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 피난처

 

1989. 5. 22. 새벽

 

본문: 마태복음 10장 16절∼17절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어제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하는 그 말씀을  우리가 오전, 오후에 배웠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뜻은, 제일 중요한 뜻은 우리는  이리 가운데 보냄을 받은 양이기 때문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면 큰 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좋은 일이든지 나쁜  일이든지 내가 영생하는 자유 생활, 다시 말하면 믿음 생활, 참사람의 생활,  모든 하나님의 뜻대로 또 성령의 감동대로 사는 참사람의 생활, 옳은 생활,  영생이 되는 생활, 하나님의 심판에 걸릴 것 없이 옳다 통과하라 하는, 하나님  심판을 넉넉히 통과할 수 있는 이런 신앙생활 이것이 우리 생활입니다.

 그러면 이 생활을 할려고 하는 데에 방해되는 일이 있는 그게 우리 문제입니다.

이 생활을 할려고 할 때에 이 생활이 잘 되도록 도와준다면 그거야 뭐 우리에게  아무 마찰될 것이 없습니다. 이 생활을 할려고 할 때에 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마찰들이 있는 것을 가리켜서 이리떼가 우리에게 그와같이 한다 하는 그것을  여기에 가르쳤습니다. 또 내가 이 생활 할려고 할 때에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이리떼가 돼 가지고 방해하는 것도 있고 또 내가 이리가 돼 가지고 방해하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잘못하면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 이라니까 이제 나는 항상 양이고 모든 주변에만 전부 이리떼라 이렇게  보기 쉽습니다. 내 자신이 양노릇 할 때도 있고 이리노릇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리노릇 하는 그것은 결국은 목자의 적이기 때문에 그거는 절단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양이니까 양노릇 해야 되지 이리노릇해서는 안  되니까 먼저 내가 양인지 이리인지 내가 양노릇을 하고 있는지 이리노릇 하고  있는지 그것을 구별해서 먼저 양이 되는 것이 그것이 준비입니다. 먼저 양이  되어야 됩니다. 양이 되고 그러면 양이 돼 가지고 내가 양노릇을 할라 할 때에  양으로 살려고 할 때에 방해되는 것은 전부 이리입니다. 내가 양으로 살려고 할  때에 방해되는 것은 이리니까 방해될 때에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 이  양이 그 이리를 대적할려고 싸우면은 양은 이리를 대적할 만한 실력이 없습니다.

싸우면은 이리에게 삼켜집니다. 또 피해서 도망을 가도 이리만치 빠르지 못하기  때문에 붙들립니다. 또 숨어도 안 됩니다. 숨어도 양보다 이리는 지혜가 얼마나  많기 때문에 암만 숨어봤자 그까짓 거 그만 당장에 파 물어 가지고 꺼내 가지고  먹어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양이 그 모든 이리를 대적하는 방편은 다른 것이 없고  목자에게로 가는 것뿐입니다. 목자에게로만 가면 이리 그까짓 놈은 나를 하나도  해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목자에게 상함을 받습니다. 잡히든지 죽든지 그리  아니면 그놈이 도망을 치든지 합니다. 이러니까 제일 어제 교훈한 가운데 중요한  것이 뭐인고 하니 양된 우리는 그러면 먼저 양이 돼야 되지 잘못하면 저는 양인  줄로 자인하고 있는데 실상은 이리일 수가 얼마든지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리는 먼저 양 되는 것이 그 순서지 이리가 돼 가지고 있으면서 저는 양으로  자인하고, 저는 악인이 되어 있으면서 저는 의인으로 자인을 하고, 마귀가 되어  있으면서 저는 성도로 이렇게 자인 하는 이런 착각이 있으면 안 됩니다. 양이 된  그 양에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양된 자는' 그말은 자기가 믿음 행동을  할라 할 때에, 참 사람의 행동을 할라 할 때에, 의인의 행동을 할라 할 때에,  진리대로 옳은 행동을 하려고 할 때에 그때에 대적되는 것을 가리켜서 이리라고  말하는 것이지, 제가 양이 안 되고 제 자체가 이리가 돼 놓으면 이리의 대적은  뭐입니까? 이리의 대적은 뭐이요? 이리의 대적은 뭐입니까? 그거 몰라요? 목자가  이리의 대적 아니요? 이리의 대적.

 그러면 우리가 예수 믿는다는 양의 꺼풀을 입고 속에 이리가 돼 가지고  있으면은 주님이 대적이 됩니다. 주님과 대립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대립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외식자들이 다 예수님의 대립자요, 또 거짓 선지자와 모든 속화되어 있는  교회들은 항상 예수님의 대립의 역사를 합니다. 예수님과 하나되지 않고 대립  역사를 합니다. 이것을 항상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하는 것은 양을 보냄이 하는 말이지 양을 보냄이 아니고 이리 되어 있는 그자는  보낼 게 아니라 주님과 대립이 돼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걸 잡아서  처치하려고 애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양이니까, 양이니까 양으로 행동해야 되고 양이  똑똑히 돼야 됩니다. 양이라 하는 것은 그것은 순한 양입니다. 또 목자에게 항상  의뢰하고 있는 그런 양입니다. 그러니까 양의 성질은, 내가 양치는 데  물어봤는데 추교경목사님이 몽고 가 가지고 양을 치는 것을 많이 봤고 거기에는  수천 마리 양을 한목 이래 치는데 양치는 데에는 꼭 열 마리머리 염소 한  마리씩을 넣어 둔답니다. 그리 아니면 그 목장이 실패한대요. 인제 양 이놈은  어떻게 순하고 서로 화목성이 있고 이해성이 있어서 그만 서로 좋아 놓으니까 한  마리가 누우면은 그 위에 또 한 마리 포개누워도 그냥 치여져도 그냥 암말도  안하고 있어. 또 눕고 또 눕고 위에 자꾸 포개누워 놓으면 나중에 밑에 것은  납작해 가지고 그만 죽어버린답니다. 이런데 거기에다가 염소 한 마리씩을  속에다가 끼워 놓으면 무슨 일이 있는고 하니 이 양이 두 마리만 포개도 염소  이놈은 시기심이 있기 때문에 가 가지고 그만 콱 떠받아 버리니까 도무지 두  마리 세 마리가 한테 뭉치지를 못한답니다. 염소 그놈이 시기심을 해 가지고.

그래 인제 그 시기심을 이용해서 그란다는데.

 그와 같이 양이라는 성질은 그렇게 아주 순한 것, 하나님의 성도는 순한 것이  본성 아닙니까? 이렇게 우리가 양이 되는 그것이, 양이 이리노릇 하면 안되요,  양이 이리노릇 하면 안 되니까 내가 이라면 양노릇 하고 있나 이리노릇 하고  있나 하는 그것을 생각해서 자기가 양이 돼야 되지 이리가 되면 언제든지 주님의  대적입니다.

 이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우리의 싸움은 혈육의 싸움이 아니요 모든 잘못된  정사, 권세, 어둠의 주관자, 공중의 권세잡은 악한 영으로 더불어 싸운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양이 안 되고 이리가 되면 옛사람은 이리요, 새사람은 양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옛사람으로 돌아가 가지고 옛사람이 되면은 주님과 적이 되는  것이고 우리가 언제든지 새사람 양이 돼야 되겠고 그게 첫째 순서고,  새사람 양이 되어서 내가 참 사람 생활하고 사람노릇 할라 하고 의롭게 하고  옳게 바르게 참되게 믿음을 지켜서 이 새사람 생활을 하려고 할 때에 여기에  방해가 되는 것은, 잘못하면 방해되는 것을 혈육전 하기 쉽습니다. 이 방해하는  것을 혈육적으로 전투하기 쉬워. 혈육적으로 전투하면 다 실패해요.

 그럴 때에 상대방이 이리가 돼 가지고, 참사람이 되지를 못하고, 양이 되지  못하고, 성도가 되지 못해 가지고, 사람은 그런 시험에 자꾸 듭니다. 그런 일이  돼 가지고 할 때에는 그거 뭐 갑론을박으로 이렇게 자꾸 주고 받다 보면은  나중에 결국은 마귀 수입만 하지 사람 수입은 하나도 못 한다 그거요.

 그럴 때에는 콩을 팥이라고 들이대고 뭐 사람을 짐승이라고 하고 뭐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나는 대항하면 내가 죽어버립니다. 양이 이리를 대항할려고  하면은 안 돼요. 양도 뭐 뿔따구가 둘이 있으니까 그놈만 제 무기로 삼고  의지하지마는 이리는 그까짓 거 웃고 있습니다.

 양이 꿋꿋하게 두 다리로 뚝 서면 키가 커다랗게 아주 이놈이 위엄이, 그래  가지고 내려가며 엎으며 뚝 떠받는 건데 그라면 이리 저놈은 가만히 바라고  있다가 내려오면 입을 바짝 물어 가지고 그만 깨 먹 어버립니다.

 이러니까 아예 사람같지 않은, 성도가 아닌 노릇 할 때에는, 성도가 아닌 노릇  할 때에는 성도 생활을 반대하는 것인데 성도가 아닌 노릇을 할 때에는 그때는  이의를 할 필요가 없어, 갑론을박 할 필요도 없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만  목자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뿐이라.

 목자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게 뭐인가? 어제도 말했는데 자기 현실 속에 목자가  있으니까 현실 속에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 바로 그것이 진리요, 그것이 목자요,  그것이 내게 지금 찾아와 나와 같이 있는 주님이시라.

 이러니까 주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그대로만 행해버려. 그대로만 행하면은 뭐  이리떼가 랄든지 적든지 그까짓 거 상관없어. 결국은 그 놈이 쫓겨 달아나든지  그리 아니면 목자에게 잡혀 가지고 죽든지 뭐 일이 납니다. 이런데 그때에 이런  방편을 쓰지 안하고 다른 방편 쓰는 것은 큰일 납니다.

 이러니까 첫째는 내가 양이가 내가 이리가 그것 한번 좀 살펴봐야 되겠고, 내가  양인지 내가 이리인지 살되봐야 되겠고, 또 상대방이 양인가 이리인가 이것을  살펴봐야 되지 양을 대적하면은 내가 이리되어 있는 것이고 이리를 대적하면은  나는 양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양이 되어 있으면 양이 피난하고  양이 승리하는 방편을 마련하는 것인데 이거는 이리에게는 애당이 되지 안해요.

 이러니까 오늘 믿는 사람들에게는 우리는 양이기 때문에 자기가 이리노릇  하면은, 이리노릇 하면은 주님과 원수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회개해서 고쳐야  되고 또 자기가 양노릇 하는 데는 그는 자기의 승리 방법과 피난 방법이 목자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 그 외에는 딴 길이 없습니다.

 신혼부부들 말이요, 처음에 가면 싸움이 일어나요.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  이제까지 딴 가정에서 자랐지, 딴 가정 풍속이 있지, 딴 인생관을 가졌지,  사상을 가졌지, 또 각각 제 자주장하는 그게 있지 이런데 결혼을 하면은 남자도  자유를 그만 뺏긴 겁니다. 성경에 보면은 결혼하면은 여자 자기의 모든 것은  남자가 주관하게 되고 남자의 모든 것은 여자가 주관하게 되기 때문에 결혼이  그게 좋은 게 아니라 결혼이 실상은 하나님이 제도를 주셨지마는 완전히 자기를  빼앗기는 것이라. 그러면 자기를 양보해 버려서 자기는 완전히 독립적인 자기는  죽어 버리는 거라. 그거 알아야 됩니다.

 이러니까, 그뭐 남자가 여자에게 대해서 성경에 허락한 그런 것은 아무리  요구를 해도 여자가 반대할 권리가 없어. 그러니까 그 요구대로 응하다가 죽어도  어짤 수 없다 그거요. 결혼해 놨으니 어짤 수 없어. 또 남자도 여자가 요구하는  대로 웅해야 되지 반대할 수 없어, 성경에 그래 놨기 때문에.

 이러니까 서로 상의해서 이래 할지라도 그만 완전히 주관권은 뺏긴다, 주관권은  뺏긴다 하는 거, 그래 놓으니까 둘이 그래 가지고 나중에 동일한 인생관이 되고,  동일한 소망관이 되고, 동일한 본질 본성을 갖추어 가질 때에 비로소 둘이 한  사람같이 그렇게 되어져야 비로소 좋은 가정이나 나쁜 가정이나 그것이 하나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까지 가는 데는 여러가지 과정이 많이 있어. 과정이 많이 있을 때 그때  과정에저 우리가 승리하는 방법은 목자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거 외에 딴게  없어요. 그때에 혈육으로 날뛰면 다 실패합니다. 그때에 이 사람도 자기 나오고  저 사람도 자기 나오고 둘 다 자기 나와 가지고 날뛰게 되면은 그 다음에는 마귀  수입만 하고 파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그저 목자의 품속으로 들어가요. 그럴 때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가지고 그 뜻대로만 그만 행하면 돼. 그 뜻대로만 행하면은 뭐 제까짓 거야  나한테 뭐 엉크려 달라들든지, 이리가 뭐 어떻게 그렇게 달라들든지 할 것 없이  나는 거기 대항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항하면 내가 죄의 종이 되게 돼. 대항하면  죄의 종이 되니까 대항하지 못하니 대항하지 말고 그저 그때에 목자의  품안으로만 들어가면은 그게 그만 절단나 버리고 맙니다. 상대방은 주님이 다  싸워 주시요. 요거 어제 말씀 요 말씀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이러니까 결혼할 처녀들도 요거 단단히 기억하고 결혼할 남자들도 단단히  기억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파괴돼 버리고 맙니다. 또 결혼하고 나서 지금  성인들이 돼서 이 사회인이 돼 가지고 사는 사람들도, 교회도 이거 사회요. 또  세상도 사회요. 이제 성장해 가지고 사회 생활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그냥 그만  '암말도 말고 지자' 지자 하는 그것도 못쓰는 겁니다. 지면 안 돼요. 지면 종이  돼요, 그만. 성경에는 지면 종된다.

 이러니까 지면 안되니까 요 요령을 잘 배워 가지고 요대로만 하면 승리하고, 또  승리하는 것은 죄를 이겼기 때문에 죄짓지 안하고 의롭게 살고 또 생명 생활하고  전부 영생이 다 돼요. 이러니까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하는 요 말씀을 어제 배웠는데 요거 단단히 기억하고 언제든지 기억해야  됩니다.

 이러니까 그 제일 중요점이 뭐이냐 하면은 우리에게는 어려움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이든지 뭐 좋아서 어렵든지 나빠 어렵든지, 다니엘에게는 그 왕이 하루  종일 사정하니까 좋아서 어려움이라.

 좋은 어려움이나 어려운 어려움이나 어떤 어려움이든지, 직장 어려움이나, 경제  어려움이나, 가족 어려움이나, 뭐 명예 어려움이나, 자기 경영 어려움이나, 사업  어려움이나, 신체의 어려움이나 어떤 어려움 이든지 말할 것 없이 전체는 다  어려움이 있거든 목자의 품속으로 들어가라. 그라면 해결된다.

 그러면 자기 현실에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 뜻 그것이 하나님의  뜻뿐이니까 무슨 사건이요 이치뿐인 줄 알지마는 자기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그것은 그 속에 바로 그것이 주님이시요, 그 속에 누가 들어 있습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이 내주해 계시고, 또 전지 전능이 또 그 속에는 내주해서  역사하고 있고, 하나님의 충만이 그 속에 누가 역사하고 있고, 또 하나 뭐 있다  했지? 예,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그 속에 있습니다.

 이러니까 대속의 공로는 걸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걸레. 뭐 어떤 거든지  그만 걸레가 가면 싹 훔쳐 가지고 깨끗해지는 것처럼 예수님의 대속이면 내게 뭐  이런 거 저런 거 싹 닦아서 그만 깨끗해져 버려. 이러니까 이 네 가지가 들어  있다 그거요. 그러니까 바로 그것이 나와 같이 하는 주님이십니다.

 내 현실에서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는 그것이 바로 주님 배반이요,  그것이 대속을 배반이요, 하나님 배반이요, 전지 전능 배반이니까 대립이라  말이오. 대립이요. 하나님의 충만을 다 내가 내어놓는 것이라.

 이러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어려운 문제가 생겼느냐, 목자에게로 어서  달려들어가라 하는 요것이 어제 오전, 오후에 가르친 말씀 가운데 제일입니다.

요게 제일 중요한 것이오.

 무슨 어려움이 닥치든지 닥쳤거들랑 너는 양이다. 그러니까 네 어려움을  닥치거든 그만 목자의 품속으로 들어가버려라. 그래 버리면 이리 그까짓 놈은  쫓겨 달아나든지, 그 안 달아나면 죽습니다. 안 달아나면 죽어. 이게 우리의  승리의 유일한 승리의 방편이라 하는 것을 어제 말했습니다.

 여러가지로 다 말한 그것이 제일 중요한 요점이 뭐이냐 하면은 너는 양이니까  네게 대해서 뭐 이런 나쁜 종류나 저런 나쁜 종류나 너를 해할려 하는 것은 네  신체를 해할라 하는 병이든지, 그리 아니면 너를 해할라 하는 무슨 가족이든지,  친구든지, 사회든지, 직장이든지, 돈이 든지, 명예든지, 권세든지 어떤 거라도  너를 해할라 하거들랑은 그거를 직면적으로 대항하지 말고 너는 그럴 때에  목자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유일한 피난처요 승리의 방법이다 하는 요것을  말한 것이니까 요것을 굳게 잡고 놓치지 말아요. 이거 쓰면 당장 효력이 있어요.

여러분들도 쓰면 당장 효력이 있어.

 그런데 자기가 양인지 이리인지 그걸 생각해야 돼. 제가 이리가 돼 가지고  있으면서 양인 줄 알고 하면은 모든 것이 오산되고 다 결말이 꺼꾸로 나오고  만다 그거야.

 예, 오늘 아침에 시간이 많이 가서 그만 또, 됐어. 하나만 더 말해 줄까요?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요 연결이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요 해석이 참 어려운데 나도 여기 와 자쿠 증거는 많이  했지마는 아직까지 그 참을 잡지 못햇는데 이제는 내가 요 참을 잡았습니다. 요  올바른 깨달음을 잡았어요.

 '지혜는 뱀같이 하고 하는 이 뱀은 마귀를 말합니다. 마귀를 말하고 세상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 신앙이 아닌 모든 행동은 뱀 행동이요, 뱀에게 지도받은  행동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은 지식으로 말하면 두 가지 지식밖에 없으니  하나는 하나님의 지식이요 하나는 뱀의 지식 이 둘뿐이라. 하나님의 지식 아넌  것은 전부 뱀의 지식입니다. '양극으로 말하고 항상 중은 없다고 하니 그게  틀렸다' 이라는데 그게 딱 들어 맞았어.

 하나님의 지식이든지 뱀의 지식이든지 둘뿐이지 '하나님의 지식도 아니고 뱀  지식도 아니고 그 중간이 있다' 중간이 있다 하는 그건 전부 귀신이 하는 것이지  그거는 진리가 말하는 거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식 과 뱀의지식 두 가지밖에  없어. 하나님의 지혜와 뱀 지혜 둘밖에 없어.

 이래서, '지혜는 뱀같이 하고' 하는 말은 뱀같이 하고 하는 말은 뱀의 지혜를  네가 다 가지고 있어야 된다 그 말이오. 지혜는 뱀같이 하고 지혜는 뱀의 지혜를  다 가지고 있어야 돼. 뱀의 지혜를 가지고 있어야 되는데 뱀의 지혜를 다 가지고  있으면서 네 행동은 비둘기같이 해야 된다. 네 자체는 비둘기같이 해야 된다. 네  자체의 본질이나 본성이나 생활이나 행동이나 그거는 너는 지금 행동이든지 네  자체든지 그것은 비둘기 같아야 되는데 비둘기 같은 네가 뱀에게 대한 것을 다  가지고 있고 알아야 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 세상을 다 알고 있으면서  살기는 너는 비둘기같이 살아야 된다 하는 말씀이라. 그라면 이해가 되어져요?  알기는, '지혜는 뱀같이' 그러면 뱀같이 하라 말은 뱀의 지혜를 다 가지고  있으라 말이오. 뱀의 지혜를 다 가지고 다 알고 있어야 돼. 뱀의 지혜를 다 알고  있는데 뱀의 지혜를 알고 뱀의 지혜대로 행동하는 것이 탈이지 행동하면 그만  절단났지마는 뱀의 지혜를 다 가지고 있고 행동은 그대로 하지 안하고  비둘기같이 행동합니다.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비둘기같이, 성령과 같이 너는  성결하라. 그러면 이 모든 죄악을 다 알고 나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더러워지지  안하고 성결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지혜는 뱀같이 하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요 둘이 한테 붙은 것입니다. 예 그  다음에 시간이 있으면 계속하겠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권찰회가 없습니다. 권찰회가 없는 것은 이 주차장이 우리가  항상 좀 모자라서 인제 요걸 했으니까 좀 됐는데 요 주차장이 모자라서 늘 좀  곤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 주차장은 좀 먼 데 사도 됩니다. 먼 데 사도  돼요. 되니까 우리 사택 있는, 사 놓은 그 정도라도 사택 조것만 그만 뜯어  버리고 주차장을 하면은 우리 주차장은 새결이 둬니다. 그만 그만한 거리에서  곧은 데는 삼백 미터까지 주차장이 딴데 있어도 된다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차가 뚜르르 가버리니까.

 이러니까 주차장 할 그런, 여러분들이 기도를 해요. 지금도 주차장이 모자라서  우리가 뭐 의자도 놓고 또 지저분하게 해 났기 때문에 그걸 다 정리를해서 딱  간추려서 이렇게 해서 얼마든지 차가 들어오면 들어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해 놔야  되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는 그걸 좀 정리하느라고 권찰회를 못 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차장 때문에, 내가 이 말 하는 것은 주차장 때문에 하나님 앞에  여러분들이 자꾸 기도하라 그 말이오. 기도해서, 저쪽에 큰 도로 이제, 터널로  가는 큰 도로 옆에 거기에 백 뭐 일곱 명인가 되는 것이 집이 하나 났는데  그것을 한 이백만 원 조금 더 주면 사요. 사는데 그것을 사면 그걸 뜯어 가지고  주차장하면 되기는 됩니다. 그걸 사 가지고 뜯어 가지고 주차장 하면 되겠는데  그걸 사 가지고 주차장을 하든지 어짜든지 요거 주차장을 지금 하나 마련해야  되겠는데 여러분들이 기도를 해야 되겠다 그거요.

 나는 이거 기도를 날마다 하는, 매일 기도 안 할 때는 없고 또 주차장 때문에  매일 기도 안 할 때는 없는데 아직까지 하나님이 안 들으셔. 내가 못됐어. 내가  삐꿔야 하나님이 또 들어주실란지 내가 이제 다시는 삐꾸는 일 안해. 내가  삐꿔는 일 그거 때문에 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평생 욕을 보는데, 안 하겠어.

 이 자꾸 하나님 앞에서 '왜 물을 안 줍니까, 우물을 안 줍니까?' 이래 서  가지고 우물 달라고 자꾸 이래 해도, 기도를 내가 여러 해 하다가 안 주셔 내가  광고까지 했어. '나는 다시는 내가 우물 달라고는 안 할 건니다. 뭐 하나님이  주시든지 말든지 당신이 주시면 하고 안 주시면 안 할 겁니다.' 이래 삐꾸고  나니까 떡 우물을 부산 시내에서 제일 좋은 우물을 얼마를 주었는지? 이 우물도  부산 시내에서 제일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이 권능으로 주었어. 또 양산동도 그래  줬어요.

 뭐 좋은 우물을 참 설치를 한다 하더니만 뭐 좋은 우물 속에 파묻혔어. 이렇게  많이 주셨는데 나는 항상 마음에 가책이 되는 것이 그때 좀 더 계속해서  '주십시오' 이랬으면 좋을 건데 그만 '아이구, 그만 안 주니까 뭐 주시든지  말든지 뜻대로 하십시오. 내가 다시는 달라 소리 안 할 겁니다.' 내가  여러분들한테 광고까지 했다 그 말이오.

 그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 앞에 뭐 달라고, 양식 달라고 배가  고파서 못 견뎌서 이러니까 하나님이 메추라기도 달라 하니까 주고 하기는  했지마는 그게 죄가 됐어. 그게 죄니까, '굶어 죽어도 당신의 뜻대로, 애굽에서  종 노릇 하는 것보다 자유하는 데서 굶어 죽어도 자유의 굶어 죽는 게 낫다.'  이랬으면 하나님이 참 감동받아서 좋아할 것인데 이거 배고프다고 야단을 지기고  이라니까 안 주면 이거 도로 죄지을 거니까 주기는 줬지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해 가지고 만나 가루 얻어먹고 또 메추라기 고기 얻어먹고 이란 그것이  그들에게 강퍅이라. 이래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그뒤에 정죄를 했습니다.

 나는 지금 주차장은 내가 낙심 않고 계속해요. 계속 하나님 앞에 주시든지 안  주시든지, 살아 있는 동안 안 주시면 줄 때까지 달라고 이래 계속하고 '아이구,  그만 안 달라 하니까 나중에 가 부숴지든지 말든지 어짜든지 뭐 마음대로  하십시오.' 내가 그런 말을 다시는 안 하겠어. 그말 하도록 하나님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애.

 내가 그말 하면 하나님이 떡 줘놓고 '요놈 네가 과거에도 네가 그렇고, 요번에  또 우물 때문에도 그라고, 이 주차장 때문에 또 네가 또 그라는구나' 이렇게  하나님이 지금 나를 그랄 줄 알기 때문에 내가 다시는 그짓 안 해요. 언제든지  끝까지 그저 되는 데까지 계속 기도하고 소망하고 이래 있다가 말지. 여러분들  내가 기도하라고 하는 거라.

 이러니까 여기 옆에 집 임자는 들으면 '이제 다급하니까 막 올려재끼자'  그라는데 또 우리는 그거는 안 사도 돼요. 한 삼백 미터까지는 해도 된대요,  법을 내가 알아보니까. 그런 데 사 가지고 주차장을 만들면 돼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오늘 아침에는 교회 주변에 청소하는 것은 그대로 하고, 그거는 대외  관계이기 때문에 그런 그대로 하고 권찰회는 안 하고 남반들이 우 가 가지고  여반들도 가고 이래 가지고 저 OO 조사님 시키는 대로 모든 걸 다 정리하도록  그리 하시고 주변 청소는 그대로 해요. OOO씨? 예.

 어제 좋은 방편을 배웠는데 그 방편을 쓰면 승리해서 참 써봤으면 '과연 요게  생명의 도로구나' 할 건데 안 써보니까 몰라. 써봤으면 그만 그거는 뭐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뱀같이 지혜롭고' 뱀의  지혜를 다 알아. '조거 뱀이 돼 가지고 지금 요렇게 저렇게 하고 있다' 하는  그것을 다 알고, 알고, 뱀 같으니까 '나는 네가 뱀 되면 나는 큰 뱀 되겠다.'  이래 가지고 하지 말고 '뱀 같은, 뱀의 모든 언행심사의 그거다.' 이랄 때는  나는 거기에 피동되지 말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성령같아 성결하라 이라면  해결이 돼 버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하루 삼십 분 기도, 반사들이 주의할 것, 또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마음  속에 품어놓고 항상 부하와 제자와 후배를 기를 것, 자손을 기를 것.

 십 분이 늦었는데 빨리 가서 주일학교 중간반 학생들을 예배에 참석을 시켜서  어짜든지 하나님 말씀이 그 속에 들어 있어야지 딴거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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