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가지로 구별

 

1986. 8. 31. 주일오전

 

본문:갈라디아서 6장 6절∼10절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우리가 너무 천한 것을 상대해서 사는 천한 사람들이오. 우리가 천한 것을 상대해 사는 천한 사람들입니다. 재산 없어 천한 사람 아니고, 병신이라 천한 사람 아니고, 정신이 천하고 사상이 천하고 소망이 천하고 모든 평가가 다 천합니다.

우리는 그런 데에서 좀 새로와져야 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너무 거리가 머니까 이해를 할라고 해도 이해하기가 자기가 사람이 되기 전에는 이해를 못하는 것인데 아예 이해할라고도 생각지 안하고 순 세상에서 죄짓고 도적질하고 악을 행하는 그런 사상과 정신과 그 인품이 돼 가지고 하나님의 도를 듣고 배우니까 힘을 다해도 이해가 안 될 터인데 그것마저 고기덩어리만 와 앉았지 마음은 항상 딴데 가 있으니까 무엇이 들려지겠습니까? 우리가 이거 회개해야 됩니다. 오늘이라도 주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모두가 다 그런 거는 불타지고 맙니다.

하나씩 증거할 터이니까 자기를 따져봐요, 자기는 어떤 사람인가? 여기 6절에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그러면 이 가르침을 받는다고 했는데 이 가르친 것은 철학자의 가르침입니까, 법학자의 가르침입니까, 문학자의 가르침입니까, 과학자의 가르침입니까, 어떤 그 가르침을 여게 말했습니까? 말씀 가르침,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이 생명의 도를 가지고 가르침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여게서 첫째로, ‘나는 내가 사는 일에 있어서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는가? 나는 누구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가?’ 그것을 여게서 판정하고 지내갑시다. ‘누구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가?’ 여게 가르침이라 말은 지도라는 뜻을 내포해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지도를 받는가? 누구에게 교훈을 받는가? 누구에게서 지식을 받아 가지는가?’ 그러면 그것을 판정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가르침 받는 이것만을 우리의 가르침으로 삼고 배워야 하지 이 외에 딴것은 그런 것은 다 보조학이기 때문에 우리가 생활하는 데에 이용은 할 수 있는 것이지마는 내가 거게다가 절대 복종하는 명령으로 가르침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어떤 지도, 어떤 명령, 어떤 교훈을 받아야 하는가? 이는 한 분 하나님이신 하나님에게만 가르침을 받아야 됩니다. 요것도 결정을 해요.

물론 학교 가서 이런 거 저런 거 배웁니다. 배우나 그거는 내가 이 세상에 살 때에 하나의 필요한 이런 모든 보조학으로 그것을 참고로 그렇게 배우지 그것을 내가 거게 지켜 복종해야 될 절대 명령으로 우리가 받는 거는 아닙니다. 명령으로 받는 거는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스승은 하나뿐이라” 이랬습니다. 주님이 모든 사람들이 말하기를 선생님 이래 물으니까 “선생님은 한 분뿐이시니라” 하는 것을 밝혀서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대로 행할 교훈, 고칠 교훈, 복종할 교훈, 또 인도받아서 그래서 그대로 앞길을 측량해서 나아갈 지도의 교훈 이것은 하나님 한 분만 우리를 가르치실 수 있고 하나님 한 분에게만 배워야 되지 딴데 배우는 것은 다 멸망입니다.

왜? 땅위에 가르치는 자가 알고 가르치는 자 하나도 없습니다. 그게 내일도 모르고 조부라운 제 생각대로 추측 추론 추상 그런 것들을 말했고, 그런 것들이 아니면 그저 여러 사람의 중론을 들어서 합해 가지고 말했고, 또 그렇지 안하면 눈에 보이는 것, 보이는 것만을 상대해서 말한 것이기 때문에 그까짓 거 힘이 다 하나도 없습니다.

과학은 철저한 줄 알아도 과학이라 하는 것은 보이는 것을 위주로 하는 지식이 과학 지식입니다. 육안으로 안 보이면 뭐 현미경으로 보고 뭘로 보고 뭘로 보고 봐서 과학자들은 보여야 가치로 삼고 실존으로 압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데서 나왔고,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해서 있다, 보이는 것들은 자꾸 없어지는 것들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영영한 것이다.” 이렇게 이 과학자들이 생각도 못할 것을 말씀해 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나는 선생님을 누구를 선생님으로 정할 건가, 오늘까지 정하고 있는가?’ 요것을 요 시간에 확정을 지우십시오. 내가 아무리 학교 공부 하고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광문 다학을 한다 할지라도 ‘내가 가르침 받을 선생님은 한 분뿐이시다, 나에게 절대 명령하실 절대 복종해야 할 그 명령자는 한 분뿐이시다, 나의 영원한 미래를 바로 인도할 그 지도자는 한 분뿐이시다.’ 이렇게 삼는 것이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인데 우리는 가르침을 받는 그 선생, 지도받는 선생, 명령하는 명령자 그런 것이 얼마나 되는가? 그것을 따져서 하나로만 삼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이런 명령 저런 명령, 상관들도 많고 또 모든 행정가들이 많으니까 여게 따라서 저게 따라서 우리가 복종해야 될 명령이 많은데’ 명령이 많아도 나에게 명령할 자는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한 분뿐이십니다. 누구? 하나님.

다니엘이 그렇게 그 다리오 왕에게 복종하기를 모든 동역자들이 볼 때에 ‘다니엘이 이 왕에게 복종하는 것은 아무리 흠을 잡을라 해도 흠잡을 것이 없이 절대 복종으로 나온다’ 이랬지마는 ‘너거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라' 하는 그 명령에 복종했습니까? 절대 복종 안 했습니다. 사자구덩이 묶여 들어가도 복종 안 했어.

그는 여러가지 명령을 받되 한 분이신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그분의 종으로 삼고 그분의 기관으로 삼아 가지고 그분이 명령하는 명령이 어떤 인간을 몇 층어리를 거쳐 나오든지 거쳐 나오면 그 명령의 근원을 볼 때에 하나님의 명령인 것을 깨달을 때에는 절대 복종하고 죽도록 복종하지마는 아무리 평생 복종한 내 상관이라 할지라도, 부모라 할지라도 명령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 아닐 때는 절대 복종 안 합니다. 죽어도 복종 안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 가르치는 선생을 여러 분으로 두지 안하고 한 분으로 두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게서 작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는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돼 가지고 목사는 모든 제직들과 반사들에게 가르치고 반사들은 또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이렇게 가르치는데 그러면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받아 가지고 지금 전달하는 그 가르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가르치는 것은 다 하나님 말씀 가르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좋은 것입니다. 평가적으로 말하면 좋은 것입니다.

좋다 말은 좀 뜻이 깊어서 알기가 힘듭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에 모든 것을 창조해 놓으시고 하나님이 보시니까 좋았더라 그렇게 했습니다. 좋았다는 그 말의 뜻은 뭐이냐 하면 영원 불변의 것들이라 그말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해 놓은 것은 그 본질과 본성은 변하지 안했습니다. 다른 것들이 거머쥐고 이용을 해 그렇지, 이용을 해 그렇지 그 자체는 변질되지 않습니다. 영원 불변의 그 본질과 본성들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면 사람의 육체가 이게 범죄하는 도구가 된 것은 악령이 이렇게 이용을 해서 악용을 당하는 것뿐이지 자체는 변질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그러면 하나님의 가르치시는 것은 다 영원 불변의 지도요, 불변의 교훈이요, 불변의 명령이요, 불변의 모든 예언들이요 약속들이다, 영원 불변의 것들이다. 그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가르치는 자나 가르침을 받는 자가 함께 하라.

그런데 우리는 다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면도 가지고 있고 가르침을 받는 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여게 가르치는 자나 가르침을 받는 자나 둘 다 가르친 이 교훈대로 같이 해야 된다 했습니다. 우리는 남에게 가르친 대로 내가 하는지? 하나님 말씀을 사람에게 그리 안 하면 성경에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하는지? 요거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가르침을 받는 거, 사람을 통해서 가르침을 받든지 문서로 가르침을 받든지 어떻게 가르침을 받든지 가르침 받은 것을 그대로 내가 실행을 하고 있는지 안 하고 있는지, 하고 있는지 안 하고 있는지 요거 둘째로 요것을 판정합시다.

자기가 나는 하고 있는 것도 있고 안 하고 있는 것도 있으면은 거기다가 딱 적어 놓으십시오. 나는 하지 안하는 것, ‘하고 있는 것도 한번 적어보자. 말씀을 가르침 받은 대로 내가 하는 것도 한번 적어보자. 하지 않는 것도 적어보자.’ 그렇게 힘을 써야 되지 영생을 이루는 것이 그렇게 쉽게 되는 줄 압니까? 그걸 적어 봐요, 적어.

테레비 그까짓 거 암만 봐도 그거 뭐 문화 테레비라 해도 인간 수평선 이하의 것이기 때문에 죄 사망 저주 그 선 아래 있는 것이지 그 선을 뚫고 올라간 거는 없습니다. 그 선 이상 것은 하나도 없소.

그러기 때문에 둘째로는, ‘나는 선생님은 하나님 한 분뿐이시라.’ 누구에게 가르침 받는가? ‘나는 다 이제 제거해 버리고 다 치워버리고 하나님 한 분에게만 가르침 받겠다.’ 요것을 딱 작정을 하고, 또 두번째로는 ‘내가 가르친 것이든지 내가 가르침을 받은 것이든지 이대로 너는 행해야 된다, 이대로 실행해야 된다.’ 둘째로 가르침을 받았든지 가르친 것이든지 실행할 것, 실행할 것, 요거 둘째로 작정할 것. 실행할 것. 요 둘째입니다.

셋째로 「스스로 속이지 말라」 「속이지 말라」 이 세상은 속이는 세상이요 속는 세상인데 모두 가서 보면은 말하는 거는 그놈한테 속았다, 뭐 다 속아서 망했고, 망한 것은 속아서 망했고 또 승한 것은 다 속여서 승했어, 속여서.

이랬는데 그래서 성경이 말하기를 “세상은 속이고 속는 것이라” 그렇게 말했어.

그 말씀이 어데 있습니까? 디모데후서 3장, 3장 몇 절인고? 14절? 그렇츰 되나? 그 안에 있지 안해, 그 안에.

우리는 지금 이 속는 세상이라 속지 안할라고 공부를 하고 또 여러가지 이렇게 수양을 하고 애를 쓰는데 우리는 나를 속이는, 나를 속이는 그 적을, 나를 속이는 적을 누구로 삼고 있는가? 누구로 발견하고 있는가? 나를 속이는 자를 누구로 발견하고 표를 찍어 놓고 있는가? ‘나를 속이는 자는 누구라, 나를 속이는 자는 공무원이라, 나를 속이는 자는 선생이라, 나를 속이는 자는 이웃이라, 나를 속이는 자는 아내라, 나를 속이는 자는 남편이라, 나를 속이는 자는 나쁜 동무들이라.’ 나를 속이는 자는 누구로 정하고 있는가? 여기 성경에는 말하기를 “네가 너를 속이는 자인 것을 알아서 너를, 네가 속이니까 너를 속이는 너, 너를 속이는 너 그놈을 단속해라.” 그랬습니다. 너를 속이는 그놈을 단속해라.

누가 속입니까? 자기가 속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속여서 망치는데, 자기가 자기를 속여서 망치는데 자기 속이는 그자의 이름이 뭐입니까? 옛사람. 자기를 속이는 자의 그자의 이름이 뭐입니까? 옛사람은 무슨 몇 가지 요소로 돼 가지고 있는 게 옛사람입니까, 손가락으로? 녜, 세 가지 요소로.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그것이 옛사람인데 그놈이 내 일생과 영원을 속여서 망치기 때문에 이놈을 원수인 줄 알아야 됩니다. 나를 속이는 자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네 안에 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자기가 자기를 속여서 망친다. 이거는 뭐이냐? 자기 아닌 자기입니다. 자기 아닌 자기, 자기를 죽인 원수인 자기, 자기 아닌 것이 자기라고 가장을 해 가지고 나타나는 자기 아닌 자기, 이 자를 발견해 가지고 이 자를 원수로 삼지 않는 자는 그는 암만 세상에서 천하를 차지해도 저는 자살 행위뿐입니다. 알겠습니까? 나를 속이는 원수를 바로 발견했는가? 나를 속이는 원수는 자기입니다. 자기라니? 뭐 중생된 영? 아니오. 그거 새사람 자기요. 그는 자기를 속이지 않습니다. 중생된 영 새사람 자기는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함께 동하고 정하기 때문에 그는 자기에게 영생을 주지 속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가 둘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자기 하나뿐이오. 믿는 사람들은 자기가 둘입니다. 안 믿을 때에는 자기를 망치는 자기 아닌 자기 원수인 자기 그놈뿐이었지마는 예수님 믿고 난 다음에는 이제 새사람 자기가 생겨지고 보니까 그것을 옛사람이라 그렇게 이름하는데 옛사람 자기가 있습니다. 옛사람 자기 그놈은 자기를 죽이고 망치는 자인데 그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그 자기, 자기 아닌 자기, 원수 자기, 요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제가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다 할지라도 내가 지금 이 지위를 탐하고, 지위를 누리고, 지위를 감당하고 있는 것이 어느 내인가? 어느 내가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가? 내가 강단에 설 때에, 내가 인인관계를 할 때에, 내가 내 위치에 앉았을 때에, 내 직무를 이행할 때에 하는 이 내가 무슨 내인가? 예수 믿는 사람이면 자기가 둘이기 때문에 어느 내가 지금 이거 하고 있는가 그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망칩니다.

자기가 둘이기 때문에, 자기 아닌 자기가 장관 노릇도 하고, 자기 아닌 자기가 대통령 노릇도 하고, 자기 아닌 자기가 교수 노릇도 하고, 자기 아닌 자기가 장사도 하고, 자기 아닌 자기가 호주 노릇도 하고, 자기 아닌 자기가 자기에 대해서 자기를 위하는 모든 호신 역사를 하기도 하고 이렇게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와 자기를 구별해서 참자기 아닌 자기를 깨닫고, 자기 아닌 자기 그놈이 나의 금생과 영원을 망친다 하는 요것을 깨닫는 사람이 아니면 죽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세상 박식을 가졌어도 죽었고 그는 아무리 높은 지위와 부강을 가졌다 해도 죽었습니다. 왜? 악령 악성 악습, 자기를 죽인 악령 악성 악습으로 자기를 삼아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에 전생활은 죽은 생활 죽이는 생활밖에는 다른 거는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스스로 속이지 말아라” 너를 속이는 자를 바로 발견하라, 너를 속이는 자를 누구로 지금 발견하고 있느냐? 네 몸 밖에 있는 친구로 발견하고 있느냐, 가족으로 발견하고 있느냐, 원수로 발견하고 있느냐, 동역자로 발견하고 있느냐, 이 모든 공산주의나 외국인 그런 것으로써 너를 속이는 원수라고 발견하고 있느냐? 네가 누구한테 속고 있느냐? 네가 누구에게 속고 있느냐? 너를 속이는 자를 발견하라 그말이오. 너를 속이는 자를 발견하라.

그러면 여기 속이는 자를 누구라고 했습니까? 속이는 자를 누구라고 했소? 여반에 한번 대답해 봐. ○선생 한번 대답해 볼까? 내가 알아, ○선생 알아.

누구를 속이는 자로 정하고 있어요? 스스로. 너 아닌 네가 있다. 너 아닌 네가 있기 때문에 너 아닌 너 그놈에게 네가 평생 속지마는, 속지마는 속이는 놈이라는 것도 알지 못하니까 뭐할 겁니까, 하기를? 요거 셋째로, 자기 아닌 자기가 자기인 척 하고 자기 심신을 통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 심신은 전부 죽이기를 위하고 망치기를 위해서 하기 때문에 일생 동안 그놈에게 통치받아 가지고 그놈 생각대로, 그놈 원하는 대로, 그놈 지혜대로, 그놈 시키는 대로 하고 났는데 가 보니까 전부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지어서 다 불탈 것만 하고서 영생할 것은 하나도 하지 못했습니다.

또 그다음에는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네가 누구를 업수이 여기고 누구를 인정하느냐? 누구를 무시하고 누구를 인정하느냐? 네가 현실에 봤을 때 네 현실에서, 네 현실에서 네가 누구를 인정해서 그 현실을 살아가고 누구를 무시해서 배척해 버리느냐? 네 현실에서 누구를 인정하고 누구를 배척하느냐? 누구를 인정하고 누구를 배척하느냐? 내 현실, ‘내가 이 시간에는 내가 누구를 배척하고 있느냐, 누구를 지지하고 있느냐? 누구를 지지하고 있으며 누구를 배척하고 있느냐? 누구를 지지하고 있으며 누구를 배척하고 있느냐?’ 요것을 구별해야 성도지, 요것을 구별해야 성도지, 성도라 말은 구별하는 무리라 그말입니다. 요걸 구별해야 성도입니다.

그 현실에서 ‘내가 누구를 무시하고 누구를 지지하느냐?’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나니 이를 중히 여기면 저를 경히 여기고 저를 중히 여기면 이를 경히 여기느니라” ‘그러면 내 현실에서는 누구를 지지하고 누구를 무시하느냐?’ 하나님을 네가 무시하느냐, 하나님을 무시하느냐 너와 피조물을 무시하느냐? 뭘 무시하느냐? 너와 피조물을 지지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느냐? 둘 중에 하나입니다. 둘 중에 하나. 우리 현실 생활은 다 요렇게 돋파 나가고 있습니다.

모르면 저는 하나님 배척하고 저 위주로 저 중심으로, 상관 위주로 상관 중심으로, 또 수상 위주로 수상 중심으로, 모든 애정 위주 애정 중심으로, 정실 위주 정실 중심으로, 물질 위주 물질 중심으로, ‘내가 대체 이 시간에는 무엇을 무시하고 무엇을 지금 내가 지지하고 있느냐, 내가 무엇을 지지하고 무엇을 무시하고 있느냐?’ 요것을 현실에서 따지지 안하면 죽은 생활입니다.

요것을 따져 가지고 ‘나는 이 시간에 모든 피조물 있고 창조주가 있으니까 내가 이 시간 현재 생활에는 요렇게 하면은 하나님을 지지하는 것이고 요렇게 하면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겨서 하나님을 업수이 여기는 것이고, 이러니까 뭣을 업수이 여기고 무엇을 지지하느냐?’ “네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처자나 네 목숨보다 나를 더 사랑치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고” 말씀하지 안했습니까? 겉에 나오면은 이 교훈이 지저분한 것 같고 이렇게 뭐 다 사이비하게 이렇지마는 자꾸 파고 들어갑니다. 파고 들어가 똑 들어가서는 네가 이 현실에서는 어느 것을 지지하느냐? 어느 것을 중하게 여기고 귀하여 여기고 어느 것을 천하게 여기느냐? 어느 것보다 어느 것을 크게 여기는가? 어느 것보다 어느 것을 크게 여기느냐? 뭐이냐? 네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느냐?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만홀히 여기느냐? 우리가 하나님도 존중히 여기고, 피조물도 존중히 여기고, 원수도 존중히 여기고, 다 존중히 여길 수 있는 그런 기회야 좋습니다. 그거야 다 존중히 여기면 됩니다.

이러나 하나님은 꼭 그렇게 안 하시거든. 그렇게 가다가는 반드시 요거냐 요거냐? ‘네가 하나님을 존중히, 나를 존중히 여기느냐 피조물 존중히 여기느냐?’ ‘아브라함아 네가 이삭을 사랑해라.’ 이삭도 사랑했지요. 이삭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고 둘 다 사랑할 때는 좋은데 하나님은 그때 뭘 만드느냐 하면 ‘네가 이삭을 잡아서 번제로 드리라’ 하니까 하나님 대접할라 하면 이삭을 번제로 태워 죽여야 되겠고 이삭을 사랑해서 이삭을 위할라 하면은 하나님을 배척해야 되겠고 둘 아닙니까? 그럴 때 아브라함은 어쨌습니까? 이삭을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리기로 작정하고 하나님 사랑함으로 그의 명령에 복종할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억지로 했습니까 기쁨으로 했습니까? 기쁨으로 했습니까 억지로 했습니까, 저 뒤에? 기쁨으로 했습니다. 왜 기쁨으로 했습니까? 왜 기쁨으로 했소? 그걸 알아야 돼요. 왜 기쁨으로 했어? 기쁨으로 했습니다.

왜 기쁨으로 했습니까? 주님을 위하는 사람도 복되고, 주님을 위하는 것도 복되고, 주님에게 쓰여지는 것도 복되고, 이러니까 그 명령받고 난 다음에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니까 복되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니까 복되고 이삭은 하나님 앞에 번제 제물이 되니까 복되고 이거 막 복 복 복이 쏟아졌다 말이오.

이러니까 아브라함은 잠을 못 잤어. 밤새도록 ‘어서 날만 새면 날만 새면’ 하고서, 장작은 모리아 산에는 산중이니까 장작이 많은데 뭐한다고 밤새도록 장작을 패 가지고 갔겠소? 패 가지고 짊어지고 좋아서 못 견뎌서 춤을 추며 갔다 그거요.

깨닫고 보면, 깨닫고 보면 하나님을 존중히 여겨 하나님 때문에 버린 것은 그게 다 영생합니다. 알겠습니까? “부모와 형제와 자매와 처자와 전토와 자기 목숨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에게 비해서는 ‘너 어느 걸 사랑할래?’ `하나님 사랑하지요.’ ‘이 둘 중에 어느 걸 미워할래?' `부모와 형제와 자매와 처자와 내 목숨과 전토를 미워하지요.’ 이 둘을 보고서 둘을 ‘어느 걸 어떻게 할래?’ 할 때는, 미워하고” 하나님보다는 미워하고, 하나님보다 미워해야지. 그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해야지.

하나님보다는 천하게 여겨야지. 하나님 떼놓으면 그것도 다 귀하지. 하나님과 비교할 때는 비교 못 한다 말이오. 이래서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전토나 자기 목숨을 버린 자는” 뭐라 했습니까? 뭐라 했습니까? “여러 배 얻고” 또? 여러 배만 얻어? “백 배나 얻고” “백 배나 얻고 영생을 얻지 못할 자 하나도 없다” 아브라함은 요걸 알았거든. 하나님 취하면 버린 것은 다 잊어버린 줄 알았고, 또 하나님을 중히 여기고 하나님보다 무시한 것은 그것은 다 절단나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보다 무시하는 그것이 더 잘되는 것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은 알았기 때문에 밤새도록 잠을 못 자고 준비했던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은 만홀히 여 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그러니까 나는 현실에서 어느 것을 만홀히 여기는가? 요거 몇 째입니까? 요거 몇 째?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요거 몇 째야? 그러면 넷째. 이제 자꾸 잊어버리지 말아요. 현실에서는 어느 것을 만홀히 여기는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가 어떤 그 피조물을 만홀히 여기는가?

또 그다음에는, 인제 다섯째.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팥 심으면 팥 거두고, 콩 심으면 콩 거두고, 또 밀 심으면 밀 거두고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이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그러면 육체로 심는 자, 육체로 심는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으로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두리라.

그러면 다섯째로는 내가 무엇으로 심는지? 다섯째로는 무엇으로 심는지? 내가 무엇으로 심는지? 그러면 우리 현실에서는 나는 현실에서 육체로 심는가 성령으로 심는가? 육체를 위해서 심는다 하니까 그거 잘못 알아들으면 안 됩니다. 육체로 심는가 성령으로 심는가 이 말은 네가 현실에서 육체로 행동하느냐 성령으로 행동하느냐 그말입니다.

육체로 행동하는 게 뭐입니까? 자기 심신이 주장이 돼 가지고 행동하느냐, 심신이 주장돼 가지고 네가 현실에 행동하느냐 성령이 주장돼 가지고 행동하느냐 이 둘 중에 하나입니다. 둘 중에 하나. 요 현실에서 요것을 구별하지 안한 자는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죽은 자입니다.

내가 이 현실에 아무것이하고 만나서 얘기를 하는데, 일을 하는데, 경영을 하는데, 계획을 하는데, 뭣을 지금 심사를 하는데, 이런 것 저런 것 지금 건설을 하고 있는데, 공부를 하고 있는데, 뭘 하든지, 뭘 하든지 너는 육체로 안 하면 성령으로 하고 성령으로 안 하면 육체로 한다, 둘 중에 하나뿐이지 딴거는 없다, 내가 육체로 하든지 성령으로 한다.

육체로 하는 것은 자기 심신의 생각대로 하는 것이니까 다시 말하면 심신을 모아 놓은 거는 세상입니다. 알겠습니까? 네가 피조물, 이 세상에서, 지금 뭐 몇 억이라 하더나? 지금 몇 억이나 돼, 인구가? 인구 총수가 대강 몇 억이나 돼요? ○장로님 아십니까? 예? 온 세계 인구가? 사십억? 사십억이 똘똘 뭉쳐서 같은 통일된 결의를 해도, 결의를 해도 그것은 죽는 것도 모르고, 사는 것도 모르고, 난 것도 모르고, 내일도 모르고, 모레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들 뭉텅이입니다. 알겠습니까? 바보 뭉텅이. 온 천하 역사가 통계내 가지고 해도 그거는 미래를 몰라. 은밀을 몰라. 그 아는 것이 소경이 더듬어 찾는 것처럼 그렇지 영원을 몰라.

그런데 너는 뭘로 심느냐? 네 마음, 네 생각, 네 지혜, 네 비판, 네 평가, 인간들의 모든 전인류의 공동 평가 통합한 비판 그대로 하느냐,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성령으로 네가 현실을 행동하느냐? 뭘로 하고 있느냐? 뭘로 하고 있느냐? 여러분들! 예수 믿는 사람은 포부가 적은 자는 못 믿습니다. 알겠습니까? ‘한국 땅덩어리를 주지’ 그것 가지고는 욕심의 억만분지 일도 차지 안합니다. ‘세계를 주지’ 그것도 안 차요. 알겠습니까?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주지’ 그것도 안 차요. 뭐이 차? 자존자 창조주 그분을 내 하나님으로 내 안에 모셔야 이제 내 욕심 그릇이 거뜩 차서 넘치지 피조물 가지고는 안 돼. 이게 예수 믿는 사람이오.

바로 알고 믿는 사람이오.

사람들의 귀가 예민하지마는 이 지구 땅덩어리는 뭐 얼마나 가속도로 회전하니까 그 소리는 굉장한데 그 소리는 안 들리고 뇌성벽력하는 소리는 들리지마는 뇌성벽력의 억억만 배도 더 큰 진동 소리는 귀에 안 들립니다. 이거 모양으로 이렇게 큰 교훈은 귀에 안 들려, 썩어질 지식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너는 현실에서 육체로 심느냐 성령으로 심느냐? 뭘로 심느냐? 네 심신으로 네 현실을 비판해 가지고, 판정해 가지고 네 심신 주장대로 현실을 행동하느냐, 전피조물 통합된 그것으로써 너는 현실을 행동하느냐? 세상이 무시하고 있는 보이지도 않는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영영하신, 전지하신 이 성령님으로 네 현실 행동을 결정해 가지고 하느냐 둘 중에 하나입니다. 요게 몇 째입니까? 다섯째.

그라면 내가 행동했으면, 행동했으면 그 행동의 결과가 나오는 것인데 행동의 결과가 뭘로 나왔느냐? 썩어진 것으로 나왔느냐 영생으로 나왔느냐? 그 결과는 압니다. 자기가 행동한 결과는 알아. 결과는 알아. ‘내가 이렇게 노력해 가지고 이거 만들었다, 이렇게 노력해 이거 만들었다.’ 만들었으면 네가 만들어 놓은 그것이 다 썩어진 것이냐 영생하도록 있을 영생의 것이냐? 뭐이냐? 비판하면 알 수 있지. 안 믿는 사람은 모르지.

이래 놓으니까 애가 터져서 호재피요 인재명이라, 사람은 이름을 남기는 게 제일이다, 이래 가지고 명예를 위해서 뭐 야단을 지기고 명예를 이걸 안 죽일라고 야단을 쓰고, 이제 요새는 그 말이 있어서 ‘나는 역사에 오점을 두지 안할란다.

죽고 난 다음에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세월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의 다 행동이 나타나고 있으니까 그 역사에 오점을 두지 안할란다.’ 그것도 대단히 어북 당달봉사는 면했소. 당달 봉사는 면했어. 그러나 전체를 보는 눈은 없는 사람이라, 전체를 보는 눈은 없어.

역사 이것도 없어지는데.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면 역사가 싹 없어져 버려요.

알겠습니까? 역사 이것이 하나도 없어집니다. 다 없어져 버리요.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해 가지고 영원 무궁 불변, 영원 무궁 불변의 것이 있어.

불변의 것이 있기 때문에 내가 행동한 요것이, 말한 마디 한 것이, 행동 하나 한 것이 영원 불변의 것이 아니면 그만 작대기 그어버려. 영원 불변의 것이 아니면.

내가 오늘 여기 설교를 해도 설교해도 제가 인기나 끌고 사람들을 점령이나 하고 이 땅의 저를 위해서 이 악에서 하면은 이거 다 작대기 그여져버려. 다 영생 안 돼요. 순전히 주님에게 피동돼서, 내가 오늘 아침에 설교를 셋을 냈는데 세 가지를 가지고 이제 어느 걸 하나님이 하라 하는지 그걸 못 찾아 가지고 한 서너 시간 고통을 당했습니다. 고통을 당하다가 이 말씀을 하나님이 하라 하는 것인 것을 내가 깨닫고 증거를 합니다. 해 보니까 또 하나님이 하라 한 것이 분명하다 그거요.

하는 행동이 주님을 위해서 주님이 시키는 대로 주님의 지체가 돼 가지고, 주님의 지체가 돼 가지고, 주님의 입술이 돼 가지고, 주님의 혀가 돼 가지고, 주님의 몸이 돼 가지고 주님의 소원하시는 영생 운동을 했으면 이 설교한 이것은 다 영생 거두지. 이건 다 영생이 됐어.

이러기 때문에 우리 하나하나의 생활을 ‘이것은 자, 영생이 됐느냐? 직접 영생은 되지 안했지마는 영생을 위해서 영생을 위하는 간간접의 영생은 됐다. 그러면 간간접의 영생은 됐으니까 요것을 잘 이용하고 이용하고 이용해 가지고 그 결실을 바로 영생으로 맺어야 되겠다.’ 그러면 직접 영생된 것도 있고 영생에 간간접의 것들도 있고 이러니까 전부이 현실 생활 한 것은 둘로만 따집니다. 알겠습니까? ‘내가 요번에 올라갔는데 한층 올라가서 과장이 됐다, 계장이 됐다. 학장이 됐다, 총장이 됐다, 내가 장관이 됐다, 대통령이 됐다.’ 그것 가지고 따지는 게 아니고, 그거는 다 뭐 어떤 거요? 그거는 사망 이하에 있는 것이요 사망 이상의 영원에 속한 것입니까? 영원에 속한 것 아니라. 그런 걸로 가치를 삼지 안해요.

오늘 내가 이 현실에 행동한 이 행동에 대해서 맺어지는 그 결과는 영생이냐 썩어진 것이냐 이 둘로만 평가해요. 요렇게 사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알겠습니까? 영생이냐 썩어진 것이냐? 썩어진 것이라니?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은 다 썩어진 것이라. 정죄받았어.

저주받았어. 사망 아래에 있는 것이라. 썩어진 것. 거게 있는 것이냐 영생이냐? 그러면 지금 몇째입니까? 몇 했어? 일곱 가지? 여섯 가지 했어?

또 그다음에는 일곱째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지니」 「낙심치 말지니」 선을 행한다 말은 하나님 중심 생활 한다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선을 행한다 말은 인간들이 말한 선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여기 선은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 악은 뭐입니까? 피조물 중심 피조물 위주가 악입니다.

민족을 위하는 것도 악, 국가를 위하는 것도 악, 사회를 위하는 것도 악, 이것은 다 피조물 중심 위주기 때문에 성경이 악이라고 정죄했습니다. 선은 뭐인데? 창조주 그분 중심, 조물주 그분 중심, 완전 중심, 영원 중심, 불변 중심, 영생 중심, 진리 중심, 이거는 하나님 그분만 가지고 있어.

이러니까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나는 하나님 중심으로 지금 살기는 사는데 하나님 중심 생활 하는 이것이 낙심이 되나 안 되나 그것을 살피십시오.

‘나는 하나님 중심 생활 하는데 하나님 중심 생활이 낙심이 된다.’ ‘어림도 없다. 낙심, 마음은 변동 안 된다, 낙심 없다.' 낙심이 있나 없나 요것을 살피십시오. 그것이 몇째? 일곱째.

일곱째는 현실 생활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 됐다 싶으지 말고 ‘하나님 중심으로 내가 사는데 하나님 중심 생활이 흔들흔들 흔들려서 이 낙심이 되나 하나님 중심 생활이 더 바짝 바짝 조아서 속에서 불이 풀풀 튀어 올라오느냐?’ 낙심이 되느냐 점점 맹렬해지느냐 요 두 가지로 구별하라 말이오. 현실에 하나님 중심 생활 하는데 낙심이냐 뜨거움이냐? 낙심이냐 열심이냐 요것을 둘로 구별하라.

그다음에 이제 여덟째는, 여덟째는, 「피곤치 아니하면」 내가 하나님 중심 생활 하는데 ‘아이고 피곤하다’ 피곤치 아니하면 그말은 이 고기덩어리 피곤을 말합니까 심령 피곤을 말합니까? 한번 대답해 봐요. 고기덩어리 피곤 말해요 심령 피곤 말해요? 심령 피곤. 맞았어.

고기덩어리 피곤은, 고기덩어리 피곤은 아무래도 육체니까, 예수님도 육체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다가 이제 힘이 빠져서 피곤했어요 안 피곤했어요? 기도할 힘이 있어야지? 암만 말할라 해야 말할 힘이 없다 말이오. 암만 마음으로 할라 해야 마음이 그만 기진맥진해서 힘이 없어. 이라니까 어떻게 했습니까? “마음은 원이로되 육체가 약하도다” 이랬어. 육체는 피곤해지는 것입니다.

아무라도 피곤해지는 것이오. 피곤해지나 심령은 안 피곤해, 심령은.

이라니까 권찰님들 보니까 심방하면서, 심방하는데 나갈 때는 질질질 다리 끌고 가도 들어올 때는 좀 힘이 나 들어오고, 들어오면 드러누우면 꼼짝을 못해도 그 마음은 속으로 ‘오늘 아무것이를 못 보고 와서, 아무것이 그 사람을 못 보고 와서, 그 사람을 못 찾아서.’ 이제 마음은 못 해서 갈급이고, 못 해서 갈급이고, ‘그 사람에게 가서 말을 해 줬는데 말을 하기는 했지마는 두 시간 했지마는 좀 더 내가 힘있게 은혜롭게 했을 터인데 못 해 줘서 안 됐다.’ 한 것은 자꾸 못해서 불만이고 더 하고 싶고 간절하지 피곤치 않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마음이, 여게 마음이 피곤한 꼴 봤습니까? 마음이 피곤하면은 낙망이 됩니다.

마음이 피곤하면 의심이 나옵니다. 마음이 피곤하면 불만이 나옵니다. 그게 마음 피곤한 것이오. 그 마음 피곤하면 헛일이라.

마음이 피곤한 것은 제가 행동한 데,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의 행동을 하는데 그 행동이 어데 붙었는지를 몰라 그렇소. 알겠습니까? 그 행동이 어데 붙은 걸 몰라 그렇소. 그 행동이 어데 붙었습니까? 그 행동이 어데 붙었소? 또 모르네.

하나님 중심 위주의 행동하는데 그 행동이 어데 소속했습니까? 어데 소속했어? 완전자에게 소속했어, 완전자에게.

사람이 뭐 조그만한 나라에 대통령에게 소속이 돼도 막 어깨를 펴고 막 이라는데, ○정권 말년에 보면 기차에 가다가 모두 빤들빤들하게 기름이 졸졸 흐르게 빤들빤들해 가지고 막 이거 기백이 있게 이렇게 활기 있게 날뛰면 ‘저거 ○정권 패로구나’ 환하게 알아. ○정권 패로구나’ 환하게 보여져요.

그런 것도 그런데, ‘전지, 전능, 완전자, 주권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주권 개별 섭리자, 영생은 그분만 가진 이, 그분에게 내가 직속돼 가지고 하는 행동이다.’ 그 직속을 알면 절대 피곤치 않습니다. 직속을 잊어버려 그렇습니다. 자기가 하는 그 직속을 잊어버려 그래.

직속을 잊어버리고, 자기가 보기에는 사람 보기에는 그렇지마는 자기 행동에 하나님 중심의 옳은 행동에는 그 행동은 무슨 행동이요? 그 행동의 뒷받침은 뭐이요? 그 행동의 뒷받침은 뭐이지? 저 ○집사? 전지, 전능, 완전, 주권,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배경이요, 배경이요 그 권세입니다. 이 권세를 아는 사람은 심령이 피곤치 않습니다.

내가 가다가, 내가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하는데 ‘보자, 내가 피곤해지나 자꾸 속에서 지금 막 똑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는 것처럼 자꾸 못해서 못해서 갈급하고 갈급하고 지금 속에 자꾸 불이 붙어 사는데 이 몸이 말을 듣지 안해서 탈이네. 몸이 말을 듣지 안해 탈이네.’ 이거 속으로는 지금 불이 타 죽겠다 말이오. 그게 있나? ‘아이고 마음이 피곤해졌나?’ 요걸 살펴보라 그말이오.

하나님 중심 생활에서 네가 심령이 피곤하나 심령이 피곤치 안하고 막 생수가 흘러서 소생해서 펄펄 뛴 젊은 독수리처럼 네 심령이 뛰고 움직이고 있느냐 피곤하냐 그것을 살펴보라 했어. 그거 안 살펴보면 안 돼요. 그거 몇 째요? 예? 여덟째.

그다음에는 “때가 되면 거두리라” “때가 되면 거두리라” 이 거두는 것은 때가 되면 거두니까 현재는 없다 말이지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거두리라” 거두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은 무궁세계 가서도 추수를 하지마는, 무궁세계 가서도 추수를 하지마는 현재 세상에서 추수를 합니다. 알겠습니까? 현재 세상에서 추수를 해요.

‘보자, 내가 일 년 전에 했고, 내가 십 년 전에 했고, 이십 년 전에 했고 이렇게 했는데 그 한 효력이 나오나? 안 나오나 그 추수가 되나 안 되나?’ 추수를 보라 그말이오.

내가 이복순 집사님 저 양산동에 가 가지고 밥을 굶고 뭐 소낙비가 오는데도 기도하고 이라기 때문에 내가 그랬어. 내가 한번 그만 좀 나무래 줬어. ‘짜다라 자꾸 기도하고 자꾸 금식하고 이런데 그 무슨 추수가 있나 없나 그것도 살펴보지 안하고 자꾸 기도하면 소용 있나? 추수가 있느냐?’고 내가 이래 하니까, 이라니까 조금만 더 건드리면 낙심하겠어. ‘추수가 있나?’ 하니까 벌로 안 살폈거든. 안 살폈다 그말이오. 안 살폈어.

이런데 자기가 살폈으면 말이오. ‘보자, 과거에 해 놓은 추수가 있나 없나, 그러면?’ 공연히 기도만 해 추수도 없는 기도, 아무 추수 없는 거 결과 없는 거 효력 없는 기도만 자꾸 하고 있다고 이라면은 그것을 살펴봤으면 말할 거라.

‘목사님,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거는 추수 아니고 뭐입니까? 이건 추수 아니고 뭐입니까?’ 마구 입을 벌리기 시작하면 ‘이거는 추수 아니고 뭐입니까?’ 이 추수 저 추수 이 추수 저 추수 자꾸 ‘이것이 기적 아니고 뭐입니까? 이거 기적과 축복과 표적이지 뭐입니까?’ 자꾸 그래 대는데 보면은 그거는 하나님이 하셨지 사람 한 게 아니거든. 요걸 봐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때가 되면 거두리라” 또 추수를 봐야 돼요. 우리 현실에서 뭣 봐야 돼요? 그게 몇째라? 아홉째. 아홉째는 추수 봐야 됩니다. 요래야 우리가 요 살아납니다.

알겠습니까? ‘과연’ 나는 이거 추수 많은 중에, 날마다, 목욕하면서도, 내가 목욕탕에 목욕을 하면서도 ‘주님 감사합니다. 나는 요나와 같은 자입니다. 주님 앞에 좋은 물을 달라고 암만 해도 좋은 물을 안 줘서 나는 낙심하고 왜 ○○목사님은 좋은 물을 주고 나는 안 줍니까?ㅡ우리 동생이라.ㅡ안 줍니까? ○○목사님하고 나하고 비교하면은 아무래도 내가 좀 더 충성하는 것 같고 내딴에는 내가 교만한 마음이지마는 이런데 ○○목사는 그리 좋은 물을 주셔서 주시고 나는 암만 물달라 해도 주시지도 안하시고?’ 이러니까 그만 좀 속으로는 삐꿨다 그말이오.

그래 내가 이거 강단에서 말하지 안했어요? ○집사님 들었어? 강단에서 말하고, 섭섭하다 그말이오. 그러며 내가 속으로 그랬어. ‘주님, 내가 다시는 물 달라 소리는 안 합니다. 주님이 들으시고 주시면 사용을 하지마는 내가 물 달라고 다시 기도는 안 할 겁니다.’ 딱 이라고 난 다음에 한 달인가 두 달인가 지나고 나니까 이 물을 두 군데 줬는데 여게 물도 이 부산서 제일이라.

이라니까 뭐 새벽부터 저녁까지 늦게까지 계속 실어가요. 실어가고 퍼가고 부어가고 하는데 그걸 볼 때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그걸 보니까 내가 힘 얻는다 말이오. ‘내가 공연히 낙망했지, 내가 좋은 물 달라 했는데 ○○목사에게 준 물은 서울에서 유명해 가지고 그렇지는 안하고 그저 이렇지마는 이 물은 유명해서 부산 시내 사람이 뭐 다 가져가고 저 먼저 전기 정전될 때는 어데서 온지 몰라요. 어데 가니 그라더래요. ‘이 물이 이거 참 좋은 물입니다.’ 물으니까 ‘이거 지금 부산 서구에 대신동이라 하는데 서부교회에 나는 생수인데 이거는 부산에 제일입니다.’ 그라면서 가니까 요 컵에다 조그만한 컵에다 부어 주면서 ‘이건 생수입니다.’ 이라면서 대접을 하더래요. 아주 큰 대접으로 알고 그래 하더래요. ‘그러면 이 물이 어데서 나왔는데요?’ 이라니까 `서구 대신동 서부교회에서 나오는 생수입니다.’ 이라더래요.

다른 사람이 또 신고함에 써냈어. 신고함에 써내기를 ‘생수라고 자꾸 이 생수라 말이 소문이 나고 유명하니까 ○○○생수라고 또 그래 가지고 오해할지 모르니까 그걸 좀 광고를 하이소’ 이래요. ○○○생수, 이거는 속에서 그저 우물에서 나오는 생수라 그말이오. 어린 양에서 나온 생수가 아니라. 그 물은 먹어도 목 말라요. 성경에 말한 생수 성령의 감화의 생수는 먹으면 목마르지 안해요. 이거는 생수는 생수지마는 목말라.

이러니까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걸 봐야 돼요. ‘내가 기도한 데 대해서 하나님이 이 추수를 주시나 안 주시나?’ 또 양산동에 물은 내가 좋다고 소문은 안 내요. 그래 놓으면 뭐 사람도 없는데 자꾸 이래 놓으면 거석하겠다 싶어서 지금 이라는데 그것도 내가 회개를 할까 말까 이라고 있습니다.

처음에 내가 고거 수도꼭지를 저게 밖에다가 빼놓고 그래 놓고 그거 혹크를 달아놓고 그래 하자 이라니까 옆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집사가 거기 달면 사람도 없고 그런데 자꾸 그래 놓으면 나중에 어찌됩니까? 그라면 그만 잘못 열면 밤새도록 모타가 돌아가면, 백육십 자, 돌이, 돌이 오십 파 내려갔어. 돌만 오십 자 파 내려갔고 백열 자가 지금 뭐 잡석 있는 걸 파 내려가고 이런데 백오십 자는 철관으로 딱 봉해 가지고 물 하나도 못 들어가게 해 놨어. 그 밑에서 나와요.

이런데 ‘그 펌뿌가 깊은 데서 올라오니까 잘 상할 터이니까 그만 그거는 그냥 먹으라 하는 게 낫지 안 그라는 게 좋지 않습니까?’ 이래서 그만 선을 행하다가 낙심을 해 버렸다 말이오. 그래서 ‘야 네 말이 옳다. 그러면 저쪽 우물, 저쪽 우물에 그거를 빼놓을까?’ 그 우물을 밖으로 빼냈어요. 밖으로 빼냈는데 이제는 이 생수를 이거 밖으로 빼놓고 이거 인제 그 광고를 해야 되겠다. 그 물은 이 물보다 훨끈 좋아요.

좋은데 이 사람들이 그 물을 몰라요. 모르는데 좋다 하니까 이 목사님들이 가서 자꾸 이래 그 물을 받아 먹으면서, 좋다 해도 거기 깜짝 놀라지 안하고 좋다 소리 안해. 한번 봤어. 보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내가 말 안 했는데 예쁜 사람이 있어, 예쁜 사람. 목사 중에도 예쁜 사람이 있다 말이오. 예쁜 사람 누가 예쁜 사람이냐 하면은 ○○○조사가 예뻐요.

저 먼저 토요일날, 그 어데 무슨 시장에 가 가지고 ‘오늘은 이래 전도할 게 아니라 이거 다다다 전도해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뭐 이 나팔인가 뭘 하나 내 가지고 시장에 한가 한데가 아니라 복잡한 데 그날 한창 물건 팔 때 네시인가 다섯시에 가 가지고 마구 그거 가지고 외쳐 대니까 그 부근에 교회들이 다 나왔더래요, 그만. 그 부근 교회들이 다 나와서 응원을 하고서 이래 가지고 그 외쳐대는대 그라니까 뭐 물건 파는 것도 전부 중단을 하고서 이래 가지고 모두 다 뭐 환영하고 쭈욱 가니까 길을 척척 척척 열어주는데 뭐 복잡하지만 쭉쭉 열려 가지고 이래 가지고 참 한번 권위 한번 봤다 이래요. 이러니까 그래 그날 주일학생이 이백칠십 명이 나왔어, 이백칠십 명.

그래 내가 그래, 그 말을 해요, 그 말을 해. 그 말 듣고 난 다음에 그래 ‘그 물병 가지고 물 가지러 왔나?’ 이라니까 물 가지러 왔다 해. ‘그라면 네가 이제까지 그래 물 어째 먹었노?' 이라니까 그래 뭐 받아 가지고 어째 간다 그래. 애낀다고, 애낀다고 허비 않고 받아 가지고 가서 그래 먹었대요. ‘너는 이제까지 수도관에 며칠이고 몇 시간이고 채여 가지고 있어서 다 상하고 모두 녹물 그거 먹었다.

어짜든지 한 십 분 빼라, 물 애끼지 말고. 십 분 쭉 빼면 그 밑에서 한 반 도라무 가량 쭉 뺀다. 반 도라무 가량 쭉 빼고 난 다음에 보면 되게 차운 물 새 물을 알 것이다. 그 물을 받아 먹어봐라.’ 그 물 받아 먹어보고는 막 놀래. 그 말 내가 소문을 안 해 놨어요. 그거 그래 놓으면 거석하겠다 싶어. 그것도 양심에 좀 거리껴서 차차 차차 이래 가지고 한번 그것도 광고를 할까 이랍니다. 이 물보다 훨끈 나아요. 이 물보다는 맛이 더 나아요, 아주. 뭐 암만 조사해 봐야 세균 한 마리도 없어. 어떻게 좋은지.

그래 내가 한번 그래 빼 가지고 먹어 봤어. 먹어 보니까 ‘야, 내가 도시락을 가져오지 말고 이 물만 먹어야 되겠다.’ 물만 먹어도 어찌 물맛이 있는지 물맛이 있어 가지고 물만 먹어도 자꾸 영양이 많이 될 것 같애. 하나님께서 이 기도한다고 삐꿔 돌아갔는데, 요나 모양으로 돌아갔는데 물 두 군데나 줘 가지고 이렇게 좋은 물을 주셨어. 이제 그걸 보기 전보다 그것 보니까 힘이 나와요.

이래서 “때가 되면 거두리라” 이러니까 우리 현실에서는 ‘보자, 과거에 내가 신앙 생활 했는데, 과거에 하나님께 기도도 했고 또 순종도 했는데 순종한 뭐 효력이 있나 없나?’ 효력이 있나 없나 그걸 조사해야 돼요. ‘효력이 있나 없나?’ 지금 나는 지금 이 서부교회도 지금 하나님께 뭐, 하나님하고 약속해 놓은 것은, 그분은 날래기는 날래지만 좀 느려요. 우리 하나님은 날래기는 날래면서도 느리요. 이러니 그만 우리 같으면 그만 봄이 오면 뻐뜩 봄 와 버릴 터인데 봄인가 겨울인가, 봄 같고 겨울 같고 봄 같고 겨울 같고 봄 같고 겨울 같고 이라가다 보면은 그만 봄 지나갔고 여름이라. 그러면 여름인가 봄인가 여름인가 봄인가, 그 어른이 하는 일은 아무 그래, 그거 그만 아주 단편적으로 요렇게 그렇게 속단적으로 하지 안하고 꾸준히 그래 일하시요. 이러니까 그분에게 해놓으면 돌아오는 효력이 오는 줄 모르게 설설 돌아옵니다.

그 생수에 대해서 나는 많이 깨달았어요. 그것도 지금 목회도 ‘내가 과거에 비틀거리면서 자꾸 한 그거 효력이 지금 돌아온다’ 모두 말하기를 ‘이 반사 양성을 어떻게 합니까?’ `반사 양성 뭐 아무 하는 것 없습니다. 그저 새벽기도 나오고 또 주일 지키고 그렇지요.’ 이러니까 그저 내가 이 교회 부임된지가 삼십사년째 나는데 삼십사 년 동안 꾸준히 하면서 ‘이것 보고 뭐 이런 진리를 가르치노?’ 낙망할 때가 많애. 낙망할 때가 많이 있지마는,ㅡ몇 해요? 삼십오 년?ㅡ삼십오년째 나는데 이렇게 낙망되지마는 그렇게 그렇게 가르쳐 놓은 그것이 이거 모두 그때 중우벗고 돌아다니는 이런 것 말이요, 젖먹이 업혀 돌아다니는 이게 지금 이제 나이가 벌써 사십여 세가 돼 가지고 부장하고 주일학교 반사하고 이래 하고 하니까 이것이 이제 「때가 되면 거두리라」 그게 효력이로구나.

그 얘기를 해요. 하니까 다른 사람이 있다가 ‘예, 벌써 아이 때부터 길러서 이제까지 이 말씀 가지고 길러 놨으니 그거야 뭐 일시 되겠습니까? 반사를 그래 길러 놨으니까 이거 변동이 없습니다.’ 뭐 그 사람들이 모두 다 감탄만 하고 이제 당장 되는 게 아니고 이거 기르고 기르고 오랫동안 공을 들이면 “때가 되면 거두리라” 이 말씀이 나온다 말이오.

그러면 우리가 현실에 하면서 내가 과거에 생활에 열매가 나타나는 그걸 봐요.

그걸 봐야 우리 힘이 나옵니다. 「거두리라」 이제 아홉 했어?

이제 열째 나와, 열째.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가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기회가 있는 대로 착한 일 한다, 요거 잘못하면 오해합니다. ‘기회가 일 년에 한 번 있을지 모른다. 또 한 달에 한번 있을지 모른다. 기회 없을 때는 안 해야 되고 기회 있을 때는 해야 되고,’ 이렇게 생각하기 쉬워요.

“모든 사람에게 착한 일 하라” 말은 모든 사람에게 네가 살 때에 사람 보고 살지 말고 모든 사람을 상대해 살 때에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라 하나님 위주로 살아라 그 사람하고 둘이 말하지마는 네 말하는 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말하고 하나님 위주라는 그 심주를 가지고, 하나님 중심이라는 요 속에 알맹이를 가지고, 하나님 위주라는 알맹이를 가지고 그렇게 살아라.

네가 모든 사람을 대해서 살 때에 그 사람하고 너하고 마주 대해서 사는 걸로 살지 말고 사람을 대해서 살 때에, 일을 대해서 살 때에, 물건을 대해 살 때에, 모든 피조물을 상대해서 살 때에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에서 동하고 정해라.

그런데 더욱 믿음의 사람들께 해라.

자, 이제 안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은 말이요, 처음에는, 처음에는 요거 알아요. 처음에는 소주를 조금 타도 효력이 나서 낯이 벌거이 피지마는 나중에 자꾸 이 술에 많이 이거 인이 박여 면역성이 있어 놓으면 독하게 먹어야 되지 독하게 안 먹으면 안 돼요.

이러니까 안 믿는 사람들은 처음이기 때문에 네가 하나님 중심 생활 조금만 해도 그 사람들이 보고서 깜짝 놀라고 ‘그 사람은 미쳤다. 그 사람은 정신 병자다. 뭐 그런 사람 있노?’ 깜짝 놀라지마는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여간 그래 가지고 자극이 안 간다. 여간 그래 가지고 자극이 안 가기 때문에 네가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되 아주 극히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그것들이 ‘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구나’ 조금 충격이 간다.

그런데 “기회가 있는 대로 해라” 기회가 있는 대로 해라 했으니까 이 기회는, 이 기회는 한 달에 한 번 옵니까 두 달에 한 번 옵니까 하루 한 번 옵니까? 이 기회는 언제 몇 번이나 옵니까? ○○○권사님? 눈이 가물가물한데. 예? 몇 번이나 옵니까, 이 기회는? 이 기회는 얼마나 오지요? 며칠 만에 옵니까? 며칠 만에 와요? 알지도 못하며 꾸벅꾸벅 졸고 있어? 안 졸았어? 안 졸았으면 알 건데 답을 못 하는 것 보니까 존 거 한가지로구먼 뭐, 암만 그래 쌓아도.

자, 이 기회는? ○○○권사님? 예? 계속이라? 그거 어찌 계속이라? 그거 참 깜짝 놀랄 답안인데. 이 기회는 계속입니다. 알겠습니까? 요 사람 대하는 기회, 저 사람 대하는 기회, 또 그 사람 대하는 기회, 또 그 물건 대하는 기회, 사건 대하는 기회, 뭐 대하는 기회, 그러니까 요 기회라 말은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기회가 있는 대로” 하는 그 말에는 그 계속하라는 말인데 계속하라는 말보다도 재미가 있고 정확한 것이 따로 있어요. 기회라는 것은 요거 대하는 기회, 조거 대할 기회, 조거 대할 기회, 모든 만물과 만인간을 대할 때에 대하는 각인마다 대하는 기회가 따로 있기 때문에 그 기회 기회마다 말했습니다.

“기회가 있는 대로” 계속하라는 말은, 계속하라는 말은 하나님 중심 생활을 계속하라는 말만 되는데 요 기회라는 말이 붙어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중심 생활을 하되 네 상대방이 천천만도 넘으니까 이 상대를 대할 때는 요렇게, 저 상대를 대할 때는 요렇게, 모든 수많은 상대방을 대할 때에 계속적으로 요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라 하는 요것을 요게다 포함시켜 가지고 말해 놨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몇입니까? 너 뭐이야, 여기 ○가가 뭐, 몇? 몇이야? 지금 몇호에 갔어? 손으로 가리켜 봐. 게을해서 말이지. 이거만 이래 들고, 요건 속에 안 보이게 이래 들고, 안 보이게 요래 들고 있다 말이오.

오종덕 목사님이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여기 청년들 여기 있느냐?’ 이라니까 거기 청년들은 꽉 속에 있는데 없다 소리 하면 거짓말 될 것이고 보켓트 안에 한 가지를, 보켓트 안에 있는 거 한 가지를 만지면서 이래 가지고 둘러 만지면서 ‘이 안에 없습니다. 이 안에 없습니다.’ 자기 계산은 말하자면 호주머니 안에 없다 하는 것이라. 이 안에, 이 안이라면은 호주머니 안이라 그말이오. 호주머니 안에 있습니까, 어데? 이러니 그날 거짓말 안 하고 그걸 억지로 면했다고, 그거 참 지혜 썼어.

이거 모양으로 저 똑 몇이라 하니까 이란다. 이 손을 밑에, 다섯은 들기가 힘이 들어서 다섯만 이래 들고. 다 들라 하는 그말이야. 알겠어? 몇이라 하면 이래야지.

게을하면 못써. 게을하면 예수 못 믿어요. 게을한 사람은 시험에 낙제 낙제로 점점 사망으로 떨어져 내려가.

열 가지. 이제 시간 많이 갔기 때문에 그만 열 가지, 요걸, 좋은 걸 배웠습니다.

좋은 거 배웠어. 요렇게 우리가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요렇게 따져나가는 거, 그러면 성경 말씀이 요렇게 가르친 것이니까 요것을 가지고 현실을 조사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에서 오늘 몇 가지 조사해야 됩니까? 오늘 현실에서 몇 가지 조사해야 됩니까, 손가락으로 저 뒤에? 오늘 현실에 몇 가지 조사해야 됩니까? 녜, 열 가지 조사해야 됩니다. 현실에서 그 하나만 빠져도 우리는 떨어집니다. 그 빠진 그 틈을 타 가지고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우리를 꼬와대요. 열 가지.

녜,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주님, 우리를 사랑하사 호호 양양하여 길을 찾지 못할 너무 길 많은 세상을 걸어가는 저희들에게 한 노정 한 노정을 밝혀서 이탈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걸어갈 자기 진리 자기 궤도의 천성로를 지체하지 않고 빨리 갈 수 있는 지혜를 이 시간에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닥쳐진 현실에 열 가지로 심사하여 나아갈 때에 모든 탈선을 방어할 수 있고, 모든 피곤을 방어할 수 있고, 모든 미혹과 허영을 다 방어하여서 진실함으로 점점 성장시켜 갈 수 있는 길을 은혜를 환하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주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온 선물이오니 피의 능력과 영감의 능력과 진리의 능력이 전하는 자나 듣는 자에게 같이 역사하사 노소를 막론하고 전부 다 요 말씀대로 온전을 이루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여 복의 기관이 되고 세상빛이 되어서 머리되고 꼬리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있지 않고,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안하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는 축복의 기관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를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형제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 주님을 사랑하고 형제의 생명을 사랑하는 그 사랑에 점점 뜨겁게 불붙여서 주님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신 이 사랑을 실천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들이 주님 앞에 나왔사오니 하나 하나를 주님이 간섭하시고 나래 아래에 품으시고 늘 동행하시고 지켜 주셔서 저희들에게 어려운 문제를 다 들어서 의논해 주시고 선히 인도해 주시고 방해하는 악령과 악성과 악습의 이 모든 세력들을 다 눌러 주시고 주님이 동행하심으로써 염려 없는 평강 가운데서 세상 신앙 걸음을 걸어 주님 앞에 과연 설 때에 칭찬받는 주의 성도들로 서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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