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자유-진리자유-영감자유

 

1988. 10. 22. 토새벽

 

본문:갈라디아서 5장 1절∼6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예수님이 사람되셔 가지고 오신 것도 그 목적이 우리를 종에서 해방시켜서 자유하는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도성인신 하신 것도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하셨고 또 세 가지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사죄, 칭의, 화친 주신 것도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했고 또 삼 일 만에 창조주가 피조물을 영원히 입고 있어야 하는 이 영원한 희생인 이 희생도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의 그 사랑의 희생이나 부활의 사랑의 희생의 그 희생의 고난의 양이, 희생의 양이 같습니다. 이렇게 하시고 우리를 중생시켜서 예수님 믿게 이래 만든 이 목적이 전부가 다 자유케 하기 위해서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다시는 너희들이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라, 종노릇 하지 말아라 하는 것인데 다시는 죄의 종노릇 하지 마라. 다시는 죄 그놈이 시키는 대로 네가 하는 자 되지 말고 죄를 네가 다스리고 죄에게 지배받고 거게 따라서 움직이는 자가 되지 말라. 또 네가 의의 자유를 네가 어떤 자에게도 뺏기지 말고 그대로 계속 의의 자유를 하라.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한 그 화친을 아무것에게도 뺏기거나 손해보지 말고 언제든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하는 이 자유를 영원히 가져라.

이래서 우리에게, 세 가지 자유하는 것이 우리의 새사람의 생활입니다. 우리는 교회 자유.양심 자유. 신앙 자유보다도 진리 자유. 영감 자유. 예수님의 피공로의 자유입니다. 피공로는 사죄, 칭의, 화친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거듭난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거듭난 것이 첫째는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의 공로로 우리를 자유할 수 있는 바탕을 다 만들어 놓으셨고 영감으로 이 자유케 하신 이 자유를 우리가 자유할 수 있도록 영감이 우리를 도우고 진리가 우리를 도와서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그래서 우리 전생활은, 이러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이 자유하지 못하도록 자유를 뺏들라고 악령, 악성, 악습 다시 말하면 온 세상, 죄, 사망, 마귀 이것이 뭉쳐 가지고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자유를 하지 못하도록 자유를 뺏들라고 하고 우리는 자유를 뺏기지 안하고 자유를 할라고 하고 하는 것이 우리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어데서든지 나는 진리로 살라 하는데 내 환경에는 진리로 사는 일을 방해합니다. 또 영감으로 살라 하는데 영감으로 살라 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또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과 하나되어 가지고 살라 하는데 사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서, 방해하는데 우리 안에 돕는 것은 예수님의 피공로가 돕고 영감이 돕고 진리가 돕습니다. 이래서 요한복음 8장 31절 이하에 보면은 32절에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면 자유하리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라면은 곧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입니다. 말씀 안에는 내재적 영감이 계시기 때문에 말씀과 영감이니 말씀과 영감이 너희들을 자유케 하면 자유하리라.

그러면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 예수님께서 이렇게 사죄, 칭의, 화친의 영생의 이 자유 준 이 영생하는 생명을 성령과 진리의 도움이 아니면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령과 진리의 도움으로만 우리는 이 자유를 할 수 있습니다. 자유할 수 있다 말은 진리대로 사는 생활을 아무것에게도 피해당하지 아니하고 제재받지 안하고 어데서든지 사지에서도 진리 생활, 영감 행위 영감 주장 영감 생애, 진리 주장, 진리생애, 진리 행위, 어떤 사망이 와도 내가 사망에게 털끝만치도 거게 제재받지 안하고 그것 때문에 내가 진리나 영감이나 예수님의 이 세 가지 이 대속을 내가 조그만치라도 거게서 거리껴서 지체하거나 뭐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안하고 언제든지 진리대로, 언제든지 영감대로, 언제든지 사죄받은 자로, 칭의받은 자로, 화친받은 자로, 죄없는 자로 의로운 자로 하나님하고 한덩어리 된 자로 이렇게 살게 하는 것은 진리와 영감이 살게 해야 되지 인간으로는 자유할 자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과거 역사에 모든 어려움을 만날 때에 욥이라든지 다니엘이라든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든지 그런 모든 선지 사도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 어려움에 말씀이 그 사람을 지켜서 그 어려움에서 자유했고 또 예수님의 그 피공로가 지켜서 자유했습니다.

이래서, 요한복음 8장 36절에는 말씀하기를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참 자유하리라 이래.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참 자유하리라. 그 말은 예수님의 대속의 사죄, 칭의, 화친의 이 대속의 공로가 그를 자유케 해야 자유합니다. 이 능력 외에는 딴걸로써는 우리를 도울 것 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우리들이 하는 것은 뭣을 하느냐? 우리가 목회하는 것이나 우리가 뭐 하는 것은 진리의 힘이 우리 힘이요 영감의 힘이 우리 힘이요 사죄의 힘이 우리 힘이요 칭의의 힘이 우리 힘이요 화친의 힘이 우리 힘이오. 그 힘 외에 없습니다.

그 힘 외에 사람들이 ‘어라, 나는 이렇게 사람 배경이 많기 때문에,’ 사람 배경을 힘으로 삼고 어떤 사람들은 이 가룟유다 모양으로 이 정계에 세상 권력의 그런 것을 힘으로 삼고 또 자기의 젊음을 힘으로 삼고 자기의 그 무슨 웅변 열변 자기의 모든 그 수단 방법 그 복술 또 자기의 모든 지식 이런 것을 힘으로 삼는 자는 주님에게 적이 됩니다. 삼는 것만치 주님께서 요것은 틀렸다 하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삼는 것만치 반드시 그만한 양이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말씀이 너희를 지켜서 거룩한 자 가운데에서 그 업에 참여하게 하신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진리 자유, 영감 자유, 대속의 피공로의 자유 이것이 우리의 삼대 자유입니다. 이 자유를 우리들이 뺏기지 안하고 다시는, 이 자유의 반대는 종인데 죄의 종, 죄라 하는 건 삐뚤어지게 하는 것이니까 진리에 대해 삐뚤어진 것이 삐뚤어진 것의 종이 됐어. 영감에 대해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삐뚤어진 것은 그만 종이 됩니다. 그것들의 종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진리와 아들 예수님의 피공로가 우리를 자유케 해야 자유할 수 있는데 이 자유케 하는 것은 다른 길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이랬어. 그러면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해 주는 데에는 내가 있는 힘을 다해 가지고서 내 말에 거한다는 건 주의 말씀대로 내 힘을 다해서 사는 그외에는 진리의 혜택을 입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말씀하시기를 “네가 아주 연약한 힘을 가지고서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으며 내 말씀을 지켰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지켜 네 앞에 열린 문을 두노니 아무도 닫을 자가 없으리라 네가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케 하겠다.” 똑 조건부요.

이러니까, 우리가 지킬 때 그분이, 그러면 우리는 거게만 보면은, 그 범위 내에서 보면은 우리가 능동이요 하나님이 피동입니다. 행한 대로 갚아 준다 했어. 그러나 범위를 조금 넓히면 그것도 하나님의 절대 예정이요 주권으로 작정된 거기 때문에 우리는 그 범위를 좁은 범위 넓은 범위 그 범위에 구별을 하지 못하고서 혼돈해 버리면 거게서 이단도 나오고, 이단 아닌 것이 이단이 되고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러면 “아들이 또 자유케 하면 자유한다” 진리에게 나를 자유하도록 진리의 혜택을, 진리에게 자유 혜택을 입을라고 하면은 말씀대로 있는 힘을 다해서 살아야 되는 거고 또 아들이 자유케 하는 이 자유를 얻을라면 믿어야 합니다.

믿음으로써 아들이 주시는 자유는 입을 수 있습니다.

믿는 게 뭐이 믿는 거냐? 믿는 것은, 믿는다는 것은 이 모두 믿음의 정의를 몰라 가지고서 믿음이 혼돈돼 가지고 있는데 믿는 것은 그저 간단하게 심신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는 것은 첫째가 세상에 많은 지식이 있는데 그분이 이렇다 하는 그분의 지식을 내가 받아 들이는 것이 마음으로 믿는 것이요, 또 그분의 지식을 인정하는 것이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요, 그라고 난 다음에는 내가 몸으로 그대로 그 언행심사로 사는 것이 그것이 또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니 순종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을 믿을 때에 주님께서 나를 자유케 해 주시는 자유를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종이라 말은 죄의 종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죄의 종이라고 말해 놨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종된 적이 없는데 뭐 자유케 한다 하느냐? 그래 내가 너희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안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니라. 그러기 때문에 죄에게 진 자는 죄의 종이니라 똑똑히 말했습니다. 종의 멍에 메지 말라 말은 이 자유를 뺏기지 말라 그말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어데서든지 이 진리 자유, 영감 자유, 사죄 자유, 칭의 자유, 화친 자유를 가져야 됩니다. 양심 자유라는 그걸 가지면 그런 것을, 그 양심 자유는 준비 작용입니다. 양심 자유는 믿음이 아니오. 그라다가 보면, 양심 자유하다 보면은 진리를 만나게 되고 그라다 보면 영감을 만나게 되고, 진리의 자유를 가졌을 때에 그것은 영감 자유의 중매쟁이라. 진리 자유하면 진리 자유가 영감 자유를 만나게 되고 영감 자유하면은 영감은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자유를 우리에게 소개해서 우리의 신랑은 피와 성령과 진리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꼭 외우고 실천해서 체험하고 경험되는 그것을 가지고 가르쳐야 젖을 먹이는 것이지 말씀만 자기가 듣고 배우고 읽어 가지고서 그대로 그만 행하지 안하고 하는 것은 어린 아이에게 고기가 필요할 때 내가 고기 먹어 가지고 젖을 만들어 가지고 먹여야 그 고기가 어린 아이에게 영양이 돼지지 고기덩어리를 입에다 쑤셔 넣어 버리면 아이 죽습니다. 이거 모양으로 우리는 꼭 이 공과를 자기가 외우고 실천하고 거게서 체험하고 경험해 가지고서 가르쳐야 그게 젖이 된다 그말이오.

그러고 하루 삼십 분 기도 이거 우리가 칠 년째인데 요거 자꾸 귀너머 듣는 사람은 귀너머 듣습니다. 귀너머 안 듣는 사람은 하루 삼십 분 기도 계속하자 하는 요 말에 마음이 졸려서 그거는 암만 일하다가 바빠서 시간이 늦어서 벌써 뭐 열시고 열한시고 열두시가 돼도 아이구 이거는 안 하면 안 되겠다. 열두시가 돼도 요거 붙들려 가지고서 하루 삼십 분 기도, 뭐 우리가 기도 하루 삼십 분만 합니까? 그 모든 생활이 기도지마는 자기의 미래를 생각하는 그 삼십 분, 자기의 미래를 위해서 어려운 문제를 연구하는 것이 삼십 분, 자기의 미래를 위해서 자기 힘으로 안 되니까 주님에게 부탁해서 간구하는 것이 삼십 분, 그 미래의 환난에 대해서 거리끼는 것 회개하는 것 삼십 분, 이러니까 그 삼십 분이라는 건 이것저것 그런 것을 해 가지고서 어쨌든지 미래에 거리끼지 안하도록 그때 뭐 하나가 틀려 놓으면 헛일이라. 미래에 어려움 당할 때 그때 뭣이 하나 나오면 헛일입니다. 그걸 미리, 우리가 나올 것이 없지 안해.

그래 그때 가서 ‘네가 이 죄 있지 않느냐?’ 할 때 그거 나오면 그거 헛일이라.

나오기 전에 미리 우리가 다 사함 받았으면 그걸 내놔도 주님이 인정을 해.

‘그거는 고해 가지고 사함 받았다. 주홍 같고 진홍 같을지라도 이거는 양털같이 됐다. 그거는 사함 받았기 때문에 그 관계할 권리가 없어. 내가 다 대속했어.’ 이러니까 삼십 분 기도가 이거 얼마나 중요한데, 그 마음이 눌리는 사람은 눌리고 상관없은 사람은 상관없습니다. 이게 중요하지 뭐 세상이 떠들고, 온 세상이 떠들고 나라들이 일어나서 난리가 뭐 거석하고 뭐 산위에 넘쳐도 그까짓 거 아무 상관 없어. 세상 창검 이십세기 과학 해도 과학 그까짓 거는 아무것도 아니오. 과학 그거는 한 먼지 같은 것이오. 전체의, 전체가 태산 같으면 태산에 먼지 같은 양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과학이오. 그것도 다 폐할 것들입니다. 이러고 그런 것은 다 우리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자유를 뺏들라고 하는 그것이 자유를 뺏드느냐? 아니라. 그것이 자유를 가치 있게 이렇게 높이 평가해서 자유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자유를 방해하는 것이오. 방해하는 것은 공연히 참된 자유가 있는데 가짜 이런 것이 와 가지고서 자유인척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가짜라는 것을 이것을 드러내 가지고 다 태워버리고 이제 이 진짜만 들레서 자유를 위해서 그 환난이 있는 것이고 자유를 위해서 마귀가 있는 것이지 이 자유를 정말 끝까지 방해하기 위해서 있는 것 아니오. 주님이 다 승리했기 때문에 주님에게는 방해할라고 있었지마는 주님이 이겨서 종으로 부리기 때문에 이제는 이 마귀가 모든 존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있지 해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고, 양성원 학생들 그 질문한 것 제가 보니까 그래 마음에 좀 흐뭇합니다.

흐뭇한 게 뭐이냐 하면은 그래도 엉뚱한 것을 묻지 안하고 그 야고보서를 공부하는데 야고보서 아주 그 어려운 문제, 난해 문제, 그거 참 어려운 문제 그런 걸 물어서, 다는 그런 거는 아니고. 질문한 것이 질문할 만한 질문을 해서 질문한 것을 봐서 그 사람이 거게 대해서 얼마나 공부를 했으며 얼마나 또 그 사람 신앙이 자란 것을 알 수가 있어. 어떤 사람을 엉뚱한 걸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치우쳐서 그 사람이 앞으로 목회해도 성경 해석을 치우쳐 가지고서 국썩스러운 소리나 별스러운 소리나 이상한 소리나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도 거기 다 질문한 데 나타나고 있어.

그래 그 질문은 그만 어제는 그것을 증거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제가 어제 누구 어느 교역자를 만나 가지고서 이야기하다가서 시간이 많이 가서 못 했는데 월요일날 ○○○목사님의 시간을 좀 의논해 가지고서 몇 시간이든지 그걸 좀 해석해 주겠습니다. 그래 거게 대해 질문한 데 대해서는 제가 완전히, 다른 거는 다 몰라도 거게 대해서는 완전히 제가 해득을 하고 있습니다. 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러니까 월요일날 오후에 그것을 질문한 것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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