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분교

 

1985. 11. 3. 주일오전

 

본문 : 요한복음 8장 31절∼40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세상에 물질 이치를 말한 과학도 차차차차 중요하고 세밀한 과정에 나아가면 복잡해지고 알기가 어렵습니다. 또 그 과학의 진수, 진수에 나아갈라고 하면 심히 세밀해서 조금만 거게 틀려도 큰 화변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물량으로 말하면 엷은 종이 한 장 두께가 더 있어서 전멸이 될 수도 있고 모자라서 아무 소용 없는 무용의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과학이라는 것도 점점 고귀한 그 자리에 점점 발달돼 나가고 향상돼 나가게 되면 아주 거게는 조끄만치라도 틀리면 그 일이 성사가 안 되고 실패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과학을 공부 안 하고 그냥 그저 이렇게 일반인으로 무엇을 하는 사람들은 뭐 세밀하다라는 것을 잘 모르고 또 바르다 틀렸다 하는데 대해서 크게 그렇게 가치성을 느끼지를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농사를 지어도 진둥 만등 뭐 공업을 해도 한둥 만둥, 자기가 일생 동안을 살아도 산둥 만등으로 뭐 아무런 별 성공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거게서 자기가 마음을 써서 참 연구에나사 연구를 가하면 조금 틀린 데서 큰 손해가 오고 조금 더 바로 된 데에서 큰 유익이 오는 그런 실적을 자기가 느끼기 때문에 점점 그 사람이 사이비한 많은 것 속에서 참을 찾을라고 바로 할라고 애를 쓰는 것이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다 발명가가 되고 과학가가 되고 참 공업가가 되고 농업가가 되고 정치가도 되지 그렇게 아무나따나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구별성 없는 그런 펑범한 가운데서는 그것에 대해서 이상이나 절정인 그런 효력을 결과를 가져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물질이라는 그것은,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이 우주와 우주 안에 있는 것은 다 만드셨습니다. 간단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지으심을 받은 것보다 그분은 더 탁월한 세밀과 모든 철두 철미한 조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구원이라는 것은 무슨 이런 어떤 물건을 하나 만들어 내는거와 같은 그런 것이 아니고, 또 어떤 세밀한 과학물의, 요새는 최고로 세밀하고 구비한 절정에 있는 그런 과학물은 나는 모르기는 합니다. 내가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모르지마는 요새 모두 말하기를 뭐 원자를 말하는데, 모두 원자 앞에는 뻘뻘 떨고 있으니까 원자가 그것이 최고의 과학의 지금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거게 대해서, 그것이 제일 세밀하고 철저한 그런 이치가 아니겠느냐 그렇게 저는 그저 생각해 봅니다.

그런 것도, 그것도 하나의 물질인데 그런 것도 그렇게 그 만드는 이치가 세밀하고 참 그 모든 것이 다 이치가 있어 가지고 그 이치에 삐뚤어지면 안 되는 그 물리가 있는데. 하물며 그런 것을 앞으로 영원 무궁토록 통치하고 그런 것들을 다 죽이고 살리고 흥하게 패하게 할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모형대로의 존재가 이루어지는 거게 대해서 얼마나 철두 철미하며 얼마나 세밀하며 얼마나 구비하며 얼마나 광범위할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는 좀 미루어서 생각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런데에 대한 지식도 자기가 그것을 자기 지식을 삼을라고, 그로써 성공하는 사람이 될라고 하면은 뭐 몇십 년이 걸리는데, 만일 세상 그것도 자기가 뭐 사십 년 오십 년 전공했다 할지라도 자꾸 앞으로 무엇이 새로 발달돼 나가니까 뒤에 도태당하지 안하고 폐물이 되지 안할라고 하면은 늙어 죽는 날까지 자꾸 머리를 싸짜매고 자꾸 거기서 연구하고 연구해야 이제 새로운 연구가 발명될 때에 뒤떨어지지 안하고 엉뚱스러운 소리를 하지 안하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물리도 그것이 그저 참 심히 범위가 넓고 측량하기 어려울 만치 많다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기독자가 참된 기독교인이 돼 가지고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이것은 두 말 할 것 없이 무한한 이치입니다. 과학은 무한한 이치는 없습니다.

그거는 다 한정돼 있지마는 기독자의 구원은 무한한 이치입니다. 왜? 무한하신, 영원하시고 무한하신 그분의 형상이, 그분의 모형이 이루어져 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이 무한하시니 무한의 모형적인 우리의 구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독자의 구원이 얼마나 세밀하며 복잡하며 이루기가 어려운가? 그러기 때문에, 인간의 지혜와 총명으로도 할 수 없고 아버지의 성령으로만 할 수 있다고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랬는데 사람들이 예수 믿는 구원에 대한 이 가치를 너무도 허무하게 평가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의례히 몇십 년 걸려야 그 성공을 할 줄 알고 거게 대한 그 지식을 구비할 줄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마는 예수 믿는 것은 당장에 되리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 신구약 육십 육 권 그까짓 거야 재주있는 사람이면 몇 달이면 다 전부 암송을 다 할 수 있는 거, 그 몇 가지 되지 안하는 거' 이렇게 시뻐 보고 달라드는 사람들이 세상에 모두 명철한 사람들이요 총명있는 사람들이요 열심있는 사람들이요 세상에 모든 인간의 지식을 다 극복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그런 사람은 하나도 모른다 했습니다.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그것 가지고서 하나님 말씀을, 자기의 총명이나 지능이나 기존 지식이나 이런 거 가지고서 알라고 달라드는 사람들은 하나도 모르고, 그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부인할 때에 부인하고, '이거는 당신이, 나를 만드신 근원이 되시고 무한하신 분의 지식이기 때문에 내가 유한한 자가 이거는 알 수 없으니 무한하신 분이 나로 하여금 이 무한의 지식을 알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겸손히 그에게 굴하고 그이가 알려 주시기를 구하는 자만이 얻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린 아이와 같이, 어린 아이는 안다고 생각하는 것 없고 실력있다고 생각하는 것 없고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저 얻어 배워서 가지려는 그 심지와 인간성을 가지고 있고 욕망성을 가지고 있는 그거 가진 사람만이 알게 됐다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런데, 하나님 말씀을 자꾸 껍데기로만 듣고 속에 알맹이를 들을라고 하지를 안하고 하기 때문에 그저 열 번 말해도 제가 모르니까 요렇게 말할 때에 또 요 면을 말하면서 고다음에 또 쪼끔 고 다른 면에서, 우리가 실지로, 간단한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천태 만상의 생활 법규가 다 이 안에 들어 가지고 있으니까, 그 뭐 다 쓸라면은 온 세상에 두어도 둘 곳이 없다고 하는 그런 복잡한 것을 간단한 이 성경 말씀에 말씀해 놨고, 말씀해 놓은 이 문서는 찍해야 육십 육 권 해 봤자 몇 페이지 안 됩니다. 요 신구약 성경이 얼마 됩니까? 요 한 권인데? 이러나, 이 속에는 은밀한 이치인 영감 진리가 그 안에 있어서 무한의 진리가 그 안에 있기 때문에 이 성경책 속에, 이 성경 책 속에 말씀이 들어 있고, 이 말씀 속에 진리가 들어 있고, 이 진리 속에 영감이 들어 있고, 이 영감 속에 무한하신 완전자이신 하나님이 그 안에 내재하셔 가지고서 이를 통해서 역사하시고 있는 이 은혜에 도달하도록 하기 위해서 성경을 줬고, 성경을 주신 것은 성경의 내용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성경을 줬고 성경 내용은 말이란 거는 인간의 말, 성경 말이나 인간의 말이나 꼭 같은 말입니다. 인간의 말이나 꼭 같은 말인데 이 말 속에 진리라는 그 진리가 들었으니 진리는 우주를 만드신 지극히 큰 독자적 능력을 가진 것이 진리입니다. 진리를 알기 위해서 이 말씀을 주었고.

또 이 진리를 아는 것운 곧 삼위 일체의 하나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주신 것인데 사람들은 그만 이 세상 지식과 같이 생각해 가지고서 그저 성경 권수를 보고, 불교로 말하면 팔만 대장경이라고 하는데 이는 신구약 성경 육십 육 권 밖에 안 되니까 그만 책 권을 보고 '이까짓 거 한 권, 신구약 한 권' 업수이 보고, 어떤 사람은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말을 보고서 그만 '이거야 내가 뭐 일 년이면, 그리 아니면 뭐 육 개월이면 이거 완전히 암송 다 하겠다' 이래 가지고서 그 말을 보고 깔보고 말 속에 진리 있는 것은 하나도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혜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말은, 지혜있고 통달한 사람이 왜 모르느냐 하는 것은 이 말씀 속에 진리 있는 것을 제가 알지도 못하고 접하지를 못하는 걸 말합니다. 이 진리를 접하지 못하는 거, 이 말씀 속에는 저거들이, 과학자가 이 우주에 떠들어 봤자 요 별에서 조 별까지 가는 것은, 요 별에서 조 별 가는 것은 이 우주의 그 공간이라는 거리의 억억억억억만분지 일도 안 되는 그 짤막한 고만한 거리를 걸어 놓고서 큰소리를 떠들어 쌓아니까 비참하다 그 말이오. 이런데, 그런 것을 엿새 동안에 창조한 이 능력의 진리가 이 안에 있지마는 이 진리는 저는 이 진리를 멸시하기 때문에 만나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 진리면 다냐? 진리는 무인격의 이치입니다. 무인격의 이치요 이 진리 속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의 영원 자존하신, 모든 것을 창조한 창조주이신, 완전자이신 그분이 이 안에 계시는데 그분을 만나러 갈라고 우리에게 예수님이 피 흘려 구속해 주셨고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고 영감을 주셨지, 뭐 이거 세상 지식 같으면 이 신구약 성경은 발 아래 밟혀 버립니다. 발 아래 밟히요, 발 아래 밟히는데, 사람들이 언변으로 봐도 이 보다 나은 언변 많고 이보다 묘한 말도 많고 구비한 말도 많고 문체 좋은 아주 문체가 찬란한 그런 말도 많이 있습니다.

있으나 여게는 천지를 창조한 능력이 이 속에 있지마는 인간의, 천하 인간들의 말을 똘똘 다 뭉쳐 봤자 그까짓 거 하나님께서 일시에 불사르면 다 사뤄 버리지 그 속에 이 진리의 능력이 하나도 그 속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는 '이 속에 전지 전능의 영생하는 생명이 이 속에 있다' 하는 이것을 찾아 만날라고, 이것은 사람의 입으로 말할 때 입으로 전해 주지 못합니다. 입으로 말하는 그 입을 통해서 그 사람에게 역사하는 그 영감이 가 가지고 전해 줄 수 있습니다.

영감이 전해 줄 수 있는데, 이거 귀로 듣는 거 이것만 가지고 있지 딴걸 모르기 때문에, 성경에 말하기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귀 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는 그 귀는 뭘 가리켜 말한 것이냐 하면 양심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양심이간, 자기에게 참된 요소라는, 인간 중에는 제일 귀한 참된 요소가 있으니 참된 요소를 가지고서 네가 만나 볼라고 하면 접할 수가 있다 하는 그런 말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암만 성경을 가르쳐 놔도 보면은 요래 가르쳐 놓고 요쪽 각도로 물으면은, 알았는데 요쪽 각도로 물으면 또 모릅니다. 조런 각도로 물으면 또 모르요. 이러니까, 도무지 그 진리를 도통을 하지 못해. 도가, 이리나 저리나 다 통하는 것인데 통하지를 못하고 항상 이 진리에는 고게 파묻혀 버리고 조 진리에는 조게 파묻혀 버리고 이 진리가 전부 합하여 하나라 하는 거기에 도달하지를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응용이, 응용이 없고, 웅용성이 전연히 없고 여게 대해서 모든 발달성과 연구성이 전연히 없으니까 이 구원 이루는 것이 자꾸 지체가 되고 고생을 한다 그 말이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천대받는 거 아니오. 예수 믿는 사람은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는 것이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안 믿었으면 그까짓 게 똥덩이 같을 것이 예수를 바로만 믿고 나면은 아주 정금 같은, 천하 인류 중에 머리 되는 그런 인간이 되어지는 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위에만 있고 아래 있지 안하고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안한다 하고, 꾸어 주고 꾸지 안한다고 했는데 오늘 우리의 현상은 성경 말씀과 정반대되어 있지 않습니까? 반대되어 있는 것이 그게 옳게 된 것입니다. 왜? 성경 말씀대로 믿지 않기 때문에 그래 되는 것이 필연한 일 아닙니까? 지금 오늘 광고를 지금 합니다. 앞으로 이제 분교 연보를 할 겁니다. 분교 연보를 할 테니 여러분들이 기도하고, 분교 연보를 하는데 그래 하십시오 분교 연보를 지난 번에 했는데, 해 가지고 자기 연보한 때와 연보하고 난 후와 형편이 오그라지거들랑 연보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 연보한 거 잘못 했기 때문에 축복 받은 게 아니라 화를 받았습니다. 연보하지 마십시오 연보를 했는데 그때 연보할 때보다도 훨끈 나았거들랑 나은 것 가운데에서, 나아진 것 가운데 다 제것이 아니니까, 나아진 거 가운데 씨와 양식이 있으니까 나아진 거 가운데 인간 구원에 바칠 것이 어느 양이요 내가 또 사용해서 소비해야 될 양이 어느 것이라 하는 그것을 알아서 그래 하십시오.

연보를 해도 왜 축복을 받아서 더 낫지 못했는가? 도둑놈 연보를 해 그렇습니다.

노름쟁이 연보를 해 그렇소. 연보하면, 자, 사람들이 사기꾼이 이래 쪼그매 줘 가지고 꾀어 가지고서, 꾀어 가지고서, 다른 사람을 꾀우기 위해서 뭣을 줘 가지고 꾀어 가지고서 쪼끔 주고서 꾀우니까 왕창 들어먹는 거, 요새 돈 들어먹어 가지고 모두 다 돈을 떼이고 하는데 떼이는 게 마땅하요. 떼이는 자도 망해야 돼요. 떼 먹는 자도 망했소. 왜? 어떤 사람 보니까, 요새 뭐 장사 해 봤자 일부 오리 변을 못 차고 나갑니다 못 차고 나가는데 빚을 내기를, 그래도 일시 임시 급하면 이래 빚 내 쓸 수가 있지마는 빚을 내기를 오부 변, 삼부 변, 사부 변 이것은 아무리 이익이 많은 장사라도 이런 빚 내 가지고는 수지가 안 맞습니다. 이자를 못 차고 나갑니다.

이런데, 그런 빚을 주고, '아, 이 사람 이자를 많이 주고 이자를 총총 잘 주니까 이거 됐다' 하면서 뭐 돈 쓸 일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일부니 일부 오리니 하는 것보다는 이게 나으니까 '아, 돈 더 쓸라면 좀 더 쓰십시오' 하고 줍니다. 자꾸 줘요, 이래 가지고서 빚을 점점 많이 짊어 지웁니다. 저 사람은 또 뭣을 노리고 있는 게 아니라 '자, 요거 보자. 내가 지금 백만 원을 내 왔는데, 백만 원 내 왔는데 백만 원 요거 가지고서 요리를 할 때에 이 사람에게 천만 원을 돋쳐 내야 이거 성공이지 그리 아니면 성공 못 한다.' 백만 원 가지고서, 백만 원에 오부 이자면 얼마입니까? 오십만 원입니까? 오만 원입니까? 오부 이자면 오만 원이라 말이지요. '아, 이거 뭐 내가 잠깐 쓸 건데 오부 이자로라도 좀 주이소' 오부 이자로 줬다 말이오. 주니까 착 그날 오만 원 딱 갖다 줍니다. 오만 원 갖다 주니까 인제 구십 오만 원 남았습니다. 또 고다음에 고 날짜에 또 오만 원 갖다 줍니다. 이제 구십만 원 남았습니다. 자꾸 이래 가지고서 이제 벌써 열 번 갖다 주니까 오십만 원 남았고 오십만 원 이자로 줬습니다. 주니까 '아, 열 번이나 착착 고 날도 어기지 안하고서 오만 원씩 갖다 주니까, 야, 이거 참 이 사람. 이런 사람만 있으면 나 놀고 먹어도 되겠고, 되겠다' 이래 가지고 다른 사람 돈 준 거 전부 거둬다가 그리 다 줍니다. 다 주면서 '뭐 쓸 일이 있습니까?' '아, 예 예. 가만 있어 지금은 쓸 일이 없습니다 좀 계셔 보이소' '아, 또 이거 뭐 큰 유익된 일이 있었는데 지금 내게 있는 돈이 벌써 있지마는 쪼금 모자라니까 그러면 얼마나 됩니까?' 또 갖다 썼다 말이오. 또 착착 갖다 줍니다. 이래 가지고서 백만 원 이자만 주고서 한 푼도 안 남았어. 있는 거는 아니오. 이래 가지고서 백만 원, 이자로 백만 원이니까, 스무 달을, 스무 달을 오만 원씩 착착 주니까 스무 달 동안에 벌써 넘어가 버렸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그 사람 뭐 여게서 뭐 하고 저 하고 뭐 서울로 한번 가고 일본으로 한번 가고 자꾸 이래 쌓아니까 그 사람이 '그래 뭐 어찌 됩니까?' '뭐, 어째 뭐. 뭐 어짜면 큰 참 재벌가가 한번 되겠습니다? 이래 쌓아면서 이라니까 유익을 봐 가지고서 돈을 다 줬다가서 마지막에 최고로 얻고 '요 이상은 아마 얻지 못할 거다. 요 사람 돈 없다? 하면 딱 긁어 도망쳐 버립니다. 이래 가지고서 뭐 돈 떼였다 하는, 네가 도둑놈이기 때문에 도둑놈이 도둑놈한테 도적 맞았는데 뭐 너나 그나 똑 같은 도둑놈인데 뭐 지금 허 그놈이 도둑놈이라 이 쌓고 있느냐? 네가 도둑놈이다' 나는 그래 말합니다. 이랬는데, 연보도 그런, 그런 연보 하는 자 있다 말이오. 연보하는 자, 참으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믿고, 자기에게 없는 연보하지 마십시오. '아, 이거 다 주님이 내게 주셨으니까 이제 주님에게 연보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서 감사함으로 자기에게 할 수 있는 거 연보하지 안하고, '아, 주님에게 연보한다 하면 그냥 적어만 놓으면 주님이 연보하도록 해 주신다 하더라.' 그러니까 뭉떵 적어 놓고 내지도 못하고 그라고, 그리 아니면 또 연보하고 난 다음에 자기가 연보해서, '그 사람이 얼마 연보하는데 연보하고는 착착 줘. 그 사람이 신용이 있어' 그래 가지고 그 교인들에게 돈 떼 먹을 욕심으로써 연보하는 자도 있고, 또 하나님에게 '내가 연보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돈 많이 주시지' 싶어서 고런 새카만 복장을 가지고서 연보하는 자도 있기 때문에, 그런 자는, 연보를 했는데 축복이 안 오거든 도둑놈의 연보를 했다고 생각하십시오. 연보할 돈이 없는데 공연히 착취해 가지고 남의 걸 빚을 지워 가지고 끌어내 가지고 이래 했으니까, '남 돈 줄 거는 안 주더란대도 연보하면 돈 하나님이 많이 축복해 주시면 돈 갚지' 이게 이치에 옳습니까? 바로 연보하면 자꾸 부자가 됩니다. 이래서, 예수 믿는 이치를 바로 하면 첫째로 제일 쉬운 것이 경제 성공하고, 경제 성공하고 난 다음엔 그 다음에 문예 성공하고, 이 모든 인간의 지식의 문예에 대해서 성공하고, 문예 성공하고 난 다음에는 인간 성공하고, 인간 성공하고 난 다음에 모든 권세나 지위나 영광 성공 다 하는 것인데 성경 말씀대로 믿지 안하기 때문에 안 된다 그 말이오. 또 믿는다 하는 것은 성경 말씀이, 예를 들면은 백 가지를 말씀했는데 백 가지 가운데 한 가지만 지켜 놓고 '나는 이제 복 주시겠지' '야, 한 가지, 아흔 아홉 가지 지키지 안한 거는 어짤 것이고? 그거 지켜라' 성경이 말하는 것은 온전한 사람이 돼라 말이오. 도박 예수가 아니오. 사기 예수가 아니오. 이는 참 바르고 참되고 온전하기 때문에 모든 전체가 온전하고 바로만 돼지면 뭐 축복이라 하는 것은, 성공이라 하는 것은 필연한 것인데 모두 예수를 도박 예수를 믿는다 말이오. 도박 예수, 사기 예수를 믿어. 협잡 예수를 믿고,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예수 믿는 이치를 바로 말해 주면은 듣기가 싫고 고만 당장에 부자 된다 이런 데 얼렁뚱땅 말하면은, 하, 좋아서 야, 그렇게까지 복이 되는 데는 네가 그 밑에는 밑잘미, 회개라는 그게 있고,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는 믿음이란 게 있는데 그거는 하나도 안 하고 전부 도박 예수를 믿어 가지고서 그렇게 허영과 허욕만 가지고 날뛰니까 망할 수밖에 없다 말이오. 그런 자꾸 설교를 들으니까 그렇게만 듣기를 원해.

그렇게만 듣기를 원하니까 한 시간 설교하면 '에, 지루하다. 또 한 말 또 한다' 백 번 말해도 네가 모르니까 해야 되는데 지킬 요량을 하고 하나 네가 말 구경할라고 하느냐? 하나님 말씀을 구경할라고 하는 자는 저주를 받아요. 하나님 말씀을 왜 구경해요? 영생하는 생명의 말씀인데, 하나님 말씀인데 왜 그렇게 만홀히 여겨서 구경만 하고 말아요?

그런고로 진리를 똑똑히 깨달아야 됩니다. 실컷 가르쳐 놓고 물으면 하나도 몰라 왜? 속이 새카맣게 돼 가지고 있는데, 새카맣게 돼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 말씀 하나 들어가면 고것도 들어갈 때는 빤 하지마는 좀 있으면 그만 그 다 물리쳐 버리고 토해 내트려 버리고 새카매지는데, 새카매지니까, 뭐, 자, 새벽 기도 나오면 쪼끄매 빤 하다가 또 새카매지면, 또 그 종일 생활하는 건 새카만 생활 한다 말이오, 새카만 생활 해. 자, 예배당에 왔을 땐 좀 빤 하다가서 실지로 자기 현실 생활에 가서는 새카맣게 어두운 행동을 하니까, 뭐 항상 하루 종일 마귀 놀음만 하고 있는데 뭐 하나님의 축복이 어찌 오겠소? 하나님의 저주 밖에는 올 게 없다 그 말이오.

이번에는 분교 연보 할 터인데 연보해 가지고, '아, 나는 연보할 때 그때보다는 지금 좀 낫다.' 또 '그때 연보할 때는 내가 할 형편이 못 됐는데 연보하고 났더니마는 더 부자는 안 돼도 그 굴지는 메엿다.' 아, 연보하고 나니까 굴지가 메였거들랑 또 한 번 해 보십시오. 또 한 번 하고 또 굴지 메우고, 아, 그라면 또 하고 나니까 푹 들어간 게 또 쑥 나오고 푹 들어간 게 또 쑥 나오고, 아, 그라면, 또 저는 그대로 하는 건지 몰라. 그러고, 연보하고 난 다음에 자꾸 하나님이 축복을 해서 많아졌으면은 연보하십시오. 연보해 가지고서 더 가난해지고 더 곤난해졌으면은 그 사람 연보한 것을, 노름꾼 연보, 도박 연보, 도적 연보를 했기 때문에, 도적의 마음을 가지고 연보를 했기 때문에 고걸 회개해야 되지 회개 안 하면 연보한 것도 다 헛일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와같이 하니까 내가, 자, 이 말씀대로 한 게 예수를 바로 믿나 안 믿나 하는 것을 시험해 봐요. 예수를 바로 믿으면 첫째로 뭐이 되느냐? 바로 믿으면 첫째로 자기 마음이 변화가 됩니다. 예수를 바로 믿으면은 자기 마음이 변화가 돼요. 자기가 자기 마음 변화되는 걸 알 수 있다 말이오. '내가 봐도 과거보다는 내가 조금 좀 다른 사람이 됐다' 변화가 되고, 또 자기 행동이 변화가 됩니다. 이래서, 사물 관계도, 물질을 보는 데, 물질을 대하는 데도 변화됐고, 일을 만나서도 변화됐고, 사람을 대해서도 변화가 됐고 뭐 변화된 걸 자기가 본다 말이오. 그 변화가 자체가 변화된 걸 자기가 알 수 있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는 압니다. 또 얼마 동안 변화되면 다른 사람도 압니다.

변화가 돼, 그라고 나니까 모든 그 사고 방식이 변화가 되고, 행동이 변화가 돼, 이러니까, 보니 정말로, 과거 같으면 내가 일 대 일로 내가 해 가지고서, '내가 행동하는 것으로 내 힘으로만 되는 거 같으면 하지마는 이거는 내 힘이 아니고 객관의 능력이 와 가지고 분명히 도와 줬다, 아, 이거 그 사람이 왜 내게 대해서 과거보다도 호감을 가지고 서로 협조를 가지고 나를 신용을 하고 인정을 하는가? 이거는 내가 예수 믿어 내가 변화돼서 하나님의 축복이다' 이 모든 걸 깨달을 수 있다 그 말이오.

이래서, 자기가 예수를 믿어도 변화가 안 되면은 잘못이 있다는 걸 깨닫고 그것을 치료해서 고칠 요랑은 안 하고서, 고치지 안하고 자꾸 주일만 자꾸 지키고 열심히만 나오면 될 줄 알아도 교회 나와 가지고 진리를 배워 가지고 변화가 안 되면 주일 지켜 그날 돈벌이 못 한 고것만 손해갔어. 고것만 손해갔어. 그 손해도 그라면, 그 손해도 간 게 좋은가 안 간 게 좋은가? 손해간 게 좋소, 왜? 그 손해 안 갔으면 제가 화덩어리를, 그날 돈벌이에서 화덩어리를 마련해 가지고서 배나 더 망할 터인데 망할 일을 덜 했으니까, 망할 일을 덜 했으니까, 복은 못 받았지마는 망할 일을 덜 했으니까, 하나님의 계명 어겨서 무슨 일 해 가지고서 망할 일 아닌 일이 있습니까? 그래 그날 주일 지켜서 복은 못 받았지마는 죄를 지어서 망할 일을 안 했으니까 그만해도 좀 유익이 되긴 됐지.

하나님의 말씀은 영생이오. 전부가 생명이오. 하나님의 말씀은 몸에 건강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양약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축복이요, 하나님 말씀은 존귀요, 하나님 말씀은 영광이요, 하나님 말씀은 다 부강이요, 하나님 말씀은 다 승리요, 전부 아닌 말씀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데, 이 말씀을 우리가 지키지 안하기 때문에 그러하고, 또 이 말씀이 뭐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 말이오. 이것도 다 서론이오. 말씀을 업신여기기 때문에 자꾸만 하는 말이라 그 말이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미 예수 믿는 유대인들에게, 오늘 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 여기 안 나왔습니까? 여게 나온 사람은 다 믿은 유대인입니다. 믿은 다 이스라엘 백성이오, 여게는 다, 우리는 다 예수 믿는 사람 아니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인데 믿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을 여게 말씀했습니다.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말씀하시되, 그러면, 유대인들에게, 많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는 이 말씀이 예수 믿고 믿으므로 여게 온 우리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오늘 주님이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지금 무슨 말씀을 해 주시는고 이것을 이 시간에 들어서 깨달읍시다.

"이르시되 너희가" 예수 믿는 네가, "내 말에 거하면" 여기 성공이 있습니다. '내 말에 거하면' 하는 말은 주님의 말씀 안에 있으면 그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 안에 있으면, 주님의 지식 안에 있다 말이요, 주님의 규범 안에 있다 말이요, 주님의 법리 안에 있다 말이요, 주님의 이 말씀대로의 지식, 말씀대로의 행위, 말씀대로의 이렇게 사람이 될라고 하는 그것이 주님의 말씀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말씀 안에. 요한 2서, 거기는 한 장뿐인데, 9절에 보면은, '사람이 내 교훈 안에 있으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 진리가 그 안에 같이 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내 말에 거하면'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 안에 있다 말이오.

그러면, 모든 비판이나 평가나 모든 희로애락이나 전체를 이 말씀대로 하는 그것이 말씀 안에 있는 것입니다. 내 말 안에, 주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모든 비판이나 평가할 때에, (봐, 못 들으니까. 두루뭉실이 예수 믿어.

어짜든지 예수 믿으면 된다 하는 그따위 소리만 듣고, 그거 가지고는 백날, 평생 해 봤자 저는 구원은 하나도 이루지 못합니다.) 자기가 무슨 사건을 당할 때에 비판하기를 세상 말대로 비판하고 세상 지식대로 비판하고 인간들의 모든 법대로 비판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비판하지 안하면 말씀 안에 있는 사람 아닙니다.

비판할 때도 '요 말씀이 뭐라 하노' 요 말씀대로 비판하고 요 말씀대로 평가하고, 또 자기 계획도 이 말씀에서 하지 말라는 건 안 하고 요 말씀대로 하라는 것은 하고, 이 말씀대로 계획도 비판도 평가도 이 말씀대로의, 이 말씀이 기뻐하라는 건 기뻐하고 이 말씀이 슬퍼하라는 건 슬퍼하고 희로애락도 이 말씀대로, 모든 그 방편도 계획도 이 말씀대로 언행 심사가 이 말씀대로 하는 것을 이 말씀. 말씀 안에 말씀에 거하면, 내 말에 거하면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생활은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이냐? 우리의 영 구원 얻은 것은 이거는 다 객관의 은혜로 완전히 구원 얻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구원 얻을라 하는 것은 우리 이 영이 무궁세계에 영계와 물질계. 영계도 우리가 통치할 것이고 물질계도 우리가 통치할 것인데, 영계와 물질계에 우리가 모든 것을 통치하고 하나님 다음의 만물의 중보자로서 이렇게 살게 될 것인데, 우리 영은 구원 얻었지마는 우리 심신의 껍데기 형체는 부활하지마는 심신의 기능이 구원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지금 구원 얻을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심신의 기능이 구원 얻는 것은 어떤 구원이냐? 우리 심신의 기능이 전지의 기능이 돼야 되고 전능의 기능이 돼야 됩니다. 완전의 기능이 돼야 됩니다. 속성도 사랑이든지, 진실성이라든지, 구별성이라든지, 모든 지성이라든지, 지혜성이라든지 모든 우리의 속성도 완전이 돼야 됩니다. 완전이 되어지는 이것이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지금 구원을 이루어서 무궁세계에, 하늘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됐을 때에 그때에 무궁세계에서 이 기능 가지고 우리가 살 터인데. 영이, 이 기능은 하나의 타고. 다니는 도구와 같아서, 영은 하나님같은 그 영이요, 하나님의 모형이요, 이런데, 이 심신의 기능을 타고 다니면서, 영계는 마음의 기능을 타고 다니면서 이거 도구로 삼아 가지고 일하고, 이 물질계는 몸의 기능을 타고 다니면서 이 물질계에 일하고 이렇게 일하는 것인데, 이 기능을 다 죽여 버리고 없으면 안 된다 말이오. 이 기능이 어떤 기능이라야 되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완전한 기능과 같은 기능이 돼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같은 완전한 기능,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와 같은 우리 전지의 지혜가 돼야 되고, 전능의 능력 같은 그 능력이 돼야 되는 것인데 어떻게 해야 되어집니까? 우리에게 그런 게 있습니까? 그런 게 없습니다. 없는데, 다만 법이 무슨 법이냐 하면은 믿음으로 됩니다. 믿음으로 되는데.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에 연결돼 가지고서 전지의 지혜의 인도대로 하면은 그 하는 행동은 전부 전지의 지혜가 됩니다. 그럴 때에 전능의 능력이. 우리 힘을 가지고 다 해서, 우리 힘을 가지고 다 하고 난 다음에 모자라는 것은 전능의 능력이 해 준다고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죽도록 충성하라, 네게 있는 심신을 다 기울여 가지고서 죽도록 충성하라, 그렇게 하면 내가' 주님이, 하나님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겠다' 그 말은, 생명의 면류관이라 말은 생명은 뭐이 생명이지요? 뭐이 생명입니까? 아는 사람, 생명은 뭐이 생명입니까? 생명이면 하나가 생명입니까, 요라는 것이 생명입니까? 둘이 합하는 것이 생명입니까 혼자 있는 게 생명입니까? 어떤 게 생명입니까? 자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생명은 어떤 게 생명인지? 생명은 어떤 게 생명이오? 이래 가지고 있으면 생명이 안 돼요. 어떤 게 생명입니까? 둘이 이렇게 막 합해지는 거라, 이래 둘이. 둘이 이렇게 연결되는 게 생명입니다. 연결되는 게 생명. 연결되는 것, 둘이 합한 게 생명이오. 둘이 합하는데 뉘하고 합합니까? 자존자 완전자하고 나하고 합해서 나는 부인하고, 나는 부인하고 완전자를 내가 믿고 소망하고 모든 걸 맡겨 놓고 그분에게 따라서 피동되는, 피동됨으로써 그분이 동하니까 내가 동하고 그분이 정하니까 내가 정하고 그분이 기뻐하니까 나도 기뻐하고, 내 희로애락이나 비판이나 평가가 모든 것이 내 독단으로 하지 안하고 완전자 그분에게 연결돼 가지고 그분이 하는 거게 따라서 피동되니까 내가 하나님이 아니지만 내 행동은 하나님의 행동이 되고 만다 말이오. 이것이 우리가 이 기능이 완전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심신의 기능을 지금 구원 얻을라고 이렇게 하는 것인데, 그러면, 이 심신의 기능이 구원을 얻는 데에는 순서가 있고 방편이 있으니까 그 방편은 어떠며 순서는 어떠냐? 방편은 어떠며 순서는 어떠냐? 방편과 순서가 있으니 첫째는, 첫째는 거게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하라고 했는지 그 말씀에 대해서 내용을 알아야 되겠고, 내용을 알아야 되겠고, 그러면, 하나님 말씀 내용을 알아야 되겠고, 그다음에는, 내용을 알고 난 다음에는 그러면 이 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어떻게 사용을 해야 되느냐? -인간 말로 말합니다.- 어떻게 사용해야 되느냐? 사용을 할 수 없소. 어떻게 이 말씀을 모셔야 되고 이 말씀에게 어떻게 내가 거기에 소속해야 되느냐, 모셔야 되느냐, 어떻게 해서 말씀에게 내가 붙겠느냐, 붙어야 되겠느냐 하는 그 말이오. 이거 두 가지가 중요합니다.

제가 오늘 이 말씀을 증거하게 된 것은, 지금 한국과 세계에 예수 믿는 방편, 성경 말씀을 잘 자기가 활용해 가지고서 구원을 이루는 성경 말씀 연구, 예수 믿는 방편을 연구하는데 마귀란 놈이 말세에 찬란한 그 방편을 마구 끌어 들였습니다. 찬란한 방편을 마구 인간들에게 줘 놨기 때문에 참으로 이는 하나님의 택한 자요 성령의 사람이 아니면 다 삼켜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조끄마치라도 자기 속에 사욕이나 주관을 가진 사람은, 사욕이나 주관을 가진 사람은 이 밥이 안 될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완전히 부인한 자면 암만 못난 자라도 다 이 구원을 이루어 가질 수가 있기 때문에 이제 이것이 아마도 오늘 이거 증거해야 되겠다 해서 증거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것이 이 말씀의 지식을 우리가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 말씀의 지식을 가지고, 그게 제일 중요하고, 그다음에는 이 지식을, 우리말로 말하면 어떻게 활용을 하나, 이 지식을 어떻게 이용을 하나, 다시 말하면 이용을, 이 지식을 어떻게 이용하나 그 말은, 지식은 나보다 무한히 크시기 때문에 이 지식을 내가 어떻게 이용하느냐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지식에게 내가 어떻게 이용을 당해야 되느냐, 어떻게 하면 이 지식에게 내가 이용을 당하겠느냐 하는 그 말이오.

그러기에, 제일 중요한 것이 이 성경 말씀의 지식을 알아야 되겠으니까 이 말씀에서, 자, 하나님은 그분은 영원 자존자라 하는데 어떻게 자존했나, 그분의 자존에 대해서 내가 이 성경 말씀에서 배워서 알아야 되겠고, 이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이기 때문에 옳고 바르게 가르쳤습니다. 정확 무오합니다. 뭐 하나도 천지보다도 중량이 무겁습니다. 이러기에, 이 성경 말씀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라 하는 것을, 하나님의 존재성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러면, 그분의 속성에 대해서, 그분이 또 어떤 지혜를 가졌고 능력을 가졌으며 그분이 무슨 일을 했는가 그분이 창조하심에 대해서, 예정하심에 대해서, 그분이 목적하심에 대해서 이걸 다 우리가 알아야 되겠고, 또 그분이 가르친 대로 사람은 뭐이냐, 사람에게 대한 하나님이 가르치신 대로의 사람에게 대한 지식을 우리가 충분히 다 가져야 되겠고,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가르치신 대로 충분한 지식을 가져야 되겠고, 모든 이 세상에 대해서 하나님이 가르치신 대로 세상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바로 가져야 되겠고, 마귀에 대해서 하나님이 가르친 대로 이 지식을 충분히 가져야 되겠고 또 기쁨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지식, '이 기쁨은 너 죽이는 기쁨이다 이 기쁨은 살리는 기쁨이다' 기쁨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지식이 가르치는 대로 다 알아야 되겠고, 또 슬픔에 대해서도 알아야 되겠고, 두려움에 대해서 도 알아야 되겠고 즐거움에 대해서도 알아야 되겠고, 욕심에 대해서도 알아야 되겠고 우리의 이 감침에 대해서도 알아야 되겠고, 이거 뭐 사람들의 말에 대해서, 사람들의 말을, 하나님의 지식이, 이런 말도 있고 이런 말도 있고 이런 말도 있고 이런 말도 있기 때문에 이제 그 말을 하나님의 지식에서 배워 가지고서 우리가 사람 말을 들으면 딱딱 '요거는 마귀 말이다, 요거는 뉘 말이다, 요거는 사이비하다' 요것을 다 알아서, 하나님의 지식이 우리에게 하나도 빠진 것이 없이 전부를 다 가르쳐 주시고 계시니, 이제 이 가르쳐, 이사야 34장에 말씀하신 대로 빠진 것이 없이 다 가르쳐 주고 계시니까 이 말씀의 지식에서 모든 것을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야 되겠다 그 말이오.

그래서 이거 안 것도 고만 다 팔아먹고 없어져 버려요. 나는 처음에 예수 믿기 시작할 때는 성경에 있는 것을 거의 알았는데 고만 목회 나오고 나니까 다른 사람들 자꾸 이거 가르칠라 하니까 가르치는 것 그것만 자꾸 연구하다 보니까, 이거 가르칠라니까 또 그거 연구해야 되지 전반적인 그만 지식은 그만 뺏겼다 말이오. 그래서, 내가 지금 요새는 지금 인제 '다 이거 다 치워 버리고 내가 이제 내 할 일 해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서 '이거 모두 다 장로님들 다 맡아 하십시오' 다 맡아 하라고 이래 맡겨 버리고 이제는 성경을 읽어서 성경에 다시, 이거 성경에 대해서 뭐라고 하나 똑똑히 한번 재상고 해 가지고 알아야 되겠다 이래서, 뭐 다른 거 안 합니다. 하기를 성경 읽는 거, 또 기도하는 거, 말씀 증거하는 거, 요 세 가지 외에는 아무것도 내가 안 하겠다 그렇게 작정을 하고 이게 다 안 돼서 쪼끔씩 자꾸 돼 나갑니다 이 성경에서 우리가 모든 걸 배워야 되겠습니다. 성경에서 모든 걸 배워야 되겠습니다. 사람에게 대해서도 배워야 되고 모든,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행복관도 성경이 가르쳐 주는 대로 내가 행복을 봐야 되겠고, 인생관도 성경이 가르쳐 주는 대로 인간을 봐야 되겠고, 모든 세상관도 성경이 가르쳐 주는 대로 세상을 봐야 되겠고 성경이 가르쳐 주는 대로, 모든 행복관도, 쾌락관도, 생사관도, 성패관도, 하나님에 대한 신관도, 모든 인관도 모든 거 다 이거 다 성경이 가르쳐 주는 대로 우리가 배워서 알아야 되겠으니까 이게 문제라 그 말이오. 성경이 가르쳐 주는 대로 우리가 배워서 알아야 돼요. 이러기 때문에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썩어질 세상, 세상 것 온 천하 다 차지 해 봤자 아무 소용 없습니다 왜? 세상 지식도,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은 세상 지식도 다 없어진다 했어. 사랑도 없어지고 지식도 없어지고 영광도 존귀도 없어져서, 그걸 말하기를 '모든 육체는' 모든 육체라 말은 이제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은 그 말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주의 말씀은 영원히 세세토록 없어지지 안하고 고대로 다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곧 너희에게 전한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귀신이 들면 '야, 기독교는 그라지만 불교는 이라지 않느냐, 유교는 이라지 않느냐' 천하에 다른 이름으로서는 구원 얻는 길이 없습니다. 불교에서 내가 이 천지를 창조했다 하는 불경이 없어. 유교에서도 내가 천지를 창조했다 그 말 한 유교가 없어. 유교에서도 '아, 인간이 죽고 사는 거는 모른다. 어데서 왔는지 그것도 모른다. 사후에도 어데로 가는지 모르겠다' 유교는, 공자는 정직을 가졌지마는 석가모니는 정직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양심이 있기 때문에 내가 천지를 창조했다 그 소리는 못 했어요.

그런고로 우리가 아무래도 성경을 알아서 성경을 이거 아는 것을, 이 세상에 썩어질 것도 몇십 년 걸리는데 이 영원한 것을, 영원한 구원을 이루는 이 하나님의 지식, 무한한 지식이오. 이 무한한 지식은 지혜있고 통달해도 모르는데 이걸 알라면 내가 '나는 모르니까 하나님이 알려주십시오' 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식을 이걸 배우는 초보요, 자기 부인하는 거. 자기 자율을 부인하고, 주관을 부인하고, 사욕을 부인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만이 참되니까 그분의 것을 내가 배우겠다, 자기 부인한 것이 이 초보 입학이오. 그라고 난 다음에 하나님만이 참되다고 그분을 믿고 그분에게 따라가는 것이 이게 이 학년에 올라가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어짜든지 성경 공부를 합시다. 권찰들도 성경을 공부하지 안해.

성경 간단합니다. 간단한 게 그거 뭐 자기만 부인하면 알아지요. 자기만 부인하면 알아져. 제 아내 OOO권찰이 요새는 설교하면 만날 좁니다. 조는데, 내가 그 말 그때 여기 부산 와서 내가 여기 신학교 다니느라고, 다니며 석 달 동안 있다가 집에 잠깐 있다가 또 와 버리고, 또 여기 서부교회 왔을 때에는 그때에 아마 한 너댓달 거게서 교회를 맡아서 있도록 하고 나는 여기 왔습니다. 왔었는데, 그래 내가 그 소문을 들었소. 그래 그때 이 성경 말씀을 보고 자꾸 깨달을라고 애를 쓰고 또 설교도 할라고 애를 쓰고 이라니까 거창 합천 함양 삼 군 사모님 집회가 있었어. 사모님 회가 있었어. 사모님 회가 있어 가지고서, 거게는 다른 강사도 없고 사모님들이 서로 간증을 하면서 각각 모두 설교를 해서 이렇게, 설교를 해서 간증을 하는데 그 설교한 중에 OOO권찰이 설교를 제일 잘 했대요. 내가 다른 사람한테 들었어요. 은혜가 제일 있고 모든 사람이 은혜를 받고 참 모두 눈물을 흘리고 참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이랬어. 그때는 보니까 성경 모르는 게 없어요.

자기는 지금도 말해요. 그때는 성경보고 환하게 모르는 게 없고 뭐 성경을 그래 알았는데 고만 여기 와 가지고서, 부산 와서 파탄을 거석해 가지고 자기 부인하지 않고 자기 욕심이 생겨 가지고 주장하다 보니까 마귀가 돼 가지고 하나도 모르고 다 잊어 버렸다고. 지금은 하나도 없어. 다 쏟아 버렸어. 다 쏟아 버려서 모르는데, 지금 이제 좀 말귀를 좀 알아들을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자기 부인하면 당장 성경 학자 돼요. 자기 부인하면 그만 성령이 와 가지고 이래라 저래라 다 가르쳐 준다 그거요.

이러니까, 어짜든지 성경 공부에 주력을 합시다. 성경 공부에 주력을 하는데 성경 공부를 한다고서 별별 성경 공부들이 있는데, 성경 공부로 사람이 살고 성경 공부로 사람을 죽입니다. 여호와의 증인하는 그거는 사람만 거머쥐면 성경 공부 시킨다 하요. 그것들 성경 하나도 모릅니다. 성경 하나도 모르는데 아는 사람한테 말하면 그거 말할 때에. 착 주장을 합니다. 주장을 해서, '그러면, 자, 요렇게 주장했지? 그러면. 요것뿐이지?' 성경을 다른 데를 딱 들이대며 '이 말씀은 어떻게 할 것이냐?' 그라면 거기 생전 첨 봤거든. 고거는 고 사람들이 주문같이 쪼로록 엮어대 가지고서 몇 아는 고것만 가지고 하지 성경 전체를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성경 가르친다는 게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뭐 성경 연구법이라 하는 게 꽉 차게 나왔습니다. 또 성경 연구법이라고서 이제 영화관, 영화관에서 자꾸 지금 초대장이 오는데 서부교회는 초대장이 지금 안 옵니다. 지금도 뭐 아마 기독교 영화가 있을 터인데 초대장 안 와요. 왔다가는 혼이 나고 그거 인제 그거 때문에 자꾸 광고를 하니까, 영화관, 성경 영화를 해 가지고 돈벌이하는 그만 수입이 푹 쭈그러졌다 말이오. 그래 놓으니까 그 사람들은 내가 제일 밉습니다. 성경 영화를 가지고서 예수 믿는 사람을 만들기 때문에, 어떤 목사가 말하기를 '부흥사 데려다가서 열 번 부흥회하는 것보다도 기독교 영화관에 한 번 데려가서 영화 구경시키는 게 낫다' 그 목사 그거 썩은 목사라. 그게 썩은 목사라. 그런 사람이 목사가 돼 났으니 기독교는 완전히 박멸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말이오.

이래 가지고, 이 모양으로 요새는 성경 연구라고 막 그림을 그려 가지고 사람들 이래 꽉 합니다. 이러니까, 이 기독교는, 기독교는 제일 껍데기가 성경이오. 부득이 성경에는 기록 안 할 수 없고 또 성경을 안 맺을 수 없는 것은 성경으로 딱 제한을 해 놔야 되지 '이것도 성경이다 저것도 성경이다' 지금도 성경 외에 외경이라 하는 책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거는 다 가짜라 말이오. 성경 정경은 육십 육 권만이 정경인데, 요러기 때문에, 요것을 딱 정경으로 한정을 해 놔야 잡탱이가 들어오지 못하지 그리 안 하면 잡탱이가 들어오기 때문에 육십 육 권 성경을 요렇게 신구약 육십 육 권이라 요 성경이라 요래 놨고, 성경 안에는 이제 고 문서로 기록한 말씀이 기록돼 있고 말씀 안에는 진리가 있고, 진리 안에는 영감이 있고 이랬는데, 이제는 지금은 그만 이 방법을, 주님이 쓰시는 방법, 성경에 기록해서 이런 방법을 써라 하신 대로 성경 방법만 쓰는 게 아니라 저거 돈벌이 하기 위해서 가짜배기를 만들어 이런 방법을 가지고 막 사람을 막 죽인다 그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성경 가르친다 하며 그림을 그려 가지고서 뭐 이렇게 그려서, 또 마귀를 그리는 데는 막 수염이 털털 나고 이래 창을 쥐고 막 그려 가지고 막 웅크려서 보면 기합을 할 만치 이래 그려 놓고, 또 사람의 심령 속에는 그림을 염소가 나오고 토끼가 나오고 뭐 모든 배암도 나오고 이 속에 가득히 차 가지고 마귀를 형상으로 이래 그림을 그려 가지고 하는 것이 OOO장로가 그렇게 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것만 우리 두뇌 속에 꽉 들어와 버렸고. 딱 들어서. 그게 딱 들어 박혀 놓으니까 이 성경 말씀을 읽는 가운데에서 이 진리를 자꾸 찾는, 진리를 찾아서 만날 수가 없고 그만 성경보고 난 다음에는 어데로 픽 달아나 버리느냐 하면은 고만 그림 그린 데로 그림으로 탁 달아나 버리고, 그림 그것이 시청각으로 우리에게 그 그림이 꽉 박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이 속에 이 진리가 뭐이냐' 진리를 찾는 그런 정신이 혼돈해지고 그 속에 영감을 찾는 거는 없어져 버리고 그만 죽자껏 노력한다는 것이 그림까지 가고 만다 말이오.

그림까지 가고 말아요. 이러기 때문에, 이런 위험성이 많이 있어서 지금 오늘 이 말씀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래도 말세에 구원을 얻을라고 하면은 첫째는 어떻게 예수님을 믿어야 되느냐 하는, 믿는 이치를 바로 배워야 합니다. 이치를 배우는 데는 사람들의 설교도 좋지마는 설교는 성경을 해석한 것이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을 열심히 읽어 가지고서 이 성경에 하나님을, 이 성경이 하나님을 뭐라고 가르치느냐, 성경이 하나님 가르친 대로 배우는 게 제일 바로 배우는 방법이요 올바로 배우는 방법입니다. 성경이 사람에게 대해서는 어떻게 가르치느냐,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가르치느냐, 삶에 대해서는 어떻게 가르치느냐, 세상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느냐, 물질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느냐, 우리 마음을 어떻게 쓰라 했느냐. 생각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말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또 이 모든 회개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믿는 데는 어떻게 믿어라 허느냐, 소망하는 데는 어떻게 소망하라 했느냐, 맡기는 데는 어떤 게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냐 이런 것을 성경이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 배워야지 성경에 배우지 안하면 배울 수가 없다 말이오.

아무리 설교한다 해도 설교하는 것은 백 개 중에 혹 하나나 들어 가지고 이래 말하는 것이지 다 배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제가 성경을 읽어 가지고서, 성경을 읽어서 성경 속에 있는 그 진리가 나를 가르치도록 내 성심을 기울여 '진리여 나를 알려 주옵소서' 진리에게 구하면서 진리가 알려 주기를 구하고, 또 진리 안에 성령님이 나를 가르쳐 주옵소서 자꾸 이래 가기고 들어가야 되는데 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고만 그림이니. 이런 거 그려 가지고서 자꾸 껍데기로 외식으로 나오도록 자꾸 이렇게 탈선을 시킨다 그거요. 이런 세상인데 어떻게 우리가 성경을 모르고 예수를 믿을라고 듭니까, 들기를? 지금 오늘 이 진리도 이걸 가르칠라고, 하면 여러딜들이 고만 다 가둬 놓고 뭐 닷새고 열흘이고 이걸 가르쳐야만 이걸 가르칠 수가 있는데 퍼뜩 그러니 이거 뭘 가르쳐지겠느냐 말이오. 그것이나마 귀넘어 듣고 이라니까.

그러니까 "내 말에" "내 말에 거하면" '내 말에 거하면' 했으니까 주님의 말씀 안에 있으면, 주님의 말씀대로의 지식을 가지면 주님의 말씀대로의 행위를 가지면, 주님의 말씀대로의 사상을 가지면, 주님의 말씀대로의 소망을 가지면, 주님의 말씀대로의 평가를 가지고, 주님의 말씀대로의 비판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대로의 소원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대로의 계획을 가지고 이렇게 말씀과 내 지식이 하나 되고, 말씀과 내 욕망이 하나 되고, 이 말씀과 내 움직임이 하나가 되면 그 말입니다. '내 말에 거하면'하는 것은 말이오. 이러니까, 이 말씀을 모르고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이고 그렇게 재주가 있고 세상 학문이 있는 사람은 속독법도 배워서, 속히 읽는 속독법도 배웠고 배웠으니까 뭐 그만 속독법을 가지고 좔좔좔좔좔 읽어 버리면 되니까, 속독법으로 읽으면 되는데, 나는 한글도 잘 모르니까 하나님 할라고 하면 이거 무슨 자고 하, 하, 하, 요거는 또 나 자니 하 자하고 나 자하고 붙이면 하나, 또 님, 이러니까 이 사람이 언제면 성경에 있는 내용을 다 알겠느냐' 그렇기에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이라 그 말이오. 하나님께서 방언을 하는 은총이 있습니다. 방언하는 은총이 있다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들으면 알 수 있고 보면 알 수 있도록 하는 은총이 있어. 이거는 뭐이냐? 자기를, 하나님에게 자기 인격을 다 기울일 때에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이라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은 유대 나라 말로 했는데 그 로마인이고 모두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와 가지고서. 그 나라 말 하나도 모르는데 저거 나라 말로 설교하는 걸로 다 들었어. 설교는 한 나라 방언으로 설교했는데 들은 사람은 그때 그 뭐 칠팔 방언을 가진 사람들이 왔는데 저거 나라 방언으로 다 들었어. 다 들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이러니까, 무식해도 이 말씀에,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치는 것이 이 말씀 안에 있으니, 내가 하나님에 대해서도 무식하지, 사람에 대해서도 무식하지, 사건에 대해서도 무식하지, 세상에 대해서도 무식하지, 죽음에 대해서도 무식하지, 생명에 대해서도 무식하지 이 무식한 것 때문에 사람이 놀란다 말이오. 무식한 다 알고 보면은 그 놀랠 게 하나도 없는데. 알고 보면 웃고 지나가고 기쁘고 지나가는데 모르기 때문에 깜짝깜짝 놀란다 그 말이오 여러분들이 아는 게 힘입니다. 아는 게 평안이오. 아, 밤에 자다가. 내가 어떤 사람 봤어. 오층에서 말이지, 오층에서 저 벽에 걸린 시계가 딱딱딱딱딱딱 하니까 요거 요 안에 상대방에 기계를 하나 놓으니까 고게 반응이 돼서 찰라찰칵거리는데 여게서 들리는가 저게서 들리는가 암만들어도 몰라. 그게 그래 뚜름하게 해 가지고 있어서, '아, 이것은' 내가 있다가서 '자기의 그 사람됨을 다루는 것이라' 이라고 안 가르쳐 줬다 말이오. 안 가르쳐 주니까 그 의문을 가지고서 그래. 그래도 그 사람이 좀 신장이 거석해 그렇지. 둔해 그렇지 좀 명철한 사람 같으면 '이게 무슨 소리로 이게? 이게 무슨 소리가?' 모르는 소리가 있으면 그 모르는 소리를 알기까지 발견하기 전에는 안심이 안 되는 것이 사람입니다. 왜? 그 소리가 무슨 고장을 내고 무슨 큰 일을 낼지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소리는 쪼그매만 해도, 아, 여러분들이 암만 그래도 자기가 방안에 있는데 뭣이 쪼끄만한 소리가 왁싹왁싹 왁싹왁싹 해도 '왁싹 소리가 뭐이냐? 이거 어데서 나느냐?' 모르면은 번민이오. 그라다 가, 아, 보니까 고 밑에 무슨 쥐새끼가 한 마리 와 가지고 고게 자꾸. 있으며 와싹거리니까 '하, 요거로구나' 그라면 안심이 된다 말이오.

모르는 소리 모르는 일에는 사람들이 놀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르는 행동은. 뭣이 왔는데, 미련한 건 그렇지 안해요. 내가, 모르는 뭣이 여기 지금, 모르는 불이 하나 확 비쳤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있는데 저 밤인데 저 구덕산 쪽에 보니까 뭣이 벌건 불이 하나 공중에 이래 하나 떡 나타났습니다. 나타나 가지고 거게 있습니다. 있으면, '저게 뭐인가?' 요새 뭐라 하더라? 그 튀우는 거 그 뭐야? 꽝 거리는 거 그거 뭐야, 그거? 예? 예? 불꽃놀이라 하던가? 어, 불꽃놀이 같으면 불꽃놀이 아는 사람은 불꽃놀이 같으면 알지마는 불꽃놀이도 아니고, 불꽃놀이 아닌 그 무슨 불이, 불이 그래 있다.' 아 그게 보니까 밤새껏 불이 거게 있습니다. 자, 저건 불꽃놀이도 아니고 오만 지식을 다 갖다 대 보아도 그것도 아니고 그것도 아니고 '저 불은 모르겠다.' 그 불 하나, 요만한 덩어리가 하나 저 구덕산 공중에 걸려 가지고 있는데 그거 뭐인지 모르면 우리나라 사람은 멉니다.

그게 뭐인지 모르니까. '자, 저게 뭐인지 모르겠다', 나라에서도 모르고 학자들이 와도 모르고 다 모르면, '저게 뭔가? 저게 우리나라를 삼킬 게 아니가?' 사람들은 공포에 떨지 안할 수 없다 말이오. 그런 거 아닙니까? 안 그래요? 모르는 소리 모르는 빛깔, 모르는 물건, 뭐든지 모르는 거 있으면 모르면 사람들이 떨 수밖에 없어.

이러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또 모두 경거 망동하는 그런 것은 모르는 데서 되는 것입니다.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다 알고 나면 언제든지 평안과 기쁨뿐이오. 항상 담대뿐이오. 왜? 모든 순서도 나 위해서, 모든 존재도 나 위해서, 모든 소리도 나 위해서, 모든 인간도 나 위해서, 공산주의가 독침 찌를라 하는 것도 나 위해서, 나 위하지 안하는 게 없고 사랑하는 주님이 하시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를 믿는 사람도 항상 기쁨과 평안뿐이지 고통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신구약 성경에 있는 내용들을 알아야 되겠으니까 이 성경 공부를 해야 되겠는데 도무지 성경 공부를 안 한다 그만이오. 테레비 그까짓 거 봐 가지고, 문화 테레비라도 암만 봐야 거게는 죽는 거 준비뿐이지, 썩을 거 준비뿐이지 영생할 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또 암만 소설이나 잡지나 인간의 과학서를 아무리 봐서 세계에 일등 과학자가 되고 뭐 어떤,-뭐 어떤 문학자가 돼도 그거는 썩는 것 밖에는 없지 썩지 않는 건 하나도 없어 예수님 재림하면 다 썩을 것뿐이지 영생토록 남아 있을 거는 하나도 없어 아, 이런데, 이 신구약 성경 말씀에 이 보배가 들어 있는데 이 성경에 대해서 뭐이 들어 있는가 이렇게 상고할라고 하지를 안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어떻게 천국을 갈라고 하는 사람들이겠습니까? 이런데 또 성경을, 처음에 물론 그것도 있지요. 자꾸 읽기만, '오늘 한 장 읽었다.

두 장 읽었다'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성경이 뭐라고 하는고 성경이 뭘 가르치고 있는가 성경에 배우자 그 말이오. '성경에서 뭘 가르치고 있나? 아, 여게는 하나님께 대해 가르쳤구나. 여게서는 내 심정에 대해서 가르쳤구나. 여게서는 사람의 말에 대해 가르치고 있구나. 여게서는 친구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구나.

여게서는 돈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구나' 성경이 나에게 어떻게 가르치는지 성경이 가르쳐 주는 것을 우리가 다 배워 가지고서 성경이 가르쳐 주는 이 지식을 우리가 다 가지자 그 말이오. 신구약 성경을 다 외워도 하나도 성경 가르쳐 주는 것은 하나도 모르는 사람 있어요.

벌써 시간이 많이 갔는데 그저 오전에는, 이거 참 이거 배뭐야 되겠는데, 이제 여러분들이 잘 배우면 배울 것이고 그리 아니면 교역자회 때나 이거 가르칠까 그리 아니면 가르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오전에는, 우리 구원은, 우리 국원은 진리가 주는 구원입니다. 진리가 주는 구원이오. 진리가 주는 구원인데 진리가 주면은 진리가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오. 참된 이치가 주는 구원인데 참된 이치가 주는 구원을 성령이 심사를 합니다. 성령이 심사해 가지고서 성령 심사에 합격이 돼야지 진리는 진리인데 성령 심사에 합격이 안 되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진리대로 하기는 했는데 유황불에 털털 털어 넣어 버립니다 왜? 진리대로 하기는 했는데 성령이 와서 심사해 볼 때에 합격이 안 된다 그 말이오. 진리대로 하기는 했지마는 그 사람에게 무슨, 동기가 잘못됐든지 목적이 잘못됐든지 무슨 방편이 잘못됐든지 어떤 야욕을 야심을 가졌든지 뭣이 온전치 못하면 성령이 불합격이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성신의 인을 맞도록 해라, 성신의 인친 표를 내놔라, 성신이 너에게 인친 표, 한 행동이라도 성신이 됐다 성신이 인쳐 주는 인친 표를 내놓아라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첫째 성경 말씀에 뭐 있는지 알아야 바로 하겠고, 바로 하는 데는 내 전 인격을 중심으로 다 기울여서 정성껏 해야 성령이 인정하지 외식으로 껍데기로 다른 야심 욕심 그런 흉측한 도둑의 마음을 가기고 성경 말씀대로 행하기만 행했다고서 이제 그거 됩니까? 성령이 심사해 가지고, 성령은 주님이니까 심사해 가지고 아니고 안된다 말이오. 안 된다면 불합격이 된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오늘 지금 천물을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만 살면 뭐 저도 경험한 대로 돈벌이, 부자 되는 거는 이거 부자 되는 거는 삼 년이면 큰 부자 됩니다. 전부 삼 년이면 다 부자 돼요. 뭐 성경 말씀대로 고대로 회개를 하면 회개한 그때부터 당장 달라집니다. '성전 기초를 놓는 그날부터 이전과 이후를 생각해 보라 이전에는 모든 네가 농사 지을 때 다 모두 실패됐지마는 이날부터는 너의 하는 일이 껍데기서부터 차차차 잘 돼서 기한 전에 과실이 떨어지는 일이 없으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성전 기초 쌓는 게 뭐입니까? 기초 쌓는 것은 내가 이제는 하나님이 내 안에 와서 계실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내 안에 와서 계실 수 있도록, 내가 언행 심사 하는 것이 주님이 내 안에서 언행 심사를 할 수 있도록 이렇게 참으로 하나님이 내 안에 와서 계실 수 있도록 나는 하나님의 지체가 되고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과 나와의 하나 돼서 하나님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내가 정할 수 있는 이 사람으로 참 회개해서 이제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로 '주여, 내가 이제는 말씀에, 신구약 성경 말씀에 선포해 놓은 것을 알려 주옵소서. 가르쳐 주옵소서.

가르쳐 주시면 가르쳐 주시는 대로 내가 한 마디도 어기지 않겠습니다. 한 마디도 어기지 않겠습니다. 성경 말씀 한 마디도 어기지 않겠습니다. 요 말씀대로 요대로 살겠습니다. 한 마디도 어기지 않겠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또 어기면 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일흔 번씩 일곱 번 잘못해도 회개하면 사해 주라 했으니까, '말씀대로 나는 고대로 살겠습니다' 살고 난 다음에 또 살지 못한 게 있으면 '주여, 요거 살지 못했습니다' 살고 난 다음에 또 살지 못한 게 있으면 '주여, 요거 살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당장 횐눈같이 다 삭제를 해 주신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말씀대로 살기로, '이제 말씀 한 마디도 어기지 않겠습니다.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왜 말씀대로 살지 못하겠습니까? '누가 말씀대로 사는 사람 있느냐?' 아니오. 말씀대로 우리가 다 살 수 있지요, 다 살 수 있지요. 다 살도록 해 주신다 했는데, 살 수 있는 거라야 되지 살 수 없는 거 살라 했으면 하나님이 거짓말쟁이고 하나님이 무례한 하나님 아니겠소?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왜? 살 수 있어. 무한한 말씀을 어떻게 유한한 사람이 어떻게 살 수 있어? 무한한 말씀을 유한한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은 유한한 우리가 살라 할 때에 무한한 능력이 우리를 도와서 살게 해 주시겠다고 책임을 지웠습니다. '네가 연약한 힘을 가지고서 내 말을 지키고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기 때문에 내가 너희에게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닫지 못하리라' 그 앞에 형통을 주니까 아무도 방해하지 못한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만 다 바치면 하나님이 그 다음을 인계해 가지고 해 주시기 때문에 왜 못 할 게 있습니까? 왜 성경 말씀대로 못 해? 우리는 성경 말씀대로 다 살아야 됩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하나도 범하지 안해야 됩니다. 한 마디도 범하지 안하고 성경 말씀을 하나도 범하지 안하고 성경 말씀대로 다 살아야 됩니다. 살 수 있습니다. 나는 전적 무능하기 때문에 나는 부인해 버리고 하나님이 내게 오셔 가지고서 나를 붙들고 역사하시는데 그분에게 복종만 하면은 내 복종에 부족한 걸 당신이 보충해서 다 살게 해 주시마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전에는, 이 성경 말씀을 볼 때에 그냥 장수 보는 거 그런 거 하지 말고, 요새 지금 초보로 통신과 성경 공부를 하는데 거게서도 그저 입학, 초입학이요. 초입학이기 때문에 통신과, '뭐이 어떻습니까? 자꾸 문답이라. 묻는 대로 답만 쓰면 돼. 묻는 대로 답만 쓰는데 그것을 연습해서 다 통과하고 난 다음에는 '성경 말씀이 나한테 뭐라고 했느냐? 성경 말씀에게 배우라 그 말이오.

성경 말씀이, 형제간은 어떻게 하며, 부부간은 어떻게 하며 자녀에게 어떻게 하며, 남녀 이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며 돈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며 성경 말씀이 낱낱이 가르쳐 놨기 때문에 성경 말씀이 가르쳐 준 고대로 사는 것이 내 말에 거하는 자라 말이오.

그런고로, 연경회에 가입하지 안한 사람들 한번 손들어 봅시다 연경회에 가입하지 안한 사람들 손들어 봅시다. 입학하지 안한 사람들. 연경회에 가입 안 한 사람 손들어 봐요. 다 가입을 했습니까? 이렇츰 가입한 게 보이지 안하던데? 이렇츰 다 가입 했는가? 녜. 잘 했습니다. 가입했으면 자꾸 하십시오.

그래 가지고, 이상합니다. 여러분들이 보십시오. 성경 말씀을 자꾸 윈으면 마귀란 놈이 쫓겨 나갑니다. 마귀란 놈이. '아, 나는 이 소원은, 이 소원은 이루지 안하면 나는 죽겠다. 죽어도 나는 이 소원 이루어 봐야 되겠다' 제가 죽을 놈의 소원인데 제가 죽을 소원인데, 저 망할 소원인데, 저 망하고 자손 망하고 가정 망하고 다 망할 소원인데 그 소원을 뭣 때문에, 소원할 필요가 뭐 있어? 마귀 고놈이 오면 자타를 전부 망칠 고 소원이 그렇츰 소원이 됩니다. 그 소원을 버리지 못하요.

죽어도 그 소원을 해야 돼요. 그 소원을, 가족이 말해도 소용 없고 병신이 돼도 소용 없고 그 소원을 이루지 안하고는 못 견딥니다. 그 소원이 그대로 소원을 이루고 싶어서. 막 죽자 사자하고 그 소원을 이룰라고 달라듭니다. 이렇게 나쁜 소원이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옆에 친구가 와 가지고 권면한다고 쫓겨나갈 줄 아요? 아니오. 또 자기에게 '이라면 네가 징계를 받는다' 무슨 벌 받는다고 쫓겨나갈 줄 압니까? 아니오. 죽어도 안 쫓겨나갑니다. 내놓기 싫소 이러나, 성경 말씀을 자꾸 읽으면, 성경 말씀을 자꾸 읽다 보면은 이 소원이 나중에 가서 이상하게 바꿔집니다. 성경 말씀을 한참 읽고 며칠 자꾸 성경 읽고 난 다음에 가만히 그 소원을 생각해 보니까, 그 소원을 생각하면은 '아 내가 그 소원이, 그렇츰 있는 그 소원도 잊어 버려 버렸다. 아 그 소원을 잊어 버렸다.' 잊어 버린 소원을 새로 한번 찾아 볼라고서 그 소원을 생각하면은 환하게 보입니다. '내가 그런 놈의 소원을 왜 뭐할라고 했을꼬? 그런 놈의 소원을 내가 뭐할라고 했을꼬? 참 망하기 늦었네. 꼭 망할 소원을 왜 그리 했던고?' 돈 소원이나 명예 소원이나 권세 소원이나 지위 소원이나 인간 소원이나 미인 소원이나 미남 소원이나 정욕 소원이나 뭐 동류 소원이나 모든 거 다 그렇습니다.

마귀란 놈이 주는 건 전부 우리를 망칠라고 망하게 하는 것 뿐이오.

마귀가 우리를 망하게 할라고서 백방으로 이렇게 막 전부 둘러싸고 있는데 이걸 뭘로 쫓아낼 겁니까? 청년의 행실을 뭘로 깨끗게 하겠느뇨? 여호와의 말씀뿐입니다? 말씀을 읽으면 그런 게 자꾸 이것이 삭아져서 마귀란 놈이 못 견디니까 슬슬 나간다 말이오. 그놈 안 먹이니까 배 고프니까 제가 먹을 데 가지 뭐 못 먹을 데 거기 붙어 있습니까? 성경 말씀 자꾸 읽으면 그놈이 먹을 것이 없을 것이 없으니까, 그놈은 죄를 지어야 먹고 사는 건데 그놈이 좋아하는 죄를 안 지으니까 그놈이 먹을 게 있어야지? 자꾸 쫓겨나가지. 성경만 읽으면 내 속에 나를 망칠 욕심이 물러가지, 소원도 물러가지, 성질도 물러가지, 자꾸 나를 복되게 할 성령의 욕심만 생겨 나오지, 복될 욕심만 나오지, 복될 소원만 생겨 나오지, 복될 성질만 생겨 나오지, 복될 하고 싶은 것만 생겨 나오지 자꾸 이라니까 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읽는 사람은 성공합니다. 과거에 여게 OOO집사님이라고 지금 아마 장로 됐을 것입니다. 대구에 기독교 방송, 방송 국장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방송 국장이 돼 가지고 있다 말 들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 거기 있는 줄 몰랐는데 언제 대구에 내가 한번 가니까, 이발소에서 이발하고 나니까 돈을 뉘가 줬다 해. 보니까 그 사람이라. '돈을 누가 줘?' 하니까 '아, 이 방송 국장이 돈을 냈습니다' 이래 보니까 그 사람이라. 그래 인사를 하는데 거기 있는 줄 알았어. 그 사람 어머니가 참 신앙 생활 끝까지 잘 하고 갔습니다. 잘 하고 갔는데, 그 사람은 시골에서 새를 봐도, 새 봐도 항상 성경을 가지고 가. 그러니까, 그분은 새 보러 가도 헛일이라. 새 보러 가도 뭐 새는 안 보고 성경만 봐 자꾸 읽어 성경을 들고 다니며 보고. 아마 여러분들이, 그분이 성경을 놓지 안하고 있다는 거를 여기 있는 아마 권사님들은 알 것이오 이래 놓으니까 그분의 신앙 생활이 그때 내가 여게 처음에 왔을 때에, 눈이 지금은 그렇게 많이 올 때가 없어. 그때 눈이 와서 뭐 허벅다리까지 빠졌습니다. 빠졌는데, 그날 새벽에는 교인들이 새벽 기도 나온 사람들이 별로이 없어, 내가 보니까. 한 분이 시간이 되니까 엉금엉금 기어 올라오는데, 저 비탈에 있었습니다. 비탈이 있었는데 그냥 못 오니까 이제 발을 벗고서 네 발로 기어서, 네 발로 개 모양으로 기어 가지고서 왔어. 여기까지 왔어요. 끝까지 신앙을 그래 지키고 나가다 갔습니다. 그 무슨 힘이냐? 성경 본 힘이오. 성경 봤기 때문에 그분이 시험에 들지 안하고 쓸 데 없는 욕심은 제거돼 버리고 옳은 것만 됐지. 여러분들이 뭐 전도 심방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 보는 일을 등한히 하고 그것만 하면은 남에게 이용물만 되지 자기 욕심은 차리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봐야 돼요.

그러기 때문에, 어짜든지 연경회에 공부해 가지고, 그렇게 자꾸 성경을 잘못 봐 그래요. 성경 보는 것이 장수만 늘굴라고 이래 보지말고 고만 창세기 1장부터 내리 보면서 여게서 뭘 가르치고 있는가, 여게선 배울 게 뭐인가, 아, 창세기 1장에 '아, 하나님이 천지를 이렇게 창조하셨구나 하나씩 거기서 가르치는 것을 하나씩 배우면은 고 지식이 내 속에 들어오지 않습니까? 고 지식이 내 속에 들어올 때에, 자, 지식이 들어왔으니 뭐이 들어왔습니까? 지식이 들어왔으니까 지식과 뭐이 같이 들어 왔습니까? 진리가 들어 왔습니나 진리는 독자적 권위를 가졌습니다. 진리가, 우주를 창조할 때에 실제 시공을 누가 했느냐 하면 진리가 했습니다. 이 시공하도록 명령한 이는 누가 했느냐 하면 하나님이 명령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진리는 인격성이 아니고 이치인데 이치가 독자적 전능의 능력을 가졌습니다. 내가 이 말씀을, 그 지식, 성경이 가르치는 그 지식을 내가 하나 가지면 그 지식과 함께 거게 대한 진리가 같이 들어왔지. 또, 진리가 같이 들어오고 또 뭐이 같이 들어옵니까? 예? 영감이 같이 들어왔지.

이러니까, 지식, 진리, 영감, 그러면, 그러면 그다음에 누가 들어옵니까?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 들어옵니다. 하나님이 들어와.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경험해 보면 알 거라 말이오. 그라고 나니까 몸이 거뿟해지고, 또 자기 속에 어두움이 물러가고 마귀란 놈이 그렇게 해서 마귀 그놈이 시켜서 막 '안 하면 죽겠다' 막 죽을 상 바른 것이 나중에 보면 '아이구, 그거 뭐 할라고 그렇게 했던고? 이거 큰일 났구만' 이라면서 그렇게 좋던 것이 보기도 싫고, 그렇게, 취하고 싶던 것이 그 영광을 침을 뱉아 버리고, 권세도 침을 뱉으며 '아이구, 그거 뭐 할라고 괴롭게 그거 하고 있어?' 이런 사람이 돼집니다 자체가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말이오. 이렇게 우리가 변화가 돼야 변화된 생활을 할 수 있고 변화된 생활을 해야 하나님이 변화된 자에게 주마 한 이 축복의 약속이 오지 그 전에야 됩니까? 암만 예수 믿어도 예배당에 갈 때는 예배당에 가고 나와 놓으면 꼭 같은 사람 돼 버리고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제일 깍쟁이. 예수 믿는 사람이 제일 째째한 사람, 예수 믿는 사람이 제일 독한 사람. 예수 믿논 사람이 낯빤대기가 쇠 철판이라. 아주 철면피가, 철면최가 돼 버리고 말아 이래 놓으니까 뭐, 뭐 뻔뻔스럽게 무슨 소리를 들어도 예사고 뻔뻔스럽고 아무 자극심이 없어. 낯이 붉지도 안한다 말이오, 낯이 붉지도 안해. 이게 예수 믿는 사람이라. 악독한 거.

그런 자들은 화를 받습니다. 평생 동안, 화가 무슨 화요? 예수 믿어, 기본구원이야 예수 믿으나 안 믿으나 기본구원은 다 얻는 것인데, 예수 믿는 대로 죽도록 그래도 제가 애쓴 대로 애쓰고 가책도 받고 이랬는데 이 세상 살이를 제 맘대로 하지도 못하고 구원을 이루지 못했으니까 불쌍하지 않소?

이러니까, 우리가 당장 오늘부텀이라도 성경을 시작하면서 이 성경이 뭐라고 가르치는고, 성경이 가르치는 지식을 내가 배워 가지고서 성경대로의 지식을 가질라고 해야 됩니다. 진실한 자는 우주와 영계를 다 이기고 하나님 다음의 통치를 가지게 됩니다. 그 뭐 진실한 자가 뭐이냐? '진실한 자는 이기리로다' 아무리 부르심을 입고 택함을 입어도, 중생되고 택함을 입어도 소용 없어. 그것만 가지고 안 돼 진실해야 돼요. 진실한 자라야. 진실한 자가 뭐이 진실한 자입니까? 성경 말씀대로의 지식을 가지고, 성경 말씀대로의 행동을 가지고, 성경 말씀대로의 사람이 된 그 사람이 진실한 사람입니다. 진실이 있는 사람은 다 이기요.

이러니까, 첫째 우리가 뭐,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어짜든지 오늘부터 '이제는 내가 성경에서 배우겠다' 밥을 하면서도 배우고 그거, 그래 배우는 거라야 되지 줄줄줄줄 읽어도 소용 없어. 밥을 앉쳐 놓고 성경을 딱 부엌에다 갖다 놓고서 이래 보면 몇 장 보자 '요거 보자' 가르치는 걸 배워요. '하, 요 절에는 뭐 가르쳤나?' 배우면은, 배우면은 잊어 버리기 쉬우니까 고 배운 걸 밥하며 자꾸 기억합니다. '아, 성경 말씀에 요렇게 말한다 요렇게 말한다.' 요거 또 기억하고 있고, 백 번이고 열 번이고 외워요, 외워 가지고 밤중에라도 그만 그 말씀에 대한 현실을 만나면 그 말씀이 내게 그 지식이 쑥 나오구로, 그래 가지고 무슨 현실을 대하든지 하나님이 딱 가르쳐 준 대로 썩 그대로 해 버리면 된다 말이오. 하나님이 가르쳐 준 대로 하면은 그 일에 대해서는 전능의 하나님이 도와 주시기 때문에 그 전부는 결과가 다 축복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 만나 보면은 뭐 어떻게 할꼬 물어 쌓는데 묻는 거 뻔하이 그만 성경에 이래 놨으니까 요래 하면 될 건데 자꾸 엉뚱이 묻는다 말이오. 또 보면, 만나 보면은 전부 성경에 망한다 하는 길로만 다 갔어. 망한다 하는 길로만 다 가 놓으니까 그게 어떻게 되겠습니까? 망한다는 길, 너무 엄청나서 그게 다 틀렸으니까 너 망하는 길로만 간다 이렇게 하면 안 될 터이고 하니까 그거 어짤 수 없어서 '그라면 한번, 한번 해 보이소. 주의해 보이소' 그라며 하나만 말해 줘요. '아마 요런 게 좀 어려움이 있을 터이니' 요거 좀 말하며 '요거는좀 생각하면서 뭘 하시이소' 이렇게 말해 놓는데 그게 됩니까? 이치에 맞아야 됩니다. 이 물질, 썩어지고 없어지는 물질 이것도 이치에 맞아야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이 이치에 맞지 않는 그 인격성 가지고서 뭐이 되겠습니까?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짜든지 알아야 돼요. 저 뒤에 온 사람들 모두 다 새벽 기도도 나오지 안하고 전부 이래 오전만 떡 이래 와 가지고, 예수 믿어도 그저 좋다고만 자꾸 이렇게 껍데기로 외식으로 가지고 사람의 간만 부풀게 하면은 좋은 줄 아는데 아닙니다.

예수 믿는 이치를 알고 고대로 살아야 돼요. 성경 말씀대로의 지식을 가져야 되고 요 말씀대로 행동해야 됩니다. 요 말씀대로의 모든 사건이 돼야 되고 요 말씀대로 사람이 변화가 돼야 됩니다 그렇지 아하면 못 받습니다. 아무리 못나도 마음만 들이고 원하면 다 됩니다. 아무리 잘나도 껍데기로 가지고 교만 가지고 하면 소용이 없어

(기도) 주님 주께서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입혀 주셨사옵고 이 대속의 은혜로 인하여 우리에게 첫째로 주신 은혜가 영감의 은혜요 다음으로 주신 은혜가 진리의 은혜인 것을 저들이 압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이 은혜를 주셨사오니 오늘 주께서 말씀해 주신 대로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성도들이 다 주님의 말씀의 이 지식을 다 배워서, 주님이 모든 전부를 아시는 고대로의 주님의 지식대로 우리들도 그대로 배워서 고대로의 지식을 가지는 저희들이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한 사람도 주님의 지식 곧 주님의 뜻을 모르는 자가 없고 주님의 뜻을 낱낱이 현실에서 바로 알아 요대로 행하므로 영과 육이 다 성공되고 자타의 구원이 되고 악령과 죄와 사망과 저주는 다 소멸되는 역사가 날로 이루어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많은 형제들을 불러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일찍부터 택함을 입어서, 주를 찾지 못하던 자인데 종들을 통해서 찾아서 생명길로 인도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더듬어 바른 길을 가지 못하고 깜깜 어두움에 머물고 있는 것을 바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빛으로 돌아오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주의 백성이 되었고 주의 자녀가 되었사오니 주님이 저들 가정에 호주가 되시고 저들을 언제든지 통솔하시고 통치하셔서 범사를 홀로 두지 마시고 항상 책임져 주시고 동행하시고 모든 일을 다 해결지워 주사 어두움의 길을 걷지 안하고 광명의 길을 걸을 수가 있고 광명의 길을 걸으므로 주님의 온갖 축복을 받아 이제는 주님의 축복과 기적의 도우심으로 모든 것이 형통하여 염려나 근심 없는 평강 가운데서 세상을 이기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 하여서 시험에 드는 자가 하나도 없고 점점 믿음이 연한 순같이 자라가도록 하여 주시고,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 주님을 사랑하는 이 뜨거운 마음이 점점 뜨거워지며 형제를 이 사랑으로 구원하고자 하는 간절한 심령이 점점 뜨거워짐으로 점점 주님의 원하시는 일을 다 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이제 후로는 우리 서부교회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 낙심한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 믿어 구원 얻을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들이 주의 지식을 완전히 통달하여서 주님과 지식이 일치됨으로써 모든 행동이 일치되고, 희로애락이 일치되고, 욕망이 일치되고, 성공이 일치되어서 주님의 형상대로의 사람들이 다 이루어지도록 주님이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는 피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과 진리의 능력만이 할 수 있사오니 이 일을 이루어 영광을 받으시고 축복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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