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을 지키는 법(타락의 순서)


선지자선교회 1983년 8월 9일 화전집회

 

본문 :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은사 위치에 있는 여기 줄 안에 있는 특수 신앙의 선구자들을 이 많은 교인들  앞에서 아주 권위와 위신을 떨어뜨린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혹 있을런지  모릅니다. 그것이 목회자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게 아니고 목회자의 권위를  올리는 것입니다.

 '잘못된 데는 목사고 전도사고 장로고 할 것 없이 박살당한다' 하는 '수치를  당한다 멸시를 당한다' 하는 그것만 딱 교회 가서 세워 놓고 난 다음에는  교역자가 그런 실수만 안하고 어짜든지 바로만 해 나가면 교인들에게 어떤 일  해도 권위가 있습니다. 그만.

 그러니까 교역자 뭐 잘못됐을 때에는 자기가 매를 맞으면 그만 교인들은 알아  둬요. 그러니까 그게 교역자 권위, 교역자 권위는 진리지 권위가 있을 때에  교역자 권위 있는 것이고, 영감이 권위가 있을 때에 교역자 권위가 있는 것이고,  옳은 것이 권위가 있을 때에 교역자 권위 세우는 것이오. 교역자는 그것  아닙니까? 진리 영감 옳은 것.

 그게 교역자의 권세니까 그 권세를 우리가 부려야 되니까 그 권세가 깨어질  때는 그 권세를 반대하는 자는 박살을 내면 목사부터 박살을 당해 보면 인제  교인들은 '아이구야, 이거 진리 영감 옳은 것에 삐뚤어지는 것은 그만 목사님도  저렇게 꼼짝들 못하고 저래 박살당하는 것 보니까 우리 평신도들이야 으례히  그렇지 않겠느냐?' 그게 교역자 권위 세우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요. 권위  세운 줄 알아요. 오늘 큰 권위 세워 줬습니다.

 창세 이후, 창세 이후 오늘까지 만물과 인류에게 제일 해독을 끼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제일 해독을 끼친 것 또 인간과 만물을 제일 더럽게  만든 것이 무엇입니까? 또 썩게 만든 것이 무엇입니까? 아주 망하고 죽게 만든  것이 무엇입니까?  요사이 무서운 전염병이 유행되면 모든 사람들은 겁을 내지마는 유행병 그까짓  거야 암만 사람을 괴롭혀 봤자 지역적으로 괴롭히고 시기적으로 괴롭히지,  여름병은 겨울 오면 달아나고 겨울병은 여름 오면 다 달아나 버립니다.

 이러나 인간에게 참 여름이고 겨울이고 춘하추동 사시, 열대 지방이고 온대  지방이고, 높은 자고 낮은 자고, 또 이 모든 만물이고 그 전부를 제일  멸망시키고, 천하게 만들고, 더럽게 만들고, 망하도록 하고, 죽게 하도록 하고,  아주 참 절단나도록 그렇게 만드는 그런 것이 있으니 그것이 역사에 제일  인생에게도 나쁘고, 만물에게도 나쁘고, 땅에도 나쁘고 모든 데에 제일 나쁜  겁니다. 아주 제일 나쁜 것. 제일 못쓸 것이오. 제일 나쁘고, 제일 더럽고, 제일  흉측하고, 아주 그 무서운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그게 있는데 또 세상에는 참 보기에 하나님보다도 좋고, 남편보다도 좋고, 또  뭐 모든 만물보다도 좋고, 진리보다도 좋고, 아주 너무 좋아서 그것만 하나 딱  차지하면 부자방망이라. 그것만 하나 차지하면 모든 것이 다 형통할 수 있는  그렇게 좋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우주에 제일 좋은 것이 하나 있고 제일 나쁜 것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  있었는데 그게 뭐인지 혹 아십니까? 선악과, 그거 참. 나는 그걸 겨우 알았는데  여러분들은 아주 대번에 아네요. 여러분들이 나보다 낫습니다.

 그래, 그것이 선악과가 하와가 볼 때에 그렇게 좋았습니다. 뭐 하나님도 없어도  되고, 진리도 없어도 되고, 또 남편도 생각 없고 어짜든지 선악과 그것만 먹으면  참 '먹음직 하고' 아주 그거는 참 취하기만 취했으면 참말로 취할 것이 천 가지  만 가지 있는 중에도 그것만, 그게 제일 취할 만한 가치가 있다 보여져. 취할  만한 가치가 있다. '먹음직 하고' 그말은 자기가 그것만 잡아삼키면 된다 말이오  그것만 취하면 된다 말이오.

 제일 취할 만한 가치가 있고 또 아주 모든 사람이 불 때에 아주 볼만한 아주  미가 있고, 영광이 있고, 존귀가 있고, 아주 보기 좋고, 아름답고, 또 지혜  있어지고 그렇게 좋게 탐스럽게 보여졌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이 대답한 대로 그게 선악과입니다. 선악과가 하와에게는  그렇게 좋게 보여서 그만 그것 하나만 먹으면 되고 그것 하나만 자기가 취했으면  됐지 그 외에 딴것이 아무 탐해지지를 안했습니다. 이러니까 그것 하나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이라.

 이랬는데 선악과가 과연 하와가 먹고 난 다음에 이 땅위에 모든 인간이나  만물이 저주받게 된 것이 뭣 때문입니까? 선악과 때문입니다. 또 인간과 만물이  이렇게 더러워지고 천해지고 추해진 것이 뭣 때문입니까 ! 선악과 때문입니다.

또 인간이 망하기 싫은 인간의 멸망이라 하는 것이 뭣이 들어서 멸망을  시켰습니까? 선악과가 들어서 멸망을 시켰습니다. 또 인간이 죽도록 만든 것이  뭐이 들어서 인간을 죽도록 만들었습니까? 선악과가 들어서 죽도록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이것은 아주 네가, 이것은 네가 먹으면 안 된다.

이거는 취하면 안 된다. 이것을 취하면 네가 정녕-죽는다 그말은 망하는 것 제일  최종 멸망이 죽는 것입니다.-그러기 때문에 이것만 네가 먹으면은 너는 그 모든  것이 차차차 다 죽어져 가지고서 완전히 멸망을 한다. 하는 것을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네가 죽으리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을 하셨는데 이렇게 주님은 아주 이 우주 가운데서는 선악과 그것이 제일  못쓸 것이요 제일 해독이 많고 사망이 많고 인간을 절단내는, 그만 제일 인간을  더럽게 만들고, 인간을 천하게 만들고, 무지 무능하게 만들고, 인간을 망하게  하고, 인간을 죽게 하는 그것은 이 선악과라고 주님이 말씀을 하셨는데 그  선악과가 하와가 그 선악과를 볼 때에는 그 선악과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를 얻을 만치 탐스럽기도 한지라' 이러니까 그만 따먹었다 그말이오.

그럴 때는 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그 선악과 하나면 만 가지 형통이라. 선악과  하나면 전부 다 된다 그거요.

 그러면 그렇게 하나님은 나쁘다고 한 그 선악과가 어떻게 그 하와에게는 그렇게  좋게 보여졌느냐 그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선악과가 우주 가운데에 제일, 뭐 병균이고 뭐이고 할 것 없이  제일 해독 인간을 천하게, 무능하게, 무지하게, 고생하게, 고통스럽게 또  망하게, 죽게 만드는 제일 해독이 이 선악과라고 하나님은 말씀했는데 이 하와가  볼 때에는 모든 존재 가운데에 선악과 보다도 더 가치 있고 보배 있고 인간에게  유익을 줄 것은 없는 것으로 그렇게 보여졌습니다. 그렇게 보여지지 안했습니까?  이것을 우리가 기억을 합시다.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하나님께서 평가한 대로 평가하게 되고 마귀의  인도를 받으면 마귀가 평가하는 평가대로 평가하게 되고, 마귀가 비판하는 대로  비판하게 되고, 마귀가 소욕하게 하는 대로 소 욕하게 되고, 전부 마귀가  소원하라 하는 대로, 또 원하라 하는 대로, 또 행동하라 하는 대로, 비판하라  하는 대로, 평가하라 하는 대로, 또 마귀가 이것은 행복이다 하면 행복이라고  마귀가 가르쳐 주는 대로 그대로 알도록 이렇게 되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류 시조가 하나님이 이렇게 나쁘다고 말씀하시고 한 것이 그렇게  좋게 보여져 가지고서 그것을 따먹었는데 그 결과는 벌써 나 타났습니다.

 그 결과는 나타나서 오늘 인간들이, 뭐 하와만 그런 게 아니고 땅도 저주받은  것이 선악과 때문에 저주받았고, 또 인간이 저주받은 것도 선악과 먹은 그것  때문에 저주받았고, 인간이 근심 걱정 고통 또 늙는 것 모두 안 늙으려고 뭐  약을 먹고 안 늙으려고 뭐 구찌베니 바르고, 자꾸 젊게.

 요새는, 누가 말하기를 그이가 나이가 좀 많더라고, 부인을 보고 '나이가  많더라' '나이 많은 부인이 어데 있느냐?' 내가 이러니까, '나이 많은 부인이  어데 있느냐?' 이러니까 '나이 많은 부인이 안 있습니까?' '머리 보니까  새카마이 다 똑 처녀같이 새카만데 뭐 나이 많은 부인이 어데 있어?' 모두 안  늙으려고 별별 짓을 하고 있지마는 그렇게 늙기 싫은 늙음이 늙는 것도 선악과  먹은 연고요, 또 그렇게 망하기 싫은 망하는 것도 선악과 먹은 연고요, 인간이  무지 무능하기가 그렇게 싫어서 뭐 공부에 학자금을 들여 가지고 짜다라  하지마는 그 들인 그것이 점점 무지하게 만듭니다.

 이러니까 선악과 그 해독은 천하 인간이 다 그 해독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해독을 이것을 구출하고 그 해독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둘째 아담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쁘다고 한 것은 마귀의 유혹을 받으면  그게 좋고 보이고 또 하나님이 좋다고 하신 것은 마귀 유혹을 받으면 제일  나쁘게 보여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생들이 '만 명이 좋다 하는데' 만 명이 좋다 해도 그까짓 거  하나도 요만치도 가치로 볼 게 없습니다. 만 명이 나쁘다 해도 그 나쁘다고  하나도 그거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천하 인간이 다 나쁘다 하는데' 천하  인간이 다 나쁘다 해도 그까짓 소리 한 내끼도 인정할 것이 없습니다. 천하  인간이 다 좋다고 해도 그 말 한 마디도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많은 수가 좋다 나쁘다 한다고 해서 그것을 좋다 나쁘다 이렇게 들어서  인정할 것이 아니고 그 인정보다 앞서서 무엇을 해야 됩니까? 할 것은 '보자,  천하 인간들이 다 이것 좋다고 하는데-이게 제 일이다. 이 십 세기에는 이게  제일이다-이렇게 하는데.' 모든 사람이 뭐, 고등 인물이나 밑에 있는 서민이나,  유식자나 무식자나, 대권위자나 또 아주 무능자나 모두가 다 '이거는 좋다  이거는 나쁘다' 하는데 그 말을 많은 사람들이 좋다 한다고 우리가 좋다고  인정할 수 도무지 없습니다.! 이게 예수 믿는 사람이오! 이걸 가져야 돼요.

 전인류가 좋다고 해도 그 좋다고 인정할 수가 없고 나쁘다고 해도 나쁘다고  인정할 수가 없고 그보다 앞서서 '그 사람을 주관하는 자가 누구냐? 그 사람을  주관하는 자가 누구냐? 마귀냐 하나님이냐?' 하는 그것부터 따져봐야 됩니다.

 따져봐서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이라고 하면 좋다 하면 좋은 것으로 알고 나쁘다  하면 나쁜 것으로 알고, 마귀가 주관하는 것이라고 하면은 좋다고 하면은 뭐라고  알아야 됩니까? 나쁜 것으로 알고. 나쁘다고 하면은 뭘로 알아야 됩니까? 좋은  것으로 그래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그 말씀이 어데 있나요? '너희가 지혜로운 줄 알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래야 너희가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고린도전서 3장 몇 절이지? 자,  3장 18절 한번 읽습니다.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것은 완전히 마귀가 와서 뒤벼놨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귀가 와서 유혹을 시키면 어떤 결과를 맺는고 하니 천하에 제일  해독스러운 것을 천하에 제일 좋은 것으로 홱 뒤벼 가지고서 보고 탐내도록  그렇게 해 놨습니다. 천상 천하에 제일 좋은 보배를 제일 나쁘다고 생각해  가지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 없애버렸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간은 마귀가 들어와서 그 사람을 주장하느냐 성령이 오셔서  주장하느냐 이것부터 따져서 거게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성령이 오시면  바로하고 마귀가 오면 정반대로 하기 때문에 벌써 온 마귀가 주장하는 천하에  사람들이, 마귀가 주장하는 천하에 사람들이 제일 좋다고 하면 우리는 무조건  그것을 어떻게 봐야 됩니까? 제일 나쁘다고 봐야 됩니다. 이렇게 봅니까? 이렇게  보면 만 가지가 다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혜로운 줄 알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정반대로 해라. 온  세상이 좋다 하거든 나쁜 것으로, 산다 하거든 죽는 것으로 이렇게 알아라.

'그래야 참으로 바로 아는 사람이 된다'  그러면 요새 이십세기에 사람들이 '주일을 범해도 계명을 어겨도 이것만큼은  가져야 된다' 뭐 높은 사람 낮은 사람, 유식한 사람 무식한 사람 없이 '어떻게  돼도 이것만큼은 가져야 된다. 자식에게 이거는 어짜든지 줘야 된다.' 하는  그것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어김으로 취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공부하고,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돈을 벌고, 하나님은 말씀 어기면 죽는다고 했는데 '그렇게  함으로 무엇을 꼭 해야 되겠다, 그렇게 해도 이것은 해야 되겠다, 하나님에게  섭섭함을 돌려서 하나님과 사이를 벌어져도 뒤에 하나님 앞에 자복할 요량하고  하나님을 떠나도 이거는 해야 되겠다, 진리를 버리고라도 이거는 해야 되겠다,  죄를 짓고라도 해야 되겠다.'  그렇게 해 가지고 되어지는 그것이 자기딴에는 그 이상 더 보배가 없기 때문에  '이것만큼은 해야 되겠다' 이렇게 보여지는데 그게 정말로 그런 가치가 있어서  그런 것입니까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정 꺼꾸로 돼서 그렇겠습니까?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꺼꾸로 돼서 그런 것입니다. 그게 참 가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중생되기 전에는 공중에 악한 영이 그 사람들을 주장하고 있다고  에베소 2장에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악령이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무조건 그것은 나쁘다 이렇게 인정을 하고, 나쁘다 하면 좋다고  인정을 하고 이래 놓고 하나님과 악령이 좋아 하는 것이 둘이 같으면 그것을  좋다고 인정할 수 있지요.

 이러니까 우리는 무조건 악령이 주장하는 자들이 좋다 복되다 하는 것은 옳다  하는 것은 나쁘다 틀렸다 이렇게 단정을 지워 놓고 그러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나쁘다고 판정지웠는데 그중에 하나님께서 '이거는 좋으니까 해라'  하는 것이 있으니 그거는 하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이 말씀은 빠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 말씀해 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것이 하나님을 떼버리고, 하나님과 진리를 버리고 그것을 가지면  그것은 무엇으로 변해지느냐 하면 음행의 포도주로 변해버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배반케 하는 자격으로 변해집니다. 또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에게 받아서 가지면 선물이 됩니다. 하나님께 받으면 선물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그것이 왔으면 선물이 됩니다.

 선물이 됐지마는 또 그것을 보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보관을 하면은  그것이 선물이 그대로 유지가 되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그것을 지출을 하게  되면은 그것이 선물이 영원한 자기의 보배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을 어떤 사람은 음행의 포도주로 이 세상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고,  또 자기가 보관하는 것도 마귀가 보관해서 보관하고 있는 것도 있고 하나님이  보관하라고 하셔서 보관하고 있는 보관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관하라고 해서 보관돼 있는 것은 다 하나님의 주신 선물이요 앞으로 귀중히  쓰일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보관하라고 보관한 그것은 반드시 앞으로  자기를 완전히 멸망시킬 때에 사용 되어지는 그것이 되는 것입니다.

 보관도 취득도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취득하고 보관하고, 그러면 그것은 항상  땅의 것이라. 자기가 선물로 보관만 하고 있다가 하나님이 떠나라 하면 두고  떠나야 됩니다. 떠나야 되는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또 '네가 지출해라' 당신이  시키시는 대로 세상에 있는 동안에 지출해서 없앴으면 지출해서 없어진 것은  그것이 영원 무궁세계에 자기의 소유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맞아요? 어느 교회서 왔어? 서울 ○교회? ○교회서 왔네. 그거  그래도 맞아? 맞아요? 그래. 다 같애. 우리 천하 있는 교회가 성령은 한 분이요  성경이 하나기 때문에 깨닫는 것은 바로 깨달은 건 다 같애, 꼭 같애요.

 그러니까 우리가 취하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 시키시는 대로 하면 시키시는 대로  그대로 하면 취해질 때도 있고, 나는 취하기 위해서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면 그것이 취하는 결과가 맺을 때도 있고,  그것이 보관하는 결과가 맺어질 때도 있고, 그것이 또 소비하는 결과가 맺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소비를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소비가 됐으면 그것은  무궁세계에 내 것으로 딱 하나님이 보관하고 계십니다. 이래서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의탁한 것을 주께서 그날까지 지켜 주실 것을 내가 확신한다'  디모데후서 1장에 말씀 해 놨습니다.

 이러니까 어떤 사람은-저기 또 저 할머니 말이요, 저 할머니! 졸기는 항상 혼자  졸면서 다른 사람 조는 것 또 잠 전염 받으려고 또, 안 돼. 그래 하지 말아요.

 그래서 우리는 요 지식을 가집시다. 인류 시조 요거는 인간의 움싹이오. 인류  시조가 인류의 움싹이오. 인류 시조 아담이 타락한 것은 인류의 타락의  움싹이오. 그게 자꾸 자란 것뿐입니다. 또 인류의 구원도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된 구원 그것이 구원의 움싹입니다. 이러니까 그때에 된 이치나 지금  이치나 그 이치가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주 이 큰 지식인데 이 지식을 우리가 읽고 외우고 다 알면서도  실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왜? 쉽게, 하나님은 '선악과 이것만 네가 먹으면 전부가 대대손손 인류가  전부가 절단된다'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뭐이요? 죽음이오. 고통하는 것이  뭐이요? 죽음이오. 망치는 것 중에 최종 망치는 게 뭐이요? 죽음이오. 이게 뭘로  됐느냐? 선악과 그것 먹음으로 됐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먹지 말아라 이거는 그렇게 해독이 있다' 이렇게 하셨는데  배암이 와 가지고서 이렇게 하다 보니까 유혹을 받고 보니까 그것이 그렇게 좋게  보여서 하나님도 뭐 다 잊어버렸고, 진리도 잊어 버렸고, 자기 남편도 생각  안하고 그만 선악과를 먹었다 말이오. 선악과를 먹으면 다 되니까. 선악과  먹으면 하나님 된다 했으니까 얼마나 높아집니까?  이래 가지고서 그걸 먹었는데, 이러니까 좋다고 하는 그것을 결과가 나타났고  주님이 나쁘다고 하신 그 결과가 나타났으니까 인제 모든 미래에 궁구던 배암이  확 드러났다 그말이오. 미래사가 다 확 드러나 버렸어.

 드러났으니까 드러난 결과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그것이 거게 에누리가 있고  조그마치라도 잘못된 것이 섞여 있습니까 하나도 섞여 있지 않습니까? 저 모두  대답해 보이소. 하나님이 '이 선악과를 먹는 날이면 정녕 네가 죽는다' 하는 그  말씀에 죽는다는 것은 최종적 망하는 이래 망하고 저래 망하고, 이래 고통하고  저래 고통하고, 이렇게 천해지고 저렇게 천해지고 그 모든 것이 마지막으로 최고  절정으로 결말을 맺는 것이 그게 죽음입니다.

 이러니까 '정녕 죽으리라' 하는 것은 인간이 창세 근 육천 년이 되기까지에  역사에 별별 고통, 별별 천함, 별별 죄악, 별별 억울함, 별별 애매함, 별별  매장, 별별 고생, 별별 병, 별별 망하는 것, 별별 죽는 것 이래 가지고 그  전부가 어데서 나왔습니까? 그 전부가 어데 나왔습니까, 저 뒤에? 네, 그 전부가  선악과에서 나왔습니다.

 이거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거짓말이 섞였소 안 섞였소? 자, 하나도 안  섞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네, 저 뒤에 더러 안 드네, 저  뒤에. 다 들어요. 그러면 배암 들어가요, 배암. 네, 놓읍시다. 하나도 섞이지  안했습니다.

 이랬는데 배암이 와 가지고 속딱속딱 해 가지고서 하와가 배암에게 미혹을 받고  보니까 그렇게 나쁜 그 선악과가 '그것만 먹으면 된다. 이것만 먹었으면, 이것만  먹었으면, 이것만 취했으면 된다.' 그렇게 보 여져서 그것만 취하면  하나님보다도 낫겠고, 진리보다도 낫겠고, 남편보다도 낫겠고, 모든 것보다 다  낫겠고 그렇게 좋게 마귀가 보여주고 그렇게 인식을 시켰는데 그러면 그것이  참으로 그렇게 좋습니까 나쁩니까, 그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습니까? 우리가 요것  알아야 돼요.

 이제까지 역사에 있는 인간이 싫어하는 모든 것은, 인간이 비참한 그 모든 것은  다 선악과 먹은 거게서 나왔습니다. 선악과 먹은 속에 다 들었던 것이오.

 이러니까 우리 사람들은 언제든지 그 순응성 있도록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순응성 있도록 만드신 것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그 무한하신 형상을 닮는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순응성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인데 요 배암이 들어와 가지고서  요것을 이용해서 제게 순응성 있도록 딱 바꿔놔 버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는 마귀의 유혹을 받으면 그렇게 나쁜 것이 그렇게 좋게  보여졌다 요것을 꽉 거머잡으십시오. 마귀가 와서 우리를 유혹하면 그렇게  전인류의 멸망과 해독이 다 그 선악과 먹은 데 들었는데 이렇츰 나쁜 것이  마귀의 유혹받은 하와에게는 그렇게 좋게 보여졌습니다. 아주.

 그러니까 그 정반대로, 마귀가 그렇게 좋다고 하는 그것이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그것이 그렇게 나쁘다는 것이 확실히 알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뭣을 보고 '아무래도 요 일은 요래 처리해야  되겠는데, 요것은 꼭 가져야 되겠는데, 요 학교 공부는 꼭 해야 되겠는데, 요  취직은 꼭 해야 되겠는데, 요 물질은 소유를 해야 되겠는데, 요 사람은 사귀어야  되겠는데, 요 결혼은 해야 되겠는데, 뭐 요 권세는 잡아야 되겠는데.' 그런 것  많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좋게 보이든지 나쁘게 보이든지 우리는 그것을 판단하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좋다 나쁘다 하는 판단을 가지려고 생각지 마십시오. 또  수많은 사람들이 좋다 한다고 그까짓 소리를 인정도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수많은 사람들이 나쁘다 한다고 그 말대로 따라서 인정하려고도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살필 것은 무엇입니까? 마귀는 보이지 안 하고 성령은 보이지  안하니까 이제 보이지 않는 성령이, 보이지 않는 성령이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만날 수 있도록, 접할 수 있도록 돼 가지고 있는 볼 수 있는 하나님, 만날 수  있는 하나님, 접촉할 수 있는 하나님, 접촉할 수 있는 능력, 그게 뭐입니까?  아는 분들, 저 뒤에? 저 뒤에 뭐입니까? 눈먼 망아지 원앙 소리 듣고 따라가듯이  그저 그래 하니까 뭐인가 하고 멍하고, 그러면 안 돼. 파고 들어가서 실을  잡아야 됩니다. 그것 뭐이지요, 여기는? 성경 말씀이요, 성경 말씀.

 이러니까 자, 성령도 만나기 힘들지, 능력도 만나기 힘들지, 그런데 곧 그 안에  성령과 지극히 큰 능력이 내재해 가지고, 우리가 잡으려면 잡을 수 있고,  붙들려면 붙들 수 있고, 힘 입으려면 힘 입을 수 있도록, 우리가 접할 수 있도록  쉽게 그렇게 나타나 가지고 있는 것이 있으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내가 모실 수 있고, 그 하나님을 내가 내 주로 모실 수  있고, 지극히 큰 능력을 내가 영접해 받을 수 있고, 그 능력을 찾아서 만날 수  있고, 그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는 데에는 만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 뒤에?  자, 육십육 권의! 육십육 권의! 하나님의 말씀! 육십육 권의 하나님의 말씀! 내가 너희들에게 일러 준 말이! 영이요 곧 생명이니라!  이러니까 이 좋다 나쁘다 평가하는 것보다 '아무래도 성령님에게 물어봐야  되겠고 지극히 권위 있는 그 능력에게 물어봐야 되겠는데 거게 물어보려고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이 말씀에게 물어보면 알겠다' 이래 가지고  말씀에게 물어 보십시오.

 그게 정말로 주일을 범해도 시험을 쳐 가지고 취직을 해야 되는지,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도 기어코 공부를 해 가지고 합격을 해야 되는지, 말씀에게 물어보라  말이오.

 말씀에게 물어보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권하고 계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는 것이 능력 배반이요 성령 하나님 배반이니까 하나님을 배반하면 망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건데 왜 그렇게 좋게 보여집니까? 기어코 배반하고라도  취하도록 좋게 보여지는 것은 그것이 이상스러운 일입니까 마귀의 유혹을 받으면  그렇게 좋게 보여지는 것입니까? 그걸 잡아요.

 공부를 자기가 몇십 년 동안 했는데 그 시험을 치는 것이 일 년에 한번 있거나  그뭐 이태 만에 한번 있거나 있는 건데 참 어려운 시험이고 귀한 시험인데  합격만 되면 지금 출렁 올라가겠는데 그 시험이, 그저 고대하기를 일 년 내내  기다리고 있다 보니까 주일날 딱 됐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때에 마귀가 옵니다. '봐라, 네. 네가 하나님 말씀이 너를 망치는  것 아니가? 네가 몇십 년 공부해 가지고 지금 준비했는데 하필 요 주일날 딱  시험이니까 주일 때문에 너는 시험 못 치니까 망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미혹을  준다 말이오.

 그러면 그것이 마귀가 주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는 것입니까? 마귀가 주는 것.

그런데 꼭 시험을 쳐야 좋게 되겠다 보는 것이 마귀의 유혹받은 것입니까  하나님의 성신의 감화를 받은 것입니까?  마귀의 유혹 받았으니까 그것을 우리는 가치를 뭐라고 생각해야 됩니까?  시험쳐서 합격하려고 시험을 치면 망합니까 흥합니까? 망한다 요 결정을 해.

망한다. 죽는다 망한다 요렇게 결정을 딱 지워버리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여게서 하나님 말씀을 배울 때에 책임을 지고 받으십시오. 이는  진리기 때문에 이 진리가 모든 존재를 창조했기 때문에 이 진리는 어데든지  해당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뭐라 했습니까? 하나님 말씀은, 누가복음  1장에?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진리는 우주에 피조물 영계에 피조물 그것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  진리입니다. 진리 위에는 누가 있습니까? 자존하신 하나님. 그러니까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있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진리를 통해서 모든 존재를 창조했습니다. 모든 존재를 창조한  창조의 실무자, 시공자는 진리요 그 창조를 명령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알겠습니까?  그런고로 우리는 그럴 때에 그게 믿는 거라 그말이오. 그럴 때에 '시험을 안  치면 지금 안 되는데' 그래 떡 그러며 '이를 어째 볼까 저래 볼까?' 하면은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고 봅니다. '네가 어떻게 하는고 보자 이래 두고 봅니다.

 그만 뭐 이래 볼까 저래 볼까 할 것도 없이 아예 그말 하니까 '요번 시험은  내가 시험 치면 죽는다. 시험 치면 망한다. 아예 이 시험 치는 이거는 안된  것이니까 이제 시험을 하나님이, 모두 다 쳐야 될 줄 알고, 전부가 다 쳐야 될  줄 알고, 전체는 다 쳐야 된다고 이러는데 하나님의 이 말씀이 치면 안 된다  했으니 참 모두가 다 그렇게 공통으로 그렇게 주장을 하는데 잘못하면 그 공통에  쓸려 넘어가기 쉬운데 하나님만이 [치면 안 된다] 가르쳐 주시니까 이 공통으로  전체에 쏠리는 바람에 넘어갈 것인데 하나님이 나를 거게서 구출하시니 홍수에  구출한 노아와 같이 나를 구출하셨다.'  그러면 그때에 감사를 해야 되고, 감사를 해야 되지 '하나님 때문에 이거  시험도 못 치고 망하게 된다' 그러면, 시험을 안 쳤다 할지라도 마귀는 그 속에  들어갔소 안 들어갔소? 들어갔습니까 안 들어갔습니까? 들어갔습니다.

 들어갔으니까 이제 마귀가 들어가니 그다음부터는 마귀가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좋다 하는 것은 나쁘다 하나님이 나쁘다 하는 것은 좋다, 자꾸  뒤벼놓습니다. 자꾸 뒤벼놓으면 만물관이 달라져 버리요 만물관이 다르고, 모든  인생관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비판과 평가가 달라지고 소원이  달라지고 홱 뒤벼놔 가지고서 그만 죽눈 날 까지 멸망에서 옆눈도 돌아보지  못하고 가다가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그렇게 좋은 것이, 하나님이 좋다고 하시는 것이 마귀가  들어오면 그렇게 나빠진다. 그렇게 나빠졌는데 하나님하고 마귀하고 둘이 이렇다  저렇다 갑론을박을 하고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맞은지 마귀 말이  맞은지 뭐이 맞은지 그거는 결과가 나타났기 때문에 벌써 안다 그말이오. 선악과  먹은 게 그렇츰 좋아보였지마는 선악과 먹음으로써 인류에 전인류, 보통  생육법으로 난 전인류에게 고생과 고통은 전부 그것이 들어서 사망과 고통을  주는 것이라 그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하나님은 참 좋은 것을 말씀했는데 참 좋은 건데  하나님이 모든 좋은 것을 말씀하는 그것도 마귀가 오면 제일 나쁜 것으로  자기에게는 보여지고 판단이 되어지고 욕심이 나게 된다 그말입니다. 그것을  굳게 잡아야 돼요.

 그러니까 이제는 좋고 나쁜 것을 '이거는 몇이 그말 하던데' 웃습니다. '이거는  박사들도 그리 말하고 세계 유명 인사들도 명사들도 말하고 다 모두 다 그래  말하는데' 웃습니다. 웃어. 왜? '코에 호흡이 있는 그까짓 거야 숫자로 치지  말아라. 봐라, 네가. 선악과보다 더 해독이 있는 게 없는데 그것도 마귀가  오니까 그렇게 좋게 보이지 안했느냐? 그러니까 천하 인간들이 다 좋다고 해도  그 좋다 하는 것이 배암에 유혹받아 가지고서 좋다고 하는 것인지 성령에  감동받아 좋다고 하는 것인지 그걸 살펴봐야 되지.'  그러니까 좋다 나쁘다 하는 것보다도 좋다 하는 그 주장이 성경 지식의  주장이냐 이 배암의 지식, 성경 지식 외에는 전부 배암의 지식입니다. 성경 지식  외에는 세상에 있는 지식이 전부 배암의 지식이오 왜? 공중에 악한 영이  주관하는 인간의 대가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전부 배암 지식 아닙니까?  그러면 배암 지식 그거는 하나님이 낸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배암들을 통해서  그걸 냈지.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창조하지 안하신 것은 없기 때문에  일원론이지. 하나님이, 근본은 한 분뿐이시지.

 이러니까 좋다 나쁘다 그것을 평가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지식대로의 좋은  것이냐 세상 지식대로의 좋은 것이냐 요것부터 비판하십시오 하나님의 지식대로  좋은 것이냐 세상 지식대로 좋은 것이냐?  그러면 자, 하나님의 지식은 뭐이 하나님의 지식입니까? 신구약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또 마귀 지식은 어떤 게 마귀 지식입니까? 마귀 지식은  어떤 것이 마귀 지식이지요? 여기 유식한 학자들 없나? 제일 좀 높은 학자들?  여기 박사들 많이 참석했을 건데.

 마귀 지식은 어떤 게 마귀 지식인지? 우리 박사 대답 한번 합시다 ○박사? 그것  칠십점밖에 안 돼. 겨우 합격이로구만. '하나님의 지식외에 거는 전부 배암의  지식이다. 마귀 지식이다.' 요래야 그만 백점이 딱 된다 그거요. 안 그렇소? 자,  박사 대답이 옳소 내 대답이 옳소? 합격은 했는데, 세상 지식 그게 마귀 지식  배암의 지식인데 그만 그걸 놓으면 그거 많아. 지저분하게 뭐 하려면 한정  없는데, 하나님의 지식 외에 거는 전부가 다 마귀 지식 배암의 지식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쓰라고 그래 놨는데 그 배암 지식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도 될 수가 있고 그것이 우리를 죽이는 지식도  될 수가 있습니다.

 죽이는 지식도 될 수 있고 또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복되게 하는 선물의  지식도 될 수가 있으니 자, 선물의 지식이 되려고 하면은 어떻게 하면 돼? 한번  치료법 배웠는가 보자. 한낸 해 봐. 이 세상 모든 지식을 하나님의 선물의  지식으로 만드는 데는 뭐 하면 돼?  그 쓴 물 먹으면 그만 대번 죽는데 나무가지를 하나 딱 꺾어다 던지니까 그만  단물 다 돼 버렸거든. 그 하나면 딱 돼요. 배암 지식이 우리에게 귀한 하나님의  선물의 지식이 되려고 하면은 어짜면 돼요? 어짜면? 이용은 다 하는데. 저거도  이용 다 하는데. 자, 그것도 백점으로 대답할 사람? 네, 백점입니다. 세상 모든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에 지배만 받으면 돼. 하나님의 지식에 종이 되면,  하나님의 지식에 속하면 돼.

 세상 지식이 막 이래 해도 하나님의 지식이 아니라 하면 아니라 해 가지고  복종을 시키고, 하나님의 지식이 세상 지식을 통치하고 지배하고 세상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에 따라서 피동만 되면 선물입니다. 귀한 보배요. 참 귀한  보배입니다.

 그거 세상을 다 우리에게 지도고 뭐이고 소개해 놓은 것이 그것인데 그걸  하나님의 지식에 복종만 하면 그것은 귀한 선물이요 귀한 예물 이지마는 그게 안  되면 다 헛일이라 그거요.

 그런고로 이제 '무슨 지식이 그것을 그렇게 평가하는지 그걸 알아 봐야지.'  이러니까 '야, 이거는 말이요, 위로 가도 모든 사람이 그렇다 하더라, 이거 좋다  하더라. 아래로 가도 좋다 하더라. 유식자도 좋다 하더라. 우리 친척도 좋다  하더라. 전부 어데 가도 동양 가도 서양 가도 다 좋다 하더라.' '좋다고  말하지마는 그말을 들을 수가 있나?' '천하 인간들이 다 좋다 하는데 그 말을  들을 수 없나? 이 고집쟁이야.'  '아니다. 그것 봐라, 네가 마귀 들면 하나님이 그렇게 나쁜 것 제일 나쁜 것도  좋게 보였기 때문에 그것 믿을 수 없다. 무슨 지식이 들어서 무슨 지식이 좋다고  말하는 것인지, 무슨 지식의 비판으로 좋다고 하는 것인지, 무슨 지식의 평가로  좋다고 하는 것인지 비판한 그 지식을 알아봐야지.' 이러면 마귀 그놈이 그만  떤다 그말이오. 마귀 그놈이 떨어서 '그만 그거는 냅두고' 딴걸로 돌아갑니다.

'아니, 이것부터 알아보고.'  그래서 마귀의 지식 세상 지식이 들어서 좋다 하는 것이면 그때는 우리는 뭘로  해야 됩니까? 좋다고 해야 돼요 나쁘다고 해야 돼요? 나쁘다. 성경에 그래  놨으니까. 나쁘다. 이래야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지식이 보니까, 하나님의 지식에 보니까 그것 좋다 그것 좋다  그것 좋다. 하나님의 지식에 보니까 좋다고 말했으니 그거는 의심을 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섞여 있습니까 진짜로 좋은 것뿐입니까? 진짜로 좋은 것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평가하는 것보다도 앞서서 그 지식이 무슨 지식이냐 하는  그것을 따져 가지고서 그다음에 이제 그걸 평가를 하면 유혹을 안 받지마는  사람들이 보는 그것만 가지고 욕심을 내고 많은 사람들이 증거하는 것만 따라서  자기가 가치를 정하고 이래 가지고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좋다고 가치를 정해  놓으면 성경에 명문이 '그것은 해서는 안 된다' 해도 이것만큼은 해야 되겠다  하면 벌써 멸망 가운데 빠진 인간이라 말이오.

 주일을 지켜야 되는데 주일을 안 지킬 것으로 '이거는 지키면 안 되니까 주일을  범하고라도 해야 되겠다' 하면 벌써 마귀의 유혹에 든 사람이라 말이오.

 우리가 믿음을 지키면, 우리가 믿음을 지키면 그 일은 누구로 하여금 일하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으로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만 지켜 놓으면  그 나머지기 일은 하나님이 해요.

 우리는 지극히 작은 것도 할 수 없는 것인데 다만 우리가 있는 힘만 다해서  시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와서 일하실 수 있도록 간청하는 하나의 호소에 지나지  못하고 우리의 간구에 지나지 못합니다. 그러면 그다음을 하나님이 와서 다  하신다 그거요.

 그러면 이렇게 인류 시조가 참 무쌍의 해독인데 비교가 없는 제일 해독스러운  무쌍의 해독을 마귀가 무쌍의 보배로 행복으로 이렇게 딱 바꾸어 보여 줬으니  우리는 마귀에게 이런 유혹을 받으면 멸망을 받겠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이  인류의 타락입니다. 인류의 타락인데 인류의 타락의 과정을 한번 우리가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하와를 지으시고 아담 하와를 인도해 가지고서 동산에 가서  살도록 그렇게 그 거처를 정해 줬습니다. 그때 에덴동산으로 인도하신 그  하나님은 누굽니까? 인도하신 하나님은 성부입니까 성자입니까 성령이십니까?  성자. 성자. 요한복음 1장에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또 세상을 지으시니라'  세상은 창조의 완료인 인류가 창조된 그때부터 세상은 출발한 것입니다.

출발했는데 그것은 전부 주님이 지으셨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인류 시조가 지음을 받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여게서  살아라 거게서 살면 자유 있고, 자유 있고 영생 있고 또 하나님은 저의  하나님이고 모든 일은 하나님이 책임지고, 하나님 섬기는 것 하나만 하면  됐습니다. 딴게 없어. 하나님 섬기는 것 그 하나만 하면 됐어요.

 됐는데,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머물게 했으니까 그 에덴동산은 오늘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오늘 우리에게는 자기의 현실이라는 현실이 우리의 에덴동산입니다.

현실이 우리의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게 하신 그 처소가 현실에서만 살라고 했습니다.

현실에서만. 미래에서도 살지 말고 과거에도 살지 말고 현실에서만 살아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처소로 정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기의 현실이 오늘 끝나면, 끝날지 내일 끝날지 모르는데.

현실 그것만이 자기는 사는 그 처소이기 때문에 현실만 자기 시간이요, 자기  장소요, 자기 사물이지 현실 너머 거는 자기는 권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현실에서 살게 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 동산을 다스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다스리라' 다스리라 말은 통치하라 하는 말입니다. 통치하라는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네가 그 현실을 행정하고, 현실을 행정하고 행정의  반대인 그 현실에게 네가 행정을 당하지 말고 네가 현실을 행정하라, 현실을  다스리라, 현실을 통치하라 하는 이 말씀입니다.

 우리는 첫째가 에덴동산을 떠나지 말고 에덴동산만이 자기의 살 곳인 것을 아는  것. 참 이거, 이것이 우리의 전부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전부요. -저  ○○○목사님! ○○○목사님. 눈을 바짝 뜨고 하나님하고 바짝 달라붙어야  사탄이 다 물러가버리는 건데. 바짝 달라붙어, 그래 있지 말고.

 사람이 현실만이 자기의 처소로 하나님이 정해 주신 에덴동산인데 에덴동산  밖에 다른 데 나가면 안 돼. 에덴동산에만 살아야 되는 것인데 우리 믿는  사람들이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이 그날에 족하다' 하는  그 말씀이 내나 현실만이 네가 머물 세계요 네 것이라 하는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현실 외에 딴것을 탐해서는 안 됩니다. 미래에도 미래도  자기는 가서 머물지 말고, 과거에도 머물지 말고, 현실에서민 살아야 됩니다.

현실에서만 살아야 되는데 또 누구 현실은 좋다 누구 현실이 나쁘다 그렇게  현실에 대해서 제 주장대로 주관대로 그 현실에 평가를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아담 하와를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머물게 했는데 에덴동산 밖에는 뭐입니까?  에덴동산 밖에 나가니까 아담 하와에게 뭐이 닥쳤습니까? 마귀의 유혹은, 그  안에서 받았는데. 에덴동산 밖에는 사망뿐입니다. 그렇지 않소?  에덴동산 밖에는 아담 하와에게 등골에 땀이 차는 그 수고, 또 해산하는 고통,  남녀끼리 사모하는 그 큰 고통, 연애하다가 죽는 그게 모두 이제 에덴동산 밖에  가 가지고서 당한 고난입니다. 그것도 상당히 뭐, 정사(情死)하는 사람, 이런  그것도 상당한 해독이 큽니다. 그래서 현실 외에는 사망뿐입니다. 현실 외에는.

 자기 현실 외에는 사망뿐인데 자기 현실 말고 남의 현실을 원하는 남의 현실을  원하는 그게 지금 죽으려 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남의 현실을 원하는 것이  사망을 원하는 것이라.

 남의 현실을 탐하지 말고 자기 현실만이 자기가 살 처소인데 그러면 현실에서  주님이 무엇을 하고 살라고 말씀을 하셨느냐? '동산을 다스리라' 이랬습니다.

동산을 다스리라 그말은 동산을 네가 통치해라 네가 동산에게 동산을 네가  다스려서 동산을 네가 자유하고 동산에게 피동되지 말고 동산에게 네가 능동이  되어져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다스리는 데에는 동산을 제 주장대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고 자존자  창조주가 '동산을 다스리라' 이랬기 때문에 그분에게 피동으로 동산을  다스립니다. 그분에게 피동으로. 그분에게 피동으로 우리 현실을 우리가  다스려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에, 우리 현실이 오는데 하나 예를 들면은 다니엘을 모든  사람들이 '다니엘이 저거 하나님에게 기도를 합니다. 사자구덩이 집어넣어야  됩니다.' 이러는 그것이 그 소문 들어오는 것이 다니엘 현실이오. 그 현실에서는  또 하나님의 계명대로 하면 그래도 하나님 앞에 든든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감사하고 기도하는 것, 여전히 기도하는 것.

 또 이제 다리오 왕이 또 자기를 데려다 놓고 '네가 기도하지 말아라. 기도하면  네가 사자구덩이에 들어가니까 기도하지 안해야 죽음 면하니까, 내가 그걸  모르고 그랬으니까 기도를 하지 말아라' 하는 그것이 다니엘의 현실입니다.

다리오 왕이 '기도하지 말아라' 하는 것이 다니 엘의 현실이오.

 거게서 또 다니엘이 현실을 다스리는 것은 어떤 게 다스리는 것입니까?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것이 다스리는 것이기 때문에 거게서  다니엘은 '나는 기도를 안 할 수 없습니다. 기도를 해야 됩니다.' 하는 그게  다스리는 것입니다. 알겠소? 요거 똑똑히 구별해요. 그걸 자꾸 미끄러져 나가기  때문에 안 돼. 기도한다는 그것이 이제 하나님의 명령대로 현실을 다스리는  것이요, 현실을 다스리는 것. 현실을 통치하는 것. 현실에 대해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내가 행정을 해. 저거야 어짜든지 그대로 행정해.

 이러니까 사자구덩이에 또 묶어다가 잡아다 넣으려고 묶습니다. 그 때는,  묶는데 현실이 이제는 다리오 왕이 네가 기도하지 말아라 이런 현실이  되더니마는 그다음에는 현실이 무슨 현실로 바꿔졌습니까? 무슨 현실로  바꿔졌소? 뭐 무슨 현실로? 묶는 결박시키는 현실로 바꿔졌다 말이오.

결박시키는 결박하는 그게 현실이 또 바꿔졌어, 또 현실이 됐다 말이오. 또  거게서는 할 게 뭐입니까? 다스릴 것. 거기서도 하나님이 '기도해라' 하니까  '나는 기도한다' 이게 인제 그대로 다스 리는 것이라.

 사자구덩이에 집어넣습니다. 쑥 집어넣으니까 사자구덩이에 지금 떨어집니다.

떨어지니까 사자구덩이 지금 떨어지고 있는 그게 또 그때는 무엇입니까,  다니엘의? 다니엘의 그 현실이지. 거게 또 다니엘의 할 것이 무엇입니까? 또  다스릴 것. 다스릴 것. '하나님이 기도하라 했기 때문에 기도한다.'  거게 훅 떨어졌습니다. 그러면 거게는 사자들이 와글와글한 곳인데 사자들이  와글와글 모아드는 그건 또 뭐입니까? 그것도 현실입니다. 거기 또 할 일은  뭐입니까? 다스릴 것. 거기 또 다스릴 거라.

 그러다가 이제 사자가 와서 꺽꺽 물어서 그만 씹어서 먹습니다. 그건 뭐입니까?  현실. 거게서는 또 다니엘이 뭐입니까? 기도하는 것. 기도하는 것.

 그대로 하다가 하나님께서 '여게서는 네가 참고 견뎌라' 하면 또 참고 견디는  것이 다스리는 것이라. '여게서는 사자를 호통을 해라. 호통해라.' '사자야  이놈아, 너거 영원한 주인공 되는 내가 여기 왔는데 환영은 안하고 뭐 너거가  지금 여기서 잡아먹으려고, 마귀 유혹받아 가지고. 사탄아 물러가고 사자야 너거  주인공이 왔으니까 경배해.' 이러면 그놈이 앞다리를 떡 들고 경배를 한다  그거요. 그때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턱 다스려.

 또 이제 죽음이 왔습니다. 숨이 깔딱깔딱 그렇습니다. 깔딱깔딱 그러면 그거는  뭐입니까? 현실. 그러면 거게서는 또 어찌 하느냐? 스데반이 깔딱깔딱할 때  보니까 스데반에게 하나님께서 '네가 거게서, 승리하고 아버지 우편에 앉아서 너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바라봐라.' 이러니까 고때 그 현실에서 주님을 바라보니까  그것이 다스리는 것이라 말이오.

 또 거게서 '너를 돌로 이래 던져 가지고 돌조산 만들어 가지고 죽이니까 이  무리들을 위해서 기도해라' 기도하는 게 또 다스리는 것이라 말이오. 그게  다스리는 것이라. 그러면 하나님이 거게서 무슨 일을 하실지 당신이 할 일을  이제 마음대로 하실 수 있습니다. 전지 전능자가 마음대로 우리를 복되게 해  주실 수가 있다 그겁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현실은 에덴동산이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머물게 하시는 그  장소다. 그러면 거게 있게 하시는 거기에 우리가 있고, 다 스리라 할 때  다스리고,  그러면 다스리면 현실이 바꿔지는데 바꿔지면 먼저 현실 그리 따라가야 됩니까  현실이 바꾸어지니까 바꾸어지는 현실에서 내가 다스려야 됩니까? 바꾸어지는  현실에서 다스려야 돼요. 무조건 현실을 따라갈 것이 아니고. 그러면 틀려.

 자꾸 현실이 오는데 그 현실에서 또 주님이 명령하신 대로 그대로 현실에서  내가 그대로 행합니다. 내가 그대로 행하는 게 다스리는 거라. 주님 명령대로  '이래라' '이래라' 또 '저래라' 하라 하면 '저래라' 그대로 하는 게 다스리는  것이니 그렇게 다스리면 그것만 하면 일 거의 추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동산을 지키라' 지키라는 것은 배암 들어오지 못하게  지키라는 것이오. 딴건 들어올 게 없어. 배암 들어오는 건데 배암 들어오지  못하게 지키라. 배암만 못 들어오게 하면 돼. 현실에서 배암만 못 들어오게 하면  돼요.

 현실을 다스리고 배암만 못 들어오게 하면 그만 거게는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보호가 나에게 있기 때문에 뭐 옷 벗어도 상관 없어.

부끄러운 것이 없어. 부끄러운 것이 없고 다 그만 말하자면 거기서 무슨 마음에  수치나 고통이나 딴게 아무것도 없어.

 자기네들이 벗은 줄 아니까 무화과 잎사귀 가지고 엮여서 몸을 가리웠지마는  그까짓 게 무슨 은신이 되며 무슨 호신이 되겠습니까? 그전에는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있기 때문에 벗은 줄을 몰랐다 그 말이오. 벗은 줄을 몰랐어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있었기 때문에. 그거는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있는고로 자기가  자기를 보호하려 하는 그런 것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랬는데 '동산을 지키라' 지키라는 것은 자기 현실에 그만 배암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이 그것이 지키는 것입니다. 그해는 하나님이 지키라는 것은 '배암 못  들어오게 지키라' 하는 그말이야 안했지마는 지키라는 그 명령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 것은 뭐인고 하니, 실패로 돌아간 것은 배암이 들어오는 것을 못  들어오구로 막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실패가 됐다 그거요.

 이러니까 벌써 첫째 아담이 지키지 못한 그것으로써 배암이 들어왔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에덴동산을 만난 우리들인데  우리들이 지킬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배암이라. 이제는 모든 성경이 다 말해서  우리가 알게 됐습니다. 배암이라.

 배암은 뭐이냐? 배암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이런 말 저런 말 하는 그거는 다  미혹이기 때문에 배암을 들어오지 못하게 지킬 것, 우리 현실에서 배암을  들어오지 못하게 지킬 것.

 배암이 들어오지 못하게 지키는데 배암이, 마귀란 놈이 그때는 배암을 입고  들어왔지마는, 마귀란 놈이 그때는 배암을 입고 들어왔지마는 지금은 배암을  입고만 들어오는 게 아니고 마귀가 사람도 입고 들어 오고, 사람을 다 점령해서  제 사람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사람을 통해서도 들어오고, 물질을 퉁해서도 들어오고, 짐승을 통해서도  들어오고, 지금은 이제 그때보다, 마귀가 들어오기는 들어오는데 무엇을 기관을  삼아 가지고서 들어올런지 모른다 그거요. 무엇을 기관 삼아 들어올런지  모르니까 어쨌든지 뭘 입고 들어오든지 배암만 못 들어오구로 지키면 됩니다.

그것 하면 현실 생활이 거의 다 바로 돼집니다.

 자기 현실에서 자, 여러분들 원망은 우리가, 원망 그게 사람을 통해서도  들어오고, 물질을 통해서도 들어오고, 사건을 통해서도 들어 오는데 원망 그게  들어오는데 그 속에 사람을 통해서 내게 원망거리기 들어옵니다. 사람을 통해서  불만거리가 들어옵니다. 불평거리가 들어옵니다. 낙망거리가 들어옵니다. 미움이  들어옵니다. 또 이런 모든 의심이 들어옵니다.

 모든 것으로, 그것이 이런 사건을 통해서, 이런 물질을 통해서, 또 이런 사람을  통해서 들어오는데 그게 다 뭐입니까? 그것이 뭣이지요? 그게 배암입니다.

막바로 그게 배암이오.

 그러니까 마귀가 뭣을 통해서 들어오든지 그것을 들어오지 못하도록 다 지켜야  이제 거게서 영생이 보존되고, 생명이 보존되고,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모시게 되고, 자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자유가 있고, 평강이 있고, 모든  존재가 자기 것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은 이 우주에 모든 것을 하나님  대리로 통치할 수 있는 하나님의 대리자요 모든 피조물의 주인공이 된 것이  이것이 인류입니다.

 요새 뭐 과학자들은 '이 지구와 같은 그런 것이 모든 별에 많이 있어서 거게는  별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렇게 떠들지마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주의 것을 다 통치할 수 있는, 우주는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사람들이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을 하나님께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늘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모든 것도 너희 것이  되어진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고 또 그때에 타락되기 전에는 아담 하와가 말하는  대로 모든 피조물들이 다 거게 피동을 되고 거게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물을 갖다 놓고 '네가 한번 이름을 지어봐라' 할 때 말한 그게  그만 그대로 이름이 됐어. 그게 뭐 조그만한 것이지마는 '하나님이 보시고  선하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네가 하나님 중 심으로 하나님에게 받아  가지고서 그 모든 것을 거게 대해서 정의를 정했다, 정의를 정했다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현실에서 '현실을 지키라. 에덴동산을, 현실을 지키라.' 거게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지키는 건 에덴동산에 거기에 있는 것만 하나님이 다  구비해 놓고 '이거는 다 네가 가지고 살 수 있는데 요 가운데에 선악과 하나는  네가 먹지 말라' 금한 것이고 '다른 거는 임의로 사용하게 했다' 그런데 거기  한계를 딱 정했기 때문에 지키라는 것은 여게 현재 없는 거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그말이오.

 지키라 말은 여기에 네가 에덴동산에 현재에 현존하지 안한 그것을 네가  용납하지 말아라 그것입니다. 그랬는데 배암을 용납한 그것이 그만 실패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 현실을 다스리지 못하고 현실에 피동이 되면 벌써 현실에게  다스림을 받은 자이고 자기가 현실을 다스리지 못한 자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딱  굳게 잡아야 됩니다.

 '현실만이 내가 살 곳이다' 요것을 꼭 잡아요. 현실만이 자기의 살 곳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지를 못합니다. 마귀란 놈은 '야, 내일이 있지 않느냐?  명년이 있지 않느냐? 또 뭐 가족이 있지 않느냐? 뭐이 있지 않느냐?' 여러가지  이 현실 밖에 것을 자꾸 갖다가 들어댑니다.

 그러나 현실에 다스림을 받지 말고 동산 지키라, 동산에게 다스림 받지 말고  동산을 다스리라. 현실을 다스리는 것. 그러면 그 현실을 다스리면 이제 그 동산  생활을 계속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이 바꾸어지는 것을 좀전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현실이 자꾸  요건 현실이, 붉은 현실이 푸른 현실로, 푸른 현실이 검은 현실로, 검은 현실이  노란 현실로, 노란 현실이 또 인제 그뭐, 별스러운 색깔을 가지고서 현실이  바꿔지면, 현실이 바꾸어지면 자기는 다스리는 것을 자꾸 빨리 빨리 바꿔야  됩니다. 그러면 이 현실을 다스려, 현실이 오면은 또 그 현실을 자기는  다스렸고, 저 현실이 오면 저 현실을 다스렸고, 현실은 자꾸 바꿔 온다 말이오.

 거게 착각이 되기 쉬워요. 현실을 자기가 다스리니까 그 현실에 자기는  다스리는데 다스렸으면 이거 바로 하는 것이니까 좋아야 될 건데 다스렸는데  이게 그만 악화가 돼졌다 말이오. 자기가 좁은 생각으로 하기를 자기가 현실을  다스리면, 현실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와 같이 하면 잘 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악화돼 가지고서 아주 말도 할 수 없을 만치 그 현실이 아주 악화돼졌다 말이오.

 악화돼졌으면 악화돼진 그것이 자기에게는 악화된 것이니까 현실을 다스리는  결과로, 현실을 다스리면 복이 온다 했는데 현실을 다스리는 그 결과로 자기에게  해독이 왔습니까 그것이 내나 현실이-에덴동산- 현실이 바꾸어진 것입니까? 그걸  알아야 돼요. 그걸 알고 요동치 안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현실은 이 시간만 네가 이 현실에서만 네가 다스리고 저 현실이  오면은 다스리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무슨 현실이 오든지 다 다스려야 돼. 무슨  현실이 오든지 다 다스리라 그말이오.

 거기에서 다스리면 자유가 나옵니다. 평강이 나옵니다. 또 하나님의 안보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나옵니다. 또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다 자기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이 됐고 자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됐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것은 자기 것이 됐고 자기 것은 하나님의 것이 되고 이렇게 이런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자꾸 이런 말 하는 것은 왜 하느냐 하면은 현실을 다스리려고 생각하지를 안해  보고 또 현실을 다스리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 그러면 다스리면 되는데, 아주  쉽습니다. 현실을 다스리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쉬운데 또 어렵기는 얼마나  어려우냐? 참 천상 천하에 제일 현실 다스리기가 어렵습니다. 아주 쉽고  어렵습니다.

 저 안경 쓴 사람 한번, 대답해 봐. 요 앞에 안경 쓴 사람 한번 대답해 봐. 왜  어려울꼬? 자기를 다해야 돼, 다해야 되면 힘이 드는 것 아니요? 그러면 아주  현실 다스리는 것이 힘드는구만, 자기를 다해야 되니까. 뭐 다한다는 게  결사적이 얼마나 힘드요?  왜 어렵지, 현실 다스리기가 왜 그리 어렵지? 왜 어렵지? 그것이 옛사람으로  돌아가서 옛사람 그놈이 지금 '내가 현실을 다스렸다가는 큰일난다 낭파난다'  하는 그놈이 유혹을 시켜서, 현실을 다스리는 것은 사는 것인데 현실 다스리는  것이 자기는 절단나는 것으로 훼딱 뒤비쳐 보여지기 때문에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그렇다 그거요.

 그러니까 이제 현실을 다스리라 할 때에 '이러면 낭파당한다' 이랄 때 그게  마귀 유혹이니까 그럴 때 힘을 발끈 써 '사탄아 물러가라. 네가 낭파가 당해야  우리 하나님편에서는 좋아진다.' 요걸 잡아야 된다 그말이오.

 그래 가지고 현실을 자기가 다스리는 사람이라면 벌써 현실을 자기가  다스린다면은 그는 우주와 영계를 다스릴 수 있는 권능이 거기서 나옵니다.

현실을 다스리는 그것이 전능자에게 연결돼 가지고 그분의 힘으로 말미암아  다스리기 때문에 그분의 명령대로 다스리는 것이니까 그분에게 연결돼서 그분의  힘으로 다스리는 것이니까 그것이 우주와 영계에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는 왕권을 받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니까 잘못하면 착각이 뭐이냐 하면 '내가 현실을 다스리면 좋은 줄  알았는데 현실을 다스리니까 도리어 나쁜 것으로 이와같이 지금 변질돼 나간다.

현실을 다스리면 좋을 줄 알았는데 현실을 다스렸더니마는 그것이 더 악화가 돼  가지고 그 결과가 이렇게 나쁘게 되어졌다.' 그게 나온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것이 그 결과입니까, 그 결과로 자기에게 오는 것입니까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자기 현실, 자기 동산을 주시는 것입니까? 요것 알고 해결되면  기독자의 걸음이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소. 그뭐  딴것 가지고 합니까? 교인들이 올 때에 지도하는 것이 그것 가지고 지도합니다.

지도하면 그대로 돼져. 하나님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고로 그 착각이, '현실을 다스리면 좋다 하더니마는, 좋다 하더니마는  그것이 이렇게 악화로 답안이 나온다' 그 마귀란 놈이 그런, '봐라 네가 현실을  다스리니까 좋다 하더니만 현실을 다스리니까 이렇게 악화되지 안했느냐?' '악화  그것이 네 현실 아니냐? 그게 내 에덴동산 아니냐? 거게도 또 나 할 것은 다스릴  것이지 왜 그게 나쁘다 하느냐? 나쁠 것이 어데 있느냐? 거기서 다스릴 것이지.'  어떤 현실을 줘도 그 현실에 나는 다스릴 것뿐이지 그게 나쁜 게 아니라  그말이오. 천하 인간들이 제일 나쁘다 하는 그 현실에는 내가 다스리면 그  가치가 더 있다 그거요. 나쁜 현실이 어데 있습니까? 하나도 없어.

 그러고 이제 그다음에는 지키라 했는데 지키는 것은 자기의 현실에 하나님  계시고, 또 아담 하와 있고, 모두 하나님께서 임의로 사용하라는 것 있고, 또  그다음에는 사용하지 말라는 것 있고 그것뿐인데 거게 딴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될 터인데 배암을 들어오게 했다 그겁니다.

 그러니까 실은 이 우주에는 주님 계시고, 주님 계시고, 또 신앙에 이 모든  성도들 있고, 신앙에 선배, 성도들 있고, 그다음에는 하나님이 하라는 것 하지  말라는 것 요 두 가지밖에는 없는 이 우주입니다.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거기에  지키라는 것은 없는 것 딴것 들어오는 것은 없애야 되는데 않게 들어오면 안  됩니다.

 거기에 배암 들어오는 것을 못 들어오구로 지키라 했는데 배암 들어오는 것이  뭐냐 하면은 자기에게 배암이라는 놈이 인간을 통해서 들어오기도 하고 사물을  통해서 들어오기도 하는데 거게서 원망이 들어온다든지, 시비가 들어온다든지,  또 낙망이 들어온다든지, 거게서 미움이 들어온다든지, 다른 육체의 욕심이  들어온다든지, 육체의 소욕이 들어온다든지 두려움이 들어온다든지, 의심이  들어온다든지 이런 것이 다 배암 들어오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놈만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요. 그놈이 들어오면 사탄인 줄 알고 물리쳐.

물리치고 그놈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거게서 동산을 다스리고 지키고,  '모든 과실은 네가 임의로 먹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그만 해도  뭐하고 남아요. 얼마든지 좋은 게 많이 있어. 하나님이 하라 하시는 것.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 이 우주에는 하라고 하신 것이 꽉 찼습니다.

우리에게 하라 하는 것 좋은 것 다 있어요.

 그러고 거게 하지 말라는 것 하나 있는 것인데 하지 말라는 그것은 하면 우리가  죽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라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 현실에서는 하나님이 하라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것 안하고  그만 그러면 돼. 그것만 지키면 타락도 없고 그것만 지키면 영생인데 그걸,  동산에 있는 것, 다스리는 것, 지키는 것, 또 임의로 사용하는 것, 사용하지  말라는 것, 그러면 몇 개입니까? 요 다섯 가지만 하면 우리는 됩니다.

 요 다섯 가지만 우리 중생된 우리들은 새로 하나님께서 새 변한 없는  에덴동산을 우리에게 줬기 때문에 우리가 요 다섯 가지만 하면은 성도의 생애는  아무, 어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 어려움이 없어. 요 다섯 가지 안 하면 탈이  된다 그거요.

 그랬는데 이 배암이 와 가지고서 배암을 떡 용납을 하고 나니까, 배암을  용납하고 나니까 배암이 와서 한 일이 무슨 일을 했느냐? 배암이 들어와 가지고  무슨 일을 했느냐? 배암이 들어와 가지고 한 일이 순서가 그다음에 3장 1절  이하에 보니까 쭉 있습니다.

 배암이 들어와서 한 일이 쭉 있는데 그 배암 들어와서 한 일이 뭐이냐? 원망  하나가 들어와 가지고 무슨 일 하느냐? 그 일하고. 낙망 하나가 들어와 가지고  그 일하고. 또 불평 불만 하나가 들어와 가지고 그 일하고. 두려움 하나가  들어와 가지고 그 일하고. 의심 하나가 들어와 가지고 그 일하고. 또 분개  하나가 들어와 가지고 그 일하고. 이런 욕심 저런 욕심이 하나 들어와 가지고서  그건 일하고. 그것이 들어와 가지고서 인생들에게 다 고통을 주고 만 것입니다.

 그러는데 그놈이 들어와 가지고 무슨 일을 했느냐 하면은 그랬습니다. 그걸  용납을 하고 나니까 배암이 있다가 하와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이 참으로'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들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과실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참으로' 참으로라는 요 말을 잘 아십시오.

 '참으로' 그 말은 아주 요거는 우리의 신앙의 그 심리 작용을 여게 나타내서  말씀하신 것인데 그렇게 간절한 소원 가지고 듣지 안하면 잘 못 듣는다 그거요.

'참으로' 하는 말은 하나님이 하와에게 잘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못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그걸 좀 말해 봐요. 배암이 '참으로' '하나님께서 참으로  그렇게 하시더냐' 하는 그말든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이 너거에게 이렇게 이렇게  잘하셨다 하는 것을 말하는, 잘했다는 걸 말을 해서 하나님에게 감사하도록 하는  말입니까 하나님께 대해서 불평을 품으라는 말입니까? 그것 알아봐요. 불평을  품으라고 하는 말입니다. 불평을 품으라고 하는 말이오.

 그래 가지고 '참으로, 세상에 그럴 수가 어데 있노? 그렇지야 안 하겠지?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들에게 이렇게 이걸 모든 과실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는 그 말은 하나님에게 대해서 불평을 품어서 감사를 없도록 만들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 말이 하와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이간을 간교하게, 간교하게  이간을 붙여 가지고, 그 배암이 하는 그게 간교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배암 노릇을 안 하는 것은 간교한 일을 안 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 행정들도 하면 원리적으로 쭉 이래 하는데 거게서 요런  조런 꾀를 쓰면은 좋아질 것이 있지마는 그 꾀를 안 씁니다. 그 꾀를 쓰면  자기가 간교한 자 될 것이기 때문에 꾀를 안 써요. 미련한 것 같지마는 원리  원칙으로 쭉 이래 해 나가지 거게서 요렇게 조렇게 그렇게 꾀를 쓰면 당장에  쉽지마는 안 돼. 그러니까 사람 보면 '조거는 간교한 사람이라, 조거는 꾀를  쓰는 사람이라, 저 사람은 그렇지 안하고 원 법대로만 이렇게 나가는 사람이라.'  그래 되는데,  배암이 들어와 가지고서 하나님과 하와와 그 사이에 이간을 붙였습니다.

이간을. '하나님은 너희들에게 참 이렇게 좋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니까 너희들은  하나님께 대해서 얼마든지 감사하고 그분을 섬기고 그렇게 높여야 된다' 이런 말  하지 안하고 '참으로' '참으로' 요 말이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간교를 가지고서  이간을 붙여 가지고서 하나님에게 대한 감사를 없앴습니다. 그게 이해가 됩니까?  하나님에게 대해서 그 '참으로' 하는 그 말이 그 속에 언중유골로, 말 속에는  뼈가 있다고 그 말이 어리석은 하와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그 감사를  없애도록 하나님과 그 사이를 벌어지게 그렇게 이간을 붙였다는 그것이 이해가  됩니까 안 됩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무서운 선악과가 제 눈에 그렇게 좋게 보이는 그  순서가 어떤 순서로 그렇게 되느냐 하면은 동산만 제가 살 곳이지 그외에 딴  곳을 탐하는 것이 그것이 틀렸고, 그러면 거게서 살되 다스려야 될 터인데  다스리지 안하고 제가 다스림을 받으면, 벌써 믿는 사람이 자기 현실에게  피동되면 헛일이라 그말이오.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의 직장에 피동되고, 자기의 이웃에 피동되고, 인간에게  피동되고, 그 모든 자기 밖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 피동되는 그것이, 그것이  다스리지 안하는 것이라. 피동 되면 안 돼요. 피동 안 되려고 하는 요 싸움을  싸워야 됩니다.

 우리 전투는 어데 있느냐 하면은 현실에 피동되지 안하고 현실에 하나님이  명령하신 그대로 나는 다스리는 것, 그대로 현실에게 내가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고 생각도 하고서 상대도 하고 그대로 하는 것.

 요것이 우리가 싸우는 것인데 거게서 벌써 현실이 어떠니까 거게서 피동을  받으면 현실에 다스림 받았기 때문에 벌써 저는 거게 있을 자격이 없어요.

 또 자기가 현실을 다스리고, 그다음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하게 지켜버려요.

원망도 들어오지 못하게, 불만도 들어오지 못하게, 불평도 들어오지 못하게,  의심도 들어오지 못하게, 다른,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마음 가지라는 마음  그외에는 다른 마음을 들어오지 못하게 해요.

 다른 마음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다른 생각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다른  욕심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다른 뭐 소망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그분이  주는 것만 받아 가지는 그것만 가지고 딴걸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말이요,  주님이 주시는 것 외에는. 배암은 주님이 주신 것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것만 자기 마음에 가지고 자기 생활에 가지고 있으면 되는데  그것이 자기 현실을 지키는 것이요 자기를 지키는 것인데 거게서 주님이 주시지  않는 다른 것이 들어오는 것이 그것이 배암이 들어오는 것이라. 배암만 들어오면  안 돼요. 배암이 들어오면 안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주의 기쁨에 피동된 기쁨 주님의 소원에  피동된 소원, 주님의 소원하심에 피동된 소원, 주님이 평가하 심이 피동된 평가,  주님이 비판하심에 피동된 비판, 주님이 기뻐하심에 피동된 기쁨, 주님이  노여워하심에 피동된 노, 그것도 노를 가지는 건 다 나쁩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성내는 건 나쁘요? 예수 믿는 사람 성내는 것을 가질 때는 가져야 됩니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를 가지고 이들을 질투했기 때문에 내 노가 확 풀렸다'  이렇게 말했어. 미움을 질투 그거는 미움은 안 가져야 된 것 아니오. 그러면  뭐이든지 주님이 주시는 것만 가지고 주님이 주시는 것 외에는 용납지 말아라.

그것이 동산을 지키는 것이라 그말이오.

 자기에게 원망이나 불평이나 시비 그건 그게 주님이 주시는 게 아니기 때문에  주님이 주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라. 그것이 동산을 지키는  것, 그만 그러면 다 됐어, 그만. 그러면 자유 세계라 그러면 모두 승리라.

그러면 모든 것이 다 자기에게 굽신굽신하게 다 복종을 해요.

 그러고 난 다음에 이제 할 것은 뭐이냐? 먹어라. 임의로 다 먹어라 그것만 해도  꽉 찼는데 그뭐 선악과보다 좋은 것이 꽉 찼는데 하필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을 필요가 뭐 있는가?  이런데 거게서 그만 배암을 들어오다 보니까, 배암을 들어오다 보니까 다스리는  것도 뒤비졌고 꺼꾸로 돼 버렸지 지키는 것도 꺼꾸로 돼 버렸지 인제 배암이  들어와 가지고, 들어와 가지고 들어오고 난 다음에는 첫째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뭐 하는 것입니까? 무슨 방편을 썼소? 이간 붙이는 것.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방편을 붙였다 말이오 이간 붙였어.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방편을 썼어요.

이간 붙이는 것.

 '어데 그럴 수가 있나? 하나님이 참으로 그러더냐? 그럴 리가 없지. 그럴 리가  있나? 하나님이 참으로 그러더냐?' 그말 한 마디가 어떻게 그만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만 좋다 하고서 이러고 있는 자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에게 그렇게 하더냐?' 그말 한 마디가 하나님하고 사람하고 그 사이를 이간을  붙이는 그런 간교 역사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참으로' 이러니까, 이제까지 하나님으로 전부 알고 하나님은  자기에게 좋은 것만 해 줄 줄 알고 이래 전부 전적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있었는데 하나님에게 대해서 그만 의심이 생겨지고 거기 대해서 감사가 없어졌다  말이요, 감사 없어.

 그러면 제일 먼저 이간을 역사해 가지고 감사를 없앤 것이 그것이 마귀가 한  첫째 일입니다. 동산에 들어와 가지고는 첫째 한 일이오. 이러니까 감사가  없어진 것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시는 그 모든 일을 전적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좋게 한다는 요 감사, 요 감사가 사람에게서 떠나면 그다음부터는  딴것이 나옵니다.

 그러기에 그 감사를 이간의 유혹을 가지고서 감사를 없앴고, 감사를 없앤  그것이 뭐이냐? 마귀가 들어와 가지고서 우리 마음에 들어와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하나님과 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고 감사를 없애게  만들고,  감사 없애고 난 다음에는 그다음에는 뭘 했습니까? '하나님이 참으로 동산에  있는 모든 과실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했습니다. '모든 과실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는 이 말은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과 같은 말입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말씀에 거게 뭐이 들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만들었어요.

 하나님께서는 '먹는 날에는 정녕 네가 죽으리라' '다른 과실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이 과실은 먹지 마라 요렇게만 딱 말했는데 '하나님이 참으로  모든 과실을'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더했습니까 덜했습니까? 더 과장을 했다  말이오.

 '모든 과실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그러면 그것은, 또 그것도 과장이지요?  하나님 말씀을 대해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의 정확무오성 또  권위성 그 권위성을 없애도록 요래 가지고서 하나님 말씀을 혼돈시키고 혼잡시켜  가지고서 하나님 말씀을 정확무오하게 하지 안하고 그 말씀을 그 말씀에 가감을  하도록 요렇게 만드는 것 악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이 벌써 그에게 하나님만이 내게 유익을 주고 좋게 해 주고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니 하나님 그분만 좋고 그분만 나를 제일 위하고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요 마음이 나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무엇보다도  좋게 하기 때문에 감사함이 나는 그 감사가 나와야 됩니다.

 하나님에 감사하는 감사지마는 그 감사가 제일 감사인지, 제이 감사인지, 제삼  감사인지, 감사라는 그것도 많이 층하가 있는데, 여게는 하나님께 전적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이 감사가 없어지면 그다음에는, 감사를 없애고 나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이 권위성을 없앴소. 왜? '모든 과실' 또 '먹지 말라 하더냐'  이렇게 해서 하나님 말씀을 이렇게 좀 없는 말씀을 더 보탰다, 없는 말씀을 더  보탰다 그거요. 또 '모든 과실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는 그것은 없는 말씀을  보탰는데, 그말은 또 뭐입니까 '모든 과실을 먹지 말라 하더냐' 하는 그말은  하나님 말씀을 또 어떻게 한 것입니까? 보탰습니까 줄여뜨렸습니까? 말씀을  줄여뜨렸소 보탰소? 하나님은 이건 먹고 이건 먹지 말라 했는데 모든 것 먹지  말라 하니까 또 줄여뜨린 것 아니요?  하나님 말씀을, 선악과만 먹지 말라 했는데 '모든 과실을' 했으니까 그거는  하나님 말씀 더 가했습니까 줄여뜨렸습니까? 또 '모든 과실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그거는 감했습니까 보탰습니까? 감한 것 아니요 i요것만 먹지 말라  했고 다 먹지 말라 안 했는데 그걸 감해버렸다 말이오 그거 감한 것 아니겠소?  그것만 먹지 말라 했는데 다 먹지 말라 했으니 하나님이 그것만 먹지 말라  했는데 그걸 '다 먹지 말라 하더냐' 이랬으니까 하나님 말씀을 보태고 감하고  했다 그거요.

 그것을, 마귀가, 감사함이 떠나면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시킵니다.

혼돈시키고 혼잡을 시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거는  먹지 말고 요거는 먹어라' 요랬는데 그걸, '요거는 먹지 말고 요거는 먹어라'  이랬는데 먹어라 말을 감해버렸다 말이오. 먹어라 말을 딱 감해버리고 '모든  과실을 먹지 말라 하더냐?' 모든 과실 한 것은 보탠 말이고, 하나님이 언제  '모든 과실을' 말 안 했다 그거요.

 그거 모든 과실이라 하는 것은 보탠 것이고 또 '요거는 먹고 요거는 먹지  말아라' 했는테 먹으라는 걸 또 감해버렸다 말이오. 먹으라는 걸 감해버리과  전부 먹지 말라 했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 말씀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한 것이 거게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그걸 좀 알아요, 여러분들이. 가감한 것이 거기 분명히 있습니까? 가감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제가 밀고 당기고 더하고 보태고 뭐 이렇게 가하고  감하고 제맘대로 이래 하니까 하나님 말씀의 절대 무오 정확 무오인 이 권위성은  절단났소 안 났소? 이 권위성을 절단냈다 그말이오.

 권위성을 절단내고 정확무오성, 정확무오성. 하나님 말씀의 권위성도, 권위성과  또 정확무오가 달라요. 하나님의 권위성. 제가 보니까 하나님을 그 말씀이면  다인 줄 알고 거기는 가감도 없고 그 말씀이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이게 와  가지고서 보니까 보탰다가 땠다가 보탰다가 뗐다가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권위성이 없다 그말이오.

 그만 권위성을, 그 보니까 배암이 와서 하는 것 보니까 백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그랬지, 그렇게 그거는 뭐 절대성이라 이렇게 권위를 인정한 그거  후회가 될 만치 그렇게 권위성을 뺐습니다.

 또 그러고 난 다음에 정확무오성을 뺀 거는 뭐입니까? 가감한 것이 그게  정확무오, 보태도 안 되고 감해도 안 된다는 그 정확무오성을 또 깨뜨렸다  말이오. 정확무오성을 깨뜨렸고 권위성을 깨뜨렸고 그러고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했습니까? 혼돈시켰어. 또 어떻게 했습니까? 혼잡시켰습니다.

 혼잡시켜서 말씀을 가감하고 권위성도 없애버렸고 이래 가지고, 첫째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감사하는 감사를 없애고 난 다음에는  이제 이차적으로는 말씀을 가지고서 이렇게 합니다.

 말씀을 가지고 가감을 함으로써 이 사람들이 이제까지는 하나님 말씀은 그는 그  말씀이면 다라고 이래 생각했는데 밀고 당기고 하는 것 보니까 그렇게 배암은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저거가 권위 알듯이 권위를 알지 않더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그 권위가 없어져 버렸지 또 그 말씀은 가감 못 할 줄 알았는데 뭐  보태고 떼고 이래 가감했지, 그랬는데 그래 가지고 그 하와가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일차적으로 에덴동산에서 다섯 가지 하는  그것을 지키지 못하고 난 다음에는 그다음에 이차적으로 벌써 배암의 유혹을  받고 난 다음에는 뭣이 그들에게 없었습니까? 뭘 없앴습니까? 마귀가 와 가지고  이차적으로도 와서 공작을 할 때에는 그 성도에게 대해서 뭣을 없앴습니까?  감사를 없앴습니다. 감사를 없앴소. 그다음에 이차적으로는 뭣을 없앴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성을 없앴습니다. 그다음으로는 뭘 없앴습니까?  정확무오성을 없애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하와가 배암이 감사를 없앴는데 감사 없애는 것과 또 권위성과  정확무오성 그것을 배암이 없앴는데 하와가 과연 그것을 뺏겨서 그것이 하와에게  없어졌습니까 그대로 있습니까? 하와에게 그대로 있습니까 없어졌습니까?  없어졌다 그거요, 그만. 없어졌습니다. 그만  그때부터 그다음에는 그 하와가 말하기를 '동산에 있는'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이것도 또 그만 가감해 버렸다  말이오. '임의로 먹으나' 이랬었는데. 위에는 '임의로 먹되' 이랬는데 '먹을 수  있으나' 요 인제 좀 거게 의문이 하나 들어붙었다 말이오.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요것은 중앙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거는 우리는  모르겠습니다.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요러면 요 말을 더 보탰습니까 줄여뜨렸습니까? 보탰지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이랬으니까. 또 '죽을까 하노라' 요거는 보탰습니까  줄여뜨렸습니까? 줄여뜨렸습니다. 그 유혹을 다 받았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벌써 믿는 사람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감사가 없을 때에는 그위에 많은  타락이 있고야 그런 것입니다. 감사가 없을 때에는 그위에 투쟁할 투쟁을 벌써  안 했소. 벌써 투쟁에 패전을 한 것이오. 그 위에서 다섯 가지 투쟁이 있으면  거기는 감사가 가득 찼습니다.

 그걸 투쟁 못하고 난다음에는 그 사람에게 감사를, 감사를 빼야 하나님의  인식을 해버려야 이 돼지지. 이러니까 감사 뽑는 그 역사를 한다 그거요.

 감사 뽑는 역사를 할 때는 감사를 뽑을 때는 뭘로 가지고 뽑았습니까? 이간을  붙여 가지고, 간교와 이간을 붙여 가지고 감사를 뺐다 말이오. 감사를 빼고 난  다음에는 그다음에는 그 사람을 타락시킨 게 뭐입니까?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이제 부인케 해 버리고 그다음에는 가감에 혼돈, 말씀의 가감성과 혼돈 혼잡성을  가지고서 가감하는 것으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것을 완전히  박살을 내 버렸다 그말이오.

 하나님에게 대한 숭배성과 앙망성을 박살을 내고 난 다음에는 이제는 성경과의  관련 있는, 성경과의 관련 있는 그것을 박살을 내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너희들이 이거 선악과를 먹을 때에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제 그때부터는 하나님 말씀을 딱 부인해 버렸습니다. 딱 부인해  버렸어.

 그러면 그 부인해 버리니까, 자꾸 배암이 지금, 하와가 배암에게 따라 하기  마련이라. 사람은 순응성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대하면 하나님에게  자꾸 피동돼서 하나님을 따라서 피동으로 움직이는데 하나님 떠나고 배암을  접하면은 자꾸 배암에게 피동됩니다. 자꾸 배암에게 피동돼요.

 피동되니까 배암 하라 하는 대로 그저, 요라라 요라고 이라라 하면 이라고 뭐  시키는 대로 자꾸 합니다. 그래 가지고서 그다음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제는 하나님 말씀을 딱 부인하고 반대로 딱 섰습니다.

 '안 죽는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너거를 공연히 지금 어리석은 너거를 가지고  이용하려고 그렇게 했지 죽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을 딱 부인했다 말이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딱 부인하고 나니까  그다음에는 선악과가 이렇게 나쁜 것이 이렇게 좋게 보였습니까? 알겠습니까?

 순서가 자,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범한 것이 뭐이 범한 것입니까? 하와가 범한  게 뭐입니까? 동산을? 다스리지 안했고 지키지 안했고 지키지 안했고, 또?  지키지 안했고, 그다음에? 감사. 감사 안 했고 또 그다음에? 하나님의 권위성  말씀의 권위성, 말씀의 신실성 말이요 권위성 이제 빼앗겼고, 그다음에는 또?  가감해서 정확성을 빼앗겼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어쨌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부인했습니다. 혼잡은 그 속에 든 것이고. 말씀을 부인했습니다.

 부인하고 나니까 이제 다 됐어. 부인하고 나니까 그다음부터 그 사람의 모든  견해와 만물관이 영 달라져 버립니다. 달라져셔 그렇게 나쁜 것이 그렇게 좋은  것으로 보여졌다 그거요.

 그러니까 이것 뭐 요 순서대로 타락하면 타락 못 할 자 없고 이 순서를 지켜서  승리를 못 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벌써 사람이 자기가 동산을 다스리라 그보다 먼저 그만 동산을 거게  안 있고, 동산에 거기 살라고 했는데 빼고날을 치고 딴데로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그만 헛일이오.

 여기 동산에 있으라는데 동산에 있으면서도 동산에 안 있으려고 불거져 딴데로  달아나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하나님이 주신 현실이 자기에게는  천하에 자기 현실밖에는 자기에게 좋은 게 없고 제일 좋은 것인데 그 현실을  만족지 안하고, 현실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현실을 자기 구원에 잘  이용을 하려고 애를 쓰고서 달라드는 이 사람이 많지를 못하다 그거요.

 현실을 그저 현실인갑다 밥 먹고 옷입고 자니까 됐다 이렇게 생각하지 그  현실이 자기 구원을 위한 그렇게 필요하고 유익한 현실이라 하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지를 못해요.

 이러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들으면서 회개할 것은 우리의 현실은 에덴동산이기  때문에 에덴동산은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좋은 곳이 에덴동산입니다. 범죄하기  전에 애굽이 '여호와의 동산 같고' 그랬습니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여호와의  동산보다 더 좋은 데가 없다 그말이오 여호와의 동산.

 이런데 여호와의 동산이 아담 하와에게는 하나님이 제일 좋은 곳을 선택해서  줬는데 우리에게는 에덴동산이 무엇이냐 그겁니다. 자기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현실 그 현실이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곳입니다.

 이래서 에덴동산을 어떤 학자들은 해석을 하기를 '이거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그  위치라' 그렇게 해석을 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도 비슷하기는 비슷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교제하는 곳이 어데냐? 자기 현실 외에는 아무 곳도 없습니다.

 에덴동산이 우리에게 주어진 자기 현실이라 하는 요것을 굳게 잡아요 요 변동  없어요. 현실인데 요게서 우리가 첫째는 에덴동산에 있어야 하고, 모두 우리가  회개를 해요. 자기 현실만이 자기가 살 곳인데 떠 나려고 한다고 떠나집니까?  하나님이 그 현실에 있게 했는데.

 그러니까 그 현실을 자기가, 자기가 거처하는 데는 제일 좋은 곳인 줄 알고 그  현실이 좋기 때문에 현실을 거게서 현실에 잘 살고 거기서 제일 좋기 때문에  제일 좋은 복을 받으려고 하지 안하고 자기 현실을 불만하는 것은 내나 자기  현실에서 그만 불만하니까 모든 것 다 진 사람이오. 자기 현실을 불만하는  사람은 다 패전한 사람입니다. 자기 현실을 불만하는 사람은 그만 뭐 섞인 것  없이 전부 다 패전한 사람이라.

 자기 현실만이 자기에게 보배로운 자기 처소라 하는 것을 가지고 난 다음에  둘째번에 할 일이 뭐입니까? 저 뒤에, 둘째번에 할 일이 뭐입니까?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은 주 여호와 나를 도와 주시네  너의 발이 떨리잖고 주가 깨어 지키네 이스라엘 지키신 이 졸며 쉬지 않도다

 그러니까 우리의 할 일은 동산에 머물 것, 동산을 제일 우리 살기 좋은 곳으로  아담 하와에게 준 것같이 우리에게도 우리 현실을 우리에게 제일 좋은 처소로  정해 주신 것 요것을 믿어야 됩니다. 요걸 믿고 요동치 안해야 돼요. 동산에서  딴데로 나가려 하는 자는 뭐 그다음 것은 다 헛일이라.

 그러기에 우리 현실은 우리에게 주어진 에덴동산이라. 그곳이 제일 내가 살기에  좋은 곳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이요, 행복된 곳이라 하는 이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우리 현실은 우리의 에덴동산이라. 자, 한번 따라합시다.

우리 현실은! 우리의 에덴동산이라! 믿습니까? 믿습니까? 저 뒤에, 믿습니까? 네, 요걸 믿어야 돼요. 요것이  첫째입니다. 요게 순서에 첫째요.

 그러고 난 다음에 이제 둘째로 할 일이 뭐인고 하니 동산을 다스리는 것 자기  현실에게 지배를 받지 말고 현실에 피동되지 말고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그것을  현실에게 행하는 것, 하나님께 피동된 그 피동을 현실에게 대해서 행하는 것이  그것이 동산을 다스리는 것이라 그것입니다. 행할 것.

 그러면 현실은 자꾸 현실이 가고 또 새 현실이 닥치고 현실이 가고 새 현실이  닥치고 현실이 여러 수천 번, 현실이 지나가면 과거가 되고 또 미래가 현실되고  자꾸 해서 현실이 바꿔져 오는 것이니까 어떤 현실이 오든지 그 현실은 내가  거처하기에 제일 좋은 내 에덴동산이라 하는 그것을 우리가 똑똑히 알고 불만  불평이나 또 다른 것을 부러워하거나 그런 망령을 부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 제일 중요한 것이 에덴동산이 자기를 하나님께서 살게 한  자기 처소인 것을 인식하고 거게서 만족을 하고 에덴동산에 살려고 해야 되지  다른 생각 가지지 안해야 된다는 것, 이게 첫째 할 일입니다.

 구속받은 우리들이 이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현실을 주시는데 천하에 모든  사람들이 '제일 불행스러운 현실이라' 할지라도 그 현실은 내게는 천하에 제일  좋은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우리 구원은 각각 다른 구원이오. 눈이 만들어져야, 눈 될 사람도 있고, 귀 될  사람도 있고, 코 될 사람도 있고 눈썹 될 사람도 있고, 발 될 사람도 힘고  하나님의 그 몸에 어떤 지체가 될런지 모른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만드는 현실도 각각 달리 온다 그말이오.

 빌립보 3장에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뒤엣 것을 돌아보지 안하고 앞으로만  달음질한다. 잡았다고 하는 것도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만 지금  달음질하는 것은 주께서 내게 주시려고 손에 들고 있는 그 상급을 잡으려고 내가  달려간다' 그말은 내 몫에 태인 내 구원이라 그말이오. 내 구원 완성을 위해서  간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원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현실도 각각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현실을 만족지 안하는 것은 자기 구원은 던져버리고 남의 구원을  탐하는 것이니까 이거 되지도 안하는 것이고 마귀의 시험에 들어서 그런  것이니까 첫째는 자기 현실을 자기가 거처할 곳인 줄로 아는 아는 것, 그것이  첫째 가지는 것.

 요것을 우리가 기도해요. 기도해 가지고 '주여, 나는 이 세상을 지나가는 동안  내게 주시는 현실만이 내가 살 곳인 것을 내가 이제는 단정짓고 요대로 알고. 내  현실보다 천하에 내게 대해서는 유익된 좋은 현실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하나님께서 내 구원을 위해서 주신 선물의 지극히 고귀한 현실이라는 것을 나는  요대로 믿고 나가겠습니다.' 하는 그것을 작정을 하고 기도를 해요.

 그러면 현실만 닥치면 요걸 요래 못하고 그만 뭐 현실만 닥치면 열 가지로 백  가지로 막 변해 나갑니다. 그만 변질이 돼. 그만 변질이 돼 버린다 말이오. 그만  현실에서 도망치려고. 현실 밖에는 자기에게는 뭐 있습니까? 자기 현실 밖에는  죽음밖에 없습니다. 자기 현실 거게만 노아의 방주요. 자기 방주입니다.

 그러기에 그러고 난 다음에는 동산을 다스리고, 그다음에는 동산을 지키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모든 과실은 임의로 먹고,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는 먹지  말고, 요것만 해 가지고 있으면 되는데 그만 이 하와가 어디서 틀렸느냐 하면은  그 지키라 하는 것을 그만 지키지 못했어 지키라 하는 것을 지키지 못하니까  그다음에는 먹지 말라는 것을 먹어버렸습니다.

 자, 이제 시간이 너무 많이 갔으니까, 요것을 잡아요. 그 껍데기로 그래 하지  말고. '주여, 내가 정말로 내게 닥쳐오는 현실을 내가 살 에덴동산인 것을 알고'  내게 닥친 현실에 다른 사람 남의 현실을, 요 현실에서 그 현실이 바꾸어지기를  원하는 그런 망령이 없는가 요것을 우리가 작정하고 깨달아야 됩니다.

 자기 현실에 현실이 바꿔지기를 원하는 그것도 동산을 떠나려 하는 자요.

그자에게는 벌써 그것이면 다 실패라, 그만  자기 현실에서 '요 현실은 어서 지내갔으면 좋겠다' 그 현실이 지나가기 전에  거게서 자기가 이룰 구원을 이루어야 되지 그 현실이 어서 지나가 버리면 좋겠다  하는 그것이 틀렸고, 또 남의 현실을 원하는 것도 틀렸고.

 자기 현실이 자기가 세상에 사는 대로서는 그때는 그 자리가 제일 좋고 그 배경  환경이 제일 좋다는 요것을, 그거라야 내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 그걸 깨닫고  거기서 구원을 이루려고 달라들어야 됩니다.

 그러면 다 같이 기도합시다. 시간 너무 많이 갔습니다.

 주님,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는 것 아버지의 성령으로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였사오니 주님은 무한하시고 또 무한하신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구속하시고 역사하시는데 저희들의 유한하고 또 타락했던  저희들이 무엇을 스스로 깨달으며 알며 또 가치를 평가하며 비판하겠습니까?  다만 이 하나에서 전부까지 다 주님의 성령으로만 할 수 있음을 아옵나니  성령의 감화 감동하심으로써 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의 능력으로 저들이 능력  있게 하사 금번 이 집회를 통하여 주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기까지 완전히  변화함을 받아 능력 있는 사람들 되어 세상도 이기고, 마귀고 이기고, 죄도  이기고, 사망도 이기고, 옛사람을 완전히 원수와 이것을 죽여버리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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