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의 신앙걸음

 

1982. 3. 2. 화새

 

본문:열왕기하 2장 5절-11절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에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엘리사가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행하니라 선지자의 생도 오십 인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섰더니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구원 곧 하늘나라는 택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 인품이나  행위의 어떠함에 따라 천국 가는 것 아니고 순전히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혀준  택한 자들만이 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뱃속에서 유산을 했는데 그것은 어찌 됩니까 할 때에 우리는  성경대로 그가 택한 자라면 구원을 얻었고 택하지 아니한 자라면 구원 얻지  못한다. 어려서 죽었으면 또 믿다가 어떻게 그 낙심하는 행동을 하고 죽었으면  구원이 어찌됩니까 그것도 하나님 앞에 택함을 입은 자이면 구원이 있고 택함을  입지 아니한 자는 구원이 없다는 것으로 증거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의 행위가 위대하니 구원이 어찌됩니까 행위가 위대해도 택함을 입었으면  구원이 있고 택함을 입지 못했으면 구원이 없다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구원은 순전히 하나님의 택함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속하신 것은 택한 자들을 한해서 대속하셨지 알미니안주의가 요사이  인화로 슬기롭게 날뛰는 자들의 그 신앙대로 전 인류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택한 자에게 한해서만 예수님은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이미 받아 놓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나기 전 영원한  때 전부터 우리의 기본구원은 이루어져 가지고 있는 것을 성경이 말씀합니다.

다만 우리가 노력하는 것은 터 위에 집을 짓는 거와 같이 어떤 사람은 금과 은과  보석으로 어떤 사람은 풀과 나무와 짚으로 이렇게 집을 지어 그 공력을 불로  시험할 때에 그 건설해 논 것이 불타지 아니하면 상을 받고 영광을 받고 그것이  다 불타면 구원을 얻으나 불 가운데서 얻은 거와 같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의 인격인품 인질과 인성을 건설한 것이나 자기의 모든 지능을 건설한  것이나 자기 행위 혹은 자기의 이력 자기의 소유 어떤 것을 건설했든지 반드시  그 건설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신 이 심판에 불로 검사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선포해놓으신 이 말씀에 정죄 받지 아니한 것은 무궁세계에  옮겨가고 그 나머지는 다 불타버리는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노력하는 것은 천국 갈 수 없는 내가, 천국 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노력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깨달았으면 잘못 깨달았습니다. 순전히 주님의 공로로만 가는  것입니다. 공으로 가니까 가치가 헐해서 공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이는  지성지공의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 인정을 받고야 가는 하늘나라이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는 지공과 지성에 만족을 줄 수 있는 그런 행위는 어떤 성자라도  추호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대속으로만 갈 수 있지 인간의 행위는 하늘나라에, 예를 들면  억 억만 분의 일의 가치도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너무 값이 크고 많고  인간으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깨끗함에 완전함에 심판을 통과한 하늘나라이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로서는 갈 수 없고 예수님의 완전하신 대속의 이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새생명을 받은 이 공로 예수님이 담당해주신 자에게만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차이는 사람이고 사람이 아니라 차이는 있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은  사람이지만은 그의 처지와 형편과 자체의 됨에 따라 영광도 권세도 가치도 다른  것과 같이 하늘나라의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다 구원 얻어간 자이지만 그의  실력과 그의 처지와 지위와 형편과 그가 가진 모든 하늘나라의 사회 그것은 각각  다릅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크다 작다 영광이 있다 수치다 부끄럽다 이렇게  성경에 표현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사는 삶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의 그 관계가 어떻게  맺어지나? 하나님과의 그 관계 맺어짐이 사람마다 각각 달라 참 천층만층 뭐  억만 층이라도 할 수 없는 지극히 층어리 많은 그 관계에 좀 더 하나님과 가까워  좀 더 친근히 좀 더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이것을 소망하는 노력이요  그 다음에는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권속들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권속들  하늘나라에 시민들 이들과의 관계를 좀 더 좋게 영광되게 권위 있게 가질려는  것이요 그 나라의 지위 그 나라의 실력 그 나라의 부강 그 나라의 가치 그  나라의 어느 정도 필요한 가치를 가진 자인가 하는 이것을 마련하기 위해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큰 태산의 그 발치는 자리가 넓지만은 그 산을 올라 갈수록 범위는  좁고 마지막에 최고의 절정에 도달했을 때에는 그 범위는 좁아 모든 산은 그  아래에 있고 한 봉우리만에 위에 있는 것이 그 산의 절정인 상봉인 것처럼  우리의 신앙걸음도 이러하고 하늘나라도 이러합니다.

그러기에 모든 성도 위에 홀로 계시는 분은 주님이시요 신인양성일위이신  주님이시요 그 위에 홀로 계시는 분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러기에 세상을 걸어가는 사람도 이 태산의 발치와 같이 수많은 성도의 위치가  있고 보다 높은 보다 동지의 신앙 동행의 신앙의 수가 점점 줄어질 것이요.

마지막에는 모든 사람이 여기 붙들리고 저게 붙들리고 하기를 아담 해와 같이  자기에게 붙들린 자, 가인같이 환경에 붙들린 자, 노와 같이 자기의 사업에  붙들린 자, 롯과 같이 가족들에게 붙들린 자, 삼손같이 들릴라에게 붙들린 자,  이렇게 저렇게 해서 출발할 때에는 용감했지마는 이스라엘에게 제일 독특한  인물인 사울도 그는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그 허영에 붙들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붙들리고 수많은 사람이 출발했으나 예를 들어서 만 명이  출발했는데 한 붙들리는 토막을 지나고 보니까 열 명 또 한 토막 지나고 보니까  자기의 단독인 이 독보 홀로 걷는 이 자리에 가는 것을 원하신 것이 주님이  이번에 우리 공회에 우리 졸업생들에게 주시는 요구입니다.

엘리사는 아무 것에게도 붙들리지 아니했습니다. '이만하면 됐다' 고 끝을 맺지  아니했습니다. 아무것에게도 붙들리지 아니하고 끝까지 자기 주를 바라보는 것과  끝까지 자기 주를 따른 것 이 두 가지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는 일반적인 선지 생도들에게도 붙들리지 아니했고 최고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오십 인의 그 마지막 선지 생도들에게도 붙들리지 안 했어. '이 길은 가면 절망의  길이요 이 길은 가면 다 위험 낭패의 길인 줄을 모릅니까 우리와 함께 머뭅시다.'  했지마는 '잠잠하라 나도 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내 주의 살아 계시는 혼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주를 놓지 아니하고 주를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하는  이것을 가졌을 때에 '그러면 같이 가자' 했습니다. 내가 가는 걸음은 요단을 내가  찾아가고 있는 것인데 내가 가겠느냐? 가겠다고 맹세할 때에 같이 갔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늘나라는 갑니다. 구원은 이미  얻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지위를 지금 마련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  지위 수많은 층층의 그 지위를 지금 마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신임하는 그  신임을 지금 마련하고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요구하는 그 요구에 어느 정도  요구할 것이며 어느 정도 필요하며 어느 정도 응할 수 있는가의 자기 위치, 자기  실력, 자기 권위를 지금 마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영원을 결정지우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에서  중단하는 것은 막 바로 하늘나라에서 자기 위치 그 위치에서 중단하는 것이요,  죽는 날까지 끝을 맺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위를 위를 향하여서 중단하지 않고  붙들리지 않고 주만을 소망하면서 따라가는 것은 이것이 곧 하늘나라의 그  실상을 지금 한 걸음 한 걸음 마련해서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다  기쁘게 하는 자요 주님이 기뻐하는 자지만은 보다 기뻐하는 자, 보다 기뻐하는  자, 보다 기뻐하는 자, 보다 기뻐하는 자로 자기를 점점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는 이 세상과 비교 못할 수많은 계급이 있지마는 거게는  불만이나 불평이 없습니다. 원망이 없습니다. 자기가 땅위에서 걸어간 그대로  이루어진 그 하늘나라이기 때문에 그것이 환하게 다 보여지고 고로 불평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고 "네게서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린다"는 말씀은  하늘나라에서 네가 마련한 그대로 하늘나라는 이루어져 있다 네가 포기한 그대로  포기됐고 네가 빼앗긴 그대로 빼앗겨졌다 네가 승리에서 취한 그대로 취해졌다  이런 나라이기 때문에 네가 벧엘의 생도에게도 붙들리지 말라 마지막 여리고  생도에게도 붙들리지 마라 주님만 바라보고 끝까지 주를 따라가는 이것을 잡아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엘리야가 "이제는 다 주께 속한 백성들이 다 죽었고 나만 남았나이다" 하는 그의  자기만이 남았다고 인정하는 그것이 모든 생도를 다 떼버리고 붙들리지 아니하고  "나도 아노라 잠잠하라" '나는 마지막 시간까지 주를 바라보고 따라가는 이  걸음을 지체하지 않겠다' 하는 사람의 주관입니다.

자기 볼 때에 나만 남았다고 할 수 있는 이 외로움의 고독의 독보의 이것이  자기로서는 오만한 자리에 않지 아니하고 붙들리지 아니하고 지체하지 않고  끝까지 걷는 걸음입니다. 먼저 이것부터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진영에 벧엘 학생들이 많습니다. 여리고 학생들이 많습니다. 어떤 교인은  와서 말하기를 주를 위해서 죽으라고 해도 죽기를 소원하려고 해도 살기만  소원되고 죽기를 소원하지 않는 것이 겨우 죄라고 가책 받을 정도인데 죽음을  피하여 땅의 것을 보고 살라고 하니 우리 신앙의 힘이 점점 떨어지나  그러기 때문에 그 교역자가 오기 전 우리의 칼날과 같은 마음은 우리의 뜨겁던  마음은 주를 따라가지 못한 이 자책의 가책에 견딜 수 없던 이 마음 다  사르러지고 과거에 믿었던 것이 도로 광신이다, 미치광이 신앙이다 지나친  신앙이다 이렇게까지 되어졌으니 아무런 주를 위해서 십자가의 걸음을 걸을  용기도 없고 소원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이 세상생활에 이용해서  유익 되게 할까 그것뿐이지 딴 게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교인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런 교역자마다 그 교회는 떨어집니다. 신앙은 떨어집니다.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안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서 고생을 하고 수고를 하고 어려움을  당했다 할지라도 하늘나라에 가서 무궁세계에 가서 보면 너무 주를 지나치게  사랑했다 지나치게 따랐다 나의 세상과 나를 너무 지나치게 희생했다는 그런  후회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우리가 여기에서 단정코 세상 아무것에도 붙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바라보지  않고 누구를 닮지 않고 누구를 본받지 않고 누구를 따르지 않고, 온 세계를  붙들고 움직이는 그 자를 따르지 않고, 유명한 그자를 따르지 않고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인도를 따라 끝까지 주의 인도를 따라 가는  이것으로서 자기 생애를 가진 것 주를 따라 가는 것 아무 것에게도 붙들리지  않고 주님만을 따라가는 것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 요 두 가지만 있는 요것이  출발이 돼야 되고 요것이 정비가 돼야 되고 정돈이 돼야 되지 이게 되기 전에는  암만 해봤자 건설구원은 없습니다. 건설구원은 없습니다.

열 처녀 비유에 밤중에 신랑과 신랑 맞이한 사람은 많이 기다리는 그 처녀들이  있었지만은 등불 킨 자 그 숫자 밖에는 없었습니다. 자기가 무슨 생활하든지  그것이 완성이다 완료다, 요것대로는 완성이 됐다, 요것대로는 이제 피력이 됐다,  역사가 끝났다 하는 그때는 반드시 자기로서는 밤중이 그때 와서 있는 것입니다.

그때에 그 사건으로 그 종류로 절정은 밤중인데 밤중이 오는데 그 밤중에 붙들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밤중을 깨트리는 자에게 밤중에게 삼켜지지 안 한자들이  신랑을 맞이했습니다.

이러기에 제가 온갖 구비한 신앙 생활하고 모든 사람들에게는 인정을 받는다  할지라도 우리가 알 것입니다. 마지막에 절정이 되는 그 절정 자기가 환하게  압니다. 이제까지의 살던 생활 요것에게 붙들리고 조것에게 붙들리고 해서 분명히  자기가 앞으로 걸어가야 될 그 길을 자기가 중단했던 오만한 자리에 앉았느냐  끝까지 자기는 걸어서 갔더냐, 끝까지 걸어갔느냐? 하는 그것을 자기가 알  것입니다. 이것이 없는 자는 주를 따르나 주와도 자기는 상관없고 자기 주도  자기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주의 이름으로 능한 일도 했고 귀신도 쫓아냈고 선지자 노릇도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도 하고 이렇게 했는데 나를 영접해 주시옵소서" "불의를  행하는 자야 나에게서 물러가라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누구 이름으로 일  했는데 최후 최종의 절정의 그 승리에는 상관없다 그 말입니다.

주님은 영생을 말씀할 때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거기에서만 영생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했습니다.

영생이라 말은 무궁세계 가서 남아있는 것입니다. 심판을 통과해서 무궁세계 있는  것입니다. 심판을 통과해서 무궁세계에 남아있을 그것은 네가 다 하느냐 다해야  얻도록 된 것입니다.

자기가 일생동안 어떤 종류의 신앙생활은 계속했다 할지라도 그 일에 완성으로  영생으로 되는 하늘나라의 것으로 승격이 되고 성화가 되어지는 데는 다 하는  순서가 통과한 다음에 됩니다. 이 안에 것은 다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입니다. 다 하지 아니한 그 이하의 것은 모래 위에 지은 집입니다. 반석은  주님이시오. 하나님이십니다. 주에게 속하고 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주의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것입니다. 어떤 인간의 것입니다. 어떤 물질의 것입니다.

주님이 이 진영에 교역자로 양성한 자에게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이것입니다.

작년에도 주님이 이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올해도 이것을 요구했습니다. 이것을  이루지 안한 자 교역자가 산태가 나서 가장 심판을 많이 받을 자가 교역자입니다.

가장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자가 교역자입니다. 가장 수많은 사람들을 속인 자가  교역자요. 하나님의 이름을 복음을 천국을 빙자해서 인간을 삼키는 최고의  착취자입니다. 도적이요 강도요 이리입니다. 이것이 되지 못하는 여기에서 우리가  울다가 끝나고 몸부림치다가 끝날지라도 우리의 걸어갈 걸음은 이 걸음입니다.

이것이 실은 신앙의 초보입니다. 초보요.

예수님께서 장성한 신앙들에게 말씀하시지 아니하시고 처음에 믿는 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는 그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아무 것에게도 붙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사로잡은 자는 사로잡는다" 무엇이든지 내가 하나 가지고  갈라하면 반드시 여기에서 붙들리게 될 것이다.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안 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같은 말씀입니다.

장성한 신앙 목사들에게 요구하고 신학자에게 요구하는 말씀 아닙니다.

평신도에게 이제 믿는 사람에게도 "나를 따라 오려거든 네가 영생을 얻으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네게 해당되는 고난을 각오하고 나를 따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에서 붙들리면 신앙생활 하나 안 하나 영생은 없습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도 반드시 그 일에는 자기를 부인해야 통과할 수 있는 고 밤이  옵니다. 고 토막이 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를 따른 적으면 적고 작으면 작은  대로 고대로의 요 하나의 시험의 절정이 있어 고것을 통과한 거기에서부터  영생입니다.

일생동안 예수 믿어야 영생은 하나도 이루지 못한 자들이 많습니다.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 거게는 금과 은과 보석이 하나도 섞이지 안 했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그 집은 반석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가 뭐입니까? 주님이 선포한 계약대로가 아닙니까 어데 주를 따라가다가  돈이 붙들 때에는 돈에게 붙들리고, 지위나 권세가 붙들 때에는 지위와 권세에  붙들리고, 네 가정이 붙들 때에는 가정에게 붙들리고, 네 몸이 붙들 때는 내  몸에게 붙들리고, 네 생명이 붙들 때에는 생명에게 붙들리고, 영생을 이루라고  하는 성경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없습니다.

어리석게 속지를 맙시다. 이렇게 이 단계를 통과하면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면 그  다음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는 것이 자기 생활이요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 된 사람으로 사는 것이  자기 생활이라.

 이러기에 자기의 죽는 날까지의 원수는 자기 안에 자기 아닌 자기로 더불어  싸우는 이것이 자기의 전투였습니다. 바울이 죽는 날까지 이 싸움에서 피곤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되기 전에는 그 다음 신앙생활 암만 성경 읽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모릅니다.

우리가 수많은 것을 바라보던 그 바라보던 것을 다 버리고 이제 주님 한 분만 내  바라보는 것 나를 죽이고 살리는 것도, 당신 부하고 가난하게 하는 것도, 당신이  나를 어떻게 하는 것도, 당신 어데서든지 당신 외에는 필요가 없어 당신만이  주권을 가지시고 당신만이 할 수 있다는 이것을 인정하고 하나님 그분이 나를  인정하고 하나님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 그분을 존귀케 하고 하나님  그분을 위하고 자기는 주님 외에 아무것도 없는 이것이 우리에게 될 수 있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잠잠하라 나도 안다 나는 끝까지 주를 따라가고 주를 떠나지 않겠다" 하는  이것이 되면 다 됩니다. 이것이 되면 그 다음에 가로막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  다음에 가로막는 것은 죽음입니다. 이 일차의 준비가 되면 그 다음에 주님이  이끌고 가시는 그 걸음은 나를 요단으로 보내신다 죽음입니다. 이 두 가지 준비가  되면 죽음을 향하여 따라나섭니다.

그러면 세상은 아무 것으로도 막을 수가 없어. 돈으로도 못 막아, 권세로도 못  막아, 안일로도 못 막아, 가족으로도 못 막아, 가정으로도 못 막아, 어떤 평안이나  쾌락으로도 못 막아 온 세상으로도 막지 못해. 마지막에 강한 자의 방어가 이것이  죽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동안 종노릇되어서 어떻게 강한 자라도  죽인다 하면 죽음 앞에는 꼼짝은 못하고 죽음에게 인생이 다 붙들리고  가로막혀서 자기 길을 다 거게 붙들리고 매여서 가지를 못하고 있는 그 자들을  해방하려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일생동안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종노릇하는 자를  놓아주기 위해서 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죽음에게 붙들리지 않는 자 죽음의 공포가 없어진 자  죽음의 위협을 당하지 않는 자 죽음에게 머리 숙이지 않는 자 죽음에게 굴복하지  않는 자 이 자 만들기 위해서 주님 오셨습니다.

택한 자가 많고 부름을 입어 중생 된 자가 많아도 이 수많은 무리 가운데 당신이  원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동안 종 되는 그자를  놓아주기 위해서 죽음을 초월하는 자, 죽음을 밟는 자, 죽음을 호령치는 자,  죽음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통과하는 자,  왜 여기에 서서 하나님의 나타납니다. 여기에 서서 하나님은 증거 되고 하나님은  나타나고 여기에서 하나님은 초인간적인 역사를 할 수 있습니다. 비로소 초인간의  역사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서서만 비로소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서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광도 하나님의 권위도 하나님의 구원도 여기에 서서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그 밑에 있는 지저분한 그것은 불교에도  있고 모든 이종교에 다 있습니다.

왜 종교 통일이 왜 나서느냐? 왜 기독교가 이렇게 뚜렷이 자존자를 근거한 이  기독교가 이 목적을 위해서 지음 받은 이 피조물들과 동등이 되어졌느냐? 왜  종교통일이 되느냐? 왜 이를 주장하느냐? 왜 우리 기독자들이 수많은 순교자로  나온 천주교와 개혁교와 왜 타협이 되느냐? 어떻게 종교 타협이 되느냐? 건방진  것입니다. 건방진 것이요 주는 노여워합니다. 이것을 꿰뚫기 전에는 한국에  당신의 권능이 나타나지 안 할 것입니다.

수많은 당신을 바라보는 자가 있다 할지라도 이 두 가지가 자기의 것이 된 자 이  두 가지 외에는 자기 것이 없는 이 두 가지가 자기 것 된 자 그 다음에 가로막는  이 죽음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통과한 자, 통과한 자. 엘리사의 소원이 어떻게  하면 주님과 같이 자기를 비어 종의 형상을 가져 피조물 인간처럼 되어 죽기까지  복종하는가 어떻게 하면 주와 같이 아버지에게 당신의 비운 것처럼 어떻게 하면  주님 앞에 나를 완전히 비울까 나를 완전히 비워 그분으로 동하고 정할까 요  소원 어떻게 하면 당신이 소원하는 대로 이 모든 것을 내게 맡겨주신 이 양을  위해서 무리를 위해서 이것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남은 거 하나도 없이 솔박 다  바치고 갈 수 있을까 하는 요 영감 요것을 원하는 교역자가 필요합니다.

요것을 원하지 않는 교역자는 가짜입니다. 절도요 강도입니다. 이리입니다.

교회들이여 이것을 원하지 않는 자를 거짓 선지자로 알고 배척하십시오. 이것을  원하지 않는 자신을 탄식하고 죽이십시오. 안됩니다. 이것만이 권능입니다.

거기에서 주님이 깨트린 요단강 물을 엘리사 자기도 깨트릴 수 있었습니다. 이 세  가지 단계로 통과한 거기에 주님이 걸어가신 걸음을 걸을 수가 있고 주님이 하신  것보다 더 큰일도 할 수가 있고 주님이 맡기신 자기의 십자가의 이 일을 감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땅위에 소망을 가진 자가 땅위에 자기를 붙들고 매어있는 줄이 가득 찬 자가  어떻게 자유할 수 있겠습니까? "거리끼고 얽매이는 죄를 벗어 버리라"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주를 바라보라 그는 십자가를 통과한 다음에 승리를 가졌다"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제도 이렇게 모였던 신문을 한 이십분 들춰봤는데 전 대통령을  죽일라하는 그 암살단이 우리나라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나라에 망라해 가지고  있어. 외나 괴수는 벌써 이북으로 달아나 버렸고 거기 심부름하던 자만 붙들렸어.

게릴라 훈련받은 십만 명이 벌써 남파가 됐어. 이거 미국 국방의 군부성에서  그것을 발표를 했어.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면 우리가 두려워 떨어서 어떤 강대국으로 피난을 갈 것입니까? 어리석소.

가다가 비행기가 추락되어서 죽을는지 모릅니다. 어리석소. 그러면 우리가 벌벌  떨면서 낙망하고 공포 속에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아예 그들에게 공산군의  깃대를 들고 앞에 환영하려 하는 그런 망령을 부릴 긴가 아닙니다.

당신이 말씀을 해도 안 들으니 이것을 원합니다. 엘리사의 후배를 원합니다.

엘리사를 원합니다. 엘리사의 신앙을 원합니다. 이것만이 당신에게 필요 있는  것입니다. 나머지기 지저분한 것은 행여나 거게서 이것이 생길까 해서 당신이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니면 무신론주의를 깨트릴 자가 없고 유물주의를 깨트릴 자가 없고  이것이 아니면 하나님 없다고 물질이 제일이라는 과학만능을 부르짖고 있는  이때에 이것을 탁월하시고 이것을 창조하시고 이것의 주가 되시고 이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당신을 이 세 가지가 없는 자를 통해서는 당신이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 나타낼 수가 없소. 당신에게 필요한 일꾼은 이것입니다. 당신의 징계에  필요한 사람은 이 인물입니다. 당신이 구하고 찾는 것은 이것입니다.

신학생이 수만 명 수천 명 나와도 이것이 아닌 것은 당신에게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만이 당신에게 요구됩니다. 사이비한 것으로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그  건축가가 당신에게 무슨 필요가 있겠소 모래 위에 짓는 그 건축가가 당신에게  무슨 필요가 있겠소.

이스라엘은 수많은 이적으로 그들을 날개로 날라서 옮긴 거와 같이 이렇게  기적과 이사 모든 권능을 다 먹고 지냈지마는 하나님은 그렇다고 해 가지고  당신의 목표가 없는 것 아닙니다. 당신의 구별이 없는 것 아닙니다.

이렇게 사랑하시고 오만 걸 다 희생했지마는 마지막에는 당신을 이렇게 엘리사  신앙 같은 이 신앙을 가지지 안 할 자들은 광야에서 다 시체가 되어서 다  죽었습니다. 광야가 무엇입니까? 세상 아닙니까? 아무리 수십 년 예수 믿어도  그이의 진액이나 생애는 다 세상에 썩어지고 말았습니다. 네, 언제 보면 가는  것처럼 하다가 마지막에 보면 여기에서 붙들리고 저게 붙들려서 안일주의로 제  실속만 차립니다. 얼마든지 차리십시오. 주님도 차립니다. 암만 여기에서 차려봤자  주님 차지하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고런 조브라운 더러운 생각 가지지 마십시오. 주님에게 어떻게 되는 것보다도  네게 이해에 어찌되느냐 내게 유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 어찌 되느냐  주님보다 더더 사랑하고 더 위하고 더 바라보고 더 좋아하고 더 붙들리고 한  것이 열도 스물도 더 되는데 그게 주님 앞에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하나만 있는  자도 필요가 없습니다.

네 목숨을 미워하지 않는 자는, 네 부모와 자매를 위하지 않는 자는 그 말은  위하라 당신에 비교해서 당신과 비교해서 둘 중에 어느 것이냐? 할 때에 당신을  사랑하고 그것은 버리는 자가 아니면 당신에게 합당치 않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는 이렇게 뚜렷합니다. 이렇게 좁습니다. 이 경계선이 뚜렷합니다.

 우리는 어떤 데 있습니까? 십자가의 원수로 십자가 밑에서 예수의 공로와  예수의 이 복음과 이것만 팔아먹고 있는 이런 자들이 아닙니까? 어리석습니다.

스스로 속는 자입니다. “내가 냉수 한 그릇도 결단코 그 상을 잃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주님이십니다.

이 세 가지 안되면 안돼. 세 가지, 어제 졸업한 학생들도 이거 이거 이거 각오  않으면 필요 없는 물건이요. 필요 없는 인물, 아무 필요 없어. 교역자 산태가  났어. 이거는 내 말이 아닙니다. ○○○ 이라는 그 조사님이 말하기를 그래 말해  ‘요새 교역자가 산태가 났어’‘교역자가 산태가 났다니 무슨 소리요’ ‘마구 교역자  산태에 치여서 사람들이 죽고 있지 이 참 교역자는 없습니다.’ 얼마든지 많이  있는데 아, 신학교에서 학생들만 얼마든지 많이만, 숫자 많으면 숫자 많은 게  필요가 없어 숫자가 많은 게 필요가 없어.

이 세 가지가 되기 전에는 오늘 세대에 이 공산주의의 칼날 앞에 하나님의  교회의 일꾼으로 필요가 없어. 필요가 없습니다. 교인들도 들으십시오. 만일 이 세  가지가 없으면 가짜 교역자입니다. 오늘에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에 라디오 방송만 들으면 얼마든지 설교가 아침 벌써 네 시 되면 네시부터  시작해 가지고 하루 종일 뜨문뜨문 나오는 설교가 적어도 아마 한 이십여 개에서  들어올 것입니다. 부산도 그렇게 서울도 그렇게 기독교 방송만 들어도  그러합니다. 기독교 방송에서도 이 사회방송에서도 설교 안나오는 방송 없습니다.

설교 잘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다."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다 엘리사를 통해서 그때의 시대를 정리했지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하나도 필요가 없었어요.

엘리사 한사람을 가지고 유다 나라를 다스렸고 이스라엘에게 예언을 했어. 요 세  가지 아무 것에게도 붙들리지 않고 주님 바라봐. 주님 한 분으로 모든 걸  하려하는 사람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는 사람. 자기 하는 일은 뭐인데? 주님  따라가는 것 이 둘 뿐이라. 어데까지 따라가 요단강을 넘었어. 죽음을 넘어  죽음에 막히지 안 했어.

모든 무리들에게 붙들려 아무에게 붙들리지 안 했고 아무에게도 붙들리지 안  했고 아무 것에게도 막히지 안 했고 최종의 소원이, 요 두 가지라 주님의 영감,  요 두 가지 자기를 아버지에게 대해서 주님이 당신의 죽으심같이 주님을 향하여  자기 비웃는 것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 맡겨주신 양떼 위해서 다 바치는 것 요거  요 세 가지 요 인물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좋습니다. 학벌 없어도 좋소  용모 없어도 좋소 언변 없어도 좋소.

요 세 가지 있는 자가 오늘 한국 교회 필요하고 세계 교회 필요합니다. 요게 없는  교역자들이 세상 가지고 목회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는 완전히 세상화  됐습니다. 이름만 교회지 본질이나 본성은 그거는 세상과 꼭 같습니다. 세상이  이름으로 아닌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보이지 않는 지금 다 까물어져 가는 벌써 그림자가 없어서  그림자가 없어지는 햇빛이 가리어질 때에는 있을 때는 그림자도 검고 흰 기  있지마는 그림자가 햇빛이 다 가리어지면 음지 양지가 없습니다. 어둡고 밝은 게  없어. 점점 그림자가 가서 이제는 주님의 빛이 없는 이거 세상인지 뭐인지 교회나  세상이나 아무 구별 없어. 이것이 오늘 교회입니다. 이것이 신자요 이것이 위대한  교역자들이요 통분할 일입니다. 통분할 일입니다. 요런 인본주의 요런 세상주의  요런 자가 주의 요런 물질주의 주님이 원수로 갚을 날이 옵니다.

이북에서 칼을 갈고 있는 이 칼은 이 칼입니다. 이런 자들을 다 칠 칼입니다.

이것을 박살 시킬 칼입니다. 깨십시오 깨시오 깨요. 어리석지 말아야 합니다.

공연히 교역자의 이 하늘나라와 예수와 복음을 팔아 가지고 세상을 사는 이것만  보고 아예, 그러면 돌아서야 됩니다. 오늘에는 이 세 가지 없는 교역자는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 가지 없는 교인도 다 떨어집니다. 이것이 있을까 해서 그렇지.

과거 왜정말년에도 보면 교역자만 승리하는 게 아니요 교역자에게 그 승리한  자의 수나 그 교역자 가운데서 승리한 그 승리의 프로 수나 평신도에게 승리한  프로 수나 같습니다.

그러기에 평신도든지 교역자든지 이 세 가지는 준비됩니다. 이 세 가지 준비되지  않으면 앞으로 하나님을 증거 할 수도 없고 나타낼 수도 없고 이제 하나님께서  칼을 가는 이 칼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문제가 아니요. 우리는 출세가 문제가 아니라  세상에서 인정받는 게 문제가 아니라 요 세 가지 이것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군병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간단하게 하면서 십자가의 도는  죽음으로 죽음을 넘어 죽음을 넘어 삶을 바라는 것이 십자가의 도인데 죽음  이편에 서 있는 것은 십자가의 원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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