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목자


선지자선교회 1984년 5월 27일 주일오전 

 

본문 : 시편 23장 1절∼6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름 중에도 우리 사람으로 더불어 관계를 맺은  그 면에 대한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이름한 이 이름의 뜻은  신인 계약의 하나님이라, 하나님이 사람으로 더불어 계약한 그 계약의 상대인  하나님이라 하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더 불어 계약을 하시고 제약하신  그대로 이행을 하시는 그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약하신 그 계약은 인간이 몰랐던 과거를 그 계약으로  기록해 주셨고, 또 미래를 제약으로 기록해 주시고, 또 현재를 계약으로 기록해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선지자들을 통해서 과거에 우리가 몰랐으나  하나님이 인간으로 더불어 계약한 그 계약 그대로 과거가 이루어졌고, 또 현재도  계약하신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고 영원히 계약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이것을  하나님의 선지 사도들을 통해서 그 계약을 선포하셨습니다. 이 계약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이시오 또 그 계약의 상대자인 일방은 우리들입니다.

 그러면, 우리 택한 자들과 이 하나님과 서로 계약하시고 이 계약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창세기 1장에 나타난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그 창조는  창조하시기 전 영원 전 하나님의 계약이 요한복음 1장 1절 이하에 나타나셨고  그대로 창세기 1장 1절 이하에 창조를 하셨습니다. 또 에덴동산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사람으로 더불어 계약한 것을 인류 시조 아담과 계약을 선포하시고 또  계약대로 지금도 영원히 그대로 이행하시고 그 제약에 위약된 자를 위해서  하나님이 대속으로 구속하실 것도 또 여호와 하나님이 선포하셨습니다.

선포하시고 선포하신 그 계약대로 하나님의 대속의 법칙을 구약 이스라엘들에게  베푸셔서 그 예표적인 제약 역사로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들여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와 기타의 모든 제사들을 들여서 인간의 난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그 길을 계약하신 대로 여시고 때가 되매 하나님의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이 오셔서 그 계약대로 또 이행을 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면 우리는 우리를 구속하신 이  그리스도의 영과 달리 생각하기 쉽습니다. 창세기 1장에 모든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오, 또 물위에 운행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오, 또  사람을 지으실 때에 그때에 의논하신 중에 한 위의 위치를 가지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오. 또 타락한 아담 하와를 숲속에서 찾으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오, 또 타락 후에 여인의 후손으로 대속할 것을 약속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신구약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약이요, 또 이 계약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한 계약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여호와  하나님이 계약대로 도성인신 하셔 가지고 우리에게 나타나서 우리를  구속하셨는데, 가리켜 말씀이라 성자라 독생자라 이렇게 표시한 것은  나타나시기까지의 모든 과정들을 나타낸 것이요, 또 우리 사람들로 하여금 알기  쉽게 그 과정을 밝히시기 위해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하나님의 전부요, 또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전부인데 다만  하나님은 한 분뿐이신 하나님이신데 그 직위로는 세 격위로 나타났습니다. 세  격위로 나타나신 그 격위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고 또 의무가 있는 그런 것을  구별하기 위해서 성부라, 성자라 성령이라 했으나 한 하나님이 이런 일 하실  때는 성부요 저런 일 할 때에는 성자요 또 그런 일 할 때에는 성령으로, 이럴  때는 그리스도의 영이라 이럴 때는 여호와의 영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성호가 하나님의 이름이 여럿이 있어서, 이런  역사를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이런 역사를 하시는 하나님으로 또 그 이름으로  나타났고 저런 역사를 하는 하나님으로 그 이름으로 나타나셨고 이렇게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우리를 영원 전 하나님께서 목적을 정하실  때에 그때는 하나님 혼자 계셨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혼자 계셨을 때에  하나님이 목적을 정했으니 삼위일체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셨는데 곧 한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시고 하나님이 이런 면으로 역사하실 때는 이런 격위로 나타냈고,  저런 면을 역사하실 때는 저런 격위로 나타났고 그렇게 해서 삼위의 일체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목적을 정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시는데 그 목적의 구체적  요소가 어떠하며 또 그 목적의 형태가 어떠하며 그 목적의 결성과 결과가  어떠하냐 하는 것을 나타내서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목적 속에서 창조함을 받는 것이 그것이  예택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했다고 하는 것은, 그거는 아무도  몰랐지만 그리스도라 말은 기름 부음이라는 말인데, 그 후 신정 국가인 육체의  이스라엘 시대에 기름 부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비로소 하나님이 가르치셔서,  제사장 직을 장립시킬 때에 기름을 부었고, 선지 장립을 시킬 때에 기름을  부었고 통치의 왕권을 세울 때에 기름을 부어서 세웠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시고, 그 목적 정한 것이 곧 우리의  선택입니다. 우리가 있은 지 후에 선택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시고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 그 목적 안에서 우리를 예택하시고 예택은 그때  있는 게 아니고 이렇게 하나님이 '이런 자를 만드시겠다.' 하는 것이 예택이요,  또 '이런 자를 만드는 데에는 이런 이런 순서와 모든 거기에 있는 구비한 역사를  이루어 가지고 이런 자를 만들겠다.'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예택 구원을 얻었고, 예정 구원을 얻었고, 또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예택한 자를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예택한 자를 예정하신 대로 그렇게 그런 자를  만드시기 위해서 그러면, 예정하신 자는 어떤 자인데 그렇게 하나님이 큰 힘  들여서. 정하셨는가? 에베소서 1장 3절 이하에 보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원히  피조물 가운데에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예택하시고  예정하시고, 예정하신 대로 창조하시고, 또 창조하신 것을 예정대로 구속 하셔서  중생시키시고. 또 우리를 이렇게 성화 역사를 이루시는 그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예정대로. 창조대로 목적하심이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위일체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에 이 무한하신  분을 사람들이 사람의 지식을 토대해 가지고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그 이름을. 성호를 가지고 나타내서 우리에게 알리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똑똑히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다.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다. 한 분이  이렇게 새 격위로 나타나셨다. 세 격위로 나타나신 것은 세 격위의 할일과 모든  책임이 있는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세 격위로 나타났다. 그러나 세 격위는 한  하나님시요 본체는 하나시다.'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에 봉독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 여호와는 계약의  하나님이신데. 계약의 하나님이신데 곧 우리를 책임 맡으신 하나님이시오.

우리를 책임 맡으신 하나님이시오, 또 우리의 심판을 맡으신 하나님이시오, 또  우리에게 영원한 공의의 보응을 맡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계약한 그 계약이 어떤 계약인고  하니 심판의 법칙을 기록한 계약입니다. 또 이 계약은 그 행한 대로 영원한  보응을 시키는 그 보응, 보벌과 보상을 시키는 그 보응을 기록한 것이 이  계약입니다. 그러면, 또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모든 구원의 책임을 이 계약에  선포해 놓고 구원을 이루시는 이가 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고로 우리와  구원 계약, 심판 계약, 또 보응 계약 우리에게 보상해서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하는 이 보상 계약을 기록한 것이 계약입니다.

 그러면, 이 계약주는 곧 자존하신 하나님으로서 당신의 목적을 정하신 이  목적을 위한 예정이 되었고, 목적을 위해서 예정했고, 목적을 위해서 예정하신  대로 창조하셨고, 목적을 위해서 예정하신 대로 창조 한 것을 이렇게 저렇게  보존하고 관리하고 섭리하셔 가지고 목적을 이루게 하는 것이 그것이, 이 역사를  계약으로 선포해 놓은 것이 여호와 하나님이요 이 일을 이루어 가시는 이가  하나님이시오, 또 이대로 심판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 요, 또 이대로 보응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니 그 하나님이 곧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다른 데 보면 심판하는  권세도 예수님이 혼자 맡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심판하는 권세도 혼자 맡으셨고  또 우리를 구원하는 일도 혼자 맡으셨고, 성령님은 그 위에 수종을  들으셨습니다. 성령님은 수종을 들으셨고 또 성부도 수종을 들었습니다.

 이래서 요한복음 15장에도 보면 '아버지는 농부라' 말하는 것은 성부를 말하는  건데 성부도 포도나무를 위해서 전적 전력을 기울여서 그 일에만 전공하시고  전력하시고, 또 성령님도 그 일 하시고, 그러니까,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제일 주로 나타내시고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성부 성자의  역사가 있고, 우리에게 직접 우리의 구주로 나타나신 그 하나님은 곧 성자시니  도성인신 하신 하나님어신데, 그분 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신성과 인성을  가져서 인간과 하나님이 접할 수 없는 것을 인간이 자존자 이 하나님과 전할 수  있는 길을 뚫어 놓은 것이 사람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셔서 이 길은  열려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라 하면 계약의 하나님인데 곧 막바로  주님이십니다. 요것을 우리가 똑똑히 기억해야 됩니다.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8장에는 '아버지께서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다 내게  주셨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또 '인자됨을 인해서 심판하는 권세를 다  가지셨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하나님의 성호로써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하시는가 하는 것을 살펴 볼 것이고 또, 그 일을 깊이  궁구하면 곧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한 분이 하시는 일인 데 하시는 일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어서 이런 격위로 저런 격위로 우리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 하는 것을 우리가 찾아서, 삼위를 우리가 성경대로 궁구하고 영감  받아 궁구하면서 삼위를 궁구한 것이, 일체라 일체. 일체라는 것을 자기가 잡고  삼위일체라는 데 도달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이단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의 많은 이단들이 창세기에서 많이 나왔고 계시록에서  많이 나왔고, 계시록에서 나온 이단은 새끼 이단이요 창세기에서 나온 이단은 참  어미 이단으로서 큰 이단들인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봉독하고 증거할라는 것은 이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곧  우리를 위해서 도성인신하신 그 인신을 뺀 곧 신성이 여호와 하나님인 것입니다.

신성이 그리스도시요. 신성이 곧 성령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또 예수님의 신성을 가리켜서  이사야서에는 영존하신 아버지라 또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런고로,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각 격위에서 맡은 직책은 각각 다르나 사람들이 부활해 있기 때문에,  그 직책이 다른 거 같으나 실은 하나입니다. 그러기에, 어느 직책이라도 그  직책을 타서 들어가면 내나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다 하나 돼  있습니다. 마치 진리는 하나인 거와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구약의 하나님이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여호와 하나님은 나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신인양성일위의 그  신성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착오를 완전히 벗어야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그리스도시요'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목적을  정하신 하나님이라 그 말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목적을 정하신 하나님.

목적의 주인공이신 하나님이라. 그리스도라 말은 그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됐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는 그 말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이 창조주와 접할 수 있도록 신인 교제, 신인 결합의 그 길을  여신, 그 길을 여시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이라 하는 뜻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예수님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출하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이라 하는 뜻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신성이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예수님의 신성이 모든 걸 창조하셨고,  예수님의 신성이 영원 자존하셨고, 예수님의 신성이 참 하나님이시며 한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삼위일체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 분이 아니요 한  하나님이신데 역사를 나타낼 때에 이런 역사를 할 때에는 이 격위로 말하고 저런  역사를 나타낼 때에는 저 격위로 말 했으나, 위는 서이지만, 역사하는 역사는 세  종류로 역사하지만 그 본체는 하나시라 하는 말입니다.

 그런고로 이제까지 하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여호와 하나님은 곧 도성 하셔  가지고 도가 나타나셔 가지고, 하나님이, 하나님이 도로 나타나셔서, 말씀이,  도로 나타났다 말은 말씀이 나타났다 말입니다. 도성인신이라 말은 말씀이  육신이 됐다 그말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됐다 그말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아름인데, 성자의 이름인데 왜 하나님의 이름을 말씀이라고 하는가? 말씀이라는  이름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지만 그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는 자존하시고  그를, 알 자도 없고 볼 자도 없고 만날 자도 없고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신데,  이 자존하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그 직책을 맡은 이를 가리켜서 말씀이라.

 그러면, 하나님이,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 당신의 존재를 나타내시기 위해서  모든 걸 창조했습니다. 모든 것을 창조하심으로써 당신의 존재가 나타났습니다.

또 예정도 모릅니다. 그러면, 창조하신 것을 보존하시고 섭리하시고 섭리를 해서  창조한 것을 합했다가 나누었다가 이렇게 저렇게 당신의 목적을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운영하시고 활용하시고 이렇게 경영하시는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가리켜서  말씀이라 그랬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시는 그 하나님을  가리켜서 말씀이라, 우리 사람들이 알도록 하기 위해서, 말은 그 속에 있는 볼  수 없는 것을 다 나타내는 것이 말인 거와 같이 자존하신 하나님을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한복음에 말씀하시기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고  앞으로도 보지 못하고 영원히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왜 그분이 볼 수 없는가? 하나님은 존재가 희미해 그런가? 그는  탁월하신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불완전한 것이 감상도 할 수  없고. 불완전한 자가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는 탁월하기  때문에 볼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영원히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이랬소.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 1장에,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냈다 그 말은. 뭐 어떤 피조물로 인해서  나타나신 것이 아니고 당신이 스스로 나타나셨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나타나신  것을 가리켜서 독생이라 그말이오. '독생하신' 스스로 나타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8절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 타내셨느니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해서 인간에게 스스로 오신 분이  있으니 그분이 곧 이름은 말씀이라 볼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나타내시는 그  직책을 맡으신 말씀이라. 그런데 그 '독생하신 하나님이' 어떤 존재에 조금도  의거하지 안하고, 어떤 것에 조그만치도 거개 관계없이 혼자 스스로 나타나신,  나타나심이 일원에서 나타났다. 그러기 때문에, 스스로 나타났다, 스스로  나타났다. 그래 가지고 그분이, 인간이 알 수 있도록 나타나신 분이 성자시요  말씀이시오, 알 수 있도록 나타나셔 가지고 인간을 대속하시기 위해서 창조주가  피조물을 입고 피조물로 나타나서 피조물을 대속할 수도 있고 피조물로 하여금  접촉할 수도 있도록 그렇게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가리켜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은 성자로 나타났기 때문에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를 말하니 혹 '독단 행위인가?' 이래 생각해서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이 도성인신 하신 예수님이 만물을  지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가 없이는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런  분이신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 말은, 피조물의 생명은 창조주와  연결되는 것이 그것이 피조물의 생명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 그 말은  피조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주와 연결이 된 다 그말입니다. 연결이 된다.

연결 끊어진 것이 지금 지걸거리고 있지만 연결 끊어진 것이 지걸거리고 있는  것은 그 모든 다 하는 말이 참람된 말입니다. 과학 만능도 참람된 말입니다.

과학이 어떻게 만능이 됩니까? 과학이 어럽게 전능이 됩니까? 그게 참람되고  망령되고 참람된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연결되지 안한 것은  유황불 구렁텅이에다 영원 멸망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은  피조물을 창조주와 연결시키기 위해서 못박히셨으니, 절단된 것이 뭣 때문에  절단났느냐? 죄 문제 때문에 절단됐기 때문에 죄 문제를 해결하는 대형의 사죄를  줬고, 또 하나님과 연결된 데는 의롭지 안하면 연결될 수가 없기 때문에 대행.

우리가 행하지 못한 것을 대신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이루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의 만족을 이루었다' 이랬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다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께서 다 이루셔 가지고 우리에게 이의를 입히시고, 그  다음에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한 연결이 되었으므로 우리에게 생명이 왔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말은 도성인신 하신 이 분에게 하나님과 피조물이  연결될 수 있는 그 연결의 길이 있다 그말입니다. 연결의 길이 있다. 내가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은, 새 생명길을 열어 놨다 말씀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하나님과 피조물이 연결되는 그  연결이 있습니다. 연결이 생명입니다. 따라합시다.

 신인 연결은 생명! 신인 연결은 생명! 신인 절단은 사망!  그러기에, 개별 개별의 그 행사에서 신인의 관계가 끊어졌으면 그거는 모조리  다 사망입니다. 천하가 다 옹호하고 긍정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는  사망입니다. 신인 연결이 된 그것은 온 천하가 정죄하고 다 사망시켜도 그는  생명이라 죽이지 못합니다. 마지막에 그는 모든 피조물을 다 구원 할 수 있고  피조물을 다 주관하고 관할할 수 있고 상속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이 생명이 사람들에게  오면 하나님과 인간이 연결이 되면 비로소 세상의 빛이 된다 그 말은 세상이  무엇인 것을 정확히 나타내게 된다. 빛이 없으면 검은 것인지 횐 것인지, 개인지  사람인지, 뭐 부모인지 아들인지 모르지만서 도 빛이 오면 그 모든 정체가  드러나고 정면이 드러나고 정형이 드러나 고 성질이 드러나고 모두 다 결과가 다  드러나는 것처럼 사람들이 하나님과 연결이 되면 인생이 무엇이라는 것도 그를  통해서나타나고. 또 망할 거 흥할 거, 없어질 거 있을 거, 귀한 거 천한 거 그  모든 것이 올바로 똑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그 사람의 언행 심사로  드러나게 된 다 하는 말입니다.

 이러니까, 세상은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들의 그 말, 그 말은 첫째 말이 신구약  성경이, 연결된 사람들이 계시한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오, 그 다음은 이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연결된 말씀을 증거하는 것인데 세상은 이것을  부인합니다. 부인하는 것은 저희들의 법에 맞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 지식은 두  가지 지식이 있으니 하나님의 지식은 산 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이요, 인간의  지식은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오. 천하의 지식이 다해도 지식 속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 지식에는 하나님과 연결이 없습니다. 연결은 예수  그리스도로만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요걸 우리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사람들의 빗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빛이, 참  옳고 바른 것을, 옳고 바른 것을 나타내는 옳고 바른 것이 하나님과 연결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나는데, 옳고 그른 것이 나타나지만 어두운 것들은  옳은 걸 모른다. 어두운 거는 어두운 거 그것만 알지 어두운 그것이 좋다고,  그게 사는 것이라고, 어두운 거 멸망 하는 그것이 멸망인 줄 모르고 그것만  알지, 일방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 죽은 지식을 비판해서 죽은 지식이라고  판단하는 하나님의 지식인 이 산 지식을 그들이 가지지를 못한다는 말입니다.

 6절에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해서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이제 모든 만물이 정상으로 돌아가고 정궤도에 올라서고. 정상인  연결을 가지고, 정상의 위치를 가지고 '나는 피조물이라.' 그게 정상 위치요.

'나는 그분에게 죽고 사는 모든 것이 달렸다. 나는 독존자가 아니요, 독단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다. 그분에게 속해서 그분으로 말미암아서만 모두 살고  게 저렇게 할 수 있다.' 하는 이 근본 올바른 정상을 일으켜서 세상에 오셨다  그말입니다. '빛에 대해 증거하러 오셨다.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8절에 "그는 이 빛이 아니요" 그는 이 빛이 아니라 그 말은 누굴 말한  것인고 하니 세례 요한을 말합니다. 세례 요한은 빛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과 연결을 못 시킵니다.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빛은 예수님이기 때문에  "참빛, 곧 세상에 와서" 참빛은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아가게 해서, '하나님이  정상으로 돌아가게 해서 하나님이 목적하신 그 목적대로 되게 하는 분이 왔으니'  그말입니다. '참빛이 왔으니'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아가게 해 가지고 하나님이  목적하신 그 목적대로,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 창조된 그대로, 그대로 돼야 될  터인데 인간들이 다 변질이 되고 다 모든 이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변질된 사람들이요, 변형된 사람들이요, 또 모두가 다  변했습니다. 마음도 변했고 힘도 변했고 뜻도 변했고 소망도 변했고 전부  사람들이 다 변했기 때문에 변한 것은 그 다음에는 자꾸 썩는 것이기 때문에,  변했기 때문에 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재연결을 받지 못한 사람은  땅위에서 백 년을 살든지 이백 년을 살든지, 제가 세상에 제일 유명한 사람으로  살든지 어쨌든지 그의 생애는 죽음에서 죽음으로 죽음을 채우지 거기에 생명은  하나도 섞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요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거 성경 말씀이오,  내말이 아니고. 만일 내가 하는 말 같으면 다른 사람이 날 때려죽일라 할 것이  오. 죽일라 하지만 죽이면, 하나님 말씀 바로 하다가 맞아 죽으면 그때 영광은  클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담대히 말합니다.

 열절에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그가 세상에 계셨다 그 말은, 세상은 언제가  세상인고 하니 역사 세계가 시작되는 그때부텀 세상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다.' 하는 그때부터 세상이오. 그 세상이 있은 이후에 차차 차차  거기서 만물이 생겨지고 마지막에 사람이 생겨지고 한 이것은 이제 세상이  완성입니다. 엿새 동안에 세상은 완성하고 완성 된 이 세상이 지금 꾸물거리면서  마치 도롱태가 구불러 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이 자꾸 구불러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라 하는  것은 모든 역사, 모든 과학, 모든 이 만물이 존재한 그때로부터 세상은  시작됐는데, 모든 존재들,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서 범죄해서 죽기도 하고 또  구원도 이루어 가고 하는 이 모든 그것이 다 합해서 한 말로 말하면 세상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 그러면, 이 세상 이것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습니다. 이러니까,  이 과학은 누가 지었습니까? 내나 도성인신 하신 그분의 신성이 지었습니다.

지금도 그분이 신성과 인성 양위로서 우리를 대속하시고 지금도 그 신성은  만물을 홀로 주관하시고 홀로 섭리하고 계십니다.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 그러면, 세상이라면 사람도 세상이요 인간의 모든 언행심사의  행위도 세상이요 만물의 진화도 진보도 세상이요 이 모든 게 다 세상인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 그분이 지었습니다. 그분이  지었습니다.

 그분이 지었는데, 왜 그분이 지었는데 세상을 음녀라고 말하는가? 음녀라고도  말하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도 말합니다. 이 세상은 그분이 지어서 지은 목적은  뭐이냐?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의 구원을 달성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  얼마든지 연습해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 됐을 때에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기에 넉넉한 경험과 실력을, 체험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사용해서, 눈으로 봄으로 사용하고 귀로 들음으로 사용하고 상상으로  사용하고 연상으로 사용하고 이래서, 모든 것을 사용해서 경건한 자는 점점  경건하게 하기 위해서, 불의한 자 경건치 아니한 자는 멸망하기 위해서 이런  것들을 얼마든지 자유롭게 사용해 가지고 멸망과 구원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세상은  보배입니다. 묘한 세상입니다. 세상이 나쁜 거 아니오. 왜? 세상을 우리가  이용을 하면 보배요 선물이 되지만 세상에게 미혹받아 가지고 세상 좋다고  하나님을 배반하면 고 사람에게는 세상이 음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을  음녀라고 말한 것은 세상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멀리 하고 하나님과 떨어지고  세상을 제일로 알아서 제 최고의 지도자는, 최고의 지도자는 세상이라, 최고의  주권자는 세상이라, 최고의 소망은 세상이라 그 사람은 벌써, 하나님은 제이  제삼에는 하나님이 모욕이라 안 갑니다. 그러면, 제일로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이렇게 사랑해야 되는 것인데 제 이 제삼으로 돌린 사람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것으로 짝했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서 음녀로 더불어 음행한. 그걸 음녀라  이랬습니다. 음녀로 더불어 음행하는 것은 이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으로 자기의 전부를 삼지 아니하고 세상으로 하나님  대신 삼은 자에게는 음행한 자라 그말이오.

 음행한 자라, 그 말은 하나님의 장자의 기업을 받지 못한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기업 받지 못하는 것을 가리켜서 음녀로 더불어 음행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하나님의 장자인 데 하나님의  양자요 또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우리가 근본 따지면 요소로 말하면 양자이나  우리를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장자라 이래 말했습니다.

이래서 히브리서에는 장자의 총회에 우리가 다 참석할 사람들이다 장자의 총회에  우리가 참석할 사람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장자이니까 하나님의 모든  거, 하늘과 땅의 것을 다자기 것으로 다 상속 받을 터인데 왜 상속을 못 받느냐?  네가 세상하고 간음했기 때문에 상속 못 받는다. 이 상속권 박탈당하는 것을  가리켜서 음녀의 미혹에 간음한다 그렇게 말했고,  또 세상을 간부로 비유해서 '너희들이 본남편을 배반하고 간부로 더불어 하나  되었다.' 하는 그 말은 '이 하나님과 짝될 하나님의 신부된 성도들이 이  세상이라는 간부로 더불어 하나 되면' 그 말은 세상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배반한  자는 신랑이 신부의 모든 것을 책임 맡는 것 성경에 기록된 부부는 그런데  요새는 부부도 전부 변질이 한 번 된 게 아니라 여러 수천 번 변질됐습니다.

변질에서 변질되고 변질에서 변질됐기 때문에 요새는 이거 뭐 신랑 신부 해 봤자  다른 사람들왜게 교훈이 안 됩니다. 교훈이 안 되는 것은 이 교훈이 왜 교훈  되지 안하느냐? 인간들이 변했기 때문에 이 말씀도 그렇게 다 변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 권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말하는 정상적인 그 신부, 신부와  신랑은 신랑은 신부의 모든 것을 장단점을 다 책임지고, 모든 뭐 죄도 뭣도  불의도 다 책임지고. 신랑의 모든 소유는 신부의 것이 되고 신랑의 모든 영광과  존귀와 희로애락의 그 모든 것을 같이 누리는 동거 동락하는 것이 이것이  신부인데, 인간이 세상과 짝한, 이 간부로 더불어 관계되는 이런 관계로 인해서  만유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의 이 유별난, 특별한 이 관계의 이 모든 동거동락,  모든 안보, 책임, 그 소유가 꼭 같이 되는 거 이것을 상실 한다 그 말을  가리켜서 '본남편을 버리고 간부로 더불어 이제 음행한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을 누가 지었습니까? 우리  예수님의 신성이 지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신성이 지었소. 이런데, 잘못하면  뭐 '아 지으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셨고, 뭐 창조주 성부가 지었는가  성령이 지었는가?' 이제 그러기 때문에 요것을 밝히기 위해서 요한복음 1장에  '그로 말미암아 만물은 지은 바 되었고 그가 없이는 지은 것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지었다. 또 그가 세상에 계셨다.' 그 말은,  창세기 1장에 창조를 누가 했으며 그때 물위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이 누구인가?  타락한 아담과 하와를 숲속에서 찾으신 분이 누구인가? 그분들을 타락하기 전에  에덴동산으로 인도하시고 '이 동산을 다스리고 지키고,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하는 분이  누구인가? 그분이 내나 세상에 함께 계셨으며' 하는 주님의 신성이십니다.

주님의 신성이 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세상은,  무신론자 김일성이도 주님이 지으셨는데, 김정일도 주님이 지으셨는데, 그 전부  한 끼에 먹는 식사도 주님이 다 지으셨고 그저 찰나에 호흡하는 그 공기도 다  주님이 지으신 것인데 이 모른다 그말이오.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땅에 오는  것은, 그러면, 자기 땅에 온다는 말은 자기 물질계에 온다. 그말이오. 자기  물질계. 물질계에. 주님이 물질계를 지어 놓으시고 물질계에 도성인신 해 가지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지만 인간은 예수님이 석가모니나 무슨 이종교의  창설자 그런 자와 하나와 같은 그렇게 생각하지 이분이 지은 것을 모르고,  이분의 땅이라. 우주는 그분의 것이라. 그분이 지은 것이라. 이런 교주가 어디  있습니까? 이런 종교 교주가 어디 있소? 석가모니가 자기가 이래 지었다  했습니까?  이러니까 천하에 다른 이름으로서는 구원 얻는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온  세상이 이분을 모르고 이분을 무시하는데. 이분을 무시하는 이때에 이분을 지존  지성하신 하나님이시라, 자존하신 하나님이시라. 전지전능의 하나님이시라.

창조주 하나님이시라 주권의 하나님이시라, 주재의 하나님이시라. 지극히 적은  풀 한 포기가 그 열매가 붙는 것도, 움이 트는 것도, 자라는 것도, 그것이 나서  해충이 먹어 없애는 것도, 크고 작은 모든 거 개미 한 마리가 수염을 요리  흔들고 조리 흔드는 것도, 그것이, 하루살이가 오늘 났다 내일 죽는 그것도 전부  예수님 혼자 주권으로 개별 섭리하시는 요 하나님으로 믿는 요자의 하나님이요,  요자를 영원무궁토록 무궁세계에 그에게 말깁니다. 그들에게 맡깁니다. 이  교회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통일 됐을 때에 교회는 만물 위에 있고  만물은 그 아래 있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만물에게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케 하는 그것이 교회의 직책입니다.

 이렇게 이 하나님으로 오늘 믿는 자, 믿는 자, 아무것도 없어, 믿는 자,  '마음으로 믿으면 의에 이른다. 마음으로 진정 요렇게 인정하면. 의에 이른다.'  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의 완성을 가리켜서 의라 그래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정만 하면 하나님의 목적의 완성에 도달한다 그말이오. 완성에 도달한다.

이러니까, 이렇게 믿으면 참 이거는 말할 수 없는 횡재 바가지지. 말할 수 없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못 믿거든요. 못 믿어, 그거 믿습니까? 인간이 믿고 싶다고  믿어집니까? 안 됩니다. 믿는 것도 하나님이 영원 전에 예정하신 대로 성령이  믿게 하셔야 믿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구원은 제한적 구원이요 절대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입니다. 뭐 저거가 믿으면 믿어지고 안 믿으면 안믿어지고. 그거 안  됩니다. 다 스스로 속는 것뿐입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지 안한다.' 자기  백성이라니? 김일성이도 주님의 백성이오. 예수님의 백성이오. 김정일도  예수님의 백성이오. 모두 다 이 모두 신불신자, 무신론자들도 다 예수님이  지었고 예수님이 먹이고 입히고 기르고 예수님의 사람이요 예수님의 백성입니다.

이러나,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도성인신으로 오 실 때에 인간을 대속할라  하니까 영광으로 오면 우리는 다 죽어. 우리가 영광을 탐해 가지고 범죄해 죽은  그 값을 내기 위했으니까 영광스러운 분이 영광 없이 천하게 와야 될 것  아닙니까? 그분이 천하게 온 것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천하게 왔고 그분이  욕본 것도 우리 구원 위해서 욕봤고 그분이 아주 풍채 없이 그렇게 아주  멸시받게 그렇게 신 것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걸 모르니까,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영접은 어떤 자가 영접하느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그 이름을 믿는 자,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라, 우리의 대속주라는 것을 믿으면 구원 얻습니다. 믿으면 기본구원  얻어서 하나님의 아들도 되고 영생도 가졌고 하늘나라도 가졌고 모든 하나님의  아버지의 아들도 되고 사망이 해하지 못합니다. 또 성령과 진리와 예수님의  대속의 이 보증이 그와 함께 합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줬다." 이 권세가 무슨 인간의 힘으로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 아니오.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 아니고, 이제  하나님의 자녀 권세를 받으니까, 자녀 권세 받았다 말은 사죄를 받는다 말이요,  칭의를 받는다 말이요. 화친을 받는다 말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말이요.

영생을 가졌다 말이요, 천국 시민이 된다 말이요, 이제 생명의 부활을 받아서  무궁세계 영생하는 것을 다 가리켜서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 기본구원을  말합니다. 기본구원을 받게 된다.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 난 것이 아니라, 무슨 혈통으로 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욕으로 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 순전히 하나님의 동기로, 하나님의 시발로 하나님의  단독의 역사로 되어진 것이 우리들의 기본구원이라. 그런데 이제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은혜와 진리는 그에게 있어.

 이러니까 이 여호와 하나님을, 오늘 우리가 이 시편 23편에서 봉독했는데  여호와 하나님을 무슨 별개의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이분이 따로 있고 또 주님이  따로 있는 것으로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지금 말한 것입니다.

 여기 여호와 하나님은 계약 선포하시고 계약 이행하시는 하나님이신데, 계약을  선포를 누가 했습니까? 계약 선포를 누가 했습니까? 계약 선포를 그리스도의  영이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의 영이 계약 선포했소. 그런고로,  신구약 성경은 그리스도의 영의 계시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영감으로, 모든  성경은 성신의 감동으로 된.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신성이 창조주시요, 하나님이시오, 여호와  하나님이시오, 성부시요, 성자시요, 성령이시오.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는  누구인가? 성부는 성자시요 성령이시오. 성령은? 성령은 성자시요 성부시요  성령이십니다. 이 삼위일체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고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을 선포해 놓으시고  이 성경대로 이행해 주시는 이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은  누구를 가르치는가? 신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뭐인가? 신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 예수그리스도의  사진판이라고 하면 좀 인간의 말로 이거 좀 맞지는 안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진판이라 예수님은 누구인가? 신구약 성경 이 문서 가운데에 있는  하나님이시라. 문서 가운데에 있는 주님이시라. 그러면, 신구약 성경 중심이  뭐인가? 예수님이시라. 신구약 성경이 누구를 가르치는가? 예수님을 가르치고  있다. 신구약 성경이 그러면 예수님을 가르쳐 뭐 하려고? 예수님이 주신 구원을  이루게 하려고 가르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여호와에 대해서 간단하게 그만 간단하게만 해석합니다.

뒤에 또 시간 있으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 목자는, 우리는 양이요 그는  목자입니다. 양과 목자라, 목자는 사람이요 양은 짐승이오. 양은 짐승이라.

우리와 주님과는 그 차이성이 심히 크지만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렸다고 이랬습니다. 그러면, 선한 목자이기 때문에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렸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렸다.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분이 우리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게 뭐인가? 계약 배반이 여호와 하나님  배반이다.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게 뭐인가? 계약과 동행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뭐인가? 계약을 자기가  지키고 모시고 있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를 입는 게 뭐인가? 이 말씀 말씀 슬하에, 이 말씀 그늘 아래 있는 것이다.

그늘 아래 있는데 우리가 이 말씀을 지키는 거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지킴으로 뭐 되는 거 아니오. 어리석소. 이 말씀 우리가 지킬 수 없소.

이 말씀에게 지킴을 받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을 모시고 이 말씀을 떠나지 안한 자는, 이 말씀이  진리요 곧 이 말씀이 하나님이시라. 말씀이 하나님이라. 이거 그라면 진리가  하나님이라 말입니까? 아니오. 하나님은 진리가 아닌데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말씀 안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말씀 안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이 말씀 안에, 그리스도의, 그리스도가 영으로 이  말씀 안에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을 순종하면 영이 좋아하고 말씀의  인도를 받으면 성령이 같이 인도를 하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말씀과 이 성령은,  말씀은 진리요, 말씀은 진리요 인격 존재가 아니나 이 말씀 안에 인격 존재인  성령이 내주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 말씀 배척이 주님 배척이요 이 말씀 동행이  주님 동행이라는 것을 우리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푸른 초장에 누인다 하는 그 말은 양이 잘 먹을 수 있는 그 풀발에 누인다  말입니다. 풀밭에 누이는 거. 우리가 돈이 많으면 진리가 멀어져 평안하면  진리가 멀어져. 이러나, 우리가 언제 영감이 우리에게 강해지던가? 언제 진리가  우리에게 필요 있던가?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부득이 해서, 우리의 이 육을  위주로 해서 육을 좋도록 하면 그 심령은 곤란하고, 고깃덩어리와 마음 좋게  하면 영은 더 곤란하고, 이러기 때문에,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게 낫다.' 왜? 몸에 근심되는 것이, 몸이 고통스러워지는 것이 '이로 인해서  마음이 좋아짐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요 푸른 초장에 누인다 말은 하나님께서 어떨 때에는 우리에게 큰  암혹이 있다가 암흑이 해결이 됨으로써 우리에게 영감과 진리가 맞 있게 되는  수도 있고, 어떨 때는 이 모든 것이 평안하고 하니까, 평안하고 하니까 진리와  영감이 멀어질 때에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어서 진리와 영감이 우리에게 충만케  해서, 푸른 초장으로 누이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영감과 진리에 유익되는  길로만 자구 인도합니다. 유익되는 길로만,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신다.'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신 그 말은, 참 영감, 내가  영감을 크게 받아서 참 내 심령이 평안하게 안정을 받고 하나님의 안보를 입을  수 있는 그런 자리로 인도한다.

 저도 얼마 전에 쉴만한 물가으로 주님이 인도하셔서 편히 쉬었습니다. 왜? 내가  죽는다 산다 꼬갈 꼬갈 하고 이라니까, 그때에 내가 이 모든 세상에 이거 얽힌  줄도 많이 끊었고, 또 그때 세상이 뭐라는 것도 알게 됐고 인생이 뭐라는 것도  알게 됐고. 주님에게 갈급이 돼서. 이번에 내가 병 앓고 난 다음에 다른 사람은  날 뭐라고 말하는지 몰라도 나는 요번에 병 앓고 나서 성령이 충만합니다.

이전보다 충만합니다. 진리가 내가 충만합니다. 또 구원이 확실히  이루어졌습니다. 담대합니다. 이제 앞으로 하나님이 필요하면 더 건강 주실는지  모르겠습니다. 확신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이냐?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신다  말이오. 우리를 가시로 담으로 막아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세상물질 위주로 우리를 취급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물질 위주로 우리를 취급해서 물질만 보고 있다가 망하게 합니까? 물질  위주보다는 고깃덩어리 위주가 낫소. 고깃덩어리 위주만 하면 고깃덩어리만 보고  있다가 살다 죽지 않겠습니까? 고깃덩어리 위주로 우리를 취급하지 안하요.

우리의 고깃덩어리보다 우리의 심령이 중하기 때문에 심령 위주로, 심령  위주보다도 우리의 영 위주로 그래 합니다. 이래서, 영이 잘됨으로 마음이  잘되고 마음이 잘됨으로 몸이 잘되고 몸이 잘됨으로 소유가 잘되고 소유가  잘됨으로 무궁세계가 다 잘되고 이러니까 영이 잘되고 영이 잘됨으로 진리가  기뻐하고 진리가 기뻐함으로 주님이 기뻐하시고 이렇게 바른 이 정상적인 관계를  가지도록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이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데 그것을 기뻐 달게 받지 안하고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  시키시고" 내 영혼이라 말은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영을 다 새롭게 마음과 영만  새로우면 고깃덩어리는 절로 새롭고 모든 소유는 새로와져요. 절로. 그렇지  않습니까? 주인이 실력이 있으면. 주인이 실력이 있으며 집은 윤택하지. 그러기  때문에, '부윤 가옥이라.' 그 주인이 부자가 되면 집이 윤택해진다. 주인이  실력이 있으면 그 집을 자꾸 중수도 하고 수리도 하고 자꾸 좋은 집이 되지.

주인이 죽어 버리면 그 집이 망해 버리고 가옥도 망해 버리고 만다 그거요.

 이러니까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러면 우리를 왜 이렇게 알뜰히 사랑하시는가? 자기 이름을  위해서 도성인신하신 예수님의,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이러니까, 당신이 구속에 큰 힘 들여서 구속했기  때문에 우리를 놓지 안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  되시기까지 했기 때문에 안 놓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대속 하셨기 때문에 놓지 안하십니다. 우리가 망령을 부리면  하나님께서 몇 번이든지 징계합니다. 몇 번이든지 징계해요.

 그러니까 보면 '아, 저거 또 매맞을 짓 한다.' 자꾸 형통하면 좋은 게 아니라.

형통하면 기가 차요. 어떤 사람이 소식을 전하기를 '아, 그 사람 이 지금 가족이  어떤 참혹한 병신이 됐다.' 그 말 들을 때에 나는 '아, 하나님이여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그 가정을 불쌍히 여기시는구나.' 그렇게 됐으니까 결과는 반드시 그  가족들이 하나님과 가까와질 터이니까 쫓아집니다. '아 그 사람들이 지금 어떤  벼슬이 됐단다. 어떻게 높으게 됐단다.' 하면 다른 사람은 좋아할 때는 나는  탄식이라. 왜? '아. 이거 큰일 났 네.' 이것이 예수를 팔게 될는지, 무슨 참변을  만나게 될는지 염려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고 시간만 보는 사람과 멀리 보는  사람과, 죽은 지혜를 가진 사람과 산 지혜를 가진 사람의 견해도 비판도 평가도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서 자기의 욕망도 달라진다 그거요.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암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아, 다니엘이 그와 같이  기도한다 하다가서 사자굴에 던져졌으니까 다니엘 손해갔습니까? 다니엘 손해 안  갔소.

 '사망의 음침한' 사자굴에 들어가 가지고 죽었으면 다니엘은 하나님의 계약  지킬라고. 말씀 지키다 죽었으니까 그 사람은 무궁세계 하룻밤 나그네는 잠깐  지나갈 것이요, 지나갈 때 이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 지키다가서 사자의 밥이  돼 죽었다 하면 그는 영원토록 영광되지 손해 하나도 없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사망 속에 어디 파묻혀도, 우리가 이 새사람으로 살면 마귀가 와서 우리를  때리면 맞았으니까 복이고, 욕을 하면 욕했으니까 복 이곳, 우리 재산을  빼앗겼으면 뺏겼으니까 복이고, 사망의 어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여호와를 자기가 떠나지 안하고 여호와를 목자로 삼아서 여호와의 인도를 받는  자에게는 손해가 없습니다. 요것을 우리가 확실히 깨달아야 됩니다.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으로 사는 자에게 해가 있습니까? 자,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을  몽둥이로 때려 보지요. '너 이놈, 새사람으로 살아? 몽둥이로 때려 보자.'  몽둥이로 때렸으면, 때렸으면 손해입니까? 몽둥이로 때려서 맞아서 죽었습니다.

죽었으면 큰 실패입니까? 생각해 봐. 진리와 영감대로 산다고 몽둥이로 두드려서  죽었으면 손해갔소? 실패했소 성공했소? 자기 일생은 어찌 돼요? 일생은 어찌  됐습니까? 예? 성공이지. 아,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자기 생명이 끊어졌으니까,  생명보다 하나님과 진리를 높였으니까 무궁세계에 하나님께서 그를, 당신이  희빈으로 높여 줄 것 아닙니까? 어떻게 손해를 줍니까? 손해를 못 줍니다.

 이러기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님과 나와 함께 하는 데는 해가 없습니다.

요 세계에서 우리가 살아야 됩니다. 여기서 살아야 돼요. 시온의 대로요  천국이요 해할 자 아무도 없소. 뮈 욕한다고, 욕하는데 뭐 어짜고 하는데,  욕하는 것이 뭐 어때서? 해방하는 게 어때서? 며칠 전에 누가 와 가지고, 어떤  우리 반사 선생님이 와 가지고 이렇고 이렇고 저렇고 하는데 '와? 그거 뭐 무슨  상관이 있나? 그거 무슨 손해 가노? 야 그럴 때 복을 담뿍 좀 장만해라. 네가  굳게 서서. 거기에 피동되면 너는 손해 간다. 피동되지 말고 굳게만 서라.

굳게만 서면 그 모든 것이 너의 찬양대라. 네가 바로 서는데 네 욕하면 네  찬양대라.' 이다음에 가면 그들이 찬양 안 하고 됩니까? 잘못 말했으니까 그  자복을 해야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님의 이 모든  섭리가, 모든 섭리가 이렇게 여호와를 목자로 삼는 자에게 안위해 줍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은 제삼자가 놀라지. 제삼자가 놀라지.

제삼자가 보고 비참타 하지, 본인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이가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 되었을 때가 기쁠 건가, 그가 보디발 집에서 보디발 아내에게  애매하게 말려 가지고 감옥에 갔을 때인가? 감옥에 갔을 때가 더 기뻤을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 그랬는데 아무도 모르는 그 속에, 받은  자밖에는 모르는 그 평강을 누렸습니다. 기독자가 이것이오.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다.' 이러니까, 모든 성도들이  주님을 위해서 죽었는데, 주님을 위해서 죽었는데 그 죽음은 자기를 위한  것뿐이라. 주님 위해서 손해 봤는데 그거는 전부 자기에게 유익된 거 뿐 이라.

이러니까 이거 십자가의 도입니다.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버린 자는  여러 배 백 배를 받지 안할 자가 없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버린 자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고 했어, 예수님의 제자.

 이러니까,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그러면, 그들이  그럼으로써 자꾸 상은 올라갑니다. 요 세상이 보지 못하는 상, 세상이 보지  못하는 승리, 세상이 보지 못하는 위로 요것을 우리는 볼 줄을 알아야 합니다.

요거 볼 줄 모르면 헛일이오. 원수 앞에서 상 베푸시는 거, 지금 다니엘은 원수  앞에서 상 베푸는 거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보고  비참하다고 말했겠지요.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기름을 어떤 자에게 바릅니까?  제사장에게 바르고 선지자에게 바르고 왕에게 바릅니다.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이렇게 성도들이 가므로 세상이, 가룟 유다가 아니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지를 못해. 이렇게 세상이 이렇게 함으로써 세상이 모르는  장립을 받습니다. 세상이 모르는 장립을 받아.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로써 감옥에  들어간 그들 이 장립 받은 것을 분명히 자기들이 알 겁니다. 감옥에 갔다 나오고  난 다음에 감옥에 들어가기 전과 다릅니다. 6.25에서 승리하기 전과 승리 후와  아주 다릅니다. 기름을 발라서.

 "내 머리에 기름을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러니까, 제사장, 제사장  잔, 선지 잔, 왕 잔, 예수님은 이 세 잔을 마셨습니다. 제사장 잔을 마신 것이  예수님의 잔이요, 선지자 잔을 마신 것이 예수님의 잔이요, 왕 잔을 마신 것이  예수님의 잔이라. 이 잔 마시고 나니까, 그 예수님이 '이 잔이 내게서 떠나게 해  주옵소서. 내가 마시지 안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라면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이 잔을, 이 잔을 예수님께서 죽음의 고난의 잔인데 이 잔을 마시기가 싫어서  그런 줄 압니까? 사양한 것이오, 사양. '나보다 나은 이가 있으면 이 잔을  마셔야 될 터인데 내가 어떻게 이 잔을, 나보다 나은 이가 없습니까?' 이렇게  사양 한 잔이오. 제사장 잔 이러니까, 이라면서 마지막으로 '아버지께서 뜻대로  하시옵소서.' '이제 네가 제사장 잔, 선지 잔, 왕 잔.' 이래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혼자 통치하지. 목자장이 되었지. 얼마나 영광의 잔입니까?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이  은혜와 "인자하심이"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요 은혜가,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평생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 하고 다해서 형제를 사랑하는 이 사람으로 일생 동안 살게 해  주실 것이 그것이 자기에게 확신했기 때문에 말한 것입니다.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 계약을 선포해  놓으신 이 계약의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계약의 하나님. 그러기  때문에, 그러면, 이 계약의 하나님을 바라고, 이 계약의 하나님으로 더불어 이  계약한 걸 바라기 때문에 그분은 생명을 끊겨도 이 계약은 어기지 안해. 계약  내놓지 안해. 왜? 계약을 내놓으면 이 계약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모든 성도들이 죽어도 이 하나님을 놓지 안하고, 감옥에  들어가도 놓지 안하고, 하나님의 이 계약을 어기지 안하고, 다니엘이 뭐한다고  기도, '네, 기도 한 달 동안 안 하겠습니다. 숨어 하겠습니다. 속으로  하겠습니다.' 이라면 될 건데 왜 그 계약을 놓지 안하고 그런가? 이 계약을  놓으면 이 계약의 하나님 버리기 때문에 이 계약 지키고 계약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것을 바라봤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너희들이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으면 과실을 많이 맺고 나를 떠나서는 너희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가지가 포 도 나무에서 끊어지면 절로 마르고 불에 타는 것밖에 없는  것처럼 너희들이 나를 떠나서 내게 끊겨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게서  끊겨지면 할 수 없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과 끊겨지지 않기 위해서 생명도  몸도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목사님이 처음에 성서 낭독을 했는데, 이제 개역된 성서 낭독을  해서 격에 좀 안 맞아. '네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처자나 네 목숨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그러면, 다른 것도 사랑해야 되는데, 우리 개역에는  '미워하지 않으면' 왜 미워해? 부모를 왜 미워해? 왜, 처자를 왜 미워해,  미워하기를? 그말 아니오. 그거 다 사랑하는 것, 주님의 계명이기 때문에  사랑해야 돼. 사랑하나 주님보다 사랑하면 안돼. 주님을 그보다 더 사랑해서  주님을 위해서 사랑해야 된다 그말이오. 나는 이 개역 있지만 개역 나는 믿지  안해요. 나는 고 절수는 구역에 된 고 번역을 나는 믿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나는 보다라는 말을 자꾸 말하는데, 보다라는 말을 설교를 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보니까, 개역한 성경에 보니까 그게 없어. 얼마나 와, 와 뭣 때문에 미워해요?  사랑하되 주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되지. 주로 인해서 사랑해야지.

 이러니까, 이분을 놓지 않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면 다  됐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목자가 되면 다요.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은  누구입니까? 신구약 성경에 계약하신 하나님이오. 이 계약 하신 하나님이. 이  말씀은 예수님을 중심한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이 말씀 버리니 계약하신  하나님 버림이요, 이 말씀과 동행함이 계약하신 하나님과 동행함이요, 이 말씀을  모시고 있는 것이 계약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있어. 이분을 모시고 있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그 나래로 우리를 품고 있는데 무엇이 와서 덮치요? 못  덮칩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이러므로,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뺏겨도, 다 뺏겨도 계약 하나님을 뺏기지  말아라. 계약 하나님을 잃지 말아라. 계약 하나님을 하나 얻기 위해서 세상 거  모든 거 다 잿기니까 어리석은 천치 바보 같지만 아니오. 잠시 잠깐 후면  계약하신 하나님이 계약한 그대로 이제 다 시행해서 나타낼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여호와 하나님을 놓지 맙시다.

 길을 가면서 말씀을 사모하는 그것이 계약하신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이 참  하나님께서, 지극히 크신 하나님이 우리로 더불어 교제하기에 아주 좋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좋게. 도성인신 해서 다 대속했지, 신구약 성경 말씀을 내시고  '나를 사랑하는 자는 이 계명을 사랑함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 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한다. 말씀의 인도를 받는 자는 주님의 인도를 받는  자라.' 얼마나, 지존자와 이렇게 교제하기가 얼마나 이렇게 용이하고 쉽습니까?  그러나 오늘에는 자기를 부인하면 쉽고 자기 부인하지 않으면 안돼. 그러니까,  쉬운 자는 쉽고 어려운 자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도우심 아니면 자기  부인할 자 없소.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 있어야 이거는 갈 수 있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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