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1987. 4. 26. 주일새벽

 

본문:사도행전 24장 15절∼16절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오늘 가르칠 공과인데 학생들은 이 도리에 대한 뜻을 해석해 주는 것보다도 그들에게 주입을 시켜서 그 기억하는 그 기억에다가 담기워지도록 그렇게 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 말씀을 자기가 기억하게 되면 때가 되면 이 말씀 자체가 사람 말과 같이 죽은 말이 아니기 때문에 이 말씀 자체가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게도 하고 또 소원하게도 하고 또 달성하도록 그렇게도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역사해 주십니다. 될 수 있는 대로 학생들에게 주입을 시켜서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지난번 공과는 우상에 대해서 공부를 했는데 자기가 가르친 그 학생이 앞으로 우상 문제가 나올 때 그때에 그 우상에 대한 공부한 것이 기억되고 생각나서 그때에 그 우상을 이기면 하나님의 큰 능력을 받게 됩니다.

어제도 제가 위천교회 있을 때에 주일학교 부장으로 있던 사람이 그만 ○○교파에 가 가지고 이래 다니다가 낭파를 당해서 있는 것을 제가 같이 만나 가지고 지금 양성원을 졸업하고 전도사로 나갔는데 잘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장로직을 가지고 거창읍에서 국민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아주 그 일을 잘본 사람입니다.

이랬는데 그때 같이 반사하던 사람이 ○○교파에 있다가 요번에 미국에 가게 됐다고 어제 뭐 예물을 하나 사 가지고 그렇게 왔읍디다. 와서 미국 가게 됐다고 그라면서 나한테 인사는 안 해도 여기 자주 와서 늘 참석을 했다고 이라면서 설교록이 빠져 없는 것을 편집실장에다 말해 가지고 몇 권? 서른여섯 권이라 하던가? 인제 몇 권 나왔는고? 서른두 권? 서른두 권? 이제 서른두 권인가 몇 권이가 그것을 전부 다 사서 갖춰 가지고 지금 간다고. 그뭐 상당히 미국까지 가지고 갈라 하면 짐이 많을 겁니다, 그거. 그래 가지고 간다고 이라면서 그래 가서 있는 대로 충성을 해서 좋은 소식을 보내겠다 하고 그래 갔습니다.

그 사람들이 해방직후 국기 배례라는 그 우상 문제 때문에 그때 고난을 당해도 기어코라도 이겼습니다. 뭐 경찰서 문제가 많이 나고 이랬지마는 승리했어.

승리했는데 하나님이, 얼마 전에 말 들으니까 아주 뭐 절단났다 말 들었는데 하나님이 또 들으셔서 그 자녀들은 전부 대학 다 했는데, 또 그 사람들은 대학 하는 데는 보니까 전부 실업과를 했습니다, 실업과. 뭐 의사 또 뭐 이런 거 했는데 그래 다 해서 모든 것이 넉넉해지고 괜찮은 모양이라.

나는 자녀를 전부 딸까지도 전부 법만 가르칩니다. 법만 가르치니까 이거 뭐 배워 봐야 나가서 돈벌이 해 먹을 게 하나도 없어, 법만 가르치니까.

저는 법을 공부하고 사학을 공부시키라 하는 건 꼭 구원을 위해서만 이렇게 하는 건데 그 자손들이 그렇게 해 가지고 구원에 대해서 참 힘을 써보면 그거 큰 효험이 될 건데 구원에 대해서 힘을 안 쓰니까 그 가르친 게 다 헛일이라.

돈벌이나 가르쳐 가지고 돈벌이나 했으면 좋을 건데.

이 우상 같은 것 그런 거 이긴 사람이 일하지, 진 사람도 회개를 하면 되지마는 그 일에 대해서 예사로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않는 증거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학생들에게 우상 공부를 했으니까 아마 여러분들이 가르친 그것만 하면 학생들이 우상 문제는 거의 다 승리할 것입니다.

혹 제가 군에 가서나 학교 가 이래 말을 들어보면 서부교회 학생들이 좀 뺄쭉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두 저거하고 타협하지 않는다고 같이 하자 하는 데 안 한다고, 우리 총공회는 배타적이다, 이래 배타적이라 이라는데 그 사람들이 말한 그것은 잘못한 말입니다.

배타적이면 자꾸 사람 구원할라고 열심히 돌아다닐까? 저만 생각하는 것이지.

배타적이라는 건 저만 생각하는 것이 배타적이오.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 외에 딴거는 생각지 안하고 하나님과 배반되는 거 하나님과 배치되는 것은 전부 배치하고 하나님과 하나된 것만 영접하는 거는 그거 배타적이 아니고 그게 참 옳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과 하나되지 않은 그런 것으로서 뭉쳐서 하나되는 것은 그것을 가리켜서 당파짓는 것이라 그렇게 성경이 말한 것이오. 그거 깨닫지를 못하니 자꾸 그리 되는데.

지난번에도 이 양심에 대해서 공부했는데 양심에 대한 것을 두번째 공부합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자꾸 이거 공과를 그들에게 읽어 듣겨서라도 꼭 주입을 시켜서 그 아이들이 속에다가 기억력에다가 담아 가지고 있도록, 그래서 일생 동안 양심 공부한 것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양심으로 살지 않으면 헛일이라 하더라’ 하는 것을 이렇게 가르쳐 주면 그게 제일입니다.

그게 사람 보기에는 그렇게 효력 있겠나 싶으지마는 말씀 자체가 역사하고 말씀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역사하기 때문에 제일 결과적으로 좋은 결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 제목은 ‘양심에 거리낌 없기를 힘쓰노라’ 요것을, `양심에 거리낌 없기를 힘쓰노라’ 요걸 학생들이 기억해서 어데서든지 자기가 생활하는 데 ‘양심에 거리낌 없기를 내가 힘쓰겠다’ 그것을 가르쳐서 아이들이 기억하고 있으면 대단히 큰 효력이 있을 것입니다.

요절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이 정결해야 하나님이 보지 마음 정결치 안하면 하나님 못 만납니다. 실은 기도한다고 아무리 해도 양심 안 쓰면 기도는 안 됩니다. 양심 안 쓰는 그 기도는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들으면 압니다.

양심 써서 기도하는 사람은 양심 안 쓰고 기도하는 그 기도는 들으면 알고, 양심 안 쓰고 언변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이 언변에 설복당할 하나님 아닙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오.

또 하나님이 그 웅변에 설득당하실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 줄 모르고 웅변으로 기도하고 열변을 통해서 기도하고 좔좔 말을 잘하면 되는 줄 아는 그것은 하나님을 어떤 분이신 것을 몰라서 그렇소.

하나님은 전지자시요 또 전능자시요 지극히 거룩한 분이십니다. 지극히 거룩하다 말은 하나도 구별하지 않는 것이 없고 구별 구별 구별로써 참 완전 구별하시는 하나님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그분 앞에 기도할 때에 양심 쓰지 안하고 기도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는 것, 하나님은 만홀히 여기심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는다 하는 것입니다.

업신여김을 받지 않는다 그말은 하나님을 어떤 분이신 줄 모르고 자기가 하나님을 무슨 놀림거리같이, 불교인들이 부처 대하듯이 이렇게 사기꾼이 사람들 대해서 안팎이 다르게 이렇게 교제하는 것처럼 이렇게 하나님께 대하는 그런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 앞에 함부로 입을 벌리지 말아라” 이랬습니다. 마음이 깨끗해야 하나님 봅니다.

서론에,ㅡ이대로 가르치는 것이 제일 좋아요, 이렇게 알기가 어려우니까.ㅡ‘양심은 마음의 빛이다. 양심을 버린 자는 그 모든 생활이 다 근시적이요’ 근시적이라 말은 멀리 못 본다 말이오. 학생들은 이걸 해석해 줄 수가 없어. 근시적이라 자꾸 이래 놓으면은 그게, 그거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컴퓨터 한가지라. 그만 ‘근시적이라’ 딱 찍혀 놓으면 그만 일생 동안 그게 찍혀 있어요.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꿈꾸면 평소에 생각지 않는 그런 것들이 다 꿈에 꾸이는 것은 그 속에 사람에게 그 컴퓨터가 얼마라 하더라? ○○○목사님, 얼마라 했습니까? ○○○목사님? 컴퓨터 얼마요, 사람의 머리에? 컴퓨터가 얼마나 있어? 천억, 천억. 천억이니까 거기 다 그만 딱딱 찍혀 있다 그거요. 누가 좋은 말 했어요.

근시적이라 말은 가까이 본다. 그러나 반사들은 알고 말해야 돼. 반사들은 알고 해야 그 학생들에게 가지 모르고 하면 안 돼요. 그러니까 이 뜻을 알고 그렇게 반사들은 학생들에게 말해서 해석 안 해 줘도 반사들이 알면 안 그 진리가 그 속에 들어갑니다. 안 진리가 그 속에 들어갔기 때문에 제가 지금은 깨닫지 못해도 나중에 때가 되면은 깨닫게 됩니다. 반사들은 알아야 돼. 반사들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거라.

근시적이라는 건 가까이만 보지, 금생만, 이 살아 있는 것만 보고서 죽음이 어찌 되는가 그것 못 보는 것은 근시자라. 가까이 보는 사람이라. 또 지금은 건강하지만 또 이다음에 병들 것을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은 근시자라 그말이오.

‘모든 삐뚤어진 유혹에 빠져 모든 처사를 소경같이 행하기 때문에 일시 성공 같은 것도’ 일시에 보면 성공되는 그런 성공 같은 것도 나중에 가면 실패라 말이오. ‘실패요 모두가 자멸 자살 행동만 하게 된다.’ 어짜면? 양심을 쓰지 안하면 전부 자살 자멸 행동입니다.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다 그래요. 안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들대로 양심을 써야 되고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대로 양심 써야 되고. 그렇기 때문에 양심 쓰지 안하고 재벌가가 된 사람, 양심 쓰지 안하고 정치가가 된 사람, 그 모은 재물이 가진 권세가 전부 자멸 자살하는 거 외에는 아무 결과가 없습니다.

‘실패요 모두가 자멸 자살 활동만 하게 된다. 사람마다 행복과 성공이 길지 못하고’ ‘길지 못하고' `행복과 성공이 길지 못하고 속히 망하는 것은 전면과 길게를 보지 못하는 연고이다.’ 전면을 본다 말은 거게 관련된 모든 것을 다 본다 말입니다.

성경은 전면을 보게 해. 전면은 거게 대한 것을 금생도 내세도, 또 자기에게도 또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에도 상급에도 형벌에도 전부 다, 그런 전면을 다 생각한다 그말이오. 무슨 기계 하나를 만들라 해도 거게 대한 전면을 알고 전면을 맞춰야 그 기계가 돼지지 일면만 맞추면 그 기계가 됩니까? 안 된다 그말이오.

‘연고이다. 양심을 꺾고 죽이고’ `양심을 꺾고 죽이고 양심 아닌 마음으로 생활하였기 때문이다.’ 요것도 아주 귀한 말입니다. 양심을 꺾어버리고 죽여버렸으면 그 사람 무슨 마음으로 삽니까? 양심을 꺾고 죽였으면 무슨 마음으로 삽니까? 쉽지 않아요? 양심 아닌 마음으로 삽니다. 양심 아닌 마음은 전부 자멸 자살케 하는 마음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본론에, ‘양심의 종류는 심히 많다. 종교마다 주의마다 사상마다 양심은 다르다.’ ‘양심은 다르다.' 왜 다르냐? `이유는 지식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식의 지배를 받기 때문인데 지식의 종류는 너무 많습니다. 뭐 천도 만도 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심도 종류가 천도 만도 넘는다 그말이오.

‘지식에는 잘못된 지식이 많고’ `잘못된 지식이 많고 바른 지식은 하나뿐이니 하나님의 지식 신구약 성경이다.’ 요것만 알아도, 요것만 알아도 그만 그 사람이 삽니다. 이것을 아는 목사가 많지를 못합니다, 아는 체 해도.

신구약 성경 지식 외에는 다 반거짓말 지식이요 틀린 지식이다 하는 것을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안하고 정당한 소망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이 지식이 그 사람 속에 가 가지고 역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식 외에는 그게 전부 반거짓말입니다. 과학은 거짓말이 아니나 왜 과학은 반거짓말 됩니까? 과학은 거짓말이 아니지마는 반거짓말 되는 것은, 과학 저 혼자 뭣 합니까? 과학을 사람과 관련합니다. 과학을 사람과 관련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관련되는 점이 틀렸으니까 반은 맞고 반은 안 맞는다 그말이오.

제이차 대전 때에 일본 그 광도에 원자탄을 던져서 사람이 많이 죽어서 지금도 앓고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 사람에 대해서 손해 배상을 물려야 된다 시비해 가지고 일본서 그 돈을 물어주고 있는데 거게 대해서 아직까지도 똑똑한 사람들이 적기 때문에 그 배상을 못 받은 사람들이 많다 그거요.

그러면 원자탄 그 원자가 그와같이 큰 위력을 가진 그 요소가 된 것을 연구해서 그렇게 만들어 낸 것은 그거는 옳은 겁니다. 그거는 옳은 겁니다. 옳은 거 그거 과학인데 그것을 사람과 관련시키는 데에 그것을, 앞으로는 지금 원자 그거 가지고 농사 짓기도 하고 뭐 이런 것을 다 하는 그런 힘을 쓸 건데 사람 죽이는데 썼기 때문에 잘못됐다 그거요. 그래서 그 발명가가 사 년 동안 근신했다 말을 들었는데 나는 그 사람 보지는 못했습니다.

‘지식에는 잘못된 지식이 많고 바른 지식은 하나뿐이니 하나님의 지식 신구약 성경이다. 사람들이 양심 생활한다 할지라도 양심 자체가 삐뚤어졌으니 결국 생활도 삐뚤어져 멸망을 받게 된다.’ 그러면 양심 생활하면 다 되겠느냐 하면은 양심 생활 해도 망한다 그말이오.

그러면 양심 생활 해도 망하는 것은 양심이 삐뚤어진 양심이 많기 때문에, 삐뚤어진 양심이라는 것은 삐뚤어진 지식을 가졌으면 삐뚤어진 양심을 가지게 된다 그말이오.

그러면 바른 지식은 몇 가지나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바른 지식은 하나뿐이요.

요거 아는 것이 자기가 늙어 죽도록 예수를 믿어도 모르는 사람은 모릅니다. 바른 지식은 하나뿐이오. 신구약 성경 말씀뿐입니다.

그외에 있는 지식은 온거짓말 반거짓말, 온거짓말에게는 사람들이 속지 안하지마는 반거짓말에 많이 속아. 이러기 때문에 마귀란 놈이 이 과학 가지고, 이 물리 물질의 이치 과학 가지고 사람을 많이 죽이고 있다 그거요.

‘양심 생활 한다 할지라도 양심 자체가 삐뚤어졌으니 결국은 생활도 삐뚤어져 멸망받게 된다. 기독자는 바른 지식은 가졌다. 바른 지식은 가졌으나’ ‘기독자는 바른 지식은 가졌으나 양심 생활을 아니함으로 실패도 하고 천대도 받고 고생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바른 지식은 가졌는데 요 바른 지식대로 하는 것이 양심인데 바른 지식대로 하려고 하는 그 양심을 가지지 안했기 때문에 사람이 멸망받는다 그말이오.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바른 지식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뭐 전부가 다 삐뚤어져 있으니 거게서 멸망 안 받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멸망은 금생 멸망과 영원 멸망이 있는데 금생 멸망은 보면은 안 받는 사람이 있어도 영원 멸망은 안 받는 사람이 신구약 성경 지식대로 안 한 사람으로서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거는 믿습니까? 이해가 됩니까? ‘신구약 성경 지식대로 안 한 사람은 금년 짤막한 이 금생 성공은 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영원 성공은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성경 말씀대로 안 한 사람은 영원 성공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말은 인정이 됩니까? 인정되면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녜, 이래서 삐뚤어진 지식으로 하는 사람은 멸망받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을 보니까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얻는다 했는데 그 지식을 모르고 받아들이지 안하니까 예수님을 안 믿어도 구원 얻습니까? 안 믿으면 구원 못 얻는다 그거요.

또 둘째로, ‘기독자는 양심 생활 안 하면 믿는 것은 다 허사이다. 양심으로 섬겨야 하나님은 섬김을 받으신다.’ 양심으로 섬겨야 하나님이 받지, 하나님이 그 섬김 받지 양심으로 섬기지 안하는 거는 헛일입니다. 일생 동안 뭐 전도하고 심방하고 연보하고 반사 노릇하고 아무리 해도 꼭 하나님은 양심으로 섬겨야 하나님이 그 섬김을 받으시지 양심으로 섬기지 안하는 것은 하나님은 받으실 수 없고 참가도 못 합니다.

양심을 쓰지 안하고 하나님 섬기면서 충성되게 죽도록 충성하면 하나님이 참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이 밉게 보겠습니까, 아름답게 보겠습니까, 하나님이 심히 고통스럽게 보겠습니까, 민망스럽게 보겠습니까, 괘씸하게 보겠습니까? 어떻게 보겠소? 양심을 쓰지 안하고 있는 충성을 다 합니다. 죽도록 충성합니다. 양심을 쓰지 안하고 죽도록 충성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이 분히 여길까? 자, 내가, 그렇게 아는 사람 다 손을 드십시오. 분히 여긴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괘씸하게 여긴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밉게 본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심히 안타깝게 보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안타깝게 봐. 기가 차. 애는 쓰는데 이거 잘못 걸어 가지고 이러니까.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밉기는 누구를 미워할까요? 누구를 미워 보겠소? 그때 누구를 미워 보겠소? 미워 보는 사람 있어. 이거 삐뚤어지게 몰라 가지고 삐뚤어지게 알아서, 삐뚤어지게 배워 가지고 삐뚤어지게 알아서 지금 애는 죽도록 쓰는데 헛일하니까 심히 안타깝습니다. 그때는 누구를 하나님께서 괘씸하게 여길까요? 말해 봐요. 누구를 괘씸히 여기셔? 서부교회 백 목사를 괘씸히 여길 거라. 그렇지 않겠소? 그러기 때문에 스승된 자가 받을 심판이 크지.

‘네가 요걸 똑똑히 가르쳤으면 그랬을 건데 이걸 잘못 가르쳐 가지고 죽도록 애는 쓰는데 삐뚤어진 일 하고 헛일하니까’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잘못 배운 사람에게 대해서는 안타까워서 기가 차고, 그래도 뭐 잘못했으니까 멸망받지 어짤 것이요? 기가 차고, 다만 잘못 가르친 자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이 괘씸하게 여기기 때문에 “스승된 자는 받을 심판이 크니라” 이랬다 말이오.

반사들도 그래요. 요 학생을 요걸 바로 가르쳤으면 학생이 바로 알아서 거석할 건데 요 잘못 알고 이랬으니까 학생 잘못하게 하는 데는 괘씸할 게 아니라 그게 몰라 그런 거니까 마음에 기가 차지 안타깝기만 하고, 자꾸 죽을 일만 하고 하니까, 애는 쓰는데.

그럴 때에는 ‘반사 아무것이 네가 잘못 가르쳤기 때문에’ 반사에게 대해서 분하다 말이오. ‘요놈이 그걸 좀 정성 써서 그렇게 가르치지 안하고 요걸 아주,’ 우상에 대해서도 가르쳤는데 이걸 잘 가르치지 안해 가지고 그 아이들이 인식하지 못해 가지고 이렇게 하니까 그 심판은 반사에게 간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서부교회 주일학생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설 때에는 여게 뭐 부장, 총무, 반사, 또 주일학교 교장 백 목사 전부 가야 됩니다. 하나 앞에 다 가야 돼. 가서 같이 서 가지고 그거 하나 하나 하나님이 심판할 때에 딱딱 들어맞아서 그게 잘했으면, 잘했으면은 반사 부장 총무에게 뭐 어찌 되겠소? 목사에게 어찌 되겠습니까? 수치가 되겠소 영광이 되겠소? 영광이 돼. 이러기 때문에 빌립보 4장 1절에 “너희는 내 기쁨이요 내 면류관이라” 이랬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나님이 그 섬김 받습니다.

또 ‘양심 생활을 하여야 비방과 욕을 벗을 수 있다.’ 사람이 양심대로 살아야 남한테 욕 안 얻어먹고 양심대로 살아야 남한테 업신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면 양심대로 살았는데 업신여김을 받으면 어찌 됩니까? 그것은 상급으로 변화됩니다. 이 양심 버리면 다 헛일이오.

또 ‘양심 생활로 하나님 찾아가는 것입니다.’ 양심 생활로 하나님 찾아가지, 자기가 양심 생활 해야 하나님과 가까워지지 양심 생활 외에는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는 길이 없어. 그것은 그거 다 성구가 있습니다.

또 ‘양심 생활 하여야 하나님을 만나볼 수 있다’ 요것도 다 성구가 있다 말이오. 마태복음 5장 8절.

또 ‘양심 안 쓰는 믿음은 파선한 배와 같다.’ 그것도 디모데전서 1장 19절에 말해 놨습니다. 요 절수를 말하지 안해도 성경에 그랬다 하면 돼요.

‘양심을 써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거리낌 없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빛도 되고 자기 구원도 되고 다 됩니다.

‘양심은 죽은 행실을 깨끗하게 함을 받습니다.’ 양심을 쓰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모든 생활을 깨끗게 해 주십니다. 양심 쓰는 자라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와 가지고 구원 이루는 역사를 해 주시지 양심 안 쓰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못 옵니다. 왜 양심 안 쓰는 자에게는 그 사람 멸해야 되기 때문에 갈 수가 없어.

자, 아버지가 형사입니다. 아버지가 형사인데 도둑질 하는 사람은 잡아 가지고 수갑질러 가지 않습니까? 요새는 이뭐 경관들이 다 속화된 경관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도 비유도 맞지도 안해. 그러나 경관으로 말하면 잘못된 그런 사람을 잡아가는 게 경관 아닙니까? 그러면 그 아들이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데 잘못된 일 하고 있으면은 있으면 아버지가 그 아들을 찾아가야 되겠소 피해야 되겠소? 경관이면. 어째야 되겠소? 찾아가면 어째야 되지요? 수갑질러 가야 되지.

아버지가 아들 수갑질러 가지고 가야 되지. 이러니까 못 본 척하고 피할 수밖에 없다 그말이오.

하나님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우리가 양심 쓰지 안할 때에는 하나님이 피하지 안하면은 멸망을 시켜야 되기 때문에 양심 쓰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피하신다 말이오. 안 피하면 안 돼. 양심 쓰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이 피하셔야 돼.

이러니까 양심 안 쓰는 자는 신앙 생활에 있어서는 전부가 다 헛일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신앙 양심은’ 어떤 것이냐? ‘신앙 양심은 자기가 인정하고 확신하는 성경 말씀대로 옳게 바르게 하려는 마음 이게 양심입니다.’ 양심 요거, 요걸 단단히 기억해. 요걸 학생들에게 단단히 말해 줘요.

양심은 어떤 게 양심이냐? 양심은 자기가 인정하는 지식 ‘아, 요게 옳다. 요래 하는 게 옳다.’ 자기가 `어떻게 하면 옳으냐 요게 옳은 것이다.’ 그러면 불교인들은 옳게 하는, 옳게 한다, 옳게 하는 그 교훈, 옳게 하는 도리가 불경에 있습니까 성경에 있겠습니까? 예? 불경에 있지. 그렇지 않해요? 자, 공산주의는 ‘요래야 된다. 요거 뭐 죽어도 요래 해야 된다.’ 공산주의가 요렇게 하는 게 옳다고 그렇게 생각되는 그 지식은 민주주의에 있습니까 공산주의에 있습니까? 공산주의에 있다 그말이오.

양심은 어떤 게 양심이냐? 자기가 요렇게 하는 게 옳다고 인정되는 그 지식대로 행하는 그게 양심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불교인의 양심은 불교 지식대로 하는 것이 불교 양심이요, 유교 양심은 유교 지식대로 하는 것이 유교 양심이요, 전도관 사람들은 전도관 지식대로 하는 것이 전도관 양심이요, 살인 강도 단체가 있는데 살인 강도 단체들 그 사람들이 이래야 된다 하는 옳다 하는 그것은 그 사람들은 그대로 하는 것이 그 사람들의 양심이라 말이오. 그러면 양심이 종류가 많다 말이 이해가 됩니까 안 됩니까? 이해가 됩니까? 그러기에 ‘양심은 자기에게도 어떤 피조물에게도 속하지 않고 오직 진리와 하나님에게만 속하여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하려고 하는 마음이 양심입니다.’하나님과 진리 외에 무엇에게 속하고 그것의 편이 되면' 그것의 편, 그 편 말이오. ‘그것의 편이 되어 비판과 결정하는 것은 화인맞은 양심입니다.

양심을 가꾸고 길러야 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게 하는 것은 양심입니다.’ 양심을 써야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에게 입혀 주십니다.

그러니까, 제일 중요한 거는 양심이 무엇인가 알기가 어려워요. 이 양심관이라는 것이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유명한 사람들, 이 양심에 대해서 지금 만일 세상에서든지 교계서든지 양심이 뭐이냐 이렇게 말하면 양심에 대해서 정의를 내릴 사람들이 없습니다.

저 포항에 있는 교회들이 우리를 그 이단으로 정죄를 해서 거게 대해서 우리가 겸손히 물었어. ‘뭐 이단이면 우리가 고칠 터이니까 이단이 뭐이냐?’ 이렇게 했더니마는 거게서 답을 보냈는데 그렇게 왔어요. ‘교단등록을 안 했기 때문에 이단이다. 또 포항에 있는 모든 교역자들이 다 모여서 교역자회가 있는데 교역자회에 참가를 안 하기 때문에 이단이다.’ 그래 이단을 이단 정의를 그래 내 놨어요. 그거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 하는 말이야, 그거는 순전히.

그래서 다시 답을 해서 우리는 그 사람들한테 ‘에, 이거 아무것도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그렇다’고 그 공격적으로 하면 하나님이 딱 위에 볼 때에 ‘이놈, 너거도 하나님이 내가 알려 줘서 알았는데 모르면 알도록 이렇게 할 일이지 그걸 공박적으로 그리 한다.’ 그래 나무라셔.

그 사람들은 인제 ‘중생된 영은’ 하도 이래 쌓으니까 온, 반대를 해도 다 알아요.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단이라 이래 말했지마는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고 이단이라 하는 건 잘못됐다’ 하기 때문에 그말은 언급을 안 했어. 거게서는 그말을 했는데 그 말은 언급을 하지 안하고 독선주의니 뭐 배타적이니 이렇게 말했어.

그거는 제가 제일 처음에 고신에서 싸울 때에 그때에 내게 붙었던 명패라.

안하무인이라, 독선주의라, 뭐 유아독존이라, 뭐 배타적이라 그런 말 들어. 왜? 하나님 비위 맞출라 하니 그 비위 맞출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찾을라 하니까 인간에게는 자꾸 배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말이오.

문답에 `양심의 종류가 어떠하뇨?' `심히 많습니다.’ 양심의 종류가 심히 많은 요것만 알고 있어도 중요하다 말이오. 뭐 양심대로 하면 다 될 줄 알거든. 이것도 ‘양심의 종류가 어떠하냐?’ `양심의 종류가 심히 많다.’ ‘양심이면 양심이지 무슨 종류가 많애?' 이래 본다 말이오. 양심의 종류가 심히 많다 하는 요런 것도 아이들에게 가르쳐 속에 박혀 가지고 있으면 요것이 참 이 세상을 이기는 말이오.

또 둘째로는 ‘신자의 양심은 어떤 것이뇨?’ 답에 ‘성경을 바로 깨닫고 그대로 실행시키는 것이 양심입니다.’ 그대로 실행시켜. 실행은 누구한테 시킵니까? 실행은 누구한테 시킵니까? 다른 사람에게 시킵니까 누구한테 시키요? 자, 손 들어 봐요, 맞으면. 다른 사람에게 시킨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안하고 자기 고기덩어리에게 시킨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예, 양심은 자기 고기덩어리에 시켜. 다른 사람한테 시킬 권리가 없어.

다른 사람에게 시켜도 안 돼요.

‘신자의 양심은 어떠하뇨?’ `성경을 바로 깨닫고 그대로 실행시키는 것입니다.’ 요 실행시킨다는 거 요것도 말이 묘한 말이오. 실행시킨다면 요 간단하게 말하지만 그 뜻을 생각하면 그 속에 많은 내용이 들어 있어요.

또 셋째로, ‘화인맞은 양심은 무엇이뇨?’ `화인맞은 양심은 무엇이뇨?' 화인맞은 양심이라는 요것도 여러분들이 가 주석을 보지마는 주석에 바로 해 가지고 있는 주석이 별로이 없어요. 많지를 못해요.

화인맞은 양심은 피조물에게 매여 자유하지 못하는 양심이다.’ 피조물에게 매여서 피조물이 시키는 대로 하는 양심은 다 화인맞은 양심이라 그말이오. 그 양심은 화인맞은 양심이기 때문에 그 정당한 양심이 아니고 다 삐뚤어졌기 때문에 그것은 무슨 화인을 맞았든지 화인맞은 것의 양심이 되고 말았다 말이오.

그러니까 자유가 없어요.

또 넷째로 ‘양심 생활 안 하면 행위구원이 어떠하뇨?’ `회개할 때까지는 전부 허사에 머물고 있습니다.’ 머물고 있다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가 아무리 행동을 잘한 게 있습니다. 행동을 잘한 게 천 가지가 있습니다. 천 가지 행동 그건 양심을 써서 잘해 놨다 말이오. 잘해 놨지마는 그 사람이 현재 양심을 안 쓰고 있으면 어찌 되느냐? 양심을 안 쓰고 있으면 천 가지 옳은 일 한 것은 미결로 머물러 있습니다.

언제까지 머물러 있습니까? 언제까지 머물러 있습니까? 양심 써서 양심 쓰는 그때까지 머물고 있어. 그 양심 안 쓰고 죽어버리면 다 헛일이라.

우리가 백체 가운데에 아흔아홉 체가 의를 행한다, 참 의롭고 깨끗해서 아주 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인데 이 손가락 하나가 죄를 지어. 그러면 손가락 하나가 죄 지으면 요게 회개될 때까지는 나머지기 옳게 한 것이 다 헛일입니다. 언제까지 그러면 요 허사에 매여 ‘너는 틀렸다.’ 미결에 매여 있습니까? 요라다가 요 손가락 하나 죄 지은 거 요걸 회개 안 하고 그대로 세상을 떠났으면은 그 사람 백체가 의를 행한 것은 다 헛일입니까 참일입니까? 성경에 말하기를 “한 지체가 범죄했으면 백체가 전부 다 지옥 간다. 이런데 그럴 때에는 한 지체를 끊어서 내버려 버리면은 아흔아홉 지체가 됐는데 범죄하는 지체 하나 끊어내 버렸기 때문에 그건 떨어져서 나왔기 때문에 이제 전신이 다 천국 간다, 지옥 가지 않는다.” 이랬다 말이오.

그러니까 요 양심은 뭐이 양심인가? 요게 중요합니다. 양심은 기독자의 양심은 뭐이 신앙 양심인가? 신앙 양심이라 말은 신구약 성경 말씀을 자기가 읽고 듣고 깨닫고 ‘요게 옳다, 요래야 된다.’ 신구약 성경 말씀에 옳다 인정하는 그대로 실행을 할라고 하는 그것이 양심입니다.

그러면 실행은 양심이 합니까 몸뚱이가 합니까? 몸뚱이가 합니다. 몸뚱이가 하는데 몸뚱이가 하도록 시키기는 누가 시킵니까? 양심이 시킵니다. 양심이 시키는 대로 하면은 그 사람에게 하는 행동에 누가 동행합니까? 누가 동행하요? 영감이 동행하요 진리가 동행하요 하나님이 동행하요. 이러니까 그 사람의 일은 성공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사람이 양심 버리면 기독자는 하나님과는 상관 없습니다. 불교인은 양심 버리면 불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오. 기독자는 양심 버리면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고 꼭 양심 생활할 때에 하나님이 동행해 주십니다. 그러니까 요거 중요해요.

그러면 기독자가, 신앙 양심은 뭐이 신앙 양심입니까? 자기가 하나님 말씀에 옳다 인정한, 옳다 인정한 그대로 실행할라고 하는 그게 양심입니다. 그러면 양심이 없으면 소용 없다 말은 하나님 말씀을 자기가 읽든지 듣든지 보고 ‘요게 옳다’ 요래 깨달은, 깨달은 그대로 할라고 하는 고거 없으면 다 헛일입니다.

양심 안 쓰면 헛일이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옳다고 자기가 깨달은 거 옳다고 깨달은 그대로 할라고 하는 것 없으면 다 헛일이라. 기도도 헛일, 뭐 전도도 헛일, 목회도 헛일, 연보도 다 헛일이라.

꼭 믿는 사람은 자기가 깨달은 양심대로 ‘옳게 바르게 할란다. 옳게 바르게 할란다. 성경대로 옳게 바르게 할란다.’ 하는 요 마음 가진 그것이 양심인데, 옳게 바르게 할라고 애쓰는 그게 양심인데, 양심을 죽이는 것은 옳게 바르게 할라고 하는 그 마음을 죽여버리는 게 양심을 죽이는 것이고, 양심을 가꾸는 것은 옳게 바르게 할라고 애를 써 ‘어떻게 하면 바르게 되느냐? 어떻게 하면 옳게 하느냐?’ 옳게 바르게 할라고 찾는 것이 뭐입니까? 양심을 가꾸는 거, 양심을 기르는 거는 뭐입니까? 양심을 기르는 건 옳게 바르게 할라고 ‘어떻게 하면 옳게 바르게 되는 것이냐?’ 요것을 찾는 것이 양심 가꾸는 것이요, ‘요게 옳게 바르게 하는 것이다’ 하는 걸 깨닫고 난 다음에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그것이 양심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심을 기르는데 ‘옳다 바르다’ 하는 생각하는 그중에 실행하기가 쉬운 거 있고 어려운 거 있습니까 꼭 같습니까? 쉬운 거 있고 어려운 거 있습니까 꼭 같습니까? 자, 쉬운 거 있고 어려운 거 있다고 생각하는 분은 손가락 둘을 들어 보십시오. 쉬운 거 있고 어려운 거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손가락 둘을 가리키요. 또 꼭 쉬운 것도 없고 어려운 것도 없고 꼭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손가락 하나 들어 보이소. 녜, 이 쉬운 거 있고 어려운 거 있습니다.

이런데, 어려운 거 할 때에 양심이 많이 자라겠습니까 쉬운 거 할 때에 양심이 많이 자라겠습니까? 어려운 거 할 때 양심이 많이 자랍니다. 이러기 때문에 생명 내놓는 그런 어려운 일, 자기가 옳게 바르게 할라 하면 생명을 안 내놓으면 안 되는 그런 어려움을 당할 때에 생명을 내놓고 옳게 했으면은 그때는 양심이 푹 자라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생명을 내놓고 신앙 생활을 한 그런 것이 한 토막 있을 때에는 그때 양심이 푹 자랐다 말이오.

양심이 푹 자랐으면 이 양심은 다시는 변동이 없습니까 양심이 푹 자랐다가 또 양심이 푹 꺾어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꺾어질 수 있어. 양심은 그대로 있지마는, 그대로 있지마는 밑에 이 마음들의 요소가 꽉 찼기 때문에 이놈들이 반대를 많이 해. 아무리 그 나라에 대통령 하나가 잘할라고 해도 소용이 없어.

밑에 뭐 백성들이 다 반대하면 안 된다 그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에, 우리 마음에는 마음이 백 가지도 천 가지도 넘습니다. 마음이 백도 천도 넘어요. 넘은데 양심은 하나라. 그러면 모든 마음이 양심을 다 협조해 주는 것이 양심을 가꾸는 것이라 말이오.

욕심도 있다가, 돈 욕심이 있다가 ‘아무래도 돈 욕심대로 해야 되겠다. 돈에 유익을 봐야 되겠다.’ 이랄 때에 돈 욕심도 ‘그라면 안 된다. 그 앙심이 시키는 대로 옳게 바르게 하자.’ 이 모든 마음이 옳고 바르게 하는 것을 이래 세워 가지고, 또 감정이 있는데 감정이란 마음이 나와 가지고 감정이 나올라 하니까 또 말하기를 ‘감정 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옳게 바른 대로 해야 된다.’ 온 마음에 감정이라는 마음, 욕심이라는 마음, 정서라는 마음, 또 시기라는 마음, 별별 마음들이 여러 수백 종류 있는데 그 수백 종류가 다 단합을 해 가지고 ‘옳게 바르게 하자’ 이라면 뭘 찬성하고 뭘 투표해 주는 것입니까? 뭣을 투표해 주는 것이요? 양심을 투표해 주는 거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하나뿐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는 굉장한 요소들이 많이 있어 가지고 이것이 마음에 회의를 하는 것입니다. 회의를 해 가지고 양심을 선봉장으로 내세워 가지고 ‘아무래도 양심대로 해야 되겠다. 양심이 시키는 대로 해야 되겠다.’ 양심은 뭐인데?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 중에 제일 옳게 바르게 할라 하는 그게 양심이라 말이오. 양심을 이렇게 등용하자. 여게 있다가 ‘아, 물질이 제일이다.

물질이 제일이니까 물질이 많아야 된다.’ 물욕심이 와 가지고 ‘물질이 제일이다. 이 사건을 해결해는 데에는 어찌 됐든간에 돈에 유익하도록 재물에 유익하도록 그래 해결해야 된다.’ 이거는 그 마음은 무슨 마음입니까? 물욕심이요, 물욕심.

물욕심이 나서니까 옆에 있다가 ‘물질 욕심 물욕대로 해서 안 된다.’ 이래 가지고 물욕을 타이르기도 하고 꺾기도 하고 이래 가지고 막 여럿이 우 달라드니까 물욕 이놈이 턱 주저앉는다 말이오. 주저앉고 ‘양심대로 해야 된다.’ 이러니까, 여러 수천 수만의 이 마음들이 전부 ‘양심대로 하자’ 이라면은 양심을 투표해서 양심을 대통령으로 삼았다 그말이오. 양심을 대통령으로 삼았으면은 그게 뭐입니까? 그거 뭐이요? 양심을 어짜는 겁니까? 그것이 양심 뭐 어떻게 하는 것이요? 저 ○부장? 그래 양심을 가꾸는 거라, 그게. 그게 가꾸는 거.

양심을 등용한다 말이오. 가꾼다 말이오. 양심이 자라지는 안해요. 그거 양심 자체가 하는 게 아니라 다른 것들이 다 양심을 이래 찬동해 준다 말이오. 양심을 가꾸는 그게 가꾸는 거요.

요것도 알아요. 양심 가꾸는 것은 모든 마음들이 다 양심을 찬동해 주고, 감정이 나서면 ‘아무래도 이 일은 분하다’ 이라니까 다른 마음이 있다가 ‘감정으로 그래 하면 안 된다. 양심으로 해야 되지.’ 또 ‘아무래도 이리 하면 우리가 권리 뺏긴다. 이 정권을 잡아야 된다.’ 이 권리 위주로 정권 욕심, 정권 욕심 마음이 이와같이 주장을 하니까 옆에 마음들이 있다가 ‘정권은 못 잡아도 옳게 바르게 해야 되지 그라면 안 된다.’ 또 양심을 찬동한다 말이오. 모든 마음들이 양심을 찬동을 해서 ‘양심 시키는 대로 하자’ 이라면 양심을 투표해 가지고 왕으로 모셨다 말이오. 대장으로 모셨다 말이오. 그게 뭐이냐? 양심을 가꾸는 것이라 그말이오, 가꾸는 거.

기르는 것은, 암만 그래도 양심대로 안 하면 안 자라. 그거는 자, 그렇게 해 가지고 양심은 가꾸는 것은 양심 자체 문제입니까 양심 아닌 것들의 하는 일입니까? 양심을 가꾸는 건 양심 아닌 것들의 하는 일이요 양심 자체 하는 일이요? ○집사?  양심을 가꾸는 것이요 양심 자체가 자라는 것이요? 이래 사건 하나 생겼어. 사건 하나 생겼어. 사건 하나 떡 생기니까 물욕심이 있다가 ‘아무래도 요번에 이렇게 하면은 우리가 재물이 다 절단나 버릴 것이고 요렇게 하면 재물이 유익된다.’ 재물 위주로 말하고 있다 말이오. 재물 위주로 지금 물욕은 말하고 있다 말이오. 그라니까 다른 마음이 ‘그 재물 그래서는 안 된다. 꼭 양심대로 해야 되겠다. 성경 보고 성경에 맞도록 옳게 바르게 해야 되겠다. 바르게 해야 된다. 그러니 양심 시키는 대로 하자.’ 이제 이 물욕심을 제거했어.

이래 놓으니 또 있다가 ‘아무래도 지금 권리가 있어야 되는데 요번에 이러면 내가 낙선된다. 대통령 못 된다.’ 이래 권위 위주로 또 할라 한다 말이오. 그 권리 위주를 할라 하니까 그 마음은 또 권리를 위주로 하는 그 마음, 권리 중심의 마음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안 된다. 또 양심으로 하자.’ 모든 것이 다 해 가지고 전부 의논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자’ 하는 양심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옳게 바르게 하자’ 하는 그 양심을 등용하는 것이라 말이오.

그것은 양심 자체가 그렇게 자라는 것입니까 모든 것에게 등용을 받는 것이고 인정을 받는 것입니까? 그러면 고거는 양심 자체 일입니까 양심 주관 일입니까 객관 일입니까? 객관 일입니까 주관 일입니까? 객관 일이오. 그러기 때문에 양심이 지금 양심을 가꾸는 것이라. 양심을 다 옹호해서 지금 들어올리는 거라.

그런데, 그대로 딱 양심대로 실행을 해 버렸으면 그것은 양심 주관 일입니까 객관 일입니까? 주관이오. 그거 자라는 거라.

양심을 가꾸는 거와 자라는 것을 말하면 이 공과를 한 공과를 할라면 굉장히 연구를 하고 많이 알아야 될 터인데 그저 참 수박 겉핥기로 이래 줄줄 지나가기 때문에 참 문제라. 이 공과가 지금 모두 합해 가지고 나온다 하는데 이 공과를 알라 하면은 깊이 기도를 해야 압니다.

이래서, 요 오늘 주일에는 학생들에게 양심 종류가 많다는 것을 똑똑히 가르쳐 줘야 될 것이고, 양심대로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 양심 종류가 많은 거. 왜 양심 종류가 많으냐? 지식의 종류가 많기 때문에 양심의 종류가 많다.

지식의 종류가 많다고 양심의 종류가 많으냐? 양심이라 하는 것은 그 사람 양심은 그 사람의 지식의 제일 옳다고 인정되는 그대로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양심이기 때문에 지식의 종류가 많으니 양심의 종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기독자의 양심은 무엇이요? 기독자의 양심은 신구약 성경 말씀을 보고 요래야 된다 하는, 성경적 옳은 깨달음 그대로 하는 것이 기독자의 신앙 양심이다.

양심 버리면 아무것도 다 허사가 되고 만다 하는 것을 요것을 가르쳐서 양심이, 제일 여러분들이 가르칠 것은, 양심대로 안 하면 모든 생활은 다 헛일이다. 그런데 양심도 옳은 양심 삐뚤어진 양심이 있기 때문에 삐뚤어진 양심대로 하면은 성공이 됩니까 실패가 됩니까? 삐뚤어진 양심대로 하면은 무슨 성공 됩니까? 삐뚤어진 성공이 됩니다. 알겠습니까? 비뚤어진 양심대로 하며은 삐뚤어진 성공이 돼요.

그러면 삐뚤어진 양심은 뭐인데? 삐뚤어진 지식의 지배를 받지. 삐뚤어진 지식이 뭐이 지식인데? 일방적 지식이라 말이오. 인간들의 지식은 이 세상만 알고 있지 영원 무궁세계를 모르고 있어. 그러니까 이 한쪼가리만 알지 전체를 모른다 그말이오. 신구약 성경은 전체를 다 아는 것이 성경 지식입니다.

이러니까, 삐뚤어진 지식대로 하면은 삐뚤어진 성공하니까 옳은 성공은 못 하니까 실패가 되고 마는 것이지. 신구약 성경대로 아는 것은 옳은 지식대로 하는 옳은 양심대로 하기 때문에 옳은 성공이 되지요. 이거는 금생과 내세도 영원도 성공이요, 영육도 성공이요, 자기도 성공이고 자기에 관련된 것도 다 그만치 성공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 기회에 학생들에게 양심을 가르쳐야 되는데 오늘 학생들 안 나오면 양심 못 가르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아무래도 오늘 이걸, 반사가 똑똑히 알고 있으면은 그 벌써 알아, 권위를 알아. 테레비 보고서 ‘아, 좀 더 보고요.’ 이라면, 선생이 알고 있으면은 ‘야, 오늘 지금 무슨 공부하는지 알아? 양심 공부해. 임마, 너 그게 양심이야?’ 그 속에 벌써, 삐뚤어진 거 하는 것은 막 백프로 압도를 해 버리면 그런 권위 있는 말이 나가기 때문에 그 아이가 ‘아, 예예.’ 이라지마는 ‘야, 오늘 그것도 재미있지마는 주일학교 가서 또 예배를 봐야 되지 않느냐?’ 그따위 반사들은 다 헛일이라.

‘오늘 양심 공부하는데 양심 아니면 네가 뒈져! 망해!’ 이게 속에 꽉 찼으면 막 그 폭탄이 나와 버린다 말이오. 말을 좋은 말을 해도 폭탄의 권능이 나가요.

그러면 되는 것인데, 이 아이들 암만 나오라 해도 테레비 보고 안 나올라 한다고.

그까짓 놈의 선생은 그거 회개해야 돼. 어? 반사들이 회개를 해야 돼요. 왜 자기가 하는데 뭣 때문에 그 학생들이 불복종하겠소? 속에 권능이 능력이 없어 그래, 능력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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