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생활과 신앙생활


선지자선교회 1985년 6월 12일 새벽(수) 

 

본문 : 베드로전서 3장 21절∼22절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하는 이 저는 도성인신 하신  신인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하늘에 오르신 것은 이  공간적인 하늘보다 지극히 거룩한 자존하신 하나님의 위치에. 이제는 신성만이  아니고 신인양성일위로서 그 위치에 오르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셨다 그 말은 모든 지성 지공의 명령을 다 완전히 감당하시고  모든 승리를 다 이루시고 악령으로 더불어 싸워서 완전히 승리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악령에게 짐으로 악령의 종이 된 것처럼 주님이 악령을 이겨서 악령과  악령에게 속한 모는 세상은 다 주님에게 종으로 정복을 당한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 우편이라 그렇게 말하고 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을 제일 인정하시고 모든 것을 그에게 다 허락해 주신  것을 가리켜서 우편이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또 한 가지 뜻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영원토록 진행할 모든 진행의 미래의 이 모든 것은 다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에게 일임해 가지고 하시는 그것을 가리켜서 우편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도 순복하고 권세들도 순복하고' 권세라면 하늘에 있는  권세도 있고 땅에 속한 권세도 있고 큰 권세 작은 권세, 권세라는 종류는 전부 다  예수님에게 순복하게 되그 '능력들도 전부 예수님에게 순복하게 된다' 능력은 큰  힘 작은 힘 모든 뭐 지식의 힘이나 육체의 힘이나 금전의 힘이나 어떤 힝이든지  모든 힘도 다 예수님에게 순복하게 됐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정복하셨고 모든 것은 예수님에게 다 복종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탄이 우리를 시험하나 시험하는 것은 예수님을 거스려서  시험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부리는 영으로서 예수님의 명령대로 우리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시험이 우리를 꺾어서 정복하기 위한  시험이 아니고 우리를 이모 저모로 여러 모로 우리를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  악령이 우리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험이 감당치 못할 시험은  없습니다. 다 우리의 신앙을 육성시키기 위해 가지고 하나님이 사탄을 이용하셔  가지고 우리를 양육하고 계시기 때문에 감당치 못할 시험은 우리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또 감당치 못할 그런 시험이 있는 것 같으나 그 시험이 있을 즈음에  미리 하나님께서 감당 할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자꾸 말씀해 줍니다. '이 일은  네가 미리 기도해야 되지 미리 기도 안 하면 안 될 터이니 기도해라, 또 여기  대해서는 네게' 무슨 잘못된 게 있는가 잘 살펴서 거리낌이 없도록 하라'  아무리 좋은 전력이라도 잇겨 있는 전선이 조그만치라도 거기에 끊어져서 뭐  이만치 한 발 끊어진 게 아니라 그저 거기에 잇기지만 안해도 전기는 안 오는  것입니다. 강한 전기이면 뭐 조금 그저 종이 한 장 혹은 손 두께 한 두께 사이는  그 선이 끊어져 있어도 전기가 오지만 약하게 옵니다. 아주 약한 전기는 거기에  딱 붙지 안하면 또 전기가 안 오는 것입니다. 강한 전기도 그만 약하게 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가 들어서 가로막으면 하나님의 모든 그  능력이 우리에게 와 역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방종한 것도 방탕한 것도 악한 것도 더러워지는 것도  못써지는 것도, 인간이 전부 몹쓸 사람으로 되어지는 행동과 성질과 사람의 온갖  요소는 그것은 악령으로 말미암아 그와 같이 되어지는 것인데, 그러기에, 병중에  악령이 참가 안 하는 병이 없고 모든 악행 중에 악령이 참가 안 하는 악행이  없고 모든 거짓되고 실수되는 것 중에 악령이 참가 안 하고 거짓되고 실수되는  일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악령은 주님의 부리는 신이 됐는데 우리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 때에는  악령이 그렇게 사이에서 끊어 가지고 방해를 지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해지길  때에 방해 당하는 그것을 가지고 책임을 지위서 이것 잘못됐다고 그것을 뭐 깨도  소용없어요. 깨도 소용없고 버려도 저만 손해고 깨도 손해고 죽여도 저만  손해입니다. 안 됩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있는 것이니까 자기가 들어서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가 끊겨질 수 있는 원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악령이 끊어 가지고  고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분은 모든 일에 실수 없는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미쁘사 미쁘사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은 오지 딴게 하신다 또 시험  당할 즈음에는 미리 피할 길을 내 주신다' 네가 이런 이런 시험에 대해서는 이런  이런 회개가 있어야 되겠고 이런 이런 성결 준비가 있어야 되겠고 이런 이런  기도가 있어야 되 고 이런 이런 그런 모든 준비가 있어야 되지 그거 준비가  없으면 안 되는 그 준비해야 될 것은 준비하면 감당할 수가 있고 또 고칠 것은  고치면 감당할 수가 있고 또, 참고 견딜 것은 우리가 참을 만한 그런 힘을 픽  놓으시고 참을 수 있는 힘 주신 대로 그 힘을 다해서 참으면 또 모든 문제가  해결이 돼지고 그와 같이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에 '감당치 못할 시험은  하나도 없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늘과 땅에 있는 능력의 전부입니다. 능력의 전부이기  때문에 예수님만 자기 구주로 모시게 되면 모든 것에 대해서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이래서,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말을 했고 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주님과 자기와의 접선이  되면 다 할 수 있는데 그 접선이 된다고 꼭 동등으로 되는 게 아니라 백분지 일  접선도 있고 천분지 일 접선도 있고 십 분지 일 접선도 있고 십의 오 접선도  있고 십의 구가 접선되고 십의 일만 남은 사람도 있고 십의 십이 다 접선될 수  있다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면 십의 십이 다 접선됐을 때에 그때는 그  사람은 땅위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러 가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 같은 그런 분도 땅위에 고칠 것이 있기 때문에 땅 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욥 같은, 그는, 천하에 욥과 같은 그런 의인이 없고 욥과 같은  겸손한 사람이 없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그렇게 말씀했지만 욥이 땅위에 있은  것은 고칠 게 있었기 때문에 땅위에 있었습니다. 마지막 시험을 당해 가지고 욥이  계속 감사하고 이라다가 마지막에는 불평을 했는데 불평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영감으로 가르쳐 주실 때에 자복을 했습니다. 내가 이래  부패한 나는 죄인이라 할 때에 그때에 그 속에 있는 감추어 있던 것이 쏵 다  빠져나가서 의인이 되고 욥은 하나님이 데려갔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와 능력과 천사 한 천사면 우주를  일시에 멸할 수 있습니다. 천사의 능력은. 그러기에 비도 천사가 맡았고 전쟁도  천사가 맡았고 평화도 천사가 맡았고 모두 다 천사들이 말아 가지고 일하고  있는데, 이 천사들은 이 모든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맡고 하늘에 있는 모든  것 쌓아 가지고 있는데 맡아 가지고 있는 그 목적이 뭐이냐? 맡아 가지고 있는  그 목적이 뭐이냐? 그 목적이 택한 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맡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믿음을 지킬 때에는 천군 천사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옹호를 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네가' 사데 교회에도 '네가 이기면, 네가  어떻게 받은 것을 생각하고. 어떻게 들은 것을 지키고, 못 했으면 즉시 회개하고  하는 자는 이기는 자라. 이기는 자에게는 그 이름을 하나님 앞과 천사 앞에서  삭제하지 안하겠다' 그랬습니다. '네 이름을 하나님과 천사 앞에서 네 이름을  아노라 하리라' 하는 그 말은 하나님의 온갖 능력의 은총과 또 천군 천사들의  모든 협조를 하나님께서 결재한 것을 취소하지 않는다 말입니다. 결재해서 그대로  있으니까 그대로 협조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아침에 증거할려고 하는 것은 한 가지만 간단하게 알고 갑시다.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서 찾아간다 했습니다. 양심은 이것은 인간의  요소입니다. 또 하나님의 요소 그 말은 하나님께 속한 그 모든 것들이 있는데.

우리 몸에 세포 있는 것처럼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 그 수가 한 없이 많은데,  많든지 적든지 크든지 작든지 하나님에게 속한 요소가 있고 사람에게 속한  요소가 있는데 양심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속한 요소가 아니고 또 어떤  사람이 말하는 거와 같이 하나님에게도 사람에게도 속하지 안하고 중간에 있는  것이라 하는데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양심이라 하는 것은 사람의  요소입니다. 사람의 요소인데, 사람의 육체 중에는 제일 현명한, 현명하고 진실한  인간의 빛이 되어 있는 마음의 요소입니다.

 요소인데, 양심생활은 신앙이 아닙니다. 양심생활은 신앙이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전부 양심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양심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양심생활 하는 그것은. 불택자들이, 중생되지 안한 사람들이 양심생활  하는 것은 그 양심생활이 무엇을 찾아가느냐 하면 사탄을 찾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세상에서 제일. 하나님 외에는 권세 있는 것이 사탄인데 사탄을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양심이 죽은 양심인고로 죽음의 근본인 그 사탄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 양심이라 하는 것은 사탄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신앙 양심은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 양심은 어떤 것이 신앙 양심인가? 양심이라 하는 것은 그 본인의  지식의 지배를 받습니다. 지식 된 대로 그 양심은 되어지는 것입니다. 왜?  자기에게 있는 그 지식을 다 활용해 가지고 고 지식대로 제일 좋고 바르고 곧고  참된 것 깨끗한 것을 취하여 가는 것이 그것이 양심이기 때문에, 불교인은 불경  중에 제일 이상점. 불경 중에 제일 좋은 점 제일 옳은 점 그 점을 향하여 가는  것이 불교인의 양심인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자의 신앙 양심이라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은 뱀에게서 나온 뱀의 지식이요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인데, 산 지식은 하나만 있으니 산 지식은 뭐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지식 신구약 성경 지식은 산 지식인데 이 산 지식  하나님의 지식 이 성경 지식을 자기의 지식으로 삼아 가지고 이 지식을 활용해서  이 지식 대로의 제일 옳고 바른 것을 찾아 나갈려고 하는 그것이 신앙 양심인  것입니다. 신앙 양심은 산 양심이요 이방인의 모든 양심은 그것은 하나님의  지식대로의 양심이 아닌 인간의. 타락한 인간의 지식대로의 양심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양심생활이 있고 신앙생활이 있습니다. 양심생활과 신앙생활이  다른 것을 구별해서 우리가 살아야 됩니다. 양심생활은 어떤 것이 양심생활인고  하니 양심생활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자기 양심이 쌓아 가지고 옳다 바른다  하는 고대로 하는 것이 양심생활입니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법전으로 삼아  가지고 성경 말씀을 표준을 해 가지고 성경 말씀대로 재일 옳고 바른 행동하는  것이 그것이 신앙 양심 행동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적 요소냐 인적  요소냐? 그것은 순전히 인적 요소입니다. 인적 요소요, 신앙의 행동이라.

신앙생활이라, 신앙 행동이라 하는 것은 인적 생활이 아니고 신적 요소의  생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요소라는 그런 말 혹 모르면, 금과 은 둘을 혼합할 수  있습니다. 혼합할 수 있는데, 이 금은 금이 얼마 섞였고 은이 얼마 섞였고 금과  은이 배합돼 가지고 있는 것이라 이 것은 순금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은과 금이 녹을 수가 있고, 녹을 수 있는 그 정도에다가 녹여 가지고 타 버리면  금하고 은하고 타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중에 가 가지고 금만이 견디고 은은 탈  수 있는 높은 열도에다가 그걸 구우면은 은은 다 타 버리고 순전히 금만 남을 때  그것을 가리켜서 순금이라 이십 사 금이라 그렇게 말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금하고 은하고 한데 뭉쳐 있지만 그래도 거기는 나중에 분석하면은 금의  요소가 있고 은의 요소가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과의 이와 같이 섞여  있지만 하나님의 요소가 있고 사람의 요소가 있는 것인데, 양심 행동은 전적  그것은 인적 요소입니다. 인적 요소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그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애를 쓰다가 고 양심생활이 그것이 바로 됐을 때에,  착한 양심생활이 됐을 때에 그때에 성령이 인정하셔 가지고 인을 칩니다. 성신이  동행해 주십니다. 성신이 동행해 주시면 그것이 뭐이냐? 비로소 신앙생활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이 될 때에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전능의 행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사람들이 능치 못하심이 없는 믿음 생활을  할라고, 믿음 행동을 할라고 믿음 행동을 할라고 이제 믿음 행동을 할라고 믿음을  만듭니다. 믿음 행동을 할라고 믿음을 만드는데. 믿음을 만드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믿음을 만드는 것인가?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듣든지 보든지 하고 요  말씀대로 자기가 행동할라고 애를 쓰는 그것이 믿음을 만들라고 애를 쓰는  것인데 그렇게 하다가 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애를 쓰는 그것이 성령이 보실  때에 성령이 같이 하실 수 있도록 성령이 인정하실 수 있는 그런 단계의  깨끗해지고 온전해질 때에 성령님이 동행하십니다. 그러면 그것이 그때부터 믿음  생활이 됩니다.

 믿음 생활이 되면, 믿음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그 요소와 인간 요소가  이렇게 합해 가지고 되는데, 하나님의 요소는 주권을 가지고 있고 인간 요소는  완전히 하나님의 요소에게 피동이 되고 정복돼 가지고 하나님의 요소가 시키는  대로 완전히 종이 돼 가지고 거기에 피동되는 그것이 이제 믿음 생활이요 믿음  행동입니다. 믿음 행동은 인적 요소가 있지만 인적 요소가 제 주장대로 하는,  신적 요소를 방해하고 거역하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순전히 그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하게 되기 때문에 그거는 전능의 행위요 능치 못하심이 없는  행위요 영원히 죽지 안 하고 썩지 안할 그 행위요 하나님께서 '의롭다' 심판을  이길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양심생활은 인적 요소요 신앙생활은 신적 요소라. 그러면, 인적 요소가  그것이 바로 돼졌을 때에 신적 요소가 되어진다. 인적 요소가 없이는 신적  요소에는 나아가지를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인적 요소인 신앙 양심 행동이  그것이 성공이 되면 신앙 행동이 되어지는 것인데 양심의 행동이 없이는 신앙  행동이라 하는 것은 전혀 없는 것이다. 양식 행동이 성공이 될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신앙 행동이라 한다.

 그런고로, 믿는 사람이 양심을 쓰지 않는 사람은 신앙 행동에는 나아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간다 양심생활을  하는 그것이, 양심생활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오. 양심생활과 신앙 행위는,  양심생활과 신앙 행위는 다릅니다. 양심 행위는 자기 주관으로써 이와 같이 지금  말씀보고 행해 나가는 것이고, 벌써 신앙 행위라 하는 그것은 무슨 행위인가?  그거는 영감 행위라 하는 것입니다. 신앙 행위는 영감 행위라, 신앙 행위는 영감  행위라, 그러기 때문에, 양심 행위와 영감 행위는 다르다. 양심 행위는 인적  요소요 영감 행위는 신적 요소이기 때문에 영감 행위에 도달되면 그거는 벌써  능치 못함이 없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오고 모든 것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 사람이, 이번에 대구 가 가지고 그와 같이 하나님의  표적을 보는 것도 그 순간이나마 그때에 잡탱이 다 없어지고 순간이나마 자기의  마음도 다하고 성품도 다하고 뜻도 다하고 힘도 다라고 목숨도 다해서 아무 남김  없이 솔빡 주님을 믿는 고 믿음이 딱 됐을 때 그때 폭발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이제 전기가 탁 음전기 양전기가 탁 부딫힐 때에 꽝 그라면서 번개불이 나오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생활의 고귀한 것을  깨닫고 신앙 생활 할라고 믿음을 만들라고 애를 써서 믿음을 만드는 것이 뭐이냐  믿음 만들라고 애쓰는 것은 양심생활 할라고, 신앙 양심 생활 할라고 애를 쓰는  것이요. 양심생활의 성공 그것이 곧 영감 생활 믿음 생활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보고 요대로 살라고 애를 쓰는 요  하나님 말씀을 맞춰서 요대로 살라고 애를 쓰는 고 애씀이 없이는 신앙생활에  나아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설교를 해도 양심 설교도 하지 않습니다. 설교해도  이 세상 학문을 가르치는 거와 같은 그런 도로 자기 지식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 양심은 하나도 섞이지 안했습니다. 지식 행동과 양심이라 하는 것은 또  다른 것입니다. 지식 행동은 지식대로 다 하는 것이 지식 행동이요, 앙심 행동은  그 지식에서 제일 선출해 가지고 그 현실에서 어느 게 옳으냐 하는 것을 선별해  가지고 고대로 옳다 인정되는 고대로 하는 것이 그것이 양심 행동입니다. 양심  설교를 해서 그 양심 설교가 성공이 될 때에 신앙 설교가 되고, 신앙 설교 그것이  뭐이냐? 영감 설교가 돼. 영감 설교가 될 때에 하나님은 거기 와 가지고 역사할  수가 있고 영감 설교가 안 될 때에는 하나님은 거기 역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설교하는 사람이, 여기 양성원 학생들이 많은데, 설교하는  사람들이 웅변을 가지고 뭐 세상 지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감화를 줄라고  다른 사람에게 인기를 골라고 다른 사람이 자기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이 자기를  옹호하고 자기에게 속하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이런 헛된 잡된 것 그런 것을  욕망해 가지고 설교하는 자는 성신의 역사는 거기는 없습니다. 암만 뭐 인간들이  뭐 울고 불고 해도 성령의 역사는 없고 다만 인간들이 그 정서, 자기 주관 정서에  따라서 정서 설교를 듣고 정서에 따라서 우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  없는 사람들도 사람 울리고 웃기고 얼마든지 할 수가 있는 그런 웅변가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요 양심 행동과 신앙 행동이라 하는 것을 잘 구별해서 그렇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네, 오늘 아침에는 내가 미안합니다. 어제 아침에 내가 와야 되는데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서, 왔다가는 도로 고장 나 안 될 것 같아서 그래 어제 아침에 오지를  못하고 쉬었었습니다. 쉬어서 조금 낫습니다. 내가 꼭 새벽 기도는 나온다 해  놓고. 그만 어제 아침에 많이 나왔다 하는데 내가 하나님 앞에 가책을 많이  받았습니다. 힘을 다른 데 쓰지 안하고 거기에만 써야 되기로 내가 기도도 해  놓고, '내 힘은 이제는 성경 연구하고 기도하고 설교하는 요 세 군데만 쓰지 딴데  쓰지 않겠습니다' 요래 놓고도 또 보면 또 안 할 수 없어 자꾸 이러다가 남용을  해서 감당을 못 해서 죄송합니다. 오늘 아침에 보니까 벌써 나온 교인 숫자가  많이 줄었습니다. 그라면 안돼요. 내가 안 나오면 더 나와야지. 내가 안 나오면  '우리가 기도가 모 자라고 이러니까 더 나와 가지고 기도 열심히 해야 되겠다'  이래야 되지 안 나오면. 안 나오면 어찌 됩니까? 나 안 나오고 안 나오면 그라면  다 뒤로 파괴되고 마는 거 아닙니까? 그래 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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