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한 시몬을 일으키심


선지자선교회 1984년 6월 1일 금새

 

본문 : 요21:15-17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여기에 조반 먹은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제자들이 디베랴 바다에  가서 또 고기 잡고 있었습니다. 그만 예수님 따라다니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나니까 그들이 뭐 그만 절망이 돼 이러다가 예수님이 다시  부활하셨다고 이래도 그들은 또 의지할 것 없으니까 세상에 나가 가지고 배타고  다니면서 고기 잡는 일 하다가 그때에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이거는 부활하고  난 다음입니다. 찾아오셔 가지고 언덕 위에 서셔서 그들을 보고 있으니까 그  제자들이 보고 '아, 주님이 저게 오셔서 섰다' 그라니까 모든 제자들이 빨리  배에서 내려서 주님에게로 왔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너희들이 고기를 잡은 것  있거든 가지고 오너라.' 하시면서, 벌써 이미 주님이 숯불을 피워 놓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시고 난 다음. 그래 제자들이 고기를 가지고 오니까 고기를  구워서 조반을 같이 먹고 난 다음에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삼 년이나 따라  다니면서 진리를 배웠지, 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을 때에 그들이 낙망하고 다  이러다가 죽은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하신다고 약속하신 대로 부활을 하셨지,  부활하셔 가지고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은혜를 끼쳐서 은혜를 받고 깨닫고  이라고 난 다음에 또 디베랴 바다로 또 가서 고기 잡으러 갔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벌써 은혜를 받고 받고. 경험하고 경험하고 이렇게 망령되면  그만 집어 던져 버릴 것인데 주님께서 다시 찾아오셔서, 이것이 아직까지도  육덩이를 벗지 못하고 이래 있으니까 주님이 오셔 가지고 고기 잡는 데서 그들을  소리하니까 그들이 보고 '아. 주님 오셨다' 하면서 우 뛰어나오니까 '너희들이  고기 잡은 게 얼마나 있느냐?' 고거 잡은 것을 말하니까 주님이 '가져 오너라.'  고기를 가지고 와서, 숯불은 주님이 벌써 피워 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숯불에다가 구워 가지고, 주님이 손수 구워서 모두 다 이래 나눠서 같이 먹고  요한의 아들 시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이 인생이라 하는 것은 참 참의 길을 걷기가. 새  사람으로 살기가 힘이 듭니다. 힘이 들어서, 은혜 받고도 또 배반하고, 은혜  받고도 배반하고, 또 살았다가 또 죽고 또 이래 가지고 몇 번이나 중복하나  '길이 길이 참아라'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아무래도 육에 속한 자라  육의 것을 떼지 못하니 육에 대한 것을, 주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도  그들에게 먹고 마시는 일을 했었습니다. 이러니까 육체를 가졌기 때문에 먹고  마시는 이것을 부인할 수 없고 이것이 섞여 있어야 되지 이것이 섞여 있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아주 부활하니 그런 게 필요 없는 줄로 이래 알았는데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의 처지와 사정을 따라서, 그들은 아직까지 육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육에 대한 것을 생각하시면서 조반을 같이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형제의 그 연약성. 형제의 그 변동성, 형제의 그 낙망 성.

형제의 그 의심성, 형제의 인내치 못하는 조급성, 경거망동하는 성, 또 형제의  그 물욕성, 모든 이 물질에 대해, 욕심하는 그것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를 하고  그 가운데서 구원을 하도록 해야 되지, 잘못하면 우리는 지나쳐서 초절해 가지고  그만 구원하는 데 손해보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고, 말씀할 때마다 '오래 참아라' 하는 말씀했습니다. '오래 참아라' 왜?  사락이 그렇게 대번에 변화되는 것이 아니고, 뭐 집을 지을라고 하면  일시간이라도 그만 큰 집도 지을 수 있지만 뭐 생명 있는 것은 그것은 아무리  천한 구더기라도 그거 기를라 하면 구더기가 자랄 만한 그 기간이 있어야 되지  기간이 안 걸리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이 있는 것은 자라야 되기  때문에 시간을 요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음이라는 것은 자라가야 하는 것이지, 이 무슨 갑자기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래 참아서. 그저 자라도룩 자꾸 육의 양식을 줄  때는 육의 양식을 주고. 또 이 세상을 뭐 줄 때는 주고 이래서 골고루 골고루  영양 채워 먹이면서 그 시간을 걸쳐서 길러야 되지 시간 걸치지 안하고 기르면  안 된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그 다음에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물으시면서도 '베드로야' 이렇게 묻지 안하고 '시몬아'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베드로야' 라고 묻지 안하는가? 베드로는 그 이름이  무슨 이름인고 하니 영감을 받아서 영감 사람 됐을 때에, '아버지의 성령이  너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이렇게 그 신앙  고백을 할 때에 그 신앙 고백한 그 사람은 영감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영감  받은 사람은 양을 위해서 생명을 바칩니다. 영감 받은 사람은 의례히 양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는 것이, 왜? 주님 위해서 바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양을  위해 바치는 것이 주님 위해 바치는 것이기 때문에 양을 위해 바치지만 사람은  중생된 새사람으로 살다가 그만 새사람은 또 배반해 버리고 이 악령과 악성.

악습으로 말미암아 된 이 사람으로 또 변화되기 쉽다 이거요.

 우리의 마음은 깨끗한 것입니다. 우리의 몸도 깨끗한 것입니다. 우리의  욕심이라는 것도 깨끗한 것입니다. 깨끗한 것인데, 이 악령이 와 가지고 우리를  사로잡았을 때에 우리는 물욕영, 물질을 사랑하는 물욕영이 내 속에 들어와  가지고 악성. 내 중심으로 살려는 타락성, 이 타락성과 합작해 가지고 나를 그만  물욕으로, 물욕이 들어서, 그게 내인 줄 알고, 물욕에게 다 마음을 다 들이고,  물욕에게 몸을 다 들여서 물욕의 마음이 되고, 물욕의 몸이 돼 가지고서 이렇게  살 때에는 물욕영이라는 그 악령, 물욕영이라는 그 악령과 또 물욕이라는  자기중심인 그 악성 이것으로 더불어 이래 가지고 우리는 그만 옛사람으로  돌아가 가지고 그렇게 살기 쉽습니다.

 이러니까, 새사람으로 살다가 옛사람으로 산다는 거야 시간이 걸치는 게 아니라  찰나에 됩니다. 말을 지금, 말을 하고 있는데 말 시작에는 새사람으로 시작해  가지고 말 끝에는 옛사람으로 마치기 쉽고 또 말을 하는 그새도 새사람으로  하다가 방금, 그저 뭐 요렇게 할 때, 요랄 때 "주: 강단을 한번 치심"가 아니라  찰나, 찰나라 하는 것은 그것은 형용을 할 수 없습니다. 이것 "주: 강단을 한번  치심"도 찰나 넘었소. 이것도 벌써 몇 찰나나 됐습니다. 이랬는데, 그렇게  빠르게, 재빠르게 우리는 옛사람과 새사람이 바꿔져 버립니다. 바꿔져서, 이  모든 물욕영, 물신, 명신 명예신 명신, 또 이 무슨 권신, 또 음신, 또 식신, 또  행락신 이 마귀란 놈들이 얼마든지 이런 마귀가 많이 있어 가지고 이 마귀가 안  되면 저 마귀가 와 가지고 우리 속에 있는 이 욕심을 이것을 이용합니다. 이  욕심은 성령아 붙들면 성령의 욕심이 됩니다. 또 악령이 붙들면 악령의 욕심이  돼 버립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를 유혹시키기 때문에 사람이 자꾸 변동이 많이  되는 고로 참지 안하면 안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자기는 변하는 사람인 줄 알고, 자기 마음이 변할 때 이것이  인생인 줄 알고 거기서 다시 욕망으로 일어서야 되지 '내가 이렇게 범죄했다.

나는 이렇게 됐다' 하는 그 사람은 아직까지 제가 모르는 사람입니다. '내가  이래' 네가 몰라 그렇지 하루 천 번도 범죄 더 했다. 천 번도 변하기를 더  변하는 인간인데 네가 뭐 '내가 이렇게 결심해 놓고 못 견뎌.' 일어서, 빨리  일어설 일이지 네가 '아, 나는 결심해 가지고 하루도 못 간다.' 하루가 뭐고?  네가 일분도 못 간다. 일 분도. 일 분에 얼마나 변하는지 아나? 네가 뭐  아무짝도 쓰지 못할 전적 부패한 그런 자인 줄 알아라. 그러니까 그저 깨달으면  아이구, 내가 변했다 싶으면 얼른 일어서고 내가 넘어졌다 싶으면 얼른  일어서고, 내가 범죄했다 싶으면 얼른 회개하고, 내가 이거 다시 탈선했다  싶으면 얼른 정궤도에 일어서고, 자꾸 하루 일혼 번씩 일곱 번이면 얼마입니까?  칠칠이 사십 구, 사백 구십 번인데 뭐 사백 구십 번 말했겠습니까? 인간이  이렇게 변동되기 때문에 그저 '네가 알면 즉시 일어서고 그 자리 있지 말아라.'  그것을 주님이 다 이해를 하십니다. 이해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즉시 일어서야  되고, 그것을 '아 이해하니까 한 번 빠져 봤자 무슨 상관이 있나?' 그것을  악하게 악용하는 자는 그거 또 악령이 그랍니다. '야,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  범죄 한다 했으니까 인간은 연약한 것 아니가? 또 범죄하고 이다음에 하자' 그  라는 것은 악령의 미혹에 들어서 지금 빠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몬아' 하는 것은 네가 시몬될 때에, 시몬될 때에 네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된다. 시몬될 때 그때에 날 사랑할 것을 네가 기억하고 나를  사랑해라. 시몬될 때. 우리가 이 새사람이 될 때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만 옛사람으로 바꿔지면 주님 사랑하는 것도  없고 사람 사랑하는 것도 없고, 사람에게 대해서 전부 원망 불평할 것, 시비할  것, 또 미워하는 것만 채이게 돼집니다. 그거는 옛사람이 돼 놓으니까, 인생은  또 그렇게 악한 것이 인생이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전적 부패라. 전적 부패고  옳은 것이 하나도 없다, 전적 부패라. 인간은 전적 부패라. 그러기 때문에, 옳은  게 하나도 없고 전부 죄뭉텅이뿐이라 그말입니다.

 제가 여기 부산 와 가지고 아주 예수 잘 믿는 사람인데 전적 부패라는 설교를  하니까 허연 머리를 흔들면서 '그럴 리가 있는가? 어디 순 죄만 짓던 조사가  왔구먼.' 이렇게 말하면서 부인해요. 부인하는 데 내가 붙들고 와서, 그 사람이  부인하는 것이 내게 보이기 때문에 '네가 전적 부패라 하니, 네가 죄를, 이거  네가 죄인 줄 아느냐?' 죄를 내가 한참 말했소. '이것 죄인 줄 아느냐, 죄인 줄  아느냐?' 다 하니까, '네가 이 사람 아니냐? 넌 순전히 죄 가운데 있으면서, 죄  뭉텅이가 돼 있으면서 너는 의로운 줄 알기 때문에 너는 구원에서 멀다.

회개해라.' 그 사람이 그때서부터 회개를 하고, 그전에는 짜다라 돌아다니면서  사람 죽인, 뭐 아주 명예 영광을 가지고 뭐 이래 권위 있게 복음 운동했습니다.

해서, 아주 기독교 학생회라 하는 데에는 뭐 고문이고 뭐 간부고, 뭐 전부 주관  다 했소. 이렇지만 '너는 죽이는 운동밖에 못 한다.' 그 다음에 회개하고 난  다음에는 참 사람 구원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옛사람으로 돌아가면 변해집니다. 그걸  다져서 시몬이라고 세 번이나 말했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 사랑하는 것이, 모든  것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내기에 불붙지 안하고, 또 다음으로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나는 형제를 사랑하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형제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또 내 후배를 사랑하고, 내 수하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나와 같은 형제되는 사람 또 내위에 있는 사람, 또 어린 양, 아주 이거는 철없는  아주. 아주 신앙으로 어린 사람. 못된 사람, 또 염소 새끼, 아주 염소 새끼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까지 사랑하는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린 양을 먹이라' 그 말은, 어린 양은 왜 먹이기가 어려우냐?  누구보다 사랑해야, 모든 사랑보다 주님을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어린  양을 먹입니다. 모든 사람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어린 양을  먹이는데, 어린 양은 어떻게 먹이는가? 어린 양은 그거는 젖을 먹여야 되지 꼴만  먹여 가지고는 안돼. 꼴반 베어 줘 가지고는 안돼. 이 하나님의 말씀만 증거해  버리면. 하나님 말씀만 증거해 주면 그 말씀 가지고 자기가 새김질해서 살지만  어린 양은 그거 안돼. 어린 양은 꼭 젖을 먹여야 되니까,  양이, 양이 풀을 제가 먹고 난 다음에 소화해 가지고 그 소화된 그것이 뭐이  되느냐? 자기에게 소화된 그것이 영양이 됩니다. 영양이 돼 가지고는 뭐이  됩니까? 영양이 돼 가지고는 기름이 됩니다. 영양이 돼 가지고 자기 기름이  됩니다. 기름이 돼 가지고 그 다음에 젖이 되는 것입니다. 풀을 먹으면 풀이  애미에게 소화가 돼 가지고, 소화가 돼서 그것이 인제 영양이 돼 가지고 영양이  자기 속에 들어와서 피와 살 기름이 됩니다. 피와 살, 기름이 되는데. 피와 살,  기름이 되고 난 다음에 기름 속에서 나 오는 것이 젖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자기가 하나님 말씀을 자기가 읽고 듣고 해 가지고 요  말씀대로 실행 실천을 해서. 요 말씀대로 실행 실천을 해 가지고 요 말씀대로  행동하는, 요 말씀대로 행동하는 그 행동의 신덕이 나오는 그것 먹고 살지  그거는 진리 먹고는 못 산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어린 양을 먹이는 것은 내가  실행하는 고 실행을 보고 그것들이 고 양식이 돼서 살지, 진리만 가르쳐  가지고는 살지 못한다 그말이오.

 이러나, 언제든지 젖을 먹을 게 아니라 어서 꼴을 먹을 수 있어야 되지 젖만  먹어 가지고는 양 새끼가 자라지를 않습니다. 이러니까, 어릴 때에는, 어릴  때에는 자기 선배의 행위 보고서 감화돼 가지고 행위 보고서 신앙생활하고 힘을  얻지마는서도, 그것만 봐 가지고, 왜?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은 행위가 잘못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만 먹고 살라 하다가는 목이 마쳐 안 돼. 이러니까, 이제,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서기관과 제사장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그들의 행함은 보지 말고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지켜  행해라' 이랬소. 마태복음 23장 1절 이하에 말씀을 해 놨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어린양을 먹이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주님을 우리가, 우리를 대속하신 주님이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이것이 마땅하고, '주님을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이랬습니다. 주님이 날 사랑하셨으니 나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면, 주님을 사랑할라면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주님을 사랑할라 해도  보이지도 안하고, 영으로 계시는 주님을 어떻게 사랑해? 주님을 사랑하고 싶은  그 사랑을 가지고서 인간을 사랑하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돼지는 것입니다.

인간을 사랑하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돼지는데,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려고  하면, 주님을 사랑하려고 하면은 인간을 사랑함이 주님을 사랑함이 되어지는데,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은, 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라 하면  서로 마주 상대가 돼 가지고 둘이 서로 마주 보고 상대해야 사랑하는 것이  돼지지, 마주 보고 사랑하는 그 사랑만 우리가 했지 삼각적 사랑은 우리가  몰랐다 그말이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만, 서로 상대방으로, 서로, 상대방으로,  상대성으로 이래 사랑해야 사랑하는 요 이 인성, 요 이 인성, 양인성, 둘이  상대성, 이 인성, 양인성으로만 사랑해 봤지 요 삼 인성으로는 사랑을 잘 못해  본 사람들이 많다 그말이오. 그러나 삼 이성으로 사랑하는 것이 좀 맛이 더  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주님이  사랑하는 그것을 사랑함으로 주님을 사랑함이 되어지는 그것이 삼 인성인데,  삼각으로 이래 돼 가지고 사랑하는 삼 인성인데,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이  말하기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나를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느냐, 어린 양을  먹이라. 나를 사랑하느냐, 양을 치라. 나를 사랑하느냐, 양을 먹이라.' 이랬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고 싶은 사람은 어린양을 사랑해야 되고, 양을 다스려야  되고, 양을 사랑해야 됩니다. 형제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면, 형제를 사랑하는데, 주님이 나를 고난에서, 고난으로, 고난을 무릅쓰고  고난으로 날 사랑했소. 뭐 호의 호식하고 평안한 데서만 나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고 아주 고난에서 나를 사랑했소. 고난에서 날 사랑하신 주님을 어떻게  사랑할 건가? 거기서는 내가, 고난에서, 고난에서 형제를 사랑할 때에 고난의  주님을 내가 서로 사랑하고, 고난의 주님을 서로 상대하는 것이 돼집니다. 또  주님이 나를 사랑하사 모든 것을 다 버리신 가난을 가지시고 날 사랑했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심으로 가난해지시고 가난해지심으로 날 사랑했어. 그러니까,  당신이 가난해 가지고 날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부요를 날 사랑하기 위해서  내어놓으신 그 가난으로 날 사랑 하셨기 때문에, 가난으로 사랑하신 그 주님을  내가 사랑하는 데에는 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현실을 주실 때에 어떨 때는  아주 가난하게 만들어 주신다 말이오. 가난하게 만들어 주시니까, 아주 가난하게  만들어 주실 그 때가 내가 가난으로 날 사랑하신 주님을 내가 가난으로 사랑할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그럴 때에, 가난할 때에는 가난으로 날 사랑하신 그  주님의 사랑을 내가 기념할 때요, 나에게 죽음이 왔을 때에는 죽으심으로, 생명  내놓고 나를 사랑하신 그 주님을 내가 생명 내놔서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좋은  기회를 만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공산주의의 독침을 만나든지, 공산주의의 압박을  만나든지, 신사참배 같은 그런 생명을 내놓아야 되는 그런 어려움을 만나질 때  그때에 주님이 날 사랑하신 그 주님을 깨닫고 그 주님을 내가 사랑할 때에, 나도  어떻게 하면, 주님이 생명을 바쳐 날 사랑하셨으니 나도 어떻게 하면 생명을  바쳐 주님을 사랑해 볼까 하는 그것이 평상 소원되던, 고 절정의 사랑을 품고  있던 그 사람이 생명이 끊어지는 그런 지경에서 주님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순교자가 다 그런 사람들이요, 순생자가 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예를 들어서 만일 그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려고 하면 생명을 내놔야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을 때에 주저하지 안하고 생명을 내 놓아 아내를  사랑했는데, 그 아내가 그 남편을, 그 남편은 이렇게 생명을 다해서 이렇게  사랑했는데, 나도 남편을 사랑해야 될 때 암만 사랑해도 그거는 안 됩니다.

자기도 남편을 인하여서 생명을 내놔야 될 그럴 때에 생명을 내놓고  내놓음으로써 남편을 사랑한 그것이라야 이제 생명적 사랑 의 배우가 되고,  생명적 사랑의 상대가 되고, 물질적 사랑의 상대가 되고, 성욕적 사랑의 상대가  되고, 희생적 사랑의 상대가 되고. 봉사적 사랑의 상대가 되고, 신실적 사랑의  상대가 되고, 이제 주님을 다 사랑하고 상대 하지만, 이런 면 주님으로 더불어  사랑의 연결이 있지만. 저런 면 안돼. 그러니까, 부부간도 그렇고 친구간도  그렇고 다 그렇습니다. 서로 친하다 해도 그 뭐, 그저 정도가 요런 면이나 저런  면에서, 마지막에 생명이면 다니까 다해서 사랑한다는 그것은, 이제 내가 그럴  수 있을 때에 다해서 사랑치 안하면 다해서 사랑하는 그 관계가 맺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은 '주님이 날 어떠한 사랑으로 사랑하신 그 사랑을  깨닫고 나도 그런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고야 세상을 떠나겠다.' 주님이 날  사랑하는 최고의 그 사랑, 나도, 그 사랑으로 날 사랑하지만, 내가 봤지만 내가  그 사랑을 내가 받는 것은 나도 주님을 그와 같이 사랑해야 그게 내가 주님의  사랑을 받은 것이고 사랑의 교제가 되는 것이지 그리 안 하면 쪽 사랑이라  그말이오. 쪽 사랑이지 그거는 서로 상대방이 안 되는 그런, 서로 어깨 저름이  안 되는, 서로 상대가 안 되는 사랑이라. 마치 말하자면 남편은 장성한데 이  신부 될 자는 지금 피투성이가 돼 가지고 지금 뭐 젖도 잘 못 먹고 꼴막거리는  그게 언제 그게 뭐 신부가 됩니까? 그거는 신부 될 수 있는 희망성이 있는  것이지 신부는 아니라 말이오. 이제 보면. 성경에 보면 이게 커 가지고 유방이  뚜렷하고 이제 참 신부 될만한 그 자격이 될 때에 왕의 후궁으로 인도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장성한 신앙으로서 어짜든지, 주님이 날 사랑하신 그 사랑  나도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도록, 요렇기를 우리가 원해서, 주님이 갖은 어려움  당하는 그 어려움을 원하고 원하면 주님이 그런 어려움을 주시고. 그 어려움을  주시니까 '아, 요때가 나도 물질 다해서 주님 사랑할 때다. 가난함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다. 요때가 내가 죽음으로, 생명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다' 하는, 그런  기회가 온 줄 알고 우리는 머리 기다리고 있어야 되겠고, 그런 기회가 올 때에  놓치지 안해야 다 후회 없는 생활을 합니다. 뭐 과거에 왜정 말년에 어떻게  했다. 또 6.25때 어떻게 했다 이렇게 말하는 그것 남의 말로 듣지 말고, 내가  실지로 그리 될 때에 다 그런 준비가 강하게 있지 안하면 안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주님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는 노력하고 기도하고,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올 때에 놓치지 말아야 됩니다. 놓치면 안 됩니다. 어짜든지  놓지 맙시다. 땅위에서 주님을 만족히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주님이 뭐이든지 다 맡길 수 있는 사람으로, 내가 주님에게 다 맡길 때에 주님은  나에게 다 말기십니다. 내가 내 모든 걸 주님에게 다 바치면 주님은 나에게 다  바쳐 주십니다. 그러면, 주님이 먼저 바쳤기 때문에 주님이 능동이고 우리는  거기에 피동입니다.

 놓지 말고, 산에서 기도하는 것, 될 수 있는 대로 한적한 곳에서 또 이  예배당에서도 기도하는 것, 뭐 예배당 우리 예배당은 산 같아요. 저 구석에 가면  어북 산만침 걸어갑니다. 저 구석에, 구석에 가 가지고 그저 주님하고 단판을  지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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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7 열 처녀 비유/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 1975. 12. 7. 제 49과 선지자 2015.12.07
686 열가지로 구별/ 갈라디아서 6장 6절-10절/ 860831주전 선지자 2015.12.07
685 열린 문/ 요한계시록 3장 7절-13절/ 840823목새 선지자 2015.12.07
684 열린 문/ 요한계시록 3장 7절-13절/ 850405금새 선지자 2015.12.07
683 열매로 자기를 진단하라/ 마태복음 7장 15절-20절/ 861002목새 선지자 2015.12.07
682 열매를 구별해라/ 갈라디아서 5장 22절-24절/ 861003금새 선지자 2015.12.07
681 열매를 맺을 때/ 요한복음 15장 1절-8절/ 890623금야 선지자 2015.12.07
680 열매를 맺을 때/ 요한복음 15장 1절-8절/ 890624토새 선지자 2015.12.07
679 열매를 맺을 때/ 요한복음 15장 5절/ 890708토새 선지자 2015.12.07
678 열심이 없고 충성이 없다/ 누가복음 11장 5절-13절/ 860111토새 선지자 2015.12.07
677 열여섯 가지 구속에 대해서 깨달을 것/ 베드로후서 1장 4절/ 871025주새 선지자 2015.12.07
676 열여섯 가지 구원에서 나온 기쁨/ 빌립보서 4장 4절-7절/ 871216수새 선지자 2015.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