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목자


선지자선교회 1984년 5월 30일 수야

 

본문 : 시편 23장 1절∼6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 말씀이 다음 공과가 될 겁니다. 공과를 모두 받지 안했으니까 공과는 읽지  안하고 고게 대해서 잠깐 좀 해석만 하겠습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성호. 하나님의 이름은 성호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처음에는 하나님이라고  이렇게 나타내시고 그 후 인간과 계약을 선포하고 난 뒤에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늘 이렇게 당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라다가 오랜 후에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나타내지를 아니하고 그저 하나님이라 이렇게 나타냈고 또  메시아라 이래 나타냈고 그렇게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면 그때 창세기 1장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물위에 운행하신 그분이 누구시며  또 만물을 만드시고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실 때에는 우리가 사람을 어떻게  만들까 하는 그런 복수로 나타났으니 그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를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우리라고 그렇게 복수성을 나타냈습니다. 하나님이 세  분이 아니고 위를 가리켜서 삼위로 그렇게. 삼위가 의논해 가지고 사람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 뒤에 아담 하와를 에덴동산으로 인도하시고 거기에  머물도록 하나님이 또 약속을 세우시고 그 뒤 범죄했을 때에 또 하나님이  나타나셔 가지고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고, 또 여인의 후손으로 구원할  것을 약속하시고, 그 후 가인과 아벨에게도 나타나셨고, 에녹에게도 나타나셨고.

노아에게도 나타나시고, 아브라함에게도 나타나신 그 하나님은 누구신가? 그  하나님이 삼위 중에 이위가 언제든지 나타나서 역사했습니다. 삼위중에 이위가  나타나서 역사하셨고, 또 거기에 이위가 역사하시는 데에 돕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감이 돕는 일을 했습니다. 그때 나타나신  하나님이 때가 되매 사람되어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이래서, 요한복음 1장에는 '그가 만물을 지으셨다' 그렇게 말씀하셨고 또 '그가  세상을 지으셨다' 그랬습니다.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 그렇게  말씀하셨고, 또 세상을 가리켜서 자기 땅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자기 땅에  오나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안했다' 인류를 당신의 백성이라 이렇게 했습니다.

'그분이 세상을 지으시고 만물을 창조하시고, 땅과 인류는 당신의 것인데 그분이  사람으로 나타나셨으니 아버지의 독생자요 곧 진리와 은혜가 충만하더라'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이렇게 기록한 이 성구를 보고  여호와 하나님은 상고 때 하나님이요 옛적 하나님이니 곧 성부를 말하는 것인가?  그러면, 성자 위에 성부를 말씀하는가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이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세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런 이단들도 나와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많이 유혹을 시키고, 또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는 다  같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차별이 있다' 그래 가지고, 또 그런 이단을 가지고  사람들을 유혹을 시키고, 정통은 지혜도 권능도 모든 사랑도 꼭 같고. 본체는  하나이신, 이래서 삼위나 일체의 하나님이라 그렇게들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잘못 생각하면 여기에 여호와를 바로 도성인신하신 주님의 그  신성으로 믿지 않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여기 여호와는 도성인신하신 주님의  신성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고. 또 성령의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고, 성자의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고 이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이사야  선지는 가리켜서 '영존하신 아버지라' 그렇게 발표했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많이 말했지만 이 여호와는 하나님을 가리켜 말하는데, 이  여호와 하나님이 상고 때 하나님이나 지금 우리에게 나타나신,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신 이 주님과  다른 하나님으로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있기 쉽습니다. 그거는 잘못 보는  것입니다. 곧 여호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물위에 운행하셨고  아담 하와를 인도를 하셨고 또 그를 축출할 때도 예수님이 주장을 해 가지고  삼위가 의논해서 에덴동산에서 쫓아냈고, 또 그 후에도 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같이 계셨기 때문에 베드로전서 3장에는 말씀하시기를 '그가 영으로 옥에 갇힌  영들에게 다 전파했다.' 옥에 갇힌 영이라 말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고 하니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기 전에는 인류는, 전부 다 사망과  죄악의 옥에 갇혀 있던 자 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해서 원죄 아래에 있을  때부터 주님이 늘 인간 구원을 책임지시고 역사하셨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 여호와라고 하는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인데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가? 계약의 하나님이라 말입니다. 계약의  하나님. 하나님이 사람으로 더불어 계약을 세우신 이 계약을 세우시고 계약대로  된 목자라 그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계약을 세우시고 계약대로 이행하는  하나님이신데 이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이 하나님은 계약으로 계약의 상대자인  우리들의 목자가 되셨다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계약의 하나님, 계약의  목자. 계약의 목자, 그러면, 계약으로 목자 됐고 계약을 세우고 계약 이행하는  계약의 목자시요 계약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고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하는 이 여호와는 곧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들에게 목자가 되신 주님이신데 목자가 되시되 계약으로, 계약대로  목자가 된다 그말입니다. 계약대로 목자가 되신 주님이시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러면, 이 계약대로 목자가 된 하나님이신데,  그러면, 이 계약대로 목자된 하나님이시면 이미 목자가 되어 있는 하나님이시냐  앞으로 우리 행위 여하에 따라서 우리의 목자가 되실 하나님이시냐? 되실  하나님이 아니고 이미 우리의 목자가 되어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요것을  단단히 믿어야 됩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시나  성령님이시나 또 하나님 아버지라고 우리들이 부를 때의 성부님이시나 다 한  하나님이신데, 성부도 성자도 성령도 다 우리의 목자가 되어 있는데, 목자가  되어 있되 계약 목자라. 계약적 목자라, 계약대로의 목자라.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의 주님 되신 것도 계약을 선포해 놓으시고 계약대로의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계약해 놓으신 이 계약은 곧 주님을 나타내신 계시입니다.

신구약 성경 이 말씀은 계약인데 이 계약이 주님은 아닙니다. 계약이 하나님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약대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시되 계약대로 나타나셨고. 또 우리에게 대해서 역사하시되  계약대로 역사하시고, 또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되 계약대로 당신을 상대해야  상대가 되지 이 계약을 어겨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계약을 어겨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우리도 이 계약을 어겨서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여호와 하나님이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 계약의 하나님은 계약으로 나에게 목자가 되었다.

계약의 목자가 되었다. 계약대로 목자됐고, 계약대로 행하는 목자됐고. 또  계약대로 이행하는 우리의 목자가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 계약을, 계약을 영접하는 것이 곧 여호와 목자를 영접하는  것이요 이 계약을 배반하는 것이 여호와 목자를 배반하는 것이요 이 계약에  복종하는 것이 여호와 목자에게 우리가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계약의  하나님이 우리 목자 됐는데, 계약의 목자된 하나님, 계약 의 목자 하나님,  계약의 목자 하나님, 계약의 목자 하나님을 우리가 사귀는 데도, 사귀는 데도  계약대로 사귀어야 하고, 또 주님이 우리에게 온갖 은혜를 베푸실 때도 계약대로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곧 계약하신 하나님은 생존하신 신격으로 계시는 하나님이시오  계약은 약속이니까, 약속이니까 이는 진리요, 신격성이 없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계약대로 우리에게 모든 일을 상관하시고, 또 우리도 하나님에게  이 계약대로 상관을 할 때에 관계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온갖 은혜를 베푸실 때에도 요 계약대로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기도할 때도 이 계약된 계약대로 기도해서 계약에 맞았을 때에 또  계약대로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서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계약이라 이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계약의 목자라,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 계약의 하나님은 계약으로 나에게  목자라, 계약 목자라. 하나님은 계약이라. 하나님은 진리라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은 계약이라, 하나님은 진리라. 진리는 하나님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진리시요 하나님은 계약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은 생존하신 하나님으로서 우리의 인격과 같은  신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신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약의 하나님으로서 그 계약을 우리에게 선포해 놨는데 선포 해 놓은 계약은  어떤 것인가? 신구약 성경은 다 그 계약입니다. 그래서 구약이라 말은 처음  약속을 선포한 약속이라 말이오, 신약이라 말은 그 후에 하나님이 우리와 더불어  선포해 놓은 약속이라. 그러면, 구약과 신약 이 두 계약은 하나님과 우리 성도들  사이에 계약해 놓든 이 계약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이라 말은 새로  약속했다고 새로울 신(新)자, 약속 약(約)자 신약이요, 구약은 옛날 처음에  약속했다 해서 예 구(舊)자' 약속 약(約)자 구약입니다. 그래서 이 계약이  신구약 성경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계약. 계약으로 우리에게 목자가 되었습니다. 계약  목자의 하나님이라. 계약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라, 계약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라, 계약의 하나님. 계약의 하나님 목자라 이렇게 해서 어쨌든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약으로 목자가 되었고 계약으로 모든 일을 하시고 우리도 또  계약으로 그분을 상대하고, 이렇게 이 계약이 하나님이 아니지만 하나님이 이  계약으로 역사하기 때문에, 이 계약은 무인격적 무신격적인 그 이치요, 이치이나  이 이치 안에는 자존하신 하나님이 이 계약주가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계약은 신격 존재가 아니요 생존 존재가 아니지만 이 계약은  하나님과 함께 하셔서 하나님은 요 계약대로 우리에게 모든 일을 베푸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계약을 우리가 영접하면 곧, 계약을 영접하면, 계약이 여호와  하나님은 아닌 데 이 계약을 영접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영접함이 되고, 또 이  계약을 배반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함이 되고, 또 이 계약대로 실행을 하면  이 계약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되고, 또 이 계약대로 내가 살면,  계약과 같이 있으면 하나님 말씀은 말씀대로 가는데 나는 그 말씀에게 떨어져서  말씀은 말씀대로 나는 나대로 떨어지면 곧 여호와 하나님. 우리의 목자되신  여호와 하나님과 나뉘어지는 것이 되고, 우리가 이 계약이 가는 데에 내가 가고  계약이 머무는 데에 내가 머물고, 계약이 감옥에 들어가면 나도 감옥에 들어가고  계약이 사람들에게 천대받으면 나도 천대받고 이 계약과 내가 동거 동행을 하는  이것이 곧 계약 하나님. 우리의 목자가 되신 계약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이 요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그러면 여호와는 우리의 목자인데 목자이신데 그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목자시니, 그분이 우리의 목자가 이미 돼 가지고 있는 목자인데. 이 목 자를  우리가 배반치만 안하고 이 목자와 함께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형통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목자가. 계약 목자가 나와 함께만 있고 내가 이 계약 목자를 떠나지만 안하고  계약 목자의 슬하에 이 계약 목자를 모시고 이 계약 목자에게 속해 있기만  있으면 우리에게는 영적이나 육적이나 천국이나 세상이나 하나님께 대해서나  인류에 대해서나 만물에 대해서나 아무 면도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이 다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런데, 여기에 여호와는 우리의 목자시니 우리라고 이렇게 복수를 쓰지 안하고  나의 목자라고 단수를 썼습니다. 단수를 쓴 거는 왜 단수를 썼는고 하니 여호와  하나님이 내 목자로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를 보호하시고 나에게 모든  약속을 이루어 주시는 데는 꼭 개인적이지 단체적이 아닙니다. 아무리 수많은 그  단체가 여호와 하나님의 계약대로 이행을 해서, 그 단체의 99명이 계약대로  이행을 해서 하나님이 99명에게 계약대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데 나 한 사람이  그 계약대로 이행 안 했으면 이행 안한 나 한 사람에게는 아흔 아홉 사람이  계약대로 이행했지만 이행하지 안한 나에게는 하나님이 내 목자가 되질  않습니다. 내 목자가 되 지 안하고 나와는 이 목자 면에서 상관이 없게 됩니다.

 또 그와 반대로 모든 사람이, 백 명 가운데에 구십 구 명이 이 계약을 어겨서  주님을 배반했습니다. 계약을 어기는 것이 주님을 배반하는 것이 요 주님을  떠나는 것이니까 계약을 어겨서 백명 중에 99명이 계약을 어겼으니까 이  도매금으로 말한다고 하면 '백명 가운데에 99명 이 계약 범했으니까 한 사람  그것이야 뭐 범했거나 안 범했거나 그것 또 말할 게 뭐 있겠나? 전체가 다 범한  것이지.' 그만 이렇게 도매금으로 우리는 생각하기 쉽겠는데 하나님께서 그걸  구별해서 아흔 아홉 사람이 계약을 지키지 안했다 할지라도 한 사람이 계약을  지켰으면 지킨 그 한 사람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이 계약적으로 상대를 하신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이 목자되신, 계약의 하나님이 계약적으로 목자된,  계약으로 목자된 이 하나님에게 대한 이 계약 상대는 단체적이 아니고  개인적이다, 개별적이다, 단체적이 아니고 개별적이다 하는 요것을 요게서  똑똑히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시니' 이랬더라면 이 전체를 다  통합해서 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여간 잘한 사람이 있고 또 잘못한 사람이  있다 해도 이래 하겠는데 요게는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이는 그저 띄워 놓고 하는 말이 아니고.

여호와가 목자가 되어 이 목자만 모시고 목자를 떠나지만 안하면 그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 다음에 기록했습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도다" 하는 이 말씀은 지난번에 설명을 했는데, 고 신령한 것은 다  내비두고 그저 알기 쉽게, 요 2절에 있는 말씀은 우리 이 계약을 상대하는  자에게 여호와를 자기 목자로 모시고, 여호와를 목자로 모시고 이 목자를  배반치만 안하면, 이 목자에게서 딴 데로 도망쳐서 딴 데로 가지만 안하면, 이  목자를 모시고만 있으면 말입니다. 이 목자를 모시고 만 있으면 의식주를 다  책임지신다 하는 걸 말합니다. 의식주를 책임지신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도다" 하는 것은 의식주를 책임지신다,  영적 의식주도 책임지시고 육적 의식주도 책임지시고,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의  의식주도 책임지시고 영원무궁한 의식주도 다 책임지신다. 우리의 심령의  양식이나 우리의 영의 양식이나 우리 몸의 양식이나. 또 우리 심령이 평안하게  쉬는 것이나 거처하는 것이나 이 몸이 거처하는 것이나 또 우리의 영이 거처하는  것이나 모든 의식주에 대해서 책임을 지신다 하는 것을 여기에 나타냈습니다.

 그 다음에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언행심사의, 언행심사의 전 행동을 책임진다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만 내가 모시고, 이 하나님만 배척하지 안하고 이  하나님만 모시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 여호와 하나님만 놓지 안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모시고 있으면 전 생활을 활동을 책임진다, 전 행동을 책임진다.

그러면, 의식주를 첫째 책임져, 그 다음에는 모든 행동을 책임집니다. 그러면,  영의 행동도. 양심의 행동도, 마음의 움직임도. 몸의 움직임도 이러니까, 우리의  말이나 마음이나 생각이나 행동이나 이 모든 전부를 다 책임지신다 목자가 다  책임지시고 그걸 다 잘해 줍니다.

 "인도하시는 도다"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우리가 어떠한 곳에 다녀도  우리의 모든 위험을 당신이 다 방비해서 안보의 책임을 지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치 안하면 안보의 책임을 지십니다. 우리의 몸의 안보를  책임지시고, 우리의 몸의 안보를 책임지시고, 우리의 가정의 안보를 책임지시고  우리의 모든 사업의 안보를 책임지시고, 우리의 그 심령의 그 안보를  책임지시고. 우리의 그 모든 행동을 시험에 들지 않도록 안보를 책임지시고.

우리 영육 금생 내세의 전 안보를 책임진다 하는 것을 여기에 계약에  선포합니다. 책임지신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래서, 하나님의,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라 말은 하나님의 섭리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섭리가, 하나님의 섭리가 그 전부가 결과적으로는 나를 위하는 섭리가 된다.

여호와만 우리가 목자로 모시고 여호와만 배반치 안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모든 섭리. 우주에 대한 섭리, 국제에 대한 섭리, 만민에  대한 섭리. 춘하추동 사시에 대한 섭리. 흉년. 전쟁 모든, 하나님의 섭리인데,  자연 섭리, 인류에 대한 섭리 모든 이 온갖 섭리 그 섭리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나를 위한 섭리가 된다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뭐 이만하면 다 족하지  않습니까?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하는 말은, 주님의  전체 섭리, 개별 섭리, 자연 섭리, 공간 섭리, 또 시간 섭리, 활동 섭리, 인간  심리 섭리 모든 데 대해서 전부를 당신이 섭리하시는 그 섭리가 결과적으로는  여호와를 자기의 목자로 모시는 그 사람을 위한 섭리가 된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그거는.

 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원수의 목전에' 하는 이 말은 이 세상에서  모든 전투, 우리가 크게 싸우는 전투 있는데, 죄로 더불어 우리는 싸우는  투사입니다. 우리가 뭐 인간으로 더불어 감정으로 무슨 민족끼리 싸우는 것이나  그런 사소한, 사소한 지지한 찌꺼러기 싸움, 참 가치 없는 싸움, 어린 아이들  소꿉장난하는 그런 가치 없는 그런 싸움이 아니고, 우리는 악령으로 더불어  싸우고 죄로 더불어 싸우고 사망으로 더불어 싸우는 이 싸움인데 이 싸움에서  당신이 우리를 지키셔서 이 싸움의 승리자가 되게 한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푼다 말은 승리케 한다 말이오. 그 모든 투쟁에서 승리케 한다, 모든 투쟁에서  승리케 한다.

 '기름으로 발랐다' 기름으로 발랐다 그 말은 우리를 이 모든 전투에서는 반드시  승리하고 그 후에는 장립을 받게 된다. 제사장. 선지, 왕의 장립을 받아서 이제  그 모든 것들을 승리할 뿐 아니라 그들을 통치하게 되고, 원수를 복종시켜서  원수들이 분하지만 권세에 눌려 가지고 꼼짝 못 하는 것처럼 그렇지 않다. 이제  그들을 다 승리하고 그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기름으로 발라서 승리한, 마귀도,  마귀도 우리 앞에, '졌으니까 분하기는 분하다만 이거 뭐 힘이 모자라 안 된다'  그렇게 원한을 품는 그런 마귀가 되지 안하고, 죄도 그러하고. 죄도 우리에게  존대하고 숭배하고 감사하고, 마귀도 감사하고. 사망도 우리에게 무릎을 끓고  빌고 존경하고 이래서, 모든 승리를 하되 모든 것이 다 우리에게 감탄하면서  우리에게 굴복하기를 우리를 주로 모시고 그들 위에 머리가 돼 주기를 원할 수  있는 이런 덕의 승리를 하게 하십니다. 덕. 덕의 승리를 하게 하십니다. 사랑의  승리, 덕의 승리를 하게 하는 것을 가리켜서 여기에 말씀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승리했다 말이오.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제 기름  발랐다 말은 장립시켰다 말이오. 장립시켰다. 왕의 장립을 시켰어, 선지자  장립을 시켰어, 제사장 장립을 시키니까 그들이 다 주라 시인해서, 빌립보 3장  9절 이하에 보면 '죽기까지 복종함이라'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심이라  이러므로 그를 모든 만물 위에 높여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거기에까지는  강제인지 모릅니다. '무릎을 끓고' 그 다음에 마지막에 있는 말씀은, 그들이  주라 하여' 주님을 주라 하여 아버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했습니다. 다  마귀들도 감탄을 하면서 '과연, 과연 이 주님을 나도 주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모든 만물이 찬성하고 모든 만물이 환영하고 모든 만물이 감탄하는 이런 승리,  주님이 승리함 같은 이 승리를 네게 줘서 이 승리를 하게 할 것이다. 어짜면?  여호와를 목자로 모시고 이 여호와 목자를 우리가 배반치만 안하고 이 목자를  모시고만 있으면 이와같이 됩니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껍데기 지식으로만 이래 보니까 그렇지 궁구해 보면 그거는 뭐 하나에  하나 보태면 되는 것보다도, 이 물질의 과학적보다도 더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선하심,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내게 끊어질 때가 없어. 어디서든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언행심사도 전체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중단될 때가 없고  요동될 때가 없어.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하나님이 나에게 인자를 베풀어서  내가 모든 피조물들에게 인자 베푸는 거, 그분이 나에게 인자를 베풀어 그분에게  피동 되는 그분의 인자가 내게 와서 내가 그분에게 피동되니까 그 인자가  만물에게 갑니다. 만물에게. 세상 권세는 다른 사람을 죽이고 꺾고 해야  승리하는데 이 승리는 만물에게 인자로 승리하고 만물들이 주라 찬송으로  승리하고 그들을 복되게 잘되게 해줌으로써의 승리하고 점령하는 것입니다.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계약의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 계약 속에 영원히 살리로다. 이 계약을 모시고.

계약의 하나님이 계약의 목자 되었는데 이 계약의 목자를 내가 계약을 놓지  아니하고, 계약을 놓지 아니함으로 이 목자를 떨구지 안했고 이 계약에  복종함으로써 이 목자에게 복종했고 이 계약과 동행함으로써 이 목자와 동행했고  이 계약과 함께 함으로써 이 계약의 목자가 모든 것을 이루어서 의식주를  책임졌지, 의식주를 책임지시고 또 우리의 모든 행위를 다 책임지시지, 또  우리의 모든 생활, 어디 가든지 어디 가든지 우리를, 아무데 가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그분이 안보하니까 해를 받지 안해. 여호와가 나의 목자인데  해를 어떻게 받겠습니까? 하나님의 계약은 완전인데, 하나님의 계약은 완전인데  완전을 내 목자로 삼아 가지고 완전의 혜택을 입는 자를 누가 해하겠습니까?  완전의 혜택을, 완전의 혜택이. 악을 어떻게 완전이 혜택할 수 있습니까? 악을  어떻게 완전이 보호할 수 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여호와를 목자로 삼은  그에게는 만물이 찬양하고 다 어디든지 안보되고 승리하고 다 그렇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에게 자유의 율법을  주나니 말에나 행실에나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을 받을 자로 알고 행해라 알고  행해라" 인간이 알든지 모르든지 이 자유의 율법을 주시니 이 자유의 이 율법,  자유의 율법은 만물이 거절을 못 합니다. 만물이 다 찬성합니다. 마귀도  찬성해야 되고 지옥도 찬성해야 되고 만물이 다 찬성합니다. 이 자유의 율법, 이  완전 율법, 이 생명법, 이 법을 가지고 계약해 놓은 계약이기 때문에 이 계약을  자기가, 이 계약이 자기 구주인 것을 알고 자기 목자인 것을 알고 이 계약을  놓치지 안하면 곧 생존하신 여호와 목자를 놓지 안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참 아주 행복된 길이 있는데 우리가 믿지  안하는 데에서 사고가 생기는 것입니다. 마치 고기가, 고기는 물에서 사는 것이  그것이 여호와의 법입니다. 고기는 물에서 사는 것이 여호와의 법칙이요 이  식물은 뿌리를 땅에 박고 사는 것이 여호와와 법칙입니다. 이런데 고기가 물을  떠나 가지고는 제가 암만 발동해 봤자, 애를 써도 소용없어요. 고기가 물 떠나서  어찌 살겠습니까? 물을 떠나면 저는 마지막에는 죽고 맙니다. 또 흙을 떠난,  흙을 떠난 이 식물이 아무리 그저 '목이 말라도 견디자, 목이 말라도 견디자.

더위도 견디자 배가 고파도 견디자.' 아무리 견디어 봤자 마지막에는 꽃도  아름다움도 다 생명도 바짝 말라서 없어지고 맙니다. 이 식물은 흙에 들어가야  삽니다. 고기는 물에 들어가야 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은 여호와의 율법  속에 들어가야 사는 것입니다. 그 들어가는 그거 밖에는 살지를 못해.

 우리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 안에 들어갈 수가 없는 이렇게 참  원수가 됐었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 화목 제물이  되셨지, 또 죄 문제니까 속죄 제물이 되셨지, 또 우리가 하나님의 요구와  명령에. 요구에 만족을 응해 드려야 될 터이니까 요구에 만족을 응하기 위해서  대신 행하신 이 칭의를 우리에게 주셨지 이래 가지고 공로를 베푸셨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목자가 됐습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목자가 됐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 우리들은 우리가 무슨 우리의 두뇌를 연마시키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술을 연단시켜서 기능 발달시키는 것 도  좋습니다. 또 우리가 부지런히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근검 절약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익이 매우 적습니다. 유익이 매우 적습니다.

우리에게는 첩경으로, 지름길로 바로 가는 지름길이 있습니다. 지름길이 뭐이냐?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 그분을 목자로만 모시고 있으면, 그분을 목자로 모시고  있으면 의식주, 활동, 모든 우리의 거주 우리가 대적으로 싸우는 모든 투쟁, 또  모든 만물과의 관계 이 전부 다 당신이 완전하게 이루어 주십니다. 완전하게  이루어 주십니다. 이러니까 그저 우리는 제일 힘쓸 것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까 내게 부족함이 없어. 이러기 때문에, 여호와, 목자이신 여호와만  내가 배반치 안하고 여호와를 모시도록 요 하나에만 전력을 기울이면 좋습니다.

요 하나에만 전력을 기울이면 거기에 생명과 능력이 다 나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자꾸 여호와만 생각하고 여호와 율법만 생각하면 우리 뭐  먹고살라고? 어리석은 소리요. 그거 안해 봐서 그렇소.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율법, 그의 법칙, 그의 계약을 생각하면 심령이 밝아져. 심령이  밝아지니까, 그 계약을 생각지 않을 때는 이다음 시간에 어찌 될지 몰라. 그  계약을 생각하면 하나님처럼은 안 되지만 모든 일에 대해서 그 단면도 보고 또  간면도 보고 간간접도 보고 모든 걸 보기 때문에, 모든 걸 보기 때문에, 마치  어리석은 자가, 어리석은 자가 자기 처지를 심사하는 거와 아주 지혜로운 자가  심사하는 거와 지혜로운 자가 얼마나 더 자세히 심사할 것입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이렇게 살 때에는 전지전능자가 내  안에서, 내 안에서 나같이 되어서 역사하기 때문에 실수가 없소.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은 다 웃고 있는데 그 사람은 울어. 그 사람은 울고 욺으로써 이다음에  모든 사람들이 죽는다고 기절할 때에 그 사람은, 웃으면서 뛰고 굴리면서  자유롭게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이 무식할 때보다 공부를 많이 하고 나면 그 사람이 지혜가  모자랍니까? 그 지식, 죽은 지식 그까짓 것도 대가리에 넣어 놓으니까 그 사람의  지혜가 낫는데 하물며 전지전능의 주님을 내 안에 모셨는데 어떻게 우리가  무지해지겠습니까? 사업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무것도 하지말고 여호와를 떠나지  안하고 여호와를 모시고 있으면 그분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서 우리를 통해서  모든 것을 다 완전케 해 주십니다.

 제가 오늘 여기 공과를 생각하면서 다음 주일에는 이 학생들에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 찬송을 배워서 이거 그만 공과할 게 아니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이 사실을 이 학생들이 다 알아 가지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  그러면, 이 목자만 우리에게 있어서 목자만 떠나지 안하면 다입니다. 목자만  떠나지 안하면 병이 문제입니까 경제가 문제입니까 원수가 문제입니까  공산주의가 문제입니까? 뭐 언행심사에 모자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나.

우리가 이 계약을 어기는 요거는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 계약을 우리가  지킬 때에. '하나님의 법칙이니까 이 법칙을 지켜야 될 것 아닙니까?' 어리석게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법칙을 지켜야 하나님이 좋아할 것 아닌가?'  법칙을 지키는 게 아니라 이 법칙이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이 법칙이 여호와  하나님이요 목자시요. 이러기 때문에, 자, 양이 목자를 지킵니까? 목자가 양을  지킵니까? 우리가 이 계약을 떠나지 안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 목자 되셔서 나를  지켜 주셔서 지켜 주심을 받는 것입니다. 지켜 주심을 받는 것이오.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니고. 요걸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히 믿을 때에, 홍 해  바다가 깊지만. 홍해 바다가 깊지만 약속하신 그분을 믿기 때문에, 그분은 홍해  바다를 엿새 동안에 그런 거 얼마나, 얼마나 많은 것도 지었고 또 말리 울 수도  있고 없앨 수도 있고 그분에게는 능치 못하심 이, 내야 홍해 바다에 못 가지만  말씀하신 그분은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이기 때문에 안심하고  건너갈 때 물이 갈라졌습니다. 오늘도 그때와 꼭 같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제는 믿음을 지켜야 될 때가 왔습니다. 믿음을 지켜서 자꾸  믿음 연습해서 독침 앞에서도, 독침 앞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원수 앞에서 상을 베푸시고, 내게 상을 베푸시고 내 잔이  넘친다. 또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다고 이렇게 어데서든지 여호와를 모시고  여호와를 놓지 맙시다. 여호와만 놓지 안하면 아무데서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따라 합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독침 앞에서도 부족함 없고 어떤 탄광 속에서도 부족함 없고 어떤 감옥 속에  들어가도 부족함 없고 사형틀 앞에서도 부족함 없고 어떤 아주 고관대작으로  어떤 높은 자리에 올라가도 부족함 없고 여호와만 자기 목자 삼으면 올라가도  내려가도 깊이 빠져도 어디 가도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그러고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 다음 주일은 공휴일이라서 아버지 어머니들이  다 모처럼 쉬니까 그 자녀들을 데리고 어디 구경도 가고 이렇게 또 친척집에도  갈라고 그렇게 서둘기 때문에 이 첫째 주일에는 주일 범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미리 학생들에게 말하고 부모에게 가서 말하십시오. 이 신앙  양심으로서 주일을 안 뺄라고 이라는데 이 아이들을 주일날 노는 날 그만 믿음을  죽여서 주일을 범하게 만들면 그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이 세상 이 험난하고,  험난하고 참 무정하고 참 아주 무시무시한 이 세상에서 누가 그 양심을 살려  주며 누가 그에게 옳은 척도를 말해 줄 이가 없는데 그 속에 신앙으로 말미암아  양심이 겨우 가늘 가늘하게 커 올라가는 것을 북돋아 줘야 되지 이걸 착 꺾어서  '오늘 놀러 가는데 같이 가자' 이래 가지고 주일 한 번 범하게 만들면 그 아이의  뒤에 양심을 어떻게 살릴 것이며 그 인격을 어떻게 살릴 것이며 도덕을 어떻게  살릴 것입니까? 이라기 때문에 세상은 엉망입니다. 뭐라고 쌓아도 엉망입니다.

눈을 뜬 사람은 정상으로 보면 엉망이라. 이거는 예수님의 재림이 아니라도 이  세상은 오래 가지 못해요. 다 자기네들 딴에는 뭐 완전타 하지만 아니 야.

세상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에 비춰보면 너무도 소돔 고모라성 이상입니다. 노아  시대, 노아 시대 몇 배 됩니다. 하나님이 안 계십니까? 하나님이 안 계시면  문제없겠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재림이 급박합니다. 이러니까, 반사  선생님들이 가서 말해요, 부모들에게, '이거 지금. 주일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이 그 양심이 살고 다른 아이들보다 양심대로 살라고 믿을라고 애를 쓰고  있는데 부모네들이 주일을 범하게 해서 양심을 착착 꺾어 놓으면 이거 어찌  됩니까? 오늘 데리고 가서 놀면 얼마나 놀 것입니까? 이래 죽여 놓고 아이들  뒤에 가서 잘못되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안 듣든지 듣든지 말해 주십시오.

말하면 성령이 함께 하실 것이고 알아듣는 부모들은, 그 어린것들이 주일날 뭐  돈벌이하러 가요 오락하러 가요 뭐 나쁜 장난하러 가요? 그래도 하나님과 선한  말씀을 들으러 가는 데 거기에 갈라고 애쓰는 것을 부모가 막는 것은 그  자식에게 뜨거운 물로 씌워서 마구 자살시키고 죽이는 거 한가지라. 그걸 좀  말해 줘야지요. 그라고 학생들에게도 미리 단속해서 다음 주일을 범하지 않도록  그래 합시다. 이거 단속 안 하면 다음 주일날 또 주일을 범합니다. 주일을 하나  범하면 그들에게 손해가 얼마나 갑니까?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나 깎아지며 그  양심이 얼마나 더러워지고 꾸불 꾸불하게 병이 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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