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생활

 

1987. 5. 17. 주일오전

 

본문:사도행전 24장 15절∼16절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모든 택함을 입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소망인데 의인과 악인이 부활하여 영원 무궁한 보응의 세계가 있는 이것을 다 소망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16절에 “이것을 인하여” 성경 기자 바울도 이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써 살고 있고 또 반성하고 또 회개하면서 하루 하루를 정리하고 정비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 13절로 14절까지에 보면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심은 것마다 다 주인이신 하나님이 조사하여 하나님이 심으신 것 외에는 다 뽑아버린다고 했습니다. “심기워진 것마다 천부께서 심지 아니한 것은 다 뽑힐 것이니라 그냥 두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모두가 다 근시적이요 일방적이어서 땅위에 있는 현실만 보고 현실을 자기 욕심에 맞추어서 살고 현실과 자기 욕심이 일치되었을 때에 그 결과는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생각지 않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악령의 유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래서 성령은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웃음을 울음으로 바꾸고 너희 기쁨을 근심으로 바꿔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이번에 대구에 가서도 공부한 대로 마태복음 13장 30절, 39절로 40절, 42절에 보면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시고ㅡ가라지는 곡식보다 무성하고 곡식은 가라지에게 많이 치이는 약한 생리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곡식입니다ㅡ일꾼들이 ‘뽑으리이까?’ 할 때에 `뽑지 말아라. 뽑다가는 곡식까지 뽑히어서 상할까 하니까 가라지와 곡식을 세상 끝날까지 그대로 같이 자라도록 두라.’ 그렇게 말씀한 것을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그때그때 살면서 어리석은 자기 사욕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면 성공이라고 좋아하고 또 어떤 시대가, 어느 지역인 국가가, 조부라운 사회가 인정하면 그것이 다인 줄 알고 자신 만만하게 교만하고 가증하게 헛된 자랑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이 우주와 영계, 과거 현재 미래 영원이라는 이 시간과 모든 피조물의 물질계 영계의 그 모든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농장이라 그렇게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농장이니 심기워진 것마다, ‘존재하는 것마다, 모든 것들이 움직인 것마다’ 그런 것을 가리켜서 심기워진 것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뭐 국가든지 사회든지, 큰 것이든지 작은 것이든지, 많은 것이든지 적은 것이든지 그 하나 하나가 제대로 제 사욕대로 주관대로 살고 존재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 곧 우주와 영계의 모든 세월이라는 이 모든 종합 농장으로 비한 이 농장의 주인되는 창조주 주재자가 당신의 뜻에 맞지 안하고 당신으로 인하여서 존재되지 안한, 당신의 자유법 생명법에 맞지 않는 것들은 다 뽑힌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심은 것마다 내 아버지의 뜻에 합당치 않은 것은 다 뽑힐 것이니 그냥 두라” 했습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이 비밀을 알지 못했지마는 예수님의 피공로로 인해서 저희들이 이미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신구약 성경 계시 말씀은 빠진 것이 없이 우리에게 알아야 할 것은 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세상살이를 살 때에 이 우주도 하나님의 농장으로 비했고, 영계도 하나님의 농장으로 비했고, 모든 세월도 하나님의 농장으로 비했으니 이 모든 것에는 주인이 있고 곧 관리자가 있고 거게 대해서 심사해서 뽑힐 것과 그대로 둬 둘 것이 있다 하는 것을 언제든지 명심하고 사는 사람이 생명 있는 사람입니다.

그저 시대가 옳다 인정하니까 그것으로 다인 줄 알고 어떤 그 세계의 각국이 인정하니, 대국이 인정하니, 정권자가 인정하니, 인류들의 다수가 인정하니 이야 튼튼하고 영원하다고 생각을 가지지마는 그것은 다 하나님에게 지음받은 존재들이요, 우주와 영계의 주인은 아니요, 책임진 농부도 아니요,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심판하실 심판자도 아닙니다.

“심기운 것마다 천부께서 심지 안한 것은” 당신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은 “다 뽑힐 것이니 그냥 두라” 하는 이 말씀을 예사롭게 듣고 자기 일생을 사는 사람은 영원히 비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세상에서 믿는 동안에, 사는 동안에ㅡ가라지와 곡식 비유는 믿는 사람에게 대한 비유입니다ㅡ교회와 교계에 있어서 아무리 무성하다 할지라도 마지막에 말씀한 걸 보면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자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풀무불에 던져서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갈며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택한 자면 그 영은 구원 얻어 하늘나라 가겠고 그 몸뚱이와 마음의 형체는 하늘나라 가지마는 마음과 몸의 기능은 현실에서 이 구속주 조물주를 생각지 안하고 그의 법칙을 생각지 안하고 피조물 무지한 인간들의 비위와 법칙에만 맞추어서 이렇게 산 것들은 다 그것은 유혹의 존재들입니다.

왜? 하나님이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서 사는 것이 영생이요 축복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맞추어서 사는 것은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요 구원하는 사람이 되겠고, 하나님 말씀을 어겨 제 욕심대로, 제 주장대로, 인간들의 말대로, 세계 인류의 사상대로 주장대로 법도대로 이렇게만 살고 하나님의 법도를 맞추지 않는 자들은 다 이것은 사람을 미끄러지게 넘어지게 하는 자들이요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심신의 기능은 하나님께서 유황불 구렁텅이에 던져서 영원히 멸하시겠다고 약속을 선포했습니다.

우리 사람은 세 가지로 구성된 것이 사람인데 영과 혼과 몸으로 되어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영이 없이 마음과 몸, 혼과 몸 이 둘만 해도 희로애락과 지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택한 자들의 영은 예수님의 구속 받아서 하늘나라를 갔지마는 그 심신의 기능은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고 제 성질대로, 제 욕심대로, 제 마음대로, 제 주장대로, 땅에 있는 모든 인간들과 맞추면 된다고, 그까짓 거 전부 다 맞춰봤자 빛 앞에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 아무 실력 없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사는 자들의 그 심신의 기능을 유황불 구렁텅이에 던져서 영원히 슬피 울고 가슴치며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의 집에서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은 하나님의 농장이라는 것을 알고, 농부가 있고, 농부의 심사가 있고, 농부의 제초와 처분이 있고, 마지막에 추수 때가 있는 이 사실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생활은 판이합니다.

또 이 세상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주와 영계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라 말은 통치권자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영원 자존하신 주재자이신 주권자이신 이분은 영원한 주권자시요 통치자이신데 이분에게 거리낀 것을 하나님이 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유한한 정권을 가지고 있고 또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도 매우 부분적인 것을 가지고 있지마는 그런 단체마다 거게서 금하는 것 있고 허락하는 거 있고 명령하는 것이 있어서 금하는 것을 할 때에는 그것은 그 세력의 힘에서 제재를 받고 금지를 당하여야 하는 것이고 아무리 화창하게 웅장하게 시설해 놨다 할지라도 그 지역을 맡은 정권자의 그 국권에서 ‘이것은 허락할 수 없다’ 하면은 그 모두가 다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우리가 얼마든지 봅니다. 또 그 나라에서 명령하는 그 명령을 어기면 혹은 과료, 혹은 징계, 혹은 징역, 혹은 사형까지 가고 있는 것을 우리가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공산 무신론자와 같이 아무 주인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저절로 생겨진 것 아닙니다. 아무 관리자 없이 그냥 우물거리고 나가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라 통치권자가 있습니다.

이분이 우주를 통치하다가 앞으로 영계 것은 모든 것이 다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이 혼잡되어 있는 우주가 정리되면은 혼잡한 것을 다 불로 태워서 원소로 돌리고 의로운 자들은 다 옮겨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때에 그때에 영원 자존하신 주권자 창조주 이분이 모든 것을 통치하시되 당신의 법도인 진리대로 통치하고 진리대로 모든 것을 다 처리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사는 것은 하나님의 농장이요 거게서 우리는 심기워지고 있는 모든 이 피조물들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야 되고,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하나님의 나라이니 그분의 통치 아래에서 살기 때문에 그분의 금하는 것을 우리가 하고 견디지 못하고 그분이 허락지 안하면 어떤 존재라도 다 허사가 되고 그분의 명령을 어기고 살 수 없다는 이 사실을 알고 사는 사람과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막살이로 하루살이같이 그저 뒤를 생각지 안하고 사는 사람의 계획도 다르고, 평가도 다르고, 또 희로애락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너희의 기쁨은 근심으로 바꿔라” 하는 것은 우리는 다 주관적이요 일방적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에 절대적인 이 법도가 있고 진리가 있고 심판이 있으니 거기 맞추어서 너는 울어야 된다 말이요 근심해야 된다 말이요 너는 살았으나 죽은 줄 알고 어서 죽기 전에 깨어나서 살아나라는 그런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 때에 앞뒤를 모르고 막살이로 사는 사람의 일시의 형통 있는 그런 것을 보고서 부러워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법도를 인정치 않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치 안하는 자멸하는 우매 무지한, 마치 우리 안에 있는 짐승과 같은 그런 사람의 인간성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가라지 많은 세상에서 곡식 노릇 하기가, 아무리 마구잡이 세상에서 조물주와 영원 무궁을 생각하면서 그저 힘껏 살라고 하는 이 사람 생활과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보면서 어려워도 견뎌 사는 이 생활을 아무리 피곤할지라도 우리의 이 세상 생활이 오늘 끝날란지 내일 끝날란지 모릅니다. 또 주님이 구름타고 오시는 것도 언제 올지 모릅니다.

그런고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불의를 행하여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 법도를 어겨서 죄를 범해서 호의 호식으로 형통으로 사는 그런 사람을 우리가 불쌍히 여겨서 생명의 도를 가르쳐 줄라고는 하지 안하고 오히려 부러워한다면 망령 중에 망령이요 미친 중에 미친 노릇입니다.

잠시 잠깐 후면 의인은 자기 아버지의 집에서 영원토록 해와같이 빛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날은 잠시 후면 우리가 닥치는 것입니다. 세상에 암만 괴로운 것도 잠시면 이것 다 벗어지고 주를 위해서 의를 위해서 죄를 대항해서 고생을 할라고 해도 언제든지 있는 것 아닙니다.

앞으로 무궁세계에 죄로 더불어 한번 싸워서, 죄로 더불어 한번 싸워 고생하고 싶고, 의를 위해서 고생하고 싶고, 하나님을 위해서 수고하고 고생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무궁세계에는 그 일이 잘 없습니다. 녜, 그 나라에는 다 으례히 하늘나라기 때문에 모든 것이 순조롭고 거슬려서 사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를 위해서 수고하는 것이나 죄를 위해서 수고하는 것이나 의를 위해서 수고하는 수고는 지금으로써 끝인 줄 알고 우리는 피곤하다 해서 피곤히 여기지 말고 어짜든지 때를 놓치지 말고 힘써 전력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24장 15절로 16절, 오늘 봉독한 말씀에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자기 양심에 가책될 것이 없이 거리낌이 없이 살려고 힘쓴다” 했습니다. 우리는 이 생활 해야 되겠습니다.

오늘이 끝날지 모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어짜든지 하나님과 사람 앞에 내가 유한한 인간이기 때문에 내 힘으로 안 되는 거는 할 수 없고 내가 모르는 것은 할 수 없지마는 우리로서 알 수 있는 데까지는 옳은 길을 택해야 되겠고 힘이 있는 데까지는 옳은 생활을 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이런 깨끗한 생활을 힘써 나가다가 주님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끝을 마쳐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돈 위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거리끼는 많은 죄를 범하고 가져가지 못할 돈 보고 그래 살다가 갑자기 우리가 생명 떠나게 되면은 그 보응을 영원한 세계에서 어떻게 우리가 받을 것이겠습니까? 또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이 계시는데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이 공부만 하면 제일이라고 하나님의 계명도 어겨서 주일날 공부를 한다, 또 출세를 하겠다고 주일을 범해서 시험을 치른다, 내가 몇십 년 공부했는데 이 시험치르는 것이 주일날이니까 내가 주일 지킬라 하면 몇십 년 공부한 것이 헛일이니까 나는 어짤 수 없다고 치는 어리석은 자야, 하나님이 너 위해서 모든 것 다 바쳐서 영생 줬고 하늘나라가 있는데 그분이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신데 네가 십 년 이십 년 주를 위해서 손해봤으면 후회될 게 뭐 있겠느냐? 그분이 냉수 한 그릇이라도 결단코 그 상을 잃지 않겠다고 말씀했는데 주를 위해서 손해봤으면 좋지, 주를 위해서 수고했으면 좋지, 주를 위해서 헛일됐으면 좋지, 자기 한 일이 자기 위해서 헛일됐으면 하지만 주님 위해서 진리 위해서 헛일됐으면 그는 영원히 살았지, 영원히 존귀하게 됐지.

그런고로 우리는 어짜든지 후회 없이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만이 영원히 서 있고 하나님의 법도만이 영원히 서 있고 그분이 영원히 주권 가지시고 영원히 왕노릇 합니다. 그 나라는 알파와 오메가의 나라라 이 세상 나라 모양으로 그렇게 정권이 변하지 않고 바뀌지 않습니다. 알파와 오메가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그분이 호리도 하후하박이 없이 공정되게 선포한 법을 준해 가지고서 심판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돈 보고 살지 말고, 권세 보고 살지 말고, 이 세상에서 필요한 지능 보고 살지 말고, 영원히 주재되신 그분 보고 살고, 그분의 인정 바라고 살고, 그분의 축복 바라고 살고, 그분의 보응 바라고 살고, 그분이 책임져 주시는 이것 바라고 살고 그 외에 아무것도 바랄 것도, 의지할 것도, 믿을 것도, 맡길 것도, 든든하다 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노아 홍수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그 시대에 과학을, 다 인간의 모든 인지들을, 인간의 역사의 모든 건설들을 이것을 의지했지마는 하나님께서 홍수로 단번에 다 전멸시키실 때에 하나님의 그 홍수 심판을 항거한 자가 어데 있었으며 거게서 도피된 자가 어데 있었으며 그 모든 것을 거절하고서 다 그렇게 헤어난 자들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꼭 그날이나 지금이나 다른 것 없으니까 어짜든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선포해 놓은 법칙에 준해서 양심에 가책없이 힘써 살아 그분 앞에 설 것을 기억합시다.

조만간에 섭니다. 뭐 무신론자도 서고, 공산주의자들도 서고, 정권자도 서고 다 그분 앞에 서서 그분 앞에 심판을 행한 대로 다 받을 터인데 이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이 세상 인간 지식 범위 내에서만 날뛰고 있는 것이 그것이 참 비참하고 가련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그 어두운 사람들에게 우리가 전파하지 안하고 뭐, 우리 할 일은 그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구원 얻었기 때문에 그분들에게 어두워서 알지 못하고 자멸 자살의 길로 행하고 가고 있는 그들에게 이 진리를 알리는 것이 우리의 사랑입니다. 이외에 사랑이 없습니다.

내 몸을 주어서 불사를지라도 그거 가지고는 사랑이 안 됩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비밀을 알려 주고, 모르는 인간 걸음에 영생하는 생명 길을 알려 주고, 인간이 암만 호독거려도 대속을 모르는 자에게 영원한 대속의 구주를 소개해서 자기 구주로 믿어지도록 만드는 거 이외에는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 몸을 주어서 불사를지라도 이 사랑이 없으면, 죄의 문제 조물주와의 이 결합 문제 이 문제가 사랑인데 이 문제 없는 것은 네 몸을 주어서 불살랐을지라도 아무 네게도 유익 없고 상대방에게도 아무 유익 없고 너도 속았고 다른 사람도 속았고 다 속이고 속는 거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날마다 세례 생활 하는 것은, 깨끗게 깨끗게 자꾸 씻는 생활 하는 것은 물로 무슨 우리 몸을 씻고 옷을 씻는 게 아니고 우리에게 착한 양심을 가지고서 하나님을 향해서 날마다 전진하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선한 양심이라 말은, 선한 양심이라는 것은 산 양심이란 말입니다. 선이 뭐인데? 선은 자존자, 조물주, 주재자, 주권자, 창조주, 완전자, 영원 불변자 그분을 중심 위주로 하는 양심이 선한 양심이오. 이것을 위주로 하지 않는 자기 개별의 개성, 개체의 사정 형편 처지, 또 자기 가정, 자기 민족, 자기 국가, 다 좋지마는 주재이신 이분을 버린 것은 다 멸망을 시키는 것이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착한 양심, 우리는 하나님 위주 중심, 하나님 위주 중심의 법도가 나왔으니까 그 법도 위주 중심 하는 것은 하나님 위주 중심이니 그 법도를 준해서 하나님 앞으로 조그마치라도 더 가까이 가고 한 사람이라도 더 가까이 가도록 하나님과 이질의 것을 동질의 것으로 하나님과 일치되도록 이렇게 노력할려고 애쓰는 이 일을 죽는 날까지 하다가 가야 합니다.

이 일을 하는 데에, 이 일을 하는 데에 이렇게 내가 착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면 돈이 생기리라, 권세가 생기리라, 형통이 생기리라 그렇게 생각하는 자들은 이 일을 하다가 나중에 싸우고 말고 나중에 분쟁 일으키고 맙니다. 이래서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자마다 다 땅위에서 헛된 분쟁이 일어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멀리 멀리 하나님을 향하여서 하나님에게서 영원 무궁한 것과 모든 존재의 넓은 시야를 넓은 무대를 바라보면서 끝없는 우리는 걸음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착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이 걸음에 돈이 생기리라 생각지 말고, 왜? 소망하는 것이, 소망하는 것이 내가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것과 나와 가까운 사람 하나라도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것과, 내가 가까이 나아가는 것과, 내 가족이 가까이 나아가는 것과, 내 교회가 가까이 나아가는 것과, 내 사회와 민족이 가까이 나아가는 것과, 내가 손길이 펴지는 데까지 모든 인류가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는 이것이 내 사업이요 이것이 내 소망이니까 거게 돈 있는 것도 아니고 거게는 십자가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말씀하신 것은 당신은 이것을 당신의 업으로 삼았습니다. 당신의 전투는 죄와 사망과 마귀로 더불어 전투했고 당신의 일은 하나님의 공심판에 인정받게 하는 것과 하나님과 화친을 일으키는 이것이 당신의 사업이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다 바쳤어.

우리는 이것을 향하여 가는 우리들이 땅에 헛된 것을 소망하고 가다가는 낙망하기 쉽습니다. 이 걸음을 걷는 데에는 돈이 소망 아닙니다. 권세가 소망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존대가 소망 아니요, 인기가 소망 아니요, 영광이 소망 아니요 우리 소망은 그저 모든 인류로 하나님과 화친하고 하나님 그분 한 분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이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이것은 다 자기가 녹아지지 않고는 되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얻는 길이 아니요 내게 많든지 적든지 있는 대로 이 모든 것을 투자해서 다 녹혀버리는 소금의 직책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주님이 주셨다면 받아 가지고 또 녹히고 주셨다면 또 녹히고, 그러면 주시면 녹히는 것이 우리 직책이지 이리저리 긁어모아 가지고서 세상에서 적재하자는 그것은 우리의 생활의 법칙에 이질적이요 맞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요한일서 3장 21절로 22절에 보면은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도록 힘써서 날마다 그러니까 우리는 뭐 이 세상 것을 위해서 노력하는 게 아니고 우리 마음이 우리에게 대해서 책망할 것이 없도록 그것 찾아서 자꾸 정리하는 것이 우리 생활입니다.

무슨 법칙을 법규로 해서? 하나님이 이미 선포해 놓으신 생명법이 있으니까 이 법으로써 당신을 대표해서 당신을 향하는 것으로 이 법을 향하여서 날마다 찾아 이 법에 가책이 없음으로써 하나님에게 가책 없고 이 법과 나와의 하나됨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하나된 줄 알고 이 걸음을 뿍뿍 우리가 걸어가면 이 걸음이 피곤치 않습니다.

말씀하시기를 “네가 그리하면 하나님 앞에서 먼저 담대함을 네가 얻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공산주의를 두려워하고, 정권자를 두려워하고, 세상에 이런 거 모든 세상 법에 위반된 거 두려워하고 다 두려워합니다. 물론 그런 것도 두려워하지마는 그보다도 대주재이신 조물주이신 그분의 법이 있고 그분이 계시기 때문에 그분에 이탈된 것이 제일 두렵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 법도와 심판과 하나님 그 자체 그분의 존재의 그 속성을 아는 사람들은 그분 한 분에게 인정받았으면 그만 그만하면 안심하고 살수 있습니다. 뭐 자기를 어떻게,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땅위에 어떤 존재들의 인정을 받아 가지고서 안심하고 산다 해도 그거는 참 철없는, 그저 철없는 어린아이같이 마음에 안타깝지 그 인정하면 그것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어데까지 가겠습니까? 오늘 온 세계에 머리라 하는 것이 내일 다 시체가 되고 마는 수가 있고 다 엎어지고 재껴지고 하기 때문에 의지할 것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렇게 우리 양심 이것을 가지고서 가책 없이 하나님 법을 찾아가서 살면 하나님 앞에 첫째 담대함을 얻고 다음으로는 우리의 구하는 것을 다 하나님에게 다 얻는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물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뭐 자기 개인에게도 있지마는 개인에게보다도 모든 인류에게 필요한 것을 구할 것이요, 모든 피조물에게 필요한 것을 구할 것이오.

어떤 사람이 구한다면은, 주여! 하나님의 형상대로 산 전인류를 구원해 주시고 모든 피조물을 행복되어 다시는 죄와 사망과 마귀가 없는 생명과 평강의 세계로서 영원한 이 세계를 만들어 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할 것입니다. 무릇 구하는 바를 얻는다 말했습니다.

그러고 그 다음에 셋째로 말씀하는 것은 이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킨 사람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들이라. 우리가 양심에 가책할 것 없이, 양심에 자책할 것이 없이 양심껏 하나님의 법을 지켜서 산다고 하면 하나님의 계명 다 지킬 수 있다 말입니다. 양심껏 살면 하나님의 노여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자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원대로 하나님이 다 들어 주시니까 내 소원과 하나님의 소원이 일치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우리 양심에 가책할 것 없이 양심껏 하나님을 향하여서 찾아가는 생활 하면은 우리에게는 이렇게 참 어마어마한 놀랄 만한 초인간적인 이런 평강의 가치의 고귀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양심 생활 버린 사람보다 불쌍한 사람 없습니다. 양심에서 떨고 양심에 가책되는 거 어짜든지 죽어도 살아도 해결지울라고 하는 그 사람이 반석같은 걸음을 걷는 사람이요, 지혜있는 사람이요, 담대한 사람이요, 참으로 인격 있는 사람이요, 참으로 부끄러운 걸 알고, 두려움을 알고, 가치를 알고, 무서움을 알고 하는 그 정상적인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사람인 것입니다.

이제 오후에는 양심의 종류에 대해서 또 말하겠습니다. 말해도 아직까지 양심의 종류를 모르기 때문에 양심대로 한다 해 가지고서 자꾸 자멸하는 행위하고 양심대로 한다고 해 가지고서 이 헛된 일 하기 때문에 복이 올까 하니까 복은 오지 안하고 화가 옵니다.

잠깐 기도합시다.

주님, 이는 생명의 말씀이요 곧 무한한 말씀이요 영생의 말씀이요 곧 주님의 말씀이오니 어떻게 저희 피조물들이 감당하겠습니까? 이를 인해서 대속하신 주님의 피의 능력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의 능력으로 전하는 자나 들은 자나 다 하나입니다. 바로 깨닫게 하시고, 확신하게 하시고, 확정하게 하시고, 단행하게 하사 실상을 이루어 참으로 지상 천국에서 살고 평강 가운데서 재림하시는 주님을 기다리고 모든 사망과 마귀와 죄에게 사로잡혀 있는 형제들을 생명으로 구출하는 주님의 피흘리신 이 피의 운동에 이바지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총을 주시옵소서.

여게 모인 성도들이 다 산 자들 되게 하시고 산 자 되어서 산 운동하고 살리는 역사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기도> 이제 호명한 많은 형제들을 어두움에서 광명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들을 옮기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 그리스도의 심정의 그 사랑으로 불붙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주님의 자녀들이 되었사오니 장중에 잡으시고 험한 세상 걸어갈 때에 아무것도 침노하지 못하게 하시고 평강 가운데서 구원 준비를 잘하여 가게 하시고 모든 어려움 주님에게 구할 때에 다 들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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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795 양성원 방종 질책/ 디모데전서 4장 6절~9절/ 820618금새 선지자 2015.12.04
794 양식/ 요한복음 6장 26절-27절/ 801206토새 선지자 2015.12.04
793 양식/ 요한복음 6장 27절-30절/ 850920금새 선지자 2015.12.04
792 양식/ 요한복음 6장 22절-27절/ 801205금야 선지자 2015.12.04
791 양식 나눠 주는 자/ 마태복음 24장 37절-51절/ 850817토새 선지자 2015.12.04
790 양식을 나눠주는 자/ 마태복음 24장 45절-51절/ 820311목새 선지자 2015.12.04
789 양심/ 마태복음 6장 22절-23절/ 870415수야 선지자 2015.12.04
788 양심/ 요한일서 3장 21절-22절/ 870420월새 선지자 2015.12.04
787 양심 자유/ 갈라디아서 5장 1절/ 880914수새 선지자 2015.12.04
786 양심과 양심을 구별고린도전서 13장 1절-8절/ 870517주후 선지자 2015.12.06
785 양심대로 사는 생활/ 잠언 4장 20절-27절/ 881031월새 선지자 2015.12.06
» 양심생활/ 사도행전 24장 15절-16절/ 870517주전 선지자 2015.12.06
783 양심생활과 신앙생활/ 베드로전서 3장 21절-22절/ 850612수새 선지자 2015.12.06
782 양심-성령-옥토/ 마태복음 13장 3절-9절/ 830721목새 선지자 2015.12.06
781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사도행전 24장 15절-16절/ 870503주새 선지자 2015.12.06
780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사도행전 24장 15절-16절/ 870426주새 선지자 2015.12.06
779 양심에 거리낌 없기를 힘쓰노라/ 사도행전 24장 15절-16절/ 870422수야 선지자 2015.12.06
778 양심을 밝히는 법/ 마태복음 6장 19절-23절/ 890614수새 선지자 2015.12.06
777 양심을 밝히는 법/ 마태복음 6장 21절∼23절/ 890613화새 선지자 2015.12.06
776 양심을 써 자기 진리를 찾아라/ 사도행전 12장 1절-10절/ 880401금새 선지자 2015.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