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의 신앙

 

1989. 1. 15. 주전.

 

본문: 왕하 2:1-22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매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엘리사가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행하니라  선지자의 생도 오십 인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섰더니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엘리사가 보고  소리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서 요단 언덕에 서서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저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저를 영접하여 그 앞에서 땅에 엎드리고  가로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사 오십 인이 있으니 청컨대 저희로 가서 당신의 주를  찾게 하소서 염려컨대 여호와의 신이 저를 들어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보내지 말라 하나 무리가 저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저희가 오십 인을 보내었더니 사흘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저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두 계시를 주셨습니다. 하나는 자연 계시니 곧  하나님의 창조와 모든 만물과 하나님의 섭리와 사람들의 천태만상의 구조 이런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 구원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 또 신구약 성경과  영감을 주셔서 우리들의 구원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목적 그대로 모든 만물을 보든지 하나님의  섭리 역사를 보든지 신구약 성경에 기록돼 있는 모든 말씀을 볼 때에 우리는  하나의 역사적인 하나로만 보면 외식하는 자가 됩니다. 그로 인해서 구원의  이치를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이기 때문에 구원의 이치를 깨닫고 그대로 자기가  생활하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 엘리야는 성경에서 우리에게 주신 그 구주를 모형해서 우리에게 예고  예표해 주신 것으로 그렇게 많이 인용을 했습니다. 여기 엘리야가 앞서 가고 또  그 엘리야를 따라가는 엘리사가 있었고 또 거기는 이스라엘의 많은 선지  생도들이 있었습니다. 또 그 밖에는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랬는데, 하나님께서 하루는 엘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인도하는 그  인도를 따라서 끝까지 오면 승천하는 데에 이를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지금  한 토막 한 토막 인도하고 계십니다. 제일 처음에 그들은 길갈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길갈은 어떤 곳인고 하니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 가루로 식물을 삼아 살다가 비로소 길갈이라는 그곳에 이르렀을  때에 만나 가루는 끝이 나고 그 토지에서 나는 생산물을 가지고 먹게 됐습니다.

그들의 양식은 만나가 지상에서 나는 그 식물로 곡식으로 그들의 식물이  바꾸어진 곳이 길갈입니다.

 길갈에서 나서서 엘리사에게 엘리야가 말씀하기를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벧엘로  가라고 하니 너는 여기 있으라.'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엘리사가 `내가 당신을  떨어져서 여기 있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그말은 하나님은 영원히 변치 아니하시는 영항의 하나님이시요 또  엘리야의 흔이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 있을 그것을 가리켜서 맹세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그러면 같이 가자 하고 비로소 길갈에서 출발해  가지고 벧엘에 이르렀습니다. 벧엘이 이르니까 벧엘에는 하나님의 선지 공부를  하는 선지 생도들이 거기서 하나님의 도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엘리야와 엘리사가 온다는 말을 듣고 나가 가지고 엘리야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엘리사에게 말하기를 `선생님' 엘리사는 그때 그들에게 선생이라고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선생님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하늘로 을리워 가시는 것을 당신이 압니까?' 그러니까 이제는 당신의  선생님은 하늘로 올리워 가니까 당신은 여기서 우리와 같이 지내자는 그런  요청을 했습니다.

그때에 엘리사가 말하기를 `나도 안다. 잠잠하라. 내가 너거들의 말에 내가  유혹받아서 너희들과 같이 있지 않고 나는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가겠다.' 하는  주장으로 그들을 반대했습니다. 반대하고 나니까 엘리야가 엘리사와 함께,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서 갔습니다.

`너는 여기 그만, 생도들도 말하고 너도 나를 따라오려고 하면 여러가지 힘들고  어려움이 있을 터이니까 그만 여기 벧엘에 머물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벧엘은  어떤 곳인고 하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 따라서 처음에 제단 쌓았던  벧엘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하나님 섬기는 첫 제단을 쌓던 곳이  벧엘인데 여기 머물라 하니까 엘리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당신의 혼의  영생함을 가리켜 내가 맹세하노니 하나님이 변치 않고 당신의 혼이 변치 않는  것처럼 나도 변치 않고 끝까지 당신을 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니까  `그러면 가자.' 하고 벧엘에서 떠나서 여리고로 내려갔습니다.

여리고에 가니까 또 선지 생도들이 거기 많이 있었습니다. 더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또 나와서 말하기를 `지금 당신의 선생님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하늘 위로  을려가실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렇니까 그만 따라가 봤자 이제 당신의 선생님  엘리야는 하늘나라로 올려갈 터이니까 그만 여기 우리들과 같이 지내자.' 하면서  만류를 했습니다.

그럴 때에 엘리사가 `나도 안다. 잠잠하라. 내가 너희들의 말에 내가 피동되거나  유혹받지 않겠다.' 하고 다시 엘리야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결단코 내가 여기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끝까지 따라갈 것입니다.' 이렇게 엘리사가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야가 `그러면 가자' 하고 여리고를 떠나 가지고 지금 요단강을  향하여서 둘이 동행했습니다. 선지 생도들은 멀리 서서 두 사람이 같이 요단 강  가로 가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엘리야가 자기의 겉옷을 벗어 가지고  말아서 요단 강물을 치니까 강물이 갈라져서 육지가 되니까 두 사람이 육지로  건너서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는 것을 봤습니다.

그제야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말하기를 `네가 여기까지 나를 따라온 것은 내게  구할 소원이 뭐기에 끝까지 이렇게 나를 따라오느냐?' 이렇게 물었었습니다.

물으니까 엘리사가 말하기를 `내가 당신이' 세상 왕을 세우는 권세도 가졌고  선지자로 세우는 권세도 가졌고 온갖 기적과 권능을 행하시는 그런 권능도 가진  줄 알지만 나는 그런 것은 내게 소용이 안 되고 다만 당신이 가지신 그 영감,  성신의 권능을 나에게 갑절을 주십시오. 당신이 모시고 있는 성신의 권능 그  영감을 나에게 갑절이나 주십시오.' 이렇게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대해서 말하기를 `네가 어려운 것을 나에게  구했다.' 아주 제일 어려운 걸 구했다 말은 아주 네가 이루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중한 것을 나에게 구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럴 때에 엘리야가 말하기를  네가 어려운 것을 구했으니 하나님께서 나를 하늘나라로 올리시는 그 끝까지  네가 나를 바라보고 요동치 아니하면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너에게, 소원한  대로 영감을 너에게, 나와 같이 하던 영감을 너에게 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것을 말을 했습니다.

그러고 두 사람이 같이 행하여 가는데 갑자기 회리바람이 불면서 불병거와  불말들이 나타나고 엘리야를 회리바람이 둘러싸고 공중으로 올라가는 것을  봤습니다. 그때에 엘리사는, 엘리야가 `하나님이 나를 네게서 올리우셔서 네 눈에  보이지 않기까지 끝까지 나를 바라보면 그 일이 이루어지리라. 하는 그 말씀을  단단히 듣고 그렇게 뭐, 회리 바람이 부니까, 거기서는 광야입니다. 빈들판이니까 굉장히 회리바람도 불고 또 거기 먼지고  뭐이고 눈을 뜨지 못할 만치 그렇게 심했을 것인데, 그러니까, 그만 그때에 그  엘리야가 승천하는 것을 볼 수 없을 만치 어려움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끝까지 나를 올리우는 것을 끝까지 네가 보며 이 일이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아니할 것이라는 그런 예언을 엘리사에게 말해 줬습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끝까지 바라보니까 그만 구름에 격해 가지고 승천하시고 보이지  아니했습니다. 그때에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대해서 불병거와 불말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엘리야는 과연 이스라엘의 불병거요 불말이로구나. 이스라엘이  엘리야가 있는 동안에는 연방에 많은 적들이 있었지만 하나 침노하지 못하고  그렇게 한 그 모든, 나라가 안정되고 평안한 그 모든 국방은 과연 엘리야가  국방을 했구나.' 하는 것을 비로소 깨닫고 `과연 주는 이스라엘의 불병거요  마병이었다' 하는 것을 그가 깨닫고 엘리야가 보이지 않으니까 자기가 너무 기가 차서 고함을 지르면서 두 번이나  부르다가 자기 옷을 찢고 말할 수 없는 참 고통의 탄식을 하고 있는데  엘리야게서 겉옷이 떨어져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떨어지는 그 겉옷을 자기가 주워  가지고, 거기서 암만 있어봐야 엘리야는 벌써 승천했고 빈들판이니까 다시 자기 있는  처소로 돌아올 수밖에 없어서 요단강을 도로 건너 가지고 올려고 요단 가에 섰을  때에 그때에 자기가 엘리야의 겉옷을 가지고 거기서 말하기를 엘리야와 함께  하시던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엘리야도 가 버리고 엘리야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도 가셨습니까 어디 계십니까 여기 계십니까 하는 것을 자기가 번민하면서  그 옷을 가지고 요단 강물을 이렇게 치니까 엘리야가 요단 강물을 칠 때와 같이  그 강물이 갈라져서 육지가 됐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사가 요단강 갈라진 그  육지로 걸어서 요단강을 건너서 육지로 왔습니다.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던 선지 생도 50인이 보고 `이제 엘리야에게 함께 하던  영감이 엘리사에게 함께 하게 됐다' 하고 그 앞에 와 가지고 부복하고 경배하면서  그들이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영감이 함께 하는 것을 보고 엘리사에게 간청하는  것이 첫 말이 그 말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용사 50인이 있으니까 당신의 선생님  엘리야를 하나님이 하늘로 올려가시다가 혹 중간에 버렸을지도 모르니까 50인을  보내서 이 부근 산에 두루 찾아 가지고 혹 떨어졌으면 참 죽은 시체로 있을  터이니까 장사를 해도 해야 될 터이니까 보내 보자고 그렇게 간청을 했습니다.

그럴 때에 엘리사가 가지 말라고 말하나 그들이 엘리사를 욕이 될 만치 조롱을  하면서 비쭉거리면서, `가다가 떨어져 죽었는데 지금 그렇다고' 그래 쌓아니까  엘리사가 `그러면 보내려면 보내 봐라' 이랬습니다.

그래 용사 50인이 가 가지고 사흘 동안을 찾아도 아무런 그 산에 흔적이  없으니까 그들이 다 헛일하고 돌아와 가지고 엘리사에게 말하기를 `찾아봐도  없습디다.' `그래 내가 너희들에게 가지 말라고 했는데, 너희들의 마음이 그렇게  강퍅하고 완패하고 항상 하나님의 대적의 자리에 너희들이 서 있느냐?' 하는 것을  나무래시고 있을 때에 그때에 그 성에 있는 백성들이 나와 가지고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같이 하는 것을 보고 엘리사에게 간청을 했습니다.

`당신이 보다시피 이 성은 참 지역도 넓고 또 평지이고 또 땅도 비옥하고 이런데  한 가지 큰 병이 있어서 여기 사는 사람들이 항상 옳게 살지를 못하고 곤고하게  지냅니다. 물이 써서 이 물 때문에 모든 식물들이나 동물들이 수명을 가지고  살지를 못하고 곡식은 익기 전에 다 떨어지고 말라 죽어 버립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당신이 좀 고쳐 주십시오.' 하는 것을 간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에 엘리사가 영감을 받아 가지고 말하기를 `너희들이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지고 오라' 그 성민들이 소금을 담아 가지고 왔을 때에 그 소금을  가지고 광야로 나가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소금을 광야 물에다가 뿌렸습니다.

뿌리니까 하나님께서 엘리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네 하는 행위를 통해서 이  땅은 다시는 이런 물이나 이런 거 나쁜 것을 인해서 곡식이 익지 않고 떨어지는  일이든지 모든 것이 죽는 그런, 모든 물의, 독으로 죽는 그런 일이 없으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셔서 그것을 백성들에게 전달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전달한 고 후부터는 그 땅에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이 다 깨끗하게  치료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의 이 내용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가르쳐서 우리에게 구원 도리로 주신 말씀인가 하는 것을  우리들이 깨닫는 것이 여기서 이제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여러 신앙 단계가 있습니다.

신앙 단계가 있는데 첫째는 광야에서 만나로 양식 삼아 먹던 사람들이 비로소  가나안 곡식을 처음으로 먹은 곳이 길갈입니다. 이래서 예수 믿는 가운데는  하나님의 일반적 은혜로 사는 사람들이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이제는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 우리의 믿음의 법칙이요 또 신령한 양식이 되는 것을 알고, 과거에는  성경 말씀은 뭐 아주 못쓸 책으로 버렸던 사람들이 이제 성경 말씀을 읽고 신앙  생활하는 그건 사람들의 단계가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 읽고 신앙 생활하는 이것이 제일 낮은 아주 유치반과 같이, 참  학교로 말하면 일학년과 같은 이런 신앙 단계입니다. 이런 신앙 생활을 하는  거기서 그 자리에 머물 것이 아니고 거기서 점점 앞으로 전진해야 되고 향상하는  그런 신앙 걸음을 걸어야 합니다.

거기서 엘리야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점점 인도해서 앞으로 인도하시니까,  내가 여기서 떠나서 벧엘로 나를 가라고 하시니까 내가 벧엘로 갈 터이니까 너는  여기 길갈에 있으라 할 때에 길갈에 안 있겠다고 맹세하고, 엘리야를 떨어지지  않고 엘리야를 따라가겠다고 맹세하면서 이렇게 간청을 하니까 엘리야가 그러면  가자 하고 길갈을 떠나서 벧엘로 갔습니다.

우리 신앙을 인도하는 곧, 인도하는 주님은, 엘리야는 주님을 상징 했고 엘리사는  주님을 따르는 하나님의 신실한 성도들을 상징했습니다. 이렇게 인도하실 때에  그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너는 여기 있으라, 하나님이 나를 벧엘로  인도하시니까 너는 여기 있으라 이렇게 말할 때에, 뭐 가자고 해도 그럴 건데 있으라 하니까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만 거기 `예  선생님 참 좀, 못 따라가서 미안하지만 그러면 선생님은 하나님 인도  따라가십시오. 저는 그만 선생님 말대로 너무 가기가 힘들 터이니까 그만 여기  있겠습니다.' 그렇게 했을 터인데 엘리사는 그렇지 않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고  엘리야의 흔을 두고 맹세하기를 `내가 그가 변치 않는 거와 마찬가지로 나도 변치  않고 당신을 끝까지 따라겠습니다.' 라고 이렇게 맹세를, 맹세하는 것은 그것은 대개 그때에 맹세하는 것이 바른 맹세들은 자기를 다  바쳐서 맹세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지키는 데에 다 바치겠다는 그런 맹세인데,  맹세하면서 따라가겠다고 하니까 비로소, 가자 이렇게 해서 길갈을 떠나서 벧엘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이래서 신앙 생활이라 하는 것은 단계가 있는데 그 단계 밑에 단계에 있는 것이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아무리 어런 신앙 단계에 있어도 상관이 없는데 거기서  하나님이 그대로 두시지 않고 반드시 향상을 시키고 전진을 시키는 이 인도가  있습니다.

인도를 따라서 갈 때에는 자기가 가고 싶어서 원하고 `어쩌든지 하나님이 인도를  인도하십시오. 내가 따라가겠습니다.' 인도하시면 따라 가겠다는 그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인도를 구하고 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 죽자  살자 하고 그 인도를 따라서 가려고 결심하고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따라가는  걸음이지 그렇지 않으면 못 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신앙 걸음의 그 형태를  잘 볼 수 있습니다.

벧엘에 가니까 벧엘에는 벌써 거기서 선지 생도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중에 아주 좀 우수한 그런 신앙가들이 있었습니다. 선지 생도라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를 가르치고 인도할 수 있는 그런 벌써 선생님 지위에 있는 그런  선지 생도들이 벧엘에 있었습니다.

벧엘은 아까 말한 대로 벧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인도 따라서 첫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신앙으로 걸음 걷는 신앙 걸음에서 하나님 섬기는 제단  쌓은 곳입니다. 이래서 그거는 믿음의 제단입니다. 믿음의 제단에 그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서 하나님 섬기는 그런 단계의 그 신앙들입니다.

그 단계의 신앙들인데 그때는 그게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당신의 선생님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하늘나라로  올려가실 것을 알지 못합니까? 지금 벌써 엘리야는 하늘나라로 올라갑니다.'  당신의 신앙 지도자는 벌써 순교당합니다. 다 끝장이 납니다. 하는 거와 같은  말입니다.

이러면서 우리가 그만 여기 있읍시다 이럴 때에 엘리사는 `잠잠하라. 나한테 그란  말을 하지 마라. 나도 안다. 나도 내가 가면 어떤 험한 길이라 하는 것을 알고  가면 선생님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하늘나라로 올려가서 다시 보지 못할 수 있는  그런 그 끝장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잠잠하라.' 하고 그 유혹을 받지  않고 유혹을 물리치고 거기서 그만 있자 하는 데에 유혹을 받지 않고 물리치고  전진 향상을 맹세할 때에 엘리야가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를 여리고로  가자고 하는데 네가 그렇게 맹세하며 따라가려고 하니까 그러면 같이 가자.' 하고  비로소 벧엘에서 여리고를 같이 갔습니다.

그러면 벧엘에서 여리고 간 그 순서도 우리가 잘 알아서, 거기는 벌써 그 밀에는  길갈에는 유혹이 없었지만 벧엘에서는 같이 안일주의로 세상주의로 육신주의로  `그만 여기서 살자. 그리 따라가면 괴릅다, 어렵다.' 하는 것을 느끼고 그만 여기  지내자, 네가 여기 지내라 그래 말할 때에 그런 모든 미혹하는 그 속화의 신앙,  안일 신앙 인본 신앙, 육체 신앙, 혈육 신앙 그런 것을 미혹받지 않고 배격하고  `나는 맹세해서 죽어도 나는 따라가겠습니다.' 할 때에 그러면 같이 가자 해  가지고 여리고를 갔던 것입니다.

신앙 걸음은 다 자기가 자원해서 결사적으로 가고자 함으로써 전진하는 것이지  강제로 끌고 가 전진하는 그런 일은, 전진하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로마서 12장 1절에도 "하나님의 모든 자 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하는 것은 살아 있으나 완전히 주를 따라가는 걸음에 생명 다  내놓고 사선을 초월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 뜻을 말한 것입니다.

여리고에 가니까 여리고에는 선지 생도들이 50명이 있었다, 밑에는 선지 생도들이  있었다 했지만 그 위에는 50명이라는 숫자가 뚜렷이 나타나 가지고 있습니다. 더  유명한 신자들입니다. 유명한 신자들이요 지금으로 말하면 유명한 유명한 목사들,  아주 훌륭한 목사들, 참 그런 목사들, 또 과거로 말하면 신사참배를 이긴 그런  목사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50명이 기다리고 있으면서 엘리사를 보고 `당신의 선생님을  하나님께서 하늘로 올려가실 것을 알지 못합니까? 이제는 당신은 지금 따라가도  엘리야는 작별합니다. 엘리야는 작별하고 엘리야와 같이는 끝까지 못 갑니다.

그만 여기 우리와 같이 있읍시다.' 하는 것을 많이 만류를 했습니다.

이러니까 `잠잠하라. 듣기 싫다. 잠잠하라.' 이렇게 그 유혹의 말을 물리치고 `나는  맹세하고 따라가겠다.' 하나님 맹세한다 말은 하나님이 변치 아니함같이 변치  않는 맹세, `내가 다시는 변치 아니한다. 안 하고 내가 끝까지 따라가겠다.' 하는  그것을 각오하고 그러니까 비로소 엘리야가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요단으로 보내니까 같이 요단으로 가자' 하고 데리고 갔습니다.

둘이 요단을 향해서 가는데 그 선지 사도들은 따라가지는 않고 엘리사를  붙들어서 자기들과 같이 있게 하려고 애를 썼으나 거기 만류를 받지 않으니까  보내 놓고 먼데서 지금 선지 생도들은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요단은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요단강 건너가 가나안은 우리로 말하면 하늘나라요  요단은 하늘나라와 우리와의 그 사이에 경계 노선이 되어 있는 그 죽음을  가리켜서 요단강으로 상징해서 그렇게 많이 말씀을 했습니다. 다른 성경에.

이러기 때문에, 요단으로 가자 하니까 모든 선지 생도 50명은 이제 죽어 주님  따라가는 그 걸음은 못 가니 그만 여기서 지내자 했는데 엘리사는 따라갔습니다.

따라가니까 요단 강 가에서 그렇게 강물이 갈라져서 육지가 되어서 둘이  건너가는 것을 봤습니다. 볼 때에 으례히 생도들은 엘리야와는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기 때문에 그 사선을 초월한 그런 신앙을 가진 줄을 알았고, 거기서  바라보고 있으니까 두 사람이 요단강을 건너가 가지고 비로소 그때에 엘리야가  얠리사에게 소원을 물었습니다.

`네가 뭐하려고 이렇게 따라오느냐?' 소원을 물을 때 그때에 엘리 사가  엘리야에게 말하기를 아무것도 나는 소원이 없고 당신에게 같이 하시는 그  영감의 권능, 영감의 권능을 내가 원하는데, 너무 세대가 악하고 나는 당신보다  말할 수 없는 그래 약한 자이기 때문에 갑절이나 그 영감 주시지 않으면 내가 이  걸음을 감당 못 하겠으니까 그렇게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우리 믿는 신자들이 50인도 그 사람들도 저희 힘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다 벧엘에 있는 선지 생도나 여리고에 있는 선지  생도들이나 그들은 다 저희 힘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요 보통 다른 이종교에서  이렇게 믿는 거와 같이 자기 힘으로 그저 하나님의 도를 믿고, 그들은 불교  믿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도 믿고 그들은 유교 믿는데 우리는 예수교 믿고 또  그는 회회교 믿는데 우리는 예수교 믿고 믿는 종교가 달라서 믿는 것이지,  그러니까 그 도를 믿고 바라보고 이렇게 나가는 것이지 신앙 생활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초인간적인 역사는 없습니다. 초인간적인 역사는 없어.

초인간적인 능력은 없어.

또 그런 것은 거기서 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자기가 바친 후에 네  소원이 뭐이냐 묻기도 했고 하나님의 능력을 줬지 생명을 바치지 않고 생의  애착심 가지고 사는 그자는 항상 땅에 속했기 때문에, 영감이 오면 영감은 육을  벌써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육의 욕심을 죽이지 소원을 죽이지 성질을 죽이지  뜻을 죽이니까 오기 다 죽이고 감정 다 죽이고 소원 다 죽이고 땅의 애착 다  죽여 버리니까 세상 사람은 그거 없으면 멸망인데, 성령이 오면 멸망을 시키는데  그들이 받아들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사선을 넘은, 자기의 생명을 바치지 아니한 그자에게는 하나님의  성신의 권능은 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저 일반적으로 신앙 생활 하니까 믿어서  그저 구원 얻는다 하지만 세상을 이기는 그건 권능의 생애라 하는 것은, 이적의  생애라 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너가고 난 다음에 비로소 네 소원이 뭐이냐 할 때에 영감의 소원을  말했고 영감의 소원을 말할 때에 그때에 네가 끝까지 나를 바라보지 못하면 이제  네가 사선을 넘었다 할지라도 내가 네 눈에 없어지는 그것까지를 바라보지  않으면 이 일이 안 이루어진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엘리야는 회리바람으로 올려서  보이지 않고 공중으로 올라가 안 보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써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세상 끝내는, 이러므로 신앙 모든 선지자들 선배들이  생명을 바쳐서 죽음으로 끝을 내는, 죽음이 끝이 나는, 죽음으로 끝이 나지  그전에는 끝이 안 나는 죽음으로 끝내는 거기까지를 바라보면서 소망하고 나도  주와 함께 죽고 함께 따라가려는 이런 생명을 바쳐서 소원하고 가는 그자에게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교역자회에서도 벌써 몇해 전에 제가 말하기를 `기독교는 기적의  도다. 우리가 말로 설교하는 것은 말세가 됐기 때문에 그 청산유수의 설교,  성경대로의 설교 그 모든 이것은 입에 횡하이 익어서 주일학교 학생들도 옛날  선지자들보다 설교 잘한다. 얼마든지 다 잘한다. 잘하니까 설교 말씀만 듣고는  모른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는 말세에는 기적이다. 이 사람이 설교하는 것은 하나님이  같이한다는 그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표적으로 기적으로 나타나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인간들이 앵무새 모양으로 녹음기인지 원숭이 놀음인지  그거 모른다.' 이러기 때문에 이스라엘 종교 말년에도 예수님이 능한 설교를  했지만 그들이 안 들었습니다. `우리가 네 말을 듣지 못한다. 모든 사람 다 이거  이렇게 권위 있게 설교 다 잘하고 하나님 말씀 다 잘 전하는데 우리로 하여금  네가 메시야인 것을 알게 하려거들랑 표적을 보이라, 우리가 믿을 수 있는 표적을  보이라.' 이럴 때 예수님께서 바다 풍랑을 잔잔하게 하고 5병 2어로 5000명 먹이고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고 상여 매여 나가던 자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살아나고 그런  걸 보고 `이는 하늘에서 온 참 메시야다' 이랬으나 그들에 마귀란 놈이 역사해서  `뭐 메시야? 그렇게 다 그때 깨어날 때가 있어 깨어났지 참으로 그래서 깨어난 줄  아느냐?' 이래 가지고 자꾸 묵살을 시켜서 예수님을 표적으로 증거해도 그때에  부인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하나님이 증거해  주셔야 되지 하나님이 증거해 주시지 아니하시면 인간들의 말만큼온 전부 다  웅변가요 전부 부흥 강사요 전부 성경 박사들이기 때문에 뭐 마귀도 그리 합니다.

공산주의자들도 아주 그렇게 잘 한다, 무신론자들도 잘하고 다 하기 때문에 말만  듣고는 모른다, 하나님의 능력이 친히 와서 역사하는 걸 봐야 우리가 알겠다 하는  그것으로써 그때 `아무래도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을 보여야 한다' 그것을 말을 할  때에 우리 교역자들 가운데에 반대를 했습니다.

반대를 했으나 나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뭘 보고 알 것이냐?  사람들의 하는 일을 가지고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걸 모르겠다. 하나님이,  인간이 하지 않는 하나님이 직접 친히 와서 하시는 일을 봐야 우리가 알지  그렇지 않으면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을 저는 주장하고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진영에서 두 집회를 통해서 그 본인들이 병나은 것을 자기들이 신고를 써서  그대로 내서 그대로 기록해 놓은 것이 이천여 명입니다. 이천여 명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육체의 병이 나았고 심령의 병이 변화된 것은 온 사람들은 거의 다  변화가 됐는데 변화되고 난 다음에는 집어 던져 버리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돌아가 가지고 망령한 사람들이 되어진 것입니다.

이래서, 그때에 엘리야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던지니까 그 옷을 엘리사가 주워  가지고 그 첫 이적이 뭐이냐? 요단강 물을 갈라지게 한 것이 첫 이적이요, 두번째  이적은 그 성에 있는 물이 나빠서 모든 생물들이 죽고 곡식들이 다 썩어서 익지  않는 것을 그것을 방지한 것이 두번째 기적이었고, 세번째 기적은 조롱하는  자들을 다 사자가 와 가지고 찢도록 만든 것이 그것이 셋째의 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무엇을 가르치는 건가? 엘리야가 입었던 겉옷은 그것이 하나의  상징으로 표적으로 나타낸 것인데 엘리야가 입고 있던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엘리야가 입고 있던 하나님의 능력을 이제는 엘리사가 입었습니다. 엘리사가 입고  난 다음에 비로소 요단강물을 갈라져서 육지가 되게 했습니다. 비로소 사선을  초월하는 죽음이 없는 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그 능력을 가졌던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서 예수 믿는다고 하지만 죽음이 없는 길을 걷지 않은 것은  다 땅에 속한 것이라 그것은 기본구원만 있지 건설 구원은 없습니다. 우리는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생명을 가진 새사람으로 사는 자는, 새생명으로 사는  자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지금 새생명으로 사는 자는 영생하고 있지 죽음이  없습니다.

지금도 어떤 사람은 죽음 없는 새생명으로 사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옛사람으로 사는 사람은 그는 죽음이 두려울 것이고 또 죽을 때에 그는 심히  고통스러울 것이고 죽는 그 순간에 비로소 영생을 도로 찾아 그럴 것이나 지금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이거 뭣을 보이느냐 하면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 자만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음 없는 요단강물이 마른 그 인도를  할 수 있다 하는 것을 보여 준 것이오.

비로소 성령의 권능을 입어서만 하나님의 백성들을, 성전 미문에 있으면서  구걸하면 둘이 갈라먹으려 하는 것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만 죄 다 지어서 돈  가지고 오면 서로 갈라먹기 하는 거와 같은 이런 모든 하나의 이 모든  출물꾼이나 주 모아 놓고 성전 안에 들이지 못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성도들이 많아도 그 사람의 생위에 죽음을 벌써 초월한, 죽음이 없는, 요단강이  마르게 해서 죽음 없는 새생명의 사람으로 살게 하는 이 역사가 없으면 그  역사는 다 헛된 역사이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이나 꼭 같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  사는 방편이나 같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사는 생활은 못 삽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사는 생활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으로  사는 그 생활은 먹어도 마셔도 전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삽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지어서 사업하지 않고 죄지어서 돈벌지 않고 죄지어서 자기를 위하지 않고, 죄  없는 자기 위하고 의롭게 자기를 위하고 하나님과 결합되어서 자기를 위하는,  사업도 진리로 하고 영감으로 하고 하나님과 동거동행으로 하지. 억지로 죄를  지어 가면서 그렇게 사업하고 돈버는 거 그런 거 자랑하지 마십시오. 그거 다  죽은 생활입니다.

이러고 이 사선을 넘게 했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그 모든 생물들이 죽는 것을 다,  그 소금은, 소금은 내나 우리에게 말했지만 `소금을 가지고 화목해라' `소금으로  간을 쳐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순종에는 자기가 녹아집니다.

그러면 희생 생활이라, 녹아지는 생활, 세상 소금이 되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이 사람을 만들 수 있고, 이 사람에게는 그 모든 독소들이  죽게 만들고, 죽도록 만들고 결실 못 하게 만드는 그런 독소들 다 제거되는 거, 이래서, 신앙 생활에서 결실 없는 생활 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모두 다  하늘나라에 수입이 되는 생활 하고 땅에서 얻어 사는 생활, `육체를 위해서 심은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으로 심은 자는 영생을 거둔다.' 사람의 심은 것은  그대로 거둔다고 말씀하신 대로 이 모든 사망을 초월한 영원한 생명의 그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성령을 힘입어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서 엘리사는 누구며 엘리야는 누구며 선지 50명은 누구며  선지 생도들은 누구며 길갈에 있는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잘 구분해서, 길갈에 있어도 좋고 벧엘에 있어도 좋고 여리고에  있어도 좋은데 다만 요는 뭐이냐 자기 앞에 인도자가 있는데, 자기 앞에 인도자가  있고 가는데 인도자를 따라가지 않고, 가는 길을 알지만 그길로 가면 이제 좋은  길로 가는 길로 알지만 `나는 그 길 따라가기 싫으니까 나는 그만 여기서  머물겠다' 하는 것으로, 주님 따라 가다가도, 갈 길을 알고 환하게 옳고 그른 것을  알고도 자기가 안일주의로서 자기 주관을 취하고 객관의 영감의 인도를 따르지  않는 것이 탈입니다.

그러면, 길갈에서 있다가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가는 자, 벧엘에서  있다가 하나도 이루지 못하는 자, 다른 사람에게 선지자 선지자 대우만 받고 실은  십자가의 원수의 종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거는 십자가의 원수요.

하나님이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쳐 우리를 구원한 이 길을 따라가면서 제  욕심대로 다 취하고 땅의 것 다 취하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나머지  찌끄러기 가지고 주님 믿는다는 것, 이거는 하나님의 진짜의 도인은 아닙니다.

주님이 오실 때마다 내가 믿음을 보겠느냐 믿는 행위를 보겠느냐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 따라가고 싶은 사람은 자기에게 옳다 인정이 되면 괴릅든지  즐겁든지 자기 돌보지 않고 옳다면 버리지 않고 따라가는, 그 사람이 아무리  어려도 좋습니다. 어려도 좋아. 지금 예수 믿어도 좋습니다. 자기에게 옳다고  인정될 때에는 그 길을 자기 인해서, 자기를 위해서, 자기 편하기 위해서 버리는  거기서부터 주님의 그 초자연의 구원의 역사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내나 부활하기는 부활하고 영생하기는 영생하지만 하늘에 가  가지고 만물에게 필요한 그 권능의 기능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이야  얻기야 얻지만 그는 권능 없어서 마치 불 가운데 구원얻은 거와 마찬가지로 그  기능은 다 벗어버려 버리고, 거기 가서 영생은 합니다. 죽지는 않습니다. 늙지는  않소. 그래 가지고 만날 거기서 영생하면서 팔짱 끼고 여기 가고 저기 가고 평생  놀 것이오. 평생 평안하게 지내. 하나님은 꼭 그대로 보응시킵니다. 십자가를  반대하고 십자가의 원수로서 편안하게 지낸 자는 영원히 평안해. 할 일이 없어.

영원히 편안해.

이래 가지고 일단 택함을 받은 자들은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자는 멸망은 없어.

이러니까 이 성에 가도 할 일이 없어. 거기 가도, 거기 가도 `이것 좀  돕겠습니까?' 할 줄 알아야지? 세상에서 진리대로 사는 일은 전연히 안 해  봤는데. 영감대로 전연히 안 해 봤는데. 육신대로 사는 일만 해 봤는데, 영감 생활  진리 생활이 거기 의로운 생활인데 그거 할 줄 알아야지? 어리석습니다. 하룻밤  나그네입니다. 잠시 잠깐 후면 주님 앞에 우리가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하룻밤 나그네에서도 천한 것을 천한 줄 알고 가난한 것을  가난한 줄 알고 무능을 무능으로 알면서 탄식하는 자가 오늘에 영원을 무시하고  해서 그 나라에서 무능하고 가난하고 천대받고 아주 무용지물 되는 그것은 참  더우기 비참한 것이 됩니다. 이것을 보고 우리가 깨야 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짤막한 세상에 짤막한 존비귀천을 보고 영원한 존비귀천을 깨닫지 못하면 그것은  이 자연 계시를 모르는 사람이오. 그런 것들은 다 자연 계시입니다. 또 특별 계시  성경도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  감사합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보다 옳고 나은 길을 알고 거부하는 이 무서운  자멸하는 길을 다시는 걷지 않게 하시고, 어디까지 어리고 무지한 데 있을지라도  엘리사와 같이 주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대로는 그대로 순종하여 모든 것을 다  기울여 깨달은 대로 순종함으로 마침내 주님이 인도하시는 주의 소원이 우리  구원에 다 이루어지는 저희들 되도록 축복해 주시고 강퍅과 안일과 세상주의  육체주의로서 알고 하나님의 도를 거역하고 순종하지 않는 이런 패역이 우리에게  하나도 없도록 성령으로 감동시켜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들을 인도하신 걸 감사합니다. 이들도 하나님의 자녀 되었사오니 의지할  것 없는 참 거짓부리로 가득 찬 땅위에 주님만이 바라보고 믿고 맡겨 놓고  의지하고 순종할 수 있는 이는 주님 한 분인 것을 깨닫고 다 주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어 구원을 이루어 가게 하시고 모든 악한 유혹에 들지 않고 끝까지 잘  믿어서 옥토에 뿌린 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저희 안에서 주님이 역사하시는 이 십자가의 구속의 사랑의  능력을 저들이 업신여기지 말고 점점 뜨거웁게 가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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