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부인

 

1989. 1. 13. 금야.

 

본문: 눅 9:20-26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가라사대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햐느냐 대답하여 가오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전지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경계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기도)  만물보다 거짓된 요소가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 제한되어 있는 부족한  저희들입니다. 이 시간에 주님을 향한 저들의 예배가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주님에게 상달될 수가 없음을 저들이 확실히 압니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우리  낡아지고 때묻고 어그러지고 거짓된 이 모든 심신의 기능을 새롭게 하사  진실함을 일으켜 주셔서 주님의 돕는 은혜로 주님이 받으실 수 있는 신령한  예배를 드리며 주시는 모든 은총을 말씀과 함께 받는 저희들 되게 하시옵소서.

모든 순서를 주님이 주장하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곳마다 함께 하시고  교만을 꺾어 주시고 우리들을 주님 앞에서 합당한 겸손을 가지는 저희들 되게  하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교회들이 나를 어떻게 알고 있더냐?'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저렇게 여러가지로 예수님을 알고 그렇게  있었다는 것을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답하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은  예수님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제자들이  말할 때에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로 알고  있느냐?' 이렇게 물으셨을 때에 대답하기를, '하나님의 그리스도니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시며 우리와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제자들은 대답을 바로 했습니다.

 21절에 '경계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고' 예수님이 조심을  시키기를 너희들이 이제 대답한 대로 나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라 하는 이런  말을 너희들이 바로 대답하고 바로 알았는데 이런 말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라 그렇게 명하시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다시 이 말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예수님에게 대해서 바로 안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이렇게 했을까 하는 그것을 우리가 좀 깊이 생각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 22절에, '가라사대 인자가' 인자는 예수님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을 인자라고 했는가? 구약에는 인자를 인간 중에 제일 약하고 무가치해 그  점을 말해서 인생을 인자라 그렇게 말했고,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만을 인자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인자라 말은 사람은 사람이지마는 사람 중에 제일 못나고  가난하고 제일 무가치한, 가치가 하나도 없는 사람인 예수님이라 하는 그런  뜻으로 인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시요 하나님이신데 그렇게 모든 면이 무한히 부요 하신 분이  이렇게 인자가 되시기까지 가난해지시고 낮아지신 것은 우리를 대속하셔서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영원히 생명과 존영과 실력으로 부요케 하는 이  대속을 주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우리 대속으로 내놓으시고 아무것도 없는  분으로 오신 주님이라 하는 것을 당신이 증거하시고 소개하는 말씀입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많은 고난이라 말은 모든 인류들에게 다 고난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난받는 이 고난을 말합니다.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예수님이 많은 고난을  받으신 것은, 사람은 전부 악령과 죄와 사망의 것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죄와 사망과 모든 불의에게 전체의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고난받으신  것은 예수님께서 한 건 한 건에 그들과 타협이 있었으면 고난은 없습니다. 그들과  하나도 서로 일치되지를 아니하고 전체 세상은 다 죄악의 뭉텅이인데 죄악  뭉텅이가 사람 뭉텅이인데 사람 뭉텅이와 예수님은 하나도 맞지 아니하고 당신은  의요 거룩이요 온전이시기 때문에 모든 전 인류와 대립되고 마찰된 고난을  말합니다.

 또 장로들은 교회에 제일 하나님 잘 섬기는 어른들입니다. 장로들과 항상  대립이요 마찰입니다. 또 대제사장들과도 마찰입니다. 서기관들은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과도 마찰이 돼서 버린 바 되어 했습니다. 버린 바 되어.

이들은 그들과 하나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아무짝도 못쓴다고 버림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이 가지신 하나님의 뜻인 진리는, 당신이 가지신 진리  곧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과 다르고 장로들과  제사장들은, 서기관들이 알고 있는, 믿고 있는, 행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과 전부  대립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고난을 받게 됐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았다'  이랬습니다. 여게는 '버림을 당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버림당한 그것은 그들도  하나님 공경했고 또 예수님도 하나님 공경하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다 같은  하나님을 섬기지마는 그들이 깨달은 것과 신앙의 신조와 교리로 삼고 있는 것과  예수님께서 가지신 거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대립이 됐고 마찰이 됐고 어려움이  있었고 마지막에는 버림을 당하고 배척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버림당하지 않기도 쉽고 고난받지 아니하는 것도 쉽습니다.

그만 그들이 뭐 돈 요구하는 것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하나님을 향한 교리와  신조와 예수님이 가지신 교리와 신조가 다른 이것을 예수님께서 양보를 하시든지  그들이 따라오든지 했으면 아무 마찰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따라오지 않고  또 예수님은 이를 양보해서 타협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전인류가, 그때에 관련된 전인류가 다 예수님과 마찰이 되고 또 교회  내에 다 권위를 가지고 있는 장로라든지 제사장 서기관들 이 분들과 마찰이 되는  그 마찰을 조그마치라도 양보를 해서 타협을 했다고 하면 벌써 그것으로써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배반이 되었고, 이들에게는 굴복이 되었고 이들과는 화합이  되었고, 하나님과는 그 사이가 떨어지게 됐기 때문에 당장 화친하고 아무  어려움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다가 마지막에는 죽임을 당하고 이랬어. 마지막에는 죽임을 당합니다. 죽임  당한 것까지가 예수님의 오신 목적과 사명은 다 완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써 예수님이 그들과 대립되는, 하나님 아버지 편에 서서 이렇게 타협하지  않고 이로 인해서 고난당하신 것이 죄악에게 고난을 당하신 것이요, 죄악의  세력에게 고난을 당하신 것이요, 사망에게 고난을 당하신 것이요, 마귀에게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옳음으로 인해서 고난당한 그것으로써 우리가 받을 그  형을 예수님이 대신 형을 받게 됐습니다. 의로우신 그분이 의를 인해서  고난받으신 것은, 안 받을 고난인데 그 고난이 우리 위해서 받았기 때문에 능히  우리의 받을 고난을 안 받으실 분이 안 받을 고난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 받을  고난의 대형이 되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하나님 편에서 옳고 바른 교리와 신조를 그대로 행하는 주님의 뜻을  순종하려고 하는 데에 아무 마찰이 없으면 순종을 지금까지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데 이 세력들이 순종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는데 방해해도  순종했습니다. 마지막에 순종한다고 그들이 죽여서 끝이 났지 순종하다가,  순종한다고 그들이 죽여서 순종이 끝났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완전 순종이  된 것입니다. 그는 순종하는 것을, 그들이 옳은 일에 순종하는 것을 강제로 죽였기  때문에 죽임 받아도 순종한 주님은 완전 순종이 됐고 순종하는 것을 저희들이  끝냈기 때문에 예수님에게는 완성이요 그들에게는 정죄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대행의 칭의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화친된 이 화친으로 예수님이 그들을 향하여 살 때에, 이  화친을 깨뜨려 없애려고 온갖 방편을 쓰다가 하나님과 불목 하지 않는다고  화친한다고 불목하도록 하기 위해서, 화친을 끊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마지막에는 화친한다고 죽였고 하나님과 이질되지 않는다고 죽였기 때문에  화친으로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의 화친은 완성이 되었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인 것은 예수님의 화친을 완성케 한 것이 됐습니다. 이것이  '죽임을 당하시고' 한 것입니다. 이러고, '제삼일 만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제삼일 만에 살아나는 것은 이것은 대형과 대행과 대화친의 대속을  완전히 이루셨으므로 하나님의 공의에서, 의를 완전을 죽일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에서 예수님을 다시 삼일만에 부활시켰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은 모든 것을 승리하셨기 때문에 이는 공법으로 부활하지 않을 수  없는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속 하시고 대속하신 자로서, 완전 승리한  자로서 다시 살아나서 다시는 죽음과 상관없는 영생을 가지신 이 영생하는 문을  당신이 처음으로 개방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경계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한 이것은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칠병이어로, 상여에 메여 나가는 것을 살리는 것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별별 여러가지 모든 기적들이 있었습니다. 무덤 속에  장사해서 썩은 지가 벌써 내음새나는 유대인의 유명한 사람이 썩어 내음새나는  송장을 살려낸 일도 있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번뇌를 주었고 복잡한 의문을 안겨 주고 있는 때입니다.

 이때에 그 제자들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라' 할 때에 예수님이 '네  대답이 옳다. 이것은 네 혈육이 너에게 알려 준 게 아니고 네 안에 있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너에게 알려 주셨다' 이렇게 칭찬도 하고 또 여러가지 존귀한  권능도 은혜도 줬습니다. '너를 반석이라 너 위에 교회가 설 것이요 너는 천국  열쇠를 가질 것이요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 교회의 전권은 너를 알게 해 준 그 영감에게 교회의  전권이 있다' 하는 것을 말씀했는데 만일 이 사실을 그때 여러가지 번민 고통  의문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을 하면 그때에 교계에서는 큰 파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러면 예수님이 이 십자가의 대속의 역사를 이루시는 데에 크게 지장이 되고  방해가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지 못하도록 정죄하지 못하도록  생명 내놓는 그런 열심가들도 있을 것이고, 충성가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복잡해집니다. 이래서 마치 아브라함이 산밑에 그 모든 종들을 머물게 하고 둘이  산 위에 제단 쌓으러 올라간 거와 같이 주님이 이런 것들을 엄금했습니다. '말하지  말아라' 하셨던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여게서 예수님은 당신에게 명령하신 아버지의 명령 완수 곧  우리를 대속 구원 완수 이 일을 하시기 위하여 거게 관련된 직접 간접 범위 넓게  이 일을 원하시고 원하셨고 이 일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는 이 대속의 고난에  대하여 방해되는 그런 일은 호리도 없도록 막을 수 있는 데까지 막으신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대속의 고난, 당신의 이  십자가에 대해서 원하셨고 원하셨고 거게 대해서 조그마치라도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일이 방해되고 지장될까 해서 벌벌 떠신 예수님의 이 모든 준비인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우리가 각자가 자기가 자기 몫에 태인 이 십자가로 완성을  이루는 십자가의 이 승리를 우리는 아주 천한 것으로 여겨, 본인이 싫어도 갖다가  억지로 빚을 지우듯이 떠맡기는 이런 것으로 우리가 아는 그런 착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도 그 밑에 있는 제자들의 말을 들으면 그분은 평생 순교  제물되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다고 합니다. 언제든지 밤이나 낮이나 그의 소원은  순교 제 물입니다. 주남선 목사님도 제가 볼 때에 6·25 때에 그때에 참  무신론자들에게 하나님 섬긴다고 죽임 받을 수 있는 그런 일은 찾아다니며  했습니다. 행여나 주님의 이름으로 순교가 될 수 있을까 해서 그런 것을 찾고  다녀서 뭐 그 환난 중에 교회마다 다니면서 말씀한 것이 전부 죽임 당할  일입니다. 그런 일을 찾고 다녔습니다. 또 읍에 있으면서도 늘 계속 그랬습니다.

이래도 그렇게 원했지마는 하나님이 그에게 순교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제가 주기철 목사님 모교가 되는 웅천교회에 집회를 갔었는데 거게 나무에 글이  쓰여 가지고 있는데 '나는 천하를 차지하는 것보다 주 예수를 위해서 죽겠노라'  하는 글이 거게 쓰여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것은 누가 쓴 글이냐  이래 물으니까 주기철 목사님이 거게서 집사 생활하면서 써놓은 글이라 하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이렇게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한  말씀과 일통되는 그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십자가에 죽으심을 억지로 당하는 게 아니고, 피하는 게 아니고  소원하시고 소원하셨습니다. '내가 이 유월절 잔치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하는 것을 말씀하셧고 여게는 조그마치라도 방해될까 해서 이런 것을 모든  백성들이 알면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일에 지장될까 해서 말하지 못하도록 엄금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서 고난당하는 거, 자기 몫에 태인 자기 십자가, 십자가라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는 아버지의 명령 곧 우리를 대속하시는 이 고난이 십자가의  고난이오. 우리에게 당한 우리 십자가의, 자기 십자가, 우리 십자가는 곧 구속받은  우리들이 받은 주님의 명령대로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완전히  바쳐지는 그것이 우리의 십자가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이 십자가의 길이 원하고 원하고 조그마치라도 방해되는 게  있을까 해서 방해됨이 없도록 이렇게 일단 정신을 가지고 원해도 이 일이 안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다고 다 된 것 아니오. 그래서 마지막에 그런 분들이  떠날 때에 '나는 너무도 자격 없는 그것이 자기를 모르고 하나님 앞에 순교를  원했다' 하는 것을 죄송하게 회개를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도 모두 그런 기도를 우리가 하면서도 그럴 때마다 할 때마다 '주님이여  감히 이런 것을 원할 만한 무엇이 있어서 그런 거는 아니나 주님의 긍휼로 이  제물이 되게 해 주시면 하는 것이지 뭐 자격 있어 그런 건 아닙니다.' 하는 것을  마지막에 뒤에 덧붙여서 주님 앞에 사과를 하면서 간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게서 주님의 명하신 이 명령을 이루기 위해서 당하는 이 어려움은 우리들이  원하고 원하고 또 준비하고 거기에 무엇이 방해되고 지장될까 해서 모든 것을 다  간추려서 구비하게 이렇게 힘을 쓰고 애써서 원하는 고난인데, 오늘 우리는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이 고난을 안 닥치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 교역자회에저도 이 고난 없는, 세상이 좋아하는 이런 평안의 걸음을  걸으려고 이렇게 모두 다 원해서 우리 교역자회는 둘로 갈라졌습니다. 못하지마는  하나는 어쨌든지 살든지 죽든지 주님 가신 십자가의 그 발자취를 따라가기를  원하는 사람 하나 있고, 그 길은 너무 힘드는 길이기 때문에, 너무 나사를 많이  조우면 터져 버리기 때문에 그저 엔간히 해서 우리가 수월하게 그렇게 좀 여유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부드럽게 예수를 믿자 하는 것이 요새 우리 총공회가  타락해 나가는 타락의 일로입니다. 벌써 세상 교회는 다 나갔습니다. 나갔는데 이  총공회 교회들이 그래도 거게 안 나가고 버투고 섰다가 이제는 다 발이  미끄러졌는지 달리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여게서 이 길은 원하고 원해야 되고 이 길을 걷는 데에 조그마치라도  지장되는 것은 돈벌이 뭐 지장되는 거 그런 것보다도 자기. 뭐 어떤 데  지장보다도 이 십자가의 이 죽음의 지장되는, 이 십자가 고난에 지장이 돼서  십자가의 고난이 행여나 좀 감소되어지고 면제되어지고 이것이 소멸되어질까  해서 원하는 이 심지를 가진 것이 예수님의 심지요 또 그를 따라가는 우리들의  정상적인 심지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 만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이 십자가를 향하여 가시는 데에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고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어. 왜? 개인들과 교리 신조가 마찰될 때에 양보했으면 개인들과  마찰 없습니다. 장로들과 교리 신조의 마찰이 될 때에 타협하고 양보하면 마찰  없고 제사장 서기관들도 다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하나도 타협하지  않고 양보하지 않고 그대로 가졌기 때문에 십자가의 이 성공이 이루어진 것이지  그리 안 하면 안 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내가 서울 교회들을, 다른 진영 교회는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진영 교회들은 서울 교회들이 속화됐다. 확실히 속화 됐습니다! 하나님 앞에  단언합니다! 확실히 속화됐습니다! 됐다 하는 것은 그들은 벌써 어두움에  사로잡혀서 자기가 날마다 십자가를 원하고 참 주님이 요구하신 대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타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주님을 섬기라 했는데 다 하려고  원하고 원해도 다해지지를 않고 원해도 다해질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닥치면  어데로 재고날을 쳐서 도망을 쳐도 숨어 피하기 때문에 왜정 말년에 조그만한  시험 신사참배도 이긴 사람들이 많지를 못합니다.

 또 6·25의 그 동란 속에서도 모두 피해서 도망갔지, 거게서 양떼들이야 어찌  되든지 말든지 다 냅두고 다 도망쳤지, '삯군은 이리가 오는 걸 보면 이리를  쫓아서 이리에게서 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고 다 도망가느니라' 그렇게 똑똑히  명문돼 있습니다. 이리가 오면 양떼를 두고 도망하느니라. 제가 기억합니다. 6·25  때에 그때에 도망한 그 사람들이 힘을 못 씁니다. 그 뒤에 목회를 못 합니다.

한국에서도 못 하다가 미국 가도 뭐 어데 가도 목회를 못 하고 끝은 그만 과거에  뭐 있던 거 그거 팔아먹고 울궈먹고 있지 지금 신앙 걸음은 걷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여게서 우리들의 가는 걸음이 자기가 신앙 양심으로 깨달은 교리와 신조,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것은 좁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에서  퍼뜨리는 데는 넓어야 합니다. 이런데 깨달은 옳은 것을 인간 비위 맞추기 위해서,  인간들이 좋아하도록 하기 위해서, 간판 하나를 그걸 감당을 못 하고 속화 방지한  찬송하나를 감당을 못 하고 그렇게 한 그런 무능한 약한 자로서는 이 전투는  하지는 못합니다. 이래서 우리는 보다 옳은 것, 보다 좋은 것, 보다 곧은 것, 보다  바른 것, 보다 깨끗한 것, 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자기로서는 최고의  좋은 것! 이것을 자기가 찾으려고 애를 쓸 것이고 찾았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타협이나 양보를 안 해야 되는 것이 주님이 취하신 방편입니다.

 그 다음에 23절에 말씀했습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부인하라 말은 예수 믿기 전 그 사람을  완전히 버리라 말입니다. 자기 부인하라 말은 예수님 믿기 전에, 예수님 만나기  전에, 이 구속을 받기 전 자기는 이미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자이기  때문에, 죽은 자이기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 못박혀 죽으심에 연합해저 죽은  자이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라 말은 죽은 자이기 때문에 그는 예수님을 안 후  자기 생활에는 상관없는 자입니다. 자기와는 상관없는 자요. 그자는 자기와  완전히 상관없는 자이기 때문에 믿기 전 그 사람은 버리고 이제는 주님의 피로  대속 받아서 주님의 것이요 주님의 종이요 주님의 지체로, 살아도 죽어도 주의  것으로 주로 인해서 사는 것이 이것이 구속받은 자의 생애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대속을 받기 전 사망 그대로 있는 자, 마귀의  것이 되어 가지고 있는 그자, 이 죄악의 세상에 속해 있는 그자, 그자대로 있으면  예수님의 대속은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받아서 네가 만일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이제는 너는 위엣 것을 찾으라.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너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너희 생명은 하나님 안에 그리스도와 한 생명  가지고. 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네니라 말씀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을 입기 전 그 사람은  완전히 버리고 이제는 대속 입었기 때문에 주님의 대속이 내 것이니까 나는  주님의 것 됐습니다. 주님의 대속도 내것이요 나도 내것일 수 없습니다. 나는  주님의 것이요 주님의 대속은 내 것입니다. 주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은  나의 것 됐고 나는 주님의 것 됐습니다. 주님의 것 된 이것을 내가 도로 찾으면  내것 된 주님의 대속은 갑니다. 이것이 우리의 건설구원의 날마다 이루어 나가는  현실 방편인 것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옛사람 생활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제 십자가는 대속 받았기 때문에 주님의 것 된 것이, 주님의 종된  것이 주님에게 받은 명령이 있으니 그 명령은 무슨 명령인가? 그 명령은 죄를  멸하기 위해서 죽는 명령이요, 의를 건설하기 위해서 죽는 명령이요, 하나님과  동거 동행을 위해서 죽는 명령이요 이것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서 다른  사람들을 이 세 가지 전달로 자기 자유와 안일과 모든 것 다 바쳐서 마지막에  죽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죽는 것이 십자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말은 저희의 목표는, 땅 위에 생애의 종결은 주의 명령 위하여 사죄  칭의 화친으로 내가 살고, 다른 사람에게 이것을 전달하기 위해서 생명 바치는  것이 우리의 생애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말은 사는 것이 네  목적이 아니라, 이 사명을 위해서 죽는 것이 네 목적이라. 십자가를 지고 좇으라  말은 십자가 언제 끝날런지 모르지마는 이제 죽음으로 네 사명은 끝나는 거고  완성하는 것이니까 죽음으로 완성하는 이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 24절에 덧붙여서 해석합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제 목숨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제 목숨은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주님의 것인데 제 목숨이 어데 있습니까? 주님의 것이오.

목숨도 주님의 것인데 주님의 것을 주님에게 도로 찾으면 제 목숨 됩니다.

주님에게 도로 찾으면 제 목숨 돼요. 목숨이 제 목숨이면 주님의 대속은 주님의  것 됩니다. 이것은 기본구원 영 구원에는 변동 없지마는 이 심신이 이 장난하기  때문에 심신이 목숨을 제 목숨으로 제가 알면 예수님의 대속은 예수님의 것이요  제것이 아니기 때문에 심신의 구속은 안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울 것이요' 이 말은 제 목숨은 제것이 아닌데  주님에게 바친 것이니까, 제 목숨은 죽을 목숨이요 죽일 목숨이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이거는 죽이기 위한 목숨이지 살기 위한 목숨이 아니라. 제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 주님의 것은 이 제물되기 위한 제물인 이 목숨이기 때문에  제물인데 그것을 도로 찾으니까 이것도 위반이요 반역이오. 도로 찾아 가지고 네  목숨은 살기 위해서 있고 죽기 위해 있는 게 아니고 살기 위해 있기 때문에  용도도 변질입니다. 용도도 변했고 주격도 변했습니다.

 그러면 '잃을 것이요 그러면 잃을 것이요,' 그러면 거게서 잃는다 말은 주님과  상관없다 말이오. 그러면 네 생명이 네 생명 네가 살든지 말든지 네 생명은 네  생명이라 하기 때문에 주님의 아무런 특혜가 없다는 말이요, 주님의 주권의  보호가 없다는 말이오. 잃는다. 그러면 그 형편 된 대로 그 환경 된 대로 그대로  될 일이지 네가 네 생명으로 도로 찾고 살기 위해서 가졌으면 주인도 네가  주인이요 용도도 살기 위한 생명이기 때문에 나는 피로 값 주고 산 내것이요  내가 산 생명은 전부 십자가의 제물로 죽기 위해서 산 것인데 다 변질됐기  때문에 그는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

 그러니까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다니엘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자기가 비록  굴에 들어가고 풀무에 들여갔다 할지라도 거게서라도 다시 그것을 주님의 것이요  주님에게 맡겨 놓고, 주님의 것이요 주님의 대속은 자기 것이요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마땅히 죽는 것이 다 최후 완성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고 생의 애착심을  가지고 자기 것을 가졌다면 주님의 초자연의 능력, 사자 입을 막는다든지  불기세를 막는다든지 그런 능력은 저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잃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나를 위해서.

주님의 대속을 인하여 '내 목숨 아니라 주의 것이라. 내 목숨 아니라 주의 것이라.'  주님의 것이니까 주님의 뜻대로 당신 뜻대로 할 것이고, 당신의 뜻은 뭐입니까?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이라. 내 생명은 주님의 것이오. 주님의 것이니까 주님의  뜻대로 이 생명은 쓰여져야 할 터인데 주님의 뜻은 이 생명이 구속을 위해서  죽는 것이 이 생명의 목적이요 주의 명령이지, 살기 위해서 주님의 구속을  배반하고 등지는 이런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생사의 기적을 많이 봅니다. 6·25가 지나고 난  다음에 거창읍에서 교역자회를 처음에 모이니까 전부 그거는 꼭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죽음에서 살림을 받은 교역자들이 그런 경험과 체험을 안 받은 사람이  별로이 없습디다. 인본주의로 저 피해서 부산 갖다 오고 뭐 어데 가 도망가고  천물돼 돌아다닌 건 그래도, 그래도 거게서 제단을 지키고 있는 그 하나님의  종들로는 살 희망이 없는 거게서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는 그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지 아니한 사람이 없다 말이오? 전부 다 얘기하는 게 모두 그 얘기야, 전부,  그러기에 자기 목숨보다 주님을 크게 여기면 주님은 그에게 역사할 수 있고  주님보다 자기 목숨을 크게 여기면 그에게는 주님과는 인연이 끊어집니다. 그  진리의 법칙에는 위반이 됩니다. 누구든지, 주님은 자기가 자기 생명보다 귀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는 생명보다 귀중히 역사해 주십니다. 돈 백 원만치도 안 여기는  사람은 백 원만한 그런 가치의 역사도 못 합니다. '믿는 대로 되리라' 네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 하나님을 어떻게 가치를 두느냐 하는 그대로 당신은  역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구원하리라'  25절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자기를 잃는다 말은 자기를 망각한다 말이요 자기를 도살당했다  말이오. 누구한데? '온 세상을 얻고도' 세상에게 도살당했지. 세상 탐하다가 자기  잊어버리고 자기 빼앗겼습니다. 세상 탐하다가 자기를 빼앗겼습니다. 누구한테?  세상에게 뺏겼습니다.

 중생된 새사람 참 자기를, 자기는, 중생된 자기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영계와  물질계의 것을 상속받을 자기요, 전지 전능의 자기요, 완전의 자기요 죄와 사망을  완전히 발 아래 밟은 자기요, 예수님의 대속으로 완성을 이룬 자기요. 이런데,  이는 참 천상 천하에 대속받은 자가 하나님 다음 위치를 가진 자기인데 이  자기를 이 자기인 줄 모르고 세상 탐 하다가 다 뺏기고 말아. 이러기 때문에 네가  세상 탐하다가 참 자기를 빼앗기고 자기를 잊어버렸다 말이오.

 뺏겼다 말은 자기를 누가 가져가는 게 아니라 영은 살았지마는 심신은 원수가  빼앗으니까 원수의 것이 되고 말았어. 마귀의 것이 되고 말았어. 이러니까 자기  잊어버리는 거, 이것이 세상 탐하다가 잊어버렸는데 중생된 자기가 어떤 자기라는  것을 알고 자기가 자기로 살아야 될 터인데, 자기가 살아야 될 터인데, 자기로  살아야 되고 자기가 살아야 될 터인데 이것을 세상 탐하다가 잊어버렸습니다. 온  천하를 얻어도 너 잊어버렸으면, 어데다 잊어버려? 마귀 그놈들이 감췄기 때문에  이렇게 귀중한 하나님의 아들을 잊어버렸지.

 잊어버리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빼앗긴다 말은, 빼앗긴다 말은  현실에서 자기는 우주를 차지하고 있고, 조그만한 현실에서 우주를 차지하고 있고  우주의 왕이 되는 마귀 그놈을 정복하는 이 지극히 큰 전투의 승패가 있는  것인데, 이러면 우주를 다스릴 수 있는 심신의 기능을 얻을 터인데 이 심신의  기능을 자기 것 삼지 못하고 마귀에게 다 뺏겨 버려.

 그러기 때문에 이 심신의 기능이 범죄한 기능도 지옥 간다 한다고 이것을 지금  부정하는 사람들 있는뎨 범죄한 기능이 어데 가 있는지? 범죄하는 기능이 그러면  언제 변화가 되는지? 범죄한 기능은 절대 천국 못 갑니다. 범죄하는 기능이  어떻게 천국 갈 수 있어? '예수님의 대속이 있지 않느냐?' 예수님의 대속은  우리외 자체를 대속했지 범죄 기능을 대속하지는 않았어. 예수님의 대속은 범증  기능을 대속한 거 아닙니다. 죄짓는 거 대속하지 않소. 죄지은 우리 본체를  대속했지 죄 그것을 대속한 것은 아닙니다. 죄에 대해서는 형벌 받았습니다.

이래서,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했는데, 자기를 우리는 단단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침에도 이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자기를 똑똑히 알아서 새사람 자기가 어떤 게 자기인지? 뭐 새사람  옛사람 입에 익어서 이런 소리를 앵무새 모양으로 말은 하고 있지마는 새사람  자기가 뭐인데? 옛사람 자기가 뭐인데? 새사람 자기와 옛사람 자기를 알아?  새사람이 새사람 생활 하면 이만하면 다 됐어. 옛사람은 자기 아닙니다. 옛사람은  예수 믿지 아니할 때의 사람을 옛사람이라 합니다. 그것은 악령 악성 악습 그놈과  내 심신이 한 덩어리되어 있는 것을 가리켜서 옛사람이라 말합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새사람인 참 자기와 자기 아닌 것이 자기라고 가장을 해 가지고 나을  때에 우리 심신이라 하는 건 이것은 어리석소. 심신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과  진리가 오면 굉장히 명철하지마는 이것은 그게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 여기 이런  투명체의 그 유리에 안에 무엇이든지 있으면 그 유리 안에 꽉 차 가지고 환하게  보이지마는 그거 없으면, 그게 없으면 속에 알맹이가 없으면 유리 이거는  아무것도 아니라. 속에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 인간의 심신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게 되면 하나님 되는 것이오. 인간의 심신은 마귀 들어와  있으면 마귀 되는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마귀가 꽉 찼어. 마귀 들어 있는 심령에  마귀가 들어 있는 것은 전부 마귀야. 꽉 들어 차 있어. 하나님이 계시는 것은  전부 하나님이라.

 이러기 때문에 자기와 자기를 분별해서 참 자기인지 자기를 죽인 자기 아닌  원수인 자기인지, 이것도 이 진영에서만 말하는 말이야. 이 진영에 말하니까  아무나따나 꾸며내는 말인 줄 알고, 꾸며내는 말로 알고 그렇게 가증스럽게  범죄를 하고 있어. 옛사람은 자기 아닌 자기, 가장한, 자기 아닌 자기, 자기를 죽인  자기, 자기 원수인 자기, 참 자기 아닌 자기, 이렇게 말해 줘도 모르니 이것이  세세 조직 신학에 있어요? 어데 있어요? 어데 있어? 공연히 그저 참 '보배가  질그릇에 담겼다' 보배가 질그릇에 담겼다. 그래야 믿는 자만 차지하지. 옛날부터  지금까지에 무식한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선지자를 세워서 예언하니까  사람들이 다 부인했지. 세상에 위대한, 위대한 모든 학자들이 말했으면 들을  터인데. 학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숨기시고 나타내지 않거든. 왜? 그들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자기를 다 바치지 않으니까 그로 더불어 통하지 못하니 서로  의사가 통할 수가 없는 것이지.

 그런고로, 오늘밤에 지금 참 자기와 자기 아닌 거짓된 자기를 증거 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가서 지금 증거를 못 하겠습니다. 지금 증거하면 범벅돼  버리고 포 설사해 버리고 말아. 마니까 오늘 저녁에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인자라  한 뜻이 뭐인가? 인자라고 하신 게 뭐인가?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그 일을 위해서 얼마나 조심했으며 얼마나 원하셨으며 거게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얼마나 정비를 했던가? 오늘이라도 면하려면 면할 수 있는데, 뭐하면  면하요? 타협하면 면하지. 양보하면 면하지!  제일 옳은 거 제가 깨달은 대로 제가 깨달은 대로의 자기로서의 제일 옳은 거,  제일 바른 거, 자기로서의 제일 옳은 거, 그래도, 제일 옳은 거라도 너보다 장성한  사람들은 그런 거는 다 보편이라. 네가 네 마음에 제일 옳은 거라 하면 다인 줄  아느냐? 너는 어려. 올라가면 더 옳은 게 있어. 그러나 자기 정도에서 제일 옳은  거 바른 거 참된 거, 양심에 '요게 옳다. 요게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이다. 나는 요  길 가야 되겠다.' 요거 양보 안 하면 십자가의 군병의 걸음을 걷는 것이고! 요것을  인간 비위 맞추기 위해서 '너무 뭐 너무 좁다 너무 고난스럽다 너무 되다' 요것이  십자가의 원수인 줄을 아십시오. 우리 총공회에 지금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는  요게 있어. 예수님도 그렇게 일편단심으로 이 하나를 성공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따르는 성도들도 다 이를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우리도 사는 것은, 자기  십자가가 뭐입니까? 우리 사는 것은, 십자가는 자기를 주장하는 자의 명령  지킴으로써 죽는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주님은 아버지를 주관하는, 아버지가  주관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아버지의 명령에 지사충성으로 그 명령 순종해서  죽어지는 것이 주님의 십자가요. 우리는 주님이 나에게 명하시는 그 명령을  지키고 사는 게 아니라 그 명령을 지키다 죽는 것이 십자가라! 죽기 싫은 자는  십자가의 원수라!! 그 명령보다도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자는 십자가의 원수라!!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리석지 맙시다. 십자가의 원수의 마지막은 멸망이니라 했습니다. 십자가의  원수의 마지막은 멸망이니라. '십자가의 원수의 하나님은 배요' 배 위해서 살아,  노아 때와 마찬가지로. 배 위해 살다가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죽기를 두려워하는  자는 아직까지 마귀의 종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입니다.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  동안 종노릇하는 자를 놓아주려고 주님이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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