛일되고 말아.

이래서, 우리 진영에 이 사람들은 보면 양심이 다 부패해졌고 모두 그 모두가 다  강퍅해진 것이 왜 그러냐? 자기 속에 자기 중심이라는 악을 버리지 안하고  어짜든지 자기 중심 그놈을 두기 때문에 그놈 때문에 전부 다 망합니다. 자기를  완전히 비워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웠다 이랬어. 자기 비우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자기를 비우지 안하면 헛일이라, 자기를 비워야 되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중심을 바꿔야 되지 자기 중심을 가지고는 신앙 생활은 할 수도 없고  또 하지도 못하게 되고 대립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렇게 해독이 있는 선악과지마는서도 배암의 유혹 딱 받고 보니까  천상 천하에 그렇게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없기 때문에 뭐 하나님도 눈에 안  보였어. 그게 배암의 유혹의 독은 그렇게 심한 것입니다. 그렇게 정반대로  보여지는 거라. 이러기 때문에 제가 암만 진리를 받아도 여게 저게 가 가지고서  그 배암의 유혹을 만날 때에 그 유혹을 받지 안해야 제가 남아 있지 유혹받으면  헛일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 하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자유를 주셨다 이말은 다시 죄의 종이 되지 안하도록 죄에서 완전히 해방시켜서  죄에 완전히 자유해서 다시는 죄에게 종이 되지 않도록 또 다시는 불의에 종이  되지 안하고 완전한 의를 가진 자로 하나님과 완전한 화친을 가진 자로 이렇게  만들어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네가 이 사죄, 칭의, 화친 받은 것을 네가 굳게 잡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다시는 이 사죄에 반대, 칭의에 반대, 화친에  반대되는 이 사죄를 네가 벗지 말고 칭의를 벗지 말고 화친을 벗지 말고 이 사죄,  칭의, 화친의 네가 되었으니까 사죄, 칭의, 화친의 네 자체로 살아라. 이것이  새사람이라.

그러면, 우리는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는? 나는 사죄 받은 사람이요, 칭의  받은 사람이요, 화친 받은 사람이 그것이 자기입니다. 그러니까 죄 없이 사는 것이  자기요 의롭게 사는 것이 자기요 하나님과 한덩어리 돼 가지고 사는 것이  자기입니다. 그게 아닌 것은 전부 뭐입니까? 그러면 죄를 용납하고 의를 양보하고  하나님으로 화친한 것을 이것을 배반하고 그렇게 사는 그 사람은 무슨  사람입니까? 그 사람은 자기 아닙니까? 어떻습니까? 그 사람은 뭐이요? 그  사람은 자기입니까 자기 아닙니까? 그 사람도 자기라. 또 죄 없이 의롭게  하나님과 화친으로 이렇게 사는 그 사람도 또 자기라. 그러면 자기가 몇입니까?  자기가 몇입니까, 손가락으로? 자기가 둘입니다, 자기가 둘.

자기가 둘이니까 하나는 옛사람 자기, 예수 믿지 안할 때는 그 사람으로 살았어.

옛사람 자기인데 그것은 자기가 아니요 자기를 죽이고 가장을 해 가지고 자기인  척 해서 우리 마음과 몸을 꾀워서 자기 종 만든 자기 아닌 자기요, 자기를 죽인  자기요, 원수인 자기요, 참 자기가 아닌 자기, 거짓부리 가장한 자기입니다. 원수인  자기입니다. 자기 아닌 원수요. 참 자기는 뭐인가? 참 자기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난 것이 참 자기인데 살아난 거는 뭐이냐? 의로 사는 자기요 죄  없이 사는 자기요 하나님과 화친으로 사는 자기이니까 이 자기와 자기를  분별해서 이 자리 가면은 옛사람 자기로 살고 이 자리 가면은 새사람 자기로  살고 이거는 뭐 이 사람 만나면 이 새사람 이 사람 만나면 옛사람 그런 것이  그것이 신앙 생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거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자기 결심 가지고 돼야 됩니까 이성 가지고 돼야  됩니까 각오 가지고 돼야 됩니까 사람의 진실 가지고 돼야 됩니까 뭣 가지고  돼야 됩니까? 이 자유는 어떻게 자유할 수 있습니까? ‘진리가 너를 자유 하게  하리라’ 진리가 자유 하게 해 줘야 되고 ‘아들이 자유 하게 하면 너희가 참  자유하리라’ 진리와 예수님 외에는 우리에게 자유 하게 해 줄 자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유 하게 할라면 주님이 자기 안에 계셔야 되고 진리가 자기  안에 있어야 되는데 주님이 자기 안에 있고 진리가 자기 안에 있도록 할라고  하면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주님이 자기 안에 있도록, 진리가 자기 안에 있도록  할라고 하면은 그 방법은 하나뿐인데 그 방법은 뭐입니까? 자기가 주 안에 있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자기가 주 안에 있는 것이. 자기만 주님 안에 있으면 돼.

이렇게, 이것도 지식으로 아무리 가져도 꼭 자기가 자유를 가질라고 할 때에  자유를 양보해 버리면 안 돼요.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억울한 일이 있어도  자기가 자유한 것을 뺏겨서 어데 충격을 받았든지 받아 가지고서 양심 아닌  행위를 했고 하나님의 뜻대로의 순종하는 거 아닌 행위를 했으면은 그 행위를  토해야 됩니다. 그 행위를 게워내야 됩니다. 그 행위를 게워내야 되는데 자기  혼자만 알고 게워낼 것 있고, 자기 혼자만 해 가지고 게워낼 것 있는 것은 그것은  그것을 게워냄으로써 다른 모든 사람을 더럽히는 그런 것은 자기 혼자만 알고  그걸 게워내야 됩니다. 그러나 자기가 게워냄으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그런 것은 꼭 토해내서 다른 사람에게 알도록 게워내야 되지 그냥 게워내면 안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치리하는 것도 은밀한 치리와 또 나타난 치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숨은 범죄는 그것은 숨은 치리를 해야 되지 그걸 이래 광고하고 이렇게  알리면은 도로 마귀의 일이 되고서 도리어 마귀의 수입이 되고 승리가 될 때에는  그런 것은 은밀 치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타내 치리할 것은 그것은 나타내서  해야 그 사람과 모든 사람이 유익되기 때문에 그와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꼭 먹었으면 그것을 토해야 됩니다. 이래서 ‘개가 토했던  것을 다시 먹는다’ 회개하고 다시 먹고, ‘도야지가 씻었는데 다시 구렁텅이에  도로 들어간다’ 말씀하신 대로 이라면 안 되니까 꼭 자유라는 것을 이걸  기억하고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유해야 돼. 자유하면은 잠시 잠깐  후에면은 참 그에게 평강이 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자유를 뺏긴 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자유를 뺏긴 것이  뭐입니까? 자유를 뺏긴 그것이 다 뭐입니까? 그것이 죄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깨끗하게 회개해서 이까짓 인간 뭐 소용없고 깨끗하게 회개해서 주님  앞에 인정받지 안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사람들 전체를 다 뚤뚤 뭉쳐 봤자, 옛날  바벨탑을 쌓을 때는 천하 사람들이 한덩어리지마는 그것이 하나님 뺏는데 무슨  구원이 됐습니까? 그걸로 화만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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