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의 목적

 

1981. 3. 4. 밤 (수)

 

본문:고린도후서 9장 6절∼15절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저희가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이 신약 성경과 구약,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과 계약한 이  계약의 말씀입니다. 교훈도 그저 교훈하는 게 아니고 교훈도 계약 교훈이요,  예언도 계약 예언이요, 경고도 계약 경고요, 예언도 계약 예언입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이 성도들로 더불어 계약으로 해 놓은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씀은 계약을 선포해 놓으시고 호리도 가감이 없이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하나님이라 하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여호와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신구약 성경을 열심히 상고해서 성경에 어떤 계약이 되어 있는가  하는 그것을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에 알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된다는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밤 예배 때에 이 성경 말씀을 무엇이 계약돼 있는가 이것을  상고하는, 성경을 상고하는 이런 은혜를 하나님에게 간구해야 되겠다 해서  오늘밤 예배는 성경을 상고할 수 있는 이런 은혜를 하나님에게 달라는 이 기도를  우리가 오늘밤 예배 대신 해야 되겠다 하는 그것을 제가 강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예배 시간 이십 분 전에 다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증거해야 될 필요가 있는 것을 저에게 알려서 이 말씀을 또 증거하게  됐습니다.

여게 몇 가지를 우리가 확정을 지워야 하겠습니다. 인정하지 아니하는 데에서  우리 힘이 다 빠져버리고 마귀의 것이 돼지고 또 인정한 것을 그대로 실행하지  않는 데에서 우리에게 올 모든 축복은 다 중단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은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유식한 사람도 무식한 사람도 실은 한가지입니다. 그것 세상에 있는 것으로  차이가 있는 그것을 사람들은 인간 차이로 생각하지마는 세상에 그것이 제일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나 세상 뜨는 그 시간에 꼭 같은 입장이 되어지고 또  실은 무궁세계에 하나도 가치의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홍포입은  부자가 물 한 방울의 그 요구를 이루지를 못했습니다. 무슨 가치 있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영원 무궁세계의 구원을 이루는 데에 꼭 같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이나 적게 가진 사람이나 꼭 같습니다. 닷 냥중 가진 자도 다 움직였기  때문에 칭찬 받고 상 받았고 그 반도 못되는 두 냥중 가진 자도 다 움직이니까  꼭 같은 영접 칭찬 상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잘나고 못나고 뭐 세상 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지  부하고 가난하고 상관 없습니다. 자기가 이 절대자를 바라면서 이 계약을  인정하고 실행하는 거게 있습니다. 거게 가치가 다 달렸어. 거게 능력도 다 거게  있고, 축복도 거게 있고, 지혜도 거게 있고, 성공도 거게 있고 거게 있습니다.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것이 아닌 인간 것을 가지고 자랑하지  말아라 이랬습니다. “사람으로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주로 자랑하라”  그말은 주의 것으로만 자랑하라 그말이오. 그것만 가치 있다 그말입니다.

인제 믿고 싶은 사람은 요 성경에 말할 터이니까 요것을 확정을 지우고 요대로  인정하고 이대로 실행을 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다 했습니다. 이  추수는 세상에서 하는 것 아닙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법도대로 자기의 가진  것을 이래 심은다는 것은 사용한다는 말인데 그렇게 하나님 법대로 사용한  그것을 그 값을 세상에 없어질 것으로 하나님이 주시지를 안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무엇이든지 한 그 값은 영원 무궁세계 것으로 주지  있다가 없어질 그런 것으로 주시려고 하지를 안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심은대로 거둔다” 이말은 거두는 것은 추수는 무궁세계 가서  추수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추수하는 것이 아니고 무궁세계에 가서 추수를  합니다. 추수를 하는데 요것 우리가 확정을 지워야 됩니다. 이 세상에서 제가  하나님의 법도대로 얼마나 심었느냐 심은 그대로 무궁세계에 가서 갚음을  받습니다.

이 심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한 것을 가리켜서 심는다 이랬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인해서 내가 사용한 것,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때문에 내가  손해본 것 그건 다 심은 것입니다.

심는다는 것은 내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면 심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안 가진  종자를 어떻게 심습니까? 가지고 있는 걸 심으지. 하나님은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하지 가지지 않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실은 우리가 연보하는 연보도 자기에게 없으면 안 해야 됩니다. 약속 연보하는  것은 지금 내가 현금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지마는 현금과 마찬가지인 물건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것 바꾸면 된다는 할 때 그것은 있는 것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없는데 이래 놓고 뒤에 가서 벌어서 하려는 그것은 참 마음은 고맙기는  고맙지마는 실은 심으는 법칙엔 틀렸습니다.

없는 걸 자기가 벌어 가지고 한다는 그말은, 물론 육체의 건강이 있으니까  그렇다 할 수 있지마는 그것은 해석이 틀리는 것이 만일 작정해 놓고 그 벌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불렀으면 자기는 약속해 놓고 못 할 것 아닙니까?  자기에게 집이 있으면 연보 작정해 놓고 자기가 만일 못 내게 될 때에는 ‘집이  여기 있으니까 이것으로 댓가 하라’ 하면 약속한 것을 낼 수 있겠습니다.

심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놓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놓는 것이오. 내놓는 것은 두 가지 방편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그 명령을 따라서 내가 내놔서 쓰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이 그것이 심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고 하니까  하나님과 하나님 계명 때문에 내가 손해보는 것이 있습니다. 뺏기는 수가  있어요. 손해보는 수가 있어요. 이것은 손해 안 볼 수 있는데 하나님 때문에  손해보고 진리 때문에 손해보는 일이 있어. 이것은 하나님과 진리대로 쓰는 것도  심으는 것이요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안 볼 손해를 보는 그것도 심는 것입니다.

심는 것은 두 가지 방편이 있소.두 가지 방편 가운데에 어느 것이 더 가치 있고  힘드느냐?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손해보는, 빼앗기기 싫은 것을 빼앗기는 것,  손해보기 싫은 것을 손해보는 것, 이것 손해 안 보려 하면은 하나님이 섭섭해  하시겠고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겠고, 죄를 지어야 되겠고, 하나님의 법도를  계명을 어겨야 되겠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계명을 지키려고 하면은 안 볼  손해를 보게 되는 요것이 요렇게 요 방법으로 심으는 심음이 더 힘듭니다.

요것이 더 가치 있는 심음입니다. 이것은 순교자는 다 이 성질에 속한  것들입니다.

또 자기에게 있는 것을 어느 인간 욕심대로 제 욕심대로 사용할 수 있는데  이것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용하라 하니까 내 원하는 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어느 피조물 원하는 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하나님 원하는 대로 그것을 사용하게  될 때에 그것이 심으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무궁세계에 받는다” 요것 여러분들이 꼭 가져야 됩니다. 이  세상에서 심은 것 하나도 없으면서 무궁세계에 가 가지고서 무슨 추수가  있으리리 그런 생각 가지지 말아야 됩니다.

심으는 것은 그것은 적은 것을 심고 많은 것을 거두는 것이 그것이 심어  추수하는 그 법칙입니다. 이것은 비유인데 이 세상에서 자기가 주님과 주님의  법칙 때문에 손해보는 것으로 심은 것, 주님과 주님의 법칙에 순종해서 심은 것,  이 심은 그 양과 무궁세계에서 하나님 앞에 갚음을 받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그것이 크고 많다 하는 것을 나타내서 심으는 것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요걸 꼭 잡아야 됩니다. 이것을 잡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이 내가 그러면 이 세상에서 몸을 심은 자도 있을 것이고,  권세를 심은 자도 있을 것이고, 영광을 심은 자도 있을 것이고, 돈을 심은 자도  있을 것이고, 자기의 명철을 심은 자도 있을 것이고, 있는데 자기가 가진 것  이것 주님의 뜻대로 쓰는 것, 또 이게 있지마는 쓸 수 있지마는 주님 때문에  쓰지 못하는 것, 쓰지 못한 것, 주먹이 있지마는 주님 주먹 때문에 주먹 못 쓴  그것도 심은 것입니다. 그 힘을 심은 것이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무엇을 심었든지 심은 그대로 무궁세계에 갚음을 받을  터인데 심은 양과 갚음을 받는 것과는 비교 못 하게 많다 하는 걸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유한한 것으로 심고 무한한 것으루 추수합니다. 이래서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안할 것으로 추수한다.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추수한다. 이 없어질 이 모든 물질계의 것을 가지고  심고 신령한 것으로 추수한다. 신령한 것이라 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억억억만 년도 아니고 영원 무궁토록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공간을  초월해서, 세상에서도 있고 무궁세계도 있고 있는 그런 것을, 이 시공의 제한,  노후, 쇠퇴, 사망 이런 것을 다 초월한 것을 가리켜서 신령한 것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뭐 하늘나라 가기 전에 지금 다 알 것 아닙니까? 얼마나  심었는지? 제가 심은 것은 얼마나 심었는지? 이것 가지고 내세에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갚음을 받을 것인지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생 동안 몸뚱이도 하나님과 진리를 위해서 손해보지도 안했고 하나님과  진리에게 순종함으로 사용하지도 안했고 내놓지도 안했다 말이오. 안 했고,  재물도 그래, 권세도 그래, 지위도 그래, 제 총명도 그래, 건강도 그래, 시간도  그래, 전부 하나님에게 받은 것 제 욕심대로 어떤 자 욕심대로 다 사용한 그자가  내세에 가서 뭐 갚음을 받을 것이 뭐 있으리라고 기다리겠습니까? 여게서는 거지가 잠깐 거지지마는 무궁세계에 가서 거지는 영원한 거지입니다.

그 나라에는 거지가 없는 줄 압니까? 그 공력이 불타면 구원을 얻으나 불가운데  구원 얻은 것과 같다 했습니다. 해를 받아서 상이 하나도 없다 했습니다. 갚음을  받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걸 보고서  해야 됩니다.

요새 중간반 반사들, 그전에는 내가 칭찬을 하고 많이 참 동정을 했는데 요새는  중간반 반사들이 신반사는 내가 지금 모르겠는데 구반사들은 내 눈에 잔뜩  거슬립니다.

 밉상입니다. 남녀 반사가 다. 하나도 만족지 안해요. 어찌 됐는지? 게을해  빠져버리고 낡아져 빠져버리고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지금 그  행동하고 있지 않는가 내 보기에 그렇게 보여집니다.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자기의 수고한 것 심은 것이, 심은 것은 두 가지가  심은 것입니다. 그 심은 것을 세상에서 그 댓가를 받으려고 하면 아예 예수 믿지  말아야 됩니다. 이 세상에 장사를 하든지 사기 횡령을 하든지 뭐 사업을 하든지  그것 하는 게 낫지 썩을 것 가지고 썩을 것 늘굴진대야 세상살이 하지 뭐하려고  예수님 이름을 붙여 가지고 복음으로 살 필요가 뭐 있습니까? 이러기에 요 똑똑히 성경을 알아서, 심으는 자는 무궁세계에 추수할 이것을  생각하고 무궁세계에 추수를 생각하면서 심어야 됩니다. 이 세상에서  알아주기를, 돌아오기를, 값이 오기를, 뭣이 되어지기를 그것을 바라지  마십시오.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하나를 바치고 백을 얻어도 하나를 바친 그 댓가로  백 얻는 것 아닙니다. 요것 성경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하나를 바치고 백을  얻어도 하나 바친 댓가로 얻는 것 아니오.

주를 위하고 복음을 위하고 주님과 진리를 위해서 손해를 본 것이라든지 주님과  진리에게 바쳐서 주님의 원대로 진리대로 쓰여진 이것은 썩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썩을 것이 썩지 안할 것으로 화해버렸습니다. 이 가치는 이 우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 세상 것으로 값을 하나님이 주시지  않기로 약속했고 또 썩지 아니할 값을 썩을 것으로 주면 하나님이 속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리 안 합니다.

하나를 심고 백을 얻어도 하나 심은 그 추수는 무궁세계에 있고 백을 주시는  것은 ‘네가 하나 주니까 심는 것 보니까 재미가 있다. 백 줄 때에 또 백  심어라.’ 심으라고 주시는 것이지 새로 주시는 것이지 그것에 댓가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심든지 심으는 그 댓가를 세상에서  받는다고 생각하는 이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그건 성경이 아니니까 확실히  판정을 짓고 가야 됩니다.

자기가 어떻게 해도 그것은 썩지 아니하는 벌써 생명의 것이요 영원한 것이요  온전한 것이 됐는데 그것을 썩을 것으로 주지 않습니다. 무궁세계 가서 하나님이  갚아주십니다.

그런데 무궁세계 가서 갚음을 받는 것은 세상에서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둡니다. 요것을 견고히 잡고, 그러면 나는 일생 동안  살았는데 얼마나 심었는지? 가서 갚음을 받을 추수할 것이 얼마나 있는지?  얼마나 심었는지? 사람이 자기가 한량으로 돈 많이 쓰고 다니는 사람은 하루 돈을 요새 돈으로  만일 백만 원을 쓰고 천만 원 쓴다 합시다. 이랬는데 거지 만나 가지고서 백 원  주니까  또 거지 만났습니다. 또 백 원 달라 합니다. ‘하이구, 오늘은 이것 거지 뭐  구제 주다 보니까 다 못 할세. 돈 전부 구제 다 줘 버렸네.’ 이래 봐도 나중에  해 넘어갈 때 계산대면 제가 많이 만났으면 열 명 만났을 것이고 그리 안 하면  스무 명 만났을 것입니다. 스무 명 만나봐야 얼마입니까? 얼마입니까? 이천  원이지요? 자기는 그것을 자기가 안 할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적게 했지만  많아 보이는 것입니다.

오늘 인간들이 이 심으는 이것만이 자기의 알속이요 심으는 거기에 유일한  소망을 가지고 이것만이 알속 있는 생활로 알아 어쩌든지 이 심으는 것만이 자기  생활이요, 이것만이 수입이요, 이것만이 헛일 아니요 알속이라고 하면은 심으고  난 다음에도 ‘오늘 얼마 심지도 못했네. 오늘 얼마 심지도 못했네.’ 심은 양이  적어 보일 터인데, 이것 심으는 이것은 자기가 외에 것으로 알고 헛된 것으로  알기 때문에 그저 뭐 주를 위해서 수고한 것, 손해본 것, 쓰여진 것 이것은 일생  산 데 억만 분의 일도 안 되는 자, 백만분의 일도 안 되는 자, 십만분의 일도 안  되는 자, 백분의 일도 안 되는 자, 안 되는 자도 전부 그것만 한 것 같습니다.

똑똑히 계산을 해서 얼마나 우리가 심었는지 그것 바로 계산해야 될 것입니다.

복있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심으는 것뿐입니다. 하루 종일 심은 것뿐이오.

몸이나, 정력이나, 총명이나, 시간이나, 말이나, 재물이나, 힘이나 하루 종일  심으는 것뿐이오. 심으는 것은 원통치 않지마는 심으는 게 아닌 것은 조그만한  일만 해도 시간이 아깝고 정력이 아깝고 ‘오늘 이것 허비했네.’ 애가 터지고  마음에 아주 헛된 일 소용 없는 일 했다 싶어서 마음이 아파지는 것입니다.

심으는 것은 그것은 아무리 심어도 늘 ‘오늘은 얼마 못 심었네.’ 못 심은 것이  마음에 아파지고 원통해지고 근심이 돼지지 심은 것이 근심되지는 안하는데  우리는 어떠한 사람인지? 심으는 것이 내 생활로 생각하고 심으는 것을 위주로 해서 심으기 위해서 세상에  살고 있는지? 심으는 것은 내 일 아닌 것으로 알고 하나님이 주신 것 가지고서  내나 썩을 것 가지고서 이 세상에 썩을 것 얻기 위해서 썩을 것 가지고 썩을 것  얻고 썩을 것 가지고 썩을 것 많이 얻으려 하다가 썩을 것 열 개 들여 가지고  썩을 것 백 개 얻는 수도 있지만 썩을 것 열 개 들여 가지고 썩을 것 한 개  얻으면 ‘손해갔다’ 썩을 것 열 개 들여 가지고 스무 개 얻었으면 수입했으면  ‘오늘 유익봤다’ 유익을 보면 뭣할 것이며 손해보면 뭣할 것입니까?  이것은 우리 생활 아닙니다.

적게 심으는 자는 무궁세계에서 적게 추수하고 많이 심으는 자는 무궁세계에서  많이 추수하는데 우리의 심은 것은 얼마나 되는지? 우리는 심으는 것을 내  생활로 알고, 내 수입으로 알고, 내 성공으로 알고, 내 저축으로 알고 이래  사는지? 심으는 것은 남의 생활이요 그것은 내 생활이 아니요 심으는 것은  도적맞은 것이요 뺏기는 것이요 이것은 허비한 것이요 이 세상에서 썩을 것  가지고서 썩을 것을 위해서 투자하는 이것만이 실속이 있는 지혜 있는  생활이라고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지? 요것 우리가 스스로 판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심었는지? 돈도 제가 쓰는 뭉텅이로서 이것 심으는 뭉텅이가 컸는지 썩을 것 위해서 투자한  것이 컸는지 이것도 좀 비교해 봐야 됩니다. 만일 심으는 뭉텅이보다 썩을 것에  투자한 뭉텅이가 컸다 면 그것 참 비참한 사람이오. 제일 큰 뭉텅이는 심은 데 가야지. 그래 심은  액수가 많아야지.

우리는 세상을 두고 갈 사람들입니다. 무궁세계에 가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갚음을  받아 가지고 그것 가지고 영원히 살 것입니다. “영원한 처소에 너를 영접하리 라” 무궁세계에 가서 하나님 앞에 이제 갚음을 받는 이 추수 이것 가지고 영원  무궁세계에 살 터인데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다.

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심었는지? 땅에는 제가 아무리 튼튼한 은행에 저축하고 이 나라에 법원에다 단단히 이름을  딱 실어서 제것이라고 해 놔도 그것은 다 그 나라가 있는 동안에 그 은행이 있는  동안에 권리 있고 제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 권리 있지 다 허무한 것입니다. 제가  세상 떠나도 그만이고, 그 나라가 없어져도 그만이고, 그 은행이 깨져도  그만입니다. 있어도 제가 세상 떠남으로써 끝나버리는 것이오.

우리가 심어놓은 것은 영원합니다. 아무도 도적을 못 해 갑니다. “도적이  구멍도 못 뚫고 도적질 못 하느니라” “동록도 슬지 아니하고 좀도 먹지  아니하니느라” 좀먹는다 말은 세월이 암만 지나가도 그것은 손해 없다  그말이오. 동록 슬지 않는다  그말은 주위 환경 전체가 썩어 다 쇠퇴하고 없어져도 없어지지 않는다 말입니다.

도적이 구멍 뚫지 못하고 한다 말은 이것은 아무도 빼앗아 갈 자가 없어.

그러기에 믿는 사람은 세상이 모르는 저축을 하는 것이 믿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모르는 저축, 세상이 모르는 저축.

그것 하나 하나가, 적금 넣는 사람이 하면서 한 칸씩 두 칸씩 자꾸 차 나가니까  이제 찾을 때가 돼 가니까 모이는 것을 자기가 느끼면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재미 있지요.

이와같이 자기가 무궁세계에 세상이 모르는 은밀한 저축되는 이 저축을 보면서  그 저축 그것을 보면서 이 세상에 사는 생활을 해야 그것이 멀리 보는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적게 심으는 자는 적은 추수하고 많이 심으는 자는 많은 추수를 한다” 요걸  굳게 잡읍시다. 공연히 심지 안하고 그 나라 가서 뭐 추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까? 또 자기는 심은 것 이 얼마나 심었는지? 그 심지 안하고 땅에 두고는 안심이 안 돼.

참 우리는 땅 짚고 헤엄하기요. 심으면 동록도 슬지 안하고 좀도 먹지 안하고  도적이 도적질해 가지도 못하고 심어놓은 것은 그 갚음을 천 배 줄런지 만 배  줄런지 억만 배를 줄런지 유한 것을 무한으로 주니까 그뭐 배수야 얼마나  많습니까?

심으면 있는 것 심어버리면 어쩌고? 심으는 자에게 씨 준다 했거든. 이것 참 땅  짚고 헤엄하기요. 이러니까 하나님을 믿는 자는 막 복을 들이 받도록 하고  하나님 안 믿고 자기 자율과 주관 가지고 하나님을 의심하고 저를 믿는 자는  망하도록 만드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이게 세상이오.

요것 하나 굳게 잡아야 되고, 또 하나는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즐겨 내는 자 사랑한다.

이 심으되 요 즐겁게 기쁨으로 심으는 자를 하나님이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갚아주신다 말입니다. 사랑한다 말은 여러가지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기뻐한다 말이오. 기쁨으로 당신이 줄 걸 준다 그말이오. 사랑은  기쁨과 주는 것입니다.

“즐겨 내는 자” 우리는 요것도 굳게 잡아야 됩니다. 내가 주님과 진리 때문에  손해볼 때에 절대로 추호도 손해 없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안할 것으로,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유한한 것으로 심고 무한한 것으로 영원 무궁한  세계에서 주님이 갚아주십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데 심을 땅이 없으면 암만 심을 것이지마는 그 못 심으면  헛일일 터인데 심을 수 있는 장소를 주고 기회를 주는 것 은혜 아닙니까? 이러기  때문에 이것이 심긴다는 것, 주를  위해서 내가 손해보고 진리로 인해서 손해보고, 주님 때문에 뺏기고 진리 때문에  뺏기고, 아브라함이 주님과 주의 뜻인 진리 때문에 조카에게 양보하는 그 양보가  아브라함이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양보가 섭섭한 것인 줄 압니까? 즐겨  양보했습니다. 소돔 왕하고 물질 두고 말할 때에 ‘실나끈 하나도 내가 차지하지  않겠다’ 하고 주님의 영광 위해서 주님의 기쁨 위해서 손해본 것 손해본 줄  압니까? 억지로 했겠습니까? 즐겨 했습니다. 즐겨 하는 것이 요 사실을 믿는  데서만 즐거움이 나옵니다.

그 즐겨 내는 자를 기뻐한다 그말은 하나님의 법칙 따라서 그 법칙을 알고 그  법칙을 믿음으로 내는 걸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그것 아니고 요 법칙을 믿지  안하고 억지로 자기가 하나님을 동정 해서 하나님을 대우해서 뭐 위해서 이 한다는 그것 하나님이,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에게 무슨 구제해 주는 것 모양으로,이 전체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것 아닌 것이 뭐 있습니까? 당신이 쓰려 하면 다 쓰시지 누가 그것  막고 제재를 주겠습니까?  “피곤치 아니하면 때가 되매 거두리라”  그것도 요 사실을 깨달으니까 기뻐 못견디는 거게 가지고서 해야 된다 그말이오.

이것 심는다는 이 사실을 알면, 요새는 내가 농촌에 없어서 모르지마는 옛날  우리 클 때는 지주 세력이 참 있고 없는 사람들은 죽자껏 농사 지어 가지고서 뭐  도조 주고 나면 남는 것 별로 없습니다. 어떨 때는 도조 다 딱 떼고, 딱 떼고  나면 참 죽거리가 없습니다. 이래도 도조는 내라면 다 냅니다. 왜? 그이듬해 논  못 붙이구로 뗄까 싶어서, 겁이 나서. 종자를 가지고 심어야 그다음에 추수를 해  가지고 먹고 살 터인데 심을 땅을 안 주면 거석하니까 마구 곡식 종자는 어찌  구해도 구하지마는 심을 땅이 없으니까 심을 땅을 달라고, 가을 되면은 부자  집에는, 그뭐 이름이 사부리라 이라는데 그저 오만 것 다 옵니다. 그때 고기가  귀하지만 돼지도 잡아 가지고 오고, 소고기 뭉텅이도 사 가지고 오고, 곶감도  가져오고, 감도 가져오고 뭐 자기네 집에 보배라 하는 것은 다 가지고 이래  가지고 부자집에 갑니다. 왜? 논 달라고. 종자 심을 논 밭 달라고. 이래 가지고  ‘그러면 아무 데 논 그것 붙이라.’ 소작짐을 떡 해 주면 그전에 붙이던 사람은  막 논이 떨어지니까 울고 불고 야단이고 이래, 논을 떼 가지고 오면 기뻐  즐거워합니다.

그것은 농사 지어봤자 내나 또 그것이오. 이런데 우리는 심으면 영원  무궁세계에서 좀도 동록도 도적도 해하지 못하는 영원한 추수에 심으는데 주를  위해서 손해보고 진리 위해서 손해보고 이렇게 좋게 심을 수 있는 이 옥토에  심어서 억억만 배도 넘게 추수를 영원 무궁토록 하고 손해 하나도 안 보는 이  심을 수 있는 농장을 줬는데 이 사실을 알면 즐거워 내고 기뻐 내지,  기뻐 손해보고 기뻐 희생하지 뭣 때문에 우리가 찡찡하게 그럴 턱이 있어야지요?  이걸 알고 즐겨 내는 자를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받습니다. 이 이치를 아는 자.

 논을 불쌍해서 논을 주니까, 논을 주니까 씨나락 치러 가면서 이걸 한 몇 되  가지고 가면서 궁청궁청 ‘이것 밥 해 먹으면 좋겠는데. 밥을 해 먹을 건데 이것  공연히 이것 불궈 가지고서 전부 갖다가 뿌려야 되네.’ 궁청거리는 것을 그  부자가 들으면 어쩌겠소? ‘이 사람 이것 농사 못 지을 사람이다.’ 종자를 뿌리러 가면서 다리가 거뿐거뿐하면서 굴려 가면서 ‘야 사람아, 자네  뭣이 그리 기쁜고?’ `내가 지금 씨나락 치러 가.’ ‘어데 가는데?' `아무 데  논 그것 올해 얻었어.’ 기뻐 뭐 즐거워 이래야 지주가 보면은 ‘하, 이것 농사  잘 짓겠다.’ 이래 보여지지.

씨나락을 가져가면서 뛰 하이 궁청거려 쌓습니다. ‘왜 그리 사람아, 궁청거려  쌓는가?’  ‘이 공연히 나락 이것, 이것 뭐 될지 안 될지도 모르며 씨나락 칠 때 되니까  씨나락은 쳐야 되겠고 아무 힘이 안 나는구만.’ ‘야 사람이, 씨나락 뿌리면  뒤에 농사 지으면 더 추수가 많은데 그 논 얻었으면 기뻐해야지 그것 논임자  보면 섭섭해 그러겠다.’  ‘섭섭해 그렇지 참 아깝구만. 씨나락 치려 하니까 아깝구만.’ 그걸 살며시 가서 얘기했다 말이오.

 지주한테 가 가지고. ‘여보시요, 아무 데 논 그것 누구 줬지요?’  아무것이 줬다고서. ‘그 사람 내가 저아레 보니까 씨나락 치러 가면서 막  궁청궁청 그래 쌓으며 이것 참 씨나락 치기기 아깝다고 이래 쌓고 그뭐 툴툴거려  쌓습디다.’  ‘그래? 왜 그럴꼬?’ 살며시 사람을 보내 가지고서 알아보라 하니까 그 사람이 ‘공연히 밥이나 해  먹을 건데 양식도 모자라는데 나락을 몇 되 논에다 흩쳤다’고 궁청궁청 그래  쌓는 게 사실이라 그말이오. 주인이 있다기 씨나락 싹 갚아주고 ‘그만 냅둬라.

논 붙이지 마라.’ 떼일 거라 말이오. 안 그렇겠소? 그게 무슨 농사를 짓겠소? 즐겨 내는 자,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즐겨 내는 자, 이게 뭐  우리가 심은다는 것은, 심을 기회를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 자기가 공연히 자꾸  내버리면 그것 죄 아닙니까? 여러분들, 우리 생명을 주를 위해서 진리를 위해서  바칠 수 있는 이걸 하나님이 기회를 줘야 되고, 그런 형편을 줘야 되고, 사건을  줘야 되고, 그런 일거리를 줘야 되는 것이지 공연히 자기 목숨을 끊으면 자살  행위 아닙니까? 하나님이 순교할 수 있는 기회와 모든 조건을 주셔야 되지는  것이지 그것 제맘대로 생명만 내놓으면 그것 순교가 되는 것이니까? 이러니까 이제 심을 수 있는 이 기회를 준 데 대해서 심은 것이 무궁세계에  갚음을 받는, 천지는 변해도 없어지지 않는 변하지 않는 이 계약을 확실히 믿는  사람이면 심으는 것이 기쁠 것이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주님과 주님의 진리를 인해서 손해본 그 일에는  기쁩니다. 또 주님과 주님의 진리에게 쓰여진 날은 그날은 기쁩니다.

내가 처음에 예수 안 믿을 때에, 내 아우가 와 가지고서 ‘형님, 참 어제는 우리  기뻤습니다. 야외예배 보는데 기뻤습니다.’ 그래. 내가 있다가 ‘그래 뭐 어데  가서 야외예배 봤노?’ 이러니까 저 영기대라 하는 데 거기 가서 야외예배를  봤는데 참 그날 재미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날 재미 있었어?’ 내가 그때  안 믿을 때니까. ‘야, 그러면 뭐 기생은 누구 몇이나 데리고 왔더노?’  하니까 ‘기생은 무슨 기생이요?’ 나는 안 믿는 사람, 그때 술 먹고 돌아다니는  사람이니까.

‘뭐 기생도 없었어? 뭣 재미 있었을까?’ 또 있다가 ‘그러면 술은 무슨 종류의  무슨 술 무슨 술 갖다놨더노?’ ‘술은 무슨 술이 있다 말입니까? 예배보는데.’  ‘예배봐 재미 있어? 그러면 재미 있는 것 한번 얘기를 한번 해 봐라.’ 이러니까 ‘그날 가서 보니까 동리 나무하러 가는 사람들이 오고 또 아이들이  오고 이래서 와 가지고 우리 예배보는 데 와서 우리가 전부 그날 마련한 것  장만한 것 전부 다 가지고 오는 분들 다 먹이고 전부 다 이래 거석하고  이랬다’고. ‘그러면 너거는?'  ‘우리는 그날 점심 굶었습니다.’ 이 굶었다 하면서 뭐 기뻐서 못 견디거든.

그래 내가 있다가 ‘야야, 점심 굶었는데, 점심 굶고 저거 먹으려 하는 것 전부  다 뺏겨버리고 기쁠 게 뭣꼬, 그래?’ 속으로 그라고서 말이요, 그러면서도 그게  내 마음에 와서 가만히 누워자며 누우려고, 누워 가지고 생각하니까, 생각해 볼  때 ‘그것 참 이상하다. 물론 남을 구제하는 것이고 남을 이래 봉사하고  대접하는 게 좋기야 좋지마는 하루 종일 제가 굶고 남 배가 뜅뜅하게 먹이고  그게 뭐 그렇게 뭐 기쁠 게 없는데 그것 어째 그럴까?’ 그 이해를 못 했어요.

그분들 그것 심으니까 그리 기쁜 거라. 예수 믿고 나니까 그 맛이 돌아오더라  그거요.

자기가 사람하고 무슨 관계 하다가 주님을 생각하고 손해를 봤으면 그날밤은  기쁘고 잠이 잘 옵니다. 어떻게 언변을 했든지 수단의 방법을 부렸든지 해  가지고서 내가 유익보고 그 사람에게 좀 손해보였으면 그날밤에 잠이 잘 옵니까?  기 막힙니다.

께꾸른하이 못견뎌지는 거라. 못견뎌져. 그걸 토하지 안하고 그걸 도로 무르지  않고는 잠이 안 오는 것이 그게 예수 믿는 사람들의 심정이라 그말이오.

 여러분들 다 그렇지 않습디까? 우리가 작은 것은 그러면서 큰 것은 또  거게까지는 도달을 못 해서 그렇게 못 한다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는 심으는 것이 우리의 생활이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썩을 걸  가지고 심어서 썩을 걸 거두는 그것은 안 믿는 사람의 생활이요 우리 생활은  아닙니다. 우리는 심으는 것이 우리 생활이오.

심으면 그다음에 하나님께서 많은 것으로 갚아줍니까? 심으면 세상에서  갚아주십니까? 자, 만일 그 사람이 재물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뜻대로 쓰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때문에 손해를 보고 이게 심으는 것인데 심었으면  세상에서 여러 배를 갚아주십니까? 여러 배 백 배를 갚아주십니까? 여러 배 백  배 준다 했다 말이오. 백 배 준다 했으니까 백 배로 갚아주시는 줄 아는 사람 손  들어봅시다. 갚아주시는 줄 아는 사람? 하나도 손 안 드네요. 네, 갚아주는 것  아닙니다. 백 배를 줘도 새로 또 심을 걸 또 주시는 것이오. 심을 걸 주는  것입니다., 갚아주는 것 아니오. 생명에 속한 썩지 아니할 일을 해 놨는데 썩지  아니할 그 상급을 썩을 것 가지고 어떻게 줄 수 있습니까? 못 줍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사랑한다 말은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 받는다 그말이오. 기뻐 받으시고 그다음에 당신이 줄 걸 준다  그말입니다. 줄 걸 준다니? 씨를 준다 그말이오. 사랑하신다 그말은 준다  그말이오.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의 기뻐하는 자라” 그말은 당신이 기뻐하시고  당신의 모든 것 이에게 다 주고 내가 주는 것 다 받은 자라 그말입니다. 사랑을  받는 것은 당신이 주는 것을 받는 것이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이 역사하는  그 법리와 방편은 주는 것이요 받는 것이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다음에 8절에 보면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 가지고서 하니까 또 하나님이 더 심을 것 많이 주고 또  심으니까 더 많이 주고 심을 걸 더 많이 줘서 넘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맺은 계약입니다.

적은 것 심으니까 많은 것 심도록 주고, 많은 것 또 심으니까 더 많은 것 주고,  더  많은 것 심으니까 더더 많은 것 주고, 심은 그 추수는 언제 합니까? 무궁세계  가서 합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이 자기가 세상 살이에 헛일 안 하는 알속 있는  생활을 합니다.

또 하나만 더 하고 맙시다. 연보는 뭣이 연보입니까? 연보의 목적이 뭣입니까?  연보의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연보의 목적은 두 가지. 하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요것이 연보의 첫 목적이오. 연보의 첫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연보의 첫 목적입니다. 그다음에 목적은  뭣입니까? 내가 연보할 때에 사람이 내 연보를 인해서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이 사람들이 되도록 하려는 것이 이것이 연보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연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 연보와 관련된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감사하는 그런 운동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오. 이러니까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니까,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원하겠습니까?

자, 하나님께서 제일 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겠소? 하나님이 제일 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저 남반에 한번 대답해 봐요. 하나님이 제일  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잘난 사람이겠습니까, 똑똑한 사람이겠습니까,  힘센 사람이겠습니까, 날쌘 사람이겠습니까, 열심있는 사람이겠습니까? 자, 한번 쳐봐요. 그 사람이 실력있는 사람, 열심있는 사람, 일 많이 한 사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 많은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하게 하는 그 사람, 자기가 모든 사람으로  하나님에게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게 하는 이 일 하는 사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 자, 이 사람 중에 하나님께서 어느 사람을 제일 원하겠습니까? 실력있는  사람이요, 일 많이 한 사람이요, 열심있는 사람이겠소? 어떤 사람이겠소?  하나님은 모든 걸 다 가지졌기 때문에 일꾼 필요 없소. 손 모자라지 않습니다.

일 많이 해 놓은 것 당신이 엿새 동안에 모든 것 지었고 했기 때문에 그 힘  가지고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일 원하시는 것이 당신이 기뻐하시는, 당신이 기뻐하시는 사람 그  사람을 제일 원합니다. 당신을 기쁘게 하는 사람, 당신이 기뻐하는 사람, 당신을  기쁘게 하니까 당신이 기뻐하지. 당신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을 제일 원하고,  당신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을 제일 원하고 둘째로 원하는 것은 그 사람으로  인해서 모든 사람이 그 사람으로 인하여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감사하게  하는, 감사하게 하는 사람 이 사람을 둘째로 원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람 둘째로는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람 이것 하나님이 제일 원하십니다. 연보의 목적은 그것입니다.

그다음에 보십시오.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치느니라” 이 감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이것을 목적하는 것이고,

그러면 어떤 게 연보인가? 그것만 하고 맙시다. 연보는 어떤 게 연보인가?  연보는 하나님에게 바쳐서 하나님이 그것을 받아 가지시는 것입니까? 연보는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입니까 연보는 인간이 인간을 봉사하는 것입니까? 인간이  인간을 봉사하고 구제하고, 연보는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입니까 인간에게 주는  것입니까? 인간에게 주는 것이 연보입니다.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기뻐하시는 대로 인간을 위해서 쓰는 돈이 연보입니다.

빼앗기는 것도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빼앗기는 것은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인간을 위해서 손해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연보입니다.

“저가 흩어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이 연보가 가난한 자에게 준 것  아닙니까? 연보가 가난한 자 준 것입니다.

또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에게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치느니라”  여게도 보십시오. 이것이 사람 봉사 아닙니까? 우리는 이 연보라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인간 사랑하는 것이오. 연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인간 사랑하는 것이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자기에게 있는 것 가지고서  인간을 돕는 것이요, 인간을 봉사해 인간을 섬기는 것이요,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사람이 자기 가진 것을 하나님 기뻐하시는 그 비위를  맞춰서, 하나님의 기쁨을 맞춰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맞춰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그대로 인간을 사랑함으로 인간을 구원하고 인간을 돕는 이것을 하는  자니 이자에게 무궁세계서 갚아주니까 뭘로 갚아주겠습니까? 무궁세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영원히 하나님을  것을 가지고 봉사하는 이 직책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연습해 가지고서  무궁세계에 이 직책을 우리가 지금 마련하는 것입니다.

연보는 인간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심으는 자에게 씨와 양식을 주어서  더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그의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니리” 심으면  풍성하게 한다. 심으면 풍성하게 한다. 점점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한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심으는 것은 없는 것 심으지 못합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있는 걸  가지고, 자기가 공연히 남용으로는 하면 죄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대로 자기에게 무엇이든지 있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 원하시는 일, 인간을 위해서 봉사하는 일, 인간을 섬기는 일, 인간을  유익되게 복되게 구원하는 일,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기회를 놓지 말고  애낌없이 바쳐서 살아야 됩니다.

바쳐 살면 또 하나님께서 또 씨를 주십니다. 끝이 없이 바쳐 살고 또 씨 받고,  바쳐 살고 또 씨 받고, 바쳐 살고 씨 받고, 또 양식 자기 쓸 건 또 따로 준다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받아 가지고 있는 중에는 반드시 양식과 씨와 두 종류가 있는  것인데 씨는 심어야 합니다. 심으면 적은 씨를 심었는데 많은 씨를 또 주십니다.

많은 씨를 심으면 또 더 많은 씨를 주십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이 뭣이냐? 우리의 직책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직책은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는  것과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느니라” 우리의 직책은 12절에 보면 봉사의 직무라  이랬습니다. 봉사의 직무.

한번 따라합시다.

봉사의 직무! 봉사의 직무! 봉사의 직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직무는 봉사의 직무입니다. 우리 몸, 소유, 생명,  기능, 뭣이든지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나에게 기회를 주시는  대로, 나에게 시키는 대로, 아무나따나 봉사할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그  분수대로 때와 장소를 당신이 시키시는 대로 애낌없이 있는 대로 봉사하고  봉사해 섬기면 또 하나님이 주시고 봉사해 섬기고 이런데 하나님이 봉사의  직책을 주시면서 봉사할 것을 주는데 요것을 봉사하지 아니하고 애껴 두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것으로써 중단입니다. 오는 것이 중단돼 버렸습니다.

수도관에 여기 물이 있는데 이 물이 안 빠져나가면 위에 물이 옵니까?  빠져나가야 위에 물이 자꾸 연달아 오지.

이러기 때문에 요것을 똑똑히 깨닫고 굳게 잡고 자기에게 있는 것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하나님이 봉사하라 할 때는 심을 양은 애낌없이  봉사합시다. 자기의 힘도 봉사하고, 몸도 봉사하고, 소유도 봉사하고, 기능도  봉사하고, 생명도 봉사하고 이 봉사에 써서 봉사의 직책이 숙달되고 능숙하고  권위 있어서, 무궁세계에 우리의 생활이 무엇입니까? 무궁세계의 생활은 봉사의  생활입니다. 무궁세계 생활은 봉사의 생활이오. 하나님의 무한한 것을  하나님에게 봉사받아 가지고 모든 피조물에게 봉사하는 것이 우리 영원한  직책입니다. 이것이 영생이요 이것이 영광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봉사의 직책을 하려고 왔고 봉사의 직책을 완수했습니다.

그게 실패 아니고 그게 성공이요 영광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 도리를 굳게 잡고 그저 지체하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몸도, 힘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면 그 생명도 전부 봉사에 솔빡 다 바쳐서  이 봉사의 직책이 능숙해지도록, 이 봉사함으로써 유한한 세상에서 봉사한  이것으로 무한한 세계에 봉사의 이 실력으로 직책으로 갚아주심을 받을 수  있도록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살아야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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