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

 

1981. 9. 13. 주전

 

본문 : 마태복음 6장 19절 - 21절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좆으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 서부교회는 연보에 대해서 너무 가르침이 없어서 거기에 대해서는 참 무식한  편입니다. 오늘은 연보에 대해서 아마도 증거해야 되겠다 해서 연보 설교를 하게  됐습니다.

연보는 예수님의 피공로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피흘려 죄인들을 구원하신  그 역사에 동참하는 일이 연보입니다. 물질은 불의하게 되는 것도 있지마는  정식으로는 자기의 마음과 몸과 시간을 드려 그것을 주고 받은 댓가가 물질입니다.

물질은 자기 마음 몸 자기의 시간 이것을 주고 댓가로 받은 것이 물질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재물을 허탕하게 쓰는 사람은 자기를 허탄하게 쓰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애낀 사람은 자기를 애끼는 것이요. 그것을 바로 잘 쓰는 것은 자기의 비판  값을 자기의 생명판 값을 자기의 힘을 판 값을 그것을 조심있게 잘 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모든 택한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기울려 구원하시는데  마지막으로 생명을 기울려 구원하신 것을 가르쳐서 보배 피 공로로 구원했다  그렇게 표현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있는 것을 다 기울려 주님이 하신 이 원하시는 인간 역사에  받히는 일을 못할지라도, 자기의 모든 힘을 팔아 가지고 얻은 그 물질을 주님의 이  피의 역사에 받히는 것은, 주님의 피에 팔린 자기가 자기의 피와 생명 그 힘을  주님의 피 운동 이 역사에 받혀서 동참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 1장 29절에 "너희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은혜를 받게 하신 것은 은혜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의 고난에도 참예케 함이라" 하는 주의 고난에 참예는 직접 자기의  생명을 받히는 일도 있고 또 몸을 받히는 일도 있고 몸과 자기의 건강, 수명,  기능, 시간 모든 것을 다 주고 댓가로 받은 그 물질을 자기가 받히는 그것도 다  성질의 꼭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연보는 주의 피 흘리신 그 보배 피 역사에 참여하는 일이되는 것입니다. 또 연보는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 운동에 자기가 몸을 받히지 못하고 거기에 가지 못하고  이렇게 해도 자기를 판 그 댓가인 돈을 거기에 복음 운동에 받혀 가지고 이 복음  운동 구원 운동에 참여하는 일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보는 인간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인간 구원에 받히는 것이 연보입니다. 또 인간을 나를  희생하여 섬기는 그 일을 하는 것이 그것이 연보입니다.

또 셋째로 연보는 땅의 것을 하늘날에 저축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인간  구원을 위하여 주의 피의 역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받힌 그 모든 물질은 썩는데  이르지 안하고 다 하늘나라에 저축하게 되는 것입니다. 연보는 주의 피 역사에  동참하는 일인 것을 알아야 하고 또 인간 구원 복음 역사에 참여하는 일인 것을  알아야 하고 또 연보는 하늘나라에 저축하는 일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말씀하시기를 네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물론 이 보물 속에는 물질만이  아니고 범위가 좀 넓습니다마는 이치는 같은 이치입니다. 땅에 쌓아 두지 마라  그말은 없어질 땅의 운동을 위해서 쓰지 말아라 하는 그말입니다. 왜 거기에는  동록이 슬고 좀먹고 도적질 도적맞는다 동록 쓴다 말은 죄악이 멸해질 때에 그것도  함께 죄악화 되어 가지고 멸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 역사에 받히지 안한 물질은 어떤 단체 어떤 그 고상하게 썻다고 해도 그것은  죄와 함께 다 멸해질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인류를  위해서 자기의 물질을 받혔으면 이는 참 고귀하게 쓰인 것이니까 그가 영원히  있으리라 생각하지마는 그것도 다 죄로 말미암아 썩어지는 그 부패의 정죄에 같이  정죄받습니다. 그것을 가르쳐서 "동록 설른다 곰팡이 핀다" 말씀입니다. 곰팡이  피면 썩습니다.

또 "좀 먹는다" 그말은 좀은 세월이 많이 지나가면 그것이 차차 쇠해지고 낡아지고  없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재가 물질을 땅위에서 귀중히 썼다 할지라도 그  쓴 것이 혹은 십년 효력 이십년 백년 많아서 천년 효력이 있다 할지라도, 몇 천년  효력있다 할지라도 예수님 구름 타고 오시면 그 효력은 다 끝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가르쳐서 '좀 먹는다' 그렇게 말하고 '도적이 구멍 뚫고 도적질한다' 그말은 완전히 네가 그 거기에 대한 권리를 박탈  당하게 된다. 하나도 네게는 효력을 주지 못하도록 완전히 거기에 대한 권리를  빼앗기게 된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단단히 저축해 놔도 아 그런 사람은 은행에  저축해놨다 그렇지 이 인류 도적 창고에다가 도덕에다가 저축해 놓으면 그는  영원하다.

 이래서 (인재명)이라 사람은 이름을 두고 죽는다 그렇게 말했지마는 뭐 도덕에  저축했든지, 종교에 저축을 했든지, 문화에 저축을 했든지, 어데다가 저축을  했든지 다 그것은 완전히 자기는 그 물질에 대한 권리는 완전히 박탈당해서 거기에  대한 칭찬 한마디도 받지 못할 그런 때가 오는 것을 가르쳐서 '도적 맞는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너를 위해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하늘에 쌓아두라"  말은 완전 무결 영원 불변 조물주의 뜻대로 인간을 구원하는 이 구원 역사에  투자해라 그말입니다. 구원 역사에 투자해라. 연보해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하늘에 저축한 것이 된다 완전에 지상에 영원 불변에 조물주에게  저축한 게 된다. 진리에게 저축한게 된다. 영원 존재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빌려  준게 된다 하는 말씀입니다. 거기에는 동록이 안쓴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죄악을  전멸시키는 그런 때도 그는 멸해지지 않는다. 좀도 안 먹는다. 영원 무궁토록 그  효력은 네가 영원히 가지고 사용하게 된다. 도적이 구멍도 못 뚫고 도적질도  못한다. 그는 없앨 수가 없다 그렇게 한 말씀입니다.

또 연보에 대해서 알 것은 고린도후서 2장 10절에 보면 "심는 자에게 씨와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의의 열매를 풍성케 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심는 자라' 말은 자기에게 한번 닥쳐온 그 물질을 마구 전멸 시키는 그런데다가  사용치 아니하고, 영원 장래를 보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인간 구원에  투자하는 것을 가르쳐서 심는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먹어도 종자는 없어지고, 태워도 없어지고, 썩어도 없어지고,  심어도 없어지지마는 심은 것은 그 뒤에 수많은 추수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적은 물질이나 인간이 주님의 피에 투자하고 복음 역사에 투자한 것은 그는 무궁  세계에 영원 무궁한 것으로 그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이것을 비유로 해서 심은다  그랬습니다.

심는다 "심는 자에게 씨와 양식을 주시는 이가 이렇게 심는 자가 이렇게 물질을  자기 명예나, 지위나, 권세나, 행락이나, 거주나, 호의 호식이나 그걸 위해서  사용치 아니하고, 하나님이 피흘리신 이 피 운동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바울이  매도 수없이 맞고, 갖히기도 수없이 갖혔고, 굶고, 헐벗고 또 참 온갖 그 어려움을  당했지마는 오히려 그 마음이 눌리는 것은 인간 구원 운동이 교회에 대해서 자기는  마음이 눌리 가지고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물질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 피의 희생 역사에 자기가 물질을  투자해서 희생 하고, 인간 구원을 위해서 이 피에 팔린 성도들이 소유와 몸과  생명을 애끼지 아니하고, 고락을 게이치 아니하고 하는 이 인간 구원 운동에  투자한 그것을 가르쳐서 심는 자가 이렇게 심는 자에게 하나님을 그에게 어떻게  하시는가? 씨와 양식을 준다. 또 심을 자원을 주시고 양식 준다 말은 제가 사용할  것을 또 주신다 그말입니다.

성도들에게 와서 있는 물질은 심어야 할 양이 있고 자기가 사용할 양식으로 되어  있는 양이 있습니다. 양식을 양식하지 안하고 심으면 덕이 되지 안하고 도리어  실패되고 심을 것을 양식 삼으면 자기에게는 끝이 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자에게 씨와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의 심을 씨를 많이 주셔서 영원 무궁 세계에  없어지지 아니할 그 결과를 많이 맺도록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

연보는 자기의 가진 것을 하나님과 진리의 그 운동 영원을 위해서 사용하는 그것이  연보인데, 연보는 그렇게 사용했을 때에 그것을 무궁 세계에서 갚아 주시고, 또  그렇게 사용할 수 있도록 자본을 하나님이 주시고, 자기 쓸 것을 주셔서 주면 자기  쓸것 자기 쓰고, 심을 것은 심고, 요렇게 구별해서 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얼마든지  주시 가지고 많이 심어 많은 열매를 무궁 세계에서 거두고, 그렇게 한 것이 연보라  하는 것을 성경에 기록해 놨습니다.

또 누가 복음 16장 9절에는 보면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이 세상은 다  저주 아래에 있는 물질인데 저주 아래 있는 물질을 가지고 네가 인간 구원에  투자해라. 없어질 때에 세상을 끝날 때에 영원한 나라에서 너를 대우할 것이라.

너를 영접하리라.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없어질 때에 영원한 처소에서  너를 영접하리라" 이것이 연보입니다.

그러면 연보는 그리스도의 피의 역사에 내가 동참하는 것이요. 나도 피는 받히지  못했지마는 그 피를 받혀 내 진액을 받혀 모은 재물을 내가 받히니 참 보스래기  가루 같은 내 피를 주의 피 역사에 받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생을 헌신하고  자기의 세상에 모든 영광을 다 이 복음에 받혀서 이렇게 사는데,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고 내가 마련한 세상에서 영광이나 지위나 권세를 그런 것을 마련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는 이것 가지고 마련한 돈은 참 거다 대면 헌신에다 데면 부스러기  이지마는 이것이 나마 내가 받힙니다. 하는 그것이 연보인 것입니다.

연보에 대해서 이렇게 간단하게 연보 지식을 말씀했습니다. 연보는 주님의 십자가  보배 피 역사에 내 보스라기 피로 받히는 것이라. 내 보스라기 피, 가루 피를  받히는 기라. 조그마한 나의 적은 것이지마는 받히는 것이다.

또 연보는 몸과 생명을 기울려 복음 운동에다 세계에 모든 성도들이 다 받혀 이  생명 역사를 이바지 하는데 나는 전신을 받히지 못하고, 시간도 다 받히지 못하고,  나 볼일 보고 내 작업 내대로 하고 내 생활 내대로 하면서 시간도 다 받히지  못하고, 나 볼일 보고 내 작업 내대로 하고 내 생활 내대로 하면서, 나마 내  진액인 이것을 내가 몸은 다 받히지 못해도 내 몸을 주고 산 이 부스러기 내 몸의  부스러기가 되는 요것을 내가 받혀서 인간 구원에 나도 동참한다 하는 요것을  깨닫고 연보를 해야 합니다.

또 연보는 영원히 동록도 좀도 도적도 맞지 않는 무궁의 세계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받을 수 있는 그 곡간에 저축하는 것입니다. 영원에 저축하고, 무궁에  저축하고, 진리에 저축하고, 하나님에게 빌려 저축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알 것은 연보 제도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그것을 잘 구별해서 자기는  얼마 사용해야 되고 요것은 인간 구원에 얼마 받혀야 되겠다 하는 고것을 구별해서  씨와 양식으로 구별해 갖고, 저 쓸 것은 양식 인간 구원을 위하여 받히는 것은  씨와 양식을 구별해 가지고 양식만 먹고 그 씨를 심는 자에게는 또 씨를 주시고,  심으니까 또 씨를 더 많이 주시고, 주신 씨를 알뜰히 그 심는 데는 힘이 드는데 잘  심으니까 더 주시고, 더 주셔서 모든 것이 넉넉하고 풍성하여 의의 열매를 많이  맺게 하려는 것이라. 요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연보 제도를 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네 가지를 배웠습니다. 네 가지 그런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21절에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이제 말한 것이 연보에 대한 방편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연보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이루어지는 연보로 말미암아  조성되는 것이 어떤 것인가? 연보로 말미암아 만들어지는 것이 어떤 것인가?  그것을 말하겠습니다.

연보를 할 때에 잘못하면 우리가 오후에 수재당한 그 형제들을 위해서 연보를 할  것인데 우리에게는 참 하나님의 은혜로 수재가 없습니다. 비가 왔는지 뭐 무슨  재가 났는지 모를 만큼 우리에게는 재가 이르지 안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감사하고 또 그 재란, 만난 형제에게 같은 어려움을 당하는 동정하는 그 마음을  가지야 주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 연보는 아 예배당 지으려 하니 돈내야 되겠다 돈 모아야 되겠다. 네 그것은  외부적입니다. 너무 고 형식 고것 뿐이라면 외식 연보가 됩니다. 우리는 깊이  생각해서 이 연보는 누구를 주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수재민에게 주는 것도 안  믿는 사람은 그렇지마는 우리는 한푼이라도 내면 그리 내는 것 아닙니다. 이  교회에서 왔다하면 그들이 다만 얼마라도 마음에 감동이 되어 가지고 '아  예수교에서 이렇게 하는구나' 해서 예수님과 가까와지는 그 구원의 역사를 바래서  하는 것이지 그거 아니면 암만 구제해 줘 봤자 내나 죽을 송장 뭐 일으킨 것이지  아무 소용없습니다.

이러기에 세상이 이렇게 이웃 돕는 이 일이 자꾸 지금 더 심해가는데, 이것은 좋은  현상이지마는 기독교에 대해서는 어려움을 주는 것입니다. 왜? 과거에는 그런 일  없고 기독자들이 여 대해서 솔선했는데 안 믿는 사람들도 이제 하니까 기독자들이  이전같은 그런 정도의 것 가지고는 그들에게 뭐 믿는 사람이라도 별게 뭐 있나  하는 멸시를 당할 수 있는 그런 일이 됩니다. 더 그 면에 더 힘을 써서 일반에  탁월해야 할 것입니다. 탁월한 방편으로 인간 구원에 받혀야 될 것입니다.

이래서 무슨 연보든지 연보할 때에 자기가 주님이 모든 형제를 위해서 생명을 받혀  구원해 주셨는데, 나는 생명 받히지 못하고 약속한 금액이 나마 이것은 그저 내  피를 팔아 가지고 피의 댓가 노력의 댓가기 때문에 성경에 피 값을 물질도 댓가로  내라 이랬습니다. 실은 자기 부모의 재물이니까 마구잡이 쓰지마는 그 부모가  도적질 했든지 뭐 어쨎든지 부모의 정력과 진액을 주고 받은 그것이 물질입니다.

주님이 나와 형제를 위해서 피를 받혀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는데 이 피 운동에  약소하나마 요것도 내 정력을 기울려 얻은 물질인데 이것을 받힙니다. 주의 피의  운동이 다소라도 빛나게 역사하는 데에 이바지 되게 해주옵소서 하는 고런 마음을  가지고 연보를 합니다. 고럴 때에 말한대로 그 세 가지는 이루어지지마는 고게서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말씀하신 고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그럴때에 나는 주님의 피 역사에 참여하는 그 마음 성품 뜻 정성 지식 행위 이것이  됩니다.

또 이 약속은 힘들지마는 모든 성도들은 일생을 받혀서 주의 받힐 수 있는 이  사랑의 감격해서 일생을 받혀서 복음 역사에 이바지 하는데, 나는 나 볼일 다보고,  나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참 황송하고 죄송합니다 마는 그래도 요 물질은 내가  사소한 힘이나 내 정성을 드려서 만든 이 물질을 약소하지마는 이 복음 역사에  나도 받혀서 참여하겠습니다. 약소하지마는 이 복음 역사에 보태서 함께 써  주시옵서서 하는 요 마음을 가지고, 요 지식을 가지고, 요 성질을 가지고, 요 뜻을  가지고, 요 생각을 가지고, 요 비판과 평가를 가지고 여기에 참여합니다. 하는 요  행동을 하게 될 때에 첫째로 자기 마음이 거거 붙게 되고 성질, 생각, 정성, 사상 마지막에는 자기라는  사람 이 사람이 점점 거기에 가까와지고, 주의 피에 참여하는 사람이 더 되어지고,  주님의 구원이 복음 운동에 더 강해지게 되고, 그 사람이 점점 더 되고, 주의  보혈의 사람이 점점 더 되고, 복음 운동의 사람이 더 되고 이 역사의 기능의  사람이 점점 더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럴때에 자기가 행위가 그리스도의 이 구속 역사에 든자가 점점 더 되어 갑니다.

점점 더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 역사에 세포 분자 지체화 되어져 가는 이것이  연보를 받히는 그 물질 받히는 거기에 자기의 이 마음의 깨달음을 가지고 이  지식의 연보를 성의의 연보를 진실된 연보를 할 때에 물질은 물질대로 저축되고  운동은 운동대로 결과를 맺지마는 여기에서 자기 자신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지극히 작은데 하는 자는 큰데도 해진다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가게 된다 해보면 점점 하게 되어진다 이랬습니다. 연보를 너희 위해서 하고,  명예를 위해서 하고, 자기를 위해서 하고, 다른 사람에게 구제하는 것으로만 하고,  뜻없이 그저 하나님에게 받히는 것으로만 하고 무식한 연보를 하는 것은 참 아까운  연보입니다.

거기에 대한 확고한 진리대로의 지식을 가지고 연보를 해서 그것이 주의 피의 역사  복음 역사 하늘의 저축 이것이 되어지는 그 속에 피 흘리신 주님과 자기와의  동질의 사람, 동질의 사람으로 그 본성이 같은 동성의 사람으로 그 행위가 점점  숙달되고 연습되고 익숙해서 이제는 그 사람이 주와 같이 자기의 모든 것을 이  피조물된 우리를 위해서 기울인 것이 당신의 기쁨이 되고, 당신의 생활이 되고,  직분이 되고 취미가 되고 이게 아니고는 살 수 없는 이 사람으로 화해지는 것이  이것이 그리스도화 된 성화인 것입니다.

이래서 너희들이 선한 일을 열심히 하고 동정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그 사람으로 네가 땅에 있는 동안에 변화를 시키라 이것이 우리의  위치입니다. 하나님께는 무한이 있는데 그것을 내가 자꾸 디물리 쳐 가지고  하나님의 것이 내게로 오는데 통과만 시키면 만물에게 충만케하는 영원히 주는  것이 우리 이치요 받는 것이 우리 이치요, 받기는 하나님 한분에게만 받고, 주기는  피조물에게 주고 섬기기는 하나님 한분에게만 섬김 받고, 모든 피조물을 섬겨 그들  유익되게 할 수 있는 이것이 교회의 위치요 우리의 위치인데, 이것을 죽기 전에  네가 만들어 가지고 해라.

이 사망의 법에서 일생동안 사람들에게 빼앗는 연습, 덕보는 연습, 유익보는 연습,  이용하는 연습 모든 것이 끌어 당기는 구걸하고 탈취하고 하는 이 사람으로만  일생을 내가 만들고 연습해서 여기에서 숙달해 가지고 가는 자야, 하늘나라는  그런게 하나도 없다. 하늘나라는 누한테 뺏길 자가 하나도 없다. 거 다  실력가들이다. 너한테 착취 당할 자도 없다. 너한테 이용당할 자들이 없다. 다만  거기에는 하나님으로 부터 모든 존재가 봉사하는 그것이 그의 생애 취미요  본분이요 법칙이요 그것이 영생이라. 하나님 한분에게 받고 하나님 자존하신  한분은 이분은 모든 것이 주는 것이 자기 생애라.

그러기에 우리가 연보를 할 때에 한 번 이 마음을 먹는 것보다 두 번 먹는 것이 더  능숙해지고 두 번 보다 세 번이 더 능숙해집니다. 우리 교회는 연보를 하게 해  가지고 아직까지 연보에 액수에 정한 액수 미만가는 것을 저는 못 봤습니다.

얼마해야 될기라 했는데, 나중에 보면 그보다 좀 많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거 좀  많이 나왔다 이랬는데 나중에 써보면 실은 그 돈이 다 들어갑니다. 그 쓸 것을  그대로 받기는 받는데 마음에 좀 안타까운 것을 제가 느낀것은 액수야 백 번에  나눠 받힐 것을 백 번에 나눠 받힐 것을 한번 받혀도 액수야 받혔으니까 하늘에  보화가 저축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또 인간을 구원하는데 그 양은  마찬가지이겠습니다.

그러나 제일 큰 알맹이가 되는 주님의 피를 생각하고 그 피에 동참하는 것 주님의  피에 동참하는 연보인데, 이 연보에 대해서 너무 미안하고 너무 부족하고 '주여  주님은 생명을 나위해 받혀 줬는데 나는 이것을 받히는 이 못난 자이니 나도  언젠가 생명을 받히게 해 주옵소서.' 이것이 자기 성회되는 것인데 이것이  안됩니다. 백 번 연보할 것을 백 번 그렇게 생각하는 그게 하나님이 당신이 받으실  영광이요 향기로운 제사인데, 엿세 동안에 다 만들었는데 인간이 받혀봤자 내나  그것인데 뭐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인격과 우리의 정성을 당신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 번보다 두 번 생각한 것 두 번보다 열 번 생각하는 것 이럴 때에 이것이  주의 피에 동참이요. 모든 생각이 있는 것을 몸과 생명을 다 받혀 피로 주를 잇어  가지고 신인 교제로 피로 주를 잇어 가지고 이 복음이 우리에게 왔는데, 내가 나는  그걸 못 하고 이 물질로 참여하니 참 부스러기 중에 부스러기라.

이래서 아무리 연보를 많이 해도 자기는 마음 가운데에 죄송하게 여기고  황송하기가 짝이 없고 이런 망령되고 게을한 자가 그리 영광스러운 일에 참여하게  됐으니 주의 피 역사에 참여기에 됐으니, 인간을 구원하는 복음 역사에 참미가  됐으니, 마음에 참 머리를 들수 없는 겸손과 그대로 부스러기나마 이거 모르고  일생동안 저만 위해서 죄 짓는 데만 쓸터인데 여기에 참여하게 됐으니 참 감사한  기쁨과 겸손과 기쁨과 감사와 황송으로 이렇게 우리가 한 번 자라, 두 번 자라, 열  번 자라 자꾸 이렇게 해 나가는 것이 이것이 우리에게 복이 되는데, 우리 교회는 그 횟수가 줄어졌습니다. 횟수가 줄어졌습니다. 횟수가 줄어진 것은  연보를 더 연보답게 하기 위해서 연보궤를 만들어놨습니다. 이러니까 그만 아무  생각없이 상대가 궤짝이니까 이래 가지고 푹 넣고 나도 그런 실수를 종좀합니다.

연보 가지고 교회와서 봉투 툭 넣으면 그만 그만이요. 그대로 그 전에 과거에  연보를 거둘 때에는 연보를 받힐 때에 내 가지고서 묵상 기도를 이래 하면서 연보  주머니 연보를 넣었는데, 그 성의가 오면서 궤 넣는 데에는 그 성의가 들지 못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만 연보 하는 걸 잊어 버려서 연보를 못냈습니다.

 '아 오늘 연보를 빠졌다' 이 마음이 모여 가지고 뒤에 건축 연보를 한다 무슨  특별 연보를 한다 하면은 모두 하 그분이 그 만큼 못낼 사람인데 할 만큼 내어서  다 이 복음 운동은 문제 없게 나가지마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이 정성, 이 회수,  주의 피와 이 복음 역사에 뜻하는 것을 강성하는 이 실감의 승의 이것은 너무  우리가 보족합니다.

이래서 이 피의 역사에 대해서 복음 역사에 대해서 하늘의 저축에 대해서 우리가  무식한 사람이 되고 우리 서부교인들이 성화되는 이 면에 있어서 많이 방해됐다  하는 그것을 제가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도 가운데에 작정했습니다. 연보를 저 궤를 저래 뒀는데 연보궤에  연보를 넣는 분도 집에서 연보를 함부레 가지면서 할 수 있는 대로 새 돈을 바꾸어  그것도 참 은혜가 됩니다.

이 돈을 이래 갖고 쓰다가 '아 요 돈은 새 돈이다 요 돈을 연보해야 되겠다.'  '연보해야 되겠다' 고것도 은혜가 되는데, 연보해야 되겠다 참 주님은 나한테  피흘려 구속해 줬는데 나는 이것도 피의 댓가는 댓가니까 피 받히는 거는 피  받히는 것이지마는 이것을 받히니 주의 피를 생각하면서 새 돈을 마련하고 주의  피를 생각하면서 참 황송하고 죄송합니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연보를 준비해서, 이러니까 준비하니까 그냥 헌돈 넣을 수가 없고 또 아무나 그냥 할 수 없으니까  하다 안 되니까 돈이 몇 입 안 되지마는 흰종이에다 싸 가지고 한 번 싸 가지고 또  마음에 거석하니까, 두 번 싸 가지고 이러다 보니까 자기 마음에 십분도 거지에게  구걸 주는 것, 그 내버릴 돈 천한 그런게 아니고 그래도 좀 성의가 있는 연보를  해야 되겠다 이거요.

이래 가지고 자기라는 사람이 변화되고 그 생활이 의가 숙달될 수록이 범죄는 점점  축소 되지는 것입니다. 점점 감퇴 되지는 것입니다. 죄 짓는 일만 자꾸 연습하면은  죄 짓는 그것만 숙달되어지지 의에 대해서는 점점 감퇴되어 갑니다.

연보를 갖출 때에 이렇게 해야 되겠다. 너무 연보에 대해서 무식해 놓으니까  연보할 때에 전부 이 떨어진 돈 못쓸 돈 꾸역 꾸역 이래 아무나 줏어 넌 것이  환하다 그 말이오. 또 보면 저 들어오는 데에 연보궤 보면 삼분지 일은 연보 넣고  삼분지 이는 그냥 들어옵니다. 이제 내가 큰 죄를 지었다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래서 연보답게 이제 연보를 해서 우리가 주님의 피를 생각하고 이 피에 나도  참석해야 된다. 참예 해야 된다. 주의 피에 참예를 해야 된다 하는 이 책임감을  이것을 우리가 점점 바로 가지도록 이 복음 역사에 나도 참예해야 된다 하는 것을  바로 가지도록 나도 나그네 세상에서 무궁 세계의 거지로 살지 않도록 그 나라에  저축하는 일을 해야 되겠다는 이 사실을 자기가 깨닫아 가지도록 이렇게 해야  하겠고, 이 일을 해야 수도관에 있는 물이 이 물이 삐져 나가야 또 새 물이 수도관에  들어오지 이것을 꽉 차여 가지고 있으니까 잠겨 놓으면 한 달 있어봤자 저 위에  물은 그대로 있지 한 방울도 더 나오지 않는다 그 말이오.

이것 모양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이것을 주님의 이 복음 역사에 받혀야  또 하나님께서 하나 받히니까 기뻐서 둘주니 둘 받히고 둘 받히니까 또 너이 주고  넷 받히니까 또 여덟 주시고 이렇게 해서 받힌 것은 댓가를 세상에서 주지  않습니다. 받힌 댓가는 세상에 주지 않습니다. 자기가 연보한 댓가는 털끝만치라도  세상에서는 받지를 못 합니다. 왜 연보 한것은 벌써 완전성의 것이 됐고 영원한  성이 됐는데 영원한 그것을 썩어질 것으로 줄 수 없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것은 그대로 하늘나라 저축 됐고 네가 심으니까 또 새로 씨를  줍니다. 씨 값은 없습니다. 백 번 받아도 씨 값은 없습니다. 그 씨를 심으니 그  저축은 자기의 것입니다.

이래서 안됐다 우리 서부교회 교인들이 경제에 대해서 그저 근근히 살지 도무지  경계에 대해서 몇몇 사람들은 연보에 대해서 내가 설교를 안 해줬지마는 뭐 건축  연보를 해도 혹 설교 한 번 하거나 말거나, 일년에 한 번 하거나, 일년에 뭐  몇해만에 한 번하거나 그런긴데 그래 놓으니까 모르니 연보에 무식하니 그래도  자기네들이 깨닫고 성의 있게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꾸 주시니가 또 심으니까  이러니까 점점 양이 많아져 갑니다. 그 사람의 소유가 점점 많아져 가요. 이래  어떤 사람은 항상 빈곤한 그 거지를 면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 보면 인색만 자라가고 물질은 전부 저 위해서 쓸것인 줄만 알고 남은 것이  있으면 제 자녀들 나지도 않는데 그것을 위해 쓸려고 하고 하나님께서 씨 주는  것을 전부 볶아 먹고 다 삶아 먹고 다 먹어 버리고 이러니까 하나님 앞에 이  거지가 됐다 하는 것을 제가 느꼈습니다.

이래서 앞으로는 저 연보궤를 저래 두는데 어쩌든지 집에서 연보를 가져올 때에 세  가지를 생각 하십시오. 주님의 피에 동참, 그리스도의 복음 역사에 동참,  하늘나라에 저축 아까운 맘 들거등 심는 씨는 하나님이 구별해 줬는데 제가 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심으라고 했는데 심으지 안하면 도적질하는 기라 심으면 또  심을 걸 하나님이 주시요.

인색한 마음이 들거들랑 하나님이 구별한 것이기 때문에 심으지 안하면 죄를 짓는  것이고 심으면 심을 것을 더 주신다는 것 계약 조건으로 여러분들이 심으고 기다려  보십시오. 잠시 잠깐 후면 반드시 여러분들에게 배를 심을 수 있는 그게 올  것입니다. 또 심으면 또 삼배 사배 십배를 심을 수 있는 것이 올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가들이 다 체험가입니다. 믿음은 자기가 해보고 체험과 경험이 없으면은  껍데기 신자요. 봐 해보니까 과연 그렇구나 이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경험의 종교요.

이래서 집에서 부터 마련할 때에 새돈을 마련하고 또 이 돈을 연보해서 교회  세우는 줄 그따위 생각말고 이 연보는 인간 구원 운동에 씁니다. 아 목사님 사람이  들어서 목사님 밥먹고 살면 인간 구원에 쓰다니 그 목사님 대접하는 게 목사를  먹이고 입히지 안하면 여기에 설교할 목사가 누가 있겠소 없으면 여러분들이 구원  안 됩니다. 그러니 어떻게 여러분들 전도를 하겠소. 목사님이 섬기는 것도 이것이  인간 구원입니다. 목사님이 쓰는 것 아닙니다. 인간 구원 운동이요. 이것이 예 이러니까 연보는 주님의 피에 참여하는 것이요. 연보는 인간 구원 대금 역사에  참여하는 것이요. 바울이 빌립보 4장에 "너희들이 이 복음 운동에 참여한 것  나에게 줘서 내가 이것을 이리 저리 이리도 쓰고 저리도 써 가지고 복음 운동에  하게 한 이것이 너희들의 복이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향기로운 제사니라"  말했습니다.

빌립보 4장 15절에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내일이 누구요? 바울 일이 뭐이요? 바울 일이 뭐입니까? 내일 바울  일이 복음의 일이요."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그것 때문에 말합니다.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 편으로 너희의 준 것을  받음으로 내가 복음 운동에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받으실만한 누가 받는다  말이오. 받으실만한 바울이 받는다 말이오. 하나님 받는다 그 말이오.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재물이요 향기로운 재물이요 하나님 받는다 그 말이오.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재물이오 향기로운 재물이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이것을  생각하고 집에서 연보를 마련할 때에 무슨 연보든지 돈 그게 문제 아니요 거기에  자기의 깨달음의 정성과 그로 말미암아 자기가 벼화되는 게 문제입니다.

연보 백 번 해도 한 번 하는 사람의 연보 만큼 하나님의 향기로운 제사가 안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연보를 준비할 때에 이것이 주님의 피 역사에 동참하는  기라. 주님은 피흘려 주셨는데 나는 이걸 가지고 주님 앞에 참여하는 것이라.

아무리 제가 다른 사람 못하는데 뭐 수억을 했다 할지라도 이 연보를 바로 생각할  때에 '주여 내가 생명을 받혀야 되겠는데 우선 이거 부스러기 이것을 받힙니다.

주님이 요구하시면 언제든지 생명을 받히겠습니다.' 인간은 이것이 배후에 있어야  됩니다.

일생동안 살아도 주를 바라보고 이래 살기 때문에 그분들이 목마르지 아니하고  피곤치 아니하고 쇠잔치 아니합니다. 이러니 내가 이것을 아무나따나 가난한  사람에게 구걸 주듯이 돈 주고 물건 사듯이 이럴 수 없다. 거기에 피가 된 생각이  있어야 되겠고, 복음의 운동에 성도들의 그 피에 대한 생각이 있어야 되겠고,  자기의 성의가 들어야 되겠고 이러니까 자기에게 마음에 성의가 든 만큼 정도가  다르지 않습니까. 자기 정도의 성의 된 만큼 연보 액수도 정해야 되겠고, 이것을  봉투에 넣어서 깨끗하게 또 해야 되겠고, 마음 정성되게 가져와서 연보궤 넣을  때도 그 하나님이 받을 수 있는 향기로운 제사가 되도록 자기의 인격 성심 성의를  합해 가지고 연보를 궤 안에 넣고, 만일 궤 안에 넣지 못하고 그만 우 나가는데 사람 보는데 연보 넣기 부끄럽고  이러니까 그만 지나가서 한 번 두 번 이래 가지고 얼 마나 하나님에게 대해서  우리가 제일 받히는 것이 물질 이것이 자기 받히는 송곳 끄트머리입니다. 송곳  끄트머리요. 이것이 발단입니다. 냉냉 끄트머리 세움이요. 이것이 제일 쉽고 그  다음으로 쉽고 어렵다 말이오. 처음 보다 물질 받히는 것보다 시간 받히는 게 더  어럽고, 시간 받히는 것보다 몸 받히는 것이 더 어럽고, 몸 받히는 것보다 자기의  전 인격을 받히는 것은 참 표가 안나기 때문에 더 어렵고 이러고 난 다음에 비로소  자기의 생명을 받히지 않고는 마음에 만족이 없고 평생 부끄러워서 뭐이든지  못하는 것이 이것이 주의 피공로를 깨달은 성도들인 것입니다. 다 이렇게 삽니다.

예수를 좀 잘 믿늦ㄴ다 하는 사람들한테 가서 정말로 알아 보십시오. 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연보를 해야 되겠고 넣지 못한 사람들은 그만 한번 빈손 가지고  갔다가 왔지만 연보 안 했으니 연보 안 넣었으니까 "빈손 가지고 내 앞에 오지  마라 너희들이 내게 빈손 들고 내게 오지마라" 하나님께서 말씀했는데 하나님의  연보 받으려고 엿세 동안 만든것이 다 당신의 것이요. 무슨 소용있소 그 인간  구원이지, 당신의 하시는 역사에 동참하라 말이오. 당신과 같은 그런 인성을  만들라 그 말이오. 당신과 같은 그런 생애 법칙을 제 법칙으로 삼으라 그 말이오.

하나님 대인으로 살 수 있는 자가 되라 말이오.

이러니까 이것을 면해서 그런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다음 주일 부터 연보궤  넣고 못 넣은 사람들은 여기에서 연보를 거두도록 할 것입니다. 못 넣은 사람들은  그때라도 넣어서 어쩌든지 오늘 설교한 대로 연보에 대한 세 가지, 인색하거든 한  가지 더 생각하고 하나 심으고 둘 받는 것, 둘 받을 때에 저 먹을 것까지 저 먹을  것 외에 둘 받는 것, 둘 심으면 그 다음에는 열을 줄란지 스물 줄란지 씨를 줄  때에 심으니까 하나님께서 점점 심을 수 있도록 씨를 주십니다. 주니까 제가 씨를  볶아 먹어버려 버리고 다 삶아 먹어버렸는데 그자에게 씨 줘봤자 소용있습니까. 씨  안 주면 양식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불신자와 자기가 박박 죄 지어 가지고 먹고 사는 것 뿐이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먹는 것 아닙니다. 씨를 심으지 안하면 양식을 안 줍니다. 안 주면 굶어  죽었지 어떻게 사는고, 굶어 죽을 터인데 사니까 도적질 해 먹고 살았지 도적질해  먹고 살았어. 전부 이 악과 독으로 살고 있지.

네 그래서 연보에 대한 것을 넷을 깨닫고 할 수 있는 대로 성의 있게 마련해  가지고 올때 부터 휙 던지지 말고, 저 오면서 눈감지 안해도 오면서 '주님 주님 나  위해서 피 흘리신 이 운동이 성도들이 몸과 생명을 받힌 이 복음 운동이  미약하나마 이것이 내 피에 보스라기 것 정성의 내 힘이 보스러기라 그것들에도  들었거든 보스러기인데 이것을 받힙니다. 받아 함께 써 주시옵소서' 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연보궤 넣고 만일 들어 올 때에 연보궤에 넣는 것을 잊어버렸으면  여 연보대를 돌릴 때에 그때에 연보를 하도록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의 이 연결되는  이 연결을 다시 맺어야 하겠습니다.

아 서부교회는 연보궤을 연보를 거두지 안하고 연보궤를 둔 그것이 성경적이라  이래 가지고 어떤 사람들은 또 그거 좋다하는 사람 있습니다. 그것도 성경적이요.

거두는 것도 성경적이요. 연보를 거뒀다고 이랬어. 다 거두어서 너희들이 어떻게  하라 하는 거두라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은 할때는 동기가 무슨 동기냐? 사람들이 잘못하면 연보하는 것도  사람 안면 보고 또 자기의 무엇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니 모르게 하라.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걸 왼손이 모르게 하라" 했기 때문에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이랬기 때문에 이것을 그만 연보궤 해 가지고 것다 넣기로 하자  이랬는데, 이 좋기는 이 좋은 이대로 했는데 그만 우리가 연보하는 것 잊어버려서  하나님과 이 물질로 연결가지 가지고 그 인격이 연결되지는 이것이 성장되  나가는데 이 일을 그만 전부 다 헛일했다 말이오.

이래서 다음 주일부터는 연보를 거두겠으니까 궤에 넣지 아니한 분은 연보 주머니  넣어서라도 연보주머니 오면은 눈감고 기도하면서 요걸 생각해요. 오늘 네 가지를  생각하든지 세 가지만 생각하든지 생각하면서 눈 감고 기도하고 정성껏 연보놓고  만일 자기가 집에서 준비하지 못하고 보니까 이거 아무 준비하지 못한 돈 이게  떨어진 지화가 있습니다.

이러면 마음에 가책을 갖고 속에 회개를 하면서 자기는 연보를 넣으면 그래도 주일  연보를 만원을 넣든지 십만원을 넣든지 몇 만원을 넣든지 이럴 정도인데 아 이거  준비 못했다. 그냥 갈 수는 없고 돈 몇푼 갓다가서 천원이나 몇 푼 넣는 그것도  회개하고 이래서, 연보의 이 본질인 주님의 피 역사에 주님의 구속 역사에  하늘나라 보고 저축에 씨를 심는 것에 참예하는 일인 것을 알고 성의있게 그렇게  궤 안에도 넣고 자기 앞에 연보 주머니 오면은 그때라도 넣고 그러나 저러나  관계없습니다.

저도 종종 잊어버립니다. 잊어버려서 나갈 때 넣고 또 마음에 가책이 되어서 다른  사람 여 강단에 올라와 가지고 이것 좀 갖다가 넣어 달라고 그래합니다. 그럴 때  있습니다. 아 자연히 그만 이 설교에 저도 마음을 기울이다 보면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다른데 기울이다 보면 그렇기 쉽다 말이오.

이러니까 연보궤 넣든지 연보주머니 넣든지 연보답게 무엇때문에 연보하는 것인지  그 목적이 어데 있는지 동기가 어데 있는지 동기는 주님의 피와 복음 역사에  있습니다. 목적은 인간을 구원하는 거기에 있소 그것이 하늘나라에 저축한다 말은  돈만 저축 되는 게 아니고 자기의 그렇게 이 역사에 동참하는 그 인격이 그 기능이  그 속성이 그 사람이 점점 하늘나라에 성장되 갑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 시간 깨닫아 확정을 지웁시다. 이제까지 특별 연보나 기도하고 여러분들이 실수  안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주일 연보 혹은 감사 연보 이런 뭐 수재 화재 이런  연보는 십일조 연보가 아닙니다. 그거는 십일조 아닌 자기 생활에서 내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잘 생각해서 양심에 가책되지 안하도록 그렇게 해서, 하나님  기뻐하시고 우리도 축복을 받아서 하나님의 충만을 받아서 전달할 수 있는 복의  기관이 되도록 깨닫고 작정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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